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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구미에서 고공농성하는 두 여성 노동자구미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 가면, 가장 먼저 삽을 든 녹색 모자의 마네킹들이 맞아준다. 영락없이 박정희 시대 모습이다. 거대한 박정희 동상도 그때 그 시절인 듯 구미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테마공원 내 북카페에는 제법 진보적인 도서도 꽂혀 있다. 구미시는 박정희의 고향에, 국민의힘 아성이지만, 2018년에는 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시장으로 뽑았다. 하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것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렇다. 테마공원에서 조금만 더 가면 2010년 새벽 기숙사에서 용역깡패가 뿌린 소화기 분말을 마시며 멱살 잡혀 끌려 나갔던 KEC 여성 노동자들이 여전히 승급 성차별 해소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반면 구미 곳곳에서는 미스코리아 경북 선발대회 플래카드가 보란 듯이 펄럭인다. 그런 구미에서 두 여성 노동자가 약 한 달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다. 이들은 공장에 화재가 나자 그 동안 누렸던 수많은 특혜와 6조 원의 영업이익, 1,300억 원이 넘는 화재보상금에도, 평택공장으로 생산시설만 빼가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해 버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에 대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 중이다. 사측에 “쓰다 버려진” 11명의 노동자가 함께 투쟁한 지는 벌써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 가장 춥다는 1월 8일, 사측의 강제철거 시도에 맞서 두 여성 노동자가 공장 옥상에 올랐다. 두 여성은 안간힘을 다해 공장을 부여잡고 있지만, 사실 구미시는 여성이 떠나가고 있는 도시다. 경북(49.6%)이나 전국(50.2%)과 비교해도 여성비율이 낮다. 구미시 노동자의 성별 비율은 남성이 62.8%, 여성은 37.2%에 불과하다. 남성 노동자의 비중도 전국이나 경북보다 높은 편이다. 더구나 14세 이하 남성을 제외하면, 20~30대 여성의 이주율이 가장 높다. 지난 5년간 줄어든 약 1만 명의 주민 중 다수의 성별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텅텅 비는 공동화 현상. 그것은 자본의 책임이다. 구미시의 산업은 광·제조업이 70.3%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그다음으로는 기타 서비스가 20.1%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체 수가 86.9%, 5~19인 사업체가 10.3%의 비중을 차지하여 소규모 사업장이 절대다수다. 즉 90%에 가까운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무풍지대다. 그런 사업장에선 해고가 자유로워 여성이 출산육아 때문에 해고되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정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한도도 제외된다. 물론 그 때문에 가산임금도 받을 수 없다. 위법임에도 5인 미만 사업장 10명 중 3명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구미에서도 다를 이유가 없다. 이러한 구미에서 여성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문제다. 운 좋게 일자리를 찾아도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할지는 상상이 가능하다. 특히 구미는 수년째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성의 실업률이 남성보다 다소 낮다 하더라도 보통 여성 일자리가 단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고용 여건이 더욱 불안정할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명 두 명씩 여성은 구미를 떠나간다. 물론 고용형태, 노동조건, 임금 어느 하나도 보장된 최종목적지는 없다. 하지만 여기보단 나을 것이라는 가느다란 소망을 안고 여성들은 빠져나간다. 그런 구미지만, 소현숙, 박정혜 씨는 사력을 다해 구미를, 공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소현숙 씨만 해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17년을 일했다. 박정혜 씨가 일한 지도 12년째였다. 땀과 피와 눈물을 쏟아낸 공장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검사 공정에, 남성은 생산 공정에 7 대 3으로 분명한 성별분업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관리자 다수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이 없기는 하지만, 남성의 직급이 높으니 자연스럽게 남성의 임금이 더 많다. 생리휴가 역시 무급이었다. 더구나 여성들은 하루 종일 암실 의자에 앉아서 불량 검사를 하기 때문에 팔, 어깨, 허리, 목에 늘 통증을 달고 살았다. 필름을 검사하다 눈이 찔리는 경우도 있었다. 소현숙 씨는 일하다 각막까지 손상됐다. 그런데도 늘 그랬던 것처럼, 산재는커녕 치료비 모두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 이는 두 여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여성 다수 직종인 반도체 산업에서의 이야기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다 적지 않게 직업병에 걸렸다. 삼성전자 산업재해 희생자의 다수도 여성이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남초 사업장으로 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계화하기 쉬운 노동을 자동화하여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없앴기 때문이다. 옵티칼 여성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연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했지만,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그들을 애지중지했다. 회사는 2003년 구미4국가산단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입주한 후로 1만 2천 평의 땅을 무상으로 사용했고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더구나 본사 닛토덴코는 220억 원을 투자해 2021년까지 1,983억 원의 세후 이익을 냈고, 1,734억 원의 배당금을 가져갔다(금속노조 법률원). 공장에 화재가 난 뒤로는 화재보험금으로 약 1천3백억 원을 챙겼다. 하지만 회사는 생산 물량을 자매 법인인 경기도 평택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옮겼을 뿐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외면하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본사인 일본 닛토덴코사는 노골적으로 한국기업 편을 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입으로는 좋은 말을 참 많이 한다. ESG 경영(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중시한 경영)과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중시하며 생태와 사회, 그리고 여성을 비롯한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경영진과 사업부, 인재본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203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0%, 일본 국내에서는 10%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는 한 그들의 말은 한낱 ‘퍼플워싱’일 뿐이다. 더구나 지난해 다카사키 히데오 일본 닛토덴코 대표의 소득은 모두 26억 5천만 원에 달했다. 이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평균연봉 약 5천만 원의 53배다. 그런데도 회사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4억 원을 가압류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매일 950만 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들이 지난 11일 금속노조와 옵티칼지회, 조합원 15명이 철거공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낸 가처분 소송을 법원이 인용한 탓이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와 옵티칼지회는 각 200만 원 씩, 조합원 11명은 각 50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가처분 결정 이후 회사는 매일 컨테이너와 포크레인을 대동하고 침탈을 시도하고 있다. 노조는 사력을 다해 막고 있다.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는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며 한 달째 버티고 있다. 텐트를 제법 튼튼하게 지었지만,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불 때면 날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텐트를 붙잡아보기도 한다. 공장을 붙잡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옥상이 기울어져 있다 보니 차츰 골반도 아파온다. 생리를 피하기 위해 날짜에 맞춰 피임약도 먹는다. 티슈로 몸을 닦고 머리는 3일에 1번 동지들이 길어주는 물을 데워 감는다. 이 물 역시 사측이 단수해 버린 공장에서가 아니라 동지들이 길어온 것이다. 날이 새면 또 철거 이행강제금 950만 원이 쌓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해고는 살인이다. 그래서 아무리 경찰과 용역과 포크레인이 쳐들어와도 박정혜, 소현숙 동지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아니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자꾸 이를 더 악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옵티칼 동지들의 삶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여성 노동자에게 투쟁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KEC지회 여성 노동자들이다. 구미시가 지난 1월 23일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됐지만, 정작 옵티칼 여성 노동자의 손을 맞잡고 있는 이들은 KEC지회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같은 투쟁하는 노동자와 연대 동지들이다. 고공농성 이후 옵티칼 현장에는 더욱 많은 노동자와 구미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도 2월 3일(토) 박정혜, 소현숙 동지에게 달려간다.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진행된 1차에 이어 2번째 오픈 마이크 행사다. 우리는 여기서 옵티칼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동지들의 연대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참가신청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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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다!1월 24일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전국적으로 150만 명이 참여하는 12시간 총파업이 전개됐다. 대선 과정에서 온갖 기괴한 공약들을 내세웠던 극우 인사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불과 45일 만이었다. 노동자총동맹(CGT), 자치노동자연합(CTA-A), 노동자연합(CTA-T) 등 3대 노총이 주도한 이날 총파업에는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대중경제노동자연합(UTEP), 사회운동 단체들, 문화단체들, 스포츠단체들, 좌파 정당 및 정치조직들까지 광범하게 참여했다. 우파 정권 시절인 2019년 5월 이후 5년 만에 다시 조직된 이날 총파업의 핵심 요구는 밀레이 정권의 ‘충격요법’ 정책들을 철회하라는 것, 특히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과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극우 정권의 초긴축 공격에 맞서 100년 넘게 투쟁으로 쌓아 올린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결의를 모았다. 1월 24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모인 총파업 시위대 (사진:CTA-A) 밀레이 극우정권의 출범 지난해 하반기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은 물가상승률이 150~180%에 이르러 임금의 실질 구매력이 턱도 없이 깎여나가고 빈곤율이 40%를 넘어서는 파국적 상황에서 펼쳐졌다. 밀레이는 자국 페소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겠다는 허황된 물가안정 대책과 ‘특권층’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겠다는 입 발린 약속으로,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는 상당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선투표 과정에서 ‘특권층’의 한 축인 전통적인 우파 공화당과 손을 잡은 밀레이는 강력한 우파 세력을 품에 안은 극우정권을 탄생시켰다. 12월 10일 취임한 밀레이는 우파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을 치안부·재무부·국방부 등 요직 장관에 임명했다. 특히 공화당 대선후보로서 1차 투표 때 3위를 했던 빠뜨리샤 불리치가 치안부 장관이 됐다. 동시에 18개 부처 가운데 노동사회보장부, 공공사업부, 사회개발부, 환경부, 여성인권부 등 9개를 폐지했다. 밀레이는 자신의 초긴축 정책이 불러올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겨냥해서 취임 연설에서부터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대에게는 사회보조금 수령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협박했다. 치안부 장관은 시위 주최 단체에게 경찰의 진압 경비를 부담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12월 12일, 밀레이는 ‘경제비상조치’를 단행했다. 현재 GDP 5% 수준인 재정적자를 0%로 만들겠다며 △공공지출 대폭 축소 △공공사업 전면 유보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연방예산의 나머지 모든 항목 동결을 발표했다. 또한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면서 자국 페소화를 달러화 대비 54% 평가절하했다.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 12월 20일, 밀레이는 대규모 규제완화를 위한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노동권, 임대차, 가격규제, 민영화, 교육, 연금, 관광, 위성인터넷 서비스, 의약품 판매, 무역, 외국인 토지매입 등 다방면에 걸친 규제완화를 위해 수백 개의 법률을 무력화하는 조치로 12월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메가 대통령령’은 노동권 관련해서 △미등록 고용에 대한 벌금·처벌 폐지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연장 △업무시간 중 노조활동 금지 △필수부문(의료·교육·수도·가스·전기·항공·통신 등)은 파업시 75% 업무유지 △중요부문(운송·식품가공·물류·광산·우편 등)은 파업시 50% 업무유지 △파업 도중 작업장점거·출입봉쇄·기물파손하면 해고 △사업장 단위 조합비 자동공제를 개별 동의로 변경 △기존에 노조가 운영하던 조합원 의료보험에 보험사 진입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임대차 관련해서는 △2020년부터 시행돼 오던 임대차 기간 3년 보장과 임대료 인상 제한 폐지 △미국 달러로 임대료 납부 요구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가격통제와 가격규제도 폐지했다. 리튬채굴 등을 위한 외국인 토지매입도 전면 허용했다. ‘메가 대통령령’은 1994년부터 실행돼 온 헌법상의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한 것인데, 그동안 하나의 대통령령으로 이렇게 수많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정책을 변경한 경우는 없었다. ‘메가 대통령령’은 상하 양원 모두 거부하거나 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하지 않는 한 효력이 유지된다. 현재까지 1월 3일 연방노동항소법원이 △수습 기간 3개월에서 8개월로 연장 △해고시 보상 삭감 △출산휴가 축소 등에 대해서만 시행 중단을 판결한 상태다. 공화당을 포함한 밀레이 세력은 하원의 경우 257석 가운데 79석만을 갖고 있지만 상원의 경우 72석 가운데 39석을 확보하고 있어서, 법적으로만 본다면 ‘메가 대통령령’의 대부분이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12월 27일, 밀레이는 광범한 영역에 걸친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워낙 그 내용이 많아 현지에서도 온전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에는 △국내외 미신고 자산 등록시 중과세 면제 △비례대표제 폐지와 소선거구제 도입 △치안부 장관에게 시위제한 명령권 부여 △‘불법’ 시위에 대한 징역형 대폭 상향 △법률에서 ‘젠더 폭력’ 표현을 ‘가족 간 폭력’으로 대체 △세금·연금·에너지·안보 관련 의회 권한을 2025년까지 대통령에게 이양 등이 포함돼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은 ‘메가 대통령령’과 결합된 ‘옴니버스 법안’을 “노동자계급이 오랜 세월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들과 성과들을 다 쓸어버리려는 공격”이자 “시위와 파업의 권리마저 제한함으로써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충격요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쉽게 보여주려는 듯, 밀레이는 연말을 맞으며 공공부문 계약직 공무원 5천 명의 계약연장을 거부하여 전격 해고했다. 초긴축 정책의 계급적 본질 밀레이는 획기적으로 물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의 취임 이후 오히려 물가가 더욱 급등했다.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페소화 평가절하, 모든 가격통제와 가격규제 폐지 등 물가의 고삐를 푸는 조치들을 줄줄이 취했기 때문이다. 밀레이 취임 이후 며칠 만에 휘발유 가격이 60%, 식료품 가격이 50% 급등했다. 12월 물가가 전월 대비 25.5% 치솟으면서 2023년 전체 물가상승률이 211.4%를 기록했다. 교통보조금 삭감이 적용되는 1월부터는 대중교통 요금이 3배로 폭등했다. 12월 20일 ‘메가 대통령령’과 함께 가격통제가 사라지자, 바로 다음날 보험사들의 의료보험료가 일괄 40% 인상됐고, 30일 만에 식품·의약품·연료 가격이 100% 상승했다. 그 사이 임금의 구매력은 20% 이상 하락했는데, 이는 노동자계급에게서 자본가계급에게로 그만큼의 소득이전이 발생했음을 뜻했다. 밀레이는 ‘특권층’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그의 정권은 ‘특권층’을 중추로 하여 구성됐고, 그의 ‘충격요법’ 정책들은 자본가계급에게 보내는 선물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국제 금융자본과 광산·석유 대자본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풍부한 리튬 자원에 눈독을 들여 온 일론 머스크는 마음껏 리튬을 채굴해 갈 기회가 열리려 하자 밀레이를 크게 칭송하고 있다. 밀레이는 가자지구 학살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상황에서, 수시로 이스라엘 국기를 자기 몸에 휘두르며 이스라엘 네타냐후 학살정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권과, 2019년 브라질 보우소나루 정권의 뒤를 따라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도 공언한다. 반면 자신이 ‘공산주의’로 규정해 온 중국과 브라질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에는 가입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밀레이가 보여준 일련의 정책들에 흡족해 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10일 아르헨티나에 47억 달러 추가대출을 결정했다. 이는 2018년 아르헨티나와 체결했던 총 440억 달러 대출프로그램의 일환인데, 한동안 동결돼 있던 추가대출을 재개하면서 일부 조기대출까지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 대출금에는 2024년 말까지 GDP 2% 수준의 재정흑자를 달성해야 한다는 가혹한 조건이 붙어 있다. 밀레이 정권은 △한시적 수출입세 인상 △에너지·교통보조금 축소 △주 정부와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축소 △사회기반시설 지출 축소 등을 통해 조건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와 같은 대출조건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한 대출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은 피땀을 갈아 넣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저항의 물꼬를 트다 밀레이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투쟁이 시작된 날은 12월 20일이었다. 전투적인 노동조합들과 실업자단체, 그리고 ‘좌파전선’1)이 함께 주최하는 시위가 열려 2만 명이 참여했다. 대통령과 치안부 장관이 도로점거 시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엄벌하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이날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하며 차도로 나아간 뒤 대통령궁 앞에 위치한 ‘5월 광장’을 장악하고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밀레이가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5월 광장과 의회 앞으로 몰려나와 새벽까지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조’ 시위를 전개했다. 비슷한 상황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내 여러 지역과 지방 대도시들에서도 전개됐다. 경찰은 어떻게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1) ‘좌파전선’(FIT-U)은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노동자당(PO), 사회주의좌파(IS), 노동자사회주의운동(MST) 등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로 구성된 공동 선거기구이자 공동 투쟁체이다. ‘좌파전선’은 혁명적 강령과 대중투쟁 노선을 견지하는 가운데 다섯 명의 하원 의원을 갖고 있다. 의회에서 혁명적 입장을 제기하는 이 의원들은 노동자 평균임금만을 받고 나머지 급여를 투쟁기금으로 내며, 투쟁현장에서 최선두에 선다. 밀레이 정권이 ‘옴니버스 법안’에서 비례대표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들을 의회에서 제거하려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좌파전선’은 2023년 하반기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 각각 2.7%와 3.3%를 득표했다. 이후 매일같이 간호사, 타이어산업 노동자, 실업자, 공무원 등이 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최대 노총 CGT와 좀 더 전투적인 CTA에게 총파업에 나서라는 호소와 압력이 빗발쳤다. 밀레이 정권이 ‘옴니버스 법안’을 발표한 12월 27일 CGT 주최로 시위가 열렸다. 원래 CGT 지도부는 ‘메가 대통령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러 법원을 향해 인도로 행진하는 작은 시위를 계획했는데, 2만 명이 몰려나와 법원 앞 광장과 차도를 가득 메워버렸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밀린 CGT는 결국 다음날 다른 노총들과 함께 1월 24일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총파업 계획이 발표되자, 부르주아 언론들은 “새 정부 취임 18일 만에 ‘역사상 가장 빠른 반정부 파업’을 발표했다”면서 비판에 나섰다. 자본가단체들은 “밀레이 정권을 지지하는 맞불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발표했다. 밀레이 정권은 “나는 파업하지 않을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총파업을 좌절시키려는 캠페인에 나섰다. 반면 좌파전선과 전투적인 노조들은 모든 사업장에서, 모든 노동자들 속에서,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총파업을 조직해 나가자고 결의하고 호소했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보여준 총파업 150만 명이 참여한 1월 24일의 총파업은 누가 이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수도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에서 도로와 광장을 점거하고 대규모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도로점거 시위를 엄벌하겠다는 대통령과 치안부 장관의 엄포를 묵사발 냈다. 밀레이 정권의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을 반드시 분쇄하겠다는 요구를 앞세우고 전투적인 노조들, 사회단체들, 지역조직들, 좌파조직들이 함께 행진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노동조합들, 사회단체들, 좌파조직들 등으로 구성된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의회 광장 주변으로 운집하면서 도심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는 조종사들을 필두로 항공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300편이 넘는 비행편이 모두 취소됐다. 항공노동자들은 밀레이가 추진하는 국영항공사의 사유화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무원, 트럭기사, 인쇄, 은행 부문도 파업에 강하게 동참했다. 버스와 지하철은 오후 7시부터 파업에 동참했다. 수도를 둘러싼 광역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서는 제조업 파업이 힘차게 펼쳐졌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파업이 매우 강력했다. 90초마다 차량을 생산하던 도요타 공장이 완전히 멈춰 섰다. 포드에서도 생산이 마비됐다. 폭스바겐은 휴가 중이었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행진에 나섰다. 금속부문과 식료부문에서도 파업이 벌어졌다. 타이어산업 노동자들은 자체적으로 7시간을 추가해 19시간 파업을 벌였다. 통신사 건물도 거의 텅 비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운영됐다. 그러나 이날 총파업에는 아쉬움도 있었다. 특히 버스와 지하철이 오후 7시부터 파업에 나서면서 파업의 위력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만일 버스와 지하철이 아침부터 파업에 들어갔다면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위 규모도 훨씬 늘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노조 안에서 계급투쟁 노선 활동가들이 더 강력한 파업을 요구하며 내부투쟁을 전개했지만, 파업 시점을 바꿔내지 못했다. 그런데 버스와 지하철 노조 지도부가 보여준 이러한 어정쩡한 자세는 사실 더 큰 문제의 일부였다. 페론주의(키르치네르주의) 세력과 노조관료들 아르헨티나는 공식 경제에 포괄된 노동자들의 40% 정도가 조직돼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의 규모가 큰 나라다. 1930년에 결성된 최대 노총 CGT의 조합원 수는 오늘날 700만에 이른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이끄는 노조관료들은 1940년대 페론주의가 등장할 때부터 그 한 축을 구성해 왔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했던 페론주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흔히 비난받는데, 임금 인상, 단체교섭권 보호, 주택 개량, 사회보험 시행 등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개량적 조치들을 취하긴 했지만, 엄연히 자본주의 착취·억압 체제를 수호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이었다. 페론주의의 일부가 된 노조관료들은 정권으로부터 약간의 개량을 얻어오는 대가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을 억눌렀다. 1970~80년대 군사정권을 거친 뒤, 1990년대에 정권을 잡은 페론주의 우파가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을 때,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의료보험과 연금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사유화와 노동유연화를 수용했다. 그러나 점점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생존권이 파탄나자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려 수십 차례 총파업에 나섰다. 결국 2001년 거대한 경제위기가 터졌고, 강력하게 성장한 실업자운동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민중항쟁이 폭발하면서 2주일 사이에 네 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이후 자본가권력의 통치위기 상황을 수습한 뒤 최근까지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한 게 페론주의 좌파에 해당하는 키르치네르주의였다.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다시금 키르치네르주의를 떠받치는 하위 파트너로 역할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키르치네르주의 정권이 전임 우파 정권의 대규모 임금·연금 개악을 복원하겠다던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데도, 노조관료들은 한 번도 총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키르치네르주의는 개량을 안겨줄 것 같은 언사를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어정쩡한 수준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거짓말과 모순으로 점철된 정치적 위선, 또 하나의 ‘특권층’이 되어 깊이 빠져든 부패, 물가폭등에 대한 통제력 상실 등 키르치네르주의 정권에 대한 광범한 실망과 분노가 2023년 대선을 앞두고 폭발했다. 극우인사 밀레이가 깜짝 부상하고 집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키르치네르주의가 계속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분명히 그들 또한 IMF와 협력하며 긴축 정책을 실시했을 것이다. 물론 좀 더 유연하게, 특히 노조관료들과 협상하는 방식을 취했겠지만, 그 본질은 밀레이 정권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월 24일 총파업이 벌어질 때까지, 밀레이 정권의 ‘충격요법’에 대해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의 실세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는 침묵했다. 대선후보였던 세르히오 마사는 밀레이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키르치네르주의 정치인들은 총파업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밀레이의 초긴축 정책이 총파업과 거리시위 같은 대중투쟁에 의해 분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본가정부의 정책을 대중투쟁으로 분쇄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이 원하는 것은 대중투쟁의 물꼬를 의회와 법원에서의 말다툼으로 돌리는 것이고, 차악으로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며, 결국 4년 뒤 선거에서 재집권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들의 목표에 부합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총파업이 제한되는 것이다. 문제는 총파업을 공식적으로 이끄는 노조관료들의 대다수가 여전히 페론주의에 빠져 있고 키르치네르주의를 추종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려 총파업을 선언하고 실행했지만,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밀레이 정권에 맞서 전면전에 나설 생각이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망은 의회와 법원이 대신해서 밀레이 정권의 독주를 막아주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만큼만 투쟁하면 된다는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의 본심은 버스와 지하철의 어정쩡한 파업으로도 나타났지만, 1월 24일 총파업 이후 투쟁계획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아래로부터 자주적인 투쟁역량을 건설하기 그러한 노조관료들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있기에, 사회주의노동자당(PTS)을 비롯한 좌파전선은 총파업 계획이 발표된 이후 노조관료들과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의 자주적인 투쟁역량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노조관료들이 의식적으로 토론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좌파전선은 영향력을 가진 사업장들과 전투적인 노동조합들 속에서 대중적 토론을 제기하고 조직해 나갔다. 나아가 지역 단위로 조합원, 미조직 노동자, 특수고용, 실업자, 여성, 학생, 그밖에 공세에 맞닥뜨린 모든 민중을 포괄하여 토론 모임을 갖고 카세롤라조와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전투적인 노조들, 사회단체들, 좌파조직들을 중심으로 ‘민중회의’라는 지역조직들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필두로 여러 지역에서 건설해 나가고 있다. 좌파전선은 일회성 총파업을 넘어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을 완전 분쇄할 때까지 무기한 전면 총파업으로 나아가자는 방향을 제기했다. 또한 △자본의 위기전가 반대 △IMF와의 합의 거부 △고용·임금·연금의 방어 △살인적인 물가인상에 맞서 임금·연금과 특수고용소득의 긴급 인상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 등 모든 긴축정책의 즉각 폐기 △모든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 △폐쇄·정리해고 공장에 대한 노동자 자주관리 △식료품을 비롯한 필수품에 대한 가격통제 △식료품 대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모는 모든 기업의 몰수와 노동자통제 등과 같은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강령을 모든 모임과 집회에서 제기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명확한 전망을 내걸고 아래로부터 건설되는 자주적인 투쟁역량이 얼마나 강력하게 성장하는가, 그래서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노조관료들을 압박해 내고 나아가 압도해 내는가야말로 향후 투쟁의 전망을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다. 세계적 중요성을 가진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과 노동자의 반격 1월 17일, 밀레이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전 세계를 대표하는 자본가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기조의 연설을 하고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그는 “서방 세계가 집단주의와 급진적 페미니즘, 잔인할 정도의 환경 보호 등 사회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위험에 빠져 있다”면서 “자유시장경제만이 기아와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세계경제포럼에서의 연설과 환대는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실험이 오늘날 세계 계급투쟁에서 갖는 의미를 함축해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와 인접한 칠레에서 1973년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는 칠레를 세계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칠레에서 실현가능성이 입증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후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화했고,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얼핏 보기에,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200%가 넘어가는 ‘예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나온 ‘예외적인’ 정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예외적인’ 상황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오늘날 세계경제 전반이 통제 불가능한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향해 치달아 가는 과정에서 ‘약한 고리’에서 먼저 불거져 나온 전조증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밀레이의 언행은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 못지않게 기괴하고 극단적인 극우인사들이 줄줄이 집권하는 상황을 세계 도처에서 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두테르테,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같은 자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밀레이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인도의 모디, 이탈리아의 멜로니,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같은 자들도 그 실질적 면모에서는 그리 밀리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지금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극우가 맹렬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직 극우정권이 밀레이 정권만큼 극단적인 초긴축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을 침몰시켜 나간다면, 지금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일 수 있지 않을까? 지구를 덮치게 된 기후재난이 파키스탄의 홍수에서 그칠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휘감게 된 전쟁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경제파탄과 극우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결코 아르헨티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자계급의 투쟁 또한 그만큼 세계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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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전 지구적 성별격차, 6년 만에 또 다른 양상으로 벌어져1. 여성 노동자 업무와 무관한 기준 내세워 승진 차별 … 중노위 시정명령 여성 노동자의 담당업무 이외 부분에 승진 심사 기준을 세워 달성하지 못하게 해 온 기업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고용상 성차별 시정명령을 받았다. 지난 23일, 중노위는 직원 1,000명 규모의 기계 제조·판매기업 A사가 지난해 12월 5일 실시한 승진 심사에서 여성 노동자 2명을 탈락시킨 것을 간접차별로 보고 승진 심사를 재실시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5월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가 시행된 이래 두 번째 시정명령이다.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는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벌칙 부과뿐 아니라 차별 처우 중지, 근로조건개선 등을 강제해 노동자가 실질적인 구제를 받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성차별이 발생한 A사 국내사업본부는 직접 영업활동을 하는 영업관리직을 전원 남성으로, 그렇지 않은 영업지원직은 전원 여성으로 채용했다. 그런데 A사는 지난해 상반기 승진 심사에서 직접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이 충족할 수 없는 매출점유율, 채권점유율 등을 승진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승진 대상자 6명 중 영업지원직 여성 2명은 모두 탈락하고, 영업관리직 남성 직원은 4명 중 3명이 승진했다. 중노위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A사 남녀 성비는 2022년 6월 기준으로 남성 297명(88.1%), 여성 40명(11.9%)이었다. 이 중 2급갑(과장급) 이상인 남성은 150명(96.7%)인 반면 여성은 5명(3.2%)에 불과했다. 이에 중노위는 A사의 승진 차별을 성별에 따른 간접차별로 보고 60일 이내에 다시 승진심사를 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견고한 ‘유리천장’을 새삼 마주하는 사례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2315330005453?did=NA 2. 막막한 생계로 파업에 나선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목소리 아르헨티나에서 밀레이 대통령 취임 45일 만에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으며, 많은 여성이 참가했다. 안보부 장관은 이번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 대해 “마피아 노조원들”이라고 비난했는데 “평범한 가정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리아(52)씨는 “현 정부 정책을 보고 있자니 너무 힘들었다. 나를 포함해 가족 4명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밀레이 극우 정부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며 취임 후 여성, 젠더, 다양성을 담당하는 부처를 폐쇄했다. 그리고 기업을 위한 366개 규제 철폐 ‘메가 대통령령’과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는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 처리를 추진하자 1월 24일 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임신중지 불법화는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다. 야간조 근무를 마치고 시위에 나온 간호사 엘리자베스 구티에레즈는 “예전에는 일요일마다 고기를 먹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쌀마저도 매우 비싸다. 임대료도 올랐다. 더는 월급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활동가이자 미술 큐레이터 노동자 페데리카 바자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의료에서 노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우리의 생존권을 없애려는 극우파에 맞서 싸우고 있다. 저들은 우리가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이바나 우에즈는, 밀레이가 5살짜리 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딸을 데리고 나왔다며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이미지와 댓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직접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현실이 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4/jan/24/argentina-strike-protest-javier-milei https://www.yna.co.kr/view/AKR20240125011800087 3.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에 수술 확인서 사라지나 앞으로 트랜스젠더는 성전환 수술(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아도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성별 정정은 트랜스젠더의 생존과 직결된 지점에서 여러 문제를 낳았다. 개중 지정 성별과 사회적 성별 간 불일치 등은 사회 전반의 차별과 혐오를 양성하는 핵심적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1) 결과를 보면 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57.1%)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서 구직 공고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응답했고, 10명 중 3명(27.9%)은 의료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혐오로 의료기관 방문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이제까지 대다수 재판부는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성확정 수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성확정 수술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비 부담이 크다. 시민단체 성소수자부모모임이 발간한 '트랜스젠더 성확정 수술을 위한 의료 정보 가이드북'에 따르면 지정 성별 여성의 10명 중 4명은 성확정 수술을 받기 위해 6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소비했다. 수술비용은 수술부위와 의료기관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서 최저 300~6,000만 원까지 차이를 보였다. 성확정 수술은 트랜스젠더 개인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이들의 절반 이상(52.4%)이 합병증 및 부작용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30대 후반의 트랜스여성은 장 폐색을 겪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법률신문>에서 보도한 대법원의 성확정 수술 증명서 제출 요구사항 폐지 검토에 대해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비쳤다. 성확정 수술 확인서 요구는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일본이나 2011년 독일에서는 일찍이 성확정 수술이 건강권 침해와 같은 사유로 성별 변경 신청 필수 요건에서 배제되었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611 4. 성소수자 차별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건강 해쳐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1,600명 이상의 트랜스 여성을 대상으로 한 2년간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고용과 주택에 대한 차별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고용 및 주택에 대한 차별이 HIV감염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흑인과 라틴계 트랜스 여성은 HIV감염과 에이즈가 불균형적으로 높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보였다. 그리고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지난 1년간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42%는 해고되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14%는 주택 계약을 거부당했다고 답했다. 성별확정치료가 보장되지 않는 주에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주보다 두 배나 높았다. 이를 연구한 결과 트랜스 여성들이 의료 서비스와 HIV예방약(PrEP)에 대한 접근성 개선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차별’임이 드러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거와 의료 서비스 부족은 취업을 어렵게 하면서 소외된 여성을, 건강을 해치는 환경으로 내몬다. “고용 차별은 빈곤, 의료보험, 장애, 굶주림(불안정한 음식 섭취), 노숙, 수감, 생존을 위한 성 노동과 중첩적으로 발생한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트랜스젠더 여성이 취업을 거부당하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악순환을 초래한다”. 아울러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건강 불평등에 구조적 인종차별이 기여한다”고도 밝혔다. 해당 조사 및 연구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부당한 대우에 대한 걱정 없이 존엄하게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결론지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4/01/25/trans-woman-risks-health/ 5. 전 지구적 성별격차, 불과 6년 만에 나타난 또 다른 양상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새로운 젠더격차 현상이 전 세계에 부상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보도했다. 칼럼은 30대 미만 여성의 경우 진보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지만 30대 미만 남성의 경우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등 성별에 따라 정치적 성향에 대해 큰 차이를 보인다는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모든 대륙의 국가에서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이념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18~30세 미국 성인들은 남녀가 진보적 세계관과 보수적 세계관을 거의 비슷하게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답한 18~30세 여성이 동년배 남성보다 30%포인트 더 많았다. 칼럼은 "이 격차가 벌어지는 데는 불과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러한 성별격차가 극심한 국가로 한국을 사례로 들며, "서양 바깥에는 더 극명한 분열이 존재한다"며 "한국에서는 현재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성별에 따른 정치적 성향의 격차가 30%포인트 수준인 반면 한국은 50%포인트 수준에 달한다. 한국의 이러한 젠더격차에 대해 "미투 운동은 오랫동안 이어진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적 가치관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계기였다"며 "특히 성 불평등이 극심하고 노골적인 여성 혐오가 만연한 한국에서 이 운동의 불씨는 더욱 활활 타올랐다"고 분석했다. <참조 기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7352&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6. 이미 간접 증거가 확인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태아산재 2021년 태아산재법(산업재해 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임신 중인 노동자가 건강에 해로운 노동 환경에 노출돼 자녀에게 선천성 질병이나 장해가 발생하면, 해당 자녀를 산재 피해자로 보는 내용이다. 지난 2023년 1월 시행 이후 6건의 신청 건수 가운데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건 모두 4건이다. 이 중 임신 중 투석액 혼합 작업을 하다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를 출산한 간호사 사례에 대해 처음으로 태아 산재를 인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7∼11년 근무하다 선천성 질병(식도 폐쇄증, 달팽이관 협착, 콩팥과 방광 등에 선천성 기형)을 가진 자녀를 출산한 노동자 3명이 2021년 5월 제기한 건에 대해서도 이르면 다음 달 산재 인정 여부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역학조사를 진행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평가위원회는 역학조사보고서에서 “(선행 문헌에서) 반도체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근로자에게 자녀의 선천성 기형 위험이 증가한다는 간접적 증거는 확인”됐다며 “특히 2010년 이전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더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254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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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정세토론회] 갇히지 않는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투쟁과제아래에서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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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트랜스여성도 병역의무’ 부여하려고 판정기준 낮추려는 국방부1. ‘트랜스여성도 병역의무’ 부여하려고 판정기준 낮추려는 국방부 국방부가 트랜스여성(MTF) 에 대해 병역판정 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국방부가 입법 예고한 ‘병역판정 신체 검사 등 규칙’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잘 드러난다. 신체검사 현행 규칙상 트랜스여성은 6개월 이상 호르몬 치료를 받았을 경우 5급으로 분류되어 면제를, 치료 기간은 6개월 미만이더라도 향후 관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재검사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호르몬치료를 6개월 이상 규칙적으로 받지 않은 트랜스여성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게 된다. 군 구성원 간 성소수자 차별/혐오 인식이 여전한 데다 트랜스여성이 군 내부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방안마저 부재하는 시점에 단순 외과적 치료 문제로 트랜스여성의 징병 기준을 환원하는 이 같은 결정은 상당한 비판을 사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트랜스여성의 84.8%는 복무 기간 동안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듣거나 공동샤워시설을 이용할 때 등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또 환경조건, 수술 필요성, 성별 불일치감(gender dysphoria) 등 여러 요건에 기초하여 더 복합적인 시선으로 트랜스여성에 대한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방부는 오는 22일까지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25074.html#cb 2. 일하다 다쳐도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청년 여성 노동자들 일하다 건강이 안 좋아진 청년 여성들에게 치료재활 등을 지원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에서 ‘2023 청년 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서 지원사업을 신청한 청년 여성 노동자 200명 가운데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해결한 이들은 3명에 불과했다. 산재신청을 해 본 경우도 6명에 그쳤고, 건강보험이나 개인보험, 자비로 병원비를 충당해 치료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4분의 1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치료나 요양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서 응답자들은 ‘산재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몰라서’가 가장 많았다. 산재보험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해고나 불이익이 우려돼서라고 답한 경우도 많았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151625001 3. 100 : 51, 구조적 젠더 불평등을 보여준 옥스팜 보고서 옥스팜이 1월 다보스포럼에 맞춰 발표한 ‘불평등주식회사(Inequality Inc.)’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세계 최상위 부유층 남성 5명의 자산이 2배 이상 늘어난 반면 세계 인구 60%에 해당하는 50억 명은 더 가난해졌다. 남성의 자산은 여성보다 105조 달러 많았는데 그 차이는 미국 경제 규모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옥스팜은 보건사회 부문의 여성 노동자가 포천지 선정 100대 기업 CEO의 1년 평균소득만큼 벌려면 1,200년이 걸린다고 추산했다. 세계 1,600개 대기업 중 0.4%만이 공개적으로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했고, 젠더평등에 대한 공개적 약속을 한 기업은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성별 임금격차로 드러났다. 2019년 기준으로 여성은 남성이 노동 소득으로 1달러를 벌 때 51센트를 벌었다. 게다가 법인세율을 3분의 1이나 줄인 기업의 조세 감면과 탈세, 기업의 이윤을 우선한 공공 부문 민영화 정책이 여성에게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 제공 기회를 빼앗고, 무급 돌봄노동의 비중을 늘려 타격을 입혔다. 또 “가장 부유한 1%가 가장 가난한 50%보다 2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강화되는 기후 위기도 여성, 특히 가난한 여성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옥스팜은 “저임금은 많은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빈곤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성별 임금격차와 과중한 무급 돌봄 부담은 여성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옥스팜 보고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불평등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젠더평등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views-voices.oxfam.org.uk/2024/01/100-trillion-gender-wealth-gap-davos-economy-for-women/ https://www.industriall-union.org/fighting-for-gender-equality-in-an-increasingly-unequal-world 4. 육아휴직, 기업 5곳 중 한 곳은 여전히 ‘그림의 떡’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들이 잇달아 발표, 도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 5곳 중 한 곳은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52.5%였다. 27.1%는 ‘필요한 사람 중 일부가 사용 가능하다’고, 20.4%는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나 보이지 않는 ‘문턱’도 여전하다. 300인 이상 사업체는 95.1%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5∼9인 사업체는 47.8%에 불과했다. 여성의 출산 전후 휴가·배우자 출산휴가·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일·가정 양립 제도 활용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컸다. 제도 활용이 낮은 이유로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이 42.6%로 가장 많았다. 인력이 적은 사업장일수록 육아휴직을 떠났을 때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커지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뒤이어 ‘직장 분위기’(24.2%), ‘대체인력 구인 어려움’(20.4%), ‘추가인력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12.8%) 순이었다.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감소도 주된 원인이다. 현재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80%(상한 150만 원/ 하한 70만 원)다. 승진 지연과 보직 제한 등 각종 불이익에 대한 우려도 컸다. 육아휴직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해야 하지만 조사 대상 사업체 중 30.7%만 휴직 기간 전체를 승진 소요기간에 산입했다. 23.7%는 일부만 산입, 45.6%는 산입하지 않았다. <참조 기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40121500047 5. 카자흐스탄 여성활동가, 정부의 탄압으로 투옥 위기 카자흐스탄 젠더폭력 대응 단체인 ‘침묵하지마라(nemolchi)’의 대표이자 여성평등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 디나 스마일로바가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탄압받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 지원 모금에 범죄협의를 씌우는 등 6건의 소송과 국제수배자명단 신청을 결정함에 따라 투옥 위기에 처했다. 스스로가 집단 강간 피해 생존자이기도 한 디나는 이미 2021년부터 카자흐스탄에 머물지 못하는 신세로 현재 제3국에 망명을 신청 중이다. 디나는 이 탄압이 “정부의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은 여성 억압이 강한 사회다. 그런데 지난 11월 한 주 동안에는 전 경제부 장관이 아내(31세)를 구타해 살해하는 등 여성살해가 3건이나 발생했고, 경찰에게 강간당한 3명의 여성이 젠더폭력을 폭로하면서 가부장적 권력의 통제와 침묵의 빗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구조적 젠더폭력에 대한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공분이 커지며 정부는 한편에서는 대중적 분노를 잠재우려 무언가 ‘하는 척’하지만, 정작 적극적으로 젠더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탄압을 강화하며 여성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는 매년 400명 이상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 중 40%만이 기소된다. 사법부는 가정폭력과 관련된 소송의 절반을 ’화해‘로 종결시킨다. 경미한(?) 젠더폭력 피해는 범죄로 처벌조차 하지 않는다. 여성은 구타, 강간, 살해당하고 있지만 대부분 ‘침묵’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여성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거나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며 비난받는다. 경찰과 고위 관료, 권력자들은 구조적 폭력을 재생산하고 범죄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카자흐스탄인 인권, 여성활동가들은 계속 구조적 변화를 촉구하며 활동가에 대한 탄압에 맞서고 있다. 여성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 여성단체 ‘Equality Now’도 디나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최근 극장가에서 젠더폭력과 이를 은폐하는 부정한 정경유착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Dastur)가 대중적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equalitynow.org/news_and_insights/womens-human-rights-defender-faces-imprisonment-in-kazakhstan/ https://vlast.kz/english/57605-its-important-to-talk-about-violence-against-women-and-demand-chan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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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울산방송은 이산하 아나운서 노동자성 온전히 보장하라!2024년 1월 18일 오전 11시 울산 민영방송사인 UBC울산방송 앞에서, 프리랜서였던 이산하 아나운서가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한 후 3년간 자행된 사측의 탄압과 갑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산하 아나운서 노동자가 1월 15일부터 1인시위를 시작하면서 급하게 잡힌 일정이었지만, 울산에서 처음으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선언하는 자리에 당사자 노동자들과 ‘엔딩크레딧’,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민주노총법률원울산사무소, 노동당울산시당, 노동자혁명당(준), 울산비정규직센터, 사회주의를향한전진울산지역위원회 동지들이 참여했다. UBC울산방송은 다른 방송미디어 자본과 마찬가지로 아나운서, CG, 카메라, 음향, 작가, 기자 등 모든 방송노동자를 계약서도 없이 프리랜서나 용역,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소모품처럼 쓰고 버려왔다. 2015년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산하 노동자는 정규직과 다를 바 없이 일하다 2021년 4월 갑자기 해고당했다. 지노위와 중노위가 이산하 아나운서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나서야, 즉 이산하는 UBC울산방송이 고용한 정규직이라고 인정하며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정해 연말에 복직하고서야, 이산하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행정법원도 부당해고라 판정했다. 하지만 UBC울산방송 사측은 이후 3년간 막말은 기본이고, 다른 정규직 노동자와 다른 차별계약서를 내밀고, 프로그램 폐지, 업무축소와 임금삭감, 편집요원으로 부당전보 등 견디기 힘든 괴롭힘과 따돌림, 갑질을 해댔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이산하 아나운서가 용기를 내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과 함께 연대를 타전했고, 울산 몇 개 단체가 급히 기자회견을 꾸리며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산하 아나운서는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 제 자리는 없다고만 말합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당한 일을 겪어도 말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오히려 보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은 정의를 말하는 곳이고, 저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 보장뿐 아니라, “모두가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차별 없이 일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정말 바랍니다”라고 외쳤다. 이산하 아나운서 승소 이후, UBC울산방송은 계약서 없이 오랫동안 부려 먹은 프리랜서 중 10명 정도만 무기계약직으로, 그것도 노동조건을 개악해 전환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 전환자 중 CG업무를 하는 손민정 노동자가 부당한 근로계약을 거부하자 또 탄압을 시작했다. UBC울산방송은 업무축소와 임금삭감 등을 자행하며 새벽 2시간 노동만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동자 역시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법으로라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으려고 했지만, 소송을 한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보복 갑질을 합니다. (중략) 이산하 아나운서의 문제와 제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울산방송의 문제는 현재 전국의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부정당하고 현재와 미래는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방송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저도 제자리에서 싸우겠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UBC울산방송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백화점이라 불리는 방송계 노동권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이라는 보호막을 갖지 못한 채 소송 등으로 저항하는 노동자가 늘어나며, 방송사들이 ‘프리랜서’로 사용해온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최근 수년간 쌓이고 있다. 방송미디어 자본은, ‘정론직필’은 고사하고 ‘이윤’과 ‘권력’만을 탐하며 법원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은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열을 조장하며 착취와 노동탄압에 열을 올린다. 이산하 아나운서와의 연대투쟁은 방송미디어 자본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이자,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지역 노동자 투쟁 과제로 세우는 소중한 싸움이다. 언론노조 산하 정규직노조는 외롭게 싸우는 이산하 노동자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 노동자들과 엔딩크레딧 등, 1월 18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투쟁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이산하 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방송노동자 문제, 전체 비정규직노동자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에, 기자회견 참여 단위는 앞으로 지지모임 구성을 확대해 제안하며 1인시위 연대 등 다양한 투쟁을 모색하자고 결의했다. UBC울산방송은 부당전보 철회하고,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하라! 노동탄압 중단하고,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투쟁에 민주노조가 같이 나서자. [기자회견문] UBC 울산방송은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 전보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하라! 이산하 아나운서는 2015년 울산방송에서 일을 시작해 기상 캐스터, 아나운서, 라디오 진행, 취재기자, 행사 진행 등의 업무를 했고, 2021년 해고되었다. 일하는 동안 계약서를 한번도 쓰지 않은 울산방송은 해고할 때도 해고통지서조차 주지 않았고, 일할 때는 직원처럼 부리더니 자를 때는 프리랜서라며 모든 권리를 부정했다. 또한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소송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복직한 이산하 아나운서에게 3년째 단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프로그램을 폐지했으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편집 업무를 하도록 부당인사발령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이산하 아나운서는 회사가 퍼뜨리는 악의적인 소문과 괴롭힘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본인의 동의 없이 아나운서를 편집요원으로 업무 변경한 것은 소송으로 인한 보복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매우 부당한 처사이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퇴사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국의 수 많은 방송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 후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얼마전에도 대법원이 KBS에서 일했던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정규직으로 채용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방송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경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차별하는 등 온갖 꼼수로 법을 어기고 있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ubc울산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울산방송이 하루빨리 이산하 아나운서의 부당전보를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산하 아나운서와의 협의를 통해 기존에 담당했던 업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울산방송의 통상근무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주 40시간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보장하며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여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한다. 울산방송은 더 이상 지역사회를 실망시키지 말고 이산하 아나운서 사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연대를 통해 방송계 비정규직의 실태와 현황을 밝히고, 더 많은 방송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싸워 나갈 것이다. 2024년 1월 18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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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3.8 여성파업 오픈마이크 든 여성 노동자들사진: 전병철 지난 1월 12일 명동 거리의 세종호텔 농성장 앞에 마이크가 하나 놓였다. 뒤편으로는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투쟁은 나의 투쟁, 세상을 바꿀 우리의 이야기’. 금요일 점심 무렵 명동을 바삐 지나가던 시민들의 시선이 흘끗 행사장으로 기울었다. 당신의 투쟁은 나의 투쟁, 이라는 문구를 소리 내 읽어보는 시민도 있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체제 아래 자본은 저임금, 고용불안, 가사·돌봄 노동의 전가 등으로 여성 노동자를 억압해 왔다. 이러한 억압은 물론 자본은 철저히 성별 이분법에 의해 노동자 대중을 갈라쳐왔다는 점에서 악질적이었지만, 구조적 문제를 여성 노동자 개개인의 것으로 치부하여 은폐해 왔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따라서 3.8여성파업조직위가 고른 것은 열린 마이크였다. 각자 집과 일터에 깃들어있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개인의 역사를 곧 여성 파업의 계기로 끌어내기 위해 창구를 열기로 한 것이다. 사회는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의 허지희 조합원이 맡았다. 허지희란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는 세종호텔지부의 조합원에서 여성 노동자 간의 이야기를 잇는 연결사로 잠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허지희 조합원은 “여성파업이란 단지 여성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라며 지금 싸우는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듣고 함께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마이크를 잡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이경화 경인지회장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야기했다. 12일을 기준으로 투쟁 72일 차를 맞은 이경화 지회장의 발언은 차분하면서도 사뭇 결연했다. 이 지회장은 “최저임금 받는 (국민건강보험센터) 노동자가 두 달 넘게 파업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더러 백칠십만 원이 아쉬워 그 고된 세월을 다 참아온 사람들이라 말하곤 한다. 회사가 말하지 않으니 보건휴가가 뭔지, 연차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파서 열이 37도가 넘어도 참고 전화를 받았다”라며 고객센터 현장의 열악함을 묘사했다. 이 지회장은 또 “우리는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도 한다. 여성 노동자는 일터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라며 “그런 노동자들이 72일간 투쟁을 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아래 건보 투쟁이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11월 1일 파업 들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나를 죽이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 적 있다. 지금도 그렇다”라며 노동현장에서의 노동과 가정에서의 무급가사·돌봄 노동, 정부의 젠더억압 정책으로 인해 겪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울러 이 지회장은 “그래도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이 마음은 바꿀 수 없다. 이미 내 옆에 2년 3년 같이 근무한 동료를 어떻게 버리나. 그래서 우리 투쟁은 계속되는 거다. 계속 투쟁 이어가겠다. 앞으로도 이 투쟁 계속될 거고 한 명도 안 버리고 전원 소속기관 전환되는 날까지 계속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세종호텔지부의 고진수 지부장은 “세종호텔 안에도 많은 부분이 여성 노동자에게 할당되고 있다. 2000년대 호텔 파업 이후 가장 먼저 비정규직화된 계층이 여성 노동자”라며 성별에 따라 불평등한 호텔산업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계속해서 “세종호텔지부는 마음만 먹으면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비정규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에 맞서 싸워왔다”며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이 상시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파업이 중요하고, 진짜 여성 총파업으로 가는 그 길에 저희도 최선을 다해 역량을 보태겠다”라고 연대의 말을 건넸다. 고공농성에 들어간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도 이날 전화 연결을 통해 등장했다. 소현숙 동지는 추운 겨울 고공농성이라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투쟁의 인사를 전하고는 “위에서 투쟁을 한다는 것도 아래에서 하는 것과 똑같다”라며 “고용승계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결의를 밝혔다. 계속해서 박정혜 동지는 정리해고 전 기억을 반추하며, “저희 사업장에서도 남성보다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 힘쓰는 일은 남성 노동자가 하고, 청소 같은 잡다한 일들은 여성 노동자가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여성 노동자들도 다 할 수 있는데 그걸 따지지 못하고 그냥 했다는 점에선 문제를 느낀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동지는 “이 높은 곳에 고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라며 “세상 모든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고 연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지부장 역시 굳세고 힘찬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섰다. 톨게이트지부는 구성원 절대다수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조합이다. 노조 활동으로 인한 부당해고에 맞섰던 서산 톨게이트 투쟁, 그리고 이후 천여 명으로 확대되었던 도로공사 투쟁 승리의 기억을 되짚은 박순향 동지는 “그러나 직고용을 쟁취한 지금도 싸우고 있다. 도로공사 최초로 파업도 해봤고, 최초로 작업중지도 해 봤다. 이 작업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우리 스스로 작업 중지를 한 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모든 힘은 투쟁에서 나왔다”라며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톨게이트지부의 소식을 전했다. 이어 박 지부장은 “우리는 직고용됐지만, 업무나 임금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 도로공사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중이다. 그러나 계속 이기고 쟁취해 나가고 있다. 정규직됐다고, 직접고용됐다고 끝난 거 아니다. 아직 자회사에 남은 오천 명은 무인기로 인력이 대체된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부딪혀 있다. 이 노동자들과도 함께 싸울 필요성을 느낀다”라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단결을 강조했다. 건강보험고객센터 서울지회 양명주 조합원은 “저는 그 유명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 노동자)였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한 지 만 13년이 지났다. 고객센터와 말 그대로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그러나 입사 초기랑 지금이랑 급여 변경이 없다”라며 노동가치가 평가절하된 여성 다수 사업장의 현실을 공유했다. 건강보험고객센터 서울지회 장원웅 조합원은 “제가 투쟁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라며 “가장 중요한 주소, 이름 같은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우리가 하청노동자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공단은 지금 면접과 시험이라는 협박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 자식뿐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도 잃을 수 없다. 공단은 계속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된 대화에 임하라. 이 세상 모든 여성 노동자의 노동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우리는 투쟁하겠다”라며 투쟁의 결의를 전했다. 사진: 전병철 마지막 발언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그는 “인권이든 여성이든 다 뒤로 가고 있는 시대”라며 “아이슬란드에서 실시된 여성파업 당시 여성 노동자 90%가 참여했다. 파업의 위력은 신문조차 발행이 안 될 정도였다. 유치원, 학교는 물론이고 공장도 가동되지 않았다. 이후 5년 뒤 아이슬란드에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오게 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구미 KEC 사례를 봐도 그렇지만 한국 자본주의 사회는 성별이분법을 착취의 도구, 노무 관리의 수단으로 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운동 따로, 노동운동 따로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라며 “성별을 떠나 노동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없었고 페미니스트들은 노동에 관심 없었다. 여성파업이 이 같은 이분법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오픈마이크 행사는 발언 외에도 김지은 녹색당 대외협력국장과 정서영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활동가가 진행한 3.8 여성파업조직위 5대 요구안 퀴즈,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꼴찌밴드’의 공연 등 다양한 기획으로 풍성하게 이어졌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노동현장에서의 분업, 가정에서의 가사·돌봄노동 전가로 인한 어려움, 저임금 등 여러 사업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겪는 수많은 어려움이 생생한 발언으로 쏟아진 이날 오픈마이크 행사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당신의 투쟁’을 곧 ‘우리의 투쟁’으로 만들겠다는 3.8 여성파업의 마이크는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여성 노동자 앞에 놓여있다. 오는 3월, 이 마이크가 다시 한번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는 창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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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주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을 버리고서 건설노동자의 생존권은 지켜지지 않는다지난 12월 말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 촉구’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어서 각 건설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신분증을 검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작년 4월에도 경기지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이 “세금 한 푼 안내는 불법외국인 고용”이란 표현을 써가며 집회를 하기도 했다.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노가다’로 불리며 공기단축, 비용절감이란 이름으로 목숨을 저당 잡혀 일해온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건설현장을 바꿔왔다. 이런 건설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긴 윤석열정부는 ‘건폭’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양회동 열사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며 산화했다. 건설자본은 정권의 탄압을 등에 업고 현장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했다. 게다가 건설경기 또한 침체하여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배제 정서가 더욱 강화됐다. 건설노조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설노조가 정부와 자본에 당한 탄압과 배제를 이주노동자들에게 확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도 되지 못한다. 건설자본은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하여 건설현장을 저임금, 고위험,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던 시대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권리를 가로막아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미등록이 될 것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를 활용해서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정권과 자본에게 과녁을 맞춰야 한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은 노동자계급의 대의와 단결을 헤친다. 철폐돼야 할 것은 고용허가제이지 그 피해자인 이주노동자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따라야 할 것은 정부와 자본이 행하는 배척과 혐오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와의 단결이다. 건설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손을 굳건히 부여잡고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에 나설 때 건설노동자들은 ‘건폭몰이’ 탄압하는 윤석열정부에 맞설 수 있는 무한한 계급적 정당성과 연대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건설경기 침체에 따라 건설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건설노동자의 생존권 보장과 불법다단계하도급 폐지를 요구하며 투쟁할 때 정주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 또한 지켜질 것이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노동자 단결은 국적, 피부색, 체류자격에 따라 나눠질 수 없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단결하여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방어하고, 건설노동자 모두의 생존권, 기본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자. 2024년 1월 1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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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5] 스위스 여성 노동자 파업: 천천히 전진하기[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6월 14일에 스위스에서는 여성 노동자와 페미니스트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주된 요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이날 스위스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이루어진 파업으로 스위스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위스에서는 1972년이 되어서야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급격한 발전이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여성 참정권이 도입된 이유는 스위스의 정치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위스는 지방 정부의 권한이 다른 중앙집권 국가보다 강하고, 직접 민주주의 제도로 인해 지역 주민의 정치적 결정권이 행사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다른 대의 민주주의 제도 국가보다 훨씬 넓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결정권은 1972년까지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라는 진보적인 정치 형태를 가졌고,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된 나라 중의 하나이며, 유럽 지역에서 중립적인 정치노선으로 금융 자본의 요충지로 활용되고 있는 스위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1972년에 생겼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1971년, 여성 참정권을 얻다 그동안 스위스 여성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68년, 취리히(Zurich)주에서 여성들이 주 헌법 개정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권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18년 뒤, 제네바(Geneva)주에 거주한 여권 운동가 마리 괴그-푸슐랭(Marie Goegg-Pouchoulin)의 주도로 여성들이 청원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다양한 조직이 등장했다. 1893년, 여성노동자협회(Working Women Association)와 여성권리보호협회(Women’s Rights Protection Association)와 같은 단체가 생겨났다. 1904년, 사회민주당이 최초로 당 강령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했으며 1909년, 몇 개의 단체들이 모여 스위스여성참정권협회(Swiss Association for Women’s Suffrage)를 조직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2일부터 14일 동안 스위스 총파업이 일어났다. 전쟁에 동원된 22만 명의 군인과 산업 노동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치솟은 물가에 비해 낮은 임금으로 삶이 어려워지자 파업에 나섰다. 이 총파업의 요구안에는 여성의 참정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1919년에 스위스 하원 의회가 연방평의회에 제출한 법안도, 1929년에 거의 25만 명이 제기한 청원도 모두 실패했다. =1929년 여성 참정권 청원서 제출. 출처 sozialarchiv.ch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에 사회 보장의 책임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남과 동시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나타났다. 1959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려는 첫 번째 연방 국민투표에서 남성 유권자의 66.9%가 반대해 부결되었다. 제네바주, 뉴샤텔(Neuchâtel)주, 보(Vaud)주에서만 찬성이 나타났다. 1971년 2월 7일, 남성 유권자의 65.7%가 스위스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연방헌법 개정에 투표했다. 이렇듯 유럽 국가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에게 참정권이 늦게 부여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정치 체제에 기인한다. 스위스는 지역 행정 구역이 주(칸톤, 상급 자치단체), 코뮌(커뮤니티, 하급 자치단체)으로 나뉜다. 이런 체제에서 남성 유권자들의 과반이 찬성한 주가 과반이 되어야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주변 국가의 여성 참정권 인정(스위스와 비교했을 때, 독일은 53년 전, 오스트리아는 52년 전, 프랑스는 27년 전, 이탈리아는 26년 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후 한참 뒤에 쟁취한 스위스 여성들의 참정권이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위스 민중과 노동자들이 투쟁해 온 여성 참정권은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의식 수준을 기르는 자양분이 되었다. 1991년, 스위스 최초 대규모 여성파업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1981년 한 해 동안 스위스에서 4번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해에 있었던 두 번째 투표가 6월 14일에 실시된 성평등에 대한 헌법 수정에 관한 투표다. 이 헌법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다. 특히, 4조에 있는 ‘일반적 평등 조항’ 안에 ‘남녀동권조항’에 관한 내용을 2항에 도입했다. 이 내용에는 남녀동등지위, 남녀의 실질적 평등의 실현, 동일 임금이 명시되었다[이 헌법 규정을 근거로 1995년 연방남녀동등지위법(Gleichstellungsgesetz, GlG. 영문으로는 Gender Equality Act)이 제정되고 1996년에 실행되면서 스위스 내에 남녀의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법 정책이 확고해지기도 했다].1) 이 헌법이 도입된 지 정확히 10년 뒤인 1991년 6월 14일, 약 50만 명의 스위스 여성과 남성이 ‘Wenn Frau will, steht alles still(여성이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춘다)’라는 슬로건 아래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의 주요 요구 사항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었다. 1) 신옥주(2009). <스위스의 남녀평등실현법제 고찰>, 《토지공법연구》 제44집, 2009.05. =1991 파업 포스터(출처 : blog.nationalmuseum.ch) 스위스 최초 대규모 여성파업이 조직되기 위한 시작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파업 조직에 큰 기여를 했던 크리스티안 브루너(Christiane Brunner)가 공동으로 창립한 여성해방운동(Mouvement de libération des femmes, MLF)은 스위스 내에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며, 독일어권 지역(FBB), 이탈리아어권 지역(MFT) 조직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MLF는 여성 억압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 자체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근본적인 억압으로 보고 있었다. 1969년 2월 1일, 취리히 참정권 연합(Zurich Suffragette’s Union)은 1959년 여성 참정권을 위한 첫 번째 연방투표가 패배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에 MLF는 부르주아 질서에 맞서기 위해 성적인 도구와 가사 도구를 사용한 연극적인 효과로 이 ‘평화로운’ 집회에 소란을 더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현했다. 이들이 1969년에 내건 구체적인 요구는 “가사 노동자에 대한 더 나은 직업적 대우, 여성 청소년에 동등한 기회 제공, 직장에서의 동등한 기회 제공,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어머니(돌봄제공자)를 위한 임금, 더 저렴하고 많은 어린이집, 어린이를 위한 주택 건설을 포함한 토지 이용 정책, 더 많은 유치원 설립, 결혼 및 이혼 법 개정, 파트타임 노동에 대한 더 나은 사회적 혜택”이다. MLF는 1971년 자발적인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대한 연방 대중 발의를 위한 서명 수집을 조직했고, 1975년에 있었던 4차 스위스 여성회의(Schweizerischer Frauenkongress)와 병행해 자발적인 임신중지 비범죄화, 여성의 동성애, 가사 노동 임금, 여성 수감자, 이주민 문제에 관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들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1989년에 해산하게 되었다. 1991년은 앞서 언급했던 1981년에 있었던 성평등에 관한 헌법 수정 이후 10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또한 참정권을 얻은 지 20주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성평등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은 마련되지 않았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뚜렷했다. 특히,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 지역의 시계 노동자들은 업계 내 지속되는 불평등한 임금에 분노했다. 지역 SMUV(Schweizerischer Metall- und Uhrenarbeiter Verband, 스위스금속및시계노동자연합) 소속 조합원이었던 크리스티안 브루너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여성파업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사회보험법에 따른 평등, 차별과 성희롱 종식”이었다. 이 파업은 1918년 스위스 총파업 이후로 두 번째의 대규모 파업이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 여성파업의 날 베른(Bern) 주 (출처 : blog.nationalmuseum.ch) 전국에서 약 50만 명의 여성이 파업에 동참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파업보다 상상력과 결의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연대를 나타내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자주색과 보라색으로 차려입고, 다양한 시위, 행진, 행사에 찾아갔다. 또한 빗자루, 대걸레, 세탁 바구니 등 가사 도구를 창문에 걸어 놓아 집 안의 여성이 파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학교를 다니는 여성 청소년들도 교실에서 평등에 관해 토론하거나 미래를 위한 파업의 의미를 숙고했다. 이 날은 스위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연대와 인식의 날이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는 어머니나 가사 노동자에 대한 연대, 파업의 참여에서 배제되는 취약한 위치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연대, 보복을 두려워하며 파업 참여에 주저하는 여성에 대한 연대가 이뤄졌다. 이러한 연대는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들이 마주하는 불이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증가시키고 여성 사이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2) 2) Dan Gallin (1991), Women’s Strike in Switzerland. Agenda: Empowering Women for Gender Equity, 11, 28–29. 스위스의 젠더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조리스(Elisabeth Joris)는 1991년 여성파업이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제안이었다고 봤다. 그 이유로 파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급 노동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에 여성들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일했고,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있는 점을 꼽았다. 또한, 전통적인 파업과 달리 유급 노동 영역 밖의 노동자들도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분권적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1993년 3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민주당 후보였던 크리스티안 브루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파 정치인들은 사회민주당의 남성 후보(프란시스 매티, Francis Matthey)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순식간에 국회 앞 광장에 많은 여성이 몰려들어 와 항의했고. 새로이 조직된 선거에서 루스 드레이퍼스(Ruth Dreifuss)와 크리스티안 브루너가 사회민주당의 후보로 등록했다. 두 명의 여성이 공식 선거에 오른 것이 처음이었고, 1993년에 루스 드레이퍼스가 연방의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후 그는 199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방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 정치인이 되었다. 여성 정치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여성 노동자계급의 요구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여전히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파업의 두 번째 영향으로 1995년에 연방남녀동등지위법(GIG)이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1996년 7월 1일부로 발효되었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며 고용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금지하는 것이다. 이 법은 젠더평등국(Eidgenössische Büro für die Gleichstellung von Frau und Mann, EBG) 설립을 명시해, 스위스 연방 차원에서 법률, 직장생활, 가족, 교육, 정치 및 사회를 포함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장려하고 성평등과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도 금지되었고,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줄이는 것도 명시되었다. 2002년까지 유지되었던 현행법 상 합법적인 임신중지의 범위는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뿐이었다. 2002년 6월 2일, 유권자의 72% 이상이 임신 첫 12주 내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찬성했다.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가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 3번의 고비가 있었다. 1977년 9월에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로 진행되었지만 거의 3%p 차이로 부결되었다. 1978년과 1985년에는 임신중지를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는데, 다행히 큰 차이로 부결되었다. 1991년 여성파업의 요구안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파업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부정의에 대해서 남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공유하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감은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국민투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9년, 스위스 여성파업 30주년과 현재 =2019년 6월 14일 바젤슈타트(Basel-Stadt) 주의 중심지 바젤(Basel)의 한 빌딩에 투사된 사진(출처 : X @angelacarlucci) 2019년 6월 14일은 1991년 첫 대규모 여성파업이 일어난 지 2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번 파업의 슬로건은 “임금, 시간, 존중(여성 노동에 대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재평가, 돌봄제공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임금, 직장에서 성차별이 아닌 존중)”이었고, 5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을 조직하고 참여한 여성들은 동일 임금, 무급 돌봄 노동에 대한 인정, 성적/육체적 괴롭힘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법, 정부 대표성을 국가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주 정부)에 요구했다. 2019년 당시 스위스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요약한 글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의 유사한 노동에 대한 임금 평등 부문에서 세계 44위를 차지했다.3) 2019년 6월, 유니세프 연구에서는 스위스의 ‘가족 친화적 정책(양육자의 유급휴가, 3세 미만 / 3세 이상 8세 미만 아동보호 등록률)’이 유럽에서 최악으로 나타났다.4) 이런 현실은 스위스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은 독일어로 ‘여성파업’을 의미하는 #Frauenstreik, 프랑스어로 #GrèvedesFemmes 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온라인으로도 조직되었다. 3) WEF(World Economic Forum),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8, p.261 4) UNICEF Office of Research, Are the world’s richest countries family friendly?, 2019, p.6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는 최대 4만 명의 참가자가 의회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는 공식적으로 파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오전 11시에 교회 종소리를 울렸다. 로잔[보(Vaud) 주의 주도]에서는 여성들이 밤에 모여 브래지어와 넥타이 같은 물건을 상징적으로 불태웠고, 취리히에서는 시위대가 시내 중심가에서 차량 이동을 막아섰다. 제네바에서는 약 1만 2,000명이 참여했다. 스위스 의회는 15분 동안 회의를 중단했고, 파업 참여자들은 남성 노동자들과의 20% 임금 격차를 반영하도록 오후 15시 24분에 일을 마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여성파업의 긍정적인 결과로 2019년 10월 20일에 치러진 연방선거(연방의회를 구성한 7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는 같은 해 12월 11일에 치러짐)에서 여성이 하원의 42%를 차지했다. 이 총선에서 여성 후보자 수가 1,875명으로 전체 후보자의 40%였다. 이때 총선에서 녹색당, 녹색자유당이 가장 강세를 보였는데, 각각 55%, 40%가 여성 후보자였다. 여성파업을 통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2023년,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파업 <2023 페미니스트 파업 요구 사항> 업무 강화 없이 임금을 유지하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조건 개선. 여성이 주로 고용되는 부문의 최저임금과 임금 인상 포함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 AHV(Alters- und Hinterlassenenversicherung, 연방 노령/유족 보험)의 강화와 민영화된 연금제도 폐지/공적연금 강화 : 퇴직연령 단축 및 돌봄 노동을 임금노동으로 인정 성, 가정 폭력에 맞서는 스위스 전역의 체계적인 조치 1인 자녀 당 최소 1년 동안 각 부모의 100% 유급 육아휴직 민간 건강보험 폐지, 재생산권 보장(생식 및 성 건강비용 포함) 인종, 국적, 성별 정체성 및 성적 지향, 장애, 몸매 조롱에 대한 차별 철폐 페미니스트 망명 및 거주 허가 기후 및 환경에 대한 국가 행동 계획 및 조치 교육 분야에서 교차성 페미니즘 도입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헌법에 명시된 임신중지 권리 보장 =2023년 페미니스트 파업 (출처 : 14juni.ch) 30만 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가 거리로 나왔다. 2019년 대규모 여성 파업 이후로, 2021년 2주의 유급 출산휴가 도입과 동성혼 법제화(2007년 ‘동성간 시민결합’ 이후 혼인이 가능해짐) 등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으나, 노동계급 여성, LGBTQ+ 등의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여성 노동자의 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5세로 높이는 개혁이 채택되었고, 최저임금이 부족해 돌봄, 소매업 등 불안정하고 저평가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져 갔다. 식품, 에너지, 주거 비용, 민간 의료보험비의 상승도 그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한편, 보수주의자들이 임신중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억압은 더해 갔다. 그들은 임신중지 전에 하루의 성찰 기간을 도입하고, 후기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려고 했다. 다른 한편, 보육에 대한 공공 서비스가 부족했으며, 젠더 기반 폭력(직장 내 성희롱, 비동의 강간죄 도입 등)의 변화는 지지부진했다. =2023년 취리히에서의 페미니스트 파업 (출처 : feministischerstreikzuerich.ch) 이에 맞서기 위해 스위스 노동자계급은 ‘페미니스트 파업(여성, 남성, 논바이너리 등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용한 용어)’이라는 이름을 걸고 대규모 파업을 결의했다. 다음의 내용을 담은 행동은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오전 10시 46분: 남성은 오전 8시부터 일하는 반면, 여성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출근 후 2시간 46분을 일한다. 오후 1시 33분: 이 시간부터 여성은 임금 불평등, 무급 돌봄 노동, 시간제 노동으로 인해 더 이상 소득이 없다. 오후 3시 24분: 이 시간부터 여성은 임금 불평등(남성 임금의 18%를 더 적게 받음) 때문에 무급으로 일한다. 이번 파업을 ‘페미니스트 파업’이라고 명명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몇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하나는 각 주마다 요구 사항이나 투쟁에 집중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던 점이다. 아르가우(Aargau)주의 경우에는 남성으로만 이뤄진 정부 위원회가 있고, 대의원회에서는 31%만 여성이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어린이 돌봄 시설, 난민 출신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 간호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루체른(Lucerne)주에서는 주방용품 업체에서 일하는 25명의 여성 노동자가 동료들을 이끌고 고용주의 건물 출입을 막았다. 그들은 동일 임금, 무급 출장 시간, 연체 임금 지급, 현금 지급, 괴롭힘과 차별에 반대하며 항의했다. 그 결과,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합의하고 노동조합과 협약을 체결했다. 베른(Bern)주의 한 개인 요양원의 여성 간병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연장시키고, 그들의 요구 사항을 고용주에게 제출했다. 이들은 더 많은 고용과 존중을 위해 투쟁했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여성 간병 노동자 50명이 동시에 오후에 퇴근하여 파업에 참여했다. 소매업 여성 노동자들도 스위스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가장 큰 규모는 로잔(Lausanne)과 제네바의 주요 쇼핑 지역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소매업에서의 더 나은 임금, 정규직 고용, 일과 삶의 균형 개선을 위해 투쟁했다. 보주에서는 제약 노동자들이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로잔과 루트리(Lutry)의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단체 노동협약을 요구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의 직업에는 큰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편 및 물류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과 함께 전국에서 성평등 및 동일 임금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또 다른 하나는 FLINTAQ5) 에 대한 차별과 요구를 직접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2023년 페미니스트 여성 파업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파트너가 있든 없든, 자녀가 있든 없든, FLINTAQ다. 우리는 건강하거나 아프며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든 없든 살아간다. 우리는 젋고, 어른이고, 늙었다. 우리는 성노동자다. 우리는 학생이자 연금 수급자다. 우리는 스위스나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는 이민자이자 난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의 일부이고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임금 노동자, 자영업자 또는 실업자이다. (중략) FLINTAQ는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정권, 전쟁, 환경 파괴의 첫 번째 희생자이다. 또한 그들은 자주 저항 운동의 최전선에 선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투쟁에 연대하며, 모든 형태의 가부장제를 시급히 끝장내야 한다는 과제를 공유한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다양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삶을 경유하는 여성/성소수자이자 노동자의 상황을 드러낸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권력과 위계에서 벗어나 여성/성소수자 민중의 억압을 그들의 위치에서 드러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파업의 위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5) “Frauen, Lesben, intergeschlechtliche, non-binäre, trans, agender und genderqueere Personen”의 약어로 여성, 레즈비언, 인터섹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에이젠더, 젠더퀴어를 의미한다. 취리히 지역의 페미니스트 파업 선언문을 보면, 여/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면, “모든 차별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질서에서 비롯된다. 성장과 이윤 극대화는 자연 자원의 파괴 및 성차별적이고 인종적인 노동 분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수많은 FLINTAQ에 의한 무임금 및 낮은 임금의 돌봄 노동이 경제를 보조하는 것이다. 이 착취적인 노동 분업으로 남반구 국가의 FLINTAQ가 가장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촉진되고 유지되는 것이다”고 밝힌다. 또한 기후 위기, 제도화되고 인종화된 성차별과 폭력, 퀴어/트랜스 폭력, 여성 신체에 대한 자본과 남성의 대상화, 성적 편견과 표준 등에 반대하는 입장도 담겼다. 파업을 통해 생산을 멈추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투쟁에서 그 누구도 배제할 수 없다는 스위스 페미니스트 파업 조직, 참여자들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여성/성소수자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향하여 스위스 여성 참정권은 1972년에 도입되었고, 1981년에는 헌법상 성평등에 관한 조항을 만들었으며, 1991년 첫 대규모 여성파업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을 들여 형성해 온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여성이 포함되고, 여성/성소수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개진해 온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스위스와 한국의 여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착취와 억압의 정도를 비교할 순 없으나,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결의는 같다. 2019년과 2023년에 나타난 여성파업은 스위스 사회에 계속되는 임금 격차,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젠더 폭력, 차별과 낙인에 대해 투쟁해 왔다. 특히, 2023년 페미니스트 파업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나타나면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별분리주의와 신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한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목적과 목표가 각각 달랐고 실천도 달랐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을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조직적인 백래시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 때문에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변혁적인 움직임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미 영영 페미니스트(2015년, 온라인에 만연한 남성중심주의 문화를 비판하며 만들어진 여성 전용 사이트 ‘메갈리아’의 등장, 2017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018년 미투운동으로 페미니즘 대중화와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등장했다. 이에 1990년대에 활동했던 ‘영페미’보다 더 젊은 페미니스트를 칭하는 단어다.)들은 4B운동6)이라는 일종의 파업을 선언했다. 6) 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페미니즘 대중화로 나타난 분리주의 페미니스트의 실천 전략이었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며,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임신·출산·양육을 개별 실천을 통해 거부함으로써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작년 5월 9일에 발간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38개 회원국 중 1위이다.7)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안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낸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여성 7,000명 중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로부터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및 통제 피해를 평생에 하나라도 경험한 비율은 약 16%다. 한국 성인 여성 10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의 젠더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다움이 2022년 5월 17일에 발간한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0%가 최근 1년 동안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트랜스젠더 가운데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0%에 달한다. 7) OECD, “Joining Forces for Gender Equality : What is Holding Us Back?”, 2023.05.09. 여성/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에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시대다. 그럴수록,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를 규명하고 드러내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스위스의 여성/페미니스트 파업이 보여 주는 것은 ‘여성(소수자)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것이다. 또한 말 그대로 100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여성/성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고,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여/성소수자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서로를 붙들고 살리고 있다. 몇 차례의 대규모 파업을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파업을 통해 친구, 동료, 지인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변혁은 시작된다. 페미니즘의 전망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정치경제학적 위계를 타파하고 성에 기반한 수탈, 착취와 억압을 깨부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파업을 조직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수많은 여성/성소수자이자 노동자계급이 참여할 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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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비상구 유도등의 사람 성별은 남자?1. 호주 보육 노동자, 번아웃과 저임금으로 사직 행렬 호주연합노조(UWU)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퇴사한 노동자가 1명이라도 있는 곳이 약 1,000개의 보육 시설 중 95%였고, 3명인 곳은 8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와 함께 퇴사한 일자리에 인원 충원이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아교육 및 보육 노동자가 저임금과 과로로 더는 일할 수 없는 번아웃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조와 정부가 전국적 차원의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2년간 보육 노동자로 일하다가 저임금과 스트레스로 인해 퇴사한 트레이시 레이는 유아교육센터에서 일한 지 1년밖에 안 되었을 때 자신이 가장 고참 노동자란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트레이시는 2년 전 졸업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슈퍼마켓에서 일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지만 노동 강도는 덜해요. 교실에 아이가 1명만 있어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크죠.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은 엄청나게 불균형적이에요”라고 증언했다. 10년 동안 유아교육 노동자로 일해 온 아이리스 황은 인력 부족으로 아이에게 맞춤 교육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교육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교육 프로그램 계획은 모든 어린이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할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조사에 참여한 보육 노동자의 3분의 2는 인력 부족이 아동의 복지나 안전에 영향을 끼치고, 거의 4분의 1은 아동의 안전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보육 자격증을 발급하는 교육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자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연합노조 헬렌 기븐스는 “조기 교육에 위기가 닥쳤다. 연방정부는 오랫동안 저평가된 보육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라”며 보육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2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협상은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 <참조 기사> https://www.sbs.com.au/language/chinese/en/article/there-is-a-crisis-in-early-education-why-are-educators-leaving-the-sector/q99uk8ueb 2. 눌러도 울리지 않는 비상벨...공중화장실 비상벨 실태 경기도가 작년 10월 31일부터 11월 27일까지 도내 각 시·군의 공중화장실 조례 개정 여부와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비상벨 정상 작동 여부, 유지관리 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한 결과 239건의 부적합 사례가 적발됐다. 현장 점검에서 136개 중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26건이나 확인됐다. 이 중 전원이 꺼져 있거나 도내 경찰관서가 아닌 전북지방경찰청으로 연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나타났다. 음성인식이 가능한 비상벨을 대상으로 소음측정기를 이용해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에 작동한 데시벨을 측정한 결과 기차 통과 시 나는 철도변의 소리 크기의 100데시벨이 넘었는데도 작동하지 않거나 100데시벨 초과에서만 작동한 경우가 총 45건이나 나왔다. 또한 어떤 곳은 비상벨이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이 발표한 ‘범죄 유형별 공중화장실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만 9,286건에 달한다. 이 중 성범죄, 스토킹, 불법 촬영, 마약 등이 포함된 기타 범죄가 6,182건(32.05%)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공중화장실 내 비상벨 설치 의무화’ 제도를 작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에 그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23988.html 3. 비상구 유도등에 ‘치마 입은 여성’ 추가? 여전히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 정부가 비상구 표지판에 치마 입은 여성 도안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복수의 매체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를 인용, “시대 변화에 맞춰 52년간 남성이 독점해 왔던 비상구 그림에 여성 그림을 추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비상구 그림은 남자가 아니라 사람 표시다”, “‘여자=치마’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 역행이다”, “국민 혈세 낭비하지 마라” 등 “여성들도 원한 적 없는 뜬금없는 논란”이라는 지적이 파다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온라인 공간에 퍼진 여성 상징 유도등 도안에 대해 “오히려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그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가슴을 부각하고 짧은 치마로 옷차림을 묘사하는 등 ‘여성다움’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정부가 앞장서 확대 재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행안부와 소방청은 이날 공동 설명자료를 내고 “비상구 유도등 도안 변경은 구체적 사항이 결정된 바 없다”며 언론에 보도된 여성 상징 유도등 픽토그램도 “정부 시안이 아니며 임의로 제시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132020001 4. 미국, 성소수자 혐오법안 증가로 직장 내 차별 가중 우려 미국에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프라이드의 달(pride month)’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채용 웹사이트 인디드(Indeed)가 최근 발표한 성소수자(LGBTQ+) 정규직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성소수자 혐오법안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오히려 지금보다 일터의 노동권 차별과 침해가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답한 성소수자 노동자의 3분의 2는 개악법으로 인해 채용 기회에서부터 차별당할 것이라 우려했다. 응답자의 4분의 3 이상이 개악법이 있는 주에서는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망설일 것이라 했고, 절반 이상은 그런 주에서는 절대 입사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미 만연한 일터의 차별도 조사 결과 확인되었다. 응답자의 60%는 직장 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승진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비슷한 비율로 성과개선계획 대상(저성과자)이 되었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비슷한 경력과 능력의 이성애자나 시스젠더인 동료 노동자보다 임금이 적다고 답했다. 복지제도도 차별이 심한데, 절반 이상이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서비스, 성별 확정 치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가족계획 지원 등 복지혜택이 중요하다고 봤지만 고용주가 이런 혜택을 평등하게 제공하는 경우는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4분의 3이 복지혜택이 없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겪는 일터의 차별은 트랜스젠더일수록, 특히 여성이고, 유색인종 트랜스젠더일수록 심하다. ‘2022기업평등지수(the Human Rights Campaign’s 2022 Corporate Equality Index)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 3분의 1 이상이 여전히 트랜스젠더 노동자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포괄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터의 평등한 대우를 제공하지 않는 핑크워싱 기업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참조 기사> https://theconversation.com/lgbtq-workers-want-more-than-just-pride-flags-in-june-215745 5. ‘양성평등’ 구호만 난무하는 지자체 성평등 정책 인천 10개 기초자치단체 중 8곳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돼 관련 사업을 추진하지만 ‘양성평등 실현’, ‘여성 역량 강화’ 등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보다 ‘형식적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령 인천 기초단체 대부분이 ‘여성 안심 귀갓길’ 정책을 여성친화도시 특화사업으로 홍보했지만, 이는 여성친화도시가 아닌 기초단체도 시행 중인 사업인 데다가 경찰 예산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별과 상관없이 청년을 대상으로 창업 공간을 지원하는 ‘청년창업지원센터 운영’을 여성친화도시 사업에 포함한 기초단체도 많았다. 여성가족부가 지정한 인천지역 여성친화도시는 10개 기초단체 중 강화군·옹진군을 제외한 8곳이다. 여성친화도시는 2009년 여성가족부가 지역정책 전반에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하는 기초단체를 선정하고 사업 실적과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기초단체는 ▲성평등 정책 추진 기반 구축 ▲여성 경제사회 참여 확대 ▲지역사회 안전 증진 ▲가족친화 돌봄환경 조성 ▲여성 지역사회 활동 역량 강화 등을 5대 목표로 삼고 세부 사업을 이행해야 한다. 여성의 일과 삶을 아우르는 지역 생활 전반에서 다양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지만, 관련 사례를 발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기만 하다. 기초단체들이 여성가족부가 인증하는 ‘여성친화도시’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만 혈안일 뿐, 실제 특화사업은 ‘여성’의 노동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 신장을 위한 내용으로 행정력을 발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참조 기사>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115010001667 6. 장시간 여성 노동자 가정과 직장 간 갈등 경험 높아 지난 3일 국제직업환경보건학회지에 ‘장시간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가정과 직장 간 갈등이 있을 때 우울증 위험이 더 커진다’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야간교대 근무를 하지 않는 정규직 임금노동자 2만 384명(남성 1만 189명, 여성 1만 195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가정과 직장 간 갈등 경험 비율은 남성(43.1%), 여성(49.5%) 모두 40%를 웃돌았다. 주 52시간 초과 장시간 노동은 남녀 모두에게 우울증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 주 52시간 초과 그룹에서 남성, 여성의 우울증 비율은 각각 38%, 36.1%였다. 주 52시간 이하 그룹에선 각각 28.2%, 27.7%로 낮아졌다. 다만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남녀 노동자 중 가정과 직장 간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발생 위험이 더 커진 것은 여성 노동자였다. 가정과 직장 간 갈등 수준이 높은 여성 집단에서는 장시간 일한 여성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여성 노동자보다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35% 더 높게 나타났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110152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