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만행, 패배를 딛고 다시 전진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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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만행, 패배를 딛고 다시 전진하기 위하여!

  • 김요한
  • 등록 2024.07.11 11:33
  • 조회수 963

사진: 공공운수노조

 

설마 했더니 진짜였다. 보육, 노인 요양,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공공돌봄서비스를 제공하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이 해산됐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국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를 의결했다.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인 서사원은 서울시의 재정 투입이 없으면 존속 불가능하다. 이어 5월 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10월 말까지 모든 청산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지금보다 몇 배 확대해도 모자랄 공공돌봄기관을 오히려 폐쇄하는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7월 3일 한덕수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정부 출범 당시 우리가 물려받은 경제를 봤을 때 저는 우리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고 말했다. 망할 뻔한 나라를 저들이 살려놨다는 것이다. 개소리다. 한국 사회는 이미 망했고, 너희들이 그것을 가속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합계출산율이 0.6명 대에 그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이겠는가? 경쟁의 패배자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한 사회, 이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간 사회다.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격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개소리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사회, 육아·간병·노인 요양 등의 각종 돌봄을 온전히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해고를 당연시하는 사회다.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도 무너뜨려 놓고서는, 자본 이윤의 원천인 노동력이 부족하니 아이를 더 많이 낳으라고 떠들어대는 사회가 ‘망할 뻔한’ 나라인가? 이미 ‘망한’ 나라지!

 

마르크스는 <자본1>에서,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가들은 “인류가 장차 멸망할 것이라든지 결국은 인구가 끊임없이 감소할 것이라든지 하는 정도의 예상에 대해서는 [지구가 태양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예상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제 행동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공공돌봄의 확대가 불가피한 마당에, 오히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행태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시의 터무니없는 서사원 해산 이유

 

서울시는 서사원 해산의 이유로 “서사원이 민간과 차별화되는 공공돌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점, 내부 구성원의 반대로 더 이상 구조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꼽았다. 감히 ‘공공돌봄’ 운운이라니, 꼴같잖은 소리다. 서울시의 진짜 속내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핵심적으로 ‘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자의 임금이 민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게 문제란다. 서사원 폐지를 강력히 부르짖던 어느 돌봄자본가는 신문 기고에서 이렇게 떠들었다.

 

“이들은 민간 기관과 달리 월급제 정규직이다. 고정급 205만 원에 교통비 15만 원, 식비 13만 원을 더해 기본급 233만 원을 월 급여로 받는다. 가족수당은 물론이고 휴일이나 야간 시간대 등 시간 외 근로를 하면 규정에 따라 초과 수당도 받는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유급으로 병가나 휴직도 보장받는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돌봄업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세계일보, <[기고] 공공돌봄이라는 허울 뒤에서 낭비되는 서울시민 혈세>, 2023. 5. 19.)

 

노동자 평균임금이 300.7만 원(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23년 8월), 중위임금이 249만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2년 6월)인 시대다. 그런데 서사원 노동자들은 무려(!) 기본급 233만 원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 외 수당까지 받으며, “월급제 정규직”이기까지 하므로 “돌봄업계의 삼성”, 귀족 노동자라는 것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폄훼할 수 있을까? 파리 목숨인 계약직·시급제·단시간 노동 대신 주 40시간 풀타임·정규직 노동을 원했을 뿐인 돌봄노동자들의 소박한 요구를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매도할 수 있을까?

 

서울시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돌봄자본가들은 민간 기관에서는 훨씬 더 싼 값에 돌봄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고 지껄인다. 그렇다.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이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다)은 풀타임으로 근무해도 고작 월 140만 원 안팎의 급여를 손에 쥔다. 이동시간, 교육·회의 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눈 밖에 난 돌봄노동자들은 일상적 해고 위협에 놓여있다. 어린이집 원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 시달리는 보육노동자들, 휴게시간 없이 무급노동을 강요당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의 사연은 낯설지 않다.

 

바로 그래서 자본가 정부조차 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공공돌봄기관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고통받는 돌봄노동자들이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사회서비스원법’) 제1조(목적)에 “사회서비스와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의 질을 높여 국민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물론 사회서비스원 설립이 전체 돌봄노동자들의 권익 개선을 추동(推動)했는지는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다. 또한 서사원에 건설됐던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관점에서 노동자의식을 싹틔워 나갔는지의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무조건 단언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 서사원 노동자들을 두고 귀족 노동자 운운한 짓거리만큼 비열한 공격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란 점이다.

 

서사원 해산 사태는 공공부문이 더 이상 고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권익을 대변하며 투쟁하지 않을 때는 고작 기본급 233만 원만으로 말도 안 되는 갈라치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것은 재정 긴축이 일상이 된 시대, 자본 이윤이 장기침체에 빠진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준 자본가들, 그러나 쓰라린 패배

 

저들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치밀하고 비열했는지,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5월 31일 서사원 원장 직무대행 윤재삼은 서사원 청산과 관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재삼은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겠다며, 1차(신청기간 : 6월 3일~5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3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2차(신청기간 : 6월 20일~26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2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2차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7월 31일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퇴직 위로금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말 역겨울 정도다. 서울시와 서사원은 행여나 서사원 노동자들이 폐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까 봐 희망퇴직 신청 시기에 따라 퇴직 위로금을 차등 지급하겠다 떠든 것이다. 자본가들이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배 가압류를 때려놓고, 노조를 탈퇴한 사람에게만 소송을 취하해 주는 개수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서사원의 진짜 속내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작성해야만 하는 합의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사원이 내민 합의서에는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회사로부터의 근로종료로 발생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며, 본인의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근로종료와 관련하여 회사와 그 임직원 및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여타 당사자에 대하여 행정상 또는 민·형사상 제소 기타 어떠한 형태의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는 조항이 기재돼 있다.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생계수단 단절의 위험에 놓인 노동자들을 돈 몇 푼으로 매수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자본가들의 치밀함에 비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의 대응은 무력하고 뒤늦었다. 4월 26일 서울시의회의 서사원 조례 폐지 이후, 서사원에 조직된 두 민주노조(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 서사원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는 서울시가 요구하는 임금 삭감안(시급제 전환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5월 13일 다수 노조인 서사원지부 조합원들의 71%는 임금 삭감안에 반대했으며, 13일~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찬성률 86%)했다.

 

하지만 5월 22일 이사회에서 서사원 해산이 의결되는 순간까지도 노동조합은 서사원 폐쇄를 막아내는 위력적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의 경우,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결의대회는 5월 17일 하루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연대 단위가 결합하기 힘든 평일(금요일) 집회였다. 이어 지부장 삭발, 6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사원 폐쇄에 항의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이 진행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단호함을 막을 수 없었다.

 

현재 조합원들 대다수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상황이다. 너무나 쓰라린 패배다. 서사원 폐쇄에는 아무런 사회적 명분도 찾을 수 없다. 만약 전면 파업이나 이사회 원천 봉쇄 등 서사원 노동자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 전개됐다면 서사원 폐쇄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저출생 재난, 초고령화 시대에 그나마 있는 공공돌봄기관의 문을 닫겠다는 자본가들의 폭거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패배를 딛고 더 멀리 전진하기 위해, 서사원 해산을 둘러싼 과정을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성이 또다시 확인됐다

 

우선 서울시의 서사원 해산 만행은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왜 정당한지를 수백 번째로 보여준 실례라 하겠다. 통상의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 서울시와는 아무런 교섭도 할 수 없었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서사원 사측과 무의미한 교섭을 지속해야 했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진짜 사장들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모두 결정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들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원청 택배자본이 그러하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30% 삭감했던 조선사 원청자본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서울시는 400명이 넘는 서사원 노동자들의 생계를 단박에 날려버리면서도 손에 흙 묻히는 일조차 겪지 않았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 등에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명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노조 파괴 행위를 금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없이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서사원 해산이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에게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대량 해고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을 빼앗겨왔던 하청노동자 등이 노조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법 제도를 떠나 서사원 해산 사태에서 뼈아프게 되새겨야 하는 결정적 교훈은 이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 과정 없이는 노동자들이 거대한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자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비정규직 고용, 30명 미만의 영세한 사업 규모 등으로 인해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노동조합은커녕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돌봄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반면 돌봄자본가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중이다. 이들의 사업은 파산 위험이 없다. 현재 보육·노인 요양·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돌봄서비스는 국가와 지자체가 공적 재원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자본가들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역설적으로 파산의 위험이 없으므로 ‘세련된’ 인사노무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돌봄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돌봄자본가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 데 익숙했다. 서사원 설립 초기 임금체계 설명회에서, 가족수당이 지급된다는 말에 돌봄노동자들이 반신반의하며 ‘일 안 하는 남편이어도 가족수당을 지급하느냐’고 되물었다는 에피소드는 평소 돌봄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놓여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 공공돌봄기관인 서사원이 탄생했다. 노동자들도, 자본가들도, 과거의 경험과 습관을 한 번에 떨쳐내지 못했다. 서사원에서 몇 차례 있었던 부당해고 사건은 과거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무식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요양보호사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인사 평가에서 최하점을 줘 촉탁 재고용에서 탈락시켰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노동조합의 필요성,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서사원 설립 초기인 2020년, 서사원지부는 유사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의 단체협약을 기준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단체협약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측이 2022년 단체협약의 해지를 통보한 후, 서사원지부가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위력적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던 상황은 이를 보여준다.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 이뤄진 조직 축소 등 전방위적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주체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서사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민주성과 전투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전폭적 지원이 불가결했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겠다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만행에 맞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차원의 투쟁 계획 제출, 적극적 연대 조직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사원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통해 단번에 비약해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사원 투쟁이 단지 서사원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을 포함한 전체 돌봄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계급단결 투쟁으로 나가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와 사측이 서사원 폐쇄를 위협하며 던진 임금 삭감안에 반대 투표함으로써, 노동자의식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뚜렷이 보여줬다. 5월 17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참여해 전투성을 보여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투쟁 의식을 고양시키는 강력한 투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예컨대 서사원 폐쇄를 결정한 5월 22일 이사회는 조합원 대중의 강력한 파업 투쟁으로 원천 봉쇄했어야 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이렇게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할 수 있으려면 평소의 준비 태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다.

 

노동자운동이 점점 더 대중적 활력과 전투성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노동자계급 자기조직화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미래는 눈에 쉽게 보이는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이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눈에 띄기 힘든 일상적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담보된다. 사측이 내세우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일상화하는 일,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을 상급단체와 전임 간부 몇몇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 아래 조합원들이 주도하게 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민주노조답게 평조합원이 노동조합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노조 간부가 대리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결, 주체적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풍이 흘러넘쳐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비해 가진 유일한 장점은 수(數)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집단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장점은 노동자 개개인의 능동적 실천이 전개될 때만 비로소 실현된다. 노동자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맞선 일상적 실천과 투쟁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서사원 해산 사태에선 이런 준비가 너무나 부족했다. 2022년 9월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 이후 노조 활동에 여러 지장이 있었던 것도 한 이유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 다시 말해 노동자 단결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는 순간, 노동자 개개인이 사측의 퇴직 위로금 수작을 받아들인 건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민주당과의 정책 대응이 향후 계획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에서 보자면, 서사원 폐쇄 이후 공공운수노조에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을 향후 대응의 중심축으로 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6월 25일 국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와 조국혁신당 김선민·정춘생 의원실 공동주최로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해서 제2의 서사원 해산 사태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7월 중 민주당 의원실과 함께하는 서사원 해산 관련 토론회, 하반기 국회 국정조사 등이 추진 중이라 한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문재인 정부가 만든 사회서비스원을 윤석열 정부와 국힘 시의회가 해산했으니, 다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생각이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당초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에서 한참 후퇴한 채, 지금의 무늬뿐인 공공돌봄기관을 만든 것이 문재인 정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행 사회서비스원법 제7조제1항은 “시ㆍ도지사는 제10조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관할하는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ㆍ도ㆍ특별자치도에 시ㆍ도 사회서비스원을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5일 열린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은 위 조항의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를 “설립ㆍ운영하여야 한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론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 와 개정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입법 당시(2021년 9월 24일 제정) 처음부터 사회서비스원법을 그렇게 통과시켰으면 되는 일 아니었나?

 

당시 입법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자신들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크게 후퇴시켰다.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설치 의무 규정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일례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사회서비스원이 우선 위수탁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했다. 이 때문에 서사원이 담당했던 돌봄 영역은 극히 협소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1,838개소 중 서사원이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고작 6개소, 0.3%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런 엉터리 법안을 만든 민주당 정치세력이 이제 와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만큼 뻔뻔한 일이 또 있을까?

 

설령 민주당이 사회서비스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하자. 그러나 서사원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를 받는다는 현실은 단시간에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업별 단체교섭 제도, 초기업 단위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가 없는 한국의 후진적 노동법에서는 불가피하기까지 하다.) 국힘 등의 자본가 정치세력은 이를 빌미로 돌봄노동자 갈라치기 공격을 재개할 것이다. 이때 민주당은 ‘서사원을 살려야 하니 우선 노동조건 개악을 받아들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기대는 방식으로 서사원을 재건해서는 이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김대중은 ‘민주주의에는 공것(공짜)이 없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피 흘리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는 모래성과 같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성취물 또한 그러하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모든 제도적 성과는 시혜적 방식으로 주어졌을 때가 아니라 대중의 자주적 투쟁으로 쟁취했을 때만 확고부동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자 대중의 자기조직화를 중심으로 두는 방식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할 수도 없는데, 오늘날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강력한 노동자투쟁 없이는 자본가들은 세상이 망하건 말건 가진 것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자본가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 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서사원 폐쇄에 맞선 향후 투쟁 계획에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정책 대응이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는 민간 부문 미조직 돌봄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이들을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세워내는 일이다. 멈추지 않는 투쟁을 결의한 서사원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돌봄 부문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원의 재건은 돌봄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을 새롭게 조직할 때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돌봄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사적 전횡을 휘두르는 돌봄자본가를 몰아내고 돌봄노동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전체 사회서비스 부문을 운영·통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의 돌봄노동자를 더욱 광범위하고 전면적으로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로 우뚝 서게 하는 것, 이것이 현재 제일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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