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에 퀴어자긍심은 없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집단학살에 퀴어자긍심은 없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제국주의 대사관이 있을 자리는 없다

  • 양동민
  • 등록 2024.06.13 09:36
  • 조회수 638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도 많은 방해에 직면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근거없이 서울시청 광장 사용을 불허당했다. 혼인평등법이나 차별금지법도 오랫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퀴어는 여전히 기본적인 법률상의 평등도 누리지 못하며, 혐오세력으로부터 존재를 위협받는다.

 

2000년부터 이어진 퀴어문화축제는 한국의 퀴어들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주체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5만 명의 참가 속에 진행되었다. 퀴어와 앨라이(퀴어 당사자는 아니나 차별에 반대하는 연대자를 뜻하는 용어(ally)) 참가자들은 일상의 억압에서 벗어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잠시나마 해방의 분위기를 누렸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에는 ‘퀴어자긍심’을 논할 자격이 없는 이들도 함께했다. 이날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을 포함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서구 국가의 대사관들이 축제에 부스를 열고 참여했다. 이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후원을 의미하는 ‘파트너십’ 단체로도 홍보됐다. 특히 ‘프리미엄 파트너십’을 택한 호주 대사관과 미국대사관은 퀴어문화축제 공식책자의 마지막에 자신의 슬로건과 로고를 박았다. 2시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미국 대사의 축사발언이 영상을 통해 현장에 송출되었고, 영국 대사는 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해 부스에 머물며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또 다른 주범이다

 

이날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고 있는 대규모의 집단학살을 가능케 한 주범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에 대해 ‘테러에 맞선 자위권의 행사’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해왔고, 무기수출과 경제지원을 통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물리적으로 가능케하고 있다. 

 

지난 5년 간 이스라엘에 공급된 무기 중 65%가 미국으로부터, 30%가 독일로부터 나왔다. 오바마 정부때부터 미국은 2026년까지 이스라엘에 매년 38억 달러의 군사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투기, 헬리콥터, 유도탄 등 가자지구 민중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무기들이 포함된다. 또 미국 하원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에 안보지원을 제공하는 950억 달러의 법안 패키지를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앞으로 미국으로부터 약 260억 달러의 추가원조도 받을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바이든은 지난 5월 탱크 포탄, 전술 차량 박격포탄 등 1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제공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천 발의 정밀유도탄, 소구경 폭탄, 벙커버스터, 소형무기 등 의회에 공식적으로 통보하지 않아도 되는 100건 이상의 군사판매도 진행해왔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2023년 10월 18일 인도주의적 전투중단 결의안 거부, 12월 8일 휴전결의안 거부, 2024년 2월 20일 휴전결의안 거부, 5월 20일 국제형사재판소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전쟁범죄 혐의 체포영장청구 거부 등 미국은 이스라엘에 노골적인 정치적 지지도 제공해왔다. 뉴욕타임스, AP 등 주요 서구언론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마스가 강간을 무기화했다는 보도를 퍼뜨렸고, 바이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연설에 인용하며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영국 역시 높아가는 무기 수출 중단 요구를 묵살하며 막대한 무기를 이스라엘로 수출하고 있다.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즈는 F-35 전투기 부품의 15%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 전투기는 가자폭격에 사용되고 있다. 지난 5월에 영국은 라파공격을 앞두고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2023년, 전년보다 10배나 많은 무기를 이스라엘로 수출했으며, 독일의 대 이스라엘 무기 수출 218건 중 185건이 10월 7일 이후 이루어졌다. 지난 4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니카라과가 독일을 집단학살 조장으로 제소한 것에 대해 반박하며, 독일은 “이스라엘의 안보는 독일 대외 정책의 핵심”이고,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이 ‘자위권’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퀴어문화축제에 집단학살 동참국이 있을 자리는 없다

 

이날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이 자리한 36번 부스 맞은편에서는 오전 11시부터 행진이 시작되던 4시까지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의 주관 아래 제국주의 대사관들의 핑크워싱을 규탄하는 항의 선전전이 진행되었다. 선전전 참가자들은 “미국, 영국, 독일은 학살지원 중단하라” “Free,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퀴어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반대한다”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요르단 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등의 팻말을 들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팔레스타인 퀴어를 살해한 폭탄이 미국으로부터 나왔다. 주한미국대사관은 퀴어퍼레이드를 함께할 수 없다”는 피켓을 제작해 함께 들었다. “퀴어가 요구한다, 집단학살 중단하라!” “퀴어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한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퀴어와 연대한다” 등과 같은 구호가 끊기지 않고 울려퍼졌다.

(관련: ‘Queers in Palestine’이란 단체에서 퀴어 팔레스타인인을 대변하며 2023년 11월에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핑크워싱 규탄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부스 앞을 지나던 많은 참가자들이 항의구호에 호응해 함께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러 퀴어단체들도 항의행동에 동참했다. 8천 부의 유인물이 모두 배포됐고, 약 18개 이상의 부스에 긴급행동에서 제작한 유인물이 비치됐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부스나 행진차량에 걸어놓은 팀도 있었다. 긴급행동에서 준비한 선전전 대오는 20명 안팎이었는데, 피켓팅 참가자 수가 계속 불어나 행진 직전 무렵에는 40~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선전전을 함께 진행했다.

 

 

2시부터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개최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규탄 16차 긴급행동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 우리의 해방은 연결돼 있다»’에는 600명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 최근의 집회 참가자 수에 비해 훌쩍 늘어난 참가자 수를 통해 제국주의 대사관들의 핑크워싱 규탄 행동이 퀴어커뮤니티와 운동사회 내에서 다시 한 번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의 의의를 확산하는 계기가 됐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16차 집회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대사관 앞으로 행진해 함께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후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4호차와 6호차 뒤에 행진대오를 형성하여, 구호를 외치며 퀴어퍼레이드 행진에 함께했다. 많은 행진 참가자들과 지나가는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연대를 호소하는 피켓과 구호에 호응했다.

 

 

아무도 지우지 않는 퀴어자긍심을 위해 -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변혁적 퀴어운동을

 

퀴어문화축제에 기업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대사관이 참여하는 문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오랫동안 핑크워싱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 올해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의 대응은 특히 ‘제2의 나크바’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집단학살이 7개월 째 지속되고 있던 상황에서 제기된 것으로, 퀴어커뮤니티 내에 핑크워싱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키는 계기점이 되었다. 많은 퀴어단체/활동가들과 퀴어 당사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며, 성소수자 억압을 지속하는 주체인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퀴어자긍심에 관한 더 많은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5월 30일에는 HIV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서울인권영화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행동 알이 팔레스타인 연대성명서를 발표했고, 6월 18일까지 연서명을 조직하고 있다. 개최를 앞두고 있는 한 지역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서는 만장일치로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을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6월 13일부터 4일 간 진행되는 제26회 서울인권영화제에는 ‘팔레스타인 연대 특별 섹션: 연대로, 해방으로’가 마련됐다. 6월 16일(일) 오전 10시에는 ‘핑크워싱(Pinkwashing Exposed: Seattle Fights Back!)’(2015)이 상영되며, 11시에는 HD현대의 이스라엘 굴착기 수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Unheard: Defend Masafer Yatta)’(2023), ‘이름의 무게(I Signed the Petition)’(2018)가 상영되고 13시부터는 ‘퀴어와 팔레스타인 연대에 대해 고민하며 모두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토크쇼가 예정돼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하고 있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를 둘러싼 논쟁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실제로 많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선 동성혼이 법제화돼있고, 법률적 평등과 권리를 보장하며, 적극적인 정책으로 퀴어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나가기도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국가들이 적극적인 정치적, 경제적 지원으로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 모순적 상황 앞에서 퀴어운동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당연히, 양쪽의 손을 다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이 논쟁이 더욱 확대돼 우리가 처해있는 모순을 분명히 밝히고, 대안을 구체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에도 핑크워싱에 관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며, 내년에는 퀴어문화축제가 준비되는 초기부터 특허독점제약사 길리어드, 제국주의 대사관 등 기업, 국가들이 부스참여, 후원 등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변혁적 퀴어운동을 만들어나갈 필요성을 함께 이야기하자.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