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참사의 희생자에겐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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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할로윈 참사의 희생자에겐 죄가 없다

  • 양동민
  • 등록 2022.10.30 11:28
  • 조회수 1,042

 

할로윈 압사사고

 

10월 31일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10월 29일 금요일 밤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할로윈 행사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이의 증언으로는 “사람들이 걷는 게 아니라 휩쓸려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아직 자세한 사고경위는 조사중이나, 유명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인파의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닥에 깔린 사람들은 밀려들어온 인파에 압사당했다.

 

오전 7시 현재까지 149명이 죽고 76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부상자 가운데 심정지로 병원에 이송된 이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 한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20대라 하며, 그 중에서도 키가 작은 여성들이 더 많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소식을 듣는 순간 할로윈 파티에 갔을법한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고, 오늘 어떤 소식을 올린 게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아무 게시글이 없는 이들은 ‘자느라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10만 명 모일 건 알았지만, 압사사고 대응 계획은 없었다

 

이렇게 인파가 몰리는 행사라면 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인파 통제와 관리가 필요했다. 집회, 시위에는 그렇게 많은 경찰이 나와 통제를 하는데, 왜 정작 이런 행사에 필요한 대중의 안전을 위한 공적 준비는 하지 않았을까?

 

기사에 따르면 용산구에서는 27일 오후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해 방역, 안전사고예방, 청소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세 업무별로 각각 방역추진반, 행정지원반, 민원대응반으로 나눠 업무를 분장한 것 같은데, 방역추진반은 ‘이태원 일대 방역·소독을 실시, 이태원 일대 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세계음식거리, 클럽거리, 지하철 역사 등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을 하고, 민원대응반은 ‘이태원관광특구 및 문화유통시설 방역관리, 소음 특별점검, 가로정비, 불법 주·정차단속, 이태원 일대 청소대책’를 추진한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안전사고 예방’을 주 목적으로 하는 듯한 ‘행정지원반’의 업무는 ‘‘핼러윈데이’ 대비 종합상황실을 운영’한다는 한 가지 항목밖에 찾아볼 수 없다. 대규모 인파 집결이 예상됨에 따른 안전대응계획 마련에 대한 항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경찰 또한 행사 이전에 용산경찰서를 중심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경찰은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을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의 안전대책에는 ‘불법 촬영이나 강제추행, 절도 등의 범죄 가능성에 대비해 200명 이상의 경찰력을 이태원 거리 곳곳에 투입한다’, ‘클럽과 유흥주점 등을 중심으로, 최근 늘고 있는 마약범죄 관련 단속도 강화한다’는 내용은 있었지만 대규모 인파 결집에 따른 압사사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다.

 

대규모 집회 시위를 할 때 집회시위의 조직위원회는 안전스태프를 두고 경찰을 대신해 대오를 안내하고 통제하여 안전사고를 대비하고는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3년 만에 열리는 행사에 수용가능한 수준을 넘는 수많은 인파가 모일 것임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안전관리 대책도 공적으로 계획되고 집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전한 행사를 위한 공적인 조정이 필요한 그 순간에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희생자에겐 죄가 없다

 

뉴스에는 ‘그러게 왜 서양명절을 챙기냐’, ‘귀신놀이 하다 귀신됐다’며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런 조롱을 할 수 있는가?

 

‘외래명절 할로윈을 기념하러 모인 게 잘못’이라며 ‘할로윈이 문제’라는 주장은 논할 가치도 없다. 전통명절이든 외래명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추석 때 인파가 몰려 사고가 나면 애도할 일이고 할로윈에 사고가 나면 희생자의 잘못인가?

 

사고의 원인을 죽은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할로윈데이를 즐기려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조롱하는 모든 언행에 맞서야 한다. 그들은 놀고 싶었을 뿐이고 인생을 즐기려했을 뿐이고 그것은 잘못도 죄도 아니다.

 

이태원에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것은 코로나 이후 더욱 더 불안정하고 불평등해진 현실에 대한 우리 세대의 억눌린 마음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거리두기와 봉쇄조치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는 더 낮고 열악한 곳으로 흘러,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청년들을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왔다. 봉쇄되고 고립된 불안정한 청년들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보장했는가?

 

단지 코로나뿐만이 아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라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절규는 기후정의행진의 구호가 됐고 우리 시대의 일반적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 됐다. 극심한 불평등과 차별 속에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축제와 파티로 그 분노와 절망을 잠시나마 잊고싶다는 욕망을 품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그 마음은 지극히 정당한 인간의 욕망이다. 그 당연한 욕망을 그저 억누르기만 하는데, 어떻게 축제에 나온 청년들에게 그 잘못을 물을 수 있는가?

 

나 또한 친구들과 할로윈 파티를 즐기려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 “우리도 31일 저녁에 이태원 가볼까?”라고 묻기도 했다. 만약 그날 내가 놀러갔다 생각지도 못한 인파에 깔려 죽는다면, 그 죽음은 할로윈이든 뭐든, 숨막히는 이 사회에서 잠시나마 기념일을 맞아 놀고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내 잘못인가?

 

최근에 올해 겨울은 코로나 이후 회복된 세상이 올거라 기대하는 이들에게, 에너지위기와 인플레이션, 전쟁이란 형태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전면화되는, 참혹한 겨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 겨울의 초입부에, 숨막히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나온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을 접하니, 할로윈에 머리를 식히고 놀고 싶었던 내 마음에 이 세상이 찬물을 들이붓는 것만 같다.

 

차고 참혹한 겨울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공적 안전관리 체계를 가동하지 못하는 이 무능한 시스템을 갈아엎기 위해 노력하는 길뿐이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조롱하고, 놀고싶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너무나 정당한 내 세대의 그들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모든 언행에 맞서야 한다. 최근 나에게 이란의 상황을 전해준 익명의 20대 청년은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예배를 하는 대신 파티를 하고 싶을 뿐이다‘고 얘기했다. 할로윈을 즐기고자 이태원에 간 이들에게 방종의 죄를 묻는 일은 히잡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겠다는 여성들에게 총칼을 들이미는 이란 정권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다.

 

이번 참사로 죽은 모든 이들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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