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가락을 넘어서 변혁을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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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가락을 넘어서 변혁을 이야기하기

  • 이소연
  • 등록 2024.07.17 09:47
  • 조회수 1,149

 

지난 7월 12일, 한 인터넷언론 기사를 통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민주항해’에 혐오표현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드러났다. 안전캠페인 포스터에 사용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들을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남성비하 광고라고 한 것이다. “정신적 문둥병”, “수구 꼴페미”라는 표현과 “페미들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포스터 철거를 요구하는 글이었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금속노조 여성위원회는 위 소식지에 대해 사과글을 올렸다.

 

소식지에서 가장 문제가 된 점은 집게손가락 이미지를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집게손가락이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되는 이유는,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조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이 이미지를 사용한 기업들에 이 이미지가 ‘남성혐오’라며 삭제를 요청하고 더 나아가 담당 노동자 해고를 요구한다. 지난 7월 2일, 르노코리아 신차 홍보영상에서 여성 노동자가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많은 남성이 온라인에서 분노를 표현하며 해당 노동자 신상 공개와 해고까지 요구했다. 해당 노동자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혐오 표현으로 해석될 줄 몰랐다며 사과문을 게시했고, 사측은 해당 노동자를 직무정지한 상태다.

 

2021년 GS25의 홍보포스터에 나온 집게손가락 이미지부터 시작하여 포스코, 동서식품, BBQ, 넥슨 등 대기업은 이런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회사 매출과 주가를 걱정하며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혐오 표현임을 화급히 인정했다. 비뚤어진 효능감을 느낀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앞으로 집게손가락을 볼 때마다 이런 논란을 만들 것이다.

 

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 체제

 

그러나 문제는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다. 기후위기, 경제위기, 전쟁위기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진보적 단체 등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는 본인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정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고 인식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력하라’고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종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한국 남성들의 박탈감과 고통 뒤에는 징병제, 취업난, 치솟는 물가와 낮은 임금, 저렴하고 살기 좋은 주택의 부족,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능력주의 등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계급투쟁으로, 함께 싸워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누군가를 혐오 대상으로 제물 삼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체제에 맞선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장애인 등이 자신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짓는다. 일자리도, 공공복지도 소수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정서가 만연하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보다, 왜 여성·성소수자·이주민·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나보다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는 저들이, 왜 응당 나에게 돌아와야 할 혜택을 가져가는가? 이렇게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에, 나아가 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고, 소위 ‘비정상’이라고 규정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통해 계급지배를 강화한다.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를 혐오하고 낙인찍고 조롱해야 하는지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특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등이 이곳에서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고 ‘남성’의 연대와 결속을 확인시켜 준다. 일간베스트,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이종격투기(다음카페) 등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남성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조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요구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에서 비롯된다. 신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디며 자신을 희생해 ‘정상가족’의 가장이 되라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규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통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싸움을 펼쳐야 할 이때,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이 뒤틀린 체제의 뒤틀린 존속으로 이어질 뿐이다.

 

약자 혐오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로 -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이 체제다

 

온라인 공간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토로하는 부조리, 부정의를  면밀히 포착해야 한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사용하는 언어, 공유하는 가치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에서 자본의 질서와 규범이 반영되기 쉬우나, 그것을 역으로 활용하여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적 단결을 추동할 수도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 대중화를 경험하고,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이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고 규율, 감독해야 하는가? 아니다. 자본이 만든 부조리와 모순을 명확히 직시할 수 있도록 연대와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을 설득하고, 사회주의 변혁을 이야기하자. 하다못해 인터넷 뉴스 댓글에도 혐오에 동조하거나 편승하지 말자고, 문제는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있다고 이야기하자. SNS에 짧게라도, 우리가 분노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실태를 이야기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조장하는 혐오에 맞선 노동조합의 실천이다.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기에 체제가 조장하는 소수자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나, 또한 그 체제에 맞서 싸워왔으며, 또한 싸우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전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직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다.

 

7월 15일, 현대중공업지부는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적인 언어를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해 사과문을 발행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결과 연대를 위해 결성된 노동조합이 여성혐오와 억압에 맞선 투쟁에 더 앞장서야 한다. 집게손가락을 색출하자는 마녀사냥에 노동조합이 맞서야 한다. 우리의 분노를, 그 분노가 응당 향해야 할 곳으로부터 사회적 소수자에게 돌리는 자본주의에 맞서자.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의 분노를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는 이 사회를, 바로 그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이 째려볼 수 있도록 실천하고 설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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