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국영석유회사 정유화학단지 사진: Getty Images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해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게 이를 판매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전 세계적 확산과 고도화 속에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 즉 자발적 탄소시장(VCM) 및 관련 파생금융상품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할 뿐 아니라,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탄소배출 ‘면죄부’로 사들인 녹지, 남한 면적의 2.4배
2023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기업 ‘블루카본(Blue Carbon)’은 아프리카 5개국과 2,450만 헥타르(ha) 규모 삼림 탄소배출권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블루카본은 협약체결국에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하고, 각국은 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자국의 산림을 보전한다. 블루카본은 파괴되지 않은 삼림의 탄소흡수량을 계산해 각국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발급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라이베리아 전체 면적의 10%,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의 20%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남한 면적(약 1,000만 헥타르) 2.4배에 달한다.
2022년 8월 설립된 블루카본은 개발도상국 삼림을 직접 매입하거나 각국 삼림보전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추진해왔다. 아프리카 탄소 시장에 4억 5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블루카본은 짐바브웨에만 이미 15억 달러를 "탄소배출권 사전 자금조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교육·아동보육 세출보다도 많은 액수다.
신생기업 블루카본의 막대한 자금력과 신속한 추진력의 배후에는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자본이 존재한다. 블루카본 대표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은 두바이 토후국을 통치하는 막툼 가문으로, 현 UAE 총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친척이다. 막툼 가문은 190년간 UAE를 통치하며,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 자신부터가 중동, 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화석연료·인프라사업을 운영한다.
블루카본과 화석연료 자본 간의 밀접한 관계는,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이 UAE의 탄소배출 상쇄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아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기업은 구매량만큼 탄소배출을 줄인 셈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미리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 3,700만 톤인데, 블루카본이 만들어내는 배출권은 최대 연 2억 5,000만 톤으로 예상된다. 블루카본이 만든 배출권을 UAE가 전부 사들이면, 아랍에미리트는 이론적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실제로 UAE는 2023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8) 기간 동안,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삼림 탄소배출권 사업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COP28 의장단이 민간 탄소시장(자발적 탄소시장, voluntary carbon market)1) 확대를 위해 개최한 회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미국 기후특사 등 고위 인사들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COP28 종료 후 UAE는 탄자니아와 6개 국립공원 180만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 토지기반 탄소배출권 사업계약을 체결했으며, 라이베리아 정부는 서아프리카 전체 산림 면적 10%에 해당하는 100만 헥타르 산림에 대한 독점권을 30년 동안 블루카본에 넘겼다.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정부도 이와 유사한 양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1) 민간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탄소시장. 탄소시장은 정부가 탄소배출 허용 상한을 정하고 탄소배출권을 할당하는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으로 구분된다.
한편, COP28은 산유국과 화석연료 자본의 공세 속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하는 후퇴로 끝났다. COP28에서 화석연료 자본을 철저히 대변해온 UAE는 향후 50년간 석유 생산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UAE 국영 에너지기업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2030년까지 석유 생산량을 올해보다 41%, 가스 생산량을 1/3 늘릴 계획이며,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40% 증가를 뜻한다. 화석연료 자본은 증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고자 대대적인 탄소배출권 사업을 벌이고 있다.
라이베리아 재무개발기획부 장관(왼쪽)과 블루카본 회장(오른쪽) 사진: Gulf News
탄소가격제,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하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등 탄소가격제의 핵심 논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을 경제주체가 부담케하는 ‘내부화’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기업이 탄소배출 비용을 덜고자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 방식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신기술을 도입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상쇄배출’, 즉 배출권 구매나 온실가스 배출 상쇄로 인정되는 조치를 제도화해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나 확대를 허용한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자원은 오히려 배출권거래제 시스템 구축 그 자체에 낭비되고 있다. 상쇄배출권 시장을 겨냥한 인위적인 산림·습지 보호와 재조림 사업은 자연과 토지의 상품화, 지역 생태계 파괴, 지역 민중의 공동체적 삶 붕괴 등 심각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 그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학계와 언론에 따르면, 배출권 사업이 창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거의 없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의 75%를 차지하는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가 인증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없다는 조사 결과들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라가 인증한 열대우림보호 사업 중 10% 이하만 산림벌채 감소로 이어졌으며, 90% 이상은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2022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베라가 더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업대상 산림의 파괴 위협을 평균 400%가량 부풀려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라의 탄소배출권 중 94%가 실제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없는 ‘팬텀 크레딧’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다국적 석유기업인 셰브론이 베라로부터 구매한 탄소배출권 93%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으며, 반대로 42%는 환경이나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결과가 확인되었다. 애플, 구찌 등 거대자본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은 그저 ‘면죄부’ 발급 비용이었던 셈이다.
배출권거래제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탄소세 역시 마찬가지다. 오염행위 자체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오염행위에 가격을 붙이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거니와, 이는 소득이 더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불공평한 시스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에너지요금 비중이 높아, 자본가 부유층과 노동자 민중 중 후자가 더 많은 비율을 탄소세로 납부하게 된다.
녹색식민주의의 도구, 탄소배출권 사업
블루카본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자본이 주도하는 탄소배출권 사업은 기후위기 해결을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종속을 강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진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본거지인 아마존에서는 탄소배출권 창출을 위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상당수가 심각한 인권침해와 토지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루 북서부 알토마요에서는 현지 주민 수천명이 디즈니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열대우림 보호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이 사업으로 창출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산림조성 사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체계적으로 점령해왔다. 준정부기구인 유대인민족기금(JNF)은 네게브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계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등, 식민주의 조림사업을 벌여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배출권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블루카본의 행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블루카본과 라이베리아 정부가 체결한 계약서 초안에 따르면, 블루카본은 지역사회와 개인 농장, 보호구역에 배정된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권리를 확보한다. 또한,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해당 토지에서 나온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얻은 수익금의 70%를 챙기게 된다. 나머지 30%는 라이베리아 정부의 몫이다. 이때 배출권 가격의 10%만큼 로열티가 발생하고, 그중 절반만이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라이베리아의 경우,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으로 인해 최소 백만 명 이상이 생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아랍에미리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탄자니아는 국립공원 보전과 확장을 명분으로 국립공원 인근 거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내쫓고 있다. 공권력을 동반한 강경한 퇴거 조치로 주민들은 주거지를 잃고 가축을 압수당하는 등 생존권을 극도로 침해받고 있으며, 탄자니아 당국과의 갈등이 심화된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살해도 확인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탄자니아의 아루샤 지역에서 국립공원 당국이 어부들을 보호구역에서 낚시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하면서 어부 2명이 실종되고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탄자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COP28에서 글로벌사우스를 위한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조차 1,000억 달러 규모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난도질당하는 등, 그간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자본주의 열강은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쇄배출권 사업에 적극 뛰어들며 녹색 식민주의로 개발도상국의 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COP28 기간 중 “자발적 상쇄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돈을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탄소배출권 사업을 옹호하였다.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의 책임은, 자본의 안정적 이윤창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명분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저개발국 간 위계를 심화하고, 다국적 대자본과 개도국 정부가 함께 저개발국 민중을 억압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유대민족기금의 '조림'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베두인들 사진: Aljazeera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이 절실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시장주의 기후정책과 담론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함께 2010년대 중반에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는 오늘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규제완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세 차례2)에 걸쳐 배출권을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해왔다. 정부가 기업에 지급한 무상배출권 비중은 1차에 100%, 2·3차에 각각 97%, 90%에 달한다. 해당 기간 산업부문이 판매한 배출권은 3,800만 톤에 달하며, 톤당 약 2만 원에서 2만 5천 원에 매매되었다. 기업들이 무상배출권을 판매하여 챙긴 수익은 약 8,500억 원에 이른다. 탄소배출권이 온실가스 배출 상위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활용된 셈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최다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2022년에 받은 무상 배출권이 7,715만 톤으로 온실가스 배출량(7,019만 톤)을 넘어서고, 2017년 이래 무상 배출권 할당량은 실제 배출량을 세 번이나 넘겼다. 어떠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도 탄소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는 더 많은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2016년~2021년에 걸친 기간 동안 산업부문이 줄인 온실가스는 고작 230만 톤에 불과하다.
2)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3차(2021~2025년)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기조는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되었다.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2023년 3월 확정하며 산업부문 탄소배출 허용량을 810만 톤이나 경감한 반면, 국제감축 목표치는 400만톤 늘렸다. 국제감축이란 국외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벌인 뒤 감축 실적을 인정받는 제도를 뜻한다. 여기에 더해 상쇄배출권 한도 또한 기존 5%에서 10%로 확대했다. UAE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려는 목적이다.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산림투자를 독려하고자 기업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부는 14개국에 42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 국외 조림사업을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솔로몬제도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 수몰위기국가 대상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미 SK,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2023년 2월에는 SK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가 ‘베라’의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자사 윤활유 제품을 '탄소중립 윤활유’로 홍보하다 환경부의 그린워싱 제재를 받았던 촌극도 있었다.
탄소가격제를 비롯한 시장주의 기후 해법은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대신 배출량 증가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제국주의 자본의 책임은 녹색식민주의와 함께 저개발국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 수탈로 이윤을 축적해온 자본은, 이전과 똑같은 방식에 그저 녹색 꼬리표를 붙였을 뿐이다. 이 모든 부조리 뒤에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가 존재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 자본이 축적한 막대한 생산력을 온전히 기후위기 해결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강제할 힘이 필요하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은 자본의 이윤을 생산하는 주체이자 그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주체, 즉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에 근거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재벌기업이 그린워싱 국제사업으로 글로벌사우스 종속을 강화하는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산업에 대한 통제투쟁은 세계 노동자 민중과 맞닿는다.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속에서, 전 세계 노동자는 자본에 맞선 투쟁 속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