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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그린워싱, 탄소배출권거래제UAE 국영석유회사 정유화학단지 사진: Getty Images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해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게 이를 판매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전 세계적 확산과 고도화 속에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 즉 자발적 탄소시장(VCM) 및 관련 파생금융상품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할 뿐 아니라,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탄소배출 ‘면죄부’로 사들인 녹지, 남한 면적의 2.4배 2023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기업 ‘블루카본(Blue Carbon)’은 아프리카 5개국과 2,450만 헥타르(ha) 규모 삼림 탄소배출권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블루카본은 협약체결국에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하고, 각국은 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자국의 산림을 보전한다. 블루카본은 파괴되지 않은 삼림의 탄소흡수량을 계산해 각국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발급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라이베리아 전체 면적의 10%,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의 20%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남한 면적(약 1,000만 헥타르) 2.4배에 달한다. 2022년 8월 설립된 블루카본은 개발도상국 삼림을 직접 매입하거나 각국 삼림보전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추진해왔다. 아프리카 탄소 시장에 4억 5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블루카본은 짐바브웨에만 이미 15억 달러를 "탄소배출권 사전 자금조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교육·아동보육 세출보다도 많은 액수다. 신생기업 블루카본의 막대한 자금력과 신속한 추진력의 배후에는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자본이 존재한다. 블루카본 대표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은 두바이 토후국을 통치하는 막툼 가문으로, 현 UAE 총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친척이다. 막툼 가문은 190년간 UAE를 통치하며,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 자신부터가 중동, 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화석연료·인프라사업을 운영한다. 블루카본과 화석연료 자본 간의 밀접한 관계는,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이 UAE의 탄소배출 상쇄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아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기업은 구매량만큼 탄소배출을 줄인 셈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미리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 3,700만 톤인데, 블루카본이 만들어내는 배출권은 최대 연 2억 5,000만 톤으로 예상된다. 블루카본이 만든 배출권을 UAE가 전부 사들이면, 아랍에미리트는 이론적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실제로 UAE는 2023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8) 기간 동안,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삼림 탄소배출권 사업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COP28 의장단이 민간 탄소시장(자발적 탄소시장, voluntary carbon market)1) 확대를 위해 개최한 회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미국 기후특사 등 고위 인사들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COP28 종료 후 UAE는 탄자니아와 6개 국립공원 180만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 토지기반 탄소배출권 사업계약을 체결했으며, 라이베리아 정부는 서아프리카 전체 산림 면적 10%에 해당하는 100만 헥타르 산림에 대한 독점권을 30년 동안 블루카본에 넘겼다.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정부도 이와 유사한 양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1) 민간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탄소시장. 탄소시장은 정부가 탄소배출 허용 상한을 정하고 탄소배출권을 할당하는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으로 구분된다. 한편, COP28은 산유국과 화석연료 자본의 공세 속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하는 후퇴로 끝났다. COP28에서 화석연료 자본을 철저히 대변해온 UAE는 향후 50년간 석유 생산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UAE 국영 에너지기업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2030년까지 석유 생산량을 올해보다 41%, 가스 생산량을 1/3 늘릴 계획이며,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40% 증가를 뜻한다. 화석연료 자본은 증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고자 대대적인 탄소배출권 사업을 벌이고 있다. 라이베리아 재무개발기획부 장관(왼쪽)과 블루카본 회장(오른쪽) 사진: Gulf News 탄소가격제,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하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등 탄소가격제의 핵심 논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을 경제주체가 부담케하는 ‘내부화’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기업이 탄소배출 비용을 덜고자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 방식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신기술을 도입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상쇄배출’, 즉 배출권 구매나 온실가스 배출 상쇄로 인정되는 조치를 제도화해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나 확대를 허용한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자원은 오히려 배출권거래제 시스템 구축 그 자체에 낭비되고 있다. 상쇄배출권 시장을 겨냥한 인위적인 산림·습지 보호와 재조림 사업은 자연과 토지의 상품화, 지역 생태계 파괴, 지역 민중의 공동체적 삶 붕괴 등 심각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 그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학계와 언론에 따르면, 배출권 사업이 창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거의 없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의 75%를 차지하는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가 인증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없다는 조사 결과들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라가 인증한 열대우림보호 사업 중 10% 이하만 산림벌채 감소로 이어졌으며, 90% 이상은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2022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베라가 더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업대상 산림의 파괴 위협을 평균 400%가량 부풀려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라의 탄소배출권 중 94%가 실제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없는 ‘팬텀 크레딧’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다국적 석유기업인 셰브론이 베라로부터 구매한 탄소배출권 93%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으며, 반대로 42%는 환경이나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결과가 확인되었다. 애플, 구찌 등 거대자본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은 그저 ‘면죄부’ 발급 비용이었던 셈이다. 배출권거래제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탄소세 역시 마찬가지다. 오염행위 자체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오염행위에 가격을 붙이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거니와, 이는 소득이 더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불공평한 시스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에너지요금 비중이 높아, 자본가 부유층과 노동자 민중 중 후자가 더 많은 비율을 탄소세로 납부하게 된다. 녹색식민주의의 도구, 탄소배출권 사업 블루카본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자본이 주도하는 탄소배출권 사업은 기후위기 해결을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종속을 강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진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본거지인 아마존에서는 탄소배출권 창출을 위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상당수가 심각한 인권침해와 토지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루 북서부 알토마요에서는 현지 주민 수천명이 디즈니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열대우림 보호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이 사업으로 창출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산림조성 사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체계적으로 점령해왔다. 준정부기구인 유대인민족기금(JNF)은 네게브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계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등, 식민주의 조림사업을 벌여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배출권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블루카본의 행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블루카본과 라이베리아 정부가 체결한 계약서 초안에 따르면, 블루카본은 지역사회와 개인 농장, 보호구역에 배정된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권리를 확보한다. 또한,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해당 토지에서 나온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얻은 수익금의 70%를 챙기게 된다. 나머지 30%는 라이베리아 정부의 몫이다. 이때 배출권 가격의 10%만큼 로열티가 발생하고, 그중 절반만이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라이베리아의 경우,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으로 인해 최소 백만 명 이상이 생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아랍에미리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탄자니아는 국립공원 보전과 확장을 명분으로 국립공원 인근 거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내쫓고 있다. 공권력을 동반한 강경한 퇴거 조치로 주민들은 주거지를 잃고 가축을 압수당하는 등 생존권을 극도로 침해받고 있으며, 탄자니아 당국과의 갈등이 심화된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살해도 확인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탄자니아의 아루샤 지역에서 국립공원 당국이 어부들을 보호구역에서 낚시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하면서 어부 2명이 실종되고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탄자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COP28에서 글로벌사우스를 위한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조차 1,000억 달러 규모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난도질당하는 등, 그간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자본주의 열강은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쇄배출권 사업에 적극 뛰어들며 녹색 식민주의로 개발도상국의 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COP28 기간 중 “자발적 상쇄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돈을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탄소배출권 사업을 옹호하였다.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의 책임은, 자본의 안정적 이윤창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명분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저개발국 간 위계를 심화하고, 다국적 대자본과 개도국 정부가 함께 저개발국 민중을 억압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유대민족기금의 '조림'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베두인들 사진: Aljazeera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이 절실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시장주의 기후정책과 담론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함께 2010년대 중반에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는 오늘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규제완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세 차례2)에 걸쳐 배출권을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해왔다. 정부가 기업에 지급한 무상배출권 비중은 1차에 100%, 2·3차에 각각 97%, 90%에 달한다. 해당 기간 산업부문이 판매한 배출권은 3,800만 톤에 달하며, 톤당 약 2만 원에서 2만 5천 원에 매매되었다. 기업들이 무상배출권을 판매하여 챙긴 수익은 약 8,500억 원에 이른다. 탄소배출권이 온실가스 배출 상위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활용된 셈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최다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2022년에 받은 무상 배출권이 7,715만 톤으로 온실가스 배출량(7,019만 톤)을 넘어서고, 2017년 이래 무상 배출권 할당량은 실제 배출량을 세 번이나 넘겼다. 어떠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도 탄소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는 더 많은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2016년~2021년에 걸친 기간 동안 산업부문이 줄인 온실가스는 고작 230만 톤에 불과하다. 2)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3차(2021~2025년)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기조는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되었다.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2023년 3월 확정하며 산업부문 탄소배출 허용량을 810만 톤이나 경감한 반면, 국제감축 목표치는 400만톤 늘렸다. 국제감축이란 국외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벌인 뒤 감축 실적을 인정받는 제도를 뜻한다. 여기에 더해 상쇄배출권 한도 또한 기존 5%에서 10%로 확대했다. UAE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려는 목적이다.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산림투자를 독려하고자 기업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부는 14개국에 42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 국외 조림사업을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솔로몬제도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 수몰위기국가 대상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미 SK,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2023년 2월에는 SK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가 ‘베라’의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자사 윤활유 제품을 '탄소중립 윤활유’로 홍보하다 환경부의 그린워싱 제재를 받았던 촌극도 있었다. 탄소가격제를 비롯한 시장주의 기후 해법은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대신 배출량 증가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제국주의 자본의 책임은 녹색식민주의와 함께 저개발국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 수탈로 이윤을 축적해온 자본은, 이전과 똑같은 방식에 그저 녹색 꼬리표를 붙였을 뿐이다. 이 모든 부조리 뒤에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가 존재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 자본이 축적한 막대한 생산력을 온전히 기후위기 해결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강제할 힘이 필요하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은 자본의 이윤을 생산하는 주체이자 그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주체, 즉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에 근거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재벌기업이 그린워싱 국제사업으로 글로벌사우스 종속을 강화하는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산업에 대한 통제투쟁은 세계 노동자 민중과 맞닿는다.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속에서, 전 세계 노동자는 자본에 맞선 투쟁 속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 -
[세계의 여성파업 4] 아르헨티나 - 여성파업 조직한 여성 노동자들, 성폭력의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이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콩그레소(Congreso) 광장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성, 소녀, 논바이너리 사람들, 남성 동맹자들이 도로에 빽빽이 서서 플래카드를 흔들고, 드럼을 치고, 구호를 외쳤다. 활동가부터 모유를 수유 중인 아이 엄마까지 거의 모든 참여자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는 상징인 초록색 삼각형 손수건을 착용하고 있었다.” 위의 내용은 2020년 3월 9일 여성파업 시위 현장을 그린 아르헨티나 언론사의 취재기사 중 한 구절이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계기로 일어난 파업이었지만, 당시 3월 8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하루 뒤인 월요일까지 포함해 3월 8일과 9일 양일간 조직된 파업이었다. 주최측인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만 50만 명이 모였고 북부 살타에서부터 남부 우수아이아까지 전국적으로도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추산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2016년 10월 19일 처음 여성파업이 일어났으며, 2019년에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외에는 모두 국제 여성의 날에 진행됐다. 2016년 처음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우리는 파업한다.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Nosotras paramos! Ni una menos).”는 구호를 외치며 파업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대중화에 마중물이 되었으며, 특히 임신중지 합법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무급 가사돌봄 노동과 함께 생산 현장에서의 파업이 조직되면서 임신중지 권리를 위한 계급투쟁의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 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성장해 왔지만 전국적 여성 파업이 가능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업은 아르헨티나를 지배해 온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효과적인 도구란 점이 입증됐다. 즉,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여성 의제를 노동자계급의 의제로 삼은 한편, 이 의제를 위한 투쟁 방식 역시 생산을 중단하는 파업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전망을 보여 줬다. 여성파업의 시작1) 1) 이 글은 졸고 《검은 시위》 중 아르헨티나 장을 여성파업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글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난 계기는 2015년 3월 16일 19세 여성 다이아나 가르시아가 반나체 상태로 스타킹이 입에 물린 채 쓰레기봉지 속에서 발견되면서였다. 가르시아의 무참한 죽음에 아르헨티나 문인들은 “비닐봉지 속의 여성이 우리다. 너무나 많은 우리가 비닐봉지에 휘감겨 있다. 비닐봉지를 찢고 나오자. 아무도 그곳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자(ni una menos).”라며 페미사이드와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릴레이 문화예술행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14세 소녀 치아라 차베스가 살해되자 니우나메노스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여성·인권·사회 운동을 비롯해 노동조합, 학생운동, 좌파 정당 등 수많은 단체가 니우나메노스 운동을 조직하고 2015년 6월 3일 대규모 집회를 소집했다. 이에 전국 80개 이상의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국경을 넘어 우루과이와 칠레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2016년 10월 8일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스가 또다시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결국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10월 19일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파업을 제안했고, 이는 6일 만에 대규모 파업 시위를 이끌었다. 애초 언론들은 이 살인 사건을 마약과 연계하거나 고립된 범죄로 취급하면서 탈정치화했지만,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이것이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여론을 다시 조직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직장과 학교, 가정 등 가능한 한 모든 공간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노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파업 시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25만 명이 참가할 만큼 대대적이었고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국영 TV마저 여성파업이라는 주제를 다뤘고, 몇 달 동안 TV 방송은 연예인들을 제쳐두고 페미니스트들을 초대해 다가오는 여성파업과 임신중지 합법화에 대해 토론하고, 변화하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녹색 스카프를 맨 여성 노동자들 이러한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많은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라틴 아메리카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촉발된 것은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었고, 이 운동의 여파 속에서 아르헨티나는 2019년 임신중지 합법화를 쟁취했다. 그리고 여성 살해에 맞선 여성파업에서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중지 권리 역시 노동 의제로 만들고 파업투쟁을 조직했다. 실제로 여성 노동운동가 다수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지지했고, 여성 조합원들도 이를 노조 운동의 목표로 세웠다. 여성 조합원들은 여성파업과 파뉴엘라소(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녹색 손수건 시위)에 참여했고 여러 쟁의 역시 파뉴엘라소 방식으로 진행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학교와 병원, 공공기관과 대학 등 직장에서마다 파뉴엘라소를 진행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녹색 스카프의 물결은 계속됐다. 다국적 기업 펩시코 해고 노동자들과 성폭력 신고전화 ‘114 라인’ 노동자들, 언론사 텔람(Télam)과 마푸체 원주민 여성들이 함께 니우나메노스를 조직했다. 아르헨티나노총(CGT) 소속 승무원 노동자들은 8월 8일 모든 비행기에서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조선소 폐쇄 반대 투쟁이 진행되던 라플라타의 리오산티아고 조선소에서는 2018년 8월 8일 거대한 녹색 스카프가 뱃머리에 걸렸다. 2018년 7월 22일에는 노동자가 운영하는 마디그라프(MadyGraf) 공장 여성위원회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빵과장미(Pan y Rosas)’2)가 ‘공개 여성 집회’를 소집해 8월 8일 의회 토론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했다. 여기에는 펩시코, 크라프트, 포사다스병원 등 다양한 작업장 출신 노동자 700명 이상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시위를 주도하는 니우나메노스와 70개 이상의 단체 그리고 지하철및전철노조협회(AGTSyP)는 모든 지하철 노선에서 캠페인도 조직했다. 여기에는 쓰레기수거, 세탁, 돌봄이나 식당 등 재생산 부문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은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Trabajadora Menos)” 혹은 “단 한 명의 이민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Migrante Menos)” 같은 새로운 슬로건과 함께 운동 영역을 확장해 냈다. CGT가 임신중지 합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을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즉각 반발했고, CGT 본부 앞에서 녹색 파뉴엘라소 시위를 벌였다. 2)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로 페미니즘 제도화에 반대하며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빵과장미는 2000년대 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후 ‘사장 없는 기업’을 내건 자주관리 운동의 급속한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빵과장미는 현지 사회주의노동자당(PTS) 연관 단체이기도 하다. 성폭력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 이러한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임신중지가 여성 노동자계급의 보편적인 이슈로 조명되고 전술 역시 계급행동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에는 수많은 여성 조합원이 참여했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을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여성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여성파업이 일어난 2016년은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의 전환점, 특히 노동계급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파울라 바렐라는 “2015년의 핵심은 인권운동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폭력의 희생자로 본 것이었다면, 2016년에는 여성을 일하고 생산하는 주체로 정립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바렐라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에는 3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다. 첫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과 그의 동맹 ‘캄비에모스’로의 정권 교체다. 앞서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사회적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마크리 정부는 취임 직후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해고를 밀어붙였고, 공공 서비스 요금은 급등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임금이 곤두박질쳤다.민간 부문에선 6%, 공공 부문에선 8% 하락할 정도로 생존권이 후퇴했다. 빈곤율은 마크리 정부가 출범한 2015년 약 30%에서 2019년 41%로 급증했다. 세계 30대 경제국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는 더 잔인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해고와 실업에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밀려났고, 성과 재생산 예산이 대폭 줄었으며, 성폭력과 페미사이드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가고 있었다. 2017년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26.2%이었으며,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 사이의 남녀 임금 격차는 41.2%까지 벌어졌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소득을 얻으려면 77일을 더 일해야 했다.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7명도 여성이었다. 14~29세 여성의 실업률은 21.5%로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4.2%p나 높았다. 또한 2017년 공식 확인된 여성 살해는 292건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가정 폭력 핫라인에는 무려 7만 9,753건의 전화가 걸려 올 만큼 여성들이 가혹한 시간을 살고 있었다. 둘째는 여성들에게 누적되어 온 종교적 억압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헌법은 가톨릭교회의 특권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연간 수십억 페소에 달하는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이 자금으로 다양한 사회 부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세력뿐 아니라 중도좌파까지 집권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늘 억압적인 여성관과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대표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종교학교를 소유하고 있지만, 교육 과정에는 성교육조차 없을 만큼 보수적3)이다. 더구나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을 옹호하며 여성에게 도덕적 공세를 퍼부었다. 3)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막은 배경에 대해 친지아 아루자와 티티 바타차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력과 교회 모두 ‘가족의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를 지키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약탈에 대응해 생겨나 과감하게 정치 지형을 만들어 가는 페미니즘 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는 여성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이 부재했던 조건이다. 아르헨티나 노조들은 마크리가 집권한 2015년부터 퇴임한 2019년까지 5차례에 걸친 총파업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섰다. 그러나 페미사이드 중단이나 임신중지 합법화, 여성 실업 해결 등에는 소극적이었으며 오히려 임신중지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2018년 7월 7일 CGT는 임신중지 합법화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우려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가 노동조합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결과였다. 노조 지도부 중에는 우파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16년 10월 1차 전국여성파업 당시 슬로건 중 하나가 “CGT가 정부와 차를 마실 때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조 지도부가 여성 실업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여성 운동이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밀려났는데도 CGT가 자신의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즉, 2016년 10월 19일 여성파업은 이 3가지 요소가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을 계급적 주체로 정체화하고 계급투쟁을 선택했다. 파업에는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우리 삶이 무가치하다면 우리 없이 생산하라.”, “우리는 세상을 움직인다.”는 슬로건이 늘어 갔다. 또 파업 제안서에는 성차별적 폭력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여성이 겪는 삶의 불안정과 실업, 무급 가사노동, 성별 임금 격차, 교사와 간호사 등에서 드러나는 성별분업 체계와 계층화를 문제 삼았다. 출산 휴가 부족이나 무급 육아 노동, 부족한 보육원 등으로 인해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의 문제도 제기됐다. 결국 2015년 6월 3일 첫 니우나메노스 시위 이후 1년여가 지나면서 운동의 요구는 페미니즘 운동의 전통적 의제는 물론, 불안정노동 체제 청산과 빈곤 해결, 그리고 여성 노동자를 외면하는 CGT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대됐다. 아래로부터의 파업 조직한 빵과장미 그러나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집회를 소집한 노조 지도부 역시 많은 경우 파업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즉, 대규모의 여성파업 시위에 비하면, 노동조합 중앙이 현장에서 실제로 파업을 조직한 곳은 많지 않았다. 2023년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 중부 네우켄에 위치한 ATEN 캐피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데미스 등 좌파가 주도하는 5개 정도의 사업장에서만 파업이 조직됐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의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Nathalia González Seligra), 로라 빌치스(Laura Vilches)에 따르면, 일부 노조 지도부, 즉 부에노스아이레스교육노동자연합(SUTEBA)이나 아르헨티나중앙노조 교육종사자연합(CTERA-CTA)과 같이 키르치네르주의4)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교사 노조의 지도부가 파업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선동적인 선언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공무원노조(ATE)의 산하 조직들은 “성평등 없이는 사회 정의도 없다”고 말하며 “공식 및 비공식 노동, 서민 경제 및 무급 노동의 다양한 조직”이 역사적인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일부 여성 조합원들이 조기퇴근하는 데 동의했을 뿐, 파업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4)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란 아르헨티나 전직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주도한 정치운동이다. 페론주의의 한 조류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사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는 노동조합 중앙이 임신중지 권리, 성차별적 폭력, 여성 살해 반대 등 여성 운동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파업에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기해 왔다. 실제로 빵과장미 동료들은 노동조합이 운영되는 모든 공장에서 민주적 집회를 소집하고 파업을 제안했다. 2017년 이래로 ‘국제 페미니스트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여성파업 운동이 일어났을 때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하는 교대조에서 생산을 마비시키고 시위에 참여하기로 투표한 업계 유일의 회사는 다국적 기업 펩시코였다. 셀리그라와 빌치스는 “여성들이 파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각 학교, 대학, 병원, 각 공장, 각 동네 등 동료와 이웃과 함께 파업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아래로부터의 준비가 필요”했고, “또 여성 노동자들이 가정에서 필수적인 가사돌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실질적인 투쟁 수단을 구축해야 하지만, 그런 준비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아르헨티나 중도좌파 키르치네르주의 정치세력은 직장에서의 파업 즉, 반자본주의의 계급투쟁은 우회했지만,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 한가운데서 페미니즘 이름으로 키르치네르주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 선거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들은 2019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임신중지를 합법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중요한 한계를 노정한 것이었다. 역사적 승리와 한계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임신중지 합법화를 공약했고, 이후 2020년 12월 30일 아르헨티나 의회는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IVE)’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법안 통과 후 11개월 동안5)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신중지 시술 3만 2,758건이 무상으로 이루어졌다. 유산유도제는 4만 6,590개가 무상 공급됐다. IVE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 서비스 대상으로 정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비의 전액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 시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903개소에서 1,243개소로 늘었다. 5) 2021년 11월 30일 기준. 법률 27610 하지만 자발적 임신중지 권리는 14주까지만 합법화되었고, 14주 이후에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의 위험 또는 사산 위험이 있을 때만 임지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르헨티나 24개 주는 주가 보건 정책을 결정해 지역적 격차도 컸다.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는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135개 지역 중 36개 지역에는 여전히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없다. 또 의사가 ‘양심’에 따라 임신중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 여전히 많은 여성이 어려움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더욱 후퇴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노동자민중에게 그 위기를 전가했고, 가장 큰 타격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64%는 여성이며, 비혼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도 12%에 달했다. 백래시와 반격 더구나 가속화하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속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는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외치는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하여 노동자민중과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선거 유세장에 전기톱을 들고 나온 밀레이는 임신중지 권리 폐지를 비롯해 동성 결혼 반대, 총기 자유화와 장기 매매 합법화 등을 밀어붙일 예정이다. 그는 이미 공공 부문 임금을 동결했으며, 연금 인상 종료 및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 대통령령을 발의했다. 이 대통령령에는 법적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고, 해고 시 보상을 줄이며, 임신 휴가를 축소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다만 이 대통령령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전면적인 경제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밀레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다. 특히 밀레이의 개악은 임신중지 권리 공격이나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반격을 채비하고 있다. 12월 20일에는 좌파전선과 실업자단체를 비롯한 전투적인 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벌였으며, 5월 광장과 의회 앞에서는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총동맹은 1월 24일 전국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도 극우에 반격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제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은 또 다른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반격으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빵과장미가 말하듯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여성운동,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의 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 이론가 안드레아 다트리(Andrea D’Atri)는 “임신중지 합법화 투쟁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처럼, 우리가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곳은 부처 사무실이나 투표소가 아니라 거리다. 우리는 모든 직장, 모든 학교와 대학, 모든 동네에서 조직하여 극우에 맞서야 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믿고 싸우는 그린타이드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
[번역] 기후 레닌주의를 향하여!원문 기사 https://www.leftvoice.org/for-climate-leninism/ 나다니엘 플라킨 2023년 10월 1일 안드레아스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생태적 레닌주의”를 요구한다. 좋다. 하지만 레닌주의란 무엇보다 자본가 국가를 분쇄하는 것을 뜻한다. 거대 재앙의 위험이 … 임박했다. 모든 신문이 이것을 되풀이해 쓰고 있다. … 결의안들은 …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점, 재앙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점, 재앙에 맞서기 위해 극단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파멸을 피하려면 민중의 “영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인정한다. 모두가 재앙을 말하고 있으며, 모두가 재앙을 인정한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면, 재앙에 맞설 방법들이 있다는 것, 재앙에 맞서기 위한 조치들이 더없이 분명하고, 간단하며, 완벽하게 실현 가능하고, 민중의 힘이 온전히 닿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치들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전적(全的)으로 그 실현이 한 줌 자본가들의 막대한 이윤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란 점도 알 수 있다. - 레닌 레닌은 이 글을 1917년 10월에 썼다. 이 글에서 레닌은 러시아에서 다가오는 기근의 위험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소한 생략을 제외하고서 보면, 위 인용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묘사한다. 기후재앙이 진행 중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안다. 지난 가을 COP27 기후 회의에서는 사실상 모든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참여한 엄숙한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필요한 조치들은 간단하지만,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XR)’은 여러 나라에서 도로를 막아섰다. 독일에서는 여러 활동가 단체가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엔데 겔란데(Ende Gelände, 길이 없음)’는 석탄 광산을 점거했다. 최근에는 ‘레츠테 게네라치온(Letzte Generation, 마지막 세대)’ 회원들이 강력 접착제로 자기 몸을 도로에 붙여 교통을 방해했다. 두 단체 모두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범죄 음모”로 수사받고 있으며 심지어 “기후 테러”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들의 전술은 과격해 보이지만 놀랍게도 그 요구는 온건하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을 도입하며, 그밖에 소소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한 시민 불복종 전략의 주요 이론가는 스웨덴 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이다. (1) 그의 책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사와 장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 봉쇄 기간에 쓴 두 번째 책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에서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생태적 레닌주의”를 촉구했다. 레닌주의자로서, 우리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레닌주의란 말름이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에 불과하다. 사실 말름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말름은 왜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다. 존 랭커스터의 질문처럼 말이다. 기후변화를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일을 하기엔 너무 착하고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기후변화를 가장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조차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기후운동의 많은 영역에서 평화주의는 절대적인 것으로 다뤄진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가 빌 맥키벤은 마틴 루터 킹, 간디, 넬슨 만델라의 정신과 같은 비폭력주의가 유일하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빌 맥키벤은 지구를 구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운동이 누군가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을 때만 그렇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역사상 가장 예의 바른 저항 운동으로 명성이 높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고 도로를 막으며, 운전자들의 폭행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재미난 것은, 이런 극단적인 평화주의로도 우익 정치인들이 “폭력”, “테러리즘”이란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막지 못했단 것이다. 말름은 자기 책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평화주의 신화를 해체한다. 자본가 정치인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을 비난하지만, 경찰과 군대 같은 특별한 무장기관의 엄청난 폭력은 정당화한다. 진보적 변화를 향한 운동은 권력과의 폭력적 대결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만델라는 수십 년의 옥살이를 금욕적으로 견딘 성자(聖者)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서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조직 ‘움콘토 위 시즈웨’의 수장이었다. 지금은 만델라를 평화주의의 상징으로 떠받드는 전 세계의 정부들은 이전에는 만델라의 “테러리즘”을 비난했다. 만델라 자신도 “나는 비폭력 시위가 효과적인 한에서만 비폭력 시위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마틴 루터 킹도 마찬가지로 항상 총을 휴대했다. 다수의 유명한 “평화주의자”에게, 비폭력이란 특정한 상황에서의 전술적 선택일 뿐이었다. 평화주의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말름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하려고 산탄총을 들고 모스크에 들어갔던 노르웨이인 나치의 사례를 예로 든다. 세 명의 노인이 범인을 제압했는데, 꼼짝 못 하게 범인을 짓누르고 머리를 가격하면서 그렇게 했다.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면 나치의 두개골을 멍들게 하는 “폭력”을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작은 대가로써 그런 폭력을 사용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평화주의에 예외를 두고 있는 셈이다. 말름이 말했듯이, “예외를 인정하는 평화주의자는 ‘정의로운 전쟁론자’다.” (‘정의로운 전쟁 이론’은 어떤 전쟁이 정당한가를 다루는 군사 윤리학이다. - 옮긴이) 마르크스주의자는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이 정치적으로 목표한 것이 무엇인지, 폭력을 압제자가 행한 것인지 피억압자가 행한 것인지에 따라, 모든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나치 경비병에 맞서 봉기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사용한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말름이 설득력 있게 주장하듯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인간을 살해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그런 결과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실적 태도가 절망적 기후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조나단 프랜즌 같은 부유한 자유주의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수용하라고 한다. 적절하게도 말름은 이런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어떤 이들에게는 싸우는 법을 배우기보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쉽고, 전투적 저항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의 종말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쉽다. 비록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투쟁이다. 냇 터너(1831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흑인 노예 반란을 이끌었다 – 옮긴이)와 바르샤바 게토 투사 등의 행동도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듯이,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신은 투쟁해야만 한다!” 전시 공산주의 그러나 말름이 제안하는 시민 불복종과 태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전술이라면, 전략은 무엇인가?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2단계, 즉 폭발물이 터진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로 나아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 출신인 말름은 자기 출신을 모호하게 만든다. 말름은 책에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 독일의 좌파 테러리스트 울리케 마인호프(1934~1976, 독일 적군파의 창설자 - 옮긴이)를 인용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후주(後註)로 처리된다. 책에서 그들은 각각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 “서독 칼럼니스트(!)”로 축소된다. (2) 말름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확실히 급진화 돼, 다음 책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붉은 깃발을 휘둘렀다. 책의 부제는 <21세기의 전시 공산주의>이며, 본문은 레닌, 트로츠키, 볼셰비키, 혁명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말름은 특히 흥미로운 비유 하나를 제시한다. 기후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전시(戰時) 동원을 상상하면 통상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전시생산국(WPB)을 떠올린다. (3) 그러나 더 나은 역사적 사례가 있다. 러시아혁명 이후 신생 소비에트연방은 21개 제국주의 국가 군대의 침략을 받았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의 취약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전시 공산주의”를 필요로 했다. 볼셰비키는 농민들로부터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가차 없는 무력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적군(붉은군대, 赤軍)과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반동과 파시즘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향후 불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 투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엄청난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말름은 재미난 지적을 한다. ‘트로츠키는 장갑열차를 타고 전방 지역들을 이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열차는 나무 장작, 즉 재생에너지를 연료로 했다. 적군(赤軍)은 친환경적이었다!’ (4) 전시 공산주의는 진정한 민중 혁명이 가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해방시켰다. 1789년 파리에서, 1791년 프르토프랭스에서(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아이티 공화국을 세운 혁명을 가리킨다 – 옮긴이), 1917년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1936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에서 적군(赤軍)은 내전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 농민이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은 농장과 공장, 그리고 국가권력을 장악했으며, 자신들이 쟁취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했다. 이것이 전 세계 생산 시스템에 급진적이고 즉각적인 변화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혁명적 동원(動員)이다. 말름의 “전시 공산주의” 기획에는 삼림벌채 중단, 운송수단의 탄소 배출 감축, 석유 재벌에 대한 몰수와 같은 일련의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이 포함돼 있다. 화석연료 자본이 전체 사회의 통제를 받게 되면, 국가는 화석연료 추출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 확보한 자원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한계적이다. 사실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사민주의에 대한 향수로 잘 알려진 <자코뱅>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레닌주의다. 말름은 레닌주의란 용어를 규율 있는 정치적 운동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수회, 사이언톨로지스트, 일본 제국주의 군대 등 수많은 운동이 하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해 왔다. 레닌주의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 정부를 건설한다는 특정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규율에 관한 것이다. 레닌주의와 국가 레닌 최고의 저작은 1917년 혁명 도중의 짧은 소강기에 쓰였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국가가 사회의 중립적 관리자가 아니라는 점을 해명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다. 자본가 국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수호하며,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조차 부르주아 독재 체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이 처음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한 1871년 파리 코뮌의 사례를 연구했고, 노동자계급이 단순히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하는 데 그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이를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자주적 조직체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레닌은 노동자 국가가 단지 반쪽의 국가라고 덧붙였다. 코뮌 유형의 국가는 사회의 절대 다수에 기반해 있으며, 그 목적이 이전의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권력을 수호하는 데 있다. 따라서 관료 기구적 방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점차 스스로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며, 모든 형태의 국가는 불필요해지고 사멸할 것이다. (5) 말름은 레닌의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기후재앙을 멈추자면 인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 자본가 국가 스스로 “본질적 무능”을 드러냈다고 말름은 지적한다. 자본가 국가의 유일한 목표는 부르주아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와 모든 사람이 불타는 것을 뜻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말름은 특히 종말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권력이 하루아침에 폐지될 수 있다고 보는 무정부주의자의 환상을 거부한다. 말름은 “실제적 전환에 어느 정도의 강압적 권력이 요구된다는 것은 언제나 진실로 드러난다.”고 썼다. 말름은 레닌의 주장을 동의하며 인용한다. “우리는 (특정한 이행기에) 국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를 무정부주의자와 구별하는 지점이다.” 이 정도는 진지한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 권력을, 경찰이나 감옥과 같이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구를 분쇄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맞서 폭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국가다. 그러나 말름은 레닌을 인용하면서 자기 생각에 맞추기 위해 다음 문장을 누락한다. 우리는 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필요로 하는 국가, 즉 경찰력, 군대, 관료제(관료집단)와 같은 정부 기구가 인민에게서 분리되어 인민을 억압하는 국가는 아니다. 모든 부르주아 혁명은 단지 그러한 국가 기구를 완성했을 뿐이며, 그것을 한 정당의 손에서 다른 정당의 손으로 옮겼을 뿐이다. 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평화, 빵,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기구,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성(旣成)”의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경찰력, 군대, 관료제가 무장한 전체 인민과 통합된 새로운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그렇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인류 생존을 위한 투쟁에는, 수십억 명이 자본가 권력의 마지막 흔적까지 파괴하기 위해 조직되는 이런 종류의 혁명적 동원이 필요하다. 불타오르는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구하기 위해, 인류의 전체 생산수단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국가를 분쇄한다는 사상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말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방금 자본가 국가가 이런 조치들을 취해나가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는 하룻밤 새 기적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기구라는 이중권력은 설령 실현되더라도 조만간 실현될 것 같지 않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망상이고 범죄적이므로, 우리가 함께할 것은 늘 자본의 순환에 결박(結縛)돼 있는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다. 이를 견디자면 대중적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이로써 국가 내에 응축된 힘의 균형이 바뀌고, (국가) 기구들이 결박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고전적 강령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그 강령은 레닌주의가 자신의 사망 기사를 쓰는 데 충분하게(혹은 너무도 충분하게) 보이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이것은 쓰리 카드 몬테(three-card monte, 세 장의 뒤집힌 카드 중에서 ‘머니 카드’를 찾기 위해 돈을 걸게 하는 속임수 게임 – 옮긴이)와 이치가 같다. 말름은 레닌의 급진적 이미지를 소환하는 걸 즐기지만, “국가의 파괴”는 거부한다. 말름은 자본가 국가에 “전시 공산주의” 수행을 요구하는 동시에, 바로 그 국가가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말름은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가 “하룻밤 만에 탄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구도 하룻밤 만에 노동자 국가를 탄생시키려 작정한 적은 없다. 정반대다. 레닌주의의 핵심 테제는 그러한 국가는 오로지 수많은 노동자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의 에너지는 혁명 정당을 통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닌주의자들이 투쟁하는 목적이다. 다른 한편 말름은 개량주의(“유로코뮤니스트”)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에 대한 충성을 드러낸다. 비록 그 이름을 각주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를 “전체 부르주아계급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라고 주장한 반면, 풀란차스는 국가가 사실 “계급적 힘들의 응축체”라고 반박했다. (6) 다시 말해 풀란차스는 국가 기구가 여러 계급 사이 투쟁의 장이며, 노동자계급은 국가 내부에서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결국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오래된 개량주의 이론을 쓸데없이 장황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국가에 대한 이런 관점은 “레닌주의” 이론가 말름을, ‘멸종저항’, ‘엔데 겔란데’, ‘레츠 제너레이션’ 같이 비(非) 사회주의자 활동가들의 운동과 확실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국가가 기후재앙에 맞서 비상조치를 시행하도록 강제하려 든다. 말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면서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역사와 이론이 보여주었다. 결국에 이것은 프랜즌이 주장했던 기후 절망의 “사회주의자” 버전일 뿐이다.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부르주아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크다. (7) 말름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소규모 태업, 자본가 정부가 어떻게든 우리 목표에 복무할 것이라는 환상적 희망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본가 국가가 불에 기름을 끼얹도록 놔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전시 공산주의” 논의의 결말 무렵에서 말름은 레닌주의자보다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커다란 지지를 표명한다. 2019년에 제레미 코빈이 영국 총리가 되고, 2020년에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지구에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말름은 브라질 룰라 정부도 마찬가지로 칭찬한다. 말름이 그런 개량주의 정부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보다 말름은 그런 정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자본주의를 폐지하기를 희망한다. 룰라는 브라질 지도자로 이제 세 번째 임기 중에 있지만 아마존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부르주아 국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갑자기 반자본주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는 희망이 바로 말름과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동료들이 시리자와 포데모스를 지지하게 된 이유다. 이로써 노동자계급이 얻은 것은 사회주의 대신, 배신과 사기 저하뿐이었다. 즉 “레닌주의자” 말름은 <자코뱅>이 지지하는 바로 그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말름에게 직접 행동의 최종 목적은 탄소 배출 감축에 진지하게 임할 개량주의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백여 년 전에 레닌이 지적했던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 말름과 같이 “행동에 의한 선전”(propaganda of the deed,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무정부주의자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테러를 뜻한다. 이 전술은 1881년 런던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에서 승인되었다. - 옮긴이)을 촉구하는 “혁명가들”은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크리스 마이사노는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말름에게 “파이프라인을 폭파하지 말라”는 신랄한 반응을 내놓는다. 부르주아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면, 부르주아적 전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를 후원하고 의회 의원들에게 로비하는 것들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목표는 사회민주주의적 수단을 요구하며, 화려해 보이는 태업 행위는 단지 방해가 될 뿐이다. 자본가 국가가 전시 공산주의를 시행하게 한다는 말름의 계획에는 못돼먹은 점도 있다. 1918~21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쟁취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을 요구받았다. 말름은 비슷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권력 없이 희생을 요구한다. 말름이 자본가 국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을 요구할 때,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공격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부르주아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긴축경제란, 부자들은 24시간 내내 개인 제트기를 띄워놓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보호”라는 명목으로 비행기 이용을 포기하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종류의 긴축경제는 전시 공산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제대로 말하면 그건 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제국의 정책에 더 가깝다. 크리스암트(전쟁청)의 독재 아래 정말 전 사회적 동원이 이뤄졌다. 대중은 전방의 참호에서 웅크려야만 했고, 군수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했으며, 순무 배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전염병으로 아이들은 파리떼처럼 죽어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국가적 희생을 분담할 것을 요구하는 동안, 투기꾼들은 샴페인을 마시며 기록적인 이윤을 얻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에서 가장 우파적인 목소리를 냈던 일부는 이러한 국가 경제 관리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전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자본가 국가의 일시적 경제 통제는 더 큰 야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자본가 국가를 옹호하는 말름은 사실 (러시아의) “전시 공산주의”보다는 (독일의) “전쟁 사회주의”에 훨씬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기후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말름이 정식화한 “생태적 레닌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온건하다. 말름의 두 책에는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빠져있다. 오히려 말름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태업에 참여하면 기후 행동이 실현된다고 여긴다. 말름이 언급하는 구체적 사례는 SUV (8) 자동차 타이어 바람 빼기,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 점거하기 등이다. 최근에 활동가들이 월마트 상속자 한 명의 호화 요트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린 것처럼, 의도적으로 거대 자본가를 표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행동에 대해, 심지어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령 기후 운동이 파이프라인을 매일 폭파하더라도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자코뱅>의 크리스 마이사노 같은 개량주의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치권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옳다. 그러나 크리스 마이사노는 코빈, 샌더스, 룰라가 부르주아 국가를 맡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뜻한다고 본다. 비록 급진적 전술을 옹호하지만 말름도 여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진정성 있는 개량주의자가 정부 수반이 되더라도 자본가 국가는 눈앞의 재앙을 다루는 데서 “본질적 무능”의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생태적 레닌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름은 세 가지 정의를 내린다. (1) “징후의 위기를 원인의 위기로 바꾸는 것”, 즉 자본주의가 일으킨 재앙을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 (2) “속도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것”. (3) “국가를 이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기회를 붙잡고, 요구되는 만큼 급격하게 평소의 관행과 단절하며, 재앙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경제 영역을 공공의 직접적 통제 아래로 복속시키는 것.” 정확히 이 중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와 거의 비슷하게 들리며, 단지 일정표가 훨씬 빠를 뿐이다. 이건 사실 “잘못된 방법이지만, 더 빠른” 최대출력(Max Power) 방식이다. 반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과 혁명이 서로 반대되는 강령이란 점을 지적했다. 정치권력 장악 및 사회혁명에 대비(對比)하여 입법 개혁의 방법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좀 더 평온하고, 고요하고, 느리게 나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목표가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지지하는 대신, 낡은 사회의 표면적 변경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진정한 기후 레닌주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견해를 추가로 살펴보자. 1. 노동자계급 중심성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주체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개개의 파이프라인을 폭파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지하에 숨어있는 활동가들은 절대 대중의 힘을 가질 수 없다.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 즉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향한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점을 인식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를 분쇄하기 위해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과 동맹으로 연합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기후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이 급진적 변혁의 주체라는 점을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150년 전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일 뿐이다!”) 그들은 석탄 광부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최소한의 기후 행동에도 가장 악랄하게 반대했던 독일 기후운동의 구체적 경험을 지적한다. 이와 비슷하게, 금속노동조합은 문명 전체가 그렇듯이 자신들의 일자리 또한 기후변화로 파괴될 것이란 점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자동차산업 조합원의 일자리만 방어해 왔다. 이것은 (제대로 된 - 옮긴이) 조직이 없으면 노동자계급이 자기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조직은 돈 많은 관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관료들은 자본가들과 거래함으로써 특권을 누린다. 노동자들은 독립된 정치적 주체로서 투쟁할 때 비로소 세상을 뒤바꿀 자기 힘을 드러내게 된다. 프랑스 그랑퓌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구체적 사례다. 토탈 노동자들은 다국적 기업의 “그린워싱” 행각의 일환으로 해고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그 대응으로 토탈 노동자들은 평조합원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들은 원유 정제를 계속하기 위해, 즉 지구를 계속 불태우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으며, 또한 “녹색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토탈 노동자들은 기후 활동가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해, 그리고 노동자 통제 하의 에너지 산업전환을 위해 투쟁했다. 정유 노동자들이 청정에너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노동자 자기조직화의 “마법”과 사회주의 사상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랑퓌 정유공장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자기 작업장을 점거하고 자신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생산을 재조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들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그런 사례들은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즉 한 줌 억만장자 기생충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자계급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2. 부르주아 국가를 타도하는 혁명 말름은 자본가 국가가 기후 재앙을 해결하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드러낸다고 올바르게 주장한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레닌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본가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는 모든 혁명 과정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는,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노동자계급 자기 조직화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오늘날 혁명가들은 노조 관료와 사회운동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자 자기조직화를 추진해 나가야만 한다. 3. 혁명 정당 또한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결정적 행동을 통해서만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이를 위해 가장 의식적이고 결연한 투사들로 구성된 정당, 즉 전위 전당이 필요하다. 이 정당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무게중심은 계급투쟁에 있을 것이다. 레닌주의는 전투적 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 4. 비계(飛階)로서의 언론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비계(飛階)가 혁명적 언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 세기 전에 이것은 신문을 의미했다. 오늘날 혁명적 매체는 모든 기술적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 5. 국제주의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변혁이 일국(一國)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기후재앙의 시대에 “일국 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터무니없어졌다. 말름은 모든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무기한 존속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사회주의 세계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걸음으로 보았을 뿐이다. 레닌주의가 국제적으로 조직돼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간단히 말해 기후 레닌주의란 모든 부르주아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재앙을 멈추기 위해 유일하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절망에 맞선 레닌주의 지난 몇 년간 기후 운동은 어느 정도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전 세계 수백만 젊은이들을 불러일으킨 지 수년이 지났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절박한 외침에 감동한 자본가 정치인들이 마침내 과학에 귀 기울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각 정부(政府)는 계속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핵심은 그들이 자본가 국가의 지도자들임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자국 자본가들이 자본을 늘리고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불타오른다 해도, 이건 정말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자동차, 고속도로, 석탄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이 과학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과학적 보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후재앙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긴급 조치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소유권의 전제적(專制的) 침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 국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 불복종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국가가 적이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고 무너뜨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세계에는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를 갑자기 멈출 수 있는 수십억 명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브레히트를 다시 인용하자면, “당신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누가 당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전략이 도출된다. 레닌주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를 제공한다. 서두에 인용한 1917년 책자에서, 레닌은 “자본가들과의 철저하고 일관된 단절”을 촉구하며 글을 맺는다. 레닌은 유일한 희망이 사회주의 혁명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멸망하느냐, 아니면 [혁명을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느냐. 이것이 역사가 제시한 선택지다.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느냐, 아니면 우리 모두 불타버릴 것이냐. 이것이 선택지다. 후주(後註) 1. 말름은 가끔 트로츠키주의자로 언급된다. 말름이 오늘날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우익을 형성하며 개량주의 입장을 가진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회원이기 때문이다. 2. 말름은 이렇게 썼다. “‘항의(protest)는 나는 이것이 싫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항(resistance)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끝장내는 것이다. 항의는 내가 더 이상 이것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저항은 다른 누구도 동의하지 않도록 내가 확실히 하는 것이다.’ 1968년에 한 서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사실 서독 칼럼니스트는 적군파의 창설자인 마인호프다. 말름은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쓴다. “1930년대 초반, 독일이 나치의 권력 장악으로 끝날 비탈길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이 그 달에 이르러 점점 분명해졌다. ‘얼마나 귀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잃어버렸는가! 사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가장 집요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청중들에게 그 위험과 맞서 싸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라고 촉구했던 목소리 중 하나가 외쳤다.” 그 ‘목소리’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3. 우리는 <레프트보이스>에서 이런 비유를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 경제는 전시생산국(WPB)의 중앙 계획에 굴복했다. 예컨대 1942년 2월 22일, 미국에서는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다. 대략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자동차산업 역량은 탱크와 비행기 생산을 위해 전환됐다. 오늘날 민간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화석연료에서 전환하자면 수십 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이란 시간이 없다. 생산은 즉시 사회적 통제 아래 급진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로버트 벨라노·나다니엘 플라킨, ‘그린뉴딜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계획경제는 가능하다’, <레프트보이스> 4호. 4. 안타깝지만, 계속해서 인용될 법한 이 비유가 잘된 것은 아니다. 나무 장작을 태우는 것은 재생 가능하지 않으며, 새로운 나무를 키워 탄소를 회수하는 것은 수십, 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적 의미에서 이 비유가 여전히 맘에 든다. 5. <국가와 혁명>은 훌륭한 저작이다. 간결하고 읽기에 어렵지 않다. 아직 못 보았다면 꼭 읽어보라! 6. 풀란차스는 국가를 “계급과 계급 분파 사이 힘의 관계가 물질적으로 응축된 것”으로 보았다. 독일어로 된, 풀란차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스테판 슈나이더가 <계급 대 계급>에 쓴 ‘국가를 파괴할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를 보라. 7. 1848년 혁명에 대해 쓴 글에서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이탈자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쪽에서 임시 노동자정부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성숙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8. 이것은 SUV 자동차를 오로지 부유층만 보유했던 2007년 스웨덴에서 취했던 행동이다. SUV 자동차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주로 노동자계급에게 영향을 미친다. -
청산을 거부한다! 공장철거를 거부한다! 공장의 주인은 우리다!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기상청 예보대로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난방기를 틀었지만 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소식을 들었다. 1월 8일 새벽 6시 40분.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한국옵티칼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옵티칼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얼마나 화가 아니, 분노가 차올랐으면 영하의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공농성에 나섰을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위해 공장 옥상에 오르기 전,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왔다. 스스로 결의를 한 번 더 다진 셈이다.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은 일본 닛토덴코의 자회사로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업체로 한국 정부와 구미시의 지원을 받으며 2003년에 세워졌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공장 부지 무상 제공 50년을 보장받은 것에 더해 각종 세제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닛토덴코는 이윤을 더 늘리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에서의 ‘먹튀’를 준비해 왔다. 그러다 2022년 한국옵티칼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를 이유로 청산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되어 버렸다. 닛토덴코는 평택에도 공장(한국니토옵티칼)을 두고 있어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그럴 여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쇠를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닛토덴코는 화재로 인해 챙긴 보험금은 새로 공장을 세우고도 남을 금액이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2022년 11월 4일, 옵티칼이 청산을 문자로 통보한 그날부터 저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습니다. 12년을 일한 회사가 한순간에 우릴 버리고 떠난 날부터 마음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혹시 내가 잘못해서 회사가 우릴 버렸을까 매일 스스로 의심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쓸데없는 자책을 멈추고 잘못한 사람에게 저희를 책임지라고 당당히 주장하려 합니다. 하루하루 죽어가던 것을 멈추고 투쟁 승리로 살아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날 오후 5시 30분, 구미시는 결국 공장철거를 승인했다. 이어서 사법부의 가처분 승인이 나면 공장철거를 거부하는 행위는 손배가처분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공장을 지키는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과 고공농성을 사수하는 두 조합원들은 몸을 던지면서 손배가처분을 뚫고 맞서 싸우려 한다. 자본가는 자본을 가지고 기업을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이윤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다. 그런데 자본가는 기업의 주인이 공장의 주인이 자신이라 말한다. 하지만 자본가만이 기업과 공장의 주인일 수는 없다. 노동자 역시 기업의 주인이자 공장의 주인이다.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자본가 마음대로 공장을 청산할 수 없다. 비록 불탄 공장이라 할지라도 고용승계 없이는 공장을 철거할 수 없다. 시청과 사법권의 공장철거에 맞서 고공농성이 시작된 데 이어 오는 1월 13일에는 한국옵티칼 공장에서 집회와 문화제가 열린다. 한국옵티칼 지회 동지들의 절박한 투쟁에 많은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
10번째 책읽기모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발제문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우리는 ‘사회봉사자’가 아니라 ‘노동자’, 필수유지업무 파업 금지 명령에도 꺾이지 않고 쟁취한 임금인상1. 저출생 해결에서 ‘여성’ 지운 대통령의 신년사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2024년 신년사에서 저출생 위기 해소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저출생의 근본 원인인 성차별과 장시간·불안정 노동 구조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저출생 위기의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이며, 성평등 정책 없인 해결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결혼·출산·양육이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경험이 아닌,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도 강조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 돌봄, 복지, 주거, 고용정책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교육, 주거, 고용 등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더욱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필두로 ‘여성’, ‘성평등’ 지우기에 앞장선 것도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였다. 이러한 정부 인식을 반영하듯 이번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여성’이나 ‘(양)성평등’ 언급은 빠졌다. 저출생의 원인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조한 신년사 발언은 대통령 자신부터 성찰하고 쇄신해야 할 지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880 2. 인도, 노동자의 이름과 생존을 얻기 위한 안간와디 여성 노동자의 파업투쟁 인도 정부는 6세 미만 아동과 임신·출산 여성을 위한 안간와디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 노동자(안간와디노동자와 보조노동자)는 여성으로, 농촌 지역 곳곳에서 여성, 아동,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기초의료 지원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필수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사회봉사자’라 규정하고 임금 대신 매우 낮은 액수의 ‘사례금’을 지급한다. 보조노동자는 그마저도 60% 수준이다. 약 1백만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들은 지난 12월 12일부터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 임금 월 11,500루피에서 26,000루피로 인상, 정년 62세로 연장 등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우리는 하루에 18시간 일한다. 정부는 우리를 노예 취급하고 있다”. “한 달에 7천 루피를 받고 집세, 학비, 공과금, 배급비 등이 지출을 다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임금을 인상할 수 없다면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안간와디 보조노동자인 벤카타 락쉬미와 나가마니는 정부를 규탄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일 동안 도로를 누볐다. 하지만 모든 업무에 우리를 활용하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는 한 주에 있는 약 1만 명 어린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정작 저임금으로 자녀에게 같은 수준의 음식을 해줄 수가 없다.” 이 절절한 안간와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1월 6일 드디어 정부가 답을 내놓았다. ‘필수유지업무 노동자 6개월간의 파업 금지 명령(Esma)’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당 주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그대로 이어가며 노동자 탄압 항의 시위, 도로점거, 명령서 불태우기, 변함없는 투쟁의 상징으로 85명의 릴레이 단식 투쟁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1월 6일 비하르 주 정부에서는 노사교섭을 통해 2년간의 파업 투쟁으로 해고당한 18,000여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임금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newsminute.com/andhra-pradesh/ap-govt-prohibits-anganwadi-workers-from-protesting-invokes-essential-services-act https://www.thehindu.com/news/national/andhra-pradesh/anganwadi-workers-accuse-andhra-pradesh-government-of-apathy-as-their-protest-enters-20th-day/article67693059.ece 3. 영국, 주로 여성과 젊은 노동자들 0시간 파트타임 계약에 고통받아 영국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 비정규직 고용계약으로 여성과 청년 노동자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대부분은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이며, 소매업, 서비스업, 보건과 사회복지 등에 해당하는 직종이 많다. 영국 4개 대학 연구팀은 3년간 진행한 연구결과를 놓고 “비정규직-불완전 고용이 매우 우려스러운 영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며, “여성, 청년, 자격 수준이 낮은, 소수민족 출신인 노동자가 비정규직 고용의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밝혔다. 스토크온트랜트의 소매점 직원인 44세 캐서린은 대기업인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에서 일한다. “여기선 주 14시간 계약으로 일한다. 버스로 3시간씩 이동하며 다른 지점들에 가서도 일한다. 다른 노동자들도 생계 때문에 투잡을 한다. 4~6시간 일하는 곳에서는 보통 7일 연속, 가끔 9일 연속으로 일한다. 평균 12~14시간씩 집 밖에 있으니 아이들은 스스로 저녁식사 등을 챙겨야 한다. 정규직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런던의 중환자실 간호사인 리지는 예전엔 여러 간호기관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훨씬 적은 시간 일한다. 또한 “최소한 먹고살 만큼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 고용주들은 계속 일하라는 호출을 취소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2번 일을 받기도 힘들다”고 했다. 한 25세 대졸자는 취업난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수년간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했는데 주 16시간 계약만 맺을 수 있었다. 다른 이주 노동자는 4시간짜리 야간 근무를 밤 10시에 시작해서 마쳐도 첫 버스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사업장 식당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금융사의 개인 비서로 일하는 클레어는 “고용주가 비용을 아끼려고 임시직을 더 많이 써서 정규직도 스트레스가 커지고 비정규직의 삶도 더 힘들어진다”면서 “고용주가 특히 돌봄의 책임이 있는 노동자를 쓰러질 때까지 쥐어짜고는 잔인하게 내쫓아버린다”고 말했다. *0시간 파트타임 계약(zero-hours contracts)이란 고용주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약정하지 않고 임시직(비정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주는 노동계약이다. 주나 월 단위로 인력 수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하고, 일한 시간만큼 돈을 줘 고용주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4/jan/01/how-women-and-younger-uk-workers-are-being-hit-by-underemployment 4. 노동시장 차별을 개선해야 출생률도 상승할 것 지난해 3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은 0.70 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통계청은 지난달 장래인구 추계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은 내년 0.65명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표한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수록 출생률도 상승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 시기인 20~30대를 보면 여성의 진출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불안정성이 크고 남성과 고용 및 임금에서 격차가 큰 차별적인 고용 상황을 저출생의 주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돕케 교수는 OECD 국가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라 상위 그룹, 중간 그룹, 하위 그룹으로 나눴는데, 상위 그룹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중심의 OECD 국가들은 출산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가족 정책과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젠더중립적으로 재편하거나, 노동시장 차별구조를 완화하고 여성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을 채택했고, 여성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합계출산율도 비례해 지속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1022141015 5. 국민 10명 중 6명 “부양의무,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저출생‧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한 가운데 ‘부양의무’에 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부양 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는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된다’가 65.9%, ‘정부·사회가 해야 된다’가 12.0%의 수치를 보이며 77.9%가 부양 의무를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지난 5일 한 데이터 컨설팅 기업이 전국 20~69세 남녀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양의무에 대한 의견’에서 확인됐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기준 71.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하지만 50년 뒤에는 45.8%로 가장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총부양비는 2022년(40.6명)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2072년(118.5명)에는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2072년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이처럼 부양의무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맞벌이 가구의 지속 등 사회변화와 함께 많이 바뀌어, 가족 중심의 돌봄체계는 더 이상 작동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적 돌봄체계에서 정부와 사회가 책임지는 공적 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참조 기사> https://www.imaeil.com/page/view/2024010610385220296 -
[기고] 밀려나는 데 익숙해지고 싶진 않아요_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 동지 인터뷰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 불이 났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닛토 자본의 한국 자회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노동자에게 문자로 통보했다. 130여 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으로 떠났지만 11명의 노동자는 남아서 싸우고 있다. 11명의 노동자 중 언제나 조용하지만 단단한 소현숙 조직2부장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2006년 12월 4일, 현숙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에 입사했다. 옵티칼은 모든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고 일했는데, 몸에 열이 많은 현숙 씨에게 방진복은 쥐약이었다. 샤워를 몇 번씩 해도 퇴근할 때쯤 온몸에서 땀에 찌든 냄새가 났다. 자신에게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현숙 씨는 외관 검사 공정에서 일했다. 암실에서 이리저리 필름을 비춰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불량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은 익숙해졌고 점점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물량 압박이 심했다. ‘현숙 씨, 저 사람은 같은 시간에 이만큼 더 하는데? 현숙 씨는 왜 못해?’ 대놓고 핀잔도 자주 받았다. 물량 압박이 크니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쌓였다. 외관 검사를 한 지 4년쯤 되자, 눈이 뭔가 이상했다. 눈이 침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경점을 찾았다. 그러나 금세 눈은 더 나빠졌고 안경점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눈이 점점 나빠지시는 거 같은데요”라며 걱정스러운 말도 들었다. 외관 검사를 한 지 12년이 지났을 무렵,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너무 시리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빛이 닿기만 하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각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듣자마자 현숙 씨는 생각했다. ‘암실에서 불량 검사를 12시간씩 하니 눈에 무리가 왔구나.’ 의사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조심히 떠야 한다고 했다. 현숙 씨는 각막을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이석증까지 생겼다. 의사에게 원인을 물었으나 ‘각막 손상은 원래 원인 불명’이라는 답만 들었다.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숙 씨는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2019년과 2020년, 희망퇴직이 이루어졌다. 노동자는 50명대로 줄었다. 외관 검사만 13년 했는데, 갑자기 회사는 청소도 시키고 다른 공정으로 보내며 여러 일을 같이 시켰다. 현숙 씨는 회사가 미웠지만 절대 스스로 나가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미 희망퇴직으로 동료들이 나가는 걸 보면서 ‘절대 내 발로는 안 나가. 그렇게 내보내고 싶으면 잘라’라며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약간의 오기, 약간의 분노, 약간의 포기 등이 뒤범벅된 마음이었다. 2년쯤 지난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한 달 만에 회사는 청산을 결정했다. 현숙 씨는 불이 나고 한 달 동안 한 번도 회사가 청산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청산하기엔 일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바쁜데 청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자를 본 순간 “이 개새X!” 욕이 튀어나왔다. 한 달 동안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더니 뒤로는 도망가려고 작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튿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투쟁을 하기로 처음 결정했을 때, 현숙 씨는 생각했다. ‘나이가 적지 않으니 다른 일자리 찾기 힘들 거야.’, ‘그래도 여기선 정규직인데…….’, ‘여기가 내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숙 씨는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2023년 8월, 태풍이 찾아왔을 때 현숙 씨는 기가 찼다. 갑자기 경찰이 거리에 쫙 깔렸다. 구미의 ‘높으신 양반들’이 찾아왔다. 공무원이 소속에 상관없이 잔뜩 왔다. 그들은 ‘태풍 때문에 안전을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숙 씨는 알고 있었다. 이미 전에도 바람이 많이 분 날도 있었고 비가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공장에 불이 난 후 처음 만난 건 태풍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 후로 변호사, 노무사 등을 데리고 청산인이 직접 오기도 했고, 다소 작고 귀여운 크기의 굴착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처음엔 조금 긴장됐으나 현숙 씨는 이제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딱히 위협적이란 생각은 안 한다. 2023년 12월 29일, 구미시청은 옵티칼 공장 철거 승인을 예고했다. 2024년 1월 8일 이후면 언제든지 승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구미시청이 공장 철거를 승인하면, 회사는 진심으로 철거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현숙 씨는 이 소식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투쟁이 점차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기든 지든 투쟁이 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재 노동조합은 공장 철거에 대해 더욱 탄탄히 준비하고 여러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현숙 씨는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힘든 싸움이니까 어쩌면 포기할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현숙 씨는 이 싸움의 끝을 보고 싶다. 현숙 씨는 해고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밀려나고 싶지 않다. 물론 투쟁을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또다시 밀려나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현숙 씨는 점점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금의 현숙 씨가 지키고 있는 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보다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
[세계의 여성파업 3] 폴란드 - “죽을 아기는 낳지 않겠다”, 신자유주의 여성 억압에 맞선 여성파업의 시작[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1) 1) 이 글은 졸고 《검은 시위》 중 폴란드 장을 여성파업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글이다. 2016년 3월 14일 폴란드의 대표적인 극우단체가 하원의장에게 ‘임신중지 금지’ 입법발의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통보했다. 3월 30일에는 폴란드 주교회 의장단이 ‘현행법은 태아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며 이에 만족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월 31일 총리 대행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4월 1일 이를 비판하며 ‘소녀들을 위한 소녀들(Dziewuchy Dziewuchom)’이란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고, 몇 시간 만에 수천 명의 여성 이용자가 결집했으며, 이튿날에는 지역 그룹까지 만들어졌다. 4월 3일 폴란드 좌파 라젬당 활동가 주도로 폴란드 여러 도시에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을 규탄하는 첫 번째 시위가 열렸다. 현장에는 ‘여성을 고문하는 법안에 반대한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같은 날 소셜 네트워크에 미사 중 성당을 떠나는 여성들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이 퍼져 나갔다. 4월 4일에는 페이스북에서 ‘총리에게 옷걸이 보내기’라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4월 13일에는 ‘여성을 구하라’라는 이름의 대안 입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7월, 임신중지 금지 입법발의위원회가 연방의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4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8월 4일에는 대안입법발의위가 21만 5,000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제출했다. 9월 18일 여러 도시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겠다’는 슬로건 아래 시위가 열렸다. 9월 21일 라젬당 활동가가 #blackprotest(검은 시위) 행동을 제안했다. 이후 소셜 네트워크에 해시태그 #blackprotest가 포함된 사진 수천 장이 게재됐다. 9월 24일 폴란드 배우 크리스티나 얀다가 페이스북에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 대한 글을 게시하며,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9월 25일 폴란드 전역에서 검은 시위가 벌어졌다. 폴란드 남서부 브로츠와프 시위에서는 활동가 마르타 렘파르트가 10월 3일에 전국적인 여성파업(Strajk Kobiet)을 일으키자고 제안했다. 9월 26일 폴란드 여성파업 페이스북 계정이 만들어졌다. 이벤트 페이지에 지역위원회가 구성되고 전국적인 행사 계획이 수립됐다. 10월 3일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이른바 검은 월요일. 전국적으로 결근 운동이 벌어지고 수많은 여성과 남성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파업이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은 병가나 돌봄휴가, 또는 헌혈을 하고 여성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수많은 대중의 반발에 부딪힌 의회는 10월 6일 법안을 부결시켰다. 10월 23~24일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기념일을 맞이해 전국적인 여성파업의 두 번째 라운드가 펼쳐진다. 여성파업은 요구를 확대한다. 여성에 대한 경멸과 폭력 반대,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간섭 및 교육에서의 정치 개입 반대. 11월 3일에는 바르샤바에 “죽을 아기는 낳지 않겠다”는 슬로건이 적힌 대형 벽화가 그려졌다.2) 2) 일부 사업장에서는 헌혈을 할 경우 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헌혈을 하고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출처: Razem 페이스북 계정 이것은 임신중지 금지 법안 발의에서 여성파업까지 사태가 전개된 과정이다.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여성파업을 벌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폴란드 사례를 주시해 보자. 폴란드 여성파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만큼 강력했고, 임신중지 권리를 더 후퇴시키려던 정부의 계획을 며칠 만에 좌초시켰다. 사건의 한가운데 서 보자. 2016년 10월 3일 폴란드에서는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20만 명이 집회와 행진 시위를 벌였고, 거리를 봉쇄했다. 참가자들은 “나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동정녀 마리아도 우리와 함께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는 페미니스트나 활동가뿐 아니라 시위 경험이 없는 여성 고교생과 대학생, 기층 노동자계급 여성이 광범하게 참가했다. 또 약 90%의 시위가 인구 5만 명 미만의 도시에서 일어났을 만큼 검은 시위는 폴란드 사회 저변으로 깊숙이 뻗어 갔다. 이들은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임신중지 도구를 상징하는 옷걸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이는 곧 임신중지 합법화 투쟁의 국제적인 상징이 됐다. 이러한 검은 시위에 이어 마르타 렘파르트가 페이스북에서 제안한 여성파업은 공개 제안된 지 하루 만에 6만 명이 ‘좋아요’를 누를 만큼 대중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국 2016년 10월 3일 여성파업 당일, 수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은 출근 대신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점거했다. 전투적인 노동조합 ‘노동자 이니셔티브(Inicjatywa Pracownicza)’를 포함해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경제특구 노동자 등 주류 노총이 대표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여성파업에 가세했다. 결국 수십만 규모의 시위가 계속되고, 유럽과 해외로도 연대 시위가 확산하자, 집권당은 더 이상 법안을 고집할 수 없었다. 여성파업의 역사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은 약 4년 만에 헌재를 통해 태아 손상의 경우에 대한 임신중지 금지 결정을 끌어냈다. 바로 2020년 10월 헌재가 낸 결정이 그것이다. 검은 시위를 학습한 법과정의당이 의회를 우회해 꼼수로 추진한 결과였다. “우리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크고 과격한 시위가 전국 도처에서 터져 나왔다. 헌재 결정 이튿날인 2020년 10월 2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만 1만 5,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헌재와 정부를 규탄했다. 이번에는 “엿 먹어라”라는 의미의 “Kaczyński!”, “Fuck PiS”라는 욕설까지 거침없이 쏟아졌다. 법과정의당 소속 정치인들의 집 앞은 돌을 던지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됐다. 또 시위대는 전국 곳곳에서 자동차와 자전거를 이용해 도로와 철도, 공공시설을 봉쇄했다. 도심 못지않게 지역에서도 수많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150개 이상의 지역에 여성파업위원회가 조직되어 시위를 이끌었다. 낙태죄를 옹호해 온 성당들은 붉은색 페인트로 뒤덮이기도 했다. 급기야 10월 27일에는 최소 70개 지역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으며, 28일에는 43만 명이 전국 600개 지역에서 다시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집회에서는 여성 배달 노동자와 교사, 세입자와 기후운동가, 장애 아동의 어머니와 장애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발언했다. 간호사를 비롯해 파업에 직접 동참하기 어려운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은 붉은 번개가 새겨진 마스크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일하며 지지를 표현했다. 한편에선 극우 청년들이 시위대를 공격했지만, 여성들의 반격을 멈추지는 못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하루에만 1만 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방역을 이유로 10명 이상의 집회가 금지된 상황이었는데도 시위 물결은 여러 개월 동안 지속됐다. 국제 공공데이터 플랫폼 ‘타블로우 퍼블릭(Tableau Public)’에 따르면, 2020년 10월 19일부터 2021년 2월 12일까지 폴란드에서 일어난 시위는 1,159건에 달했다. 외신은 당시 시위를 1980년대 폴란드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 연대노조)’ 운동 이후 가장 커다란 규모라고 기록했다. 폴란드 임신중지 권리 후퇴의 배경 폴란드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낙태죄 중 하나를 두고 있지만, 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했다. 195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은 임신중지를 합법화했고, 이는 스웨덴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여성들이 임신중지 시술을 받기 위해 폴란드를 찾을 만큼 급진적인 것이었다. 당시 여성의 권리가 확대된 이유는 소련이 이식한 폴란드 정권의 여성 정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사회에서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한 것이었다. 폴란드 여성가족계획연맹 공동창립자인 반다 노비스카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여성의 지위 변화는 여성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부여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국가와 남성에 종속했던 국가주의와 가부장제가 인민공화국 시절에도 변함없이 지속했다. 단적으로 1970년대에 집권 통일노동당 지도자들은 광부의 어머니들에게 그들의 출산을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하고 ‘모범적인 애국자’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비교적 강력했던 여성운동마저 폴란드의 스탈린주의 체제 시절 완전히 사라지면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이 기간 폴란드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는 가장 진보적인 형태를 취했지만, 동시에 매우 취약한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신중지 권리는 198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무너지면서 정반대 경로를 걷기 시작했다. 바로 가톨릭교회가 후원한 야권 연대노조의 공세에 구(舊)통일노동당 세력이 받아들인 ‘임신중지 타협’ 때문이었다. 당시 신구 정치세력이 체제 전환에 합의하며 맺은 ‘타협법’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한 경우나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에만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이러한 낙태죄는 폴란드 의회가 1993년 도입해 1997년 헌재가 확정했으며, 이는 전환기를 나타내는 이정표 중 하나가 됐다. 붕괴를 겪은 소련 위성국들이 임신중지 권리를 특별히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폴란드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막달레나 스로다(Magdalena Sroda) 바르샤바대 윤리학 교수는 “민주화 시대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백래시가 되리라고,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출처: Silar 한편, 시장주의 개혁 세력이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기존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 위기를 가중시켰다. 전 폴란드 통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세력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지배집단의 한 축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2001년 레흐 카친스키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쌍둥이 형제가 창당한 ‘법과정의당’이 기득권 정당의 위기를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해 갔고, 극심한 사회적 위기를 겪는 폴란드 대중에게 가톨릭 신앙과 민족을 외치는 한편, 주류 양당과는 다르게 최저임금이나 복지수당 인상을 공약하면서 유권자층을 빠르게 흡수해 갔다. 결과적으로 법과정의당은 창당 14년 만에 좌우 양대 정당을 완전히 제치고 최대 정당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은 민생조치를 강화하면서도 사회적 위기의 원인은 약자에게 돌리고 통제를 강화하는 극우 정당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낙태죄 강화다. 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총선에서 ‘성소수자 없는 도시 만들기’를 공약했고, 결과적으로 법과정의당이 집권한 100여 개의 지방정부(전체 지방정부의 3분의 1)가 ‘LGBT 프리존’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장애아동 지원예산을 비판하며 하원을 점거하자 이들을 강제 퇴거했다.3) 법과정의당은 이미 2015년 총선에서 다수파가 된 뒤 사법제도를 바꿔 헌법재판소까지 장악했다. 2020년 10월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태아 손상의 경우에 관한 임신중지를 허용한 법안을 위헌 판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3) 폴란드 정부는 장애아 출산 시 1,000유로를 지급하며 장애 아동 돌봄비로 월 350유로를 지원하지만, 별도의 소득이 없을 경우에만 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장애 아동이 18세가 되면 이 수당도 종료된다. 폴란드 여성의 현실 전환기 이후 폴란드 여성이 임신중지 권리만 빼앗긴 것은 아니다. 애초 폴란드 전환기를 주도한 시장주의 개혁 세력은 1980년대 당시 서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를 관료제에 억눌려 온 노동자들에게 유익한 발전 경로로 보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시장주의 세력이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경제성장률이 증가했을지라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하며 폴란드는 급속한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3), 그 주된 피해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돌아갔다. 3) 애초 폴란드 사회 각계가 체제 이행을 합의하기 위해 구성한 원탁회의부터 합의안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유보할 만큼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기층에서는 “폴란드 국민은 원탁회의보다는 식탁에 더 관심이 많다”는 말이 회자됐다. 김용덕, <폴란드 체제 전환 연구 – 원탁회의와 6월 총선을 중심으로>, 《세계역사와 문화연구》, 제59집, 2021, 205쪽. 실제로 폴란드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편입된 뒤 경제성장률은 ‘아시아의 호랑이’보다도 빠르게 치솟았지만, 경제 성장에 따른 부는 소수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890년 약 11%에서, 1952년 폴란드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5% 미만을 유지했지만, 세계시장체제로 편입된 1990년부터 다시 증가해 2015년에는 13%로 급증했다. 폴란드의 세계시장체제로의 편입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폴란드 언론인 아가타 차르나카(Agata Czarnacka)에 따르면, 새로운 일자리는 남성에게 집중됐고, 여성 다수 사업장의 노동조건은 후퇴해 갔다. 이는 여성들이 열악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돌봄을 선호하게 된 계기가 됐다. 동구 붕괴 후 공히 나타나는 것처럼, 정부는 이를 올바른 모델이라며 치켜세웠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 다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도 여성에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 또 다른 문제는 공공보육 해체였다. 이 역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해체되었고,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의 가사돌봄 비중을 증가시켰다. 1990년대 초 가임기 여성 1인당 출산율이 평균 1.33명으로 급격히 하락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1997년에는 헌법이 개정되어 부채 상한선이 국내총생산의 60%로 한정되었고, 이는 공공지출 규모를 제한해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 2004년 5월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폴란드가 인준해야 하는 유럽연합 평등 지침 등이 잠시 여성계의 기대를 모았지만, 이 역시 아무런 효과를 갖지 못했다. 폴란드가 유럽연합 정책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적 이탈권 제도(옵트아웃)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통화의 유로화로의 통폐합과 긴축재정 아래, 폴란드 여성들은 공공부문 임금동결 같은 경제적 타격을 추가로 받았다. 폴란드 여성들은 그런 정부 정책을 피해 유럽연합 가입국 특히 영국과 독일로 대거 이주했으며, 이는 정부의 반여성 정책을 시사하는 또 다른 징후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폴란드는 유럽연합 젠더 평등 인덱스에서 2022년 기준 2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유럽연합 평균보다 10.9포인트 낮았다. 노동시장에 참여한 여성 비율은 2022년 기준 50.8%에 불과한 반면, 폴란드 여성이 요리와 집안일에 보내는 시간은 하루 최대 3.2시간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2015년 기준). 폴란드 성별임금격차는 2020년 기준 8.7%로 OECD에서 낮은 편이지만, 그 원인은 성평등 수준이 높다기보다는, 여성의 교육 수준은 비교적 높은 반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낮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실업 여성의 약 3분의 1이 육아나 돌봄 부담 때문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할 만큼, 여성이 떠맡은 부담이 큰 편이다. 같은 여건의 남성은 약 3%에 불과했다. 이런 조건에서 법과정의당 정부가 2016년 도입한 보편적 아동수당제도인 ‘패밀리 500+’가 기대를 모았지만, 이 역시 보육원과 유치원이 부족해 일과 보육을 결합하기 어려운 소도시에서는 여성이 집에 머물도록 유도한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폴란드 여성파업의 특징 이러한 조건에서 2016년 여권이 발의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은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살아가는 폴란드 여성들에게 거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극우 정권에 대한 불만이 수년 동안 증가해 온 상황이기도 했다. 2020년 여권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온라인 교육이나 병원, 의료서비스를 강화하는 대신 선거운동에 바빴다.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의료서비스 수준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2017년에는 레지던트 의사들이 장시간 노동에 맞서 단식투쟁을 포함한 파업에 들어갈 정도로 보건의료 수준이 열악했다. 그러면 폴란드 여성파업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폴란드 여성파업은 폴란드 역사상 최초로 임신중지권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대중적 계급투쟁이다. 이는 2016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 제안했고, 즉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파업이 반향을 얻은 것은 앞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아래 후퇴한 여성들의 사회적 조건과 관련이 깊다. 폴란드 현장 노동자조직 ‘노동자 이니셔티브(Inicjatywa Pracownicza)’에서 활동하는 마르타 에르(Marta R)에 따르면, 여성파업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는 검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 대부분이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열악한 공공서비스 아래 무급 가사·돌봄노동 모두로부터 고통당하는 상황에서, 임신중지가 박탈당한 사회경제적 권리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파업’으로 자신에게 떠맡겨진 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임신중지 금지는 부자가 아닌 가난한 여성의 문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중지는 계급적 문제였다. 실제로 폴란드 여성이 국내서든 아니면 해외서든, 임신중지 수술을 받으려면 월급의 50~100%를 지불해야 했다. 즉, 폴란드 여성파업은 임신중지 권리 억압을 계급적 문제로 보고 계급적 주체로 서서 저항한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이었다. 둘째, 소수의 노동조합이 여성파업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사실 폴란드 여성파업은 노조운동과는 거의 관련 없이 진행됐다. 애초 여성파업 주체들은 총파업을 예고하며 “우리는 일하러 가지 않겠다”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노동자들에게 “하루 쉬자, 하루 무급휴가를 갖자. 헌혈을 위한 휴가를 내자. 사업자와 상점, 가판대를 접자. 그냥 단순하게 일하러 가지 말자. 폴란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제 그만 멈춰 버리자! 그리고 새로운 폴란드를 만들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렇게 총파업을 호소했지만, 노동조합의 파업 행동은 조직되지 않았고, 여성파업은 출근하지 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거리 시위 형태로 진행됐다. 집회 시위에서 전폴란드노총(OPZZ), 자유노조연맹(49 WZZ Sierpień 80), 연합대안(Związkowa Alternatywa51)을 비롯한 여러 노동조합이 발언했고, 그들은 여성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시위 중 경찰에 제지된 이들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오로지 단 하나의 노조, ‘노동자 이니셔티브’만 실제로 조합원들의 파업을 조직했다. 셋째, 폴란드 여성파업위원회는 산업이나 단체를 포괄하는 위원회라기보다는 여성단체에 가까웠다. 여성파업위원회는 전국 150개 지역에서 조직되었으며, 다양한 시위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을 기반으로 2020년 10월 헌재 판결 후 시위는 한 달 동안 계속됐고, 2021년 1월 해당 법안이 발효됐을 때에도 일주일 이상 시위가 지속됐다. 2021년 3월 8일에는 다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노동조합 없는 여성파업 그러면 폴란드 노동조합은 왜 여성파업에 나서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폴란드 노동조합의 가부장적 질서 때문이다. 사실 폴란드의 양대노총 중 하나인 연대노조는 우파 정치세력에 가까우며 역사적으로도 가부장적 질서가 팽배한 노조였다. 연대노조에는 많은 여성노동자도 참여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소 크레인 여성노동자 안나 발렌티노비치 해고가 유명한 그단스크 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연대 조합원 중 여성은 54%에 달해 여성노동자들도 파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를테면, 1980년 8월 연대노조 위원장 바웬사는 사측이 임금 인상 요구의 일부분을 수용하자 파업 종료를 선언했지만, 파업을 멈추면 정권이 더 많은 공세를 펼 것이라며 파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연대노조 내에서 여성 의제가 채택된 적은 없을 만큼 여성들은 소외되어 있었다. 오히려 1990년 연대노조 전국연대대회(NCS)는 ‘태어나지 않은’ 자의 법적 보호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여성의 의사를 외면했다. 당시 연대노조 여성부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그 결과 1991년 봄에 해산되고 말았다. 폴란드 페미니스트 문학평론가 마리아 야니온(Maria Janion)은 연대노조가 주도한 체제 전환 과정에 대하여 “그것은 남성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체제 전환을 위해 구성된 원탁회의에는 여성(2명)보다 가톨릭 신부(3명)가 더 많이 참여했고, 모두 56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으로 구성됐다. 지난 여성파업에서도 연대노조는 유사한 태도를 취했다. 연대노조는 1989년 자신의 선거 포스터에 나오는 남성을 여성으로 묘사한 크로아티아 예술가 산자 이베코비치(Sanja Ivekovic)를 고소했다. 그러나 애초 선거 포스터를 제작한 예르지 야니체우스키(Jerzy Janiszewski)는 예술가와 시위대를 옹호하며 진보적 목적에 한해선 누구나 이 포스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Tomasz Sarnecki의 1989년 6월 선거 포스터와 Sanja Iveković의 작품 "잊혀진 연대의 여성들” (사진: Sławomir Sierzputowski / Agencja Wyborcza.pl; 바르샤바 현대 미술관) 둘째, 여성단체들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나설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지 못했다. 바르샤바대 법과대 조교수 표트르 그제비크(Piotr Grzebyk)에 따르면, 폴란드 여성파업 주체들이 임신중지권 쟁취를 위해 노동자 파업을 조직하려면, 임신중지권과 노동권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또한 임신중지 금지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침해함을 입증해야 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임금 삭감이나 실직 위험을 이기고 파업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성파업위원회는 이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 제도 때문이다. 1990년대 폴란드에서는 파업 주체, 절차, 요구 등 파업에 관한 제반 권리가 제한됐다. 법은 임금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만 합법으로 인정했고, 임신중지권을 요구하는 여성파업은 법의 허용 범위를 초과했다. 요구 대상도 고용주가 아니라 국가라는 점에서, 합법적인 파업권을 가지기 어려웠다. 아울러 폴란드에서는 노조만 파업을 조직할 법적 권리가 있지만, 여성파업의 주체는 노조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는 파업 돌입 전 교섭과 조정 단계를 의무화하기 때문에, 노조가 여성파업에 참가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노조가 조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러 문제와 탄압을 감수하고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일례로 폴란드 남부 자브제의 교사 그룹은 여성파업에 참가한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했다가 교육당국 징계위원회에 신고됐고, 이에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다. 2021년 11월을 기준으로, 지난 1년 동안 시위 참가를 이유로 법정에 출두한 사람은 약 4,000명에 이른다. 폴란드 여성파업의 성과와 과제 이제 폴란드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0년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폴란드 국민 73%가 헌법재판소 판결에 반대했는데, 이는 2019년 53%에서 대폭 늘어난 것이다. 또 거의 절반(45%)이 임신중지 문제가 향후 선거에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렘파르트는 “우리는 진정 빠르게 세속화하는, 또한 페미니스트가 많아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며 “검은 시위와 여성파업은 폴란드 사회 전체를 뒤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 폴란드 노동자민중은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했지만, 체제의 대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삼으며 역설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반하는 국가를 건설했고, 여성의 처지는 더욱 악화했다. 즉, 공적 자원이 해체되면서 여성에게 노동력 재생산 책임이 주어지고, 무급 가사돌봄에 붙들린 이들의 노동력은 더 저평가됐다. 더구나 시장주의 개혁 세력은 가톨릭교회의 비호 속에서 집권해 더 반여성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의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낙태죄 도입이었다. 이에 폴란드에서 임신중지 권리는 계급투쟁의 문제였고, 그 때문에 2016년을 시작으로 폴란드에서 대중적인 여성파업이 전개된 것은 노동자계급의 무기를 든 계급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여성파업은 아르헨티나 여성파업과 더불어 2017년 3월 8일 30여 개국이 함께한 국제 여성파업의 물꼬를 텄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 여성파업이 부딪힌 한계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폴란드 여성파업은 역사적인 투쟁을 전개했지만, 시위 중심이었고 강력한 파업으로 전개되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여성노동자의 이해 역시 대변해야 할 노동조합이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해 여성파업의 위력을 저해했다. 이에 강력한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인 노동조합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우선 노동조합부터 여성노동자에게 사적으로 떠넘겨져 왔던 문제, 즉 성과 재생산 의제를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생리부터 임신을 중지 또는 유지할 것인지를 비롯해 출산과 보육, 간병까지 여성노동자가 수행해 온 성과 재생산 의제를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삼고, 이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온전히 쟁취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전체 노동자계급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싸움은, 개별 사업장 단체협상부터 산별과 전국 수준의 투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출처: www.ozzip.pl 여성운동은 가부장적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외면해 온 여성노동자들을 주체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운동과 공동전선을 결성해 노동자계급의 성과 재생산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여성운동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해 노동자계급에 토대를 둔 대중적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나아가 폴란드 사례는 현 시기 성과 재생산 권리가 단순히 하나의 법안,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을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에 성과 재생산 권리 운동 역시 체제 개선에 안주하지 않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운동으로 전진해야 한다. 예컨대, 2019년 아르헨티나에서 주류 임신중지 합법화 활동가들의 지지 속에서 당선한 중도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최근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에게 정권을 내준 것은 중요한 메시지다. 최근 폴란드에서도 여성파업의 정치적 여파 속에서 중도좌파 야당이 승리했는데, 이들 역시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폴란드 여성파업이 들려주는 교훈 사실 극우 법과정의당의 성과 재생산 억압은 비단 폴란드에서만 나타난 현상도 아니고 일시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저출생 심화에 따라 도입된 노동자계급의 성과 재생산 권리 억압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을 공격해 결혼·출산 가능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저출생을 낳는다. 특히 여성노동자는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떠밀리고 공공기반시설이나 서비스는 민영화되거나 삭감되어 더 많은 무급 가사돌봄 부담을 떠안는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노동력이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어야 착취할 수 있기에,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자본가국가는 여성을 이중으로 쥐어짜는 위기전가에 나서는데, 한편으로는 불안정노동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태죄를 비롯해 성과 재생산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를 비롯해, 보수적 대법관을 임명해 결국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무력화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개적으로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을 반대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동성결혼과 임신중지에 반대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 등 극우 정치인들은 앞다퉈 성과 재생산 권리를 악화하고 있다. 성과 재생산 권리의 진전은 오직 대중투쟁의 결과였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현재, 정권의 성과 재생산 권리 억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정부는 영아 살해 논란을 주도한 끝에 영아살해죄를 살인죄에 통폐합하고, 여성과 아이 둘 다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를 강행했다. 우리에게는 우리 계급의 이해를 지킬 힘이 필요하다. 체제와 정권의 공격에 맞서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폴란드 여성파업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일 것이다. -
성소수자 권리의 전진과 후퇴, 2023년에 벌어진 일들스타벅스노조 자긍심 파업. 출처: 레프트보이스 자본가계급은 경제위기와 사회 재생산 위기에 대응하며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계급 분열책을 구사한다. 그중 하나가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자본은 세계 곳곳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며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노골화하거나, 때로는 대중적 저항에 부딪혀 ‘핑크워싱’을 구사하기도 했다. 인간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하며, 자본 자신이 나눈 성별 이분법, 정상 가족 잣대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야만적 탄압이다. 이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분열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며 민주적 권리를 위해 투쟁할 때만 강해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2023년 한해 성소수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세계 곳곳의 싸움을 돌아보고자 한다. 미국, 500개가 넘는 성소수자 LGBTQ+ 권리 공격 법안 2023년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맞선 가장 심각한 전투가 벌어진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보고에 따르면, 발의된 反(반) 성소수자 법안은 무려 508개다. ‘트랜스 입법 추적기(tracktranslegislation.com)’에 따르면 49개 주에서 589개 법안이 발의된 것으로 집계됐다. 노스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미주리, 텍사스주 등에서는 LGBTQ+,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더 억압적인 법안 중에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에 맞는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법안에 따라 경찰 체포 위협을 받음), 트랜스 여성의 '여성 전용' 공간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 미성년자에 대한 성별확정 치료(호르몬 치료)를 금지하는 13개 이상의 주 법안 등이 있다. 미국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성소수자와 그 커뮤니티를 수익성 높은 시장으로 삼는 소위 ‘무지개 자본주의’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리고 현재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우파는 트럼프 당선 시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 노동자를 분열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의 권리와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공격하며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민주적 권리를 후퇴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이슈를 의도적으로 멀리한다. 이에 맞선 최전선에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와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며 싸우는 노동자 민중이 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의회, 학교, 거리 등 곳곳에서 투쟁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커밍아웃을 했고, 특히 Z세대(19세~26세)에서 많이 증가했다. 특히 ‘U세대(유니온 세대)’ 대표주자 중 하나인 스타벅스노조(SBWU)는 성소수자 지지 장식물 금지에 맞서, 또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자긍심 파업(Strike with Pride)’을 벌여 150여 매장을 멈췄다. 이 파업은 자본의 이윤을 타격했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독립적으로 노동자계급 단결을 강화할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곳곳에서 매주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노동자들과 많은 성소수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동성애 비범죄화와 가족구성권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인 모리셔스(Mauritius)와 남태평양 쿡 제도(Cook Islands) 정부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비범죄화했다. 모리셔스는 과거 식민지 시대 영국이 도입한 법에 따라 동성 간 애정관계를 범죄로 규정,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대법원도 지난 5월 동성애 비범죄화를 승인했다. 나미비아 대법원도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반면 우간다 무세베니 정부는 동성애 금지법안을 제정하고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활동가들은 시위를 이어가고, 일명 ‘게이살해법’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67개국은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다. 안도라(Andorra)가 동성 결합을 합법화하면서 수백만 명이 평등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혼인평등 법안이 통과되어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인도 대법원은 동성결혼에 대한 인정을 거부하며, 관련 법을 만드는 것은 의회 몫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 성소수자들과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이들은 평등을 위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 일본은 동성결혼을 여전히 합법화하지 않음으로써 성소수자에게 혼인평등권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G7 국가로 남았다. 태국은 동성결혼 합법화 등을 담은 혼인평등법이 12월 22일 하원에서 압도적 찬성(출석 의원 371명 중 360명)으로 통과되어 제정을 눈앞에 두었다. 네팔에서는 LGBTQ+ 커플이 남아시아 최초로 합법적으로 결혼했다. 이탈리아 멜로니 우파 정부는 아이를 직접 출산하지 않은 레즈비언 엄마들의 존재를 자녀의 출생증명서에서 완전히 삭제시키려 한다. 정부는 임신중지권 폐지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백래시에 이탈리아 민중은 거리로 나와 저항하고 있다.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 출전자격이 태어난 성별(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으로만 제한되자, 항의의 표시로 트랜스남성 100여 명이 출전을 신청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성소수자(LGBTQ+) 활동의 자유 스페인, 독일, 핀란드, 키프로스와 아이슬란드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소위 ‘전환 요법’ 포괄적 금지조치가 시행되었다. 영국 정부는 성소수자 권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5년 전 약속한 전환치료 금지 입장을 연말에도 내지 않았다. 보수당과 노동당 역시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에 관한 모든 약속을 내던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우익 언론들은 혐오 조장을 강화하고 특히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립시키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응답자 중 거의 3명 중 2명(60%)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소셜 플랫폼 활동을 접었다고 답했다. 러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활동 자체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따라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개인과 단체 모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튀르키예에서는 정부의 자긍심 행진(Pride Parade) 금지령과 경찰의 연행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권리를 요구하는 행진을 펼쳤다. 독일 의회가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처음으로 퀴어 희생자를 추모했다. 칠레 정부는 동성 부모의 육아휴직에 대한 평등한 접근, 간성 자녀에 대한 불필요한 수술 금지, 전환치료를 수행하는 의료전문가 금지 등을 도입했다. 브라질 정부는 전환치료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의료종사자들에 의해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는 여전히 심각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를 배척해 온 기준을 뒤집고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고 재판비용 2,860만 원도 청구했다. 동성 부부가 처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는 판결도 있었다. 대구시장은 퀴어 퍼레이드에 행정대집행을 발동했고 서울시장은 광장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와 그 권리를 옹호하는 노동자 민중의 행진은 2023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2024년에는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더욱 단결하여 전진하는 노동자계급의 걸음을 내디뎌보자.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일본, 동의 없는 아우팅 피해 급증. 산재로 인정되기도1. 새해에도 여성노동자 절반 이상 “괴롭힘 줄지 않을 것”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새해에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특히 여성(52%), 비정규직(51.5%), 20대(51.1%), 일반사원(51.5%), 월급 150만원 미만(53%)의 응답률이 높게 나타났다. 남성 61.6%, 정규직 60.5%가 괴롭힘이 줄어들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 것과는 대비된다. 직장인들에게 새해 소망을 질문한 결과 ‘임금 인상’이 77.7%(복수응답 가능)로 가장 높았다. ‘노동강도 완화 및 노동시간 단축’이 25.8%로 뒤를 이었다. 이어 ‘고용안정 및 정규직 전환(24.3%)’ ‘자유로운 휴가 사용(18.4%)’, ‘좋은 회사 이직(17.0%)’, ‘희망부서 배치 및 승진(10.6%)’, ‘직장 내 괴롭힘 근절(5.2%)’ 등 순이었다. 비정규직은 새해 소망으로 ‘임금 인상’을 꼽은 비율이 67.8%로 정규직(84.3%)보다 낮았다. 반면 ‘고용안정 및 정규직 전환’이라고 답한 비율은 35.8%로 정규직(16.7%)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새해 소망과 전망’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직장인들 대다수는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을 새해 소망으로 손꼽았지만, 정부는 그에 역행하는 연장근로 확대 방안을 시도 중이다. 비정규직, 여성, 청년,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자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이 줄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 것도 법제도의 보호가 이들에 가닿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311355001 2. 10년간 소폭 상승 그친 여성 고용 및 임금 실태 지난 10년간 남녀 고용률 격차가 줄었지만 여성의 취업은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됐고 임금은 남성의 70%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여성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여성의 임금, 직종, 고용형태, 경력단절여성 등의 현황 등을 포함한 ‘2023년 여성경제활동백서’를 발간했다”고 12월 27일 밝혔다. 백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여성경제활동법)에 따라 2023년부터 매년 노동부와 여가부가 공동으로 발간한다. 지난해 여성 취업자가 가장 많았던 산업군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8.3%)이고, 도매 및 소매업(12.7%)과 숙박 및 음식점업(11%)이 뒤를 따랐다. 모두 소규모 사업체가 많은 산업군이다. 같은 여성 노동자라도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 편차가 컸다. 정규직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320만 3,000원으로 비정규직(144만 5,000원)보다 2.2배 높았다. 백서에 따르면 2012년 48.6%이던 여성 고용률이 지난해 52.9%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시간당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은 64.8%에서 70.0%로 조금 올랐다. 지난 10년간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711140004916?did=NA 3. 박사학위 보유자도 성별고용형태에 따른 차별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보고서 ‘박사학위 보유자의 성별고용형태별 임금 격차‘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연구위원은 “성별·고용형태별 격차는 한국 노동시장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며 박사학위 보유자 역시 이 차별적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2021년 기준 연간 급여가 5,000만 원 이상인 남성 박사 비율이 여성 박사의 1.9배에 이르고, 전체 박사학위 보유자 중 비정규직은 34.7%였다. 보고서는 “박사 성별 임금 격차의 분포적 특성은 밑바닥 일자리 효과와 제한된 수준의 유리천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며 경력이나 생산성 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격차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박사 고용형태별 임금 격차는 (경력·생산성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에 의해 주도됐다. 비정규직에 대한 페널티(불이익)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12261451001 4. 이주 가사 노동자의 계속되는 고통 국제가사노동자연맹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각 가정에 고용돼 돌봄·청소·운전·경비 등을 하는 15세 이상 가사 노동자는 국제적으로 약 7,600만 명이다. 이 중 76%가 여성이다. 이주 가사 노동자는 15%에 해당하는 1,150만 명에 달한다. 가사, 돌봄 부문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역시 다른 이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차별, 학대에 시달린다. 3D 직종이 아니라도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노출되어 산업재해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약 1,800만 명의 가사 노동자가 있고, 이 중 17.2%가 이주 노동자고, 92%가 여성이다.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로 인해 페루로 이주한 카티아 콘트레라스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고용주들로 인해 매우 힘들었다면서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자리가 없어서 병원에는 가기 힘들다. 보건소에 가도 높은 약값이나 진료비를 내야 할 때가 많아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했다. 니카라과 출신으로 파나마로 이주한 이주 노동자 에바 마리아 케사다는 “난생 처음으로 새벽 3시에 기절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아시아 전역에서도 이주 가사 노동자들이 열악한 생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권리와 자유를 거의 누리지 못하며, 고용주로부터 학대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주 가사 노동자들의 고통은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가면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와 같은 훼손된 심신의 건강 문제 등으로 취업도 힘든 사례가 보고되는 등 전반적 삶의 어려움을 겪는다.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가사 노동자로 일하며 고용주에게 착취와 학대를 당한 카르티카는 “학대 때문에 생긴 흉터는 아직 내 몸에 남아 있고, 흉터 부위도 매일 부어오르고 있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who.int/news-room/feature-stories/detail/shedding-light-on-the-challenges-of-migrant-workers-in-latin-america-on-migrants—day https://time.com/6549753/foreign-domestic-workers-return-home-trauma-challenges/ 5. 결혼 이주 여성의 우울증 경험률 한국 여성보다 2배나 높아 질병관리청 국립 보건연구원이 여성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건강행태, 만성질환, 성·재생건강 등을 파악한 ‘수치로 보는 여성건강 2023’ 통계집을 1일 공개했다. 통계집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의 우울증 경험률은 27.4%로 한국 여성 14.1%보다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이주 여성의 우울증상 경험률은 소득과 한국어 구사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반면 한국 거주 기간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었다. 소득이 200만 원 미만인 결혼 이주 여성의 37.9%, 한국어 구사 정도가 낮은 결혼 이주 여성의 31.8%가 우울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2015년 조사에서는 이들의 우울증상 경험률이 젊은 연령에서 가장 높고, 중년에 감소하였다가 60살 이후 고령층에서 다시 높아지는 U자형 패턴을 보였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연령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22479.html 6. 일본, 10년간 아우팅 피해 1,300건 넘어 산재로 인정되기도 26일 일본의 ‘사회통합지원센터’의 성소수자 대상 무료상담 기록에 따르면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우팅’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2022년까지 10년간 1,35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0건 내외에서 수백 건으로 아우팅 피해가 일어나고 있으며, 2019년 248건으로 가장 많은 피해가 접수됐다. 2015년에는 히토츠바시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친구에 의해 성적 취향을 폭로 당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3년 7월에는 직장 상사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폭로돼 우울증을 겪었던 20대 남성이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현재 일본의 노동기준법은 아우팅을 사내 따돌림과 같은 부류로 분류하고 직장에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러 공공기관과 지자체에서는 아우팅 피해에 대한 금지 조항을 설치하고 이를 조례화하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소관부처인 후생노동성이 운영하는 상담창구의 상담 기록이 본인의 동의 없이 소속 학교나 직장으로 정보가 무단 공유되는 이른바 '행정적 아우팅'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nordot.app/1112195565574046060?c=39550187727945729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31227010016464 7. 2023년 세계에서 일어난 여성 권리의 전진과 후퇴 -스페인, 유럽 최초로 사회보장시스템을 통한 유급 생리휴가 도입 -이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틈타 히잡 착용 규정 등을 어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수감자 처형 확대 -대만, 넷플릭스 드라마가 일으킨 미투 운동 확산 -콩고, 자원을 둘러싼 내전 속에 난민촌 거주 국내실향민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 급증 -멕시코, 임신중지 합법화 -아프가니스탄, 여성 전용 미용실 폐쇄로 집 밖에서 여성들이 모여 젠더 기반 폭력 상호 지원 등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안식처 해체 -일본, 강간죄 명칭 ‘부동의 성교죄’로 변경하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 -수단, 내전의 참화와 가부장적 폭력 속에 여성들이 스스로 임산부를 돕는 등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여성 운동 지속 -러시아, 약국의 임신중지약 통제와 모든 병원의 임신중지시술 금지 등 임신중지 반대 추진 -프랑스, 헌법에 임신중지권을 명시하는 법안 발표 -중국, 여성은 집에서 아이나 낳아 키우라며 가부장적 여성 역할 강요 -미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후 임신중지권 보장을 위한 투쟁 격화(임신중지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안하는 주는 21개) 2022년 조사를 기준으로 여성살해가 약 8만 9,000명으로 집계되어 지난 20년간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GENDER-RELATED KILLINGS OF WOMEN AND GIRLS (FEMICIDE/FEMINICIDE)) 또한 조지타운 여성·평화·안보연구소(GIWPS)와 오슬로 평화연구소(PRIO)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WPS 지수 보고서(Women Peace and Security Index)에 따르면, 여성이 살기 좋은 상위 5개국은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순이며 반대로 여성에게 최악의 국가 5개국은 아프가니스탄, 예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으로 선정되었다. <참조 기사> https://www.france24.com/en/asia-pacific/20231228-women-s-rights-and-women-wronged-in-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