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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이준석 약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총 득표율 8.34%를 기록한 이준석이 청년층으로부터 얻은 높은 지지다.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20대 남성으로부터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다음이 36.9%를 얻은 김문수로 이준석과 비등하고, 이재명은 24.0%에 불과했다. 비상계엄 내란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진압한 후 벌어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소수자들이 광장의 중요 주체였다는 점에서, 남성 청년층의 정치적 정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민을 던진다. 20대 남성 청년층은 불안정한 집단이다. 고용불안으로 비정규·플랫폼노동 진입이 일상화된 와중에, 병역의무라는 짐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20대 청년 남성 다수는 청년 여성을 취업시장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준석은 '특정 집단'이 혜택을 독점한다는 선동으로 부상했다. ‘이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있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해당 기득권 집단은 다음과 같다. 모두 힘든데 자신만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문명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 이기적이게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국민연금 개악으로 젊은이들을 수탈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독점하는 중장년층,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에서 테러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는 페미니스트 집단 등등.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준석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준석의 선동은 ‘자신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남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보다 긴 국면에서 보자면, 이준석의 정치적 부상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곧바로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가 급감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당시 20대 남성의 47.7%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던 국면으로, 문재인 정부는 초기 방역 성과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총선은 조국 사태 이후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을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밀어올려 결집할 인물이 가시화되기 전 단계였던 셈이다. 사진: 뉴스1 이런 상황에서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공정성 담론이 그 정치적 표현을 획득하며 확장되는 계기였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와 ‘공천 자격시험제’ 등 공정경쟁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 했다. 이준석은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부패를 토대로 급부상했고, 2022년 윤석열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과 싸우다 부당하게 쫓겨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후광도 얻었다.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의 이면으로서의 이준석’이라는 맥락은 1년 전 치러진 2024년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2024년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거듭된 패악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결과한 조국혁신당 약진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득표는 24.25%로 이준석의 개혁신당 3.61%의 근 7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총선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개혁신당 지지율은 16.7%로 조국혁신당의 17.9%1)와 비등할 정도로 이준석은 청년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2) 1) 창당 초기, 조국혁신당은 ‘20대 지지율 0%’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청년층에게는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조국’은 청년들에게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역겨운 상징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로 드러나듯, 정권 심판론의 확대에 따라 20~30대 일부도 결국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ᅠ것이다)을ᅠ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 조국혁신당의 독자 창당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과 이중성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장한 상황은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을 희석시켰고, 민주당의 ‘정권심판’ 호소력을 강화했을 공산이 높다.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준석 지지율 37.2%라는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거칠게 분류하자면, 20대 남성 37.2%의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나,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기대에 차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바로 그 민주당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주범이라고 여긴다. 계급투쟁의 정치, 그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부상 특히,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의 경우 이준석이 지지자를 결집하는 주된 매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여성의제를 보자. 이준석의 극우 선동처럼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했는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29.3%(2023년)로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민주당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즉, 계급투쟁으로 실질적 성평등을 쟁취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주의=고위직 할당제=불공정’ 선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국민연금 개악이었다. 이준석은 ‘기득권 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3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청년층의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18~29세에서는 반대가 63%, 30대에서는 반대가 58%를 기록했고 이준석은 대선에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운용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세대를 결집했다. 국민연금을 매개로 한 이준석의 청년세대 결집, 이는 계급정치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승리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을 지향하는 사민주의적 연금개혁론자들은 청년층의 반대 여론을 ‘연대의식 부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청년층이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개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 특히 청년노동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2024년 하반기 국정감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1,034만명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사각지대 비중이 높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대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계급투쟁뿐이다. 압도적 저출생은 객관적 현실이며, 국민연금 문제는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국가와 자본은 연금제도 유지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지우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은 낮추어져야 하며,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한다.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에서 드러나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의 정치라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았고, 청년층의 불안과 위기감은 공정을 기치로 내건 우익포퓰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그저 민주당의 정치, 계급협조주의 정치의 허점을 공략하는 반명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극우 선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계급투쟁의 정치다. 2017년 정의당의 몫은 어디로 갔는가 민주노동당-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는 0.93%를 득표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하고 이재명 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완주했으나 예상보다 낮은 득표였다. 민주노동당, 과거의 정의당은 왜 위축되었을까? 잠시 2017년 대선 상황을 돌아보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의 ‘마지막 1분’은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상정을 내세운 정의당은 6.17%를 득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민주당 왼편에서 대안을 찾는 노동자 민중에게 분명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일각이 주장하는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강조해 정의당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심상정의 발언이 2017년 대선에서 반향을 얻었듯, 이는 오히려 정의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기제였다. 문제는 민주당 종속성이다.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위선을 여실히 드러낸 2019년 조국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하며 민주당과 한배에 탔다. 당시 지형상 정의당은 조국 임명 여부에 관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고, 정의당의 동의는 청와대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졌다. 조국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2022년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공정성’ 담론이 청년층을 휩쓸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 속에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했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결국 정의당은 2022년 대선 2.37% 득표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를 겪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이준석, 금태섭과 손잡고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고, 비례대표 의원 류호정과 조성주 등은 실제로 이들과 당을 만들어 개혁신당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또한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하던 세력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했다. 당 주요 인사들이 전혀 통제받지 않고 ‘진보정치’와 하등 관계없이 행보할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정의당의 이념과 조직 구성이 얼마나 노동자계급과 괴리되어 있었는지를,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사진: 뉴스1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거듭되는 위축과 이준석의 약진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한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당보다 왼편의 세력, 즉 사회대전환연대회의 소속으로 출마해 완주했고, 34만 4,150표를 얻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는 점,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권영국 후보가 투쟁현장을 찾으며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의지를 드러낸 점은 노동자 계급정치 확대의 측면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진: 민주노동당 그러나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과거 정의당의 민주당 종속성과 함께,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의 민주당 종속성 역시 문제였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후보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대표가 권영국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한 이유는, 그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으로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추에 속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존재는 한상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한상균의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계급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전투적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결집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악화 기업 지분투자, 부도기업 인수’ 등 공약에는 자본을 위한 경제체제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겠다는 전략도 없다. 자본이 틀어쥔 기간산업은 그대로 두고, 파산기업 인수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가? 권영국 후보의 경제 공약은 사민주의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ᅠ 마찬가지로,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의회주의-개량주의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드러나듯, 일자리보장제가 제시하는 일자리는 호황과 불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도는 임시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이런 제안에 해방적, 이행적 요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153972 권영국 후보가 내건 일자리보장제도는 한때 유행하던 현대화폐이론가들의 논의를 차용한 것이다. 그 주요 이론가인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의 논의3)에 따르면, 일자리보장제도는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즉, 현대화폐이론가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 일자리보장제도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장점으로 내세운다.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이 틀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생산과 산업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을 하등 건드리지 않은 채 정부가 임시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그냥 자본주의 안에서 이대로 살자’는 이야기다. 3) 파블리나 R. 체르네바, 2021, 『일자리보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안』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진 국방·통일·외교통상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의 본질적 한계가 반동적으로까지 드러난 대목이다. 석유·가스·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 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공약은 노골적 추출주의(extractivism)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런 시대인식의 부재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으로 30만 정예 강군 달성’이라는 공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병제는 전쟁의 시장화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 군축이지 모병제 도입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정예 강군’ 육성이 아니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출발이나,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의 정치를 향하여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선 시기에도, 대선이 끝난 지금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민주노총의 공식 노선으로 관철하려는 양경수 집행부의 파행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국회 사회적 대화’ 관철을 위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소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에 조응해 노동운동 출신 거간꾼들을 정부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6월 23일, 정부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위 성명에서도 언급했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몬 핵심 인물이자,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다. 김영훈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다음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상 환영 입장이다. 진작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어야 했을 인물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된 일이 정녕 환영할 일인가? 이재명은 광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중도보수’를 선언했고, 강경보수 인사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며 선거를 치렀다. 당선 후 6월 13일에는 5대 재벌총수 및 6개 경제단체와 만나 자본가들의 민원을 들으며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재벌들에게 인사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유임이 보여주듯 내란세력 청산 지체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이 미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던 와중에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 민주당의 행보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민주노총을 붙들어매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사진: 고용노동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25.06.19.) 중 5월 29일,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인 0.8%로 하향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열강투쟁 격화에 따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보다 크게 밑돈 –0.2%에 불과했다. 관세전쟁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통계임에도, 침체 경향이 분명하다. 자본은 더 강한 노동개악을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재명 정부는 그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대선을 관통해 추진되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노동개악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미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은 ‘고용유연성’을 의제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자본가 정치세력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팔아넘기는 행위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타고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노동자 민중을 노출시키는 길이다.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연대’, 죽어야 할 그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민주노총이 민주당에 대한 압력단체로 전락할 위기 앞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계를 넘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할 정치세력의 형성과 직결된 문제다.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기, 기후재앙과 저출생,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세력이 되는 길은 계급투쟁으로 대안을 만드는 정치세력화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노동자계급은 당하고 또 당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과 결별하자.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축과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순환, 그 단초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광장식 소개’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에서 시작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우군으로,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자체로 발전해온 말벌 동지들, 다수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계급인 이 동지들과,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조직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추동하자. 그 결합이야 말로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열쇠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1.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별, 장애, 출신지역, 성적지향 등에 따른 차별을 전반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와 국회는 일부 보수단체와 종교계의 반발을 이유로 법 제정 요구를 외면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기간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삼고 입법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는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이재명 정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합시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차별과 혐오와 선을 긋고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정연대 측은 이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앞서 제정연대는 지난달 23일부터 ‘새 정부 국정과제 요구 1만인 서명-새로운 민주주의는 차별금지법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전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김 후보자가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우리 사회의 지속을 위해서는 이성애가 보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혐오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언제까지 성소수자들은 영향력 있는 이들의 입에서 자신을 부정당하는 경험을 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한편,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수) 오후 5시 반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에서 변혁으로”라는 주제로 5회차 무지개학교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에서는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신과 세부 내용을 입법을 넘어 변혁적 성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살펴볼 계획이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71433001 2. 인천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등 성평등 실행 체계 구축 촉구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은 지난 24년 동안 고용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의 신속한 권리구제, 사건지원, 실질적 피해 회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이를 폐쇄한 뒤 고용노동부 지청으로 넘긴 심층상담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쇄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겨울 내내 4개월간 광화문 광장에서 부스를 설치하고 복원을 요구하며 16주 동안 서명을 받았고, 1만여 명의 시민이 이 싸움에 서명과 후원으로 응답했다. 임금차별타파주간을 맞아 5월 27일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새 정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성평등 노동 실현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성평등 노동 추진체계를 법제화하고, 고용평등상담실 복원과 성인지적 산업안전 체계 구축을 새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평등 노동을 위한 정책 집행력 확보,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성인지 산업안전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책무다. <참조 기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0920 3. 고령자 성별 임금 격차 더 높아…여성이 남성의 59% 수준 고령자 사이에서는 남녀의 임금 격차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보고서 ‘고용보험DB를 활용한 연령계층별 노동이동 분석 기본연구’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2024년 6월 기준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고령자는 272만 9,000명이었다. 이 중 75%는 60세 이후 취업했고, 75%는 중소규모 사업체를 다니고 있었으며, 53.%는 시간제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취업 분야는 생산자서비스업과 사회서비스업에 집중해 분포됐고, 현재 일자리 취득 당시 임금수준은 월 실질임금 184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남성 고령자는 226만 원, 여성 고령자는 133만 원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9%에 불과했다. 전체적으로 고령자의 일자리는 연령이 높을수록 불안정하며 임금수준이 낮고, 고령자 내 성별 임금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또한 현재 임금노동자인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원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노동자는 9.5%가량인 26만 명에 불과했다. 정년퇴직 후 같은 직장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 비율, 즉 재고용 비율은 전체 정년퇴직자 중 37.5%로, 9만 4,000명에 그쳤다. 그런가 하면, 출산 이후 남녀 노동자의 소득 패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출산 남성의 연 보수총액은 해가 갈수록 매끈하게 증가했다. 반면 출산 여성의 연 보수총액은 원래 남성과 비교해도 평균적으로 낮았지만 출산한 해와 그다음 해까지 매우 낮게 유지되다가 3년 후에야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참조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0128200530?input=1195m 4. 인도 마드라스 고등법원, 동성 커플 ‘가족’으로 인정 인도 타밀나두 주의 마드라스 고등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획기적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성별이분법에 근거한 정상 결혼제도 밖에서도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선택된 가족’ 개념의 진일보한 판결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판결은 한 여성이 자신의 여성 파트너가 부모로부터 폭행과 불법 구금을 당하면서 법원에 낸 인신보호청원(HCP)의 승인 과정에서 나왔다. 고등법원 판사인 L. 빅라마난은 “결혼이라는 법적 장치가 없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진실하고 안정된 유대가 있다면 이는 가족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가족이라는 개념은 시대와 함께 진화하며, 더 이상 출산이나 전통적 결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삶의 권리’는 사랑하고,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 권리를 포함한다. 이제는 결혼을 넘어선 파트너십, 동거, 그리고 다른 형태의 공동체적 삶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라고 판시했다. 첸나이의 인권 활동가인 라메쉬 쿠마르는 “이런 판결은 ‘법이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법정 밖의 가족도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이자 인도의 주요 인권단체인 피플포체인지(People for Change)에서 활동하는 소비크 사하는 “‘선택된 가족’ 개념은 가족으로부터 거부와 혐오·폭력을 당해온 성소수자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생존과 치유를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이 판결은 진전이지만, 솔직해지자”라면서 “체계적 구조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한, 법적 판결만으로는 경찰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인도의 행정과 공권력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계급 차별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이다. 2018년 형법 377조(동성애 처벌)가 폐지된 후에도 많은 경찰이 LGBTQ 정체성을 범죄나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강력한 메시지이지만, 내무부와 경찰이 이를 제도화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느리고 고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ewindianexpress.com/states/tamil-nadu/2025/Jun/04/same-sex-marriage-not-legalised-but-couples-could-form-a-family-madras-high-court https://www.washingtonblade.com/2025/06/17/madras-high-court-says-families-are-possible-outside-marriage/ 5. 영국 트랜스여성 수영 선수, 상의를 탈의하고 남성과 경기 영국의 한 수영 경기에서 여성으로 법적 성별을 정정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영 선수가 대회 주최 측의 강압으로 “남성 부문” 출전을 통보받았다. 심지어 그가 상의를 탈의한 채 남성들과 수영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경기 규칙 적용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권리를 무시하는 명백한 차별한 사태라는 비판이 영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일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 여성 선수는 여성 부문에서 출전하길 원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그가 법적으로 여성이더라도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부문 출전을 불허하고, 남성 부문에서 경쟁하도록 강요했다. 더 큰 충격을 준 내용은 그 과정에서 그가 여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탑을 입고 경기에 나서려 했으나, 경기 규정상 남성 부문에서는 상의를 착용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탑을 벗고 수영하게 된 점이다. 그는 “나는 여자다. 그런데 왜 남자들과 수영해야 하나? 모두 앞에서 상의를 벗고 수영해야 했던 건 굴욕적이었고, 내 정체성이 무시당한 기분이었다”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대회 주최 측은 선수의 호소와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불편하거나 굴욕감을 느끼더라도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규칙이 인권 위에 서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포츠계는 ‘생물학적 성별’을 중심으로 통제하는 구조로 여성인 선수를 강제로 ‘남성화’시키며 개인의 신체적 자율성과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많은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들이 스포츠계에서 배제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트랜스 여성 선수는 “나는 그저 나답게 수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저들이 명분으로 내미는 공정성은 이분법적인 성별 규범, 배제와 혐오, 비과학적 기준일 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5/06/17/trans-woman-swims-topless-male-category/ https://www.out.com/gay-athletes/trans-woman-swims-topless-england 6. 미국 연방대법원, 테네시주 트랜스젠더 의료 금지법 지지 … 헌법적 쟁점은 외면 지난 6월 18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테네시 주의 트랜스 미성년자 성별 확정 치료 금지법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법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의료적 전환 치료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결에 참여한 보수 성향 판사들은 해당 법이 성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률이 트랜스젠더를 특정해 차별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랜스젠더 관련 법률 전문 기자 에린 리드는 이번 판결이 평등권 침해 여부, 트랜스젠더의 법적 보호 지위 등 핵심 헌법적 문제를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테네시 법은 성별 불쾌감을 트랜스젠더에게만 해당하는 증상으로 정의한다. 이 법률은 시스젠더 청소년에게는 허용된 의료 서비스를 트랜스젠더에게는 금지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제한이 아닌,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긴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9년부터 본격화된 우익 정치 세력의 전국적 반(anti)트랜스젠더 입법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025년 한 해에만 115건의 반트랜스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 대부분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전환 치료, 공적 공간에서의 권리 제한 등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 하급심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정체성에 따른 여권 성별 표시 금지 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하는 등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대법원 재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 대응은 정치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며, 장기적인 법정 투쟁으로 이어지는 한계를 지닌다. 활동가들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6월)을 맞아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과 ACT-UP 등 과거 직접행동의 전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 운동 진영은 직장과 학교, 거리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한 대중적·노동계급 중심의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과 같은 제도 정당에 의존해서는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ttps://www.leftvoice.org/scotus-ruling-against-gender-affirming-care-is-an-attack-on-democratic-rights/ 7. 미국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의 임금 인상으로 드러난 여성 운동선수의 낮은 급여 수준 미국에서는 치어리더를 단순한 공연자가 아닌 ‘프로 운동선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단 리어리더들 가운데 대부분은 무용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고, 혹독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대표 동작인 킥라인과 점프-스플릿은 관절 부상을 초래해 수술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들은 7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주 3~4회, 한 번에 2~3시간씩 연습하며, 모든 홈경기에서 공연한다. 연습만 주당 40시간씩 해야 하며, 여기에 각종 홍보 활동도 별도로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수준은 너무 낮아 다수가 두세 개의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잡지 <피플(People)>과 OTT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아메리카스 스윗하츠(America’s Sweethearts)> 등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아메리카스 스윗하츠> 시즌 2 공개와 함께 나온 발표에 따르면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치어리더의 임금이 최근 400% 인상됐다. 이는 그동안 이들의 급여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반증한다. 전 치어리더 자다 맥클레인(Jada McLean)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5년 차일 때 시간당 15달러(약 2만 8,000원)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임금 인상은 치어리더들 스스로가 수년간 함께 싸워온 성과다. 이에 대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대 스포츠미래연구소 셰리 브래디시 소장은 “(치어리더들의 사례는) 여성 스포츠 전반에 걸친 성별 임금 격차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서 여성들이 다양한 역할에서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다른 리그와 팀들과 유사하며, 더 공정하고 존중받는 보수를 받기 위한 투쟁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참고 기사> https://www.cbc.ca/news/world/dallas-cowboys-cheerleaders-pay-1.7565340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Repeat of the Past or Progress Toward the Future?South Korea held its presidential election on June 3, only three years after the previous election, despite the five-year presidential term. The election was prompted by the Constitutional Court's decision on April 4 to remove former president Yoon Suk-yeol from office, following his attempted imposition of martial law on December 3. The moment the Constitutional Court handed down its ruling on April 4, the outcome of the June 3 presidential election was effectively decided. The four months between December 3 and April 4 were far more significant than the two months leading up to the election. Right after Yoon's declaration of martial law on December 3, massive protests by workers and people erupted. People who gathered at the National Assembly blocked the military from taking control of the building, and within two and a half hours, the National Assembly passed a resolution demanding the lifting of martial law. Within six hours, the martial law was lifted. As the protests by workers and people grew explosively, the impeachment motion against Yoon was passed by the National Assembly just 11 days after the martial law was declared. Many people recalled the impeachment of Park Geun-hye eight years ago and believed that Yoon was now over. However, the situation was very different from eight years ago. Above all, far-right forces had grown significantly. Yoon, who declared he would “fight to the end” against the National Assembly's impeachment motion, emerged as a hero of the far-right. Centered on Christian fundamentalists, the far-right launched a massive counterattack in January and February. On January 15, Yoon was arrested, and on the 19th, a warrant for his detention was issued. In response, the far-right forces instigated violent riots at the Western District Court in Seoul, which had issued the warrant. The mass rallies organized by the far-right forces grew increasingly larger, and by early March, they surpassed the scale of the pro-impeachment rallies. Public opposition to Yoon's impeachment also grew from 20-25% to around 35%. On March 8, a judge succumbed to pressure from far-right forces and released Yoon on absurd grounds. Meanwhile,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which was expected to be issued by mid-March at the latest, was indefinitely postponed. For impeachment to be upheld, at least six out of eight Constitutional Court justices (i.e., a two-thirds majority) must vote in favor. However, it appeared that three conservative justices were avoiding to decide their positions due to pressure from far-right forces. The scenario in which the impeachment is rejected, Yoon returns to power, and he imposes stricter emergency measures with the support of far-right forces was no longer unthinkable. From the outset of the impeachment motion against Yoon, the March to Socialism (MtS) has argued for overthrowing the Yoon administration through the power of mass struggle. The core method was to combine a powerful general strike led by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with explosive street protests. However, the MtS's call for a powerful general strike was ignored within the KCTU until early March. Yet, by mid-March, the situation suddenly changed. This was because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was repeatedly postponed, leading optimism to turn into pessimism. As the atmosphere quickly spread that the outcome of the Constitutional Court's ruling could not be guaranteed, the KCTU leadership was forced to declare a general strike, albeit belatedly. However, the general strike carried out by the KCTU on March 27 was very weak due to inadequate preparation. Nevertheless, there was no other option. The KCTU decided to organize a stronger general strike on April 10 and developed preparations. In this atmosphere, the scale of workers' and people's rallies in late March once again surpassed those of far-right forces. In these circumstances, the Constitutional Court announced on April 1 that it would issue its ruling on April 4. The KCTU held a Representative Conference on April 3 and unanimously resolved to launch a full-scale general strike if the Constitutional Court rejected the impeachment. If the Constitutional Court had rejected the impeachment, there would have been a real possibility of a militant general strike involving hundreds of thousands of participants. On April 4, the Constitutional Court unanimously decided to remove Yoon from office. It looked obvious that the mass struggle of workers and people forced the Constitutional Court to make this unanimous decision. The presidential election held on June 3 ended as expected with the victory of Lee Jae-myung of the Democratic Party, who secured 49.4% of the vote. This brought the severe political crisis that began on December 3 with Yoon's declaration of martial law to a close. However, this is merely the starting point for an even greater political crisis. The emergence of Yoon's People Power Party regime three years ago was due to the disappointment and disillusionment of workers and people with the previous Moon Jae-in Democratic Party regime. The Moon regime claimed to be the successor to the candlelight protests that impeached the Park regime. However, under the Moon administration, which had promised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minimum wage, the minimum wage ended up in disarray due to the second-lowest increase rate in history and institutional reforms that worsened the system. Despite pledges to regularize irregular workers in the public sector, the majority were converted into regular employees of subsidiaries with little change in wages or working conditions. Despite boasting about curbing skyrocketing real estate prices, the administration's double-standard approach of avoiding effective regulations led to explosive increases in housing prices. While proclaiming fairness and justice, it shielded high-ranking public official involved in his children’s college admissions scandals. Despite claiming to be a feminist government, it shielded major figures involved in sexual violence and avoided amending the law to legalize abortion following the ruling that the abortion ban was unconstitutional.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Lee Jae-myung defined the Democratic Party as a center-right party and recruited a large number of right-wing politicians, further clarifying his class character. Lee Jae-myung, who advocates pro-business policies, has promised drastic deregulation and corporate tax cuts. He has pledged to push for the Semiconductor Special Act, which will inject massive state funds to support semiconductor conglomerates. He has proposed doubling the stock market as a solution to the housing price surge. Although he emphasized his background as a child laborer, he barely mentioned worker-related issues such as the minimum wage and irregular employment during the presidential campaign. He rejected the enactment of an anti-discrimination law prohibiting discrimination based on gender, race, nationality, and disability, saying it was “something to be done later.” Despite the Democratic Party clearly revealing its nature as a capitalist party, the Progressive Party, one of the reformist progressive parties, supported Lee Jae-myung of the Democratic Party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The Progressive Party also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with the Democratic Party in the April 2024 general election. The Progressive Party, which has a pro-North Korea stance, is repeating the popular front strategy adopted by Stalinism in the 1930s in the face of the rise of fascism, in today's South Korea, which is facing the rise of far-right forces. Several labor unions led by the Progressive Party within the KCTU declared their support for Lee Jae-myung. The current KCTU leadership, which leans toward the Progressive Party, attempted to endorse Lee Jae-myung at the KCTU level but abandoned it after fierce debate. Ultimately, the KCTU did not endorse any candidate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Other reformist progressive parties, such as the Justice Party, the Labor Party, and the Green Party,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called the “Social Transformation Alliance” with some labor and social groups and nominated their own presidential candidate under the name Democratic Labor Party. Their candidate, Kwon Young-gook, was a lawyer who had long fought alongside workers. At the center of this movement was the Justice Party. Pursuing social democracy, the Justice Party had emerged as the leading progressive party, securing 6.2% of the vote in the 2017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s strategy was to maintain good relations with the Democratic Party while attracting progressive voters who supported the Democratic Party, thereby growing its base. However, this strategy collapsed after two major incidents. First, during the 2019 scandal involving the college admissions scandal of the children of the Justice Minister under the Moon administration, the Justice Party sided with the Democratic Party. This incident caused the Justice Party to lose significant support from its core base of young voters. Second, in the 2022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secured 2.4% of the vote, a margin larger than the 0.7% difference between Yoon and Lee Jae-myung. This led Democratic Party supporters to declare that they would never vote for the Justice Party again, claiming it had enabled Yoon's victory. Facing a crisis, the Justice Party was engulfed in severe chaos and division ahead of the 2024 general election and ultimately lost all six of its seats. Following last year's gener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shifted its political direction to the left in an effort to address the crisis.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the Justice Party formed an electoral alliance with other groups that more clearly advocate for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The Democratic Labor Party candidate Kwon Young-gook, a member of the Justice Party, made clear statements on issues such as expanding workers' and people's rights and enacting an anti-discrimination law. Additionally, he demonstrated his commitment to solidarity with the working class by visiting workers engaged in high-altitude sit-in protests and the families of victims of workplace accidents. Therefore, the MtS called for votes for Kwon Young-gook, under the conditions it could not field a revolutionary socialist candidate. This was because it believed that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against all capitalist parties including the Democratic Party is the most important task at this juncture. The 1.0% of the vote Kwon Young-gook received will serve as a very valuable starting point for building an independent political force of the working class. However, the MtS did not give unconditional support to Kwon Young-gook but rather offered critical support. First, the platform of Kwon Young-gook remained confined to reforms within capitalism, and even those were timid. Kwon Young-gook avoided direct struggle against capitalism itself and only demanded expanded distribution through tax increases and institutional reforms. It completely excluded struggles for the nationalization of key industries and conglomerates, the deprivation of capitalists' management rights, and workers' and people's control over industries. Although the party put forward a “universal job guarantee system,” its proposal merely called for expanding public works on the periphery while leaving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big capital intact. The defense and foreign policy pledge to “develop Arctic shipping route” revealed an anti-ecological mindset that seeks to exploit the climate crisis for profit accumulation, as well as a lack of geopolitical awareness that the Arctic shipping route is emerging as a core arena of confrontation among the US, China, and Russia. The second reason for the MtS's critical support for Kwon Young-gook was that the Democratic Labor Party included a significant number of individuals who had previously sought alliance with the Democratic Party. Although the People Power Party lost power in this presidential election, its candidate Kim Moon-soo's 41.2% of the vote demonstrated that it remains a powerful force. In addition, Lee Jun-seok, a candidate for the Reform Party, won 8.3% of the vote. This means that two candidates with far-right tendencies received support from nearly half of the voters. Of course, it would be inaccurate to label all voters who supported these two candidates as far-right. Many voters likely cast their ballots for far-right candidates due to their rejection of the Democratic Party and Lee Jae-myung, as well as the weakness of working-class political forces. However, it appears that approximately half of the voters who supported these two candidates—or one-quarter of the total population—can be considered a solid far-right bloc. Kim Moon-soo, in his mid-70s, represents Korea's traditional far right, rooted in anti-communism and anti-North Korea sentiment. This group, which has succeeded through pro-Japanese force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ro-US forces during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ardent supporters of the military regime that led industrialization, now has its core support base among the elderly over 60 and Christian fundamentalists. Lee Jun-seok, 40, symbolizes the emerging far-right, rooted in hatred toward women and social minorities. This can be seen as the Korean version of a global phenomenon, where a backlash against the feminist movement that swept the world in the 2010s has spread among young men. His core support base is also men in their 20s and 30s, who just eight years ago overwhelmingly supported the Democratic Party candidate. There are tension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far-right forces. Unlike the faction represented by Kim Moon-soo, which opposed the impeachment of Yoon, the faction represented by Lee Jun-seok supported it. However, the two factions share an extreme right-wing worldview in many more ways. Opposition to anti-discrimination law and hatred of China are the core issues that bind the two factions together. Yoon's December 3 martial law was an attempt by the far-right, which had grown powerful enough to seize control of the highest authority in South Korea, a country with a history of military dictatorship, to hastily evolve into military fascism. Their attempt failed, and the path to military fascism has been blocked for now. However, the capitalist crisis that initially fueled the rise of the far-right remains unchanged. The far-right, whose essence lies in defending the capitalist system, paradoxically emerges where hope for a better life through sustained capitalist growth has vanished. Characterized by hatred,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of workers and oppressed people, the far-right grows by attacking the hypocrisy and incompetence of bourgeois democracy, which once promised freedom and equality. When workers and people drift between bourgeois parties without a genuine alternative in the form of revolutionary workers' politics and mass struggle, far-right forces gain the opportunity to establish themselves as an alternative to bourgeois democracy. Today's global capitalist crisis is bringing even South Korean capitalism, which has been known for its dynamic development over the past few decades, to a standstill. The Lee Jae-myung administration's grandiose promises to resolve the suffering of workers and people through growth will soon lead to disastrous results. Regardless of the growth rate figures, big capital will reap huge benefits while workers and people will suffer bitterly. Disappointment and disillusionment with the Democratic Party administration will once again sweep through workers and people. At that moment, who will lead the workers and people to confront the Democratic Party regime will determine the future. If the initiative once again falls into the hands of the far-right forces, the past will repeat itself in an even worse form. However, if the working class seizes the initiative, a hopeful future different from the past will finally begin. The independent political empowerment of the working class, the strengthening of resolute mass struggles of workers and the oppressed, and the spread of revolutionary politics that directly challenge capitalism are the key factors for opening such a future, and therefore, are written in the banner that the MtS is raising. -
[성명]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이은 인류적 범죄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행위를 즉각 중단하라!6월 22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6월 13일 이스라엘 전투기 200여 대가 테헤란과 핵 시설 등에 330기 이상의 미사일을 퍼부으며 집중 공격한 것에 이어, 지하 시설을 관통할 수 있는 3만 파운드(약 13,000kg)급 ‘벙커버스터’ 폭탄을 탑재한 미국의 B-2 폭격기가 이란의 3개 핵시설(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을 폭격한 것이다.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지난 20개월 동안 가자의 집단학살을 막아내지 못한 결과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20개월 동안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지속하며, 서안지구를 더욱 빠르게 병합하고, 예멘을 폭격하고, 레바논과 시리아의 일부를 점령했다. 이미 수차례 이스라엘은 이란 주요인물을 암살하고, 영사관을 공습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폭주가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늘의 폭격이 있기 며칠 전,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미국, 일본은 G7 정상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자위권의 행사’이며,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간 중동의 평화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을 학살해온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란의 핵무기를 들먹이며 ‘존재론적 위협에 대응하는 선제적 타격’이라 말했다. 자기 손에는 가공할 핵무기를 쥐고서 말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핵을 보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거부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서, ‘핵위협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라며 핵시설에 수십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20개월 간 이어온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이어, 이란을 향한 침략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중동의 노동자민중을 더 큰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고 있다. 이 전쟁을 막아내는 것은, 중동과 전세계에서 이스라엘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류적 범죄를 막기 위한 세계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행동을 얼마나 조직하는가에 달려있다. 얼마 전 가자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가자로 향했던 '플로틸라 자유선단'과 이집트 행진단의 용기있는 정신을 따라, 이스라엘로 향하는 무기 선적을 거부한 항만노동자들의 결의를 따라,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확대하여 전쟁을 중단시키자! 2025년 6월 23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윤석열 퇴진 광장 이후 퀴어가 다시 연 무지개 광장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지난 6월 대전 도심에서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이하 ‘대전퀴퍼’)가 열렸다. ‘사랑이쥬 – 광장에 나와 너’라는 부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작년보다 많은 43개의 단체와 퀴어당사자와 엘라이들의 참여 속에 치러졌으며, 축제 당일에는 약 2,000명의 참가자가 도심을 행진했다. 오전 11시부터 부스 행사가 시작됐고, 오후 1시 개막식, 오후 4시 행진까지 일정이 이어졌다. 올해 퀴퍼는 기존 단체 중심의 참여를 넘어서 개인 조직위원들의 기획과 참여가 돋보였다. 또한 기업이나 대사관 등의 자본과 제국주의 침략에 책임이 있는 외부 후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조직위원회 성원들은 “내가 사는 도시에서 퀴퍼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전퀴퍼를 또 다시 준비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심을 따라 이어진 행진 대오에는 무지개 현수막과 함께 “퀴어는 여기 있다”, “차별에 저항하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드러내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의 광장에 나온 것에 기쁨을 표현했다. 누가 그들을 숨기라 했던가? 누가 살아도 되는 몸과 그렇지 못한 몸을 나눴던가? 광장은 우리의 것이자 모두의 공간이다. 오래도록 감춰져 왔던 퀴어들은 이제 광장에서 서로를 만나 함께 투쟁한다. 퀴어가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집단적 존재의 선언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시 낭독과 함께 울려퍼진 팔레스타인 해방 축제에서 무엇보다 빛났던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연결이었다. 연대발언 중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주드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 레파트 알리라르의 시를 낭독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남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다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 이야기가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기를.” 주드는 이 시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성소수자의 현실은 외면당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학살은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1948년 나크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구조적 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방위산업 수출과 정치권의 침묵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성소수자이자 트랜스젠더로서,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은 끝나야 한다”고 발언을 이어갔다.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못한 현실, 그리고 최근 정보통신법에서 ‘성적 지향’이 삭제된 상황을 지적하며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의 인권이 보장되느냐”고 물었다. 발언 마지막에는 “퀴어로 산다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산다는 것, 누군가에겐 죽어도 되는 존재로 분류된다는 것—모두 같은 구조의 문제”라고 말하며 다음 구호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자!”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행사 하루 전인 6월 6일, 대전퀴퍼조직위는 대전현충원 앞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 하사의 순직이 공식 인정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퀴어 당사자이자 개인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상이는 대전퀴퍼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했다. “우리는 땅에 존재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갈 권리를 부정당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 이야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끝내 웃으며 사라지지 맙시다. 혐오와 차별 대신 사랑과 연대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함께 존재하자고 약속합시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대전퀴어문화축제는 무지갯빛 춤과 웃음이 가득한 축제였지만, 동시에 퀴어의 존재를 지우려는 사회, 팔레스타인의 죽음을 ‘뉴스 한 줄’로 흘려보내는 사회, 존재할 권리를 선별하는 사회에 맞선 투쟁이기도 했다. 또한 고공농성중인 옵티칼지회 노동자들의 청문회 서명운동, 외압을 견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 노동자들의 자발적 부스운영,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활동한 기수들의 참여 등은 이번 대전퀴퍼가 여러 사회운동의 교차점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퀴어 존재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기 위해선 노동자운동이 퀴어운동과 어깨를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퀴퍼의 외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퀴어 해방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아가야 한다.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의 광장은 마무리되었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광장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존재로, 우리의 목소리로, 그리고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계속 연결될 것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
잘 나가는 기아, 탄압받는 청소 노동자김경숙 조합원(첫 번째 사진에서 가장 왼쪽)이 동료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들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하며 투쟁하고 있다. 친환경을 말하며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아차의 청소 노동자들 앞에 별안간 산업폐기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기아차 화성공장 하청업체 보광산업에 소속되어 있는 김경숙 씨, 김은희(가명) 씨와 그의 동료들은 지난 5월 초부터 피켓을 들었다. 회사는 지난 3월 말 새로 생긴 글로벌 품질센터 현장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청소 노동자들이 하지 않았던 업무였다. 품질센터 안, 품질센터의 통행로 안은 자동차 부품 등 중량물이 많아 안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다른 건물에서도 현장 안 청소는 전문 장비를 갖춘 다른 노동자들이 담당해 왔다. 청소 노동자들은 현장 안이 아니라 화장실과 사무실, 복도를 청소했다. 그런데 회사는 노동조합 및 해당 청소 노동자들과 어떤 협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업무를 지시했다. 담당구역 업무변경 시 조합원과 협의해야 한다는 노사협의 조항은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4월 초 노동자들이 작업 지시를 거부하자 사측은 노무사를 동반해 현장 실사(맨아워 측정)를 하겠다고 했다. 업무량 과다, 노동강도 심화, 작업의 위험성이란 이유로 정당하게 작업을 거부했는데도 감시와 탄압, 협박의 수단으로 현장 실사를 강요했다. 노동자들은 감시성 현장 실사를 거부하고 회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회사는 5월 7일 조합원 간담회 때 노동조합이 현장 실사에 동의했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 관리소장은 조합원 각각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도와 달라”라고 얘기했다.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는 행동이었다. 업체관리소장은 회사 편을 드는 대의원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괴롭히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주겠다”라고 위협했다.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고소, 고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싸우고 있다. 회사는 해고 얘기까지 꺼내고 있다. 거대 글로벌 자동차 회사 안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운명은 풍전등화 상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꿋꿋하다. 불법파견 대상에서 제외된 식당, 청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원 부족, 과도한 업무, 저임금, 성희롱과 괴롭힘에 시달려 왔다. 불법파견 소송과 정규직화 투쟁으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화된 후, 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은폐됐다. 10년을 일한 김경숙 씨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이 안 된다. 수당이 붙어야 겨우 최저임금을 맞춘다. 4년을 일한 김은희 씨의 기본급도 최저임금이 안 된다. 이런 저임금 아래 고된 업무를 강요받아 왔다. 업무 범위는 갈수록 늘어났다. 김은희 씨는 쓰레기통만 37개를 비워야 한다. 그런데도 사측은 더 많은 쓰레기통을 비우라고 한다. 그것도 산업폐기물이 담긴 쓰레기통 청소를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들은 단지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대형 건물이 즐비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청소 노동자 수는 대략 150명뿐이다. 빵과장미는 부당한 업무지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여성 조합원 김경숙 씨와 그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는 조합원 이삭 씨를 만났다. 조합원들이 피켓시위 중이다 노동자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의 일부 어떤 대의원은 해당 업무가 10년 이상 동일한 조건으로 수행되어 온 일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23년 8월 공장이 개축되면서 처음 업무 지시가 내려왔는데, 기존 업무에서 추가된 것이다. 신축 공장 전체를 다 청소하라고 했다. 모두 6열인데 1열에만 최대 90대의 차량이 들어간다. 너무나 부당한 지시여서 거부했다. 그랬더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왜 안 하냐라며 해고하겠다고 했다. 어떤 대의원은 조합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업무 수행에 합의한 것인데, 기초적인 업무조차 이행되지 않아 민망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다. 협의라는 말을 가장해 부당하게 업무를 지시하려고 했다. 단체협상에는 회사와 대의원이 협의한 뒤 노조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협의를 해놓고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 현장 소장에게 항의했더니 ‘내가 노력한다고 했지, 언제 지킨다고 했냐’고 그랬다. 어떤 대의원은 한 분은 쓰레기통 3개, 다른 한 분은 쓰레기통 4개만을 담당하는데도 이를 과중하다고 주장한다고 비난한다. 어떻게 봐도 3~4개라는 근거는 없다. 김은희 조합원이 청소하는 쓰레기통만 37개다. 사무실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계속 봐야 한다. 쓰레기 봉지에 담으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또 회사는 처음에는 신공장을 ‘현장’이라고 말했는데 이후에는 현장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현장이라고 하면 불법파견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친환경을 말하며 전기차를 생산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어떤가? 회사는 친환경을 말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이나 권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번 논란도 전기차 생산공장 신축을 계기로 발생했다. 회사는 주종을 전기차로 바꾸면서 공장을 새로 지었다. 그러면서 청소 구역이 늘어나자 나(김경숙)를 본보기로 삼았다. 그래서 회사로서는 내가 꼭 그들이 요구하는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는 다른 하청 업체에서는 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아무데도 하고 있지 않다. 쓰레기도 일반쓰레기만 하기로 했는데, 산업폐기물이 다 들어왔다. 휴지통에 잔뜩 쌓여 있었다. 깨진 유리나 금속, 플라스틱 등 험한 게 많다. 회사가 아무런 설명이나 보호 장비도 없이 산업폐기물 청소를 시킨 것이다. 이런 쓰레기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사측이 조합원 개인정보를 남용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 비협조적인 조합원을 괴롭히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에게 전화해 그 조합원이 너무 힘들게 한다고 비방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남용해 조합원을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사장의 개인 비리라는 것은 무슨 내용인가? 사장이 자기 친동생을 채용해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몇 해 전 원청 직원들의 요구 사항을 수행하는 계약직 형태의 긴급대응팀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배치했다. 우리는 퇴직자들을 채용하라고 했지만, 긴급대응팀은 원청 총무과 소속이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난 5월 초 말을 바꿔서 사장의 친동생은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채용조건이 바뀌면 단협에 따라 알려야 하지만, 이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우리가 휴가를 내면 대체인력을 쓴다. 우리 임금을 대체인력에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긴급대응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주지 않은 임금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도급비가 착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통제받고 있다는 게 맞는가? 현대차든 기아차든 다 비슷한 게 노동자에게 악독하다. 표적이 되는 노동자가 있다고 하면 극심하게 사찰한다. 우리 역시 그렇다. 화장실 몇 번 가는지까지 점검한다, 화장실도 그렇고 근무지를 이탈하면, 그 현황을 분 단위로 기록한다. 근무자 이동 동선에 따라 회사 차량이 항상 대기하며 투쟁 노동자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어떤가? 환경업체는 남녀 비율이 2 대 8 정도지만, 여성 노동자를 위한 휴게실이나 화장실은 매우 부족하다. 전기차 때문에 건물을 하나 지어도 배려가 없다. 여자 화장실이 생긴 게 7~8년 전이다. 그때도 여자 화장실이 너무 멀어서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힘들어했다. 건물 한 동 규모가 거대한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옆 건물까지 가야 했다.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도 휴게실이 다 불편한 곳에 떨어져 있다. 화장실에 가려면 5분은 걸어가야 한다. 성희롱이나 성차별은 비일비재하다. 나(김경숙) 자신이 그 사례다. 성희롱 피해를 보았는데 오히려 해고된 적이 있다. 당시 투쟁을 통해 복직했는데, 원청 남성 직원을 위해 밥과 설거지를 시키더라. 원청 직원이 지나가다 중년 여성 노동자의 엉덩이를 때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가 피해를 본 사례들도 있다. 가령 한 원청 직원은 차에서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귓불을 만진 사례가 있다. 그래도 공론화해 봤자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소문만 무성해지고 가십을 계속 생산한다. 또 샤워장 청소 지시를 무표정하게 수행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한 원청 직원도 있었다. 괴롭히기 위해 매일 배수구에 컵라면을 버리거나 화장실 휴지통에 변을 발라 놓은 원청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원청 직원 눈 밖에 나면 힘드니까 다들 참는다. 노동자 안전은 어떤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뒷전이다. 가령 바닥을 기계식으로 청소하는 습진차에 쓰는 세제 약품들은 매우 독하다. 자동차 공장에선 기름때를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교육도 하고, 피복도 하고, 약품을 사용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주의하라는 스티커는 붙여 놓는다. 약품에 대한 설명은 그냥 유인물을 읽어주는 정도다. 카카오톡으로 안내문을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중고령 노동자이어서 못 열어보는 경우가 많다. 이 투쟁이 왜 중요한지 말해 달라. 원청에서 나를 성희롱했던 직원이 작전을 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밀어붙인 것을 최근 확인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찍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꼭 버텨야 한다. 또 내가 무너지면, 이 부당한 업무는 전체 조합원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래서 전체 조합원을 위해서라도 꼭 승리해야 한다. 이미 투쟁에 함께하는 조합원들의 수도 적지 않다. 우리는 함께 단결하여 우리 노동자의 권리를 반드시 쟁취할 것이다. (이 기사는 빵과장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말벌을 만나다#3] "해결이 안됐는데 냅두고 갈 순 없잖아요" 호랭이 글우 동지를 만나다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대선 시기에 들어서며, 광장에서 우리가 외쳤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집에서 민주당 지지안건 통과를 시도했고, 이미 전현직 간부와 단위노조의 민주당 지지가 줄지어 벌어졌다. 민주노총을 믿고 투쟁했던 말벌 동지들은 이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금도 고공투쟁중인 3개의 투쟁사업장을 비롯해 여러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고 있는 말벌동지들 중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세 번째 인터뷰이는 글우 동지다. 최근 세종호텔 투쟁문화제에 왔다면 ‘세종호텔 호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글우 동지가 호랑이 탈을 쓰고 세종호텔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생일파티로 시작된 세종호텔과의 인연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글우 동지는 어떤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을 함께 하게 되었을까? 광장이라는 두 글자로 압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글우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12·3 내란사태 이전에도 사회의제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주로 어느 방면에서였나요?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있으셨나요? 혹은 아예 없으셨나요? 처음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광장 집회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게 맞고요. 그 전에 집회, 시위에는 다녀본 적이 잘 없었어요. 예전에 혜화역에서 불법 촬영 반대집회나 미투운동 할 때 잠깐 참여했었는데, 제가 원래 연극 뮤지컬을 좋아해서 혜화역에 자주 방문하고, 가깝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거 외에는 솔직히 없었던 것 같아요. 12.3 내란 이후에는 언제 처음 나왔나요? 내란 터진 그 주의 주말 집회가 처음이었어요. 친구들끼리 같이 갔었는데,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9호선을 타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내려서 걸어갈 때도, 도착했을 때도 사람이 정말 많았고요. 사실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곳을 잘 가지도 않는지라 그런 인파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선결제’가 많아서 친구들이랑 국회로 가는 길에 누군가 선결제해준 음식을 수령해서 먹기도 했어요. 그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너무 오래 되어서 멀게 느껴져요. 그리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인지하지만, 친구들과 먹고 떠들고 하느라고 그렇게 무거운 느낌은 아니었던지라 크게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오래 전처럼 느껴지는군요. 세종호텔 투쟁, 혹은 넓게 보면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사안에 대해서 12.3 내란 이전에 무언가 알거나 또는 관심을 가지거나 그런 적이 있나요? 사실 알지 못했고, 제가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 퀴어퍼레이드 행진할 때 세종호텔을 지나갔는데요, 그때 세종호텔 동지들이 피켓 만들어서 연대해줬잖아요. 저도 그때 같이 행진하면서 봐서 기억은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찾아보거나 하진 않았어서 제대로 모르고 있었죠. 퀴어퍼레이드나, 불법촬영 반대시위 등 페미니즘, 퀴어 의제와 연관된 일들에 참여하곤 하셨었군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제가 참여하는 무언가는 다 저랑 가깝기 때문에 간다고 생각해요. 불법촬영도 여성들이 주로 겪었던 것이고, 저랑 멀리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혜화역은 제가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쉽게 접하고 참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란 이전에는 참 무지했다고 느끼기도 했고... 왜 몰랐고,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자주 했어요. 지금도 사실 제가 가까운, 다닐 수 있는 곳들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세종호텔은 어떻게 처음 알게 됐어요? 내란 이후 연대 시민들이 문화제에 참여하는 트윗을 보고, 세종호텔에서 매주 목요일에 문화제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세종호텔에 처음 가게 된 건 제 생일날 주간의 목요문화제였고, 다음날인 금요일이 생일이어서 농성장에 생일케이크를 들고 가서 먹었어요. 사실 ‘꼭 세종호텔에서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있던 건 아니고, 그 전에 크리스마스날에 광장 집회에서 어느 분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져와 나눠 드셨다는 트윗을 봤는데, 그게 저는 너무 부럽고 좋아보였어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맛있는 걸 나눠 먹고, 함께한다는 게 아름다워서요. 제 생일날에도 함께한다면 저에게 의미 있는 생일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세종호텔에 왔다가 ‘아 그래 이렇게 싸우는구나’ 하고 그냥 돌아갈 수도 있잖아요. 근데 왜 이렇게 계속 나오게 된 건가요? 그냥 돌아가는 경우는 상상이 안 가요. 생일날 저녁에 3시간 동안 농성장에 있으면서 세종호텔 동지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투쟁이 있었는지 고진수 동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많이 와닿았는데요. 기사와 선전물의 글도 봤지만, 글로만 읽을 때는 누군가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다면, 투쟁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누군가가 아닌 내 앞에 있는 동지의 투쟁이라고 느꼈고,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엄청난 걸 하겠다는건 아니고 그냥 ‘목요문화제를 열심히 참석하고, 세종호텔 투쟁을 알려야겠다’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진수 동지가 고공농성을 시작하고 나서는 일주일에 7일을 세종호텔에 가게 됐죠. 저는 원래 정이 많은데, 그래서 이렇게 계속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동지들이 이렇게 투쟁하고, 사람이 고공에 있는데 그냥 두고 살아갈 수는 없어서요. Q2.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고 난 후로 스스로 가장 변화했다고 느끼신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혹시 그것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정치적 입장과도 연관이 있다면, 조금만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바뀌긴 했는데,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정치에 대해서 그 전보다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있지만요. 저는 원래 누구랑 다투는 것도 싫어하고, 싸우는 것도 싫어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도 싫어해요. 그래서 말하는 걸 잘 못하기도 하고, 보통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문제는 이제 그렇게 안 넘어가고 싶더라고요. 누군가 그런 싸움이 필요하다 하면 함께 싸울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투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잘 행동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최근에 집에 가는데, 인도에서 오토바이 타신 분이 넘어지셨어요. 옛날 같으면 지켜보다가 그냥 갔을 것 같은데, 지금은 먼저 달려가서 돕게 되는, 그런 행동이 바뀐 것 같아요. 지금은 전보다 예민해진 것 같아요. 예민하면 피곤하잖아요 솔직히. 그래서 예전에는 좀 둔감하게 살려고 했고. 지나가다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도, 한두번 힐끔거리다가 그냥 갔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한 번 더 신경 쓰게 되고, 어떤 상황인지 알려고 행동하게 된 것 같아요. ‘세상에 지지 말아요’ 노래가 생각이 나네요. “좀 더 예민하게 세상을 봐요”라는 가사가요. Q3. 윤석열 퇴진 광장 속에서 대안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개중에서도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이끌리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특별히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이끌렸던 건 아니긴 해요. 원래는 성소수자와 장애인 인권운동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세종호텔 동지들과 함께하다 보니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는 투쟁이, 그렇게 노동자 투쟁에 국한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니는 거 보면 그런 것 같긴 하네요.(웃음) 넓고, 다양한 문제들에 연대하고 싶은데, 투쟁은 많고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걸 느끼곤 해요. Q4. 결국 윤석열은 노동자민중의 이름으로 파면을 선고받았습니다. 윤석열 파면 광장도 일단락되며 퇴진 이후를 향해가는 사회대개혁의 광장이 새로이 열렸고요. 그러나 혹시 개인적으로 평가하시는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의 가장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파면 이후 조직된 노동자 운동(민주노총)에 바라는 점 또는 조직된 운동(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길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어느 순간 편 가르기가 되던 게 제일 아쉬웠던 것 같아요. ‘왜 응원봉을 갖다 쓰냐’, ‘퀴어를 갖다 붙이냐’ 같은 말들. 트위터에서 ‘퀴어 얘기하느라고 여성을 얘기 안 해준다’ 뭐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게 저는 사실 너무 이해가 안 가고 답답했거든요. SNS에서 사람들이 많이 싸우잖아요. 계정 뒤에 사람이 있는 걸 모르는 것처럼 공격적인 말과 혐오발언이 너무 많았어요…그런 글들을 보면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할까’라고 고민도 해봤지만 이해할 수 없었고요. 민주노총은 양경수 위원장이 루프탑 파티를 한다는 걸 보고 정말 실망했었어요. 음식도 틀리고, 날짜도 틀리고, 장소도 틀리고. 세 가지가 다 틀려가지고. 비건 동지들도 있는데, 바베큐 파티에다가, (고공투쟁사업장 집회를 하는) 목요일이고, 루프탑에서. 그런데 글이 올라오고나서 많은 동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는데도, 그 비판점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것도 참 화가 났어요. Q5. 최근 민주노총 중집에서의 대선방침 논의 이후 민주노총 전체 차원에서의 민주당과 정책협약 시도가 언론화되며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의 직전에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민주당 단일화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동지께서는 보수양당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지막 질문이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 대한 생각이잖아요. 그 질문을 보고 전진이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글을 읽어봤었거든요. 거기에 당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써 있던데 ‘사회주의노동당’이 만들어지면 괜찮지 않을까요?(웃음) 어떤 의미에서 괜찮을 것 같나요?(웃음)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해요. 민주당이나 다른 정당에서 해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제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어서, 질문을 듣고도 생각나는 의견이 없더라고요. 현재의 노동자 권리가 너무 낮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서, 그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운동을 하려면 확실히 당이 있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전진이랑 민주노동당은 생각의 차이가 꽤 있는데, 민주노동당도 나름대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얘기하고, 그래서 지금 민주당과 단일화 안 하고 따로 가고 있잖아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원래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진짜 없어가지고 잘 모르겠는데, 현장을 다니다 보면은 노동당 조끼나, 녹색당 대표님이나 이런 분들 많이 보잖아요. 오늘도 팔레스타인 집회에 있으셨고. 그런 걸 보면서, 투쟁현장에 어떤 정치인이 오고 또 발언해주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들어요. 그런 당을 지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근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어떤 정당에서 정치인이 와서 ‘투쟁을 지지해준다’라는 게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고요. 거꾸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잘 뭉치고 모여서, 그 힘을 바탕으로 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투쟁하는 이들이 주체가 되는 당인 거죠. 이들의 요구가 당의 요구가 되고요. 당은 계급투쟁의 한 가지 수단인 거죠. 그래서 정치인이 그 자체로 어떤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힘을 주기 위해 지지하러 오거나, 도와주러 오거나, 이런 게 아니라 투쟁의 힘이 정치적 형태로 표현되면 그게 곧 당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최종적으로 좋을 것 같긴 하네요. 지금은 일단 그런 당이 없다 보니까… 아직 그런 당이 존재하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던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Q6. 모두가 ‘사회대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퇴진 이후를 그리는 상도 저마다 각기 조금씩은 다른 만큼, 그 디테일의 차이도 천차만별인데요. 윤석열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을 말할 때, 동지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또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 주세요. 거시적으로 말하면 ‘모든 차별과 배제가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걸 이루기 위해 제가 투쟁이나 집회에 나간다고 생각해요. 부당해고 당하거나, 피해 받은 노동자 분들이 복직하고, 투쟁사업장들 문제가 제대로 해결돼야 하고, 차별금지법도 당연히 제정돼야 하고,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미 광장에서 저희가 다 외쳤던 거잖아요. 근데 해결된 게 윤석열 탄핵밖에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해요. 그리고 윤석열 탄핵되고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다는 게, 참 아쉬운 것 같아요. 동지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실 계획이세요? 활동이요..?(웃음) 계속 연대는 다니겠죠. 근데…잘 모르겠어요. 요즘은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해결된 문제가 별로 없고, 진행상황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이게 참 답답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사실 제가 뭔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방안을 혼자서 생각해 보다가도, ‘내가 생각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라면 이미 (세종호텔) 공대위 쪽에서 뭔가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했어요. 나름대로 집회에 참여하고, SNS도 열심히 올리고 있긴 하지만, 가끔 ‘내가 하는 일들이 도움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어떻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도시는군요. ‘어떻게 하면 고진수가 이겨서 내려오나’ 그게 가장 크죠. ‘일단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면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주변 친구들한테 많이 얘기하긴 하거든요. “세종호텔 놀러와라, 명동와라” 근데 잘 안와주더라고요. 쉽지 않더라고요. 답답하고, 해결될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도 계속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해결 안 됐으니까 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그렇다고…냅두고 갈 순 없잖아요. 우문현답이네요. Q7.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나 소감이 있다면, 남기지 말고 전부 들려주세요. 어렵네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어요. 들어가서 단체 소개도 읽고, 홈페이지를 봤는데 이것저것 많은 글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렇게 정리를 해놓고 홈페이지 홍보를 안 했을까’라고 생각을 했고요. 진다 동지한테 얘기하니까 ‘그 사람들은 후원계좌도 홍보를 안 한다’고 얘기해 줬어요. 전진이 뭐하는 집단인지 모를 때부터 전진 멤버들은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제가 고진수 동지랑 처음 봤을 때 이청우 동지도 봤었고요. 양동민 동지도, 정은희 동지, 백종성 동지도 전진 소속이시고. 그래서 ‘주변 동지들 중에 전진 소속이 많구나. 뭐 하는 데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광장에서 부스가 되게 구석에 있더라고요. 한번 봤었는데, 너무 구석에 있어서, ‘왜 저렇게 안 보이는 곳에다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안 보이는 데 있는 거를 눈여겨 봐주셨네요. 깃발이 커다랗고, 무지개였어서 잘 보였어요.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전진이 어떤 단체고, 어떤 걸 하는지.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트위터의 여성뉴스브리핑 계정을 알게 되어서 구독하고 기사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팔로워가 14명이더라고요..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투쟁 사업장들도, 전진 단체도.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탄핵 후 첫 서울퀴어퍼레이드, 노동자 안에 퀴어 있다!1. 탄핵 후 첫 서울퀴어퍼레이드, 노동자 안에 퀴어 있다! 사진 출처: 신유아 6월 14일, 서울 도심에서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날,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메인 행사인 퀴어퍼레이드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슬로건으로 개최되었다. 무지개 행진차량과 깃발과 피켓, 다양한 소품과 장신구로 행진에 나선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3km를 행진하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열렬히 옹호하고 자긍심을 만끽했다. 주최 측은 이날 전체 행사 참여자를 17만 명으로 추산, 역대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이하 퀴퍼)가 예년과 다른 점은 단연 행진 1호 차량이었다. 1호차는 고공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 투쟁사업장인 세종호텔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세 곳이 함께 이룬 차량으로 투쟁하는 노동자와 말벌대오, 팔레스타인 연대대오가 합류하는 차량이었다. 무려 100m가 넘는 행진 대오는 ‘노동자 안에 퀴어 있다, 퀴어 안에 노동자 있다’라는 타이틀과 거통고의 연대투쟁호를 앞세우며 노동자 운동으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 운동을 해 나가자며 선두에서 대오를 이끌었다. 퀴퍼 행렬을 이룬 참가자들은 거통고 고공농성장 앞을 지나며 “김형수 힘내라!”라고 외쳤고, 2022년부터 매년 퀴퍼를 응원한 세종호텔 농성장 앞을 지나며 “고진수 힘내라”라고 외쳤다. 옵티칼 국민청원 서명은 퀴퍼 참가자들이 서명에 대거 참여하면서 폭넓게 알려져 35시간 만에 1만 5,000명 서명을 추가로 조직해 5만 명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퀴퍼 주최 측에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부스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동조하는 영국와 독일대사관이 참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참여하지 않았고 어떤 국가기관도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처음으로 질병관리청이 부스에 참여해 HIV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젠더폭력 가해자인 고 김기홍(전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에 대해 서울퀴어문화축제와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가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고 김기홍을 추모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참가자가 적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연대 단위는 부스 행사장 입구에서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서명과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참조 기사>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61415570849598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202803.html 2. 요양보호사 지원 축소, 인력난 심화 부추기는 정부 정책 정부가 요양보호사의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폐지 혹은 변경하면서 일선 현장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을 입소자 2.3명당 1명에서 2.1명당 1명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2011년부터 시행해 온 ‘요양보호사 추가배치 가산제’를 폐지했다. 이로 인해 기준 이상 인력을 고용한 시설에 지급되던 인건비 지원금이 전면 중단됐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제도도 바꿨다. 기존에는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교육비의 45%를 지원했으나 올해부터 교육비의 90%를 수강자가 선납하고, 6개월 이내 취업 후 180일 이상 근속해야 환급받을 수 있게 됐다. 한층 까다로워진 지원 기준으로 인해 요양시설은 인력감축 압력에 직면해 있고, 교육기관은 수강생 이탈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757 3. “불안한 체류, 저임금, 열악한 노동권”…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 실태조사 결과 발표 사진출처: 공항사진기자단, 경향신문>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돌봄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체류자격 및 과도한 가사 업무,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시간 등 심각한 문제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특별시의회와 이주가사돌봄연대는 지난 12일,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토론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시행했다. 서울특별시의회와 이주가사돌봄연대는 토론회를 통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돌봄노동자 21명을 심층조사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참여자들은 체류 불안정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들은 비전문인력 이주노동자 채용을 위한 비자인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했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비자가 3년까지 연장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다른 고용허가제 노동자(4년 10개월)보다 2년 가까이 짧은 기간이다. 이마저도 실제 연장기한은 3개월~1년에 그쳤다. 참여자들은 “업체가 비자로 위협한다”, “추방될까봐 두려웠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아동 돌봄전문가로 입국했지만 실제로는 가사돌봄업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참여자 가운데 A씨는 “고객 2명 중 1명의 고객 집에서만 케어기버(돌봄전문가)로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B씨는 “온 집을 다 청소한 다음에야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증언했다. C씨는 “계약을 맺을 때는 아이 돌봄 계약에 사인했지만, 지금까지 아이를 하나도 돌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임금도 최저시급을 적용받지만 주거비, 보험, 휴대폰비, 소득세 등 공제액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90만~130만 원에 그쳤다. 반면 업무는 명확한 경계 없이 확장됐다. 일부 노동자들은 고용주 가족의 친척 집까지 가서 청소를 하고,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지도하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심지어 아이가 자는 동안에도 부모와의 영어 회화를 계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미애 서울대 아시아이주센터 공동연구원은 “필리핀 돌봄노동자들의 문제는 개별 사례가 아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라며 “체류 안정성 보장, 노동권 강화, 양질의 돌봄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속가능한 돌봄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저임금의 이주가사돌봄노동자’에서 돌봄 문제의 대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평등한 돌봄으로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21654001 4. 성소수자 청소년 10년 숨죽인 통계, 공공이 손 놓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절박한 외침을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비영리 민간단체 ‘띵동’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밝힌 안타까운 사실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띵동’의 성소수자 청소년 상담이 500건을 넘어섰다. 성소수자 청소년 가운데 대다수는 학업은 물론 생존을 위협받는 수준의 차별, 혐오, 고립을 겪고 있다. 공공 차원에서 이루어진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실태조사는 지난 2015년 국가인권위의 조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소년의 92%가 “차별·괴롭힘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다”라고 응답했고, 80% 이상이 교사·또래로부터 혐오 표현을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더 이상 이들의 실태를 파악하지 않았고, 구체적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성소수자 청소년이 ‘언제, 얼마나’ 존재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고립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띵동’의 상담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자해 또는 자살 위기에 몰린 청소년 또한 매년 30명가량에 이른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가정과 학교, 더 나아가 사회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된다. 이들의 정체성은 부정되거나 놀림거리가 되고, 정부 차원의 조사나 현황 파악은 없는 실정이다. 여러 연구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일반 인구보다 자살시도율과 자살성 사고의 빈도가 높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그 어떤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듯 자살 관련 통계에서조차 비가시화된다. 정부의 자살예방 기본계획에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국가가 성소수자 인권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제라도 정부와 사회가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허물어야 할 때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이 차별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인권과 안전을 보장받도록 공공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ytn.co.kr/_ln/0103_202506150513432275 5. 유럽 수천 명 시위대, 가자지구와 자유 항해단을 위해 나서다 6월 9일, 12명의 ‘자유항해단(la flottille de la liberté)’ 수천 명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시위에 나섰다. 그 이유는 활동가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체포되고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압박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자 해안 57km 해상에서 봉쇄를 뚫기 위해 항해 중이던 구호선 매들린(Madleen)의 억류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시위는 툴루즈, 스트라스부르, 브뤼셀 등 여러 도시에서 자발적인 연대 시위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 주민들을 라파 지역에 몰아넣은 뒤 대규모 폭격과 식량 봉쇄를 통해 사실상의 집단학살을 감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호물자 전달조차 군대나 무장 세력의 약탈 대상이 되며, 민간인을 향한 총격도 발생했다. 그런데도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외면했다. 이런 침묵 속에서도 항만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계급적 연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포쉬 쉬르메르와 이탈리아 제노바의 항만 노동자들이 이스라엘로 향하는 무기 수송을 막았으며, 이는 학살을 멈추기 위한 노동계의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거리 시위를 넘어선 조직된 총파업과 집단행동이 지금, 절실하다. <참조 기사> https://www.revolutionpermanente.fr/Des-milliers-de-manifestants-pour-Gaza-et-la-flottille-de-la-liberte-construisons-une-mobilisation 6. 인도 사탕수수 노동자들, 자궁적출 수술 강요에 분노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활동가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자궁적출 수술을 받도록 여전히 강요받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자들이 자궁적출 수술을 강요받는 이유는 생리통 없이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여성 노동자들은 직접 손으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모으고, 들어 올려 트럭이나 트랙터에 싣는 등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임금은 하루 4파운드(약 7,000원)도 안 되는 저임금이다. 거기에 결근이나 작업 누락 시 벌금까지 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측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자궁적출술을 받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마하라슈트라 주 NGO들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마하라슈트라 주의 주요 사탕수수 생산지 중 하나인 비드 지역 여성의 자궁적출술률은 36%로, 전국 평균 3%에 비해 훨씬 높았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25세 미만의 여성을 포함해 해당 지역의 사탕수수 생산자 13,000명 이상이 자궁적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에는 25세 미만의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이후 여성 건강 검진 등 여러 개혁 조치가 도입되었지만, 활동가들은 수술 강요를 막기 위한 실질적 조치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 농업 노동자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연합의 대변인인 시마 쿨카르니는 “이들은 생리 중에도, 임신 중에도, 유산 중에도 단 하루도 쉴 수 없습니다. 이들는 모든 면에서 ‘노예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루를 쉬면 하루치 임금을 잃을 뿐 아니라 노동 계약자에게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라며 분노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25/jun/12/outrage-as-sugar-cane-workers-in-india-still-being-pushed-into-having-hysterectomies?CMP=Share_AndroidApp_Other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2[편집자 주] 202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히메나 베르가라의 이 글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계급적·국제주의적 전략을 제시한다. 본 번역은 글의 분량상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전편 읽기]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1 팔레스타인 공산주의 운동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급격히 확산시켰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급진적 청년들이 국제적 혁명 사상 아래 결집하였고, 수백 개의 새로운 공산당이 탄생했다. 1919년 볼셰비키당의 지도 하에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설립되었다. 1920년, 블라디미르 레닌과 레온 트로츠키가 지도자로 있던 제3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반식민 ·민족해방 투쟁을 극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다루었다. 레닌은 1920년 「민족·식민지 문제에 대한 테제」에서 전 세계의 공산당이 “(식민지에서의) 혁명운동 전반을 물질적·정신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레닌은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이러한 적극적 지지는 “성직자, 기독교 선교사 및 이와 유사한 요소들의 반동적이고 중세적인 영향력에 맞선 투쟁”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해방운동을 현지 반동세력의 강화 시도와 결합하려는 범이슬람주의와 유사한 경향에 맞선 투쟁과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1920년 볼셰비키는 제2차 코민테른 대회의 일환으로 아제르바이잔에서 동방인민대회(Congress of the Peoples of the East)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이란, 이집트, 팔레스타인, 터키, 인도 및 기타 아시아, 중동 국가에서 2,85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대회의 회의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학자 피에르 브루에의 연구에 따르면 회의 결의안 중 하나는 “동방 민중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반식민 투쟁에 나설 붉은 군대(Red Army)와 함께 싸울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1) 1) Broué, Pierre. Histoire de l’Internationale communiste (1919-1943). Éditions Fayard. 1997 동방인민대회는 영국 제국주의가 시온주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아랍인과 유대인을 분열시켰다고 선언했다. (영국은)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땅을 주기 위해 아랍인들을 몰아냈다. 그러고는 아랍인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바로 그 유대인 정착민들을 적대하도록 아랍인들을 선동해 모든 공동체 사이에 불화와 적대감, 증오를 심어 양측의 관계를 약화시켰다. 이는 (영국이) 이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역사학자 랜 그린스타인(Ran Greenstein)의 설명에 따르면, 동방인민대회의 일반적 입장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시온주의를 규탄하며, 제국주의와 협력하는 아랍 및 유대 세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동방인민대회는 터키, 이란, 이집트, 인도, 팔레스타인에서 새로운 공산당이 설립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1920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동방인민대회 팔레스타인공산당은 1924년 유대인 반시온주의 운동가들과 지식인들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공산당의 전략적 노선은 영국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아랍과 유대인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 이는 첫 세 차례의 코민테른 대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한편, 시온주의 점령에서 비롯되는 긴장이 아랍 대중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유대인 노동자와 지식인에 대해 점점 더 적대적 태도를 드러내면서,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정책은 갈수록 당시 흐름과 충돌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공산당은 식민지와 팔레스타인 문제 전반에 대해 제3인터내셔널의 정치적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제국주의의 압제와 점증하는 시온주의 식민화로부터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는 문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새롭고도 중요한 이론적 문제를 제기했다. 신생 팔레스타인공산당의 노선은 미숙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20년대 내내 전개된 좌익반대파와 스탈린 주도로 나날이 강해지는 소련 관료집단의 정치투쟁으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창당 초기부터, 팔레스타인공산당은 급진화된 유대인 청년층 일부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팔레스타인 아랍 대중 사이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공산당은 1920년대 말부터 ‘아랍화’2) 정책이라는 굴곡진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한창 스탈린주의화되어가던 코민테른에 의해 추진되었다. 2) (역자주) 팔레스타인공산당이 거쳐온 '아랍화'는 창당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전신은 1919년 설립된 '유대사회주의노동자당(Jewish Socialist Workers Party)'이었는데, 전 세계 유대인 좌파노동자연맹인 ‘시온의 노동자들’(Poalei Zion)에 속하던 이 당은 좌파 시온주의 경향에 의해 주도되었다. 유대사회주의노동자당이 코민테른 가입을 신청하자, 코민테른 지도부는 가입 조건으로 '아랍화' 정책을 주문한다. 아랍화는 당내 주류였던 좌파 시온주의와의 단절로, 유대인으로만 구성된 당에 아랍인 당원을 조직·포함하도록 하고, 시온주의적 공동체 및 조직에 기반해온 기존 조직화 범위를 전체 아랍 민중으로 확장하고, 당이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과 유대인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명칭을 변경하는 조치를 포함했다. 시온주의 경향과 반시온주의 경향 간의 격렬한 당내 대립 하에 1921년 3차 당대회를 거치며 유대사회주의노동자당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를 대표하는 공산당의 유대민족 지부를 의미하는 '팔레스타인공산당유대공산당지부(Jewish Communist Party — Poalei Zion, section of the Palestine Communist Party)로 명칭을 변경한다. 그러나 이는 아랍인 당원과 아랍 민족 지부가 부재한 상태에서 상징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유대사회주의노동당이 시온주의 경향과 반시온주의 경향으로 분열하며 1923년 팔레스타인공산당이 설립되었고, 당 지도부가 아랍화 정책을 수용하며 코민테른 지도부는 1924년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을 승인한다. 공산당의 첫 아랍인 당원 가입은 1924년에 이루어졌으며, 존속 기간 내내 전체 당원수가 1,000명을 넘지 못했다. 영국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공산당원 중 아랍인은 1930년에도 26명에 불과했다. 스탈린 집권 이후 제3인터내셔널 아래 아랍화 정책은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 이전의 '초좌파' 노선, 7차 대회 이후의 인민전선 노선 사이에서 혼란스럽게 전개된다. 7차 대회 이전, 코민테른은 팔레스타인공산당에 '노동자·농민의 정부' 구호와 함께 아랍 민족주의 지도부에 맞서 투쟁하라고 지시하였으나, 7차 대회 이후 팔레스타인공산당은 '반제국주의 인민전선' 노선에 따라 아랍 민족주의 지도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그린스타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공산당의 유대인 반시온주의 운동가들은 당내 유대계 주변부의 친시온주의적 편견에 적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수사적으로는 시온주의를 거부하고 영국의 위임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와 동시에 ‘이슈브 Yishuv’로 알려진 유대인 정착지를 “이민을 통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합법적인 공동체라며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장은, 나크바(Nakba) 이전 진행된 가장 중요한 유대인 집단이주 중 하나와 맞물려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심해지는 반유대주의를 피해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는데, 이는 각자의 식민주의적 목표를 가진 영국과 시온주의 자본가들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탈출한 유대인 난민 대다수는, 가혹한 이민 할당제3)와 강대국들의 정책에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예컨대, 미국은 유대인 난민 수십만 명의 입국을 막고 팔레스타인으로 피난가도록 압박했다. 3) (역자주) 당시 미국은 이민 할당제를 운용하여 출신 국가에 배당된 할당량(쿼터)에 따라 이민 비자를 신청순대로 발급하였다. 이와 동시에 이 지역 전체,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농민 대중의 불안이 고조되었다. 유대인 식민화에 반대하는 자생적 반란이 여러 촌락 공동체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야파에서 시작된 유대인 시위대 간 충돌이 팔레스타인 전역 아랍인-유대인 유혈사태로 파급된 1921년 야파 사태. 팔레스타인공산당은 식민에 맞선 아랍 민중의 저항과 충돌에 대해 답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소위 ‘아랍화’ 정책은, 혁명가들이 아랍의 전위적 집단, 특히 농촌에서 봉기하던 대중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혁명적 전망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랍화 정책은 근본적으로 1927년 중국 혁명 당시 스탈린주의가 수립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anti-imperialist united front”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 정책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으며, 각국에서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겠다고 자처하는 부르주아 혹은 소부르주아 지도부와의 정치적 동맹을 만들어냈다. 이 정책의 이론적 배경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해방 투쟁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3인터내셔널의 창립 원칙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이 정책은 소련이 관료화 과정을 겪는 동안 코민테른 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스탈린에게 있어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 투쟁은 부르주아적 성격을 띤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족해방을 생각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민족해방 투쟁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국민국가의 설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민족 자본가의 한 부문이며, 그러한 세력이 없다면 자본주의적 관계를 거스르지 않는 강령을 가진 소부르주아 지도부가 이 과정을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탈린이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아랍화' 정책을 추진한 동기는 아랍 지역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끌기 위해 아랍 대중들 사이에서 더 큰 유기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던 것이 아니라, 아랍 민족주의 지도부 및 '반제국주의' 아랍 국가들과 기회주의적 협정을 맺어 세계 질서 내에서 소련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있었다. 1924년부터 1930년까지 젊은 팔레스타인공산당은 한편으로는 영국과 점증하는 시온주의의 지배에 맞선 아랍 지도부의 민족주의적 압력에 굴복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온주의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청년층과 급진적 유대 지식인층의 초기 민족주의 정서에 굴복했다. 1929년, 식민 지배와 점증하는 시온주의자들의 이주가 만들어낸 긴장은 전국적인 충돌로 분출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노동자들의 대투쟁과 '대반란'의 서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팔레스타인공산당이 배포한 포스터. 히브리어로 '파시즘을 분쇄할 영웅적 붉은 군대 만세!', '소련 인민과 반파시스트 세계 전체의 지도자 스탈린 만세!' 라고 적혀 있다. 랜 그린필드는 이러한 (당내) 입장 차이가 계급투쟁의 압력과 아랍 대중 사이에서 증가하는 불만에 의해 어떻게 더욱 공고해졌는지 설명한다. 당은 아랍 대중에 대한 노선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민족 갈등의 심화, 특히 1936~39년 아랍 반란은 당원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는 1937년 자율적인 '유대인 분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반란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은 반대 방향, 즉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로 인해 1930년대 당이 아랍 민족투쟁 편에 섰을 때 당과 가까워졌던 아랍 지식인과 운동가들은 소외되었다. “당이 각자의 (민족:역자) 공동체에게 각자의 정치적 언어로 대화하고, 각자의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상황에 따라, 민족주의적 긴장이 당 내부에 반영되었다. 스탈린주의 정책의 이 명백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시온주의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47년 유엔 총회는 소련과 영국 및 미국 제국주의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을 결의했다. 팔레스타인공산당의 '아랍화'를 권고하고 아랍 민족주의 지도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식민지화를 위해 제국주의 열강과 협정을 맺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역사학자 가브리엘 고로데츠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련의 입장은 특히 놀랍다. 시온주의 체제에 대한 일관된 부정적 태도, 1929년 및 1936년 아랍 반란 당시 크렘린이 이슈브(Yishuv)를 영국 제국주의의 동맹이자 도구로 비난하며 취한 명시적인 친아랍 노선을 고려하면 말이다. 시오니즘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에서 열렬한 지지로 소련의 태도가 변화한 것은 종종 1941년 6월 21일 독일의 소련 침공과 관련되어 설명된다. 모스크바가 세계 유대인 및 팔레스타인의 이슈브와 맺은 유대 관계는, 러시아의 전쟁 노력에 세계 유대인 공동체의 지원을 끌어들일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에게 “나치 독일에 맞선 투쟁에서 최대한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방세계에서 광범위한 동맹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음을 시사한다. 히틀러가 스탈린과 체결한 협정을 파기한 제2차 세계대전의 역동4) 앞에서, 관료화된 코민테른은 민족해방 문제에 대한 180도 입장 선회를 “소련 방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했다. 이는 실제로는 소련의 영향권을 보장받기 위해, 국제 사회주의 혁명의 확장을 억제하는 대가로 제국주의와 협정을 맺는 행위와 다름 없었다.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라는 개념으로 이 정책을 이론적으로 포장했는데,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정면 부정이었다. 이는 소련 관료의 이익 증진을 대가로 한 피억압 민중의 투쟁에 대한 배신을 의미했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스탈린주의 소련은 민족해방의 경로로서 사회주의 혁명을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이라는 계급 화해 정책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근본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거부하는 논리를 팔레스타인 정책에 적용했다. 이 점은 스탈린주의 노선이 아랍 국가의 부르주아계급과 협정을 지향한 데서 명확히 드러났다. 4) (역자주) 나치 독일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2년 만에 파기하고 1941년 소련을 침공한 사건 1949년 5월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 스탈린 초상화가 걸린 트럭이 행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억압은 세계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제국주의는 현대 세계질서를 조직하고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한 시대다. 이 시기에 경제, 정치, 군사, 이데올로기적 권력은 제국주의 국민국가가 대표하고 옹호하는 기업들 수중에 집중된다. 그 결과 국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토지, 자연의 착취는 전 세계로 확장되며, 이는 모두 이윤 추구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것이다. 에스테반 메르카탄테(Esteban Mercatante)는 “세계 무질서 시대의 제국주의(Imperialism in Times of World Disorder)”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잠재적이든 실제적이든 제국주의 국가 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초국적 기업과 세계 금융자본의 지구 약탈은 결코 서로 대립하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현대 제국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동시에 접근해야 하는 두 가지 차원이다. 제국주의 이론을 정교화하기 위해 두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정립된 제국주의 이론은, 세계 자본과 가장 강력한 국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행동한 결과 세계 경제가 위계적 총체로 형성되었는다는 점을 설명한다. 제국주의는 정책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제국주의가 역사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역사발전의 결과, 혹은 그 발전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정의는 러시아 볼셰비키당과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이 역사적 시기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었으며, 이 단계의 자본주의는 위기, 전쟁, 혁명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반동적 시기를 나타낸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의 기본적 특성에서 비롯된 긴장의 첫 번째 큰 표현이었다. 이 기본적 특성이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금융자본으로의 융합, 자본수출을 끊임없이 지속하려는 강박적 욕구,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힘이 불균등한 국가들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국주의 기업에게 수탈당하며 제국주의 정부에 의해 억압받는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알제리, 시리아 등 식민지 및 반식민지로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많은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영국이 세계적 패권을 상실하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영국을 대신할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하려 시도하였다. 미국과 나치 독일은 그러한 국가 중 하나였다. 공식적인 역사는 항상 제2차 세계대전을 민주주의와 파시즘, 인권과 나치즘의 대결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실상은 세계 주요 강대국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수립을 촉진하고, 시장을 재편하고, 대규모 파괴와 살상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을 통제하고자 저지른 전 세계적 학살이다. 트로츠키는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사상」에서 레닌에게 경의를 표하며 제국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시장, 원자재 공급원, 세력권 등을 장악하고자 하는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침략자들에 맞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조국을 방어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 등의 이념으로 위장한다. 이러한 이념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다. 모든 사회주의자의 의무는 이를 지지하는 대신, 오히려 인민 앞에 그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다. 1915년 3월, 레닌은 다음과 같이 남겼다. “어느 집단이 먼저 군사적 타격을 가했느냐 또는 먼저 전쟁을 선포했느냐의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을 결정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국 방어, 적의 침략 격퇴, 방어 전쟁 수행 등에 관한 문구는 양측 모두가 인민을 완전히 기만하는 것이다.” 레닌은 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십년 간”, “세 강도(영국, 러시아, 프랑스 부르주아지와 정부)가 독일을 약탈하기 위해 무장했다. 세 강도가 주문한 새 칼을 얻기 전에 두 강도(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공격을 시작한 것이 놀라운 일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45년 8월, 미국이 서명 하나로 원자폭탄을 투하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하고 226,000명을 살해한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트루먼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10만 명을 수용하도록 촉구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제국주의가, 쇠퇴하는 대영제국의 과제를 이어받아 유대인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으로)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시온주의 국가에 할당했다. 이는 유대인들이 전체 팔레스타인 사유지의 약 7%만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나크바(Nakba)’, 즉 시온주의 민병대와 신생 이스라엘군이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집과 땅에서 폭력적으로 추방했을 때, 미 제국주의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주도한 목적이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의 배상이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정당화했다. 홀로코스트는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전쟁에 참가할 때까지 의도적으로 묵인되어온 비극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자신들의 지난 행보를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4분의 3을 폭력적으로 추방하는 데 자금을 지원하고 지시함으로써 정당화한 것이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초기 정착기인 신 이슈브(New Yishuv) 시대를 낭만적으로 묘사한 삽화 '어린 정원사들', 1960년대 유대민족기금(JNF) 발행 1948년 나크바로 인해 집과 터전을 잃고 피난길에 오른 팔레스타인인 아동과 여성들 시온주의 국가(Zionist state)는 그 기원부터 제국주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산물이다. 따라서 시온주의 국가는 ‘정착민 식민주의’, 즉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형태의 정착민 식민주의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며, 실행한다.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5) 아래 한 세기 간의 지배가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산물이다. 5) (역자주) 라틴어로 "미국에 의한 평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형성된 세계 질서를 의미,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에 의한 평화‘,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인 1~2세기에 걸쳐 지속된 고대 지중해 세계의 상대적 안정기)’에서 차용된 용어. 시온주의 국가는 그 식민주의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 세계 질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제국주의적 괴물이다. 레온 트로츠키는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두 가지 다른 미래를 제시했다.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제국주의의 대학살을 국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할 가능성,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 지배체제가 이 전쟁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전진한다면, 이는 스탈린주의와 같은 지도력의 타락을 막을 터였다. 에밀리오 알바몬테와 마티아스 마이에요는 「“부르주아 복고”의 한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이 두 가지 변수 중 어느 것도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완전히 처벌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 후 지구의 3분의 1에서 부르주아지가 축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퇴보로 이어지는 조건을 제거하지도 못했다. 붉은 군대의 손에 나치즘이 패배하면서 스탈린주의는 새로운 위신을 얻었고, 스탈린주의는 이 위신을 이용해 전후 혁명에 제동을 걸었다(얄타 및 포츠담 협정). 스탈린주의는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배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식민지와 반(半)식민지에서의 혁명은 억제할 수 없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주요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력은 중요한 모순을 안은 채 확립된 것이었다. 소련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공로가 아니라, 나치를 피비린내 나는 러시아의 겨울로 몰아넣은 프롤레타리아 군대인 ‘붉은 군대’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바로 이 특정한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은 유엔의 공모와 스탈린주의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 국가를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이익을 위한 거점으로서 인위적으로 관철해냈다. 나크바는 시온주의의 식민주의적 특성을 집약하는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의 이익을 확장하고 공고히 하는 과정의 중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두 국가 해법’을 옹호하는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일부 세력은, 시온주의 국가의 기원이 드러내는 본질적 측면, 즉 시온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해방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누락한다. 토지 강탈, 공동체 전체의 추방, 잔혹한 군대와 정착민 무장집단에 의한 인종청소 없이 이스라엘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제국주의 없이는 이스라엘 국가도 없다. -
[성명] 양경수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강행이 민주노총을 추락시키고 있다민주노총이 양경수 위원장의 사조직인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6월 24일 중앙위원회에 '국회 사회적 대화 참여 건'을 직권으로 상정했다. 이 논란은 작년 8월 국회의장 우원식이 민주노총에 '국회 주도의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이후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한 번도 '국회 사회적 대화'가 민주노총 의결기구에서 결정된 적이 없다. 양경수 집행부는 민주적 논의를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 독단적으로 이 안건을 밀어붙이고 있다. 양경수 집행부는 지난 대선방침 논의 때도 '보수 양당 정치 타파와 진보정치세력의 세력화'라는 기존 대의원대회 방침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결론 없는 종결', '지지 후보 없음'을 밀어붙였다. 자본가 정당과의 단절이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근본 대의를 짓밟고 이재명 지지의 길을 열어줬다. 역사에 길이 남을 배신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도 없이 다시 민주노조운동을 정부와 자본가들과의 협조로 이끌고 있다. 노동자의 손발을 묶는 사람들 5월 9일 국회의장실에서 도출된 '국회 사회적 대화 운영에 관한 잠정 합의안'을 보면 국회와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 단체가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기구의 취지와 목적은 '혁신', '보호', '상생'의 기치 하에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갈등 해결 방안 마련, 사회적 이해 대변 주체들의 능동적 정책 참가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의결기구의 결정도 없이 잠정합의를 추진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나아가 그 내용은 반노동적 기만으로 가득차 있다. '혁신', '보호', '상생'의 기치? 그동안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입만 열면 떠들었던 얘기가 아닌가? 사회적 이해 대변의 주체? 경총, 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자본가계급의 이해 말고 다른 이해를 대변한 적이 있었던가? 의제별 협의체는 두 개가 제시됐는데 혁신 의제의 명칭은 '첨단·신산업 분야 경쟁력 강화'이고 보호 의제의 명칭은 '특수고용·플랫폼노동, 프리랜서 사회보험 및 사회안전망'이다. 지금도 정부와 국회는 재벌 특혜, 반노동·반환경 악법인 반도체특별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어제 최저임금위원회는 2026년에도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런 정부와 국회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함께 앉아 자본의 경쟁력 강화 방법을 논의해 노동자들의 생존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가? 국회 사회적 대화 기구가 열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와 자본가들은 극심해지는 경제위기를 거론하며 정리해고·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재벌 대자본의 초과 착취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철밥통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양보 없이는 그 어떤 혁신도, 그 어떤 경쟁력 강화도 불가능하다며 민주노총을 공격할 것이다. 문성현은 경사노위 위원장 시절에 민주노총에게 "투쟁할 생각이면 들어오지도 마라"고 했다. 이게 저들의 분명한 속셈이다. 독 묻은 사과를 거부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지켜내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했던 노사정위원회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숱한 노사정 기구, 노사정 대화의 경험은 둘 중 하나다.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거나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거나. 물론 그 사이 노동자들의 손과 발은 묶인다. 그런데도 민주적 논의 절차마저 무시하고,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면서까지 사회적 대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명 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가? 분명히 묻는다. 정말 다른가?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합의해 주고, 기간제법,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악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상이었다. 양경수 집행부는 이 범죄적 환상을 그대로 공유하며, 민주노조운동을 끝없는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임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에 참여하려다 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사퇴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합의주의에 경도된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민주노조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민주성조차 내다버린 채 다시 '사회적 대화'라는 독 묻은 사과를 노동자들에게 내밀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와 경사노위에 이어, 이제는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개악을 민주노조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민주노조운동의 모든 역사가 보여주듯, 또한 역대 민주당 정부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관철한 수많은 노동악법에서 보여주듯, ‘사회적 대화’에 대한 환상은 노동자들의 양보와 굴종으로 이어질 뿐이다. 모든 진지한 투사들과 활동가들이 나서야 한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자! 민주노총의 민주성, 자주성, 투쟁성을 회복하고 투쟁 태세를 갖추자! 자본가 정부, 자본가 의회에 대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지켜내자! 2025년 6월 12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