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말벌을 만나다#6]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먹고사니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 요지경 동지를 만나다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2025년 여름의 초입이던 5월 14일, 한 말벌동지를 만났다. 금속노조 조끼를 당당히 입고 서대문 인근의 카페에 나타난 그는 바로 요지경 동지. 요지경 동지는 지난 윤석열 퇴진 광장을 통해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거통고지회가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자신의 삶과도 너무나 맞닿아 있다고 느껴 선뜻 민주노조에 발을 들였다고 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격화하는 지금, 2030 청년의 삶에 맞닿는 민주노조의 투쟁이란 무엇일까? 민주노조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까? 여러가지를 묻고 들었다. Q1. 12·3 내란사태 이전에도 사회의제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주로 어느 방면에서였나요? 처음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지경: 계엄령 직후의 시위부터 나가기는 했어요. 초반에는 열심히 나가지는 못했는데, 시위 장소가 바뀌고 나선 퇴근하고 나갈 시간이 생겼거든요. 그때부터는 안 놓치고 나가려고 노력했고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지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 나왔냐라고 물어보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는 게 제일 맞는 대답인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지만 이전에도 시위를 나가긴 했었거든요. 내란 직전 마지막 나갔던 시위는 딥페이크 규탄 집회예요. 그때 지혜복 선생님 발언을 듣고 A학교 문제를 알게 되기도 했고요. 그 밖에는 기후 의제, 장애인 인권, 퀴어 퍼레이드 나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계엄 당시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계엄령 자체가 먼 과거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계엄이 터졌다'고 하니까 너무 막막하고 당황스러웠어요.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잠을 한숨도 못 잔 채로 1시간 일찍 출근했어요. 밤 새고 출근했는데 신문사 사람들은 미리 나와서 대응 준비를 했더라고요. 제가 기사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어서, 저를 일찍 부르지는 않았는데 기자들이나 조판 작업하시는 분들은 일찍부터 나와서 새벽 내내 일하셨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계엄에 대한 첫 인상은, "너무너무 무서운데 동시에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계엄 세력이 우리를 얕잡아봤을 가능성도 있지만요. 계엄이라는 게, 역사 교과서에서 배울 때는 발동되면 돌이키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박정희 때도 그렇고. 그런데 윤석열이 계엄 포고를 하니까 당일 제압되는 거예요.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억압과 탄압에 관한 증거는 굉장히 많이 나왔지만, 계엄군 측 손발이 안 맞았던 부분들이 저를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위협을 크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런 게 대통령이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원: 그렇군요. 언론사에서 일하셨다고 하니 내란 전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은 있으셨겠네요. 지경: 네. 인권 문제라든가. 저는 주로 관심있는 이슈가, 사실 동생이 발달장애인이어서요. 장애인 관련 의제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것 같아요. 직접 집회에 참여하진 않았어도 소식을 챙겨 본다든지, 뉴스에 대해 의견을 낸다든지 했어요. Q2.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고 난 후 스스로 가장 변화했다고 느끼신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혹시 그것이 사회를 보는 관점이나 정치적 입장과도 연관이 있다면,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지경: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한데, 따지자면 많이 안 변한 것 같기도 해요. 애매한 부분이에요. 제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이런저런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의제에 대해 직접 말하기 시작하면서 "'급속꿘화(급속 운동권화)' 됐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저를 알던 사람들은 "넌 원래 그랬다"라는 이야기도 꽤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란 직후에 표현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란 전에는 공개적으로 의견도 잘 내지 않았고, 아직도 제가 광장에 나와 직접 발언해 본 경우는 손에 꼽거든요. 원래도 무대를 좀 힘들어 해서, 발언도 잘 안 하고 얘기도 잘 안 하고. 트위터로 따지면, 비공개 계정에서만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인터뷰를 하거나, 기획이 있으면 참여를 하고. 이렇게 표현하게 된 것이 저한테는 크게 바뀐 지점인 것 같아요. 더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게 된 거죠. 지원: 사람들이 쳐다봐도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나가는 것도 '더 드러내게 됐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지경: 그런 점도 있지만, 사실 저는 제 옷차림이든 남의 옷차림이든 많이 신경 쓰지 않기도 해요. 원래도 저는 논 바이너리로 정체화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외향에 집착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그게 실제로 잘 되든 안 되든 그렇게 생각하고 다니기 때문에. 게다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조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도 큰 저항감은 없었어요. 주변에서 약간 신기하게 보긴 하죠. 많이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까요. 사실 제가 정의당 당적이 있어요. 2022년 대선 직후 가입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 당 지도부에 대한 회의감이 컸거든요. 그때 당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였고, 동의할 수 없는 점이 많았어요. 이 사람들이 대선에서 보여줬던 모습이랑 실제로 국회에서 활동하는, 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 간의 괴리가 저한테는 너무 큰 거예요. 그래서 지도부가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원외로 나오고 지도부가 바뀌면서, 제가 원하는 '아스팔트 위에서 시작하는 정치'라는 느낌으로 어느 정도 당이 굴러가기 시작한 거죠. 탈당 고민을 해왔었는데, 남아 있기 잘했다라는 생각을 탄핵 정국 동안 조금 했거든요. 사실 저는 막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를 사민주의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당시 정의당이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니까요. 자꾸 '제3지대'로 가려고 하고, 이준석과 함께 하는 해당행위(害黨行爲)자들까지 나타나고. 정의당 세력도 줄어들었지만, 사실 당에 대한 신뢰가 많이 깨진 거죠. 그런데도 남은 사람들이 나름 열심히 해서 대선 운동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지금 권영국 대표가 말하는 의제들을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Q3. 윤석열 퇴진 광장 속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개중에서도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이끌리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경: 제일 큰 계기는 남태령이에요. 전농 트랙터 시위가 없었다면, 1차 남태령 시위가 없었다면 저도 노동 의제에 뛰어들겠다고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남태령에서 밤새우면서 인상 깊었던 게, 양곡법 의제를 거기 있는 2천 명의 사람들이 다 알진 못했지만 어떤 염원을 보여준 거거든요. ‘대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고, 이 사람들이 말하는 의제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합해서 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잖아요. 저는 그 이후 한강진이라든가, 여러 연대투쟁을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인지 남태령과 한강진, 두 사건이 크네요. 그러니까 노동자, 그들의 정치적인 목소리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시위 방법을 더 이해하게 되고,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주고 싶다…. 도와주고 싶다기보단 나도 노동자고. 당시에 저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소속으로 원청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거든요. 거통고 투쟁에 많은 관심이 갔던 이유가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나도 같은 하청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내가 느낀 것들을, 이 사람들은 이미 표현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들의 투쟁에 힘을 더 실어서 비정규직의 현실을 바꾸면, 내 처우도 개선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정규직이 문제라는 의식은 저도 있었으니까요. 지원: 거통고 투쟁에 많은 관심이 간 데에는 동지의 비정규직 노동과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노동과 투쟁이 실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겠군요. 지경: 그런데 남태령과 한강진이 없었다면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징검다리 같은 거죠. 남태령과 한강진 경험이 있어서 노동자 투쟁에도 결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실 한화 앞까지 오는 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트위터에서 봤는데 5분 거리인 거예요. 그때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커피 한 잔이랑 허니브레드를 시켜놓고 명동에서 먹고 있다가, 빵 절반을 남겨두고 뛰쳐나갔거든요. 갔더니 천막도 못 치게 하고, 용역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욕하고 드잡이하려고 하고. 내가 여기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Q4. 혹시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파면 이후 조직된 노동자 운동에 바라는 점, 또는 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길이 있으시다면? 지경: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요? 사실 퇴진 시위를 하면서 아쉬운 점을 많이 느꼈는데, 당시 아쉬웠던 점들이 파면 이후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느껴요. 비상행동에서 ‘사회대개혁’을 걸었으면, 민주당 사람들도 그 기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자기들 원하는 대로 가버렸잖아요. 혐오 단어도 그대로 쓰고요. 눈치도 보지 않고 투쟁 성과를 독점하려는 행동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것도 있지만, 사실 너무 무서웠거든요. ‘이 사람들이 2017년의 악몽을 반복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요. 2017년도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민주당은 '촛불 혁명'이 자기들 공인 것처럼 말했어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도 자기들이 다 주도해서 이끈 양, 그렇게 이야기해 왔거든요. 그런 과거가 이번 광장에서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번에 촛불행동이 박원순 성폭력 2차 가해를 저지른 자기 대표를 비상행동 공동대표로 올리려고 하는 과정도 있었는데, '아, 이거 정말 많이 삐거덕거리겠구나. 차라리 그냥 갈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또 촛불행동이 자신들 집회 끝내고 비상행동 집회로 와서 뭔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생겼고, ‘대선 지나면 다시 민주당이 자기들 공으로 돌리겠구나,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겠구나’라는 걸 진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17년 제가 청소년이었을 당시에는 퀴어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 강해서, 성소수자 의제가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의제에 관심을 가지는 지금, 이런 상황을 마주하기가 겁나요. 거대한 백래시가 어떻게 다가올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그 과정에 민주노총이 일조하고 있다는 게, 저한테는 큰 문제인 거죠. 2017년 당시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아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총연맹 중앙은 이재명을 지지하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내비치는데, 그런 입장을 정말 민주노총에 밀어붙이면 ‘이 사람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본인이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많이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어느 노동자 개인 권력을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정치가 노동자 위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일조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들, 그리고 그로 인해 투쟁사업장 현안이 뒤로 밀리는 모습들에 화도 많이 나요. 그리고 간혹 민주노총에 속한 노조들이 민주적이지 못한 모습들, 혹은 혐오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상황도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민주노조 혁신운동을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노동조합에 있고 싶은 건데, ‘이런 운동까지 신경써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제가 한국노총에 가서 민주노조 운동할 거 아니잖아요. 무슨 MZ노조 가서 새로운 계파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원하는 운동의 공간을 만들려면, 민주노총 안에서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보고만 있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총파업 공동행동에 들어간 것이기도 해요. Q5. 민주당 지지 여부를 둘러싼 민주노총 중집 대선방침 논의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습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민주당 단일화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보수양당과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원: 부연하자면 노동자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당연히 보수 양당 자장에서 벗어난다는 거잖아요. 노동자 정치라는 게 뭔지 대중에 피력해야 하는 건데. 민주당과 진보당의 단일화 자체도 문제지만, 세부적으로 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일화 합의문에서 차별금지법 추진도 빠졌고요. 그래서 SNS에서 진보당 지지자들이 “그래도 필요한 거 다 챙겨갔다”라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어요. 어떻게 그걸 보고 "아, 그래도 우리 할 만큼 다 했다.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지경: 그렇죠. 그리고 이번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선 단일화 비판에 대해 ‘내란세력 청산이 다 안 됐는데 퀴어 권리 주장은 이기적이다’, 노동을 강조하면 ‘노동자만 강조하는 건 이기적’이다, 이런 말들을 하는 걸 봤거든요. SNS에서 주로 그런 논리로 대응하더라고요. 소수자 권리에 대한 폄하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이 드냐면,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당신들에게는 퀴어의 권리가 '먹고사니즘'이 아닐 수 있지만, 저한테는 '먹고사니즘'인 거예요. 차별금지법을 예로 들면, 사실 차별금지법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트랜스 의제가 과대표되는 경향이 있는데, 장애인 차별 금지, 노동자 차별 금지가 다 들어가 있잖아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게 없으면, 소수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기도 하고요. 단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여성은 그만큼 못 번다는 건데, 그러면 생활 수준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여성 차별이 강화되겠죠. 이게 여성 탄압이 아니라고 볼 수 있나요? 그런데도 기독교에서 싫어하니까 차별금지법 안 된다,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았다면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저지하려는 행보는 그냥 자신들이 권력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싶어요. 내란 청산? 저는 내란 청산 안에 차별금지법 입법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제 삶이 소수자 의제에 많이 닿아 있다고 예전부터 생각했어요. 당장 제가 트랜스젠더퀴어고, 제 동생은 장애인이고, 제 어머니가 암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러다 보니 한부모 가정이고. 그러니까 저는 환자의 보호자였기도 하겠고. 그리고 제 주변에 다문화 가정이라든지, 이런 다양성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게 차별이란 말이죠. 그럼 ‘차별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아야 돼?’가 되는 거예요. 최근에 집중적으로 보는 게 전장연의 탈시설 관련 의제인데. 제 동생이 높은 등급의 발달 장애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더라도 그 친구가 시설에 가게 될 확률이 너무너무 높아요. 제가 데리고 살자니 저는 비정규직이고, 지금은 해고당해서 고용도 되게 불안정한 상태기도 하고요. 이 사람을 개별로 부양하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제 동생을 시설에 보내기에는, 그건 사실 사람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한데 없단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먹고사니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절대 동의가 안 돼요. 사실 민주당이 광장에 나올 때부터, 민주당이 말하는 ‘광장의 연대’는 한계가 명백하고 그래서 한시적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장에는 윤석열 퇴진을 외치니 마치 같은 걸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장에서 애국가 부른 거 가지고도 그랬었잖아요. 이렇게나 지향이 다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어느 순간에 민주당 세력은 광장의 대다수를 버릴 텐데. 민주당에 대한 문제제기나 토론, 이런 게 하나도 조직되지 않는 거예요. 민주당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원: 맞아요. 민주당이 말하는 진보는 허위이고, 광장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재편집하는 것 같아요. 필요한 의제만 취사선택해 진보적으로 포장하고, 그게 대선 단일화에서도 많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경: 노란봉투법도 문재인 정권 때부터 나왔는데,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대로, 편한 대로 말한다 싶어요. 저는 오히려 문재인 정권 때 민주노총이 더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규탄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당 정권 아래 우리 삶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더 적극적으로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너무 못해서 지금 이렇게 된 점도 있다고 생각하고, 참 안타깝네요. 한국 대의민주주의라는 게,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있어서 가능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점은 부각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직 총선, 지선, 대선을 위주로 정치시스템이 굴러가는 걸 보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 지역 민주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역 노조를 통해 민주노조 운동과 함께 정치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지원: 지역과 현장에 기반한 운동을 정치세력화의 기틀로 삼으면 좋겠다는 취지죠? 지경: 네. 사실 수도권에서는 약간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그런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Q6. 모두 ‘사회대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퇴진 이후를 그리는 상도 각기 조금씩은 다른데요. 윤석열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 또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지경: 사실 이 점이 제게 비어 있던 부분 중 하나예요. 그렇지만 저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계속 말해왔듯이 차별 철폐인 것 같아요. 계급에 따른 차별, 성별에 따른 차별, 타고난 무언가에 대한 차별이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문제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법들. 그러니까 차별금지법과 같은 취지의 법을 계속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운동이 없다면, 앞으로도 내란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죠. 차별을 철폐하지 않으면 사회 문제들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까, 저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쪽인 것 같아요. 금속노조 조합원으로서 말하자면, 사실 거통고지회가 광장에서 평등한 지향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도, 말벌 동지들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잖아요. 평등수칙도 만들고. 무지개 조선소 때 다들 열심히 활동해 주셨고. 그런 활동들에 다들 감동받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참여하면서 정말 좋았거든요. 물론 문제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문제 해결 과정도 굉장히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었어요. 기존에 학교나 다른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던 것이죠. 그런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민주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계속 필요할 것 같아요. 부딪히라는 소리가 아니라, 살포시 다가가서 악수하는 느낌으로. 지원: 특히 차별 문제에 대해, 주변 노동자 동지들을 비롯해 투쟁하는 동지들과 토론할 때 말씀하시는 거죠?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엄중한 투쟁은 엄중하게 해 나가면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의 내부 혁신과 정치적 논의도 열심히 해 나가자. 그런 말씀으로 이해했어요. 지경: 그렇죠. 그렇죠. Q7.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나 소감이 있다면, 남기지 말고 전부 들려 주세요. 지경: 인터뷰를 처음에 해달라고 하셨을 때 흔쾌히 허락했어요. 근데 허락하고 생각을 해 보니까 제가 당적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전진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사회주의정당 건설 목표로 나아가는 분들인데. 제가 정의당 얘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될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몇몇 전진 동지들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 주셨었어요. "지경 씨는 조곤조곤하게 빨간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당적이 있지만, 마음만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같은 속도일 순 없지만 같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것 같고요. 사실 총파업 공동행동 초반에 학생 동지들이 연명 받으면서 총파업 하자고 얘기했을 때, 되게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때는 해고되기 전이라서 일하고 있기도 했고요. 일하지 않는 상태가 나에게 어떤 위협으로 다가올지 알기 때문에 어떻게 파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자꾸 헌재 선고 기간이 길어지고 민주노총에서 좀 어영부영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었잖아요. 그때 총파업 공동행동에 대한 인상도, 총파업 자체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96·97 총파업처럼 강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정말로 어려울 수 있겠다’, 그렇게라도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그래서 총파업 공동행동에도 가입 의사를 밝히고, 말벌 동지들도 조직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었거든요. 제 생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그러니까 약간 좌로 가게 된 그런 터닝포인트들에, 전진 동지들이 항상 같이 있어줬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지원: 말씀하신 연서명은 저랑 청년 학생 동지들이 초동 연명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아직 기억이 나거든요. 그때가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했을 때잖아요. 어떤 대의원은 되게 유심히 보기도 하고, 나눠주던 학생 동지한테 이런 거 뿌리지 말라고 얘기했던 대의원도 있고. 그리고 양경수 위원장도 와서 받아 갔었거든요. 그 대의원대회에서 여러 수정동의안이 나왔고 총파업 제기가 있었는데도 그걸 책임지지 않으려고 피해간다는 인상이 되게 컸어요. 그런 걸 보면서 ‘중대한 국면에서 투쟁으로 보여주는 게 필요할 때, 집행부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경: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새로운 정권에 우리의 목소리와 의제를 강력하게 표출하는 투쟁을 이어가며 정치적 지진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금속노조 기자회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이야기 하는 걸 보면서, ‘일단 뭔가를 하면 그 큰 노조 내부에서도 변할 수는 있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는 있거든요. 긍정적인 신호인데 그것보다 더 해야죠. 더 가야죠.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사람들이 조직된 노동자 운동 속에서 더 활동하는 것도 필요하겠고요. 그리고 노동자성 자체를 확장해야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원: 특고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요. 지경: 그것도 그렇고, 전장연 투쟁 중에서 권리중심일자리 해복투라고, 서울시에서 해고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잖아요. ‘이것도 노동이다’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가 노동의 범위를 많이 넓혀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과 연대하고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계급투쟁이 결정한다 - 노조법 2·3조 개정안 환노위 통과 이후 노동자계급의 과제2025년 7월 24일 <제대로 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비정규직이제그만 기자회견> 사진: 요지경 노조법 개정안, 환노위 통과 2025년 7월 28일,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환노위 통과안이 기존 노조법보다 발전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하는 ‘사용자 개념 확대’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 2호, 사용자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둘째, 노동쟁의 대상 일부 확대다. 노조법 2조 5호 개정에 따라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지위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 등에 대해서도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노동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상태로 규정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법률이나 단체협약에 따라 이미 결정된 권리의 이행을 둘러싼 분쟁, 즉 ‘권리분쟁’은 파업권 행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번 개정은 기존 노조법이 쟁의행위 대상에서 배제해왔던 특정 권리분쟁 사안을 일부 포함해 노동쟁의 범위를 소폭 확장했다. 즉,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시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한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사안을 명시해 쟁의대상을 소폭 확대한 것이다. 셋째, 노조법 2조 4호 라목 삭제를 통한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권 확대, 해고자와 퇴직자 등을 조합원으로 포괄할 단결권 확대다. 현행 노조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이를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았다. 이 조항이 노조법 2조 4호 라목이다. 윤석열 정권이 ‘화물연대는 노조가 아니’라며 공정거래법을 동원해 화물연대 파업을 탄압했듯, 노조법 2조 4호 라목은 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를 막아왔다. 또한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탄압에서 드러난 것처럼 해고자, 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사유로 한 탄압의 근거 조항이었다. 환노위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노조법 2조 4호 라목 삭제로 더 넓은 단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한계 또한 분명하다 환노위를 통과한 노동법 개정안의 한계 또한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첫째, 환노위 통과안은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지 못했다. 즉,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노동자로 보는 ‘노동자 추정조항’ 명문화에 실패했다. 주지하듯 화물노동자, 학습지교사, 택배노동자, 배달라이더, 대리운전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플랫폼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하면서도 법적 신분은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화물연대 탄압처럼, 국가와 자본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교섭을 요청해도 자본가는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요구가 노동자 추정조항 신설이었다. ‘일단 원청이 고용한 노동자로 보고, 자본이 노동자성을 부정할 경우 이를 증명할 책임을 자본에 지우자’는 요구였다. 이 조항이 빠짐에 따라, ‘나는 원청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임을 입증할 책임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남았다. 둘째, 사용자 정의 확대는 한계적이다. 환노위 통과안은 사용자 범위를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개념에 따라 확대했으나, 명시적으로 ‘원청’을 ‘사용자’로 본다는 규정은 빠졌다. 이에 따라 ‘누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인가’를 둘러싼 공방은 필연이며, 원청은 자신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임을 부인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이미 그래왔듯, 원청은 하청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지휘·명령 체계를 은폐하며,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사용자성을 조직적으로 회피할 것이다. 환노위 통과안은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추상적 기준만을 제시함으로써, 현장에서는 여전히 “누가 사용자냐”를 두고 끝없는 공방과 소송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7월 30일 자본가 단체 기자회견 사진: 연합뉴스 셋째, 노동쟁의 대상 확대 범위는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안 노조법 2·3조 개정안보다도 후퇴했다. 윤석열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되었던 노조법 개정안은 △체불임금 청산 △해고자 복직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권리분쟁’ 사항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즉, 아직 ‘결정’되지 않은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법률과 단체협약에 따라 이미 결정된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둘러싼 분쟁, 곧 ‘권리분쟁’도 파업권 행사 대상으로 포함했던 것이다. 이번 환노위 통과안에 따라 단지 ‘결정’되지 않은 노동조건에 대해서만 쟁의할 수 있다는 기존의 협소한 틀은 유지되었고, 이미 확정된 권리의 실현을 위한 투쟁은 여전히 불법화될 위험에 놓여 있다. 넷째, 개인 책임에 따른 손배의 명문화는 그 어떤 의미로도 성과가 아니며 매우 문제적이다. 민주노총은 현 노조법 개정안을 두고 “손배 없는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하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물론, 환노위 통과안이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맞선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면제하고, 노동조합 파괴를 목적으로 한 손배청구를 금지한 점은 성과다. 그러나 손배 책임을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정도 △손해에 대한 관여 정도 등으로 따져 노동자 개개인에게 부여한 점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이는 단지 투쟁 과정에서 힘이 부쳐 끝까지 따내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견지해온 요구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다. 즉, ‘개인 책임에 따른 손배’는 ‘손배가압류 철폐’라는 핵심 요구를 흐리고, 노동자 투쟁의 집단성을 훼손하며, 가장 앞장서서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가장 큰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결코 성과가 아니다. 최근 대법원은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파업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활동가들에게 3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했다. 이 판결의 취지가 바로 환노위 통과안에 담긴 ‘개인 책임에 따른 손배’다. 개인 책임에 따른 손배는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일 뿐이다. 위와 같은 한계는, 민주당에 의존한 노조법 개정 과정이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투쟁으로 만든 성과를 어떻게 굴절시켰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2년 8월 31일 <손해배상 청구 철폐! 노조법 개정, 노란봉투법 제정 촉구 민주노총 기자회견> 사진: 노동과세계 계급투쟁이 결정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환노위 문턱을 넘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한걸음 전진한 데는 치열한 투쟁이, 그리고 투쟁을 통해 쌓인 판례가 있었다. 그 중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비정규·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확대에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학습지 노동자들의 싸움이 만든 성과다. 학습지 교사들은 1999년 노조 설립 이래 20년 넘게 노조할 권리를 인정받고자 싸웠다. 2018년 대법원은 학습지 노동자들의 손을 들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더라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학습지노동자들의 투쟁이 만든 이 판결로,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단결권을 가지고 있음을,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함을 확인한 것이다. 해당 판례는 이번 노조법 개정안에도 반영되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 현행 노조법 2조 4호 라목을 삭제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축은 원청 사용자 책임을 관철하기 위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치열한 투쟁으로 현행법을 뚫고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의미있는 결정을 강제하며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가 사용자’라는 개념을 쟁취해왔다. 2021년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원청이 거부한 사건에 대해, “비록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권을 가진 자는 노조법상의 사용자”라고 판정했다. 이 판단은 서울행정법원 1심에서 유지되었고, 2024년 1월 고법 항소심도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와 교섭을 거부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이 돌파구를 만들었다. 3년 전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5년간 삭감된 임금 30%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원청에 맞서 절박한 파업을 벌였고, 좁디좁은 구조물에 자신을 가두고 "이대로 살 수는 없다"며 절규했다. 원청 대우조선은 이를 ‘불법파업’이라 규정하고 폭력 진압을 시도했으며, 파업 종료 후에는 무려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우조선은 하청노동자들의 법적 사용자가 아니고, △그렇기에 하청노동자 파업은 불법이며, △불법 파업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었다. 이후 진짜 사장에 맞서 노동3권 행사를 가능케 할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이 본격화했다. 파업 이후 ‘원청 사용자 책임 강화’에 국민 절반 이상(52.8%)이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이 얼마나 큰 파장을 만들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2022년 7월 22-23일 TBS 여론조사 결과 2022년 12월 30일, 중앙노동위원회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뒤집으며 ‘대우조선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므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다. 원청의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었고, 마침내 2025년 7월 25일 서울행정법원도 한화오션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법원은 “하청 노동자들의 노무제공이 원청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노동조건을 원청과 집단교섭으로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면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볼 수 있다”며, 성과급·학자금·노동안전 같은 의제에서는 한화오션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청의 교섭의무를 규정한 판결을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2025년 7월 25일, 사법부는 현대제철과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원청에 맞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확대의 중요 계기였다. 2024년 5월, 발전소 경상정비를 담당하는 공공운수노조 발전HPS지부 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이후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의미심장한 파업이었다. 발전HPS지부 노동자들은 발전HPS 사측에 고용보장을 요구했지만, 16차례 교섭 내내 발전HPS 사측은 “원청에 가서 요구하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반복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원청인 남부발전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2025년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발전소 폐쇄가 본격화하는 지금, 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들은 8월과 11월 파업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원청 자본에 맞선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원청이 책임져라! 사진: 공공운수노조 이렇듯 법과 제도를 바꾸어온 것은 계급투쟁이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앞서 서술했듯, 원청 자본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청 구조를 복잡하게 재편하고, 지휘·명령 체계를 은폐할 것이다. 이를 돌파하는 길은 단결과 연대뿐이다. 사업장 담을 넘어, 원청 자본에 맞선 비정규직노동자 연대투쟁으로 나아가자 분명한 것은, 법이 몇 줄 바뀌었다고 원청 자본이 순순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원청에 맞선 더 강력한 투쟁이며, 그 과정에서 이번 환노위 통과안에 담기지 못한 △노동자 정의와 사용자 정의 확대 △노동쟁의 대상 확대 △모든 형태의 손배 철폐 쟁취를 위한 집단적 의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비정규·특수고용노동자 공동투쟁 확대다. 사업장 벽을 허물고, 원청 자본에 맞선 비정규직노동자 공동전선을 구축하며 전 민중 앞에 원청이 진짜 사장임을 드러내자. 원청 자본이 노조법 개정의 근본 취지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모든 노동자 민중 앞에 드러내며 원청 사용자성 쟁취투쟁을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시키자. 부분적이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확대됐음을 알리고,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자. 또한, △노동자의 지위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을 포괄해 확장된 쟁의행위 범위를 토대로, 자본의 경영독재에 맞선 원하청 노동자 투쟁을 확대하자. 지금까지의 노조법 개정 투쟁과 마찬가지로, 바뀐 법을 토대로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지 또한 계급투쟁이 결정할 것이다. 사진: 금속노조 -
“니 약점을 알고 있다!”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고용허가제 - 미봉책으로 생색만 내려는 이재명 정부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 사진: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니 약점을 알고 있다. 베트남으로 가든지, 불법으로 일하든지. 알아서 해라. 사업장 변경은 해줄 수 없다.” 최근 내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에 사업장 변경 상담을 하러 온 한 베트남 노동자가 사장의 말을 녹취해서 들려줬다. 이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 세 번을 다 썼다. 임금이 한두 달씩 밀리고, 이 노동자에게만 지문인식기를 못 쓰게 하는 괴롭힘도 있어 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 달라고 했다. 내가 직접 사장과 통화도 했는데 사장은 이 노동자가 일을 잘 못하는 데다 자기가 키우는 텃밭에 음식물 쓰레기를 잘못 버렸다고 했다. 이 사장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놀라긴 했지만, 이 사례는 심각한 사례 축에 끼지도 못한다. 신발로 맞다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더니 사장이 뜨거운 커피를 얼굴에 부어 충격을 받은 네팔 노동자의 사건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장은 이주노동자를 업무 방해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관련 기사 링크) 현대판 노예제도 최근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지게차 화물에 묶인 채 학대를 당한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스리랑카 노동자가 몇 개월 동안 신고를 못 한 이유는 나쁜 일터를 떠날 자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직장을 옮기려면 사장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고용허가제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파괴했다.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 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충북 충주의 한 공장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터는 이런 말을 남기며 목숨을 끊었다. 그는 12시간 맞교대 근무하면서 불면증, 우울증을 겪었다. 회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그게 어려우면 네팔에서 치료를 받고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모두 거부당했다. 고용허가제(E-9) 노동자는 입국 후 3년 동안 최대 3회만 허용된다. 이후 사업주의 재고용 허가 요청이 있는 경우 1년 10개월간 그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는데 이 기간에는 2회까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변경 사유는 근로계약 종료나 사업장 휴·폐업, 사용자에 의한 부당 처우, 성폭력, 임금체불 등 아주 일부의 경우에만 인정된다. 이마저도 대부분 노동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업장 변경 승인을 받아도 90일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 대상이 된다. 현대판 노예제도라 부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케샤브 슈레스타가 남긴 유서 사진: 청주청년이주민인권모임 이주민들레 미봉책으로 생색내기 최근 이재명 정부가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는 개선안은 고용 기간 3년 이후 혹은 4년 10개월 이후에야 사업장 변경 제약을 완화하는 것이다. 3년 동안 죽으라 착취당하다 사장에게 1년 10개월 동안 재고용 허가를 받은 노동자 또는 그렇게 해서 총 4년 10개월(3년+1년 10개월)을 일하다가 귀국한 후, 소위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한 노동자에게만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애초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3년 혹은 4년 10개월 후로 미루며, 3년 혹은 4년 10개월 후를 위해 자본가에게 더 철저히 순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안을 마치 그럴듯한 개선안으로 포장하려 한다. 2021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연구용역 보고서도 ‘1년 이후 사업장 변경 자유화 안’을 제시했는데, 그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한 이 개선안은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고용 기간에 따라 갈가리 찢어 놓는다. 또한 정부는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정주노동자들의 권리도 수없이 짓밟는 노동부와 법원을 상대로 이주노동자가 예외 사유를 스스로 입증하기란 어렵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 제한 사유에 대해 입증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횟수 문제도 중요하다. 앞에서 베트남 노동자에게 “니 약점을 알고 있다”고 얘기한 사장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횟수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횟수 제한이 남아 있는 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 주장이 카운트(변경 횟수)에 포함되느냐, 안 되냐를 신경 쓰게 되어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아직 정부의 개선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개선안은 일시적 미봉책으로 생색내기에 다름없다. 변경 사유와 변경 횟수를 말하기 전에 사업장 변경을 가로막는 제도 자체가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평소에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자본가들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준다. 이주노동자는 먼저 사표를 제출할 수 없으니, 사업장을 박차고 나올 자유가 없으니, 자본가들은 사업장의 노동 현실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 침해는 새로운 일이 전혀 아니다. 2004년 8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래 이주노동자들은 살려 달라는 외침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은 당연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동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나날이 확산하고 있다. 극심한 경제위기 앞에서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기 살길을 찾으려는 퇴행적인 정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시적인 미봉책은 이주노동자들을 지옥 같은 현실에 다시 매이게 할 뿐이다. 고용허가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엄격히 금지하는 '강제노동'인데, 지금까지 수많은 정부는 고용허가제 자체는 그대로 두고 사유나 횟수만 조금씩 건드려왔다.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권역 이동 금지’라는 억압까지 추가했다. 매일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폭로되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주노동자들과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아직 너무나 부족하고, 이중 삼중의 억압 아래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조직화도 너무나 더뎠기에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를 낮춘다고 투쟁 동력이 만들어지거나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 조직화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주노동자들도 고용허가제 자체가 고통의 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고용허가제가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지금, 이제는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 대안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고용허가제 완전 철폐,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이주노동자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소리 높여 외치자. 9월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자를 조직하자. 현장에서부터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이주노동자들이 권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지원과 연대를 조직하자. 계급적 연대, 사회적 연대의 깃발 아래 고용허가제 철폐 투쟁을 확산시키자.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 2024년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사진: 이주노조 -
[기고] 푸르던 한여름, 이수기업 해고자 순회투쟁과 연대의 기록사실 연대자의 입장에서 순회투쟁 참여를 꽤 오래 고민했었다. 나는 이 투쟁의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도, 해고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하는 명예조합원(말벌 동지)으로서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함께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의 순회투쟁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 나이 20살, 누군가 내 인생에서 청춘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순회투쟁 5일간의 이야기들을 하며 그 순간들이 내 인생 20년 푸르던 봄의 한 장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7월 14일 순회투쟁 1일 차 : 정문 앞을 채운 강고한 연대투쟁 우리는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으로 향했다. 마음속엔 설렘과 떨림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 더 컸다. 아무리 같은 사업장이라고 해도 지역이 다르면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혹시 우리끼리 외롭게 싸우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주공장 앞에 도착하여 선전전을 준비하자 나의 불안은 모두 사라졌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지역 대오. 수많은 연대 동지가 서 있는 모습에 순간 벅차올랐다.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들고 강고하게 구호를 외치는 모두의 목소리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었다. 현대차 전주공장 출근선전전 내 눈앞에 보인 장면은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 동지들이, 그리고 연대 동지인 내가 그토록 바라던 꿈같은 한 장면이었다. 울산공장에서는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늘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기적이 일어난 장면 같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청이든 하청이든 그 모든 것들을 떠나 한마음으로 뭉친 우리들이었다. 고용형태의 경계와 지역의 차이 등 모든 것을 뛰어넘은 우리들의 강한 연대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푸르던 7월의 여름. 내 눈앞의 장면은 마치 여름밤의 꿈 같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주공장 앞에서 본 동지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겼다. 현대차 전주공장 출근선전전 순회투쟁 2일 차 : 탄압에도 꺾이지 않는 연대의 함성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같은 사업장이지만 지역이 다른 이야기라면, 순회투쟁 2일 차에 찾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아산공장에 도착하여 투쟁가를 틀고, 선전전을 준비하는데 사측은 데시벨 측정기를 가지고 나오고, 아산서 정보과 경찰은 불법 촬영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상황들이 연대하는 입장에서는 꽤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이 상황이 나의 강고한 연대투쟁을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현대차 아산공장 출근선전전 사실 이날은 현대자동차지부가 아산공장 교섭과 출정식이 있던 날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현대자동차지부 활동가와 조합원은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열사 추모제에 참여했던 현대자동차 열사회 이도한 동지가 함께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이날 출근 선전전에는 우리가 외롭지 않도록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지회장과 동지들이 함께 연대해 주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따뜻한지...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역을 넘어 마음을 모아주는 이 연대가 너무 감사했다. 그날 아산공장 앞에서 연대의 힘을 다시금 크게 느꼈다. 현대차 아산공장 출근선전전 순회투쟁 3일 차 :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순회투쟁 3일 차 아침, 아산공장 출근 선전전을 진행했다. 선전전에는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동지들과 정규직 현장조직 새길 동지들이 함께해 주었다. 아산공장 동지들과 선전전을 마친 뒤 우리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지혜복 동지를 만나러 출발했다. 전주와 아산에서 받은 따뜻한 마음을 이번에는 우리가 돌려줄 차례라는 생각으로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서울시교육청 점심시간에 지혜복 동지의 선전전에 함께한 후 간담회를 했는데, 지혜복 동지가 얼마나 외롭고 고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지, 그 투쟁이 얼마나 정당한지를 직접 들으며 다시금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떠올랐다. 우리가 옳지만, 세상은 왜 등을 돌리는 걸까. 사측도, 서울특별시교육청도, 그 외면이 너무나도 화났다. 속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앞. A학교 성폭력 사안 축소·은폐 규탄한다! 지혜복 교사 부당해임 철회하라! 간담회를 마치고 곧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로 이동했는데, 마침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지만 비에도 우리는 멈출 수 없었다. 차에서 피켓을 내려 꺼내 들고 빗속에서도 꿋꿋이 서서 싸움을 이어갔다. 우리는 승리 없이 후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으로 향했다. 이름 그대로, 꿀잠은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었다. 모두의 화장실을 시작으로 동지들의 따뜻한 환영, 그리고 내가 나로 있어도 여기서만큼은 괜찮다는 기분이 드는 곳. 이곳을 지나간 모든 동지가 참 행복했을 것 같았고, 나 역시 꿀잠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느꼈다. 순회투쟁 4일 차 : 비 속에서 피어난 연대의 꽃 꿀잠에서 한여름 밤의 편안한 잠을 청한 뒤, 순회투쟁 4일 차 아침이 밝았다. 꿀잠에서 동지들과 함께 서울고용노동청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려던 순간, 창밖으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보였다. 전날 순회투쟁 중에 웹자보를 만들어 연대 동지들에게 급히 연락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기자회견이 있다는 걸 알렸지만, 이런 날씨에 정말 누가 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도착하자, 믿기지 않게도 동지들이 그 비를 뚫고 와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피어난 꽃들, 꽃들이 피어나 연대해 준 장면을 평생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고용노동청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동지들이 노동부 장관 후보(현 노동부 장관)에게 면담 요청서를 제출하고 곧바로 국정기획위원회로 이동했다.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와 세종호텔 공대위 동지가 국정기획위원회 담당자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리케이드 바깥에 남은 동지들이 이수기업 피켓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피어난 연대의 꽃들이 이곳에도 또다시 싹을 틔운 것이다. 국정기획위원회 요구안 전달 국정기획위원회에 요구안 전달을 마친 우리는 다시 서울고용노동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투쟁 중인 금속노조 주얼리분회와 서비스연맹 이랜드노동조합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주얼리분회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곳에도 나처럼 명예조합원(말벌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곳에도 또 다른 청춘의 한순간이 피어나고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연대방문 간담회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왔다. 금세공 일을 28년 했지만, 이력서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고용보험에 가입한 단 5년의 경력만 남았다는 말. 23년의 세월이 유령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 박태성 동지의 “청춘을 바쳐 20년을 일했지만,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라는 외침이 다시 귀를 스쳤기 때문이다. 유령이 된 23년의 경력, 헌신 끝에 버려진 20년의 청춘. 그 만남 앞에서 나는 노동운동의 의미를,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간담회를 마친 우리는 세종호텔지부 농성장이 있는 명동 세종호텔로 향했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지하차도 위 철골 구조물에 서 있는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의 모습이었다. 20년 경력의 요리사인 그가 손에 든 것은 요리도구가 아닌 확성기였고, 그가 서 있는 곳은 주방이 아닌 지하차도 위 철골 구조물이었다. 고공 위에 내몰린 노동자, 모두의 내일을 위해 잠시 땅과 이별한 동지를 보며 나는 다시금 연대하여 싸울 힘을 얻고 투쟁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세종호텔지부 연대방문 그날 마지막 일정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49재 추모제였는데, 비정규직 구조 속에서 끝내 죽음으로 내몰린 노동자를 생각하며 “산 자여 투쟁하라”라는 외침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 더 이상 어떤 노동자도 죽지 않는 세상을 반드시 우리가, 우리들이, 우리 모두가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그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 49재 추모제 순회투쟁 5일 차 : 승리 없이 후퇴 없다 우리는 서울에서 남양으로 이동해 순회투쟁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침내 순회투쟁 5일차,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다. 남양연구소로 향하는 길, 기쁘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걱정이 있었다. 과연 연대 동지들이 오늘도 함께해 주실까? 우리만 외롭게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사측 관리자와 화성시 정보과 경찰의 격렬하고 기분 나쁜 환영이었다. 사측 관리자들은 집회 신고된 구역이 현대자동차 사유지라나 뭐라나 선전전 할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사측과 실랑이를 하는데 정보과 경찰이 끼어들면서 집회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라나 뭐라나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참 어이없는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그 어떤 걸림돌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힘차게 선전전을 이어갔다. 같은 사업장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묵묵히 연대를 위해 나와준 동지들의 결의에 찬 눈빛은 다시금 나를 뛰게 하였다. 함께 구호를 외치던 남양연구소 앞의 공기, 그 시간의 온도,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쉽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가슴에 남았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출근선전전 선전전을 마치고 남양연구소 비정규직지회 동지들과 근처 편의점에서 간담회를 진행한 후, 우리는 강고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나눈 뒤 구미로 향했다. 구미에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건 살을 태우는 듯한 땡볕이었다. 숨이 막히는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불탄 공장 위에서 55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온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수석부지회장 박정혜 동지였다. 박정혜 동지를 생각하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실에 도착하니, 동지들이 따뜻하고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 동지들도 강고한 연대의 힘을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이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박정혜 동지를 만나러 고공농성장으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미리 준비해 온 “니토는 교섭에 나와라!”라는 슬로건을 머리 위로 높이 들자, 그 모습을 본 박정혜 동지가 불탄 공장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의 연대, 우리의 연대가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투쟁할, 내일로 나아갈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방문 나는 박정혜 동지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승리 없이 후퇴 없다! 고공에서 땅으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 그 외침에 박정혜 동지도 불탄 공장 위에서 주먹을 쥐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담자, 나는 다시금 이 땅의 모든 노동자, 그리고 이수기업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할 힘이 피어올랐다. 순회투쟁의 마지막 종착역인 울산으로 향하는 길, 전주부터 아산, 서울, 남양, 구미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 피어난 연대의 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래, 연대란 이런 것이구나. 승리 없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우리기에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다시금 뛰게 만드는구나. 울산에 도착해 동지들과 서로의 노고와 투쟁을 격려하고 손을 흔들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설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회투쟁 5일간의 기억들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다고. 내 인생 20년 가장 푸르던 여름, 가장 뜨겁고 가장 진심이었던 청춘의 한 장면이 이렇게 막을 내리고, 내일부터 새로운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승리 없이 후퇴 없다! 고용승계 쟁취하자!”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방문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이주인권단체, “민생회복 소비쿠폰, 모든 이주민에게 차별 없이 지급해야”1. 이주인권단체, “민생회복 소비쿠폰, 모든 이주민에게 차별 없이 지급해야” 지난 21일부터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1인당 15만 원(차상위계층·한부모가족 30만 원·기초생활수급자 40만 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이주민은 원칙적으로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이번에 정부는 소비쿠폰 지급 대상 이주민을 결혼이주민, 영주권자, 난민인정자로 한정했다. 그로 인해 전국의 이주노동자, 외국 국적 동포, 유학생, 인도적 체류자 등 170만 명에 달하는 대다수 이주민은 소비쿠폰 정책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에 전국 140여 개 이주인권단체와 41명의 이주민은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소비쿠폰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인권위 앞 기자회견을 통해 “이주민은 지역을 지키는 구성원이며, 세금과 보험료도 꼬박꼬박 낸다. 이번에도 배제된 건 명백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러한 정부 정책은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 행복추구권, 평등의 권리를 침해하며 국제인권규범인 유엔의 자유권·사회권 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에도 어긋난다고도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는 이주민을 동료 시민이 아닌 노동인력으로만 취급하는 차별적인 행태다. 정부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 정책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723_0003263161 2. 직장인 10명 중 7명 … “새 정부,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 추진 필요해”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새 정부가 비동의강간죄 입법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27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2.2%가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응답자의 70.7%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이재명 대통령은 비동의강간죄 도입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직시하고 이 과제에 대해 명확한 의지와 철학을 가진 인물을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강선우 전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내세웠고, 비동의강간죄 개정에 대해선 “입증 책임의 전환 우려”를 언급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10157.html 3. 어린이집 원장의 보육교사 노동자 CCTV 근태 감시, 대법원 위법 판결 최근 서울 송파구 한 어린이집 원장이 CCTV로 보육교사 노동자가 업무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이를 운영법인에 전달해 징계 절차의 자료로 활용하려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원장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사용자의 법 위반 행위를 넘어 직장 내 노동자 통제와 감시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여준다. 노동자가 업무 중 개인의 모든 행위를 관리자나 사용자로부터 감시당하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빼앗긴 채 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심각한 노동권 침해다. 특히 보육기관 교육현장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열악한 보육 노동자들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당하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자가 휴대전화를 본 것이 곧바로 징계받아 마땅한 일이 되는 일터가 보육현장 외에 또 어디가 있을까? 자신의 노동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심지어는 네트워크 카메라(학부모의 실시간 시청이 가능하다)로 감시당하는 노동자가 대한민국에 보육교사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아기를 낳아도 믿고 맡길 데가 없는 것이 저출생의 한 원인이라면, 보육 최일선에서 분투하는 보육교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고용불안, 노동통제, 감시사찰, 노조할 권리 등 노동권 보장 취약, 노동법 사각지대, 빈약한 공공성 등에 대해 아직 제대로 답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육 노동자의 목소리를 보장하고 강화하는 개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참조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4776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994 4. 7월 30일,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 매년 7월 30일은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이다. 지난 2013년 유엔(UN)은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피해자 권익 증진을 위해 이날을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로 지정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하 진흥원)은 2025년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인신매매 없는 세상, 모두의 연대로 한걸음 가까이’를 주제로 다양한 홍보 활동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여가부와 진흥원은 먼저 인신매매 피해 사례를 담은 인신매매 방지 홍보영상 2편을 유튜브와 공항 전광판 등에 내보내기로 했다. 또한 관계 부처 누리집 및 누리소통망(SNS) 등에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짧은 영상과 카드뉴스, 웹포스터 등 다양한 콘텐츠를 게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인신매매를 근절하려면 홍보 활동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성매매를 비롯한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많은 여성 이주민들이 인신매매 위협에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2023년부터는 인신매매 규정이 확대되어 노동력 착취도 대상에 포함됐다. 노동력 착취까지 고려하면 이주민들의 인신매매 피해는 더 증가한다. 지난 2월 한국으로 일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온 A씨는 7월 23일, 국내 처음으로 조선업에서 노동력 착취로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A씨와 동료들은 한국에 가면 용접기술도 배우고 조선소에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아무 교육과 돈도 받지 못한 채 노동력 착취를 당했고 여가부 산하 중앙인신매매 등 피해자 권익 보호기관으로부터 인신매매 피해자로 공식 인정됐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405 https://www.newsg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5194 5. 인도 카르나타카주 보육 노동자들, 얼굴 인식 기술 반대 인도 카르나타카주 앙간와디(보육 프로그램) 노동자들이 연방 정부가 통합아동개발서비스(ICDS, Integrated Child Development Services) 프로그램에 얼굴 인식 기술(FRT, facial recognition technology)을 도입하려는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7월 22일, 앙간와디노동조합 등이 공동 주최한 공개 협의회에서 노동자들은 FRT가 "수혜자들의 사생활과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약 20만 명의 수혜자가 이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FRT 도입으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와 실질적인 불이익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올란드 출신 라자바티 파틸은 사진 증빙을 위한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해 수혜자 등록이 '무효' 처리되는 사례를 지적했다. 우두피 지역의 수실라는 아다르 번호(Aadhaar Number, 개인식별번호), OTP(One Time Password, 1회용 비밀번호), FRT 사진 요구로 인해 수혜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협조를 꺼린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FRT 도입 효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제학자 디파 신하는 연방 정부가 FRT로 정보 누락을 방지하고 노동자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효과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매년 정부가 ICDS 예산을 삭감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도의 앙간와디는 한국의 ‘지역아동센터 + 보건소 + 산모 건강센터’를 결합한 형태에 가까운 다기능 복지 프로그램의 거점이다. 인도 정부의 대표적인 저소득층 아동과 여성 대상 복지 프로그램이며, 보건·영양·교육을 통합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thehindu.com/news/national/karnataka/anganwadi-workers-oppose-facial-recognition-tech-in-icds-programmes/article69842342.ece 6. 미국 조지아, 트랜스젠더 아동 서적 전시로 해고된 사서 복직 요구 최근 미국 조지아 남부의 작은 마을 피어스카운티에서 수백 명의 주민이 공공도서관 앞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트랜스젠더 관련 도서 1권을 포함해 도서관 행사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서 관리자 라보니아 무어의 해고를 규탄하고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라보니아 무어는 부당해고를 다투며 투쟁하고 있다. 무어는 여름 독서 프로그램 ‘색상에 색을 입하다(Color Our World)’는 행사에 한 어린이가 추천한 도서 《에이단이 형제가 되었을 때(When Aidan Became a Brother)》를 포함했다. 이 책은 상을 받은 적도 있는 트랜스젠더 아동의 성정체성 수용과 가족 사랑을 그린 책이다. 그런데 ‘신앙과 가족을 위한 연합(Alliance for Faith and Family)’이라는 극우기독교 단체가 “부적절한 성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라고 주장하며 조직적 공격을 가한 끝에 6월 18일, 그가 해고된 것이다. 무어는 “주제가 문제가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무지개 없이 어떻게 세상을 채색할 건가요?”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 성소수자 커뮤니티 회원, 노동자, 학생, 학부모, 종교인 등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책을 읽을 권리를 지켜라”, “무어는 우리 도서관의 영웅”, “정치가 아이들을 검열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교사 노동자 말리사 베넷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지 무어의 복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도서관이 누구의 것인지, 지역사회가 정치 압력에 굴복할 것인지,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지를 묻는 시간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발언에 나섰다. 한 중학생은 무어를 “책을 통해 세상을 열어준 사람”이라 불렀고,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자신과 닮은 주인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게 잘못인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회를 기점으로 부당해고 비판 목소리가 커져 복직 요구 청원에 이미 수천 명의 서명이 몰렸고 여러 단체들의 복직 촉구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관은 7월 말 특별회의를 열고 그의 복직 여부를 공식 논의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성소수자 도서 검열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대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glaad.org/georgia-community-rallies-to-reinstate-celebrated-librarian-fired-over-inclusive-book-display/ https://georgiarecorder.com/2025/07/02/south-georgia-librarian-is-fired-over-lgbtq-childrens-book-included-in-summer-reading-display/ 7. 스페인 레온, 여성전용주차장 두고 논란 스페인의 한 도시에서 여성전용주차 구역을 둘러싼 논란이 퍼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스페인 북서부 레온시는 최근 도시 여러 지역에 취약 계층 보호 및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여성전용주차 공간을 지정했다. 시가 마련한 여성전용주차 공간에는 ‘치마 입은 여성’이 ‘분홍색’으로 그려져 있다. 호세 안토니오 디에스 시장은 “여성이 더 넓고, 조명이 밝고, 인도와 가까운 위치에 주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잠재적 폭행 위험을 피하자는 취지”라며 “젠더 관점에서 접근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미 유럽 다른 도시들에서도 시행 중”이라고 시장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정책은 성차별 논란으로 이어졌다. 여성을 치마 입은 모습으로 분홍색을 입혀 표현한 것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스페인 뉴스 프로그램 쿠아트로에 출연한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조치”라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별도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완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했다. 남성 사이에서도 시의 조치가 차별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남성 시민은 “스페인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에 따른 차별은 어떤 형태로도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참조 기사>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5/07/24/20250724500268?wlog_tag3=naver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기고] <태안화력 故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간담회 후기지난 7월 4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과 공공재생에너지연대의 공동주최로 열린 [태안화력 故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 공공재생에너지·정의로운 전환 투쟁으로 나아가는 간담회]에 참석했다. 간담회는 발전노조 서부본부장 이재백 동지와 기후정의동맹 한재각 동지의 발제, 이후 토론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이재백 동지의 발제는 고 김충현 동지 사망 사고에 대한 보고로 시작하여, 발전 사업장의 하청 및 재하청 등 후진적 고용구조, 발전산업 전환기에 발생하고 있는 불안정 고용 문제 등을 짚고, 공공 주도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외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 경력의 숙련 노동자조차 손쓸 틈 없이 희생되고 마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이 같은 환경을 낳은 자본의 탐욕에 새삼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제자가 지적하는바, 발전산업 분야에서 이렇게 불량한 일자리를 줄이고, 더 나아가 화력 발전소의 점진적 폐쇄에 따라 발생할 해고 노동자들을 빠짐없이 끌어안는 방법은 공기업 주도의 재생 에너지 발전소 건설 확대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이재백 동지의 발제에서 특히 눈여겨볼 내용은 태안화력 노동자 동지들의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 투쟁 경과에 관한 부분이었다. 화력발전소 원·하청 노동조합 동지들은 ‘내가 일하는 산업은 계속 존속해야 한다’는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해 가면서, 지역 민중과 손잡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요구해 왔다. 이들의 투쟁은 에너지 전환이 ‘정의롭기’ 위해 우리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하며, 계급투쟁과 기후정의 운동이 하나라는 점을 일깨운다. 발전 노동자들의 8월과 11월 파업에 결합해 힘을 보태고, 9월 기후정의행진에서도 가능한 한 폭넓은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어진 공공재생에너지연대 한재각 동지의 발제는 통계자료를 토대로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해상풍력 분야에서 민간이 투자하는 경우와 공기업이 주도하는 경우를 비교하여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의 필요성을 논증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제도까지 언급하여 총체적 관점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었다. 공공의 것이어야 할 바다와 바람은, 이미 갈래갈래 쪼개져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는데 기존 입법은 그마저도 민간 사업자들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고스란히 내주며 우리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중 민간 비율 90%라는 위태로운 현실에 이르렀다. 전력 민영화가 먼 나라 이야기라는 것은 세간의 착각이다. 한재각 동지의 발제 가운데 민간과 공공의 해상 풍력 개발 비용을 비교한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발제는 민영화가 신속성과 효율성을 동반한다는 환상을 여러 방향에서 무너뜨렸는데, 민간 사업자들은 금리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사업을 지연·철수하곤 한다는 점, 공기업은 본질상 민간 자본보다 훨씬 낮은 수익률을 추구하고 보다 낮은 금융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용자인 시민들에게 더 적은 비용이 전가된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데 유리한 공적 투자를 늘리려면, 기후정의에 의거한 과세 및 그와 연계된 재원 관리 기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7월 25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회 입법청원이 마감 기한을 이틀 앞두고 성사되었다. 고무적인 성과지만,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 2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5만 서명을 얻는 데 한 달이 꼬박 걸렸다는 사실은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에 화답하는 연대투쟁이 한참 더 확대되어야 함을 뜻한다. 청원이 심사와 의결을 거쳐 정부에 의해 실행됨으로써 우리의 요구를 실제로 쟁취하기까지의 원동력 또한 계급투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최우선 과업은, 8월과 11월 발전노동자 파업투쟁과 그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9월 기후정의행진 역시 그 가교가 되어야 한다. -
[말벌을 만나다#5] “입체안경을 쓰고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 IT노동자 동지를 만나다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IT노동자 동지다. 주 100시간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IT하청노동자인 그는, 세종호텔 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입체안경을 쓴 듯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일반노조 누구나지회 소속으로 연대 활동을 이어가는 IT노동자 동지. 7월 15일, 그가 어떻게 광장에 서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과 실천을 이어가는지 들었다. 안녕하세요. 본인을 ‘IT노동자’로 표현하고 계신데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IT노동자’라는 닉네임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지은 건 아니고요. 1월에 허지희 동지가 만든 웹자보 보고 세종호텔 집회에 참여했어요. 집회에서 참석자 이름 확인하잖아요. 저는 온라인 활동을 안 해서 닉네임 같은 게 없어서요, 노동 현장이니까 노동자로 얘기해야겠다, 근데 IT쪽에서 일하니까 ‘IT노동자’로 해야겠다 해서 한 번 쓴 거에요. 근데 그때부터 계속 ‘IT노동자’로 기억을 해주셔서 쓰고 있습니다. 저는 강서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신혼부부이고요. 작년에 결혼했는데, 윤석열 내란 때문에 신혼생활을 6개월 만에 빼앗겼습니다. 전에 IT현장에서 근무할 때 1주 100시간씩 4주간 400시간까지 일해봤단 얘기를 하셨어요. 충격적인 얘기였는데요, IT노동 현장 얘기를 좀 들려주세요. 저는 SI(소프트웨어 통합) 업무를 해요. 그러니까 쇼핑몰이라든지, 키오스크라든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소비자들에게 오픈할 때까지 개발하는 과정이에요. 제가 일하는 업체는 전체 규모로는 200명 정도 일하는 곳인데요, 정직원은 50명이고 프리랜서가 150명 정도입니다. 업력은 15년이니 업계에서는 중견기업 정도 되고요.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라고 봐야 해요. 일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PM(프로젝트 매니저)이 바뀐다든지, 다른 업체가 펑크를 내 전체 일정이 밀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터지는데, 원래는 그럴 때 인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거든요. 프리랜서를 계약해 데려오든지 해야 되는데, 그냥 어차피 월급 받는 정직원들이 땜빵하라는 식이죠. 코로나 때는 장시간 노동이 더 심각했어요. 그 전에는 진짜 심각한 프로젝트도 많았는데, 그나마 약간 나아져서 이제는 주 7~80시간까지 가는 프로젝트는 적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는 밥 먹듯이 넘겼는데. 그래도 주 60시간 정도는 일합니다. 그건 명백하게 노동법 위반인데 문제 제기하는 동료들이 없었나요? 아무래도 우리 업체가 하청이다 보니까, 항의를 해도 원청에 책임을 떠넘기죠. “네가 갑(원청)에게 직접 따져서 오더를 내리게 해라” 뭐 이런 식으로요. 원청 대기업과 하청업체가 프로젝트 계약서를 쓰면요, ‘프로젝트 종료 후 2년간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조항까지 넣어요. 그래서 이미 끝난 프로젝트인데, 원청에서 애프터서비스 요구했다는 이유로 가서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원청이 작업 일정 등을 통제하는 거니까 불법파견 소지도 있어 보이는데요. 하청업체 사장은 어쩌다 일 터지면 나와서 보는 수준이에요. 보통 6개월에 한 번이나 얼굴을 봤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너네 사장은 그래도 양심 있다”는 얘기를 해요. 우리 업체는 나름대로 팀이라도 꾸려서 프로젝트에 투입됐는데, 어떤 대기업은 하청을 주면서도 아예 원하청 노동자 자리 배치를 같이 하기도 하죠. 같이 일하지만 원하청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도 크다고 들었어요. 본인은 일하실 때 어떻게 대응하셨어요? 일단 너무 바빠서 대응도 힘들었어요. 사실 1주 100시간 일했을 때, 정말 안 되겠다 싶어 퇴사하려고 짐을 다 쌌어요.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는데 너무 바쁜 거예요. 일하는 곳은 광화문이고, 본사는 강남이거든요? 사직서를 내려면 강남까지 가야 하니까, 바빠서 사직서 낼 시간을 못 만들고 흐지부지된 적이 있어요. 워낙 힘드니까 동료들하고 전우 의식 같은 것도 생기기도 했고요. 일하며 힘들어서 민주노총 IT연맹 홈페이지 찾아가 보곤 했어요. 근데 처음에 프리랜서 노조 가입을 받을지 결정이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프리랜서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노조가 아니겠다 싶어서 가입을 안 했어요. IT업체는 정규직이 적고 프리랜서가 많은데 프리랜서까지 가입이 돼야 뭔가 협상이 가능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내란 터졌을 때 일반노조 누구나지회가 더 낫겠다 싶어서 거기로 가입했어요. 내란 사태가 터지고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요, 그때의 심경과 고민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세요. 저는 계엄령 발표되고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어요. 12월 3일에 친구 돌잔치 가려고 돌 반지까지 준비해서 나가려다가 취소하고요, 이틀 후에 집회에 나갔어요. 그게 생애 최초의 집회 참여였습니다. 저는 박근혜 때도 집회 안 나갔었거든요. 근데 계엄령은 진짜 나라 망한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6~70년대 현대사 시간에나 배웠고, 다른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죠. 막 국정원에 끌려가고 그럴 텐데, 못 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12월부터 집회에 참여하면서 1월부터는 집회 자원봉사 활동도 하게 됐습니다. 남태령, 한강진, 민주노총 노숙투쟁 모두 참여했고요. 회사 다니면서 집회 다니고 그러다 보니 탄핵되고 나서 몸이 힘들더라고요. 회사에 퇴직하겠다고 하니까 일단 휴직을 쓰라고 해서 6월부터 9월 말까지 휴직을 쓰는 중입니다. 남태령 말씀을 하셔서 말인데요. 고백하자면 저는 그날 남태령 갈 생각을 아예 안 했거든요. 낮부터 집회를 했으니까요. 저녁에 명동에서 정리집회할 때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경찰에 막혀 있다’는 얘기가 방송차에서 나왔죠. 저는 그때 ‘아, 그렇구나’ 하면서 집에 갈 생각만 했거든요. 남태령까지 가실 때의 생각은 어떠셨어요? 그때 2차 계엄령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긴장감이 있었잖아요. 한덕수도 탄핵해야 하느냐로 시끄러웠고요. 내란 세력과의 파워게임이 되고 있는데,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밀린다면 그럼 우리가 밀리는 거다, 저분들이 밀리면 모두 손해를 보는 거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집회에서 같이 나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저 혼자 남태령까지 갔어요. 근데 오래 활동하신 분들은 그때 약간 여유가 있으시더라고요. (웃음) 저는 그때 정말 나라 망하는 줄 알았고요. 윤석열 퇴진 광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주장을 펼쳤죠. 그중에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들은 누구였어요? 세종호텔 투쟁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광화문에서 5년 동안 일했는데 세종호텔에 노숙 농성투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거든요. 마치 입체안경을 쓰고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너무 무관심하고 몰랐구나, 하는 충격이요. 이렇게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구나, 내가 이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부채 의식이 생겼죠. 나는 그동안 내 살 길만 살았는데 이분들은 이런 사회운동을 했구나, 싶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일반노조 누구나지회도 가입하신 건데요. 실제로 노조 활동에 참여해 보니 어떠신가요? 사실 한국에서 노조활동은 사업장 단위로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게 중심 활동이거든요. 이를 위한 의결체계가 만들어지고요. 그런데 누구나지회 같은 형태에서는 의결체계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활동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톡방에서 대화는 활발한데, 서로 얼굴을 익히기도 힘들고요. 두 달에 한번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교육을 하고요. 교육 내용은 민주노조의 형성 과정, 일반노조의 의미 같은 거요. 총회하면 오프라인으로 2~30명 정도? 줌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사업계획으로 지역 연대활동을 얘기하는데, 개념은 좋지만 아직 좀 막연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동지는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서 진행 중인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듣고 계시죠. 6강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오프라인으로 개근하셨어요. 교육 들으면서 어떠셨어요? 일단 신선해요. 왜냐면 정규 교육에선 못 들었던 얘기니까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일본에는 전공투 같은 사회주의 운동이 있다고 알았지만, 한국에도 사회주의 운동이 있는지 잘 몰랐거든요. 지인들에게 ‘사회주의’란 얘기는 직접 하긴 좀 그런데, 같이 집회 자원봉사했던 사람들에게 ‘너 이거 들었으면 되게 좋았을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미학 공부할 때 변증법 이런 게 관심이 있어서, 1강 철학 교육이 제일 재밌었고요. 지금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60% 중반대로 찍더라고요. 아마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 상당수도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앞날이 어떨까요?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요. 자원봉사를 같이 했던 사람들 보면, 처음에는 기대를 많이 했다가 실망한 것 같더라고요. 이재명이 당선되면 공격적으로 내란 청산을 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광장에 나왔던 사람 중에 민주당원들도 있는데, 이들도 내란 청산이 빨리 안 되는 데 실망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9월에 복직한 후에 회사 내에서 노조 활동은 가능할 것 같으신가요? 글쎄요, 회사에서 노조활동 하면 회사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웃음) 사장님이 고령이어서 맨날 ‘회사 문 닫아야 하는데’라고 얘기하시는 분인데 노조가 생기면 진짜 문 닫을 것 같아요. 그래도 동료들을 누구나지회에 가입시킨다든지 이런 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노동자 투쟁 연대도 계속하고요. 윤석열 파면 때처럼 열심히는 못 해도, 일과 병행할 수 있을 만큼 투쟁 연대도 열심히 하고요. -
[성명] 권리 보장을 위한 진전,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 발의를 환영하며 국회의 조속한 논의와 의결을 요구한다.7월 11일, 남인순 의원 외 11명의 국회의원이 모자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하여 입법예고하였다. 이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이라는 용어를 ‘인공임신중지’로 수정하여 통일하고 수술만 언급되어 있던 정의 조항을 약물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임신중지를 급여 대상으로 포함하도록 명시하였다. 또한 형법상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모자보건법에 잔존해 남아 있던 위법성 조각사유인 14조를 완전히 삭제하였다. 이후 7월 23일에는 이수진 의원 등 10인의 대표발의로 또 다른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 안 또한 용어를 ‘인공임신중지’로 변경하고 약물과 보험급여 실시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였으며, 지원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개정 방향을 환영하며, 22대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하고 의결할 것을 요구한다. 모자보건법 14조의 삭제와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 건강보험 보장 등의 내용은 ‘낙태죄’의 효력 상실과 함께 즉각적으로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2조의 정의 조항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 법이 제정된 1973년의 의료 수준을 반영한 것으로, 이미 1988년부터 승인되어 이제 WHO 필수의약품으로 등재된 유산유도제를 이용한 안전한 임신중지에 의학적 가이드에 크게 뒤쳐진 조항이다. 따라서 정의 조항은 현 시대의 의학적 가이드와 기준에 맞춰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임신중지 관련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의료비로 인해 임신중지 시기를 지연시키게 되거나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임신중지 의료비 수가를 명확히 하고 임신중지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의료의 접근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무엇보다도,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삭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조항은 '낙태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장애와 질병이 있는 인구를 우생학적으로 통제하고 여성의 몸과 결정권을 국가 목적에 따라 관리하려 했던 인구정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14조로 인해 수많은 장애인들이 강제적이거나 동의 없는 불임 시술과 임신중지를 겪어야 했고, 그 실태조차 여전히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한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조항은 상대 남성에 의한 보복성 고발을 가능케 하여, 심각한 폭력 상황에서도 여성의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해왔다.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에도, 의료 및 지원 현장에서는 여전히 모자보건법 제14조를 근거로 의료 서비스와 지원의 범위를 제한해 왔고, 이는 여러 문제를 초래해왔다. 여전히 상당 수의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마치 법적 기준인 것처럼 말하며 환자로부터 더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게 하거나 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으며,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지원이 가능한 절차로 인해 임신중지 시기를 지연시켜왔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에 반영된 내용들은 앞으로의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며 그동안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을 통해 국가가 저질러 온 심각한 인권침해의 역사를 청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21대 국회에서도 권리 보장 조항을 포함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된 바 있으나 결국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되었다. 22대 국회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즉각 발의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빠르게 의결하기 바란다. 나아가, 현재 발의된 개정안의 내용을 넘어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상담과 지원 체계, 보건의료 연계 체계와 시스템 구축 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시하는 모자보건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모자보건법 뿐만 아니라 상위법으로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한 기본법 제정 및 과거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근로기준법, 약사법 등 관련 법의 개정도 빠르게 추진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법안의 개정과 함께 정부 보건 당국의 실질적인 행정 조치와 인프라 마련이 조속히 실행되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산유도제를 즉각 승인하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을 전면 적용하라. 그리고 안전하고 공식적인 임신중지 지원을 위한 임상 가이드와 의료, 상담, 지원 서비스 체계 구축에 나서라. 우리는 앞으로도 국회와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며 계속해서 변화를 밀어나갈 것이다. 2025년 7월 25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노동당, 녹색당,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탁틴내일,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플랫폼 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홈리스행동 -
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리는 금속노조 - 지배자들과 한배를 타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킬 순 없다!사진: 금속노조 지난 7월 초 전미자동차노조(UAW) 간부들이 금속노조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7년 기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임금협약은 그대로 두되, 신규 채용 노동자에게는 기존 노동자의 절반 정도만 받도록 하는 '이중임금제'를 합의한 노조로 오랫동안 어용적 행보로 비판받아 왔다. 2023년 이른바 민주파 집행부가 등장해 차별임금제를 상당히 완화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최근 그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대대적인 이민자 추방, 공무원 대량 해고 등 노동자 민중을 향해 야수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거나말거나(?) 금속노조는 아무런 비판도 없이 이들을 초청하고 함께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양 노조는 자동차산업 공급망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했다. 자본의 의도에 따라 분열하고 반목하지 않고 함께 협력해 싸우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는 양 노조의 실제 행보와는 다른 포장에 불과하다. 관세전쟁이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 전미자동차노조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라 치켜세웠다.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숀 페인은 3월 26일 트럼프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주요 관세를 발표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십 년간 노동자 공동체를 파괴해 온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기 위해 행동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를 환영한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 관세가 ‘미국 내 생산 회귀를 이끄는 가운데,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고 지역 경제를 황폐화한 정책으로부터 손해 입은 블루칼라 지역사회를 회복시키는 조치’라 주장한다. 숀 페인은 북미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 자동차의 75%가 멕시코에서 생산된다며 고율 관세로 매우 짧은 시간에 이 생산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생존과 고용은 오직 자본의 생존, 국제적 승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노사협조주의적 관점이 깔려 있다.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생길 수만 있다면, 다른 산업,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조합주의적 태도, 이기주의적 태도의 표본이다. 이런데도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를 말한다. 누구에 대한 승리인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승리" -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산업 관세 부과 조치를 환영하는 UAW성명 자본가들의 장단대로? 나라마다, 산업마다, 기업마다 관세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미국 안에서도 수입 물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을 우려하며 ‘제 발등 찍기’란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클라이슬러, 지프, 램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스텔란티스(피아트와 PSA가 합병해서 만든 그룹) 회장 존 엘칸은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산 부품이 다수 탑재돼 있으므로) 무관세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포드의 최고 경영자 짐 팔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차량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자동차산업에 전례 없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밀어붙이는 대표적 산업인 철강·알루미늄 산업의 자본가들도 모두 관세전쟁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 공장을 둔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알루미늄협회 회장 찰스 존슨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지지하면서도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금속 공급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취사선택한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범위와 속도도 조절한다. 예전에 한국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한칠레 FTA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한일 FTA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했다. 내수시장을 빼앗길 염려가 없었고 칠레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기에 한칠레 FTA는 찬성했지만, 일본 기업 자동차들의 대대적으로 상륙하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한일 FTA는 반대했다. 이런 자본가들의 장단에 발을 맞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자들이 자기가 고용된 자본의 입장에 따라, 태도 변화에 따라 그때마다 노선을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째, 노동자들은 나라별로, 산업별로, 회사별로 갈가리 찢길 수밖에 없다. 둘째, 정부와 자본가들이 퍼붓는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를 논리에 맞서지 못하고 임금 삭감, 정리해고 공격을 허용하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자본가들은 회사와 한 몸이 되어 투쟁과 단결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노동자들을 쉽게 절벽 밑으로 내몰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경쟁 도구로 활용되며, 들러리가 된다. 노동자의 대안은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가 아니라 이윤경쟁체제 자체에 대한 투쟁이며, 자국 시장보호를 위한 자국 자본가들과 연합이 아니라 전 세계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강화다. 피장파장 전미자동차노조가 국제연대의 대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이슨 웨이든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수석보좌관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7월 10일 열린 ‘전환기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권리 확대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웨이든은 “자유무역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노조 정책으로 작용했다”며,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기업은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으로)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면 한국 노동자도 미국과 같은 고통을 받는다”라며 “UAW가 미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지지하며 오직 자국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이로운 보호무역을 주장하면서,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금속노조도 전 세계적인 물량 경쟁과 공장 이전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다른 대답을 못 한다는 점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피장파장이니 금속노조나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변덕? 안타깝게도 제임스 웨이든의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금속노조 장창열 위원장은 7월 10일 총파업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으로, 기후위기로, 트럼프의 변덕질로 전 세계 무역과 생산 공급망이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우리의 일자리를 직접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방어하는 정부의 현명한 대책만큼이나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내 자신의 일자리에서 시작해 한국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입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 ‘한국 산업을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나라 노동자가 단결해 모든 나라 지배자와 싸우는 전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계급의 대립을 지우고 국가를 위해 단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애국주의까지 들이밀고 있다. 결국, 이 논리대로라면 금속노조도 UAW처럼 이렇게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한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먼저,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의 원인은 금속노조 위원장 담화문의 진단과 달리 트럼프의 변덕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4월 2일 대대적인 고율 관세 조치를 발표한 후.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한 이유도 트럼프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주식 폭락,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 생산량·고용 감소 등 부메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관세전쟁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불안정성을 완화할 수 없는 트럼프 정부의 절박함을 말해준다. 트럼프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관세를 내세웠다. 물론, 관세전쟁은 단지 미국 세수를 늘리고 미국산업을 보호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자본주의 자체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려는 지렛대다. 관세전쟁에는 실제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체계는 국가 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체계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란(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보고서 23p>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더 큰 전쟁 위협과 더 격렬한 세계적 경쟁을 낳을 것이다. 어떤 나라, 어떤 자본이 경쟁의 파고에 휘청거리며 몰락할지 알 수 없지만, 한쪽에서의 부분적 몰락도 세계 전반의 극심한 경제위기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그럴수록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경쟁시키려 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금융위기는 협조주의, 애국주의에 빠져들어 노동자 민중이 무장해제 되었을 때, 얼마나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줬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란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다른 전망 10일 토론회에서 이익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미래변화대응 태스크포스(TF) 위원은 “한국 (자동차) 노조 입장에서는 UAW가 우리를 죽이고, 혼자 살겠다고 한다는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차지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혼자 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 살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가?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다른 나라로 이전한다고 할 때 어떤 태도를 실천해 왔는가? 누구도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청 대기업들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하기 위해 생산 물량을 이원화·삼원화하곤 한다. 노조가 없는 다른 부품사에서도 동일한 아이템(부품)을 생산하도록 만들어, 노동조합 파업의 효과를 봉쇄하고 생산 차질을 막는다. 이런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의 대안은, 다른 부품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기 위해 아이템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품사에서도 민주노조를 건설해, 물량 이원화·삼원화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며, 같은 아이템을 생산하는 다른 부품사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대체 물량 생산을 거부하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공장 이동과 물량 경쟁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 원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인도와 태국으로 이전한다면 인도와 태국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는 대체 생산을 거부해야 한다. 물량이 이전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총고용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완전 월급제 쟁취를 위해 싸워야 한다. 사업장을 넘어, 국경을 넘어 단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러 곳에서 일국적 전망을 넘어선 공동의 네트워크와 공동의 활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런 전망이 지금 당장 한국 대공장 노조의 손에 잡히는 전망이 될 수는 없다. 지도부의 관료화와 현장 활동가들의 후퇴만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평조합원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전망, 올바른 전망의 씨앗을 계속 뿌려야 한다. 관세전쟁의 충격은 금속노조만이 아니라 모든 노조 앞에 회피할 수 없는 문제를 다시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관세전쟁을 이유로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공격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정확한 대치선을 그어야 한다. 민족주의, 애국주의의 포로가 될 것이냐, 국경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해서 전 세계를 바꿀 것이냐? 그 누구도 이 근본적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
[인터뷰] “잠깐만, 어? 진짜 부결이다!” - 통상임금 관련 사측 꼼수 걷어차고 투쟁 2라운드 준비하는 KEC지회 노동자들KEC지회는 2010년 자본의 민주노조 파괴 책동에 맞서 340일 동안 끈질기게 투쟁한 후, 현장에 들어가서 싸우자는 집단적 결의로 복귀했다. 사측은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만든 복수노조로 현장을 장악해 들어갔다. 그러나 KEC지회 동지들은 소수노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본이 만든 어용노조가 앞장서 노동조건 개악안들을 수없이 밀어붙이는 속에서도, 전체 현장 노동자를 향한 선전과 선동을 지속하며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러한 현장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평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본적인 체계를 튼튼히 갖췄기 때문이다. 작년 통상임금 적용 범위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난 후, 지회는 자본의 꼼수를 예상하고 간부부터 조합원까지 전체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 결과 끝내 교섭대표권을 가지고 있는 어용노조 조합원들도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을 선택했다. 잠정합의안은 부결됐고, 다시 투쟁의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김성훈 사무장을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김성훈 사무장(왼쪽) 사진: 경향신문 최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작년 12월 19일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났죠. 대법원은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기존의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에서 ‘고정성’을 제외하고 ‘정기성과 일률성’만을 기준으로 봤습니다. ‘아, 우리 현장에도 영향이 있겠구나, 사측이 상여금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KEC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고 있어요. 특히 지회의 여성 조합원들은 차별 시정이 있었음에도 금속노조 소속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어용노조가 진행하는 교섭에서 임금 인상은 택도 없고, 그나마 법적으로 매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상분 정도만 오르는 실정이죠. 하기에 이번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을 두고 사측은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는 타 사업장 추세를 따라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됐죠. 역시 사측은 2월 3일 지회와 진행한 개별교섭에서 ‘대법 판결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체불’이라는 문제 제기에, ‘상여금이 너무 많다’는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대법 판결이 ‘권고사항일 뿐’이라는 헛소리를 해대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다수노조인 어용노조를 이용해 통상임금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사측의 꼼수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현장을 조직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우리는 판결이 나고 바로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 어려운 길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어요. 지회 임원회의를 열어 사측의 행보를 예상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확대 간부회의를 통해 대응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임원회의, 집행부 수련회, 확간 수련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의제와 현장 대응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했죠.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전체 조합원 교육과 간담회를 통해 알려냈습니다. 올해 핵심의제로 현장 전체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우리 지회만이 아니라 2노조, 3노조, 그리고 소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비조합원들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초반부터 너무 힘을 들이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타이밍 조절을 많이 했어요. 사실 소식지에 실었던 현장 반응도 초반에는 잘 올라오지 않았어요. 간부들이 주 2회 퇴근 후 회합을 하는데, 회의 내용을 봐도 내용이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전체 조합원 교육까지 다 마치고 나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지회에 와서 현장에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어요. 분명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활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현장에서 조금 서툴고 때로는 틀린 얘기들이 들어오기도 해요. 이런 모습마저도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선 소식지를 발행했어요. ‘상여금은 임단협 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으며 예상되는 사측의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떼먹고 있는 임금이 어느 정도인지 직급별로 분석해 소식지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KEC지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 등을 담았죠. 주 2회 조합원들과 함께 선전전을 진행했고, 식당 등에서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OX 스티커 부착 등의 실천활동도 벌였습니다. 조합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지회 사무실엔 통상임금 관련한 유튜브 강의를 다운받아 틀어놓았어요. 조합원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한 것이죠. 조합원들은 ‘내 상여금 니가 왜!’ 배지를 달고 라인에서 만나는 동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현장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했습니다. "내 상여금 니가 왜!" 4월이 돼서야 사측은 올해 임단협 안 속에 상여금 900%를 매월로 75%씩 나눠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짝수 달과 설, 추석, 여름휴가 100%씩 지급) 상여금을 기본급화해 그나마 매년 법적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랐던 임금 인상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6월 23일 사측 통상임금 안을 그대로 반영한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나왔습니다. 그날도 식당에서 진행할 이벤트성 선전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아온 잠정합의안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간 관행을 봤을 때 사측도 어용노조도 결코 시간을 많이 주지 않고 바로 투표를 밀어붙일 것이라 예상됐거든요. 잠정합의안 부결 현수막부터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 잠정합의안 설명 시간 30분을 이용해 조합원들을 소집했습니다. 잠정합의안을 설명하는 데는 30분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교육과 활동으로 조합원들은 5분 만에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현장에 들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에 바로 현장으로 뛰어갔죠. 잠정합의안 투표를 하기 전 3일 동안 조합원들은 집중력 있게 현장에서 부결을 조직했습니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포착되는 분위기,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지회로 마구 올라왔죠. ‘챗GPT에 확인해 봤는데 지회 말이 맞더라, 무조건 반대 찍을 거다’, ‘교섭위원이 믿고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배신을 하다니 화가 난다’, ‘최저임금 인상돼도 임금 안 오르면 뭐 먹고 사는데’, ‘이것들이 우리를 호구로 보네’, ‘열 받아 죽겠네, 최저임금 인상을 막아버리노’, 이렇게 현장은 분노로 들끓었어요. 그리고 조합원들이 올린 현장의 분노가 가득 찬 목소리들은 잠정합의안의 문제점과 함께 바로 소식지에 실어서 발행했죠. 소수노조로서 현장을 조직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KEC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010년 노조를 파괴하려는 사측에 맞선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가 커요. 민주노조를 위한 처절한 투쟁 과정에서 먼저 떠나간 이들, 뒤통수 쳤던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15년이 흐른 지금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현장에 복귀한 초기에는 갈등이 심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내려가기도 하고, 결국 우리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했죠. 그동안 어용노조가 합의한 임단협을 두고 부결이 나오긴 했어요. 그러나 교섭대표노조(어용노조)가 가결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통과되곤 했죠. 그런데 어용노조에서도 부결 표를 던진 조합원들이 소수 있었어요. 같이 현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 술 한 잔 하면서 대화하며 관계를 형성해간 이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죠. 2015년에는 찬성률이 50% 조금 넘어선 걸 보면서 조금 더 노력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해에 2016년에 찬성률이 70%가 넘어선 걸 보면서 속이 상했죠. 그래도 계속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하기에 속상함에 머물지 않아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했어요. KEC지회도 힘들고 지치기도 해요. 그럼에도 꾸준한 현장활동 노력들이 예전에 비해 덜 뺏기고, 가끔 임금도 올리기로 하면서 결실을 맺는 거죠. 이번에도 조합원들과 이야기했어요. 이번에 상여금 뺏기면 10년간 우리 임금 안 오른다, 감정 내려놓고 어용노조 조합원들도 조직하는 것으로 무조건 다 붙어야 한다고요. 바로 우리를 위해서 싸우자고요. 우린 기본적인 현장활동의 구조가 갖춰져 있고, 조합원들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KEC지회는 3.8 여성의 날 전체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고, 연 1회 복수노조 캠프에 타 노조 조합원들을 초대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공장 전체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다_편집자 주) 부결을 확인한 순간은 어땠나요? 그날 우리가 퇴근도 미루고 대기하고 있었어요. 이미 우리 지회는 개표를 다 마쳐서 다수 노조에 결과를 팩스로 보내주고 기다리고 있었죠. 3개 노조 사무장 카톡방이 있는데 이전 경험으로 봐서 오후 6시 20분쯤이면 오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조금 일찍 알림이 울렸어요. 기다리고 있던 모두가 저의 카톡 소리에 시선이 쏠렸죠. “부결이다. 아니 아니 잠깐만...” 어용노조 투표 결과를 먼저 봐야하는데 전체 결과를 먼저 본 거죠.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 확인했어요. “어? 진짜 부결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 놀라면서도 환호했어요. 저 역시 놀랐죠. 사실 투표 전날 부결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소식지를 미리 써놨거든요. 지회장이 이거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간절한 순간들이 사무치게 다가왔어요. 조합원들도 열심히 현장에서 뛰면서 반응이 체크된 구역은 예상을 했죠. 반면에 반응이 없는 구역 조합원들은 말도 안 들어먹고 답답하다고 하소연한 조합원도 있었어요. 그래도 부결 소식을 함께 들었던 조합원들은 빨리 나가서 술 한 잔 마시러 가자고 했고, 그중에 야간 근무를 들어가야 하는 조합원들은 굉장히 아쉬워했죠. 현장 조합원들이 집중력 있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번 부결을 만들어 낸 현장활동이 그냥 자연스럽게 작동되는 것은 아니에요. 2010년 투쟁 이후 현장에 복귀하면서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강화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퇴근 후 간부 회합이나 수시 간담회 같은 것들이 있죠. 예정된 일정이 아니라 필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수시로 퇴근 후에 모여 논의하는 거죠. 2013년도에는 ‘민주노조 건설하자’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자주적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이런 시스템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조합원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죠. 조금 활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있더라도, 조합원들 스스로 체득한 경험은 마음먹으면 다시 끌어올릴 수가 있거든요.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합원들과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고, 규정도 있어야 하죠. 지회는 대의원대회를 거쳐 3주에 한 번씩 군(구역별) 간담회를 실시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규정이 있어도 대의원들이 실제 움직여야 가능하죠. 아마 이런 군 간담회를 자발적으로 하는 곳은 잘 없을 거예요. 군의 대의원이 의장이 되어 간담회를 진행하죠. 대신 방식은 군별로 자유롭게 열어뒀어요. 지회 회의실에서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하기도 하죠. 잘 되는 군도 있고, 좀 덜 되는 군도 있긴 해요. 매년 임단협 시작할 때 올해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현장에서 함께 대응하자고 말하죠. 또한 연대투쟁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옵티칼 투쟁에도 조별로 결합하고, 민주노총 최저임금 선전전 지침도 조합원들이 함께 결합하죠. KEC지회 안에는 일상적 노동조합 활동이 간부부터 조합원들까지 함께 논의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요.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2010년 파업 당시 서로 소통하고 교육받고 토론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파업 당시 우리는 토론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처음에는 우리 조합원들도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낯설어했죠. 6개 조에서 3개 조만 발표했어요. 조건이 있었거든요. 간부와 대의원들은 절대 발표자로 나서면 안 된다는. 그런데 3주 정도 지나니까 전체 조가 다 발표에 나서더라고요. 그리고 토론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집행부에서 수렴해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KEC지회가 소수노조인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활동하며 민주노조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뭐 특별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속노조 강령대로,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 투쟁성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죠. 민주노조의 기본 원칙은 우리 노동자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탄압을 이겨내면서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그게 바로 노동자들이 만든 지혜가 모인 것이죠. 이런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우리 지회가 투쟁하면서 경험한 것을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또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조합원들에게 공유되는 것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조합원들이 가장 관심이 많은 교섭 과정이 비공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용노조는 절대 비공개를 유지하고 있죠. 제가 알고 있는 것, 집행부가 알고 있는 정보는 바로바로 조합원들에게 알려주죠. 그래야 상황 판단도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고, 조합원들 속에서 아이디어도 나오거든요. 이렇게 기본정신을 지키는 것이 한편으로 힘 들기도 해요. 자본이 별다른 탄압을 하지 않는 시기에는 관성이 자연스레 똬리를 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민주노조가 절실하니까요.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노조 사업장, 특히 소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고생 많다, 진짜 힘들 건데.” KEC지회는 서로가 힘을 모아가면서 정말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 워낙 활동을 잘하니까 자랑스럽죠. 지금은 소수노조로 있지만 처음에는 규모도 있었기에 괜찮아요. 그런데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들이 겪는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어요. 집행부에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조합원들이 알아주지도 않아서 스스로 자괴감이 들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민주노조를 유지하는 길은 무엇보다 지도부가 감당하면서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원도 얼마 되지 않아 조합비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거든요. 그럼에도 소수의 무기력함 속에서도 훌륭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계시는 걸 알아요. 일단 마음으로 위로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싶고요.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은 차후 문제인 거 같아요. 그리고 왜 우리처럼 못할까라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업장마다 상황과 처지, 조건이 다 다르니까요. 어려운 조건에서도 버텨내고 있는 동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끝까지 할 거라는 걸 알아요. 그렇게 꾸준하게 가다 보면 그 동지들도 웃는 날이 있을 거잖아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없어져야 할까요? 생긴 게 없어지기는 쉽지 않잖아요.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는 않겠죠. 현실에서 인정하고 가야죠. 복수노조 속에서 받는 탄압은, 탄압의 본질이 아니라 탄압의 구체적 형태, 탄압이 가해지는 구체적 지형이 변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잖아요. 변화된 지형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죠. 복수노조가 아니라 하나의 노조라면 좀 더 쉬울 수는 있겠죠.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 지회로 한 명을 더 데려와 조직화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고요, 다른 노조의 조합원도 같이 성장하는 방식이 있죠. 우리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면서 어용노조 조합원들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면서요. 그런 것이 현장활동이죠. 꾸준하게 밀고 가면 과정마다 맛보는 결과가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상처도 받고 욕도 하지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