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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예견된 법무부의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 실패, 지금 당장 폐기하라!2024년 6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비상한 각오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 “돌봄 수요 충족과 양육비용 절감”을 외치며, ① 외국인 가사관리사 확대(25년 상반기 1,200명 목표) ② 외국인 유학생‧외국인 근로자 배우자 등에 가사돌봄 취업 허용(시범사업 5,000명)을 발표하였다. 이중 2024년 9월 시행된 ‘외국인(필리핀) 가사관리사 확대’는 기업의 불법통제와 감시감독, 임금체불 등 다양한 문제를 낳으며 중단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편, ② 외국인 유학생 등에 대한 시범사업은 2025년 3월, 법무부의 “국내 체류 외국인 가사, 육아분야 활동 시범사업”(이하 법무부 시범사업’) 발표로 구체화되었다. 근로기준법 11조 가사사용인 적용 제외를 악용하여 최저임금조차 적용하지 않는 반인권, 반노동적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3억이라는 교육예산까지 편성하며 시범사업을 강행했다. 법무부 시범사업에는 경북, 전북, 경남도와 서울특별시가 참여했으나 사회적 비판과 부정적 여론, 참여자 부족 등으로 서울시를 제외하고 모두 철회한 상태다. 이미 2024년 “서울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하 서울시 시범사업)을 졸속으로 강행한 서울시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노동착취 등의 문제를 외면하며 값싼 비용만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여러 방면으로 드러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반성과 개선 없이, 앞장서서 300명 규모로 법무부 시범사업을 신청하였다. 언론 등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42명만이 법무부 시범사업 교육을 신청했는데, 신청한 42명 중 8명만이 실제로 교육을 마쳤다고 한다. 젠더화된 돌봄과 돌봄 노동이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어 온 현실을 기반으로 추진된 사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주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이하 연대회의)는 법무부 시범사업 강행 당시에도 해당 사업이 가사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11조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돌봄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자체와 정부가 앞장서서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행태 역시 규탄해왔다. 또한, 서울시 시범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쪼개기 계약의 문제, 이용 가정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즉각 접수하고 대응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일상적 통제와 감시 등의 문제 등을 계속해서 지적하며 활동해왔다. 연대회의는 법무부와 서울시의 시범사업 즉각 폐기를 촉구한다. 또한 서울시 시범사업에서 확인된 쪼개기 계약으로 인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불안 역시 함께 해소해야 한다. 아울러, 시범사업 폐기 차원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점 역시 강조한다. 돌봄이 ‘인력난’에 놓였다면 그 기반에 있는 민간기관의 난립, 시급제 및 단시간 호출 노동과 저임금의 굴레,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개선해가야 한다. ‘비용부담’ 운운하며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말할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조차 적용하고 있지 않는 근로기준법 11조 “가사사용인 적용제외”를 폐기해야 한다. 또한 “값싼 이주노동자 활용”만을 모색할 게 아니라, 현대판 노예제 고용허가제 폐지 및 노동허가제 실시 등을 포함해 이주노동자에게 부담과 위험을 전가하는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 법무부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 즉각 폐기하라! -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즉각 폐기하고 돌봄공공성 보장하라! -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쪼개기 계약 즉각 중단하고, 안정적인 고용기간 제대로 보장하라! - 정부는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사용인 적용제외 및 외국인고용법상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 정부는 저평가된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 2025년 7월 16일 이주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건강보험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촉구 파업 돌입1. 건강보험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촉구 파업 돌입 7월 15일, 전국의 건강보험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시작했다.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2021년 공단과 맺은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순환파업에 돌입했다. 이어서 22일에는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총파업과 함께 지부 총회를 개최하고, 오는 29일에는 총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연다. 현장에서부터 각종 회의, 선전전, 현장투쟁 등을 거쳐 모아낸 이번 파업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첫 번째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정치·사회적으로도 큰 주목과 지지를 받고 있다. 국가 의료복지의 핵심인 건강보험 일선에서 콜센터 전화상담을 하는 노동자들은 1,091가지가 넘는 자격, 부과, 징수, 급여, 노인장기요양 등의 필수 공익업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서 재산, 소득, 자동차, 가족관계, 심지어 출입국 기록, 시설수용 등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하지만 공단과 정부는 아직까지도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약속한 직접고용 전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공단은 도리어 ‘2019년 2월 28일 입사자 공개경쟁 채용’, ‘AI상담 시스템 선도입을 통한 인력감축 시사’ 등 합의를 무력화하는 탄압을 벌이고 있다.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올해 다시 파업에 나선 것이다. 지부는 “정규직을 가장한 구조조정 중단”과 “1,633명의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현직자와 50여 명의 휴직자 모두 정규직 정원으로 확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이재명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파업투쟁에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확산 정책으로 공단 정규직에서 민간위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지 18년.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모든 노동자 정규직 전환 투쟁은 하나의 공공기관을 넘어 비정규직 철폐와 사회대개혁을 여는 관문이다. 노동자의 단결투쟁으로 새로운 길을 열자. <참조 기사> https://kptu.net/board/detail.aspx?mid=BCB52DDC&page=1&idx=53270&bid=KPTU_NEW01 https://kptu.net/board/detail.aspx?mid=F686C1F3&grpid=0&idx=53278 2. “직업계고 현장실습 4주→12주 확대” 전북교육청 지침 개정 논란 전북도교육청이 직업계고 산업체 현장실습 기간을 최대 12주까지 확대하는 지침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에 전북지역 교육·노동단체들이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2017년 실습생 사망 사고를 계기로 도입된 ‘4주 제한’ 원칙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내모는 제도 개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등은 15일 전북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교육청은 지난 2017년 이후 유지돼 온 최소한의 교육권 보호 기준을 파기했다”며 “개정된 직업계고 현장실습 지침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도교육청은 지난 4월 ‘현장실습위원회’를 열고 관련 지침을 전면 개정했다. 이를 통해 실습 기간은 현행 4주에서 최대 12주(전북지역 이외)로 연장됐고, 실습 시기도 연중 가능하도록 했다. 기자회견 주최 단체들은 “교육청의 이번 개정은 교육·사회적 합의를 저버리는 행위이자, 비극적 사건을 망각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전북지역에서는 2017년 전주생명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전공과 무관한 콜센터에 배치돼 현장실습을 하던 중 실적 압박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영화 <다음 소희>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단체들은 현장실습이 ‘학습’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 공급’으로 변질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208071.html 3. 공적연금, 노인빈곤율 15%p 낮췄지만 … 여전히 OECD 1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양대 축으로 하는 공적연금 제도가 지난 17년간 한국 노인의 빈곤율을 15%p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으로, 제도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공적연금 소득분배구조 개선효과 분석>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공적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극적으로 강화됐다. 공적연금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와 비교해 실제 빈곤율을 낮추는 ‘빈곤완화 효과’는 2006년 2.4%p에서 2022년 14.9%p로 6배 이상 커졌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개선 효과 역시 같은 기간 3.5%에서 27.0%로 8배 가까이로 확대됐다. 이런 변화는 노인 부양 체계의 구조적 전환을 명확히 보여준다. 노인 빈곤 감소에 대한 각 소득원의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2006년 공적연금은 전체 노인 빈곤율을 1.2%p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2022년에는 그 영향력이 6배 이상 커져 빈곤율을 7.3%p나 끌어내리는 핵심 안전망이 됐다. 하지만 이처럼 공적연금의 역할이 커졌음에도 2022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3.2%에 달했다. 특히 여성과 초고령층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2022년 남성의 국민연금 수급률은 56.9%였지만 여성은 32.4%에 그쳤다. 이는 과거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가 노후 소득의 불평등으로 이어진 결과다. 이로 인해 여성 노인의 빈곤율(48.7%)은 남성 노인(35.9%)보다 1.3배 이상 높았다. 75세 이상 노인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이들의 빈곤율은 61.3%로, 65∼74세 노인(30.8%)의 2배에 달했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이미 중장년층이어서 가입 기간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세대가 현재의 75세 이상 노인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공적연금이 노인 빈곤 완화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성과 75세 이상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강화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참조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50716079000530?input=1195m 4. 임신 중 공무원 하루 2시간 ‘모성보호시간’ 사용 의무화 임신 중 여성 공무원의 휴식이나 병원 진료 등을 위한 ‘모성보호시간’ 사용이 보장될 예정이다. 또한 남성공무원이 배우자 임신기간 중 검진에 동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신설되고, 배우자 출산 이전에도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공무원 복무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22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마련되었다. 먼저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2주 이후의 여성공무원이 모성보호시간 사용을 신청하면 복무권자가 이를 반드시 허가하도록 의무화한다.그동안 임신 중인 여성공무원은 임신기간에 1일 2시간의 범위에서 모성보호시간을 사용할 수 있지만, 복무권자가 휴가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복무규정 개정을 통해, 앞으로는 모성보호시간 사용 신청 때 복무권자의 허가를 의무화해 임신 초기 또는 후기 여성공무원의 휴식권을 두텁게 보장할 계획이다. 여성공무원의 모성보호시간 사용 보장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아직까지는 국가기관이나 대기업 등 일부 일터에서만 보장되고 있다. 모든 일터에서 이러한 제도들이 보장되고 안착되며 육아와 여성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야 저출생 경향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참조 기사>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46003&utm_source=dable 5. 미국 트럼프 정부, 성소수자 청소년 전용 자살예방 상담전화 폐쇄 미국 트럼프 정부가 다양성·포용 정책 폐지의 일환으로 ‘988 자살예방 상담전화’의 성소수자 청소년 전용 회선(3번)을 전격 폐쇄했다. 정부는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 유지 위해 선택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과 생명을 경시한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그동안 국가가 운영하는 988 자살예방 상담전화의 3번 회선은 인구 10명 중 4명이 자살위기를 경험하는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전문 상담사가 정체성 고민, 차별과 폭력, 괴롭힘, 커밍아웃 공포 등을 상담해왔다. 2022년 7월 이후 약 1,650만 명이 988 자살예방 상담전화에 전화하거나 문자 또는 채팅을 보냈는데 이 중 약 150만 건이 성소수자 청소년 전문 상담서비스로 연결되었다. <2024년 트레버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13세에서 24세 사이 성소수자 청소년의 39%가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고, 이 중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청소년의 46%가 자살을 고려했다. 하지만 정신건강 관리를 원하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절반은 치료받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소수자 청소년 전용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없앤 것이다. 시민인 에리히는 “이 전화는 많은 사람, 특히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앞으로의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생명줄과 같다. 이를 없애다니 정말 끔찍하다. 사람들을 죽일 것 같다”라고 성토했다. 성소수자 청소년 자살예방단체인 ‘트레버 프로젝트’는 ‘이는 잔혹한 결정’이라며 ‘정치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규탄했다.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의 삶이 비효율로 규정되었다’,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달린 문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공공의 체계적 지원망이 없다면 청소년 자살 위기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pr.org/sections/shots-health-news/2025/07/19/nx-s1-5472593/988-suicide-crisis-lifeline-lgbtq https://edition.cnn.com/2025/07/17/health/988-lgbtq-youth-services-end-wellness 6. 핀란드 노동 연대 센터 주최 워크숍 열려…성 평등은 모든 노동자의 과제 7월 6일 아크라에서 열린 핀란드 노동조합 연대 센터(UNI-SASK) 주최 워크숍에 모인 여성 노동자들이 성 불평등을 모든 노동자의 문제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조합이 성차별을 여성의 고립된 문제가 아닌 노동자의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포괄적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노동조합 조직인 UNI-Africa의 여성 대표 파트리샤 나이만은 단체 교섭에서 성평등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이를 통해 직장 내 가부장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만은 ‘성 평등 관점’을 포함한 단체 교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부모의 권리, 유급 출산휴가, 모유 수유 시설, 교육과 승진 기회의 평등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워크숍에는 가나의 통신노동조합, 산업상업노동조합, TUC 보안노조 등 3개 노조가 참여해 협상 역량 강화를 모색했다. 나이만은 여성의 목소리가 단체 교섭에서 반영되지 않는 현실이 신규 조합원 모집과 조직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단체 교섭이 노조의 핵심 기능이지만, 성별 이슈는 종종 후 순위로 밀리거나 완전히 배제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배제는 노동조합에서 여성 조합원의 참여와 대표성을 저해한다고 했다. UNI-Africa는 여성의 협상 테이블 참여를 확대하는 조치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UNI-Africa의 여성 지역 대표 레오카디 보도오는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성별 장벽을 해체하고 평등과 공동 책임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 조합원들을 포함한 참가자들은 여성 권익을 위한 집단적 행동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 워크숍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되는 핀란드 노조의 지원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프로젝트 목표는 가나, 케냐, 짐바브웨 등에서 노조의 단체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참고 기사> https://gna.org.gh/2025/07/dont-treat-gender-struggles-as-isolated-womens-issues-trade-unions-told/#google_vignette 7. 미국 볼티모어 간호사들, 7월 24일 첫 파업 예고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세인트 애그니스 병원(Ascension Saint Agnes Hospital)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7월 24일 하루 파업에 돌입한다. 볼티모어에서 간호사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간호사들은 2023년 11월, 볼티모어에서 최초로 병원 노조를 결성하며 주목받았으며, 전국간호사조직위원회/전국간호사연합(NNOC/NNU) 소속이다. 간호사들은 항상 환자 치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소 10일 전에 병원 측에 파업 예고를 하고 있다. 이번에 세인트 애그니스 병원 간호사들이 이번 파업에서 요구하는 내용은 △환자당 안전한 간호사 비율 확보 △간호사의 전문성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병동으로의 배치 금지 △수간호사에게 환자 직접 배정을 맡기지 않고, 다른 간호사들의 지원 역할에 집중하도록 할 것 등 크게 3가지다. 간호사들은 지난 2024년 1월부터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병원 측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동안 수차례 집회도 진행했으나 병원 측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간호사들은 안전한 환자 치료, 적정한 인력 배치, 높은 직원 이직률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지난 5월 16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거의 만장일치로 이번 파업에 임하기로 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ationalnursesunited.org/press/baltimore-nurses-announce-historic-one-day-strike-for-patient-safety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독일 좌파당은 자본주의에 넌더리 난 청년들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을까?베를린에서 열린 좌파당 선거 파티. 가운데 있는 인물이 좌파당 공동대표 하이디 라이히네크다 사진: Jens Gyarmaty 예상을 뛰어넘은 좌파당의 선전이 말하는 것 지난 2월 독일 총선에서 좌파당(Die Linke)이 이변을 연출하면서 큰 관심이 모아졌다. 좌파당은 전 총선 에서의 4.9%에서 3.9%를 추가 득표해 8.8%(64석)를 차지했으며, 베를린 4개 지역과 튀링겐, 작센까지 모두 6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특히 18~24세 유권자에게서 약 25%를 득표했는데, 이는 이전 선거에 비해 17% 상승한 결과였다. 지난해 12월까지 좌파당의 지지율이 3%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또 좌파당의 유명 정치인이었던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2023년 연방의원 16명과 함께 탈당한 뒤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상징적인 반등이었다. 반면, 사민당은 9.3% 감소한 16.4%를 득표해 전후 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고, 녹색당도 3.1% 감소한 11.6%에 그쳤다. 기사/기민당 연합은 28.5%로 제1당이,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20.8%로 2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독일 사회가 우경화되는 가운데, 좌파당이 좌측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의 선전은 2007년 창당 이후 근 20년 만에 거둔 중요한 성과였다. 창당 당시 10만 명 이상이던 당원은 축소되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분의 2 이상이 법정 정년을 넘겼지만, 최근 선거에서는 400만 명 이상이 좌파당에 투표했고 6만 명 이상이 당에 가입해 당원 수가 두 배로 늘었다. 평균 연령도 낮아지고 여성과 퀴어 당원도 증가했다.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가 확대됐다. 좌파당이 선전한 핵심 이유는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다른 길을 찾는 청년, 여성, 퀴어 등 사회 집단을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방화벽’을 기민/기사당연합이 무너트린 사건이 좌파당이 선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나치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역사적 인식 속에서, 나치 옹호와 이민자 혐오 논란을 일으켜 온 극우 AfD와의 협력을 일체 거부하는 합의를 유지해 왔고, 이 합의를 ‘방화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총선 전 기민/기사당 연합이 AfD와 함께 이민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전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시켰다. 수도 베를린에서만 최소 16만 명이 거리로 나와 “우리가 방화벽이다”를 외치며 저항했고, 각 정당들도 규탄 입장을 냈다. 그런데도 메르츠 기민/기사당연합 대표는 “우리가 제안한 정책이 옳다면, 누가 이를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주로 10~20대의 청년 세대가 방화벽 논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좌파당이 청년세대 지지율을 높이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의 문제였고, “우리 세대의 미래를 누가 지킬 것인가”에 대한 절박한 질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들에게 좌파당 공동대표이자 연방의원인 하이디 라이히네크가 기민/기사당연합을 향해 “파시즘 부활의 길을 닦고 있다”라고 퍼부은 열변은 청년세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령 그의 영상은 틱톡에서만 3천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좌파당 외 다른 정당들도 이민 반대 결의안에 반대했지만, 사민당과 녹색당은 기민/기사당과의 연정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들과 난민 정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자라바겐크네히트당 역시 이민 반대 법안을 지지했다.1) 결국 그들의 유권자들은 좌파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1)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이미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부터 정부의 난민 환영 정책을 비판하며 이른바 ‘워크주의(Wokism)’에 반대하는 ‘좌파 보수주의’라는 이름의 인종주의를 구축해왔다. '워크(woke)'는 애초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서 비롯된 용어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각성을 뜻했으나, 최근 우파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고 비꼬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방화벽이다 (Wir sind die Brandmauer) 사진: Julius Liebing 이외에도 좌파당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청년 세대가 겪는 생계와 주거 부담을 반영한 공약을 내놓았다. 실제로 독일 경제위기는 심각하며 이는 누구보다도 청년세대의 현실과 미래를 억누르고 있다. 지난 3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에너지 위기 속에서 독일의 전기세와 유류비는 4년 전 대비 40% 이상, 천연가스 가격은 90% 이상 올랐으며, 임대료는 10년 전에 비해 30% 이상 상승했다. 2021년 2월 기준 100유로의 가치는 현재 약 84유로에 불과하다. 독일 국민의 83%가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는 2022년의 39%와 비교해 크게 증가한 수치이며, 독일대안당(AfD) 지지자들의 경우 그 비율이 96%에 달한다. 청년세대는 이 같은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2023년에 발행된 독일청년빈곤보고서에 따르면, 18-24세 청년 25%가 빈곤위험군에 속해 있으며, 현장실습생 40%와 학생 3분의 2가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과도한 수준(소득의 40% 이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교육기관 '헤르티스쿨'의 동향조사(2022)에 따르면 청년층의 주요 불안 요인으로 임대료, 인플레이션, 기후위기, 노후 빈곤 등을 꼽고 있으며, 특히 14-29세 인구의 71%가 인플레이션, 64%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55%가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좌파당은 경제 문제가 당파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좌파당은 기층의 다수를 대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선거 슬로건으로 “모두는 지배하고자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함께 위에 있는 그들에 맞서 싸운다”와 같은 구호를 채택했다. 또 “임대료가 높으면 집주인이 행복하고, 생활비가 높으면 기업이 돈을 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자들은 요트에 올라탈 것이다”, “난방비가 너무 비싸면 누군가는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등의 구호도 내걸었다. 공약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임대료 상한제 및 동결, 주4일제 도입 및 15유로로의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2배 인상 등을 내걸었다. 이뿐만 아니라 좌파당은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극우나 기민/기사당연합에 맞서 성평등 정책을 강조하며 청년 여성과 퀴어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었다. 좌파당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모든 성별 인정, 성별 확정 치료 접근권 향상, 퀴어 노동조합 지원 등 진보적 사회정책을 지지했다. 바겐크네이트가 트랜스젠더 권리를 지지하는 법안에 반대하자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여성 유권자의 11%(남성 7%)가 좌파당을 지지했고, 특히 18-24세 여성의 지지율은 35%에 달했다. 이외에도 좌파당은 15,000회에 달하는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으로 유권자 설득에 성공했다. 신입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선거운동에 활력을 더했다. 반자본주의 계급투쟁보다 개량주의 노선 고수 이렇게 좌파당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기층 민중과 청년 세대, 사회적 약자를 말하며 새롭게 도약했다. 하지만 좌파당이 이들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좌파당의 공약은 탈계급적이며 그 수준도 독일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수준이다. 가령 좌파당은 주거위기 해결을 위해 6년 간 임대료를 동결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이미 폭등한 임대료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몇 년 전 베를린에서 3천 채 이상을 소유한 부동산대기업 ‘도이체 보넨’에 대한 몰수 주민투표 가결을 고려하면, 좌파당은 이보다도 훨씬 미약한 공약으로 자본주의의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좌파당은 문제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로 야기된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변혁 전략이 필요하지만, 좌파당은 계급투쟁을 중심에 둔 변혁 전략은 사실상 포기하고, 제도 내 개량주의 노선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기사/기민당연합이 AfD와 함께 추진한 이민 반대 결의안은 자본주의 위기로 인한 불만을 이주민에게 전가하는 수단이었지만, 좌파당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계급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탈계급적인 인종차별 반대 담론에만 치우쳐 있다. 좌파당은 애초 독일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장본인이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민당에서 탈당한 ‘노동·사회 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과 동독의 공산당이었던 ‘민주사회주의당(PDS)’이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노동·사회 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은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했으나 사민주의의 개량주의 노선을 추종했고, 민주사회주의당은 스탈린주의의 한계 속에 있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좌파당은 계급 투쟁을 추동하는 정당이 아니라 개량주의 노선의 선거정당으로서 역할했으며, 그 한계는 반복돼 왔다. 대표적으로 좌파당의 뿌리 중 하나인 민주사회주의당이 베를린 시정부에서 사민/녹색당과 연정할 당시인 2003년에는, 대학·버스·청소 부문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임금 삭감과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동독 공공주택 수십만 채를 헐값에 민간에 매각해 주거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또 최근 좌파당은 이민 반대 결의안에는 반대했지만, 그동안 독일 제국주의 정책에는 타협해 왔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좌파당은 최근 메르츠 정부가 계획하는 ‘국가부채 제동장치(Schuldenbremse)’ 완화 개혁안에 대해, ‘국방비로만 배타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개혁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규 차입으로 독일 재무장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용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튀링겐주 전 총리이자 2025년 2월 직접 선출된 의원 6명 중 1명인 보도 라멜로프는 새 총리와 근본적으로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애초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며, 튀링겐주 총리로서 이미 난민 수천 명을 추방한 이력이 있다.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 ‘좌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계급적 실천 필요 좌파당의 부상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2008년 세계 공황 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좌파가 부상한 바 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 영국 제레미 코빈, 미국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DSA) 등 ‘좌파’들은 자본주의에 염증 난 수많은 청년 세대를 끌어모았고, 시리자나 포데모스는 집권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 역시 알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유리된 그들은 자본가계급과 싸우기는커녕 투항했고, 오히려 그 집행자가 된 사례도 있었다. 좌파당 역시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적 노동자계급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개량할 수도 없다. 이미 좌파당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하여 그러한 도전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좌파당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학살 규탄 시위를 7월 진행한다고 밝혔으나, 하마스에 대한 ‘당내 의견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기했다. 팔레스타인 학살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적 침략이며, 전쟁위기 확산의 중요 계기라는 점에서, 집회 연기 결정은 좌파당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좌파당 역시 자본주의에 넌더리 난 청년들의 마음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다수의 청년이 다른 길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계급투쟁과 좌파당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자본주의의 폐허 위에서 청년들의 열망이 진짜 해방으로 이어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더 급진적이고, 더 단호한 계급투쟁이다. -
[말벌을 만나다#4]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사회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해요" 레어 동지를 만나다12.3 내란 이후,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는 많은 '말벌동지'들을 만났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된 뒤에도 많은 ‘말벌동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때로 노동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 투쟁사업장에 연대하기도 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왔을까? 그 전에 이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왜 광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같은 대오에 섰을까? 지난 5월 19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으로서 고공농성을 엄호하던 레어동지를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대선시기에 진행했던 인터뷰지만, 이재명 정부가 시작부터 내란 장관을 유임하고, 동성애 혐오자 김민석 국무총리와 같은 문제적 인사들을 권좌에 앉히고, 기후위기와 전쟁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K-방산 확대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외치는 지금, 인터뷰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광장에서 우리가 외쳤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대선시기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집에서 민주당 지지안건 통과를 시도했고, 이미 전현직 간부와 단위노조의 민주당 지지가 줄지어 벌어졌다. 민주노총을 정부에 묶어두는 거간꾼 역할을 하기 위해 발탁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영훈은, "보수양당과 일체의 협력을 금한다"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무색하게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자랑거리처럼 얘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계급투쟁의 기관으로 재편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다시 상기해본다. 12·3 내란사태 이전에도 사회의제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주로 어느 방면에서였나요?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있으셨나요? 혹은 아예 없으셨나요? 처음 윤석열 퇴진 광장에 나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내란 전에도 윤석열 탄핵 관련 집회들이 있었잖아요. 당시에는 윤석열에 대해서 압박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촛불행동 집회 말고는 갈 수 있는 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촛불행동 집회에 참여했었어요. 그거 말고는 따로 더 집회를 나가거나 그랬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내란 이후는 계속 비상행동 집회에 혼자 갔었어요. 누구랑 같이 가는 건 좀 신경 쓰여서 혼자 다녔었어요. 윤석열 탄핵된 4월 4일날에 한화빌딩 앞 집회에서 간호법과 관련해서도 발언 때 언급하셨었잖아요. 저는 그걸 듣고 ‘이전에 간호법 제정 운동에 참여하셨었나’ 생각했었어요. 그건 아니고요. 솔직히 좀 비관적인 생각이기는 한데, 저는 간호사가 단결하는 게 되게 힘들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일하는 것도 힘들고. 물론 안 힘든 노동자가 어디 있겠냐만, 힘들고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박혀 있고요. 노조에 들어가서 목소리 내는 것을 되게 귀찮아해요. 그런 걸 보면서 그냥 혼자 답답해 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디 단체에 들어가서 목소리 낼 수 있었겠지만 안했고요.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도, 그냥 막연하게 간호사의 현실이 부당하고,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라는 걸 생각만 하고 있었어서, 그냥 그때 발언했을 때도 알리고 싶었어요. 간호사들도 이런 법의 제정이 필요하니까 한번 알아봐줘라, 간호사가 좀 힘들다라는 거 한 번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때 발언했었던 거고요. 저는 간호사 관련한 단체에 들어가거나 그러지는 못했었어요. 탄핵광장에서 보건의료봉사를 한게 간호사로서 했던 유일한 일이에요. 많이 비관적이죠. 이번 탄핵 정국 때에도 대한간호협회에서 성명서를 낸 것도 없었어요. 간호사는 조직력이 왜 없을까요? 병원에서 가장 많은 게 간호사거든요. 간호사들이 제일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우를 못 받고 있으면서도 그냥 안에서만 맴돌아요. 이거를 어디에 얘기하거나, 단결해서 파업을 한다던가 이런 거를 못해요. 이유를 생각하자면, 일차적으로 환자 때문이겠죠.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거를 환자들도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시키려면, 간호사들도 뭔가 행동을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이 커요. “그럼 우리가 나가버리면 환자는 누가 케어하느냐” 거기서 아직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그거를 넘어서야 뭔가 전진될 수 있는데도 아직 그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그걸 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단체인 대간협에서 뭔가를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들도 되게 보수적이라 아직은 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처음 얘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간호사라는 걸.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처음엔 촛불행동 쪽 집회에 참여하셨다고 했잖아요. 언제, 어떤 계기로 거통고나 세종호텔, 이런 투쟁하는 노동자들 집회하는 데에 오시게 됐나요? 원래도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 사회가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히 부조리하잖아요. 저는 부조리를 느끼지만,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었거든요. 그런데 12월 7일 날 국회에서 양경수가 얘기했던,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 진짜 뭔가 … ‘멋있다’. ‘되게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었어요. ‘이거 뭔가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해서, ‘이제부터 집회나갈 때 무조건 민주노총 깃발 따라다녀야지’ ‘그럼 노조분들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 뒤론 계속 민주노총 깃발, 금속노조 깃발만 따라다녔어요. 거통고에 연대하게 된 건 무지개 조선소가 컸어요. 그 전까지는 2022년 파업 투쟁으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어요. ‘어떤 노동자가 케이지 안에 들어갔다’ 라는 것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게 거통고인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그런 투쟁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죠. 그런데 그게 거통고였고, 처음에 무지개조선소에 왔을 때는 그렇게 큰 투쟁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었던 상황이었고, 되게 죄송했죠. ‘내가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왔구나’ ‘이 프로젝트도 하나의 투쟁인데, 나는 너무 놀러 왔네’ 라는 생각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나는 늦게 온 만큼, 대화도 잘 해보고, 잘 알아가 보자’라는 마음이 되게 컸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거통고에 연대하면서 투쟁하게 됐고요. 세종호텔도 그 전까지는 솔직히 진짜 몰랐거든요. 거통고에 연대하기 전까지도요. 저는 박근혜 퇴진 광장 때 진수동지가 고공에 올라갔던 줄도 몰랐어요. 핑계긴 한데, (고향인) 제주도는 정말 정보량이 적거든요. 큰 것만 알 수 있어요. ‘박근혜 퇴진 광장 집회에 몇 명이 모였다’ ‘어떤 의원이 왔다’ 이런 정보만 있었지, 솔직히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건 되게 축소시켜 놓잖아요. 그래서 저는 몰랐어요. 그래서 그것도 또 너무 죄송한 거예요. 저는 모든 연대의 마음의 시작에는 죄책감이 커요. 이들은 진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도에 있다는 핑계만 대고, 분명히 찾아봤으면 알았을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게을러서요.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어요) …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알았다는 게 되게 죄송했었죠. 세종호텔에도 솔직히 자주 가진 못했잖아요. 그거는 아직도 좀 죄송하죠. 박근혜 퇴진 정국 때 제주도에 살고 계셨어요? 그때 학생이었어요. 그땐 제가 한창 바쁠 때여서…(간호사) 국가고시도 준비해야 되고 … 보세요 제가 이렇게 핑계를 댄다니까요. 그래도 시험은 쳐야죠, 그래야 간호사가 되잖아요.(웃음) 아무튼 그때는 정말 죄책감이 컸어요. 되게. 그때 참여했었던 시민들한테 정말 감사했죠. 제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요. 윤석열 파면된 날에 제가 정말, 친구들이 이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말이 있었어요. “레어야 고생했다” 이 말 정말 듣기 싫었거든요. 이유는 너무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것 같아서요.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이 내란이 그 당시에 계엄이 터지고 달려갔었던 시민들 덕분에 막아졌고, 더 퍼지지 않은 거잖아요. 그래서 막아진 거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데, 내란이 종식이 되니까 되게 별거 아닌 걸로 생각을 하는 … 가끔 그들과 대화를 하면 좀 제 3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어요.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몇몇 친구들과 집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게 딱 한 번이었거든요. 어쨌든 내란이 길어지면서 그들도 지쳤겠죠. 그 뒤로 제가 몇 번 가자고 했는데, 안 가겠다고 하는 얘기 들으면서도 좀 속상했는데, 그걸로 끝났어요. ‘내가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을 했지만, ‘수고했다’라는 말만은 듣기 싫었거든요. 제 주변에 집회에 참여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제주도에서도 분명 민주노총이나 비상행동 주최로 집회를 했단 말이죠.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기라도 참여해라”라고 말해도 안가요. 왜 안 가냐고 하면 일이 많대요. 알겠다고 했어요. 레어동지는 언제부터 서울에 살았어요? 3년 전에 왔어요. 서울은 꼭 오고 싶었거든요.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주도는 커뮤니티가 너무 좁아요. 말이 너무 잘 퍼지고요. 주변에 가족들 지인이 너무 많아요. 제 행동을 되돌아봐야하고, 조심해야하고. 물론 서울에서도 그러긴 해야 되지만요. 제주도는 그게 좀 많이 심했고요. 제가 언제 마음을 먹었냐면, 병원에서 일하면서, 그냥 환자 A였는데, 제가 그 환자를 막 돌보다가, 그 환자가 갑자기, “근데 너 000 딸 아니냐?” 하는 거예요. “네 맞는데 누구세요?” 하니까 “아 나 000 친구 누구야” 하는 거예요. 그때 ‘빨리 벗어나야지’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버리면 간호를 제대로 못 해요. 신경쓰이니까요. 물론 제가 뭐 간호에 큰 뜻이 있고 그러진 않거든요. 간호는 제 성격이랑 안 맞아요. 어쨌든 그때 진짜 크게 마음 먹었고, 그래서 떠나오게 됐습니다. 12월 3일 내란 터지기 전과, 지금의 레어 동지를 비교해 보면, 내란사태를 거치면서 뭔가 변한 게 있나요? 일단 가볍게 얘기하면, 야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 물론 경기 찾아보고 분노하고 그러긴 하는데요. 제가 그 전까지는 야구 시즌만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쉬는 날마다 야구장 가고, 잠실에서 게임하면 무조건 가고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그 다음, 저의 취미 생활을 다 뒤로 미룬 거요. 원래 책 읽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런데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사색할 시간이 필요한데 저는 지금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없잖아요.(웃음)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영화도 못 본지 오래됐고, 공연 보는 것도 좋았는데 공연도 못 봤고. 그건 뭐 가벼운 변화인 거고요.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너무 많은 투쟁장들을 알게 됐고, 부조리를 너무 더 격하게 알게 됐어요. 그 차이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저는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분노만 하고 있었거든요. 저의 상황에 한정돼서요. 간호사면 간호사, 여성이면 여성에 대해서 그냥 한정적으로만, 분노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저의 범위를 더 넓혀서, 간호사 말고 다른 노동자들, 퀴어와 소수자들로 나의 범위가 더 넓어졌고, 알게된 만큼 그들을 바라보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겠죠. 그 전까지는 남이었는데 지금은 동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고요. 저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이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내가 너무 곱게 자랐구나’ 싶었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지혜복 선생님 투쟁장에 갔을 때 발언을 하는 동지들을 보면서, ‘나는 학교를 정말 순탄하게 다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됐고요. 그리고 간호사는 면허증만 따면, 이력서 내면 별로 어렵지 않게 병원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쉽게 사직서를 내고 나올 수 있는 여건도 돼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대해서 계속 분노, 아니 분노도 아닌 것 같아요. 이들과 비교하면 그냥 짜증만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들으면서, ‘난 도대체 뭐에 분노를 하고 뭐에 짜증이 그렇게 났을까?’ ‘이들은 더 힘들고 더 안 좋은 조건에서 더 심한 탄압을 받았었는데, 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게 사회에 불만이 많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정말 나 곱게 자랐네’ ‘그냥 막연한 불만만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한테 짜증이 많이 났었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당당한 거통고 조합원이 되셨군요. 맞아요. 근데 진짜 거통고지회에 가입하기 전까지도 정말 많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조합원 동지들이 얘기하는 것과는 약간 고민의 결이 다른데요. 처음에 조합원이 됐을 때 ‘내가 여기 와서 뭘 할 수 있지?’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이 조합에 가입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때문에 가입할지 말지 갈팡질팡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이제는, 생각을 정리해서 잡았고, ‘아 이렇게 하면 같이 싸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좀 하게 돼서요. 지금은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아직도 조합원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기는 한데요, 일단 제 자리에서 열심히 싸워야죠. 저는 어디에 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냥 옆에서 누가 막 얘기하면 ‘맞지 맞지’ 맞장구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머릿속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어디 가서 막 발언하고 그러는 건 제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탄핵 정국을 지나고 거통고에 연대를 하게 되면서 같이 싸우고, 조합원이 되고, 발언을 한 두 번씩 하게 됐는데, 이런 게 저의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내란 사태 이후에 거통고를 만나면서, 그냥 ‘이런 곳도 싸우고 있네’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잖아요. 무지개조선소 왔다가 그냥 잘 참여하고 갔을 수도 있는데, 왜 계속 이렇게 같이 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투쟁을 알게 되었고요. 그게 가장 컸고요. 두 번째는, 나도 노동자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거통고 투쟁이 그들만의 투쟁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노조법 개정) 의제를 갖고 와서, ‘이거를 개정하라’는 요구가 있었잖아요. 저는 이게 정말 컸어요. ‘이들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고, 모든 노동자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투쟁을 하고 있구나’ ‘그러면 나도 노동자니까 같이 싸워야지’ 그래서 했던 것 같아요. 노조법 2,3조 개정이 거통고만을 위한게 아니니까요. 맞아요. 노조법이 개정되면, ‘간호사도 파업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냥 막연하게 생각해 봤어요. 물론 노조법 개정 자체에는 그런 내용은 없지만…혹시 모르잖아요. 간호사 파업했다고 손배 때릴지도 모르니까요. 뭔가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나왔던 것 같아요. 궁금해서요. 이들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어떻게 싸울 예정인가. 그게 궁금해서 계속 나왔는데 지금의 제가 됐어요. – 고맙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결국 윤석열은 노동자민중의 이름으로 파면을 선고받았는데요. 윤석열 파면 광장도 일단락되며 퇴진 이후를 향해가는 사회대개혁의 광장이 새로이 열렸죠. 개인적으로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혹은 파면 이후 조직된 노동자 운동(민주노총)에 바라는 점, 또는 조직된 운동(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길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민주노총에 한정돼서 얘기하는 아쉬운 점은 아닌데요. 트위터에서도 그 얘기 했었잖아요. 파면을 위해서라면 ‘서로 머리채 잡고서도 광장 나가서 싸운다’ 저는 그게 되게 컸거든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서로 막 갈라치기를 하려고 하고, 모 정당 지지자들이 우리가 노동의제에 대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옆에서 비꼬고 하는 게 저는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 모습이 저는 한국 사회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도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될 예정인데도, 노동의제에 관련해서는 되게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가야 될 길이 많이 멀었구나 싶었어요. 그때 좀 많이 안타까웠어요. 넓게 보지 못하고 그냥 그 당만 지지하는 모습이 좀 안타까웠어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저는 그렇게 (무한히 지지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무한히 채찍질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지하는 건 좋긴 한데,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되는 게 정말 진짜 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발전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고 그냥 무조건적인, 뭔가 팬클럽 같은 모습을 보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민주노총에 바라는 점은요, ‘모든 사람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어떻게 체감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노조에서 외치는 이 의제들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라는 걸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조합원만 노동자가 아니잖아요. 지금 여기(카페)에서 알바하는 사람들도 다 노동자고, 여기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도 다 노동자인데…거기서 (사람들이) 벽을 치는 걸 보고 ‘아 이거 쉽지 않겠네’ 싶었어요. 이걸 어떻게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가 민주노총에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러게요. 특수고용, 플랫폼까지 다 합해 2천만, 2천5백만 노동자라고 하는데, 민주노총은 110만이고, 전체의 5%정도 되는 건데요. 사실 노동자지만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조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지요. 간호사만 잘 코꿰면 될 텐데.(웃음) 레어 동지 주변 간호사 분들 중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분들은 없나요? 없어요. 아, 생각해보니 제가 거통고 들어오기 전에 잠깐 조합에 가입한 적 있어요. 병원에 다녔는데 거기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었거든요. 제 첫 노조 활동은 거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잘 모르니까… 물론 노동조합이 필요한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입한 것도 맞아요. 그런데 뭐 하는 게 없었어요. 제가 그때는 신규였어서 얘기할 수 있었던 건 없긴 했지만…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양경수 위원장을 제가 뽑았네요. 아 그래요? 투표도 했었어요? 마침 제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그 해인가 그 다음 해에 위원장 선출 투표를 했었을 거예요. 근데 저는 누가 누군지 잘 모르잖아요. 그 때 노동조합에 되게 진심인 선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한테 ‘저는 누가 누군지 모르는데요. 누구 뽑아야 돼요?’ 하니까 ‘이 사람 뽑아’. 해서 뽑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양경수 위원장이더라고요. 정근식(서울시 교육감)도 제가 뽑고, 양경수도 제가 뽑았어요. 그래서 더, 노동자지만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노동자로 조직할 건가 이런 고민이 많군요. 좀 하기 힘들 것 같긴 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음, 그래서 말인데요…다음 질문이,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인데요. 전진, 민주노동당으로 이번에 출마한 분들, 고공3사 투쟁사업장들, 비정규직 이제그만 등 다 생각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같은 자본가 정당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데에서는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자본가계급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자로서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전에는 ‘거대 정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라도 노동의제를 통과시켜야한다’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들도 ‘노동자를 어떻게 탄압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함에 있어 자본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요. ‘그전에 내가 생각하던 건 말도 안되는구나’ 라고 느꼈고요. 그 때는 잘 몰랐으니까, 법안 같은 걸 통과시키려면 그들(거대정당)의 도움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아예 없어졌고요. 지금은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사회를 바꿔야한다’라고 생각이 바뀌었고, 그러려면 조직을 잘 해야겠죠. 그리고 법안에 머무르는 투쟁이 아니라, 법을 넘어서는 투쟁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하고요. 법을 바꾸는 것도 자본이 만든 하나의 선을 넘는거잖아요. 그런, 선을 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선을 넘는게 많이 어렵더라고요.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려면 민주노총이 그 분위기를 만들고 가장 앞장서야하는데, 지금 제가 바라본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그 선넘는 투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이 만들어놓은 선을 넘는 투쟁을 조직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레어동지가 말씀하신,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더 자각하도록 만들어야 된다’라는 문제의식을 푸는 열쇠도 거기 있는 거 같아요.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실 노동조합이란 ‘진지’를 갖기도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가잖아요. 반면 대기업, 대공장, 공공부문 등 이른바 전략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조건들 덕에 노동조합을 하고 있는데…그 힘을 전체 노동자계급을 위한 요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민주노총이 먼저 선을 넘어서 투쟁해야 미조직 노동자들도 같이 선을 넘어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는 길이 더 열릴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급투쟁을 얼마나 크게 벌여내느냐에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것도 더 진전될 수 있는 것 같고요. 계급투쟁과 동떨어진 어떤 정치세력화, 또는 계급투쟁과 동떨어진 진보정당 운동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 다른 질문으로 가볼게요. 광장에서 ‘사회대개혁’이라고 하는 걸 다들 엄청 얘기를 했는데요. 민주당도 사회대개혁 얘기하잖아요. ‘빛의 혁명’, ‘광장의 후보’라 하면서. 그런데 그러면서 ‘AI산업 진흥’, ‘반도체 특별법’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어떻게 사회대개혁인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동지가 생각하는 사회대개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대화를 나눴다시피 저는 일단 노동의제 관련한 개정,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광장을 바라볼 때, 많은 시민들이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임을 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안타까웠거든요. 그리고 사회대개혁에서 노동 관련한 의제가 개혁이 된다면 다른 의제들에도 큰 발판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노동자가 소수자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다수자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일단 노조에 가입하고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긴 하죠. 그런데 이 소수라고 여겨졌던, 노동조합이 사회대개혁을 통해 뭔가 발판이 마련돼 진보하게 되면, 우리가 같이 싸웠던 동지들의 다른 의제들도 같이 딸려서 전진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회대개혁을 얘기할 때, 노동의제를 가장 먼저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게 해결이 돼야 다른 것도 다 같이 끌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도 말이죠. 맞아요. 그냥 나이브한 생각인 것 같긴 한데 그냥 막연하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조합원, 노동자, 성소수자, 퀴어, 장애인 … 계속 만났던 동지들이잖아요. 뭔가 하나라도 해결되면, 같이 결합을 했었으니까. 다른 거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같이 목소리를 내서, 진보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이 질문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공감이 되네요. 노동자 운동이 해야 될 역할이 큰 것 같아요. 노동자는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라는 말에 저도 공감하는데, 노동자계급이 실제 인구적으로도 다수고, 사회의 온갖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유지시키는 노동을 하니까, 노동으로 모든 게 만들어지고 하니까. 거기에 잠재된 노동자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그 힘을, 차별과 억압들을 없애 나가는 데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조합주의라고 하죠. 자기 조합의 협소한 권리만 요구하는 식으로, 노동귀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않으려면 정말 모두의 해방을 위한 운동을 만들어 가야 되는데, 그런 운동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다 중요하지만, 노동자계급에게 요구되는 과제라는 게 있고, 책임이 큰 거 같아요. 저는 전장연 동지들의 투쟁을 보면서, 매번 쫒겨나는 게 너무 화나고 슬프기도 하고…진짜 ‘파업으로 지하철을 한 번 멈출 수 있으면 얼마나 큰 연대가 될까’ 생각을 해보거든요. 맞아요 그런데 현실은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전장연 지지 입장도 제대로 안내고 그러니까요…레어 동지가 전에 SNS에 쓴 글에서 본 것 같은데, ‘민주노총의 현실을 알았지만, 이젠 이걸 고쳐 쓰는 데부터 시작해야겠다’ 대략 이런 말이었는데, 공감이 됐어요. 진짜 많이 답답해요. 그래서 연관된 질문인데요. 레어 동지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 갈 생각이신가요? 저요?(웃음) 일단 저의 계획은, 거통고 투쟁이 마무리되면, 산업안전기사 공부를 할 거예요. 필요할 것 같아서. 괜찮죠? 그렇군요. 너무 멋있잖아요. 지금 그냥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단 이 투쟁이 끝나고 나서의 일이기 때문에… 좀 뭔가, 참견을 하고 싶어요. 제가 뭔가 전문적으로 자격증을 따서 열심히 말하고, ‘이건 이래서 잘못됐어요’ 라고 하면 뭔가 열심히 ‘긁을 수’ 있지 않을까. 자격증 있는 사람이 얘기하면은 더 타격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뭐가 문제인지 훨씬 자세하게 밝히며 할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서 그 생각으로 그렇게 갈 것 같아요. 그렇군요. 레어동지는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웃음)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에 혹시 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제가 유일하게 그거를 못 썼어요. 여기만 빈칸이에요 지금. 무슨 말을 해야될지…전진이라는 단체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더 세력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더 열심히 뛰세요.(웃음) 네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 같아서요.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회주의’ ‘공산주의’ 얘기를 하면 빨갱이 소리 듣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인식 변화의 첫 발자국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필요한 단체 같아요. 기대감이 아주 큽니다. -
[성명]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 유천초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무죄판결을 환영한다!오늘 춘천지방법원(판사 송종환)이 전교조 유천초분회 소속 조합원 4명과 공대위 전 대표(김나혜, 남정아, 남희정, 윤용숙, 최덕현)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우리는 정당한 투쟁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 이는 유천초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정당한 성과이며, 법원의 무죄 판결은 단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노동권과 교육권 수호를 위한 현장 실천의 정당성을 재확인한다. 애초 2023년 3월 28일 유천초 조합원 등 5인이 강제 연행된 사건은 신 교육감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의 폭력 연행도 위법했다. 전날 김나혜, 남정아, 윤용숙 조합원이 강원도교육청에 방문한 것은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이 약속했기 때문이었으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이에 조합원들은 밤을 새워 신 교육감을 기다렸고, 조합원들의 연대가 이어졌으나, 교육감은 오히려 경찰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폭력적으로 퇴거했다. 경찰은 조합원들을 사지를 들어 연행했고, 그 때문에 조합원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해야 했으며, 그중 1인은 속옷까지 노출되었다. 이에 조합원들이 항의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경찰은 조합원들에게 퇴거불응죄를, 그리고 그 중 1인에게는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공무집행방해와 상해죄로 기소까지 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당일 유천초분회 조합원들이 강원도교육청에 찾아간 것은 협의된 면담에 응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고, 현장에 남았어야 할 이유가 더 크게 보인다고 밝혔다. 또 면담자는 5명에 불과했고, 공무 수행 등에 방해가 된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려우며, 조합원들이 넓은 복도 구석 한 쪽 벽면에 있었기 때문에 강제 퇴거가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현장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 행위는 교육감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있다고도 보았다. 이외에도 강원도교육청은 부교육감이 조합원들을 만나겠다고 밝혔는데도 이를 조합원들이 거부하여 퇴거불응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약속에 대한 최종 권한자인 교육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조합원들의 입장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밝히며 퇴거불응은 무죄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김나혜 조합원의 경우 사전에 미란다 고지를 하지 않고 여러 명이 연행한 상황이므로 정당행위로 인정된다며 역시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따르면, 약속을 기다린 행위나 폭력적 퇴거 연행에 대한 반발 등 조합원들이 한 행위는 모두 정당한 것이었다. 즉, 잘못은 약속을 저버리고 경찰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퇴거한 강원도교육감 그리고 폭력적으로 연행한 강원도경찰청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로 강원도교육청이 유천초 부당징계부터 강제퇴거까지 얼마나 자의적으로 교육행정을 좌우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부당징계를 규탄했던 법원 앞 1인 시위마저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기소하고 단죄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통해, 부당한 교육행정과 공권력 행사를 바로 잡는 것은 투쟁하는 현장 교육노동자들, 연대하는 노동자 민중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다. 또 정당한 판결을 이끌어낸 유천초 조합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앞으로도 투쟁하는 교육노동자와 함께 진정으로 민주적인 교육을 위해 힘차게 투쟁할 것이다. 2025년 7월 15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안창호 인권위원장 ‘성소수자 혐오’ 관련 보고서 상정 가로막아1. 안창호 인권위원장 ‘성소수자 혐오’ 관련 보고서 상정 가로막아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이 성소수자 혐오 표현 관련 진정 사건에 개입, 보고서 상정을 막았다는 인권위 내부 폭로가 나왔다. 인권위 차별시정국 조사관 A씨는 지난 9일 인권위 내부망 자유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올리고 “안 위원장이 성소수자에 관한 진정 사건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며 안건 상정을 미뤘다”고 밝혔다. A씨의 글에서 언급된 진정 사건은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시교육청 교육자료 중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관한 설명이 적시된 것이 법률 위반이라며 했던 일련의 발언을 가리킨다. 당시 조 의원은 “우리 청소년들한테 남성·여성·장애인·그 외 동성애를 암시하는 것일 텐데, 저런 것들을 교과서에 준용하는 교육자료로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동성애가 인정되는 나라인가 아닌가”라며 “법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왜 교육자료에는 동성애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려고 하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대한민국은 동성애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라고 답변한 뒤 시정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10일 논평을 내고 “안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성소수자, HIV감염인,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을 해 제1호 진정대상이 됐다”며 “개인의 혐오적 시각을 넘어 지위를 남용해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인권위 입장조차 가로막는 것은 명백한 직권 남용이자 인권위원장으로서 직무 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01451001 2. 여성 살해 사건의 32%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선행돼 지난해 살해됐거나 살해당할 뻔한 여성 3명 중 1명은 살해 범행 전 가해자로부터 폭력을 겪은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여성 폭행에서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가해자가 대부분 ‘친밀한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가 경찰청 차원에서의 통계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인 간 살해나 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청은 2023년 1월부터 살인(미수 포함) 사건 피해자·가해자 사이에 과거 폭력 이력이 있는지 기입하도록 했다. 11일 경찰청이 발간한 보고서 <2024 사회적 약자 보호 주요 경찰 활동>을 보면, 지난해 살인 범죄(미수 포함) 여성 피해자 총 333명 가운데 ‘여성 폭력’ 피해 이력이 있는 경우는 108명(32.4%)이다. 여성 폭력의 세부 유형은 가정 폭력 피해가 60건(55.6%)으로 가장 많았고, 교제 폭력 34건(31.5%), 스토킹 12건(11.1%), 성폭력 2건(1.9%)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 살인 피해자(435명)의 경우 과거 가정 폭력·교제 폭력 등의 경험이 있는 경우가 42명으로 9.7%에 머물렀다. 살인에 앞서 ‘친밀한 관계 폭력’을 겪었던 여성 비율은 남성보다 3배 이상 높았다. 2023년에도 여성 살인 피해 사건 중 여성 폭력 피해 이력 비율은 34.4%로, 남성(8.2%)보다 높았다. 여성 살해 사건의 30% 이상에서 ‘친밀한 관계 폭력’이 선행됐다는 사실은 많은 여성들이 가정 폭력, 교제 폭력, 스토킹 등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 폭력이 사회구조적 폭력의 일환이며, 여성 폭력이 더 심각한 범죄로 확대돼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여성 폭력에 대해 수사기관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범죄의 심각성을 깊이 인지하는 등 정책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207426.html 3. “혹시 몰라 문 닫는다”…폭염에 우는 쪽방촌 여성 주민들 사진출처: 뉴스1 ‘역대급 더위’로 쪽방촌 주민들이 더욱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최근 5년 6개월간(2020년 1월~2025년 7월) 민원정보분석시스템에 수집된 ‘여름철 쪽방촌’ 관련 민원 199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올해 7월 초 현재 접수된 관련 민원은 총 46건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36건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민원 내용에는 주민 위급상황 확인‧대응체계 구축, 실내외 방역 등 위생 관리 요청, 쓰레기 불법 투기 개선, 침수·화재 대비 안전 관리 강화 온열질환 대비 사전 조치 요청, 쪽방촌 시설 설치·운영 개선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주민 위급상황 확인·대응체계 관련 내용으로는 쪽방촌에 거주 중인 고령자 등의 안부를 상시 확인하고, 위급상황이라고 확인되면 지역사회 보건의료자원과 연계해 신속하게 대처하는 관리 체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특히 쪽방촌 내 얽히고설킨 전선으로 인해 화재나 폭우 시 감전 사고 위험이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도 있었다. 에어컨을 지원받더라도 전기요금 걱정으로 활용을 못 해 선풍기나 쿨매트를 지원해 달라거나, 노면에 물을 뿌리고 무더위 쉼터를 늘려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해 쪽방촌 주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특히 여성 거주자들은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 서울에 있는 주요 쪽방촌 5곳에는 모두 2,200여 명이 거주 중이며, 여성은 13%인 300여 명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는데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혹시나 모를 범죄 위험 때문에 문조차 자유롭게 열어놓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한 쪽방촌 여성 주민은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 열어놓고 잠가요. 덥고 그래도 싫어요. 내가 밀리니까. (누가 무서운 사람 올까 봐) 응. 올까 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폭염은 단순한 자연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쪽방촌 거주자와 같은 취약계층에게는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www.mbn.co.kr/news/society/5125582 https://www.news1.kr/politics/pm-bai-comm/5842884 4. 홍콩 동성 파트너십 제도 추진, “환영하지만 2등 시민 취급 여전” 홍콩 정부가 성소수자 동성 커플을 위한 법적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이성결혼제도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동성 커플의 의료결정권, 재산권 등 일부 법적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인권단체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환영하면서도 실망스럽다’, ‘완전한 평등에는 아직 멀었다’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2023년 9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동성 커플의 일정한 법적 권리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2년 기한 종료를 앞두고 발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마련된 법안은 오는 2026년 초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홍콩에서는 1991년 동성애가 비범죄화되었지만, 고용·사회서비스·혼인·증오 표현 등 성소수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이 없다. 2023년 동성 결혼 지지도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60%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찬킷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건 결혼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법 앞에 ‘똑같지 않은’ 사람들로 남아 있다. 정부는 우리를 제도 바깥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보호는 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청한 홍콩 내 성소수자 변호사는 “정부는 우리가 ‘결혼’이라는 문 앞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문턱은 넘지 말라고 말한다. 이는 평등이 아니라, 체계적인 배제다”라고 일갈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긍정적 진전일 수 있지만, 진정한 평등은 아니다. 성소수자 커플이 ‘결혼’이라는 단어로부터 배제되는 한, 그들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와 노동자, 시민사회는 파트너십 제도는 ‘차별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반쪽짜리다’라며 성소수자의 혼인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jul/09/hong-kong-same-sex-lgbtq-marriage-equality-registration https://hongkongfp.com/2025/07/11/monogamous-heterosexual-marriage-not-compromised-by-same-sex-union-framework-hong-kong-govt-says/ 5. 스코틀랜드 여성 노동자 중 약 10%, ‘직장에서 성희롱 당해’ 스코틀랜드유나이트(UNITE)노동조합(이하 유나이트)이 스코틀랜드 여성 노동자 중 약 10%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유나이트는 조합원이 120만 명 이상인 영국‧아일랜드 최대 규모 노동조합이다. 유나이트는 최근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의 여성 노동자 6,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스코틀랜드에서는 유나이트 여성 조합원 1,143명이 응답했다. 스코틀랜드 지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9.3%의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했으며, 4.6%는 성적 강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한 여성들 중 52%는 부적절한 성적인 농담의 대상이 되었고, 45.6%는 원치 않는 작업 내 플러팅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또한 37.5%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13.6%는 상사나 동료에게서 포르노 이미지를 전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나이트는 2023년 10월 시행된 노동자보호법(Worker Protection Act 2023)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보호법은 노동자 권리 강화, 특히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예방과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법률로 안전한 작업 환경 보장을 목표로 한다. 유나이트 평등 담당관 로나 글렌은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었음에도 고용주들은 법적 책임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며, 성희롱이 신고되지 않고 묻히는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 신고한 여성들은 믿음을 얻지 못하거나, 가해자와 계속 일해야 하고, 심지어 해고당하기까지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유나이트는 스코틀랜드 및 영국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직장 내 성희롱을 근절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소리 높였다. <참조 기사> https://news.stv.tv/scotland/unite-the-union-survey-finds-almost-10-of-women-in-scotland-sexually-harassed-while-at-work 6. 영국 유나이트 대의원들, 세계적 여성 혐오 해결에 나서! 영국 유나이트 대의원들이 7월 8일 열린 정책 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여성 혐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호”이며, 여성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런던 북서부 지역 대표 도나 맥클래스키는 이와 관련된 안건을 상정하며, 사회가 여성이 열등하다는 믿음을 완전히 없앤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맥클래스키는 최근 ‘도발적인 유머’, ‘표현의 자유’, ‘전통적 가치’ 등의 형태로 여성 혐오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진보는 영구적이지 않다. 매일 보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런던 동부 지역의 레이첼 에보럴은 트랜스젠더 권리를 지지하며, 여성 혐오 확산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억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권리는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연결돼 있고, 이는 노동조합의 핵심 이슈”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북서부 대표 윌리엄 호지슨은 여성 혐오와 학교 내 폭력 문제를 모두 지지하며, 두 사안이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앤드루 테이트나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따라 여성 혐오적 언행을 하는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이들은 결국 직장으로 들어올 것이고, 우리는 시한폭탄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 세계 여성 혐오 대응’과 ‘학교 내 폭력 문제 해결’ 안건이 모두 가결됐다. <참조 기사> https://www.morningstaronline.co.uk/article/rise-global-misogyny-must-be-tackled-unite-delegates-say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4[편집자 주] 202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히메나 베르가라의 이 글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계급적·국제주의적 전략을 제시한다. 본 번역은 글의 분량상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전편 읽기]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1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2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3 아랍 민족주의에서 정치적 이슬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은 중동의 지정학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또한, 제국주의의 침투와 함께 1950년대 이후 계급투쟁과 정치적 위기로 분출한 사회적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시기에 새로운 탈식민 정부들이 다양한 형태의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등장했다. 이라크의 파이잘 1세 국왕,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이를 대표했다. ‘아랍 민족주의 운동(Arab Nationalist Movement)’,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Arab Socialist Ba'ath Party, 약칭 바트당)’과 같은 조직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1967년 6일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이들 지도세력은 주도적 지위에 있었다. 클라우디아 시나티는 “정치적 이슬람, 반제국주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슬람주의 부상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에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 전쟁 이후, 1950년대에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쿠데타로 (역자: 제국주의에 기생하거나 협력하던) 토착 지배세력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탈식민 부르주아 민족주의 정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쇠퇴에 접어들었다. 1967년 6월 6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 대한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시온주의 군대는 단 6일 만에 세 국가를 패배시키고 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지구는 물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다. 이 사건의 충격은 너무나 커서, 나세르가 침공 당일 밤 사임할 정도였다. (역자: 나세르 사임을 반대하는) 수백만 규모의 집회가 나세르의 권력을 유지시켰지만, 나세르주의적 민족주의는 이미 소진된 상태였다. 1970년 나세르 사망 이후,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사다트는 경제 개방과 광범위한 민영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정책은 많은 사람들, 특히 나세르 치하의 호황기 동안 농촌에서 대도시로 대거 이주해 도시 외곽에 정착한 빈민층 대중에게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 6일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패배하며 만들어진 세력균형에 따라,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결국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1)에 서명했다. 이집트는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을 인정한 최초의 아랍 국가가 되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 구 민족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스탈린주의의 변종들과 다른 세속주의 그룹 등 좌익 민족주의 조직들을 일시적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통적 민족주의의 위기 앞에서, 점점 더 정치화된 이슬람주의 조직들이 아랍 청년층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시나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1978년 9월 17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에 의해 조인된 협정으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중재 및 입회하에 체결되었다. 조인된 두 주요 협정 중 하나인 중동 평화협정에는 이스라엘의 독립적 주권과 영토 인정, 양국 간 적대관계 청산 및 관계 정상화, 시나이 반도에서의 이스라엘 완전 철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해당 협정에 정작 당사자 기구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1978년 12월, 1979년 12월 유엔총회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PLO의 참여가 배제된 것, 협정 내용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권, 자결권, 민족 독립, 주권에 부합하지 않음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결의안을 의결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며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집트는 1979년 아랍연맹에서 퇴출되었다. (역자주) ...기존 이슬람주의 조직과 신생 이슬람주의 조직들은... 이집트와 알제리 등의 국가에서 도시 빈민층을 이룬 실업 청년들과,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었지만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시기에 형성된 대학생과 지식인층 사이에서 강화되었다. 전통적 조직에 비해, 이 단체들은 종교적 담론과 행동 방식을 급진화했다... 2006년 1월 의회 선거에서 파타(Fatah)를 제치고 승리한 하마스의 대중적 부상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붕괴를, 그리고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및 이스라엘 국가와 추진하던 화해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자브라 니콜라는 아랍 민족주의의 역할로부터 연속혁명의 전체적 동학에 대한 자신의 전망과 부합하는 교훈을 도출했다. 그는 “중동 혁명에 관한 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1948년 정착민 식민주의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향에서 쫓아내면서 탄생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웃 아랍 국가로 흩어졌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 캠프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랍 국가에서 받았던 사회적 처우를 드러낸다. 아랍 정권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되찾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나세르가 집권했을 때, 대중이 아니라 국가 기구들로 이스라엘에 대항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집트인들과 다른 아랍 대중은 물론 팔레스타인인들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1967년 6월 아랍 군대의 패배는 심각한 타격이었으며 아랍 대중은 이에 동요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대중은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나세르주의 지도부에 희망을 걸었으나, 이 참패로 나세르주의 지도부가 제국주의에 맞서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이끌 능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그 결과 그들 정권은 흔들렸고, 그들의 파산에 눈뜨기 시작한 대중에 의해 전복될 위험을 느꼈다. 1978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악수하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왼쪽)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오른쪽), 중재자로 참여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가운데) 출처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동 전역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조직의 부흥과 정치화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뒤늦게 나타났으며, 그 결과 고유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달 피토(Dal Fitto)는 하마스의 등장을, 아랍 부르주아들의 잇따른 배신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열망을 전달할 수 있었던 소부르주아 지도부의 출현으로 설명한다. 종교적 소부르주아(하마스, 이슬람 지하드)는 무슬림형제단의 영향을 받아 이집트에서 유입된 '혁명적 이슬람' 전략에 따라 움직였다. 이들은 1979년 레자 팔레비의 친제국주의 정권을 전복하고 호메이니의 비호 아래 신정체제를 구축한 이란 시아파 정치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호메이니는 혁명에 참여했던 공산주의자와 노동자 집단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주도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직후, 여성에 대한 히잡 착용 의무조치가 강제되자 같은 해 3월 8일 여성의날 벌어진 반정부 시위. 1979년 팔레비 왕정을 타도한 이란 혁명에 앞서, 이란 노동자계급은 1978년 8월부터 12월까지 이란 전역을 마비시키는 총파업을 펼쳤다. 총파업 조직 과정에서 노동자평의회 성격을 지닌 ‘쇼라’가 등장한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모두 민족해방운동의 일부를 이끌며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유권자 기반을 갖춘 조직이다. 시나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파타(Fatah)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파벌의 통제 하에 범민족적 팔레스타인 투쟁을 주도해왔다. 이슬람주의와는 거리가 먼 운동의 급진적 부위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과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같은 마르크스주의 계열 단체를 통해 표현되었다. 세속주의 지도부가 주도해온 이 흐름은 1987년 제1차 인티파다 과정에서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무슬림형제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해 이슬람 저항 운동, 즉 하마스를 창립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마스는 1987년 난민 캠프와 도시 지역의 가난한 청년들이 주도해 팔레스타인 영토 전역으로 확산된 제1차 인티파다 속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등장했다. 시나티는 “하마스의 특징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증오심에 종교적 논리를 부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진실한 사람들(true people)의 체현, 즉 ‘부패한’ 세속 엘리트에 맞서는 순수하고 신실한 ‘움마’2)의 체현으로 내세우고, 이로 하여금 신앙심 깊은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몇 년간 하마스의 사회적 기반은 2001년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대통령에 당선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시작하며 군사 봉쇄가 강화될 때까지 가자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2) ‘أمة’ 이슬람 교단이나 공동체를 의미하며, 종교적 체계와 규율에 기초한 모든 무슬림의 초국가적 공동체를 가리킨다. (역자주) 1988년 1월 서안지구에서 촬영된 제1차 인티파다 당시 사진 (인티파다는 아랍어로 ‘봉기’를 의미) 2000년 10월 29일 제2차 인티파다 당시 가자지구에 진입한 이스라엘군 전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파리스 오데. 2000년 당시 파리스 오데는 만 14세였으며, 같은 해 11월 8일 가자 북부 카르니 교차로에서 이스라군을 상대로 저항을 이어가다 사망한다. (출처 : AP통신) 샤론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진격하였고, 야세르 아라파트를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시켰다. 아라파트의 후계자로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된 마흐무드 압바스는, 상황이 팔레스타인 대중에게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지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시온주의 점령군 및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하마스가 2006년 가자지구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 클라우디아 시나티는 2009년 자신의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마스는 샤리아에 기반한 이슬람 국가 수립이라는 목표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반미·반이스라엘 담론을 유지하면서 아랍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쇠퇴를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하마스의 일련의 선거 공약과 이스라엘 점령에 맞선 저항의 지속을 넘어,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에 종교 국가(confessional state)를 세우겠다는 전략은 반동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정당한 민족적 열망에 대한 진보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종교적 도덕을 절대적 가치이자 법으로 삼는 것은 기본적인 민주적 자유를 공격하며 사회적 억압의 도구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서구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사회에도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있으며, 종교가 착취자의 지배 유지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이스라엘 국가를 종교 국가(religious state)로 대체하려는 하마스의 전망은 아랍인, 무슬림, 유대인 대중의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이란식 종교 국가는 권위주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계급 모순으로 분열된 자본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소위 ‘팔레스타인 대의’3)에 종속되지 않는 노선은 무엇보다 일관된 반제국주의·반시온주의 노선을 요구한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대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진지로 삼으며 자국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을 착취하고, 많은 경우 청년, 여성, 성소수자, 좌파를 탄압하는 아랍 부르주아지와도 독립적인 노선을 요구한다. 3) 필자는 여기서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왜곡된 ‘팔레스타인 대의’를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편집자 주) 아랍 민족주의의 다양한 정당과 인물들은,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적 저항운동의 일부인 이슬람주의 조직들(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나 지역 내 제국주의의 구조적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고서, 시온주의의 압제를 종식시키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22년 12월 14일 가자기구 도심에서 열린 하마스 창립 35주년 기념 집회 (출처 : Quds News Network) 아랍의 봄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경찰이 자신의 물건을 압수하고 모욕을 주며 수레를 뒤집어엎자 이에 항의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수만 명의 튀니지인들이 부아지지를 기리며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에 의해 부과되고 2008년 대불황으로 악화된 굶주림와 고통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그 사이 부아지지는 병원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대중은 1987년부터 국가를 통치해온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에 분노를 쏟아냈다. 2011년 1월 4일 부아지지는 사망했고, 벤 알리는 불과 열흘 뒤인 1월 14일 대중의 힘으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튀니지 반란은 (아랍)지역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집트에서는 수백만 명이 호스니 무바라크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고,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시리아에서는 바하르 알 아사드에 맞서 반란이 일어났고, 알제리와 예멘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저마다의 특수성이 있었지만, 이들 정부는 공통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주의적 아랍 민족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부르주아 민족주의 강령을 내걸고 집권했다. 1970년대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겪은 이후, 이들 정부는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여 점점 더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명령을 집행했다. 물론 아랍의 봄 기간에 대규모 반란을 겪은 국가들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이질적이며, 경제적 구조도 불균등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추세가 이들을 공통분모로 엮고 있으며, 아랍의 봄은 이 지역 전체에 걸친 '문제의 통일성'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2008년 경제위기는 식량 가격 상승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북아프리카 전역에 식량 위기를 초래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에 앞서 도시 빈민층 주도로 빵 폭동4)이 벌어졌다.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이 발발하기 전, 이집트 노동계급은 마할라알쿠브라(Mahalla el Kubra)와 같은 중요한 노동자 중심지에서 노동력의 재편 과정을 겪는 동시에 저임금에 맞선 투쟁을 경험했다. 4) 2008년 경제위기 여파로 곡물가격이 급등해 식량위기가 이집트 전역에 확산된다. 국영 빵집에서 판매하는 빵 크기와 양이 줄고, 정부는 1인당 빵 구매량에 상한선을 설정한다(인구 절반가량이 빈곤층인 이집트는 국영 빵집에서 빵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국영 빵집 대기열을 두고 발생한 충돌이 유혈사태로 번지고, 국영 제빵업자들이 정부와 경찰에 건낼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밀가루를 암시장에 팔아치우는 지경에 이른다. 국영 제빵업자들이 파업하자 무라바크 정권은 긴급조치로 군대를 동원해 빵을 굽게 한다. 식량위기와 저임금이 촉발한 분노로, 이집트 노동자계급과 반체제운동 진영은 2008년 4월 6일 예정된 마할라알쿠브라 섬유 노동자 수천 명의 파업에 호응하며 총파업을 조직한다. 그러나 파업 당일 경찰이 도시를 원천봉쇄하고, 주요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며 총파업은 무산된다. SNS 매개로 총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4월 6일 청년운동’은 2011년 이집트 혁명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한다. “아랍의 봄” 동안 계급투쟁 과정은 그 깊이, 대중의 참여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수위로 전개된다. 요컨대, 각국의 계급투쟁 동학은 상이했다. (각국의 투쟁은) 잔혹한 독재 정권에 대한 반란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에 이용되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이 반란을 제국주의적 목적에 더 이상 복무하지 않는 협력자들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았으며, 리비아와 시리아에서는 카다피와 아사드에 대해 군사 개입까지 단행했다. 예를 들어 리비아에서 카다피 독재에 대한 반란은 민중에 대한 잔혹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반란이 대중의 자기조직화에 기반한 독립적 지도부를 갖추지 못한 가운데, 제국주의 세력은 이를 이용해 나토를 통해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일으켰다. 카다피 처형 이후 리비아는 제국주의에 더 크게 종속되었다. 트로츠키주의 분파(Trotskyist Fraction)로서 우리는 2013년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위한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리비아와 같은 공개적인 내전(open civil war) 사례에서, 독재자들에 맞선 군사적 투쟁과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분리할 수 없으며, 내전의 과정을 어떤 계급이 주도하며 그들의 사회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도 부차화될 수 없다. 정치적 문제를 군사적 문제에 종속시키는 관점은 나토 개입으로 이루어진 카다피 축출을 ‘대중운동의 승리'로 해석하게 만든다. 이는 미국과 다른 강대국이 반독재 시류에 편승해, 민주화운동이 '연속적(permanent)’ 동력을 얻는 것을 막음으로써 정권 교체 후 새로운 동맹을 확보하고자 하던 시기에 발생했다. 즉, 그들은 운동이 부르주아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투쟁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시리아의 경우, '반군'에 대한 정치적 유보 없이 그들 편에 서거나, 미국의 동맹국들이 유지하는 친제국주의적 반군 지도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략의 제시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급진화된 노동자계급이 주도한 더 심오하고 발전된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들은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그 뒤를 이은 무슬림 형제단의 온건 이슬람주의 정부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웠다. 노동자계급과 대중의 활동은 무슬림형제단 정부의 약점과 결부되며 체제 전체를 위협했다. 결국 부르주아 야당 주요 지도부의 지지를 받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결과 미국의 이익에 전적으로 종속된 권위주의 정권이 탄생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위한 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튀니지의 엔나흐다당과 이집트의 자유정의당 등 집권한 모든 이슬람주의 조직은 종교적 광신, 후견주의적 포퓰리즘(clientelistic populism),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혼합하여 설교하는 부르주아 세력이다. 혁명가들은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부르주아지나 그 대표자와 동맹을 맺는 대신, 노동자계급적이고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집트 운동에서 드러난 동학은 대중의 삶의 조건과 관련된 요구에 연속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는 민주적 혁명이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제국주의적 억압을 종식하지 않고는 이러한 요구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혁명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첫 번째 구조적 민주주의 문제이며,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이를 끝까지 이끌 수 있다.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계급투쟁의 순환은 중동 전역의 아랍 프롤레타리아를 하나로 묶는 경제적,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단결을 보여주었다. 이 단결은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 유대뿐만 아니라 착취와 제국주의적 억압, 계급투쟁을 함께 겪어온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동시에 아랍 부르주아, 그리고 아랍 부르주아와 ‘반제국주의’ 투쟁의 이름으로 협력하는 조직들이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했음을 드러냈다. 이 아랍 국가들은 자국 노동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외세 제국주의로부터 양보를 얻기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출처 : AFP 통신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성신여대 총장, “잘생긴 남자 연예인으로 불러주면 용돈” 성차별적 충격 망언1. 성신여대 총장, “잘생긴 남자 연예인으로 불러주면 용돈” 성차별적 충격 망언 사진출처: 큐리즘 성신여대 이성근 총장이 학생들이 교직원에게 ‘잘생긴 남자 연예인’ 별명을 붙이면 5만 원부터 최대 20만 원 현금을 즉석에서 지급하게 한 일이 드러났다. 이는 지난 3월 7일과 8일에 열린 성신여대 창의융합학부 신입생 캠프에서 일어났다. 지난 2일, 캠퍼스 대자보를 통해 성신여대 행동하는 퀴어·성소수자 동아리 ‘큐리즘’ 준비모임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하고 비판했다. 큐리즘은 해당 대자보에서 “분위기를 띄우게 할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강요하고 그것에 ‘웃어야 하는’ 상황을 강제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총장이 한 여성 교수를 소개할 때는 “‘별명으로 강남아줌마 어떠냐’고 말한 뒤, 학생들이 비판하자 ‘그럼 아가씨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외모와 성별을 희화화하며 성차별적 분위기를 조장하고 이를 통해 여성인 학생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며 웃음을 강요하는 일이 2025년 대학에서 벌어진 것이다. 캠프에서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주최한 퀴즈 행사도 문제였다. 가령 사회자는 여성 신입생에게 남성들이 “다음 여자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아리송한 것은?”이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그 순위를 맞추도록 질문하여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러한 행사에 학생 다수가 불편과 비판을 제기했으나 총장은 “유감”을 나타냈을 뿐 여태까지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22학번 재학생 A씨는 “젠더폭력이 학교에서조차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 화가 난다”라고 전했으며, 25학번 B씨도 “여대가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해 진학한 것인데, 2025년에…… 문제 될 만한 일이 일어난 게 믿기지 않는다”라며 “학생들이 모여 강력히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큐리즘은 “우리는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를 원한다”며 “단순히 상부 일부의 교체가 아니라, 젠더평등에 있어서 우리 대학의 전면적인 문화 변혁을 원한다”라고 강조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6526.html 2. 저출생·고령화 대책…성평등·돌봄이 핵심 키워드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 현안 중 1순위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키워드로 ‘성평등’과 ‘돌봄’을 제시했다. 김영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결혼’과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 남성 중심 생계부양자 모델에서 이제는 부모 모두의 공평한 가사노동과 돌봄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는 저출생 문제에서 현금 서비스 중심의 지원보다는 성평등한 노동 환경 구축과 돌봄의 사회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실제 공공 주도의 보육 제도 개선이나 안정적 일자리 창출로 젊은 청년부부의 유입이 많았던 곳을 중심으로 출생률이 올랐다. 그런 만큼 새 정부의 인구정책의 방향도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인프라 구축’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참조 기사>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4872 3.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 첫날부터 꼼수? 제도 허점 노려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한부모가족에게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그 돈을 비양육자에게 회수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첫날부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가 포착됐다. 양육비 선지급제 신청 자격은 양육비를 받기 위해 소송 등 노력을 했는데도 3개월 또는 3회 연속으로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한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다. 미성년 자녀 1명당 월 20만 원 한도의 양육비가 성년이 될 때까지 지급된다. 지급된 양육비는 정부가 비양육자에게 청구하고,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로 징수한다. 다만 비양육자가 비정기적 혹은 소액이라도 돈을 보냈다면 선지급제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양육비 선지급제 신청 자격 요건 중 하나인 ‘3개월 연속 미지급’ 조건을 피하기 위해 비양육자가 소액을 일부러 연달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악의적인 꼼수 양육비 지급을 걸러낼 수 있으려면 비정기적 혹은 소액 지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제도 시행 이후 비정기적이고 악의적인 양육비 지급 사례 등을 검토해 추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51272511&code=11131100&cp=nv 4. 10년 새 여성 고용률 올랐지만 재취업률은 떨어져 최근 여성 고용률은 증가하고 있지만, 재취업 여성 비율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 노동리뷰에 실린 보고서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의 재취업률>에 따르면 2024년 여성 고용률이 55.0%를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인 2015년 49.7%에 비해 5.3%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최근 10년 동안 취업해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여성의 비율도 2021년 85.4%로 저점을 찍은 뒤 2024년 87.8%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의 비중이 2022년 이후 빠르게 하락했는데, 보고서는 이를 첫 일자리를 유지하는 여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봤다. 통상 한국 여성의 연령대별 고용률을 그래프로 보면 출산·육아 등으로 30대, 40대 초반에서 고용률이 하락했다가 이후에 다시 오르는 ‘엠(M)자 곡선’이 나타난다. 보고서는 “과거에 비해 30대, 40대 초반 연령대의 고용률이 상승해서 엠(M)자형의 꺼진 부분이 많이 완화됐다”면서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비중이 다른 요인에 비해 높은 현실은 이들의 고용률 상승폭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의 재취업률이 하락했다는 점이다. 여성의 재취업률은 2018년(43.0%) 이후 꾸준히 증가하다가 2022년 48.7%로 정점을 찍고 2024년 43.4%로 낮아졌다. 이는 10년 전(2015년 42.5%)과 비교해 0.9%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하락 폭이 큰 2022년과 2024년 재취업률 변화를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혼인·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육아부담이 상대적으로 집중된 40대 여성의 재취업률이 하락한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출산·육아 등 개인·가족적 사유가 아닌 노동시장적 사유로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의 재취업률도 크게 하락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복순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전문위원은 “최근 여성 노동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넘치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여성 고용률을 밑돌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일한 경험이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 장벽을 낮추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206462.html 5. 필라델피아시 공공부문 노동자들, 파업에 나서 필라델피아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7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환경미화원, 교통안전요원, 911 긴급통신원, 수도국 직원 등을 포함한 노동자들은 근무 규정 양보에 반대하고,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AFSCME DC 33(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District Council 33, 미국 주·카운티·지방정부 직원 연맹 제33지구협의회, 이하 DC 33)에 소속된 이 노동자들은 파업 현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DC 33은 미국 최대의 공공부문 노조 연합인 AFSCME(아프스미) 산하 지부 중 하나로 전체 조합원 수가 약 9,000명에 이르며, 조합원 다수가 흑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DC 33은 그동안 흑인 노동계급의 중심적 기반 역할을 해 왔다. 파업에 나선 DC 33 조합원들은 시 정부가 자신들을 ‘필수 노동자’라고 칭하지만, 정작 대우는 ‘폐기물’처럼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2020년 6월,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수백 명의 환경미화원과 DC 33 조합원들은 위험수당과 개인보호장비(PPE)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DC 33은 시민들을 위해 감내해 온 희생을 반영하는 임금 수준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노조의 구호인 “필라델피아가 돌아가는 이유는 우리가 있기 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연봉은 4만 6,000달러(약 6,300만 원)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조합원들은 “필라델피아 안에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집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경찰이나 소방관과는 달리, DC 33 조합원들은 필라델피아시 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다. 7월 1일 기준, 시 정부는 연 2% 인상이라는 터무니없는 임금 제안을 내놨다. 이는 연간 고작 925달러(약 127만 원) 수준의 인상이다. 반면 시장은 자신의 연봉(DC 33 평균 연봉의 5배 이상)에 대해 9% 인상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 <참조 기사> https://www.labornotes.org/2025/07/philadelphia-municipal-workers-strike-july-4-celebrations 6.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거센 백래쉬 … 우리 대응은? 최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반 트랜스 행정 명령과 주 정부 차원의 차별적 입법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일부 주에서도 의료 제한, 스포츠 참여 금지, 차별적 교정 정책이 도입되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한 사회문화적 보수주의를 넘어서, 제도적 차별과 폭력을 동반한 광범위한 억압으로 확장되고 있다. 반 트랜스 정책은 건강이나 공정성 보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질서 유지와 노동계급 분열이라는 정치 경제적 목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에 대한 비난은 등록금 인상 등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연막이다. 또한, 교사 노조에 대한 공격과 트랜스젠더 학생 정보를 공개하라는 강요는 노동자 단결을 약화하려는 전략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정부들이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체제의 전통적 성별 이분법과 양육 구조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어 억압이 강화되고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부의 억압에 맞선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법적 보호가 마련돼 있음에도 의료 접근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바이든 정권에서도 정치적 압력에 따라 트랜스젠더 권리가 후퇴했다. 반면, 노동조합은 반 트랜스 시위에 맞선 대규모 방어 행동을 조직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권리가 법과 제도가 아닌 대중 투쟁을 통해 쟁취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겨냥한 조직화와 투쟁이 필요하다. 트랜스젠더 해방은 노동자계급 및 여성 해방과 함께 실현돼야 할 과제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leftvoice.org/why-are-trans-rights-under-attack-and-what-can-we-do-about-it/ 7. 런던 프라이드 퍼레이드, 수만 명이 대법원 판결을 비판 영국 런던에서 현지 시간 7월 5일,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 인권 행진)’에 500여 개의 단체와 수만 명의 사람이 모였다. 성소수자 예술가들은 “트랜스젠더가 빌런(악당)으로 몰리고 있다며 지난 4월 영국 대법원이 평등법상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고 한 판결(5번째 기사)을 비판했다.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올리 알렉산더는 “대법원의 판결로 많은 트랜스젠더가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리라 생각한다. 지금 트랜스젠더들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지지와 사랑이 필요하다”라며 “언론과 여러 매체에서 (트렌스젠더가) 악마화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우리와 똑같다. 그들은 당신이며 그들은 나다”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인권 자선단체 낫 어 페이즈(Not A Phase)를 후원한 배우 엘리스 하워드는 “우리는 엄청나게 불안정한 정치적 시기를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퀴어로서, 그리고 동맹으로서 함께 힘을 모아 축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쁨은 저항의 행위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랜스젠더 이슈(The Transgender Issue)> 저자인 숀 페이는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퀴어(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의 권리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목격했다”라며 “특히 영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잘못된 정보, 언론의 공격, 그리고 불행히도 법원에서 인권이 후퇴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올해 프라이드는 공공장소를 되찾고, 우리가 침묵당하지 않을 것이고,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무엇이 바뀌길 바라냐는 질문에 대해 “1년 만에 바뀔 일은 아닌 것 같다. 운동은 세대를 거쳐 움직인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팎의 많은 단위와 단결하고 연대해서 이러한 문제에 맞서 싸울 강력한 연합을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참조 기사> https://www.independent.co.uk/news/uk/home-news/pride-parade-london-2025-supreme-court-b2783250.html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jul/05/lgbtq-figures-criticise-supreme-courts-gender-ruling-at-london-pride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여성 청소 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겠다!원청 정규직 남성 노동자(남): 퇴근하고 뭐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여): 할 일은 없지만, 저녁 먹자고 그러진 마세요. (...) 여: 저는 그런 관계 싫어해요. 남: 그냥. 내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서 A씨랑 알콩달콩 데이트하면 좋겠다고 생각돼서. 여: 왜 유부남들을, 가정을 잘 지키라고 하셔야지 왜 그러신지. 기아차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선전전 피켓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A씨는 원청 직원 ㄱ씨에게 이런 식의 전화를 받곤 했다. “간부 숙소에 혼자 사는 사람이 있는데 부인과 사이가 안 좋으니 잘 꼬시면 옷도 가방도 사줄 거”라면서 “저녁에 외로우니 술도 사달라고 연락도 해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더 노골적인 내용의 전화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전화를 바로 끊기는 어려웠다. 보복성 괴롭힘 때문에 가능한 그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청소 노동자들은 심증은 분명하지만, 물증은 잡기 어려운 보복을 많이 당하고 산다. 누군가는 변기를 막아놓는다든가, 핸드타월을 왕창 뽑아서 먼저 넣고 볼일을 봐 일부러 넘치게 한다. 커피를 바닥에 질질 흘리고 가기도 한다. 화장실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어서 누가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부 원청 직원들은 A씨를 동등한 노동자로,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이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당하는 또 다른 차별이었다. 지금은 퇴사한 어느 원청 직원은 매일 같이 ‘밥 먹자’, ‘술 먹자’라며 추근대기 일쑤였다. 어느 날에는 “오늘 바지를 샀는데 이것 좀 봐줘”라고 말을 걸더니 “바짓단을 수선하게 접어줘 봐”라고 하며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나 운동 많이 하는 사람이야. 다리 근육 좀 만져봐. 엉덩이도 이 나이에 이렇게 업 된 사람은 별로 없어”라고 신체 접촉을 유도하며 수작을 걸었다. 또 회식 자리에서는 화장실을 따라오더니 갑자기 손을 잡고 벽에 밀치며 입을 맞추려 했다. 화를 내는 A씨에게 그는 “장난이야”라고 돌아서 가버리면 그만이었다. A씨는 청소와는 무관한 일도 했다. 밥과 찌개를 끓였다. 점심식사 20분 전인 10시 30분부터 원청 직원들이 A씨가 해주는 밥을 먹고 10시 50분부터는 배드민턴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호주머니까지 털어 돼지고기나 식재료를 사 요리를 해야 했고, 찌개는 매일 다른 종류로 끓여야 했다. 먼저 그 일을 해 왔던 김○○ 언니는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려면 ㄱ씨한테 잘 보여야 해. 혜택을 받는 거니까, 이런 재료 사는 거 아까워 말고. 너 오기 전부터 여기 여자들 했던 일이니 그냥 해”라고 했다. 그러나 A씨는 그 혜택이 뭔지 받아본 적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불편하고 괴롭기만 했다. 또 다른 원청 직원은 커피를 마시며 노닥이자는 말을 매일 같이했다. 강요에 못 이겨 노래방에 갔을 때는 온갖 추잡한 짓을 하려 했다. A씨는 수시로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가서 친해질 겸 앉아만 있으면 돼. 니가 그냥 꽃이지 꽃.” A씨는 이러한 성희롱과 성추행, 부당한 업무 지시를 2년 가까이 거부하지 못했다. 괴롭힘이 두려웠고, 관행을 깨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바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분명했고 김○○ 언니의 퇴사를 계기로 그 틀을 깨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밥과 설거지를 거부했고, 이후에는 원청 직원들을 멀리했다. 더 일찍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자 원청 직원들은 A씨의 ‘행실’을 문제 삼으며 나쁜 소문을 냈다. 분노한 A씨는 카톡방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초대하고 경고했다. 원청 직원을 따르던 일부 비정규직 동료들의 눈초리와 말도 참기 힘들었다. A씨는 그럴 때마다 사측에 어떤 조치라도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관리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6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업무상 클레임도 찾아 왔다. 최근에는 눈 밖에 난 A씨와 그의 동료에게 산업폐기물을 청소하라는 부당한 지시까지 떨어졌다. A씨는 누가 누가 공모해 이 일을 밀어붙였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A씨는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동료와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기아차 화성공장 전경 일상적인 직장 내 성희롱 물론 이 같은 성희롱은 A씨만 겪는 일은 아니다. 가령 고충처리를 하러 회사에 갔다가 되려 성추행을 당한 또 다른 비정규직 여성 청소 노동자 B씨의 사례가 있다. B씨는 2024년 현장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C씨가 집단적으로 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고충 처리를 맡았다. 괴롭힘 가해자가 회사 대표의 친동생이거나 인척 관계인 조건에서 회사는 사측 위원들로만 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B씨는 2024년 5월 이에 항의하기 위해 피해 조합원과 함께 회사 대표를 면담하러 갔는데, 언성이 높아져 서로 욕을 하게 되었고 이때 성추행을 당했다. 그 자리에 있던 회사 대표는 마치 즐기듯 그 장면을 쳐다보기만 했으며, 현장소장도 아무렇지 않게 방관했다. B씨는 그런 성추행을 겪은 날부터 해당 관리자를 볼 때마다 극심한 혐오감과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리고 이는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신체적 반응으로까지 이어졌다. B씨는 잠도 안 오고 미쳐버릴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사는 B씨가 아무런 폭행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업무방해죄와 폭행죄로 고소했다. 형량이 나오면 이걸로 해고하겠다는 소문도 퍼트렸다. 또 현장에서 뺨을 때렸다는 식의 거짓 소문을 내 대의원으로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B씨도 혼자 삭히지 않기로, 이대로 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청소와 식당 노동자가 더 이상 무시받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뭉치기로 했다. A씨는 성희롱 사건을 원청에 통보했다. 그러나 회사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나마 최근 요구안에 대해 협의를 해보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없는 걸로 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A씨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B씨도 지회에 얘기했고 금속노조 여성위원회에 제소할 생각이다. 이미 A씨는 직장 동료 김은희(가명) 씨와 함께 회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맞서 1개월이 넘게 싸우고 있기도 하다. B씨와 C씨는 이들의 투쟁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 연대하고 있다. 요구안으로는 △긴급대응팀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임금, 채용비리) △탄압한 하청업체 관리자(보광) 해임 △제대로 된 노사 협의안 이행 △조합원이 요구하는 기간만큼 사과문 게시 △재발방지대책 및 보복금지 등 7가지를 걸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강력하다. C씨는 “우리가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 조합원들이 불만을 말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접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이겨야 다른 사람들도 나설 수 있다”고 한다. 김은희 씨는 “나는 10년을 더 일해야 한다. 내 현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싶다”라고 한다. A씨는 “비정규직이 이제 청소와 식당 업종만 남았다. 비정규직 청소와 식당 업체만 남았는데, 이번 부당 업무지시 건은 노동강도가 세지고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사례다. 우리가 이 투쟁에 이기지 않으면, 점점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 널리 퍼져 있는 이 현장을 바꾸고 싶다. 청소와 식당 노동자가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도록,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글은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의 기사(https://cafe.daum.net/breadnroses/VTYe/46)를 옮긴 것입니다. -
현대차 불법파견에 맞선 노동자들에게 떨어진 손배 폭탄이 말하는 것노동삼권을 부정하는 ‘내란’ 2025년 7월 3일, 대법원은 또다시 불법파견 범죄자 현대차 자본의 손을 들었다. 현대차 자본은, 자신이 저지른 불법파견 범죄와 비정규직 탄압에 맞서 벌어진 2010년 1공장 CTS(도어 탈착) 공장점거 파업투쟁 등에 연대한 노동자 4명에게 끝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이번 대법원 재상고심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자 포함 35억 원이라는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얼마 전 현대차는 자신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노동자가 죽자, 사망한 노동자의 70대 노모에게 그 금액을 청구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다. 그때도 현대차는 노모에 대한 청구만 제외했을 뿐, 손배소송 자체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그간 현대차 자본이 2010년, 2012년 파업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손배소는 총 17건, 청구액은 231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번에 ‘집회 사회를 보거나 농성에 참여하는 등 파업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다시 노동자에게 35억 원의 손해배상을 물린 것이다. 이쯤이면 사법부가 자본과 결탁해 노동삼권을 보장하는 헌법을 깨뜨리는 ‘내란’ 수준이 아닌가!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 사법부는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게 법을 마음대로 꿰맞췄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와 단체행동은 자본의 위법한 사내하청제도 운영, 초과착취와 탄압,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자본의 주장대로 손배를 인정해주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조합 파업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2023년 6월 대법원 상고심은 개인이 파업의 주체인 노조와 동일한 책임(사측 청구액의 50%)을 부담하라는 판결이 불합리하다며 원심을 파기한 바 있었다.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는 하등 진보적인 판결이 아니었다. 즉, 2023년 6월 판결은 외견상 ‘파기 환송’이었을 뿐, 그 본질은 개개인이 현대차 자본에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를 각자의 책임에 따라 개별 산정하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따라 2025년 2월 13일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당사자들의 책임비율을 하향조정하고, 손배 청구금액을 개인별로 산정해 현대차 자본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7월 3일 대법원 재상고심은, 올해 2월 고등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그대로 승인했다. 2025년 3월 12일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맞선 2010년 CTS 파업 손배소송 재상고 기자회견 (사진: 금속노조) 모든 손배가압류를 금지하라! 민주당의 노조법 3조 개정안을 폐기하라!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2023년 윤석열 정부 당시,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라는 요구는 ‘손해배상 제한’으로 왜곡되었다. 왜였을까? 이는 민주당 입장을 노동자 민중운동이 수용한 결과였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주된 경로를 대중투쟁을 통한 국회의 강제가 아니라,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과의 협력을 통한 입법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 요구는 민주당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노조법 개정안 3조 2호는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 경과를 보면, 애초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는 ‘부진정연대책임’1)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다른 조항들과 함께 3조 2호 신설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개정안의 다른 조항은 모두 삭제하고 3조 2호만 가져와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명문화했다. 즉, '부진정연대책임 폐기'라는 취지를 왜곡해, 오히려 개인별 책임 명시 조항만 수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손배가압류 철폐’라는 노동자계급의 오랜 요구가 노조법 2·3조 개정운동 정세에서 ‘손해배상 제한’으로 왜곡된 것이다. 이번 판결이 드러내듯, 당시 민주당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이는 ‘노조탄압 방지’가 아니라 ‘개별 책임 명문화’라는 법적 효과를 곳곳에서 낳을 것이다. 1) 부진정연대책임은 ‘공동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 전부를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가들은 부진정연대책임을 활용해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CTS 공장점거 파업이나 KEC투쟁처럼, 발생한 손해 전체에 대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배상을 청구하고,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면 손해배상을 취하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해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는데도, 민주노총은 당시 노조법 3조 개정안을 ‘성과’라고 규정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2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부족하나마 우리가 이 법의 통과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2023년 2월 27일, 노조법 3조 개정안을 설명하는 민주노총 법률원 카드뉴스는 다음과 같다. “손해배상 연대책임을 극복하고 개별책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가 어찌 성과란 말인가? 이번 대법원 재상고심 결과가 드러냈듯,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 명문화는 결코 성과가 아니며,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아니다. 2023년 2월 27일 민주노총 법률원 카드뉴스 대중투쟁으로 노동삼권을 사수하자! 노조법 2·3조를 온전히 개정하자!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노조법 2·3조 개정이 얼마나 정당하며 절박한지 수없이 증명해왔다. 특히 내란과 탄핵 시국을 거치며, 노조법 2·3조 개정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개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자본의 이해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노동자에게 손배라는 죄를 물어 노조법 2·3조 개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법’이란 결국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기제임을, 가뭄에 콩나듯 하는 ‘사법 정의’는 계급투쟁의 결과일 뿐임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현대차 자본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는 198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2025년 지금까지 현대차가 위법하게 초과착취한 비정규직노동자 규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노동자를 갈라쳐, 더 빼앗고 저항을 깨뜨리며 현대차 자본이 얻은 직간접적 이익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환산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차 자본의 불법 사내하청 착취에 사법부가 내린 처분은, 고작 ‘벌금 3천만 원’에 불과하다! 2010년 현대차 1공장 CTS 점거파업 (사진: 노동과세계) 이토록 자본의 노동착취와 탄압과 차별, 억압이 극심하기에 노동자가 뭉쳐서 쟁의행위를 하고, 파업으로 노동자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누가 생산의 주인인지를, 계급투쟁으로 자본의 이윤을 침해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 권리, 파업투쟁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수없이 많은 피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이번 35억 손배 폭탄 판결처럼, 정부와 자본은 호시탐탐 노동삼권까지 공격하며 노동자계급의 기본권을 유린한다. 이재명 정부 취임 30일, ‘경제’를 강조한 국정 방향은 그 실제 의미가 ‘자본살리기’인 만큼, 사법부에게 이번 판결의 방향에 관한 중요한 신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재명 정부도, 민주당도, 노동삼권을 유린한 이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하기는커녕 판결에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노동자계급은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 그 위선에 속아줄 여유가 없다. 자본이 감히 공격할 수 없도록 노동자의 파업권을 사수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나아가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과 함께, 하청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진짜 사장인 원청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바로 그 역할을 민주노조가 해야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투쟁 과정에서 민주당에 의존한 결과는 법안 내용의 한계로 그대로 반영되었다. 노조법 2·3조를 전면 개정하고, 파견법을 철폐하기 위해 정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의 분노를 조직해 투쟁으로 나서자. 지금 민주노조가 싸우지 않으면 수많은 비정규직, 간접고용, 불안정,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삼권 행사는 언감생심이다. 이번 35억 손배 폭탄이 손배의 마지막일 수 있도록, 짓밟힌 노동삼권에 대한 분노를 모아 ‘손배’라는 단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수 있도록 현장을 조직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