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정부,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 국정과제 추진1. 정부,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 국정과제 추진 정부가 ‘미프진’ 등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를 국정과제로 추진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 속에서 불법 유통되던 약물이 제도권에 편입되면 여성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보면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과제로 ‘임신중지 약물 도입’과 ‘임신중지 법·제도 추진’이 명시됐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관련 정책이 부재한 것은 여성 인권의 침해”라며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해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임신중지 약은 임신 10주 이내 초기 단계에서 사용하는 약물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5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다. 100여 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며, 수년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지 못했다. <참조 기사>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5/08/13/20250813001004?wlog_tag3=naver 2. 돌봄 인력난 해소하려면 … 돌봄노동의 존엄과 생산적 기여부터 인정해야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돌봄 인력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APEC 여성경제회의에서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돌봄체계의 강화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발레리 프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 경제학자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더라도 노동시장에서 계속 남아 있으면 소득을 자연히 높이게 된다”면서 “남녀 간 소득 격차가 생기면 그 자체로도 사회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서 공공 부문 장기 돌봄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장기요양사의 근무 조건, 소득도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해서 적절한 급여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프레이 선임 경제학자는 저평가되는 돌봄 노동의 가치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럭 운전사는 밤에 근무한다는 등의 이유로 돌봄 제공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돌봄 노동자 역시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며 “돌봄 제공자에게는 공감 능력과 시간 관리 능력, 참을성이 필요하다. 이에 호주에서도 돌봄 제공자의 임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sedaily.com/NewsView/2GWLK9QV9A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6093 3. 광복 80주년, 여전히 역사 속에 묻힌 이름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역사의 뒤편에 서 있다. 공훈전사자료관의 자료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을 보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국 독립유공자는 1만 8,253명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여성은 664명으로 남성 대비 압도적으로 적은 3.6%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서원대학교 라미경 교수는 논문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독립 정신 계승 방안: 충북을 중심으로>를 통해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덜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한계 속에 그들의 공적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립운동 시기, 여성들은 대체로 무장투쟁이나 공개적 시위보다 연락망 구축, 군자금 전달, 은신처 제공 등 은밀하고 비공식적인 임무를 맡았다. 라 교수는 논문에서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주어진 전략적 역할이었지만, 기록이 남기 어려운 은밀한 임무의 특성상, 후대에 남길 기록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상당수가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다는 점도 유공 인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부양자였다. 독립운동에 나선 배우자를 대신해 가사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기록은 더욱 가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당시의 사회 구조상 여성의 정치·사회 활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던 점도 기록 부재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라북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정부와 학계, 시민단체가 연계한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후손 증언을 확보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검증해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으로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 같은 발굴 작업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한 과거사 복원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에 온전한 광복의 역사를 전하는 일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더 늦기 전에, 그들의 불꽃같던 삶과 투쟁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참조 기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28542&ref=A 4. 영국 노팅엄, 정부의 트랜스젠더 배제 정책에 맞선 다이-인 퍼포먼스 8월 16일, 영국 노팅엄 시청 앞 광장에서 노동당 정부와 평등인권위원회(EHRC)가 만들고 있는 공공기관 트랜스젠더 배제 정책에 항의하는 다이-인 퍼포먼스 시위가 펼쳐졌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가 주관한 시위의 참가자들은 느린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를 키어 스타머 총리의 얼굴 가면을 쓴 사람이 돌아다니며 정부 정책이 트랜스젠더 인권과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최근 정부의 평등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대법원이 평등법상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판결에 따라 트랜스젠더 여성과 남성이 자신의 성별에 맞는 공공기관 서비스 시설(탈의실, 병동, 스포츠 경기 등)에 출입 금지를 촉구하는 지침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트랜스젠더 남성이 남성시설에, 트렌스젠더 여성이 여성시설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반인권적 처사가 알려지며 “정부 여당 노동당과 평등인권위원회가 트랜스젠더를 공공분야에서 밀어내고 자살로 내몬다”는 규탄의 다이-인 시위가 조직된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가 사는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48%의 트랜스젠더 성인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한 증오와 차별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시위대는 해당 지역의 노동당 의원인 알렉스 노리스, 릴리안 그린우드에게 문제의 정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공개 요구했다. 정치권이 침묵으로 동조할 때 차별이 더 구조화되고, 결국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평등인권위 개혁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 발표 △혐오 발언 및 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을 함께 요구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안전과 존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침묵 속에 다이-인 몸짓은 불평등한 사회와 법, 정책이 외면하는 ‘존재’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5/08/16/nottingham-against-transphobia-die-in-protest-ehrc/ 5. 뉴질랜드 간호사들, 오는 9월 중 2일간 파업 예정 뉴질랜드 간호사들이 다시 2일간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간호사노조(Nurses Organisation)는 3만 6,000명의 간호사가 9월 2일부터 48시간 동안 업무를 중단하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간호사노조는 뉴질랜드국가보건기구(Health NZ)가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지 않았으며, 정부가 환자들의 필요보다 예산 절감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현재 정부와 새로운 단체협약을 협상 중이다. 하지만 약 2주 전 파업 이후에도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당시 간호사들은 국가보건기구가 ‘안전한 인력 배치 명시’를 거부했다며 24시간 동안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해당 파업으로 인해 정부는 약 4,300건의 계획된 시술과 전문 진료 예약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www.rnz.co.nz/news/national/569873/nurses-to-strike-for-two-days-in-september?fbclid= 6. 튀르키예 데르심 섬유공장, 노조 가입 노동자 17명 해고 튀르키예 동남부 데르심주의 유일한 섬유공장에서 노동자 17명이 노조에 가입한 직후 해고됐다. 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4일, 섬유공장 페리 텍스틸에서 일하던 여성 14명, 남성 3명 등 17명이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회사 측은 “통근버스 내 언쟁”을 이유로 들었지만,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을 구실 삼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고 노동자들은 반장으로부터 폭언을 당하고, 이튿날 통근버스 탑승도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측이 “맞고 싶으냐”라는 협박을 했다고도 증언했다. 에브림 알튼카이나크 씨는 “임금은 제때 지급되지 않았고, 연장근로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연차휴가도 허용되지 않았다”라며 “사측은 ‘노조원과는 일하지 않는다’며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섬유·직조·가죽노동자연맹(BİRTEK-SEN)에 따르면, 공장주 셀축 보즈쿠르트는 “나는 어떤 노조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노조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불법 행위”라며 맞서고 있다. 노조 메흐메트 튀르크멘 위원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압박이 더 심각하다”며 “이번 투쟁은 지역 여성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페리 텍스틸은 글로벌 패션기업 자라(Zara)에 납품해 왔으며, 노조는 이번 사태를 자라에 보고했다. 자라 측은 현장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참조 기사> https://bianet.org/haber/seventeen-textile-workers-dismissed-after-union-membership-in-dersim-310383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뉴스레터 9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앞으로!_ 02① 정리해고 철회! 온전한 고용승계 쟁취! 이수 투쟁 승리를 위한 더 넓고 더 강고한 공동행동에 나서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차 사내하청 이수기업 노동자들은 8월 12일 현재, 정리해고 316일, 천막 농성 116일째 투쟁하고 있다. 2003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투쟁이 촉발한 후 현대차는 사내하청을 폐업하면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해 왔다. 지난 2012년부터 불법파견 노동자 9,500명 이상이 특별채용으로 정규직화됐다. 대다수 1차 사내하청은 폐업과 통합(업체 폐업→타 업체로 전환 배치 및 고용승계→폐업 업체 공정 촉탁 계약직 배치) 과정을 거쳐 사라졌다. 불법파견 특별채용 합의 이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한 수출선적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20년 이후 대부분 특별채용됐다. 아직 정규직화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수출선적부 이수기업과 2공장 현인기업으로 고용 승계됐다. 2024년 이수기업 폐업을 앞두고 노동자들은 현인기업으로 통폐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자본은 애초의 계획을 뒤엎고 이수 노동자 34명을 2024년 10월 1일부로 정리 해고했다. 이수기업은 불법파견 소송에서 1심 승소, 2심 패소, 3심 승소한 1차 사내하청이며 불법파견 공정이다. 따라서 이수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는 현대차 자본이 불법파견 범죄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기획 탄압이 명확했다. 이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 온전한 고용승계,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불법파견 투쟁 20년간 현대차 자본은 구사대와 용역경비를 동원한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현대차 자본의 폭력은 2025년 이수 노동자와 연대한 동지들을 상대로 또다시 재현됐다. 현대차 자본은 지난 3월 13일과 4월 18일 구사대와 용역경비 300~500명을 동원해 천막 침탈과 탈취, 출퇴근 선전전 침탈 등 여섯 차례에 걸쳐 이수 노동자와 연대한 동지들을 조직적으로 폭행했다. 구사대와 용역경비는 집회에 연대한 여성들을 지목하여 폭행하는 잔악함까지 보였다. 이 과정에서 30여 명의 연대 동지들이 부당을 입고 치료받았다. 현대차 자본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점거하고 신고된 집회 장소에 난입해 무도한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한 배경에 대해 모두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 자본의 폭력과 그들을 두둔하는 경찰의 직무 유기가 순식간에 전국에 알려지면서 전국 노동자와 2030 말벌 동지들의 너른 지지와 연대가 이어졌다. 자본의 탄압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고, 투쟁에 있는 곳에 연대가 이어진다는 걸 이수 노동자 투쟁은 보여줬다. 9월 말에 이수 노동자 투쟁은 1년을 맞는다. 금속노조는 이수 투쟁 1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현대차 본관 정문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준비 중이다. 9월 말에는 이수 노동자 전원의 실업급여와 금속노조 신분보장 기금 지급이 끊어진다. 현대차 자본은 이수 노동자들이 생계 문제와 고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기를 바랄 것이다. 이수 노동자들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승계 투쟁을 이어가야 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지금이야말로 전국 노동자와 현대차 노동자, 연대동지들의 연대가 절실한 때다. 이수 투쟁을 기억하고 연대한 동지들! 이수 투쟁 승리를 위한 더 넓고 더 강고한 공동행동에 나서자. <참조기사와 영상> https://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1153&me_id=36&me_code= https://youtu.be/rk1ajgji-9Q ② 부당업무 지시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선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투쟁 사진_ 이온화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지난 7월부터 부당업무 지시, 직장 내 성희롱, 노동탄압에 맞선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를 조직해 왔습니다. 지난 3월 말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 하청업체 보광산업이 노동자들에게 새로 생긴 글로벌 품질센터 현장을 청소하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면서 청소노동자 투쟁은 시작됐습니다. 자동차 부품, 산업폐기물 등 무겁고 위험한 물건이 많아 다른 팀이 전문 장비 등을 활용해 담당했던 일들이었습니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이 부당업무를 거부하자 사측은 감시와 탄압, 협박의 수단으로 현장 실사를 강요했습니다. 더구나 “회사를 괴롭히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주겠다”고 위협하고,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고소, 고발 협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장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5월 초부터 부당업무 지시에 맞서 중식선전전을 시작했고, 그동안 고통당해 온 직장 내 성희롱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이러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를 위해 전진은 여러 연대 동지들과 함께 3차례 연대선전전을 조직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는 8월 20일 오후 2시 50분에는 4차 연대선전전을 계획하고 연대버스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많은 참여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4차 연대 선전전 참가신청] https://forms.gle/5GDEkFjoZu335kny8 ③ 국민 주권 정부 2달이 돼도 여전히 하늘에 있는 노동자들 사진_ 아사히글라스지회 이영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동지 583일,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동지 181일. 8월 12일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삶을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 주권 정부를 표방했습니다. 그렇지만 세종호텔 해고자 김란희 조합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에 노동자들은 왜 없습니까? 왜 고공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절규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대통령실과도 만나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들도 고공농성 현장을 방문하고, 노동부장관도 방문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외투기업에게 온갖 특혜는 다주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조차 지키지 않는 문제에 대해 민주당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외투기업 먹튀방지법(일명 니토방지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백혈병 환자가 3명이나 발생하고 산재가 승인된 평택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을 압수수색, 역학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전한 일터로 만들면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7명을 고용승계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학은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겁니까? 재단과 세종대학교, 수익사업체를 사유화하고, 전횡을 일삼는 설립자 일가를 규제할 수 있는 사학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노조탄압의 수단인 정리해고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이미 2년 연속 흑자로 전환됐고, 코로나19 이전의 영업이익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복직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옵티칼과 세종호텔 고공투쟁 승리를 위해 함께 연대하고 있습니다. 더 기세있는 단결된 투쟁으로 고공투쟁이 승리하도록 함께 연대해 나갑시다. ④ ‘지혜복이 옳다’ A학교공대위 재판 투쟁 활활 사진_ 비주류사진관 전병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공익제보교사에 대한 부당전보/부당해고/형사고발 철회를 위해 열심히 연대하고 있는 지혜복 동지의 재판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1, 2차 변론이 진행됐고 오는 9월 25일에는 결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A학교의 사건 축소 및 은폐나 2차 가해 사실도, 공익제보 지위도, 부당전보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재판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서울시교육청에 맞서 지혜복 동지는 피해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당당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연대 동지들도 변론기일에 함께하며 지혜복 동지의 투쟁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무더위가 지나고 오는 10~11월에는 선고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9월 10일에는 투쟁 600일을 앞두고 15차 집중집회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부당전보되고 해고까지 된 교육노동자 지혜복 동지가 원직복직 되어 A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① 세상을 변혁하는 사회주의 기초학습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교육위원회는 지난 4월 8일부터 격주 화요일마다 “세상을 변혁하는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원리 파헤치기’, ‘사회주의를 가는 길: 계량인가 혁명인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전략’, ‘한국 노동자 운동사’를 비롯해 모두 12강 중 벌써 8강이 진행됐습니다. 매 강의마다 충실한 강의와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선 내란 시기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세종호텔에서, 거통고에서, 서울시교육청에서 투쟁하기 시작한 많은 연대 동지와 노동자들이 함께하며 사회주의 운동의 쟁점과 전략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뒤풀이나 반별모임 그리고 여러 투쟁의 공간에서도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8월 15~17일까지는 2박 3일 동안 수강자 캠프가 진행됩니다. 울산과 구미지역을 방문해 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솥발산 열사묘역을 방문하고, 함께 노래도 부르고 수박도 먹으며 삶과 운동에 대한 진솔하고 정겨운 대화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전진을 후원하시는 동지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② 월례 정세집담회를 시작하다 전진에선 지난 6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꾸준히 정세집담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1) 지난 6월 27일(금)에는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 - 관세전쟁과 열강투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트럼프 발 상호관세 부과와 보호무역주의 전면화 정세, 그리고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취사선택하곤 합니다. 그리고 늘 이것이 자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고는 합니다. 지금 미국 UAW와 한국 금속노조처럼 노동자계급이 이런 지배계급의 민족주의/국가주의 관점을 따라가는 이상,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는 불가능해지고, 상호관세를 각각 찬성/반대하는 미국 노동자계급과 한국 노동자계급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광범위한 이주민 체포와 추방에 맞서 일어난 반트럼프 시위에 UAW가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계급은 각국 지배계급이 벌이는 반동적인 무역전쟁에 맞서, 일차적으로는 모든 나라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조건의 방어를 위해, 나아가 세상의 운영권을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되찾아오기 위해 투쟁해야합니다. 조만간 1회차 정세집담회에서 다룬 관세전쟁과 관련된 기사를 발행할 예정이니, 참고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이어 7월 25일(금)에는 ‘세계적인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세집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극우 세력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이 서로에 대한 환멸을 토대로 정권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극우 세력은 파시즘의 공포를 안기지만 그렇게 진화하기에는 아직 대중동원 능력이 부족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인간의 얼굴을 앞세우지만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는 단순히 제자리를 맴돌지 않습니다. 극우세력이 파시즘을 향해 성장해 가는 추세 또한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을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요? 이날 정세집담회에선 세계적인 상황을 종합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맞선 투쟁을 되돌아보고 이재명 정권에 맞선 투쟁의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아래 발제문 기사를 통해 ‘세계적인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참조 기사> https://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1248 ③ 토론하는 전진, 내부토론회 전진은 매월 주요 정치적 쟁점에 대해 내부토론회를 진행합니다. 2025년 6월 전진 내부토론회는 ‘정년연장에 대한 입장’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많은 한국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은 많은 고민을 던집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계급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2023년 프랑스 노동자들은 연금 수급연령 상향과 정년연장에 맞서 거대한 투쟁을 벌였고, 2010년대 초반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 노동자들도 정년연장에 맞서 수십차례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보장은 불가능하니, ‘더 많이 노동할 자유’를 요구해야 할까요? 노인빈곤률 40%에 달하는 한국에서 정년연장은 불가피한 요구일까요? 전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정년연장 요구를 전면화한다면, 각국 자본가들은 ‘봐라, 부지런한 한국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겠다고 한다!’며 자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 공적연금 강화 요구를 억누를 것입니다. 낮은 기본급과 수당 중심의 임금구조를 그대로 둔 채, 더 많은 잔업·특근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빈약한 연금과 사회회보장제도를 그대로 둔 채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공적연금을 사용자 부담으로 강화하고, 연금 수급연령을 하향해야 합니다. 또한 교육-의료-주거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해야 합니다. 7월 내부토론회는 ‘노동자 공동전선’을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코민테른이 1921~24년 정립한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의 핵심은,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 전체의 당면 요구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전선 전술은 사회주의자들이 개량주의 세력과도 협력하며 대중적 투쟁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는 자유주의 자본가 세력까지 포괄하는 ‘인민전선’과는 판이하게 다른, 노동자계급 단결의 도구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공동전선은, 특히 복잡다단한 분할을 뛰어넘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의 단결 없이 자본의 분할지배를 돌파할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기본권 확대, 사회안전망 강화 등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요구를 전면에 걸고, 산업·지역·부문 경계를 넘는 공동투쟁을 확대해야 합니다. ① 2025 여름 방중 청년학생 노동해방 순회투쟁단 <청년학생, 광장 너머 계급정치의 전선으로> 우리는 광장을 통해 윤석열 퇴진뿐만 아니라 노동 중심의 사회, 자본과 권력보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사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청년학생이 죽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함께 말했습니다. 하지만 퇴진 이후 대선을 치르고 첫 정부가 들어선 지금 ‘노동 중심의 사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고민을 비롯한 사회대개혁의 다양한 과제들은 희미하게 지워져 버렸습니다. 노동해방 없이 청년학생의 해방도 있을 수 없고, 성소수자·장애인·여성·청년학생의 해방을 아우르는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투쟁 없이 인간 해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계급적 노학연대는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와 청년학생 모두의 삶을 바꾸는 진짜 변혁의 투쟁이 되어야 합니다. 그 초석의 기틀을 닦기 위해. 진짜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만드는 길로 한 발 나아가기 위해. 광장에 나왔던 2030 청년학생 동지들에게 전국의 생생한 노동자 투쟁 현장으로 찾아가는 순회투쟁을 제안 드립니다. - 신청: https://forms.gle/4pDCMAq5RCfBt1Nn9 - 일정: 2025년 8월 20일(수)~23일(토), 3박 4일 - 참가비: 3만원(식사, 교통, 숙박비 포함) (참가비 납부 및 후원 : 카카오뱅크 7942-14-05328 (곽소현)) 정규 참가비 외에도 후원 성격의 납부가 가능합니다. - 주요활동: 기조 교양, 투쟁사업장 교양 및 토론, 투쟁 사업장 방문, 기획 활동 - 문의: 010-5028-0986(유지원) - 주최: 학생사회주의자연대 (준) ② [정세집담회] 러시아 소수민족 입장에서 바라본 러-우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욕 아래 펼쳐진 반동적 전쟁으로 인해, 각국의 노동자민중은 서로를 죽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에서는 특히, 부랴티야 공화국 같은 가난한 ‘소수 민족’ 출신 군인들이 더욱 더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반동적 침략행위에 맞선 투쟁은 러시아 내 소수민족의 억압에 맞선 투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사회주의자의 시선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둘러싼 상황을 해석하고, 나아가 러시아 내에서 억압받아온 소수민족의 역사, 그리고 더욱 빈곤과 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신청: https://forms.gle/jhyhdDtYkeYw4yBa9 - 일시: 8월 29일(금) 저녁 7시 - 장소: 민주노총 15층 회의실(서울 중구 정동길 3) ※온라인 Zoom 참가 병행 - 발제: =양동민(사회주의를향한전진): 러-우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입장 =Sonia(팔레스타인 학생 공동행동): 러시아 내 소수민족 역사와 러-우전쟁에서의 상황 - 주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책선전위원회 -
[뉴스레터 9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앞으로!_019호를 발행하며 6월 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이상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노동부 장관을 임명하고, 노조법 2·3조 개정에 나서며, 산재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제법 ‘친노동’ 흉내를 내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민주당 정부의 반노동자계급적 본질은 명백합니다. 2026년 적용 최저임금은 고작 2.9% 올랐고, 고공에는 여전히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원청이 진짜 사장임을 증명하기 위해 싸워야합니다. 6월 하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임시총회를 열어 12·3 내란 이후 투쟁을 평가하고 새정부에 맞선 투쟁 전망을 토론하였습니다. 또한, 전진 출범 이후 발전 전망을 논의하였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으로 동지들과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후원회원 뉴스레터 9호, 후원회원 인터뷰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장혜진 동지를 만났습니다. <투쟁하는 전진>에서는 △이수기업 투쟁 △기아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투쟁 △두 고공농성 사업장 투쟁 △A학교 공대위 투쟁 소식을 담았습니다. <공부하는 전진>에는 △사회주의 기초학습 진행 소식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진행하는 공개 정세집담회 소식 △6월 정년연장 추진 흐름에 대한 대응 방안과 7월 ‘노동자 공동전선’에 관한 주제 토론을 진행한 내부토론회 소식을 담았습니다. <함께 참여해요>에 담긴 주요 일정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하길 바라며 후원합니다! 장혜진_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1999년 노무사 자격증을 따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공공운수노조 경기지부,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작년 10월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책상 두 개를 놓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이용덕 동지와 함께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를 시작했습니다. Q. 소금꽃나무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지역본부 일을 그만두고 이주노동자 상담을 해 왔습니다. 태국어 통역을 할 수 있는 동지와 함께 주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을 다루며 많은 이주노동자를 만나긴 했지만, 활동과는 멀어져 있었습니다. 피해자를 만나고 사건을 해결하고 돈을 벌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활동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이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용덕 동지가 택배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습니다. ‘소금꽃나무’라는 작은 단체를 구상하고 있었기에 활동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는데, 이용덕 동지가 할지 말지 수십 번을 고민하는 바람에 맘고생을 했습니다. 전진의 사업 기풍인 건가요?^^ Q. 최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노동자 연대투쟁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A. 부당업무 지시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김경숙 동지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2014년인가 지역본부 있을 때 김경숙 동지의 해고 대리를 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됐습니다. 의뢰인과 대리인의 입장으로 만났지만, 나이도 같고, 같은 여성이었기에 동질감이 앞섰습니다. 기본적으로 너무 올곧은 품성을 가진 동지입니다. 복직 후 활동을 오랫동안 쉬었다가 최근 후배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다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강도, 인력 부족, 직장 내 널리 퍼져 있는 성추행·성희롱을 바꿔내야 후배 노동자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으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었지만, 비정규직으로 남은청소, 식당, 경비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기아차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사건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미달 사건이었는데 미달된 금액의 일정 금액을 받는 조건으로 신고사건을 취하했습니다. 기아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법조차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로 시작된 이 투쟁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을 깨울 수 있는 지렛대가 되길 바랍니다. Q.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알게 된 계기와 전진에 바라는 점을 얘기해 주십시오. A. 이용덕 동지를 통해 전진을 알게 됐습니다. 현장과 끊임없이 결합하려는 모습이 돋보입니다.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세워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년연장, 관세전쟁 등 중요한 쟁점을 다루는 내부 토론도 꾸준히 하면서 조직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입니다. 저는 전진이 한국 사회 가장 왼쪽에 있는 정치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무궁무진합니다. 이 세력을 성장시켜야만, 노동자들이 극우나 개량주의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 자본주의 변혁을 위해 단결할 수 있습니다. 원칙을 잃지 않고 더 많은 노동자와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단결은 사회 변혁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더 많은 고민, 더 많은 실천을 기대합니다. 9호 뉴스레터 02페이지 ◀◀◀클릭하시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리박스쿨 협력’ 극우기독교단체, 서울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에 지원1. ‘리박스쿨 협력’ 극우기독교단체, 서울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에 지원 서울시가 실시한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6곳을 통합 위탁할 운영단체 공모에, “동성애는 비정상”이라 주장하며 ‘리박스쿨’과 협력한 극우기독교단체 ‘넥스트클럽’이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단체는 2023년 대전 청소년성문화센터에 이어 세종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위탁기관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당시 해당 단체에 대해 “청소년을 위한 종교 단체로 보이나 동성애 반대, 성소수자 혐오(차별), 혼전 순결 강조, 차별금지법 및 학생인권법 반대 등 정치색이 진한 편향적 단체”라는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더 심각한 건 서울시의 지침이다. 공모 문서에는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 것, ‘연애’를 ‘이성교제’로,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로 바꿀 것이 명시돼 있다. 이는 단어의 겉포장을 바꿔 청소년 눈앞에서 젠더차별을 정상화하는 시도이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다. 서울시는 이번 공모를 통해 청소년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받고, 안전하게 배우고 토론할 권리를 침해하며 청소년 교육의 방향 자체를 후퇴시키고 있다. 청소년이 겪는 다양한 성과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은 시대의 요구다. 이러한 퇴행적 흐름은 포괄적 성교육의 필요성을 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1212484.html 2. 고용노동부, ‘성평등’ 외면한 41개 기업 명단 공개 고용노동부가 여성 고용률이 미진한데도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개선 노력을 하지 않은 41개 기업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명단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3년 연속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 AA)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공공기관과 상시 직원 500인 이상 민간기업 등 2,768개사 가운데 여성 고용률 또는 관리자 비율이 산업별, 규모별 평균의 70%에 못 미치고, 이행 촉구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은 곳이 공개 대상이다. 명단이 공표된 사업장은 조달청 우수조달물품 지정 심사 시 감점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올해는 민간기업 40개 사, 공공기관 1개 사 등 41개 소가 이름을 올렸다. 규모별로 보면 1,000인 미만이 35개 사(85.37%)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1,000인 이상은 6개 사였다. 업종별로는 사업지원서비스업이 9개 사(22%)로 가장 많았고, 육상운송 및 수상운송 관련업, 전자산업, 중공업 등이 각 4개 사(9.8%)로 뒤를 이었다. 정부는 여성 고용 촉진 정책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AA 제도를 운영해왔다. 그 결과 여성 고용률은 2006년 30.77%에서 2024년 38.49%로, 여성 관리자 비율은 10.22%에서 22.47%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구조적 성차별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897 3. 실패한 서울시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공공돌봄이 해법 지난해 9월 저출생 및 경력단절 문제의 대안으로 도입된 정부와 서울시의 외국인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 제도는 한국인 부모의 양육 부담을 줄여줄 저출생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됐지만 돌봄 노동 시장이 형성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문제 제기 창구마저 가로막힌 상황에서 모호한 업무 범위, 사측과의 소통 부재, 불안정한 체류권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코리안 드림’을 찾아 온 이주노동자들 몫으로 돌아갔다. 이 같은 문제를 예견하고도 대책에 소홀했던 점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2023년 7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공청회를 열었을 때 여성·노동계는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착취가 발생하는데도 개인이 거부할 수 없는 구조는 ‘현대판 노예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취지였다. 인권 단체들은 관리 업체를 통해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외부에 표출될 수 있는 특성상 알려지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욱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체류권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돌봄 노동이 공공서비스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같은 공공기관이 이주노동자와 돌봄 서비스를 결합한 사업을 맡는 것이 한 대안이다. 이미애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민간 업체가 이주노동과 가사 노동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노동자가 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거나 공적 서비스 안에서 돌봄 노동자를 매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조 기사> https://www.sedaily.com/NewsView/2GWHVF6KPY https://www.sedaily.com/NewsView/2GWHVNMX26 4. 14번째 급식 노동자 사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국가 차원 대책 마련” 촉구 지난 7월 31일, 경기도 평택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급식실 노동자 A씨가 숨졌다. A씨는 1998년부터 20여 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 뒤 정년퇴직했다. 이후 다시 급식실로 복귀해 대체인력으로 근무하던 중 지난 2023년 전국 단위로 진행된 전수조사에서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제대로 된 환기시설조차 없는 급식실에서 일했던 것과 질병 간 상관관계가 인정돼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2년간 항암치료를 이어오던 A씨는 뇌까지 전이된 암세포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A씨는 학교 급식 노동자로서는 전국에서는 14번째, 경기도교육청 관할 학교에서는 6번째 산재 사망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이하 경기지부)는 8월 6일, 급식 노동자 폐암 산재 사망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급식실 환경 및 배치기준 개선과 폐암 산재 노동자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기지부에 따르면, 2021년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업재해가 승인된 이후 산재 승인 사례는 올해 6월 기준 175건이다. 기자회견에서 경기지부는 “이는 10년 이상 급식 노동자로 근무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수치”라며 “A씨의 사례처럼 퇴직 후 발병, 악화되는 사례도 있을 것이고, 경력 10년 미만 노동자의 사례도 있을 것이며, 영양사 등 직접 조리를 하지는 않지만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사례도 있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또한 경기지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에 ‘조리흄’ 포함 △급식 노동자 1인당 식수인원 저감을 위한 적정 인력 충원 △경기도교육청의 자율형 선택 급식 사업과 학교 급식실 외주화 시도 철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사과와 경기도교육청 차원의 추모기간 운영 등을 제시했다. 경기지부는 6일, 기자회견을 마친 후 경기도교육청 신청사 본관 앞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공식적으로 교육청과 협의를 거쳐 본관 앞에 분향소를 설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분향소는 오는 8월 13일까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참조 기사>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4887206642264696&mediaCodeNo=257&OutLnkChk=Y 5. 네팔 퀴어퍼레이드, 미국 지원 중단에도 권리와 연대 외쳐 지난 8월 10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수백여 명이 모인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이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HIV 검진과 치료 지원 등의 예산지원이 중단된 후에 열린 첫 퀴어퍼레이드였다. 이날은 전통적으로 고인을 기리는 연례 행사일이나, 20여 년 전부터 성소수자의 권리와 연대를 위한 퍼레이드 개최일이 되었다.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한 게이 인권운동가 부미카 슈레스타는 “우리는 성소수자로서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기념한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동료를 추모했다. 미국 국제개발처의 지원 중단 후 네팔에 있던 사무소와 진료소는 문을 닫았다. HIV 예방, 상담, 치료 등 필수적인 서비스가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우리는 낙담하지 않는다. 대체 자원을 찾아 다시 시작할 희망이 있다”라고 전했다. 성소수자 공동체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마야 코 파히찬과 블루 다이아몬드 소사이어티(BDS)가 주최한 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은 성소수자의 평등한 권리, 정치적 대표성, 그리고 복지를 요구하는 피켓, 무지개 플래카드와 풍선 등을 들고 도심 곳곳을 누볐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자긍심, 연대, 권리를 소리 높여 외쳤다. <참조 기사> https://apnews.com/article/nepal-lgbtq-gay-rights-pride-rally-usaid-55ccb5dbbd8990a505d6cec480224163 https://www.etvbharat.com/en/!international/nepal-lgbtq-community-observes-traditional-gaijatra-festival-enn25081003581 6. 국제철강노조 여성위원회, 직장 내 평등 쟁취! 미국철강노조(United Steelworkers, USW)의 한 지부인 로컬 2918(Local 2918)이 개최한 작은 대화가 실제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 중심에는 국제철강노조 여성위원회(Women of Steel, WOS)가 있었다. 정밀 제조 전문 기업인 IMT Precision에서는 여성 위생용품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 왔다. 이를 들은 새로 선출된 여성위원회 의장 사만다 캠벨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 조합원들과 논의하고, 7월 3일 노사 교섭 자리에서 세부 사항을 요구했다. 불과 2주 후,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직장 내 평등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8월 11일부터 IMT Precision 내 모든 여성용·공용 화장실에 새 비치함과 무료 위생용품이 제공된다. 캠벨은 “이 변화는 편안함과 존엄성, 그리고 월경에 대한 낙인을 끝내는 문제”라며, 생리대 무상 제공이 직장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캠벨 의장은 이번 조치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목소리를 낼 용기를 주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이자 인권 문제이다. …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모두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존엄성과 포용, 그리고 목소리가 반영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USW 6구역 국장 케본 스튜어트는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만들고, 이를 실현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6구역 여성위원회 코디네이터 애니타 브라이언도 “그들의 행동은 직장 여성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반에 기준을 세웠다”라고 밝혔다. USW는 인권, 차세대, 산업 안전, 보건, 정치 행동, 성소수자 권익 등 다양한 위원회 활동을 통해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usw.ca/local-2918-women-of-steel-lead-a-win-for-workplace-equity/ 7. 방글라데시 플랫폼 여성 노동자, 기본 보호·권리도 보장받지 못해 지난 7월 31일, 방글라데시에서 세미나 ‘플랫폼 여성 노동자의 불안정성: 방글라데시 현황과 과제’가 데이터센스-아이소셜(iSocial) 주최로 열렸다. 세미나 내용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플랫폼 여성 노동자들은 가사도우미, 보육, 미용 등 비공식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은 법적 보호와 기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차별과 괴롭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미나에 참가한 아이소셜 연구원 사드만 라만은 발표에서 “여성은 플랫폼 일자리에서도 사회에 뿌리 깊은 성차별을 그대로 겪는다”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기본적인 안전 교육만 제공하며, 보안 책임을 온전히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형식적인 고충 처리 채널이 있긴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괴롭힘이나 학대 사실을 신고하기를 꺼린다. 명확한 법적 틀이 없다는 점도 실질적인 구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라만은 자신이 인터뷰한 “베이비시터 살마는 문지방 매트를 닦으라는 지시를 받았고, 전문 미용사 라베야는 고객 욕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꾸중을 들었다”라며 “이러한 사례는 여성 비공식 노동자가 겪는 은밀하지만 지속적인 모욕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많은 여성이 플랫폼을 통해 사실상 풀타임으로 일하지만, 유급 병가, 출산휴가, 의료 접근 등 정규직은 보장받는 기본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세미나에 참석한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은 정의와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 부문에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재분류해 법적 보호와 복지 제공 ▲전통적인 ‘여성 일’에 국한되지 않는 고용기회 확대 ▲공정임금·존엄한 근로조건·사회보장을 보장하는 강력한 정책체계 구축 등을 촉구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bsnews.net/bangladesh/women-platform-workers-struggling-without-basic-protections-rights-experts-1201636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정세집담회] 세계적인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편집자 주: 아래 글은 7월 25일(금) 진행된 '[정세집담회] 세계적인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극우 정권이 세계를 휘젓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을 틀어쥔 트럼프 2기 정권은 야만적인 이민자 단속, 노골적인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무법 무도한 관세 전쟁과 이란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권은 보건·교육·과학 등 공공부문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과 민영화를 자행하고 있다. 물론 극우세력은 단번에 파시즘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극우 정권에 대한 환멸은 노동자당 룰라의 재집권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실패는 이재명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이든 민주당 정권에 대한 환멸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밀레이 정권을 가능하게 했던 것 역시 키르치네르주의에 대한 환멸이었다. 윤석열 국힘 정권이 문재인 민주당 정권에 대한 환멸 덕분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극우 세력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이 서로에 대한 환멸을 토대로 정권을 주고받고 있다. 극우 세력은 파시즘의 공포를 안기지만 그렇게 진화하기에는 아직 대중동원 능력이 부족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인간의 얼굴을 앞세우지만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중시킬 뿐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는 단순히 제자리를 맴돌지 않는다. 극우세력이 파시즘을 향해 성장해 가는 추세 또한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극우 정권에 맞서서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또한 ‘민주’ 정권에 맞서서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세계적인 상황을 종합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맞선 투쟁을 되돌아보고 이재명 정권에 맞선 투쟁의 방향을 모색한다. :root{ --sj-red:#c81d25; --sj-border:#e5e7eb; --sj-soft:#fafafa; } /* ───────── 기본 테이블 설정 ───────── */ table{ width:100%; border-collapse:collapse; table-layout:auto !important; /* 내용 기반 자동 너비 */ margin:0 auto !important; /* 표 자체 가운데 */ border:0 !important; /* 사이트 기본 보더 무력화 */ font-size:inherit !important; /* 본문 폰트 크기 상속 */ line-height:inherit !important; /* 본문 줄간격 상속 */ } colgroup col{ width:auto !important; } th[width], td[width]{ width:auto !important; } /* ───────── 셀 공통 ───────── */ th, td{ border:1px solid var(--sj-border,#e5e7eb); padding:10px; text-align:center !important; vertical-align:middle !important; word-break:keep-all; font-size:inherit !important; line-height:inherit !important; } th *, td *{ text-align:center !important; margin-left:auto !important; margin-right:auto !important; font-size:inherit !important; line-height:inherit !important; } td p{ margin:0; } td a{ color:inherit !important; text-decoration:inherit; } /* ───────── 1행 = 캡션 대체 ───────── */ tbody > tr:first-of-type > td{ border:0 !important; background:transparent !important; padding:12px 0 14px !important; font-weight:700 !important; color:var(--sj-red,#c81d25) !important; } tbody > tr:first-of-type > td *{ color:var(--sj-red,#c81d25) !important; } /* ───────── 2행 = 헤더 대체 ───────── */ tbody > tr:nth-of-type(2) > td{ background:var(--sj-red,#c81d25) !important; color:#fff !important; font-weight:700 !important; border-top:1px solid var(--sj-border,#e5e7eb) !important; } tbody > tr:nth-of-type(2) > td *{ color:#fff !important; } /* ───────── 본문 줄무늬 ───────── */ tbody > tr:nth-of-type(n+3):nth-of-type(even) > td{ background:var(--sj-soft,#fafafa); } /* ───────── 모바일 최적화 ───────── */ @media (max-width:480px){ /* 표 안 폰트 크기 살짝 축소 (본문 대비 92%) */ table, table th, table td, table th *, table td * { font-size:0.92em !important; line-height:inherit !important; } th, td{ padding:6px 6px !important; white-space:normal !important; overflow-wrap:anywhere; } } 지금 이 순간에도 극우 정권이 세계를 휘젓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을 틀어쥔 트럼프 2기 정권은 야만적인 이민자 단속, 노골적인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무법 무도한 관세 전쟁과 이란 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권은 보건·교육·과학 등 공공부문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과 민영화를 자행하고 있다. 물론 극우 세력은 단번에 파시즘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 극우 정권에 대한 환멸은 노동자당 룰라의 재집권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실패는 이재명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이든 민주당 정권에 대한 환멸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밀레이 정권을 가능하게 했던 것 역시 키르치네르주의에 대한 환멸이었다. 윤석열 국힘 정권이 문재인 민주당 정권에 대한 환멸 덕분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정권 변화> 중도우파 우파 중도우파 극우파 오바마 (민주당) 2009~2017 트럼프 (공화당) 2017~2021 바이든 (민주당) 2021~2025 트럼프 (공화당) 2025~2029 <아르헨티나의 정권 변화> 중도좌파 중도좌파 우파 중도좌파 극우파 키르치네르(남) (정의당) 2003~2007 키르치네르(여) (정의당) 2007~2015 마크리 (공화당) 2015~2019 페르난데스 (정의당) 2019~2023 밀레이 (자유지상당) 2023~2027 <브라질의 정권 변화> 중도좌파 중도좌파 우파 극우파 중도좌파 룰라 (노동자당) 2003~2010 후세프 (노동자당) 2011~2016 테메르 (민주운동당) 2016~2018 보우소나루 (사회자유당) 2019~2022 룰라 (노동자당) 2023~2026 <한국의 정권 변화> 우파 우파 중도우파 극우파 중도우파 이명박 (한나라당) 2008~2013 박근혜 (새누리당) 2013~2016 문재인 (민주당) 2017~2022 윤석열 (국민의힘) 2022~2024 이재명 (민주당) 2025~2030 최근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극우 세력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이 서로에 대한 환멸을 토대로 정권을 주고받고 있다. 극우 세력은 파시즘의 공포를 안기지만 그렇게 진화하기에는 아직 대중동원 능력이 부족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인간의 얼굴을 앞세우지만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중시킬 뿐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는 단순히 제자리를 맴돌지 않는다. 극우 세력이 파시즘을 향해 성장해 가는 추세 또한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극우 정권에 맞서서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또한 ‘민주’ 정권에 맞서서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세계적인 상황을 종합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맞선 투쟁을 되돌아보고 이재명 정권에 맞선 투쟁의 방향을 모색해 보자. 1) 부르주아 민주주의 오늘날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경향 속에서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이 정권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대응방향을 올바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극우·파시즘을 그 개념적 정의에서부터 역사적 맥락까지 정확히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다. 개념적으로 극우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부분적인 부정이라면, 파시즘은 전면적인 부정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위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정치형태로서, 자본가계급에게 실질적인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보장하되 외형상 사회구성원 전반에게 민주적 권리를 부여하는 정치형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는 보편적 참정권(보통선거권), 민주적 기본권(사상·표현·결사·집회의 자유), 노동3권(노동조합·교섭·파업), 사회적 기본권(적정노동·적정임금·산업안전·사회보험) 등을 들 수 있다. 2)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기본 정치형태가 아니다 흔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기본 정치형태로 인식되고 그렇게 주장된다. 그러한 인식과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존재해 왔고,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와 그 정치형태에 대한 중대한 오해다. 자본주의 역사와 현실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 정치형태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출발하지도 않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17~18세기, 영국·미국·프랑스 등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공화정의 형태로 자본주의 정치체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정치형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성인 남성 인구의 10%도 안 되는 자산가들(자본가+지주)만이 투표권을 갖는 부르주아 공화주의였다. 유럽과 북미에서 시작된 자본주의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지구를 뒤덮는 체제가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수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지역을 식민지·반식민지로 지배했다. 식민지·반식민지 자본주의에 적용된 정치형태 역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제국주의 권력의 직·간접 통치는 피억압 인민에게 민주적 권리를 박탈하는 다양한 유형의 전제적·권위주의적 정치형태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국의 보통선거권 도입년도를 살펴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구성요소라고 할 보통선거권조차 대부분의 국가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형태로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성별 보통선거권 도입년도 <성인 남성 보통선거권 도입년도> <성인 여성 보통선거권 도입년도> 그리스 1844 뉴질랜드 1893 (피선거권1919) 프랑스 1848 (군인1945) 호주 1902 덴마크 1849 핀란드 1906 아르헨티나 1853 노르웨이 1913 미국 1856 (흑인1965) 덴마크 1915 스페인 1869 (단절1939~75) 러시아 1917 독일 1871 네덜란드 1917 뉴질랜드 1879 헝가리 1918 칠레 1888 (문맹1970) 폴란드 1918 브라질 1891 독일 1919 노르웨이 1898 스웨덴 1919 호주 1901 (원주민1965) 미국 1920 핀란드 1906 캐나다 1920 이란 1906 아일랜드 1923 스웨덴 1909 영국 1928 이탈리아 1912 스리랑카 1931 러시아 1917 브라질 1932 네덜란드 1917 스페인 1933 (단절1939~75) 멕시코 1917 태국 1933 폴란드 1918 필리핀 1937 헝가리 1918 레바논 1943 아일랜드 1918 프랑스 1944 영국 1918 이탈리아 1945 루마니아 1918 일본 1945 캐나다 1920 (원주민1960) 한국 1948 일본 1925 루마니아 1948 스리랑카 1931 칠레 1949 태국 1933 인도 1950 필리핀 1935 그리스 1952 레바논 1943 아르헨티나 1952 중국 1947 중국 1953 한국 1948 멕시코 1953 인도 1950 인도네시아 1955 파키스탄 1951 파키스탄 1956 인도네시아 1955 말레이시아 1957 말레이시아 1956 이란 1963 쿠웨이트 1962 포르투갈 1974 포르투갈 1974 페루 1979 페루 1979 미얀마 1990 미얀마 1990 남아공 1994 남아공 1994 쿠웨이트 2005 사우디 2005 부탄 2008 부탄 2008 사우디 2015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다수적 정치형태가 아니다. 한 국제연구기관이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현황 2024 (Global Democracy Index 2024)>에 따르면, 세계 167개국 가운데 ‘온전한 민주주의’는 25개국(인구비중 6.6%), ‘결함 있는 민주주의’는 46개국(인구비중 38.4%)이다. 둘을 합쳐도 71개국(국가비중 42.5%, 인구비중 45.0%)에 불과하다. :root{ --sj-red:#c81d25; --sj-border:#e5e7eb; --sj-soft:#fafafa; --sj-ink:#111827; --sj-muted:#6b7280; } /* 공통 타이틀 */ .gd-title{ text-align:center; color:var(--sj-red); font-weight:800; font-size:1.35em; margin:14px 0 4px; } .gd-subtitle{ text-align:center; color:var(--sj-muted); font-size:.95em; margin:0 0 14px; } /* 이미지 카드 */ .gd-card{ border:1px solid var(--sj-border); border-radius:12px; overflow:hidden; background:#fff; box-shadow:0 4px 12px rgba(17,24,39,.06); margin:0 0 16px; } .gd-card img{display:block;width:100%;height:auto} .gd-cap{ text-align:right; font-size:.85em; color:var(--sj-muted); padding:8px 10px; border-top:1px solid var(--sj-border); } /* 테이블(컴팩트 모드: 모바일도 표 형태 유지) */ .table-basic{ width:100%; border-collapse:collapse; table-layout:fixed; color:var(--sj-ink); font-size:16px; line-height:1.45; } .table-basic caption{ caption-side:top; text-align:center; font-weight:700; font-size:1.15em; color:var(--sj-red); padding:8px 0 10px; } .table-basic th,.table-basic td{ border:1px solid var(--sj-border); padding:10px; text-align:center; vertical-align:middle; word-break:keep-all; } .table-basic td{word-break:break-word} .table-basic thead th{ background:var(--sj-red); color:#fff; font-weight:700; } .table-basic tbody tr:nth-child(even) td{background:var(--sj-soft)} /* 모바일 컴팩트 */ @media (max-width:480px){ .gd-title{font-size:clamp(16px,4.4vw,20px)} .gd-subtitle{font-size:clamp(12px,3.6vw,14px)} .table-basic{font-size:clamp(12px,3.6vw,15px);line-height:1.35} .table-basic th,.table-basic td{padding:clamp(6px,1.8vw,10px)} .table-basic caption{font-size:clamp(14px,4.2vw,18px)} .table-basic colgroup col:nth-child(1){width:40%} .table-basic colgroup col:nth-child(2){width:20%} .table-basic colgroup col:nth-child(3){width:20%} .table-basic colgroup col:nth-child(4){width:20%} } 세계 민주주의의 현황 2024 (Global Democracy Index 2024) (1-3: 권위주의, 4-5: 혼성 체제, 6-7: 결함 있는 민주주의, 8-9: 온전한 민주주의) 분류별 국가 수&비중 국가 수 국가 수 비중 인구 수 비중 온전한 민주주의 25 15.0% 6.6% 결함 있는 민주주의 46 27.5% 38.4% 혼성 체제 36 21.6% 15.7% 권위주의 60 35.9% 39.2%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의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중국이 미국 주도 세계화 질서에 진입해 산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정치체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의 산업화가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자신들이 심각하게 오판했음을 깨달아야 했고, 미·중 패권대결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3)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투쟁의 성과물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왜 자본주의의 기본 정치형태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에게 최선의 정치질서는 자본가들이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전횡할 수 있는 전제적 또는 과두지배적 정치형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기업에서 자본가들이 배타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것을 보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 영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도입한다는 것, 즉 사회구성원 전반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하지 않다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왜 어떻게 도입되었을까? 노동자계급의 엄청난 저항과 투쟁 때문이었다. 자본가계급이 왕과 귀족의 봉건제 정치질서를 타도할 때 주장했던 ‘자유와 평등’을 진정으로 실현하라고,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에게도 자유와 평등을 달라고 줄기차게 투쟁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여명기인 17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계급은 보통선거권, 노동조합 결성권과 파업권, 흑인노예 해방, 8시간 노동제, 여성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투쟁을 벌였다. 총파업과 봉기 수준의 투쟁도 수없이 많았다. 그 결과물이 보통선거권 도입에서부터 시작된 부르주아 민주주의였다. 4)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보장한다 그런데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확고히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위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정치형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회의 대다수인 노동자·민중에게 보통선거권을 비롯한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사회의 극소수에 불과한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확고히 보장할 수 있을까? 첫째, 자본가계급은 지배계급으로서 압도적인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갖고 있으며, 이를 언론·학교·종교 등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가계급은 군대·경찰·사법·행정 등 폭력적 국가기구들에 대한 통제권을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인적 네트워크, 관료적 재생산 체계 등을 통해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 선거로는 자본주의 국가기구 가운데 매우 제한된 부분만을 바꿀 수 있으며, 자본가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거대한 관료집단이 국가기구의 대부분을 주민에 의해 선출되거나 통제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넷째,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제도와 자본가권력의 수호를 명시적·암묵적으로 전제하며, 만일 주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이것을 위협할 경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 폭력적 국가기구 모두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고 심지어 전복하기 위해 합법성을 개의치 않고 전면전에 나서기 때문이다. 다섯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지역 단위 선거제도는 일반적으로 작업장을 토대로 형성되는 노동자계급의 힘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대중은 지역 단위 공간에서는 원자화되는 경향이 있고, 결국 부르주아 정치인들 가운데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일개 시민으로 전락한다. 5)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혁명이 실패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멘셰비키와 1918~19년 독일혁명에서 사회민주당은 노동자혁명으로 전진하는 대신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멘셰비키는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별로 발전하지 않았기에 노동자혁명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보았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의 개량을 통해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의 멘셰비키는 실패했다. 소비에트가 볼셰비키 주도로 10월 노동자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소비에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권력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를 통해 작업장에 토대를 두면서도 세계혁명의 시야를 갖고 전국적으로 결집했다. 주로 농민으로 구성된 병사들 역시 소비에트를 통해 병영을 토대로 전국적으로 결집했다. 노동자들과 병사들은 소비에트의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하고 수시로 소환했다.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스스로 무장한 노동자들과 무기를 장악한 병사들은 장교들이 지배하던 반동적 군대를 노동자·민중의 군대로 대체했다. 소비에트 권력은 제국주의 전쟁을 중단시키고, 피억압 민족에게 민족자결권을 보장했으며,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했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해방을 위한 조치들을 도입했으며, 산업을 국유화하고 계획경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멘셰비키와 달리 독일 사회민주당은 성공했다. 노동자혁명을 추구하던 세력들과 각 지역의 레테(독일판 소비에트)들을 극우 자유군단과 손잡고 하나하나 분쇄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도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노동자혁명을 분쇄한 뒤, 사회민주당 주도로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됐다. 이 과정에서 원래 노동자혁명을 위한 투쟁 주체로서 노동자권력의 근간이 되고자 했던 노동자평의회(레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 노사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현장 협의기구로 변질되어 박제됐다. 6)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혁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는 노동자투쟁의 오랜 성과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 및 노동조합·노동자정당 같은 노동자조직의 형태로 응축돼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확고하게 보장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단 정립되고 나면, 대체로 자본가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유지를 선호한다.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권력 보장이라는 핵심 이익이 관철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제도적 개량이라는 환상을 잘 관리함으로써 노동자들을 혁명으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운동이 혁명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자본가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보수주의(우파)와 자유주의(중도우파)라는 두 축의 경쟁과 대립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수주의가 노골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한다면, 자유주의는 외견상 개량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한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끝없이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노동자·민중을 적당히 분할하고 그 쳇바퀴 속으로 노동자·민중의 희망과 전망을 가두는 것, 바로 그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혁명을 가로막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7) 파시즘은 사활적 위기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런데 1920년대 이탈리아와 1930년대 독일에서 자본주의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자본가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파시즘에 의존했다. 노동자혁명 직전까지 치달은 계급투쟁을 완전히 잠재우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억압을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사활적 위기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이 때 파시즘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속에 응축된 노동자투쟁의 성과들에 대한 전면 부정,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의 전면 박탈과 노동조합·노동자정당 등 모든 노동자조직에 대한 전면 파괴를 뜻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위기가 폭발적으로 전개되면서 노동자혁명을 가로막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능이 매우 취약해지자, 자본가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가차 없이 버리고 파시즘이라는 정반대의 정치형태를 채택하고서 노동자혁명의 가능성을 진압한 것이었다. 독일의 나치당과 같은 파시즘 정당은 통상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당과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나치당도 선거에 나섰고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지만, 나치당의 중심에는 선거조직이 아니라 수십만 명의 무장 돌격대가 있었다. 나치당의 주된 기반은 몰락하는 소부르주아 대중이었고, 무장 돌격대의 근간은 갈 곳 없는 퇴역군인들이었다. 나치당은 독일이 처한 위기의 근원으로 유태인과 노동자운동을 지목하고 무장 돌격대의 조직적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자 집회와 노동조합 회관 등을 의도적으로 공격했다. 자신들이야말로 노동자운동을 제압하고 독일 자본주의를 구원할 유일한 대안임을 자본가계급과 소부르주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자본가계급은 파시즘을 체제의 구원자로 선택했고, 생존의 희망을 찾아 절규하던 소부르주아 대중은 파시즘의 포로가 되어 노동자운동을 분쇄하는 망치로 활용되었다. 8)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북미에서는 전후호황을 토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진영 간의 세계제패를 향한 전면전이었는데, 독일·이탈리아·일본의 파시즘 진영이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더 중요한 결과는 어마어마한 대량파괴와 대량살상을 통해 자본주의를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탈출시켰다는 점이었다. 과잉축적·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누적된 모순을 상당 정도 털어낸 자본주의는 일시적으로 청년의 몸으로 돌아가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전후호황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를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는 한동안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이 시기를 거치며 노동자 정치세력 가운데 개량주의를 뜻하는 중도좌파와 자본가 정치세력 가운데 자유주의를 뜻하는 중도우파가 ‘복지국가 자본주의’라는 전망을 공유하며 매우 가까워졌다. 과거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의 개량을 통해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했던 개량주의 세력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사실상 ‘복지국가 자본주의’로 대체했고, 노동자 정치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국민적(=몰계급적) 정치세력으로 바꾸었다. 이 시기에 개량주의(중도좌파)가 자유주의(중도우파)로 거의 수렴하면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보수주의-자유주의’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본 쌍이 ‘보수주의-개량주의’로 대체되었다. 9) 제3세계의 군사파시즘은 친미질서 구축과 국가주도 자본축적을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걸친 이른바 제3세계의 상황은 유럽·북미 지역과 많이 달랐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식민지·반식민지였던 제3세계 나라들은 세계적인 민족해방 투쟁의 성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속속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오랜 착취와 수탈 때문에 대부분 극심한 저개발 상태에 갇혀 있었다. 식민지·반식민지 시절의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토착 지배자들로 대체됐을 뿐, 기존의 전제적·권위주의적 정치형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립된 나라는 매우 드물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국력이 쇠퇴한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제3세계 전반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력을 구축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재정렬한 자본주의 진영은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진영과 냉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수많은 제3세계 나라들에서 강고한 친미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친미반공 쿠데타를 사주했다. 때로는 토착 군부가 먼저 쿠데타에 나서 미국의 지원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등장한 제3세계의 군사정권들은 대체로 군사파시즘의 정치형태를 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서의 군사파시즘은 1930년대 고전적인 파시즘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면 부정, 즉 노동자권리의 박탈과 노동자운동의 말살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하지만 고전적인 파시즘이 자본주의를 사활적 위기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혁명적 노동자운동을 진압하고 착취·억압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것과 달리, 제3세계의 군사파시즘은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주도 자본축적을 위해 허약한 노동자운동조차 진압하며 착취·억압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또한 고전적인 파시즘이 몰락한 소부르주아 대중을 광적으로 동원하면서 무장 돌격대라는 물리력을 활용한 반면, 군사파시즘은 대중의 광적인 동원을 생략한 채 군부의 물리력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1961~1987년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한국의 군사파시즘은 이와 같은 제3세계 군사파시즘의 한 전형이었다. 10) 냉전 해체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 노동자·민중을 사회경제적으로 공격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면서, 유효수요를 확장하는 케인스주의 국가개입으로 경제위기를 예방·극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처참하게 깨졌다. 정리해고·비정규직화·임금삭감·복지축소 등으로 노동자를 공격하고 규제완화·감세·민영화 등으로 자본가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노골적으로 제고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자본주의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은 1970년대 칠레의 군사파시즘과 1980년대 영국·미국의 우파 정권이었다. 그런데 소련·동구의 몰락과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냉전이 해체되고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와 결합되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을 때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전면화한 것은 대부분 중도좌파·중도우파의 중도주의 정권들이었다. <1970~80년대 최초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실행한 정권들> 정권수반 소속정당 정권의 성격 칠레 피노체트 (1974~1990) 군부 군사파시즘 영국 대처 (1979~1990) 보수당 우파 미국 레이건 (1981~1989) 공화당 우파 <냉전해체 이후 1990~200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전면화한 정권들> 정권수반 소속정당 정권의 성격 미국 클린턴 (1993~2001) 민주당 중도우파 영국 블레어 (1997~2007) 노동당 중도좌파 프랑스 조스팽 (1997~2002) 사회당 중도좌파 독일 슈뢰더 (1998~2005) 사회민주당 중도좌파 칠레 타글레 (1994~2000) 에스코바르 (2000~2006) 기독민주당 무소속 (구 사회당) 중도우파 중도좌파 아르헨티나 메넴 (1989~1999) 데라루아 (1999~2001) 정의당 급진시민연합 중도우파 중도우파 브라질 카르도주 (1995~2002) 사회민주당 중도좌파 남아공 음베키 (1999~2008) ANC (공산당) 중도좌파 한국 김대중 (1998~2003) 민주당 중도우파 1990년대 중후반에 세계적으로 우파 정권과 군사파시즘이 퇴조하고 중도주의 정권이 대세가 된 것은 한편으로 냉전 해체라는 세계적인 지형변화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1970~80년대 우파 정권과 군사파시즘에 맞선 세계적인 저항과 투쟁들이 ‘절반의 승리’에 그친 까닭이었다. 그런데 민주화와 개량을 약속했던 중도주의 정권들은 (한국의 김대중 정권이 잘 보여주었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재건하거나 도입하긴 했지만 사회경제적 개량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정반대였다. 중도주의 정권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사회경제적으로 거칠게 공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후호황 시기와 달리 자본주의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고, 그런 자본주의를 구할 방법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애초에 자본가 정치세력이었던 중도우파(자유주의)는 물론이요, 노동자 정치세력에서 출발했던 중도좌파(개량주의) 또한 노동자·민중의 삶과 권리보다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을 우선시했다. 20세기 초 혁명 없이 개량의 축적을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는 노선에서 출발했던 개량주의(사회민주주의)는, 20세기 중반 전후호황 시기를 거치며 사회주의 대신 개량 그 자체(복지국가 자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는데,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집행하면서 이제 개량마저 포기하고 기존의 개량조차 박탈하는 ‘개량 없는 개량주의’가 되었다. 11) 신개량주의의 파산 이후 최근 10여 년 극우 세력의 세계적인 약진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모순을 폭발시켰다. 금융기관의 연쇄파산을 막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퍼부었다. 그 과정에서 폭증한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공공부문과 사회복지를 대폭 삭감하는 가혹한 긴축정책이 펼쳐졌다. 이미 정리해고·비정규직화·임금삭감·복지축소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상황에서, 또한 선진국에서는 세계화에 따른 공장이동으로 많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 위에 덧붙여진 가혹한 긴축정책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탄냈다.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고통은 변화를 향한 강력한 정치적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부터 긴축정책까지 책임이 있는 기존의 집권블록(중도좌파-중도우파-우파) 바깥에서 새로운 대안들이 생겨나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먼저 대중의 주목을 끈 것은 집권블록 왼쪽에서 등장한 이른바 신개량주의였다. 기존의 개량주의가 개량마저 포기하고 박탈하는 것에 맞서 개량이라는 목표를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독일의 좌파당, 프랑스의 불복프랑스,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스의 시리자, 영국 노동당의 코빈,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 등이 이 범주에 포괄될 수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연성 좌파정권 물결을 뜻하는 핑크타이드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개량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고학력 지식인층이라는 소부르주아 대중을 기반으로 했고, 자본주의 철폐를 추구하지 않는 등 이념적 지향도 매우 소심했다. 게다가 신개량주의의 대표격이던 그리스의 시리자가 2015년 집권한 뒤 이른바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의 압력에 굴복하여 긴축정책을 전면적으로 실행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신개량주의의 기세가 결정적으로 꺾였다. 이후 지난 10여 년 세계 정치를 뒤흔든 것은 집권블록의 오른쪽에서 등장한 극우 세력이었다. 2016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결정적인 신호였다.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의 핵심 구호는 보호주의와 이민자 추방이었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기후위기 부정, 부정선거 음모론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말도 안 되는 거짓 대안을 내밀면서도, 많은 나라에서 극우 세력은 삶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민중들 속에서 상당한 기반을 구축해 왔고,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 속에서도 기반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최근 유럽 주요국에서 약진하는 극우 정당들> 대표 극우정당 현황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형제들 (FdI) 22년 9월 총선 1위(26.0%)로 집권: 멜로니(총리) 스웨덴 민주당 (SD) 22년 9월 총선 2위(20.5%) 스페인 목소리 (Vox) 23년 7월 총선 3위(12.4%) 네덜란드 자유당 (PVV) 23년 11월 총선 1위(23.5%): 연정배제 프랑스 국민연합 (RN) 24년 6월 총선 1차 1위(33.2%), 2차 3위(의석) 독일 독일을 위한 대안 (AfD) 25년 2월 총선 2위(20.8%) 영국 개혁당 (Reform UK) 25년 6월 여론조사 1위(29%) 12)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권력 주고받기 오늘날의 극우 세력은 독일 나치당 같은 고전적인 파시즘 세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위기가 극심해진 결과물이며, 몰락하는 대중의 광적인 지지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극우 세력이 위기와 고통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는 대상은 외국, 이민자, 자유무역, 세계화, 국제기구, 좌파, 주류 언론, 기성 정치인 등 상당히 혼란스럽다. 나라마다 편차도 크다. 노동자운동을 핵심적으로 겨냥했던 고전적인 파시즘과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노동자운동이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점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날의 극우 세력은 고전적인 파시즘 세력과 달리 무장 돌격대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위기 전개가 국가의 총력 개입 때문에 1930년대 대공황과 달리 대불황이라는 슬로우모션의 형태를 띠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자본주의 위기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극심하지만 일거에 파산하는 대신 장기화된 불안정에 시달리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 갈 곳 없는 퇴역군인들이 별로 없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극우 세력이 아직까지는 노동자운동을 핵심적으로 겨냥하지 않는 점과도 연결돼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의 극우 세력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분적으로 부정하고 위협하는 지점까지는 나아가지만, 정권을 잡아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끝장내지 못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선거로 집권했다가 그 선거로 정권을 잃고 다시 그 선거로 정권을 되찾는다. 극우 정권이든, 그와 정권을 주고받는 중도좌파-중도우파-우파의 ‘민주’ 정권이든, 그들이 시행하는 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신자유주의와 긴축의 결합이 결국 그들 모두의 핵심 정책이다. 당연히 노동자·민중의 고통은 해결될 수 없고, 따라서 강한 환멸이 뒤따른다. 상대적으로 극우 정권에게는 파시즘 가능성에 대한 반발이 집중된다면, ‘민주’ 정권에게는 사회경제적 박탈에 대한 분노가 집중된다. 과거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 중도좌파-중도우파와 우파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며 정권을 주고받던 것과 매우 비슷하게 이제 중도좌파-중도우파-우파와 극우가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며 정권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쳇바퀴는 극우 세력에게 걸맞지 않다. 극우 세력은 ‘화끈한 해결’을 대중에게 약속했고, 실제로도 뭐가 됐든 화끈하게 저질러보려고 한다. 그러나 고전적인 파시즘 세력에게 ‘화끈한 해결’을 가능하게 했던 무장 돌격대가 오늘날의 극우 세력에게는 없다. 여기서 친위쿠데타를 통한 군사파시즘 도입이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친위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밑자락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활용하면서 말이다. 2021년 1월 미국의 의사당 폭동을 사주할 때 트럼프는 군부를 동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1월 브라질에서의 폭동은 쿠데타 요구 시위와 노골적으로 결합됐으며, 실제로 보우소나루-국방부장관-해군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쿠데타를 단행하려 했으나 육군총사령관의 거부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5년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친위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며, 특히 6월 로스엔젤레스의 이민자단속 항의시위에 주방위군과 해병대가 투입됐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친위쿠데타 자락 깔기로 인식했다. 2024년 한국에서 발생한 12·3 친위쿠데타도 이러한 세계적 맥락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2023년 브라질의 친위쿠데타도 2024년 한국의 친위쿠데타도 실패했다. 트럼프가 친위쿠데타에 나설 경우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2025년 6월 로스엔젤레스 군대 투입 직후 미국에서 500만 명이 반트럼프 시위에 나설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파시즘으로 진화할 방안을 찾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친위쿠데타가 여의치 않으면, 극우 세력은 무장 돌격대를 부활시킬 방법이라도 찾아내려 할 수 있다.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권력 주고받기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민주’ 정권이 노동자·민중의 고통을 강화하는 만큼 극우 세력을 더욱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파시즘으로 진화하려는 극우 세력의 시도가 점점 더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13)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주고받기,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깨부술 것인가 오늘날 극우 정권은 물론이요, 중도좌파-중도우파-우파의 ‘민주’ 정권 또한 노동자계급에게는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안에서의 소소한 개량조차 제시하지 않으며 기왕에 주어진 작은 개량마저 박탈한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로 대표되는 극심한 자본주의 위기 앞에서, 신자유주의(정리해고·비정규직화·임금삭감·복지축소)와 긴축(공공부문·사회복지 삭감)을 결합한 정책 말고는 자본주의를 지탱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본가계급에게는 규제완화·감세·민영화의 특혜와 주식·부동산·디지털화폐 같은 금융수탈 기회가 끝없이 제공된다. 노동자계급은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 모두에 맞서, 또는 극우 세력과 ‘민주’ 세력 모두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희망은 노동자운동이 계급투쟁의 주체로 강력하게 발전하는 것이고 이를 중심으로 억압·차별받는 민중들이 폭넓게 결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민중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확고하게 견지하지 못하고 중도좌파·중도우파에게 계속해서 헛된 희망을 보내고 있다. 최근 미국 민주당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조란 맘다니의 ‘돌풍’은 그런 헛된 희망이 전개되는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다. 조란 맘다니는 (많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진지하게 개량을 주장함으로써 청년 세대를 비롯한 노동자·민중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맘다니의 선거 캠페인은 그동안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괴한 한 주역이었던 민주당의 틀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조란 맘다니의 돌풍은 과거 샌더스 현상이 그러했듯이 민주당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환멸을 새로운 희망으로 갈아치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뒤 민주당 주류에 의해 체계적으로 진압당할 것이다. 그와 같은 돌풍은 민주당과 독립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역량을 바탕으로 전개될 때에만 진정한 태풍이 될 수 있다. 극우나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운동이 중도좌파[1]·중도우파의 자본가세력과 연대·연합하는 인민전선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다. 인민전선에 찬성하는 이들은 ‘더 많은 세력을 모을수록 극우·파시즘에 맞선 투쟁역량이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추구하는 방향과 자본가계급이 추구하는 방향은 정반대다. 노동자운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응축된 노동자의 권리와 조직을 방어하고 개량을 쟁취하며 자본주의 철폐로 전진하기 위해 극우·파시즘에 맞서 투쟁한다. 하지만 중도좌파·중도우파의 자본가세력은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사수하면서 자신들이 착취와 억압의 주역으로 올라서기 위해 극우·파시즘에 반대한다. 이렇게 정반대의 지향을 가진 세력이 인민전선에 함께 모이면 투쟁역량은 오히려 약화된다. 중도좌파·중도우파의 자본가세력을 두렵게 할 정도의 폭발적인 투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도록 노동자계급에게 족쇄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극우·파시즘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을 경우 이것을 제압할 유일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폭발적인 투쟁에서 나오는데, 인민전선은 그것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것이다. 아직 극우·파시즘이 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인민전선이 승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등장하는 (중도좌파·중도우파가 중심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인민전선 정부는 1930년대 중후반 프랑스에서 보여주었듯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추가로 공격함으로써 극우·파시즘이 더욱 강성해지고 결국 승리하도록 길을 닦게 된다. 2024년 프랑스의 불복프랑스(신개량주의)와 좌파들은 극우 국민전선의 약진에 맞서 집권시 신자유주의·긴축을 집행했던 사회당(중도좌파)과 신인민전선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극우 국민전선의 약진을 분쇄할 진정한 대안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을 건설하는 데서는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모든 자본가세력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확고하게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그것은 소중한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자본주의 역사는 혁명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생략하고 소소한 개량을 축적함으로써 사회주의를 건설하거나 아니면 복지국가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특히 오늘날의 극심한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등장한 신개량주의는 개량주의가 100년에 걸쳐 전개한 진화의 과정을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압축해서 되풀이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겠다는 혁명적 투쟁만이 이 극심한 위기의 시대에 개량을 지켜내고 조금이나마 개량을 확대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삶과 권리를 지켜낼 유일한 방법이다.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 모두에 맞서 혁명적 계급투쟁의 기세로 노동자운동을 강력하게 발전시키면서 이를 중심으로 억압·차별받는 민중들을 폭넓게 결집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투쟁하는 노동자·민중의 힘을 기반으로 노동자정부를 건설해 낼 길이 열릴 것이다. 노동자정부는 자본주의 질서에 정면 도전하면서 사회적 필요를 위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을 완전히 새롭게 조직해 나갈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권력을 아래로부터 구축하고 전면적인 민주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껍데기뿐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신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해 낼 것이다. 이토록 발전한 사회적 생산력이 수많은 노동자·민중의 끝없는 고통으로 귀결되게 하는 계급적 착취를 철폐하고 또한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일소함으로써 모두가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 위기가 극심해진 결과 극우 정권과 ‘민주’ 정권의 권력 주고받기가 통상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대체해 가고 있는 현 정세의 심각성[2]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총력전으로 임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 극우 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친위쿠데타를 시도하거나 무장 돌격대 부활을 획책할 경우 노동자운동은 전면전으로 맞서야 한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응축된 노동자의 권리와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그러한 방어 투쟁으로부터 획득한 힘을 갖고 개량을 쟁취하고 자본주의 철폐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다.[3]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극우 세력의 파시즘적 시도에 맞선 투쟁 속에서 노동자운동은 ‘민주’ 세력과 철저히 독립성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에 맞선 투쟁 과정을 반성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전반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노동자 정치세력 또한 ‘총파업으로 윤석열을 끝장내자’는 전면전의 기조를 일관되게 가져가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민주당과의 독립성 견지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한계와 오류를 짚어내면서 비판적 평가를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극우에 맞선 투쟁은 민주당을 이롭게 할 뿐’이라며 친위쿠데타에 맞선 투쟁을 폄하·기피했는데, 이것은 인민전선에 대한 정당한 경계를 반영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자운동의 사활이 걸린 투쟁을 회피했다는 점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당분간 이재명 정권에 맞선 투쟁이 한국 노동자운동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과거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집행하고 생존권을 공격한 김대중·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운동은 많은 한계와 오류를 노정했다. 그 결과 민주당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실망과 환멸이 민주당 정권을 집어삼킬 때 노동자운동은 그 대안이 되어 도약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당 정권의 침몰에 함께 휩쓸려 들어갔다. 다시 한 번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훨씬 더 강력해진 극우 정권의 등장을 보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을 임명하고, 투쟁사업장을 하나둘 정리해 가고 있는 이재명 정권은 머지않아 이른바 ‘사회적 대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조차 그에 연동할 수 있다. 약간의 떡고물을 건네는 대신 노동자 스스로 구조조정에 동의하라고 강력한 압력을 가할 것이다. 설령 ‘사회적 합의’로 묶어세우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최대한 혼란에 빠뜨리고 소심한 요구 속에 가두는 것이 이재명 정권의 목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결국 노동자운동에게 제기되는 핵심은 이것이다. 소심한 요구를 둘러싸고 샅바싸움을 하며 이재명 정권을 견인한다면서 그 부속품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전면적인 요구를 내걸고 이재명 정권에 맞선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극심한 자본주의 위기를 헤쳐 나갈 노동자·민중의 진정한 대안으로 부상할 것인가? --------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중도좌파(개량주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100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20세기 말 자본가 정치세력의 일부로 재편됐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같은 이념을 가진 개량주의 세력이 아직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음으로 인해 노동자 정치세력의 일부로 남아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범국민적(=몰계급적=소부르주아적) 정치세력으로 변질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2] 현 정세의 다른 측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대량학살,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스라엘·미국-이란 전쟁,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군비확장으로 표현되고 있는,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의 대규모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다. 사회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와 사회재생산 위기도 현 정세의 또 다른 측면이다. [3]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높게 솟구치는 상황에서 노동자투쟁의 목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제한하는 것은 노동자혁명을 가로막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 역량을 지켜내고 성장시켜 가는 과정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확산시켜 내기 위한 투쟁이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
[기고] 조선업 호황, 거제조선소 현장 풍경 - 구조조정과 착취 강화에 맞선 원하청 노동자의 연대가 절실하다조선업 호황이라는데 조선업계가 소위 ‘초호황’을 맞이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중국 조선업 세계시장 점유율은 72%에서 52%로 하락했고, 국내 조선업은 약 15% 수준에서 25.1%로 반등했다. 이러한 상승세에 힘입어 올 상반기에만 HD한국조선해양 약 1조 7,600억 원, 한화오션 약 6,300억 원, 삼성중공업 약 3,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업이 2030년까지 약 30%의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한화오션 현장에서 ‘초호황’을 체감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불황기보다 더한 위기감이 현장을 뒤덮고 있다. 과거 호황기에는 잔업·특근이 일상이었고, 한계 이상으로 설비를 가동했다. 그러나 한화그룹 체제에서 맞이한 이번 호황 국면에는 일감 부족으로 잔업·특근이 통제되고, 주·야간 교대가 필수적인 내업(조립) 공정조차 한시적 주간 근무로 축소했다. 이는 불황기에도 겪어보지 못한 기형적 현상이다. 물론 필자는 장시간 노동을 반대한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노동시간 조정이 아니라, 민영화 이후 이윤 극대화를 위한 구조조정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호황 속 구조조정, 노동강도 강화로 노동자를 쥐어짜는 한화오션 자본 2025년 3월 14일 한화오션이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화오션의 가동률은 거제조선소 100.4%, 한화해양공정(산동)유한공사 95.2%, 한화오션에코텍(구 삼우중공업) 95.4%로 나타났다. 또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월 당시 한화해양공정(산동)유한공사에 75억 원, 한화오션에코텍(구 삼우중공업)에 4,556억 원의 투자를 밝혔지만, 2024년 사업보고서에서는 산동유한공사 1,336억 원, 에코텍 540억 원으로 금액을 수정해 발표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로 미루어볼 때, 노조가 없고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공장에 생산물량을 집중배치하는 전략이 분명히 드러난다. 애초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목적은 조선이 아닌 방산에 있었다. 산업은행은 ‘방산과 조선 분리매각 불가’입장을 내세웠지만, 이는 사실상 한화로의 헐값 매각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당시 노동조합도, 한화가 조선을 인수하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사업장 축소·폐쇄는 시간문제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우려는 결국 현실로 드러났다. 2024년 7월 1일, 한화오션은 필자가 소속된 조립3팀 1Bay 동편을 비롯해 주요 사업장 전반을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필자의 사업장은 낮은 단가 탓에 하도급 입찰조차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이에 한화오션은 단가 인상이 아닌 공장 폐쇄를 선택했다. 조선업 호황 국면임에도, 핵심 라인 공장을 1년 넘게 방치하는 결정은 자본 관점에서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언제든지 조선업을 정리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도 거제조선소의 가동률이 100.4%1)에 달한다는 사실은, 한화오션이 노동강도 강화로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화오션은 과거 하루 9~10시간 노동으로 10의 생산량을 달성했으나, 현재 노동강도를 높여 하루 8시간 근무에 똑같은 생산량을 뽑아내며 노동자를 과로사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1) 여기서 계산된 가동률은 맨아워(작업공수) 기준으로, 실제로 투입한 작업공수를 계획한 작업공수로 나눈 값이다. ▲ 한화오션 조립3팀 1bay 동편 공장 (2024. 7. 1부터 현재까지 비워진 상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 조선업의 시스템상 내업(조립) 공정은 주·야간 교대근무가 필연적이다. 그런데 한화오션은 물량 부족을 이유로 일부 야간공정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그렇다면 노동강도가 낮아져야 정상이지만, 자본은 최소한의 인원을 남겨둔 채 사내 교육으로 배치 중이다. 참고로 이는 노동부가 지원하는 교육으로, 임금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 공정에서 빠진 인력을 노동부 지원금을 받는 사내교육으로 돌려, 인건비를 줄이고 보조금을 챙기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처럼 조선업 ‘초호황’ 이면에, 노동자들은 불황기보다 더 가혹한 현실에 놓여 있다. 단가 인상 대신 공장 폐쇄를 선택하는 한화자본이다. 하도급 단가 후려치기, 이주노동자 저임금 초과 착취, 정부 지원 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는 한편, 수주 물량을 중국 공장에 우선 배치하고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노동조합이 있는 거제조선소 비중을 줄이고 있다. 노동조합의 힘을 빼는 한화오션에 맞서 지금 투쟁해야 한다. 이는 조선업 불황기에 펼쳐질 극심한 노동탄압에 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 빼앗긴 하청노동자 상여금 550%를 되찾기 위한 연대투쟁에 나서자 조선업 호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거제조선소 현실은 공장 폐쇄, 단가 후려치기, 저임금 착취, 과로 강요로 점철돼 있다. 지금 이에 맞선 투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한화오션은 더욱 거칠게 노동자를 짓밟을 것이다.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필자는 자본이 불황을 이유로 삭감한 하청노동자 상여금 550% 원상회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하청노동자 550% 상여금 회복은 단지 과거 노동조건을 되찾는 문제가 아니며,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조선소를 바꾸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살기 위한 계급적 투쟁의 출발점이다. 언제까지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희생과 투쟁을 두고 볼 것인가? 필자도 정규직이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순히 잔업·특근 통제 문제만 투쟁 대상으로 삼다가는 다시 불황이 오면 투쟁 한번 못 한 채 일터에서 쫒겨날 가능성이 높다. 노조법 개정 흐름에 따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 등에 대해서도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만큼, 한화오션의 경영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과 함께 하청노동자들의 상여금 550%를 되찾기 위한 현장 연대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상급단체는 관련 투쟁지침을 내려야 한다. 이미 태풍이 불고 있다. 우리의 전망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자! -
[공동성명] 927기후정의행진,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행진할 것인가?일상이 된 기후위기에도 자본과 정부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외견상 기후정책 강화에도, 이재명 정부 기후정책은 자본의 이윤을 위한 산업정책의 부속품이자 그린워싱에 불과하다. 이재명 정부는 신공항 건설 강행과 핵발전 유지도 모자라, 신규 핵발전소 건설 입장을 내놓았다. 심지어 산업인프라 조성, 보조금 지급, 예타면제, 전문인력 양성까지 보장하는 반도체특별법으로, 공공재정을 반도체 대기업으로 이전하겠다는 의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디 이뿐인가. 지구적 전쟁 확대가 초래하는 기후부정의는 안중에도 없이, '방위산업의 날'까지 제정하며 무기수출 확대로 피묻은 이윤을 쌓자고 선동한다. 이재명 정부에 맞선 기후정의운동의 태도는, 단호한 투쟁이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다시 위성정당 문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에서부터 위성정당 참여 단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수많은 기후부정의와 그린워싱이 벌어졌고, 위성정당 창당은 그 부정의를 덮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확대, 탈원전 공약 파기, 가덕도·새만금 신공항 추진, PPA등 전력산업 민영화 가속, 기업 민원창구에 불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구성 등등. 공적자금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한국형 그린뉴딜'을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이 발표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 본질을 여실히 드러냈다. 민주당과의 위성정당 창당은 이 모든 부정의에 눈감는 행위였다. 바로 그랬기에,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창당한 기본소득당을 54개 단체 중 33개 단체 찬성으로 제척하며 위성정당과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세웠다. 정당하고 의미있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행진 이후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있었던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단법' 국회 표결은 민주당과의 연대가 기후정의운동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며 제척의 정당성을 재확인시켰다. 진보당은 법안에 찬성했고, 기본소득당은 기권했다. 해당 표결은 '생태계 파괴와 신공항 건설 중단'이라는 923 기후정의행진의 핵심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폐기하며 기후정의행진 기조를 공문구로 만들었다. 2024년, 위성정당 사태는 더 크게 반복되었다. 그러나 2024년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에서 "보수양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 역시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수정안은 찬성 23표, 반대 28표, 기권 19표로 부결되었다. 2023년 결정 취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위성정당 문제가 더 심각해졌음에도, 2024년 결정은 위성정당을 불가항력적 문제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이는 '민주당과의 연대'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지역 현장을 지켜온 많은 운동을 그 내부로부터 흔들었다. 2023년과 2024년 결정의 차이, 그 결정적 요소는 진보당의 규모와 영향력이었다. 기후정의운동에 더 큰 타격을 입힌 정당에 대한 제어가, 해당 단위의 규모와 영향력을 근거로 불가능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 가입 정당이 2020년 총선에 이어 2024년 다시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민주당 입장을 따라 신공항사업에 찬성하거나 기권해도,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재발방지 입장을 표명하기는커녕 다시 민주당과 연대해도 기후정의행진조직위가 이를 가입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면,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행진하는가? 이런 논리에 따르면 행진의 목적은 행진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묻는다.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행진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의 기후부정의 앞에, 기후정의운동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2025년 927 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는 기후부정의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을 결의하며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만든 정당을 제척해야 한다. 이것은 연대를 위한, 기후정의행진이 기후정의운동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기후파국으로 치닫는 자본과 정부에 맞서, 기후정의운동의 단호한 투쟁을 확대하자. 2025년 8월 6일 강서양천녹색당 · 강원녹색당 ·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 고려대 민주학생기념사업회 · 교육노동자현장실천 · 노동당 · 녹색당 · 녹색정치의시간을만들어가는녹색당원들 · 단국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학생모임 새벽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 서울녹색당 ·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 수원녹색당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이윤보다인간을 · 이화여대 생활도서관 · 자치와자급 · 전환 · 정의당 · 진보3.0 · 청년녹색당 ·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학생공동행동 · 풍천리양수발전소건설반대위원회 · 학생사회주의자연대 · 항꾸네협동조합 -
{기고}대만 노동자들이 10년 투쟁 끝에 얻은 ‘4+1일’ 공휴일 확대, 노동자의 국제연대로 장시간 노동 끝장내자대만 노동절 시위 "시대착오적 정권은 노동권을 무시한다" 사진: CNA 5월 9일, 대만 입법원은 새로운 공휴일과 노동절의 적용 범위에 공공부문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이어진 10년의 투쟁 끝에 대만의 공휴일이 기존보다 ‘4+1일’ 늘어난 것이다. △신정 전날 △공자 탄신일 겸 스승의 날인 9월 28일 △광복절 겸 구닝터우 전투(Battle of Guningtou) 기념일인 10월 25일 △헌법절 12월 25일로 4일이 새로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기존에는 민간에만 적용되었던 국제 노동절인 5월 1일이 올해부터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도 확대 적용되어 사실상 1일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1인당 연간 공휴일 수가 기존 12일에서 16일로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안은 원주민 부족들이 전통적인 의식에 따라 3일을 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의 통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초과노동을 하고서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실질 급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사와 공무원들은 노동절에도 쉬지 못했다. 특히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도 쉴 수 없었다. 전국교사노조연맹(NFTU), 전국교육연합연맹(NFEU) 등은 이러한 불평등에 맞서 수년간 시민단체들과 함께 싸워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 2월,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과거에 감축되었던 공휴일을 복원하고자 입법안을 제안했다. 같은 해 5월 1일 노동절 시위에서 노동권 단체들은 주4일제,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공휴일 연장을 포함한 7개의 주요 요구안을 내걸었다. 대만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맞선 삼십여 년간의 투쟁이 만든 하나의 성과이다. 대만 노동운동은 독립노조를 형성하고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이며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2014년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파괴적인 전망을 인지한 청년학생들이 ‘해바라기 운동’으로 알려진 노학연대를 실현했다. 해바라기 운동은 2014년 3월에 약 24일간 이어졌던 입법원 점거 시위이다. 당시 여당인 국민당이 중국과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맞서 학생과 시민단체가 입법원을 점거한 것이다. 이 시위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 운동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과 저임금 문제 등을 언급하고 총파업을 촉구하는 등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광장 정치로 나아가고자 했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최저임금이 10년 동안 동일하게 유지되었을 정도로 노동운동이 위축되어 있던 상황에서 학생운동은 2014년에 해바라기 운동으로 절정을 맞이했고, 노학연대로써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부의 ‘공휴일 7일 축소 및 40시간 근무제’ 도입 계획안에 맞선 공휴일 감축 반대 시위 및 주 40시간제 개혁 투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5월, 이주노동자들은 계약기간 상한선 폐지와 함께 5월 1일 노동절의 공휴일 적용 범위 전면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5월 9일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법안을 공동 발의하였고, 57:50의 표결로 통과된 것이다. 다만 여당인 민진당(DPP) 의원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공휴일 확대는 단지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0년간 이어져 온 노동자 투쟁과 이에 연대해 온 민중의 여론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공공부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도 공휴일 및 유급휴가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등, 더 많은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쟁취한 것이다. 이를 위해 10년 동안 대만의 노동자와 시민은 여러 차례의 토론회, 지지 기자회견, 서명운동, 행진, 시위를 이어 왔다. 대만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입법안을 대만 노동자들이 간신히 얻은 승리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가장 약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국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공휴일을 둘러싼 노동운동 역사가 있다. 한국의 공휴일은 오랫동안 노동법상 휴일이 아니었다. 사업장에 따라 공휴일은 유급휴일이 되기도 하고, 노동일이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부가 내놓은 표준취업규칙(2008년)을 기반으로, 사용자들은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거나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등 편법적인 작업을 벌였다. 2023년에 와서야 5인 이상 사업장에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이 의무화되었으나(‘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단계적 민간 적용),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은 휴업수당 없이 무급으로 쉬거나 가산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근무해 왔다. 이렇듯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의 위험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있었다. 2014년 민주노총의 ‘노동절 유급휴일 권리찾기 운동’, 2017년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운동’ 등을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 투쟁에도, 2025년인 지금까지도 한국 공휴일에는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당장 250만명 가량의 5인 미만 사업장 임금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공휴일에도 법적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만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한국보다 평균임금이 낮고, 노동운동 역시 한국보다 취약하며, 점점 길어지는 노동시간과 높아지는 노동강도에 더불어 급여는 3년 연속 줄어 왔다. 또한 평균적으로 8일마다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등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자본가들이 실적평가제나 책임제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고 초과근무를 요구한다. 노동시간이 가장 높은 제조업에서, 노동자들은 매달 18.1시간 초과 근무한다. 이 외에도 의료산업과 배달 산업 등에서도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초과노동 문제는 일자리 감소에 따라 실직을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야근을 감내하며 극심해졌다. 이는 7.6%에 불과한 대만 노동조합 조직률과 직결되어 있다. 실업의 공포로 노동자를 규율하며 초과노동으로 이윤을 짜내는 대만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거둔 이번 승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만 노동자들의 승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의미가 깊다. 한국 자본주의는 각 산업 노동시간 연장으로 이윤축적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추진과정에서 이미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인력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2025년 3월 서일준 등 20인이 발의한 ‘조선산업 지원 특별법안’ 역시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노동을 당사자 합의로 가능케하자고 명시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늘 ‘대만 노동자들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산업의 생존을 위해 더 오래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산업경쟁력 확대를 위해 수당도 없이 일한다’며 자국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를 억누른다. 노동시간 연장과 착취 강화 시도를 노동자의 국제연대로 끊어내야 한다. 심화하는 위기, 착취 강화로 연명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자. 참조 Labor activists protest plan to reduce holidays (15.09.15, Taipei Times) Labor groups protest to push shorter work hours (15.01.07, Taipei Times) Taiwan: 7 years since the Sunflower Movement (21.04.07, In Defence of Marxism) Groups to demand four-day workweek on May 1 (25.04.23, Taipei Times) Migrant worker groups urge lifting of employment length restrictions (25.05.18, Focus Taiwan) 工人鬥陣十年 國假終於增加 (25.05.09, 公民行動影音紀錄資料庫(Civilmedia@TW)) Taiwan passes new law adding 4 additional national holidays (25.05.09, Focus Taiwan) 壓垮台灣勞工的高工時與血汗過勞 (25.04.30, International Socialist Alternative Taiwan) Four new national holidays approved by legislature (25.05.09, Taipei Times) Taiwanese Workers Have Shown Us How to Gain Ground in the Neoliberal Era (22.06.12, Jacobin)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기아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 부당 지시와 성희롱에 맞서 투쟁1. 기아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 부당 지시와 성희롱에 맞서 투쟁 기아 화성공장 청소 노동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 열악해지는 노동환경, 부당한 업무지시, 성희롱 등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청소업체 보광산업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청소 범위를 확대해 친환경차 신공장의 산업폐기물까지 치우도록 지시했다. 이를 거부한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기아자동차의 비정규직 차별 구조에 맞서 작지만, 기아차 원하청 노동자를 모아내고 사업장을 넘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청소 노동자들은 지난 5월부터 피켓을 들고 공장 내 선전전을 벌였다. 점차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출퇴근시간 공장 문 앞에서 기아차 원하청 노동자들과 단체와 개인 등 연대자들이 모여 연대선전전을 진행했다. 또 투쟁 과정에서 그동안 묻어뒀던 직장 내 성희롱 문제도 제기했다. 노동자들은 부당업무 지시 완전 철회와 그 책임자이며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업체 소장 해임, 성희롱·성추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업체 사장은 “회사를 건들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 주겠다”라고 협박하며 노동자들이 화장실 가는 횟수를 점검하고, 노무사를 동원한 감시성 업무강도 측정 실사를 엄포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들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던 원청 협력지원센터는 최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 중지를 통보했다. 원하청 사측은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투쟁이 되살아날까 노심초사해 분열조장과 탄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청소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청결한 건물과 청결한 화장실을 만드는 일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지 못했다. 원청과 하청은 정육점의 고기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긴다. 청소 노동자가 최하위등급이라며 임금을 책정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기아차의 주인이다.” 투쟁 주체 중 한 사람인 김경숙 노동자는 이렇게 말하며 오늘도 당당하게 싸우고 있다. 다음 연대선전전은 8월 6일이다. [참가 신청과 후원을 원하는 동지는 아래 내용 참조] 8월 6일(수) 14시 50분 3차 연대선전전 참가신청: https://forms.gle/5GDEkFjoZu335kny8 후원| 국민(ㄱㄱㅁ) 811401-04-245970 <참조 기사>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80111513596065 2. 양육비 ‘찔끔’ 주는 꼼수 없앤다 … 정부 제도개편 착수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한부모가정에 국가가 우선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한 이후 이를 비양육자 부모로부터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지난달부터 시행 중이다. 일부 비양육자가 양육비 지급 회피의 수단으로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보고되자 관계부처가 제도개편에 착수했다. 여성가족부와 양육비이행관리원은 ‘꼼수 소액 이행’을 막기 위해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준 개선에 착수한다고 지난 7월 28일 밝혔다. 현재는 양육자가 중위소득 150% 이하이면서 선지급 신청일이 속한 달 직전 연속 3개월 또는 3회 이상 양육비를 비양육자로부터 전혀 받지 못한 경우에만 양육비 선지급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부 양육비 채무자가 소액의 양육비만 지급하며 이행 책임을 회피하는 ‘꼼수 이행’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같은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양육자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일부만 받았거나, 비정기적으로 받은 경우에도 양육비 선지급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칠 계획이다. 개선 방안은 현장 의견을 수렴한 뒤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528 3. 신고해도 살해당한 여성들, “여성폭력 종합대책 당장 마련해야” 여성단체들 한목소리 최근 몇 달간, 여성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은 7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여성 폭력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여단체들은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검찰과 법원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유치·감호(잠정조치 4호, 임시조치 5호)와 구속에 너무나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각지대에 놓인 데이트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과, 수없이 실패해 온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지 않는 국회’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며, ‘아무런 대책도 발표하지 않은 정부까지 총체적인 책임 방기 사태’라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 처벌법과 강간죄를 개정해 가해자 처벌에 수사기관의 편견이 최소화하도록 하고, 모든 여성 폭력 사건의 가해자를 격리하는 의무 체포 주의를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참조 기사> https://www.ildaro.com/10240 4. 다문화가족 배우자 10명 중 1명 가정폭력 피해…이혼 뒤엔 절반 이상 ‘양육비 못 받아’ 다문화가족 10명 가운데 1명이 지난 1년간 배우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31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가구의 82%가 결혼이민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지난 1년간 배우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이 9.8%에 이르렀고 그중 31.1%만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는 1만 6,014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는 2009년 결혼이민자 약 15만 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방식으로 처음 실시되었다. 이후 2012년부터는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되어 3년 주기로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가정폭력 조사 항목이 포함된 것은 2024년 조사가 처음이다. 조사 결과 양육비 수령 실태도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혼 또는 별거한 결혼이민자 중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다’라고 응답한 경우는 전체의 51.4%에 달했다.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수령한다는 응답은 23.8%에 그쳤으며, 자녀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비양육자는 36.0%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이 양육비 마련을 위해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한부모가정에서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40.2%에 불과했고, 미지급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은 비율도 8.6%에 그쳤다.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을 이용한 비율도 15.6% 수준이었다. 이들은 한국에 정착한 이민자이자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로부터 차별을 겪고 있다. 지난해 외국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였다. 이들을 향한 차별은 직장(74.6%), 거리·동네(53.5%) 순서로 일어났고, 공공기관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27.5%에 달했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이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냥 참는다”라고 답했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686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8482193&code=61121111&cp=nv 5. 일본 극우정당 산세이토, 참의원 급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후퇴 우려 지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로 상징되는 반이민·반다문화·반성소수자를 내건 극우정당인 산세이토가 1석에서 14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이로써 집권 자유민주당·공명당 연립은 다수당 지위를 상실했고, 일본의 다양성 정치 보장과 성소수자 인권 증진이 후퇴될 우려를 낳고 있다. 산세이토는 선거 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공개적으로 폄훼하는 발언과 캠페인을 이어갔다. 기미야 소헤이 대표는 “우리에게는 성소수자가 필요없다. 남자는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등 전통 가족 가치와 출산율 증가를 내세우며 혼인 평등과 다양성 교육을 반대하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또한 복지축소, 이민 규제 강화, 학교 내 다양성 교육 금지, 지자체 인권조례 폐지, 다양성 홍보 예산 삭감 등 성소수자를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평등 후퇴 정책을 주창하고 있다. 모두의 결혼 일본(Marriage for All Japan) 가토 다케하루 국장은 “극우정당 산세이토 지지층이 퍼뜨린 허위정보와 혐오 발언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G7 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나라이며,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없다. 2023년 제정된 성소수자 이해증진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성소수자 인권은 단순한 소수자의 권리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한다. 성소수자권리입법을 위한 일본연합(Japan Alliance for LGBT Legislation)의 아키라 니시야마 활동가는 “극우세력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 인권·민주주의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협력으로 가짜뉴스와 혐오에 맞서 싸우자”라고 강조했다. <참조 기사> https://www.washingtonblade.com/2025/07/28/anti-lgbtq-party-gains-power-in-japanese-diet/ https://www.yna.co.kr/view/AKR20250719064000073 6.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권에 맞선 대규모 저항 확산 사진설명: 한 여성의 이마에 “Milei out”이라고 적혀 있다. AP Photo/Gustavo Garello 아르헨티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정권에 맞선 대규모 저항이 확산하고 있다. 밀레이의 극우 정책과 반대 의견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자,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한 전국에서 은퇴자, 노조, 페미니스트, 학생, LGBTQI+ 활동가들이 연대해 저항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은퇴자 행진에는 수천 명이 참가하며, 6월 18일에는 최대 백만 명이 마요 광장과 인근 도로를 가득 메웠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수백 명의 체포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대는 공공 서비스 축소와 정치적 탄압을 규탄하며 품위 있는 은퇴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교육, 의료, 사회, 문화 등 핵심 공공 부문 예산을 대폭 삭감하며 “정치적 계급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는 빈곤 확대와 구매력 약화로 이어졌다. 밀레이의 수사는 여성, 언론인, 야당, 협동조합 등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며 증오를 정상화했다. 2024년 5월 바라카스에서 레즈비언 여성 4명이 방화로 사망한 사건은 정부가 조장한 혐오 분위기의 참상을 보여줬다. 이후 올해 2월 1일 대규모 반파시스트 시위를 시작으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6월 3일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 10주년 등을 맞아 전국적인 저항이 거세졌다. 여성들은 밀레이 정부의 주요 공격 대상이자 저항의 중심에 서 있다. 사회학자 빅토리아 테소리에로는 “정부는 반페미니즘적이며, 성평등을 위한 법률과 제도적 성과를 철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칸델라리아 보토 역시 “밀레이의 긴축 정책은 사실상 정치적 프로젝트로, 공공 서비스 질과 양을 축소하고 금융 엘리트에게만 혜택을 준다”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폭력과 증오 표현이 확산하는 가운데, 페미니스트 운동은 수년간 쌓아온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국적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카타마르카, 코르도바, 리오네그로, 차코 등지에서도 노조, 원주민 단체, 지역 총회가 참여한 정기 시위와 도로 봉쇄가 이어지며, 공공 서비스와 기본권 수호를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인권 운동가 엠페라트리즈 모네나 마르케스는 “정부가 우리를 짐으로 여기지만, 존엄한 삶과 은퇴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긴축과 억압에 맞서 서로를 돌보며 단결하고,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에 저항하며 더 정의로운 미래를 향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ruthdig.com/articles/argentinian-feminists-retirees-unions-unite-against-milei/ 7. 인도 델리에서 임산부를 폭염으로부터 지키는 지역 사회보건활동가들 인도의 델리는 세계에서 가장 더운 수도 중 하나다. 올해도 더위로 인해 여러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특히 임산부들의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온이 43.9℃까지 치솟은 어느 날 아침.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쿠마리 씨는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는 도중 실신했다. 유산이 걱정될 정도의 고열 속에서 쓰러진 것이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여성 지역 보건활동가(공인된 사회보건활동가, ASHA 노동자)인 칼야니 카란 씨가 있었다. ASHA 노동자는 인도 전역에서 백만 명 이상 활동 중인 여성 의료 인력이다. 이들은 주로 농촌이나 도시 외곽 지역에서 산모·영아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가정 방문 진료 및 긴급 처치를 수행한다. 칼야니 씨는 쿠마리 씨의 전해질과 수분이 빠르게 손실되고 있어 땀을 통해 체온 조절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스카프에 물을 묻혀 쿠마리 씨의 얼굴을 닦고, 손부채로 부채질을 해 의식을 되찾게 했다. 이후 휴대하고 있던 경구수분보충용액(ORS)을 먹인 뒤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다. 국제환경개발연구소(IIED)의 보고서에 따르면, 극심한 폭염은 인도인 대부분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델리는 35℃ 이상의 날이 4,222일로, 전 세계 대도시 중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인도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더라도 인간에게 '안전한 온도'를 초과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임산부는 특히 폭염에 취약하다. 고온 노출은 고혈압, 자간전증, 심장 질환, 임신성 당뇨와 같은 위험을 높이며, 유산, 사산, 저체중 출산률도 증가시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3℃ 오를 경우, 임산부에게 ‘가장 심각한 결과’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조 기사>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250728-health-workers-protecting-pregnant-women-from-dangerous-heat-in-delhi-india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사회주의 기초학습#1] 사회주의란 무엇인가[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는 착취와 차별, 억압을 일소하고,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상이었다. 인간해방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려는 이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도,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계급투쟁의 나침반이다. 그러나 오늘날 진짜 사회주의 사상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역사의 굴절로 인해, 스스로가 '사회주의'라 주장하는 가짜 사회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반혁명으로 노동자국가를 파괴하고,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된 소련을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 칭한 스탈린주의자들이 있다. 오늘날 '중국특색 사회주의' '우리식 사회주의' 등 다양한 스탈린주의의 변종은 억압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포장하면서,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자기해방 사상에서 계급지배를 정당화하는 수사적 도구로 바꿔버렸다. 다른 한편에는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고 노동자혁명을 파괴한 개량주의자들이 있다. 오늘날 전통적 개량주의자들은 이미 지배계급의 일부가 되었고, 새로운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내부로부터 갉아먹는 의회주의와 관료주의를 '사회주의'와 뒤섞어버린다. 자본주의는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다시 불러왔다. 위기와 전쟁에 맞선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있지만, 계급투쟁의 사상인 사회주의에 대한 정돈된 지식을 얻기는 너무나 어렵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엎기 위해,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의 혼란을 걷어내고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진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함께 배우고, 함께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주의 기초학습' 시리즈를 연재한다. 인간의 생존 방식과 계급의 발생 2019년 인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야생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와 사람을 공격했다. 그러자 주민 십수 명이 대나무 장대를 들고 쫓아가 호랑이를 잡아 죽였다. 총이 아니라 고작 막대기로 말이다. 물론 이는 인도에서 현행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다. 법을 떠나 맹수가 인간을 공격한 까닭은 인간이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뉴스는 사람이라는 생물 종(種)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근력으로 따지면 사람은 범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한 존재지만, 집단적 협력을 통해 다른 종(種)을 사냥하며 생존경쟁에서 우위에 선 것이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어느 강연에서 인류 문명의 진정한 증거는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골’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퇴골은 골반과 무릎 사이의 넙다리뼈로, 대퇴골이 부러지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즉 치유된 대퇴골은 누군가 부상을 입은 사람을 돌보고 협력했다는 증거다. 인류 역사는 바로 이 집단적 협력으로부터 태동한다. 인류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정한 사회조직을 형성해야 했다. 인류 최초의 사회조직은 혈족이다. 인류학, 고고학의 연구 성과들은 혈족에 기반한 사회가 평등한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인류가 유랑 생활 대신 정주 생활을 시작하고, 인구 증가로 사회집단의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평등한 사회체제는 한동안 지속됐다. 튀르키예의 차탈회위크는 중앙아나톨리아 지역에 있는 신석기시대 초기 도시 유적이다. 대략 기원전 7500년에서 기원전 5700년 사이에 존재했다. 인구 규모는 5,000~7,000명, 전성기에는 1만 명까지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사회적 혹은 경제적 서열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개별적 부의 축적, 사유재산의 증거도 없으며, 유물에도 성별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잉여생산물이 출현하고, 분배해야 하는 부의 규모가 증대하면서 인류 사회에는 계급이 발생하고 여성 차별이 시작된다. 잉여생산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직접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타인의 노동에 의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에 따르면 계급의 발생과 여성 차별의 시작은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경로만을 보인 것은 아니다. 여성 억압의 기원에 대해 누군가는 정주 생활에서 아이를 더 많이 출산하는 집단의 생존 확률이 높았으므로 여성을 생산 업무에서 점차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랑생활을 하던 수렵‧채집 경제의 시대에는 여성이 한 명의 유아기 아이만 양육하도록 출산을 억제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다른 학자는 주요 농업 도구가 쟁기로 대체되고 농사에 관개시설을 활용하는 등 근력이 요구되는 중농업이 발전하면서 남성이 주도적 지위를 담당하게 되었다고 본다. 어쨌건 계급과 여성 차별의 발생을 동시대의 것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이다. 처음에는 평등한 관계 위에 공동체의 집단노동을 이끌었던 지혜로운 지도자는, 이제 잉여생산물을 통제하고 세습하는 특권 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폴리네시아 [1] 사회를 톺아보며 인간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발전 형태를 보이는지를 설명한다. 폴리네시아 지역은 사회공동체 간에 교류가 드물고, 현격할 정도로 자연환경의 차이를 보이는 지역이다. 이에 따라 제국에서부터 단순한 촌락에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회상을 보인다. 사회 간 발달 수준의 차이는 식량, 가축의 생산, 기후 등 자연환경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제래드 다이아몬드는 추장사회의 추장이 지배계급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추장사회에서 가장 뚜렷한 경제적 특징은 무리나 부족처럼 오로지 호혜적인 교환에만 의존하는 형태(A가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언젠가 B도 자신에게 가치가 비슷한 선물을 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B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 간단한 예를 들자면 어떤 추장이 수확기에 그 추장사회의 모든 농경민에게서 밀을 거둬들인 후 모두에게 잔치를 베풀어 빵을 먹이거나 그 밀을 저장해두었다가 수확기와 수확기 사이에 조금씩 다시 나눠주는 식이다. 평민들에게서 받은 물품 중 많은 양을 그들에게 재분배하지 않고 추장의 계보나 기능인들이 차지하고 소비한다면 그 같은 재분배는 공물이 되며 이것은 추장사회에서 처음 나타난 조세의 선행 형태였다. 추장들은 평민에게서 물품만 거둔 것이 아니라 공공 토목공사를 위한 노동력도 징발했다. … 폴리네시아의 작은 섬들에서는 추장의 지위가 세습적이라는 점 이외에는 추장사회가 실질적으로 대인이 있는 부족사회와 비슷했다. 추장의 오두막집도 다른 오두막집과 똑같았고 관료나 공공 토목공사도 없었다. 추장은 거둬들인 물품 대부분을 평민들에게 재분배했고 토지는 공동체 전체가 관리했다. 그러나 폴리네시아에서도 가장 큰 섬(하와이, 타히티, 퉁가 등)에서는 장식품만 보아도 추장을 금방 식별할 수 있었고 공공 토목공사는 노동력을 대량 동원해 진행되었다. 공물은 대부분 추장이 차지했고 토지도 모두 추장이 관리했다.” 이처럼 잉여생산물의 규모가 커질수록, 과거 공동체의 재산을 관리할 뿐이던 추장은 이제 잉여생산물을 통제하고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는 지배계급으로 변신하게 된다. 국가의 출현과 평등을 향한 투쟁 2~300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선사(先史) 시대와 역사(歷史) 시대로 구분하는 기준점은 국가의 등장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5,500여 년 전에, 중국과 안데스에서 2,000여 년 전에 최초의 국가가 출현했다. 잉여생산물과 공동체의 집단노동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은 이제 훨씬 복잡한 사회조직인 국가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유지해 나간다.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생산물을 빼앗아 생활하는 정치를 ‘도둑정치’라 불렀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네 가지 공통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첫째, 대중을 무장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한다. 둘째, 거둬들인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곳에 재분배한다. 셋째,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을 억제함으로써 치안을 확보한다. 넷째, 도둑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지배 질서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간 국가 체계에선 점차 기존의 평등주의적 사회관계가 소멸해 간다. 물론 초기 국가에선 아직도 평등했던 부족사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옛날 부여의 습속에 가뭄이 들어 농사가 흉년이 들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리고, 혹 왕을 바꾸거나 죽이기도 하였다.”(『三國志』)는 기록은 과거 평등했던 농업공동체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왕이란 공동체의 농업경제를 지휘하는 지도자이므로, 지도력의 부족으로 농사에 실패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될수록 이제 계급 질서는 확고해진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고대광실(高大廣室)에서 비단옷을 입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지만, 누군가는 오두막에서 태어나 헐벗은 채 주린 배를 채우자면 쉬지 않고 중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고대의 철학이나 종교는 바로 이 계급적 격차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고대 국가로 자리 잡던 한반도의 삼국이 앞다퉈 불교를 수용한 이유가 이것이다. 불교는 현세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불평등한 이유를 전세의 업(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회(輪廻) 사상을 통해 피지배계급도 현세의 괴로움을 내세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배계급의 입맛에 맞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종교와 이데올로기로도 계급 적대의 적나라한 모순을 감출 수 없는 국면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민중들 속에서 지배계급에 맞서 평등을 주창하며 사회를 뒤엎으려 했던 시도는 수없이 반복되었다. 기원전 209년 진(秦)나라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은 “왕후장상영유종호(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외쳤다. 신성한 혈통을 들먹이며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려던 지배계급에 맞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던가?”라며 맞선 것이다. 1198년 고려에서 노비 반란을 주동했던 만적 또한 이 말을 그대로 반복했는데(“將相寧有種乎!”), 이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위 구호가 민중들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계급과 국가가 출현한 시기는 찰나에 불과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계급사회는 결코 인류의 본성이 아니었기에, 계급사회의 역사 내내 인류는 평등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끈질긴 노력을 보여왔다. 미륵신앙과 같은 종교적 형태, 정감록과 같은 주술적 형태로 평등사회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됐던 일이다. 이중혁명(산업혁명, 부르주아혁명)과 자본주의 역사 속 계급사회는 다양한 발전 형태를 취하게 된다. 우리가 이 학습 과정에서 다루는 계급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며, 우리가 주장하는 사회주의 역시 바로 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망이‧망소이, 만적, 동학농민군의 운동은 평등주의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운동을 사회주의 운동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로소 등장한 것이므로, 이제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했던 이 과정을 과감히 요약하자면 이른바 이중혁명이라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부르주아혁명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GDP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최초로 출현했다. 이것은 우연이 결합한 역설적 현상이다. 청나라는 1741년 약 1억 4,300만 명이던 인구가 1851년 약 4억 3,200만 명으로 세 배나 증가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다스렸던 강건성세(康乾盛世, 1661~1795년)가 이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구 증가는 역설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초래했는데, 생산과정에서 생산기술의 혁신보다는 노동력의 추가 투입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기술 발전과 혁신 없이 노동생산성이 정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17~18세기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 신대륙에서의 대규모 귀금속 유입 등이 불러온 상업의 거대한 발전, 토지 소유를 집중시키며 농민을 토지에서 쫓아냈던 인클로저 운동, 가내공업의 전국적 발전 등이 연달아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전근대 농업경제에서 근대 자본주의 경제로의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이해하는 것은 역사를 지극히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G. D. H. 콜이 지적했듯이 “산업혁명이란 오랜 경제발전 과정의 결과”를 말한다.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넓은 시장이 새로 생기고 임금노동력이 이용 가능해졌을 때) 필연적으로 위대한 기술의 발명”이 이어졌다. 증기기관, 철도 등 “수많은 위대한 발명은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는 생산이 유망해지자 많은 사람이 상품 생산량을 늘리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몰두했기에 탄생”한 것이었다.[3] 다른 한편, 자본주의가 굴러가자면 자유롭게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계급, 즉 노동자계급이 대규모로 존재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유롭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다. 하나는 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신분 질서로 묶인 노예나 농노와는 달리 자유롭게 자기 의사에 따라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동자계급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직접 생산자계급이던 농민층이 전화한 것인데, 이들이 노동자계급이 되자면 기존의 신분 질서가 타파되어야 했던 것이다. 민중을 봉건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역사적 대사건은 바로 18세기의 프랑스대혁명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본가계급은 봉건제의 지배계급인 대토지 소유자들의 지배 질서를 분쇄했고, 이들에게 속박돼 있던 민중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어진 일련의 부르주아혁명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은 민중의 지지를 이끌기 위해 자신들이 만들 세상은 천부인권, 자유와 평등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일 것이라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자본가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계의 실상은 그들의 약속과 달랐다. 그들이 얘기하던 인권의 핵심은 소유권이었으며, 자유와 평등은 철저하게 그들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란 것이 곧바로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갈리는 세상이건만 ‘기회의 평등’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고 떠들어대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중혁명 직후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삶에 대해선 수많은 사료가 남아있다. 노동자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던 악랄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계약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거리낌 없이 행해졌다. 지금도 말을 못 잇게 하는 대목은 참혹했던 아동노동의 실태다. 다음은 영국 의회에 제출됐던 공장감독관의 보고서다. “그들 공장주 가운데 일부는 12~15세의 소년 5명을 금요일 오전 6시부터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식사시간과 심야에 1시간의 수면시간만 주고 하나도 쉬게 하지 않은 채 일을 시켰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넝마 구덩이’라고불러도 좋을 만한 굴 속에서 휴식 없이 30시간의 노동을해야 했는데, 그곳은 양모 헝겊 조각을 해체하는 곳이어서 공기 중에 양모 보푸라기와 먼지 등이 가득차있기 때문에 성인 노동자라도 자신의 폐를 보호하기 위해서 늘 수건을 입에 대고 있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 자신들은 넓은 자비심으로 불쌍한 아이들에게 4시간의 수면을 허락했으나 아이들은 한사코 잠을 자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장감독관 보고서, 1860년 10월 31일 “9세 소년 윌리엄 우드는 “노동을 시작한 것이 7세 10개월부터였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에 “틀을 운반하는”(틀 속에 들어 있는 완성된 물건을 건조실까지 운반하고 빈 틀을 갖고 다시 돌아온다)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는 평일에는 매일 아침 6시에 와서 밤 9시쯤 일을 마친다. “나는 평일에는 매일 밤 9시까지 노동을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즈음 7, 8주 동안은 그랬습니다.” 이처럼 7세 어린이에게 15시간의 노동이 부여되고 있다!”— 아동노동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63년 “이 산업(성냥 제조업)의 노동자 절반은 13세 미만의 어린이와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이었다. … 1863년 화이트 위원이 심문한 증인 가운데 270명은 18세 미만이었고, 40명은 10세 미만이었으며, 10명은 겨우 8세, 그리고 5명은 겨우 6세였다. … 만일 단테가 이러한 공장들을 보았더라면, 그가 상상한 참혹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모습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동노동조사위원회 제1차 보고서, 1863년 자본주의 초기 공상적 사회주의의 조류들 노동자들이 비참한 노동조건에 신음하는 동안 자본가계급은 이를 외면한 채 대공업이 창출한 막대한 부를 독점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어린 시절 그저 재미있게 읽었을 『셜록 홈즈』 시리즈나 『80일 간의 세계일주』 같은 19세기 소설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한편에서 노동자들이 생명력을 소진하는 대가로, 부르주아 계급은 천연덕스럽게 근대 문명이 발전시킨 기술을 향유하며 인생을 만끽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했고 평등주의적 지향을 드러냈다. 자본주의의 끔찍한 불평등을 넘어서려는 운동을 통틀어 사회주의라 부를 수 있다. 엥겔스가 말했듯이 “현대 사회주의는 내용으로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유산자와 무산자, 임금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계급 대립을,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에서 지배적인 무정부 상태를 목도한 산물”[4]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 중 엥겔스가 높게 평가했던 사회주의자들은 프랑스의 생시몽, 푸리에, 영국의 오언이다. (푸리에는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 여성해방의 정도가 전반적 해방의 자연적 척도”라는 역사적인 명제를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였던 프랑스의 프루동 역시 초기 사회주의자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오언(Robert Owen)의 활동만 잠깐 소개하기로 하자. 오언은 1800년부터 1829년까지 뉴래너크 방적 공장을 통해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인물이다. 뉴래너크는 하루에 10.5시간밖에 노동하지 않았으며(동시대 방적 공장의 노동시간은 13~14시간이었다), 휴업 기간에도 임금 전액이 지불됐다. 오언은 2천 명 남짓한 뉴래너크 노동자들에게 집을 싼값으로 빌려줬고, 질병과 사고로 고생하는 이들에게는 의료혜택이 가도록 배려했다. 저축은행을 설립해 노동자들의 저금을 관리했으며, 생활용품을 공동으로 구입하여 노동자들에게 염가에 판매했다. 그럼에도 이 기업은 가치가 배 이상 증가하며 투자자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뉴래너크의 성공에 고무된 오언은 미국으로 건너가 자기 전 재산을 들여 ‘커뮤니티(Community)’라고 부른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했으나 이 실험은 처참하게 실패하며 막을 내린다. 오언의 이러한 시도는 전태일이 구상했던 모범업체 ‘태일피복’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전태일 열사는 “정당한 세금을 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 계통에서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하는 모범업체를 운영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언의 실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개별 자본가의 자선 계획만으로는 구원될 수 없는 체제다. 개별 자본가들은 서로 간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역사 속으로 도태되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오언류의 초기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미성숙한 발전과 미성숙한 계급 상황을 반영한 머릿속 개똥철학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들에겐 “사회적 활동 대신에 그들의 개인적 발명 활동이, 해방의 역사적 조건들 대신에 환상적 조건들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의 조직화 대신에 [그들에 의해] 특별히 고안된 사회조직”이 해결책이다. 따라서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정치적 행동, 특히 모든 혁명적 행동을 거부”한 채 “부르주아의 박애적 심성과 돈 주머니에 호소”할 뿐이다.[5]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불평등이,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격하고 여기에 주목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투쟁은 가혹한 탄압 앞에 패배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지금은 자본가들도 헌법으로 보장하는 노동3권이 자본주의 초기에는 모조리 불법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대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파업이 ‘되지도 않을 일에 쓸데없이 피를 흘리는 일’이라며 노동자들을 훈계하려 들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는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경제학자들과 사회주의자들(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들, 영국의 오웬주의자들)은 다음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것은 단결을 비난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 당신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다. 당신들의 임금은 언제나 요구된 일손들과 공급된 일손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들이 결국 단결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 당신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역시 노동자들일 것이며 고용주들은 항상 고용주들일 것이다.”[6]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달랐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낼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며, 투쟁을 통해 단련되는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힘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질문할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 수단이 전혀 무익하다는 것이 명약관화한 그러한 경우들에도 파업을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에 맞서서 그리고 이러한 임금 삭감의 필연성에 맞서서 저항해야만 하기 때문이며,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은 상황에 자신들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자신들에게, 인간들에게 맞추어져야 한다고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다.”[7]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 그리고 오늘 교육의 주제 그렇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러한 혁명적 사상은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일까? 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존의 초기 사회주의 사상을 ‘공상적 사회주의’로,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큼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를 넘어서려는 모든 운동을 가리키지만, 현재까지 정치적 실체를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회주의 운동이라면 그 역사적 연원은 오로지 위대한 사상가 마르크스에게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정립한 견해와 학설의 체계를 가리킨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가 19세기의 선진적인 3대 사상 조류를 계승하여 천재적으로 완성한 것이라 평가했다.[8] 이 3대 사상 조류란 독일 고전철학, 영국의 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철학 사상(세계관), 경제학(자본주의 경제 분석), 사회주의 정치 이론(노동자 계급투쟁의 정치)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가 진행하는 ‘세상을 변혁하는 사회주의 기초학습’ 12강은 위 세 영역을 짜임새 있게 살펴보게 된다. 먼저 오늘 1강에서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살펴본다. 곧이어 2강 ‘자본주의의 원리 파헤치기’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다루게 되며, 3강 ‘사회주의로 가는 길: 개량인가, 혁명인가?’은 사회주의 정치 이론을 다루게 된다. 이어지는 강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와 현실의 복잡한 정세를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는 과정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전략’, ‘한국노동자운동사 (1), (2)’, ‘사회주의 바로 알기: 중국,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 ‘기후위기와 민주적 계획경제’, ‘자본주의 역사 꿰뚫어보기 (1), (2)’, ‘오늘날 세계정세: 위기, 전쟁, 혁명의 시대’, ‘사회주의 정당의 기본 노선’이 그것이다. 이제 오늘의 주제에 집중해 보자. 마르크스의 철학과 세계관을 학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철학과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철학과 세계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진다. 계급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지배계급의 사상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 사상들”이기 때문이다. 즉 아직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은 이유는 피지배계급의 대다수가 지배계급의 사상을 자신들을 위한 사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 자본주의’라는 그릇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본을 위한 자유’가 자신들을 위한 자유라고 착각한다. 계급사회에서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사회의 지배적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기 때문이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제 마음대로 처분하는 계급은 이로써 동시에 정신적 생산수단도 제 마음대로 처분하며, 그 결과 정신적 생산수단이 박탈된 계급의 사상들은 이로써 동시에 대체로 지배계급에 종속”되기 마련이다.[9]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학습함으로써 주어진 현실에 대해 지배계급의 관점으로 오염된 그릇된 해석을 넘어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란 마르크스의 철학적 방법론을 계승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천재적 사상가였다 하여,[10] 마르크스의 언술 하나하나가 금과옥조로서 불가침의 권위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은 그의 방법론을 사용해 우리 시대에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분석하여 창의적으로 올바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마르크스의 개별적 주장 하나하나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혁명적 방법론을 계승하는 것이라던 루카치의 다음 주장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해 마르크스의 개별적 진술들 전부가 사실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것이 이론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비록 인정할 수는 없지만‒가정하더라도, 진지한 ‘정통적’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누구나 이 모든 새로운 성과들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고 마르크스의 개별적 주장 모두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정통성(Orthodoxie)을 한순간이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연구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이런저런 주장에 대한 ‘믿음’이나 어떤 ‘신성한’ 책의 해석을 뜻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에서의 정통성이란 오론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 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Sinn)에 따라서만 확장‧확대‧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천박화‧진부함‧절충주의로 귀착되어 왔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11]” 헤겔좌파 마르크스와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1818년에 태어났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정립한 시기는 1844년 무렵이다. 이전까지 마르크스는 헤겔 좌파에 속한 철학자였다. 마르크스는 1873년 집필된 『자본』 제1권 제2판의 후기에서 “독일의 식자층 사이에서 큰소리깨나 치는 돼먹지 않게 시건방지고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 헤겔을 마치 ‘죽은 개’처럼 다루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나는 공개적으로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천명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고의적으로 여러 곳에서 그의 고유한 표현방식들을 따라 사용”했다고 썼다. 이처럼 헤겔 철학은 마르크스 사상의 연원이므로, 그의 사상을 올곧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독일의 상황과 헤겔 철학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에야 독일이 내로라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지만, 19세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독일 자본주의는 영국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한참 뒤떨어진 후발 국가였다. 1848년 3월 독일혁명의 패배는 당시 독일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깃발을 내걸었던 3월 혁명의 목표는 봉건주의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자본주의 발전이 더딘 상태였다. 3월 혁명 전야를 묘사하면서 엥겔스는 “독일 부르주아지의 부와 결집도는 프랑스나 영국의 부르주아지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으며, “독일의 노동자 계급은 그 사회적, 정치적 발전으로 볼 때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 계급에 비해 엄청나게 뒤처진 상태”에 있었다고 평가했다.[12] 이런 상태에서 독일의 부르주아 계급은 한편으로는 반동적 봉건 세력과 맞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혁명이 완성될 경우 노동자계급이 주도권을 잡으리라 경계했다. 이쪽도 저쪽도 선택하지 못한 부르주아지의 갈팡질팡이 1848년 혁명의 패배를 낳았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844년 마르크스는 독일의 상태를 두고 “우리의 정치적 현재의 부정조차도 이미 현대 민족들의 역사적 헛간 속에서는 먼지투성이의 사실로서 발견된다”고 썼다. 남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후의 역사를 모색하는 마당에 독일은 아직 봉건 체제도 청산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못했던 탓에(정치적 비판의 자유가 제한돼 있으므로) 독일에서는 봉건 체제에 대한 비판이 철학적 투쟁의 형태로 전개된다. “선진 민족들의 경우에는 현대적 국가 상태와의 실천적 반목인 것이, 이 상태 자체가 부재한 독일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상태의 철학적 반영과의 비판적 반목이다.”[13] 당시 철학적 투쟁의 장(場)이 되었던 것은 프로이센 왕국에서 국가 철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헤겔 철학이다. 헤겔의 다음과 같은 명제는 헤겔 철학이 가장 보수적으로도, 가장 급진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모든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모든 것은 현실적이다.” 먼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므로, 현존하는 독일의 봉건 체제는 그 나름의 존립 근거와 합리성을 갖춘 게 된다. 정치적 보수주의의 근거인 셈이다. 헤겔 철학을 이렇게 해석했던 것이 헤겔 우파다. 반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으로 지양(止揚, Aufhebung)되어야 하므로, 헤겔 철학은 공화주의라는 근대 이성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는 급진 이념의 밑바탕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헤겔 좌파다. 엥겔스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이성적인 모든 것은, 비록 현존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과 아무리 모순되더라도 현실적인 것이 되기로 정해져 있다. … 헤겔 철학의 진정한 의미와 혁명적 성격은, 인간의 사유와 행위의 모든 성과가 궁극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확실히 끝장내버린 데 있다”[14]고 썼다. 독일에서의 철학 투쟁은 주요하게는 종교 비판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봉건 체제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종교였기 때문이다. 헤겔 좌파의 상당수는 종교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실천적 필요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의 유물론 사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 마르크스를 비롯한 헤겔 좌파에게 엄청난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저작이 출현한다. 1841년 포이에르바하가 쓴 『기독교의 본질』이 그것이다. 엥겔스는 “누구든 이 책의 해방 효과를 생각해 보려면 이 효과를 몸소 체험했어야 한다. 누구나 다 열광했다. 우리는 모든 한순간에 포이에르바하주의자가 되었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포에이르바하의 작업이 “종교적 세계를 그것의 세속적 기초로 해소한 데에 그 요체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부(聖父), 성모(聖母), 성자(聖子)로 구성된 신성 가족이란 “세속적 기초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위로 올라가 구름 속에 하나의 자립적인 영역으로 스스로를 고정”시킨 것을 뜻한다.[15] 즉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철학이란 무엇인가? 엥겔스는 철학의 중대한 근본 문제가 “사유와 존재의 관계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자연(외부 세계)에 대한 정신(의식)의 관계이다. 엥겔스는 자연에 대해 정신이 본원적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들을 관념론자, 반면 자연을 본원적인 것으로 여긴 철학자들을 유물론자라고 구별했다. 이것은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에서 주요한 논제인 인식론에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인간의 감각‧경험은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외부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예컨대 18세기 영국의 관념론자 버클리를 보자. 버클리는 외부 세계라는 것은 전혀 실재하지 않으며, 설령 실재한다 해도 인간은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다. “실존하는 모든 것‒우리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오직 정신과 그 속의 관념들뿐이다.” 즉 버클리에게 감각 밖의 외부 사물은 “관념의 집합”에 불과하다. 존재하는 것이란 지각되는 것이므로, 감각과 경험이 사라지면 외부 사물의 실재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인간의 감각 경험이 질서 정연하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은 신(神) 때문이다. (버클리는 영국 성공회의 주교였다.) 신은 당신의 경험 계열과 나의 경험 계열을 서로 상관관계가 있도록 함으로써 예측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은 파국을 막기 위해 신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러나 유물론자에게 감각과 경험, 사유의 형식은 그 자체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사유’와 ‘의식’이 외부 존재와 대립해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헤겔 역시 받아들였던, 칸트의 오성(悟性)이 가진 논리적 범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사유와 의식은 인간의 두뇌의 생산물”이며 “인간 자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이 환경과 함께 발전해 온 자연의 생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감각, 경험, 사유 등의 “원리들은 연구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최종적 결과이다 ; 원리들은 자연과 인간의 역사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추상되는 것이다 ; 자연과 인간계가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및 역사와 일치하는 한에서만 원리들은 올바른 것으로 된다. 이것이 사태에 대한 단 하나의 유물론적 파악”이다.[16] 좀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축구는 세계 축구의 수준에 한참 뒤처져 있었다. 당시 축구 전문가랍시고 누군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매번 강조하는 말이 정신력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기술은 좀 달리지만 투지와 정신력으로 강팀과의 전력 차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2년 히딩크의 진단은 달랐다.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괜찮은데 체력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경기 고비마다 정신적으로 위축된다는 진단이었다. 이후 히딩크는 혹독한 체력 훈련을 통해 정신력이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불패의 명장 이순신의 연전연승(連戰連勝)은 오로지 그의 영용한 지도력 때문인가? 물론 이순신 개인의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빼놓고 연승의 비결을 말할 순 없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 해안에 최적화된 판옥선과 함포 사격술이 압도적 승리의 토대였다 보는 것이 유물론적 견해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드라마틱한 성장은 한국민들의 근면과 성실성 때문인가? 물론 입신양명을 향한 유교문화의 특성을 간과할 수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쇼윈도 자본주의’로서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막대한 경제원조가 토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유물론적 인식이다.[17] 이 밖에도 비슷한 예는 무한히 열거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이 가장 격렬히 충돌하는 공간은 종교의 영역이다. 아무리 진보적 종교라 하더라도, 수미일관한 유물론적 세계관은 결코 종교와 양립할 수 없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의 태반이 반공 기독교 교인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18] 그러나 이 말이 곧바로 유물론자들은 종교를 탄압의 대상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종교란 그 효용을 다 하는 순간(인간이 자기 소외를 극복하고 종교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 사멸할 수밖에 없는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유물론자는 종교를 낳은 물질적 토대를 변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으로 풀어보는 철학사 더 나아가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적대적인 계급사회에서 철학의 발전은 불가피하게 철학의 두 근본 경향인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것, 이 두 경향은 각각 당대의 진보적인 계급과 반동적인 계급의 이해를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애당초 철학이 계급 적대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것을 상기하자. 서양철학의 연원인 고대 그리스 사회, 동양철학의 연원인 춘추전국시대 모두 국가의 등장 이후 계급 모순을 정당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한 시기였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에 관해, 여기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조선의 유학(儒學)을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물질적 존재보다 정신적 존재가 근원적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긍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다. 소크라테스와 대립했던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던 세력이다. 기원전 5세기 소피스트는 하층민을 교육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직업적 교사 집단을 뜻했다. 이들은 체계적인 사상은 없었지만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견지했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중 교육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맞서 아테네 명문 귀족의 이익을 대변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란 소피스트들이 흔하게 얘기하는 현상적 진리가 아니라,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리여야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상을 완성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얘기했던 일반 민중의 의견을 ‘독사(doxa)’, 즉 불확실하고 거짓된 판단력으로 폄하했다. 플라톤은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 사물은 이데아의 모방(미메시스, mimesis)이거나 이데아의 성질을 나눠 갖는 것(메텍시스, methexis)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은 원래 이데아를 알고 있었으나 신체와 결합하고 경험적인 사물을 접하면서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관념론은 특히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자연 철학과 대립했다. 데모크리토스에게 감각적 지각이란 외부 대상(원자들의 미세한 껍질들)이라는 물리적 근거에 의해 설명된다. 하층 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했던 소피스트나 자연 철학자들과 달리, 플라톤이 철인(哲人)정치라는 엘리트주의를 제창한 것은 그의 철학적 관념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주자(朱子)의 교의를 받아들인 조선의 성리학 역시 기본적으로 관념론 철학에 해당한다. 성리학은 세계의 근원을 정신적 실체인 리(理)로 보았다. 이에 따라 모든 봉건적 계급 질서는 천리(天理)를 표현한 것이 된다. 이를테면 정도전은 “도(道)란 것은 이(理)이니 형이상(形而上)의 것이요, 기(器)란 것은 물(物)이니 형이하(形而下)의 것이다. 대개 도의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서 물(物)마다 있지 않음이 없고, 어느 때나 그에 해당되지 않음이 없다. 즉 심신(心身)에는 심신의 도가 있어서 가까이는 부자ㆍ군신ㆍ부부ㆍ장유(長幼)ㆍ붕우(朋友)에서부터 멀리는 천지만물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도가 있지 않음이 없다.”고 했다.[19] 이렇게 봉건 지배 질서를 옹호했던 관념론에 맞서, 유물론적 지향을 보였던 유학자로 특기할 만한 이들은 16세기의 서경덕과 19세기의 최한기다. 서경덕은 “기(氣)를 떠나서는 리(理)가 없다. … 리는 기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가 시작이 없으면 리도 또한 진실로 시작이 없다. 만일 리가 기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하면 리는 기가 시초가 있는 것으로 된다.”[20] 성리학에서 기(氣)는 물질적 존재를 뜻하는데, 이와 같이 서경덕은 리(理)가 기(氣)의 운동 변화를 주재하지 않으며 기에 내재한 합법칙성에 따라 기의 운동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또 최한기는 “대개 천지와 인간 만물의 생성은 모두 기(氣)의 조화(造化)에 말미암는 것인데, 이러한 기에 대해서는 후세로 올수록 열력(閱歷)과 경험으로 점점 밝아졌다.”고 썼다.[21] 이 말에서 드러나듯이 최한기는 19세기 조선에 수용됐던 서양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경덕과 최한기가 조선 봉건사회에서 제한적이나마 진보적 태도를 보였던 것은 이들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기계적 유물론을 넘어선 마르크스 그런데 마르크스 철학은 곧 유물론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사상을 반토막 내는 일이다. 여기에 혁명적 사유 방식인 변증법을 추가해야 한다.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두고 “세계를 하나의 과정으로서, 즉 역사적으로 계속 형성 중인 질료로서 파악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포이에르바하는 관념 대신 실재하는 자연에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하지만, 그에게 자연은 비역사적으로 파악된다. 이는 포이에르바하가 당대 자연과학의 최신 발견, 즉 세포, 에너지 전화, 다윈주의 등을 충실히 쫓을 수 없었던 형편 때문이다. 특히 포이에르바하에게 인간이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추상적 인간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가 유물론자인 한 그에게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그가 역사를 고찰하는 한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다”라고 썼다.[22] 마르크스는 달랐다. 도식적으로 얘기해서, 마크르스 철학은 유물론에 헤겔 철학의 혁명적 요소인 변증법을 결합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흔히 정반합(正反合)으로 기억하는 헤겔의 변증법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헤겔 변증법에서 어떤 개념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스스로 지양하며 고차원적인 존재로 발전해 나간다. 지양(止揚, Aufhebung)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보존한다, 유지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중단시킨다, 끝을 낸다는 뜻이다. 운동이 진행되며 어떤 개념의 부정이 이뤄지면, 이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면서 동시에 앞선 개념보다 좀 더 고차적이며 풍부한 개념이 된다. 헤겔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것은 마치 같은 내용의 격언을 정확하게 이해는 하면서도 그 의미나 함축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말은 결코 이 격언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의 생생한 힘을 알아차리고 있는 세상물정에 밝은 어른의 정신이 해독하는 정도의 의미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23] 예컨대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누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만, 아직 풋사랑을 겪었을 뿐인 젊은이와 수차례 찐사랑과 그 안티테제를 경험한 중년에게 이 말의 깊이는 달리 느껴지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는 『자본』 제1권에서 헤겔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쫓아간다. 상품 속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대립하고(대립물의 통일), 이것이 외화된 ‘단순한 개별적 또는 우연적 가치형태’가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로, 다시 ‘일반적 가치형태’와 ‘화폐형태’로 지양(止揚)해 가는 과정은, 헤겔의 『대논리학』에서 순수존재(純粹存在)와 순수무(純粹無)가 통일된 ‘존재’가 ‘현존재(現存在)’로, 다시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전개되는 과정을 그대로 오마주(?)한 것이다. 그런데 헤겔 철학에서 “변증법적 발전, 즉 모든 지그재그 운동과 일시적 퇴보를 거쳐 관철되는 더 낮은 것에서 더 높은 것으로의 진보의 인과적 연관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느 경우든 사유하는 각 인간의 뇌와 독립하여 영원히 진행되는 개념의 자기 운동을 복사한 것”[24]이다.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의 운동 과정을 절대정신의 전개 과정이 아니라, 실재하는 외부 세계의 변화 과정으로 인식했다. 엥겔스가 머리로 선 변증법을 마르크스가 다시 발로 세웠다고 평가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마르크스는 “우리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들은 결코 자의적인 전제들이 아니고, 독단들도 결코 아니며, 오직 상상 속에서만 도외시될 수 있을 현실적 전제들이다. 그것은 현실적 개인들, 그들의 행동 및 그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들 ‒ 기존의 생활 조건들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산출된 생활 조건들”이라고 말했다. 점차 고차원적인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현실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 변증법이었던 것이다. 이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존재의 연원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이란, 외부 세계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인식하는 낡은 사유 방법에 불과하다. 외부 세계를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으로 보는 변증법을 통해 근대철학의 중요 문제, 즉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에 관한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인식주체는 실천을 통해 변화하는 외부 세계를 점진적으로 인식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대상적 진리가 인간의 사유에 들어오는가 않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실천 속에서 인간은 진리를 … 증명”한다.[25] 레닌은 유물론 철학의 인식론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사물은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우리 밖에 존재한다. … (2) 현상과 사물 자체 사이에는 결코 어떤 원리적인 차이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차이는 다만 인식된 것과 아직 인식되지 않은 것 사이에 있을 뿐이다. … (3) 과학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식론에서도 변증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즉 우리의 인식을 어떤 기성의 불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무지(無知)에서 지(知)가 생겨나며 또 어떻게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지식이 더 완전하고 더 정확한 지식으로 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변증법은 왜 혁명의 철학인가? 따라서 현재 우리의 인식은 완성된 진리이거나 절대적 진리일 수 없다. 이전 세대로부터 지식이 축적되고,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상대적 진리는 지속적으로 확장돼 나간다. 일례로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이 재발견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세종이 미닫이문의 격자를 보고 한글 자음을 고안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연구를 통해 한글 자음이 발음기관을 형상한 위대한 표음문자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고대인들에게 신의 노여움을 뜻하던 낙뢰(落雷)는 그 발생 원리가 이미 과학적으로 해명되었으며, 미래 세대는 이를 조절‧통제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게 될지 모른다. 이처럼 변증법의 시야에서 보자면 ‘진리와 오류’란 제한된 영역과 특정한 단계에서만 통용력을 가진다. 출산이 여성 사망의 제1 원인이며 안전한 피임 방법이 없었던 전근대 사회에서 혼전 순결의 강제는 그 나름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혼전 순결을 들먹이는 것은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판단, 이것이 변증법이다. 레닌이 말한 대로, “추상적인 진리란 없다. 진리란 언제나 구체적인 것이다.”[26] 세계를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 작용 등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의 시야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일반적인 운동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것들의 원조는 역시 헤겔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외부 세계의 운동을 머릿속에서 환상적으로 반영했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 첫째, 세계는 끊임없이 운동하는데, 그 원인은 내부적 모순, 즉 ‘대립물의 통일’에 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존재’가 변화할 수 있는 이유는 동시에 그 대립물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존재’한다는 개념에는 그 자체로 ‘무(無)’라는 대립물이 내재하고 있다. 입시 철에는 “시험 잘 보세요”라는 말이 수백만 번 되풀이된다. 그런데 누군가 ‘시험을 잘 본다’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시험을 못 본다’는 대립물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시험을 잘 본다’에 ‘시험을 못 본다’라는 대립물이 내재해 있다는 것은, ‘시험을 잘 본다’가 언제든지 ‘시험을 못 본다’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노동은 자본이 가진 생산수단과 노동자가 가진 노동력이 결합해 이뤄진다. 자본은 노동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임금을 적게 지급하려 하지만,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하는 대가로 생계비인 임금을 더 많이 받길 원한다. 이처럼 양자는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립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없으면 임금을 받을 수 없으며, 자본가는 노동자가 없으면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이 역시 “대립물의 통일(통일물의 상호 배제하는 대립물들로의 분열과 그것들 간의 상호관계)”이다.[27] 레닌은 “대립물의 통일은 조건적이며, 일시적이며, 덧없고, 상대적”이라고 썼다. 자본이 더 많은 축적을 위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 노동과 자본의 공생관계는 곧바로 파탄이 난다. 평소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도 잘 된다’고 생각하던 노동자들이 허위의식을 깨뜨리고 계급적 운동에 나서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러한 내부 모순, 즉 대립물의 통일에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양질전화다. 자연 세계에서 양질전화의 가장 간단한 예는 물의 상태 변화다. 물을 커피포트에 넣고 전원을 연결해도 바로 물이 끓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만, 조금씩 물의 온도가 올라가 임계점(끓는점)을 지나게 되면 물(액체)은 끓어올라 수증기(기체)로 변하게 된다. 양적 변화(온도 상승)가 질적 변화(액체에서 기체로의 변화)로 바뀐 것이다. 양질전화는 인간 사회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서는 단순 협업이 매뉴팩쳐, 기계제 대공업으로 변화되면서 나타나는 양질전화의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예컨대 1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가 한 공간에 10명의 노동자를 불러 모은다 하자. 이때의 생산량은 처음에는 1명 노동자 생산량의 10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생기는 절약분, 업무의 계획적 분업 등을 통해 생산량은 10배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협업은 다시 매뉴팩쳐, 기계제 대공업으로 이행하며 기존 생산력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창조해 낸다.[28] 또 하나의 운동 형태는 이른바 ‘부정의 부정’이다. 이는 사물이 지양을 거듭하면서 기존의 장점을 더 높은 수준에서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 24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에서 생산방식의 ‘부정의 부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최초에는 분산된 노동자가 개별적 생산수단을 소유해 소경영에 나선다. 그러나 이런 협소한 생산 형태로는 분업과 협업, 자연에 대한 대규모 이용 등 사회적 생산력을 활용할 수 없다. 해마다 범람하는 황하의 거대한 물줄기를 조각난 땅뙈기를 부치는 몇 명이 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개인적으로 분산됐던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적된 생산수단으로 전화해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창출한다(첫 번째 부정). 물론 이 자본주의의 전사(前史)는 동시에 대다수 민중에게서 생산수단이 박탈되는 고통스러운 수탈의 과정이지만, 이전보다 생산력을 증대시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거대한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체제 역시 고유한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증대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은 마침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弔鐘)을 울리게 한다. “이제는 수탈자가 수탈당하게 된다.”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는 폐지되지만, 자본가들이 창출한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은 상실되지 않는다. “이 부정은 사적 소유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획득물[즉 협업과 토지 공유 및 노동 자체에 의해 생산되는 생산수단의 공유]을 기초로 하는 개인적 소유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부정의 부정이다. 이와 같이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운동 상태로 보는 변증법의 시야에서는, 특정 단계에서 역사가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떠드는 것만큼 한심해 보이는 짓도 없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역사의 종말’을 운운하며 “자유민주주의보다 영속성 있는 정치 시스템은 없다”던 부르주아 정치학자의 시야는 혁명적 변증법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불과 몇십 년 전 ‘자유민주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자신했던 그는 과연 트럼프와 윤석열 일당의 반민주주의적 폭거를 설명해 낼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다. “합리적인 형태의 변증법은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교의를 대변하는 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과 그것의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성하는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언제나 그것들을 일시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변증법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화를 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며 혁명적이기 때문이다.”[29] 마르크스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마르크스 철학의 양대 기둥인 유물론과 변증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마르크스 사상의 위대함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방법론을 인간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분석하는 데 철두철미하게 적용했다는 점에 있다. 엥겔스가 평가했듯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은 ‘잉여가치를 매개로 한 자본주의 생산 비밀의 폭로’, 그리고 ‘유물론적 역사 파악’이다. ‘유물론적 역사 파악’이란 “정치적 갈등들을 경제적 발전에 의해 주어지는 현존하는 사회 계급들 및 계급 분파들의 이해 관계의 투쟁으로까지 소급하는 것, 그리고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개별 정당들이 이와 동일한 계급들 및 계급 분파들의 적절한 정치적 표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30]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한국 정치판의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역사적 연원을 살펴 이들이 대변하려 했던 계급 분파들이 무엇인지, 그들의 정치는 그들이 대변하는 계급 분파들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유물론적 역사 파악’이다.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역사 파악을 위해 정립한 개념이 바로 ‘생산력’과 ‘생산관계’다. 먼저 생산력이란 사회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능력으로,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그 요소로 한다. 어떤 사회라 하더라도 물질적 생산을 위해서는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의 능력(노동력)이 필요하며, 농지와 쟁기에서부터 공장과 조립로봇에 이르기까지 생산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생산수단)이 있어야 한다. 노동력과 생산수단은 당대의 기술 및 지식에 따라 상호 결합하는 형태가 정해진다. 생산관계란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이를테면 농지와 공장은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지(소유관계),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분배관계), 직접 생산자의 노동을 누가 통제하는지(계급관계) 등을 종합한 개념이다. (다른 곳에서 마르크스는 ‘교류형태’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개념을 이용해 가장 간결하게 자신의 유물론적 역사 파악을 정식화한 저작은 1859년 출판된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이다. 이곳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 법률관계나 국가 형태는 절대정신의 보편적 발전 때문이 아니라 물질적 생활 관계들의 변화에 기인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대목은 아주 유명하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들에 들어선다. 이러한 생산관계들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그 위에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 구조가 서며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에 조응하는 그러한 실제적 토대를 이룬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 혹은 이 생산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들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 그때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된다.”[31] 우선 생산관계(생산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사회의 생산력 발전 단계에 조응한다. 오늘날 인간사는 돈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인간관계도 금전 관계를 매개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돈이 많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권능을 의미한다. 그러나 화폐 물신주의가 역사 내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역사에서 중국의 화폐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하기 일쑤였다. 먼저 고려시대에는 건원중보, 무문전, 은병 등의 유통이 시도됐다. 그러나 송나라 사신 서긍은 첩보 보고서 『고려도경』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대개 그 풍속이 사람이 살면서 장사하는 가옥은 없고 오직 한낮에 시장을 벌여 남녀ㆍ노소ㆍ관리ㆍ공기(工技)들이 각기 자기가 가진 것으로써 교역하고, 돈을 사용하는 법은 없다. 오직 저포(紵布)나 은병(銀鉼)으로 그 가치를 표준하여 교역하고, 일용(日用)의 세미한 것으로 필(疋)이나 냥(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쌀로 치수(錙銖)를 계산하여 상환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오래도록 그런 풍속에 익숙하여 스스로 편하게 여긴다. 중간에 조정에서 전보(錢寶, 화폐)를 내려 주었는데, 지금은 모두 부고(府庫)에 저장해 두고 때로 내다 관속(官屬)들에게 관람시킨다 한다.”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교역은 쌀이나 포목을 사용하고, 기껏 만들어 놓은 화폐는 창고에 처박아 뒀다가 관람용으로나 썼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의 세종 역시 조선통보(朝鮮通寶)란 동전을 만들어 유통을 시도했으나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조선통보의 유통이 처참히 실패한 탓에, 조선 후기 사대부들 사이에서 조선통보가 기자(箕子) 조선의 유물이란 낭설이 떠돌 지경이었다.) 화폐 유통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려, 조선 전기까지 사회적 생산력은 상품유통 경제를 전면화시킬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倭軍)은 얼레빗, 명군(明軍)은 참빗’이란 말이 떠돌았다. 조선 민중에 대한 수탈의 정도가 명군이 더했다는 뜻인데, 명군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중국은 이미 11세기 송나라 수도 개봉의 인구가 최대 100만을 헤아릴 만큼 상품유통 경제가 발전해 있었다. 임진왜란 시점에는 군인들에게 은자(銀子)를 지급하고 현지 시장에서 군량과 군수품을 조달하도록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에 와 보니 시장이 있어야지! 은을 내밀어도 받질 않으니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한 것이다. 이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토대 위에 사회의 상부구조(법률적 및 정치적 구조)가 들어선다. 조선의 철저한 사농공상(士農工商) 위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직 상품유통 경제가 전면화하지 못한 사회, 즉 농업생산이 중심이 된 사회의 상부구조를 의미한다. 공상천예(工商賤隷)란 말에서 드러나듯이 상공인을 농민보다 천대하며, 동시에 농민들의 거주 이전을 제한하며 토지에 묶어뒀던 것은 당대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18세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중국 사대부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직접 흥정하는 장면을 보며 조선의 사신이 놀라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선 비록 선비가 궁핍하여 부릴 심부름꾼 하나 없는 처지라도 자신이 직접 시장판에 감히 나가는 일은 없다. 장터에 나가서 되잖은 장사치들과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을 비루하고 좀스러운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상품경제가 발달한 중국에선 사대부도 살아남자면 이재(理財)에 밝아야 했지만, 농업경제 사회의 안온한 질서에 머물렀던 조선의 선비들은 돈을 만지는 것을 금기시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발전 단계가 지배계급의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조선 역시 후기에 들어서면 생산력의 발전으로 상품경제가 발전하면서(상평통보의 유통, 장시의 발달 등) 과거의 견고하던 사회 질서들이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이 철폐되고, 족보 위조가 성행하며 신분제가 흔들렸던 것이 대표적이다. 만약 구래(舊來)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예컨대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신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력이 대규모로 출현해야 한다. 또 상품의 전면적 유통을 위해서는 도량형, 화폐단위 등의 지역적 제한이 철폐돼야 한다. 유럽 각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 동인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았던 낡은 사회 질서를 타파할 실천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유럽 곳곳에서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개화하던 시기를 직접 목격했다. 그에 따라 마르크스는 기존의 생산관계(또는 그것이 표현된 법률적 관계)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순간,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고 썼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더 높은 단계로의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순간을 수없이 목격한다. 예컨대 AI 기술, 플랫폼 공간에서의 수급 매개 등 각종 디지털 기술의 발전, 자동화 로봇 등을 통한 노동생산성의 향상 등은 물질적 풍요와 생태계 보호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물질적 토대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대규모 정리해고를 유발하거나 비정규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한다. 수요가 긴급한 필수 의약품은 지적재산권에 가로막혀 공급이 제약되며, 기후위기엔 아랑곳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생산이 반복된다.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기존의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된 현재는 분명하게 사회혁명의 시대다. 스탈린주의적 역사 파악의 오류 중요한 점은 마르크스가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인간의 실천 활동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어디에서도 생산력 발전에 따라 사회혁명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고 쓰지 않았다. 『공산주의당 선언』의 첫머리에 명시돼 있듯이,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는 것으로, 혹은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도 끝났다고 썼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독점 자본주의가 출현한 20세기 초에 이르면 사회혁명의 토대는 이미 넘치게 무르익었다고 봐야 옳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살고 있다. 물질적 토대의 성숙과는 무관하게 사회혁명은 아직 달성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 토대를 떠나 자신이 선택한 조건에서 역사를 창조하지 못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위인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삶을 시작할 뿐이다. 거꾸로 역사 또한 인간의 주체적‧능동적 실천 없이 절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력의 부단한 증대가 자동적으로 체제의 질적 변화를 불러오지 않는단 얘기다. 중국공산당은 현재 중국이 ‘사회주의의 초급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체제가 사회주의란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은 더 황당하다. 즉 앞으로 ‘사회주의 시장 경제’와 ‘중국식 현대화’를 통해 생산력이 발전하면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점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산력이 발전하면 사회혁명이 절로 이뤄지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를 왜곡‧변용한 것인데, 그 원조는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1938년 출간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서 역사 발전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생산관계의 주요한 다섯 가지 유형은 역사에서 잘 알려져 있다 : 원시 공산 체제, 노예 체제, 봉건 체제, 자본 체제, 사회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 원시 공산 체제는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소유”된 사회이며, 노예 체제는 “노예 소유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 봉건 체제는 “봉건 영주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 노동자(봉건영주가 더 이상 죽일 수는 없지만 그가 사거나 팔 수 있는 농노)는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사회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 노동자들(개인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자본가가 죽이거나 팔 수 없지만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굶주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 팔고 착취의 멍에를 감내하지 않을 수 없는 임금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회다. 마지막으로 소련은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로서, 생산관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이며 “사람들의 상호관계는 착취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들의 동지적 협력과 사회주의적 상호 지원”[32]이란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때 스탈린은 역사가 5단계로 발전해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생산력이라고 보았다. 즉 스탈린에게 새로운 사회의 도래는 생산력 발전에 따른 결과이며, 인류의 역사는 위의 5단계를 차례차례 밟아나가는 단선적(單線的) 발전 과정이다. 이러한 역사 파악에서는 계급투쟁이라는 인간의 주체적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데올로기, 문화적 차이 등 변화무쌍한 역사의 변수 또한 그렇다. 스탈린의 단선적 역사관이 가장 기괴하게 영향을 미친 세력은 한국의 뉴라이트 논자들이다. 예컨대 뉴라이트 논자 이영훈은 전(前) 마르크스주의자(?) 안병직의 제자다. 요즈음 이영훈은 뜬금없이 조선을 노예제사회로 치부하고 있다. 16~17세기 조선 인구의 40%가 노비였다는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 문명을 추앙하는 뉴라이트 논자들에게 조선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후진적 체제에 머물러야 하므로 이런 얘기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외거노비의 경우 별도의 호적을 가지고 있었던 점, 사노비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기도 했던 점, 노비도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점, 주인과 사유재산 문제로 송사를 벌인 노비의 기록까지 있었던 점 등을 살피면, 조선의 노비를 그리스의 노예와 동일시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요점은 이것이다. 스탈린에 의해 정식화된 단선적 역사관과 생산력 중심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어느 발전된 문명이 외부 환경의 변화나 내부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멸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마르크스에게 인류 역사의 ‘발전 법칙’은 결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에게 추상적 수준의 법칙은 수많은 구체적 사실에 대한 연구로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칙은 새로운 구체적 역사 사실에 대한 분석으로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다. (마르크스 역시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정체를 말하는 등 적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 마르크스의 진술 하나하나를 무오류의 교조적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장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인 행태다. 마르크스의 방법론인 유물론과 변증법은 새로운 지식과 발견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개방적 사유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는 물질적 토대와 인간의 실천적 활동 사이의 관계를 항상 강조했던 혁명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마르크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엥겔스에 대한 오해 그런데 이 대목에서 엥겔스에게 덧씌워진 부당한 혐의 하나를 반박해야 할 것 같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변증법을 자연으로까지 무리하게 확장해 기계적 유물론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스탈린 체제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계승됐다는 혐의 말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는 경제결정론이 아닌데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논지를 왜곡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엥겔스의 저작을 읽어보면 이런 주장이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히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자본』 1권에서 생산방식의 ‘부정의 부정’ 법칙을 언급한 대목을 두고 독자들에게 오해를 피하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부정의 부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렇게 부름으로써 이 과정이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그 반대이다. 그는 이 과정이 일부는 이미 실제로 일어났고 일부는 이제 틀림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다음, 여기에 덧붙여 이 과정을 일정한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33] 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언제나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법칙을 길어냈을 뿐, 선험적 법칙에 역사적 사실을 끼워 맞추려 들지 않았다. 엥겔스가 경제결정론에 기울었다는 주장도 부당하다. 거꾸로 만년(晩年)의 엥겔스는 물질적 토대 외에 상부 구조의 다양한 영역, 심지어 우연마저도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태를 유물론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당신의 시도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무엇보다도, 유물론적 방법을 역사 연구의 실마리로 다루지 않고 역사적 사실들을 재단하는 완성된 관습적인 방식으로 다룰 때 그것은 그 반대물로 전화하고 만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34] “물질적 존재 방식이 제1차적 동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관념의 영역이 다시 물질적 존재 방식에 반작용을, 제2차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35] “유물론적 역사 파악에 따르면, 역사에서 종국적인 결정적 계기는 현실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입니다. 맑스도 나도 결코 이 이상의 것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명제를 경제적 계기가 유일한 결정적 계기라고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명제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공문구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경제적 처지는 토대입니다. 그러나 상부 구조의 다양한 계기들―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계급투쟁의 결과들―전투가 끝난 후 승리한 계급이 확립한 헌법 등등―법 형태, 그리고 또 이 모든 현실적 투쟁이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리에 반영된 것으로서의 정치적, 법률적, 철학적 이론, 종교적 견해와 이 견해의 교의 체계로의 가일층의 발전 등도 역사적 투쟁의 진행 과정에 영향을 주며 많은 경우에 주로 이 투쟁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이 모든 계기들은 상호 작용을 하며, 이 상호 작용 속에서 결국 경제적 운동은 무한히 많은 우연들(즉 그 내적 상호 연관이 너무 멀거나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상호 연관이 없다고 간주하고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있는 사물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필연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관철해 갑니다.”[36] “우리가 역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영역들의 독자적인 역사적 발전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것들의 역사적 작용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원인과 결과를 영원히 상호 대립하는 두 극으로 간주하고 그것들의 상호 작용을 완전히 망각하는 조잡한 비변증법적 표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신사들은, 역사적 계기가 또 다른, 결국 경제적인 원인들에 의해 일단 생겨나자마자 그 주변 환경에 대해서, 심지어 그것을 낳은 원인들에 대해서까지도 반작용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거의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있습니다.”[37] “정치, 법, 철학, 종교, 문학, 예술 등등의 발전은 경제적 발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는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적 토대에 대해서 반작용을 가합니다. 경제적 상태가 유일하게 능동적인 원인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수동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 언제나 관철되는 경제적 필연성에 기초한 상호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 일부의 사람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생각하듯이 경제적 상태가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되, 그들을 제약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존의 사실적 관계들에 기초하여 만듭니다. 비록 여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들에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사실적 관계들 중에서 경제적 관계들이 종국적인 결정적 관계들이며, 경제적 관계들을 추적해야만 이해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38] 그렇다. 경제적 토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에 정면으로 배치(背馳)되는 것이다. 판옥선과 함포 사격술이 조선 수군의 근본적 승리 비결이긴 하지만, 이순신 대신 원균이 지휘권을 장악했을 때의 처참한 결과를 반추해 보라. 때로 우리는 한 명의 위인이 역사의 물줄기를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장면도 목격한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레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를 향한 변혁 주체, 노동자계급 그런데 누군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이라 부당하게 비난한다면, 이것이 그들의 정치가 비유물론적인 것이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든 사안에서 변증법적 상호 작용을 넘치게 강조했지만, 그렇다 하여 무제한적인 상대주의로 빠져들지는 않았다. 이들의 변증법은 유물론이라는 확고한 토대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라클라우와 무페를 보자.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제창자들인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계급성’과 ‘경제결정론’ 중심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혁명의 주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중심부 권력을 탈취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들을 ‘헤게모니적 접합’을 통해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하지 않은 다원화된 정치적 실천의 강조란,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을 뜻한다. 이들의 작업이 1980년대 노동자투쟁의 세계적 패배 국면, 즉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속에서 등장했음을 상기하자. 하지만 계급이라는 물질적 토대에 기반하지 않은 ‘헤게모니적 접합’은 대체 어디서 출현할 수 있는 것일까? 계급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데 말이다.[39] 반면 유물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를 향한 변혁 주체로서 오직 노동자계급이 전략적 지위를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마르크스에게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은 『공산주의당 선언』에 잘 묘사돼 있다. 마르크스는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중에서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쇠퇴하고 몰락한다. … 중간 신분들, 즉 소공업가, 소상인, 수공업자 및 농민, 이들 모두는 중간 신분으로서의 자기의 존립을 몰락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하여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다. …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즉 낡은 사회의 최하층의 이 수동적 부패물은 때때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운동에 끌려들어오는 일도 있으나, 그들의 생활 처지 전체로 말미암아 반동적 음모에 매수되는 것을 더 마음 내켜 한다”고 썼다.[40] 프롤레타리아들은 “지금까지의 전유(專有) 양식 전체를 철폐”해야 하는 계급인데,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지켜야 할 자신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이 주도할 사회혁명이 기존의 사회혁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이것이다. 부르주아는 혁명을 통해 ‘봉건 지배계급에 의한 지배’를 ‘자본가 계급에 의한 지배’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혁명을 통해 ‘계급에 의한 지배’ 자체를 끝장낼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중심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마르크스의 이 주장은 오늘날에도 타당할까? 19세기 초기 자본주의 시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에나 걸맞은 얘기가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박근혜를 끌어내렸던 2017년 촛불 항쟁으로 돌아가 보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직전까지 박근혜에 대한 탄핵 지지 여론은 80%를 오르내렸다. 이어진 대선에서 1,340여만 표를 얻은 문재인은 2위 홍준표의 785만 표의 거의 두 배를 득표했다. 정의당의 심상정은 201만 표를 얻어 6.1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촛불 항쟁의 성과를 독식한 민주당은 20년 집권을 운운할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했다. 반면 윤석열의 파면 결정을 앞둔 지금의 상황을 보자. 탄핵 사유의 무게로 따지자면 박근혜의 잘못은 윤석열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현재 윤석열에 대한 탄핵 지지 여론은 60%를 오르내리는 정도이며, 이어질 조기 대선에서 윤석열 일당의 결집 양상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왜 이런 퇴보가 일어난 것일까? 2017년 광장의 민주주의가 일터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제아무리 대통령을 끌어내려도, 일터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일상적 해고와 고용 불안, 비정규직 차별,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 등이 반복되는 상황에선 ‘민주주의’가 가진 자들이 잘난 척하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다. 방향이 무엇이든, 차라리 세상을 화끈하게 뒤엎자는 얘기에 끌리게 된다. 서부지법 난동을 벌인 청년 극우층의 정서는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계급적 불평등의 본질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추출할 때 벌어지는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적대다. 이 사회의 어떠한 질서도, 그리고 이 체제를 뛰어넘겠다는 어떠한 사회운동도 결코 이 중심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가들은 대한민국 민주헌법 130개 조의 절반은 포기할 수 있겠지만, 이윤의 절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새로운 사회운동도 임금노동이 아니라 무엇으로 사회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할 것인지를 답변하지 않고서는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생산 없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재화의 생산과 이윤 생산이 통합된 체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직접 생산자계급인 동시에 자본의 이윤을 전적으로 생산하는 계급이란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즉 노동자계급이 계급 적대 자체를 철폐할 수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 착취 체제 속의 그들의 위치 때문이며,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실제 사회에는 임금노동에서조차 배제된 수많은 약자들이 있으며, 이들의 처지는 임금 노동자보다 훨씬 열악하다. 그러나 이들은 생산과정에서 밀려난 탓에 자본의 이윤 생산을 중단시킬 물리적 힘을 가지기 힘들다. 더욱이 노동자들은 집단적 노동을 통해 공동의 규율을 획득한다는 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의 대규모 기업 내부에는 고도로 체계화된 부서 조직 등이 존재한다. 노동자들은 체계화된 기업 내부에서 타인과 협력하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해 나간다. 이것이 기업 내부에서 가능하다면, 전체 사회 차원에서도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최초에 자본가들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들을 집결시켰지만, 이제 노동자들은 공동노동 속에서 단결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서로 연합하려는 노동자들의 최초의 시도들은 항상 단결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대공업은 서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한 장소에 집결시킨다. 경쟁이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을 갈라 놓는다. 그러나 임금의 유지라는, 고용주에 대항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이해가 그들을 저항, 곧 단결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사상으로 결집시킨다. 그리하여 단결은 항상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지양하고 그럼으로써 자본가들에 대해 전체로서 경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중의 목적을 가진다. 저항의 최초의 목적이 단지 임금의 유지였을 뿐이라 해도 자본가쪽이 억압이라는 하나의 사상으로 결집함에 따라 처음에는 고립되어 있던 단결이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끊임없이 결합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에게는 연합의 유지가 임금의 유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된다.” 노동자들은 자본에 맞선 투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기업과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선 단결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확대되는 단결을 통해 성별, 고용형태, 업종의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 원칙들을 체화해 나간다. 노동자계급의 이러한 거대한 잠재력은 그들의 존재 조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로도 조금 부족해 보인다. 특히 오늘날 한국처럼 노동자계급의 상층 부문과 하층 부분의 격차가 극심하고, 조직노동자 운동이 평온한 일상에 안주하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래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존재 조건도 자본축적에 따라 특정 산업의 발전과 쇠퇴가 반복되며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노동자계급의 객관적 존재 조건의 변화,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우리는 변증법을 사용해야 한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분절 상태가 유별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압도적 다수인 피지배계급을 통치하는 비법은 언제나 분할통치(Divide and Rule)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시대에도 노동자계급이 단일한 하나의 계급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885년 엥겔스도 영국 노동자들이 공업 독점으로 초과이윤을 얻고 있던 영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나누면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썼을 정도다. 현재 한국의 조직노동자 운동이 가지고 있는 보신주의, 비정규직 차별의 논리는 IMF 구조조정 시기 겪은 정리해고의 상흔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잘 묘사돼 있듯이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하고 평생 일터에서 내몰렸다는 트라우마는, 이후 경제 회복 국면에서 조직노동자 운동이 철저한 조합주의 행태를 보이도록 추동했다. 그러나 세상 만물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트럼프가 벌이는 황당한 짓거리들을 보라. 통상적 방식으로는 안정적 이윤 생산을 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 상태를 드러낸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지금, 한국의 조직노동자들만 안온한 상태에 남아있으리라 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한국의 국민경제에서 조직노동자 부문이 차지하는 결정적 역할을 고려하면, 이들을 빼놓고서 대안 사회를 얘기한다는 것도 허망한 얘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능동적 실천이다. 가장 억압받는 청년 노동자들, 미조직 노동자들의 힘으로 조직노동자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노동자계급 단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제다. 사회주의 운동의 목표와 전술 이는 다음 강좌의 주제가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세 가지만 다뤄보도록 한다. 첫째, 사회주의 운동은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계급지배 질서를 폐지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사회주의자들은 부자 감세 대신 부자의 불로소득을 징발하자고 주장하며,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으로 둘 게 아니라 토지 국유화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기술이 발전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내쫓을 것이 아니라, 전 사회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인구를 기술 발전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배치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공동체를 위한 이러한 요구 모두 자본의 이익에는 완전히 상충되며, 자본가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위 요구를 철저히 탄압한다는 것이다. 바로 국가권력을 통해서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는 국가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총칼로 지배계급의 질서를 피지배계급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계엄 포고령 1호에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하며, 포고령 위반 시 “처단”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음을 상기하자. 따라서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가계급의 지배 도구인 국가권력을 먼저 장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목적은 …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으로의 형성, 부르주아지 지배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이라고 썼다.[41]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여기서 수준 낮은 오해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표현에서 소련, 중국, 북한의 일당독재를 연상하며 반민주적 체제를 떠올리는 것이다. 소련, 중국, 북한이 뭐라 떠들건 간에, 그들의 일당독재는 마르크스주의 본연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는 전혀 무관하다. 전광훈이 제아무리 목사라고 떠들어도, 반동적 장사꾼에 불과한 전광훈과 혁명가 예수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듯이 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디까지나 지금의 ‘부르주아 독재’에 대립하는 개념이다. 김대중 정도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을 정도로 상당한 지사(志士)적 풍모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민주투사로 자임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지배 질서를 뒤엎는 것까지를 용인하는 민주투사는 없다. 레닌이 말했듯이, “‘공공질서의 교란’의 경우에, 그리고 실제로는 피착취계급이 자신의 노예신분을 ‘어기고’ 노예답지 않게 행동하려고 하는 경우에, 아무리 민주적인 국가라 할지라도 그 헌법에 노동자를 향해 군대를 출동시킬 가능성,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 등을 부르주아지에게 보장하는 단서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지 않은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42] 즉 계급사회에서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본가계급의 질서에 반대하는 절대다수의 피착취계급을 억압하는 독재라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대하는 극소수의 착취계급을 억압하는 독재인 것이다. 둘째,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폐지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일상적 투쟁을 중시한다. 마르크스 당대에 어떤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벌이는 것 자체를 백안시했다. 노동자들은 모름지기 임금 노예 신분을 거부하고 국가를 전복하는 혁명적 투쟁에 나서야지, 임금인상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이 임금 노예임을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이 혁명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정치적 계급으로 발전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모든 투쟁의 무기는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일련의 투쟁 과정을 거쳐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계급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개량 투쟁(경제 투쟁)과 혁명 투쟁(정치 투쟁)을 결합시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노동자계급의 정치 운동은 당연히 자신을 위한 정치권력의 전취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일정한 지점까지 발전한 노동자계급의 사전 조직이 필요하고, 이 조직은 그들의 경제 투쟁 자체에서 자라납니다. … 이와 같은 방법으로 도처에서 노동자들의 개별화된 경제 운동들로부터 정치 운동, 즉 자신의 이해관계를 일반적인 형태로 또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강제력을 보유하는 형태로 관철하기 위한 계급 운동이 싹트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들이 일정한 사전 조직을 전제로 한다면, 그 운동들은 마찬가지로 다시 이러한 조직의 발전을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이 그 조직으로 볼 때 지배계급의 집단 권력, 즉 정치권력에 맞서 결정적 출정을 감행할 정도로 충분히 전진하지 못한 곳에서는, 그들은 어쨌든 지배계급의 정책에 반대하는 끊임없는 선동(및 적대적인 지향)을 통해 그에 알맞게 훈련되어야 합니다.”[43] 셋째,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철저히 견지한다. 이 말은 사회주의 운동이 노동자계급의 문제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모든 계급, 계층, 부문에 대한 정치의식을 가진 ‘인민의 호민관’이 되어야 계급적 정치의식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가장 억압받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투쟁에 가장 노동자계급다운 방식으로 연대하고 투쟁의 최선두에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여성 억압을 끝장내기 위해 여성파업을 조직하자는 주장처럼 말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떠한 부르주아 정치세력에도 용해되지 않은 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목표를 견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각 계급의 존재 조건 탓에 계급 질서 자체를 철폐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며, 계급 질서 자체가 철폐돼야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모든 억압과 차별이 일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란 노동자계급이 협소한 조합주의, 일국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익을 실현해 나가도록 추동하는 정치세력이다. 1887년 엥겔스는 『공산주의당 선언』의 다음 대목이 마르크스와 자신이 40년 넘게 지켜오고 곳곳에서 승리를 이끈 전술이라고 자평했다. “공산주의자들은 …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해관계라고는 갖고 있지 않다. …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일국적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 이해를 내세우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만 다른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정당들 중에서 가장 단호한 부분, 언제나 운동을 추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부분이다 ;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 …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직접 당면한 목적들과 이익들의 달성을 위해서 투쟁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미래를 대변한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기본 원칙들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엥겔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 마르크스‧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 마르크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 알렉스 캘리니코스,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 [1] 오세아니아의 하위 지역 중 하나다. 아오테아로아, 라파 누이, 하와이를 잇는 이른바 '폴리네시아 삼각형' 안에 1,000개 이상의 섬들이 존재한다. [2] 예를 들자면, 인류 역사 내내 가축화에 성공한 대형 포유류는 5,400여 종 가운데 14종에 불과하다. 이 14종의 13종이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한다. 아즈텍 제국군은 스페인 기병대를 통해 말이란 동물을 처음 목격했다. 오늘날 존속에 성공한 인류 문명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출현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3] G. D. H. 콜,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 [4]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5] 마르크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6]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7] 엥겔스, 「잉글랜드 노동자계급의 처지」,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8] 레닌, 양효식 옮김, 「마르크스」, 『레닌 전집 58』. [9] 마르크스‧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10] 마르크스 당대에도 그의 천재성은 유명했던 것 같다. 1852년 엥겔스는 “우리들 중에는 이상한 고정관념, 즉 모든 것을 아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마르크스라는 대부가 있는데도 우리가 억척스럽게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엥겔스, 「엥겔스가 뉴욕의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2권. [11]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2] 엥겔스,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2권. [13]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14]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15]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16]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17] 1945년에서 1965년까지 20년간 한국은 약 120억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받았다. 1950년대에는 원조자금이 한국 정부 예산의 100%에 달할 정도였다. 또 다른 분석에 따르면, 1945년에서 1975년까지 한국이 받은 경제원조와 차관 60억 달러는 미국의 아프리카 대륙 원조 총액 68억 달러에 근접하며 소련의 제3세계 경제원조 총액 76억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규모였다. 1950년에서 1975년까지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원조 65억 달러는 남미와 아프리카 두 대륙이 받은 원조 총액 32억 달러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것이었다. [18] 한국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에서 유물론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마구 처먹는 일, 마구 들이키는 일, 눈요기, 정욕, 교만한 태도, 물욕, 인색, 탐욕, 부당한 이익 추구, 증권 거래소 사기 등 간단히 말해서 속물 자신이 암암리에 하고 있는 모든 추잡한 악덕으로 이해한다 ; 그리고 관념론을 미덕, 일반적 인류애, 대체로 ‘더 나은 세계’ 등에 대한 믿음으로 이해한다.”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19] 정도전, 「佛氏雜辨」, 『三峯集』. “道則理也。 形而上者也。 器則物也。 形而下者也。 蓋道之大原。 出於天。 而無物不有。 無時不然。 卽身心而有身心之道。 近而卽於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20] 서경덕, 『花潭集』. “氣外無理。 理者氣之宰也。 所謂宰。 非自外來而宰之。 指其氣之用事。 能不失所以然之正者而謂之宰。 理不先於氣。 氣無始。 理固無始。 若曰。 理先於氣。 則是氣有始也。 老氏曰。 虛能生氣。 是則氣有始有限也。” [21] 최한기, 『氣測體義』. “蓋天地人物之生。 皆由氣之造化。 而後世之閱歷經驗。 漸明乎氣。” [22] 마르크스‧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3] 헤겔, 임석진 역, 『대논리학(Ⅰ)』 [24]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25]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26]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두 가지 전술』 [27] 레닌, 『철학노트』. [28] 이 과정은 동시에 노동 성격의 질적 변화도 이끌어낸다. 하나의 제품을 완결적으로 생산하던 1명의 자립적 노동자는 매뉴팩쳐와 기계제 대공업 체제에서 세분된 하나의 단순 업무를 담당하는 비자립적 노동자로 전락한다. 매뉴팩쳐 시대에 노동자들이 자기 기능 상실에 맞서 자본에 불복종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29] 마르크스, 『자본』1권 제2판 후기 [30] 엥겔스, 「칼 맑스의 ‘1844년에서 1850년까지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단행본 서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1] 마르크스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사회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들의 상호 행위의 산물입니다. 인간들은 이러저러한 사회 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산력들의 특정한 발전 상태를 상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교류 형태 및 소비 형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생산, 교류, 소비의 특정한 발전 단계들을 상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사회 질서, 그에 상응하는 가족, 신분들 혹은 계급들의 조직, 한마디로 그에 상응하는 시민 사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교환을 수행하는 경제 형태들은 과도적이며 역사적입니다. 새로운 생산력들의 획득과 함께 인간은 그들의 생산 양식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생산 양식과 함께 그들은 오직 특정한 생산 양식의 필연적 관계들일 뿐이었던 모든 경제 관계들을 변화시킵니다. … 프루동씨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성에 조응하여 사회적 관계들을 생산하는 바로 그 인간들이 또한 이념들, 범주들, 즉 바로 그러한 사회적 관계들의 추상적, 이념적 표현을 생산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주들은 그것들이 표현하는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 「맑스가 빠리의 파벨 바실리예비치 안넨코프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32] 이 글이 피의 대숙청이 진행되던 1938년에 발표된 걸 떠올리면 윤석열 뺨치는 망상이 아닐 수 없다. [33]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5권. [34] 엥겔스, 「15. 엥겔스가 베를린의 파울 에른스트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5] 엥겔스, 「16. 엥겔스가 베를린의 콘라트 슈미트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6] 엥겔스, 「19. 엥겔스가 쾨니히스베르크의 요제프 블로흐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7] 엥겔스, 「30. 엥겔스가 베를린의 프란쯔 메링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8] 엥겔스, 「32. 엥겔스가 브레슬라우의 W. 보르기우스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6권. [39] 레닌은 노동자투쟁에서조차 경제주의적 자생성에 굴종하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간단한 이유에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며, 더 포괄적으로 발전해 왔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포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40] 당시 중간계급 또는 사회 최하층의 태도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유별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썼다. “혁명을 중도에서 저지하는 것은 누구인가? 중산계급이다. 왜? 중산계급은 만족에 도달한 이익이기 때문이다. 어제 그것은 욕망이었고, 오늘 그것은 충족이고, 내일 그것은 포만이다.” 다음으로 테나르디에 부부에 대한 묘사다. “이 인간들은 졸부가 된 속물과 타락한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저 잡종 계급에 속했는데, 이러한 계급은 소위 중류계급과 하류계급의 중간에 위치하여 후자의 결점을 약간 가지면서 동시에 전자의 거의 모든 결점을 가져, 노동자의 씩씩함과 억척스러움도 없고 부르주아의 공정한 질서도 없다.” [41] 마르크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42]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43] 마르크스, 「맑스가 뉴욕의 프리드리히 볼테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4권. [다음 시리즈 읽기] #2 자본주의 원리 파헤치기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 스크롤 위치 보정 */ color: #E60012; /* ✅ 붉은색 번호 적용 */ text-decoration: none; font-weight: normal; /* ✅ 볼드 제거 */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마우스 오버 시 강조 */ } .quote-card { background: #fff; border: 1px solid #ddd; padding: 25px; margin: 20px 0; font-family: "Noto Sans KR", Arial, sans-serif; font-size: 1.00em; line-height: 1.8em; color: #333; box-shadow: 0 3px 8px rgba(0,0,0,0.1); border-radius: 6px; } .quote-card .author { display: block; margin-top: 12px; text-align: right; font-size: 0.95em; color: #E60012; font-style: italic;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