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좌파당은 자본주의에 넌더리 난 청년들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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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독일 좌파당은 자본주의에 넌더리 난 청년들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을까?

  • 정은희
  • 등록 2025.07.19 20:10
  • 조회수 191

베를린에서 열린 좌파당 선거 파티. 가운데 있는 인물이 좌파당 공동대표 하이디 라이히네크다 사진: Jens Gyarmaty

 

예상을 뛰어넘은 좌파당의 선전이 말하는 것 

 

지난 2월 독일 총선에서 좌파당(Die Linke)이 이변을 연출하면서 큰 관심이 모아졌다. 좌파당은 전 총선 에서의 4.9%에서 3.9%를 추가 득표해 8.8%(64석)를 차지했으며, 베를린 4개 지역과 튀링겐, 작센까지 모두 6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특히 18~24세 유권자에게서 약 25%를 득표했는데, 이는 이전 선거에 비해 17% 상승한 결과였다. 지난해 12월까지 좌파당의 지지율이 3%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또 좌파당의 유명 정치인이었던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2023년 연방의원 16명과 함께 탈당한 뒤 치러진 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상징적인 반등이었다.

 

반면, 사민당은 9.3% 감소한 16.4%를 득표해 전후 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고, 녹색당도 3.1% 감소한 11.6%에 그쳤다. 기사/기민당 연합은 28.5%로 제1당이,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20.8%로 2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독일 사회가 우경화되는 가운데, 좌파당이 좌측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의 선전은 2007년 창당 이후 근 20년 만에 거둔 중요한 성과였다. 창당 당시 10만 명 이상이던 당원은 축소되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분의 2 이상이 법정 정년을 넘겼지만, 최근 선거에서는 400만 명 이상이 좌파당에 투표했고 6만 명 이상이 당에 가입해 당원 수가 두 배로 늘었다. 평균 연령도 낮아지고 여성과 퀴어 당원도 증가했다.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가 확대됐다.

 

좌파당이 선전한 핵심 이유는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다른 길을 찾는 청년, 여성, 퀴어 등 사회 집단을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방화벽’을 기민/기사당연합이 무너트린 사건이 좌파당이 선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나치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역사적 인식 속에서, 나치 옹호와 이민자 혐오 논란을 일으켜 온 극우 AfD와의 협력을 일체 거부하는 합의를 유지해 왔고, 이 합의를 ‘방화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총선 전 기민/기사당 연합이 AfD와 함께 이민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전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시켰다. 수도 베를린에서만 최소 16만 명이 거리로 나와 “우리가 방화벽이다”를 외치며 저항했고, 각 정당들도 규탄 입장을 냈다. 그런데도 메르츠 기민/기사당연합 대표는 “우리가 제안한 정책이 옳다면, 누가 이를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주로 10~20대의 청년 세대가 방화벽 논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좌파당이 청년세대 지지율을 높이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의 문제였고, “우리 세대의 미래를 누가 지킬 것인가”에 대한 절박한 질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들에게 좌파당 공동대표이자 연방의원인 하이디 라이히네크가 기민/기사당연합을 향해 “파시즘 부활의 길을 닦고 있다”라고 퍼부은 열변은 청년세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령 그의 영상은 틱톡에서만 3천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좌파당 외 다른 정당들도 이민 반대 결의안에 반대했지만, 사민당과 녹색당은 기민/기사당과의 연정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들과 난민 정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자라바겐크네히트당 역시 이민 반대 법안을 지지했다.1) 결국 그들의 유권자들은 좌파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1)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이미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부터 정부의 난민 환영 정책을 비판하며 이른바 ‘워크주의(Wokism)’에 반대하는 ‘좌파 보수주의’라는 이름의 인종주의를 구축해왔다. '워크(woke)'는 애초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서 비롯된 용어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각성을 뜻했으나, 최근 우파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고 비꼬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방화벽이다 (Wir sind die Brandmauer) 사진:  Julius Liebing

 

이외에도 좌파당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청년 세대가 겪는 생계와 주거 부담을 반영한 공약을 내놓았다.

 

실제로 독일 경제위기는 심각하며 이는 누구보다도 청년세대의 현실과 미래를 억누르고 있다. 지난 3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에너지 위기 속에서 독일의 전기세와 유류비는 4년 전 대비 40% 이상, 천연가스 가격은 90% 이상 올랐으며, 임대료는 10년 전에 비해 30% 이상 상승했다. 2021년 2월 기준 100유로의 가치는 현재 약 84유로에 불과하다. 독일 국민의 83%가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는 2022년의 39%와 비교해 크게 증가한 수치이며, 독일대안당(AfD) 지지자들의 경우 그 비율이 96%에 달한다.

 

청년세대는 이 같은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2023년에 발행된 독일청년빈곤보고서에 따르면, 18-24세 청년 25%가 빈곤위험군에 속해 있으며, 현장실습생 40%와 학생 3분의 2가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과도한 수준(소득의 40% 이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교육기관 '헤르티스쿨'의 동향조사(2022)에 따르면 청년층의 주요 불안 요인으로 임대료, 인플레이션, 기후위기, 노후 빈곤 등을 꼽고 있으며, 특히 14-29세 인구의 71%가 인플레이션, 64%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55%가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좌파당은 경제 문제가 당파적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좌파당은 기층의 다수를 대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선거 슬로건으로 “모두는 지배하고자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함께 위에 있는 그들에 맞서 싸운다”와 같은 구호를 채택했다. 또 “임대료가 높으면 집주인이 행복하고, 생활비가 높으면 기업이 돈을 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자들은 요트에 올라탈 것이다”, “난방비가 너무 비싸면 누군가는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등의 구호도 내걸었다. 공약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임대료 상한제 및 동결, 주4일제 도입 및 15유로로의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2배 인상 등을 내걸었다.

 

이뿐만 아니라 좌파당은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극우나 기민/기사당연합에 맞서 성평등 정책을 강조하며 청년 여성과 퀴어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었다. 좌파당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모든 성별 인정, 성별 확정 치료 접근권 향상, 퀴어 노동조합 지원 등 진보적 사회정책을 지지했다. 바겐크네이트가 트랜스젠더 권리를 지지하는 법안에 반대하자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여성 유권자의 11%(남성 7%)가 좌파당을 지지했고, 특히 18-24세 여성의 지지율은 35%에 달했다.

 

이외에도 좌파당은 15,000회에 달하는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으로 유권자 설득에 성공했다. 신입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선거운동에 활력을 더했다.

 

반자본주의 계급투쟁보다 개량주의 노선 고수

 

이렇게 좌파당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기층 민중과 청년 세대, 사회적 약자를 말하며 새롭게 도약했다. 하지만 좌파당이 이들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좌파당의 공약은 탈계급적이며 그 수준도 독일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수준이다. 가령 좌파당은 주거위기 해결을 위해 6년 간 임대료를 동결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이미 폭등한 임대료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몇 년 전 베를린에서 3천 채 이상을 소유한 부동산대기업 ‘도이체 보넨’에 대한 몰수 주민투표 가결을 고려하면, 좌파당은 이보다도 훨씬 미약한 공약으로 자본주의의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좌파당은 문제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로 야기된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변혁 전략이 필요하지만, 좌파당은 계급투쟁을 중심에 둔 변혁 전략은 사실상 포기하고, 제도 내 개량주의 노선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기사/기민당연합이 AfD와 함께 추진한 이민 반대 결의안은 자본주의 위기로 인한 불만을 이주민에게 전가하는 수단이었지만, 좌파당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계급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탈계급적인 인종차별 반대 담론에만 치우쳐 있다.

 

좌파당은 애초 독일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장본인이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민당에서 탈당한 ‘노동·사회 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과 동독의 공산당이었던 ‘민주사회주의당(PDS)’이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노동·사회 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은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했으나 사민주의의 개량주의 노선을 추종했고, 민주사회주의당은 스탈린주의의 한계 속에 있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좌파당은 계급 투쟁을 추동하는 정당이 아니라 개량주의 노선의 선거정당으로서 역할했으며, 그 한계는 반복돼 왔다. 대표적으로 좌파당의 뿌리 중 하나인 민주사회주의당이 베를린 시정부에서 사민/녹색당과 연정할 당시인 2003년에는, 대학·버스·청소 부문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임금 삭감과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동독 공공주택 수십만 채를 헐값에 민간에 매각해 주거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또 최근 좌파당은 이민 반대 결의안에는 반대했지만, 그동안 독일 제국주의 정책에는 타협해 왔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좌파당은 최근 메르츠 정부가 계획하는 ‘국가부채 제동장치(Schuldenbremse)’ 완화 개혁안에 대해, ‘국방비로만 배타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개혁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규 차입으로 독일 재무장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용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튀링겐주 전 총리이자 2025년 2월 직접 선출된 의원 6명 중 1명인 보도 라멜로프는 새 총리와 근본적으로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애초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며, 튀링겐주 총리로서 이미 난민 수천 명을 추방한 이력이 있다.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 ‘좌파’의 한계를 뛰어넘는 계급적 실천 필요

 

좌파당의 부상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2008년 세계 공황 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좌파가 부상한 바 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 영국 제레미 코빈, 미국 버니 샌더스와 민주적사회주의자(DSA) 등 ‘좌파’들은 자본주의에 염증 난 수많은 청년 세대를 끌어모았고, 시리자나 포데모스는 집권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 역시 알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유리된 그들은 자본가계급과 싸우기는커녕 투항했고, 오히려 그 집행자가 된 사례도 있었다.

 

좌파당 역시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적 노동자계급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개량할 수도 없다. 이미 좌파당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하여 그러한 도전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좌파당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학살 규탄 시위를 7월 진행한다고 밝혔으나, 하마스에 대한 ‘당내 의견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기했다. 팔레스타인 학살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적 침략이며, 전쟁위기 확산의 중요 계기라는 점에서, 집회 연기 결정은 좌파당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좌파당 역시 자본주의에 넌더리 난 청년들의 마음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긴다. 다수의 청년이 다른 길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계급투쟁과 좌파당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자본주의의 폐허 위에서 청년들의 열망이 진짜 해방으로 이어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더 급진적이고, 더 단호한 계급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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