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신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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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끔찍한 위기와 전쟁의 시대, 이제는 뛰쳐나갈 때!지난 2월 15일 오후 7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주최 “자본주의 시대전환 :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강사로는 양준석 전진 국제연대위원장이 나섰다. 지난 2월 15일, 양준석 전진 국제연대위원장이 '다시 위기, 전쟁, 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를 강연했다. 이날 강연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과 평화’를 가능케 한 ‘세계화’와 ‘금융화’가 그 모순과 한계로 작동하지 않게 되며, 자본주의가 무너져가는 새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주제로 하였다. 더하여, 그러한 새 시대가 전쟁과 위기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혁명의 시대로의 전환이 가능함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시대’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지난 300여년간의 자본주의 역사 전체의 변화와 그 시대 구분의 요인들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다. 강연을 들으며, 단순한 느낌으로만 체감하고 있던, 1930년대와 같은 전쟁과 위기의 시대가 실제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명확한 수치와 논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모순이 가득한 경제상황, 강대국들의 패권대결과 재무장, 군비증강, 전쟁… 이들은 새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막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사항을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 대한 폭넓고도 정밀한 내용과 함께 접하며 더욱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의 논리와 과학을 전달받게 된 것이다. 특히, “그렇다면 학생으로서, 이러한 상황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하는 고민을 깊이 할 수 있었다. 학생은 변혁의 주체는 아닐지라도 과학을 제공받고 또 제공하며, 열렬히 논쟁하고 투쟁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학생 사회, 나아가 사회 전체에 토론과 설득으로 노동자계급의 과학을 제공하는 것이 학생운동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학생의 역할에 걸맞게, 정말 귀중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을 제공해 주는 강연이었다. 이에 입각하여 더욱 굳건하며 건설적인 토론과 설득이 가능해진 것이다. 더욱 확고한 과학을, 더욱 넓게 제시해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복되어 이전보다도 더욱 끔찍한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전쟁의 시대는 정말 두려운 법이다. 이윤율은 계속 경향적으로 저하해 왔고, 착취할 곳과 수탈할 곳은 계속해서 줄어들어 왔다. 자본은 스스로의 모순에 깊이 빠졌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모순의 대폭발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가, 현재진행형인 탓에, 그 속에서 관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에 있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말이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깨닫고, 끓어오르는 냄비를 뒤엎고, 뛰쳐나와야 할 때이다. 맑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었다. 과거 가장 어두웠던 시기 속, 혁명의 불길은 가장 크게 타올랐다. 그럼에도, 그러한 운동들은 결과적으로 퇴보하고 실패하는 비극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반복될 역사는 또 한 번의 실패로 점철된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아니어야 한다. 이전 시기의 교훈을 바탕으로, 모순의 극대화로 더욱 어두워지는 이 시기 속에서 어둠을 뚫고 붉게, 아름답게 타오르는 해방의 미래로 나아가는, 모두 함께 써 나가는 ‘서사’의 역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공개강연회는 아래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2023-02-28 | 조회 1,945 -
[교육위원회 기획연재 - 노동자의 삶과 철학 3] 능력(경쟁)주의,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소위 ‘인국공 사태’라고 일컬어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된 논쟁을 기점으로 ‘공정성’을 기치로 내세운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에서 나타난 정규직의 격렬한 반발에서 시작해, 능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이준석의 국민의힘 대표 당선과 차별과 혐오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 출범까지의 기간 동안 능력주의·경쟁주의 담론은 말 그대로 절정에 달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배계급의 이전투구로 인해 우익 포퓰리즘의 형편없는 실체가 드러나고 계급투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 양태가 변화하면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파급력이 다소 약화된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현재 노동자와 청년학생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계급적 단결과 운동의 전망을 열어내는 데 있어서 강력한 방해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문재인 정부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건보공단에 이르기까지 ‘공정성’을 앞세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투쟁을 공격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동해왔고 이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촉발시킨 정유라 사태에서 등장했던 ‘불공정’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하게 되자 많은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부르주아 정치권이나 언론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내에서(특히나 청년 정규직 조합원 중심으로)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능력(경쟁)주의가 청년들의 시대정신인 것처럼 재생산했다. 최근 몇 년간 논쟁이 되었던 능력(경쟁)주의 담론은 사실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반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흔히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을 주장한다. 즉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채용 과정을 거친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무임승차’라는 것이다. 채용 시험을 골자로 한 공정성 시비는 교육공무직 법안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2016년 말 교육현장에서의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발의되었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현직 공무원과 교사, 사범대생들과 고시준비생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발의 배경과 내용은 논의되지 않은 채 ‘정유라 법’이라는 등의 음해만 난무했고, 결국 박근혜 퇴진 촛불이 한창이었던 2016년 12월 해당 법안은 철회된다. 이후에도 기간제교사 등 교육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더 격화되었고, 2017년 9월 2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는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공식 결정을 내린다. 이 전교조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민주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세력화된 반대를 표출하는 것에 정당성을 제공하게 되었고, 그간 민주노조운동이 그나마 지켜왔던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함께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공정성 담론의 장이었다. 인천국제공항, 서울교통공사, 한국도로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정규직 전환이 추진되는 곳마다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다. 많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가로막히고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들끼리 분열하고 싸우는 것을 보며 계급적 연대와 단결의 전망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청년들의 능력(경쟁)주의 현실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야만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야만적인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에는 능력주의가 청년·학생들을 대변하는 목소리인 것처럼 유포되었던 것이 크다. 소위 ‘공정성’은 정유라 사태와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대학생들의 외침에서 시작되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의 주장과 담론은 시대정신인 것처럼 여겨지고 사회에서는 청년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극한의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첨병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는 입시 경쟁에 시달려야 했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취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많은 대학생들은 경쟁 과정에서의 공정함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와 같은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서 승리해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쟁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보상에 집착하게 된다. 체제가 강요하는 능력주의 경쟁구조로 인해 능력(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청년들은 ‘경쟁에서 앞선 자와 뒤처진 자를 가르고, 승자는 노력을 보상받아야 하고 패자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청년층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자신보다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자신과 같은 처우를 누린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억울함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여기서 질문해야 하는 지점이 생긴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화신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가라는 물음이다. 한동안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과 ‘노오력’ 등의 말이 유행했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힘든 한국 사회의 지옥 같은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만과 비판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능력주의 경쟁구조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은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쟁 체제 자체에 대한 신물이 났고 많은 불만을 품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그 경쟁에서 이겨보고자 몸부림친다. 이는 체제의 입장에서 능력주의 경쟁구조가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력주의 경쟁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공정성’ 같은 기치를 내세우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실천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경쟁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체제 변혁적인 전망을 택할 수도 있다. ‘공정성’이라는 개념과 ‘헬조선’, ‘노오력’등의 유행어는 그러한 상반된 두 가능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복잡한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왜 능력주의 경쟁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입장이 아니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앞장서는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선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 그리고 현재 운동의 주체적 조건 및 전망의 수준과 연관지어 분석해볼 수 있다. 청년학생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서로 상보적인 성격의 관계를 갖는다.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좌우하기도 하고, 반대로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 청년학생층의 이데올로기가 종속되기도 한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청년학생들의 운동이 전체 운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청년학생들의 운동의 전망은 해당 시기 전체 계급의 역관계와 운동의 수준에 의해 규정된다. 결국 현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계급투쟁의 상태가 청년학생들이 경쟁구조 자체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전체 민주노조운동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자.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해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주의적이거나 반계급적인 행동을 일삼았고, 민주노조 운동 상층의 관료주의 세력은 대사업장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계급적 단결의 전망을 세워내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상태를 이용해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은 노노갈등 등을 운운하며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듯 전체 계급투쟁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전망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청년학생들은 체제에 맞서는 길과 체제에 복종하여 살아가는 길 중에 후자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학생운동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 반동적인 일부 상위권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이를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언론이 전체 청년들의 공통된 주장인양 전파하면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이와 함께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물적 토대의 측면도 중요하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핵심은 극심한 일자리 경쟁이다. 턱없이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 속에서 더 나은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에 몸을 내던져야 하는 취업 준비 청년들의 조건은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 자체에 맞설 여유와 전망을 갖는 것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체제를 깨뜨리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취업 경쟁을 통해 당장 자신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최소한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국가책임일자리 운동으로 능력(경쟁)주의를 뚫고 나가야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투쟁의 방법과 나아가야 할 방향 자체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우선 비정규직 투쟁의 확대와 조합주의를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체제에 맞서는 투쟁의 전망에 자신감과 확신을 갖지 않는 이상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선도하면서 경쟁주의에 맞선 계급단결을 주도하고 청년층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투쟁을 전개하는 등 다수 청년들을 대변하는 확실한 전망을 보여준다면, 청년들이 지금까지 능력주의 경쟁구조 아래에서 쌓아왔던 불만은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청년층의 대다수가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투쟁을 벌이게 된다면 전체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급변하고,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서기 위한 핵심적인 지점은 노동운동과 청년학생운동이 공통으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로 작동하는 일자리에 대한 요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취업 경쟁이 지속된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 자체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고 이를 국가가 책임지라는 요구가 필요하다.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이 일자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라며 자본과 국가를 상대로 함께 투쟁해서 일자리 경쟁을 없앨 수 있다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물적 토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 더욱이 국가책임일자리운동은 취업 준비 청년들이 안정된 삶을 쟁취하고, 자본주의 위기와 산업전환 앞에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쟁취할 수 있는 공통의 핵심적인 요구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투쟁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클 것이다. 이러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결국 자본주의 철폐라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이데올로기 투쟁과 일자리 등의 요구를 내건 운동을 통해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는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맞설 수 있다는 투쟁의 자신감이 생겼다면, 이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능력주의·경쟁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은 곧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현시기 능력주의·경쟁주의에 맞선 투쟁이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당면 과제인 이유이다.2023-01-26 | 조회 2,265 -
한국지엠 행동하는 노동자들이 공장에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편집자 주) 지난 11월 2일 한국지엠의 원하청 공동투쟁 연대를 위한 모임인 '한국지엠 행동하는 노동자‘에서 한국지엠 1•2공장•복지관에 이태원 참사 관련 대자보를 수기로 써 붙였습니다. 해당 대자보의 내용을 기사로 전합니다. 침묵이 아니라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10.29 참사가 벌어져 156명이 희생됐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뭘 했는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거짓말하기에 급급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선동성 정치적 주장"이라 매도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경찰청장 윤희근, 용산구청장 박희영이 갑자기 태로를 바꿨다. 사과를 한 것이다. 알고보니 그 이유는 무려 열 한 차례의 시민들의 112 구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구조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 현장에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생명과 안전은 방치됐다. 결국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적 참사로 이어졌다. 2014년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학생들도 구조를 요청했지만 국가는 차가운 바닷속으로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방치했다. 이번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이태원의 젊은이들은 구조를 요청했지만 묵살됐고 희생됐다. 정권 지지율만 걱정하는 그들에게 이제 우리는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사 책임자 처벌 이태원 골목길 참혹한 현장에서 살려달라 절규하는 희생자들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술만 처먹었지 ‘사전준비’도 ‘현장통제’도 ‘비상 시 계획’도 없었습니다. 애도를 강요하는 애도기간 지정과 면피를 위한 ‘쉴드 매뉴얼’ 시전에만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참사라 부르지 말고 사고라 해라. 희생자라 하지 말고 사망자라 해라. 근조리본에 근조를 쓰지 마라. 이런 해괴망측한 지침만 있고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반성은 없습니다. 이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이번 참사가 발생하지 않은 것 마냥 안전과 국가의 무한책임을 떠벌리고 있습니다. 장례비 줄 테니 빨리 장례나 치르고 이번 참사는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식입니다. 각자도생하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 젊은이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이태원 참사에 분노해 야합니다. 희생자 분들을 잊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잊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강요된 슬픔에 내몰리고 싶지 않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의 일성이 국가애도기간 지정이었다. 사과, 책임통감이라는 말 대신 애도기간을 설정한 것은 철저히 집권 세력의 책임 회피를 위한 정치행위였으나, 도리어 참사의 원인을 물으면 정치병 환자라고 몰아세웠다. 축제의 주최가 없다하여도 수년째 수십만의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 적절한 공권력의 투입으로 동선만 통제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였고, 국가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데, 그 의미를 스스로 부정했다. 그리고 더 최악인 것은 참사 초기, 이유를 막론하고, 사과했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112 신고내역이 공개되고, 여론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형성되지 않자 그제서야 억지 사과에 이르렀다. 이 참사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 밝히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은 계속 위협받을 것이다. 위정자는 돌을 맞을 때 맞아야 하나 현 집권 세력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비정하나, 각자도생의 시대다.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빈다.2022-11-16 | 조회 1,402 -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응답하라” - 안전한 일터를 위한 청년들의 외침지난 1일,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트 노동자 힘내라 청년공동행동과 학생사회주의자연대(준)을 비롯한 42개 청년·학생단체가 허영인 회장과의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면담을 통해 허영인 회장에게 SPL 산재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물론 SPC그룹 모든 작업장에서 △노동자 휴식권·작업중지권 보장 △과로노동 철폐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부터 이태원까지, 이제 안전할 권리가 생존권 기자회견은 SPL 산재 희생자와 이틀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를 비롯한 지금의 20대에게 청소년, 청년기는 참사의 연속이다. 이태원의 20대가 세월호 당시의 10대였고, 구의역과 태안화력, SPL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연거푸 또래의 노동자, 시민을 잃었다. 이들에게 일터와 일상의 안전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을 포기한 자본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국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조건희 활동가는 “5년간 SPL 공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는 △2018년 1건 △2019년 6건 △2020년 14건 △2021년 7건 △2022년(1~8월) 10건이며, 이는 기본적인 안전장치와 인력이 보장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SPL 사고에서도 “희생자는 2인 1조 매뉴얼을 보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다. 15kg가량의 중량물을 계속 취급해야 했으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교반기에 손을 넣는 작업을 해야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주야 맞교대와 같은 SPC의 장시간, 과로 문제도 지적했다. “주야 맞교대를 하는 노동자의 수면시간, 수면의 질, 생체리듬의 혼란, 야간노동으로 인한 호흡기계, 당뇨, 소화기계 등의 질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성은 이미 알려져 있다”며 “‘끊임없이 굴러가는 쳇바퀴’를 위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갈아 넣는다는 점이, 비유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참담하다”고 밝혔다. SPC와 같은 위험한 일터가 나의 직장이 될 수 있다는 막막함도 적지 않다.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의 기민형 활동가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SPC의 노동환경을 보면 앞날이 막막하다. SPC 그룹의 산재사고는 일주일에 1번씩 일어난다고 한다. 끼임 사고로 죽은 노동자는 5년간 6명”이라고 밝혔다. 지금 SPC를 안전한 일터로 바꾸지 않으면, 나의 생존권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안전한 일터와 일상, 우리가 만들자 SPC와 이태원을 비롯한 일련의 참사로, 자본과 국가가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젊은 세대에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다는 문제의식도 적지 않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안전한 일터와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에 주말 포함 불과 사흘 만에 42개 청년·학생단체가 동참한 이유기도 하다. “절망할 바에야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들은 특히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현장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온전히 보장되어야 하고, 위험한 작업방식을 노동자가 바꿀 수 있어야 하며, 과도한 노동시간과 노동량을 노동자가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자의 조직된 힘이 있어야 하므로 노조 할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청년들이 허영인을 꼭 만나고자 하는 이유다. 그간의 불매운동과 대자보 작성을 넘어,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SPC에만 국한된 실천도 아닐 것이다. 안전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제2의 김용균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한 비정규직 철폐, 발전산업의 국유화도 이제 청년 세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석자들은 SPC 허영인 회장에게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대상은 허영인만이 아니다. 이태원의 구조 신호를 외면한 경찰, 이태원의 안전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정부, 노동자의 안전을 이윤과 바꾼 모든 자본과 싸우고 안전한 사회를 함께 요구해야 할 것이다.2022-11-02 | 조회 1,624 -
할로윈 참사의 희생자에겐 죄가 없다할로윈 압사사고 10월 31일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10월 29일 금요일 밤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할로윈 행사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이의 증언으로는 “사람들이 걷는 게 아니라 휩쓸려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아직 자세한 사고경위는 조사중이나, 유명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인파의 일부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닥에 깔린 사람들은 밀려들어온 인파에 압사당했다. 오전 7시 현재까지 149명이 죽고 76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부상자 가운데 심정지로 병원에 이송된 이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 한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20대라 하며, 그 중에서도 키가 작은 여성들이 더 많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소식을 듣는 순간 할로윈 파티에 갔을법한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고, 오늘 어떤 소식을 올린 게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아무 게시글이 없는 이들은 ‘자느라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10만 명 모일 건 알았지만, 압사사고 대응 계획은 없었다 이렇게 인파가 몰리는 행사라면 정부 차원에서 적절한 인파 통제와 관리가 필요했다. 집회, 시위에는 그렇게 많은 경찰이 나와 통제를 하는데, 왜 정작 이런 행사에 필요한 대중의 안전을 위한 공적 준비는 하지 않았을까? 기사에 따르면 용산구에서는 27일 오후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해 방역, 안전사고예방, 청소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세 업무별로 각각 방역추진반, 행정지원반, 민원대응반으로 나눠 업무를 분장한 것 같은데, 방역추진반은 ‘이태원 일대 방역·소독을 실시, 이태원 일대 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세계음식거리, 클럽거리, 지하철 역사 등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을 하고, 민원대응반은 ‘이태원관광특구 및 문화유통시설 방역관리, 소음 특별점검, 가로정비, 불법 주·정차단속, 이태원 일대 청소대책’를 추진한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안전사고 예방’을 주 목적으로 하는 듯한 ‘행정지원반’의 업무는 ‘‘핼러윈데이’ 대비 종합상황실을 운영’한다는 한 가지 항목밖에 찾아볼 수 없다. 대규모 인파 집결이 예상됨에 따른 안전대응계획 마련에 대한 항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경찰 또한 행사 이전에 용산경찰서를 중심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경찰은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0만 명의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을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의 안전대책에는 ‘불법 촬영이나 강제추행, 절도 등의 범죄 가능성에 대비해 200명 이상의 경찰력을 이태원 거리 곳곳에 투입한다’, ‘클럽과 유흥주점 등을 중심으로, 최근 늘고 있는 마약범죄 관련 단속도 강화한다’는 내용은 있었지만 대규모 인파 결집에 따른 압사사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다. 대규모 집회 시위를 할 때 집회시위의 조직위원회는 안전스태프를 두고 경찰을 대신해 대오를 안내하고 통제하여 안전사고를 대비하고는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3년 만에 열리는 행사에 수용가능한 수준을 넘는 수많은 인파가 모일 것임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안전관리 대책도 공적으로 계획되고 집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전한 행사를 위한 공적인 조정이 필요한 그 순간에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희생자에겐 죄가 없다 뉴스에는 ‘그러게 왜 서양명절을 챙기냐’, ‘귀신놀이 하다 귀신됐다’며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런 조롱을 할 수 있는가? ‘외래명절 할로윈을 기념하러 모인 게 잘못’이라며 ‘할로윈이 문제’라는 주장은 논할 가치도 없다. 전통명절이든 외래명절이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추석 때 인파가 몰려 사고가 나면 애도할 일이고 할로윈에 사고가 나면 희생자의 잘못인가? 사고의 원인을 죽은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할로윈데이를 즐기려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조롱하는 모든 언행에 맞서야 한다. 그들은 놀고 싶었을 뿐이고 인생을 즐기려했을 뿐이고 그것은 잘못도 죄도 아니다. 이태원에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것은 코로나 이후 더욱 더 불안정하고 불평등해진 현실에 대한 우리 세대의 억눌린 마음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거리두기와 봉쇄조치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는 더 낮고 열악한 곳으로 흘러,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청년들을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왔다. 봉쇄되고 고립된 불안정한 청년들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보장했는가? 단지 코로나뿐만이 아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라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절규는 기후정의행진의 구호가 됐고 우리 시대의 일반적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 됐다. 극심한 불평등과 차별 속에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축제와 파티로 그 분노와 절망을 잠시나마 잊고싶다는 욕망을 품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그 마음은 지극히 정당한 인간의 욕망이다. 그 당연한 욕망을 그저 억누르기만 하는데, 어떻게 축제에 나온 청년들에게 그 잘못을 물을 수 있는가? 나 또한 친구들과 할로윈 파티를 즐기려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 “우리도 31일 저녁에 이태원 가볼까?”라고 묻기도 했다. 만약 그날 내가 놀러갔다 생각지도 못한 인파에 깔려 죽는다면, 그 죽음은 할로윈이든 뭐든, 숨막히는 이 사회에서 잠시나마 기념일을 맞아 놀고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내 잘못인가? 최근에 올해 겨울은 코로나 이후 회복된 세상이 올거라 기대하는 이들에게, 에너지위기와 인플레이션, 전쟁이란 형태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전면화되는, 참혹한 겨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 겨울의 초입부에, 숨막히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나온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을 접하니, 할로윈에 머리를 식히고 놀고 싶었던 내 마음에 이 세상이 찬물을 들이붓는 것만 같다. 차고 참혹한 겨울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공적 안전관리 체계를 가동하지 못하는 이 무능한 시스템을 갈아엎기 위해 노력하는 길뿐이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조롱하고, 놀고싶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너무나 정당한 내 세대의 그들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모든 언행에 맞서야 한다. 최근 나에게 이란의 상황을 전해준 익명의 20대 청년은 ’우리는 자유를 원하고, 예배를 하는 대신 파티를 하고 싶을 뿐이다‘고 얘기했다. 할로윈을 즐기고자 이태원에 간 이들에게 방종의 죄를 묻는 일은 히잡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겠다는 여성들에게 총칼을 들이미는 이란 정권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다. 이번 참사로 죽은 모든 이들을 애도한다.2022-10-30 | 조회 2,585 -
[동영상] 우리의 연대는 프로모션보다 강하다! | 라이더유니온 파업라이더유니온이 쿠팡이츠를 상대로 10월 18일(화) 파업을 했습니다. 2021년 3월에 쿠팡이츠는 기본배달료를 3100원에서 2500원으로 20% 삭감하고, 100미터 당 70원 거리할증을 폐지했습니다. 노조는 1년 간 교섭했으나 대화가 되지 않아 파업에 나섰습니다. 파업의 순간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발언을 공유합니다.2022-10-18 | 조회 1,717 -
[카드뉴스] 우리의 연대는 프로모션보다 강하다! | 라이더유니온 파업2022-10-18 | 조회 1,729 -
[카드뉴스] 저승가서도 앱 켜고 배달하라는 겁니까?2022-10-17 | 조회 1,6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