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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진짜 사장 서울시와 국가를 앉히는 돌봄 노동자 투쟁을 위해어느 순간부터 정말 많은 주체들이, ‘돌봄’이란 단어를 자기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선거 공약집만 보더라도 돌봄과 관련한 말들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민간 기관이 주축이 된 시스템이, 복합적 요구를 가진 대상자를 위한 통합적 사례 관리 역량을 저하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이 돌봄 노동자들을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의 굴레로 내모는 것은 물론이다. 누구에게나 돌봄은 필요하다지만,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고 국가가 돌봄 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않는 현실은 개인, 특히 여성에게 헌신을 강요하거나 이를 포기하도록 선택을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는 공적 돌봄 시스템을 확충하기는커녕,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등 기존의 공적 기관마저 해산시켰다. 그 결과, 돌봄 서비스의 공급·품질 관리·공공성 확보·현장 전문성 강화·민관 협력 조정 등에서 발생한 공백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일했던 공적 돌봄 기관,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방문 노인 요양, 어린이집 등 아이 보육, 장애인활동지원 등에 대해 공적 돌봄을 제공하던 서사원이 2024년 강제 해산되었다.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대한 조례” 폐지를 의결했고, 5월 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서사원 소속 수백 명의 돌봄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해고자가 되었다. 해산 과정까지 서울시와 의회는 집요했다. 그들이 얘기하는 방만 경영의 핵심은 “월급제 노동자들이 병가를 자주 쓴다.”였다. 2022년 3월, 서사원 사측은 병가 사용을 문제 삼는 보도 자료를 냈다. 황정일 당시 대표는 “병가를 사용해도 60일까지 평균임금 100%가 보장되니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70%로 삭감한 안을 강요했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서사원 운영 출연금 100억 원을 삭감했다. 월급제와 정규직이 문제라며 성과급제 도입과 기관 수탁운영 종료 등이 포함된 ‘혁신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공적 기관의 돌봄 사례를 단순히 '1등급' 기준으로만 축소 집계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의 실적이 적다는 논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민간 기관이 기피하는 사각지대의 수요자들을 돌봐야 했던 현장의 맥락은 그 과정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돌봄 기관의 95% 이상이 수익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민간 기관이라는 사실은, 2인 1조 팀 근무는 물론 이들 기관이 돌봄 제공을 회피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 김가희 외(2021)[1]는 공공부문 사회서비스원이 민간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종사자 전문성 증진을 위한 체계화된 교육 제공 및 서비스 표준화, 중증 고난 이용자 대상 양질의 집중 돌봄 제공(1대 다 방식의 팀제 운영) 등을 지목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적 돌봄을 제공했던 서사원의 역할도 이러한 특징을 띄고 있는데, 도전적 행동이나 일부 최중증 치매, 코로나19 감염 등 민간이 회피하는 경우 센터 차원으로 적극 개입해 왔던 게 그 예시였다. 공적 돌봄의 이름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은 현장의 실제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현장직을 배제하고 진행된 사측의 위험성 평가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안전보건 매뉴얼이 돌봄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한’ 공적 기관이었기에, 서사원이 담당했던 돌봄 영역은 매우 협소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1,838개소 중 서사원이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2023년 12월 기준 고작 6개소, 0.3%에 불과했다. 서사원에서 일하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2023년 해고당한 한 요양보호사는, 한 토론회에서 “아프면 해고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프면 다른 요양보호사가 대신 나와 주었습니다,”[2]라며 서사원에서 일했던 시기를 회고했다. 동시에 그녀는, 서사원을 “로또 같은 일자리”라고도 말하며, 공적 돌봄이 여전히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사원 노동조합 및 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사원 해산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서사원 강재 해산 이후 공대위는 서사원 재설립과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여러 활동을 진행했다. 윤석열 퇴진 국면 열린 광장에서, 서사원 해산 과정 규탄 및 돌봄의 공공성 확보를 촉구하는 서울시민 5,000여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3] 돌봄과 관련한 다양한 주체들과 간담회를 이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서사원 강제 해산 2주기를 맞아, 서울시청 앞에서 “5.23 공공돌봄 선언대회”를 조직했다. 기관 복원만으로 그칠 수 없는 공적 돌봄 확보 투쟁 2026년 5월 23일, 서사원 해고 노동자, 돌봄 유관 노동자, 단체 활동가 등 150여 명이 모였다. 모여서 돌봄은 상품이 아니라고, 돌봄 노동자는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고, 공공돌봄 확충하고 서울시가 책임져라고 외쳤다. 서사원에서 해고된 후 민간 기관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한 노동자의 집회 발언을 일부 발췌한다. “서사원 문 닫고 지난 2년 동안, 민간 요양기관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민간 시장은 더 좋아진 것도 없이, 그야말로 지옥 같았습니다. 월급제가 아니라 시급제로 일하니까, 돌보던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시면 당장 제 생계가 끊깁니다. 요양보호사 일하러 갔는데 이용자가 아닌 가족들의 일을 시키질 않나, 온 집안 대청소를 시키질 않나, 업무 범위를 넘는 무리한 요구를 해도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하며 서비스를 끊어버립니다. 2~3개월 동안 험한 꼴 당하며 잘린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기는 합니까?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하고 고충이 있어도 해결이 안되는 게 지금의 민간 돌봄 현실입니다. 더 가슴 아픈 건 어르신들입니다. 민간 기관들은 돈 안 되고 서비스를 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어르신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안 가려고 난리입니다. 서비스 선별 수용이니 돈이 안되거나, 혼자서 책임지기 어려운 고강도 악성 이용자라 거부니 하면서 차별당하는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지금도 서사원을 목 놓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봄은 이렇게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나이 들고 아프면 국가가, 사회가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멀쩡한 서사원 없애고 어르신들과 우리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서울시의 행태는 시민을 향한 폭력이었습니다.”[4] 6월 3일 지방선거 국면, 공대위는 정책 요구안을 토론하고 각 정당에 질의서를 보냈다.[5] 핵심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서사원을 통합돌봄지원법에 따른 서울시의 '전문지원기관'으로 지정, 시군구별 돌봄 정책을 조정·지원을 담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상 강화 △돌봄 노동자의 완전 월급제 및 정규직화 △ 돌봄 노동자의 유급병가 확보 및 대체인력 지원, 노동안전보건 관련 조치 강화 △서울시가 위탁기관의 실질적 사용자로서 원청교섭에 나설 것 △서사원 재설립 및 체계 구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보장 여전히 과제가 많다. 서사원 재설립의 기미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설령 재설립되더라도, 민주당 정권은 그 위상을 축소하는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 역시 크다.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사회서비스원으로 축소시킨 전례가 있다. 그들은 사회서비스원법 입법 과정에서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설치 의무 규정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원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우선 위수탁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한 바 있다. 서사원 복원은 단순히 한 공공기관의 회복만으로 그칠 수 없다. 공적 돌봄이 필요한 수많은 수요자에게 가닿고,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돌봄 노동자들은 기관 사측이 아니라 진짜 사장 서울시, 국가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서사원 해산 과정,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그저 읊어대는 서사원 사측과 무의미한 교섭을 지속해야 했다. 이러한 선례를 반복할 순 없다. 공적 돌봄 확충을 위한 우리의 절실하고 필요한 요구가 힘을 얻기 위해선, 돌봄 노동자 주체의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조직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적 돌봄의 요구를 내건 돌봄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서울시와 국가를 끌어앉힐 수 있는 투쟁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하지만 차분하게, 꾸준히 조직화를 이어가자. 공적 돌봄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고 정착해 가는 주체로서 노동자들을 만나며, 공적 돌봄의 깃발을 꽂아나가자. ------ [1] 김가희, 이상우, 강은나. 사회서비스원 종합재가센터 운영현황과 개선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 공공정책연구 제38권 3호. 2021 [2] 2024년 3.8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지금, 여기, 여성노동자의 실태를 묻다.” 2024 [3] 서울시는 질질 끌다가 공청회를 진행했는데, 그들이 낸 계획에선 공공 돌봄 확대를 위한 계획과 전망은 없었다. [4] 5.23 공공돌봄 선언대회 보도자료 중 https://docs.google.com/document/d/1bzEX2BtHLa31P8-D_0JTf_kPKPPE_LQiwoUG03zzLUM/edit?tab=t.0 [5] 정의당을 제외하고 답변이 오지 않았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2026-06-05 | 조회 18,178 -
[번역] 마르크스주의, 트랜스 해방, 그리고 젠더의 사회적 구성새로운 세대의 퀴어 활동가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트랜스 및 퀴어 해방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는가? 2020년은 미국 역사상 트랜스젠더 살해 사건이 가장 많았던 해였다. 미국 전역의 주 정부들은 현재 트랜스 청소년의 권리를 대폭 축소할지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세력은 “트랜스젠더 문제”에 대해 손만 비비며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퀴어 활동가 청년층은 점점 더 부상하고 있다. 이들 청년들—그중 다수가 트랜스젠더이다—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특히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요구를 운동의 의제로 포함시키도록 이끌었다. 이를 위해 브룩클린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흑인 트랜스젠더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진보적인 본능과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태동하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 퀴어 활동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불신한다. 이는 주로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방 캠페인의 결과다. 활동가들의 살해나 투옥 같은 극단적인 사례부터, 퀴어 권리의 일부 진전과 같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특정 요구를 신자유주의에 편입시킨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본가 계급은 오랫동안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지지자들을 스탈린주의와 연관시키며,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 투쟁을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분리시키려 해왔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비방 캠페인은 — 주로 스탈린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적 실패와 결합되어, 많은 활동가들로 하여금, 마르크스가 단지 자신의 경험 바깥을 바라볼 수 없었던 이성애자, 백인, 유럽인, 시스젠더 남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의심하는 이들은 동성애 해방 문제에서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의 역사적 실패와 트랜스 해방 문제에서 일부 단체들의 현재의 실패를 모두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트랜스 해방 지지를 반대하고자 일부 소위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사용하는 논리를 분석해 보면,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히려 그들은 정체성과 욕망의 해방을 반대하는, 인종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자본주의 국가 편에 서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되는 철학적 원칙을 거부한 반동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가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마르크스를 구출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유일하게 진정한 해방 전략이라 주장해야 한다. 트랜스혐오적 “좌파”의 실패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왜곡을 반박하기 위해, 유감스럽게도 그들 중 일부와 논쟁을 벌여야 한다. 20세기 이래 자칭 좌파 내에서 게이 및 트랜스 해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세력은 스탈린주의였다. 스탈린과 그의 동맹자들은 동성애 합법화와 같은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사회적 성취를 배신했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는 보수적인 사회적 세력이 되어, 노동계급의 전체 부문이 제기한 요구들을 진정한 사회주의를 방해하는 소부르주아적 혼란으로 치부해버렸다. 이는 러시아, 쿠바, 그리고 20세기 수많은 변형된 노동자 국가들*에서의 반퀴어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미국과 그 밖의 지역에서 공산당 내 퀴어 당원들을 제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러한 사회적 보수주의는 오늘날에도 많은 스탈린주의 분파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기사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심각한 정치적 문제들로 가득 찬 영국 공산당은, 2019년에 “‘성별 유동성’이라는 반동적 악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는데, 이 글은 트랜스젠더들과 우리의 동맹들이 “성별의 물질적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그들이 성(sex)과 젠더(gender)가 동의어라고 주장한다(두 개념은 동의어가 아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1] 이것이 반反-트랜스 “좌파” 대다수의 주된 논리다. 하지만 트랜스혐오적인 “좌파”는 스탈린주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랜스 해방을 가치 있는 투쟁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절충적인 성향의 집단들도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트랜스해방투쟁이 다른 투쟁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든 억압을 무시하고 착취에만 집중하는 계급 환원주의적 전략을 함의한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판”을 표방하는 블로그 Freer Lives와 같은 다른 이들은 더 나아가 트랜스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고 주장한다. Freer Lives가 2020년에 발표한 “모든 좌파는 여성 권리에 관하여 J.K. 롤링을 지지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장했듯이, 젠더 이데올로기의 성차별주의에 맞서 여성을 옹호하는 롤링의 입장은, 실제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 새로운 성차별주의를 이용해 여성 억압을 유지하려 해온 자본가 계급과 그 엘리트 하수인들의 이익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좌파-자유주의자들(left-liberals)과 극좌파들은 바리케이드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 안타깝게도, 퀴어성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보수주의는 20세기 일부 트로츠키주의 정당들 속으로도 스며들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 중에는 게이 해방 운동에 동참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 내 최대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스톤월 사건 전후로 급속히 성장하던 게이 권리 운동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퀴어 민중들에 대해 매우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카스트로가 이끄는 관료 체제에 무조건적인 정치적 지지를 보냈다. SWP는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퀴어임을 드러낸 사람들을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6년, CWI(또 다른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당원들은 팸플릿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진지한 사회주의자들은 “게이 해방”이 노동 운동에 독립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조금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그 반대를 증명하기 위해 때때로 제시되는 온갖 기이한 이론과 감성적인 주장들은 순수한 학생 정치에 여전히 만연한 극심한 혼란과 전망 부재의 증상일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퀴어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 반대가 퀴어 민중들의 삶과 퀴어 해방 운동에 대한 정치적·물질적 반대로 빠르게 변화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노동계급 내 퀴어 구성원들과 정치적 경향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분열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왜냐하면 노동계급 내 퀴어 구성원들은 마르크스주의 정당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워줄 것이라고 항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매우 명확해야 한다. 퀴어 및 트랜스 노동자에 대한 지지는 어떤 사회주의 단체에게 있어서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요소여야 한다. 그러나 퀴어 및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러한 노선의 문제는 단순히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 투쟁을 거부하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이 입장은 또한 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 모두에 대한 중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즉, 트랜스젠더 해방을 거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세력들은 부르주아 도덕에 적응하며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토대마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선을 취하는 집단들은 사회 통제를 유지하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편에 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신체와 욕망이 온전히 발전하는 것을 계속 부정하는 사회의 가장 우익적인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있다. 이 집단들은 사실상 퀴어 해방 운동을 신자유주의에 넘겨주어, 운동이 포섭되도록 방치하고 국가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론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이 소위 좌파 집단들은 모든 좌파 정치의 근본적 목표인 인간 해방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서 반동 세력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우리의 동지가 아니며, 좌파들 속에서 패배시키고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측면에서만 그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젠더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젠더는, 이 트랜스혐오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물학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현대적 형태에서, 젠더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현대적 형성에 이르게 된 역사적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존 디에밀리오(John D’Emilio)가 『자본주의와 게이 정체성』(Capitalism and Gay Identity)에서 쓴 바와 같이, 게이와 레즈비언은 항상 존재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역사의 산물이며,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등장했다. 그들의 출현은 자본주의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20세기 후반에 수많은 남성과 여성이 스스로를 게이(gay)라고 칭하고, 비슷한 성향의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 체제 덕분이었다.[2] 디에밀리오(D’Emilio)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부상이 정체성(identity)의 발명에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생산이 가정 밖—공장 및 여타 작업장—으로 점점 더 이동함에 따라, 사람들은 가족 밖에서 삶을 꾸릴 자유를 점점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이것이 정체성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 이전에는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게이’라는 정치적·개인적 범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젠더의 경우에도 유사한 과정을 볼 수 있다. 젠더화된 관계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현재 이해되는 바와 같은 젠더의 구체화는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일어났다. 많은 전(前)자본주의 문화는 성별에 대해 비이분법적인(nonbinary)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원주민 문화에서 특별히 말살됐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자본주의 생산 체계에서 매우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바로 전형적인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핵가족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등장했으며, 이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를 재확인하고 강화했다. 핵가족이라는 매우 귀중한 자본주의적 도구를 보호하기 위해, 이 이성애규범적 가족 단위에 도전하는 젠더 표현들은 억압당하고 가혹하게 처벌받았다. 실제로 젠더 구조는 항상 지배와 폭력의 기반 위에 있었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쓴 바와 같이, [어머니]의 전복은 여성 성별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성은 가정에서도 지휘권을 장악했고, 여성은 격하되어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남성의 정욕의 노예이자 단순히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러한 격하된 지위는 … 점차 완화되고 미화되었으며, 때로는 더 온화한 형태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결코 폐지된 적은 없었다. 젠더의 형성 젠더 비규범성에 대한 억압은 문화의 거의 모든 요소에 스며들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헤게모니적 이해를 형성했다. 이 과정은 “젠더 규율”(disciplining gender)이라고 불려왔다.[3] 이를 통해 우리는 젠더가 결코 생물학적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적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학적 범주이다. 영국 공산당의 횡설수설로 돌아가 보자면, 그들은 앞서 인용한 같은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트랜스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은 성별이) 일종의 의학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즉, 출생 시 의사들이 모여서 의논한 뒤 당신에게 “젠더 역할(gender role)을 할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임산부 여러분: 20주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여러분은 아기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레드 파이트백’(Red Fightback)은 이렇게 말한다.)[4] 그건 전부 의학적 음모일 뿐이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그들이 아기를 검사하고 말한다, 남자아이라고, 또는 여자아이라고 —그것도 전부 의학적 음모다! 이런 것들(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남성과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다 — 모르겠는가?? 간성(인터섹스) 아기들의 존재는 차치하고라도 — 그들은 자신들 주장의 전체적인 유사과학적 근거를 무너뜨릴까 봐 이 문제를 신중하게 회피하고 있지만 — 아기가 태어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정체성과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공상적인 입장이다. 갓 태어난 ‘남아’에게는 파란 담요를, ‘여아’에게는 분홍 담요를 사준다. 최근 잇따른 지독한 젠더-리빌(성별공개) 파티 사례만 봐도,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젠더에 얼마나 큰 의미가 부여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의학적 음모는 아니다 — 비록 우리가 간성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아기의 동의 없이 규범적인 신체상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의학적 음모이지만 — 오히려 출생 전부터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사회정치적 맥락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칭 마르크스주의 단체가, 사회가 아이들에게 출생 시 젠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현대 사회 전체를 외면하는 것이며,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다. 게다가 젠더를 구성하는 요소의 상당 부분은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소위 ‘젠더 표지(gender markers)’에 있다. 예를 들어, 드레스는 여성적이고 정장은 남성적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수는 아니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 속에서 하이힐이 남성의 것으로 여겨지거나 소년들이 종종 드레스를 입던 시절도 있었다. 시아라 크레민이 저서 『남성화된 여성: 크로스드레싱의 변증법』(Man-Made Woman: The Dialectics of Cross-Dressing)에서 설명하듯이, 서구화되거나 유럽적인 여성적 스타일의 즐거움은 그 무엇보다도 미학적이다. 우리는 차려입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비단 같은 원단, 반짝이는 것들, 그리고 생생한 색상을 즐긴다. 역사의 우연이 파란색을 남성적인 상징으로 만들었다. 남성에게 있어 면 양말은 좋고, 팬티스타킹은 나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비합리성이 제2의 본성이 되었다.[5] 무엇이 여성에게는 하이힐이, 남성에게는 부츠가 어울리도록 만들었을까?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젠더는 사회적 지위와 다양한 젠더 표지들로 구성되며, 크레민의 말대로 “역사의 우연”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젠더 자체가 사회적 구성물인 반면, 젠더화(gendering) 행위 자체는 매우 물질적인 과정이다. 특정 방식으로 젠더화된다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매우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젠더화에 저항하는 것은 종종 사회적 고립과 심지어 폭력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순은 트랜스 경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젠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별화된 범주들의 집합이자, 억압과 종종 폭력까지 수반하는 매우 실체적이고 물질적인 과정이다. 이는 두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첫째, 젠더화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개별화된 관점에서는 트랜스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해방이 개인 단위의 과정(person-by-person process)이라고 주장하는 이 글 후반부에서 논의할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젠더화는 그 어떤 개인적인 행동이나 개인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에, 해방은 반드시 집단적인 반자본주의 투쟁(mass anti-capitalist struggle)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젠더의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들이 아니라, 오히려 젠더에 대한 비역사적인 생물학적 정의를 고수하며 젠더의 역사적 현실과 젠더화의 물질적 현실을 모두 거부하는 바로 이 “젠더 비판적 좌파들”이다. 영국 공산당과 그 일당이 음모론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사실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쉽게 관찰되고 기록된 사회적 통제 과정 중 하나이다. 변증법적 젠더 이 혁명가 행세를 하는 트랜스혐오자들은 젠더의 역사적 현실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공인된 정치적 입장과 반동적인 정서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고집스럽게 찾으려 하면서 변증법 자체도 거부한다.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어, 결코 변하지 않거나 새로운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비변증법적이다. 이는 출생 시 부여받은, 삶의 물질적 현실과 무관하게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정체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위에서부터(*역주: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로부터) 내려받은 존재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이러한 반反-트랜스 가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려면, 젠더는 변할 수 없다는 그들의 노선에 동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설령 젠더가 생물학적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젠더가 변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눈과 머리카락은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컬러 렌즈를 착용할 수도 있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들이 “머리카락 색깔의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는 것인가? 태어날 때 사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가 사고로 한쪽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물질적 현실을 배반하는 것인가? 변화하는 조건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생물학적으로 미리 정해진 속성들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설령 젠더를 생물학적 성별(Sex)과 동의어로 보는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정의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다면 간성인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성인 영아들에게 그들의 동의 없이 성별의 규범적 범주에 맞추기 위해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은, 이 간성인 아이들의 물질적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부르주아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젠더 거부 행위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는 이 사회주의자들은, 왜 이러한 비동의적 성전환 수술에 대해서는 똑같이 분노하지 않는가? 이 모든 주장은 과학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젠더는 물질적 조건이나 개인의 신체적 속성을 초월하는 무엇이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정의하는 더 높은 차원의, 일종의 도덕적 진리여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반反변증법적이며, 따라서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이다. 엥겔스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반뒤링에서 썼듯이, 우리는 따라서 도덕 세계에도 역사와 민족 간의 차이를 초월하는 영구적인 원리들이 있다는 구실을 들어, 어떤 도덕적 교리를 영구적이고 궁극적이며 영원히 불변하는 윤리 법칙으로서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반대로, 모든 도덕 이론은 궁극적으로 당시 사회의 경제적 조건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가 지금까지 계급 대립 속에서 움직여 왔듯이, 도덕은 언제나 계급의 도덕이었다. 그것은 지배 계급의 지배와 이익을 정당화해 왔거나, 억압받는 계급이 충분히 강력해진 이후로는 이러한 지배에 대한 피억압자의 분노와 미래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인간 지식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도덕에서도 전반적으로 진보가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도덕적 교리를 “영원하고, 궁극적이며, 영원히 불변하는 윤리법”으로 믿는 것은 지배 계급의 도덕, 즉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되는 도덕에 대한 묵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에 맞선 전사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부르주아 도덕에 좌파적인 위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트랜스 마르크스주의의 향방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일부 세력이 퀴어와 트랜스 해방 투쟁을 항상 지지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反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우리 퀴어와 트랜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해방과 양립할 수 없는 이론으로 치부하고 버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한 ‘아니오’이다. 우선,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퀴어 해방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퀴어 해방이라는 과제가 제시되었을 때 많은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이를 강력히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퀴어라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을 때 그를 변호한 것은 초기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렇게 하기 수십 년 전에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결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좌파의 상당 부분의 퇴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동성애자 해방 전선 전 멤버였던 마르셀로 베니테스(Marcelo Benítez)가, ‘레프트 보이스(Left Voice)’의 아르헨티나 자매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 퀴어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경험을 회고하며 그는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좌파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 좌파 내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퀴어 문제와 관련하여 좌파 일부 세력의 실패를 바라볼 때 매우 비판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패를 마르크스주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스탈린주의자 및 기타 집단이 퀴어 해방 투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부재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에게 해방을 위한 필수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운동 내의 잘못된 지도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도구도 제공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배반한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호를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기보다는, 우리는 그들을 트랜스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들, 심지어 종교적 우파의 일부보다 나을 바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거부해야 한다. 영국 공산당은 그들의 모든 주장과 구호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레닌이 정의한 방식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왜곡자들은 이론적·정치적 영향력이나 지도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저술하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마르크스주의가 트랜스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랜스 여성이자 레프트보이스의 브라질 자매 단체 회원인 버지니아 기첼(본 호의 다른 기사에서 인터뷰됨)의 말을 인용하자면, 분명히, [책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출간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완전한 해방에 관심이 없으며 트랜스 해방 논의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백인, 유럽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마르크스에 대한 관점에 반박한다. 혹은 마르크스가 여성 해방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 단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시장 진입뿐이었다는 관점에도 반박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실현은 삶의 모든 영역을 변혁하려는 시도의 정점이었으며, 러시아는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동성애를 비범죄화하며 공공 구내식당, 세탁소, 어린이집을 보장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혁명기 러시아에서 벌어진 혁명과 반혁명의 과정은 또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인 레온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연속혁명론’의 과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 21세기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의 모습이다… 즉, 계급 투쟁은 권력 장악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화된다는 결론이다. 혁명은 해방의 과정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작할 뿐이라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개인적 해방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사상이나, 혁명이 자동적으로 해방을 가져올 것이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계급 환원주의 단체들의 뻔한 주장보다 훨씬 더 명확한 트랜스 해방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서만 우리는 이 전략을 트랜스 해방 과제에 어떻게 적용할지, 그리고 트랜스 해방 운동의 주도권을 위해 어떻게 투쟁할지 발견할 수 있다. 트랜스 해방 운동 지도부의 실패 조직화된 좌파의 상당 부분이 퀴어 해방 운동에 대한 주도권과 관심을 포기한 상황에서, 현재 이 운동의 지도부는 불균형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이들은 계급 정치를 거부하고, 대신 정체성 중심적(identitarian)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치를 채택한다. 이 중 한 부류는 케이틀린 제너나 피트 부티지지 같은 인물들을 대두시키는 대표성 정치(representational politics)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기화하여 퀴어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를 은폐한다. 또 다른 부류는 선거 정치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어, 트랜스 억압을 지속시키는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 이 세력은 진보 성향의 인사나 퀴어 및 트랜스젠더 인사들이 의회에 충분히 당선되기만 하면, 그들이 트랜스젠더 억압을 종식시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억압은 이 글의 다른 부분에서 다룬 모든 이유들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의 일부다. 이를 고려할 때, 트랜스젠더 억압은 단순히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국가가 이를 종식시킬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反트랜스 법안의 폐지와 트랜스 커뮤니티를 위한 중요한 개량을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타협책을 자본주의의 현실을 바꾸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 활동가들에게 민주당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는 것에서부터 동화(assimilation)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에 이르기까지, 퀴어 운동의 이러한 자유주의 지도자들은 일관되게 급진성을 약화시키는 세력이 되어 왔다. 트랜스 해방 운동의 또 다른 부류는 접근 방식은 더 급진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찬가지로 개량주의적이다. 보통 스스로를 급진주의자라고 칭하는 이 세력은, 마르크스주의와 모든 총체적·보편적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모두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퀴어 이론의 영향을 받은 전략을 따르는데, 이는 결국 해방 투쟁을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이 전략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수단으로 본다. 이 전략의 핵심은, 트랜스혐오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자신의 내면화된 편견을 인식하고 변화시킨 다음,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신봉하는 이들은 또한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성 결혼 합법화와 같은 성과는 단지 동화주의에 불과하며, 현 체제 내에서 결혼이 주는 실질적 혜택과 무관하게 “체제”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므로, 어떤 개량도 싸워 얻을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전략은 체제에 어떻게 “저항”하거나 싸울지에 대한 많은 길을 제시하지만, 궁극적인 승리와 퀴어 해방으로 향하는 길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영원히 저항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틀 안에서, 중간적인 “승리”조차도 승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로부터 얻은 것은 무엇이든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억압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트랜스젠더들이 심각한 억압에 직면하는 것은 단지 트랜스혐오자들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을 착취하고 비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들의 물질적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질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대표성(representation)은 물질적 해결책이 아니다. 아무리 선의가 가득한 트랜스젠더라 해도 혼자서 자본주의 체제를 내부에서 바꿀 수는 없다. 실제로 “권력 구조를 내부에서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거의 전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는 흑인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끝내지 못했고, 여성 부통령이 성차별을 끝내지 못했으며, 게이 CEO들이 동성애 혐오를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또다시 그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야 하는가? “우리는 대표성 정치가 과거에 실패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본의 홍보 담당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이제 트랜스 CEO가 더 많아지면 실제로 뭔가 달라질 것입니다.” 더 많은 트랜스 CEO를 고용하고 더 많은 트랜스 정치인을 선출함으로써 체제가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패배가 확실한 내기이며, 현재 많은 주에서 역사적인 수준의 억압에 직면해 있는 트랜스 아이들을 버리는 행위다. 이는 매일 살해당하는 트랜스 여성들(대부분이 흑인 및 유색인종(brown)이다)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 억지로 적응해야 하는 트랜스 성노동자들과 논바이너리 사람들을 버리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 인내심이 희생자를 낳는다는 것을 이미 목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치를 단순히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은 조직화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군데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퀴어 이론은 승리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거부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트랜스 및 퀴어 해방을 위한 투쟁에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을 채택해야 한다. 트랜스 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트랜스젠더와 다른 특별하게 억압받는 집단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뿐임을 인식한다. 이는 어떤 도덕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다. (거의 모든 퀴어들이 알고 있듯이, 노동계급 구성원들도 신념은 매우 반동적일 수 있다.) 이는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전략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노동계급, 오직 노동계급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므로, 오직 그들만이 경제를 멈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 트랜스 억압의 모든 사례도 즉각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연속혁명 이론이 보여주듯이, 사회주의의 수립은 트랜스 해방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계급”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한다. 오랫동안 노동계급은 안전모를 쓴 시스이성애자 백인 남성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져 왔다. 물론 그 남성들도 노동계급이지만, 웨이터와 성노동자, 교사, 택배 기사, 개인 비서, 그리고 온갖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우리가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할 때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 역시 노동계급이다. 게다가 미국의 노동계급은 인종적 측면은 물론 젠더와 성적지향의 측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트랜스젠더와 퀴어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계급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가 “노동계급이 특히 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말할 때, 이는 백인 구세주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을 구하러 날아와 구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이 스스로 일어나,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의미다. 이 점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의 마디그라프(Madygraf) 공장에서 시스젠더 노동자들이 트랜스젠더 동료의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던 사건이다. 그 파업은 마디그라프에서 진행 중이던 운동의 핵심적인 부분이었으며, 결국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했다. 오늘날까지도 그 공장은 노동자 소유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공상적인 환상을 품고, 언젠가 노동계급이 트랜스포괄적인 혁명적 강령을 가지고 깨어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트랜스 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시급한 필요 중 하나를 매우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바로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지도력(leadership)이다. 이러한 지도력은 노동계급과 특히 억압받는 이들로부터 건설되어야 하는 전위당(vanguard party) 형태를 띠며, 이 당은 혁명의 순간을 위해 구체적으로 스스로를 준비해야 한다. 트로츠키의 말처럼, 혁명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된 당만이 수행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물론 이는 당연히 전위당의 당원들이 혁명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손가락만 비비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작업장과 지역사회에서 투쟁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반자본주의적 관점을 위해 싸우고, 운동이 억압받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트랜스 해방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오직 자본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만이 트랜스 민중들을 해방시키고 우리가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2021년 6월 6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시빌 데이비스 번역: 돌멩 [1] 성(sex)은 태어날 때 부여받는 생물학적 특성이다. 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성을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다: 음경이 있는 사람, 질이 있는 사람, 둘 다 있는 사람, 그리고 둘 다 없는 사람이다. 반면 젠더(gender)는 개인적 정체성, 사회적 관계, 외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더 복잡한 사회정치적 과정이다. 젠더를 결정하는 과정이 이토록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이 될 수 있는 젠더의 수는 사실상 무한하다. [2] John D’Emilio, “Capitalism and Gay Identity,” in Powers of Desire: The Politics of Sexuality, ed. Ann Barr Snitow, Christine Stansell, and Sharon Thompson (New York: Aakar Books, 2009), 100–113. [3] John M. Sloop, Disciplining Gender: Rhetorics of Sex Identity in Contemporary U.S. Culture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2004.) [4] 역주: 영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을 표방하던 레드 파이트백은 2020년에 『마르크스주의와 트랜스 해방: 영국 좌파 내 트랜스혐오에 맞서다』라는 책을 썼다. 저자가 인용한 영국공산당의 구절은 레드 파이트백의 주장을 ‘의학적 음모’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비꼬고 있다. 레드 파이트백은 현재는 조직 내부 균열로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5] Ciara Cremin, Man Made Woman: The Dialectics of Cross-Dressing (London: Pluto Press, 2017).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5-25 | 조회 11,205 -
[번역] 마르크스주의, 스탈린주의, 퀴어혐오수십 년간,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대립에만 천착할 뿐 여성이나 유색 인종, LGBTQ+에 대한 억압 같은 다른 형태의 억압은 무시한다는 주장이 마치 상식처럼 통용되어 왔다. 실제로 스탈린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 전통에 이르는, 그리고 오늘날 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까지 포함하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특수한 억압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노동자계급 중 상층에만 유리한 경제주의 전략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성적·젠더적 억압에 대한 스탈린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의 반동적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을 조금도 반영하지 않는다.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는 분명하다. 오히려 러시아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10월 혁명을 통해 LGBTQ+ 차별의 물적·이데올로기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길을 선도했다. 반동적 일탈이 발생한 시점은 정당과 조직들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혁명적 전망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세계와 타협하려 했을 때였다. 이 같은 역사적 통찰은, 특히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퀴어 인권을 향한 새로운 공격이 거세지는 오늘날, 해방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 분명히 알려 줄 수 있다. 볼셰비키의 전진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양대 핵심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는 게이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목욕탕 같은 사교 공간이 생겨났고, 언어 코드(예컨대 ‘뚀뜨끼(tetki)’라는 단어는 대략 ‘아줌마’로 번역되는데, 게이 당사자와 비당사자 모두가 게이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와 복장 코드의 요소들, 그리고 적어도 사적 공간에서는 크로스 드레싱도 존재했다. 역사가 댄 힐리는 혁명기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 시기 동성애의 역사를 다룬 저작 『혁명기 러시아의 동성애적 욕망』에서 이렇게 적는다. “제정 러시아나 소련의 이러한 동성애 하위문화가 해외에서 수입되거나 공산주의의 실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이성애 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쇼비니즘에 다름 아니다.”[1] 한편으로 남성 간 성행위는 러시아 정교회 규율상 불법이었다. 1917년까지 합의에 의한 “남색”은 시베리아 유형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위협이 일관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1917년 차르 체제의 법전이 폐지되면서 동성애는 사실상 비범죄화되었고, 1922년 새로운 법전이 채택된 후 신생 소비에트 국가의 공식 법률 문서에서 “남색”에 대한 언급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로써 소비에트 연방은 18세기 혁명기 프랑스에 이어 세계 최초로 동성애를 합법화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반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화한 제국 시대의 악명 높은 175조가 여전히 효력을 유지했고 파시즘 하에서 더욱 강화되었으며, 독일연방공화국이 이를 최종 폐지한 것은 1994년에 이르러서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동성애를 비범죄화하고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다른 여성과 연애 또는 성적 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러시아에서 공적 영역에 진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따라서 응집력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어려웠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료도 적은데, 여성 간 성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이를테면 법원 기록 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전통적 이성애 가족을 넘어서는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10월 혁명 이후 내전기의 군사적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여성이 남성적인 스타일을 선택했는데, 한편으로는 혁명에 충성하고 혁명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자 여성이 다른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한 코드이기도 했다. ‘트랜스섹슈얼리티’와의 경계는 종종 모호했다. 1923년 모스크바 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 실시한 섹슈얼리티에 관한 설문에는 이런 응답이 있었다.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 거세하고 남성 분비샘을 이식하는 과학적 방법이 발견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2] 1920년대에 실제로 이 같은 수술이 시행되었지만, 의료 기술이 아직 초보적이었던 탓에 성공 여부는 의문이었다. 의학적 개입과 별도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변경할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적절한 신분증을 발급받고, 원래 이름을 남성형으로 개명하고, 복장과 외모를 바꾸었다. 이와 더불어 동성애와 젠더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과학적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당시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생물학자 니콜라이 콘스탄티노비치 콜초프(Nikolai Konstantinovich Koltsov)는 이렇게 단언했다. “물론 하나의 ‘중간 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무한한 수의 중간 성들이 존재할 뿐이다.”[3] 예브게니 표도로비치 M.은 17세이던 1915년에 남성 정체성을 취하기 시작했다. 혁명기에 그는 공문서상의 이름을 변경하고 비밀경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22년 예브게니는 새로운 신분증을 가지고 사료에 S.로 기록된 어떤 여성과 결혼했다. 정체성 변경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이 부부를 “자연에 반하는 범죄”로 기소한 지방 법원 소송은 기각되었고 혼인은 유지되었다. 법원은 이 결합이 상호 합의에 의한 것이므로 합법이며 배우자의 젠더 정체성은 무관하다고 판결했다. 이 부부는 S.가 직장 동료와의 관계로 낳은 아이와 함께 수년간 가족으로 함께 살았다.[4] 혁명적 각성과 전통적 규범 거부라는 대의는 볼셰비키 엘리트들의 전유뮬이 아니었고, 예브게니 같은 사람들에게도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기 결정권을 주었다. 부르주아 역사학계는 볼셰비키가 차르 체제의 법전을 폐지하면서 동성애를 합법화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시몬 카를린스키는 10월 혁명이 1905년 혁명과 1917년 2월 혁명에서 성취한 동성애 인권을 되돌리고 부정했다고 주장하면서, 최초의 “남색” 비범죄화는 곁가지 정도로 취급했다.[5] 그러나 힐리는 1991년 소비에트 문서고 개방과 함께 접근 가능해진 법무인민위원부의 기록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 문서들이 남색 조항을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성인들 간의 합의에 따른 행위를 비범죄화하겠다는 원칙적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이 같은 의도는 1918년 사회주의 형법을 기초하려 한 최초의 시도부터 1922년 법안의 최종 채택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표명되었다.[6] 남성 동성애를 비범죄화함으로써 볼셰비키는 노동 운동의 오랜 전통 위에 자리 잡았다. 이를테면 1898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 아우구스트 베벨은 의회에서 동성애 해방을 요구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보다 3년 앞서서 사회주의자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동성애가 “자연”에서 일탈한 것이라는 관념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동성애는 오히려 “굳건히 유지되어 온 허구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성과 남성 간의 유사한 계약이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합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7] 동성애 합법화를 요구한 것은 사회주의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10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요구를 내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행한 유일한 세력이었다. 1923년 모스크바 사회위생연구소 소장 그리고리 바트키스(Grigorii Batkis) 박사가 집필한 소책자 「러시아의 성 혁명(The Sexual Revolution in Russia)」은 혁명 직후 몇 년간 볼셰비키의 공식 입장을 엿보게 해 준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소비에트 법제는 누구도 해를 입지 않고 누구의 이익도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는 성적 문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절대적 불개입을 선언한다. 유럽 법제에서 공공 도덕을 해치는 범죄로 규정된 동성애, 남색, 그 밖의 다양한 성적 만족의 형태들에 관련해서, 소비에트 법제는 이를 소위 “자연적” 성교와 정확히 동일하게 취급한다. 모든 형태의 성교는 사적인 문제다.[8] 물론 신생 소비에트 연방에서 모든 편견이 하루 만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편견은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친 차르 체제의 후진성 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더욱이 볼셰비키의 합법화 정책이 소비에트 연방 전역으로 확대된 것도 아니었다. 예컨대 1926년에 제정된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법전은 여전히 동성애를 금지하는 조항들을 담고 있었다.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유럽 쪽 러시아에서는 동성애를 소수의 선천적 특성으로 이해했다면, 주변부에서는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파악했다. 힐리는 이를 “소비에트 연방이 스스로 표방한 성적 전위주의와 변방 지역에서의 실제 정책 사이의 모순”이라고 부른다.[9] 게다가 1920년대 동안 도시 중심부의 무도회장과 집회장 이용은 점점 줄었는데, 이는 보통 사적 영역으로의 후퇴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은 동성애자 남성들이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중요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1906년 동성애를 긍정하는 최초의 커밍아웃 소설 『날개』를 쓴 작가 미하일 쿠즈민(Mikhail Kuzmin)은 혁명에 동조하여 페트로그라드 예술가 협회 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였던 게오르기 치체린(Georgy Chicherin)과 친분이 있었는데, 치체린은 1918년부터 1930년까지 소비에트 외무부 장관에 상응하는 직책인 외무인민위원을 지냈다. 레닌의 몇몇 발언은 볼셰비키가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 고루한 입장을 취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되곤 한다. 1915년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이네사 아르망(Inessa Armand)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레닌은 “사랑의 자유”라는 소책자 문구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10] 여러 줄에 걸쳐서 그는 이 문구가 물질적 계산, 종교적 편견, “법과 법원과 경찰의 족쇄”로부터의 자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며, “연애의 진지한 요소”로부터의 자유 혹은 “출산”으로부터의 자유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부르주아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힐리 또한 이 구절들(그리고 레닌 사후에 클라라 체트킨이 레닌의 말이라며 전한 유사한 발언들[11])을 보건대, 성생활에서 “개인적 비정상성”을 지닌 이들은 그것을 사적 영역에 두고 혁명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진의였을 수도 있다고 추론한다.[12] 셰리 울프는 『섹슈얼리티와 사회주의』에서 이러한 “레닌 사상에 대한 다소 작위적인 독해”를 강하게 거부하면서, 그것이 레닌을 금주하는 금욕주의자로 묘사하는 냉전기 희화화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13] 실제로 아르망에게 보낸 레닌의 편지들은 스탈린 치하인 1939년에야 비로소 출간되었는데, 힐리가 각주에 적은 내용에 따르면 이는 “1930년대 가족 정책의 변화는 레닌주의에서 기원했다”고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다.[14] 스탈린주의 반동 볼셰비키의 기대와는 달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혁명적 분위기가 유럽을 휩쓸면서 사회주의 국가가 잇따라 출현하는 일은 1923년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세력에 포위된 상황, 세계 대전에 이어 내전을 겪으면서 수년간 지속된 물질적 궁핍, 그 결과로 소비에트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대대적으로 위축된 현실 속에서 행정의 전 영역에 걸쳐 광범위한 관료제가 뿌리내렸고, 이 관료제는 국가의 고립 상태를 “일국 사회주의”라는 이론적 지위로까지 격상시키려 했다. 관료 집단에게는 자본주의 서방과 공존하며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 이익이었고 이는 노동력 수요 증가와 맞물렸으며,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공공 보육 시설, 세탁소, 국영 식당을 설립해 가족의 사회적 재생산 기능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서 가족을 철폐하려던 노력은, 전통적 가족 규범과 젠더 규범을 공고화하는 시도로 바뀌었다. 1938년 축출되기 전까지 소비에트 사법부의 주요 직책을 역임한 아론 솔츠(Aron Solz)는 한 노조 기관지에 이렇게 썼다. “소비에트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그녀는 저 위대하고 명예로운 자연적 의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녀는 어머니이며, 생명을 낳는다.”[15] 1934년, 문화 예술 영역에서 스탈린의 대변인이었던 작가 막심 고리키는 동성애 재범죄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했다. 그는 동성애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의 “순수성”이라는 신화와 “과도하게 문명화된” 서방의 퇴폐를 대비시켰다. 그에 따르면 서방의 퇴폐와 동성애는 파시즘을 낳은 토양이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의 악명 높은 선언에서 절정에 달했다. “동성애자들을 없애라. 그러면 파시즘이 사라질 것이다.”[16] 1922년 동성애 비범죄화가 젠더나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억압을 극복하려는 폭넓은 노력의 일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1930년대의 반동적 개혁 역시 동성애 박해에서 멈추지 않았다. 성매매도 다시 범죄화되었고 임신중지는 금지되었으며 당 중앙위원회의 여성부는 해체되었다. 레온 트로츠키는 이 같은 금지 정책들을 “경찰의 권력을 쥔 사제의 철학”이라 묘사했다.[17] 이러한 모성 숭배로의 전환에 이어서 실재하는 정치적 반대파, 그리고 상상 속의 반대파에 대해서까지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빵과 장미』에서 안드레아 다트리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여성 정치와 관련하여 갓 탄생한 노동자 국가의 초기 법령들과 이후 관료제가 내놓은 개탄스러운 조치들 사이에는 명백한 단절이 있다. 관료 집단에게 “혁명은 반혁명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18]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강제 이주, 투옥, 고문, 살해를 통해 이 같은 파열이 심화되었다. 혁명적 내용이 탈각된 코민테른의 도움으로 스탈린주의 관료 집단은 192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의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 공산당에 이식했다. 혁명기 쿠바에서는 공산당 관료 집단이 게이 남성들을 체포·투옥하고 HIV 감염인들을 국영 요양소에 강제 수용했으며, 1980년 마리엘 보트리프트(Mariel Boatlift)를 통해 수천 명의 퀴어를 추방했다. 동성애를 범죄화한 모든 조항이 법전에서 삭제된 것은 1986년이 되어서였다. 중국에서는 마오의 사후에야 공식적으로 동성애가 금지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다른 남성과 성적 관계를 추구한 남성들은 “난동죄”로 기소될 수 있었고, 마오와 그의 동맹 세력이 촉발한 이른바 문화 대혁명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 이로써 전 세계 공산당들은 이후 수십 년간 좌파 전체에 강력한 보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렇게 생겨난 좌파 내의 퀴어 적대는 오랫동안 스탈린주의 조직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역시 스톤월 항쟁을 전후한 시기, 즉 급진화된 성소수자 해방 운동이 태동하던 바로 그 시점에 동성애자와 트랜스를 조직에서 “비공식적으로” 배제했다. SWP 청년 조직은 성소수자 배제 정책을 심지어 공개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했지만, 이는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조직은 1975년 소책자를 통해 미국 내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카스트로 정권이 공개적인 동성애 표현을 금지하고 있던 당시 쿠바에까지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문화 제국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59년 쿠바 혁명 이전까지 쿠바에서 동성애는 합법이었다. 쿠바인들이 유독 보수적이라거나 심지어 모두가 이성애자라는 생각은 당시에도 인종주의적 고정 관념일 뿐이었다. 이 같은 입장을 취한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SWP만이 아니었다. ‘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활동으로 1984년 영국 광부 대파업에 연대하고 영화 『프라이드(Pride)』에 영향을 준 레이 굿스피드(Ray Goodspeed)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자기 조직의 태도를 이렇게 전한다. “내가 속해 있던 ’밀리턴트(Militant)’는 동성애자의 권리를 부르주아적 관심사로 간주했고, 노동자들이 그런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이상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 간부들뿐이었고, 정작 노동자계급 사람들은 딱히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SWP는 트로츠키주의의 혁명적 유산을 계승한다고 자임하면서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공공연하게 반동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SWP의 일탈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정치 방법론으로부터 이탈한 귀결이었다. 이러한 이탈은 “객관주의”의 심화, 즉 계급의 정치적 전위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상대화하고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로 나타났다. SWP는 당시 미국 노동자계급의 상당 부분에 자리 잡고 있던 후진적 의식을 이행기적 요구로 끌어올리기는커녕 보수주의에 영합했다. 이 조직이 쿠바에 무비판적이었던 탓에, 쿠바 혁명의 성취에 대한 옹호와, 동성애자를 박해하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억압한 관료 집단에 대한 옹호가 뒤섞여 버렸다. 유산 1917년 이후 볼셰비키의 동성애 정책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모순은 젊은 소비에트 국가가 처해 있던 물질적 결핍과 국제적 고립이라는 맥락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역사적으로 특수한 조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엄청난 파괴를 딛고 이루어진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은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 시도를 전례 없이 유리한 위치에 놓을 것이다. 이를테면 신생 소비에트 국가에서는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하려는 시도가 좌초할 수밖에 없었고 이성애 규범적 가족을 철폐하려는 기획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러한 기획을 뒷받침할 경제적 조건은 오늘날 비교가 안 될 만큼 우월하다. 젠더 억압과 성적(sexual)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소비에트 연방의 동성애 합법화는 성 해방의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였을 뿐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를 조직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힘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레닌이 1902년에 썼듯이, 이러한 운동은 “어느 계급이 영향을 받든 간에 모든 폭정, 억압, 폭력, 학대에 응답하도록 훈련된” 운동이다.[19] 오늘날 미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쟁취한 것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투쟁은 전 세계 자본가들의 자칭 “민주주의”가 이제껏 성취해 온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인정과 자유를 퀴어와 함께 쟁취할 수 있다. Left Voice에 2022년 7월 17일 게재된 글을 번역함. 저자: Marco Blechschmidt, Niko Weber 번역: 강성윤 [1] Dan Healey, _Homosexual Desire in Revolutionary Russia: The Regulation of Sexual and Gender Dissent_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2001), 48. [2] 같은 책, 63. [3] 같은 책, 166. [4] 같은 책, 68–72. [5] Simon Karlinsky, “Russia’s Literature and Culture: The Impact of the October Revolution,” in _Hidden from History: Reclaiming the Gay and Lesbian Past_, edited by Martin Bauml Duberman, Martha Vicinus, and George Chauncey Jr., 357 (New York, 1989). [6] Healey, _Homosexual Desire_, 116. [7] Eduard Bernstein, “The Judgement of Abnormal Sexual Intercourse,” _Die Neue Zeit_ 13/2 (1895), 228-233. [8] Sherry Wolf, _Sexuality and Socialism: History, Politics, and Theory of LGBT Liberation_ (Chicago 2009), 91. [9] Healey, _Homosexual Desire_, 162. [10] V. I. Lenin to Inessa Armand, January 17, 1915, in _Lenin Collected Works_, vol. 35, (Moscow, 1976), 180–81. [11] Clara Zetkin, _Reminiscences of Lenin_ (New York, 1934). [12] Healey, _Homosexual Desire_, 113. [13] Wolf, _Sexuality and Socialism_, 93. [14] Healey, _Homosexual Desire_, 301. [15] Victoria I. Sakevich and Boris P. Denisov, _Birth Control in Russia: Overcoming the State System Resistance_(Moscow, 2014), 9. [16] Healey, _Homosexual Desire_, 189–90. [17] Leon Trotsky, _The Revolution Betrayed: What Is the Soviet Union and Where Is it Going?_ (New York, 1937). [18] Andrea D’Atri, _Bread and Roses. Gender and Class under Capitalism_ (London 2021), 96. [19] V. I. Lenin, _What Is to Be Done? Burning Questions of our Movement_, in _Lenin’s Collected Works_, vol. 5 (Moscow, 1961),347–30.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23 | 조회 18,357 -
[번역] 퀴어 억압은 자본주의의 심장에 새겨져 있다LGBTQ+ 억압은 자본주의적 생산 및 재생산 구조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회주의만이 퀴어 해방, 나아가 모두의 성적 해방을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다. 2004년에는 미국인의 60퍼센트가 동성 결혼에 반대했다. 지금[2019년]은 61퍼센트가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후보 중 한 명은 커밍아웃한 게이 남성이었고, 오늘날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은 자신을 비이성애자로 정체화한다. 굉장한 변화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 권력의 최상부에 올라선 이들과 여전히 억압으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이들의 격차는 엄청나게 크다. 퀴어가 CEO가 되고 권력의 중심에 진입하는 바로 그 나라에서, 흑인 트랜스 소녀는 생존을 위한 성노동에 내몰리고 레즈비언은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강간당하며 트랜스 여성 록사나 에르난데스는 이민자 구금시설에서 목숨을 잃는다. LGBTQ+ 억압의 위력은 여전히 무시무시하며, 트랜스, 유색인, 빈곤층에게 특히나 강력하다. 우리가 쟁취한 권리와 소수의 특권은 다수의 비참한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이 모순을 앞에 두고서 LGBTQ+ 해방은 사다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새로운 권리를 하나씩 쟁취할 때마다 퀴어는 해방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LGBTQ+ 억압은 사회 구조 자체에 각인되어 있어서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깨부수지 않는 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노동 착취에 기반한 체제인 자본주의는 광범위한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열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LGBTQ+ 정체성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자유, 해방, 정의라는 자신의 약속을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행할 수 없다. 퀴어에게 가해지는 LGBTQ+ 억압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재생산 모두의 산물이며, 특히 노동 소외와 핵가족이 요구하는 경직된 젠더 역할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LGBTQ+ 해방, 더 나아가 넓은 의미의 성적 해방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억압은 이 체제 안에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새겨져 있다. 반면에 사회주의는 LGBTQ+ 억압을 종식시킬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구성 어떤 인권 옹호자들은 LGBTQ+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으며, 우리는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존 디에밀리오는 이 같은 입장을 “영원한 동성애자라는 신화”라고 부르는데,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동성 간 욕망과 젠더 유동성은 역사 전반에 걸쳐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존재해 왔지만, 그것의 사회적 역할과 수용 정도는 시대에 따라 극적으로 달랐다. 어떤 문화에서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가 의례적 역할을 수행했고, 다른 문화에서는 논바이너리적 존재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이전 유럽 사회에도 “크로스 드레싱 금지법”과 수많은 남색(Sodomy) 금지법이 존재했지만, 봉건제 하에서는 공고한 LGBTQ+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았고 범죄화된 행위가 있을 뿐이었다. 디에밀리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노동 체제야말로 “20세기 후반의 수많은 남성과 여성이 스스로를 게이라 부르고, 자신들이 유사한 남녀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며, 그 정체성을 기반으로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며 전혀 다른 맥락과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LGBTQ+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에서 감추어진 것들(Hidden from History)』 서론에서 주장하듯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동성애자 역할은 근대에 발전한 것인데, 이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의 동성애자 역할은 아니다.” 역사적 고찰의 대상은 퀴어 정체성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근대적 가족의 형성, 근대적 젠더 역할, 이성애라는 개념 자체 역시 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구성물들을 낳는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젠더·섹슈얼리티·가족·사랑이 조직되는 방식은 상당 부분 인간의 생산 관계에 기반한다. 우리가 먹을 것을 확보하고, 공동체를 조직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쏟는 방식을 결정하는 그 관계 말이다. 엥겔스의 『가족, 사유 재산, 국가의 기원』은 생산의 발전과 가부장적 가족의 발전을 연결하고, 사유 재산이야말로 남성에 대한 여성 종속에 기반한 가족 단위를 만들어 낸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엥겔스가 부정확한 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삼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의 흐름에 대한 전반적 성찰은 옳다. 가정 대신 작업장이 생산의 장이 되면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종류의 가족 관계를 탄생시킨다. 가족에게 필요한 재화가 한때는 가정에서 생산되었지만, 이제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 구매된다. 가정은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 단위로,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며 아이들을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길러내는 장소로 남는다. 한편 남성은 원자화된 임금 노동자가 되어, 고향을 떠나 어디서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게 되었다. 가부장제는 이 배치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여성은 임금 노동이라는 짐을 지든 아니든 간에 가정 내 무급 노동을 떠맡는다. 이 사적 소유와 노동력 판매 체제로부터 근대 민주주의가 출현했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 노동 시장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하며 누구에게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자유”가 있다는 관념도 생겨났다. 존 디에밀리오가 주장하듯 자본주의의 선택 개념은 가족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트너십은 점차 욕망과 친화성이라는 근대적 이상에 기초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선택”과 “자유”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 걸쳐 “만인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 의미하는 것은 곧 법에 새겨진 인종 차별, 성차별, 동성애·트랜스 혐오였고, 이것은 국가의 억압 기구에 의해 강화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학교, 가족, 교회 같은 사회 제도에 의해 제한되며, 이 제도들은 사람들에게 “허용 가능한” 성적·젠더 규범을 주입하려 한다. 선택의 자유는 경찰, 감옥, 법률 같은 억압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기구에 의해서도 제한되며, 자본주의의 경직되고 잔혹한 경쟁 구조 안에 가두어져 있다. 사회적 낙인과 억압 또한 자유를 제약한다. 식민주의는 젠더와 성적 역할을 가장 잔혹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제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원주민 공동체에 이식되었고 토지는 약탈당했으며 원주민은 값싼 노동력으로 사용되었다. 식민자들은 군대를 동원해 논바이너리 구성원들을 표적 공격하고, 원주민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제하고, 기숙 학교에서 원주민에게 규범적 성별 역할을 주입하는 등 집단 학살에 준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나 삶에서 선택할 권리에 관한 자본주의적 관념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동성 파트너십이라든가 출생 시 지정된 것과 다른 젠더를 “선택”할 가능성을 열었다. 존 디에밀리오의 주장에 따르면, “가구에서 경제적 자립을 박탈하고 섹슈얼리티와 출산의 분리를 촉진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일부 남성과 여성이 동성에 대한 성애적·감정적 끌림을 중심으로 개인의 삶을 조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냈다.” 마찬가지로 수전 스트라이커(Susan Stryker)는 디에밀리오가 자본주의 체제의 “동성애자”에 대해 묘사한 것과 동일한 과정이 트랜스 구성원들에게도 적용되었다고 『트랜스젠더의 역사(Transgender History)』에서 주장한다. 사람들이 공동체 바깥으로 이주할 자유를 갖게 되면서 출생 시 지정되지 않은 젠더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피억압자들은 자본주의가 약속한 평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불평등을 나타내는 명백한 법률적 지표 상당수는 피억압 민중의 운동으로 타파되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여성과 유색 인종은 법 앞의 평등을 거의 완전히 쟁취해 냈다. 그러나 법적 평등이 곧 삶의 평등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구조 속에 새겨진 억압을 유지하면서도 형식적 평등은 기꺼이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인종 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가 바로 그렇다. 자본주의적 재생산과 성적 비참함 자본주의에서 가족 단위는 선행하는 가부장적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족은 이성애 규범적 젠더 역할에 기초하는데 이 역할은 “과학”과 “생물학”을 근거로 삼는다고 여겨진다. 여성은 요리, 청소, 육아, 빨래 같은 재생산 노동에 맞는 생물학적 성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무급 가사 노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데 필수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성별 역할, 특히 가족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급 육아와 가사 노동에 막대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가가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 비용을 직접 지불해야 한다면 이윤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이자 돌봄 제공자가 될 운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동성 커플, 출산하지 않는 여성, 전업주부 아버지, 그 외의 비전통적 본보기들까지 우리 사회에 반례가 넘치도록 있는데도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다.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과 나란히 가장 혹독하고 가혹한 노동에 내몰렸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이 이데올로기는 지속되어 왔다. 오히려 이 사실은 흑인을 병리화하는 데 이용되어, 제도적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거나 배상을 요구하는 대신 핵가족을 통해 흑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생겨났다. 여성 해방 운동과 LGBTQ+ 권리 운동 이후 가족과 젠더 역할이 좀 더 유동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스–이성애 규범적 가족 모델은 여전히 건재하며 퀴어 억압을 재생산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낭만적 가족 파트너십이 사랑을 바탕으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생활비를 나누어 지불할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막대한 경제적 유인이 존재하여, 운 좋으면 지루하고 최악의 경우 폭력적인 관계에 매이게 된다. 이는 동일 노동에 더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에게, 특히 유색 인종 여성과 노동자 계급 여성에게 더욱 절박한 현실이다. 이 구조는 각 가족이 사회 전체의 최선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최선을 위해 행위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복무한다. 자본주의는 가족의 경제적 필요와 더불어 낭만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올바른” 젠더 역할이 주입되며, 우리는 사랑하는 파트너가 자본주의의 소외를 치료하여 우리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세뇌당하는데, 이것은 특히 여성을 겨냥한 메시지다. 전통적 가족 단위는 소외되고 고립된 세계 한가운데에서 지지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일부일처제가 강제하는 성적 비참함의 단위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 성 연구자 빌헬름 라이히는 『성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결혼 제도의 모순은 결혼의 성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며 비롯된다…완전히 충족된 성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결혼 도덕의 조건(평생 오직 한 명의 파트너)에 복종할 가능성은 낮으므로, 즉 성-경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성적 욕구의 고질적인 억압, 특히 여성에 의한 억압이다. 가족은 우리의 성적 욕망과 충돌하는 필수적 경제 단위다. 라이히의 설명처럼 가족 구조는 욕망을 억압하기 위한 구조이며, 여기에 나는 동성 간 욕망 및 젠더 탐색에 대한 억압을 덧붙이고 싶다. 그러나 모범적인 “전통적” 가족이란 노동자 계급 대다수에게 신기루에 가깝다. 노동자 계급은 물려줄 사유 재산이 없고,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여성에게는 경직된 성별 역할을 강제할 수 없으며, 너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거나 동생들의 부모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노동자 계급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어린 시절”이 없다. 대량 투옥, 추방, 서구 제국주의가 강제한 이주로 인해 해체된 가족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부유한 여성은 관리자 역할을 하면서 다른 여성들(대개 흑인, 갈색 피부, 이민자 여성)을 조직해 가정 내 가사 노동을 맡긴다. 여성 해방 운동이 전개되고 (남성의) 가족 임금이 해체되면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데, 이것이 자본가의 이윤 추구와 결합하면서 전통적 가족 단위는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가 핵가족 구조에 의해 떠받쳐지는 동시에 핵가족 구조를 파괴한다는 모순은 “가족 수호” 이데올로기가 출현하는 조건이 되는데, 이 같은 이데올로기는 대개 가짜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한다. 정치인들은 부모에게(보통 어머니 또는 흑인 아버지에게) 자녀와 더 긴 시간 함께하지 않는다고 훈계하고, 우파는 가족의 해체를 애도한다. 국가는 총기 난사, 부실한 교육, 아동 비만 증가 등 모든 사회적 병폐의 원인을 가족의 붕괴로 돌린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가족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조건은 언제나 가족을 잠식했으며 현재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 또한 자본주의 위기의 직접적 산물이라는 사실은 외면한다. LGBTQ+ 억압과 부르주아 가족 LGBTQ+는 가부장적 가족 단위의 근간을 이루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틀렸음을 그 자체로 입증한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 입양, 체외 수정 등의 사례가 이미 생물학적 결정론의 기만성을 입증하지만, LGBTQ+는 “전통적 가족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우파에 의해 특별히 표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어떤 차원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다. LGBTQ+는 출생 시 여성으로 지정된 사람이 반드시 여성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여성인 사람이 반드시 남성에게 끌리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자녀를 보살피는 어머니일 필요도 없고, 집안을 돌보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존재도 아니다. 바로 이 불편한 사실들 때문에 자본주의에게는 LGBTQ+를 억압하고 주변화하면서 우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수많은 제도들은 전통적 가족 및 젠더 모형에 특히 깊이 빠져 있고, 일부 동성 커플을 주변부에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이 모형이 유의미하게 대체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의류 매장의 아동용품 코너를 걷기만 해도 젠더 역할 고정 관념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는 가족 단위가 중요하다고 설교하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동성 관계는 죄악이다. 학교 역시 젠더 규범을 떠받치는 데 일조한다. 이를테면 학교가 정의한 남아와 여아 구분에 따라 화장실 앞에 줄을 서도록 요구하며, 많은 학교는 트랜스 아동들이 자신의 젠더에 맞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류에 편입한 LGBTQ+ 구성원들은 가족을 파괴하지 않았다. 게이와 레즈비언 정체성이 부분적으로 정상화되었지만, 동성 간 욕망과 젠더 탐색을 억압하는 체계는 여전히 굳건하다. 물론 이 정상화는 게이 크루즈, 프라이드 깃발, 레인보우 아디다스 스니커즈에 이르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틈새 시장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상화는 근저의 시스-이성애-가부장적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만 허락된다. 말하자면 가족 단위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로 기능하는 한에서, 두 남성의 결혼도 허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선택적 정상화는, 경찰에 저항하는 스톤월의 뿌리로부터 급진적 퀴어 운동의 노골적 섹슈얼리티와 이성애 규범성 거부에 이르기까지 LGBTQ+ 운동의 가장 전복적인 측면들을 길들이면서 작동했다. 정상화는 또한 퀴어들의 사교를 위한 비상품화된 공간을 파괴하면서 진행되었다. 뉴욕의 더 피어스(The Piers)처럼 주로 유색 인종 퀴어들이 어울리고 유혹하고 섹스하던 장소들 말이다. 피어스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주로 유색 인종 퀴어가 모이던 공공 공간은 경찰의 단속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자 장 니콜라가 주장했듯, “부르주아지가 게이에게 이성애자와의 형식적 평등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심지어 동성 커플을 제도화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해도—그럼으로써 게이 정체성의 환상은 강화된다—실질적 평등을 확립하기란 무한히 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사회 유기체 전체 내에 동성애적 구성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일 텐데, 이는 남성적 지위와 남성성에 대한 너무나 급진적인 도전이어서 가족과 부르주아 문화 전체의 근본적 격변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LGBTQ+의 욕망과 젠더를 사회에 온전히 통합하려면, 일부 사회적 태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 체제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만드는 성적 비참함 그러나 LGBTQ+ 억압은 자본주의적 사회 재생산의 일부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에 새겨진 성적 비참함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체제는 자기 몸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해 시장에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절대다수에 대한 착취에 의존한다. 이것이 인구 대다수의 소외와 성적 비참함의 물적 토대다. 마르크스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설명하듯이, “노동은 노동자에게 외적이다. 즉, 노동은 노동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속에서 자기를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소모시키고 정신을 황폐화시킨다.” 이것이 소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창의성, 생각을 부정하고 억누르고 무시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회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소진시키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무엇보다 가장 고되고 소외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은 흔히 미등록 이주민과 유색 인종이다. 젠더적·성적 비참함은 이 같은 일상의 물적 조건에서 파생된다. 즉, 하루의 대부분을 바치는 소외된 노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외는 작업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소외는 우리의 삶과 정신 전체를 지배하며, 섹슈얼리티 안으로까지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시간 부족 문제가 있다. 일하고, 쉬고, 아이를 돌보고, 성적 관계든 아니든 친밀한 관계를 맺기에 충분한 시간이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쾌락을 부정하면서 소외된 노동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에 기진맥진한 몇 시간 동안 그 소외를 깨고 자기 자신이나 타인과 의미 있는 유대를 쌓기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노동 시장은 우리 몸을 망가뜨리고 시간을 잠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기구는 특정한 젠더 표현과 수행을 노동 시장의 요구와 결부시키며, 이를 생산적 시민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간단한 예시를 하나 들면, 다음 두 광고의 시간 차는 불과 10년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1943년 J. 하워드 밀러가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을 위해 제작한 포스터다.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여성 노동자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걸 여자도 열 수 있다고요?”는 1953년 알코아 알루미늄의 광고다. 첫 번째 광고는 수많은 남성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상황에서 산업 노동에 여성이 필요했던 역사적 시기를 반영한다. 두 번째 광고는 저가 상품의 대량 생산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의 산물로, 노동 시장에서 축출된 여성에게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불과 10년 사이에 여성은 근육을 자랑하던 존재에서 케첩 병도 열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서 불평 없이 희생하는 남성 가장이라는 구성물은 자본주의에 막대한 이윤을 안겨 주었다. 이를테면 앨런 시어스(Alan Sears)가 『몸의 정치(Body Politics)』에서 설명하듯, 20세기 초 포드는 “부양 가족을 먹여 살리는 능력과 힘들고 고통스럽고 지루한 노동을 견디는 능력에 기반한 남성적 자부심”을 고취했다. 인종화된 젠더 구성물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친다. 흑인 남성을 범죄자로, 흑인 여성을 강인한 존재로 구성함으로써 교도소 체제 안팎에서 극도로 착취당하는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젠더 역할에 순응하지 않는 것은 종종 LGBTQ+에 대한 사회적 징벌, 때로는 물리적 징벌을 의미했다. 이 경직되고 사회적으로 강요된 젠더 역할은 개인적 표현이나 탐색을 가로막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특히 여성, LGBTQ+, 여성이자 LGBTQ+인 우리에 대해서 젠더적·성적으로 억압하는 체제의 일부다. 자본주의 특유의 자유와 억압의 혼합물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성적 비참함의 체계를 만들어 낸다. 1960년대 후반 장 니콜라는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이 퀴어를 노동 시장에서 축출하는 역할을 하며, 이 원리가 “동성애적” 욕망을 스스로 억누르는 “이성애자”로 정체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규율 효과를 갖는다고 썼다. 결국 사회가 규정한 협소한 역할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류 노동 시장에서 주변화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도 젠더 비순응적인 사람들은, 심지어 일부 게이나 레즈비언까지도, 특정 직종에서 배제되고 승진을 거부당하며 직장에서 계속 차별받는다.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많은 이들은 일자리에서 완전히 거부당하는데, 수많은 유색 인종 트랜스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유색 인종 트랜스는 흔히 실업 또는 불완전 고용 상태의 산업 예비군으로 남는다. 이 사실은 모든 이의 욕망을 규율한다. 광범위한 젠더적·성적 경험이 인구 대다수에게 차단되고, 계속해서 LGBTQ+를 주변화함으로써 이러한 경험이 수치심과 비밀의 영역으로 밀려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와 성적 해방 LGBTQ+ 억압은 핵가족 단위와 근대 노동의 소외를 통해 강요되는 일반화된 비참함과 깊이 연관된다. 일부 게이 남성이(그리고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레즈비언이) 기업과 정치의 영역에서 사다리를 오른다 해도, LGBTQ+ 주변화는 자본주의의 생산·재생산 관계에 각인되어 있으므로 점진적인 권리 축적만으로는 LGBTQ+ 해방에 불충분하다. 아무리 많은 법이 통과되더라도 LGBTQ+ 억압은, 더 넓게는 섹슈얼리티의 억압은, 이 체제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LGBTQ+ 해방을 위해서는 가족의 해체와 소외된 생산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가 모두 필요하다. 사회주의는 퀴어 해방의 필수 조건이다. 이미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족의 종식을 사회주의 정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제시했다. 사회주의가 사랑이나 로맨스의 종말을 요구한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적·정치적 단위로서의 가족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누구의 생존도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좌우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가족의 종식이란 곧 파트너 없이도, 혹은 해로운 파트너를 떠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물적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볼셰비키는 온 힘을 다해 이 문제에 매달렸다. 그들은 새로운 물적 토대 위에 새로운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가족이 국가처럼 차츰 소멸하기를 기대했다.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당이 스탈린화되기 이전까지의 볼셰비키는 부르주아 가족 구조를 구식으로 만들겠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그들은 진부한 가사 노동을 개인의 손에서 거두어 (이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손에 맡기고자 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정치는 여성에 대해서든 LGBTQ+에 대해서든 볼셰비키의 정치와는 전혀 달랐다. 가족의 종식에 관해 쓴 니콜라이 크릴렌코(Nikolai Krylenko) 같은 이론가들은 체포되어 살해되었고, “남색”과 성노동은 범죄화되었다. 스탈린 정부는 전통적 성별 역할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1944년 스탈린은 “모성 영예 훈장(Order of Maternal Glory)”을 제정해 출산한 자녀 수에 따라 여성을 서열화했다. 볼셰비키당 내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의 지도자 레온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이러한 비판은 제4인터내셔널의 형성 과정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다. 트로츠키는 『이행 강령』에서 이렇게 쓴다. 기회주의 조직들은 본성상 노동 계급의 상층부에 관심을 집중하며, 따라서 청년과 여성 노동자를 무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쇠퇴는 임금 노동자이자 가정주부인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 제4인터내셔널의 각 부문은 노동 계급의 가장 착취받는 층에게서, 즉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트로츠키는 가족의 종식과 가사 노동 사회화를 인간 해방의 필수 조건으로 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초기 볼셰비키들을 이어 주는 고리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예컨대 누군가에게 저녁을 만들어 주는 일이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의 표현이자 하나의 선물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젠더 역할과 어쩌면 젠더 그 자체마저 물적 토대를 상실한다. 젠더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사라지면서 다수의 젠더, 젠더의 부재, 유동하는 젠더, 이 유동성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생산 노동이 재조직되는 과정 또한 성적 소외의 종식에 기여할 것이다. 기술은 우리 모두가 더 적은 시간 일하면서도 모든 이에게 충분할 만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한다. 현재 실업 상태거나 수감 중이거나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를 고려하면 이 점은 더욱 명백하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는 더 이상 직장에서 질식당하지 않는 우리의 시간과 창조적 잠재력을 해방시킬 것이다.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에서 이 같은 미래를 구상했다. “필요 노동에 전용되어야 하는 본능적 에너지의 양은 (노동 자체가 완전히 기계화되고 합리화되어) 매우 적어질 것이므로, 외부적 힘에 의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광범위한 억압적 제약과 변형이 붕괴할 것이다. … 생의 본능인 에로스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해방될 것이다.” 단축되고 덜 고된 노동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며, 휴식하고 유혹하고 섹스할 시간을 줄 것이다. 완전한 성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결코 구경하지 못할 이윤을 위한 임금 노동의 폭정으로부터 우리의 시간이 해방되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의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욕망 위에 세워진 사회는, 무의미한 노동 대신 하루 대부분을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쓸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모든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듯이 공산주의는 구속 없이 이것저것 해 볼 자유를 약속한다.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는 것,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돌보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쓰지만,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는 않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이 자유는 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도 적용되어, 낮에는 부치 다이크, 밤에는 드래그 퀸, 주말에는 도미나트릭스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폐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와 함께 젠더 역할이 불필요해지고 자유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남에 따라, 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가능성, 우리의 젠더적·성적 해방의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사랑과 섹슈얼리티를 핵가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우리는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이다. 볼셰비키 지도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날개 달린 에로스에 길을(Make Way for the Winged Eros)』에서 이 발상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기심이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사랑의 토대 위에 사회가 건설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는 동지애와 연대라는 원칙 위에 건설되고 있다. 연대란 공동의 이익에 대한 자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의 구성원들을 잇는 지적·정서적 유대에도 달려 있다. 연대와 협력 위에 사회 체제를 건설하려면 사람들이 사랑과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계급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계급의 다른 구성원들의 고통과 필요에 응답하고, 타인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고무하고자 한다. 이 모든 ‘따뜻한 감정들’—섬세함, 연민, 공감, 호응하는 마음—의 원천은 하나다. 이 감정들은 협소한 성적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랑의 여러 측면이다. 사랑과 욕망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이 미래 각본에서, 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작동할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체성들을 위한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될까? 아니면 이름 따위는 전혀 필요 없게 되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전망했듯이 “모든 인간이 사회적으로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다르며, 완전히 자유로운 그런 세계”에서 살게 될까? 레프트보이스(Left Voice)에 2019년 7월 5일 게재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Tatiana Cozzarelli 번역: 강성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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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일하다 다치면, 도울 수 없다는 사실’ 영남권도 혼인평등소송 시작!조선소에 다니는 이현중(가명) 노동자와 오승재 공무원 노동자는 부부다. 울산 남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접수했는데 ‘불수리처분’을 받았다. 동성이라는 이유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는 일터와 사회에서 노동자를 향한 차별에 대항하며 조금씩 ‘평등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아직 바꾸지 못한 게 태반이다. 그중 하나가 인구 20명 중 1명으로 존재하는 성소수자가 여느 부부들처럼 사랑하고 생활공동체로 사는 삶이 차별당하는 문제다. 이현중 조선소노동자와 오승재 공무원노동자가 이에 불복해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이 4월 8일 울산가정법원 앞에서 열렸다. ‘노동자 도시 울산, 사랑도 평등하게’라는 제목으로 무지개행동과 민주노총 등 총 23개 단위[1]가 공동주최로 나섰다. 참가자들은 “헌법이 요구한다. 혼인평등 실현하라!”, “동성부부 혼인신고 지금당장 수리하라”를 외치며 부산과 대구, 울산 영남권 세 곳에서 동성부부 혼인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남편이 일하다 다치면, 도울 수 없다는 사실 OECD 국가의 2/3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성별이분법에 근거해 주민등록번호 ‘1’번 남성과 ‘2’번 여성의 혼인만 인정된다. 이러한 차별을 없애고자 한국에서 지난 2024년 10월 처음으로 동성부부 11쌍이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권리를 성소수자에게도 보장하라는 동성혼 법제화에 나섰다. 2025년 2월에는 서울북부지방법원의 동성결혼 불인정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각에 따른 헌법소원심판도 제기했다. 이제 보수적이라는 울산, 부산, 대구에서도 성소수자 동성부부들이 나선 것이다. 울산 혼인평등소송의 원고인 ‘오승재’ 공무원 노동자는 당당히 마이크를 잡았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냉대와 혐오를 당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제가 만난 울산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였다. 공직사회 특성상 커밍아웃하고 결혼 사실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동료를 믿었고 그 믿음을 틀리지 않았다. 어떤 동료 직원은 기꺼이 혼인신고의 증인을 자처했고, 상사로부터는 축하와 응원의 편지를 받았다. 세상은 우리 부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이 일하는 조선소에서는 자주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저를 만나기 전 남편도 산업재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앞으로 일하다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법적으로 배우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프고 시리게 한다. 우리는 이미 부부이고, 서로의 배우자다. 이 당연한 사실을 확인해달라. 우리 부부가 지역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차별의 마침표를 찍어달라” 불평등한 혼인이 어찌 작은 차별일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은 겨우 산 하나를 넘었다. 하지만 가족수당, 경조사휴가, 세제 혜택, 각종 제도와 지원정책, 병원 입원과 수술, 임신과 출산, 입양, 양육 그리고 장례와 상속 절차에 이르기까지 ‘혼인’에서 제외되는 불평등은 성소수자 부부의 실존과 삶을 직접적으로 타격한다. 그러기에 ‘남편이 조선소에서 산재를 당할 때 배우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동성부부의 호소는 끔찍한 차별의 고통일 수밖에 없다. 혼인평등소송과 민주노조 울산에서 열린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에 민주노총은 임원과 상근자,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 노동자 정도만 참가했다. 대부분은 사회단체 활동가들이었다. 대구와 부산의 사진을 봐도 기자회견 사진에 노동조합 조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영남권 혼인평등소송 원고의 대부분이 노동자인데도 말이다. 성소수자는 TV와 유튜브에 나오는 연예인으로만 살지 않는다. 노동자로, 노인으로, 청년으로 이웃으로 똑같이 살아간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다양하다. 그러나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이래야 하며, 남녀가 결혼해서 정상적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민중에게 커다란 관념을 주입해왔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더 착취하기 쉬운 노동력과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성차별을 구조화하며 성소수자를 혐오, 배격, 차별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성혼 합법화는 있는 그대로 애정에 기반한 생활공동체 부부를 인정하라는 요구이자,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제도에 변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처음 노동자국가를 만들었던 1917년, 제정 러시아의 법률을 폐지해 동성애가 비범죄화됐다. 이후 1922년 동성애를 합법화했다. 1923년~1930년 동성애자였던 게오르기 치체린이 인민외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모스크바 사회위생연구소 소장은 '러시아의 성혁명' 보고서를 발표하며, "동성애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법적, 사회적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30년대로 접어들며 스탈린에 의해 혁명이 질식당하며, 성소수자의 권리 또한 질식됐다. 스탈린 치하 소련은 1934년 동성애를 다시 금지시키고, 성매매를 범죄화했다. 사회주의 혁명이 패배한 조건 위에서도,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 반대, 페미니즘 운동, 반전운동과 함께 등장한 1969년 스톤월 항쟁을 비롯해, 성소수자의 권리를 향한 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동성혼 합법화가 2001년 네덜란드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동성혼 합법화는 유럽, 북미, 남미 등으로 나아갔고 아시아에서는 2019년 대만, 2024년 태국을 포함해 현재 39개 나라에서 동성혼을 보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지난 30년간 인권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의 영향으로 줄고 있다. 40~47%가 동성혼 합법화를 찬성한다고 한다. 민주노조 운동도 사회적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며 부족하나마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운동을 연결하고 있다. 민주노총 내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 성소수자를 포용한 단체협약, 노동조합 기구로서 성소수자위원회 등도 있다. 하지만 학교, 일터, 사회의 다양한 차별 중 혼인에 대한 차별조차 아직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내란에 맞선 한강진 투쟁에서 휘날리던 금속노조 무지개 깃발 (사진: 금속노조) 혼인평등도 차별금지법도 모든 차별에 맞서는 노동자투쟁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동성부부도 결혼축하금을 받고 결혼휴가를 적용받는 조항이 있나? 거의 없다. 이유는 법이 없어서? 아니다. 민주노조는 법을 만들어지기 전에 현장 노동대중의 힘으로 투쟁하고 단협을 만들고 법을 만드는 투쟁을 해왔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차별에 대해 노조에서 토론하고 교육하고, 사측과 싸운 적이 있나? 이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도 사회에서 ‘배운대로’가 익숙해서다. 낯선 것에 대한 거리감, 다름에 대한 경계, 부지불식간의 차별, 감염된 혐오. 여기에 더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의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부차적으로 치부한 한계가 겹치며 소수자의 권리를 등한시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조가 자본가계급과 이제껏 싸우면서 깨달은 건 저들의 분열책동에 맞서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의 무기는 단결'이라는 원칙이다.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노동자민중과 단결할 때 노동자계급은 더 큰 힘으로 자본에 맞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더 미룰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광장의 제1요구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말도 꺼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본을 향한 규제완화와 세금 퍼주기에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노동정책을 밀고 있다. 최근에는 기간제법 운운하며 비정규직 사용을 늘리려 한다. 정부의 말잔치와 자본의 탐욕, 혐오정치에 협의가 아닌 투쟁이 필요하다. ‘성명서 정치’가 아닌 실질적 투쟁으로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노동기본권, 모든 사회적 소수자를 포괄하는 인권 보장을 위해 단결하자. 영남권 혼인평등소송 소식을 현장에 전하고 내부를 돌아보며 인식강화부터 시작해보자. 민주노조가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공간인지, 성소수자가 학교와 사회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게 얼마나 싸워왔는지 돌아보고 혼인평등을 단체협약 등 현장투쟁과 연결하자. 인종, 국적, 고용형태, 장애, 성별,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 등 모든 차별을 없앨 수 있도록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역시 사회와 현장을 연결해 앞장서자. 착취와 차별 없는 세상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다. (사진: 노동과세계) [1]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 모두의 결혼 · 사단법인 울산인권운동연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울산지부 · 노동당울산시당 ·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 사단법인 성평등 · 사단법인 울산장애인부모회 · 사단법인 울산여성의전화 · 사단법인 울산여성회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울산지역위원회 · 울산민족예술인총연합 · 울산새생명교회 · 울산시민연대 · 울산진보연대 · 울산환경운동연합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울산지역본부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울산사무소 · 정의당 울산시당 · 정책과비전포럼 · 진보당 울산시당 · 평화통일교육센터 (총 23개 단위)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18 | 조회 18,660 -
연서명은 민주적 토론의 수단이며, 운동의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정당하다올해 사업계획에 대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체회의를 앞두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사업계획에 포함된 OSF 기금 수령의 건에 대해 반대 연서명을 받았다. 이는 논의를 보다 폭넓게 촉진하고, 나아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더욱 폭넓게 조직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서명과 같은 수단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매개다. '압박'과 '동원'은 민주주의의 불가분한 요소다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련의 대의원들, 그리고 이에 동참하는 대의원 자격이 없는 평조합원들과, 조합원도 아닌 ‘외부인’들이 모여 현수막을 펼치고 피켓팅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선동발언을 한다. “회계공시 거부하고 자주성을 지킵시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 민주노조가 지켜야할 원칙입니다!” 한 대의원은 조합원 3명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대의원들 바로 앞에서 피켓팅을 하며 말을 건넨다. 어떤 이들은 대의원대회 좌석 하나하나마다 준비한 유인물을 배치한다. 이는 당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민주노총에서 벌어진 논쟁적인 사건들에 관한 행동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에게 회계공시를 강요하였는데, 민주노총 집행부 다수, 일부 산별노조는 이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이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회계공시를 받는 것은 민주노조의 자주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또 당시로부터 얼마 전인 2023년 12월,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가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 촉구’를 내걸고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했었다.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설립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해당 사안을 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하고 싸워야 할 단결의 대상이 아닌 추방의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의견을 담아, 175개 단체와 894명의 개인이 1월 19일 공동성명을 발행했고, 그 연장선에서 대의원대회 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했다. 이러한 피켓팅을 보면서 민주노총 집행부, 건설노조 집행부, 회계공시 수용이나 건설노조의 이주민 단속촉구 집회에 찬성하던 대의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나갔을까? 아마도 적잖이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리 대인배라도 자신의 결정과 입장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반대파들의 존재가 썩 편하기는 어렵다. ‘저 구호 하나에 담기지 않는 어려운 사정들이 얼마나 많은데…’ 회계공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는 것인데, 그런 본인들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아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의원대회장에서 선동하는 모습을 보고 대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추진하려던 안건이 부결될까봐 걱정이 되고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예를 보자.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 이후 대선 시기,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즉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하고자 하는 입장을 가졌었다. 이는 중집 내부에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에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이에 민주노총 내 일부 단위에서는 ‘민주노총이 즉각 지지후보를 결정해야한다’는 취지의 연서명을 받았고, 349명의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연서명을 모아 발표했다. 이 모든 행위는, 회의장(대의원대회, 중앙집행위원회 등)을 벗어나, 해당 사안에 대해 대중들의 참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대중동원(mobilization)’ 행위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상기하였듯 반대입장을 가진 단위들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닌가? 이것은 민주주의다. 정확히 이러한 동원과 압박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들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매개다. 노동자 민주주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확대해온 역사였다. 운동 내부에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계급으로 조직하는 과정의 정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계급은 늘 자본의 독재 아래 살아간다. 자본가가 통치하는 모든 작업장의 기본 원리는 상명하복이며, 이런 환경 속에 보통의 노동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표현하는 법조차 잊어버린채로 살아간다. 노동자계급이 ‘쇠사슬에 묶인 노예’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대로 받고 살라’는 자본가의 독재에 맞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단에 따라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바로 노동자계급을 그런 존재로 조직해가는 운동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단결의 기구인 노동조합은, 그것이 민주노조라면, 의사결정에 있어 자본가들의 방식과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해야한다. 그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자유로운 의견표현이 전면적으로 보장되고, 서로 다른 의견이 끊임없이 경합하는 가운데 총의를 모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 시기의 단위노조부터, 혁명적 시기에 등장하는 노동자평의회까지, 일정한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운동기구는 불가피하게 대의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대의제 형식은 민주주의의 전면적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필연적 약점을 가진다. 예컨대 간부(집행부, 대의원 등)와 평조합원 간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부들의 의견으로 수렴되지 못하는 평조합원의 의견이 토론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노조 운동은 대의제의 약점을 보완하고, 직접 민주주의에 근접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수단들을 발전시켜왔다. 그런 기술적 수단들의 핵심은 논의가 상층 대의제 기구에 머물지 않고, 각 단위현장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 중집을 구성하는 단위들 중 전국결집 정파에서는 매 중집 때마다 ‘중집 스케치’를 SNS 채널에 발행한다. 중집에서 어떤 안건이 다뤄졌으며, 그 중 특히 주목해서 봐야하는 안건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예컨대 얼마 전 발행된 ‘0319 민주노총 중집 스케치’ 글에서는, 민주노총 정책실이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잠정합의해 온 합의안의 승인 여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소개한다. 앞면에서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와 관련한 협의 내용에 대해, 이것이 자본에게 원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며 격렬한 반대의견들이 제출되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뒷면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선거방침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신문’은 논의가 중집으로만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훌륭한 대의제의 보완물이다. 중집에서 진행되는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다수 조합원 대중으로 하여금 논쟁의 구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피켓팅, 현수막, 연서명, 공동성명 발표, 안건발의 등도 그러한 기술적 수단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집행부를 상대로 항의농성을 하기도 한다. 이런 수단들은 특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때 활용되곤 한다. 예컨대 2020년 당시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통과시키려고 했을 때, 여러 단위가 민주노총 건물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중집 회의장에 들어가 피켓팅을 하며 사회적 합의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해당 사회적 합의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 계급의 이익을 저버리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현장 영상] 민주노총 강경파 ‘노사정 합의’ 반대…김명환 위원장 ‘사실상 감금’ - 한겨레 신문 결국 노사정 합의안은 대의원 과반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김명환 집행부는 사퇴했다. 당시 자본가 언론들은 ‘직선제로 뽑힌 위원장’의 결단을 ‘방해한다’며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당시 논쟁은 자본가 언론들과 민주노조 운동 사이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자본가 언론은 김명환 위원장의 말을 활용해, “지금 반대파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오후까지 ‘노사정 합의안 폐기 및 대대 안건 부결’ 성명에 서명한 대의원은 전체 1,480명 중 과반인 810명에 달한다. 또 민주노총 부위원장 7명 중 6명, 16개 산별노조 중 9개, 16개 지역본부 전체가 반대하고 있다. 수많은 현장 간부들과 현장조직들이 여기에 합세하고 있다. 과연 누가 민주노총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가? 다수 간부들의 의지를 거역하고 대대를 강행해 야합안을 밀어붙이려 발악하고 있는 김명환 위원장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지를 모아서 민주노총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인가? 자본가 언론들은 말한다. “김명환 위원장은 직선제로 뽑힌 사람이다. 그런데 ‘꼬리’들이 이 ‘몸통’을 뒤흔들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꼬리’에 불과한 김명환 집행부가, ‘몸통’인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의 의지를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 공동성명 | 민주노총 임시대대, 압도적 부결로 민주노총을 바로 세워냅시다! 논쟁적인 안건에 따라오는 피켓팅, 연서명, 심지어 항의농성과 같은 행위들은 표면적으로는 상층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을 향한 호소이나, 본질적으로는 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대중들을 향한 호소이다. “우리는 이 안건이 이렇게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동지들, 이 운동의 주인으로서 우리 운동이 이렇게 가도 되는지 판단해주십시오”라고,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에게는 물론 전체 조합원 대중에게, 좀 더 넓게는 (노동조합 조직여부를 떠나) 계급 전체에 호소하는 행위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주인은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너르고 단단해지려면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서 OSF재단 기금을 받아 수입의 77%를 충당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업계획 건을 올렸을 때,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연서명을 추진한 것은 이런 운동의 민주주의 전통 위에서 택한 행동이다. OSF재단의 기금을 받자는 제안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중대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안건이라면 그에 걸맞게 격렬하게 논쟁하는 게 민주주의다. 우리의 논쟁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전체회의로 축소될 수 없다. 우리의 관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주체는 차별받고 억압받는 모든 피억압민중들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그리고 그 법이 미국에서처럼 트럼프의 집권을 막지 못하고 각 주의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불법화하는 걸 막지도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라, 진정한 효력을 가진 법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차별금지법 운동을 향한 노동자민중들의 전면적 자기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의가 집행위, 또는 전체회의 구성원들을 넘어 대중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연서명이란 방식을 통해 이 논쟁에 입장을 정할 것을 호소한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여러 단위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주도해온 집행위원회가, 전진이 연서명을 받아 제출한 것이, ‘전체회의에서 여러 맥락의 의견개진을 어렵게 했으며’ 차제연의 ‘의사소통 체계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의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차제연 집행위 단위들이 그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투쟁해온 헌신과 노고를 존중한다. 특히 여러 성소수자 운동 단위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선봉으로서 온갖 탄압을 앞서서 견디며 투쟁해왔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운동이 자본이 자신의 지배를 감출 도구로 쓰이도록 두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이며, 이 논쟁을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대중들과 함께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서명한 개인과 단위들, 그리고 연서명을 추진한 전진을 ‘운동의 외부’로 호명하는 여러 입장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27개 연서명 공동발의단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차별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해왔다. 예컨대 27개 공동발의단위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바로 지금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전진의 활동가를 포함해, 연서명에 참여한 많은 퀴어 당사자들도 있다. ‘OSF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손을 잡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또한 성소수자 운동의 일부다. 차별금지법이 '차별에 맞선 운동'이라면, 비록 그것이 직접적으로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지라도, 차별에 맞선 투쟁을 해온 이들 모두 이 운동의 일부이다. 그래서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혁명과 민주주의 1917년 러시아혁명의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르포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작가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존 리드가 1920년 9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동방민중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갔는데, 존 리드의 동의 없이 지노비예프가 연설문을 감수하며 ‘계급전쟁(Class war)’을 ‘성전(Holy war)’로 고쳐쓴 것이다. 존 리드는 지노비예프에게 자기 글을 동의없이 고치지 말라고 요구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견이 없어지면 혁명은 죽는겁니다. 이견을 제기하는 게 혁명이니까! (when you purge the dissent, you kill the revolution. revolution is dissent!)” 지노비에프와 리드가 논쟁하는 이 장면은 영화적 재현일 뿐 실제 사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이 기사에선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 한다. 해당 장면에 뒤이어 곧바로 열차는 백군의 습격을 받아 탈선한다. 해당 장면은 나에겐 러시아혁명이 당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 시기 러시아혁명의 심장이던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가 점차 열리지 않게 되었고[1], 볼셰비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을 겪은 뒤 당내 분파활동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통과시켰는데, 이는 이후 영구화되어 당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무기가 됐다. 즉 혁명이 스탈린 관료체제로 변질되고 퇴보하는 과정은, 곧 반대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전면적 개화는 어떤 모습일까? 상층 대의기구의 깔끔한 합의 아래, 대중들이 통일되고 절제된 요구를 내거는 모습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수백종류의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유인물이 광장에 휘날리고, 평의회와 같은 중요한 대의기구의 결정을 앞두고서는 대회장에서 오만가지 이견이 충돌하며, 그 혼란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판단을 내리는 것.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다수파의 의견이 결정되고, 그럼에도 소수파가 그에 반대할 선전선동의 자유를 잃지 않는 것. 그래서 경험과 실천 속에서 다수파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는 시험대에 오르고, 사태의 전개에 따라 소수파가 더 큰 동의를 얻으면 언제든 다시 다수파가 돼 집행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명의 모습이며,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노동자평의회 다당제의 모습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그런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 그것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능케할 것이고, 나아가 착취와 차별, 억압을 철폐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 [1] 초창기 전러시아소비에트 대회는 1년에 1회 이상 개최되었다. 그러나 1922년부터 2년에 한번 꼴로 개최되다가, 1931년 이후에는 4년 뒤인 1935년에 한번 열리더니, 그 다음 특별대회를 통해 해산돼버렸다. 1920년대 말 이래 소비에트 대회는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단 하나의 기권표도, 반대연설도 없었다. 스탈린이 주도하는 공산당이 경제 5개년 계획을 이미 집행하기 시작한 뒤, 소비에트는 이를 사후 승인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08 | 조회 17,426 -
[번역] 퀴어해방은 어디를 향하는가올해[2020년]는 스톤월 항쟁 50주년이 되는 해다. 기업들은 이때를 틈타 대대적인 핑크워싱에 나섰다. 무지개 운동화, 머그, 티셔츠가 쏟아졌다. 자긍심의 달 기간 동안 뉴욕 경찰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 파고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과 나란히 공식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행진했다. 바로 그 같은 달에, 레일린 폴란코(Layleen Polanco)는 라이커스 섬의 교도소 독방에서 사망했다. 오늘날 LGBTQ+ 운동이 품고 있는 모순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무지개로 치장한 경찰이 행진하는 동안, 유색인 트랜스 여성 활동가는 경찰에게 구금된 채 목숨을 잃었다. 주변화로부터 자본주의와의 동화(Assimilation)로 이토록 빠르게 이행한 집단은 역사상 유례가 없다. 불과 50년 만에, 우리를 구타하고 강간하고 체포하던 경찰이 우리의 퍼레이드에서 함께 행진하게 되었다. LGBTQ+ 운동의 태동기부터 동화 문제는 분열의 중심이었다. 우리는 기존 체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체제 자체를 바꾸기를 원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우는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동화주의와 호모파일 운동 동화주의 조직들은 “단일 이슈” 중심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그들은 LGBTQ+ 의제를 가장 협소한 틀에서 정의하고, 따라서 트랜스젠더, 유색 인종, 노동 계급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단체들은 로비 같은 전술을 택하고, 퀴어니스의 여러 측면 가운데 성적으로 가장 전복적인 부분들을 순화하려 한다. 민주당 정치인들과 거액 후원자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는 이렇다. 미국이 불완전하긴 하지만, 사법부와 의회 같은 기존 제도가 그것을 완성할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의란 사다리와 같아서, 가로대를 하나씩 올라가듯 권리를 축적해 나가면 결국 평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다. 현대 퀴어 운동의 역사는 스톤월에서 시작된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 전체 운동이 오로지 급진적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은 LGBTQ+ 역사에 대한 오독이다. 게이 운동의 일부는 처음부터 심각하게 동화주의적이었다. 미국 최초의 퀴어 운동 단체 중 하나인 매터신 협회(Mattachine Society)는 1950년에 설립되었다. 이들은 섹스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기 위해 “호모파일(homophile) 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단체는 매터신만이 아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빌리티스의 딸들(Daughters of Bilitis)인데, 이들은 매터신 협회 창립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레즈비언 조직화에 나섰다. 호모파일 조직들은 사회의 끔찍한 억압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1953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성도착”을 공직 해임 사유로 규정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고, “자색 공포(Lavender Scare)”로 알려진 이 시기에 수백 명이 해고되었다. 단 한 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가 동성 간 성행위를 불법으로 명시했다. 클럽 단속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경찰은 LGBTQ+ 당사자들을 구타하고 체포했으며 이들의 이름을 지역 신문에 공개하기도 했다. 1950년대의 초기 LGBTQ+ 조직화는 자색 공포에 더해 적색 공포라는 맥락 위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에 동성애와 공산주의는 빈번하게 동일시되었다. “성도착자”는 의지가 박약하고 쉽게 타락하며, 따라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굴복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매터신 협회는 전직 공산당원이 설립했으며, 게이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규율 있고, 도덕적이며,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동성애 윤리를 발전”[1]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50년대 및 60년대 초의 억압적 환경 속에서 매터신 협회는 많은 게이 남성과 소수 레즈비언에게 생명줄 같은 존재였고, 정기 간행물 『매터신 리뷰』를 통해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게 다가갔다. 낸 알라미야 보이드가 『무엇이든 허용되는 도시』에서 설명했듯, 매터신은 회원들을 선량하고 품행 바른 미국 시민으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매터신 지도부는 “매터신 구성원들이 젠더 경계 위반과 동성애를 뒤섞는 관행과는 거리가 멀다고 인식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유색 인종 커뮤니티의 행동주의 및 정치 투쟁과도 거리를 두었다.”[2]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신뢰를 북돋았고, 『매터신 리뷰』에 실린 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성조기가 늘어선 광경을 보고 느끼는 자부심과 명예가 남들보다 덜하지는 않습니다.”[3] 매터신은 1953년을 기점으로 뚜렷하게 우경화되었다. 창립자 중 다수가 전직 공산당원이었음에도 조직의 한 분파가 적극적인 반공주의 노선을 취하려 한 것이다. 결국 내부 투쟁을 거쳐 다섯 명의 창립자 중 세 명이 사임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단체의 지도자 해리 헤이(Harry Hay)도 있었다. 1956년에 이르러 매터신 협회는“공산주의자 및 공산주의 활동에 변함없이 반대하며, 그 어떤 공산주의 단체나 위장 조직도 자신들의 단체 명칭을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4]이라고 선언했다. 매터신 협회가 반공주의를 표방한 한편, 코민테른의 지령을 따르던 미국 공산당은 반LGBTQ+ 노선을 취했다. 1918년 볼셰비키는 “동성애”를 비범죄화했지만 1933년 스탈린은 이를 다시 범죄화했다. 이는 10월 혁명의 해방 이념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었으며, 전 세계 공산당들이 이 같은 배신을 저질렀다. 공산당의 동성애 혐오 및 트랜스 혐오 정책이야말로, 헤이가 한때 사회주의 조직 활동에 참여했지만 그 활동을 이후 자신이 구축한 게이 운동과 연결시키지 못한 이유였다. 스톤월과 급진적 퀴어들 “마치 댐이 무너지듯, 스톤월은 소수의 남녀가 의식적으로 조직화하여 20년간 조금씩 이룬 진전이 자발적 분노의 물결로 분출한 폭발이었다.” 셰리 울프는 『섹슈얼리티와 사회주의』에서 이렇게 적는다.[5] 스톤월은 블랙 파워, 반전, 페미니즘 운동으로 점철된 급진적 시대의 일부였다. 스톤월은 1968년의 전 지구적 폭발, 즉 프랑스의 5월, 멕시코 학생 운동, 구정 대공세,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에 맞선 대중 투쟁 이후 1년 만에 일어났다. 이런 종류의 항쟁이 스톤월 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9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쿠퍼 도넛에서 폭동이 있었고, 1966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컴프턴스 카페테리아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스톤월이 새로운 점은 항쟁 이후에 이루어진 조직화의 성격이었다. 스톤월은 매터신 협회와 정반대였다. 스톤월은 분노했고, 유색 인종과 트랜스젠더의 것이었으며, 일탈적이었고, 폭동이었다. 스톤월 참전자 짐 포랫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호모파일 운동)에게 악몽이었다. 그들은 착하고 받아들일 만하고 현상 유지에 협조하는 미국인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받아들일 만한 존재가 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6] 실제로 스톤월 폭동 첫날 밤 이후 매터신 협외의 반응은 스톤월 인 앞에서 침착함과 차분함을 촉구하는 글을 써 붙이는 것이었다. 게이 해방 전선(Gay Liberation Front, GLF)은 스톤월 항쟁에서 탄생한 가장 중요한 단체였다. GLF의 신문 『더 랫(The Rat)』은 이 운동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응축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완전한 성적 해방은 기존 사회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다는 자각 속에서 결성된 혁명적 동성애자 남녀 집단이다. 우리는 성적 역할과 우리 본성에 대한 정의를 강요하려는 사회의 시도를 거부한다.”[7] 그러나 혁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합의되지는 않았다. 앨런 시어스가 「퀴어 반자본주의」에서 주장하듯, 새로운 운동은 가시성, 전투성, 그리고 규범적 성 역할 및 젠더 역할에 대한 투쟁을 강조했다. 시어스에 따르면 이 시기는 “에로스의 영역을 해방의 장으로 상정한” “성적 유토피아주의”의 시대, 규범성 그 자체가 적수인 시대였다.[8] 새로운 퀴어 운동의 정치적 초점이 “면전에 들이대는” 섹슈얼리티의 급진성이었던 한편, 이 운동의 일부 요소들은 교차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기도 했다. 베트남의 민족 해방 전선을 떠올리게 하는 게이 해방 전선의 이름 자체가 반제국주의를 향한 명백한 신호였다. GLF는 선언했다. “우리는 모든 피억압자와 우리를 동일시한다. 베트남의 투쟁, 제3세계, 흑인, 노동자… 이 썩어빠지고 더럽고 비열하고 망할 자본주의 음모에 억압받는 모든 이들과.”[9] 마찬가지로 GLF는 특히 흑표당과의 관계를 모색하여 지도부와 만남을 갖고 흑표당의 1970년 대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GLF의 전망에서 조직된 노동 계급은 대체로 부재했다. GLF에게 동화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자본의 상층부에서 이루어지는 대의 정치에 맞서 싸운다는 것을 의미했다. 『컴 아웃』 신문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담쟁이로 덮인 별장과 대기업 일자리라는 무익한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게이 부르주아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든 동성애자가 배제되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10] 일부는 명시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기까지 했다. 시카고 GLF의 회원이었던 한 사람은 이 운동이 “미국 군산 복합체가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개혁하거나 개선할 대상이 아니라, 파괴한 다음 평등과 정의의 체제로 대체해야 할 대상이라는 정치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11]고 증언한다. 그러나 GLF는 오래가지 못했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고 합의제로 운영된 회의는 통제 불가능했다. 퀴어라는 사실이 참석자들 간의 정치적 합의를 보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혁명이 목표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적은 누구인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기 시작한 것처럼 남성이 적인가? 아니면 일부 급진적 퀴어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성애자가 적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국가인가? GLF는 이 질문들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한 단체들로 분열했는데, ‘급진적 레즈비언들(Radicalesbians)’, ‘거리의 복장 도착자 행동 혁명가들(Street Transvestites Action Revolutionaries), ‘게이 활동가 동맹(Gay Activist Alliance)’ 등이 그것이다. 이 단체들은 혁명적 수사를 표방했지만 정치적 사유의 상당 부분에서 자본주의 국가 개념을 결여했으며, 이들이 구상한 “혁명”은 주로 문화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게이 파워”나 레즈비언 분리주의를 유효한 전략으로 간주했다. 많은 이들이 “이성애적 가치”와 “이성애 사회”를 적으로 삼았는데, 이는 애초에 사회를 이성애 및 시스젠더 규범성 중심으로 조직한 자본가 계급과 국가로부터는 분리된 입장이었다. 호모파일 운동 태동기의 스탈린주의처럼 피델 카스트로 또한 사회주의와 새로운 퀴어 운동이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1965년 카스트로는 LGBTQ+ 당사자들을 “생산 증대 부대”로 알려진 강제 수용소에 수감했다. 미국 좌파의 상당수는 카스트로 정부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냈는데, 그들은 공산당과 쿠바 연대 여단들처럼“동성애”가 부르주아적이라고 주장하거나, 쿠바에서 LGBTQ+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문화 제국주의”라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의 혁명가들은 미 제국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쿠바 혁명을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LGBTQ+ 당사자들을 강제 수용소에 가둔 비민주적 관료제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LGBTQ+ 운동의 비영리 산업화 급진적 퀴어 조직 운동이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때 에이즈 위기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동안 에이즈는 퀴어 커뮤니티를 초토화했고, 기독교 우파는 에이즈가 동성애자 죄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찾아온 게이 질병이라고 떠들었다. 이 같은 맥락 위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막과 함께 급진적 퀴어 조직화가 다시 부상했다. 1980년대 후반 액트업(ACT UP)은 정부의 에이즈 무대응, 그리고 에이즈 위기로부터 이윤을 취하는 기업의 탐욕에 맞선 직접 행동에 집중했다. 이후 퀴어 운동은 “주변의 모든 것이 후퇴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전진했다.”[12] 신자유주의가 진군하는 가운데, LGBTQ+ 당사자들의 행동주의, 자본 앞의 형식적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 핑크워싱이 약속하는 이윤이 함께 작용하여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가장 차별적인 법률 일부가 폐지되었다. 2003년이 되어서야 연방 차원에서 폐지된 “남색” 금지법 같은 것들 말이다. 2015년 LGBTQ+ 당사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결혼할 권리를 쟁취했다. 지금은 커밍아웃한 게이 남성이 민주당 대선 경선의 유력 후보다. 자본주의는 몇몇 게이와 레즈비언을 권력 상층부에 받아들이고 게이·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할 만큼 유연한 체제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동시에 노동 계급 퀴어와 유색 인종 퀴어를 주변화했다. 실제로 LGBTQ+ 당사자들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우리 중 일부가 더 많은 권리를 획득할수록 우리 사이의 인종적, 계급적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 30년간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정부의 공공 복지가 대폭 삭감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이와 레즈비언 정체성이 일정 정도 정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LGBTQ+ 운동은 거의 완전히 비영리 산업 복합체 안에 편입되었다. 이는 비영리 단체가 전반적으로 급증한 현상의 일부인데, 1965년 3천 개에 불과했던 비영리 단체는 오늘날 150만 개가 되었다. 비영리 산업 복합체는 오늘날 동화 논쟁이 벌어지는 아주 협소한 무대다. 특히 휴먼 라이츠 캠페인(Human Rights Campaign, HRC)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호모파일 운동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다른 일부 비영리 단체는 스톤월의 유산을 이어가려 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단체들조차 끊임없는 보수적 압력 아래 놓여 있다. 휴먼 라이츠 캠페인 HRC는 매터신 협회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만큼 훨씬 덜 적대적인 환경에서,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조직 활동을 벌인다. 연간 수입이 4,500만 달러를 넘으며, 시티뱅크와 애플 같은 기업 후원자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HRC의 목표는 과거 호모파일 운동의 목표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바로 자본주의적·가부장적 체제로 동화되는 것이다. 매터신 협회처럼 HRC는 가장 협소한 의제에 집중한다. 그들은 동성혼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LGBTQ+ 군복무 금지에 반대한다. 트랜스젠더는 일관되게 논의에서 배제되는데, HRC가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지 않는 고용 비차별 법안을 지지한 것이 단적인 예다. HRC는 게이와 레즈비언도 존중받을 만한 애국자임을 보여 주려 한다. HRC는 민주당 선거 운동을 하고 미국에서 가장 사악한 자본가들과 밀착한다. 2017년에는 아마존 노동자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비인간적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프 베이조스에게 “평등상”을 수여하기까지 했다. 호모파일 운동 시대의 자본가들과 달리 지금 미국 자본가 계급의 상당수는 정말로 게이 갈라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 사비를 털어 조직 활동에 쏟아부었던 호모파일 운동 지도자들과 달리 HRC CEO는 연봉이 50만 달러에 달한다. HRC는 모든 권력과 자원을 동원하여 주류 LGBTQ+ 운동의 의제를 통제하며, 민주당 선거 운동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협소한 요구 사항들로 운동을 제한한다. 퀴어 해방 비영리 단체 LGBTQ+ 관련 비영리 단체가 모두 HRC 같은 유형은 아니다. 일부 단체는 훨씬 더 교차적이고 급진적인 정치를 표방한다. 예를 들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Sylvia Rivera Law Project),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Audre Lorde Project), 경제 정의를 위한 퀴어들(Queers for Economic Justice) 같은 곳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 단체들을 퀴어 해방 조직이라고 불렀다. 이 단체들은 스톤월의 꿈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발현된 것이다. 스톤월 시대의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해방을 위한 응집력 있는 전략이 부재하며, 무엇보다도 이들은 기금 확보를 위한 끝없는 경쟁 속에 갇혀 있다. 이 단체들도 교도소 산업 복합체, 이민 체제, 신자유주의 하에서 후퇴하는 공공 복지 문제 등을 포괄하는 퀴어 해방 전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는 공로가 있다. 스톤월 시대의 조직들처럼 일부는 자본주의 비판도 제시한다. 이들은 딘 스페이드(Dean Spade)가 “상향식 사회 정의”라고 부른 것, 말하자면 조직이 가장 주변화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면 그 위의 모든 계층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지향한다. 이 비영리 단체들은 사람들에게 해방된 미래를 상상해 보라고 하지만, 전략 측면에서 이들이 제시하는 것은 개혁을 위한 계획뿐이다. GLF 구성원들처럼 이 단체들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퀴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대해서도, 목표를 달성할 전략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다. 문화적 변화가 목표인가? 아니면 공공 복지의 확대인가? 명확한 정치적 합의가 결여된 상황에서 비영리 단체에 가해지는 보수적 압력을 견디기는 더욱 어렵다. 이 비영리 단체 중 상당수는 퀴어 커뮤니티에 중요하고 절실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게이 주식회사(Gay Inc.)』에서 멀 빔(Myrl Beam)이 주장하듯,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금을 확보할 필요성 자체가 물질적·보수적 압력이 된다. 비영리 단체 활동가 로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보조금을 받게 해 준 바로 그 제도를 전복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사명이 된다면, 문제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는 우리가 해체하려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기 때문이다.”[13]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좌파적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비영리 단체는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은 채,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실제로 만들어 내지 않은 채, 영원히 서비스만 제공하면서 존속할 수 있다. 이것이 퀴어 해방 비영리 단체들의 문제다. 이들은 결코 퀴어 해방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소수의 이윤을 위해 다수를 착취하는 사회에서 퀴어 해방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의 권리가 사다리가 아닌 이유이며, 우리의 권리가 해방을 향해 축적될 수 없는 이유이며, 교차적 착취와 무지개 CEO가 우리를 해방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 다수의 퀴어에게, 즉 노동 계급에 속하며 그중 상당수는 유색 인종인 퀴어에게, 게이 대통령이 탄생한들 생계 때문에 허덕이는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퀴어 섹슈얼리티 전유와 상품화에서 명백히 드러나듯, 우리의 섹슈얼리티 그 자체가 해방의 장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하층을 위한 개혁 및 복지를 쟁취하는 투쟁과 교차성만으로는 퀴어 해방을 이루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 비판만으로는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퀴어 해방은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건설된 사회, 우리의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는 사회, 더 나아가 자유 시간을 보장하며 우리의 창조적 잠재력을 해방하는 사회, 바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 우리의 억압과 착취는 문화만 바꾸어서는 끝낼 수 없다. 우리의 억압은 교도소, 경찰, 학교 같은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들에, 그리고 국가 안에서 기독교가 수행하는 역할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주로 여성으로부터 무급 재생산 노동을 추출하는 데 필수적인 젠더 역할에, 그리고 직장 안팎의 총체적 소외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성적으로 비참한 사회에, 말하자면 직장에서 몸과 마음이 닳고 닳아 집에 돌아오면 그림자만 남는 그런 사회에 뿌리박고 있다. 개혁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자본가 계급의 자산을 몰수하는 혁명, 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인류 전체를 해방하는 대규모 문화적 변혁의 물질적 토대를 창출하는 혁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목표다. 자본주의 국가가 무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노동 계급은 강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생산하고 자본주의 전체를 작동시킨다. 그러므로 노동 계급은 혁명의 원동력이다. 전체 체제를 무릎 꿇리고, 집단적·민주적 통제 하에 체제를 다시 가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오늘날 노동 계급은 세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며, 유색 인종, 장애인, 퀴어, 여성, 그리고 물론 백인 시스젠더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자적” 노동 계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 계급이 혁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피트 부티지지 같은 자본주의의 토큰이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LGBTQ+ 당사자들에 대한 억압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노동 계급과 모든 피억압 집단의 동맹이야말로 사회주의 혁명의 필수적 토대다. 다행히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금의 체제가 우리에게 비참함만 안겨 준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사회주의라면, 그것도 스탈린이나 카스트로의 동성애 혐오적이고 트랜스 혐오적인 관료제와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라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혹은 어떤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가? 잔혹한 동성애 혐오라는 스탈린주의의 유산에 맞서는 사회주의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미 1895년에 공산주의자들은 오스카 와일드를 옹호하고 동성애 합법화를 지지한 유일한 집단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볼셰비키는 1919년에 이를 실행했다. 그러나 소련이 관료화되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성과를 포함하여 러시아 혁명의 승리들이 점점 더 많이 뒷걸음질했다. 이 시기에 레온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Left Opposition)가 이 반혁명에 맞서 싸웠다. 그 결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모든 반대는 “트로츠키주의”로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 곳곳의 좌익 반대파는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살해당했다. 트로츠키도 1940년에 살해당했다. 트로츠키주의는 마르크스와 볼셰비키 혁명의 해방적 사상을 계승하며,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억압 없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이론과 전략을 제시한다. 물론 트로츠키주의의 기치를 내세운 모든 조직이 피억압 집단에 대해 올바른 정치를 견지한 것은 아니지만, 트로츠키주의라는 틀은 분명히 해방을 위한 이론과 전략을 조직할 수 있다. 트로츠키는 가장 억압받는 이들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행 강령』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회주의 조직들은 본성상 노동 계급의 상층부에 관심을 집중하며, 따라서 청년과 여성 노동자를 무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쇠퇴는 임금 노동자이자 가정주부인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 제4인터내셔널의 각 부문은 노동 계급의 가장 착취받는 층에게서, 즉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지지 기반을 찾아야 한다.” 개혁만을 추구하거나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자본가들과 협상한다면, 협상의 대가로서 가장 억압받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팔려 나가며, 국제주의가 필연적으로 팔려 나간다. 이것이 동화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정치의 결론이다. 공산주의라는 미래 공산주의가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공산주의 사회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착취와 국경과 감옥을 종식시키는 사회, 레일린 폴란코가 잘 살 수 있었을 사회라는 것뿐이다. 공산주의 하에서 우리는 노동 착취와 직장에서의 소외를 끝내고 막대한 자유 시간을 얻게 될 것이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에서 이런 미래를 구상했다. “필요 노동에 전용되어야 하는 본능적 에너지의 양은 (노동 자체가 완전히 기계화되고 합리화되어) 매우 적어질 것이므로, 외부적 힘에 의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광범위한 억압적 제약과 변형이 붕괴할 것이다. … 생의 본능인 에로스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해방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가사 노동은 사회화될 것이다. 양육, 요리, 모든 재생산 노동을 공동체가 담당할 것이며, 개인이 수행하더라도 그것은 필요에 의한 노동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노동이 될 것이다. 볼셰비키와 몇몇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구상했듯이 사회 구성 단위로서의 (이성애 가부장적) 가족은 사라질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젠더 역할의 물질적 토대는 사라질 것이며, 그 이후에 무엇이 올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듯이 공산주의는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는 것,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돌보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쓰지만,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는 않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약속한다. 이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와 유연성을 가지고 우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살아갈 자유를 줄 것이다. 글쓴이: Tatiana Cozzarelli 역자: 강성윤 2020년 4월 19일 Left Voice에 발행된 기사를 번역함 [1] Van Grosse, The Movement of the New Left 1950-1975 (New York: St. Martin’s Press, 2005), 40. [2] Nan Alamilla Boyd, Wide Open Tow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179.︎ [3] “An Open Letter to Senator Dirksen,” Mattachine Review, no. 1 (January/February 1955). [4] “Aims and Principles,” Mattachine Review, no. 2, special issue (January 1956). [5] Sherry Wolf, Sexuality and Socialism (Chicago: Haymarket Books, 2009). [6] Martin Duberman, Stonewall (New York: Plume, 1994), 229. [7] Wolf, Sexuality and Socialism, 129. [8] Alan Sears, “Queer Anti-capitalism: What’s Left of Lesbian and Gay Liberation?,” Science & Society, vol. 69, no. 1 (January 2005), 91-112. [9] Wolf, Sexuality and Socialism, 129. [10] “Editorial 1.” Come Out! Selections from the Radial Gay Liberation Newspaper (New York: Times Change Press, 1970). [11] Fred Eggan, “Dykes and Fags Want Everything: Dreaming with the Gay Liberation Front” in That’s Revolting! Queer Strategies for Resisting Assimilation (Berkley: Publishers Group Press: 2004). [12] Elizabeth Wilson, “Is Transgression Transgressive?” in Activating Theory, ed. J. Bristow and A.R. Wilson (London: Lawrence and Wishart, 1993): 107-117. [13] Myrl Beam, Gay Inc: The Non-Profitization of Queer Politic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8).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06 | 조회 14,837 -
[번역] 페미니즘, 교차성,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학계, 페미니스트 활동가, 그리고 사회운동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지적했듯이, "계급, 인종, 성별"은 "현대의 성 삼위일체"다.[1] 교차성에 대한 담론은 많지만, 그 용어의 정의는 종종 불분명하다. 그것은 이론인가, 아니면 경험적인 묘사인가? 그것은 개인적 주체성의 영역에서 작동하는가, 아니면 지배 시스템을 분석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개념은 교차하는 억압의 원인에 대해 무엇이라 설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해방을 향한 경로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젠더, 인종, 계급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마르크스주의 논쟁과 좌파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교차성이라는 개념이 오늘날의 개념으로 처음 정의된 것은 1989년 흑인 법률가이자 페미니스트인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2]의 기사에서였다. 그 기사에서 그녀는 미국의 차별금지법(anti-discrimination law)과 관련해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했다. 이 시작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가장 중요한 전례는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Combahee River Collective)'와 같은 1970년대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에 있는데, 이들은 당대의 정치적 급진화와 제2차 페미니즘 물결 속에서 해방 운동에 대한 "교차적" 비판을 제기했다. 이 글에서 나는 교차성 개념의 역사적 배경, 초기의 정식화,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개념이 변화한 과정, 그리고 오늘날 이 개념을 둘러싸고 사회 운동 내에서 진행 중인 논쟁을 간략하게 요약할 것이다. 또한 교차성 이론을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적으로 대조할 것이다. 1.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와 흑인 페미니스트들 1977년에 발표된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 선언문'은 노예로 태어나 노예제 폐지론자로 살아온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이 1863년 적들의 포화 속에서 750명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용맹한 군사 작전을 지휘한 것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그녀는 미국 남북 전쟁 중 군사 작전을 지휘한 유일한 여성이었다. 1970년대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을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흑인 여성 투쟁의 역사적 일부라고 생각했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는 그녀의 저서 『여성, 인종, 계급』[3]에서 미국 노예제 폐지 운동 당시 흑인 여성 투쟁의 역할을 언급했다. 1851년 오하이오 여성 대회에서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의 연설은 역사의 한 장으로 남았다. 한 남자가 여성이 "약한 성별"이기 때문에 투표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소저너 트루스는 강렬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리고, 곳간에 작물을 쌓아올릴 때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았소! 그런데도 나는 여성이 아니오?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것이 있기만 하다면) 남자만큼 먹을 수 있었고, 채찍질도 똑같이 견뎌낼 수 있었소! 그런데도 나는 여성이 아니오?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들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 나가는 것을 보았소... 그래도 나는 여성이 아니오? 그녀의 대답은 여성이 약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천성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는 관념에 기초해 "여성성(femininity)"을 구축한 가부장적 서사에 대한 반박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흑인이고 노동자인 여성의 요구를 무시한 많은 백인 여성 참정권론자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백인 페미니즘 운동과 흑인 해방 조직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일단의 흑인 여성들은 이러한 전통을 되살려 자신들만의 투쟁 집단을 형성하기로 결정했다.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 선언문'의 발표와 함께,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백인 페미니즘, 흑인 운동, 그리고 '전국 흑인 페미니스트 기구(NBFO)'의 부르주아 흑인 페미니즘에 동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의 출발점은 계급, 인종, 젠더라는 세 요소에 뿌리를 둔 '동시적인 억압'에 대한 공통된 경험이었다. 여기에 그들은 ‘성적 억압’(sexual oppression)을 추가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급진적 페미니즘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페미니즘 운동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러한 페미니즘 조류는 사회적 모순을 "성적 계급(sexual classes)"[4] 간의 대립으로 해석하고, 다른 모든 구조보다[5] 가부장제(patriarchy)라는 지배 구조를 우선시했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인종과 계급보다 성적 억압 또는 젠더 억압을 우위에 두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성별 전쟁"을 조장하는 노골적인 분리주의 경향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였다. 이 분리주의 경향은 1970년대 후반 페미니즘 운동에서 힘을 얻었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유형의 페미니즘을 백인 중산층 여성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들은 또한 정체성에 대한 어떤 종류의 생물학적 결정론도 반동적인 입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지만, 진보적인 흑인 남성들과 연대감을 느끼며, 분리주의자인 백인 여성들이 요구하는 분열을 지지하지 않는다. 벨 훅스(bell hooks)는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그 시절 "자매애의 유토피아적 비전"과 가부장제에 대한 비역사적 정의가 인종 및 계급에 관한 논쟁에 의해 도전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 시기를 평가하며 "여성이 하나의 성적 계급/카스트를 구성한다는 개념을 불러일으키며 공통의 억압이라는 기치 아래 운동을 조직하려 했던 백인 여성들이,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가장 꺼려했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또한 운동 내 분리주의 조류와의 논쟁을 강조한다. 그들은 모든 여성을 피해자로 나타내기 위해 모든 남성을 적으로 묘사했다. 남성들에 대한 이러한 주목은 개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계급적 특권과, 계급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그들의 욕망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했다.[6]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 선언문'은 흑인 여성과 흑인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특징지었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명시적으로 지지했다: 우리는 모든 억압받는 인민의 해방이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정치-경제 체제의 파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우리가 사회주의자인 이유는 노동이 노동을 수행하고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조직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페미니즘 혁명과 반인종주의 혁명이 동반되지 않는 사회주의 혁명이 우리의 해방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하여 그들은 "특정한 경제적 관계"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고 주장했지만, "흑인 여성으로서의 우리의 구체적인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분석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들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집단으로서 제안한 실천적 과제는 주로 자기 인식 워크숍과 그들 지역사회 내 흑인 여성들의 구체적인 권리를 위한 투쟁에 국한되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정체성 정치'라는 개념은 흑인 여성들이 억압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대응으로서 선언문에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이후 다른 해방 운동과 결합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로 간주된다. 경제적, 성적, 인종적 지배가 결합된 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과 다른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일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몇 년 후,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으로 사회적, 정치적, 사상적 맥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이 전망에서 사라지면서, 집단적 행동의 기회는 흩어지는 경향을 보였고, 대신 차별화된 '정체성'과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이를 인정받으려는 정책적 요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 차별의 범주로서의 교차성 킴벌리 크렌쇼는 1989년에 교차성 개념을 처음 정의했다. 그녀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경험과 분석의 상호 배타적인 범주'로 분리해서 취급하는 것이 법리, 페미니즘 이론, 그리고 반인종주의 정치에 문제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녀는 "흑인 여성 경험의 다차원성과 이러한 경험을 왜곡하는 일차원적 분석”을 대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인종, 젠더, 성적 지향, 계급 중 무엇이든 간에) 단일한 차별 축에 기반한 개념화는 흑인 여성을 정체화와 차별 종식의 가능성으로부터 지워버리며, 분석을 각 집단의 특권적인 구성원들의 경험으로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인종 차별은 성별이나 계급적 특권을 가진 흑인들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경향이 있고, 반면 성 차별을 다룰 땐 경제적 자원을 가진 백인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교차적 경험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합보다 크기 때문에, 교차성을 고려하지 않는 어떤 분석도 흑인 여성이 종속되는 특정한 방식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 그녀의 분석에서 크렌쇼는 흑인 여성들이 제기한 여러 소송이 사법부에 의해 어떻게 간단히 기각되었는지 검토한다. '드그라펜리드 대 제너럴 모터스(DeGraffenreid v. General Motors)' 사건에서 다섯 명의 여성은 다국적 기업인 G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들은 흑인 여성으로서 더 나은 직책으로의 승진이 거부되었기 때문에 고용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그들이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음을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기각했다. 그들이 특별한 차별을 받은 집단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법원은 인종적 혹은 성별적 차별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조사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두 요소의 결합"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GM이 여성을 —백인 여성을— 고용했기 때문에 젠더 차별이 없다고 판단했고, 회사가 흑인을 —흑인 남성을— 고용했기 때문에 인종 차별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흑인 여성들의 소송은 실패했다. 법원은 이 소송을 인정하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렌쇼는 교차성 개념의 목적이 흑인 여성들이 단일 축 개념 틀로는 다루지 못하는 복잡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후반, 교차성 개념은 "차별" 경험의 복잡성을 다루기 위한 범주로 등장하였으며, 이는 국가가 "다양성 정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판례법 확립을 목적으로 했다. 나중에 미국 사회학자이자 흑인 페미니즘 학자인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는 교차성을 "교차하는 억압들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지배 구조 내에서 구축되는 것"으로 정의했다.[7]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교차성은 다른 "사회 정의 프로젝트들”과의 결합(convergence)이나 연합(coalition)을 추구하는 사회 정의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교차성 개념은 이후 학계 내에서 "여성학"의 틀이 확장되는 과정 속에서, 많은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교차성은 컨퍼런스와 심포지엄, 연구 부서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경제, 법률, 사회, 문화 및 공공 정책 분야에서 교차성 연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NGO(비정부기구)들이 만들어졌다. 젠더, 인종, 계급이라는 세 요소에 성적 취향, 국적, 연령, 기능적 다양성과 같은 다른 억압의 축이 추가되었다. 이는 여러 집단과 공동체가 직면한 구체적인 억압의 가시성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대한 체념의 분위기 속에서 발전했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3. 교차성, 정체성 정치, 그리고 다중적 차이 학계에서 교차성 연구의 부상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적, 정치적 기류를 완전히 뒤바꾼 새로운 역사적 단계의 시작과 함께 진행됐다. "부르주아 복고"[8] 또는 신자유주의 호황기로 불리는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이 쟁취한 결실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이 자행된 시기였다. 노동조합 및 노동계급 정치 지도부의 변절(이탈) 아래, 민영화와 규제 완화 정책이 맹렬하게 추진됐다. 이는 노동계급 내부의 파편화를 심화시켰고 계급 주체성의 거대한 상실로 이어졌다. 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의 흑인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견지했던 급진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 따라 주체의 분절화를 심화시키는 틀 속에서 교차성을 정식화하는 방향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교차성이라는 아이디어는 "다양성(diversity)" 및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더욱 유사해졌다. 이러한 정식화는 지배 관계를 "문화화"하는 과정 속에서, 초점을 집단에서 개인으로, 물질에서 주체로 이동시켰다. 그것은 억압받는 집단의 투쟁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기 인식— "맥락적 지식" —을 획득하는 것 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특권 집단(남성, 백인 여성, 이성애 여성 등)이 자신의 특권을 "해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한다는 개념을 일반화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전환"의 틀 속에서, 정체성은 오직 담론 속에서만 구축되고, 저항의 가능성은 대항 서사를 확립하는 일에만 제한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계급 착취에는 적용될 수 없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들 —은행가와 자본가들— 이 자기 성찰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해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실제로는 이 제안은 인종차별, 이성애 중심주의, 성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으로서 무용하다. 이러한 "지배의 축"들은 자본주의의 물질적, 구조적 관계와 얽혀 있지 않은, 문화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러한 억압의 토대가 되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억압받는 정체성들만을 끊임없이 늘려나가는 방식은 활동에서 "게토화"와 분열의 관행을 낳았다. 프라티바 파마르(Pratibha Parmar)는 그녀의 저작에서 이 문제를 경고했다: 억압받는 정체성들을 모아서 쌓아올리는데 치중한 결과, 이는 결국 억압의 위계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줄 세우기는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분열적이었으며 운동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 많은 여성이 게토화된 "라이프스타일 정치"로 후퇴했으며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9] 이러한 무력함의 상응물로서, 자본주의 체제는 '다양성'의 폭발적 증가를 정체성의 시장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그 정체성들이 총체로서의 사회 구조에 도전하지 않는 한 그들을 동화시킬 수 있었다. 테리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일하고 가장 오래남을 성과— 성적 취향, 젠더, 민족성 문제를 정치적 의제에 확고히 자리매김시켜, 강력한 노력 없이는 이 문제들을 지워버리는 것을 상상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는, 계급, 국가, 이데올로기, 혁명, 물질적 생산양식을 다루는 더 고전적인 형태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대체한 것에 불과했다.[10] 그러나 이글턴은 각주에서 이러한 이슈들을 정치적 의제에 올려놓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지식인들이 아니라, 그 이전에 1960년대와 70년대의 투쟁을 통해 전개된 사회 운동의 실천이었다고 분명히 했다. 이 정치적 급진화의 물결이 좌절되자,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담론은 전면에 등장한 반면, 계급은 점점 더 비가시화되었다(일부 저자들은 노동계급 그 자체의 소멸에 대해 쓸 정도였다). 4. 계급 정치로부터의 후퇴 계급/인종/젠더 세 요소에서 계급은 희석되거나, 마치 소득에 따른 사회적 계층이나 직업 유형처럼 단지 또 하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마르타 E. 히메네스(Marta E. Giménez)[11]는 콜린스를 인용하며, '교차성 이론의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이론화하기 위해서는 ‘억압들 사이의 동일함이라는 잠정적 가설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추정'인데, 이는 계급 관계의 특수성을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견해에 반해, 인종, 젠더, 계급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고통에 위계를 세워야 한다거나,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과 착취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급, 인종, 젠더는 "평등"과 "차이"와 관련하여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는 계급의 "사회적 차이"를 "자유 계약"이라는 "평등주의" 이데올로기 뒤에 가능한 한 숨기려 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차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용한다. 이 “차이”는 생물학적 또는 '자연적'인 조건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논리는 자원 배분과 권리 접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특정한 노동 분업의 지속, 또는 간단히 말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비인간화하여 노예화하는 것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된다. 해방적 관점에서, 목표는 피부색, 출생지, 생물학적 성별, 또는 성적 선택의 어떠한 차이도 억압, 모욕, 또는 불평등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고, 동시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협력의 틀 안에서 모든 개인의 창조적 잠재력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 차이의 경우, 목표는 계급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사회 관계에 맞선 투쟁을 통해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자 하며, 이는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의 소멸, 그리고 모든 계급 사회를 종식시킬 가능성을 수반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시도 너머에 있는, 생산 수단의 소유자와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자들 사이의 사회적 차이다. 가부장적 관계—자본주의보다 수천 년 전에 등장한—와 인종차별은 비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관계의 틀 안에서 새로운 형태와 특정한 사회적 내용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적 편견을 활용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 즉 생산 영역과 가정 영역 사이의 전례 없는 차별화를 확립한다. 가정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이란 과업의 큰 부분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 말이다. 새로운 사회 관계 아래 재편된 가족, 결혼, 이성애 규범성과 같은 제도들은 여성의 이러한 역할을 사회화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성별 억압의 다양한 양상과, 수백만 명의 여성이 겪는 폭력과 여성 살해 등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단순히 계급 관계로만 “환원”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억압과 착취라는 범주를 연결하지 않고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도 없다. 인종차별은 수백만 명의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계몽주의가 "인간의 권리"의 기초로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사상을 드높인 것과 같은 시기에 말이다. 인종차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거대한 식민주의 사업, 그리고 미국에서 원주민들을 상대로 자행된 것과 같은 내부적 대량 학살을 동반하고 강화했다. 미국 남북 전쟁과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인종주의는 나라 인구의 상당수를 "2등 시민"이자 "2등 노동자"로 취급하여 배제하는 데 활용되어왔다. 이는 미국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조장한다. 결과적으로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했듯이, 인종 억압과 성별 억압은 자본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묘하게 결합된다. 미국 내 흑인 및 라틴계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이나, 흑인 청년들에 대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위의 제도적·경찰 폭력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유럽 내 이주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정책들을 옹호하는 데 이용된다. 유럽에서 이주민들은 2등 노동자로 취급받으며 기본적인 사회적, 민주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5. 마르크스주의와 교차성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검은 피부의 노동자에게 낙인을 찍고 있는 곳에서는 흰 피부의 노동자도 해방될 수 없다"고 썼다. 그 이전 작업에서 그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말을 살짝 바꾸어 "사회적 진보, 역사적 시기의 변화는 여성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정도에 비례하여 일어나며, 사회 질서의 쇠퇴는 여성의 자유가 감소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서 엥겔스는 대규모로 자본주의 생산 영역에 진입해 억압과 착취라는 이중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던 노동자 여성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엥겔스는 친구(마르크스)가 수행한 미완의 인류학 연구를 이어받아 역사 속의 가족 제도와 여성 억압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착취와 억압 사이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도 분석해 왔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리가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억압에 기초한다면 그들은 해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레닌은 다른 민중을 억압하는 민중은 해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억압에 맞선 투쟁뿐만 아니라 민족자결권을 옹호했다. 교차성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리즈 보걸은 '교차성'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1960년대와 70년대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이미 가부장제, 인종차별, 그리고 자본주의 사이의 교차 지점을 강조해 왔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러나 플로라 트리스탄, 엥겔스,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러시아 혁명가들과 다른 많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그 시기보다 훨씬 전부터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상의 오랜 전통이 발전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중요한 국제 사회주의 여성 회의와 농민 및 노동자 여성 조직과 강령으로 이어졌다. 1938년 레온 트로츠키가 작성하고 제4인터내셔널이 채택한 '이행 강령'의 구호에는 "여성 노동자와 청년에게 길을 열어야”하며, "노동계급의 가장 착취받는 층 사이에서 지지"를 구해야 한다는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교차성 이론가들은 종종 마르크스주의를 "계급 환원주의"로 간주하며 비판한다. 그러나 "계급 분석"의 중심성을 옹호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투쟁 같은 활동에만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계급에 대한 조합주의적(corporatist), 경제주의적, 혹은 좁은 의미의 전투적 조합주의(syndicalism)적 관점이다. 20세기의 많은 스탈린화된 공산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관행이 이러한 좁은 조합주의 정치에 기반하여, "계급 정치"와 억압에 맞선 운동 사이의 골을 깊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계급 착취와 성별 억압, 인종차별, 식민지 억압, 그리고 이성애 중심주의의 '교차'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스탈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억지로 동일시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계급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관계들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는 자본 축적을 위한 잉여 가치 추출(Extraccion)뿐만 아니라, 가정 내 여성 재생산 노동의 전유, 거대 독점 기업으로의 자본 집중, 금융 자본의 확장, 그리고 세계대전과 약탈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경쟁에도 기반한다. 또한 자본이 어떻게 착취를 극대화하고 노동계급 대열 내의 분열을 유발하기 위해 인종차별적, 여성혐오적, 외국인혐오적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면서, "차이"를 활용하고 확립하는지 분석한다. 이러한 계급 분석은 "경제 환원주의적" 관점을 표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며 계급 관계와 인종차별,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주의 사이의 연결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이 계급 분석은 21세기에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인종화되고, 여성화된 노동계급이 내부 분열과 파편화를 극복해낸다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기초로서 경제, 산업, 운송 및 통신 시스템 전체를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계급 정치"로부터의 후퇴는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 없이는 인종, 젠더, 또는 섹슈얼리티에 기초한 착취와 억압으로 인한 끔찍한 불의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2008년 자본주의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새로운 저항 운동의 출현과 함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반인종주의자들, 그리고 청년 운동의 일부 부문들은 다양한 억압받는 집단들 사이의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에서 "교차성" 개념을 옹호해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3월 8일 스페인에서 파업을 조직한 여성 운동은 스스로를 "반자본주의, 반인종주의, 반식민주의, 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으로 규정했다. 이는 여러 갈래의 투쟁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된 중요한 진전이었으며, 노동자 민중을 뿔뿔이 흩어놓으려는 파편화의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 커다란 흐름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공통의 전략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저항 운동들의 합이나 "교차"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공통의 전략 없이는 인종차별이나 가부장적 억압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다양한 "운동"이나 "정체성"을, 성별이 거세된 추상화된 노동계급과 서로 대치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상 노동계급이 젠더와 인종 측면에서 지금처럼 다양했던 적은 없었다. 여성은 이미 노동계급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여성이 다수이다. 그렇다면 헤게모니 전략의 핵심은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에 기초한 모든 억압에 맞선 투쟁을 단호하게 통합하는 계급 정치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분열시킨 것들을 결합하고, 노동계급 내부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특정한 억압에 맞서 싸우는 운동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수탈자를 수탈하기 위한 투쟁과 함께, 비로소 진정한 해방사회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19년 2월 24일, 스페인어판 콘트라푼토(Contrapunto)에 최초 게재. 2023년 7월 11일, 레프트보이스(Left Voice)에 번역된 글을 재번역. 원저자: 호세피나 마르티네즈(Josefina L. Martínez) 영어 번역: 마리셀라 트레빈(Marisela Trevin) 한국어 번역: 해인 [1] Terry Eagleton, Against the Grain: Essays 1975–1985 (London, UK: Verso, 1986). [2] Kimberlé Crenshaw,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 in Feminist Legal Theory: Readings in Law and Gender, ed. by Katharine T. Bartlett and Rosanne Kennedy (New York, NY: Routledge, 1991). [3] 앤절라 Y.데이비스, 『여성, 인종, 계급』, (황성원 역, 아르테, 2016) [4] 1970년 수라미스 파이어스톤의 급진적 페미니즘이든, 1980년 크리스틴 델피의 물질주의적 페미니즘이든 마찬가지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1970, “성의 변증법”, (김민예숙, 유숙열 역, 꾸리에, 2016). 크리스틴 델피, 1980, “주적”, (이민경, 김다봄 역, 봄알람, 2022) [5] 케이트 밀렛이 『성 정치학』, 1970, (김유경 역, 쌤앤파커스, 2020)에서 제시한 개념. [6] 벨 훅스, 2000,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2017) [7] Patricia Hill Collins, Black Feminist Thought: Knowledge, Consciousness and the Politics of Empowerment (New York, NY: Routledge, 1990), 127. [8] Emilio Albamonte and Matías Maiello, “At the Limits of the ‘Bourgeois Restoration,’” Left Voice, December 24, 2019. First published in Spanish in 2011. [9] Pratibha Parmar, “Black Feminism: The Politics of Articulation,” in Identity: Community, Culture, Difference, ed. by Jonathan Rutherford (London, UK: Lawrence & Wishart, 1990), 107. [10] 테리 이글턴, 1996, 『포스트 모더니즘의 환상』, (김준환 역, 실천문학사, 2000) [11] Marta E. Giménez, Marx, Women, and Capitalist Social Reproduction: Marxist Feminist Essays: (Leiden, Netherlands: Brill Publishers, 2019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3-31 | 조회 15,435 -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투쟁, 이렇게 하자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차별과 억압은 단일한 개개별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권력이 섬세한 가공을 거쳐 제조한 갈라치기의 기준은 서로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양분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생산을 멈춰 세우고 노동자민중의 물리적 압력을 무엇보다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총파업 투쟁, 총파업 투쟁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현장에서부터의 운동만이 우리의 답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만약 KEC의, 톨게이트의, 한국마사회의, 120만 민주노총과 그에 연대하는 민중들의 총파업 구호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쓰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을 상상해보자. 투쟁의 힘으로 밀어 올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이상주의자의 낙관론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달려있다. 1. 포괄적 차별금지법 운동의 경과 한국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처음으로 수면 위 부상한 것은 노무현 시기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앞선 1997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이른바 「3금 법안」의 국회 추진 발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차별금지'를 명시하는 법안을 형상화하기는 했으나. 당시 맥락에서의 '차별금지'란 성별과 학력, 출신 지역에 대해서만 주요 논의가 국한되었던지라 오늘날 운동사회가 논의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비해서는 근원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金총재는 이날 오후 춘천 한림대 사회교육원 초청 강연에 앞서 미리 배포한 연설문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 막고 있는 중앙과 지방,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 인간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 기회 불균등의 시정이 시급하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1997년 6월 11일자 조선일보 보도.) 반면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사회적' 차별금지법이란 새 수식을 얻게 된 차별금지법은 본격적으로 그의 대선 공약집에도 이름을 올린다.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 16대 대통령선거 핵심 공약 / 4대비전 20대 기본정책 150대 핵심 과제 - 당당한 대한민국 떳떳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발행 자료 발췌) ▲ (좌) 「3금 법안」의 추진을 발표하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정치보복-차별대우 금지법 제정 선언, 1997년도 9월 10일 KBS.) (우) 16대 대통령선거 핵심 공약 / 4대비전 20대 기본정책 150대 핵심 과제 - 당당한 대한민국 떳떳한 노무현 속 사회적 차별금지법 언급 페이지. 노무현 사료관.) 이은 2006년 7월. 국가인권위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권고하면서 차별금지법은 다시 언급된다. ("「권고법안」이 금지의 대상으로 하는 차별의 사유는 성별, 장애, 나이, 인종, 학력, 성적지향 등 20개이며, 고용, 재화, 용역, 교통수단, 상업 시설, 토지, 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그리고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공권력의 행사(行事) 또는 불행사(不行事)를 차별의 영역으로 하고 있다(안 제2조 제1항)." 『「차별금지법 권고법안」 권고』 중, 2006년도 7월 24일.) 해당 권고 법안에서 드디어 인종, 성적지향 등이 구체 언급되었다. 현시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담론이 합의한 차별 금지의 대상까지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7년에는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실제 입법 예고하는 데에 이르른다. 그러나 2007년 10월 2일까지만 해도 입법 예고안에 포함되어있던 7가지 차별 항목들은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바로 다음 달인 11월 초 법제처로 넘어가며 삭제된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이후에도 전문 수정은 당연히 가능하고 마지막 국문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부안이 제출되는 것”이라며 “공청회 후 일부의 반발을 계기로 검토한 것은 맞지만 애초 20개 항 모두 각각 열거해야 할 차별 사유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을 세워 재검토한 것” (누더기 된 소수자 보호 차별금지법, 2007년도 11월 20일, 주간경향) 이라 밝혔지만. 실상은 성적 지향 항목 명시에 대한 기독교 세력의 극렬 반대 때문이었다. 허울뿐인 허수아비로 전락한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차별금지법은 갑론을박에 휩싸였다가 2008년 5월 17대 국회가 종료하며 지난한 계류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차별금지법은 2008년, 2011년, 2012년에 각각 민주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발의가 시도되나 모두 해당 국회의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자본은 모든 주체에 대한 직/간접 차별을 법적 제재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신 일부 주체에 대한 차별만을 조정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한국 노동자민중의 목줄을 살짝 풀어주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고용정책 기본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노동관련법, 「여성발전기본법」,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방송법」, 「교육기본법」[1] 을 차례로 입법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법이 제정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 조직 축소가 이명박 정부 대에 예고된 것은 단순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자본과 정부의 '차별금지' 시늉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그마저도 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며 민주통합당을 주축으로 한 두 번의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되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7년의 암묵 속에 잠긴다. 그러던 2013년,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사회권 위원회)가 10일(현지시간) 최종권고에서 결사의 자유 보장과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며 차별금지법 논의는 마침내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국 자본과 정부는 UN의 권고에도 침묵 카드를 택했다. 촛불 이후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아예 자신의 공약집에서 '차별금지법'의 존재 자체를 지웠다. 문재인은 국가인권위법의 존재를 언급하며 부수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두 법 간 차이와 한계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금지조항에 대해서는, ① 법체계상의 관점에서 볼 때, 차별금지의 법적 근거가 조직법의 성격을 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되어있다는 점13), ② 차별개념과 관련한 국제적 기준들은 대체로 직접차별과 함께 간접차별도 포함시키고 있음에 반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간접차별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 ③ 성희롱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시키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인종에 따른 괴롭힘 등 차별적 괴롭힘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 ④ 보복행위(차별행위에 대한 합법적 방어활동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당사자에게 가해지는 적대적 행위)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 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 등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일반적 차별금지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2012년도 11월 20일, 법제처 게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보호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 정비 연구』 인용) 연이은 법제정의 불투명화에도 이 법을 갈망하는 한국 노동자민중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2017년 기자회견을 통해 재출범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인권은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투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2020년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고 국가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제시했다. 2021년 5월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도해 입법을 촉구하는 10만명 서명 시민행동이 진행되었고, 같은 해 6월 민주당을 주축으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시되었다. ▲ 2021년 5월 24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청원. 해당 청원은 22일 만인 6월 14일, 10만 명의 서명을 달성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 시민의 뜻 증명』, 2021년도 6월 14일 비마이너 보도 참조.) 그런가 하면 2021년, 20대 대선 후보 주자로 나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신중론'을 가장한 반대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에 희망 고문으로 묵살되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다시 강경 반대의 입장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윤석열은 아예 2021년 12월 14일 관훈토론회 석상에서 차별금지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니유는 "헌법의 해석 작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 "평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2]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쏟아냈다. 이후 당선된 그가 인권위원회 수장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온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기용한 것은 윤석열의 '신중 검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거대양당 중 누가 정권을 잡느냐와 무관하게 차별금지법은 2006년 국가인권위 권고부터 2017년 소위 '촛불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계류되었다.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외면했던 전철을 이재명 정부 역시 그대로 밟았다. 2025년 5월 18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토론회 권영국-이재명 간 포괄적 차별금지법 관련 주도권 토론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 권영국/민주노동당: 우선 이재명 후보께 묻겠습니다.(…)이재명 후보께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십니까? ▶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는 차별이 어떤 특정 요소에 의해서 생기는 것, 방치하는 것 바람직하지는 않기는 한데. 방향은 저는 맞다고 보지만 지금 현재는 너무 현안들이 복잡한 게 많이 얽혀 있어서 이거로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3])거대양당 중 누구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자신들의 숙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한국 자본주의 정치 체계의 '선의'에 기대 차별금지를 쟁취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이 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의 교체 주기 속에서 확정된 것이었다. 2. 재단되고, 이용되고, 압축되는 포괄적 차별금지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으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노무현 정권의 공약집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는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들어있었다는 블랙 코미디는 무엇을 시사할까? (좌) 2026년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개최된 진보당 손솔 의원실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손솔의 작전회의 – 캠퍼스를 가다" 포스터. (우상단) 2026년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의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중 손솔. (사진=뉴시스). (우하단)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제정당 연석회의 공동 선언 발표 기자회견. 가장 좌측이 진보당 대선 후보자였던 김재연. (사진=뉴스핌). 그것은 설령 어떤 좋은 내용의 법이라 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얼마든지 그 실력과 힘을 상실할 수 있으며, 그저 겉 포장에 지나지 않는 낱말들의 연속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래로부터 조직된 노동자민중의 투쟁 압력이 아닌 상부 정치의 표현 과정으로 법이 제정될 때. 입법 투쟁은 자본의 말장난으로 전락해버린다. 입법을 향한 노동자민중의 절실함은 정치가들이 쓸, 좀 더 인간적인 가면의 재료로만 사용된다. 예시를 더 살펴보자. 대통령 선거 국면은 자본주의 정치 질서 하에서 각 정당의 본질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기 중 하나다. 이러한 시기에 이재명과의 단일화를 선택한 김재연 후보와 진보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핵심 요구를 스스로 후퇴시키며 진보 4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의 이재명 지지 선언문에서 이를 삭제하는 선택을 감행한 바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존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고, 자신을 지지한 당내 60% 이상의 지지자들 앞에 천명한 지 21일 만이었다. 이는 단순한 전술적 선택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정치 아래 차별과 착취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동자민중의 의지가 심지어는 진보 정당에 의해서조차 어떤 식으로 체제와 '합의'될 수 있는지를 보이는 훌륭한 일례였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인 이재명 정부 출범 시기, 손솔을 앞세워 다시 차별금지법 발의를 내세웠던 진보당의 행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진보당이 당 차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일관되게 추진할 의지와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특정 주체가—예시로 손솔로 대표되는 진보당식 청년정치—가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동세대 2030 청년세대의, 나아가 노동자민중이 밝히는 광장의 빛은 가지고 싶어 할지언정 그 빛을 어둠 속에 내놓기 위해 목숨 걸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는 진보 운동이 거대 양당 중심의 자본주의 정치 구조에 편입될수록, 그리고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절차로 환원할수록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한계이기도 하다. 결국 책임지고 싸워야 할 노동자민중이 법안 발의 자체를 투쟁의 전부로 오인하는 순간, 투쟁의 키를 자본주의 정치가들에게 쥐여주는 순간. 현실의 권력 관계를 뒤흔드는 힘은 사라지고 의회주의적 환상만이 남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코 ‘누가 발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힘에 의해 쟁취되어야 할 권리이며, 제도 정치의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법 문구가 아니라, 차별을 재생산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에 맞선 현장의 투쟁이 어떻게 조직되고 확대되는가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러한 투쟁의 산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과제는 분명하다. 제도 정치의 협상과 단일화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전면화하는 것이다. 이제 ‘작전회의’는 정치가의 국회가 아니라 노동자의 현장에서,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실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 진정한 차별금지법 쟁취, 어떻게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 차별은 심화하고, 청년세대 우경화에 가세하는 혐오 논리들은 가중되는 시기다. 그러나 작금의 세계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비청소년 1,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6월 23일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찬성했다. 2019년 3월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반해 15.6%포인트 증가한 찬성 수치였다. 같은 응답자의 73.6%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비청소년 10명이 있다고 할 때, 이 중 8명 또는 9명은 이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셈이다. 자본과 권력은 '사회적 합의'를 말하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는 이미 6년도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극우화된 혐오 논리를 이기고, 차별과 억압을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한 투쟁과 구상이다. 현장 노동자들에게서 그 구상의 가능성을 찾자고 제안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명확한 이름에 묶이지 않았을 뿐. 현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미 오랜 시간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 맞서 싸워왔다. 비슷한 시기 현장에 입사한 남자 동기들이 모두 직책을 달고 과장, 부장이 되는데 여성이란 이유로 승진하지 못해 "OO 씨"라는 이름에 갇혀야 했던, 그래서 “제가 하는 업무보다 퀄리티가 높은 것이냐?”고 묻자 면접관에게 “그 남자 사원은 가장이니 이해하라” 는 말을 들어야 했던 KEC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2019년 인권위 차별 시정 권고를 받아냈다. 2024년 12월 "귀걸이가 길다"며 떼라고,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묶으라고 부당한 외모 통제를 가했던 한국마사회에 맞서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싸웠다. 노동자의 화장법, 머리 모양, 손톱, 복장, 액세서리류까지 멋대로 하려 들던 사측은 조직된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의 끈질긴 항의 끝에 고객 응대 매뉴얼에서 급하게 해당 사항을 제외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자회사를 통해 비정규직화를 강화하려했던 문재인 정부의 횡포에 맞서 싸웠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다수였던 톨게이트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강제하는 자본과 정부에 맞서 싸웠고, 투쟁으로 이겨냈다. 외에도 흑인·라틴계 학생이 절대 다수인 저소득 지역 학교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교육 불평등 개선을 파업 요구안으로 내걸었던 2019년 시카고 교사 파업[4], 시애틀을 시작으로 LGBTQ+ 노동자 권리 보장을 전면에 내걸며 전개되었던 2023년 스타벅스 파업[5], 성소수자·여성·이주노동자 차별 금지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2010년대 영국 공공부문 파업 등. 구조적 차별의 주 대상이 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위해 총파업 투쟁으로 나선 조직 노동자들의 사례 역시 있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성차별에 맞선 국제 여성파업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은 유급노동과 무급 가사노동을 동시에 중단하는 총파업을 통해, 가사,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해 온 체제에 맞섰다. 스페인에서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노동, 돌봄, 소비, 교육 전반을 멈추는 전면적 파업에 나서며 임금격차, 성폭력, 가부장적 질서에 맞선 집단적 저항을 조직했다. 스위스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동일임금과 노동의 저평가에 맞서 대규모 파업을 벌이며 구조적 성차별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더해 이러한 투쟁들은 공통적으로, 비록 각 나름의 한계는 가지고 있을지언정 '아래로부터 조직된', '차별과 억압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라는 이상적 상의 현실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차별과 억압은 단일한 개개별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권력이 섬세한 가공을 거쳐 제조한 갈라치기의 기준은 서로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양분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생산을 멈춰 세우고 노동자민중의 물리적 압력을 무엇보다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총파업 투쟁, 총파업 투쟁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현장에서부터의 운동만이 우리의 답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만약 KEC의, 톨게이트의, 한국마사회의, 120만 민주노총과 그에 연대하는 민중들의 총파업 구호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쓰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을 상상해보자. 투쟁의 힘으로 밀어 올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이상주의자의 낙관론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달려있다. [1] 목록은 2012년도 11월 20일, 법제처 게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보호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 정비 연구』를 참조하였음 [2] 발언 전부 『윤석열 "차별금지법, 신중히 검토해야... 평등만 강조하면 안 돼"』, 2021년도 12월 14일, 한국일보 보도 인용. [3]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초청 1차 (경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자료 인용. [4] 『Chicago Teachers Demand Affordable Housing as Strike Begins - The union is negotiating on issues that go beyond those typically addressed through collective bargaining』, 2019년도 10월 17일. Truthout. [5] 『Starbucks workers plan strike over Pride displays, company accuses union of spreading false information』, 2023년도 6월 23일. PBS news.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2026-03-30 | 조회 14,696 -
빅테크 자본에 투자하는 소로스 펀드는 집단학살에서 자유롭지 않다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열린사회재단(Open Society Foundation)’으로부터 사업기금을 지원받을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이를 결정하기 위한 26일 전체회의를 앞두고, 차제연 집행위는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 기금 수령 조건이 특정 집단·의제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는 경우, 기금의 운용방식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라는 차제연의 목적에 명백하게 반하거나 해가 되는 경우에는 연대체 차원의 최소 기준선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야”하며,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볼 때 OSF가 차제연 차원의 최소 기준선을 위배하는 기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OSF 기금신청 제안을 반대하는 연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조지 소로스라는 국제 금융자본가와 그 자선사업기구인 열린사회재단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포함해, 빅테크 자본들이 세계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을 위기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체제 지배계급의 불가분한 일부임을 말하고 싶다.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열린사회재단의 시초축적은 금융수탈이다 열린사회재단(OSF)의 기금의 원천은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로부터 나온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금융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 금융자본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이 창출한 부를 자본이 착취해 강탈한 결과의 일부다. 특히 금융자본은 단지 산업자본의 착취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시세차익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고유의 수탈적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금융수탈’이라 부른다. 금융자본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들이는 만큼, 노동자민중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 소로스 펀드는 실제로 어떻게 이윤을 획득해왔는가? 예컨대 그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방산기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며 방위산업체 주식을 쓸어담아 수익을 냈다. 마치 오늘날 이란 침략전쟁으로 한국 방산주들이 뛰고 있는걸 보고, 여기에 투자해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민중이 군축과 평화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할 때, 그는 전쟁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댓가로 돈을 벌었다. 소로스 펀드의 가장 유명한 수익창출 일화는 외환투자와 공매도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를 통해 한 달만에 1조 2천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그가 벌어들인 천문학적 이윤은 땅에서 솟았는가? 아니다, 영국노동자민중이 노동으로 만들어낸 부를 수탈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외환위기 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위기에 내몰린 저개발국의 통화를 공격해 돈을 벌었다. 헤지펀드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돈을 번다. 위기가 발생할 것처럼 보이면 위기에 ‘베팅’함으로써,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돈을 번다. 금융투기꾼들이 좋아하는 말처럼 세상에 ‘공짜는 없고’, 그가 수탈한 부 만큼의 손실을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경제위기로 감당해야한다. 그 과정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복잡한 연쇄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소로스 펀드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의 피땀을 강탈한 것”이라는 명제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그가 천문학적 부를 거머쥔 것은, 천문학적인 수탈의 결과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생산물을 수탈하는 것, 그것 외에 금융자본의 이윤에 다른 원천은 없다. 빅테크 자본의 돈줄인 소로스 펀드, 오늘날 집단학살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이 소로스가 ‘자선사업’을 할 수 있게된 과거의 축적에 관한 이야기라면, 오늘날은 어떨까.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소위 AI, 빅테크 기업들이다. 포트폴리오 1위는 아마존, 2위는 구글, 5위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소로스 금융자본이 투자하여 이익을 분배받는 이 빅테크 자본들은 어떤 자본들인가? 자연과의 대사를 고려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의 과잉건설로 지역환경을 파괴하고, 물과 전기를 낭비하며, 천연가스와 원자력 사용을 부활시키는데 앞장서는 기업들이다. 소로스 펀드가 AI를 넘어 ‘우주’ 산업에 투자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주에서 추출산업을 지속하겠다는 허황된 기술절대주의로 세계가 공멸을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덮으려는 게 스페이스X, 아마존, 구글 등 우주 탐사기업이 하고있는 역할이다. 더욱이 소로스 펀드의 투자를 받는 빅테크 자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클라우드 서비스와 AI기술 등 집단학살을 위한 군사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대표로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많은 지분(7.30%)을 차지하는 아마존을 보자. BDS운동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은 프로젝트 님부스를 통해 구글과 함께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한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클라우드는 수만 개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표적 데이터베이스’로 사용된다. 기존에 이스라엘은 자체 클라우드를 운영해왔는데, 2023년 10월 가자지구 침공 이후 ‘전례없는 컴퓨팅 성능’이 필요해 아마존으로부터 클라우드를 구매했다고 한다. 즉 집단학살을 가속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아마존이 이를 현실화할 클라우드 기술을 제공해준 덕택에 AI의 지원을 받는 신속한 집단학살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이 라벤더, where’s daddy 등 AI시스템을 활용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살해 목록’을 작성하고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자지구 언론인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는 빅테크가 제공하는 기술이 어떻게 그의 삶의 모든 부분을 감시해왔으며, 학살에 사용되고 있는지, 아래와 같이 증언한다. +972 매거진과 로컬 콜(Local Call)의 보도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추측되는 위험도에 따라 분류했다. 분류 점수 한 점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정보기관 관련인들은 기자들에게 이러한 시스템 중 하나는 개인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와의 연관성에 따라 점수를 매겼으며, 수만 명의 이름을 다루었다. 폭격 승인 명령은 빠르게는 30초 이내에 떨어질 수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건물을 유형과 수용 인원에 따라 분류하여 폭격 대상을 선정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8200부대의 현역병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및 메타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예비군들의 협력으로 제작된 AI 도구들이 아랍어로 작성된 문자 메시지와 SNS 게시글을 분석했다. 그러한 분류 시스템이 무장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시스템과 협력하면, 단지 이들과 인접한 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일가족이 멸절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 전쟁이 시작되고부터, 나는 알자지라, The Nation, 그리고 +972 매거진과 같은 언론을 통해 가자지구에 대해 보도해 왔다. 2023년 10월 말 무렵, 내 핸드폰은 내가 작성한 기사를 인용하며 살해 협박을 하는 문자들로 가득했다. … 12월 6일, 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집에 들렀다. 내가 걸어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아랍어로 말하며 자신을 데이비드로 소개했다. 이스라엘 군 소속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하비비(아랍어로 “자기야/얘야” 정도의 뜻)로 부르며,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로 가득한 삼 층 건물을 대피시킬 시간이 이십 분 정도 있다고 했다. … 달리 갈 곳도 없는 우리들을 억지로 이동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머무르기를 택했다. 이튿날 오전 7시 30분, 나는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며 내 아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도드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굉음은 경고 없이 날아왔다. 집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쪼개지거나 벽이 무너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갑작스러운 무게, 콘크리트와 쇠가 나를 납작하게 눌렀다. 내 두 팔이 붙박혔고, 두 다리가 갇혔고, 내 입과 폐로 먼지가 들어찼다. 내 아내와 아들을, 부모님을 불렀다. 처음에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때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들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리멍덩해졌다. 어딘가 위에서 돌들이 움직였다. 흐린 음성들. 나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구조자들이 마침내 잔해를 깨고 들어왔을 때, 빛이 파고들어 왔다. 손들이 잔해를 긁어냈다. 그들은 내가 의식을 되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끄집어냈다. 그들은 내 아내와 아들을 꺼냈다. 네 사람이 죽었다. 사촌 둘과 이웃 둘. 이웃 하나는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내 집에 있음을 알았다. 아마도 내 핸드폰으로 나를 거기까지 추적했다. 시스템은 내 동선을 먼저 특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그 반경 내 모두를 이스라엘군 기준 감수할 만한 부차적 희생으로 집계했다. ... 그는 내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학적, 일, 그리고 내가 기사를 작성한 장소들. 앗-쉬파, 알-아우다, 앗-다라즈. 이를 순서대로 읊었다. 그는 내 친척에 관해 물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가 대신 내 사촌들의 이름을 읊었다. 내 가족들이 피신 중인 대피소가 있는 지역을 특정했다. 내가 답하든 얼버무리든 그의 노트는 이를 모두 기록했다. 심문은 수 시간 이어졌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던 그 시간 중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 심문관 눈앞에 있는 스크린에는 내 삶의 사본이 담겨있었다. 쉼 없는 감시, 수집한 전화 통화, 카메라, 그리고 위성 좌표로 쌓아 올린 판본이. 그리고 그는 내 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라픽은 아직 잘 있습니까? 가슴은 좀 괜찮고?” 그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건 내 집안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나를 2022년으로 돌려보냈다. 라픽은 고작 산후 11달이었고, 우리는 아랍에미리트공화국에 있었다. 라픽은 폐렴에 걸려 두바이 병원에서 이틀을 보내야 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에, 나는 글에서 다루지도 않았고 언론에 내보내지도 않은 내 삶의 내밀한 사항이, 나타났다. 심문관은 그걸 체크 박스 짚고 넘어가듯 입에 올렸다. 내 아들의 짧은 병원 신세에 대해 어딘가에서 들었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공화국 병원 기록에서? 내 통화 기록에서? 내 이메일 사본에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의 글 전문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빅테크 자본들은 가자주민들에 대한 완전한 감시, 추적, 학살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다. 소로스 펀드는 바로 그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있다. 한편 열린사회재단(OSF)은 10월 7일 이후 자행된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할 때,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에게는 자위권이 있다’라는 문장을 삽입한 다음, ‘이스라엘이 지나친 복수를 하며 가자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휴전과 두 국가 해법 등등에 대해 얘기한다. 열린사회재단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해 발행한 성명 전반에서 식민지배의 현실을 지우는 양비론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이 어떻게 식민점령의 현실을 가리고 집단학살을 용인하는지, 그래서 조지 소로스가 거액을 후원한 바이든 정부가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유지하며 ‘학살자 조’라 불리게 되었는지 지난 몇년 간 목격했다. 양 당사자 간의 문제로 보게 되면 양비론을 피할 수 없다. 양비론은 어느 순간, 이스라엘이 지나치긴 하지만 팔레스타인도 일정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밑그림으로 작용한다. 팔레스타인이 저항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식민화를 멈출 것이라는 기이한 논리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틀린 사고지만, 지금은 특히 발화자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집단학살 정당화 논리와 일치하기 때문에 한층 위험한 관점이다. 상기하였듯 소로스 펀드는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돈을 번다. 빅테크 자본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을 파괴한다. 한편 소로스 펀드의 돈에 의해 운영되는 열린 사회 재단은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를 우려하고, 이스라엘에게 자제를 촉구한다. 그리고 인종정의에, 여성의 권리에, LGBT의 권리에 후원한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여성과 성소수자가 빅테크 자본의 공모에 의해 감시, 추적당해 죽어가는 동안 말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OSF 자선사업은 조지 소로스의 손에 묻힌 피를 닦아내는 손수건이다”는 말 외에 나는 이 현실을 이해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총체적 진실이다. 빅테크 자본을 포트폴리오에 담아 돈을 버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와 열린사회재단은 동일한 체제의 앞뒷면이다. 만약 조지 소로스와 유사하게, ‘자선사업’을 많이 해온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자는 논의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빌게이츠는 앱스타인과 직접 연루돼 여성들을 착취했고, 이스라엘과 공모하는 핵심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이다. 그의 자선단체로부터 돈을 받자는 결정은 훨씬 더 쉽게 반대에 부딪혔으리라 상상한다. 그런데 단지 좀 더 교묘하고, 좀 더 연루의 사슬이 길 뿐, 소로스 재단과 빌게이츠 재단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대자본이 비슷한 방식으로 삼성인권재단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그런 자선사업을 삼성이 하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해보는 것이다) 삼성이 한편에선 고 김치엽 님을 포함한 반도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베트남으로 노조파괴를 수출하고 오염, 산재를 외주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권을 말하며 시민단체를 후원한다면 우리는 이를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삼성은 가깝고 소로스는 멀게 느껴진다 하여 소로스 재단의 후원을 받을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에 나서자 이 글을 통해 해당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인지에 대한 판단을 재고해주실 것을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참여하는 동지들에게 요청드린다. 이 세계에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오늘도 유지될 수 있는 것, 학살과 전쟁이 벌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조지 소로스를 포함한 한 줌의 자본가들이 이 세상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선사업이라고 내놓는 그의 부는 금융수탈을 통해 노동자민중에게서 강탈해간 부이며,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그런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여기까지 왔다. 단지 과거의 축적과정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날에도, 이 금융자본가가 자선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부의 원천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과정에 적극 연루돼 있으며, 그로부터 수익을 얻고 있다.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하는 동지들, 차별과 억압에 맞서 함께 싸워온 동지들이 이 정도 사실을 모를 동지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지들에게 OSF의 후원을 받지 말자고 호소하는 걸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을 현실로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필자 또한 크나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동이 금융투기자본의 후원을 받는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뒤집을 수는 없다. “상당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중요 과제로 여기지 않았거나, 중요 과제로 여기는 경우에도 이를 지역으로, 현장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재정이 부족하다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OSF 기금을 받는 대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과 함께 더 넓은 운동을 조직하자고 제안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동투쟁을, 재정지원을 모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요구합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인 노동자 운동을,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합시다. 이를 통해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관철해냅시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는 오래된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비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인권운동과 노동자민중운동의 굳건한 연대를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쟁취해 냅시다. 그 길에 사력을 다해 연대하겠습니다.”라는 반대 연명 제안문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본다. 나 또한 사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3월 26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세집담회]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투쟁, 이렇게 하자!’를 진행한다. 해당 정세집담회를 계기로 더 큰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운동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3-24 | 조회 10,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