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탄압, 무엇을 방어하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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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건설노조 탄압, 무엇을 방어하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 김요한
  • 등록 2023.01.31 17:38
  • 조회수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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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어디까지나 자본 이윤의 위기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져들면 전 사회가, 특히 노동자 민중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위기는 전근대 기근처럼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퇴보한 결과는 아니다. 한편에서 생계수단을 상실한 노동자 대중이 빈곤 속에 허덕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중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재화가 팔리지 않은 채 쌓여가는 것이 자본주의 위기의 본모습이다. 단지 자본가들의 이윤이 안정적으로 획득되느냐 여부가 자본주의의 호시절과 위기를 가름하는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


이윤 생산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자본의 대응은 늘 똑같다. 노동권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을 통해 착취율을 높이는 것이다. 효력이 다한 금융화‧세계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블록화와 패권 경쟁으로 거대한 경제위기가 기정사실이 되자, 자본가들은 노동권에 대한 잔혹한 공세를 준비 중이다. 주 80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며, 실업급여 요건을 까다롭게 해 노동자들을 저임금의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겠다는 발상이 그래서 나온다. 노동자들이 죽어나든 말든, 이윤율만 다시 높아진다면 그것이 바로 위기의 극복이다.


이를 위해 선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노동개악 국면에서 사실상 유일한 저항 세력인 민주노조운동을 고립, 분쇄하는 것이다. 한국의 후진적인 노동법제에서 기인한 대중의 노조혐오 정서를 십분 활용하여, 조직노동자들을 미조직노동자들로부터 떼어내 각개격파 하겠다는 심산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낯 두꺼운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 노동자들더러 ‘귀족노조’ 운운했을 때,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노동자 평균시급도 못 받은 채 하루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한다는 실체적 진실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노동자 투쟁을 깨기 위해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이 필요했을 뿐이다.


“노조 부패 척결”의 표적이 된 건설노조


이제 자본가 정부의 표적은 건설노조다. 윤석열이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고 운을 뗀 이후, 건설노조를 마치 불법 조직폭력배쯤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다. 작년 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자본가 정부 요인과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장, 안시권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등 건설 자본가들이 ‘건설현장 규제개혁 민·당·정 협의회’란 걸 열었다. 명목만 번지르르하지, 실상은 ‘건설노조 분쇄 결의대회’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날 “건설현장의 조합원 채용 강요나 금품 강요, 출입저지 등 불법행위 만연에 단호한 법적 대처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며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대중의 반노조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저들이 제일 앞줄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강요’ 문제다. 지난 1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특정 사업장에서 부모 세대가 자기 자식한테 일자리를 물려주는 일자리 세습이나, 건설사업자 가운데 일부 노조가 사업체 배정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위법하고 불공정한 부조리를 시정해 나가겠다”고 떠들었다. 썩어빠진 노조 관료가 자기 친인척을 철밥통 일자리에 낙하산으로 들어 앉히는 채용 비리 문제를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 요구와 교묘하게 섞어 버린다. 실상이 정말 그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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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노동 실태


건설노동자의 숫자는 대략 21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건설현장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정 일용직 고용이다. 2019년 통계청 건설업 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중 임시·일용직 고용의 비율은 86.7%, 평균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이라는 응답 비율이 94.3%에 이른다. 건설노동자들의 월평균 근로일수는 동절기 16.1일, 춘추·하절기 20.2일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국 건설현장의 심각한 문제인 불법 하도급 문제를 빼놓고 고용의 불안정성을 논할 수 없다. 건설현장은 발주처 → 원청건설사(종합건설업체) → 하청건설사(전문건설업체) → 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구성된다. 법으로는 하청건설사 이하로의 하도급은 금지돼 있으나, 현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불법 하도급이 횡행한다. 


2021년 광주에서 학산빌딩 철거 붕괴사고가 있었다. 철거 현장 근처를 지나가던 시내버스가 매몰돼 승객 9명이 사망하고 중상자 8명이 발생했던 중대재해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 결과에 따르면, 최초 발주처가 책정한 철거 공사비는 평당 28만원이었으나, 도급 – 하도급 - 불법 재하도급을 거치며 철거 공사비가 평당 4만 원까지 하락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안전수칙 위반, 무리한 공기 단축, 임금체불 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건설노동자 상당수는 ‘오야지’, ‘시다오케’ 같은 불법 도급업자들을 통해 고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20년 건설근로자공제회 실태조사 결과 건설노동자들의 입직 경로는 인맥 84.7%, 유료직업소개소 6.8%로 조사된 바 있다. 공적 채용알선 제도가 없는 형편에서, 하루하루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건설노동자들은 건설자본가들의 무제한적 전횡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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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산빌딩 붕괴사고 현장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 요구는 정당한 노동3권 행사 방식


보통의 노조는 이미 취업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임금 인상 등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한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통상적인 노조 활동 방식이 불가능하다. 어느 건설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권리를 요구할 경우, 건설 자본은 다음날 바로 해당 노동자와의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다시는 그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채용 권한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떠들면서 말이다.


따라서 건설노동자와 같은 불안정 고용형태에서, 건설노조와 같은 직종 노조는 노동3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단체협약으로 보호받는 우리 조합원을 너희 현장에 고용하라’는 요구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노동3권 행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본가 국가조차 불안정 고용 형태에서는 아예 노동조합에 노동력 공급 권한을 부여하기도 한다. 한국의 직업안정법이 국내에서 근로자공급사업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단체는 노동조합뿐이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말이다. 항운노조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선 항운노조가 대한노총 시절부터 어용과 양아치의 본산이다 보니 실감하기 힘들지만, 본래 조합원만 고용해야 한다는 클로즈드숍은 역사적으로 단결 강제 수단의 가장 강력한 형태이기도 했다.


직종 노조가 자기 조합원의 고용을 요구하며 노동조건을 교섭하는 것은 대법원조차 인정하고 있는 노조활동이다. 대법원은 한국방송공사 방송연기자노조 사건(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5두38092 판결)에서, 방송연기자가 현재 방송사에 전속 고용돼 있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방송연기자로 하여금 노동조합을 통해 방송사업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무제공조건 등을 교섭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크므로, 전속성과 소득의존성이 강하지 아니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방송연기자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임을 부정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건설노조가 건설 자본에게 자기 조합원의 고용을 요구하고, 조합원에게 적용될 노동조건을 교섭한 것은 노동3권의 정당한 행사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건설노조의 노동3권 행사 방식(단협 적용을 받는 조합원을 고용하라)을 통상적인 경우(취업한 노동자를 조직해 단협 체결을 요구)와 비교하자면, 단지 시간의 선후가 바뀐 문제일 뿐이지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실제로 건설노조가 건설자본과 체결한 단체협약을 살피면, 직종별 노동조건을 정한 것 외에 기껏해야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조항 정도를 포함시키고 있을 뿐이다. 건설노조가 조합원만의 배타적 고용을 요구한 사례 자체가 드물다. 토건 현장의 경우 4개 조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면, 건설노조에서 따낸 최대의 합의라 해봤자 2개 조를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고용한다는 수준이라 한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자본가 정부는 건설노조의 노동3권 행사를 난데없는 채용비리 문제로 둔갑시킨다. 노조법에 따른 타임오프 합의를 ‘간부 전임비 갈취’로 둔갑시킨 것처럼 말이다. 저들의 진짜 불만은, 건설노조 조합원이 일단 고용되면 인건비 상승뿐만 아니라 안전수칙 준수, 연장노동 제한으로 공기(工期)가 늘어진다는 것이다. 이윤 생산에 지장을 주는 건설노조를 깨기 위해서라면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든 어떠한 형태의 악선전도 마다치 않겠다는 것이 저들의 굳건한 결의다. 미조직노동자들로부터 조직노동자들을 분리‧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 계급의 승리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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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D-2, 공기단축이 부르는 아파트 건설현장 중노동과 부실공사 증언대회

 

건설노조 탄압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자본가 정부의 파렴치한 건설노조 깨기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여 노동조합 운영의 민주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불안정 고용의 특성상 노동조합이 자기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정당한 행위다. 그러나 어용 항운노조의 사례나 이권을 노리고 온갖 협잡꾼들이 모여든 갖가지 군소 건설 노조들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조합원의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실현되지 않은 노조는 일부 관료들의 부정과 비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채용 문제를 다루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소수 간부의 독선적 의사결정 대신, 평조합원들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보장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노동조합 내부에 튼튼히 뿌리내려야 한다.


건설현장의 불안정 고용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노동자권력이 사회의 생산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온전한 해결이 가능하다. 노동자권력은 건설 노동자들의 기능교육, 직종별‧부문별‧지역별 인력 배치 등을 합리적 계획 아래 전면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을 수행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노동자권력의 이러한 역량은 어느 순간 돌연변이처럼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맞선 일상적 투쟁 과정을 통해, 특히 민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운영한 경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양된다.


이런 관점에서 일부 조합원의 ‘개인적 일탈’에 대해서도 엄정한 통제가 필요하다. 예컨대 특수고용노동자들로 구성된 건설기계 직종에서는 당장 조직력에 손실이 되더라도 노동자계급 정체성에 어긋난 행동을 한 조합원들에게 규약을 엄정히 적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대변할 때만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 싸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가 정부의 탄압에 맞서 단순히 조직을 방어하겠다는 태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전체 건설노동자를 대변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건설노조는 이미 많은 것을 바꿔냈다. 무법지대인 건설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요구, 임금체불 근절 요구, 직종별 임금수준 상향평준화 등을 실현했다. 더 나아가야 한다. 자본가 정부가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를 갈라놓겠다고 악을 쓰고 달려드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각종 불법 하도급, 사람 목숨보다 공기(工期)를 우선시하는 안전불감증, 임금체불을 비롯한 각종 노동법 위반행위 등의 문제를 공세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 단체협약에 따라 조합원에게 적용되는 노동조건을 모든 비조합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요구하면서, 건설노조가 소속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건설노동자를 위해 싸워나간다는 점을 선언해야 한다. 노동자 총단결의 범위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제외될 수 없다. 당장 노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미조직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요구에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는 계급적 요구를 발굴하고 의제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 진영 전체의 계급적 연대와 실질적 총파업 조직이 시급히 필요하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그다음은 또 어디가 될 것인가? 자본가 정부는 경제위기를 앞두고 조직노동자 운동을 하나하나 각개격파하겠다는 투철한 의지를 결코 숨기지 않는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가스‧전기요금을 비롯한 필수서비스 물가 통제 등 공세적 요구를 내걸고 실질적 총파업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저들의 탄압에 맞서야 한다. 노동과 자본의 일대 격전에서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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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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