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오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숙명여자대학교분회장 인터뷰] "조합원들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 그 자세로 소수노조 위기 탈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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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강오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숙명여자대학교분회장 인터뷰] "조합원들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 그 자세로 소수노조 위기 탈출했죠"

복수노조 사업장, 탈퇴한 조합원들을 다시 조직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숙명여대분회의 끈질긴 노력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숙명여대분회 강오석 분회장

 

들어가는 글

 

비정규직 노조는 조직 구성 자체도 어렵지만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조 무력화를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원하청 노조파괴 공작에서 드러났듯이, 다양한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민주노조가 자본의 탄압과 복수노조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조합원들은 이 전쟁과도 같은 과정들을 겪으며 때로는 지치기도 때로는 흔들리기도 합니다. 자본은 그 속을 비집고 들어와 동지들 간의 신뢰를 부수고 그 틈을 아득하게 벌려놓기도 합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숙명여자대학교분회도 조직을 유지해 온 10년의 시간 동안 그런 위기를 무수히 맞닥뜨렸습니다. 2024년에는 교섭권을 빼앗길 위기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노조 10년의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이 위기를 뛰어넘었고, 탈퇴한 조합원들을 다시 조직했습니다. 열 번이고 열한 번이고,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하나로 조직에 임했다는, 강오석 숙명여자대학교분회 분회장을 만나 그 과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공공 서울지부 숙명여대 분회장을 맡고 있는 강오석입니다. 숙명여대는 2020년에 입사해서 이제 5년차입니다. 지금은 미화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처음 입사할 때는 창고장(업무에 필요한 물품 담당 책임자)로 들어왔어요. 물품 담당을 맡고 있으니, 학교에서 구매해 주는 물품 수령을 위해 학교 총무구매과에 주 1회 들어갔죠. 그런데 제가 민주노총 소속으로 가입하고 나니 학교에서 업체에 출입통제를 통보했더라고요. 업체에서는 창고장직을 내려놓으라고 했죠. 내가 잘못한 게 뭐냐며 항의하니 업체에서는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 시기가 분회 비대위 문제가 터지기도 해서, 그냥 관두고 미화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분회장으로는 작년에 선출됐습니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선거를 빠르게 추진한 배경이 있을까요?

 

네. 당시 비대위원장 맡았던 분이 회사하고 친분이 강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어요. 조합원들과 논의 없이 회사의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들이 있었거든요. 그중 하나가 인원감축 문제였어요. 남성 조합원들의 인원을 감축시키는 합의를 회사와 일방적으로 진행한 거예요. 이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간부들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시작됐죠. 빠르게 비대위 체제를 해소하고 분회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이 들어 분회장 선거를 진행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분회장에 당선된 후, 한 달 안에 조합원 24명이 줄줄이 탈퇴한 거예요. 엄청 충격이었죠. 완전 정신이 없었어요. 밤에 잠도 못 자고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나중에 여쭤보니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비대위원장을 굳이 내려앉히는 것에 대한 심적 거부감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탈퇴한 조합원들을 다시 조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그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당시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분회장 맡은 게 후회되기도 했어요. 감당을 못할 것 같았거든요.

 

분회에 탈퇴 조합원들이 생기니까 본사 담당 매니저가 나와서 사람들 모아놓고 ‘이제 잘 됐다, 민주노조를 없애야 한다’고 헛소리하기도 했어요.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조합원 중 한 분이 녹음을 한 거죠. 증거를 잡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헛소리한 담당 매니저는 자필로 사과하고, 본사의 본부장, 팀장 다 와서 우리 앞에서 사과하는 일도 있었죠. 이 사건으로 담당 매니저는 승진에서 누락됐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분회장을 맡았으니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우리가 당장에는 다수여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후엔 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함께 하자고 간부들도 설득했죠. 손 놓고 있다가는 올해 교섭권을 한국노총에 뺏길 상황이었으니까요. 지난 1년 6개월간 탈퇴했던 조합원들이 다시 돌아온 데에는 우리 간부들 역할이 컸어요. 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간부들이 함께 손발을 맞춰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어요.

 

우선은 현장을 돌면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탈퇴한 조합원들은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했고요. 처음엔 왜 왔냐며 핀잔을 주고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만나줄 때까지 꾸준히 찾아갔어요. 어떤 조합원은 10번 이상 찾아가기도 했죠.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죠. 저는 변명하지 않았어요. 자존심은 다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어요.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았고요. 그러면서 마음이 통한 거 같아요. 그동안 쌓아뒀던 감정, 서운하고 아쉬웠던 부분들을 서로 솔직하게 나누면서, 서서히 앙금이 풀리더라고요.

 

탈퇴한 조합원들이 다시 가입했어요. 무엇이 그분들을 움직였을까요?

 

우리가 그동안 투쟁한 성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숙명여대분회가 설립된 지 올해로 10년째인데, 그동안 민주노조가 투쟁해 온 과정에 대한 신뢰가 쌓여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 1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작년과 올해 많은 성과를 만들어 냈는데요. 작년에 보충교섭을 통해서 그동안 공짜노동과 다름없던 노동절 수당을 쟁취했어요. 그리고 반장제도도 바꿨어요. 이런 모습을 노동자들이 다 보고 아는 거예요. 싸우는 민주노조가 있어야 현장이 나아진다는 걸 모두가 다 아는 거죠.

 

현재까지 22명이 다시 가입했어요. 아직 두 분이 남았는데요. 그분들하고도 계속 만나며 대화하고 있어요. 제 임기 중에는 꼭 설득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에 우리 분회에 가입한 분 중에는 한국노총에 가입돼 있던 분도 계세요. 한국노총 지부장이 전화해서 막 따지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오신다는 분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죠. 한국노총이 지금 내부적으로 흔들리는 것 같아요. 그동안 조용했던 조합원들도 지부장에게 따진다고 하더라고요. ‘민주노조는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한국노총은 뭐 하고 있냐’고요. 기다리고 있죠.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민주노조로 넘어오고 있거든요. 사실 작년에 탈퇴했던 분들도 비노조로 남아있었지, 한국노총에 가입하진 않았거든요. 그런 모습에 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올해가 분회 설립 10주년인데요, 이에 맞춰 영화처럼 조합원 수가 다시 늘어나면서 너무 힘이 되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업(up)되어 있어요. 얼마 전 10주년 행사도 행복하게 치렀죠. 이 여세를 모아 조합원 단합을 위한 야유회도 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20225 세계노동절대회에서 행진 중.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강오석 숙명여대분회 분회장

 

반장제도를 바꾸셨다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세요.

 

구역마다 반장이 있어요. 업체에서 지정해서 시키는 방식이었죠. 이러다 보니 10년 반장하면서 완장질하는 사람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구역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반장을 뽑았어요. 과반 동의 사인을 받아 업체 사무실을 찾아갔죠. 근데 업체에서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식으로 투표해서 결정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업체에서도 마지못해 그러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결과는 뻔한 거죠. 우리가 뽑은 반장이 그대로 되니 다른 말을 못하더라고요. 우리는 반장제도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싶었던 거예요. 임기는 3년으로 하고 한 번 연임은 가능하게 했고요. 임기 중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뽑을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죠.

 

원래는 업체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반장회의를 했어요. 그런데 반장 중 우리 분회 조합원들 4명이 반장으로 뽑히니, 우리가 지속적으로 요구해도 반장회의를 하지 않아요. 올해 서너 번이나 했을까요? 예전 반장회의는 소장이 자기 입맛대로 반장들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르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따지고 바른말을 하니까 소장이 반장회의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현장의 문제를 노동자들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권을 위해서도 분회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업체는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을 무시할 때가 많아요. 어떨 때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라오는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려고 해요. 감정 동요 없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태도로 임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요. 얼마 전에 한 건물에서 일방적인 배치전환이 있었어요. 감독이란 작자가 와서 1월 1일부터 전환된 배치표를 벽에 붙이며 이의 있는 사람에게는 시말서를 받겠다고 통보하고 갔다는 거예요. 상황 파악을 위해 현장으로 바로 달려갔죠. 우리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도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다들 건물 내에서 이동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어요. 그런데 감독 태도가 문제였어요. 이의를 달면 시말서를 받고, 다른 건물로 보내버리겠다고 노동자들을 협박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소장에게 찾아가, 당사자들과 사전에 상의 없이 일방 통보한 것에 대해 항의했어요. 당장 감독 불러서 당사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니 당황하면서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다음날 감독이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일단락됐어요.

 

일상적인 조직 활동도 중요해요. 우리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에요. 그러면 조합원들이 식사하고 자연스럽게 학교 앞 카페에 모여요. 처음엔 비대위원장 문제 때문에 논의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조합원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정착이 됐어요. 오라고 하지 않아도 열댓 명이 모여서 서로 안부를 묻고, 고충도 나누고 그래요. 많을 때는 20명이 모이기도 해요. 하고픈 이야기가 있는 조합원들은 그 시간에 카페로 오죠. 만약 여기서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퇴근하고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그래요. 회의 석상에서 미처 이야기 못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풀리는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오늘도 조합원들과 티타임을 가지고 왔어요. 이런 일상적인 사업들이 꾸준히 진행되면, 분회의 조직력과 단결력이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노조법 2·3조가 통과되면서 원청(대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습니다. 어떠신가요?

 

당연히 포부가 크죠. 우리가 하청업체에 백날 이야기해도 소용없잖아요. 어차피 원청이 책임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을 다이렉트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더 많아지겠죠. 노조 사무실을 확보하는 문제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명확히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될 거예요. 나아가 저는 학교에서 우리를 직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어렵겠죠.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었어도 학교가 순순히 교섭에 나올 거 같지 않거든요. 하지만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원청에 책임을 묻는 싸움을 만들어 나가야죠.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계신 동지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당연히 많이 힘드실 거예요. 저도 힘들었으니까요. 분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다 힘들어요. 책임감의 무게가 엄청나거든요. 이 무거운 걸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돼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힘들게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는데,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무너져요. 그리고 내 옆의 간부들을 믿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해요. 그러면서도 분회장이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죠. 분회장은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신뢰가 생겨요. 저는 서로 인사하기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는 내부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사만 잘해도 80%는 해결될 것 같거든요. 처음엔 인사해도 안 받아주면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하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인사하면, 언젠가는 그 사람도 마주 인사를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신뢰라는 것이 느리지만 분명히 쌓여요.

 

마지막으로

 

분회장이라는 자리는 ‘위’에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조합원들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내 어깨가 조금 올라가는 순간 조합원들은 바로 알아요. 그걸 항상 경계해야죠. 더 낮추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내려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번에 조합원들이 많이 가입하면서 제 어깨가 조금 올라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내려놔야죠. 더 내려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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