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미국의 약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수호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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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미국의 약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수호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다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정이 타결됐다. 한국은 매년 현금 200억 달러씩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미국에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한국 조선업 자본의 미국 투자에 대한 정부의 보증과 대출로 이루어지는 마스가 프로젝트 투자다. 그 댓가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유지하고, 자동차에 부과되던 25% 관세율을 15%로 낮춘다.

 

2천억 달러 투자에 대한 배분비율은 원리금 회수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 5:5다. 이에 따라 2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천억 달러 이상의 이윤이 남아야 한다. 연간 이익을 10%로 잡아도 원금 회수에는 20년이 걸리며,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모두 한국정부 손해가 될 뿐이다. 20년 내 원리금 상환이 되지 않을 경우 이익 배분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하나, 이 형식적인 부가조항으로 이 황당한 협정의 본질을 바꿀 수 없음은 모두가 안다. 이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에 대한 약탈이다.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마지막 일정은, 미국이 태평양 지역 최강대국으로서 차지하는 두드러진 역할을 강조했다" - 협정 타결 직후 백악관 발표문에는 한국정부가 발표하지 않은 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연간 330만톤의 미국산 LNG를 수입한다. 대한항공은 362억 달러에 달하는 항공기 103대와 137억 달러에 달하는 엔진을 미국기업에게 구매한다. 한국 공군은 23억 달러 규모 조기경보기 개발사업 파트너로 미국기업을 선정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기업과 함께 미국 내 희토류 분리정제 및 자석 생산단지를 개발한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30억 달러를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투자한다, 등등. 트럼프 정부는 이번 거래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더 공고히 하고, 기술혁신에서의 미국 우위를 강화하며, 미국 조선산업 생산력 확대 등을 통해 미국의 지도력을 다시 세우는 계기였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약탈이다. 그러나 미국이 빼앗은 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의 피땀일뿐, 한국 자본의 이윤이 아니다. 이번 협정의 재정조달 구조를 보면, 한국정부는 기업에 달러를 빌려주고, 삼성·현대차·한화·포스코 등 기업은 정부로부터 조달한 달러를 미국 제조업과 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투자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가 성공하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확보하는 셈이고, 실패해도 정부가 이를 보전하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즉, 한국 자본은 국가의 비호 아래 안전한 이윤축적 기회를 확보했다. 국가 재정을 통해 미국 진출을 확대하고, 투자에서 나오는 수익 절반을 한국 자본이 가져가며, 손실은 정부 재정이 떠안는다.

 

이것이 한국 자본가단체 모두가 관세협정 타결을 환영하는 이유다. "우리 기업들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투자·수출 전략을 모색할 기반이 마련됐다"(한국무역협회), "중요한 외교·경제 성과로, 이를 통해 한미 양국이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한국경제인협회), "양국간 교역과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증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경총).

 

매해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쓰일 수 있는 30조 원가량의 재정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이전되며, 그 과정에서 한국 대자본은 이윤 축적을 확대한다. 미국은 일자리 확대로 미국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달랠 것이며, 미국 자본은 높아진 관세장벽으로 가격 우위를 확보할 것이다.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는 한국 노동자 민중뿐이다. 한국정부는 재정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것이며, 이는 복지축소와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민영화 확대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자본의 미국 생산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실업 확대, 구조조정의 고통이 노동자 민중을 덮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관세협정뿐만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국방비를 현 GDP의 2.8% 수준에서 3.5%로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 승인을 확보했다. 이는 북중러 블록에 맞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정부 자신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편입이자, 한미일 동맹 강화 속에서 한국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하겠다는 야망의 표출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AI 수출, AI 표준 등에 관한 '기술번영협정'을 체결했으며, 최근 발표된 엔비디아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최신 GPU 대량공급 역시 이번 한미 협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번 관세협정은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계급의 이해타산 일치로 맺어진 거래이자, 한국 자본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다.

 

우리는 이번 관세협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현 약탈은 한국 자본에 대한 약탈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 민중에 대한 약탈, 나아가 전 세계 노동자 민중에 대한 약탈이라는 점이다. 이번 협정은 한국 자본과 한국 노동자계급 이해관계의 대치선을 선명히 드러낸다. 노동자 민중의 대응기조는 '한국 산업주권 수호'도, '브릭스 대안'도 아니다. 우리의 대응은 미국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다.

 

2025년 11월 1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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