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자본’이지 특정성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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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남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자본’이지 특정성별이 아니다

  • 정은희
  • 등록 2025.10.30 16:11
  • 조회수 673

 

이재명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는 과정에서 ‘남성 역차별’ 전담 부서를 신설해 논란이 이어졌다. 바로 성평등정책관 산하의 ‘성형평성기획과’ 때문이다.

 

이 부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 역차별’에 대한 대응을 주문한 결과로 신설됐다. 그래서 ‘이대남’(20대 남성)이 느끼는 역차별을 조사·연구해 정책 과제로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대남’의 주장과는 다르게,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여전히 명백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선, 현실부터 짚어보자.

 

여성가족부가 2023년 공시대상회사와 공공기관의 성별 임금 격차를 조사한 결과, 성별 임금 격차는 30.7%로 전년(26.3%)보다 4.4%p 확대됐다. 또 여성가족부가 2024년 발표한 <2025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47.3%, 남성은 30.4%로, 전년 대비 각각 1.8%p, 0.6%p 증가했다. 2023년 성폭력 발생 건수는 37,752건으로 2015년보다 23.5%나 늘었으며, 강간 피해자의 99.04%는 여성이었다.

 

‘역차별’의 실체

 

이 같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여전히 명백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남성들, 특히 청년층의 다수는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 관련 설문조사를 보면, 실제로 청년 남성의 약 70%가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차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초 커뮤니티에서 제기되는 주요 사례를 보면, 청년 남성들은 군 복무, 남성 중심의 강도 높은 노동 문화, 그리고 여성할당제 등 이른바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정책들이 주로 남성을 역차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 주장의 타당성을 하나씩 살펴보자. 실제로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불평등한 성별화된 역할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그것은 왜 발생하는 것인지, 또 그로 인한 이득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따져봐야 우리는 ‘남성 역차별’의 실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병역의무는 한국 사회에서 분명히 남성에게만 부과된 억압이다. 여성도 군 복무를 선택적으로 할 수는 있지만, 법적 의무는 아니다. 따라서 군 복무 제도는 남성에게만 의무를 지우는 한에서 남성 차별적 요소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여성에게 주어진 ‘특혜’가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성별 분업의 산물이다. 국가는 ‘강한 남성성’을 강조하며 남성에게 군 복무를 강제하고, 여성에게는 ‘보조자’의 역할을 부여해 출산과 가사·돌봄의 부담을 전가한다. 결국 군대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언제든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자본가 계급에 돌아간다. 즉, 군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강제하는 전형적인 성별 분업 체계로서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복무한다.

 

둘째, 고강도 노동을 남성에게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 또한 실재한다. 그래서 공장, 건설, 운송 등 산업 영역에서는 남성 채용을 우선한다. 그러나 ‘강한 남성성’을 당연시하는 사회 구조 역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며, 이를 통해 자본은 노동비용을 절감하여 결과적으로 그 이득은 자본가계급에 돌아간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남성에게는 높은 강도의 노동력이나 조직적 책임성을 요구하며 착취하지만, 동시에 여성을 차별한다. 대표적으로 여성은 대기업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채용성차별처럼 비교적 질 좋은 사업장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또한 여성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가사, 돌봄, 서비스, 청소·요양 등 재생산노동도 실제로는 육체적·정신적 소모가 매우 크지만,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되고 저평가된다. 

 

셋째, 공직·의회·기업 등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여성할당제는, 남성 개인이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역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사회 구조가 재생산해 온 성차별의 현실을 간과하고, 문제를 개인의 성별 문제로만 축소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여성할당제가 실제로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지는 짚어봐야 할 문제다. 여성할당제는 구조적 성차별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되었지만, 자본주의적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채 상층 여성의 진출 기회를 넓히는 데 그친다. 또한 계급 간 격차를 은폐하고 자본주의적 성별분업 구조를 재생산함으로써, 결국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일부 여성 개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데 머무는 한계를 지닌다.

 

결과적으로 남성에 대한 성별화된 억압이 발생하는 이유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노동력 착취와 재생산을 위해 가부장제를 동원하여 성별화된 억압을 강제한다. 즉, 사회는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지만, 남성도 가부장적 질서에 복무하도록 강요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는 억압되고, 남성도 가부장제에 부역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즉, 청년 남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특혜를 누리는 주체는 여성이 아니라 자본이다.

 

‘젠더갈등’이 아니라 ‘계급 착취와 억압’이 문제 

 

[사진] 이온화 | 지난 3월 8일 여성파업 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계급적 억압과 착취가 문제인데도 젠더갈등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자본가계급이 이를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자계급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근본 책임은 자본주의에 있음에도, 그 분노를 더 열악한 처지의 여성이나 성소수자에게 향하게 하여 계급적 억압과 착취를 은폐한다. 

 

이것은 특정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등에서는 ‘남성의 위기(the crisis of masculinity)’라는 말이 유행했고, 우후죽순 ‘남성권리운동’이 부상했다. 이들은 “여성 우대 정책 때문에 남성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그에 따른 재생산 위기가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극우 세력은 젠더 혐오를 조직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회정의에 깨어있는 자본주의(Woke capitalism)’를 내세우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성의 일부 권리만을 수용할 뿐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은 침식시켜 온 민주당 류의 자본가 정당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성평등부는 ‘역차별’ 논란 뿐 아니라 ‘여성’이 부처명칭에서 빠졌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이러한 비난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터프(TERF,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 계열에서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가 청년 남성층 ‘역차별’ 문제를 정책 의제로 포함하며 여성가족부에서 ‘여성’ 자를 뺐으니 여성정책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의 원인을 성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잘못된 비판이다. 

 

독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이자 여성 노동 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20세기 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격변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현대 여성 문제를 촉발시켰다”라고 지적했듯, 구조적 성차별은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결과다. 즉, 여성 다수를 억압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이다. 

 

그런데 터프는 여성을 출생 시 지정된 성별로 정하고, 여성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지정성별 남성’에게서 찾는다. 그러면서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폭력이 아니라 개인의 성별에 돌림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억압의 본질을 은폐한다. 

 

더구나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성공’을 지향하며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귀결되는 문제를 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구할 수 있는 여성은 자본가계급 여성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여성은 한 줌일 뿐이며, 여성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이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을 우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가부장제를 활용해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한편 노동자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이러한 노동자계급 분열 전략에 기초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고자 한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에 맞서 성적 권리를 노동자의 권리로 요구하고 평등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나아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강제하는 억압과 차별을 끝장내기 위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계급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함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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