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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 만행, 패배를 딛고 다시 전진하기 위하여!사진: 공공운수노조 설마 했더니 진짜였다. 보육, 노인 요양,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공공돌봄서비스를 제공하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이 해산됐다.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국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를 의결했다.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인 서사원은 서울시의 재정 투입이 없으면 존속 불가능하다. 이어 5월 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10월 말까지 모든 청산 절차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지금보다 몇 배 확대해도 모자랄 공공돌봄기관을 오히려 폐쇄하는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7월 3일 한덕수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과(?)를 자화자찬하면서, “정부 출범 당시 우리가 물려받은 경제를 봤을 때 저는 우리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고 말했다. 망할 뻔한 나라를 저들이 살려놨다는 것이다. 개소리다. 한국 사회는 이미 망했고, 너희들이 그것을 가속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합계출산율이 0.6명 대에 그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이겠는가? 경쟁의 패배자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한 사회, 이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간 사회다.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격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개소리가 공공연히 횡행하는 사회, 육아·간병·노인 요양 등의 각종 돌봄을 온전히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해고를 당연시하는 사회다.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도 무너뜨려 놓고서는, 자본 이윤의 원천인 노동력이 부족하니 아이를 더 많이 낳으라고 떠들어대는 사회가 ‘망할 뻔한’ 나라인가? 이미 ‘망한’ 나라지! 마르크스는 <자본1>에서,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가들은 “인류가 장차 멸망할 것이라든지 결국은 인구가 끊임없이 감소할 것이라든지 하는 정도의 예상에 대해서는 [지구가 태양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예상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제 행동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공공돌봄의 확대가 불가피한 마당에, 오히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행태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시의 터무니없는 서사원 해산 이유 서울시는 서사원 해산의 이유로 “서사원이 민간과 차별화되는 공공돌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점, 내부 구성원의 반대로 더 이상 구조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꼽았다. 감히 ‘공공돌봄’ 운운이라니, 꼴같잖은 소리다. 서울시의 진짜 속내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핵심적으로 ‘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자의 임금이 민간보다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는 게 문제란다. 서사원 폐지를 강력히 부르짖던 어느 돌봄자본가는 신문 기고에서 이렇게 떠들었다. “이들은 민간 기관과 달리 월급제 정규직이다. 고정급 205만 원에 교통비 15만 원, 식비 13만 원을 더해 기본급 233만 원을 월 급여로 받는다. 가족수당은 물론이고 휴일이나 야간 시간대 등 시간 외 근로를 하면 규정에 따라 초과 수당도 받는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유급으로 병가나 휴직도 보장받는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돌봄업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세계일보, <[기고] 공공돌봄이라는 허울 뒤에서 낭비되는 서울시민 혈세>, 2023. 5. 19.) 노동자 평균임금이 300.7만 원(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23년 8월), 중위임금이 249만원(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2022년 6월)인 시대다. 그런데 서사원 노동자들은 무려(!) 기본급 233만 원에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 외 수당까지 받으며, “월급제 정규직”이기까지 하므로 “돌봄업계의 삼성”, 귀족 노동자라는 것이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폄훼할 수 있을까? 파리 목숨인 계약직·시급제·단시간 노동 대신 주 40시간 풀타임·정규직 노동을 원했을 뿐인 돌봄노동자들의 소박한 요구를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매도할 수 있을까? 서울시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돌봄자본가들은 민간 기관에서는 훨씬 더 싼 값에 돌봄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고 지껄인다. 그렇다.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다. 방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이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다)은 풀타임으로 근무해도 고작 월 140만 원 안팎의 급여를 손에 쥔다. 이동시간, 교육·회의 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눈 밖에 난 돌봄노동자들은 일상적 해고 위협에 놓여있다. 어린이집 원장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 시달리는 보육노동자들, 휴게시간 없이 무급노동을 강요당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의 사연은 낯설지 않다. 바로 그래서 자본가 정부조차 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공공돌봄기관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고통받는 돌봄노동자들이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사회서비스원법’) 제1조(목적)에 “사회서비스와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의 질을 높여 국민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물론 사회서비스원 설립이 전체 돌봄노동자들의 권익 개선을 추동(推動)했는지는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다. 또한 서사원에 건설됐던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 총단결의 관점에서 노동자의식을 싹틔워 나갔는지의 문제도 그렇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무조건 단언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 서사원 노동자들을 두고 귀족 노동자 운운한 짓거리만큼 비열한 공격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란 점이다. 서사원 해산 사태는 공공부문이 더 이상 고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권익을 대변하며 투쟁하지 않을 때는 고작 기본급 233만 원만으로 말도 안 되는 갈라치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것은 재정 긴축이 일상이 된 시대, 자본 이윤이 장기침체에 빠진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까지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준 자본가들, 그러나 쓰라린 패배 저들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치밀하고 비열했는지,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5월 31일 서사원 원장 직무대행 윤재삼은 서사원 청산과 관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윤재삼은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겠다며, 1차(신청기간 : 6월 3일~5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3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2차(신청기간 : 6월 20일~26일)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기본급 2개월분의 퇴직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2차까지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으면 7월 31일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퇴직 위로금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말 역겨울 정도다. 서울시와 서사원은 행여나 서사원 노동자들이 폐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일까 봐 희망퇴직 신청 시기에 따라 퇴직 위로금을 차등 지급하겠다 떠든 것이다. 자본가들이 파업한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배 가압류를 때려놓고, 노조를 탈퇴한 사람에게만 소송을 취하해 주는 개수작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서사원의 진짜 속내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작성해야만 하는 합의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서사원이 내민 합의서에는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회사로부터의 근로종료로 발생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며, 본인의 회사와의 고용관계 및 근로종료와 관련하여 회사와 그 임직원 및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여타 당사자에 대하여 행정상 또는 민·형사상 제소 기타 어떠한 형태의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는 조항이 기재돼 있다.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생계수단 단절의 위험에 놓인 노동자들을 돈 몇 푼으로 매수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자본가들의 치밀함에 비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의 대응은 무력하고 뒤늦었다. 4월 26일 서울시의회의 서사원 조례 폐지 이후, 서사원에 조직된 두 민주노조(전국공공운수서비스노조 서사원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는 서울시가 요구하는 임금 삭감안(시급제 전환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5월 13일 다수 노조인 서사원지부 조합원들의 71%는 임금 삭감안에 반대했으며, 13일~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찬성률 86%)했다. 하지만 5월 22일 이사회에서 서사원 해산이 의결되는 순간까지도 노동조합은 서사원 폐쇄를 막아내는 위력적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의 경우, 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결의대회는 5월 17일 하루에 그쳤으며 이마저도 연대 단위가 결합하기 힘든 평일(금요일) 집회였다. 이어 지부장 삭발, 6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사원 폐쇄에 항의하는 릴레이 단식농성이 진행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단호함을 막을 수 없었다. 현재 조합원들 대다수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상황이다. 너무나 쓰라린 패배다. 서사원 폐쇄에는 아무런 사회적 명분도 찾을 수 없다. 만약 전면 파업이나 이사회 원천 봉쇄 등 서사원 노동자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 전개됐다면 서사원 폐쇄에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저출생 재난, 초고령화 시대에 그나마 있는 공공돌봄기관의 문을 닫겠다는 자본가들의 폭거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패배를 딛고 더 멀리 전진하기 위해, 서사원 해산을 둘러싼 과정을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성이 또다시 확인됐다 우선 서울시의 서사원 해산 만행은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왜 정당한지를 수백 번째로 보여준 실례라 하겠다. 통상의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 서울시와는 아무런 교섭도 할 수 없었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서사원 사측과 무의미한 교섭을 지속해야 했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진짜 사장들은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모두 결정하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들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원청 택배자본이 그러하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30% 삭감했던 조선사 원청자본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서울시는 400명이 넘는 서사원 노동자들의 생계를 단박에 날려버리면서도 손에 흙 묻히는 일조차 겪지 않았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결정 등에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주체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명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노조 파괴 행위를 금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없이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서사원 해산이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에게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대량 해고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동3권을 빼앗겨왔던 하청노동자 등이 노조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법 제도를 떠나 서사원 해산 사태에서 뼈아프게 되새겨야 하는 결정적 교훈은 이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 과정 없이는 노동자들이 거대한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자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비정규직 고용, 30명 미만의 영세한 사업 규모 등으로 인해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노동조합은커녕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돌봄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반면 돌봄자본가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중이다. 이들의 사업은 파산 위험이 없다. 현재 보육·노인 요양·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돌봄서비스는 국가와 지자체가 공적 재원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자본가들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역설적으로 파산의 위험이 없으므로 ‘세련된’ 인사노무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돌봄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돌봄자본가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 데 익숙했다. 서사원 설립 초기 임금체계 설명회에서, 가족수당이 지급된다는 말에 돌봄노동자들이 반신반의하며 ‘일 안 하는 남편이어도 가족수당을 지급하느냐’고 되물었다는 에피소드는 평소 돌봄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놓여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조건에서 공공돌봄기관인 서사원이 탄생했다. 노동자들도, 자본가들도, 과거의 경험과 습관을 한 번에 떨쳐내지 못했다. 서사원에서 몇 차례 있었던 부당해고 사건은 과거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무식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요양보호사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인사 평가에서 최하점을 줘 촉탁 재고용에서 탈락시켰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역시 노동조합의 필요성,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할 수 없었다. 서사원 설립 초기인 2020년, 서사원지부는 유사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의 단체협약을 기준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단체협약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측이 2022년 단체협약의 해지를 통보한 후, 서사원지부가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위력적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던 상황은 이를 보여준다. 오세훈 시장 당선 이후 이뤄진 조직 축소 등 전방위적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주체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서사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민주성과 전투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전폭적 지원이 불가결했다. 공공돌봄기관을 폐쇄하겠다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만행에 맞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차원의 투쟁 계획 제출, 적극적 연대 조직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서사원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통해 단번에 비약해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사원 투쟁이 단지 서사원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부문을 포함한 전체 돌봄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계급단결 투쟁으로 나가기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와 사측이 서사원 폐쇄를 위협하며 던진 임금 삭감안에 반대 투표함으로써, 노동자의식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도 뚜렷이 보여줬다. 5월 17일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참여해 전투성을 보여준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서사원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투쟁 의식을 고양시키는 강력한 투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예컨대 서사원 폐쇄를 결정한 5월 22일 이사회는 조합원 대중의 강력한 파업 투쟁으로 원천 봉쇄했어야 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이렇게 높은 수준의 노동자투쟁을 전개할 수 있으려면 평소의 준비 태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다. 노동자운동이 점점 더 대중적 활력과 전투성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 노동자계급 자기조직화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미래는 눈에 쉽게 보이는 ‘이슈 파이팅’이 아니라(이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눈에 띄기 힘든 일상적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담보된다. 사측이 내세우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일상화하는 일,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을 상급단체와 전임 간부 몇몇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 원칙 아래 조합원들이 주도하게 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민주노조답게 평조합원이 노동조합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노조 간부가 대리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단결, 주체적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풍이 흘러넘쳐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비해 가진 유일한 장점은 수(數)가 많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집단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장점은 노동자 개개인의 능동적 실천이 전개될 때만 비로소 실현된다. 노동자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맞선 일상적 실천과 투쟁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서사원 해산 사태에선 이런 준비가 너무나 부족했다. 2022년 9월 사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통보 이후 노조 활동에 여러 지장이 있었던 것도 한 이유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 다시 말해 노동자 단결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는 순간, 노동자 개개인이 사측의 퇴직 위로금 수작을 받아들인 건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민주당과의 정책 대응이 향후 계획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에서 보자면, 서사원 폐쇄 이후 공공운수노조에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을 향후 대응의 중심축으로 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6월 25일 국회에서는 공공운수노조와 조국혁신당 김선민·정춘생 의원실 공동주최로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해서 제2의 서사원 해산 사태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7월 중 민주당 의원실과 함께하는 서사원 해산 관련 토론회, 하반기 국회 국정조사 등이 추진 중이라 한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문재인 정부가 만든 사회서비스원을 윤석열 정부와 국힘 시의회가 해산했으니, 다시 민주당과 함께 서사원을 재건하겠다는 생각이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애당초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에서 한참 후퇴한 채, 지금의 무늬뿐인 공공돌봄기관을 만든 것이 문재인 정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행 사회서비스원법 제7조제1항은 “시ㆍ도지사는 제10조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관할하는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ㆍ도ㆍ특별자치도에 시ㆍ도 사회서비스원을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5일 열린 ‘사회서비스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은 위 조항의 “설립ㆍ운영할 수 있다”를 “설립ㆍ운영하여야 한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당론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 와 개정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입법 당시(2021년 9월 24일 제정) 처음부터 사회서비스원법을 그렇게 통과시켰으면 되는 일 아니었나? 당시 입법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민간 부문 돌봄자본가들의 압력에 굴복해 자신들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크게 후퇴시켰다.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설치 의무 규정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일례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사회서비스원이 우선 위수탁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했다. 이 때문에 서사원이 담당했던 돌봄 영역은 극히 협소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1,838개소 중 서사원이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고작 6개소, 0.3%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런 엉터리 법안을 만든 민주당 정치세력이 이제 와 사회서비스원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만큼 뻔뻔한 일이 또 있을까? 설령 민주당이 사회서비스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하자. 그러나 서사원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민간 부문 돌봄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처우를 받는다는 현실은 단시간에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업별 단체교섭 제도, 초기업 단위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가 없는 한국의 후진적 노동법에서는 불가피하기까지 하다.) 국힘 등의 자본가 정치세력은 이를 빌미로 돌봄노동자 갈라치기 공격을 재개할 것이다. 이때 민주당은 ‘서사원을 살려야 하니 우선 노동조건 개악을 받아들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기대는 방식으로 서사원을 재건해서는 이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기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김대중은 ‘민주주의에는 공것(공짜)이 없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피 흘리지 않고 얻은 민주주의는 모래성과 같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성취물 또한 그러하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모든 제도적 성과는 시혜적 방식으로 주어졌을 때가 아니라 대중의 자주적 투쟁으로 쟁취했을 때만 확고부동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자 대중의 자기조직화를 중심으로 두는 방식이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할 수도 없는데, 오늘날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강력한 노동자투쟁 없이는 자본가들은 세상이 망하건 말건 가진 것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자본가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 노동자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서사원 폐쇄에 맞선 향후 투쟁 계획에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정책 대응이 중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는 민간 부문 미조직 돌봄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이들을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세워내는 일이다. 멈추지 않는 투쟁을 결의한 서사원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돌봄 부문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원의 재건은 돌봄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을 새롭게 조직할 때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돌봄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은, 공적 재원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사적 전횡을 휘두르는 돌봄자본가를 몰아내고 돌봄노동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전체 사회서비스 부문을 운영·통제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의 돌봄노동자를 더욱 광범위하고 전면적으로 조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노동자투쟁의 새로운 주체로 우뚝 서게 하는 것, 이것이 현재 제일 중요한 과제다.2024-07-11 | 조회 3,507 -
재난은 재난이고, 돈벌이는 돈벌이다? 기후재난 시대에 유전 개발이 웬 말!사진: 연합뉴스 이게 지금 대통령이 나설 일이야? 이달 초 윤석열은 취임 이후 최초로 진행한 ‘국정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윤석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에 물리탐사 심층 분석”을 맡긴 결과, 추정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채상병 수사 직권남용, 김건희 씨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임기 완주를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얘기나 임기응변식으로 던져대는 중이다.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노동법원을 노동약자 보호 운운하면서 임기 내 설치하겠다고 떠든 것이 단적인 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이 동해 유전 가능성을 직접 발표한다는 사실을 소관 부서인 산업자원통상부 대변인실조차 발표 1시간 전에 알았다고 한다. 윤석열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권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확실치도 않은 유전 개발 가능성을 직접 발표하는 뻔뻔함을 보인 것이다. 물론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유전 개발은 ‘지표 지질조사 → 탄성파 탐사 → 탐사 시추 → 경제성 평가 → 원유 생산’의 5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2단계 물리탐사가 끝났을 뿐이고, 실제 매장량이 얼마일지, 경제성이 있을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리탐사 단계의 추정 자원량과 시추 이후 실제 추정량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자원 개발 사업의 통례인데도, 윤석열과 그 똘마니 산업부는 “석유·가스 최대 매장 가능성인 140억 배럴은 현 가치로는 삼성전자 총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 긁지도 않은 즉석복권을 치켜들며 당첨금 운운하는 꼴이다. 근본적 질문 : 경제성이 있으면 유전 개발은 타당한가? 윤석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평가한 액트지오가 과연 실제 전문성이 있는지, 시추공 하나당 1천억 원이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수상한 흔적은 없는지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당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판단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령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유전 개발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온다 치더라도,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시추 작업을 통해 실제로 매장이 확인되면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고, 경제성이 확인되면 2027~2028년 채굴을 위한 공사를 진행해 2035년에 상업 생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2035년이면 어떤 해인가.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로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0% 감축을 결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한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자본가 정부의 이 계획이 기후재난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 것은 잠깐 묻어두자. 또한 2030년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겨우 21.6% 수준에 맞추겠다는 한국 정부 계획을 두고 국제 자본가계급조차 비웃고 규탄한다는 사실 역시 잠깐 내버려두자. 온실가스의 실제 감축 여부가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의 선의(물론 존재하지 않는)에 온전히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NDC 달성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최소한 추가적 온실가스 배출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화석연료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022년 전 세계에서 원유 44억 톤을 생산·사용하면서 71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한다.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동해 유전에서 140억 배럴(원유 약 19억 톤)이 모두 채굴된다면, 이때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는 30억 톤 수준이 된다. 2022년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총배출량 잠정치 6억 5천만 톤의 4.6배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때 이른 폭염은 우리가 살게 될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상화되는 폭염, 집중호우, 가뭄, 거대 산불 등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가난한 노동자 민중일 것이다. 눈앞의 현실이 된 기후재난에 대처하려면(솔직히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있는 유전도 폐쇄해야 하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자본가 정부는 유전을 새로 개발해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인다.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 자체가 정당한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는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절연하고 있지 못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도 있다. 윤석열의 동해 유전 발표 직후 다음날인 6월 4일,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석유가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하고도 그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심지어 이헌석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석유가 있다는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했을 때 그만큼의 경제성이 나오느냐는 것”, “제일 좋은 것은 모든 기름이 한 덩어리로 예쁘게 모여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예를 들면 여러 덩어리로 나뉘어 있으면 나중에 시추할 때 또 여러 군데를 파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것이 명색 “자본에 짓밟히는 생명을 지키는 운동”(에너지정의행동 홈페이지)을 하겠다는 단체의 정책위원이 방송에서 떠들 소리인가? 경제성이 흘러넘치더라도 기후재난 앞에서 즉각 유전 개발을 중단하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G20 평균(2023년 기준 14.91%)은커녕 세계 평균(2023년 기준 13.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2023년 기준 5.34%)에서,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겠다는 범죄적 시도를 어떻게든 막아내자고 호소해야 정당하지 않은가? 이헌석 정책위원의 발언은 심지어 자신이 속한 에너지정의행동이 6월 3일 발표한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기후재난 시대 유전 개발이 옳은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는 처사다. 한국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비중은 G20은커녕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극복 없이는 기후재난 대응도, 노동자운동의 전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국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것이 단지 기후정의운동 일부 인사에 국한된 경향이라고 볼 수 없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즉 제국주의 국가에는 “기생성이라는 각인”이 새겨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기생성을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생산적이거나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어렵고 힘들며 위험한 일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그래서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불법 파견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지고, 이주 돌봄노동자를 최저임금도 주지 않은 채 대거 도입하겠다는 정책이 추진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의 상층 노동자계급은 ‘내 집 마련’을 넘어 주식, 코인 금융투기에 골몰하며, 조직 노동운동은 자신의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익 대신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 이윤에 타격을 주는 진정한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무관심하다. 백여 년 전의 식민지 경험, 그리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례없는 경제발전의 경험이 기묘하게 결합한 탓에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도처(到處)에서 그 강력함을 뽐낸다. 그러나 전 지구가 기후재난으로 스러지는데 한국만 안전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과학적 사실을 말하자면 기후재난에서 한반도는 특히나 고통스러운 지역이다.) 또한 자본 이윤율이 장기침체에 빠진 시대, 이로써 제국주의 패권 경쟁이 전면화된 시대에 한국 혼자만 자본의 야만적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한반도는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협소한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대신 노동자 국제주의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세계 노동자계급 앞에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우선 당장 지구의 기후재난을 가속(加速)할 동해 유전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최소한 국제 평균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하자. 돈벌이를 위해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자본을 이제 사회가 운영·통제하자고 외치자. 최저임금도 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반노동 이주정책을 분쇄하고, 진정한 노동자 국제연대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자!2024-06-28 | 조회 2,758 -
SK 최태원 재판, 노동자 민중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사진: 연합뉴스 서울고법, “SK는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으로 성장했다”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이 최태원과 노소영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위자료 20억원 및 재산분할로 1조 3,808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태원이 보유한 SK 주식 35%를 노소영 몫으로 인정한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최태원의 SK 주식이 분할 대상 재산인지 여부였다. 최태원은 SK 지분이 최종현 전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1)이기에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2심 재판부는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태원의 아버지, 최종현 전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다고 판단했다.2) 1) 소위 ‘특유재산’.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2) "SK 주식은 혼인 기간 취득된 것이고, 상장이나 이에 따른 주식의 형성 등에 관해선 1991년경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원고 부친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한다. 이외에도 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이 돈으로 1991년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하는 등,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했다고 규정한 것이다.3) 또한, 재판부는 SK의 한국이동통신(현 SKT) 인수를 선경그룹이 노태우 정권과 유착한 결과로 규정했다. 노태우 정부가 공중전기통신사업법(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통신설비제조사를 보유한 삼성·현대·대우·LG의 통신서비스 진출을 제한했고, 그 결과 SK가 오늘날의 SK텔레콤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선경그룹이 태평양 증권을 전격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권업에 진출하기로 한 사실을 놓고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같은 반응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개인 돈으로 전체인수자금 571억원을 어떻게 마련한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11일 <동아일보>) SK 역시 그룹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재판부의 숫자계산이 잘못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요지는 액면분할을 감안하지 않아 최종현 당시의 주가 상승분이 실제의 1/10로 과소 계상되었다는 것이고, 최태원 취임 이후 주가상승분이 10배로 과대 계상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경영능력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노소영과의 분할 대상 재산을 지나치게 많이 잡았다’며 법원에 항의한 것으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최태원의 행보는 매우 희극적이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최 회장은 자수성가한 재벌 2세라는 형용모순에 빠지게 된다” - 최태원의 법률대리인이 ‘최태원은 자수성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형국이다. 고등법원은 이런 입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최 선대회장이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던 배경은 사돈 관계였던 노 관장의 부친이 대통령이었기 때문”, "그룹 경영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이로 인식해 결과적으로 성공한 경영활동과 성과를 이뤄냈다" - 6월 18일, 서울고등법원이 재차 밝힌 입장이다. 대기업집단 그 자체가 범죄자산이라면 몰수해야 한다 제법 ‘사회적 기업’ 흉내를 내온 SK그룹의 본질은 실상 ‘범죄자산’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이번 재판은 독재정권에 기생해 착취와 수탈로 자본을 축적해온 한국 자본의 추악한 역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배계급 내부의 파렴치한 이전투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자본주의 사법체계의 본질과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사성’까지 띤다. 노동자 민중은 이번 판결의 본질과 한계를 잘 안다. 사법부 판단대로 노태우 정권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결과로 오늘의 SK그룹이 만들어졌다면, 왜 그 ‘기여 인정’의 수혜자가 노소영이 되어야 하는가? 노태우의 비자금은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을 강탈해 쌓은 범죄자산이다. 그 범죄자산이 정권과의 연줄을 가진 자본가에게 흘러가 오늘날 굴지의 기간산업 사업체를 여럿 거느린 재계서열 2위의 대자본을 형성했다면, 당장 몰수되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재벌집단은 짐짓 자신을 권력에 부당하게 상납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묘사한다.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쌓은 비자금은, 군사정권과 끈끈한 동맹을 위해 대자본이 정권에 건넨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이었다. 이번 판결이 SK그룹의 성장사를 드러내듯 말이다. 노태우 정권과 자본은 19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대투쟁 이후 분출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막고자 혹독한 탄압을 퍼부었다. 1989년 현대중공업 해고자협의회에 대한 구사대 테러, 연이어 벌어진 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1989년 노동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1989년 전교조 불법화, 1991년 한진중공업 박창수 위원장 고문치사,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등, 노동자 민중 탄압에 있어 신군부와 자본은 한마음 한뜻이었을 뿐이다. 이렇듯 이번 재판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결론은 자명하다. 범죄로 만들어진 대자본, SK그룹을 몰수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지배에는 그 어떤 정당성도 없다 -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하자 이번 판결이 없더라도, 심지어 최태원에게 유리하게 나왔더라도 재벌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는 자본가들의 지배에 그 어떤 정당성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적산불하4), 즉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생산수단과 자산에 대한 매각 조치로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1949년 12월, 이승만 정부는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해 적산 매각에 나섰다.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적산불하는 1954년에 개시되어 1958년 마무리된다. 총 263,744건의 적산이 매각되었고, 해당 사업체는 우수한 생산능력을 가진 대규모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적산 매각가는 애초 책정 가격에 비해 평균 62% 수준으로 그 자체로 헐값이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물가상승률이 매년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상황에서 ‘15년 분할납부’라는 엄청난 특혜까지 자본가들에게 부여했다. 심지어 이 자금 마련조차 은행 특혜대출로 이루어졌다. 자본가들은 사실상 무상으로 당시 한국경제 1/3에서 1/2을 차지하는 기간산업을 인수한 것이다. 4) 敵産拂下, 적이 남기고 한 재산을 매각함 일제강점기 노동자 민중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산업기반이 정권과 연줄을 가진 한줌의 친일이력 자본가들에게 떨어졌고, 이후 이들은 오늘날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지배계급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국가적 특혜와 함께 일군의 산업자본가 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자손만대에 이를 이어가고자 한국사회 전체를 수탈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투쟁을 촉발한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삼성그룹 3세 승계를 위한 국민연금 동원이었음을 상기해보 자. 노동자 민중의 시각에서 보건, 저들 스스로 말하는 '공정한 시장경제'의 맥락에서 보건, 한국 지배계급은 지배체제를 유지할 최소한의 정당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음은 자명하다. 5월 30일 재판 이후 SK그룹 구조조정 본격화 소식이 들려온다. 최태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비해 ‘실탄’을 마련해야 하고, 어떤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은 최태원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고통을 뒤집어써야 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착취체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더 많은 분배를 넘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정치투쟁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 시작은, 지배계급의 존재에 그 어떤 정당성도 없음을 직시하는 것이다.2024-06-25 | 조회 2,582 -
[기고] ‘노동약자보호법’ 아닌 ‘사업주 보호법’ 만드는 윤석열 정부=5월 14일 진행된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 민생토론회 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윤석열 정부,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 지난 5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이라는 주제의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약칭 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해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법률안에는 △질병, 상해, 실업을 겪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 △노무제공자와 사업주 사이의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제정 △이를 위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 관한 법적 근거 등이 담길 예정이다. 대통령의 말 끝나기가 무섭게 이틀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민생토론회 사후브리핑에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당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양새다.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등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러한 법률과는 별개의 시혜적 법안을 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노동약자보호법 속 용어가 노동조합이 아닌 '공제회', 고용노동부/지방노동위원회가 아닌 '분쟁조정협의회', 근로계약서가 아닌 '표준계약서'인 것은 애초에 노동약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노동하는 약자’라면서 마치 사업주와 동등한 계약자인 양 취급한다. =고용노동부에서 6월 9일 발표한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도자료 내용 갈무리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약자와 노동자를 갈라치는 법 사실상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 즉 미조직 노동자들은 작은사업장/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최저임금 미지급, 임금체불, 갑질, 장시간 노동, 위험한 노동, 고용불안 등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공제회 설치를 지원 받거나, 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을 받거나, 표준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는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지원과 도움’이란 소극적이고 시혜적인 방식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 없는 방식으로는 일터가 바뀔 수 없다. 현 시스템은 ‘노동약자’를 통해 이윤을 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을 명확히 강제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 침해된다. 이 법이 제시하는 권리는 기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속되는 권리침해를 정부의 지원으로 메꾸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다. 애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프리랜서·배달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노-사에게) 굉장히 복잡한 권리·의무가 생기고 (사용자를) 규제하기 위한 처벌 조항이 들어간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복잡한 의무와 권리’ 없이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의 말은 사실상 노동약자를 방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러한 정부의 문제적인 정책은 기존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되었었던 ‘비정규직 보호법’,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과도 맥을 같이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IMF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됐으나,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빠뜨렸고, '비정규직'을 2등 노동으로 고착화시켰다.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했던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도 배달라이더 등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플랫폼 종사자'라는 제3의 지위를 부여해 기존 노동법에 못 미치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법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보호법' 또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같은 기존 노동법을 확대/보강 적용해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별도의 법을 만들어 오히려 취약한 노동을 고착화시키는 방식이다. ‘노동약자’ 보호에 필요한 것은 노동법 확대적용과 노조법 2,3조 개정이다 노동약자보호법은 언뜻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해주려는 좋은 법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다면 노동자들의 권리구제, 권리쟁취 방식은 파편화될 것이고, 취약한 노동자들은 더 취약해질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결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노조 혐오의 기조를 깔고 법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내놓은 노동약자보호법은 실질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사업주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안이다. 진정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기존 노동법을 작은사업장, 플랫폼, 특수고용 등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해 강력하게 적용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에 한 번씩 해고되도록 만들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의 사례에서 보듯,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권리가 없이는 정부의 어떤 시혜적 지원정책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는 어떤 보호법도 결국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약자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할 권리를 보장해야만, 진정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 전면적용을 통해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에 더해, 원청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 뒷받침되어야만 노동약자의 권리가 현장에서 진정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2024-06-11 | 조회 2,305 -
과거 투쟁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2024년 울산지역 민주노조에 집중되는 타임오프 탄압을 돌파하자!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오랜 침체를 거쳐온 노동자 운동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설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와 화물연대 파업, 양회동 열사의 분신에 이은 건설노동자 투쟁은 뼈아픈 패배로 귀결됐다. 노동자 파업을 연이어 진압한 윤석열 정부와 자본은 그 여세를 몰아 다음 공세를 준비했다. 2024년 상반기 윤석열 정부는 다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이른바 ‘귀족노조’에 대한 혐오 조장과 함께 △정규직 임금체계 개편 및 고용의 유연화 △주 52시간 내 1일 연장노동 한도를 깨는 노동시간 확대 △점거파업을 금지하는 파업권 무력화 △회계공시 강요와 타임오프 전임자 축소를 내세우며 공격을 예고했다. 그간 조직된 노동자 운동을 향한 공격은, 대부분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국회 여소야대 구도와 30% 초반대 낮은 지지율로 추동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큰 그림의 노동법 개악에 실패한 윤석열 정부가 뽑아 든 카드는 역대 보수정부와 마찬가지로 시행령 개악을 통한 공격이었다. 그것이 바로 회계공시 강제와 타임오프 전임자 축소 탄압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타임오프 탄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타임오프 탄압의 시작은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대한 타임오프 적용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30일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시행령은 전임자의 근무면제시간과 사용 인원, 보수(임금) 등 노동조합 활동과 개인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독소조항을 포함했다. 정부는 ‘전임자의 근무면제시간, 사용 인원, 보수 등’을 심의하는 ‘공무원·교원 근무시간 면제심의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결정하게 했다. 공무원과 교직원에 대한 타임오프 적용을 마무리하려면,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묶여있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2023년 5월 30일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이 있는 510개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업의 근로시간면제제도 운영현황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이것은 말로라도 타임오프를 반대해 온 한국노총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에 더해 6월 초 윤석열 정부가 고공농성 중인 한국노총 금속연맹 사무처장을 폭력진압하고 구속하면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서 탈퇴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이탈한 후, 윤석열 정부는 2023년 9월에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회계공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9월부터 ‘근로시간 면제제도 운영현황 실태조사’를 근거로 사업장 200곳을 선별해 표적 근로감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월부터 민주노총 사업장을 상대로 본격적인 타임오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화답한 자본가들은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임금 지급을 중단하며 고용노동부와 협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은 회계공시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고, 윤석열의 경사노위 복귀 요청에 대해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 인정을 약속받고 11월 13일 경사노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공무원과 교직원 노동조합에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노조법 시행령은 11월 28일 국무회의 의결에 이어 12월 시행에 들어갔다. 2024년 3월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 탄압 대상으로 노동조합이 있는 63개 대규모 사업장을 최종 선별했다. 대부분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대한 타임오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이 공세는 임금·단체교섭 본격화 시기에 맞추어져 노동조합 전임자와 간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타임오프 시정명령이 집중되는 울산지역 지난 2009년 12월 30일 이명박 정부가 집권 여당(한나라당) 날치기로 타임오프 악법을 통과시킨 후, 정부와 자본은 2년 동안 3,000여 개 사업장에서 노조 전임자 축소로 노조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전면 공세를 펼쳤다. 전국적으로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타임오프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는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 투쟁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시기 큰 불협화음 없이 조용하게 넘어간 곳은 울산이다. 현대자동차와 부품사 노동조합들이 노사 협의로 타임오프 전임차 축소를 둘러싼 대립을 비켜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타임오프 탄압은 이제 울산지역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울산지역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타임오프 시정명령을 집중하는 경향은 뚜렷하며, 임단협 시기 노사 간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타임오프 시정명령으로 대립하는 울산지역 사업장은 6곳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모비스울산지회, 울산현대모비스지회, 현대제철지회, 화섬식품노조 울산지부 KCC지회, LX하우시스지회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는 6월 근로감독이 시행될 경우, 7월 중 시정명령이 예상된다. 타임오프 탄압을 받는 노동조합들에는 공통의 특징이 있는데, 우리는 이로부터 윤석열 정부와 자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 중심에 있는 현대자동차의 공급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째, 현대중공업지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주노조를 건설한 지 10년을 넘지 않은 젊고 발전 가능성 있는 노동조합들이다. 셋째, 대부분 다른 지역 계열사 민주노조와 연결된 1,000명 전후의 대규모 노동조합들이다. 넷째,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들은 아직 충분한 경험을 쌓고 있지 않지만, 소속 지역지부 내에서의 활동력과 동원력, 파업의 파급력이 있어 상급단체와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을 떠받치는 중요한 사업장들이다.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에 매우 중요한 사업장들인 만큼, 자본에는 눈엣가시다. 자본의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윤석열, 김건희 사건과 채상병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윤석열은 타임오프 탄압을 성과로 포장하고 싶을 것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기자회견》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노리는 것 타임오프 시정명령이 울산지역에 집중되는 이유는 모든 노동조합이 악법에 밀려 굴복하지 않고 저지선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오프로 탄압받는 노동조합의 네 가지 공통점에 비춰볼 때,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은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 강력한 저지선을 칠 수밖에 없다. 이번 타임오프 탄압을 저지하지 못하면 두 가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규모 노동조합들의 조직력과 투쟁력, 정세 대응력이 무력화되며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다음으로,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표적으로 삼은 노동조합이 패퇴할 경우, 탄압은 울산지역 다른 노동조합으로 확대되는 것은 물론 다른 지역 노동조합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와 자본이 울산지역 노동자 운동을 대상으로 타임오프 탄압을 집중하는 진짜 목적이 아니겠는가. 타임오프는 교섭창구 단일화와 한 쌍의 악법으로써, 민주노조의 무력화와 파괴를 목표로 한다. 타임오프 탄압을 위기의식을 갖고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민주노조 활동력 위축 → 현장조직력과 투쟁력 무력화 →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 강화 → 민주노조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울산지부, 화섬식품노조 울산지부 산하 지회들이 타임오프 탄압에 맞서는 노동자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지난 5월 29일 울산노동지청 앞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전임자 문제에 대한 고용노동부 개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항의방문을 조직했다. 곧이어 타임오프 시정명령 사업장 상근간부와 교섭위원들이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을 퇴진시켜서라도 타임오프를 폐지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렇듯 공동투쟁에서 나선 울산지역 노동자들은 5월 29일 고용노동부 울산노동지청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6월 타임오프 분쇄 1만 간부 상경투쟁과 최저임금 투쟁을 거쳐 각 사업장 타임오프 교육과 선전전 등 투쟁결의를 모으고, 7월에는 임단협 시기 집중 파업을 준비 중이다.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사진: 노동과세계 노동자 공동파업으로 타임오프 탄압 분쇄하자!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타임오프 탄압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저지선을 쳤다. 그러나 타임오프 악법을 폐기할 정도의 강력한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했다.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전선은 강력하지도, 집중되지도 않았고 단위사업장과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민주노조들은 줄줄이 패퇴했다. 일부 민주노조에서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총파업을 조직했지만, 개별사업장의 힘만으로 타임오프제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과거 투쟁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2024년 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투쟁이 그렇듯 타임오프 탄압에 맞선 투쟁에서도 “흩어지면 죽고 단결하면 산다”, “각자 투쟁하면 밀리고 함께 투쟁하면 승리한다”라는 구호가 집약하는 공동투쟁은 노동자의 강력한 무기다. 울산지역 타임오프 시정명령 민주노조들이 결의한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노동자 공동투쟁”을 강고하게 유지하고 확대하자. 또한 7월 한시적인 임단협 시기집중 파업에 한정하지 않고 ‘임단협 승리와 타임오프 탄압 저지 공동총파업’으로 승리의 돌파구를 열자. 울산지역 노동자 총단결 총파업으로 타임오프 탄압을 분쇄하고, 그 기세와 열기로 노동자가 앞장서는 윤석열 퇴진의 길을 열자! 5월 29일 《타임오프 폐지! 민주노조 사수! 윤석열 퇴진 결의대회》 현수막2024-06-04 | 조회 2,132 -
기후위기가 앗아간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 최저임금 대폭인상, 물가-임금 연동제 쟁취가 기후정의다한 끼 식대 2,700원, 쪼그라든 밥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 2024년도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대학사업장 집단교섭의 화두는 ‘식대인상’이다. 청소, 주차, 경비 등 대학에 간접고용된 노동자들로 구성된 14개 노동조합은 현행 식대 월 12만원을 월 14만원으로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해 오후에 퇴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일과를 고려할 때 식대 월 12만원은 한 끼에 약 2,700원 수준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식대를 14만원으로 인상해도 한 끼에 고작 3,100원이 보장될 뿐이다. 당장 대학 학생식당이 5,000원부터 시작하는 현실. 식대 2,700원으로는 어떤 음식도 사 먹을 수 없고, 청소노동자들은 당장 도시락 반찬부터 줄여나가는 형국이다. 대학 청소노동자 조직화 초창기에 식대 문제는 핵심적인 생존권 요구였다. 2009년 고려대에서는 식대를 지급하지 않는 고려대 당국에 맞서 이른바 ‘폐지투쟁’이 전개되었다.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폐지를 수거하여 식대를 충당했던 것을 학교가 트집 잡으며 시작된 투쟁은 대학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월 2만5천원의 식대를 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2010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당시에는 청소노동자들이 한 끼 300원 수준의 식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온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2010년대 초 집단교섭 투쟁이 본격화된 이래 식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10여년 만에 다시 대학 청소노동자 투쟁의 핵심 사안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저임금·불안정노동자의 생존권 위기가 현재진형형임을 의미한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합원들의 물가폭등-식대인상 요구 피케팅. 왼쪽부터 문유례(연세대분회), 김지민(홍익대분회), 이애경(이화여대분회)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최근 주요 경제지표를 살펴보자. 5월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실질소득은 전년 동분기 대비 1.6% 감소한 반면,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 8천원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3.8% 증가했다. 급격한 물가상승을 임금 상승분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식료품 소비지출은 7.2% 증가했으며, 과일(18.7%), 채소(10.1%), 유제품(9.0%) 지출은 급증했다. 소비자의 구입빈도 및 지출비중이 높으며 가격변동에 민감한 품목에 대한 가격 추이를 가리키는 4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3.5% 상승하였다. 이 중 신선식품지수는 19.1% 상승하였는데, 신선과실 품목이 38.7%, 신선채소는 12.9% 상승하며 인상폭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날이 극심해지는 밥상물가 폭등, 생존권 위기에 대한 공감대는 캠퍼스 안팎에서 식대인상 투쟁에 대한 높은 관심과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원인은 기후플레이션 한국 노동자 민중을 고통에 빠트리는 밥상물가 폭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량가격지수1)는 2024년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연속 상승(2월 117.4, 3월 118.8, 4월 119.1)했다. 밀(소맥), 커피, 옥수수 등 주요 8개 농산물 선물 가격으로 산출하는 ‘블룸버그 농업 하위지수’는 5월 24일에 1월 24일 연고점(61.98)을 넘겨 62.32로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농산물 가격상승의 배경에는 ‘기후플레이션’이 존재한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극한 기후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1)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가격동향(95개)을 조사하여, 5개 품목군(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별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작성, 발표(2014-2016년 평균=100) 기후변화가 농산물 공급 감소로 이어진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자. 러시아·우크라이나에 걸친 흑토지대에는 5월 초에 서리가 내리며 밀 재배지가 큰 피해를 입었고, 현재는 강수량 부족이 만성화되고 있다. 같은 시기 남미 팜파스 평원에 위치한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에선 대규모의 홍수가 발생하며 밀과 대두, 옥수수 등 경작지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 농무부는 내년 브라질 밀 생산량이 올해보다 4%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7월말 미국 소맥 선물은 부셸당 전월 대비 11% 상승해 6.97달러에 거래되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곡물 핵심 생산지가 기후변화로 같은 시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식량작물 수확시기가 서로 정반대임을 이용해 계절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 신선식품을 공급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영구적 글로벌 서머타임’(PGST, Permanent Global Summertime)의 붕괴를 가리킨다. 5월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에 발생한 폭우로 침수된 경작지를 촬영한 항공사진 출처 : Wikimedia, PR Ricardo Stuckert 올리브유도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집계에 따르면 4월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1년 전보다 44.7% 상승했다. 전 세계 올리브유 절반 가까이를 공급하는 스페인이 최근 2년간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며 많은 올리브 나무가 고사했기 때문이다. 2022~2023년 올리브 생산량은 66만t으로 평균 생산량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리브 생산량 감소에 따른 타격은 국내 유통망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5월 중순 CJ제일제당, 샘표, 사조해표, 동원F&B 모두 이달 초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올리브유 제품 가격을 각각 30% 넘게 인상하여 대형마트에서는 올리브유 900ml 한 병이 2만 6천원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소매점에서 도난 사건이 계속되자 올리브유와 매대를 쇠사슬로 묶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커피, 주스 등 기호품 원가도 급등 추세다. 인스턴트커피에 주로 사용되는 로부스타 원두는 주산지 베트남의 불규칙한 날씨와 건조해진 토양으로 작년부터 작황이 나빠졌다. 베트남 로부스타 커피의 런던 선물거래소 가격은 지난달 t당 4,338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이는 1년 전 최고가의 약 두 배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 가격은 지난해 3배 이상 오른 데 이어 올해 들어서만 2배 넘게 올랐다.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60%가 서아프리카의 가나, 코트디부아르에서 생산되는데, 해당 지역에 수개월에 걸쳐 이상기후가 계속되면서 생산량이 급감한 결과다. 지난해 여름에 수확기를 앞두고 최근 30년간 평균 강수량의 2배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평균온도 36도, 최고기온 40도에 육박하는 극심한 폭염이 해당 지역을 강타한 것이다. 2월 29일, 국제코코아기구(ICCO)는 세계 코코아 생산량이 전년보다 10.9% 줄어든 449만9,000t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렌지 최대 산지인 브라질 상파울루주, 미국 플로리다주는 가뭄, 황룡병 등에 시달리며 오렌지 생산에 타격을 입었다. 브라질 오렌지 생산자 단체 ‘푼데시트루스’는 올해 브라질 오렌지 수확량이 전년보다 24% 감소해 3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렌지주스 원액 선물가격은 24일 장중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파운드당 4.76달러에 마감해 연초보다 50% 가까이 폭등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사과·배 산지를 중심으로 ‘과수화상병’이 확산하고 있는데, 과수화상병은 세균에 감염된 사과나 배나무가 화상 증세를 보이다 말라 죽는 병으로, 기온이 높을수록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감염된 나무를 뿌리째 뽑아 매몰하거나 과수원 전체를 폐쇄해야 하는 방제법상의 이유로 과수화상병 감염은 직접적인 생산량과 생산면적 축소로 이어진다. 과수화상병은 5월 13일 충주 사과 과수원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7일까지 충북·충남·경기·강원·전북의 13개 시·군 사과와 배 농가 51곳에서 발생이 확인되었으며 피해면적은 약 30㏊에 달한다. 5월 30일에는 경북 안동에서도 과수화상병 발생이 확인되었다. 올 초 겨울부터 지속된 온난한 날씨가 확산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5월 29일 서울 가락시장 가격정보를 보면, 사과 상품 10㎏ 평균값이 8만 3,976원으로 1년 전보다 155.5% 올랐고, 배 10㎏ 평균가격은 12만 14원으로 1년 전보다 278.4%나 올랐다. 5월 31일 과수화상병 발생으로 과수원 전체를 폐쇄하고 매몰 작업을 벌이는 강원 홍천군의 한 배 재배농가 출처 : 연합뉴스 전 세계적 기후플레이션은 식량자급률이 2022년 기준 49.3%에 불과한 한국경제에 매우 치명적이다. 5월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수입물가지수는 3월보다 3.9% 오르며 143.68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2022년 11월(147.92) 이후 최고치다. 기후위기는 지난 총선의 뜨거운 감자였던 ‘대파값 875원’ 소동에 앞서 이미 한국 노동자 민중의 밥상 앞으로 찾아왔다. 가공식품, 외식물가로까지 퍼져나가는 생존권 위기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과 정부가 사태를 방관하는 동안, 농산물을 원재료로 삼는 공산품과 외식가격도 줄지어 인상되었다. 한국소비자원은 정부와 함께 중점관리품목 등을 반영해 우유/라면/밀가루/달걀/설탕 등 주요 생필품 7종의 가격을 집중 감시하고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인상되지 않도록 실태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집중 감시 품목에 든 생필품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폭등해 방침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식용유(100㎖) 가격은 지난 1월 957원에서 4월 1,020원으로 6.6% 올랐다. 우유(100㎖) 가격은 1월 394원에서 4월 420원으로 6.5% 비싸졌고, 설탕(2.2%)과 밀가루(0.9%)도 올랐다. 5월 2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2024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 보고서는 올해 1분기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를 79.28로 집계했다. 이는 팬데믹 여파가 남아있던 2022년 2분기(85.56)보다 낮은 수치이다.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경기 호전과 침체를 나누는데, 올해 1분기도 어김없이 100 아래로 집계되며 ‘외식물가 정상화’라는 기대를 깨부순 것이다. 4월 외식물가 상승률을 살펴 보면 노동자의 ‘밥 먹을 권리’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식품 종류 39개 중 19개가 전체 물가 평균을 상회하고 있으며 떡볶이(5.9%), 비빔밥(5.3%), 김밥(5.3%), 햄버거(5.0%), 도시락(4.7%), 칼국수(4.2%), 냉면(4.2%) 등 대중적인 메뉴 전반이 4% 이상 상승했다. 전년보다 물가가 하락한 품목은 아예 없었다. 5월 8일 공공운수노조 최저임금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 중, 한 발언자는 “공공운수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 5,468명에게 물었더니 지출을 줄이는 항목 1위가 식료품, 의류비 등 생활비였고 2위가 외식비였다”고 발언했다. 최저임금 대폭인상, 물가-임금연동제 쟁취, 식품·유통기업 초과이윤 몰수 -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연대로 생존권 쟁취 정치투쟁을 확대하자 살인적인 기후재난, 물가폭등, 실질임금 삭감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허물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당사자거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의 피해당사국인 남반구(글로벌사우스) 민중에게 이 위기는 더더욱 피부로 체감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약 59개 국가와 지역에서 기후위기와 전쟁위기로 약 2억 8,200만 명이 심각한 식량위기(acute hunger)를 경험하고 있다. 한편, 식량의 생산과 유통을 틀어쥔 식품·유통자본은 이러한 위기를 기회삼아 전례 없는 폭리를 취한다. 세계 곡물시장의 약 80%를 장악해 사실상의 곡물 공급 통제권을 쥔 4대 곡물 대기업 ABCD(미국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번지Bunge, 카길Cargill, 그리고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LDC의 이름을 딴 용어)는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의 매출·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촉발되고 심화해온 식량위기가 이들에게는 이윤을 쓸어담을 기회인 것이다. 전 세계 곡물시장 40%를 차지하고 있는 ‘카길’의 2023년 매출은 1,770억 달러(약 245조원)로, 2021년보다 32.6% 늘었다. 2022년 카길의 대주주2) 제임스 카길, 오스틴 카길, 마리안 리브만은 지분가치 상승만으로 세계 500대 부자 명단에 등극했다. 2) 카길은 미국 내 가장 큰 비상장사 중 하나로 창업자인 카길과 맥밀런 가문의 자손 20여 명이 지분 87%를 보유하고 있다. ‘ADM’의 2023년도 영업이익은 75억 1,300만 달러로 2021년보다 25% 늘었다. ‘번지’의 2023년 영업이익은 2021년보다 44% 늘어난 48억 4,500만 달러에 달한다. ‘LDC’ 역시 2023년 영업이익으로 2021년보다 45% 증가한 101억 3천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들 4대 곡물기업의 2024년 1분기 영업이익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파인애플, 바나나 등 과일·채소류를 주로 취급하는 다국적 식품기업 Dole 역시 2023년 영업이익으로 2021년의 2배가 넘는 6억 9,417만 달러를 거두어들였다. 식품·유통자본의 폭리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의 2024년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각각 3,759억원과 49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8.7%, 14.8%씩 증가했다. 6월 중 초콜릿제품 가격인상을 예고한 롯데웰푸드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3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6% 증가했다. 3월 13일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SPC, 삼양, 오뚜기 등 19개 주요 식품기업을 소집해 "원자재 가격 상승기에 인상한 식품가격이 지속하는 걸 보고 기업의 과도한 이윤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식품가격 인상으로 폭리를 취하는 기업들을 질책하고 물가 완화를 권고했다. 그러나 식품가격 조정은 소폭 하락 수준이거나 일시적인 생색내기에 그쳤다. 반면, 대외적 불확실성, 즉 기후위기와 전쟁위기에 따른 원자재 상승을 빌미로 할당관세3) 품목·수량 확대, 부가가치세 면제 등 식품·유통자본 이윤 보장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가 이어지고 있다. 3) 수입가격이 급등한 물품 등에 대해, 일정 수량에 한정해 기본세율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제도 5월 3일 한훈 농림부 차관 주재 하에 식품기업 17개사, 외식업체 10개사가 참여한 '물가 안정을 위한 식품·외식업계 간담회' 출처 : 연합뉴스 자본이 만들어낸 기후위기가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조차 앗아가는 지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 물가-임금연동제 쟁취를 주요 요구로 삼은 생존권 쟁취 정치투쟁은 기후정의운동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덩달아 오른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지금의 기후플레이션 앞에 무용한 논리임이 드러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빌미로 기업이 상품가격을 급격히 인상하고 원재료 가격하락에도 높은 상품가격을 유지하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탐욕 인플레이션)’이 2023년 주요 경제용어로 등극한 사실은 생존권 위기의 원인이 자본의 이윤추구에 있음을 표현한다. 그런데도 자본가언론은 밥상물가, 외식물가 상승의 원인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며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생존권 요구를 매도하고 있다. 작년, 민주노총은 2024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12,210원을 요구했다. 이를 월 환산하면, 2022년 최저임금위원회의 자료 상 평균가구원 2.48명, 평균취업자 1.424명,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반영한 가구생계비 302만원의 84.4%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 결정된 2024년 최저임금은 9,860원 (월 2,060,740원)으로, 실제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가구생계비 예상치 304만원의 68%에 불과하다. 2.5%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는 저소득층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졌다. 2016년,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내건지 8년이 지난 지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요구와 함께 사회적 차원으로 물가-임금 연동제를 제기해야 한다. 명목임금을 일정히 인상해도 고물가가 지속되는 한 실질임금은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절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은 단위사업장에서 높은 임금인상을 따내기 어려운 조건이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사회적 차원의 물가-임금 연동제, 즉 임금협약에 의한 임금인상에 더해 물가가 인상되는 만큼 임금을 추가로 인상하는 임금체계가 관철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여러 국가의 노동자들이 물가-임금 연동제를 새롭게 쟁취하고 있다. 캐나다 휘슬러 대중교통 운수노조,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일반노조와 병원노조, 미국의 농기계 제조회사 존디어, 켈로그 등이 물가-임금연동제를 투쟁으로 쟁취했다. 벨기에에서는 민간부문 노동자 98%가 물가-임금 연동제를 보장받아 2022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2%까지 치솟을 때도 노동자 100만명의 평균 임금인상률이 11.59%에 달했다. 벨기에의 '임금-물가 지수'가 2023년 1월 1일 11.08%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타이어산업 노동자들은 5개월 간의 파업으로 2022년 9월 물가상승률+10%의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2023년 미국 전미자동차노조(UAW)는 9월 15일 역사상 최초로 빅3(포드, GM, 스텔란티스) 세 공장에서 동시에 파업에 돌입해 한 달간 투쟁을 전개하며 차별임금제의 상당 부분을 폐지하고 물가-임금연동제를 되찾았다.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전체 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싸운다면 국가적 차원의 물가-임금 연동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물가-임금연동제 쟁취는 노동자민중의 정당한 요구다. 물가폭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줌 착취자들의 이익을 위해 전체 노동자계급이 희생당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현 식량위기의 책임은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기후위기를 가속해온 자본에 있다.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기아와 고통을 대가로 전례 없는 폭리를 취한 식품·유통자본의 초과이윤을 몰수하고 이를 최저임금 인상과 물가-임금연동제 보장 재원으로 사용함으로써 자본의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쟁취 정치투쟁은 단지 노동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기후정의운동의 요구와 과제이기도 하다.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연대로 생존권 쟁취 정치투쟁을 확대하자.2024-06-03 | 조회 3,017 -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병원노동자들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진료거부에 돌입한 지 석 달이 넘었다. 4월부터 의대교수와 개업의들이 진료시간을 각각 주 52시간, 주40시간으로 줄이기로 한 바 있고, 5월부터는 의대교수들이 주1회 휴진으로 정부압박 수위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전공의 3, 4년차들에게 5월 20일까지를 복귀시한으로 던졌지만 돌아온 전공의 숫자는 8,800여 명 가운데 65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2월 20일 시작될 때만 해도 ‘아무리 길어져도 4월 10일 총선까지만 버티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사태는 여전히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의 40%를 차지하는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떠나고 병원 운영 파행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만이 아니다. 의료현장엔 의사 외에도 간호사를 포함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 당장 의사 부족으로 진료축소를 하면 병원노동자들의 근무조건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환자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고 있으니 여기선 병원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진짜 의료개혁, 공공의료 대책을 발표하라! 기자회견 중인 의료연대본부. (기사의 내용과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민주노총 무급휴직, 진료축소 갈수록 늘어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초기인 3월 초부터 한 달 무급휴가를 접수 받기 시작해 3월 15일엔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무급휴가도 최대 100일로 늘리더니 결국 4월엔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의사를 제외한 50살 이상, 근속 20년 이상자를 대상으로 한다. 40일간의 손실이 511억 원이라는 게 이유다. 서울아산병원이 ‘수술로 먹고사는 병원’이라 그렇다는 게 의료현장의 반응이다. 어떤 병원에선 언제까지인지도 모를 무급휴직 상태에서 누구는 알바를 하고 누구는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병원의 경우 원래 토요일 오전 진료를 하던 외래부서가 3월부터는 한 두 개 과를 빼고는 모두 토요일엔 문을 닫았다. 5월부터 주1회 교수 휴진을 하는 대신 그 외 요일에 외래예약을 더 많이 받는다. 그렇잖아도 외래진료 시간이 5분도 채 안 되는 마당에 충분한 진료시간 확보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응급실에선 경증환자는 거의 받지 않는다. 전부터 우리 병원에 다니던 환자는 거부할 수 없으니 받고, 그 외의 경증환자는 다른 2차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해서 대부분 돌려보낸다.(단적인 예로 지난 석 달 동안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경우를 본 게 몇 번 안 될 정도다. 평소엔 하루에 10~20명 정도 상처봉합을 한다.) 응급실의 변화된 모습 어떤 부서에서는 일이 줄었다며 교대근무조당 인원을 한 명씩 줄였다. 어떤 부서에서는 수간호사가 간호사들에게 가족돌봄휴가(무급)를 쓰라고 압박한다. 몇몇 병동은 아예 부서통합을 해서 문 닫은 부서의 직원들은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일한다. 병원이 4월 중순에 한 용역업체에 ‘한 달에 얼마의 지출을 줄여라’고 구조조정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 구조조정이 시행되진 않았지만 곧 누군가 잘리겠구나 걱정 속에서 일한다. 소문은 무성하다. 다음 달부터 다시 문 연다더라, 1년은 걸려야 정상화된다더라, 정상화해도 인원을 줄여서 운영한다더라, 사표 수리 안 한 전공의들을 다시 채용한다더라 운운. 우리 응급실은 환자가 예전보다 30~40%는 줄었다. 솔직히 처음 며칠은 좋았다. 경증환자를 거의 안 받으니 일이 조금 덜 힘들었다. 갑자기 근무표가 바뀌어 쉬는 날이 두어 개 더 생겼다. 그런데 4월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다른 부서로 가기 시작하더니 5월에도, 6월에도 계속 그렇게 한단다. 응급실에 진료 받으러 온 경증환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다른 병원을 안내하는 일을 맡은 간호사는 아주 죽을 맛이다. ‘당장 아파 죽겠는데 진료해 달라’, ‘내 돈 내고 내가 진료 보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냐’ 막무가내인 환자도 있다. 정부와 의사들 때문에 벌어진 사태인데 환자와 입씨름하고 욕먹고 스트레스 받고, 다른 부서로 지원 가서 일 새로 배우고 적응하고, 원치 않는 휴가를 억지로 써야 하는 건 모두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노동자 몫이다. 지난달부터 응급실에 군의관이 한 명 와 있다. 이번 달엔 공중보건의도 한 명 왔는데 특정 과의 검사동의서 받는 업무만 한다고 한다. 큰 도움은 안 된다. 응급실은 철저히 중증환자 위주로 받다 보니 그야말로 응급실다운 모습을 찾은 게 사실이다. 인턴과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직접 진료를 해서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전공의가 교수에게 전화로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받고 하는 몇 단계의 전달과정 없이 교수가 직접 응급실에 와서 환자를 대면진료하고 처방을 내는 만큼 일처리가 단순하고 빠르다. ‘저 교수 이름만 보다가 얼굴은 처음 본다. 퇴사할 때까지 한 번도 얼굴 볼 일 없을 줄 알았다’는 말이 오간다.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의 질이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제때 진료 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환자가 많다는 게 함정이다. 반면 상급병원의 진료 축소 덕분에 2차 병원엔 환자가 엄청 몰린다. 우리 병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2차 병원에 간 동료는 요즘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소연한다. 불법의료행위, 간호사는 무슨 죄? 우리 응급실 간호사 몇은 졸지에 속성교육을 받고 PA(physician assistant, 이른바 전담간호사)가 되어 의사들이 하던 진료기록 넣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부서 간호사들은 수술실로 가서 전공의 대신 수술 보조를 하는 SA(surgeon assistant)로 일한다. 원래 인턴과 전공의들이 받던 각종 검사동의서도 요즘은 다 간호사들이 받는다. 삽관, 동맥혈 채취 등 그 동안 의사업무였던 것도 이젠 간호사에게 넘어왔다. 처방을 하거나 진단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합법적인 절차와 자격을 갖춘 것이라 보기 어려운 이런 일을 간호사들이 의사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PA, SA는 현재 불법이다.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겠다고 집단행동하며 의료현장을 떠날 때마다 간호사들은 점점 더 많은 불법적인 의료행위를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 받고 있다. 2000년에 정부가 의약분업하는 대신 의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의대정원을 10% 줄인 결과 의사 수가 부족해지자 이를 메우기 위해 PA를 도입하게 되었다. 간호사들은 PA를 합법화해 달라고 오래 전부터 요구했고 그동안 의사들은 이를 극구 반대해왔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PA를 합법화해서 전공의 없이도 의료현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 못잖게 의협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20년 넘게 정부와 의사집단이 줄다리기해 온 사안인데 원만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보건의료노조는 5월 10일 국회에서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토론회를 진행했다 (기사의 내용과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의사집단행동과 노동자파업, 달라도 너무 다르다 5월 20일, 우리 병원 어떤 부서의 전공의는 100% 복귀했다지만 응급실엔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실 조직도가 그려진 게시판에서, 떠난 전공의와 인턴들의 사진이 떼어진 걸 발견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언제부터 떼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시 내일이라도 이들이 돌아온다면? 석 달 넘게 수련기간을 날려버린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내년 전문의 시험 자격을 주는 것은 정당한가? 현장 간호사 등은 대부분 그게 말이 되냐며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정부와 의협이 합의한다고 해도 수련기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전문의가 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정상화에 1년은 걸릴 거라고 이번 사태 초기부터 맘을 다잡고 길게 내다보는 노동자도 상당히 많다.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을 뻔히 알고도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이고, 의사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집단행동을 하는 통에 환자와 병원노동자들만 중간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하루하루 사태가 길어질수록 병원노동자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병원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정부가 앞장 서 필수유지업무제도를 이용해 파업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심지어 의료노동자의 50%를 필수유지업무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다. 작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국민의 힘은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사항이 무엇이건 대규모 의료공백을 일으키면서 총파업 일으키는 건 의료인의 의무와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며 정치파업, 불법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지금 의사들의 장기간 집단 업무거부에 대해선 어떤가? 의사들은 의료인의 의무와 윤리를 지키고 있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이행하고 있는가? 환자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커녕 ‘선처’, ‘대화를 통한 타협’으로 봐주기에 급급하고 있다. 노동자가 파업하면 정부와 언론은 일주일도 안 되어 손해가 얼마네,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하네, 불법파업으로 피해를 주네 운운하며 노동자파업을 마녀사냥하듯 한다. 그런데 의사들의 집단진료거부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시선이 다른가? 병원노동자는 철저히 피해자로 모든 짐을 떠안고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못잖게 병원노동자들의 노고와 어려운 처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2024-05-30 | 조회 1,887 -
[오세훈 시장 3년] #2 저출생 현상, 공공성 강화, 다양성 인정에 역행하는 서울시 정책오세훈 시장 3년, 서울시가 폭주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시내버스가 다시는 파업하지 못하게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려 한다. 서울시의회는 4월 26일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조례를 폐지한 데 이어 노인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위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장애인탈시설조례를 폐지하려 하는 등 모든 방면에서 노동자와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서울시는 어떻게 다방면에서 노동자민중을 공격하고 있을까? 그중 몇 가지 주요한 쟁점을 연재기사를 통해 정리해 보려 한다. _편집자 주 근본 원인에 다가가지 못하는 서울시 저출생 정책 한국 출산율은 2022년 0.78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한국 출생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 제정 후 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해 총 280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실질적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2022년 서울시의 출생률은 전국 최저치인 0.51명을 기록했다. 왜 이처럼 각종 정책이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정책이 일회적이거나 현금성 지원에 그치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저출생은 성차별, 고용불안을 비롯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지만, 여야 모두 일회적이거나 현금성 지원책으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 좇는다. 280조 원 쏟아붓고도 계속되는 저출생 현상 2023년 2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2006년 2조 1,445억 원을 투입한 데 이어 1차 기본계획 기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19조 8,926억 원이 투입됐다. 이어서 2차 기본계획 기간인 2011년~2015년에는 1차 계획기간의 3배가 넘는 60조 5,789조 원이 투입됐다. 3차 계획기간인 2016년부터 2020년에는 152조 8,658억 원이 투입됐고, 2021년 1년 동안만 46조 6,846억 원이 집행됐다.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총 280조 원이 투입된 것이다. 그런데도 저출생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만 있다. 이에 대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2년 12월 개최한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 회의에서 “280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그간 인구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저출산 대응과 관련 없는 사업들이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되어 있어, 저출산 예산 규모가 부정확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출생 현상의 배경이 되는 현실은 복잡다단한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대책을 주문한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또한 “일자리 정책을 저출생 대책 관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청년세대들이 실제 결혼과 출산을 고민할 시점의 상황에 대비해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로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참고: ‘15년간 280조원 쏟아붓고도 ’저출생 현상‘은 계속’, <경향신문>) 물론 이는 서울시에 국한한 정책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다. 하지만 서울시 역시 단기적인 예산 집행을 하는 한계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용‧경제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서울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이 발표한 양성평등 관련 2024년 총예산은 3조 2,000억여 원으로 2023년에 비해 약 1,000억 정도 늘었다. 하지만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사업 운영 예산, 여성 새로일하기센터 지정운영 예산, 직장맘 지원센터 운영 예산 등 2024년 여성 경제활동 촉진 예산은 613억여 원으로 2023년에 비해 16억여 원이 줄었다. 아이가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라는 데에는 많은 돌봄노동과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여성이 돌봄노동을 도맡거나 남성보다 더 많은 부분을 맡고 있으며 돌봄노동 중 경력이 단절되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론 서울시 역시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경우 관련 예산마저 삭감된 상황이다. 공공돌봄을 포기한 서울시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는 《서울특별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폐지조례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11월 1일부로 서사원은 폐쇄된다. 올해 예정되었던 운영지원비 100억 원 출연도 중단된다. 이미 5월 7일 서울시는 서사원 측에 ‘재정지원(출연) 중단 통보’ 공문을 보내왔다. 서사원은 영유아와 노인, 중증장애인 등 폭넓은 이용자에 대한 공공 돌봄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2019년 서울시 출연으로 설립되었다. 서사원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민간 돌봄서비스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 돌봄을 제공해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서울시의회는 서사원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야 한다며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추라고 해 공분을 사더니, 급기야 폐지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재정지원 중단 통보’ 공문에는 ‘자체 수익창출 및 비용절감 방안 등을 모색할 것을 권고’하며 ‘2024년 인건비 등의 필수경비 집행을 위한 출연금 교부 신청 시 서울시와 사전 협의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애초에 서사원 설립 취지는 서울시민에게 공공돌봄을 제공하는 것이지 수익창출이 아니다. 이에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오세훈 시장에게 재의권(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5월 17일에는 서울시청 동편에서 ‘서울시민의 공공돌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사수!’ 공동 결의대회를 열어 서울시민에게 공공돌봄을 제공하는 서사원이 계속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의대회 이후 일부 참가자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청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연행되기도 했다. 각 분야의 공공성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하는 서울시와 서울시장이 오히려 공공성을 요구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셈이다. 통폐합 수순 밟는 서울시성평등지원센터 2024년 서울시가 책정한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예산은 3억 5,000여 만 원으로 이는 2023년에 비해 6억 5,000여 만 원이 줄어든 금액이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를 2024년 6월까지 운영하고 이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통폐합할 예정이다. 통폐합 과정에서 서울시는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의 성소수자 지지 활동, 페미니즘 교육 활동, 여성단체 행사 소개 활동 등을 부적절하다며 문제 삼았다. 이처럼 서울시는 겉으로는 공공성 강화를 내세우지만,실질적으로는 공공성을 파괴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는 행보를 거듭할 뿐이다.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그런가 하면 서울시는 오는 6월 1일에 열릴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조직위는 2015년부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진행했다. 6월 1일 서울광장에서는 기독교계 시티에스(CTS)문화재단의 ‘청소년‧cudsus을 위한 회복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이에 조직위는 을지로2가 일대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시작하기로 했다. 여성과 성평등 분야에서, 또한 모든 방면에서 노동자와 민중을 공격하는 서울시와 서울시장 오세훈의 폭주에 맞서, 노동자 민중이 힘을 모아 나서야 한다.2024-05-21 | 조회 2,480 -
[오세훈 시장 3년] #1 노인 최저임금 제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폐지, 노조 무력화오세훈 시장 3년, 서울시가 폭주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시내버스가 다시는 파업하지 못하게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려 한다. 서울시의회는 4월 26일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조례를 폐지한 데 이어 노인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위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장애인탈시설조례를 폐지하려 하는 등 모든 방면에서 노동자와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서울시는 어떻게 다방면에서 노동자민중을 공격하고 있을까? 그중 몇가지 주요한 쟁점을 연재기사를 통해 정리해 보려 한다. “노인 최저임금 차등적용하자”, 노인들을 위해? 지난 2월 서울시의회 의원 38명이 노인을 최저임금법 적용 제외대상으로 하자는 개정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건의안 전문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고 노인들의 일자리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적용 제외의 인가 기준과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 적용하도록 하는「최저임금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의 개정을 강력히 건의한다”고 밝혔다. 고령화 사회에 더욱 늘어날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층을 더욱 값싼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건의안의 전문을 읽어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전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에 육박하고 있으며, 의학적인 발달 등으로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반면 은퇴 이후 노인들의 삶을 위한 사회적 보장 제도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며, 저출생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노인들의 삶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을 담고 있다. 딱 여기까지만 맞는 이야기이고, 그 뒤부터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쉬우려면 최저임금으로부터 노인을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해법을 제시한다. 노년알바노조(준)가 2021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청소노동자의 39%, 남성경비노동자의 53%가 최저임금에 미달했다. 겉으로는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 대기시간 등을 늘려 실질적으로는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도입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 안 그래도 이미 임금노동을 하는 다수의 노인은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임금노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노동자의 계층적 지위를 드러낸다. 노인은 은퇴하고서도 일을 해야 하는 노인과 하지 않아도 되는 노인으로 나뉜다. 연금이 ‘용돈연금’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특별히 재산을 축적했거나, 퇴직금을 빵빵하게 받았거나,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면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 4대 보험 안 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일자리를 전전했거나, 가사노동 등 비공식 경제활동에 종사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새벽 첫차를 타고 움직이는 청소노동자, 폭염 속에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경비노동자. 노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면 이런 열악한 일자리에서 더 싼값에 노인을 착취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노인인구가 점점 더 많아질 테니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이다. 생산가능인구(15세~64세)는 줄고 노년층은 늘어나 착취할 노동력이 부족해져 골머리를 앓던 자본에게는 이윤을 보전하기 위한 훌륭한 대책이다. 하지만 노인의 삶은 더욱 빈곤선으로 내몰릴 것이고,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사실이 당연해지면 지금 장애인을 향하는 시선처럼, 일하는 노인을 향한 천대와 멸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노인이라고 부양가족이 없겠는가? 노인이라고 큰 돈이 필요치 않겠는가? 차등적용이 합법화되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삶에 비관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장시간의 노동을 견디다 죽어가는 노인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보편의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여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작년 연금 수급시기를 늦추려는 연금개악에 맞서 투쟁했던 프랑스 노동자들은 “평생 일하다가 죽을 수 없다”고 외쳤다. 노인에게는 최저임금 미만이라도 좋으니 자본에게 다시 예속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그동안 사회의 지속을 위해 고생했던 노고를 인정받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자유가 필요하다. ‘용돈연금’이라 불리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자본의 연금재정 부담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K국방이라며 칭송하는 군비지출을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로 돌려 모든 노인에게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관련기사: 국민연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자본이 빼앗은 노동계급의 삶을 되찾는 계기여야 한다)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 폐지 서울시는 작년 7월부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업무 중 ‘권익옹호활동’을 제외시키더니, 올해 사업을 완전히 폐기해버렸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던 400명의 장애인 노동자와, 해당 사업을 담당하던 전담인력 50명이 모두 작년 12월 31일을 끝으로 해고됐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 58억을 전액 삭감한 서울시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서울형 시간제)’ 예산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해당 예산규모는 40억으로 이전보다 줄었기에 대상도 400명에서 250명으로 줄었을 뿐더러, 기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던 최중증장애인들이 일할 수 없는 직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원예관리 보조, 택배 보조, 세탁물 정리원, 세차원, 장애예술인’을 일자리 예시로 제시하고,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품질 검사원, 콘텐츠 모니터링, 온라인 홍보마케터”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업무는 중증장애인들이 수행하기 어렵고, 실제로 전권협(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서울지부 내 316명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중에 특화일자리로 진입한 노동자는 단 6명뿐이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담긴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 개선대책이라고 내놓은 일자리의 예시들을 보면, 모두 단순한 반복업무들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주장해온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과 결이 많이 다르다. 자본의 시각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손쉽게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노동’으로 양적으로 계량된다. 자연스럽게 얼마큼의 이윤생산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을 지녔는지를 기준으로 장애에 등급을 매기고 분류하려는 사고가 자라난다. 경증장애인에겐 단순한 노동을 시키고, 그런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은 노동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번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폐기하고 특화일자리란 이름으로 ‘단순반복업무’만을 제시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사회에 드러내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의 수많은 면을 폭로하고 개선하는 기회가 됐다. 저들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지하철 시위에 동원됐다”며 그토록 공격하고 싶어하는데, 그렇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덕에 지하철 시위를 더 큰 규모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오히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2021년 말부터 ‘시작된’(정확히 말하자면 20년도 전에 시작된) 지하철 출근길 시위는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의 권리가 얼마나 박탈되어있는지를 수면 위로 드러냈고, 수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켰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노동이 장애인들의 삶이 조용한 죽음으로 잊혀지지 않고 치열한 투쟁으로 드러나도록 만들었고, 차별로 가득찬 세상에 균열을 내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를 구성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가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하지만,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원적으로 불평등한 노자관계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해고하고” 훨씬 더 많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투쟁을 이어갈 것을 밝혔다.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장애인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에 나서자. 시내버스 한번 파업했더니, 필수공익사업 지정으로 “파업 못 하게 하자” 서울시는 4월 11일 ‘시내버스 운영 개선대책’을 발표해, 시내버스를 지하철처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파업 시에도 최소 운행률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내버스는 1997년 노조법 제정 당시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됐으나,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로 은행사업과 함께 2001년부터 제외됐던 것을, 다시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법 42조의 2항에 따르면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ㆍ운영을 정지ㆍ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로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철도, 지하철 등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있는 노동조합의 파업의 위력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파업의 본질이 노동자가 노동을 중단해 자본에게 ‘위력이 되는’ 손해를 끼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자본에게 강제하는 것인데, 필수공익사업장 제도는 노동3권의 행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며, 유의미한 파업을 불법화하는 악법이다. 서울시 기관지인 ‘내손안에 서울’은 기사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민의 이동권을 볼모로 하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주의가 노동을 사회화하였기에 모든 노동은 서로 연결돼있고, 그래서 어떤 노동의 중단이든 누군가의 일상과 생활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중단할 수 있는 (사회적) 노동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군가의 권리를 ‘볼모’로 잡지 않아야 한다는 걸 전제하는 순간 어떤 파업도 불가능하다.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는 버스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파업은 정당하며, 실질임금이 2년 연속 하락하는 지금 더욱 그러하다. 시내버스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시내버스노동자는 임금인상조차도 요구하지 말고 자본에게 조건 없이 순응하는 임금노예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버스노동자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막아내고,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필공사업장 조항을 폐지시켜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타임오프제로 무더기 부당징계 서을교통공사는 지난 3월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소속 34명의 노조간부에 대해 파면, 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타임오프제를 악용해서 “무단결근 151회, 상습적인 이석·지각 등 노조활동을 핑계로 무단결근·이탈, 지각 등의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조사과정을 들여다 보면, 당사자가 출근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서울교통공사는 “▲개인별 근태 내역 및 직원 신분증 출입기록 ▲사내 업무망 접속기록 ▲작업일지 ▲구내식당 이용 내역 등”을 통해 출근 기록을 파악했다. 타임오프를 사용한 당사자에게 이러한 근무사실 증명을 요구했는데, 지하철에서 출퇴근을 태그하지 않은 경우나 구내식당 이용내역을 제출하지 못한 경우 무단결근으로 처리했다.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구내식당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은 경우 출근했음에도 입증하지 못하면 무단결근이 되는 것이다. 사내업무망 또한 공용PC를 5~6명이 같이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로그인 기록이 부재하다고 결근을 확인할 수 없다. 이렇듯 출근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당하게 무단결근으로 처리된 것이 많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입장이다. 노사가 합의하에 단체협약·근무환경·인사제도 등 실무를 논의한 경우도 무단결근으로 본 사례가 있다. 주목할 점은 2010년 7월 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10년 동안 노사가 합의하에 진행해온 타임오프 사용방식을 이제서야 문제삼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11월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로시간면제를 인원한도인 32명을 10배 초과하는 311명이 사용했고, 전체 시간도 면제시간 한도인 3만 800시간보다 1만 8천여 시간을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노사합의를 거쳐 진행된 것임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해 노조활동의 권리를 축소시키라는 신호를 회사에 보내고 있다. 노조전임자의 활동의 자유는 노동자가 오랫동안 투쟁해 쟁취한 권리다. 노조전임자를 통해 노동조합은 여전히 아주 소수지만, 일상적인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노동자 스스로를 조직하는 데 전념할 수 있는 자신의 일부를 얻게 된다. 백 번 양보해 만약 노조전임자의 관료화나 부패의 문제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노동조합이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노동자 스스로 풀어갈 문제이다. 작년부터 노동부는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을 통해 노골적으로 노동자가 그동안 쌓아올린 ‘조직할 권리’의 표현인 노조전임자의 권리를 공격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벌어지는 타임오프 위반을 핑계로 한 무더기 부당징계는 그 한 가지 사례이다. 부당한 징계를 철회시키고,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투쟁할 권리를 지켜내자!2024-05-09 | 조회 2,338 -
22대 총선, 왜 청년은 정권심판론에 반응하지 않았는가청년층, 낮은 투표율과 높은 무당층 비율이 드러내는 것 2024년 22대 총선이 끝났다. 야당에 비례정당 포함 175석이라는 압승을 안기면서다. 정부와 여당은 ‘주 69시간제’, 민주노조에 대한 ‘반 카르텔 투쟁’,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 ‘최저임금 230원 인상’ 등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를 쏟아내왔고, 이를 심판하려는 대중의 열망도 뜨거웠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7.0%로 1992년 14대 총선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청년층 투표율은 낮았다. 아직 연령대별 투표율 집계가 나오지 않았으나, 매우 저조한 청년층 사전투표율에서 드러나듯, 청년층 투표율은 저조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가에 회자했던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라는 대자보 제목이 무색하게도, 청년 대중이 고른 대답은 투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창 달아올랐던 총선 분위기 가운데서도, 많은 2030 유권자들은 선거장에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즉, 투표한 청년 중 다수는 정권 심판론을 지지했으나, 애초 정권 심판론을 비롯한 총선 담론 자체에 냉소하며 투표하지 않은 청년도 다수다. 30대 이하 유권자수 비중은 32%이나 사전투표자 중 30대 이하의 비중은 24%에 불과했다. 출처: 슬로우뉴스 상황을 보자. 4월 4일 공개된 한국갤럽 3월 4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8~29세 유권자 중 38%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었다. 같은 연령대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인 27%, 국민의힘 25%보다 훨씬 높다. 30대 유권자로 범위를 넓혀도 무당층 다수 경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대 중 29%가 그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았다. 이 또한 양당 지지도보다 10%가량 높은 수치였다. 4050의 무당층 비율이 10%를 겨우 웃돌고 6070의 무당층 비율은 6-7%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체 무당층의 70%에 달하는 비율이 청년이라는 점은 유독 눈에 띈다.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갤럽을 통해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전국 유권자를 조사한 결과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20대 응답자는 50.3%에 불과했다. 4년 전 총선 당시 ‘적극적 투표’에 응답한 20대 응답자 비율 74.1%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30대 유권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4년 전에는 82.2%의 응답자가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는 겨우 68.8%의 응답자만 같은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수치는 결국 동 여론조사에서 응답자가 밝힌 가장 큰 더불어민주당 지지 이유 ‘정권 심판을 위해서’(63.7%)와 국민의힘 지지 이유 ‘국정안정을 위해서’(46%)가 청년 대중을 흔들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 선거 반복되는 공허한 심판론에 청년 대중은 충분히 지쳤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청년 대중은 과거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처럼 이전 정부를 ‘심판’하겠다 나선 정권에 표를 실어주었던 당사자였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20·30대 여성 지지율은 각각 47.6%, 56.9%로 타 세대보다 월등히 높았고, 20대 대선의 윤석열 후보의 20·30대 남성 지지율 역시 58%, 46%로 상당히 높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건넨 열렬한 지지의 결과는 어땠는가? 자칭 타칭 촛불 정부로 불린 문재인 정부 재임 중에도 생명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진보적 법안들은 통과되지 못했고, 그런 문재인 정부 심판을 외치며 당선된 윤석열 정부는 각종 사회적 참사를 유발해왔다. 위협받는 생존권에 투표용지를 들어도 청년 대중의 삶에는 일절 변화가 없었다. 그 결과 청년층 다수는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고정된 지지 정당 없이 ‘현 정권’을 번갈아가며 심판할 뿐이다. 그간 청년의 탈정치화와 냉소주의에 대한 비판은 손쉽게 쏟아져왔다. 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는 지난 3월 10일 당의 20대 지지율이 유독 낮은 까닭을 묻는 자리에서 “조국혁신당뿐 아니라 정치 자체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발언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9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연령층의 정치 무관심 비율은 77%에 달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현재의 20대, 3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투표소로 향하지 않았다는 진단은 선후관계가 바뀌어있다. 투표소로 향했으나 바뀌지 않았던 것이고, 바뀌지 않으니 관심 또한 없어진 것이다. 청년은 정치를 버린 적이 없다. 다만 한국 자본주의 정치가 먼저 청년을 버렸다. 세분된 억압과 착취로 청년 대중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겪는 지금. 청년 대중이 맞이한 위기의 종류와 총선에서 내놓은 정당들의 공약을 돌이켜보고, 비판하고자 한다. 선거 일주일 전 기준, 청년 무당층 비율 추이. 사진 아시아경제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N잡러’라니 지난 3월 17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월평균 청년층 취업자는 389만 9천 명이다. 언론은 ‘역대 최고 고용률’이라며 연일 청년 고용 증가를 보도했다. 389만이라는 숫자는 얼핏 보기에 분명 낙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대 최고 청년 고용률’에는 함정이 숨겨졌다. 청년 인구 감소로 2018년에 대비해 전체 취업자가 5,000명 줄었음에도 개중 단순노무직 등 불안정노동자 비율은 약 2만 명이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포장·운반·청소 등 대부분 단순노무직이 플랫폼 업체에 의해 외주화된 오늘날, 이와 같은 비율의 증가는 다수 청년이 비정규직, 특수고용·플랫폼 일자리로 첫 노동을 시작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에 나온 2000년대 초반 청년층이 ‘88세대’가 될 것이라는 진단으로부터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청년 노동자에 대한 억압은 갈수록 세분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 억눌린 청년을 대변하는 정당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10대 총선 슬로건 중 하나로 ‘청년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걸었지만 실상 세부 방안은 △출산 가구 주택 지원 △미래세대 문화생활 지원 △청년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 △학자금/주거비 지원으로, 극히 일부의 경제적 부담 경감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총선 공약집을 통해 내건 청년 공약 가운데 그나마 노동과 관계있는 부분은 △인턴 기간이 부당하게 길어져 채용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정확한 근무기간 명기 및 무분별한 인턴기간 연장 등 금지에 불과했다. 나머지 공약으로 △해외연수 기회 확대 △친환경 차 구입 시 신혼부부 특별공제 등이 있기는 했지만, 청년 노동자 중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비율이 늘어나는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힘은 주4일제 도입 및 장시간 압축노동 근절에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과 플랫폼노동 중간착취 근절은 공약집 어디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10대 공약 중에는 아예 ‘청년’, ‘노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세부 항목에 들어가서야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 플랫폼노동 최소보수 도입, 중간착취 근절로 비정규직·특고·플랫폼 노동자 등 차별 해소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보호 제도화 등은 결국 특고·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선심성 보호조치에 불과하며, △간접고용노동자 보호 패키지 입법 제도화 등 또한 원하청 이중착취 확대라는 현실에 대한 인정에 불과하다. 대부분 정책이 지원금 보장이나 상담센터 운영에 그친다는 점도 문제다.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은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나 ‘노동자 대표 참여 보장’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비정규직 철폐와 플랫폼 노동자 직고용, 노조법 2·3조의 온전한 개정,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삶의 권리를 논해야 할 시점에 ‘억압을 조금 덜어주겠다’고 외쳐봐야 청년 노동자를 구원할 수 없다. 그 밖에도 녹색정의당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대상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플랫폼에서 일하는 N잡러를 위한 플랫폼 수수료 5% 상한제 도입 등이 눈에 띄었지만. 노동 외주화로 인한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이른바 ‘파트타임’ 노동의 심화 앞에 놓인 청년 노동자에게 ‘N잡러’ 운운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양새였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무리한 야간 노동을 지속하던 20대 노동자가 사망한 지 겨우 4년이 지났다. 해당 노동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을 일했지만 서류상으로 여전히 일용직이었다. 1일 단위 고용계약을 다시 맺는 기형적인 형태의 비정규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비단 쿠팡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 술집, 물류, 배달 등 초단시간 노동은 숱한 직종에서 청년 노동자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에서조차 배제되는 초단시간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것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지만, 노동의 ‘파트타임’화를 저지할 대안은 수수료 상한이 아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당 수수료제는 폐지하고 원청에 의한 직고용, 건수에 관계없는 전면 월급제가 필요하다. 녹색정의당이 일하는 청년들의 삶을 말하고자 한다면, 목표는 ‘N잡러’ 보호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철폐를 통한 ‘1인 1잡’ 시대여야 했다. 치솟는 청년 여성 자살률, ‘인구부’라니 20대 여성 자살률은 2019년 16.5명, 2020년 19.4명, 2021년 20.2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30∼34세 여성 자살률 역시 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30대 여성 자살률도 마찬가지로 2018년 18.6명에서 2019년 19.5명, 2020년 19.4명, 2021년 21.6명으로 올랐다. 이 같은 청년 여성 자살 급증의 원인으로는 ‘여성의 노동시장 주변화’가 주 원인으로 지목됐다. 생계 위기가 심화하면서 결혼이나 출산보다는 노동 중심의 생애 계획을 꾸리는 여성이 늘었는데, 여성노동자의 인식과 요구가 바뀐 데에 비해 고용주 측은 여전히 ‘가장이 아닌’ 생계보조자 여성 노동자만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학회 학술지 ‘한국여성학’ 호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위기심화와 청년여성 자살률' 논문을 발표한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민아 교수는 사회적 관심도 대책도 없는 여성노동의 현실을 ‘조용한 학살’로 진단하고 성인지적 일자리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렇지만 관련 상황은 꽤나 처참하다. 국민의힘 총선 공약집의 ‘여성’ 파트는 고작 단면 두 장, 양면으로 한 장짜리였다. 그마저도 노동 주체로서의 여성은 거의 소실됐다. 국민의힘은 여성을 위한 공약으로 △생애주기별 여성 3대 질환 비용 지원 △미혼 여성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을 들었으나, 이 두 공약 모두 여성을 인구 재생산의 도구로서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국민의힘이 앞서 분류한 여성의 ‘생애주기’라는 기준조차 가임기, 월경기, 폐경기로 나뉘었다. 여성을 철저히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객체로 취급하는 시선이 총선 공약집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여성노동자들에게 차별 없는 평등한 노동환경 조성 △여성청년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관행 근절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구조적 변화 주도 등을 내걸었으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공약 중 일부였던 ‘비동의 간음죄’를 비판하며 “억울한 사람만 대거 생기는” 법이라 언급한 뒤 바로 해당 공약을 정정하면서 퇴행적인 민주당의 본질을 드러냈다. 비동의 간음죄란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바꾸는 내용을 핵심 기조로 하며, 국제적으로 가시화된 ‘NO MEANS NO’ 구호가 의미하듯 젠더폭력 피해자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다. 이토록 중요한 법안 공약조차 “실무적 착오”라는 터무니없는 변명과 함께 삭제된 일은 민주당표 ‘여성 친화’가 그저 선거철 유세에 불과함을 입증했다. 지난 대선에서 수많은 언론은 20대 여성층을 이재명의 핵심 지지층으로 언급했다. 20대 대선 당시 지상파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 58.0%가 이재명을 뽑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20대 청년 여성의 지지가 민주당에게 보답받은 적 있었나? 그 선택 또한 “착오”에 불과하지는 않았던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5일 경향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 한다”면서도 “젠더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저 역시 관심이 있다. 당이 아직 완비된 여성 정책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당연히 추후 합당한 정책을 만들 것이다”라 밝힌 것 또한 2030 청년 여성을 외면하려는 조국혁신당의 노골적인 행보였다. 조국혁신당은 2일 4050세대 지원 공약을 발표하며 “정치권이 지금껏 청년, 여성, 아동 등을 대상으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4050세대는 늘 소외돼 왔다”는 4050 소외론을 부상시켰다. ‘아직 완비되지 않았다’는 표현은 핑계일 뿐이다. 조국혁신당 10대 공약 중 네 번째는 △담대한 저출생 정책, 성평등·돌봄 정책 추진이지만, 조국혁신당이 담대한” 성평등·돌봄 정책을 만들 날은 정당 해산의 날까지 요원해 보인다. 조국혁신당이 주장하는 ‘제7공화국’ 어디에도 청년,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후보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민주노총 구제법’이라고 칭했다 허울뿐인 공약, 그런데도 투표가 전부라니 지금의 2030은 구조적 문제를 민감하게 감각하는 세대다. 청소년기 – 청년기에 걸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처럼 대중이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와 체제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나날이 치솟는 취업난 그래프와 물가상승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은 과거 학교에서 가르쳤던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의 꿈을 처절하게 박살냈다. 오늘날 청년 대중은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 앞에 놓였다. 그리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선거에 출마한 어떤 정당도 제대로 진단해내지 못했다. 비단 이번 총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에도’의 이야기다. 총선은 끝났지만 청년 대중은 여전히 사회적 죽음 앞에 몰려있다. 착취체제는 모든 청년 대중을 조금씩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에도’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달라야 한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영구히 반복되는 보수 여야 간 권력 주고받기를 끝내야 한다. 청년 대중은 삶을 개선할 수 없는 정치, 기실 '정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체제 재생산 과정으로서의 선거에서 객체 역할을 강요받는다. 물론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과 하등 무관한 보수여야의 '청년정치'에 그 어떤 쓸모도 없다는 점 역시 지적해야겠다. 지금은 정권 견제냐 정권 지지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공허한 안티테제의 시대를 깨부숴야 할 때다.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노동 현장에서의 젠더 불평등 해결 △플랫폼/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직고용 등의 의제로 스스로 주먹을 쥐자. 국회의원 누구의 지지자가 아니라, 직접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투표를 통한 기간제 구원이 아닌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그 길에 앞장서, 6월 최저임금 투쟁에서부터 청년 대중의 힘을 보여주자. 투쟁으로부터, 삶을 바꾸는 정치세력화, 끝없는 고통과 자기학대를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정치세력화의 토대를 새롭게 만들자.2024-05-05 | 조회 3,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