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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 드러낸 지배계급의 비상함, 그 이상으로 비상한 노동자 투쟁이 필요하다사진: 변주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 전후로 한국 노동자의 삶이 나뉘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전 노동자 민중의 삶은 자본과 정부의 친자본 반동정책에 공격받으며 일부는 생존권 투쟁의 주먹을 쥐고, 일부는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 고단해했다. 그런데 3일 밤 총을 든 군인이 헬기와 장갑차를 타고 국회에 나타났다. 항쟁이 시작됐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범죄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 국무총리 등 여당 주요 인사, 군대, 국정원, 방첩사, 경찰 등이 손발을 맞췄다. 실패한 비상계엄에 모든 세력이 다음 권력을 향해 앞다투어 움직이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를 부르며 12월 7일 국회 앞에만 100만 인파가 모였다. 적은 수지만 노동자의 파업이 시작됐다. 전국에서 매일 윤석열을 처단하려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포고령 2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비상계엄이 지속되었다면 포고령 2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12월 3일 ‘파업, 태업, 집회 금지’를 담은 포고령 1호에 이어 발표될 포고령 2호의 내용은 노조 해산, 단협 해지, 노조간부 구속이었을 것임을, 투쟁하는 노동자는 알고 있다. 포고령 2호가 내려지기 전 비상계엄은 해지되었지만, 윤석열은 아직도 대통령이다. 그리고 윤석열의 친자본 정책은 진행형이다. 보수우익세력은 여전히 살아있는 지배권력 실세다! 2024년에 맞았을 1979년 노동지옥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해지되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은 반국가세력으로 처단 대상이 되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민주노조는 하루아침에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으로, 1979년 유신 시절의 무권리 상태로 추락했을 것이다. 단체협약은 해지되고, 노동조합 자체가 불법화되고, 자본은 이때다 싶어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고 노동자를 노예처럼 쥐어짰을 것이다. 총자본은 윤석열이 내준 선물에 찬사를 보내며 온갖 반노동 조치를 쏟아내고 완벽한 노동지옥을 만들려 신나게 날뛰었을 것이다. 내란범, 지배권력 실세는 살아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내란범죄는 야만적 폭거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그동안 지배권력이 노동자 민중을 대하던 모습과 생판 다른 조치인가? 윤석열의 내란은 자본가계급의 무제한적 착취를 전면 관철하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비상계엄 후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는데도, 설문조사 결과는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무려 24%로 보수우익은 단단히 결집해있음을 드러낸다. 선출된 권력이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건, 보수우익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친자본 반노동 정책을 윤석열과 손잡고 추진해놓고, 민주투사인 양 차기 권력을 향해 달리고, 똑같이 민영화와 외주화, 인력감축을 추진해왔으면서도 철도파업 현장을 찾는 등 대놓고 노동자의 손을 빌리려 한다. 노동자가 명운을 걸자 민주노조 건설 후 가장 비상한 정세를 마주한 노동자가 명운을 걸어야 한다. 비상계엄 폭거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1979년으로 돌리려던 자본가계급의 반동성을 똑똑히 인식하자. 쇠퇴기 자본주의,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 민중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서라도 체제를 유지하고자 탐욕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회가, 민주당이, 야당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민주당과 국힘이 번갈아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증명되지 않았는가. 비상계엄이 드러낸 지배계급의 비상함, 그 이상으로 비상하고 비장한 노동자 투쟁이 절실하다. 후세와 대의를 위한 파업과 항쟁으로 12월 4일부터 청년과 청소년들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노동자가 나서서 세상을 바꿔왔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이번에도 싸워달라’고! ‘파업을 지지한다’고! 이 목소리가 말하듯 윤석열 퇴진을 내건 공공부문과 금속노조의 파업에 많은 노동자 민중이 환호했다. 노동자 투쟁을 확대할 때다. 경쟁과 입시에 허덕이고 비정규직, 최저임금, 실업에 시달리고, 빈약한 사회복지,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이 차별에 시달리고, 늙어서도 폐지를 줍거나 존엄을 위해 자살을 택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민주’를 자임하는 정치인이나 윤석열을 포함해 자본가계급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검·경·군·국정원, 사법부 등 자본가정부의 기구들이 바꿔주지 않는다. 그 사실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세력, 계급투쟁이라는 정의로 세상을 움직이는 세력,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해 온전히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노동자계급뿐이다. 민주노조 노동자가 앞장서서 윤석열을 확실히 몰아내고, 비상계엄을 도모한 모든 세력을 청산하자. 윤석열 없는 세상에 노동자 민중의 권리와 평등이 새로 움트도록 파업과 항쟁으로 끝까지 투쟁하자!2024-12-11 | 조회 2,297 -
단 하루도 윤석열 체제 아래 살 수 없다! 바로 지금, 두려움 없는 정치총파업으로 윤석열 정권을 타도하자!사진: 한겨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일차 저지됐지만, 단죄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윤석열과 함께 비상계엄이라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심의하고도 이를 대중에 알리지 않은 윤석열의 하수인들은 물론, 12월 7일 밤 탄핵소추안 표결 보이콧으로 이를 사후 승인한 여당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공범이다. 윤석열을 단 하루도 대통령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국회 밖 수백만 함성으로 결집되고 있으나, 보수양당은 8년 전 박근혜 퇴진 정국과 다름없는 해법들을 내놓고 있다. 코너에 내몰린 국민의힘은 ‘질서 있는 퇴진’ 카드를 꺼내 들었다. 탄핵소추안 가결에 실패한 민주당은 윤석열 탄핵을 일주일 단위로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질서있는 퇴진’, 즉 한동훈-한덕수 체제는 윤석열 체제의 연장일 뿐이고, 탄핵은 한덕수 대행체제와 헌재에 투쟁의 명운을 맡기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12‧3 계엄령 사태를 둘러싼 보수양당의 해법은 윤석열에게 국면을 전환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에서, 또한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려는 보수양당 사이의 쟁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 민중은 국민의힘과 하등 다르지 않은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 정권을 세우고자 윤석열 퇴진 투쟁을 벌인 것이 아니다. 노조탄압, 불평등 심화 조치, 소수자 혐오로 점철된 ‘윤석열 체제’를 과연 제도정치가 타파할 수 있을까? 윤석열 체제를 끝낼 힘은 노동자 민중의 중단 없는 투쟁으로부터 나온다. 국회 안에서 ‘질서 있는 퇴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저들에 의존할 게 아니라, ‘새로운 질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투쟁을 광장과 일터에서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 총파업과 민중항쟁으로, 윤석열과 윤석열 체제를 즉각 타도해야 한다. 그날 총부리는 누구를 향했는가 윤석열 정권은 국회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적 권리를 총칼로 짓밟고자 했다. “야당에 경고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령 선포, 뒤이은 계엄사령부의 포고문 1호에는 ‘처단’이란 살벌한 단어가 두 차례나 등장했다. 특히 모두가 분노한 대목은 계엄사 포고문이 적시한 구체적 조치들이다. 포고문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정치활동과 더불어 집회, 결사, 시위 등 민주적 기본권 행사 일체를 금지했다. 특별히 노동자들의 파업 또는 태업, 집회를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로 못 박아 엄금한다고 밝혔다. 또한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과 “선량한 일반 국민”을 구분하며 특정 집단과 그 구성원을 계엄법으로 처단하겠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는 압도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자본가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파업, 태업, 집회를 금지하는 비상계엄이 노동 탄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계엄령이 선포된 12월 3일 밤, 현대자동차 부품사인 대륙금속에서는 임단협 교섭이 결렬돼 노동조합(금속노조울산지부 대륙금속지회)의 파업이 전개 중이었다. 계엄령 선포 20여분이 지난 시각, 사측은 계엄사 포고문을 근거로 ‘파업 및 관련 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함께 ‘업무복귀’를 명했다. 사측이 노동조합에 보낸 "계엄령에 따른 파업 및 집회 중단과 업무 복귀 협조 요청" 공문 (출처: 금속노조 대륙금속지회) 심지어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계엄령 해제를 아쉬워하는 사측 관리자들의 목소리까지 표출됐다. 대표적으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에 재직하는 익명의 사용자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두고 “(이 기회에) 종북세력을 척결”했어야 한다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노조 할 권리 보장과 노조혐오 중단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계엄으로 척결하고, 노동3권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권은 다른 정치 세력이나 인사에 대한 탄압은 물론,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모든 운동을 적대하고 탄압해왔다. 안전과 적정운임을 위한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탄압을 시작으로,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절규하며 고질적인 저임금,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를 위해 원청 자본의 책임을 촉구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소모품처럼 투입되는 건설노동자의 삶을 거부하며 싸워온 건설노조 등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윤석열 정권은 전방위적 노조탄압을 자행해왔다. 저들은 직을 걸고 체제 수호에 나섰다 12월 5일, 이상민(전 행정안전부장관)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며 명명백백한 노동자 민중을 “처단”하겠다는 내란을 정당화했다. 스스럼없이 윤석열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이상민의 자백은, 윤석열이 자행한 노동탄압을 오히려 정상적인 정치행위로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생존권 쟁취와 불안정노동 철폐, 일터의 안전을 위해 싸워 온 노동자들에게, 윤석열 정권은 존재 자체가 상시적 계엄이나 다름없었다. 2년 전 여름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 투입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노동자들을 시시각각 압박한 상황을 떠올려 보자. 양회동 열사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간 정권의 ‘건폭몰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건설노동자들은 노조탄압 이후 무너진 일과 삶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노동자들은 “윤석열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외치며 싸워왔다. 걸림돌이 되는 세력을 일거에 처단하려던 윤석열 일당의 계획은 일단 수포로 돌아갔지만, 사태를 반전하고자 “향후 국정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겠다고 발표했고, 이어 한동훈-한덕수가 ‘질서있는 퇴진’을 발표했다. 노동자 민중이 즉각 타도해야 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무슨 국정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이는 붕괴 위기에 처한 윤석열 정권의 통치기반을 복구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저들은 직(職)을 걸고 나섰는데, 정작 대다수 현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이 국면을 우리는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이대로 살 수 없는 지금 우리, 싸우지 않는다면 윤석열 퇴진을 둘러싼 여야 간 줄다리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교착 국면을 뚫어 내기 위해, 노동운동이 보다 과감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쟁의권을 보유한 사업장은 물론, 쟁의권이 없는 사업장도 존재 자체가 불법인 정권에 맞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정치파업 결행을 망설인다면, 윤석열 심판을 위한 다시 없을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갈지도 모른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가장 혹독하게 탄압한 노동자들이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투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12월 4일, 윤석열의 업무개시명령과 손배 가압류 위협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해 온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와 민주주의를 모두 일몰시킨 정권” 타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화물연대와 마찬가지로 “노조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탄압에 내몰렸던 건설노동자도 윤석열 퇴진 투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노조할 권리를 빼앗겼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학교 등지에서도 자신의 현안 요구와 윤석열 퇴진 투쟁을 적극적으로 결합해 나갈 때다. 12월 4일, 화물연대는 "윤석열 정권 일몰" 투쟁을 선언했다 지금 맞서 싸워야 빼앗긴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투쟁에 대한 지지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어지는 두터운 지지를 발판 삼아, 억눌린 분노를 밑불 삼아 민주노조운동이 앞장서자. 비상한 각오와 자신감으로 주저 없이 일어서자.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정치총파업을 아래로부터 만들어 나가자!2024-12-09 | 조회 2,271 -
진보정치 몰락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제2012.4.11 총선 국민승리를 위한 야권연대 조인식 사진: 연합뉴스 [편집자 주] “위 안건에 대한 논의는 종결함.” 9월 26일 민주노총 12차 중집은 총선 평가안도, 총선방침 위반 간부 징계도 결정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음에도, 민주노총 내 논의는 어떤 조치도 없이 종결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정을 살피며 방향을 다시 세울 때다. 이 글은 지난 10월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치캠프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온라인 신문 게재를 위해 분량을 일부 축소했다. 1. 노동자 정치세력화 파탄, 2024년과 2012년 1) 2024년 총선 2023년 9월 14일, 민주노총 77차 임시대의원대회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 파산 이후 12년 만에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또한 2024년 선거방침을 의결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의 합의를 통해 2026년까지 연합정당을 건설하며, 이를 위해 2024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추진한다, 또한 전·현직 간부의 민주당 지지를 금지한다는 취지다. 2023년 2월 정기대의원대회와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 제출된 정치방침은 “제 민주세력 등 진보 정치세력들의 결집된 힘”을 포괄한다는 문구로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한 민주대연합 추진 의사를 담고 있었으나, 논쟁 과정에서 민주대연합 추진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문구는 삭제되었다. 민주노총 정치·총선방침이 민주대연합론을 포함하지 않은 점, 보수양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와 금지하고 전·현직 간부의 보수양당 지지 행위를 금지한 점은 정치방침을 둘러싼 논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 거부를 명시한 정치·선거방침은 2023년 10월 전주 보궐선거에 출마한 진보당 강성희 후보의 ‘고맙습니다 민주당’ 선거운동과 당선 후 민주당과의 연대의사 표명에 이어, 2월 13일 진보당의 더불어민주연합 합류로 결국 휴짓조각이 되었다.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종덕 전 사무총장은 비례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아직까지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진보당의 민주당 연대는 그야말로 노골적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연합은 위성정당이 아닌 연합정당’이라는 논리까지 동원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으며, 후보경선 과정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 후보에 대한 사퇴처리 등 민주당 연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을 서둘러 제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진보당은 총 64명의 후보를 사퇴시켰고,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2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1석조차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확보했다는 점에서, 진보당 자신의 힘으로 얻은 의석은 없다. 정의당은 2024년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했으나, 이는 민주당과의 연대 거부가 아니다. 정의당은 중앙당 차원의 지역구 후보단일화 협상을 시도했고, 2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른 비례의석 축소를 이유로 중앙당 차원의 협상을 중단하면서도 지역구 차원의 협의를 존중한다고 결정했다. 즉, 비례위성정당 참여라는 노골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민주당과 독립적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아니다. 정의당의 과거를 볼 때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특히, 2016년 총선 국면 정의당의 야권연대는 노골적이고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2016년 총선 야권연대, 2017년 대선 야권연대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이 정의당의 계획이었다. 정의당은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의 공통점은 민생을 살리겠다는 것”이라며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연합’ 건설을 제안했다. 이는 2016년 총선뿐 아니라 2017년 대선을 거쳐 연립정부 구성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 전략적 야권연대체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총선의 처음부터 끝까지 야권연대에 굴욕적으로 매달렸다. 더민주당은 정의당을 동등한 연대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대중에게 정의당은 더민주당과 유사한 세력으로 비쳤다. … 정의당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에 야권연대를 제안하며 밝힌 연대의 근거 역시, 경제강령의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분이었으며 실제로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라는 3자의 강령상에 질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백종성, 「20대 총선이 드러낸 것」, 2016.6. <레프트대구> 11호 그간 민주당에 의존적인 정의당의 행보는 시기별로 그 정도만 달랐을 뿐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이런 행보에 대한 반성과 함께 민주당으로부터의 이념적-실천적 독립을 지향하는 세력을 확대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어떤 내용과 형태건 ‘제3지대론’이 세력을 확대했을 뿐이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를 하면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내걸어왔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정의당은 2019년 ‘조국사태’와 2022년 ‘검수완박’ 문제에 있어 문재인 정부에 영합하는 태도를 보이며 ‘민주당 2중대’로서 스스로를 위치지었고, 이는 민주당 주도 반윤석열 전선을 지배적 흐름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2019년 ‘조국사태’는 2016-17 박근혜정부 퇴진 촛불투쟁의 마지막 여진마저 사라지게 만들었고, 정의당은 이 중요한 국면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에 찬성하며 민주당에 휩쓸렸다. 결국 보수양당 사이에서 ‘좀 더 왼쪽의 민주당’으로 자신을 위치 지어온 결과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는 단지 정책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당의 구성과 계급적 토대의 문제다. 민주당 방계세력을 포함해 창당한 정의당의 근원적 한계에 더해, 정의당의 노동자계급 토대와 결합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왔다. 그 공백을 실체도 없는 상층 기획으로서의 ‘청년정치’, 보수정당을 흉내내며 ‘우리도 안보와 군사문제를 잘 다룰 수 있음’을 내보이려는, 정의당에 ‘수권 능력’이 있음을 호소하려는 전문가 정치가 차지했다.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을 벗어나야 한다’는 정의당의 숙원이 현실이 된 결과, ‘보수세력과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이 난무해도 제재조차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2) 2012년 총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그 순환의 종결은 길게 보면 ‘위성정당 사태’가 발발한 2024년 총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짧게 보자면 2010년 6·27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선거방침을 결정한 데 이어, 2011년 민주노동당과 민주당계 정치세력이 통합해 통합진보당이 창당하고, 이어 민주노총 김영훈 집행부 주도로 ‘반MB 민주대연합’ 선거방침을 결정함으로써 야권연대를 전면화한 2012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2월 8일 5차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2012년 총선방침과 총선방침 이행방안은 아래와 같다. 민주노총은 ‘새누리당 심판’을 명분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를 결정했다. 2010년부터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당 대표와 선거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배타적 지지방침’은 자기붕괴했다. 반MB 민주대연합에 따라,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주도한 민주당 인사들을 지지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2010년 5월 11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후보 중에는 과거 국민참여당이었던 이광철 통합진보당 후보가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법을 만든 세력을 지지 후보로 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현장에서 다 같이 투표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 제대로 된 후보도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현장에서 신뢰받는 후보가 아니라 오직 권력욕에 찌든 사람들이 나와서 진보를 떠들고 있는 상태다.” “야권연대 후보 중에 우리 지역인 서울 금천은 이목희 후보다. 그는 기륭전자 투쟁할 때 걸림돌이었고, 비정규직법 만들어놓고 잘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에서 비정규직 가짜 친구들 10인으로 선정했는데, 그는 민주노총도 동의했다며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과 2024년 민주대연합 모두 그에 앞서 ‘진보대통합’이 먼저 추진되었다. 즉, 반이명박·반윤석열 민주대연합은 전략, 진보대통합은 민주대연합을 떠받치는 전술에 불과했다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 《2017년 집권을 위하여》는 '반신자유주의 세력' - '반제민족주의 세력' - '민주-평화통일 세력‘의 대연합을 집권 과제로서 명시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과 ‘야권연대’는 일견 모순이나, 결국 동전의 양면이었던 셈이다. 이는 단지 노동운동 다수파 그룹의 기획이 그러하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는 양날개론에 근거한 사민주의 노동자 정당, 그 자체의 한계였다. 2. 민주노동당은 왜 통합진보당으로 귀결했는가 1) 민주노총 주도 민주노동당 건설 민주노동당을 돌아보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1996-97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자 독자정치세력화에 나선 결과로 만들어졌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총파업의 힘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극복을 목표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건 일정히 반영한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거듭된 보수야당과의 선거연대에 이은 민주당 계열 분파와의 합당을 통한 통합진보당 창당이었다(‘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앞서 살펴보았듯,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야권연대가 노골화했고(반MB 야권연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부터 중앙정부까지 ‘공동정부 구성’이 음양으로 운위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에 이은 분당을 재통합하는 과정과 맞물렸는데, 이를 종합하면 <진보대통합-야권연대-정권교체와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이었다. ‘비판적 지지’를 넘어 ‘민주당과의 공동집권’까지 운위되는 상황에서, 2010년경까지 유지되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민주대연합에 이어 소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스스로 폐기되었다. 이후 선거철이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집단 입당원서를 들고 민주당에 투항해도 징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왔다.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통해 ‘진보정당’의 국민정당화를, 또한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추기고 보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과의 연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가 민주노동당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노선의 결과라는 점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몰계급적 개량주의-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의 결과다.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 지향은 민주노동당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김창현 당시 울산시지부장은 한국사회의 변혁은 엄격한 단계론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결코 사회주의가 쟁점이 되는 단계가 아니라 … 이 단계에서 필요한 이념노선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이다. 이때 진보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소자산계급, 나아가서는 자본가계급의 상당부분까지도 포괄하는 최소강령적 내용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계급연합적 성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김윤철,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 논쟁' - 이념과 조직노선을 중심으로」, 2004, <역사비평> 68호 의회주의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한, 노선을 바꾸지 않고 노동자계급과 함께 우직하게 전진하는 민주노동당은 형용모순에 불과하다. 이는 사민주의의 역사적 숙명이다. “그들은 계급에 대한 강조와 국민에 대한 호소 사이에서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 그들은 한탄하고 후회하며 그들의 전략을 바꾼다. 그리고 또 다시 한탄하고 후회한다.” - 아담 쉐보르스키,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민주의 정당은, 선거에서 수권능력을 내보이며 보수정당과 경쟁한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도 1표,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도 1표, 중산층과 소자본가도 1표를 행사한다. 집권이 일차 목적인 한, 사민주의 정당에게 투쟁하는 노동자는 더 넓은 확장을 가로막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에 따라 점차 계급투쟁의 자리를 산업평화가, 사회적 합의주의가 차지한다. 특히 계급투쟁이 침체할 경우, 사민주의 정당의 우경화는 급격한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2) 양날개론은 무엇을 결과했는가 출범 당시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주도로 의회주의 진보정당을 만들어 집권하겠다는 사민주의 노선에 근거했는데, 그 구체적 전략으로서 ‘양날개론’은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의회주의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으로 정식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음 결과를 야기했다. 첫째, 양날개론은 현장에서 정치를 추방한다. 역할분담론에 따라 현장은 경제의 공간, 의회는 정치의 공간이 된다. 노동현장의 과제는 임단협의 수행, 재정과 투표의 조직, 의회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력 동원으로 한정된다. 곧, 현장은 의회정당을 위해 돈과 사람을 대는 저수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필연적으로 현장정치활동은 빈다. 둘째, 공동화된 현장의 계급투쟁과 계급정치를 조합주의, 타협주의가 채운다. 양날개론이 의회진출을 현장정치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로 상정하는 순간, 현장이야 어떻게 되건 현장의 돈과 표를 집중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그 적나라한 예가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정에서 ‘진보정치’가 작동한 방식이다. 이 ‘중재’ 이면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이념’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2012년 5월 29일 <프레시안>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 장본인인 이경훈 현대차 지부장은 통합진보당 총선후보 경선에 참여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서는 승리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은 이경훈의 경선 참여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음은 물론, 이를 ‘상향식 공천’이라고 포장하기까지 했다. 또 하나의 적나라한 사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전북버스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사례다. 통합진보당의 민주연립정부(인민전선정부) 구성을 위한 야권연대는 사실상 ‘파업파괴 행위’로 작용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지방정부가 자행하는 전북버스노동자 파업 탄압에 대해 규탄성명조차 발행하지 않았다.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떨까는 전주를 보면 된다. 버스 노동자들이 86일째 추위와 폭력 속에 파업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다. 법원이 합법 파업임을 인정했음에도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불법 파업으로 매도하며 자본가 편에 서 왔다. 선거연합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한다는 민주노동당이 중앙당 차원의 논평 하나 없다는 건 선거연합의 정체를 보여준다.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한다면 전주의 상황은 전국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들이 집권했던 10년이 그랬듯 말이다. - 김규항, 「난감한 풍경」, 2011년 3월 2일 <한겨레> 셋째, 배타적 지지방침, 즉 강제 단결이다. 산별노조-단일정당 모델에 근거해 현장의 정치적 역할을 돈과 표로 한정하면, 현장은 각 당의 노선차와 정세에 대한 각 당의 입장차를 알 필요도, 자기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즉, 현장의 무관심에 근거한 동원적 단결의 유도가 바로 배타적 지지방침이다. ‘아, 잘 모르겠으니까 하나로 만들어와!’, 물론 이는 가장 본능적인 정서다. 이러저러한 민주노총 설문조사에서 ‘단일 진보정당 건설’이 늘상 압도적인 요구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동이 현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라면, 정치세력은 이런 정서를 강제 단결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생적 정서와 싸워야 한다. 3) 민주노동당 강령과 이념의 문제 (1) 당의 주체 – 계급연합 (2)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 자본주의 개선 (3) 강령 비판 ○ 계급연합정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계급연합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일정히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는 임금노동자만 입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안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민주적 계획경제, 수단으로서의 계급투쟁, 당의 중심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방문해 “민주노동당과 중소기업이 동지적 관계를 가지자”고 말했다. 이는 자본가들과 동지적 관계를 가지자는 발언인만큼 당내외 논란을 빚었는데, 사실 민주노동당 강령상 문제 없는 발언이었던 셈이다. ○ 민주적 시장통제론 위 당들은 모두 ‘시장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를 대안으로 놓는데, 이는 매우 모호한 지향이다.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당연히 시장의 존속을 의미하며, 노동력 시장 역시 전제한다. 노동력이 여전히 사고 팔리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사후적 통제, 즉 분배 개선일 뿐이다. 결국 위 강령들이 내비치는 것은 자본과의 공조를 통한 생산성 확대, 이를 통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복지국가 전망이나, 강령들에 신자유주의 이후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몰락에 대한 평가는 없다.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물질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령적 지향은 시간이 갈수록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조치’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 계급투쟁과 대안체제의 연계 부재 또한, 위 강령들에는 시장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물론 강령적 지향의 작동 원리를 모두 명시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핵심은 계급투쟁과 결합한 대안체제 건설 전망이 드러나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정당이 강령적 지향을 현실화하는 경로와 수단은 계급투쟁이다. 강령적 지향과 계급투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양자의 연결고리가 불분명할 경우 강령적 지향은 대안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모델링이 되거나, 체제내적 정책대안에 그칠 뿐이다. 이 문제는 진보정당 강령 제반에 걸쳐있다. 결국 민주노동당 강령이건, 분당한 진보신당 강령이건, 재통합한 통합진보당 강령이건 모두 ‘세상을 바꿀 수단으로서의 계급투쟁’은 드러나 있지 않다. 결국, 전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집권’해야 하는 것이다. 계급투쟁과 강령적 지향의 유기적 연관 부재는 의회주의와 대리주의로 이어진다. ○ 중소기업 주도 경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대안론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에 대한 대안은 ‘재벌해체와 중소기업, 혹은 전문기업 주도 경제’가 아니라 ‘재벌과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불공정 거래, 혹은 부등가 교환이 벌어진다고 해서 중소기업 주도 경제가 더 민주적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자본으로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는 필연이다. 2012년 대선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으로 “진정한 주주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재벌해체론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런 주장은 기간산업을 지배하는 권력을 ‘총수일가’에서 ‘시장’으로 옮길 뿐이다. 또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대안적 소유형태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다. 각국에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확대된 맥락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 해체’의 고통에 분노하는 대중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대응이었다.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 본격화와 함께 ‘고용대책’ 일환으로 국가의 지원 아래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확대되었다. 즉, 사회적경제 확대의 토대는 만성적 실업과 비정규·불안정노동 확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계급투쟁이다. 이렇듯, 사회적 경제는 만성적 실업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가린다. 결국 위 제반 강령은 ‘사민주의 강령’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1918년 제정되어 1995년 토니 블레어에 의해 폐기되기 전까지 근 80년간 유지된 영국노동당 「당헌 4조」는 다음과 같다. “육체노동자와 두뇌노동자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가장 공정한 배분은 생산·분배·교환수단의 공동소유, 그리고 민중이 산업과 서비스를 운영하고 통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영국노동자조차 ‘생산수단의 공공소유’를 강령적 목표로 근 80여 년간 천명해왔다. 이에 비추어본다면, 민주노동당 이후 한국 진보정당들이 체제 대안으로 꼽아온 ‘중소기업 중심경제’, ‘사회적 경제’, ‘주주자본주의’ 등은 사회주의는 물론 사민주의 지향에조차 한참 미달하는 ‘사회적 자유주의’ 강령에 가깝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반공주의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정당의 이념이 아니다. 3. 전면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사민주의의 쇠퇴 1) 자본주의 위기, 개량주의에는 개량이 없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약진했다. 극우파가 확보한 의석은 ‘유럽보수개혁당(ECR)’ 83석, ‘정체성과 민주주의(ID)’ 58석, 최초로 유럽의회에 진출한 독일대안당(AfD) 15석, 헝가리 피데스(Fidesz) 11석 도합 167석으로 유럽의회 전체 720석 중 23%를 점했다. 극우파는 프랑스(국민연합), 이탈리아(이탈리아형제당), 헝가리(피데스), 오스트리아(자유당) 등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고, 독일(독일대안당), 네덜란드(자유당)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유럽의회 정당 이념과 각국 소속 정당 득표율 의석수 유럽국민당 (EPP) 중도우파 (독일 기민·기사당, 프랑스 공화당 등) 26.25% 189 (+13) 사회민주진보동맹 (S&D) 중도좌파 (각국 사민당, 이탈리아 민주당 등) 18.89% 136 (-3) 리뉴 유럽 (Renew Europe) 자유주의 우파 (프랑스 르네상스당, 독일 자민당 등) 10.28% 74 (-28) 유럽보수개혁당 (ECR) 강경보수-극우 (이탈리아형제당, 폴란드 법과정의당, 독일 자유보수개혁당 등) 11.53% 83 (+14) 정체성과 민주주의 (ID) 극우 (프랑스 국민연합,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8.06% 58 (+9) 녹색당-유럽자유동맹 (Greens/EFA) 생태주의 진보 (각국 녹색당 등) 7.08% 51 (-20) 유럽의회 좌파 (The Left) 좌파 (독일 좌파당, 불복프랑스, 시리자, 포데모스 등) 5.42% 39 (+2) 무소속 6.25% 45 기타 (유럽의회정당 미확정 당선) 독일대안당, 헝가리 피데스(오르반 총리 소속 여당) 등 6.25% 45 이런 상황은 각국 사민주의-자유주의 정당의 실패와 연동되어 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좌우가 지분을 지켜냈으나, 주요국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민주의-자유주의 정치세력 몰락은 분명한 양상이다. 프랑스 사회당 올랑드 정부의 몰락, 유럽의회 선거로 드러난 마크롱 정부의 위기,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최근 튀링겐과 작센 주의회 선거 참패로 다시 확인된 독일 사민당 숄츠 정부의 위기 등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 2000년 유럽연합 15개국 중 10개국에서 사민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2024년 현재 유럽연합 27개국 중 사민당이 집권한 국가는 연립정부 포함 5개국에 불과하다(영국을 더하면 6개국). 신자유주의 본격화 이후 사민당은 이미 사회적 자유주의로 퇴행한 상황이었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고 긴축을 수용하며 자유주의 정당과의 변별점은 보다 희미해졌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잉여의 분배와 이를 통한 산업평화를 가능케 했던 안정적 경제성장이라는 조건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유럽 사민주의는 나날이 쇠퇴했다. 사민주의 우경화,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것이 극우파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거치며 유럽 극우파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마리 르펜의 국민전선은 애초 ‘감세’와 ‘작은 국가’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당 대표를 맡은 2011년 이후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은 보호주의,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주의, 사회안전망 옹호로 방향을 전환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원래 자유시장주의자들과 나치 출신 인사들을 포함했던 이 정당은, 소위 ‘복지 국수주의’, 즉 복지혜택을 자국민에 제한해야 한다는 노선을 수용한다. ‘독일을위한대안’은 유로화와 남유럽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중산층 보수정당으로 출발했지만, 2017년 의회 진출 당시 ‘독일인을 위한’ 사회보장을 주장하는 우익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화했다. 2018년 스웨덴 선거에서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은, 사민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웨덴 복지국가의 진정한 수호자라고 주장할 정도다. 물론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그 구성상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 탐욕스러운 유럽자본가들과 계급투쟁에 나서자’고 선동할 정당이 아니다. 복지 쇼비니즘은 ‘야만적인 불법이민자들이 유럽 복지국가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인종주의 선동이며, 이는 보편적 빈곤확대로 이어질 뿐이다. 문제는 이런 선동이 발호할 토양을 제공한 것이 사민주의의 우경화라는 것이다. 오늘날 극우는 성정치 측면에서도 진화했다. 마린 르펜과 조르자 맬로니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친 여성’을 적극적으로 앞세우기도 한다. 독일을위한대안 공동대표이자 연방의회대표인 알리체 바이델은 여성이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이는 일종의 우익 정체성 정치인 셈인데, 마찬가지로 이민자 혐오와 연동된다. ‘야만적인 이민자들이 유럽여성을 공격한다.’ 유럽 극우파 확대 상황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합의주의 정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계급투쟁의 정치, 노동자계급 일부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페미니즘-퀴어해방 정치가 우리의 정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국인 적격자에게만 복지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유럽 극우파의 ‘복지 쇼비니즘’을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건설노조 다수 지역지부가 ‘내국인 우선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유럽 노동자 민중은 지속되는 러-우 전쟁, 실질임금 삭감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2023년 유럽 평균 실질임금은 전년도보다 0.7% 감소했다. 독일(-0.9%)과 프랑스(-0.6%), 이탈리아(-2.6%) 등 유럽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 속에서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몰락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극우는 고통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정치 상황은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 시리자의 실패가 드러내는 것 - ‘혁명’의 길과 ‘개량’의 갈림길은 구분된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한때 사민주의 쇠퇴의 공백을 채운 다른 한 축은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급진 좌파정당들이었다. 시리자는 사회민주주의보다 왼쪽의 이념을 걸고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정당이었다. 시리자는 남유럽 재정위기 국면,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가 강요하는 연금삭감 등 긴축안에 맞선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급부상해 2015년 1월 집권했으나, 압도적으로 ‘긴축 반대’를 결정한 7월 국민투표 이후 단 3일 만에 굴욕적 긴축안에 굴복하며 트로이카의 긴축안 집행자로 전락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잠시 시리자의 이론적 토대를 살펴보자. 시리자의 당 정첵연구소 이름이 ‘니코스 풀란차스 연구소’다. 당 연구소에 그 이름이 걸릴 정도로 시리자 노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유로코뮤니즘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와 4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LCR) 주요 이론가였던 앙리 웨버는 ‘국가’에 대한 관점을 두고 아래와 같이 논쟁을 벌인다. 오래된 논쟁이지만, 여전히 국가권력에 대한 태도에 있어 시사하는 점이 많다. 니코스 풀란차스: 그람시도 10월 혁명의 근본적 골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앙리 웨버: 그렇다. 니코스 풀란차스: 그람시가 진지전으로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진지전은 국가의 강한 성채를 민중권력의 골조로 둘러싸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같다. 그람시에게 국가는 ‘강한 성채’다. 당신은 그 성채를 공격하든지(기동전), 성채를 포위하는 것이다(진지전). 그러나 결국 같은 이야기다. 그람시 저작 어디에도 국가기구 특정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내부투쟁과 연관된 파열의 개념은 없다. 그런 개념은 그람시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히 국가의 발전으로 인해, 즉 국가의 힘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 모든 영역이 통합된 현실로 인해 … 파열은 국가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의 약점이다. 앙리 웨버: 대화의 난점은 어떤 파열인가에 있다. 파열의 본질은 무엇이며 정도는 어디까지인가? 위기가 터지기 이전, 혹은 위기 도중에 국가 내부 진지들이 균열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부차적 진지들이다. 권력의 실체가 집중된 가장 중요한 국가기구는 혁명의 편으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혁명적 대중운동이 국가장치의 핵심 부문을 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 예를 들면 관료 다수를 – 당신은 실제로 국가가 중립적일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당신은 국가기구와 그 지도적 인물들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풀란차스는 위기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가 내부에서 파열할 가능성을 논하며 혁명과 개량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한다. 앙리 웨버의 정당한 비판처럼, 이는 국가가 중립적일 수 있다는 관점을 내포한다. 국가를 ‘사물이 아닌 계급관계의 응축’이라고 규정하며, 이행의 경로로 혁명적 대중운동, 혹은 평의회 민주주의와 의회의 결합을 제안하는 풀란차스의 주장은 통상적 사민주의보다 진보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이중권력 상태의 영구적 지속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에 따라 국가기구 일부가 균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웨버의 비판처럼, 국가의 중핵은 그 혁명적 개조를 용납하지 않는다. 풀란차스의 주장은 결국 혁명 없이 이행이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국가의 중립성이라는 오도된 관점으로 귀결한다. 실제로 시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리자는 ‘그리스와 유럽에서 21세기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걸고 남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 급격히 부상했으나, 자신을 지지한 대중을 배신하고 긴축의 집행자가 되었다. 시리자의 몰락은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몰락 경로와 전혀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급투쟁의 발전 전망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시리자의 굴복이 남긴 상처는 더 컸다. 명백히 드러났듯, 긴축의 중단은 열강의 대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시리자는 트로이카와의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힘에 호소했어야 한다. 또한, 유럽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하며 트로이카의 악랄한 강요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어야 했다. 그 힘과 함께 ‘유로존 탈퇴’라는 도약을 감행하지 않고, '긴축의 거부’는 불가능했다. 시리자가 부상하던 당시, ‘혁명과 개량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았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시리자의 몰락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데 있어 중요하다. 4.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 -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전투적 노동운동, 급진적 사회운동의 만남을 향하여 1)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정치 세력화를 위해, 민주노총을 전 계급적 투쟁기관으로 세워야 한다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계급투쟁, 국가와 자본에 맞선 정치투쟁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런 주장에 대해, ‘열심히 싸우다 보면 정치세력이 된다는 말이냐’라는 반문, ‘전진이 주장하는 정치세력화는 어차피 비제도적인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니 선거의 사례를 살펴보자. ‘계급투표’가 나타난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6년 총선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래 노골화한 야권연대와 소위 통진당 사태에 이은 배타적 지지방침의 붕괴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2015년경 이후에야 재개될 수 있었고, 이는 총파업 총궐기 투쟁의 성과에 기반했다. 2016년 2월 4일,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노동개악세력 심판을 위한 총선대응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이와 함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12대 요구를 바탕으로 ‘노동자·농민·빈민 살리기, 박근혜정권심판 2016 총선공동투쟁본부(총선공투본)’를 제안했으며, 총선공투본에는 30여개의 정당과 단체가 집결했다. 배타적 지지방침 이후 이렇다 할 정치-총선방침과 관련 논의가 부재하던 당시, 총선 국면 제 단체와 정당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총궐기 투쟁과 최저임금1만원운동, 노조 할 권리 등 전 계급적 투쟁과제를 제시하며 싸워온 민주노총의 실천적 권위가 있었다. 총선공투본은 정의당의 노골적 야권연대를 제어하지 않은 한계를 노출했으나, 총파업 총궐기 투쟁의 성과를 선거공간에서 이어가며 정치·총선방침을 재정립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노동개악 저지투쟁은 계급투표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밀집지구인 창원 성산 노회찬, 울산 북구 윤종오, 동구 김종훈 당선이 그 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상흔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울산 두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했다는 사실은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총궐기 투쟁이 계급투표로 이어졌음을 드러낸다. 이런 경험에서 드러나듯 노동자계급은 국가와 자본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정치세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과 뗄 수 없는 과제다. 민주노총을 계급적으로 재구축하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생존권과 기본권 요구를 전면에 건 계급투쟁 확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0인 이상 정규직 사업장 노동자가 100원을 받을 때,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는 44.1원을 받는다. 거대한 규모의 특수고용노동자가 통계에서 제외됨에 따라, 실제 격차는 통계보다 훨씬 크다. 2022년 기준으로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소위 ‘비임금노동자’ 규모는 850만 명에 달한다. 거대한 불안정노동자가 노동법 밖에서, 최저임금제도 밖에서 노동하고 있다.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는, 이 노동자들을 정치운동과 함께 조직하고,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과 권리상 구조적 격차에 더해, 실질임금의 지속적 하락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상반기 1인당 명목임금 상승률은 2.4%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2.8% 보다 낮아 실질임금은 0.4% 하락했다. 2022년 0.2% 하락과 2023년 1.1% 하락에 이어, 올해까지 실질임금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 실질임금 하락이 3년째 이어지는 것은 IMF 위기와 서브프라임 위기 국면 당시에도 없었던 일이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2.2% 감소,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0.8% 감소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이 더 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반격은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생존권과 기본권 쟁취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최저임금투쟁을 비롯,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확대하는 투쟁, 국가와 자본에 맞선 생존권쟁취 계급투쟁을 확대하는 것은 그 진전이 더딜지라도 현 정세에서 필수적이다. 2) 지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념과 주체, 경로를 명확히 할 때다 –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론에 대하여 의회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많은 동지들이 동의한다.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 역시 ‘의회주의 정당을 만들자’고 하지 않으며, 대신 ‘직접정치’, ‘광장정치’를 언명했다. 일견 의회주의에 대당하는 방향으로 보이지만, 막상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직접정치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후보와 의원이 되는 정치, 혹은 기층 조합원이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는 정치인가? 광장정치는 대규모 집회로 국가와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인가? 만약 직접정치와 광장정치의 의미가 그러하다면, 민주노동당의 정치도 직접정치와 광장정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회주의는 언명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7년, 2022년, 2024년 모두 민주노총 주도 통합정당 건설 구상이 제시되었다. 그간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반성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은 결국 선거를 겨냥해, 또한 선거를 경유해 통합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통합의 목적은 무엇보다 의석 확대다. 그러나 전 계급적 정치투쟁을 정치세력화의 주동력으로 놓지 않는 한, 그간 정치세력화의 오류를 재생산할 뿐이다. 민주노총 주도로 단일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그 당의 지향과 정치활동은 현존 정치세력들의 산술평균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이후 ‘정치’의 공간은 의회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노동조합의 정치적 역할은 지역구 후보 조정과 지지표명, 세액공제 모금, 투표 조직 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군가 ‘양날개론이 옳다!’고 힘주어 외치지 않더라도,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양날개론은 여전히 유일하게 가능한 정치세력화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이런 현실을 지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정치 세력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정치투쟁’, 곧 전 계급적 투쟁이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잘 조직하다 보면 정치세력이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목적의식적으로 건설할 노동자당의 목적은, 의석 확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을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주의·개량주의·대리주의를 지양한 정치세력화, 양날개론을 실천적으로 지양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상은 어떤 것일까. 대안적 정치-선거방침의 예를 상상해보자.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2024년 윤석열 퇴진 민주노총 정치총파업’으로 제시되는 정치세력화, 선거방침이 ‘현장과 지역에서 정치총파업을 조직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다’인 것이 하등 어색하지 않은, 그런 종류의 정치세력화일 것이다. 2009년 쌍용차 파업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국가권력의 탄압에 조응하는 노동자정당의 ‘정치’는 고작 의원단 기자회견 같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 양날개론을 지양하고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나선 노동자당이라면, ‘당원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에서 연대파업을 안건으로 대의원대회 소집에 나선다’는 긴급당대회 결의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양날개론을 지양한 민주노총이라면, 스스로의 정치파업 결의와 함께 모든 진보정당에 함께 이를 조직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의회주의, 대리주의, 개량주의를 극복하는 정치세력화는 결국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정치, 노동현장과 지역에서 투쟁을 조직하는 정치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정치세력화 하나?’라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위기심화 정세다. 물론 우리는 위기가 저절로 투쟁 확대로 이어지지 않음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면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투쟁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구심을 형성해 가야한다는 것, 또한 ‘우리 아니면 안 된다’라는 좁은 태도에서 벗어나, 또한 ‘투쟁하다 보면 된다’는 대기주의적 자세에서 벗어나 넓은 자세로 목적의식적 공동투쟁을 조직할 때라는 것이다. 3) 제국주의 열강투쟁 전면화, 진영론을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념으로 세우자 다음으로, 이념의 중요성을 보자.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하등 어색할 것 없는 정세, 전면화하는 위기와 제국주의 열강 투쟁의 시대다. 그 반영 중 하나가 운동진영 내 진영론 확산이다. 지금, 운동진영 한편에서는 미국 주도 세계질서 불가피론(소위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이 운위되는가 하면, 북중러 블록을 모종의 반제-사회주의-민주기지로 여기는 진영론도 있다. 제국주의 블록 간 투쟁이 전면화하는 지금, 한 블록의 존재와 행위를 정의로운 것으로 대중 앞에 해석하고 제시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앙상한 진영론으로 만든다. 당장 핵 보유를 평화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착적이다. 이런 주장은 극우파 주장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원수가 ‘핵 기반 한미동맹’을 운위하고,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새롭지도 않을 만큼 일상화하는 지금에도 한국 대중은 반제반전투쟁에,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냉소적이다. 이런 상황은 이념에 근거한 대중적 정치투쟁의 부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절실한 필요를 드러낸다. 이념에 근거한 정치세력화의 과정은, 바로 이런 현실과의 진지한 대결 과정이다. 오도된 진영론을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4)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 그 오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치활동에 나서자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부르주아에게 내맡기지 말고, 노동자계급이 당면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한다고, 모든 억압에 앞장서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레닌은 말했다. 그 주장처럼, 노동자계급의 모든 억압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그 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야한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는 바로 그 과정과 함께 형성된다. 사회주의 운동을,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인민의 호민관으로 세우려는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투쟁,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자기 과제로 세우기 위한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은 라클라우나 무페를 비롯한 급진민주주의 좌익포퓰리즘 이론가들의 ‘등가적 연대’ 노선, 혹은 포데모스식 정치노선과 판이하다. 사회주의 노동자 투쟁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계급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노조운동, 여성-저임금노동자-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노조운동, 국가와 자본이 만든 기후위기에 맞서는 노조운동,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서는 노조운동을 세워야 한다. 이는 계급 전체를 조직하는 과정의 일부다. 5) 위기 심화, 정세에 조응해 현장분회운동 확대를 모색하자 노동의 공간이 곧 투쟁의 공간이고, 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간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주요 노선이었던 현장분회(세포)의 경우, 단지 구획하는 것으로 분회운동이 확대는커녕 유지조차 되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배워왔다. “전전(戰前)의 러시아에서는 유럽에서의 제2인터내셔널 시기 전체를 특징지었던 거대한 노동자 조직들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당이 노동계급의 모든 결정적 이해들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이론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조직과 투쟁의 실제적 정언명령이었다. 공장과 가두의 세포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노조의 투쟁에서 그리고 짜리즘의 타도를 위한 정치투쟁 모두에서 대중들을 이끌었다. 반면 서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의 노조조직과 정치조직 간의 분할이 더욱 심화되었다. 노조 진영에서는 개량주의자들과 평화주의적 경향이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었다 ― 또는, 환언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하였다. … 대중기관들이 노조활동에 국한하지 말고 자본주의와 그 정치 체제에 대한 전체 투쟁의 일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확실히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왜냐하면 우리는 파시스트 국가의 반동적 세력뿐만 아니라 노조 내의 개량주의자들의 반동적 세력과도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람시, <당의 조직적 기반> (1925.8.15.) 사회주의 정치운동이 조직하고자 하는 상당수 일터에는 이미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이 있다. 사업장 현안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결정에 따라 집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 활동가조직에서 활동하며 해당 공간을 이끌고 조직하고자 노력한다. 노조-현장조직 외부에서 추상적 선전활동에 그치지 않고자 한다면,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의 결정과 질서를 존중하며 내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주요 난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노동조합과 활동가조직이 제반 투쟁현안을 결정하는 상황이기에, 분회가 현장투쟁을 매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분회가 일상적 현장투쟁 조직기능을 포괄하고자 할 경우 분회는 활동가 조직과 경합하게 되며, 이는 양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현장조직은 활동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대중을 모아 일상 투쟁을 조직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공개 정치운동은 통상적 현장투쟁보다 더 의식적인 싸움을 제기하는 것,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산업, 나아가 전체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현안을 해설하고 과제를 제시하며, 연대를 추동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도 이는 활동가 조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능력과 준비를 요할 수밖에 없다. 분할된 노동계급의 상황상, 주변의 냉대를 견디는 강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분회의 구성과 확대는 분회만의 몫이 결코 아니다. 또한, 현장분회의 조직구성 역시, 노동자의 존재-노동조건에 따른 구축시도가 행해져야 한다. 네트워크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산업현장분회, 서비스-플랫폼노동자들의 경우 지역현장분회 등을 구축해야 현장정치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조건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분회 구성과 활동의 가능성을 진단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현 정세를 빼놓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와 함께, 현 정세는 전 계급적 생존권 쟁취투쟁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간극을 상대적으로 좁히고 있다. 파산과 산업재편에 대응하는 투쟁,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투쟁의 경우, 투쟁의 정당성에 관한 정치적 자신감 자체가 생존권 투쟁의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생존권쟁취 정치투쟁을 제기하며 현장정치활동의 공간과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강령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득해 낼 조직적 실천에 착수해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노동자 정당’의 가능성은 실물화할 것이다. 6) 당면 과제, 윤석열 정권 퇴진 노동자 정치총파업을 조직하자 정세적 인화물질은 가득하나 대중투쟁은 부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윤석열의 24번의 거부권 행사가 드러내듯, 국회 내 지루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고, 이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대응이 민주당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윤석열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있음에도 정세의 발전은 지체되고 있다. 돌아보자. 민주노총은 2015년 총파업-총궐기 운동으로 2016-2017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전 박근혜 퇴진투쟁을 본격화했다. 2016년 10월 말 경, 철도노동자들은 한 달 이상 정권에 맞선 파업을 전개하고 있기도 했다. 조직노동자들이 총파업·총궐기로 투쟁구심을 형성해왔고, 이 구심과 미조직 대중의 자연스러운 융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이후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광장의 대중이 가장 많이 외친 ‘박근혜는 퇴진하라!’ 다음으로 많이 외친 구호가 ‘재벌도 공범이다!’였다는 점 역시 노동자계급운동이 주체적 대응으로 만든 성과였다. 야당은 광장으로부터 국회로 주도권을 회수하고자 했다. 2016년 11월 21일,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원내대표 성명을 통해 철도파업 철회와 법률대응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철도파업의 승리가 총파업의 핵심목표라는 점에서, 이는 사태중심에 노동계급이 서는 것을 막고 국회 주도로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였다. 안타깝게도 11월 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의 위력은 미약했고, 그 결과 투쟁의 성격은 ‘민주공화국 회복’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주도권은 보수야당으로 넘어갔고, 보수야당은 ‘시민혁명’이라는 이름의 혁명 없는 혁명을, 체제정상화 과정을 주도했다. 광장의 모든 대중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때, 2016년 11월 중반까지도 야당들의 요구는 ‘국회추천 총리임명, 특검, 국정조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광장의 힘이 없었다면 탄핵 가결은커녕 발의도 불가능했다. 현 상황은 당시에 비해서도 훨씬 뒤처져 있다. 대중은 처음부터 퇴진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탄핵발의를 요청하고 있다. 2016-2017년의 경험 때문이다. 처음부터 제도가 보장하는 체제정상화 경로로서의 ‘탄핵’이 중심에 있다.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목적의식적 정치총파업 조직뿐이다. 현장과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모든 정치운동이 함께 정치총파업 조직화에 착수해야 한다. 그 과정으로부터,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2024-11-17 | 조회 3,343 -
노동자가 겨눠야 할 진정한 과녁은 어디인가? - 쿠팡의 로비가 다시 한번 던지는 질문사진: 연합뉴스 우리는 쿠팡의 시대에 살고 있다. 쿠팡 3분기 활성고객 2,250만 명, 10월 쿠팡앱 이용자 수 3,203만 명, 3분기 매출 약 10조 6,900억, 어쩌면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묻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던 쿠팡 창업자 김범석의 소원은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 고통과 죽음이 쌓여 있다. 쿠팡은 어떻게 자신들의 힘을 키워 성장할 수 있었는가? 지난 10월 18일 뉴스타파는 <로켓배송의 '방패'... 영입인사 분석>이란 보도를 통해 쿠팡이 정·관계, 언론계, 법조계에 있는 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영입했는지 밝혔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람만 61명으로, 이들은 쿠팡 대관팀을 비롯해 쿠팡과 쿠팡 자회사의 고위직에 들어갔다. 대관팀은 대기업의 로비 부서다. 한 몸뚱이 쿠팡이 영입한 정치권 인물에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보좌관만이 아니라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도 수두룩하게 많이 있다. 쿠팡은 자본가정당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쿠팡은 이명박, 문재인, 박근혜,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출신 인물도 대거 영입했다. 이 “전관 방패 직통라인”이 청와대에 수백 가지 방식으로 선을 댄다. 자본주의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있고, 둘은 서로 완전히 얽혀서 한 몸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 뉴스타파 실제 권력은 누구의 수중에 있는가? 쿠팡은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출신도 영입해 왔다. 공정위 경제정책국장, 공정위 카르텔 총괄과장을 지냈던 인물을 영입했다. 이 외에도 쿠팡에는 경찰(7명)과 감사원(2명), 경기도청(2명), 관세청(1명), 식품의약품안전처(1명) 출신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에는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 출신 언론인들과 검사, 판사, 대형 로펌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도 대거 포진해 있다. 쿠팡이 영입한 인사가 다시 주요 권력기관으로 가기도 했다. 김영태 전 쿠팡 부사장은 대통령비서실 대외협력비서관에 발탁됐다가 이후에는 공공기관인 코레일유통 대표이사가 됐다. 김수혜 전 쿠팡 홍보실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에 국무총리비서실 공보실장이 됐다. 물밑에서 조정하는 것도 부족해 직접 파견까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하는 일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쿠팡 노동자의 투쟁을 분쇄하고, 쿠팡의 온갖 불법·탈법 행위를 비호하며 어마어마한 착취와 억압을 가린다. “쿠팡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의원실 차원에서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대관팀 직원이라면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밥 먹자고요. 알고 보니, 같은 당 다른 의원실에서 일했던 보좌진 선배였습니다. 이렇게 쿠팡 대관팀에서는 민주당 출신은 민주당을, 국민의힘 출신은 국민의힘을 맡는 거죠(전직 국회의원 보좌진).” <로켓배송의 '방패'... 영입인사 분석> 대자본들은 노동자의 고혈을 쥐어짜 축적한 엄청난 이윤이 있다. 그 이윤은 자본가계급이 정부, 국회, 사법부, 언론 등을 모두 조종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의 원천이다. 쿠팡물류센터지회 정성용 지회장은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말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을 저지르면 안 된다, 노동자를 착취하면 안 된다, 일하다 사람이 죽게 하면 안 된다. 노동자민중에겐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데 돈 앞에서는 비상식이 되어버린다. 불법은 덮어야 할 것이 된다. 노동자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착취해야 할 대상이 되고, 산재사망과 과로사는 예방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은폐해야 할 것이 된다. 쿠팡은 자신들의 그 모든 더러움과 치부를 돈으로 덮는다. 돈만 보면 환장하는 부류의 인간들로 가린다. 이런 회사가 노동자의 삶을 더욱더 좀먹고 더욱더 억압할 것 같아 걱정이다.” 쿠팡이 과로사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숱한 폭로와 투쟁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블랙리스트 사건, 알고리즘 조작 등 온갖 불법 행위를 감출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정경유착 네트워크와 로비력이었다. 노동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치권력은? 쿠팡만이 아니다. 삼성이 ‘삼성장학금’을 주면서 검찰과 언론을 길들여 왔다. 선거 때마다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건넨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자본가들은 수백 가지 방식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된 권력뿐만 아니라 판사, 검사, 고위 공무원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 모두를 통제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지만,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모은다. 최근 국민의힘이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반도체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반도체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자 이재명은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유연화에 동의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고 자본가계급의 이윤 증대와 자본 증식을 옹호한다. 노동자계급은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전혀 다른 정치권력을 세워야 한다. 오직 껍데기 부르주아 민주주의 쇼나 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 임금, 노동조건, 안전한 일터 등의 문제는 침묵하고 오히려 억압하는 그런 권력이 아니다. 이런 사활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의 착취 권한을 대담하고 전면적으로 침해하는 권력이 필요하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산재를 방치하며, 가난한 상인들을 수탈하는 자본가들을 구속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권력이 필요하다. 자본가계급이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하는 권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권력은 당장에 만들어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꿈꿔야 한다. 청와대의 주인이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뀌고 또 바뀌어도 노동자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계속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선거만으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 보장을 본연의 기능으로 삼는 자본주의 정치구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치구조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힘, 노동자의 의지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정치구조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에서 나온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자본가계급 분파에 끌려다니면 토사구팽 신세가 될 뿐이다.2024-11-17 | 조회 2,209 -
극우파 저지에 매몰돼 신인민전선을 지지한 프랑스노총(CGT) - 계급적 원칙을 저버린 잘못된 사례[편집자 주] 오는 11월 27~29일 민주노총 정책대회에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초청강연이 예정돼 있다. CGT 대표단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세션에서 <2024 프랑스 조기 총선과 프랑스노총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에 나설 예정이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CGT를 초청한 것은 무엇보다 프랑스 6~7월 총선에서 신인민전선을 지지한 CGT의 사례를 활용해 한국의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당의 위성정당 선거연합을 지지하고자 했던 자신들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7월 19일자로 발행한 <프랑스 총선은 과연 극우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는가?> 기사에서 신인민전선을 둘러싼 배경과 전개과정을 소개하면서 신인민전선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오늘 소개하는 10월 13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2024 정치캠프 <프랑스 신인민전선, 극우파 성장에 맞선 대안인가?> 세션에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연속혁명> 활동가 조아킴의 발제문은 CGT의 신인민전선 지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좀 더 생생하게 들려준다. CGT는 300만 노동자가 총파업에 참여했던 2023년 연금개악 반대투쟁 때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악 강행을 분쇄하기 위해 무기한 총파업으로 전진하는 것을 거부한 채 관성적인 하루파업에 안주하다가 역사적인 투쟁을 패배로 이끌었다. 그런데 2024년 총선에서는 극우파 집권을 저지하고 신인민전선의 총선 승리를 지지하기 위해 동네마다 대중 집회를 조직하는 등 2023년 총파업 때보다 더 열심히 활동했다. 그 신인민전선의 한 축에 과거 집권시 노동법을 개악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했던 사회당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음에도 말이다. 1.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극우의 부상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우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발제를 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세계적인 극우 부상의 근원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에 있다고 보는데요. 프랑스는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프랑스 자본주의는 깊은 위기에 빠져 있는데요. 매년 GDP의 6%에 달하는 큰 재정적자를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매우 낮아서, 생존을 위해서는 많은 재정을 경제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프랑스 자본가들이 노동법과 노동권을 공격하는 데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이웃 나라들에 뒤처진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정치적, 국제적 측면에서 위기가 누적돼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제국주의는 최근 북서 아프리카 지역에서 패배를 겪고 있습니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제각각의 위기들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극우가 전진하고 있는 나라들의 상황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에서 노동유연화의 장기적 추세가 나타났고, 공공 서비스가 붕괴되었으며, 많은 반사회적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여건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여파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기존에 중심적 역할을 하던 자본가정당들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우파인 공화당과 중도좌파인 사회당을 말하는데요. 두 당은 지난 70년 동안 모든 대통령을 번갈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2년 전인 2022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4%, 사회당은 1%만을 득표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극우파 국민연합(RN)이 빠르게 성장해 왔습니다. 마크롱이 이끄는 새로운 극중도파 정당도 등장했습니다. 마크롱은 사회당과 공화당에서 사람들을 모아 순수한 신자유주의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좌익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신개량주의, 즉 멜랑숑이 이끄는 불복프랑스(LFI)도 성장해 왔습니다. 마크롱은 2017년에 대통령이 되면서 노동자계급을 잔혹하게 공격하여 노동자의 소득을 대량으로 자본에게 이전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라는 임무를 금융자본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이에 맞서 2019년에는 노란 조끼 시위라는,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계급투쟁, 거대한 전국적 계급투쟁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정치적 관점을 갖지 못해 때때로 극우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크롱주의와 같은 새로운 정치형태조차도 매우 빨리 낡은 게 되었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은 재선되었지만, 총선에서는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마크롱은 권력을 독재적으로 행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 예산을 2년 연속 의회 투표 없이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통과시켰습니다.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독일에서, 남미에서 극우를 부상케 한 요소들과 형태들은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비슷한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다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권위주의와 억압적인 인종주의 정치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냉전 종식 이후 자유 민주주의는 삶의 개선이라는 변화의 환상조차 더 이상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노동자대중의 삶에 더 이상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들은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습니다. 2024년 8월 31일 극우 ‘독일을위한대안’ 유세 현장 EPA-EFE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펼쳐진 대중운동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자본가계급의 모순을 보았습니다. 계급투쟁이 고조되면서 자본가들은 더욱 권위주의적인 질서를 세우기 위해 극우를 선택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극우 정당들이 대중적 기반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기 속에 개량주의의 엄청난 무기력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개량주의는 '개량 없는 개량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 사회당처럼 노동자들을 직접 공격한 경우는 개량주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전형은 불복프랑스입니다. 그리고 혁명운동에 엄청난 위기가 있습니다. 피착취 대중을 위한 혁명조직이라는 관점이 오늘날 세계에는 명확하게 자리잡혀 있지 않습니다. 자본가를 공격하고 부자를 공격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전망은 그럴듯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인 전망으로 비쳐집니다. 어느 프랑스 사회학자가 극우파 국민연합에 투표한 사람들에 대해 조사한 게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와 사장들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외국인, 이주민, 실업자들도 미워합니다.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하락을 피하기 위해 더 쉽게 공격하고 약탈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극우의 부상은 이 모든 요소들과 피착취자들의 거대한 분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2. 최근 프랑스에서 극우파 국민연합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무엇이고 왜 그런가요? 국민연합은 이 글로벌 역학의 일부입니다. 예외는 아닙니다. 국민연합(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은 1970년대에 창당되었습니다. 네오파시스트 집단이 선거에 나가기 위해 만든 정당이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해 우파인 시라크와 맞붙었습니다. 장마리 르펜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이 역사의 사소한 일부라면서, 홀로코스트와 나치즘을 방어했는데요. 정말 도발적인 파시스트 스타일이자 파시스트 어법이었습니다. 그의 딸 마린 르펜은 2011년에 당의 지도권을 물려받은 뒤, 당의 악마적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파시즘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 주변 인물들을, 유권자를 얻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방해한다며 당에서 축출했습니다. 한편으로 마린 르펜은 아버지의 초자유주의적 입장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소소한 사회적 공약들을 내걸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린 르펜은 유로존 탈퇴를 옹호하면서,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마린 르펜은 점점 더 금융자본의 요구를 존중하는 경제 강령을 채택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마린 르펜은 2023년 마크롱의 연금개혁에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선거 때에는 "연금개혁을 원하지 않지만 마크롱이 한 개혁을 깰 수 있는 재정 상황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마린 르펜은 자본의 규칙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해 마크롱과 맞붙었고, 2022년 대선에서도 다시 한 번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을 상대했습니다. 마린 르펜은 2014년부터 유럽연합 선거에서 세 번 연속 최다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큰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거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국민연합은 지역적 존재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국민연합은 영향력 있는 주류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본가들도 국민연합에 거리를 두었습니다. 국민연합은 2017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800만 표를 얻었지만 이어진 총선에서는 8명의 의원만을 당선시켰습니다. 기존 주류 정당에 유리한 프랑스의 비민주적인 선거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2년 전에 바뀌었습니다. 이제 장벽은 무너졌고 국민연합은 2022년 총선에서 의원 89명을 당선시킨 정당으로 성장했습니다. 올해 6월에 치러진 유럽연합 선거에서 국민연합은 프랑스의 100개 주 가운데 96개 주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정당이 되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2024년 프랑스 국민연합은 유럽연합 선거에서 압승했다 Reuters 의회 해산 후 7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국민연합이 126명의 의원을 확보했습니다. 공화당 출신 동조세력을 포함할 경우 142명의 의원을 확보했습니다. 국민연합의 부상은 마크롱에 대한 엄청난 증오의 결과입니다. 마크롱은 르펜을 자신의 적, 자신의 맞수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르펜은 마크롱에 대한 차악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자본가들의 일부가 이제 르펜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르펜이 자본가들의 첫 번째 바람은 아닙니다. 여전히 금융자본의 첫 번째 바람은 마크롱입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마린 르펜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조르당 바르델라는 국민연합의 당 대표인데요, 28세로 정말 젊습니다. 그는 프랑스 정치의 새로운 스타와 같습니다. 바르델라는 르펜보다 더 경제계에 신뢰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부채를 갚고 재정적 안정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그를 좋아합니다. 마크롱은 이민자들에 대해 소규모 파시스트 집단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자본가들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향해 급진화하면서, TV, 유튜브, 신문에서 그에 관한 공개 토론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이라고 백인이 유색인에 대체될 수 있다는, 과거 트럼프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애용하던 극우파 논리가 있는데요. 이게 지금은 공화당을 비롯한 우파들의 일반적인 논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에 뱅상 볼로레라는 억만장자가 있는데요, 그는 서아프리카의 모든 항구와 공항, 철도를 통제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볼로레는 여러 TV 채널을 사서 에릭 제무르나 마린 르펜 같은 극우파들에게 완전히 복무하게 했고, 종교적 방송을 하거나 이주민 추방을 촉구했습니다. 최근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많은 일들이 상황을 더욱 가속하고 있는데요. 불복프랑스와 장뤼크 멜랑숑을 겨냥한 매우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멜랑숑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하마스가 테러 조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멜랑숑을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방송에서는 멜랑숑이 네오나치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은 나치 친위대 출신들이 함께 참여해 만든 정당인데요. 그렇게 출발한 국민연합이 이제 자신을 프랑스 내 유대인의 수호자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권 전체가 마린 르펜이 장뤼크 멜랑숑보다 유대인을 더 잘 보호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금 극우파가 어떻게 해서 매우 존경받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마린 르펜이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린 르펜은 여성, 고위 임원, 연금 수급자 등에서 다양한 유권자층을 확보했습니다. 과거에는 르펜과 국민연합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3. 오늘날의 극우와 1930년대 파시즘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훌륭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그 질문을 하고 있고,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선, 우리는 둘 사이에 강력한 유사점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자본주의 국가들의 해소되지 않는 정치적 위기라는 구조적 추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위기, 무역 전쟁, 군사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추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극우가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오늘날 모든 극우 정당은 1930년대의 파시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연합,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형제들', 스페인의 VOX에 대해 모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연합(RN)의 전신인 국민전선(FN)은 1940~50년대의 구세대 파시스트들과 1960년대 알제리 독립에 반대한 극우 테러리스트들의 융합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소규모 파시스트 폭력 집단들과 네오나치들이 국민연합 주변을 돌며 국민연합 안팎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습니다. 오늘과 어제의 극우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대중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노동자계급 조직이 당시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더 쉽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의 강력한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 정당은 극우를 봉쇄하는 노동자계급의 힘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조직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은 그때보다 훨씬 더 분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 입각한다면 국민연합을 파시스트 조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1917년과 이후의 혁명적 물결에 대한 반혁명적 대응이었습니다. 파시즘은 농민, 상인, 장인, 지식인, 학생 등 사회적 지위하락으로 위협받는 소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군사적 대중운동이었습니다. 트로츠키는 당시 파시즘을 자본가계급의 내전을 위한 전투 조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대중운동으로서 파시즘은 피켓 라인을 공격하고, 노동자 건물에 불을 지르고, 거리에서 노동조합원을 죽이고, 혁명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죽였습니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기 3년 전인 1930년에 히틀러는 이미 10만 명의 무장대원을 보유했습니다. 1년 전인 1932년에는 40만 명의 무장대원을 보유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자본가계급의 통상적인 통치 방식과 구별됩니다. 자본가계급의 일반적인 폭력과 파시즘을 통해 사용하는 폭력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가계급은 극심한 위기의 시기에만 최후의 해결책으로 파시즘을 부릅니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 군주제를 취할 수도 있고, 대통령제를 취할 수도 있으며, 의원내각제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 노동자 조직에도 의존합니다. 자본가계급은 분명히 노동자 조직을 공격하고 억압하지만, 또한 노동자 조직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 관료주의는 노동자 운동이 노동자 엘리트와 불안정 노동자 사이에서 분열되게 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부르주아 합법성의 틀 안으로 가두려고 합니다. 자본가계급은 때때로 노동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일부 노조 관료들을 자본주의 관리경영에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자본가계급이 파시스트를 권력에 부를 때는, 조직된 노동자 운동을 근절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노동자 운동에 의지할 수 없을 때, 노동자 운동을 파괴할 때가 왔다고 말합니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모든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을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모든 맹아를 파괴하는 것이 권력을 잡았을 때 파시즘의 역사적 역할입니다. 그러한 조직들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사회주의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으로 나아가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조직들, 즉 노동조합, 협동조합, 다양한 협회, 또는 노동자 정당은 노동자 투쟁, 노동자 권력,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국민연합을 비롯한 유럽 극우 정당들은 현재 노동자 운동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의회 바깥에서 폭력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선거용 운동체고, 견고한 조직도 없습니다. 특히 국민연합의 경우 이 점이 분명한데, 그들은 때때로 프랑스 전역에 후보를 내세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극우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인 조직의 약화라는 양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예전 같은 대중조직이 없습니다. 노동자 운동과 마찬가지로요. 아마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서 파시즘으로 진화하는 첫 번째 경향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금 분명히 파시스트적 어법을 가지고 있는데요. 미래에 더 노골적인 파시스트로 진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연합은 외부에서 체제를 전복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체제로의 통합을 더욱 가속시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본가계급이 지금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조직을 정말로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그들에 적대적일지라도 말이죠. 프랑스에서 우리는 노란 조끼 운동을 겪었으며,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일으킨 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종류의 총파업이나 더 큰 규모의 운동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마크롱이 노조 관료들에게 많은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민연합이 집권하더라도 노동조합 관료체계를 파괴하라는 임무를 자본가계급이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서는 자본가계급에게 노동조합 관료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만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국민연합은 모든 노동자 조직을 공격하고 제거할 힘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국민연합이 집권한다면, 분명히 권위주의와 잔혹한 경찰 폭력이 증가할 것이고, 노동자 조직과 여성의 권리,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늘어날 것이며, 소규모의 진짜 파시스트 집단에게도 격려가 될 것입니다. 4. 7월 프랑스 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이 이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좌파 신인민전선이 우위를 점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선거 후 어떤 정치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까? 유럽의회 선거에서 큰 패배를 당하자, 마크롱은 바로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은 마치 군주처럼 국회를 해산할 수 있습니다. 마크롱이 14%를 득표한 반면, 르펜은 31%를 얻었습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도중에 이렇게 엄청난 패배를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마크롱은 선거를 준비할 시간으로 고작 2주만 주면서 총선을 소집했습니다. 그의 도박은 좌파 정당들이 자신에 맞서 연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크롱은 총선을 국민연합 대 마크롱 정당의 2파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 그렇게 투표했지만, 총선에서는 자신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총선 때 불복프랑스는 꽤 강했습니다. 몇 주 전에 대선에서 멜랑숑이 아슬아슬 3위를 차지했고 총선을 앞두고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과 연합을 결성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연합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불복프랑스는 그 연합을 통해 사회당이 정당성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회당은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 시절 노동자를 공격한 것 때문에 완전히 미움을 받았고 대선에서 단지 1%만을 얻었는데, 이제 좌파의 대가족 속으로 다시 통합되었습니다. 2022년에 결성된 연합의 대가는 불복프랑스의 강령을 약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불복프랑스의 강령은 반자본주의 강령은 아니고, 반신자유주의 강령이자 프랑스 제국주의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강령입니다. 미국 제국주의를 따르지 않으면서 프랑스의 독자적인 길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멜랑숑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NATO도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주는 것도 거부합니다. 그래서 2022년에 결성된 이 동맹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주로 국제정책에서의 차이 때문에 1년 뒤에 깨졌습니다. 사회당과 녹색당이 친NATO, 친미 성향인데 반해, 불복프랑스가 프랑스 제국주의의 자율성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연합이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마크롱은 의회를 해산할 경우 마크롱과 르펜의 2파전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크롱의 의회 해산은 극우파에게 의회를 넘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크롱의 도박은 실제로 르펜에게 의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금 재정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르펜이 권력을 잡아도 소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3년 후 대선은 다시 자기편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마크롱이 계산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도적 좌파는 며칠 만에 통합에 성공했고, 신인민전선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2022년 연합과의 차이점은 사회당이 직전 유럽의회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회당은 강령과 후보자 선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신인민전선 후보로 나서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크롱의 보건부 장관이 사임하고 사회당에 가입한 뒤에 신인민전선의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는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에게는 완전히 계급의 적이죠. 하지만 신인민전선의 후보가 되었습니다. 대통령 시절 노동개악을 주도한 올랑드는 2024년 총선에서 신인민전선 후보로 당선되었다 AFP 결국 국민연합은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1차 투표에서 전통적 우파인 공화당이 100만 표를 얻었습니다. 극중도 마크롱주의자들은 600만 표를 얻었고, 좌파 신인민전선은 700만 표를 얻었으며, 극우파 국민연합이 1,000만 표를 얻었습니다. 여기서 이른바 공화국 전선이 작동했습니다. 극우파에 맞서 이른바 모든 공화주의 세력이 단결한 거죠. 국민연합에 맞선 신인민전선과 마크롱주의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민연합 후보가 1위를 차지한 모든 선거구에서 3위를 한 신인민전선 후보나 마크롱주의 후보가 2위 후보에게 의석을 주기 위해 후보를 사퇴했습니다. 끔찍한 이민법을 만든 마크롱의 내무부 장관 제랄드 다르마닌이 이 전술을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연금 개악을 밀어붙인 총리였던 엘리자베스 보른도 신인민전선의 양보 덕분에 선출되었습니다. 총선 이후 프랑스에서는 의회가 완전히 조각났습니다. 우호 세력을 합쳤을 때, 신인민전선이 193석, 마크롱주의자들이 166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연합이 142석, 공화당이 39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화당의 작은 의석을 기억하세요.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정부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파 성향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선거에 임했습니다. 다른 선거보다 기권이 적었죠. 국민연합이 집권하는 걸 막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거에 의존하는 방어적 반응이었습니다. 총선 이후 사람들은 그동안 극우를 부상시킨 원동력이었던 마크롱주의가 극우의 부상을 막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환상은 금새 깨졌지요. 신인민전선이 의석 수에서 선두를 차지했지만, 마크롱은 신인민전선에게 정부를 구성할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비민주적이었죠. 대신 마크롱은 공화당의 미셸 바니에를 총리로 지명했습니다. 그래서 6%의 표를 얻은 공화당이 이제 정부의 키를 쥐었습니다. 미셸 바니에는 50년 경력의 전문 정치인입니다. 그는 낙태 합법화에 반대하고 동성애 합법화에도 반대한 인물로서, 정말 반동주의자입니다. 미셸 바니에가 이끄는 새 정부는 마크롱주의자들과 공화당원들로 구성된 완전히 소수파 정부입니다. 총선 이후, 마크롱은 반동적 인물인 미셸 바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AFP 이런 소수파 정부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마린 르펜이 이미 이 정부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정부의 임무는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공공 서비스를 상대로 가혹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제 5년 동안 1,000억 유로를 절감해야 합니다. 즉, 그들은 매년 200억 유로를 우리 등에 떠넘길 것입니다. 5. 신인민전선은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을 연상시킵니다. 1930년대 인민전선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인민전선은 프랑스 좌파 사이에서 가장 큰 신화, 가장 큰 전설 중 하나입니다. 좌파 활동가나 좌파 성향 사람들에게는 '인민을 위한 1936년 5월'이 역사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좌파의 단결, 반파시스트 투쟁, 거대한 파업,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유급 휴가 획득, 노동시간을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 이 황금빛 전설은 올해 좌파 정당들의 연합에도 일정한 정통성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민전선에 대해 생각할 때,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민전선에는 두 개의 원동력이 있었습니다. 한편에는 대규모 노동자 정당이었던 공산당과 사회당이 완전히 부패한 자본가 정당인 중도좌파 급진당과 구성한 계급협조주의 정부가 있었습니다. 인민전선의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1968년 5월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총파업이었죠. 350만 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고 국가를 완전히 마비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929년 이후 대공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유럽과 프랑스에서 파시즘이 부상하자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단결에 대한 강한 열망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뒤 벌어지는 일을 사람들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1934년 2월 프랑스에서도 수천 명의 무장 파시스트가 의회를 공격했을 때 당시 노동자 운동은 일백만 노동자가 거대한 총파업으로 대응했습니다. 노동자 운동은 사회당과 공산당에게 연합하라는 압력을 가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정당이 분열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4년 사회당은 자본가 정당인 중도좌파 급진당과 연합하고 싶어했습니다. 공산당은 스탈린의 지도를 받았는데, 사회당의 개량주의자들과 그를 따르는 노동자들을 파시스트라고 말하는 극좌적 노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산당은 개량주의자들과 공동전선을 만들거나 개량주의 노조와 함께 싸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1934년 2월 파시스트들을 응징한 강력한 총파업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압력 때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외교적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스탈린은 히틀러의 공격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프랑스와 영국이라는 제국주의 식민제국으로부터 보호막을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좌파 활동가들이 잊었거나 모르는 게 있습니다. 인민전선은 스탈린이 1935년에 프랑스와 평화협정을 맺은 사실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스탈린은 프랑스 제국주의가 국가 방위를 위해 싸우고, 군대를 가지며,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식민지를 가질 권리를 인정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공산당은 식민지 독립 요구를 멈췄습니다. 식민지의 독립은 프랑스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빨강, 하양, 파랑으로 된 프랑스 자본가계급의 깃발, 파리코뮌 학살의 깃발을 함께 들었습니다. 공산당은 프랑스가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 더 이상 임신 중절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공산당은 군사예산에도 찬성했습니다. 공산당은 불과 몇 주 전까지도 사회당조차 파시스트라고 말했지만, 이제 자본가 정당과도 동맹을 맺고 싶어했습니다. 따라서 1936년 초여름에 일어난 총파업은 좌파 정부의 결과가 아니라 좌파 정부와의 충돌이었습니다. 실제로 공산당과 사회당은 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했습니다.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은 1936년 총파업을 멈추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했다 당시 공산당 지도자였던 모리스 토레즈가 파리 노동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 때는 파업을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요구를 완전히 따내지 못했더라도 주된 요구를 따냈다면 말입니다." 1930년대에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대공황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고, 전쟁이 다가오고 있으며, 주변 국가에 파시즘이 들어선 상황에서 말이죠. 유일한 요구는 자본주의 전복 아닐까요? 인민전선 정부는 강령에 따라 일부 파시스트 조직을 해체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직들은 즉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시스트를 해체한 동일한 법률이 반식민주의 조직을 해체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튀니지에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인민전선 정부가 보낸 사회주의 군대에게 사살당했습니다. 당시 트로츠키주의 언론이 식민지에서 벌어진 일을 비난하자 프랑스에서는 발행이 금지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1930년대에 자본가계급은 심각한 자본주의 위기에 직면했고 노동자들의 급진화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맞서 자본가계급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파시즘을 통해 노동자 운동을 파괴할 수도 있었고, 인민전선을 통해 노동자 운동을 부패시켜 포섭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자본가계급은 둘 다 사용했습니다. 특히 스페인에는 파시즘과 인민전선이 함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 오늘날 신인민전선의 정치적 성격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요? 1930년대 인민전선과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오늘날 신인민전선에는 노동자계급 정당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1930년대의 공산당과 사회당은 거대한 노동자계급 정당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회당은 자본가계급의 중심 정당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회당은 제5공화국에서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녹색당은 항상 사회당과 연합해 왔으며, 또한 자본가 정당입니다. 완전히 유럽연합 정당입니다. 공산당은 전기를 비롯한 공공 서비스 등에서 소규모로 오래된 노동자계급 기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는 주로 지방의 선출직 공직자들로 구성된 주변 정당에 불과합니다. 불복프랑스는 신인민전선 안에서 가장 급진적이지만, 시민주의에 입각한 포퓰리스트 조직입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략이나 담론에 계급적 관점이 전혀 없습니다. 불복프랑스는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입니다. 그들은 반NATO, 반미를 표방하지만 프랑스 제국주의를 옹호합니다. 불복프랑스의 주된 대중적 기반은 노동자가 아니라 소부르주아에 있습니다. 도시에 기반한, 고학력 노동자나 학생입니다. 불복프랑스도 노동자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연합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더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오늘날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수는 기권합니다. 만일 1936년과 같은 파업이 벌어진다면, 이 당들 가운데 누구도 개입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1936년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 다른 차이는 이들 가운데 어느 정당도 자본주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당시 사회당과 공산당은 말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원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로는 원한다고 했습니다. 1930년대와 오늘 사이에 유사점도 있습니다. 첫째, 혁명적이거나 반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여러 소규모 집단의 투항입니다. 많은 반인종주의 조직들이 신인민전선에 들어가서 식민주의 정당인 사회당과 한 편에 섰습니다. 또한 무정부주의자들이나 과거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상당수 신인민전선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필립 푸투는 신인민전선의 후보가 되었습니다. 필립 푸투는 선거 운동 기간 필립 푸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까지 좌파가 파시즘에 맞서 하나로 단결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캠페인에서 푸투는 경찰에 대한 과거 자신의 비판을 모두 철회해야 했습니다. 1930년대와 오늘의 또 다른 유사점은 전선 안에 우파와 좌파가 분명히 있고 서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연합을 매우 취약하고 무력하게 만듭니다. 계급투쟁이나 국제정책의 첫 번째 압력이 이 연합을 완전히 깨뜨릴 수 있습니다. 2년 전처럼요. 연금 개악에 맞서 거대한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미 제5공화국의 위기에 대해 말했습니다. 마크롱은 연금 개악을 위해 반민주주의적 수단을 많이 동원해야 했고 그에 맞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불복프랑스는 반자본주의 정책 없이 단지 의회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매우 급진적인 척했습니다. 불복프랑스는 의회에서 소리를 지르고 장관들을 모욕했습니다. 형식에서는 정말 급진적이었지만 강령상으로는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본가계급은 불복프랑스가 현 체제에 대해 너무 왼쪽에 있다고 보면서 매일같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복프랑스를 반유대주의이고 신나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복프랑스는 거리나 대중 운동에 대해 너무 오른쪽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금 파업 동안 멜랑숑은 운동에 어떤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멜랑숑이 제안한 것은 오로지 새로운 선거 뿐이었습니다. 그는 마크롱이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그럴 경우 더 많은 좌파 의원을 당선시켜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선거를 통한 집권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복프랑스는 항상 사회당과 연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불복프랑스는 사회당에 맞서 진짜 좌파를 세우려고 설립되었음에도 말이죠. 불복프랑스는 선거를 통한 집권 전략 때문에 늘 사회당과 연합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신의 다소 급진적인 강령조차 매번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7. 신인민전선이 극우의 부상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실 저는 동지의 질문에 극우에 맞선 대안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 마크롱주의나 권위주의적 자본가정치 전반에 맞선 대안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좌파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에, 그래서 극우파 국민연합 정부가 들어서는 걸 막아냈기 때문에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결과를 완전히 강탈당했다고 느낍니다. 지금 우파 정부, 심지어 어느 정도는 극우파라 할 정부가 프랑스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크롱을 통한 또는 그 이전의 사르코지와 올랑드를 통한 권위주의의 부상과, 극우파 르펜의 부상이 모두 동일한 자본주의 위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게 아닌, 구조적인 위기입니다. 이제 자본가계급은 정말 어려운 과제에 내몰려 있습니다. 중국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경제침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자본가들은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1,000억 유로를 빼앗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본가들은 군대가 전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노동자들이 지불하게 하면서도 정치적 폭발을 피해야 합니다. 그간의 정치적 위기로 체제가 너무 허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아직 1,000억 유로를 빼앗기 전인데도 총파업에 근접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래서 자본가계급에게는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신인민전선의 답은 케인스주의 해법입니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면, 국가가 확대된 재정으로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더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 말할 때 품고 있는 것과 똑같은 환상입니다. 지금 자본주의는 거대한 축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위기는 전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극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밀어 올리는 뿌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경제위기와 전쟁을 만들어내고 여러 국가와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이번 총선은 신인민전선을 지지하지 않은 혁명가들에게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일부 동지들의 친구나 가족들은 우리가 국민연합에 맞서 투표하지 않을 거기 때문에 파시스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극우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은 표를 얻고 있는데, 그건 사회당, 마크롱주의자들, 심지어 일부 노조가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가혹하게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의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비타협적으로 인종주의에 맞서고 제국주의에 맞서는 급진적인 친노동자 강령을 내걸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일을 사회당과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당은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해 온 당이니까요. 아프리카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이주민을 추방한 사회당으로는 극우를 물리칠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신인민전선의 사기행각을 비판했습니다. 선거 후 몇 달이 지난 지금, 좌파 유권자들은 사태전개에 매우 실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습니다. 신인민전선에게 투표하면 모든 게 바뀔 거라고 한 불복프랑스를 비롯한 개량주의자들의 말을 믿었다가 실망하고 있고, 약간은 낙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크롱이 신인민전선을 차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의 제5공화국 체제가 정말 비민주적이기 때문입니다. 불복프랑스는 이제 마크롱을 탄핵과 같은 의회 절차를 통해 무너뜨리자고 제안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수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불복프랑스는 탄핵 지지 시위를 몇 차례 조직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탄핵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의회를 통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노란 조끼보다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조합 좌파에 대해 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독일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에는 더 이상 노동자 정당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 조직이 있는데, 그것은 노조입니다. 노조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큰 노동자 조직입니다. 2023년 연금 투쟁 때 우리는 그들이 거대한 파업과 시위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일부 노조들은 중립을 지켰고, 일부 조합원들은 극우파 국민연합에게 투표했습니다. 하지만 CGT, Solidaires, FSU와 같은 좌익 노총들은 신인민전선을 지지했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신인민전선의 일부였습니다. 사실 이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조합이 좀처럼 정치에 나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죠. 프랑스에서는 노동조합에 무정부주의 전통이 강해서, 정치와 노동조합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정치가 아닌 혁명적 정치를 원한다고 핑계를 대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전통이 "우리는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라 자본가들과 논의하여 사회적 파트너십을 만들려는 거다"라고 말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들은 그게 정치가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자본가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정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 냉전 기간에는 노조가 정당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습니다. CGT는 공산당과, CFDT는 사회당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강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들이 이번 총선에서 정치 캠페인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한 것은 꽤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들의 정치참여는 자본가정당, 특히 집권 시기 노동권을 대규모로 파괴했던 사회당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재정치화가 일정하게 이루어졌지만, 완전히 나쁜 방식으로, 계급적 독립성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CGT의 사무총장, 소피 비네는 노동자 조직의 이러한 복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금이 '자정 5분 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정은 파시즘을 의미합니다. 파시즘까지 5분밖에 안 남았으니, 신인민전선에 투표하는 것과 같은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신인민전선의 프랑수아 올랑드를 위해 우리가 대중 집회를 열었기 때문에, 우리가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우리가 행진을 조직했기 때문에, 파시즘을 막고 극우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CGT는 말했습니다. CGT는 2023년 연금 투쟁 기간보다 2024년 신인민전선 정치 캠페인에서 더 활동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CGT는 동네마다 대중 집회를 여는 등 야심차게 정치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던 연금 투쟁 동안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었습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은 6월 총선에서 신인민전선을 지지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부를 갖게 되었는데요. CGT가 파시즘을 물리쳤다고 말하기에는 상황이 역설적이고 모호합니다. 사실 국민연합은 어느 때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원 수는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어느 때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CGT의 말을 들으면 파시즘의 위협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자정 5분 전이 아니라 한낮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협은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1년이 지나면 마크롱이 다시 국회를 해산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선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린 르펜도 바로 그 상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CGT는 순수한 노동조합주의로 돌아갔습니다. 정치적 위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크롱에게 선거를 강탈당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임금과 연금을 비롯한 경제적 요구만 말합니다. 부르주아 분석가들은 의회가 세 조각으로 나뉜 상태에서 새 정부가 정말 취약하며 사회적 기반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새 정부는 의회를 회피하는 해결책으로 노동조합과의 사회적 대화에 더 많은 무게를 둘 것으로 보입니다. 의회에서 바로 법을 만들려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노동자 단체 및 자본가 단체와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프랑스 좌파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선거에 몰두하는 정치적 좌파가 있습니다. 멜랑숑은 마크롱이 다시 의회를 해산할 경우 치러질 총선이나 2년 반 후에 치러질 대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불복프랑스와 멜랑숑은 이후에 치를 선거를 준비하며 마크롱을 탄핵하자는 담론과 선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 CGT를 비롯한 노조는 이제 더 많은 계급협조주의를 향해, 자본가들과의 더 많은 토론과 협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혁명적 좌파의 과제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북돋고 전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2023년 연금 개악에 반대해 총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2024년 신인민전선에 투표한 많은 노동자들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파업을 해도 효과가 없었고, 투표를 하니 더욱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자본가들이 결과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요. 이런 상황에서 일부 혁명 조직이나 중도파 조직이 우리는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느 방향으로" 싸우느냐입니다. 사실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2016년 이후 거의 매년 정말 열심히 싸워 왔습니다. 이제 혁명가들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강령과 전략을 갖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정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정치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멜랑숑을 넘어서야 합니다. 멜랑숑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운동을 할 수 있지만 혁명과 정치는 시민을 위한 것이며, 의회 절차와 선거를 통한 부르주아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조관료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노조관료들은 지금 프랑스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체제 위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대신 자본가들과 협상에 나서며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현 상황을 타개하는 진정한 길은 노동자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자본가를 수탈하여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음을 설명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이 정권의 모든 반민주적 성격과 반민주적 공격을 서슴없이 비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급진적인 민주주의 슬로건을 소리 높이 외쳐야 합니다. 개량주의자들은 마크롱을 끌어내리기 위한 시위를 조직하면서 '의회에서 진행 중인 탄핵 절차를 지지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크롱을 타도하자. 그러려면 총파업이 필요하다. 노란 조끼 운동이나 2023년 총파업보다 더 큰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할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신의 조직인 불복프랑스는 그런 총파업을 조직할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는 또한 말합니다. '우리는 마크롱을 끌어내린 뒤 다른 군주나 다른 대통령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다. 설령 그가 좌파라도 말이다. 멜랑숑은 다음번 군주가 되는 게 꿈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저는 이게 불복프랑스와 토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크롱 정부에 맞서 2023년 프랑스 연금파업, 그 이상의 투쟁을 조직해야할 때다 Reuters 여기서 우리는 1936년 인민전선에 대응했던 트로츠키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트로츠키는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단일 의회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점을 놓고 개량주의 지도부 및 기층과 토론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이 필요 없다. 상원도 필요 없다. 우리는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소환당하는 의원들로 구성된 단일 의회만 필요하다. 이 의회로 입법권과 행정권을 집중시켜야 한다.‘ 트로츠키는 단일 의회 슬로건을 파업 같은 계급투쟁 방법과 결합함으로써 대중을 운동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회를 통제하고 선출된 대표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영감을 대중에게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시장의 가격을 통제하고, 공장의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단일 의회는 소비에트가 아닙니다. 이중권력 상황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급진적인 요구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본가를 수탈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단지 말에 그칠 뿐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은 자본주의 위기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라고, 다가올 전쟁을 위한 비용을 감당하라고 노동자들에게 강요합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의원들이 노동자 임금 이상을 받을 수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정치체제를 위해 싸우자고 노동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슬로건이나 요구로 제5공화국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계급투쟁의 방법을 통해 대중을 그렇게 준비시키고자 합니다. 불복프랑스는 우리가 이 권위주의 공화국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 공화국의 법률에 따라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환상입니다. 만일 우리가 대중과 이런 방식으로 대화해 나가지 않는다면, 개량주의자들은 비민주적인 공화국과 정치적 위기에 대해 유일한 비판자 지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자본가들의 대규모 공격에 맞선 계급투쟁이 머지않아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몇 주, 몇 달, 또는 몇 년 안에 있겠지만, 몇 주 또는 몇 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정부가 정말 잔인하겠지만 또한 매우 허약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회 부문이 이 기회를 이용해 싸워서 뭔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비록 우익적 요소가 강했지만 농민들이 투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매우 모순적인 요소들과 함께 매우 발작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혁명은 순수한 화학적 과정이 아니라고 레닌이 말했습니다.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무언가가 펼쳐지는 복잡한 상황에 혁명가들은 개입해야 합니다. 혁명가들은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개입하면서, 대중이 개량주의적 환상과 결별하고 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을 대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조직, '연속혁명'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이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혁명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완전히 굴복했고 지금은 불복프랑스의 작은 사본일 뿐입니다. 불복프랑스의 반신자유주의 강령에 순응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비판을 철회했습니다. 반대로 노동자투쟁(LO)은 자신의 회원들이나 노동자들이 정치 상황에 개입하도록 훈련시키지 않습니다. 노동자 권력을 일반적으로 선전하는 데 머무르는 선전주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노동자들이 행동의 방향을 찾고 있을 때,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행동 강령을 제공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당면 의식과 노동자 권력에 대한 인류의 필요성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혁명가들에게는 가능성과 기회가 매우 풍부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상황의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대중의 의식을 고취하는 올바른 행동 강령을 제안한다면, 개량주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환상에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프랑스 노동자들 대다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멜랑숑에게 투표하는 것이고, 더 나쁘게는 르펜에게 투표하는 것입니다. 만일 혁명 조직들이 수동적으로 기다린다면, 상황에 개입하지 않은 채 소비에트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노동조합 관료와 개량주의 관료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위한 정치적 담론과 해결책을 독점하게 될 것이고, 결국 거듭된 패배로 귀결될 것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야만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자본주의는 이 야만성을 약속하고 있습니다.2024-11-13 | 조회 3,010 -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 위성정당 창당세력 배제를 둘러싼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사진: 연합뉴스 7월 11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1차회의에서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한 세력에 대한 배제를 요구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했다. 8월 1일 2차 조직위원회 2차회의에서 해당 수정동의안, 즉 (보수양당에 더해) “22대 총선에서 보수양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 역시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찬성 23표, 반대 28표, 기권 19표로 부결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들, 즉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의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가 허용되었다. 배제가 아니라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 8월 1일 2차 조직위원회 당일, 인권운동사랑방은 ‘세상을 바꾸는 기후정의운동을 더욱 너르고 단단하게 조직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수정안이 제기된 이유에 공감하나 위성정당 창당세력 조직위 배제에는 반대한다는 의견과 함께, 향후 논쟁과 토론을 이어가자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보수양당과 분별되는 기후정의운동의 세력화라는 전망 속에, ‘비례위성정당 참여'에 대해 분명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기후정의운동의 수많은 투쟁 현장에서 함께 했던 동료이기도 한 이들과 함께 기후정의운동의 세력화를 위한 ‘운동 현장의 조직과 연결', ‘정치사회세력화의 경로와 방안’에 대한 논쟁과 토론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2차 조직위 결정 이후 플랫폼C 역시 마찬가지 취지로 입장을 발행해, 위성정당 비판과 기후정의행진 조직위 배제는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진보당을 배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심급의 문제다. 연대기구는 정치적 입장, 조직형태가 다른 상이한 단체들이 참여하여, 해당 시기에 함께 투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어떤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무조건 관철할 수 없고, 그렇게 하려면 연대기구가 와해되어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907 조직위에는 진보당뿐만 아니라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구체적 이슈에 대한 찬반 등에서 서로 다른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쟁점은 907 조직위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의 공간에서 토론과 논쟁, 운동 간 경합을 통해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2023년 기본소득당 조직위 배제에 찬성한 많은 단체가, 2024년 진보당이 조직위 가입 배제 대상으로 놓이자, 배제에 반대하며 2023년 자신들의 입장조차 공개 반성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진보당이 기본소득당보다 크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영향력에서도, 보유한 조직적 자원에서도 말이다. 말하자면 기본소득당을 배제해도 ‘연대기구가 와해’할 우려까지는 발생하지 않으나, 진보당에 대한 배제는 ‘와해’를 촉발할 우려까지 발생한다는 것, 그래서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907조직위를 넘어서는 공간’에서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하는가? 아니다. 첫째, ‘논쟁과 토론’은 어떻게 촉발되었는가? 민주당과 함께 당을 만든 세력을 기후정의행진조직위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다. 둘째, 기후정의행진조직위라는 연대기구가, 나아가 기후정의운동이 지금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가? 아니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 가입단체들은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등에서 각양각색이며, 그런 만큼 해당 문제들은 당연히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 요금인상’ 등 구체적 문제를 논쟁 대상에서 제외하는 접근이 아니라, 바로 그런 구체적이고 민감한 문제가 907조직위원회 내에서 논쟁되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 또한 어떤 반성도 없이 민주당과 연대해온 세력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결국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 결정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 단위가 배제될 경우, 기후정의운동 연대체에 많은 타격을 야기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진 단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후악당과 당을 만들고, 어떤 반성도 없이 다시 연대체에 가입을 신청했으며, 연대체는 이를 허용했다. ‘연대’를 위해.” 이들이 2020년 총선에 이어 2024년 다시 민주당과 당을 만들어도, 민주당 입장에 따라 신공항사업 국회표결에 찬성하거나 기권해도, 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이들을 조직위 일원으로 인정했다. 말하자면 이 모든 행위를 ‘기후부정의’ 규정에서 면죄했다. 이쯤 되면 9월기후정의행진조직위가 누구와 어떻게 싸우겠다는 것인지, 조직위에 민주당 가입을 불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진다. 실제로 전진이 발의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 중에는, 민주당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단체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신규·민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핵발전 유지를 비롯한 그 모든 기후악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올해 조직위 결정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향후 민주당의 조직위 참여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행사가 아닌 운동이 필요하다 - 민주당과의 연대를 ‘입장’으로 반대할 것인가, ‘실천’으로 반대할 것인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극심한 기후위기에도, 현 국면 ‘기후악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결집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기후정의운동은 하강기에 있으며 그 추세는 급격했던 확장세만큼이나 가파르다. 2022년 9월 기후정의행동은 2만 명 넘는 인원을 거리로 불러내며 하나의 가능성을 드러냈으나, 그 가능성을 운동의 확대와 현실의 변화로 연계해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현실도 아니다.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에 따르면 2019년 9월 140만 명 이상이 독일에서 글로벌 기후파업에 참여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25만 명에 불과하다. 유럽 전역에서 확대되는 ‘그린래시(기후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기후운동 위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즉, 여전히 ‘기후’는 ‘먹고사는 데 걱정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극우는 전환비용을 노동자 민중에 전가해온 각국 기후정책에 대한 반감을 효과적으로 조직해냈다. 상황을 보자. 기후정의운동의 ‘적’은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제는 두려워하는 흉내, 그린워싱조차 이전보다 줄었다. 9월 어느 날 거리를 장악했다는 해방감, 그 자체만으로 운동을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지금,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좌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음은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4차회의 안건1. <923 기후정의행진 평가> 결과 중 일부다. “9월행동이 어떤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인가와 관련해, 참여자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운동의 흐름이나 투쟁의 현장’보다는 ‘행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확인됨.” 행사가 아닌 운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9월 기후정의행동의 상황과 민주당에 대한 태도는 직결되어 있다. 자본을 위한 민주당의 온갖 기후악행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함께 당을 만든 세력을 조직위 일원으로 인정한 기후정의운동에도, 윤석열의 수십 번 거부권 행사에도 민주당에 의존하며 지루한 의회 공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인 노동운동에게도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은 핵심 문제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확대, 탈원전 공약 파기, 공적자금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과정에 불과한 '한국형 그린뉴딜', 가덕도 신공항과 새만금 신공항 추진, 기업 민원창구에 불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구성, 전력구매계약제도(PPA) 도입으로 전력산업 민영화 가속, 민간자본 40조원으로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어 모두가 부자되자는 값싼 선동 … 9월기후정의행진이 한차례 집회에 그치지 않는 '운동'의 마중물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진할 때는ᅠ기후재난의 주범을 규탄하면서도, 행진이 마무리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후재난ᅠ주범과 손잡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인권운동사랑방과 플랫폼C 등 전진이 제안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들도 민주당과의 연대에 반대한다고 한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다양한 단체가 함께하는 연대체이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취지에 동의하는 모두가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는 특별한 문제다. 투쟁의 대상, '적'과 연대한 세력의 조직위 참여를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과 민주당의 연대는 내년과 내후년에도, 그리고 대선이 있을 2027년에도, 민주당이 이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한 지속될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이들의 당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은 지금까지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결정을 유지하고서, 대체 위성정당 문제에 대해 어떤 논쟁과 토론을 만든다는 것인가? 기후정의운동의 ‘적’, 민주당과의 연대를 그저 ‘입장’으로 반대할 것인가, 그 입장에 근거한 ‘실천’으로 반대할 것인가? 운동의 민주당 의존성을 실천 상으로는 수용하며 입장으로 비판하는 데 그칠 것인가, 이 처참한 상황을 실천으로 지양할 것인가? 수정동의안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이것이다. 2023.10.06.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법안 표결 강성희(진보당) 찬성, 용혜인(기본소득당) 기권 기후위기를 만든 ‘체제’, 자본주의체제와 투쟁하는 기후정의운동이 필요하다 돌아보자. 문재인정부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입장을 두고 벌어진 논쟁과 함께 급격히 확대된 ‘기후정의’ 요구가 단지 ‘지구 온도를 내리자’는 주장이었던가?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과 그 위기를 낳은 체제의 본질은 같다는 인식을 전제했다. 탄중위해체공대위 이후 본격화한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기후는 기후, 노동은 노동, 여성은 여성, 정치는 정치’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았다. 전통적인 환경운동 단체들의 거버넌스 중심 상층 활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역시 있었다. 기후위기라는 현상에는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는 인식,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탄중위해체공대위 이후 기후정의운동의 정신이었다. 바로 그랬기에 전진 같은 사회주의 정치조직도 기후정의운동 일원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번 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에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들은 결국 다음과 같이 주장한 셈이다. ‘정치는 정치고, 행진은 행진이다’, ‘문턱을 높여 배제하지 마라’, ‘조직위 가입 자격은 당면 행진에 대한 동의면 족하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기후정의행진을 자본과 국가에 하등의 위협도 되지 못하는 행사로, 가슴조차 뛰지 않는 행사로 만든다. 퀴어축제에 미대사관 독일대사관이 주최단위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선 우리는 왜 비판했을까? 그 조직위에서도 똑같이 '현실적으로' 저 대사관들의 영향력을 활용할 때 축제에 더 용이한 면을 감안한 것 아닌가? 전쟁은 전쟁이고, 축제는 축제다, 할 수 없다 비판했던 우리가, 위성정당은 위성정당이고, 행진은 행진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 차별철폐 위해 그 운동 목표에만 동의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다른 운동과의 관계나 정치적 입장은 상관없다. 이런 태도는 -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 운동에 스며들어 있는 - 자기 운동에 갇혀 세계와 정세를 바라보는 총체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 상관없이 사안별로 분리해서 연합하는 '건별 연대', '도구주의적 수단적 연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채효정 동지의 비판처럼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라는 총체적 관점을 탈각하고 ‘행진은 행진’, ‘건별 연대’ 논리로 퇴행했다. 이것이 ‘축제는 축제’라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 측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앞에, 이 위기를 만든 자본주의 체제와 대적하겠다는 날 선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907조직위는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기후정의 계급투쟁의 한 계기로서의 907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서의 907을 선택함으로써 9월 행진과 운동의 관성화에 일조했다. 지금, 기후정의운동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물론 국가와 자본일 것이다. 그러나 투쟁 대상인 국가와 자본도,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23년 ‘SK에코플랜트’는 9월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현 국면 기후정의운동이 국가와 자본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국가와 자본에 대한 날선 적대감을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물론 이 상황이 전통적 기후-환경운동 진영 책임만은 아니다. ‘계급투쟁 없는 기후정의 운동’의 가장 큰 책임은 민주노총에 있다.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일, 민주노총 부스는 ‘대나무 칫솔’과 ‘친환경 비누’를 나누어주었다. 명색이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체가 ‘에코백과 텀블러’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조차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지금, 민주노총에는 ‘계급투쟁 없는 기후정의운동’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없다.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위 역시 산업국유화와 총고용보장, 노동자통제 투쟁을 위한 투쟁기구로서 역할하기는커녕, 일종의 상층 외교기구에 머물고 있다. 2023.10.26. 민주노총 기후특위 10차회의 <논의1. 923 기후정의행진 평가> 중 이런 침체 속에서 ‘적대 없는 운동’, ‘적과의 연대에 어떤 반성도 없는 세력조차 용인하는 운동’에 대한 지향이 싹트고 있다. 기후정의행진조직위 2차회의에서, 수정동의안에 반대한 단위 상당수는 전진이 누군가를 '배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전진의 주장이 민주당은 물론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만든 세력까지 조직위에서 ‘배제’하자는 것이었으니, 그다지 유의미한 비판은 아닌 셈이다. 우리는 민주당과 위성정당을 창당한 세력을 조직위에서 배제하자고 주장하며, 당면 운동이 누구와 연대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민주당과의 연대를 당론으로 삼고, 노동자 민중운동 전반에 그 당론을 관철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 그리고 907기후정의행진조직위는 해당 세력의 조직위 참여를 허용했다. 배제가 아닌, 더 넓은 연대를 위해! 그러나 기후위기를 낳은 체제를 바꿀 ‘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한 혁명가의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인민전선 이론가들은 본질적으로 산수의 첫 번째 규칙, 즉 덧셈을 넘어서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를 합하면 그 합은 개별 숫자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 지혜의 전부다. 그러나 산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소한 역학이 필요하다. 힘의 평행사변형 법칙은 정치에도 적용된다. 힘의 평행사변형에서, 그 구성요소가 더 많이 갈라질수록 그 합력 또한 작아진다. 정치적 동맹자들이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당길 때, 그 합력은 0과 같다.”2024-09-01 | 조회 3,557 -
윤석열, 뉴라이트에 세뇌되다 : 노동자계급은 어떤 역사관으로 맞설 것인가?김건희 고백의 진실성 “다들 노무현 팔이를 많이 해서 저흰 되도록 안 하려 해요. … 오히려 저희 남편이 2011년에 봉하마을 권 여사 만나고 왔어요. … <변호인> 영화 보고 얼마나 울던지… 노통의 연설을 외울 정도로 늘 틀어놓아요.”, “전 자유한국당이 마귀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싫어했어요. 솔직히 지금도 그래요. … 지금 국힘이 너무 싫지만 민주당이 더 싫은 거죠.”, “윤 후보는 의리를 생명처럼 생각해 여기까지 온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왜 대통령을 상대로 배신을 하나요. … 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저희는 조국 따위하곤 달랐어요. 문통이 실패하면 저희가 가장 먼저 제거될 운명이었죠. 간절한 맘으로 지킨 거죠.” 2022년 2월 21일, 김건희가 최재영 목사에게 보낸 카톡 내용이다. 김건희 왈, “문통에게는 가장 충신이 윤후보”였는데 특정 세력들에 의해 윤석열이 밀려난 거라고. 부르주아 정치판의 부박(浮薄)함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는 없다. 경쟁자를 딛고 내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겠다는 탐욕만 넘쳐날 뿐, 정책도, 이념도, 철학의 차이도 없다. 저들에게 정치란 부르주아 계급독재 체제 속에서, 최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경연장일 뿐이다. 김건희 말대로, 윤석열도 운때가 맞아떨어졌으면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른다. 뉴라이트에 세뇌된 윤석열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국힘 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윤석열도 무언가 민주당과 맞설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의 인문‧사회학적 인식 수준이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고등학교 전교 1등 수재들이 대학에서는 법률‧의학 전공 지식만 들입다 파고 그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되었을 때, 사회문제에는 황당할 정도의 무식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의미에서 29일 윤석열이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발언한 것은 딱히 틀리지 않다.) 정치‧이념‧철학적으로 백지상태에 가까웠고, 제도권 교육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주입 받았을 뿐인 윤석열이 대권을 장악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정치 이념은 뉴라이트였다. 특히 뉴라이트의 서구 중심 문명론이, 북한‧중국‧러시아라는 야만의 동맹에 맞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를 주창 중인 윤석열의 구미에 잘 들어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소위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그대로 차용, 승계한 것이다. 그간 윤석열은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등 뉴라이트 인사들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에 임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중 김광동 같은 인물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망언을 내뱉고, 5‧18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이 자기 소신이라고 밝히는 광인이다. 윤석열의 뉴라이트 요직 등용은 얼마 전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김형석은 26일 국회에서 “1945년에 광복이 되었느냐”는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독립기념관장 자격으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인물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뉴라이트 사관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의 시원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역사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지배계급은 역사적 정통성이라는 관점에서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주지하다시피 1945년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은 소련에 맞선 반공 기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친일 부역 세력을 등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주류 지배계급은 해방과 분단 이전 일제에 부역했던 과거 대신, 건국 이후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에서 자기 지배의 정당성을 발견하려 든다. 즉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가난을 극복하여 세계 제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어떤 기준으로 가늠해 보아도” “미션 임파서블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핵심 역사관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구중심적 문명론이다. 뉴라이트 논자들에게 중국, 조선 등의 대륙 문명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던 후진적 체제로, 자본주의 문명을 달성한 서구 해양 문명과 구별된다. 뉴라이트 논자 이영훈이 조선 노비의 역사적 특수성을 일체 간과한 채, ‘조선은 인구의 40%가 노비였던 노예제 사회’ 운운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아이러니하게도 뉴라이트 이영훈이 이런 서구중심적 역사인식을 갖게 된 근저에는,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시절 받아들인 스탈린의 역사발전 5단계론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조선과 같은 수준이 낮은 문화권에서 역사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란, 보다 우월한 문명을 알아채는 혜안과 그것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수용하려는 노력으로 치환된다. 둘째, 바로 그래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부각된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서구 문명을 가장 빨리 수용한 선구자가 되며, 일본 제국주의가 수행한 일련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3대 천재 중 하나인 이광수가 “민족을 위하여 친일을 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일제하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협조했던 것은 반민족 행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예비한 애국적 활동이 된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근대화와 독립에 기여한 외국인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도 뉴라이트들의 주장에서 빠지지 않는 얘기다. 셋째, 일제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를 긍정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 즉 민족주의는 철저히 배격된다. 이영훈에 따르면 ‘민족은 쉽게 선동되고 오도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항일투쟁에 나섰다 하더라도, 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어긋나는 좌익활동을 했다면 역사적으로 결코 긍정될 수 없다. 홍범도 흉상의 철거는 그런 맥락이다. 넷째, 뉴라이트는 1987년 이전에는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권력의 남용과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면서 민주주의의 여정은 완전히 종료됐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안병직은 1987년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는 완전히 확립됐으며, 이제 그 이상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좌익적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반일 몰이’는 뉴라이트에 대한 올바른 반론일까? 역사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미 몇 세대가 흘렀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의 노동자 민중이 겪어야 했던 착취와 수탈의 기억은 기록과 구전으로 계승된다. 뉴라이트의 일제하 독립운동 부정과 건국절 타령에 한국민 대다수가 본능적 반감을 갖는 이유다. 민주당 세력은 기회를 만난 듯이 윤석열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다. 예컨대 조국은 “뉴라이트들은 보수도 우파도 밀정도 아닌 대놓고 일본을 위해 복무하는 자들”이라며 “그런 자들을 주요 직위에 올린 자는 밀정 왕초”라며 윤석열을 비난했다. 민주당은 28일 ‘헌법부정 및 역사왜곡행위자 공직임용금지 등에 관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도 했다.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두둔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한 자는 공직에 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역사학자들이 올바로 지적한 대로, 이는 물론 터무니없는 과잉 입법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일 몰이’ 역시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라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헌법 전문에 기재된 대로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살피면,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분열 이후 ‘임정’은 김구 등 소수 우익 독립운동세력의 근거지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가 1930년대 이르러 군국주의적 파시즘 체제를 강화하고 우익 진영 대다수가 변절하자, 민족해방운동의 주도권은 완연하게 좌익 진영으로 넘어가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여러 차례 지도부가 검거되며 조직이 와해됐지만, 해방 직전까지도 국내에서 당 재건을 위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한반도에 인접한 중국 동북 지방에서 중국 공산당과 연계해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무장투쟁 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독립운동에서 오로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만을 좇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역시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의 종착점이라 보는 점에서는 여타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독점자본의 눈부신 성장은 한국을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욕망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반일 논리는 바로 이런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사진: MBC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으로 뉴라이트의 헛소리를 분쇄해야 뉴라이트 논리는 노동자계급 의식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일찍이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뉴라이트는 ‘선진화’란 명목 아래 일련의 감세, 작은 정부, 차별의 정당화 등을 주문해 왔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 질서를 인간의 자유가 온전히 실현된 역사의 궁극적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6년 어느 뉴라이트 논자는 “사유재산과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 때 인류사회는 궁극적으로 공정한 분배(실질적 평등)에 가장 근접한 결과”를 얻었다고 강변했다. 이렇게 떠들었던 자를 잡아 와서 눈앞에 오늘날의 저출생, 기후재난, 불평등 심화 데이터를 들이대야 한다. 출생률이 0.72명(2023년 기준)에 그치는 사회가 “공정한 분배(실질적 평등)에 가장 근접”한 사회란 말인가?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이윤 논리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3대 위기에 부닥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위기, 사회재생산 위기, 불평등 위기가 그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무분별한 착취를 제어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 자체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상황이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자본을 통제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이 다시 솟구쳐 오를 때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은 뉴라이트는 물론, 민주당과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의 논리를 단호히 배격하고 자신의 역사관으로 튼튼히 무장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역사를 통해 인류는 생산력의 발전을 향유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는 사회를 건설해 왔다. 역사는 소수의 선각자들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대중이 만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이 확고히 견지해야 할 역사관이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며, 한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이 강화되는 현실에서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역사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무분별한 반일 몰이에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인 사회주의자들과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자기 집 바닥에 토굴을 파고 경성콤그룹의 이재유를 한 달 넘게 은신시켰던 경성제대 미야케 시카노스케 교수를 되새기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역사일 것이다.2024-08-29 | 조회 1,935 -
프랑스 총선은 과연 극우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는가?6월 14일 신인민전선 선거강령 발표 사진: AFP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극우파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프랑스 총선이 7월 7일 예상 밖 결과와 함께 끝났다. 1차 투표에서 33.2%를 득표하며 1위를 했던 극우파 ‘국민연합’(RN)은 143석을 차지하며 3위로 밀려났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중도우파 ‘앙상블’은 1차 투표 3위(21.3%)라는 부진을 딛고 163석으로 2위로 올라섰다. ‘불복프랑스’(LFI)·사회당·공화당·녹색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생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PF)은 1차 투표에서 2위(28.2%)로 선전한 여세를 몰아 182석으로 깜짝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1차(66.7%)와 2차(67.1%) 모두 1997년 총선 이후 최고를 기록할 만큼 프랑스 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졌다. 2022년 총선에 비하면 20% 가량 투표율이 치솟았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 온 극우파 국민연합의 집권 여부였다. 2007년 총선 때만 해도 4.3%에 불과했던 극우파의 득표율이 2022년 총선 때 18.7%로 늘어났다가 올해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31.4%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2위를 한 마크롱 세력(14.6%)과 16.8%나 차이가 나면서 선거 결과는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오던 6월 9일 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한편으로 극우파의 기세가 탄력을 받은 상황에서 다음 총선까지 3년 동안 소수파 정부를 끌고 가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극우파의 집권을 경계하는 표가 결집함으로써 자신의 당이 2022년 총선의 부진을 딛고 다시 과반수를 획득할 수도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극우파의 집권 실패와 신인민전선의 ‘성공’ 마크롱이 그런 도박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 붕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내부 분란으로 시달리던 사회생태신인민연합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내부 이견이 첨예화하면서 끝내 붕괴했다.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리스트 공격”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사회당의 주장을 불복프랑스가 반대하자 사회당이 전격 철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크롱이 조기 총선을 발표하고 불과 5일 만인 6월 14일 불복프랑스·사회당·녹색당·공산당은 새 선거연합 ‘신인민전선’의 결성을 선언하면서 공동 강령을 발표했다.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급진좌파 불복프랑스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2023년 연금개악 취소 및 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0세로 하향 △세후 최저임금을 월 1,600유로(약 230만원)로 14% 인상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 동결 △임금과 연금의 물가연동제 △(2017년 마크롱 정부가 폐지한) 부유세 재도입 △과도한 이윤에 대한 새로운 세금 도입 △의회 투표를 생략할 수 있는 정부의 긴급명령 입법권을 헌법에서 삭제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반면 대외정책 분야에서는 사회당의 입장을 골격으로 해서 △러시아에 맞서 NATO 협력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계속 지원 △우크라이나에 프랑스의 직접적인 군사개입 반대 △두 국가 해법을 전제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이스라엘에 무기수출 중단 △10·7 하마스 공격을 ‘테러주의 학살’로 규정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체포영장 지지 등의 공동 강령이 만들어졌다. 또한 극우파 국민연합이 이민자 수의 대폭 축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거는 데 맞서 △2023년 마크롱 정부가 개악한 이민법 취소 △망명 절차를 더 관대하고 매끄럽게 하는 이민법 개정 등을 내걸었다. 결과적으로 신인민전선은 결성 23일 만에 극우파의 집권을 저지하고 최다 의석을 차지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신인민전선의 성공은 극우파의 집권 가능성에 맞서 신인민전선을 열렬히 지지한 노동자대중에게도 역시 성공을 뜻할까? 신인민전선의 모델 -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 극우파의 집권을 막겠다고 결성된 신인민전선이 모델로 한 것은, 그 이름에서 바로 드러나듯이 1936년의 프랑스 인민전선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프랑스 인민전선이 처음에는 파시즘에 맞서 그럴 듯하게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파시즘에게 스스로 굴복했다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신인민전선이 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한 이후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도 나치당과 비슷한 파시즘 세력이 거침없이 준동했다. 독일 노동자계급이 파시즘에게 패배한 핵심 이유가 공산당과 사회당의 분열에 있다고 본 프랑스 노동자대중은 파시즘에 맞선 공산당과 사회당의 단결을 아래로부터 추동해 냈다. 1935년 정치적 단결을 실현해 낸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파시즘 세력을 거리에서 육탄전을 펼쳐가며 분쇄해 냈을 때, 노동자대중의 자신감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과 사회당이 1936년 총선을 앞두고 자본가정당인 급진당을 끌어들여 인민전선을 결성했다. 57.8%를 득표하며 610석 가운데 386석(63.3%)을 차지한 인민전선의 총선 승리는 파시즘을 확실히 제압한 것처럼 보였다. 총선 직후 노동자들은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공장점거 총파업을 일으켰다. 10일 이상 프랑스를 완전히 마비시킨 총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 상황임에도) △집단교섭권과 파업권의 보편적 인정 △주 48시간 임금을 지급하며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2주간의 유급 여름휴가 등 상당한 양보를 제시했다. 1936년 총파업에 나선 르노 노동자들. '바캉스'라는 말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얻어낸 2주 유급휴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향해 전진할 수도 있었을 그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이 총파업을 중단시킨 것은 바로 인민전선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공산당이 급진당의 인민전선 이탈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중단하도록 설득하여 관철시킨 것이었다. 파시즘을 막아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총파업이 아니라 인민전선 정부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노동자들은 물러섰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세상을 바꾸는 길과는 반대로 갔다. 바로 옆 나라 스페인에서 비슷한 성격의 인민전선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파시즘 군부에 맞서 내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독일의 나치 정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가 스페인 군부를 공공연히 지원한 것과 달리)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급진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스페인 인민전선에 대한 지원을 포기했다. 급진당은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1년 뒤 인민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급진당 주도로 재구성된 인민전선 정부는 긴축정책을 전면화하고, 그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인민전선 정부의 정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노동자대중의 힘을 약화시키고 파시즘 세력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40년 애초 인민전선 정부를 출범시켰던 그 의회가 (히틀러에게 항복한) 파시즘 군부에게 나치 부역정권을 수립하도록 전권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최후를 맞이했다. 자본가정당과 연합한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 때문에 총파업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수동적 방관자로 전락했던 노동자대중은 결국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런데 만일 1936년 거대한 총파업에 나섰던 프랑스 노동자들이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면서 (당장 권력 장악까지는 아닐지라도) 작업장을 토대로 지역별로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해 내면서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감시하고 통제할 물질적 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했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제위기 신인민전선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지금 프랑스의 상황은 1930년대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은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비슷하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끝없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1930년대보다는 국가의 경제 개입이 훨씬 다양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경제위기의 양상이 덜 파국적이지만, 문제는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미국과도 뚜렷이 대비된다. 미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지난 15년 동안 기축통화 달러를 마음껏 찍어내며 자신의 경제위기를 나머지 세계로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전가해 왔다.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여전히 몇몇 나라를 상대로 제국주의적 수탈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달러화 대비 유로화가 가진 취약성은 미국과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벌써 수십 번 파산했어야 마땅한 달러화의 무제한 발권이 지속될 수 있는 힘은 첨단기술, 금융, 군사 부문에서 여전히 세계를 압도하는 미국의 패권에서 나온다. 그런 패권을 갖고 있지 않은 유럽은 따라서 유로화를 마음껏 찍어내며 국가개입을 극대화하는 마법을 부릴 수가 없다. 게다가 유로화는 유럽연합이 미국처럼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취약점을 안고 있다. 유럽연합 27개 국가 중 19개 국가가 유로화를 공동화폐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유로존 국가들은 특정 국가가 과도하게 재정을 지출하여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타국에 피해를 안길까봐 서로 민감하게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유로존에서는 매년 정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하고 누적된 총 정부부채를 GDP 대비 60% 이내로 유지한다는 이른바 ‘재정건전성’ 기준이 존재한다. 물론 이 기준은 수시로 무시되긴 하지만, 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처럼 무제한 발권을 통한 국가개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족쇄로 작용한다. 지난 15년 동안 자본주의 위기 대응에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발생한 차이는 2008년 미국 GDP 대비 110.3%를 기록했던 유럽연합의 GDP가 2023년에는 67.1%로 축소됐다는 통계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위기 전가 공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2008년 이후 만성화된 유럽의 경제위기는 당연하게도 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수많은 공세를 낳았다.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도 줄기차게 전개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정권의 공세와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대한 파노라마를 형성하며 전개돼 왔다. 2010년 우파 정권이 밀어붙인 연금개악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최대 300만 명이 참여한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총파업의 위력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시킨 노조 지도부 때문에 ‘60세 정년의 62세로 연장’ 등을 요지로 하는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 노조 지도부가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원에 힘 받은 중도좌파 사회당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연금개악을 되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2016년에는 노동시간 연장과 정리해고 자유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했다. 다시 노동자들이 격렬한 총파업으로 맞섰지만, 사회당 정부는 헌법상 긴급명령 제도를 활용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입법을 강행했다. 이후 사회당 정부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내린 틈을 뚫고 중도우파 마크롱이 혜성처럼 나타나 권력을 장악했다. 프랑스 정치의 양대 축으로서 번갈아 공세를 폈던 우파와 중도좌파가 공히 대중의 분노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정치적 격변이었다. 그런데 2017년 집권한 마크롱 또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18년의 유류세 인상은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광범위한 빈민층의 반란을 촉발했다. 2019년의 공공부문 연금개악 추진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강력한 총파업에 맞닥뜨렸고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2022년 가까스로 재집권에 성공한 마크롱은 2023년 다시 ‘정년 64세로 추가 연장’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악을 추진했다. 2023년, 그러니까 지난해 상반기 연금개악에 맞서 다시 한 번 거대한 총파업이 전개됐다. 최대 참가 인원이 350만 명으로 2010년의 규모를 능가하면서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노동자투쟁이 됐다. 전통적으로 노동자투쟁의 중심 역할을 해온 대도시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중소도시들까지도 총파업 열기로 가득 찼다. 여론조사에서 94%가 연금개악에 반대하고 65%가 연금개악 철회를 위한 경제봉쇄를 지지할 정도로 일반 대중의 지지도 압도적이었다. 2010년의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기억하는 상황에서, 일부 선진노동자들은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에 착수했다. 에너지·정유·철도·청소 등 일부 부문에서는 실제로 무기한 파업이 아래로부터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총파업을 10여 차례의 하루 경고파업과 거리시위로 제한하면서, 더 이상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들이 생각한 대안은 ‘정권교체’였다. 그들이 생각한 정권교체의 주체는 2022년 총선 때 결성됐던 좌파 선거연합 ‘사회생태신인민연합’(NUPES)이었다. 그 중심에는 사회당의 몰락 이후 좌파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급진좌파 불복프랑스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명백하게 배신했던 사회당 또한 좌파 선거연합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좌파 선거연합의 집권이 또 다른 배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총파업이 연금개악을 막지 못하고 허망하게 소멸되자, 대중의 기대는 좌파 선거연합보다는 한 번도 집권한 적이 없는 극우파 국민연합을 향해 쏠렸다. 연금개악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총파업 시위에는 매우 적대적이었던 극우파가 아이러니하게도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 극우파의 지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마크롱 정부는 그 기세를 꺾어볼 요량으로 극우파의 핵심 공약인 이민 제한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민법 개악을 지난해 12월 강행했다. 이민 허용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극우파로 쏠리는 흐름을 자기 당에 묶어 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당은 분열되고 극우파의 기세만 더 살려주는 꼴이 되었다. 바로 이런 배경 위에서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이 (2022년 총선 때 18.7%에서 31.4%로 득표율이 폭증하는) 눈부신 선전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극우파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구체적인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과정의 결과였다. 2023년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 사진:AFP 무엇이 진정한 희망인가? 자본가세력과의 인민전선인가, 투쟁하는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인가? 이번 총선에서 극우파의 상승세가 집권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았다고 해서 불복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신인민전선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복프랑스는 지난해 연금개악 반대투쟁 때 오로지 그 정치적 수혜를 얻는 것에만 집중할 뿐 무기한 총파업을 건설하려는 노력에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 그런 태도를 가진 불복프랑스가 설령 집권을 한들 노동자들의 열망을 진정으로 관철해 낼 수 있을까?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주관적인 진실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역학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기한 총파업과 같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상황이 열리면 노동자대중은 자본주의 일상 속에서는 감히 꿈꾸지 못하던 변화를 추구하고 실행하면서 자본주의를 결정적으로 타격할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한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노동자평의회 같은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집결하는 조직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들이 중단되고 자본주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래서 노동자대중의 힘이 가라앉고 자본가계급의 통제력에 압도당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대중의 의식마저 부르주아 의식에 장악당하게 된다. 그렇게 무기력해진 노동자들 위에서 자본가계급이 가하는 압력은 어떤 정권에게든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불복프랑스가 보여준 ‘정치’는 만일 그들이 집권한다면 훨씬 더 거세질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불복프랑스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신인민전선에 참여한 사회당은 2012년부터 5년 간 대통령을 역임하며 노동법 개악 강행 등을 주도했던 올랑드를 총선 후보로 내세웠고 결국 당선까지 시켰다. 6월 30일 오후 8시 15분, 1차 투표의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불복프랑스를 대표하는 멜랑숑은 신인민전선 소속으로 3위를 한 모든 후보들의 사퇴를 전격 선언하며 극우파 국민연합에 맞선 이른바 ‘공화국전선’의 형성에 앞장섰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신인민전선 후보들이 양보해 준 후보들 가운데에는 마크롱 정부의 전 총리로서 2023년 연금개악과 그 긴급명령 강행처리를 주도했던 보른, 그리고 역시 마크롱 정부의 현 내무장관으로서 노란조끼 시위부터 연금개악 반대투쟁과 경찰폭력 항의투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위에 대한 잔인한 폭력진압과 2023년 이민법 개악을 주도했던 다르마냉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극우파 대통령 밀레이의 미치광이 같은 정책들이 보여주듯이, 지난 10여 년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성장해 온 극우파의 집권은 노동자들에 대한 훨씬 더 강화된 공세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앞으로 자본주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면 이들 극우파는 노동자의 모든 성과를 파괴하고 노동자운동의 절멸을 시도하는 파시즘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갈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가 끝없이 전개되는 상황에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대안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야만 나의 생존을 지킬 수 있다는 극우파와 파시즘의 논리가 대중에게 악마적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는 것, 파시즘으로의 진화를 가로막는 것은 오늘날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얼핏 보기에 극우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과의 연합은 극우파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최근의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러한 방법은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극우파의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줄 뿐이다. 극우파의 전진을 저지할 힘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불러내는 데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건설해 내고, 그 한복판에서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 기관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 자본가세력과 연합하는 인민전선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노동자투쟁의 건설 및 노동자대중의 자기조직화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2024-07-19 | 조회 4,439 -
집게손가락을 넘어서 변혁을 이야기하기지난 7월 12일, 한 인터넷언론 기사를 통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민주항해’에 혐오표현이 다수 사용되었음이 드러났다. 안전캠페인 포스터에 사용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들을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남성비하 광고라고 한 것이다. “정신적 문둥병”, “수구 꼴페미”라는 표현과 “페미들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포스터 철거를 요구하는 글이었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금속노조 여성위원회는 위 소식지에 대해 사과글을 올렸다. 소식지에서 가장 문제가 된 점은 집게손가락 이미지를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집게손가락이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규정되는 이유는,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조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이 이미지를 사용한 기업들에 이 이미지가 ‘남성혐오’라며 삭제를 요청하고 더 나아가 담당 노동자 해고를 요구한다. 지난 7월 2일, 르노코리아 신차 홍보영상에서 여성 노동자가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많은 남성이 온라인에서 분노를 표현하며 해당 노동자 신상 공개와 해고까지 요구했다. 해당 노동자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혐오 표현으로 해석될 줄 몰랐다며 사과문을 게시했고, 사측은 해당 노동자를 직무정지한 상태다. 2021년 GS25의 홍보포스터에 나온 집게손가락 이미지부터 시작하여 포스코, 동서식품, BBQ, 넥슨 등 대기업은 이런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회사 매출과 주가를 걱정하며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혐오 표현임을 화급히 인정했다. 비뚤어진 효능감을 느낀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앞으로 집게손가락을 볼 때마다 이런 논란을 만들 것이다. 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 체제 그러나 문제는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다. 기후위기, 경제위기, 전쟁위기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진보적 단체 등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는 본인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정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한다고 인식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력하라’고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종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한국 남성들의 박탈감과 고통 뒤에는 징병제, 취업난, 치솟는 물가와 낮은 임금, 저렴하고 살기 좋은 주택의 부족,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능력주의 등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계급투쟁으로, 함께 싸워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누군가를 혐오 대상으로 제물 삼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체제에 맞선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장애인 등이 자신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짓는다. 일자리도, 공공복지도 소수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정서가 만연하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보다, 왜 여성·성소수자·이주민·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나보다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는 저들이, 왜 응당 나에게 돌아와야 할 혜택을 가져가는가? 이렇게 소수자들이 내는 목소리에, 나아가 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고, 소위 ‘비정상’이라고 규정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통해 계급지배를 강화한다.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를 혐오하고 낙인찍고 조롱해야 하는지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특히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등이 이곳에서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고 ‘남성’의 연대와 결속을 확인시켜 준다. 일간베스트,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이종격투기(다음카페) 등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남성이 경험하는 고통과 부조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요구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에서 비롯된다. 신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디며 자신을 희생해 ‘정상가족’의 가장이 되라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규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통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싸움을 펼쳐야 할 이때,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이 뒤틀린 체제의 뒤틀린 존속으로 이어질 뿐이다. 약자 혐오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로 -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은 집게손가락이 아니라 이 체제다 온라인 공간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토로하는 부조리, 부정의를 면밀히 포착해야 한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사용하는 언어, 공유하는 가치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에서 자본의 질서와 규범이 반영되기 쉬우나, 그것을 역으로 활용하여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적 단결을 추동할 수도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 대중화를 경험하고,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이 주말마다 광화문에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 혐오표현을 법으로 규제하고 규율, 감독해야 하는가? 아니다. 자본이 만든 부조리와 모순을 명확히 직시할 수 있도록 연대와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을 설득하고, 사회주의 변혁을 이야기하자. 하다못해 인터넷 뉴스 댓글에도 혐오에 동조하거나 편승하지 말자고, 문제는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있다고 이야기하자. SNS에 짧게라도, 우리가 분노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실태를 이야기하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조장하는 혐오에 맞선 노동조합의 실천이다.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기에 체제가 조장하는 소수자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나, 또한 그 체제에 맞서 싸워왔으며, 또한 싸우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전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직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다. 7월 15일, 현대중공업지부는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멸시적인 언어를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해 사과문을 발행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단결과 연대를 위해 결성된 노동조합이 여성혐오와 억압에 맞선 투쟁에 더 앞장서야 한다. 집게손가락을 색출하자는 마녀사냥에 노동조합이 맞서야 한다. 우리의 분노를, 그 분노가 응당 향해야 할 곳으로부터 사회적 소수자에게 돌리는 자본주의에 맞서자.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의 분노를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는 이 사회를, 바로 그 착취당하고 수탈당한 사람들이 째려볼 수 있도록 실천하고 설득하자.2024-07-17 | 조회 3,451 -
해병대 채 상병 사망 1년, 노동자계급 주도로 윤석열정권 퇴진투쟁에 나서자사진: 연합뉴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사망한 대한민국 장병은 95명에 달한다. 3.8일에 한 명꼴로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장병들은 여러 이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다. 훈련 중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군대 내 폭력으로 죽음을 맞거나 스스로 생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규정에 어긋난 ‘군기훈련’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작전이나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음을 마주하기도 한다. 해병대 채 상병 역시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7월 8일, 경찰이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은 채 상병 사망사건에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를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3년 7월 19일 채 상병 사망 이후 1년을 앞둔 지금, 채 상병 사건은 윤석열 퇴진투쟁의 발화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의 경과와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 채 상병의 죽음이 말하는 것 - 병사들에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라 2023년 7월 19일, 해병대 채수근 상병은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고, 실종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장병들은 수색작업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작전 지역으로 이동했고, 채 상병의 직속 대대장인 포7대대장이 ‘위험해서 현장수색을 하면 안 된다’고 보고했음에도, 해병1사단은 사단장 명령에 따라 수색을 강행했다. 사단장에게는 관할 부대가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했을 뿐, 병사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수색 당시 채 상병을 비롯한 병사들에게는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문제의 임성근 사단장은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로 복장을 통일하라’는 지침을 내렸을 뿐이다. ‘해병대’가 잘 보여야하기에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투입 예정이던 장갑차까지 철수할 정도로 물살이 강한 상황에서, 병사들은 그 어떤 안전장비도 없이 ‘인간띠’ 수색을 해야 했고 채 상병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다. 당시 해병대 현장지휘관은 채 상병이 떠내려가자 직접 신고하는 대신 주민에게 신고를 요청했다. “해병대 간부 한명이 다급하게 뛰어와 119 신고를 요청해 오전 9시 11분쯤 신고 … 구급대는 체감상 10분 안에 왔지만 해병대원은 이미 떠내려간 뒤”, 최초 신고 주민이 언론에 밝힌 내용이다. 왜 현장지휘관은 채 상병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도 직접 신고하지 않았을까? 병사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왜 주민에게 신고를 부탁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까? 해병대 측은 현장지휘관이 직접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향후 진상이 규명되어야 할 일이나, 분명한 것은 해병대 현장 간부는 자신이 군 외부의 사건 개입을 초래한 당사자로 기록되는 것을 저어했으며, 이는 군의 폐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군은 군 외부 조직에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군 내부의 일을 바깥에 알리는 행위를 철저히 억압하고, 이를 통해 군의 억압적 질서를 유지한다. 이렇듯 군대는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이다. 채 상병과 동료 병사들에게는 안전장비도 없는 수중수색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병사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 내려와도 저항할 수 없다. 양심적인 지휘관이 있었다면 채 상병이 죽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병사들이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양심적 지휘관’의 선의가 아니라 병사들의 권리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병사들에게 보장해야 한다. 이런 권리는 한국 현실에서 엄두도 못 낼 만큼 낯설게 들린다. 그러나 이미 독일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 그리고 국제법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을 병사의 권리로 명시한다. 이는 주로 2차대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전범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론했다. 나치 전범들의 변론에서 드러나듯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병사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거대한 전쟁범죄도, 군대 내의 억울한 죽음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부 국가에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나치 전범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했다 이렇듯, 병사에게 복종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물론, 병사의 불복종을 권리로 명기한 국가들에서 실제 병사들이 불복종의 권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라크 전쟁 파병을 거부한 병사에 대한 미 군사법원의 처벌1)처럼 말이다.) 이 권리는 단지 병사 개인의 권리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병사들에게 단체를 만들고 집단행동에 나설 권리를 보장해야 비로소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 채 상병의 죽음이 드러냈듯, 병사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필요하다. 1)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불복종 사례로 아구스틴 아구아요(Agustín Aguayo)의 사례가 있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아구아요는 학비를 벌고자 2002년 미군에 입대했다. 입대 당시 그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으나, 군대에서의 경험으로 전쟁에 반대하게 되었다. 그가 파병되기 전인 2004년 2월, 아구아요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소급해 신청했으나 거부되었고, 결국 전투의무병으로 이라크에서 1년을 복무한다. 2005년, 다시 양심적 병역거부자 지위를 요구하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되었다. 2006년 독일 주둔 중이던 그는, 부대가 이라크로 복귀한다는 통보를 받고 기지를 떠났다. 2007년 3월, 미 군사법원은 탈영죄로 유죄판결을 내렸고, 그를 불명예 제대시켰다. 아구아요는 6개월간 복역했고 앰네스티는 그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윤석열 정권의 외압, 특검과 탄핵청원을 둘러싼 공방 채 상병의 죽음 이후 전개를 보자. 사건 수사 책임을 맡은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사건을 조사했고, 국방부 장관 결재를 거쳐 경상북도경찰청에 수사자료를 이첩했다. 박정훈 단장에 따르면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에게는 과실치사 혐의가 있고, 임성근 역시 사퇴를 결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외압’이 시작된다. 수사자료 이첩 후,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결재를 뒤집고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은 해병대 수사단에게 ‘관련자 혐의사실을 삭제하라’고 연락했다. 이어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자료를 경찰로부터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했으며, 수색을 명령한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에서 제외한 채 사건을 경찰에 다시 넘겼다. 한 병사를 죽음으로 몬 주모자가 면죄되는 비상식적인 과정에, 권력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번지는 것은 당연하다. 일파만파 번지는 의혹에 대해, 정권은 강행돌파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에 임명해 국외로 빼내려는 윤석열의 시도는 노동자 민중의 더 큰 분노를 불렀을 뿐이다. 국방부 장관이 입장을 바꾼 배경, 박정훈 대령이 해임되고 ‘항명 수괴’ 혐의로 고발된 배경, 임성근 해병1사단장에게 어떤 혐의도 적용되지 않은 배경에 윤석열의 ‘격노’가 있었다는 것, 격노의 이유와 이후 과정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 채 상병 특검이 제기되는 이유다. 심지어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임성근 사단장이 사임하지 않은 배경에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 피의자의 임성근 사단장 구명을 위한 청와대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배우자의 금융범죄자 지인이 주도해 국가권력을 움직여냈다는 것이다. ‘공정’을 내건 정부의 국가권력은 ‘비선’을 통해, 그야말로 추잡하게 행사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사건 은폐에 여념이 없다. 2024년 5월 2일, 국회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으나 5월 21일 윤석열은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갔다. 5월 28일, 국회는 채 상병 특검법을 재표결했지만 재석 294인, 찬성 179표로 부결됐다. 결국 21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법안 재의결 요건, 즉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되었다. 38일 뒤인 7월 4일, 22대 국회 7월 임시국회 본회의는 채 상병 특검법을 찬성 189표, 반대 1표로 가결했다. 7월 9일, 윤석열은 예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정권에, 기를 쓰고 진실 공개를 막아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물론 정권이 사건을 은폐할수록, 이를 규명하라는 대중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7월 폭우 피해 실종자 구조 중 사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수사단장에 외압을 행사했습니다. 또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항명죄를 뒤집어씌워 사건 수사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는 군사법원법 위반으로 명백한 탄핵 사유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윤석열은 채해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 140만명을 돌파한 윤석열 탄핵 국민청원의 첫 사유가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정권의 외압 행사다. 종합하면, 상황은 다음과 같다. 부당한 명령으로 병사가 죽었고, 진실을 밝히려는 군대 내부의 시도가 윤석열 정권과 군부에 의해 가로막혔으며, 정권의 외압 배경에 대통령 주변인의 로비가 있었음이 알려지는 등 국가권력의 악취나는 작동이 드러나고 있고, 분노한 대중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과 탄핵을 청원하고 있다. 오는 7월 19일과 26일, 윤석열 탄핵 청원 심사를 위한 국회청문회가 열린다. 윤석열 퇴진투쟁을 아래로부터 확대하자 진실을 조금이라도 밝히기 위해, 특검은 필요하다. 그러나 특검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탄핵 국민청원을 수용해 국회가 탄핵에 나선다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현 국면과 2016~2017년 박근혜 퇴진투쟁 당시의 중요한 차이점은, 2016년 당시에는 가두투쟁이 기회주의적 야당을 왼쪽으로 견인하며 박근혜 퇴진 요구를 대중화했음에 반해, 현재는 ‘대통령 퇴진’의 경로가 처음부터 국회로 잡히고 있다는 점이다. 돌아보자. 2016년 10월 26일은 당시 여야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을 합의한 날이다. 당시 민주당 입장은 ‘우선 특검과 추후 국정조사 추진’, 정의당 입장은 ‘특검과 국정조사 병행’, ‘청와대 참모진 전면 교체와 내각 총사퇴를 통한 거국 중립내각 구성’, 국민의당 입장은 ‘문고리 3인방 배제’에 지나지 않았다. 2016년 11월 초까지만 해도 보수야당의 요구는 ‘국회추천 총리임명, 특검, 국정조사’에 지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얼마든지 ‘거국중립내각’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즉, 광장의 투쟁이 없었다면 박근혜 탄핵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노총의 정치총파업이 보다 위력있게 전개되며 광장투쟁과 결합되었더라면, 투쟁의 주도권은 민주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노동자 민중은 박근혜 정권을 자신의 손으로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어느 것 하나 바꾸어내지 못한 문재인 정부 5년의 환멸 또한,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등장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핵심은 박근혜 퇴진투쟁 국면 노동자계급의 역할이 미약했다는 것, 따라서 박근혜 퇴진투쟁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정상화’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 상병 특검법, 노조법 2·3조 개정안, 전세사기특별법 ….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이 정부가 행사한 거부권만 15번이다. 정부는 거부권 남발의 효과를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안을 선택할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지배계급 내부 분열이 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급 내부의 위기가 곧 노동자 민중의 기회인 것은 아니다. 지금, 엄중한 정세에 비해 노동자 민중의 주체 역량은 미약하다. 연대를 확대하며 다가올 격돌에 대비해야 한다. 아리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투쟁, 노조법 2·3조를 온전히 개정하는 투쟁, 일터의 경계를 넘어 생존권 쟁취투쟁을 확대하자. 노동자계급 주도로 윤석열 퇴진투쟁을 확대하며 ‘체제의 정상화’, 그 너머를 준비해야 한다.2024-07-15 | 조회 2,4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