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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노동자 민중의 의지를 하루아침에 짓밟는 부르주아 엘리트들사진: MBC 내란 수괴가 풀려났다. 한덕수도 복귀했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윤석열의 파면 기각까지 걱정하고 있다. 겨우내 차가운 광장에서 피눈물 흘리며 외쳤던 주권자의 권리는 어디로 갔는가? 윤석열은 자신이 곳곳에 심어 놓은 부르주아 엘리트들이 값어치를 하고 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하지도 않은 극소수 엘리트가 수백만, 수천만 노동자 민중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다. 무대 뒤의 실세들 그나마 주기적인 선거로 바뀌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바로 검찰, 경찰, 법원, 군대 내에 있는 부르주아 엘리트들이다. 이 엘리트 집단은 국민의힘이 집권하건 민주당이 집권하건 상관없이 국가기구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진정한 실세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계급적 본성을 체화한 이들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민중에게 적대적이다. 이들은 대중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어떤 행보를 하건 그 임기 역시 거의 완벽하게 보장된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다. 이들은 노동자 민중을 위한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쇼’일 뿐이다. 무대 뒤에선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에 복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뜬구름 한때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칭송했던 공수처를 보자. 그들은 공수처가 자본가들과 결탁한 부패·비리 고위공직자들을 제대로 수사할 것처럼 떠벌렸다. 정작 1년 예산이 200억이라는 공수처가 지난 4년 동안 기소한 사건은 5건이고, 그나마 유죄를 입증한 사건은 1건이었다.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업무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행정기관이다. 형식적 독립성은 있지만,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독립성은 말로만 그칠 뿐이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임명한 공수처장 오동운은 윤석열 체포를 위해 200명의 인력만 투입하며 사실상 ‘쇼’를 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밀려 영장을 집행했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공수처는 검찰·경찰과 수사 범위가 중복되어 수시로 수사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도대체 이런 경쟁이 노동자 민중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무엇보다 공수처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실질적인 통제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이 공수처장을 비롯해 공수처 간부들을 직접 선출할 권리가 전혀 없다. 수사 과정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자료도 볼 수 없다. 최소한의 통제도 불가능하다. 다른 국가기구의 부르주아 엘리트들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검찰은 윤석열 체포를 끝까지 방해한 경호차장 김성훈의 구속영장을 세 차례나 반려했다.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동참으로 구속되었지만, 박현수, 백남익 등 내란 가담 의혹을 받은 또 다른 쓰레기들이 경찰 내부 인사에서 무더기로 승진했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에 대한 모든 종류의 환상을 버려야 소위 진보적 법관으로 알려진 헌법재판소의 문형배, 이미선도 한덕수 탄핵소추안에 대한 기각 의견을 냈다. 한덕수가 계엄 당시 적극적인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고,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는 위법하지만,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계엄을 막으려는 그 어떠한 실질적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계엄을 묵인했고, 한동훈과 공동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실권을 장악하려 했던 한덕수에게 면죄부를 줬다. 부부가 수십억 주식 부자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이미선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과정에 재판연구관으로 참여했는데, 희대의 궤변인 '신의칙' 논리를 옹호하는 논문을 기고했다. 당시 사법부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신의성실의 원칙’, 즉 신의칙이 있으므로 노동자는 응당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을 자본을 위해 내어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그 자체로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는데, ‘노사합의가 있을 경우 정기상여금 등 각종 정기수당을 영원히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괴한 논리였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계급투쟁의 원칙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선은 이 해괴한 ‘신의칙’에 대해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 규정성의 조화를 이뤘다"라고 얘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못 만들 논리가 없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판사들도, 근본에서 노동자 민중의 편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권리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는 안정되어야 하며 그것이 이들의 대전제다. 그런 관점 아래에서는 언제든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가 아니다'라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설사 이들이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치자.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라는 논리도 그 대전제에서 나온다. 즉, 이들이 윤석열을 파면한다면, 그 이유는 분노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체제가 뒤집어질 가능성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위 '진보적 법관'들에게 환상을 갖고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국가기구도 노동자 민중을 대신해 내란 세력을 진압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원 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환상을 버려야만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올곧게 전진할 수 있다. 자본가 민주주의의 실체 검찰과 판사들처럼 노동자 민중에게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이 주권자 위에,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를 단호히 배격한다. 자신의 권력 자체를 위협하는 노동자 민중의 압도적 힘이 행사되지 않는 한, 그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지만, 노동자 민중에게는 무한하게 억압적 태도로 나온다. 이 주권자로부터의 '자립성'은 계엄 국면에서 극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자본가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 국가운영 참여를 차단한다. 그래야 국가기구와 국가 관료들이, 정치인들이 노동자 민중을 대리해 사회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본가 민주주의는 몇몇 자본가정당이 선거 놀음으로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는 껍데기 민주주의다. 국가기구와 관료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자본가들은 검찰, 법원 등의 엘리트들과 수백 가닥의 사슬로 연결돼 있다. '삼성장학금 검사', '떡값 검사'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작년에는 쿠팡이 정·관계, 언론계, 법조계 인사 61명을 영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가기구와 관료들은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 따라서 자본가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생존권에 무관심하다. 세종호텔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옵티칼지회 노동자가 목숨 걸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지만 정부, 수많은 언론, 자본가정당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본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자본가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는 범위 내로만 제한하며,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착취를 보호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저임금, 불평등, 차별 등 온갖 재앙이 노동자들을 덮쳐도, 자본가 민주주의는 이 모두를 합법화한다. 반도체특별법과 부자감세를 추진하며 삼성 이재용을 만나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라고 추켜세운 이재명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자본가 민주주의의 틀 안에 있다. 근본 대안을 향해 나아가자 노동자 민주주의는 전혀 다르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조직과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실질적 민주주의다. 현장, 작업장을 기본으로 노동자 민중의 대표자들이 선출되고, 이들이 구성하는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는 민주주의다. 정부의 모든 핵심 관리는 노동자 민중 대표자회의, 즉 노동자 정부에서 선출되어야 한다. 이들은 그 어떠한 특권도 누릴 수 없으며, 노동자의 평균임금만 받아야 한다. 노동자 민중은 언제든지 이들을 소환하고 파면할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임기를 마치거나 소환되면, 현장과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몇 년에 한 번씩 '누가 노동자계급을 지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본주의 선거가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노동자 민중 전체가 언제든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며 집행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 노동자 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충분한 임금,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모든 혐오와 차별을 끝장내고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물론, 이런 근본 대안은 당장에 실현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파괴할 힘, 세상을 송두리째 흔들 힘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노동자 민중의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내란에 맞선 투쟁으로 일어나 노동자 민중의 역동성이 이 체제의 울타리에 갇히지 말고 더 뻗어나가야만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당장 시급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인 힘으로 내란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는 일이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하지도 않은 극소수 판사들에게,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억압하는 국가기구에 노동자 민중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윤석열 파면을 넘어 계엄제도 철폐를 요구한다. 대통령 국민투표 파면제, 국회의원 주민소환제, 검찰·경찰·사법부 주민선출소환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한다. 더 이상 국가기구에 의존하지 말고,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노동자 민중의 힘을 총동원하자. 윤석열 파면을 넘어 사회대변혁으로 나아갈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말자.2025-03-26 | 조회 6,389 -
진보당의 사과가 남기는 질문 - 민주당 혀끝만 바라보다 무기력해지는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2023년 6월, 진보당은 3살 아동의 외국인보호소 구금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3살 아동은 창문 없는 지하 외국인보호소에서 식사와 아동용품도 제공받지 못하고 구금됐다가 강제 출국당했다. 202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이 '구금기간'에 대한 제한이 없고 '사법적 심사'가 없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진보당은 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하며 법무부를 비판했다. 지난 2월 28일,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진보당의 찬성 표결을 사과했다. 해당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채 표결에 임했다"면서 "이주구금제도 개선에 애써온 많은 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라고 했다. 개정안은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74명 중 26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국민의힘, 민주당만이 아니라 진보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2년 전과 후, 달라진 진보당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가?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은 구금기간을 최대 9개월로 하되, 예외적으로 20개월로 연장할 수 있고, '재보호'(재구금)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무기한 구금의 여지를 남겨뒀다. 영장 없는 구금도 바뀌지 않았다. 구금과 구금연장 결정을 법원이 아니라 법무부 내부 '외국인보호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변명하지 않고 빠르게 사과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개정안의 문제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당은 바로 2년 전 비판 성명서를 냈고, 그동안 수많은 이주인권단체가 이주민 인권을 우선하라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퇴진 광장에서도 이주인권 단체들은 출입국관리법의 올바른 개정을 계속 외쳐왔다. 진보당의 민족주의 노선이 이 문제에 대한 둔감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또는, 애초 법무부 개정안보다는 나은 안이라 생각하고 별 문제의식 없이 찬성표를 던졌을 수 있다. 애초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 구금기간을 원칙적으로 18개월, 예외적으로 36개월로 하는 안을 냈다. 이 안은 개악된 측면도 많아 법무부 자신도 고집할 수 없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구금기간이 최대 100일 이내여야 하고, 구금 개시와 연장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법무부 안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도 이주노동자의 인권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만약 진보당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투쟁정당이라면, 먼저 투쟁하는 당사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국회 안팎에서 이 기만적인 개정안의 본질을 폭로하고 크고 작은 투쟁을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당은 그렇게 하는 대신 부르주아 법률에 순응했다. 민주당만 바라보는 태도도 한몫했다. 민주당이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말로는 투쟁을 외치고 광장을 강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투쟁과 광장을 비껴가는 선거주의 정당의 특성은 진보당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거주의 정당은 거리와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는 어려운 방법보다는, 성명서로 때우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며 의석수 늘리기에 골몰한다. 건널 수 없는 강 출입국관리법 개정 표결을 두고 드러난 진보당의 민주당 추종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2023년 10월 6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을 위한 건설 전담 공단 설립근거를 담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단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생태계 파괴와 신공항 건설 중단'을 기조와 요구로 담은 923 기후정의행진이 끝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진보당이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 단체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강성희 의원은 개인 SNS에 "법안을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채 찬성 표결했다. 진보당은 가덕도신공항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는 사과문을 올렸고, 진보당 기후특위는 '신공항 반대'가 진보당의 당론'이라는 해명을 남겼다. 이런 흐름은 분명한 맥락이 있다. 진보당은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민주당과의 노골적인 연합에 나섰다. 최근에도 진보당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과 함께 '내란종식 민주헌정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를 꾸리면서 민주당의 정치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했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 자본가들과 부자들의 이해를 앞세우고 있는 민주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또 다른 자본가정당인 민주당과 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이해도 대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이다. 노동자운동의 독립성을 파괴하는 정치행위와 노동자운동을 대변하는 정치행위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술을 계속 내세운다면, 그것은 '정치적 사기'일 뿐이다. 민주당은 '선거 득표에 도움이 되냐, 되지 않느냐'를 중심으로 노동자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계산할 텐데, 득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성소수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진정성은 더욱더 기대할 수 없다. 최근 민주당 인권위원장 출신 국회의원 주철현은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민주당에 끌려다니고 그들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토사구팽 신세가 될 뿐이다. 민주당 혀끝만 바라보다 그 혀가 노동자의 말을 다 삼켜버리면, 무기력해지는 비극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2.19. 야5당 원탁회의 출범 사진: 한겨레 출입국관리법의 또 다른 문제 최근 극우들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이주민,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 의식을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고통과 불안의 원흉으로 지목해 없애버림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전쟁, 기근, 패스트 같은 전염병이 유발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녀사냥에 빠져들었던 유럽인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서도 출입국관리법을 활용한다. 출입국관리법 17조 ②항은 이렇다.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외국인은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데, 탄핵 집회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 중국인들을 추방해야 한다." 이들은 사실관계조차 왜곡하고 있다. 그런데 법 자체가 수많은 외국인의 기본권을 억누른다. 외국인(이주민)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이 법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집회, 시위 참여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활동까지 봉쇄당한다. 실제로 수많은 이주노동자는 이번 윤석열 퇴진투쟁 국면에서 ‘외국인 정치활동 금지’ 조항 때문에 거리로 나서지 못했다. 거리로 나서 윤석열 퇴진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실현을 외치고 싶어도 법을 위반하게 될까봐, 그래서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후 강제로 쫓겨날까봐 나오지 못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조차 여러 차례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른 전망 만약 노동자들이 이런 일에 계속 침묵하면,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르고,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가르고 차별하는 일에 침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막혀 있는 고용허가제 아래에서 계속 불법 노동자로 내몰리고, 그래서 외국인보호소에 영장도 없이 갇혔다가 쫓겨나고, 그런데 외국인 정치활동 금지 때문에, 저항에 나서기 어려운 열악한 현실이 계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처단함으로써 살길을 찾으려는 사회의 퇴행적 정서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노동자를 갈라놓는 모든 경계선을 넘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해야만 이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불안과 고통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 그 길을 열기 위해선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시키고 자본가 정부와 뒤섞이게 만드는 야권연대 전망과 민족주의 전망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투쟁 전망,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지향하는 국제주의 전망을 움켜쥐어야 한다.2025-03-04 | 조회 6,223 -
12·3 이후 극우세력의 준동과 노동자계급의 대응방향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 못지않게 이후 극우세력의 준동 또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서부지법 폭동,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공연한 폭동 모의와 선동, 황당한 부정선거 음모론, 계몽령 운운하며 계엄의 실체를 덮으려는 새빨간 거짓말들, 인권위를 동원한 윤석열 비호 등등.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전제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깨져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트럼프 재집권 이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2021년 의사당 폭동자들에 대한 사면, 이민자들의 대량 체포, 연방공무원 대량해고 추진, 캐나다·파나마·그린란드 등에 대한 주권 부정,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이주와 미국에 의한 강탈 계획 등등. 극우세력의 준동이 이처럼 한국과 세계를 뒤흔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노동자계급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1. 개념 정리 극우세력의 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개념 정리부터 시작해 보자. 극우와 우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극우와 파시즘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좌파, 우파, 극우, 파시즘의 개념부터 하나씩 정리해 보자. 1) 좌파와 우파 좌파는 일반적으로 기존 사회질서 안에서 고통당하는 이들, 즉 착취·억압받는 노동자·민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을 말한다. 반대로 우파는 일반적으로 기존 사회질서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지배계급, 즉 자본가계급과 그 하수인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을 말한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좌파는 기존 사회질서를 변화시키려 하고 우파는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파가 기존 사회질서의 유지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종종 우파는 지배계급의 기득권을 되찾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기존 사회질서의 변화를 추구한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또한 보편적 해방을 향해 도도히 전진해 온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반동적 변화다. 우파가 반동적 변화를 추구할 때, 당연히 좌파는 그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때 좌파가 변화에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이 역사적으로 성취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지 기존 사회질서 자체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 좌파는 보편적 해방을 향해 기존 사회질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좌파도 우파도 내부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특히 우파는 일반적으로 중도우파(리버럴·자유주의)와 보수우파(보수파)로 나뉜다. 보수우파가 보다 간명하게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면, 중도우파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를 화해시키려는 외관을 통해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킨다. 중도우파의 존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운용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보수우파의 노골적인 자본가계급 이해관계 옹호에 분노한 노동자·민중에게 중도우파가 그럴싸한 대안으로 내세워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이 다시 중도우파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을 때 새롭게 단장한 보수우파가 다시 대안으로 내세워진다. 노동자·민중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쳇바퀴 안에 영원히 가두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2) 우파와 극우 우파와 극우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표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우파와 극우가 갈라지는 지점은 변화를 추구하는 목표와 방법에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파는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극우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권과 형식들까지 일정하게 파괴하는 목표를 추구하며 또한 그러한 방법들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은 통상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계급지배를 위해 불가피하면서도 유용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불가피하다’는 것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민중과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계급투쟁을 전개한 결과 역사적으로 도달한 균형점이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의미에서다. ‘유용하다’는 것은 (정말로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은 외형을 통해 환상을 불어넣고 가둠으로써)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자·민중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하기 때문에 자본가계급의 실질적인 지배를 원활하게 보장한다는 의미에서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기초하는 우파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현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더 이상 제대로 관철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따라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억압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할 필요를 느낄 때 자본가계급은 극우를 불러낸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과감하게 깨뜨리고서 훨씬 더 강압적인 새로운 계급지배 형식을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우파와 극우가 갈라지는 또 하나의 지점은 대중과의 관계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대중의 수동성을 토대로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한다. 대중의 대다수는 노동자·민중이기 때문에 대중이 능동성을 갖게 되면 자칫 노동자·민중의 힘이 강력해지고 따라서 자본가계급의 지배가 위협받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파는 대중을 수동화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적극 활용한다. 이와 달리 극우는 대중의 능동성을 동원한다. 물론 그 능동성은 대중을 자기해방이 아니라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악마적 능동성이다. 나와 우리 모두의 자유·평등·연대를 실현하고 해방으로 이끌기 위한 이성적 능동성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혐오·차별·억압을 통해 배타적인 특정 집단만의 생존을 도모하려 하는 야수적 능동성이다. 극우가 대중의 야수적 능동성을 동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균형점을 깨뜨리는 데 많은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혐오·차별·억압의 광기로 대중의 시선을 돌림으로써 변화의 진정한 본질(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한 착취·억압 강화)을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3) 극우와 파시즘 파시즘은 극우가 가장 극악하게 진화한 형태다. 통상적으로 극우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부분적 부정을 뜻한다면, 파시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뜻한다. 파시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권(사상·양심·표현·신체·결사·집회·시위 등의 정치적 자유권과 사회적 생존권)과 형식(선거·다당제·삼권분립·자유언론 등)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지배세력의 입장과 이해관계만을 사회 전체에 폭력적으로 관철한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 파시즘은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해 온 조직(노동조합·노동자정당)과 권리(노조결성권·파업권·생존권) 등 노동자운동의 모든 성과를 파괴하여 노동자계급을 원자화된 무기력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군사정권(군부독재)이 파시즘의 한 형태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면적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군사정권을 파시즘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고전적인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혁명 근처까지 다다른 상황에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며 몰락하는 소부르주아 대중의 야수적 능동성을 전면적으로 동원해 낸다는 특징이 있다. 즉 단지 폭력을 통한 강제만이 아니라 광기에 찬 대중의 동의를 통해 파시즘을 성립시키고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군사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미약한 상황에서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며 군홧발의 폭력에 주로 의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군사정권을 파시즘의 한 형태로 간주하기 어렵다. 군사정권이 고전적인 파시즘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음을 내포하면서 ‘군사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이 논란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2. 세계적인 극우세력 성장이 자본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정치형태로 통상 간주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출발할 때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파시즘의 역사를 겪기도 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도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극우세력의 준동은 전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와 위치를 갖는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1) 부르주아 혁명과 부르주아 공화주의 자본주의는 봉건제와 절대왕정 체제 안에서 경제적으로 먼저 성숙했다. 자본가계급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지만, 왕과 귀족이 독점하던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돼 있었다. 자본가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면 왕과 귀족의 권력을 타도하는 혁명에 나서야 했다. 사회적으로 소수인 자본가계급 홀로서 이 혁명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사회의 다수인 노동자·민중을 혁명의 주체로 끌어내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자유·평등·박애라는 보편적 대의를 내걸면서 자신들의 혁명을 포장했다. 노동자·민중의 폭발적인 참여를 통해 왕과 귀족의 권력을 타도하는 혁명이 성공했고,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노동자·민중은 이제 모두를 보편적 해방으로 이끄는 진정한 공화국이 건설될 것이라 믿었지만, 자본가계급의 생각은 달랐다. 혁명의 주도권을 쥔 자본가계급은 공화국의 진정한 시민, 즉 선거권자를 사실상 자본가계급 또는 유산계급으로 제한했다. 자본가만을 위한,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공화국. 이른바 ‘부르주아 공화주의’였다. 왕과 귀족의 권력을 타도한 혁명은 부르주아 공화주의를 수립하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귀결됐다. 2)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수립 노동자계급은 이제 자본가계급에 맞서 투쟁에 나섰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선거권을 비롯한 정치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쟁취하여 진정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였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을 착취·억압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철폐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였다. 노동자·민중이 1백여 년에 걸쳐 줄기차게 투쟁한 결과, 19세기 중후반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기 시작했다. 자본가계급이 여전히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사회를 지배하지만,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노동자·민중에게 선거권을 비롯한 각종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많은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투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노동자혁명을 향한 투쟁의 부산물로서 주어졌다. 특히 1917년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전 세계 자본가계급에게 보통선거권, 여성 참정권, 8시간 노동제를 수용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 시절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강탈당하던 식민지·반식민지들이었다. 유럽과 미국은 본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경우에도 식민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정치적·경제적 권리조차 유린하는 강권통치를 철저하게 고수했다. 식민지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결코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독립을 유지한 반식민지 국가들도 그 정치형태가 무엇이든 부패한 독재정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주의 자본가들이 원활한 수탈을 위해 그러한 체제가 수립·유지되도록 적극 유도하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3) 파시즘의 대반동 보편적 해방을 향해 기존 사회질서를 변화시키려 하는 노동자·민중의 반대편에는 항상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동 세력이 있었다. 자본주의 초기에 반동을 대표한 것은 왕정 체제 복원을 도모하는 왕당파였는데, 당연하게도 왕당파의 낡은 주장은 대중 속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 이후 1920~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등장해 반동의 새로운 대표 주자가 되었다. 파시즘은 ‘위대한 이탈리아 국민성에 입각한 로마 영광의 재현’이나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실현하는 국가 사회주의’ 같은 ‘참신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마침 세계대공황과 같은 극심한 경제 파탄으로 삶이 무너지는 대중이 있었다. 파시즘은 절망하는 대중에게 (노동자운동과 유대인이라는) 혐오·저주의 대상을 제시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야수적 능동성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계급적으로는 몰락한 소부르주아들이, 사회적으로는 퇴역 군인들이 파시즘의 핵심 지지자가 되고 돌격대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다. 또한 대자본이 극심한 경제위기에 대응할 해법으로 노동자운동의 절멸을 추구하는 파시즘을 선택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독일에서, 노동자계급은 파시즘 세력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조직력을 갖고 있었지만,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분열을 이겨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패배했다. 사회민주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파시즘과 공산당 모두의 위협으로부터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켜내겠다고 주장했다. 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을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며 사회파시즘이라고 규정짓고 파시즘 집권은 공산당 집권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분열 덕분에 손쉽게 승리한 히틀러의 나치당은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물론이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까지 노동자운동의 모든 요소들을 절멸시켰다. 1933년 독일에서 노동자계급이 패배한 경험은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큰 반면교사가 됐다. 1934년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독일과 비슷하게 위협적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프랑스 노동자대중은 사회당과 공산당의 단결을 아래로부터 강제해 내며 압도적인 대중의 힘으로 거리에서 파시스트들을 제압해 냈다. 파시즘의 분쇄를 위해 노동자들의 모든 힘을 결집시키는 ‘노동자 공동전선’이야말로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는 진정한 방안임을 입증해 낸 것이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파시즘을 제압해 낸 성과 위에서 거대한 전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1936년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이 중도우파 급진당과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결성해 집권했다. 군부 파시스트들과 내전이 터진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더 폭넓게 단결할수록 파시즘을 막아낼 힘이 더 강화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자본가 정치세력과 인민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를 침해하지 않도록 노동자대중의 요구와 행동에 족쇄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인민전선 정부가 노동자투쟁을 제약하고 심지어 탄압하면서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역동성은 급격히 잦아들었다. 허약해진 인민전선은 몇 년 뒤 파시즘 세력에게 패배하고 굴복했다. 인민전선은 파시즘 세력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패배로 몰고 간 족쇄였다. 4) 전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전성기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정점으로 한 때 유럽과 아시아에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파시즘 세력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몰락했다. 승자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스탈린주의 세력이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전성기가 냉전이라는 상호 대치 속에서 한동안 전개되었다. 서방 진영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뒷받침한 것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전후 호황이었다. 많은 나라에서 자본가들에게 상당한 세금이 부과됐고, 무상의료 같은 개량들이 도입됐다. ‘자본주의 안에서 개량의 지속적 확산’에 대한 낙관이 널리 퍼졌고,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종과 젠더에 입각한 억압·차별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식민지·종속국을 상대로 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전쟁 또한 지속되었다. 따라서 1960년대부터 흑인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반제반전운동이 세계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1970년대에는 세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도 세계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동방 진영의 스탈린주의는 소련을 넘어 동유럽과 중국 등으로 확산되면서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는 애초 러시아혁명이 추구했던 노동자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창출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진전된 민주주의였다. 노동자·민중의 대표기관이 국가권력의 전권을 장악함으로써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의 숨은 지배까지 종식시켰다. 조직된 노동자·민중이 관료적 국가기구를 대체하여 국가업무의 집행자가 됐다. 노동자·민중의 대표자들에게 어떤 특권도 부여하지 않았다. 노동자·민중이 선출하는 대표자들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었다.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이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해방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30년대 소련에서 일어난 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관료집단의 독재로 대체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유지됐지만 이제 관료집단의 특권과 국가자본의 축적을 위한 수단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일한 성격을 가진 체제가 동유럽과 중국으로 확산됐다. 스탈린주의가 여전히 앞세웠던 ‘사회주의 노동자국가’라는 허울과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괴리가 있었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위선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폭발적인 투쟁이 동독, 헝가리, 중국,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5) 신자유주의 대공세 1970년대 세계 경제위기와 노동자·민중의 폭발적인 투쟁을 겪으면서 자본가계급 내부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시작됐다. 악화된 경제 환경 속에서도 자본의 이윤율을 원활히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임금삭감, 사유화(민영화), 규제완화, 감세, 노조무력화 등을 파상적으로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대공세가 1980년대부터 선진국들에서 시작됐다. 처음 신자유주의 대공세를 주도한 것은 강경 보수우파였다.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틀을 유지했지만, 노동자·민중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1970년대 초중반부터 제3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후원 아래 들어선 군사정권들은 (이전 시기 개량의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취약한 제3세계의 조건 위에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사회경제적 공격과 군사파시즘을 결합시켰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세계적으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신자유주의 대공세를 주도해 나갔다. 선진국들에서는 강경 보수우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토대로 중도우파·중도좌파가 집권했지만, 전체 자본가계급의 지상과제가 된 신자유주의 공세를 (보다 세련된 외관을 갖고) 집행했다. 제3세계에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중도우파·중도좌파 민간정권들도 신자유주의 집행자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중도우파·중도좌파 세력이 신자유주의 대공세를 주도한 것은 착취에 맞선 투쟁과 억압·차별에 맞선 투쟁이 서로 분열되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중도우파·중도좌파 정권들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대공세를 주도하며 노동자·민중을 사회경제적으로 공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종과 젠더 등에 기초한 억압·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척하면서 종종 개량적 조치도 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동안 억압·차별에 맞선 투쟁이 노동자·민중으로부터 분리돼 채 중간계급 지식인 중심의 개량주의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했다. 1989~91년 스탈린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 소련과 동유럽에서도, 또한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이들 국가에서는 억압적인 권위주의 체제가 수립되거나 기존 스탈린주의 정치체제가 유지됐지만, 중도우파·중도좌파의 세계적 주도력에 이끌리는 양상을 보였다. 6)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극우세력의 준동 신자유주의 대공세와 세계화·금융화는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시킴으로써 한동안 자본주의에 새로운 부흥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에 내재한 모순을 폭발시켰다. 이후 자본주의는 (자본의 원활한 확대재생산이 위협받는) 축적위기가 점점 더 심화되어 왔다. 자본가계급이 여전히 의지해 온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기존의 방법들은 모순을 더욱 악화시킬 뿐 유효한 해법이 되지 못한 가운데, 극우세력이 강화되고 준동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왔다. 긴축정책까지 가세하며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 대공세는 선진국 노동자·민중을 빈곤으로 내몰며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를 창출했다. 빈곤화한 노동자·민중을 토대로 한편으로는 좌파의 새로운 운동이 성장해 나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민 혐오 등에 기반한 극우세력이 큰 규모로 형성되었고 빠르게 성장해 왔다. 선진국의 생산기반을 신흥국으로 이전시킨 세계화는 국가 간 세력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중국이 경제적 부상과 함께 최강대국의 꿈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내부적으로 전체주의 성격을 더욱 강화한 것은 선진국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보호주의와 중국 혐오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을 가속시킨 또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보여준 파국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금융수탈을 위한 금융화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전개돼 왔다. 부동산·주식·암호화폐 투기에 따른 천문학적 불로소득은 노동을 경시하는 일확천금의 환상을 크게 부채질함으로써 극우세력의 세계관에 중요한 자양분을 제공했다. 지난 10여 년, 세계 곳곳에서 극우세력이 급성장했다. 많은 나라에서 집권했거나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극우세력 성장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였다. 그런데 트럼프 승리의 배경에는 기독교 근본주의(기독교 극우)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2025년 다시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미국과 세계의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파상적인 극우 공세에 나서고 있다. 7) 미국 극우세력의 중추로 성장한 기독교 근본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이슬람 근본주의의 거울이다. 모든 것을 성경에 적힌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완고하게 창조론을 신봉한다. 성경에 나타난 고대의 사회관계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서 가부장제, 젠더억압, 인종차별을 적극 옹호한다. 순응과 소명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자·민중의 자주적인 조직과 투쟁을 배척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비과학적인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과학에 기초한 자본주의 산업 발전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동안 소수 종파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착취와 억압·차별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거세게 발전해 나가자 지배계급이 이를 억누를 이데올로기적·조직적 수단으로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효용성을 재평가하게 됐다. 특히 1960~70년대 흑인민권운동, 반전운동, 페미니즘, 성소수자 해방운동 등이 대대적으로 확산돼 나갈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오늘날 미국 극우세력의 중추로 성장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출발점은 1950년대 공립학교에서의 인종차별 폐지와 1960년대 인종분리정책 폐지에 대한 반발이었다. 1970년대를 거치며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창조론’을 가르치는 백인 전용 사립 기독교 학교를 미국 전역에 5천 개나 설립함으로써 1백만 명의 학생을 수용하게 됐다. 또한 젠더평등을 명시하는 헌법수정안 거부운동을 펼쳐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기독교 근본주의는 본격적인 정치참여를 위해 1979년 ‘도덕적 다수’라는 정치조직을 설립해 유권자 등록운동과 공화당 지지 운동에 나섰다. 또한 낙태, 성소수자 권리, 공교육의 세속화, 환경운동, 페미니즘, 포르노 등 ‘미국을 타락시키는 도덕적 위기’에 맞선 ‘문화전쟁’을 선언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하여 당선에 일조했지만, 레이건이 문화전쟁에 충분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게 됐다. 1989년 ‘미국기독교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조직을 출범시키고, 아래로부터 공화당을 장악해 간다는 목표 아래 주·지역 단위 역량 강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는 한편, 클린턴 탄핵 운동을 주도했다. 2000년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2세 또한 문화전쟁에서 약속한 만큼 행동하지 않았지만, 복지서비스를 대거 교회와 기독교 자선단체에 넘기는 선물을 안겼다. 기독교 근본주의 목사들이 교도소 프로그램, 직업훈련, 청소년 혼전순결 같은 온갖 복지사업에 관여하게 됐다. 신자들의 모든 삶과 소비를 포괄하며 이미 거대한 규모로 발전해 가던 기독교 산업을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가 부패한 금융자본을 구제하며 가난한 노동자·민중을 희생양으로 만든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급격히 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됐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오바마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실망을 활용하여 자신들이 장악한 주·지역에서 문화전쟁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2016년 대선 무렵, 기독교 근본주의는 공화당 지역 조직의 다수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트럼프를 자신의 후보로 선택하고 당선시켰다. 트럼프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크게 두 가지를 약속했고 실행에 옮겼다. 연방판사들에 대한 통제권과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었다. 특히 사법부에 대한 통제권이야말로 문화전쟁에서 승리하는 데서 핵심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는 판단했다. 트럼프 집권 기간 문화전쟁에 동조하는 보수 대법관들이 세 명이나 임명됐고, 결국 낙태권을 부정하는 대법원 판결로 이어졌다. 트럼프 집권 이후 낙태권, 성소수자, 흑인 등에 대한 극우적 공격이 미국 전역에서 파상적으로 펼쳐졌다. 바이든 집권 기간에도 공화당이 장악한 주를 중심으로 공격이 계속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위선적이었다. 집권 이전에는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을 비난했지만, 집권 이후에는 경찰 예산을 대폭 증액시켜 주었다.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 정책을 비난해 놓고 강경 차단 정책을 똑같이 실행했다. 민주당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중추로 한 극우세력의 공세에 맞서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2025년부터 시작된 트럼프 2기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도하는 문화전쟁을 지속하는 데 덧붙여 ‘테슬라 무노조경영’으로 악명 높은 머스크를 앞세워 연방 공무원 대량해고를 시작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대공세로 나아가고 있다. 3.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 과정은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고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극우세력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일제강점기 친일파로부터 군사파시즘의 중추세력까지 한국 극우세력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정에게 중용된 친일파는 이승만 정권 수립 이후 경찰·군대·행정·사법 등 국가기구의 중심세력이 되었으며, 또한 적산불하와 원조특혜 등을 통해 자본가계급의 근간이 되었다. 이들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기간 동안 군사파시즘을 떠받치는 중추세력으로 기능했다. 2) 1987년의 제한된 민주화 속에 잔존한 극우세력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되어 1987년 6월 민중항쟁에서 정점에 이르렀던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투쟁은 군사정권과 야합한 부르주아 보수야당의 배신에 가로막혀 절반의 승리만을 거둔 채 멈춰 섰다. 민주주의는 껍데기로만 쟁취되었고, 군사파시즘은 온전히 청산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세력의 주류였으며 군사정권 시절 박정희·전두환을 떠받치던 극우세력은 1987년의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군대·경찰·행정·사법 등 국가기구 곳곳에서 강력한 기반을 유지했다. 파시즘의 잔재는 ‘1987년 체제’라는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으로 스며들었고 지속되었다. 1990년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3당 합당’에 나섬으로써 (오늘날 국민의힘의 원조라 할)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군사정권 주역들과 보수야당 온건파의 결합이었다. 처음에는 군사정권 후예들이 민주자유당의 주류였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군부 내 하나회 세력이 제거되고 1995년 전두환·노태우가 5·17 쿠데타로 내란죄 처벌을 받으면서 주도권이 보수야당 출신의 공화주의 보수우파에게 넘어갔다. 지도부를 잃고 중핵이 와해된 군사정권의 잔존 세력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공화주의 보수우파로 변신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김대중이 이끌던 보수야당 급진파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로 재정립할 때, (군사정권 잔존세력을 포괄한) 공화주의 보수우파는 ‘신자유주의 보수우파’로 재정립했다. 이후 두 세력은 1998년의 김대중 정부부터 2024년의 윤석열 정부까지 자본가정당이라는 근본적 본질에서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를 집행한다는 핵심 정책에서도 엇비슷한 지배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보수우파가 집권할 때마다 그 속에 내재한 극우적 본성을 드러내면서 노동자·민중을 더욱 거칠게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에 대한 살인적 진압, 2010~12년 금속산업 민주노조들에 대한 와해 공격,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계속된 KBS·MBC 방송 장악, 박근혜 정권 시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2015~16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공세, 2022~24년 윤석열 정권의 화물연대·건설노조 등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극우적 공격은 노동자·민중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렀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투쟁이 폭발하고 결국 탄핵으로 귀결되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극우적 공격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반격이 축적되고 결집한 결과였다. 3) 박근혜 탄핵에 맞서 극우세력의 부활을 이끈 기독교 극우 그런데 박근혜 탄핵은 다시 극우세력이 새롭게 부활하는 반작용을 낳았다. 노동자·민중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맞서 극우세력의 ‘태극기집회’가 출현했다. 1997년 이후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보수우파라는 외피에 봉인돼 있던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군부에게 노골적으로 쿠데타를 호소하는 등) 거리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이 최종 확정될 무렵, 태극기집회는 거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태극기집회에는 예비역 군 장성 등 군사정권 후예들도 결합했지만, 극우세력의 부활을 주도한 것은 단연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극우였다. 19세기 말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개신교)는 유럽으로부터 전파된 천주교와 달리 주로 미국으로부터 전파됐다. 따라서 기독교는 한국사회 안에서 미국식 세계관과 가치관을 유포하면서 친미세력의 구심 역할을 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기독교 일부가 반독재투쟁에 나서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기독교는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보수 세력으로 기능했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1990년대를 거치며 대형교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기독교의 보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의 한 부분으로서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반공’을 신앙보다 앞세워 왔던 기독교 극우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상당 부분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1980년대 이후 줄기차게 정치세력화를 추진한 영향이었다. 애초에 기독교가 도입될 때부터 미국 남부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던 것의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했다. 기독교 극우는 2004년 한국기독당(1.00%)을 시작으로 총선이 열릴 때마다 비례대표 선거에 후보를 내세웠다.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2.59%), 2012년 기독자유민주당(1.20%), 2016년 기독자유당(2.63%)을 내세웠다. 그러나 한 번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한편 기독교 극우는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권과 상당한 교감관계에 있었다. 보수 기독교 전반이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결집했다. 전광훈이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 버린다”고 설교하여 처음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명박 정권은 2009년 “임신중지와 비혼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낙태 단속 강화를 선언했다. 그러자 2010년 기독교 기반의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낙태’를 상습 시술했다며 산부인과 3곳과 의사 8명을 형사고발했다.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수행하는 ‘문화전쟁’을 한국에서 시도해 본 것이었다. 결과는 양면적이었다. 한편으로 낙태수술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발 여론을 크게 불러일으키며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꾸준히 세력을 확산해 가던 기독교 극우에게 2016~17년 태극기집회는 획기적인 교두보가 됐다. 박근혜 탄핵은 흩어져 있던 극우 성향의 인물과 세력들이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그런데 기독교 극우의 조직력과 활력이 고엽제전우회나 어버이연합 같은 전통적인 극우성향 관변단체들을 압도했다. 기독교 극우가 새롭게 부활한 극우세력을 이끌게 됐다. 4) 문재인 정권 시기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의 성장 문재인 정권을 지나는 동안 기독교 극우의 세력 확산에는 제동이 걸렸다. 2019년 ‘황교안 전도사’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로 밀어 올렸지만, 2020년 총선에서 참패했다. 비례대표로 내세운 기독자유통일당(1.83%)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입당전술을 통해 국민의힘 안에서 영향력 확산을 시도했지만, 신자유주의 보수우파로서 국민의힘을 주도한 김종인과 이준석은 ‘아스팔트 극우’와의 관계단절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아래서 극우적 성향을 가진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가 2030 남성들 사이에서 상당한 규모로 형성됐다. 처음에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허울뿐인)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일부 정규직 청년들의 엘리트주의적 반발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조국사태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평등·공정·정의’의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청년들이 광범하게 반발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의 허울뿐인 ‘성평등’ 정책을 비난하며 2030 남성들을 반페미니즘으로 결집시켜 세력화하려는 이준석의 정치적 시도가 큰 반향을 얻었다. 문재인 정권의 성평등 정책은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확대’ 등에 중점을 두었을 뿐, OECD 최악의 성별임금격차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편적 고용안정과 생활임금 보장 같은 (자본을 강제해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는, 그야말로 껍데기뿐인 정책이었다. 이준석의 반페미니즘 선동에 상당수의 2030 남성들이 호응한 배경에는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고통스런 현실과 암울한 미래가 있었다. 물론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는 여성에 대한 혐오·차별·억압의 강화를 통해 남성 청년의 위기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극우적 성향을 내포한 것이었다. 결국 2022년 대선에서 이준석의 조언대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운 윤석열은 20대 남성에게서 58.7%, 30대 남성에게서 52.8%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2030 남성 상당수의 반페미니즘 세력화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2017년 6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미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에게 20대 남성의 87%가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허울뿐이고 위선적인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꿔나가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실행됐더라면, 2030 남성들을 혐오정치로 묶어세우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윤석열 정권 시기 극우세력의 분산 검찰이라는 핵심 관료조직을 틀어쥔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된 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와 손을 잡고 대선을 치렀다. 그러나 윤석열은 집권 직후 이준석을 내쫓고 국민의힘을 장악했다. 이후 윤석열은 노골적으로 국민의힘 대표선거에 개입하고 대표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등 불법적이고 반공화주의적인 당무개입을 지속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연상케 하는 극우적 행보였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다수 정치인들은 친윤계라는 이름 아래 윤석열에게 줄서고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윤석열은 극우적인 정책들도 대거 밀어붙였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광포한 탄압을 자행했다. 여론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멈춰서긴 했지만 주69시간 노동제 도입을 시도했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평등에 반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였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동조하고,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대법 판결을 무력화했으며, 한미일 동맹 강화와 전쟁연습 확대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놓고서 본인과 부인의 의혹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거부했다. 윤석열의 거듭되는 극우적 행보는 여론을 크게 악화시켰고, 결국 2024년 4월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을 초래했다. 총선 이후에도 윤석열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다. 2024년 11월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은 17%까지 하락했다. 특히 20대 11%와 30대 10%로 청년들 사이에서는 더욱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윤석열의 총선 패배와 지지율 하락은 윤석열, 기독교 극우,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가 서로 분산돼 있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2021년 이준석이 ‘아스팔트 극우’와의 관계 단절을 추진한 이후 기독교 극우와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는 서로 단절돼 있었다. 2022년 윤석열이 이준석을 무리하게 내치면서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와 윤석열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그러나 극우세력의 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기독교 극우는 2024년 총선에도 자유통일당(2.26%)을 내세워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2017년 이후 대거 등장하여 세력을 키워 온 극우 유튜버들은 특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활용하며 꾸준히 구독자를 늘려 나갔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극우 유튜버들의 성장은 그 열성 구독자로 윤석열을 조직해 낼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한편 범보수 기독교는 2024년 10월말 차별금지법과 동성혼을 반대하면서 ‘200만 연합예배’라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6) 군사파시즘 부활을 시도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 2023~24년 공식 석상에서 ‘반국가세력 척결’을 되풀이해서 외치던 윤석열은 12월 3일 비상계엄을 전격 발동하며 친위쿠데타에 나섰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12·3 담화와 극우세력의 궐기를 촉구한 12·12 담화를 통해 반국가세력의 핵심으로 민주당을 지목했다. 또한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계엄 선포의 주된 이유로 내세웠다. 윤석열은 선관위 직원들을 고문하여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해 낸 뒤 4월 총선을 무효화하고 국회를 해산하려 했다. 체포명단에 이재명은 물론이요, 한동훈까지 포함시킴으로써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자 했다. 계엄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제1호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 금지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의 통제 △파업·태업·집회 금지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광범한 기본권 박탈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압살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선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 처단 등 모든 비판과 저항을 반국가세력의 국가전복 행위로 규정하여 난폭하게 탄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이었을 것이다. 체포명단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포함돼 있었다. 포고령은 파업·집회·언론·정치활동의 자유를 압살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려 했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파업과 민주노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존재할 수 없고, 좌파정치조직·진보정당·노동단체·시민단체 등도 모두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본가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계급이 쟁취해 온 모든 성과들을 박탈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박정희의 1961년 5·16 쿠데타와 1972년 10·17 쿠데타, 전두환의 1979년 12·12 쿠데타와 1980년 5·17 쿠데타를 재현하려 한 시도였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1961~1987년의 군사파시즘이 전면적으로 부활했을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1987년의 제한된 민주화에 입각한 현 헌정체제마저 반인민적 음모와 무력을 통해 일거에 전복시키려 한, 인민에 맞선 ‘내란’이었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2017년 이후 극우세력이 부활하고 다시 성장해 온 사회적·정치적 변화 위에서 군사파시즘의 부활이라는 극우세력의 잠재된 열망이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진 사건이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극우세력의 성장이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친위쿠데타 등을 통한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로 매우 빠르게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엄선포 직후 국회로 달려간 수천 명과 그들을 응원한 수백만 명의 노동자·민중 덕분에, 그리고 군대와 경찰이 유혈사태를 감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덕분에,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조기에 실패했다. 극우세력의 성장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를 휘어잡을 정도에 이르렀고, 이것이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조기에 파시즘 부활 시도로 이어졌지만, 친위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의 역량 부족과 충동적 성격 때문에 어설프게 준비하고 실행했다가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7) 12·3 친위쿠데타 이후 극우세력의 급성장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 실패는 탄핵과 내란죄 수사라는 강력한 역풍을 불러왔다. 그러나 2017년 이후 부활·성장해 온 극우세력은 다시 강력한 저항과 반격에 나섰다. 윤석열은 몰락의 결정적 위기 앞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하고 극우적 언행들을 거침없이 쏟아냄으로써 일거에 극우세력의 구심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윤석열의 극우적 행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해 오던 친윤계 의원들도 윤석열을 따라 명확하게 극우의 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극우세력이 제도정치권 안에 강력한 교두보를 형성하게 됐고, 영향력이 급격하게 확산됐다. 12월 중순 탄핵찬성 여론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에도 극우세력은 탄핵반대로 20~25%를 집결시켰다. (12월 1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탄핵찬반은 75%대 21%를 기록했다.) 12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극우세력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친윤계 지도부의 구축과 함께 국민의힘 자체가 극우정당으로 변신했다. 기독교 극우, 극우 유튜버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탄핵반대 집회에서 하나가 됐다. 극우세력은 ‘민주당의 줄탄핵과 국정 발목잡기 때문에 계엄을 하게 됐다’며 계엄사태의 책임을 민주당에게 떠넘겼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중국 혐오를 결합시켜 온갖 가짜뉴스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1월 3일 (사실상 민주당에 의해 좌우되는) 국회 탄핵소추단이 탄핵소추 근거에서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면서, 불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낳았다. 내란죄가 탄핵소추의 가장 중요한 논거였고 극우세력과의 대결에서 핵심의제가 된 상황에서 조기 탄핵심판을 위해 내란죄를 철회한다는 것은 첨예한 대결 상황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어리석은 자충수였다. 민주당의 어설픈 꼼수는 국민의힘에게 ‘사기 탄핵’을 운운하면서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대거 탄핵반대 지지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실책을 물고 늘어지면서,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를 내란수괴에 대한 준엄한 단죄의 과정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들 간의 이전투구의 공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나갔다. 민주당의 행태는 또한 2030 남성들 가운데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를 강력하게 자극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비난하며 윤석열을 지지했으나 이준석 퇴출 이후 윤석열로부터도 등을 돌린 채 이완돼 있었다. 계엄 이후 탄핵소추안 가결까지도 이들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마주하게 된 민주당의 위선적 행태로부터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의 상당수가 자기정당성을 획득하고 극우세력으로 활성화했다.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혐오정치 청년 보수우파의 상당 부분이 합류한 결과, 1월 중순 탄핵반대 여론이 35~40%로 올라섰다. (1월 17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탄핵찬반은 57%대 36%를 기록했다.) 22-03-09 대선출구조사 윤석열지지 24-11-07 한국갤럽 윤석열지지 24-12-12 한국갤럽 탄핵반대 25-01-17 한국갤럽 탄핵반대 25-02-14 한국갤럽 탄핵반대 전체 48.4% 17% 21% 36% 38% 20대이하 45.5% 11% 08% 25% 29% 30대 48.1% 10% 15% 29% 35% 40대 35.4% 09% 13% 31% 25% 50대 43.9% 15% 13% 27% 29% 60대 64.8% 23% 36% 54% 56% 70대이상 69.9% 34% 43% 50% 59% 극우세력의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은 탄핵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대된 상황에서 발생했고, 윤석열의 12월 3일 비상계엄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극우세력은 격렬하고 끔찍한 공격성을 보여줬다. 경찰을 구타하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서버까지 탈취했다. 태극기집회를 주도하던 60대 이상 노년층만이 아니라 4050 중년층과 2030 청년층까지 전 세대가 골고루 폭동에 가담했다. 서부지법 폭동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극우세력이 끊임없이 극우 대중의 행동을 선동하고 조직해온 결과였다. 극우세력은 인터넷 공간에서 공공연히 폭동을 사전 모의하고 고무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폭동 과정을 생중계했다. 백골단, 북벌의병단 등 돌격대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 단체들까지 속속 등장했다. 이후 한 달 동안 여론지형이 고착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극우세력의 선동과 세력과시가 계속되고 있다. (2월 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탄핵찬반은 57%대 38%를 기록했다.) 극우세력의 공세는 이제 헌법재판소로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말로써 온갖 위협과 비난을 쏟아냈다면, 조만간 헌법재판소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물리적 폭력을 조직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계몽을 위한 경고용 계엄’부터 ‘선거연수원 중국인 99명 체포’까지 극우세력의 온갖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가짜뉴스로 가득 차 있다. 지금 극우세력에게 중요한 것은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진짜로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다. 부정선거가 실제로 있었느냐도 아니다. 지금 극우세력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윤석열을 권좌에 복귀시켜 (또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정권을 세워) 자신들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야수적 욕망과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4. 극우세력 분쇄와 사회대변혁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관점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현 상황은 노동자계급에게 거대한 위기와 거대한 기회가 병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극우세력을 왜 분쇄해야 하는가? 극우세력을 어떻게 분쇄할 수 있는가? 극우세력을 분쇄하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나씩 살펴보자. 1) 극우세력 부상은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한 결과다 지난 10여 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부상한 것은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한 결과다. 경제적으로 빈곤해진 노동자·민중의 상당 부분이 누군가에 대한 혐오·차별·억압을 통해 자신들만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혐오정치에 빠져들었다. 이들의 야수적 능동성을 불러낸 극우세력은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급격하게 세력을 불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극우세력의 부상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자본가계급에게서 나온다. 갈수록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자본가계급이 살아남을 방도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억압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에게 대공세를 펼칠 수 있으려면, 자본가계급에게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본가계급의 의도를 드러내면 노동자·민중의 폭발적인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흑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정치는 얼핏 자본가계급과 직결돼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극우세력이 부상하는 동안 자본가계급은 미소를 감추며 조용히 돕는다. 극우세력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이제 자본가계급이 전면에 부상하여 자신의 의도를 노골화한다. 미국에서 기독교 극우와 트럼프의 ‘문화전쟁’을 중심으로 극우세력이 강력하게 부상한 뒤, 이제 ‘테슬라 무노조경영’의 머스크가 전면에 나서 연방공무원 대량해고를 시작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대공세에 나서는 것은 이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극우세력의 부상 뒤에는 자본주의 위기 심화가 깔려 있다. 이명박 정권이 이른바 7-4-7 공약(7% 경제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세계 7위 경제규모)을 내걸었다 실패한 이후 어떤 자본가 정부도 그런 식의 공약을 더 이상 내걸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성장 엔진’이 꺼져버렸다. 높아지는 무역 장벽과 이윤율 하락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의 지속적인 축소,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초래하는 거대한 불안감이 이미 만성화되어 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실업과 불평등, 생활의 불안정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낳고 있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수많은 노인들도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집중적으로 강요당하면서 가사노동까지 이중의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청년, 노인, 여성 등을 중심으로 사회 한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누적되고 있었고, 이것이 극우세력의 부상에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광장의 진출에) 상당한 에너지를 공급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한국의 극우세력 부상과 세계적인 양상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노동자·민중의 빈곤화가 상당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부상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군사파시즘의 잔재와 연결된 정치적 요소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혐오정치보다 ‘반국가세력 척결’로 표현되는 반공정치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 혐오정치로부터 출발한 2030 청년층으로 최근에 극우세력이 급격히 확산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군사파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6070 노년층만큼 완고하고 강력한 기반을 형성하지 못했다. 많은 나라에서 집권한 극우세력이 노동자·민중을 극심하게 공격하면서도 파시즘으로는 쉽게 진화하지 않은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극우세력의 부상이 조기에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로 나타났다. 많은 나라에서 주민의 다수가 빈곤화로 허우적대며 극우세력에게서 희망을 찾게 된 것과 달리,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주민의 다수가 극우세력의 부상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가 자본주의 위기 심화로 극우화 강풍에 휩쓸리는 동안 한국은 이른바 K-시리즈에 열광하며 ‘성장과 안정’에 관한 환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위기로부터 비켜선 채 그럭저럭 안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한국의 자본주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제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직시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조합 덕분에 어느 정도 방어막을 갖고 있는 조직 노동자들의 다수가 그랬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극우세력이 부상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극우세력은 대중의 고통과 절망을 자양분 삼아 소리 없이 계속 성장해 왔고, 지금 한국 사회를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내몰고 있다. 격동하는 현 정세를 올바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합리성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알아서 심판해 줄 일이고, 극우세력은 조만간 힘을 잃고 잠잠해질 것이다. 그러나 12·3 이후 우리는 부르주아 법질서가 혼란과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거듭해서 확인했다.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투쟁이 없었다면,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도 체포·구속도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부지법 폭동을 보았고, 백골단의 부활을 보았으며,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또 다른 폭력사태를 예감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로 시달리는 자본가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깨뜨리고 더욱 강력한 착취·억압 체제를 수립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우세력의 부상을 조용히 지원하면서 자신들이 전면에 나설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아래서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기구는 결국 철저히 자본가계급의 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기구가 노동자·민중의 정당한 투쟁을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하게 탄압해 왔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국가기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 하고 있지만, 극우세력의 성장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국가기구 자체가 아주 빠르게 극우 체제의 수호자로 변신할 것이다. 그러므로 극우세력의 부상과 준동은 전체 노동자·민중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동자·민중이라면 누구도 이 거대한 위협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 전체가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이 노동자를 지켜줄 수 없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한국 사회의 시계를 1987년 이전으로 돌리려 했던 것처럼, 극우세력이 승리한다면 (민주노조, 파업권, 진보정당·정치조직, 경제적 성과 등)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자계급이 쟁취해 온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대한 혐오·차별·억압 또한 극단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극우세력의 부상과 준동은 노동자·민중에게 거대한 기회 또한 제공하고 있다. 눈앞의 삶에 파묻혀 살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반응하고 행동하도록 내몰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이 거대하게 각성하고 단결한다면 극우세력을 얼마든지 분쇄해 낼 수 있다.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극우세력을 분쇄해 낸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회 전체에 대한 자본가계급과 국가기구의 장악력은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자신감에 충만한 노동자·민중은 이제 모두의 해방을 위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를 묻고 꿈꾸고 실행해 나갈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1987년 이후 획득해 온 모든 것을 훨씬 초과하는 거대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지배계급이 불러온 정치적 위기가 야만을 향한 거대한 위협과 사회변혁을 향한 거대한 기회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전제돼 왔던 정치체제 자체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그동안 익숙했던 사고틀, 근시안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시야로는 격동하는 현 정세를 결코 읽어낼 수 없다. 계급적·변혁적 시야로 현실을 치열하게 다시 바라봄으로써, 극우세력의 부상과 준동이 세계와 한국을 뒤흔드는 이 격동하는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고 올바른 실천과제를 도출해 내자. 2) ‘민주당과 연합’은 극우세력 분쇄 방안이 될 수 없다 극우세력을 분쇄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은 민주당과 연합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극우세력에 반대하는 세력을 최대한 모아야 그 힘도 강해질 거라는 주장이 그럴싸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연합’은 노동자·민중의 극우세력 분쇄 방안이 될 수 없다. 극우세력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광범한 노동자·민중이 능동적 투쟁주체로 일어서야 하는데, ‘민주당과 연합’은 그것을 정면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명확히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정당, 즉 자본가정당 가운데 하나다. 최근 이재명이 민주당을 가리켜 ‘(진보가 아니라) 중도보수’라고 했는데, 이는 정확한 자기진단이다. 과거 김대중은 여러 차례 민주당을 ‘중도우파’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2015년 문재인도 ‘보수정당’, 2018년 이해찬도 ‘중도우파’라고 민주당을 규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당이 배출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은 하나같이 자본가계급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로 기능했다. 민주당은 자본가정당답게 언제나 사회 전체의 대의보다 자신들의 권력 장악과 유지에 최우선 가치를 둔다. 12·3 이후에도 극우세력의 철저한 분쇄보다 자신들의 재집권을 우선시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 직후 내란 세력들에게 국정안정협의체를 제안했다. 탄핵심판이 열리자마자 탄핵소추 근거에서 내란죄를 철회했다. 윤석열 체포 직후 극우세력의 폭력성이 거침없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재명은 “이제 민생과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 특례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려 했다. 트럼프가 미국의 가자지구 소유를 발표할 때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이후 이스라엘 대사와 접견했다. 이 모든 것은 대선을 앞당기고 중도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계산과 연결돼 있다. 그런 민주당의 행태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에게 반격의 명분을 제공했고,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을 교란시켰다. 만일 민주당 정권이 등장한다면, ‘민주당과 연합’은 극우세력과의 결전에서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본가계급에게 봉사할 민주당 정권은 다시금 대중 속에 거대한 실망과 환멸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과 연합이 아니라 민주당 정권에 맞선 힘찬 투쟁이다. 만일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독자적인 전망을 제시해 내지 못한다면 대중의 실망과 환멸은 고스란히 극우세력의 성장에 거대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표출된 노동자·민중의 열망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 또 하나의 자본가정권답게 최저임금을 찍어 눌렀고, 집값 폭등을 방조했으며, 특권층의 부패를 감쌌다. 윤석열 정권의 광포한 건설노조 탄압을 먼저 시작한 것도 문재인 정권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오로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을 토대로 집권할 수 있었다. 그보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등장시킨 것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1998년부터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펼친 신자유주의 공세는 대량 정리해고의 충격과 함께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산을 불러왔다. 권력의 단맛을 본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반동적인 주류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었다. 민주당 정권 10년에 대한 대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속 집권을 가능케 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1월 미국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시위대가 의사당을 습격했을 때 세계는 경악했다. 트럼프가 폭력과 파괴를 부추겨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트럼프가 다시 집권했다. 민주당 정권이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배신하면서 극우세력에게 다시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기반하는 진실한 노동자정당의 부재 속에서 발생한 거대한 비극이다. 민주당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지금 노동자·민중에게는 가난·실업·전쟁에 맞서는 투쟁, 공공성 확대와 복지를 위한 투쟁,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 등 청년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한 투쟁이 절실하다. 하지만 그런 투쟁들이 전개될 때마다 민주당은 다시 한 번 자본가정당답게 반동적인 태도를 되풀이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에게는 ‘민주당과 연합’ 말고 다른 길이 있다. 극우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 다수의 힘이 있다. 이미 노동자·민중은 그런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다. 수백만이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위해 거리로 나왔고 남태령, 한강진에서 중요한 투쟁을 해냈다. 극우세력을 제압할 힘은 의회 다수 의석이 아니라 광범한 노동자·민중의 능동적 투쟁에서 나온다. 노동자계급은 엄청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만 명이 결집해 있는 민주노조는 이데올로기전의 중요한 거점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수많은 현장에서 선전할 수 있고, 선동할 수 있고, 현장 토론을 조직할 수 있다.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살아 있는 스피커가 된다면 극우 유튜버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저들보다 더 과감하게 행동하고, 총파업을 비롯한 집단적 힘을 발휘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면, 민주노총 조합원과 미조직 노동자, 2030 청년들의 에너지가 결합한다면 저들의 물리력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나 물리적 측면에서나 압도적인 힘으로 극우세력을 격퇴할 수 있다.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것만이 극우세력을 분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극우세력 분쇄를 위한 투쟁 속에서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견지해 나가자.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민주당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해 나가자.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투쟁을 확대하고, 그러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진전시켜 나가자. 3)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극우세력을 분쇄하고 사회대변혁으로 전진해야 한다 12·3 이후 지금까지 투쟁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역할을 해왔지만, 자신의 잠재력에 비해서는 매우 제한된 수준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12월 4일 새벽 3시를 기해 ‘윤석열 퇴진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5일, 6일, 11일 세 번에 걸쳐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5만에서 10만 정도가 참여하는 제한된 총파업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주말 집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고 초기에는 상당수 조합원들이 주말 집회에 참여했다. 민주노총이 주말 집회에서 경찰 바리케이드를 밀어내고 길을 열어낸 모습은 광범한 미조직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농민투쟁단이 남태령을 넘는 순간에도 길을 여는 역할을 했다. 1월 3~5일 한강진의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투쟁에서도 민주노총 확대 간부와 조합원이 광장 대중과 함께 투쟁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냈다면, 폭발적인 광장투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민주노총은 그런 역할을 회피했다. 민주노총은 광장 청년대오의 환호에 자족할 뿐 총파업을 조직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장에 참여하는 조합원의 대오도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12·3 이후 광장에 쏟아져 나온 청년 미조직 노동자들은 계엄과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주인으로 발돋움해 왔다.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섬뜩한 포고령은 대중을 심각한 충격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대중은 잠시 위축됐던 감정과 불안을 금세 떨쳐냈다. 거듭되는 집회와 거리 투쟁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저항으로 승화했다. 계엄과 내란을 처음 경험한 청년 대중은 수천수만 노동자의 참여를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고 사회적 소수자와의 연대를 넓혀가며 자신감을 쌓아갔다. 저항의 날들이 더해질수록 지금껏 의심하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 이념, 기존 보수정치가 쥐락펴락해 온 국가에 대한 의문을 싹 틔우며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에 대한 본능적 갈망을 분출했다. 광장의 청년 대중 다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들이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진 세대다.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과 실업의 굴레에 묶여 미래의 안정적 삶을 꿈꾸지 못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계엄과 내란 정세에서 역사의 무대로 뛰어나와 지금까지의 고통과 절망을 딛고 새로운 삶과 희망을 찾는 용기를 내고 있다. 광장의 청년 대중은 조직노동자에 대한 과거의 불신을 뒤로 하고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한 한화오션의 악랄한 노동탄압에 맞선 거통고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1년 넘게 먹튀자본 닛토덴코에 맞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불탄 공장을 지키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처구니없는 대법원 패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투쟁을 벌이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에, A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축소은폐에 맞서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해임당한 지혜복 교사의 투쟁에 ‘말벌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가 쇄도하고 있다. 극우세력의 부상과 준동을 멈춰 세우고 분쇄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위력적인 총파업이고 그에 기초한 폭발적인 광장투쟁이다. 그렇다면 어떤 총파업을 말하는 것인가? 1934년 2월 프랑스 노동자대중이 거리에서 파시스트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해 냈을 때,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80만의 조합원을 갖고 450만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조직해 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웃나라 독일처럼 파시즘이 도래할 수 있겠다는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위기의식이 그런 기적 같은 일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수많은 노동자대중이 극우세력의 부상과 준동을 바라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윤석열 탄핵심판 결과가 어찌 나오든 극우세력의 준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스트레스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 이제껏 한국 사회에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거대한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다. 이 총파업은 민주노총의 조직노동자가 선두에 서는 총파업이되, 다양한 사회세력이 함께 하는 ‘사회적 총파업’이다. 광범한 미조직노동자가 동참하는 총파업, 억압·차별에 맞선 여성과 소수자가 동참하는 총파업, 학생들도 동맹휴업으로 동참하는 총파업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중의 폭발적인 광장투쟁으로 극우세력을 물리적으로 압도하는 총파업이다. 단 하루의 파업만으로도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을 그런 총파업이다. 이 총파업의 일차적 요구는 극우세력 분쇄다. 그 세부 내용은 총파업 전개 시점에 맞춰 구체화되겠지만,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단죄, 국민의힘 해체, 내란선동세력 처벌 등은 기본이 될 것이다. 이 총파업의 요구는 또한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열망을 담아냄으로써 사회대변혁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비정규직 초과착취와 노동기본권 부정으로,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에 대한 억압·차별로, 기후위기 가속화와 환경 파괴로, 제국주의 진영 간 패권대결과 전쟁위기로 심각하게 유린당해 왔다. 오죽하면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갖고 있겠는가! 이제 이 모든 것을 갈아엎어야 한다. 또한 계엄과 내란 사태를 통해 확인한 비민주적 제도들을 바로잡기 위한 민주적 요구들을 포함해야 한다. 사회대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요구들은 다음의 것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 비정규직 제도 철폐! ○ 정리해고제 철폐! ○ 모든 해고 금지! ○ 손배가압류 제도 철폐! ○ 모든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노동3권 보장! ○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 최저임금 대폭 인상! ○ 육아·교육·주거·돌봄·노후를 국가책임으로 보장! ○ 차별금지법 제정! ○ 장애인 이동권 보장! ○ 전쟁위기 조장하는 한미일·북중러 동맹 해체! ○ 모든 전쟁연습·군사도발 중단! ○ 계엄제도 폐지! ○ 국민투표에 의한 대통령 파면제 도입! ○ 국회의원 상시 주민소환제 도입! ○ 군대·경찰에게 불법 명령에 대한 거부의무 부여! ○ 검찰·경찰·사법부 지휘부에 대한 주민직선소환제 도입! 5. 예상되는 세 가지 경로 지금 노동자계급 앞에는 세 가지 예상 가능한 경로가 놓여 있다. 첫째, 윤석열 탄핵이 기각되는 경우. 둘째, 윤석열 파면 후 차기 정권에서 극우세력이 대대적으로 성장하는 경우. 셋째, 윤석열 파면 후 사회대변혁을 향한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전진이 이뤄지는 경우. 하나씩 살펴보자. 1) 윤석열 탄핵 기각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탄핵이 기각될 가능성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0%’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12·3 친위쿠데타 자체가 합리적인 사고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우리가 목격해 온 극우세력의 준동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해도, 탄핵 기각의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탄핵 기각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파산 선언이 될 것이다. 광범한 노동자·민중 속에서 국가에 대한 믿음 자체가 붕괴할 것이다. 그동안 극우세력의 준동을 힘겹게 참아왔던 광범한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대폭발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양상으로 표출될지는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비록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무산됐지만) 금속노조가 3월 총파업에 대해 대의원대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중집이 3월 경고파업 안을 제출했고, 현장발의로 3월 14일 안이 제출됐다. 금속노조가 헌재 선고를 앞두고 경고파업을 조직하면서 투쟁의 근육을 다져둔다면, 그래서 만일 탄핵 기각시 즉각 단호한 총파업에 나선다면, 광범한 노동자·민중의 분노는 훨씬 쉽게 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을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노동자계급의 위력적인 총파업과 폭발적인 광장투쟁을 조직해 낼 수 있느냐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다. 광장 청년 대중의 능동성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금속노조의 3월 총파업을 현장 곳곳을 파고들며 최대한 열성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책이 될 것이다. 2) 윤석열 파면 후 차기 정권에서 극우세력의 대대적 성장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파면이 확정되고 대선이 열리면 민주당 정권의 등장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자·민중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머지않아 대중의 거대한 실망과 환멸이 다시 조성될 것이다. 극우세력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더욱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점점 더 깊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양상처럼 극우세력이 노동자·민중의 빈곤화로부터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심화와 함께 자본가계급이 극우세력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나설 수도 있다. 강력하게 성장한 극우세력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심한 사회경제적 공격을 의미하게 되겠지만, 다시 한 번 군사파시즘 부활을 획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 극우세력의 행보가 객관적으로 향하고 있는 승부처는 이번 대선이 아니라 다음 대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그것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는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이 파면될 경우 극우세력은 헌재 결정에 불복하면서 차기 정권 내내 준동을 이어갈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결국 극우세력이 대대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고, 극우세력은 다음 대선에서 크게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객관적 가능성을 가진 시나리오다. 노동자·민중이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은 이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주는 결정적 패착이 될 것이다. 3) 사회대변혁을 향한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전진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상황이 무조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투쟁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이후 사태 전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환멸이 윤석열 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된 것은 노동자운동·노동자정치의 위축과 민주당에의 종속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문재인 정권 아래서 노동자계급이 독립성과 투쟁력을 단호하게 발전시켜 나갔다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은 극우세력이 아니라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가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계급은 (예상되는) 민주당 정권에 맞서 독립성과 투쟁력을 단호하게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민주당 정권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환멸을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가 도약하는 발판으로 획득해 나가야 한다. (‘민주당과 연합’이 아니라) 민주당 정권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는 것이 극우세력의 성장을 차단할 수 있는 길이다. 노동자계급은 위력적인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함으로써 민주당 정권에 맞설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극우세력을 결정적으로 분쇄하면서 사회대변혁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지금부터 건설해 나가자. 민주노총은 이미 7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이 총파업이 첫 번째 위력적인 사회적 총파업이 될 수 있도록 조합원들과 광장의 청년 대중 속에서 그 동력을 힘차게 조직해 나가자.2025-02-24 | 조회 7,498 -
[번역] 민주당은 공허한 말들로 트럼프를 이길 수 없었다 — 그러나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은 이길 수 있다[편집자 주] 윤석열 친위쿠데타 이후 극우세력의 준동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극우세력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런 한국 상황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미국 의사당을 공격했을 때, 트럼프의 재집권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을 지난 이후 트럼프는 버젓이 재집권했고, 의사당을 공격한 폭도들을 사면했다. 미국에서 트럼프는 왜 그리고 어떻게 재집권할 수 있었는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반면교사를 얻기 위해, 레프트보이스의 관련 기사를 시일이 좀 지났지만 번역해서 싣는다. 히메나 베르가라(Jimena Vergara)와 시빌 데이비스(Sybil Davis) 2024년 11월 6일 대승을 거둔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가 매우 반동적인 의제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투쟁할 준비가 된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극우를 멈춰 세울 수 있다. 선거일 밤이 다가오면서,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이겼는지 알기까지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주요 경합 주를 모두 제패하고 선거인단 및 일반 투표에서 모두 승리했다. 공화당은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몇 달 동안 선거 운동을 벌인 끝에, 미래가 드러났다: 우리는 공화당이 대통령, 의회, 대법원을 모두 장악하는 보수적 삼권 분립에 직면해 있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경화 현상이 나타났다. 파란(민주당) 주와 빨간(공화당) 주, 도시와 작은 마을에서 모두 트럼프의 득표율이 증가했다. 뉴욕과 같은 확실한 파란 주에서도 해리스는 1988년 이후 어떤 민주당 후보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동시에 트럼프는 투표율이 약간 낮아졌기에 2020년 바이든보다 적은 표로 승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당파 투표율이 민주당 지지자 투표율보다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민주당 후보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우경화 현상을 경제 위기, 신자유주의의 위기, 그리고 민주당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선거를 몇 달 남겨놓고 해리스를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줄 게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압승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들에게 큰 위협이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에서 이미 목격한 바와 같이, 극우파는 이 힘을 이용해 이민자, 노동자 권리, 재생산 권리, 트랜스젠더 권리, 그리고 다른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을 가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일 이후 어느 정도 절망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지만, 우리는 트럼프와 그의 극우 동맹에 맞서 절망을 행동으로 바꾸고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돼 버렸던) 트럼프 첫 임기 때의 저항을 넘어 우파에 대항하는 진정한 운동, 즉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유권자 성향의 변화 유권자 인구 통계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쪽으로 이동한 정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특히 젊은 남성, 흑인 남성, 라틴계 사이에서 지지 기반을 넓혔다(이 중 40%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30세 미만의 남성은 2020년 15% 포인트의 격차로 바이든을 지지하다가 13% 포인트의 격차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대학에 다니지 않은 노동자계급 유권자의 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했다. 선거를 앞두고 성별 투표성향 차이에 대한 논의가 많았지만, 백인 여성의 다수가 트럼프를 세 번 연속 지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실제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리스는 전체 여성 속에서 10% 차이로 승리했지만, 2020년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14% 차이로 승리했던 것보다는 낮은 수치다. 반면, 트럼프는 전체 남성에서 바이든 때와 같은 차이로 승리했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임신중지권에 대한 지지를 승리의 비책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주리주와 몬태나주 등 여러 주에서 임신중지권을 보호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통과됐지만, 동시에 트럼프가 다수 득표를 했다.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다른 많은 주에서는 임신중지권 지지율이 트럼프 지지율보다 높았다. 이 사실은 임신중지권을 둘러싼 투쟁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 해리스의 여성 지지율을 높이는 데서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민주당이 임신중지권을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전국적 운동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임신중지권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임신중지권 이슈에 의존하여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돌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민주당에 불리하게 바뀌었다. 트럼프가 임신중지권에 대한 공화당의 공식 입장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권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 변경은 매우 교활했다. 트럼프는 임신중지권을 “주(州)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움으로써,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임신중지권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일부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임신중지권 반대 세력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임신중지권에 관한 한 트럼프가 다른 공화당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재생산 권리를 공격해 온 당의 수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임신중지권을 실제로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이 국가 차원에서 한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가 해리스와의 토론에서 지적했듯이, 해리스가 서명하겠다고 약속한 임신중지권 복원은 민주당원들이 조직하기를 꺼려하는 상당한 계급투쟁 없이는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트럼프가 승리한 결과는 미국인의 다수(주민의 55%)가 이민을 억제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것은 미국 태생과 일부 이민 노동자 모두의 경제적 불안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반동적인 입장으로 표출했다. 트럼프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가혹한 입장을 가진 후보였다. “지금 당장 대량 추방”은 트럼프 집회에서 외치는 주요 구호가 되었다. 해리스가 이민 문제에 관해 오른쪽으로 멀리 이동했지만, 트럼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트럼프는 모든 것을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정치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실패한 이유의 일부는 2020년 바이든 선거운동에서 친이민 정책을 펴려고 노력했다는 모순과 관련이 있다. 그때 민주당은 NGO들과 협력하여 이민자 권리 운동을 민주당으로 유입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 후, 바이든은 이민자에게 가혹한 탄압을 퍼부었는데, NGO들의 지도부가 방향을 상실하고 운동을 무력화하도록 성공적으로 이끈 뒤였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에 맞서 싸울 힘이 없었다. 그러한 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반이민 감정이 고조되었고, 트럼프는 이민자들을 노동자계급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뒤집어씌울 유용한 희생양으로 강력히 활용했다.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데 있어, 민주당은 트럼프가 선거운동의 기둥으로 삼은 이슈들에 대해서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선거 결과는 그들이 트럼프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당으로 나서는 데서도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자코뱅>이 펜실베니아주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조사대상이 된 모든 정치적 메시지 중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메시지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민주당원들이 민주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또는 직접 공격하고 있으면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라”고 메시지를 내는 것은 상당수 유권자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정부 기관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으며, 민주당원들이 매달리는 규범을 보호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민주당의 위기 다수의 유권자들은 경제를 이번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보았다.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다수는 트럼프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바이든은 코로나19 봉쇄 이후 경제를 안정시키고 반도체과학법 같은 몇 가지 주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일반 미국인의 경제 상황은 물가인상 때문에, 특히 식료품 같은 일반 소비재 가격의 상승과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더욱 불안정해졌다. 이런 상황을 놓고, 민주당은 경제가 실제로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강하게 비난했다. 바이든의 2020년 선거 캠페인은 샌더스의 지지 기반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샌더스와 협상해야 했다. 바이든은 학자금 대출 탕감, 노조조직화 보호법 추진, 노조 제조업 일자리 귀환 등 일부 진보적인 정책으로 통치했다. 이에 비해 2024년 해리스의 공약은 초점이 없었고, 노동자계급보다는 중간계급을 겨냥했다. 해리스는 월스트리트 억만장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일부가 트럼프와 손을 잡게 되었고, 노동자계급과 민주당의 역사적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번 선거는 2008년부터 성장해 온 정치적 현상, 즉 노동자계급의 일부가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의 결과를 보여준다. 2016년에는 트럼프가 일부 러스트벨트 주에서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블루 월’(민주당 우세 주들을 연결한 벽)이 무너졌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확고하게 공화당 지지자가 되면서, 정치에서 새로운 “학위 격차”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은 노동자계급 및 사회운동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비록 바이든이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치와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표하지 않는 정치에 지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민주당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역동적인 운동은 이 점을 반영했다. 시온주의를 완전히 수용한 민주당은 팔레스타인 운동에게 사소한 양보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팔레스타인 운동 대표에게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집회에서 아랍계 미국인을 쫓아냈다. 그 결과, 해리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지지자 없음’ 운동이 등장해 많은 아랍계 미국인들이 그녀에게 투표하기를 거부했다. 일부 아랍계 미국인들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민주당은 2020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이끌었던 것과 달리 팔레스타인 운동을 투표함으로 이끌지 못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과 민권 운동으로 청년들이 급진화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 젊은 활동가들과 민주당 간의 단절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진보의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았던 라시다 탈리브가 자신의 선거구에서 해리스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된 사실은 적극적인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이 갖는 대중성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활동가 기반을 멀리한 것은 해리스가 패배하게 한 이유의 일부였다. 유권자들의 경제적 두려움 앞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값비싼 전쟁에서 미국을 빼내겠다고 약속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매파적 수사를 두 배로 늘렸다. 공화당 지지기반 내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해리스는 이라크 전쟁의 주모자 중 한 명이자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지른 자의 딸인 리즈 체니와 손을 잡았고, 트럼프는 미국을 값비싼 “영원한 전쟁”에서 빼내려는 후보로 자신을 그렸다. 해리스가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분명히 실수를 저질렀고,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해리스는 “기쁨”, “자유”, “코코넛 나무” 같은 공허한 말들로 가득 찬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민자 권리, 기후 변화, 군대, 트랜스젠더 권리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원인 체니 같은 이들과 함께 하는 해리스의 “빅 텐트”는, 해리스를 초당파적 기득권 세력의 수호자로, 반면 트럼프를 그 거부자로 그려지게 했다. 요컨대, 오른쪽으로의 이동은 해리스에게 완전한 실패를 의미했다. 집권한 신우파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자신이 다가오는 임기 동안 대통령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권한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트럼프의 지지 연합은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포퓰리즘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확고한 극우파 이데올로그들이 있다. 임신중지권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에 불만을 가진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임신중지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다수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영향력을 얻기 위해 서로 알력다툼을 벌일 MAGA 운동의 다양한 세력들도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는 2016년과 2020년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거대자본들로부터 지지받고 있다. 트럼프가 이례적인 대통령 후보였고 자본의 중요한 부문이 해리스를 지지하고 기부했지만, 일론 머스크와 같은 일부 거대자본가들은 트럼프를 지지했다. 자본가들의 이러한 변화는 미국의 미래에 대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사이에 분열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안톤 재거는 <신좌파평론>에 이렇게 썼다. “두 정당의 사회적 구조는 2010년대 미국 정치 경제의 지각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녹색 재산업화라는 방향과 국내외 화석연료 생산이라는 방향 사이에서 갈등이 존재한다. 인플레이션과 싸운다는 방향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서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 제공이라는 방향 사이에서도 갈등이 존재한다. 이 복잡한 상황을 중심으로 두 블록이 응집되었다. 한편으로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계급을 넘어선 탄소집약연합이 형성되었는데, 공화당의 기존 신보수주의 지지자들을 제거하는 대신 주변부 블루칼라 노동자들, 농촌의 소부르주아, 교외의 중간 관리자, 부동산 자본가, 암호화폐 상인, 실리콘 밸리의 우파, 1980년대 자유방임주의의 맹공격에서 살아남은 철강 생산자들을 끌어들였다. 레이건이 결성한 연합과 달리, 트럼프의 연합은 백인 대학 졸업생이 부족하지만 학위가 없는 백인들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 트럼프의 연합은 미국의 헌법이 가진 반다수결주의적 특성 덕분에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 투표자 억제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 동원력은 이제 트럼프를 이용하여 주정부 기금에 대한 접근을 보장받고자 하는 포드 같은 기술 재벌에 의해 완화되고 있으며, 일부 노동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공동 결정제도 및 단체 임금협상에 관심이 있는 당내 새로운 수정주의 우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할 때,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더욱 극단적인 권위주의적 특징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다. 이를테면 법무부에 대한 통제 강화와 행정부의 권력 강화 시도가 있을 것이다. 자본의 더 큰 부문에 점점 더 호소력을 발휘하는 의제를 내세울 것이다. 이 의제는 금융 규제 완화, 국가와 교회의 분리 축소, 보호 무역주의, 그리고 민주적 권리 공격에 기반을 둘 것이다. 강력한 이민자 혐오 정책을 갖고 반이민 민병대를 부추기는 정부가 될 것이다. 이 정부는 “대 이스라엘”이라는 대량 학살 프로젝트를 계속 지원할 것이다. 가장 먼저 트럼프를 축하한 세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가 네타냐후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정부는 국제 동맹국들과 재협상을 시도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꿀 것이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는 반전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는 대신 중국과의 대결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화와 국경 군대 배치 등을 통해 미국 사회를 재편하고자 한다. 트럼프는 극단적 제국주의자로서 통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맞서 싸우려면 전 세계 노동자 자매형제들과 연대하여 싸우는 강력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가 필요하다. 억압에 대한 모든 위협과 함께, 트럼프는 미래의 국내 계급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단계 주류 분석가와 정치인들은 계급투쟁을 고려하지 않는다. 최근 <에즈라 클라인 쇼>에서 게리 거스틀은 신자유주의의 구질서가 사라졌지만 아직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낡은 것이 죽어가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그람시의 유기적 위기 개념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러나 클라인과 거스틀이 놓치고 있는 것은 계급투쟁이 상황을 규정하고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상황은 선거를 통해 표현되었지만, 거리, 학교, 직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급투쟁의 배제는 논리적으로 트럼프가 반인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치를 반대 없이 강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이러한 조치를 방해하고 중단시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노동자계급의 행동에 달려 있다. 트럼프의 복귀 앞에서, 민주당은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관료들과 공모하여 광범위한 인민전선을 구축함으로써 스스로를 재구성하려고 할 것이다. <자코뱅>과 DSA는 민주당을 노동자계급과 좌파에 더 가깝게 재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2016년과 2020년 샌더스 차단이 보여주었듯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한 신우파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좌파가 방향을 잃게 하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은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에 트럼프와 극우파에 맞서는 데 필요한 투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우경화를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요소도 있다. 민주당과 결별하고 좌파로 향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운동은 아직 사회운동의 무덤으로 이끌려 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정권과 대학 내 동맹세력은 이를 억압하기 위해 더욱 가혹한 전술을 사용해야만 했다. 집단학살이 계속되면서, 이 운동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트럼프가 주도하는 탄압적인 조치에 맞선 더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면서 말이다.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 공격 이후 오랜 동면으로부터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노조들이 결성되고, 투쟁적인 파업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노조를 단순한 생계유지 이상의 것을 위한 투쟁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좋은 징조이며, 상황을 분석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한다. 관료들이 이런 투쟁을 막으려 할 것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노동자계급과 사회운동에 있다. 우리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계급투쟁을 함께 조직할 수 있다면, 트럼프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계급투쟁이 유기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격동의 시기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시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낡은 것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계급투쟁은, 만일 우리가 조직해 낸다면, 새로운 무언가의 산파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파에 대항하는 공동전선만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을 하나로 묶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사회주의 강령을 가진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당이 필요하다.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e-democrats-couldnt-beat-trump-with-hot-air-and-coconut-trees-an-organized-working-class-can/2025-02-06 | 조회 5,888 -
전한길의 선동은 어떤 위험의 징조인가?사진: 전한길 유튜브 갈무리 저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역사 일타강사’로 알려진 전한길의 내란 옹호 선동을 발 빠르게 퍼 나르고 있다. 전한길의 유튜브 '꽃보다 전한길'의 구독자 수는 95만 명에 이르고, 그가 올린 '2030 세대와 국민들께 드리는 호소문'의 조회수는 356만회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극우 유튜버 김성원의 'GROUND C'에 올린 '계엄령 내린 진짜 이유'도 조회수 362만을 기록하고 있다. 전한길의 영상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2030 세대를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김성원도 극우 집회에 나온 2030 세대 참가자들을 인터뷰해 만든 영상을 계속 올렸다. 헌법재판소 바깥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극우세력은 여론전에 목숨을 걸었다. 윤석열 지지율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려 헌법재판소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그 전에 공소기각, 보석신청을 밀어붙이면서 여론을 계속 움직이려 할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검찰의 윤석열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불허하면서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송부 받은 검찰청 검사가) 전면적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 법적 근거나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검찰이 바로 구속기소를 했는데, 극우들은 검찰이 조사하지도 않고 기소했기 때문에,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기소가 ‘남(공수처)의 답안지를 보고 시험을 치르는 꼴’이라며 검찰을 맹비난하고 있다. 저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핵심 약점과 강점 전한길은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상식파"라거나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 때는 비상계엄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꺼내며 위장막을 친 뒤, 내란을 옹호한다. 전한길이나 김성원은 민주당이 22번의 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선동한다. 민주당의 입법이나 탄핵에 윤석열은 손을 놓고 있었는가? 윤석열은 총 24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에는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채상병 관련 특검법에는 세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짓밟은 윤석열의 독재를 조금도 비판하지 않는다. 헌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과거 정부에서도 부르주아 의회 내에서 수많은 논쟁과 다툼이 있었다. 국민의힘 세력들은 과거 노무현을 탄핵하려 했다. 계엄 전 사법 시스템이나 행정 시스템은 조금도 마비되지 않았다. 이렇듯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 볼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기에, 현재 헌법 기준에서도 국헌 문란의 목적으로 한 내란죄임이 틀림없다. 국회 내 헬기 착륙, 무장 계엄군 국회 청사 진입, 경찰의 국회 봉쇄와 출입 저지, 선관위 군병력 투입 등 헌법을 위반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많은데, 이런 증거를 얘기하기 전에 계엄 선포 요건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일당이 '고도의 통치행위' 운운하며, 계엄이 정당하다고 우길 수 있는 이유는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계엄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유튜버들이 집요하게 계엄 선포 요건을 따지는 이유는 그게 바로 저들의 핵심 약점이기 때문이지만, 역으로 살펴보면 계엄 선포 요건이 있는 것 자체가 저들의 핵심 강점이기 때문이다. 포고령에서 볼 수 있듯 윤석열은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를 압살하려 했다.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지하려 했다. 계엄 제도가 살아 있는 한, 노동자 민중이 피흘려 쟁취한 물질적, 도덕적 성과는 언제든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란죄 처벌을 넘어 계엄 제도의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한 명에게 '국가비상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전권을 주고, 군병력 투입에 대한 전권을 주는 계엄 제도 자체가 독재의 길을 합법적으로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 배나 더 큰 힘 전한길, 김성원 유의 주장이 새롭지는 않지만,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저들이 수만,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을 향한 공공연한 "대중적 이데올로기전"에 나섰다는 점이며, 그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저들의 논리 중 민주당에 대한 공격은 기본 상수인데, 민주당은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역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망가뜨려 왔고 재벌들과 부자들의 삶을 지켜줬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그들의 치떨리는 위선은 청년세대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내세울 게 없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은 거의 모든 역량을 의회 안에서 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지배 정당일 뿐이며, 바로 그렇기에 지금도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저울질하는 등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하며 검찰과 법원에 매달리고 있다. 민주당을 제대로 비판하기는커녕, 그들의 왼쪽 날개에 머물렀던 진보당과 정의당은 그들의 행동이 쌓이고 쌓인 결과, 지금 국면에서도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민주당 정부 아래에서 줄기차게 싸워왔던 노동자들은 충분히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반드시 내야 한다. 누가 기세가 꺾이지 않은 극우들의 준동을 제압할 수 있는가? 누가 저들의 대중적 이데올로기전에 제대로 맞설 수 있는가? 노동자계급은 국회 바깥에서 엄청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만 명이 결집해 있는 민주노조는 이데올로기전의 중요한 거점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수많은 현장에서 선전할 수 있고, 선동할 수 있고, 현장 토론을 조직할 수 있다. 백만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살아 있는 스피커가 된다면 극우 유튜버들보다 100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나 물리적 측면에서나 압도적인 힘으로 극우세력을 격퇴할 수 있다. 모든 진지한 활동가와 간부가 현장 활동에 나서야 한다. 조합원들과 저들의 논리를 토론하고, 노동자의 요구를 제기하며, 지도부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방법, 투쟁하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과 2030 세대와 결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 확대되는 투쟁, 더 과감한 투쟁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저들의 이데올로기전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면 윤석열 지지율이 50~60% 오르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넘어가고 있는 2030 세대 한 세대의 특성을 뭉뚱그려 표현하거나 이들의 특성을 과장하면 구성원들의 현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세대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 그 점을 유의해야 하며, 좀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2030 세대의 상당수, 특히 젊은 남성들의 상당수가 극우세력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서부지방법원 폭동에서도 나타났다. 전한길이나 김성원이 올린 영상 댓글에서도 극우로 넘어가고 있는 상당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징조로, 극우세력 내에서의 주도권이 흔히 '태극기부대'로 알려진 노년층에서 젊은 층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한길, 김성원 등은 이런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선도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립적인 척, 공정한 척 포장할 줄 알며, 반공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공화주의, 전체주의 등을 끄집어내서 내란을 옹호하고 있다. 청년들의 절망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속에서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극우화 강풍에 휩쓸렸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지배계급은 물론 노동자들의 상당수도 이른바 ‘K 시리즈’를 노래하며 '성장과 안정'에 관한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 실제로는 비정규직, 여성, 청년, 노인을 중심으로 사회 한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누적되고 있었다. 그것을 못 본 채 그럭저럭 안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본주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제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직시하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극우세력이 부상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극우세력은 대중의 고통과 절망을 자양분 삼아 소리 없이 계속 성장했다. 그 결과 지금 한국 사회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절망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은 기존 현실을 유지하고 땜방하기에 급급한 자유주의, 중도주의 세력을 불신한다. 급진적 변화를 갈망하는 청년들은 "윤석열만큼 반국가세력과 전투적으로 싸운 지도자가 없었다"라고 하면서 환호하고 있다. 지금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분노한 거대한 투쟁의 에너지가 존재할 때 극우세력을 제대로 제압하지 않는다면, 몇 달 후든, 몇 년 후든 노동자계급은 몇 십 배 힘든 투쟁을 벌여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과 무관하게 극우세력은 계속 준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은 검찰과 헌법재판소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으로 광장에 나서야 한다. 투쟁에 나선 2030 세대와 힘을 모아 내란 세력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중단 없이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위기는 더욱더 날카롭고 응축된 형태로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 민중을 가난과 실업, 불평등과 불안정한 삶으로 내모는 쇠퇴한 자본주의로는 전진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자! 노동자들과 가난한 민중이 정부와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세상을 만들자!2025-01-29 | 조회 5,063 -
극우 대중의 폭동, 누가 어떻게 제압할 수 있는가?사진: 서울신문 격렬하고 끔찍한 공격성 지난 19일 극우 대중이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아주 격렬하고 끔찍한 공격성을 보여줬다. 경찰을 구타하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서버까지 탈취했다. 이번 습격은 내란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극우 대중의 행동을 조직했다. 윤석열은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대중을 ‘애국시민’이라 부르며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선동했다. 국민의힘은 줄기차게 쿠데타를 옹호하고 감싸 왔으며 전 최고위원 김재원은 "아스팔트 십자군들의 창대한 거병“이라고 칭송했다. 이번 폭동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극우세력은 물리적으로도 상당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극우세력 내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북벌의병단을 이끌고 있는 극우유투버 유동규는 최근 북벌의병단이 1,300여 명에서 5,000여 명으로 늘었다면서 만 명만 되면 아주 큰 물리전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2030 남성들이 전면에 서다 폭동의 중심에는 2030 남성들이 있다. 최근 극우 집회에도 젊은 남성들이 많이 참가했고, 그들이 이번 습격도 주도했다. 이들은 왜 극우 정치에 매료되고 있는가? 쇠퇴하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대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7-4-7 성장 공약을 내걸었지만, 그 이후 어떤 자본가 정부도 그런 공약은 내걸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성장 엔진’은 꺼졌다. 높아지는 무역 장벽과 이윤율 하락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의 지속적인 축소,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초래하는 거대한 불안감은 이미 만성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쇠퇴하는 자본주의는 실업과 불평등, 생활의 불안정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낳고 있고 바로 이것이 극우 준동의 뿌리다. 이런 상황 앞에 놓인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절대적·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며 대안을 찾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노인도 마찬가지다. 극우세력은 이런 정치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희생양을 만들며, 그들을 공격해야 가난에 빠져 있고 불안정에 허덕이는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불러온 희생양은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들이다. 나아가 허울뿐인 공정과 복지를 얘기하는 민주당도 공격해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려 한다. 자유주의 세력일 뿐인 민주당을 ‘빨갱이들’, ‘사회주의’로 색칠하고 공격하는 일도 단골 전략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진정한 노동자정당이 없는 정치지형, 오른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한국의 정치지형 아래서 손쉽게 먹힐 수 있는 전략이다. 예고편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아니다. 부정선거가 실제로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도 아니다. 그들의 심리는 윤석열 구속과 탄핵에 절대 승복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정부를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에 기반해, 불복종할 수 있는 온갖 명분을 끌어모으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6~17일 이틀간 진행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46.5%, 민주당은 39%로 집계됐다. '정권 연장론'이 48.6%, '정권 교체론'이 46.2%로 나타났다. 보수층 응답자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세가 얼마나 요동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이런 보수의 결집에 힘입어 극우세력은 격렬한 전투적 대중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부지법 습격은 그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 극우 대중운동은, 더 강력한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운동을 비롯해 여성운동, 장애인운동, 성소수자운동, 이주노동자운동 등 모든 급진적 대중운동을 해체하기 위해 더욱 날뛸 것이다. 이들의 직접적인 대중행동은 노동자 조직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극우세력이 의회 안과 바깥에서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상황은 극우 정부의 등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런 일이 몇 달 뒤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몇 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극우 정부가 등장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극우 정부의 공격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끔찍한 일들을 만들어내겠지만, 노동자들에게도 재앙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주노조도 파업도 불가능한 세상, 따라서 임금 단체협약 등 1987년 이후 획득해 온 모든 경제적 성과를 상실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국가기구에 맡기면 해결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국가기구에 맡기면 해결될 수 있는가? 그동안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기구는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투쟁을 잔인하게 진압해 왔다. 손해배상·가압류, 영업비밀 수호 등에서 볼 수 있듯 법은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철저하게 옹호한다. 지금 그들은 극우들의 습격이 자신들이 계속 외쳐왔던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 형식마저 파괴하자 엄중 처리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극우세력과 정면 대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위험한 환상일 뿐이다. 검찰(공수처)과 경찰은 윤석열 체포를 방해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았으며, 윤석열 체포도 1차 시도 때는 쇼만 하고 극우 결집의 기회를 주다가 체포를 촉구하는 노동자민중의 압력에 밀려 뒤늦게 집행했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노동자운동과 민중운동을 더 강하게 탄압할 것이다. 똑같이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을 것이다. 우리는 극우 폭동에 대한 강경 대응을 빙자해 노동자민중을 공격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민중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극우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 다수의 힘이 있다. 이미 노동자민중은 그런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다. 수백만이 윤석열 탄핵과 구속을 위해 거리로 나왔고 남태령, 한강진에서 중요한 투쟁을 해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것 또한 분명히 드러났다. 극우들 역시 거리로 나섰고 과감해졌다. 광장의 힘이 멈춘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만 지켜보고 있는다면, 불붙어 오르고 있는 저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 역으로 노동자들이 저들보다 더 과감하게 행동하고, 총파업을 비롯한 집단적 힘을 발휘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면 상황은 다시 바뀐다. 10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5분의 1만이라도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선다면, 거기에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2030 청년들의 에너지만 결합해도 저들의 물리력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민주당에 표를 던지면 극우세력은 뿌리가 뽑힐 수 있는가? 윤석열 체포 이후 민주당 이재명은 ”안타까운 일, 이제 민생과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민생과 경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치 극우의 준동이 끝난 상황인 것처럼 인식하는 너무나 한가로운 얘기였다. 수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이 진정한 변화를 희망할 때, 민주당은 온건을 얘기한다. 여야정협의체를 비롯해 국민의힘과의 공존을 얘기한다. 하지만 가난과 실업, 전쟁 위협에 맞서는 투쟁, 공공성 확대와 복지를 위한 투쟁,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은 더욱더 긴급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가들의 당인 민주당에 의지해서는 결코 온전히 획득할 수 없다. 온건과 공조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반동적인 극우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독립적인 노동자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이재명의 한가로운 얘기보다 몇백 배 더 위험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안일하게 바라보면서, “민주노총이 길을 열었다” 자기만족에 머무르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결단과 분투가 필요한 때다. 극우세력을 분쇄하고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과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더 큰 힘과 힘이 격돌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국면이 다가는 흐름 속에서, 총파업 조직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많은 사람이 이번 습격을 2021년 1월 6일 미국 트럼프 지지자들과 극우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습격과 비교하곤 한다. 세계는 경악했다. 트럼프가 폭력과 파괴를 부추겨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트럼프가 다시 집권했다. 민주당이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배신하면서 극우세력에게 다시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이 지체되고 노동자계급의 대중적인 투쟁에 기반한 노동자정당,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실한 노동자정당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비극이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지금까지 볼 수 없는 극우들의 준동을 낳았다. 이들은 다시 사회를 장악하고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노동자민중도 이미 행동에 나섰다. 거대한 저항의 에너지가 솟구치고 있다. 누가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노동자계급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비극은 한국에서 똑같이 되풀이될 것이다.2025-01-20 | 조회 4,770 -
정세 교착,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엇으로 돌파할 것인가1월 6일 한남동 관저로 몰려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극우는 어떻게 결집하는가 윤석열은 한남동에 틀어박혀 극우세력에게 노동자 민중과의 내전을 선동하고 있다. 12월 28일 윤상현의 극우 집회 참여를 시작으로, 1월 5일 이철규와 김민전 등 9명이 극우 집회에 참여했다. 1월 6일 체포영장 집행에 반대하며 국민의힘 의원 44명이 한남동 관저에 집결했고, 1월 9일에는 그 악명 높은 ‘백골단’이 국회에 등장했다. 최상목은 1월 3일 경호처 지휘를 거부했음은 물론 윤석열 경호인력 확대를 경찰에 지시하기까지 했고, 1월 10일 내란특검법 관련 여야 협상을 주문하며 내란공범들 편에 섰다. 극우의 발악과 함께 거대한 투쟁 속 교착 국면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직후 위축된 극우는 어떻게 다시 세력을 결집했는가? 정세의 주인이라도 된 양, 상황을 적당히 관리하며 ‘이재명 정부 수립’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민주당의 행보가 극우세력 결집을 부르고 있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 여야정협의체, 내란공범들과 국정운영을 협의하자는 민주당의 행보가 극우결집의 길을 열었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민주당은 내란공범 한덕수 대행체제를 인정했고, 내란공범 한덕수와 국민의힘에 ‘여야정협의체’를 제안하며 내란세력의 전열 정비를 가능케 했다. 한덕수 탄핵 이후에는 다시 최상목과 국민의힘에 여야정협의체를 제안했다. 도대체 누가 민주당에 내란공범들과 국정을 논할 권리를 부여했단 말인가? 한덕수를 비롯한 내란공범들은 윤석열과 함께 즉시 구속처벌되었어야 했다. 이와 함께 비상계엄 해제에 조직적으로 불참하고, 국회 탄핵소추안 부결을 유도한 국민의힘 해체투쟁을 확대했어야 했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사유 내란죄 제외’가 극우결집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으로, 1월 3일 민주당 주도 국회탄핵소추단은 윤석열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고 ‘헌법 위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내란죄는 형법 사안인 바, 헌재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마비 시도 등이 ‘위헌’인지만을 다루고, 해당 행위가 형법상 ‘내란’에 해당하는지는 형사법정으로 분리해 헌재 판결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이는 극우세력의 결집에 기름을 붓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왜인가? 첫째, ‘내란’은 대중이 윤석열을 타도해야 할 이유로 꼽는 첫째 이유이며 분노의 원천이다. 반대 측면에서 보자면, 극우세력이 발악하는 이유가 바로 윤석열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란죄’로 직무가 정지되고 파면될 위기 때문이다. 돌아보자. 박근혜 탄핵인용 사유는 △대통령 지위와 권한남용 등 공직자윤리법 위반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 침해 △국가공무원법상 비밀엄수의무 위배 등이었다. 윤석열의 ‘내란죄’는 박근혜 탄핵인용 사유와 비교할 수도 없이 무겁다. 노동자 민중과 극우세력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대치선인 ‘내란죄 규정’에 있어, 헌재 판결을 앞당긴다는 이유로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제외한 민주당의 결정으로 극우세력은 ‘사기 탄핵’을 운운할 명분을 얻었으며 더욱 단단히 결집하고 있다. 1월 4일 국민의힘 비상의원총회 사진: 국민의힘 둘째, 헌재의 탄핵인용을 앞당기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지 심리 간소화가 아니다. 헌재는 그 구성 자체부터 ‘순수 사법기관’이 아니다(사실 그런 것은 세상에 없다). 헌재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세력균형을 반영해 구성되며, 헌재가 내리는 탄핵심판의 본질은 체제의 균열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해결이다. 즉, 헌법재판은 그 자체가 ‘정치재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동자 민중의 선택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헌재의 탄핵인용 사유에 내란죄를 확실히 포함함으로써, 향후 이어질 형사재판의 ‘내란주범’ 선고를 미리 확정하는 것, 이를 통해 향후 내란옹호 극우세력을 완전히 척결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사유 내란죄 제외는 극우세력에게 ‘투쟁으로 사기 탄핵을 입증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물론 극우세력의 난동이 광장투쟁을 흔들지는 못하나, 민주당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극우는 더 단단히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결정 배경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있으며, 더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질서의 조속한 복구’라는 목표 앞에 극우세력을 끝까지 청산할 수 없는 민주당의 근원적 한계가 있다. ‘그래도 이재명 정부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를 기억하자’ - 극우는 민주당 정부에 대한 반감을 조직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을 낳은 일등공신은 민주당 문재인 정부다. 대중은 촛불항쟁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음을 잘 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극우세력의 난동 확대, 그 근본적 동력은 역대 민주당 정부에 대한 회의이자 ‘이재명 정부’에 대한 반감이다. 특히, 분노한 2030 여성·소수자들의 광장 진출 뒤에 존재하는 것은 20·30대 남성들의 회의다. 2022년 대선 당시 방송3사가 집계한 20대 남성의 윤석열 투표율은 58.7%, 30대 남성의 경우 52.8%에 달했다. 그렇다면 젊은 남성은 원래 국민의힘 성향이라서 윤석열을 지지했는가? 아니다. 문재인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지지율은 87%에 달했다. 문재인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 2017년 2월임을 감안하면, 20대 남성 다수가 애초 ‘페미니즘’을 적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던 20대 남성은 정부에 실망했다. 즉,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급격한 회의가 이들을 윤석열로 이끈 것이며, 특히 ‘조국 사태’는 그 중요한 촉매였다. 문재인 정부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음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국 사태'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문재인 정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 하나가 문재인 정부의 허울뿐인 성평등 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 일련의 과정에서, 실질적 삶의 개선 없는 껍데기뿐인 ‘성평등’ 정책은 극우·보수세력의 악선동에 젊은 남성들을 노출시켰다.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해서인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을 강제하지 않고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즉,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고용안정과 생활임금 보장에 있어 하등의 개선도 이루어내지 못한 정부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착취자와 억압자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 비율을 할당하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박원순을 추모하며 집단적 2차 가해를 자행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현재 피부로 느껴지고 통계로 드러나는 20·30대 남성층의 낮은 광장투쟁 참여율은 ‘도로 민주당 정부’에 대한 불신과 직결되어 있다. 지금, 가장 고통받아온 대중이 떨쳐 일어나 민주노총을 부르고 있다 뼈저리게 경험했듯,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바꿀 수 없다.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확대하고, 그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서자. 애초 조기대선에 이은 이재명 정부 수립으로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민주당은, 내란세력의 완전한 청산이라는 광장의 요구를 수행할 수 없음이 그간 과정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1월 3일부터 6일까지 민주노총이 주도한 윤석열 체포투쟁에 대한 지지에서 드러나듯, 2030 여성·소수자들은 노동자와 연대하며 놀라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한 한화오션의 악랄한 노동탄압에 맞선 거통고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1년 넘게 먹튀자본 닛토덴코에 맞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불탄 공장을 지키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처구니없는 대법원 패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투쟁을 벌이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에, A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축소은폐와 2차 가해에 맞서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해임당한 지혜복 교사의 투쟁에 2030대 여성·소수자들의 지지와 연대가 쇄도하고 있다. 1월 10-11일 옵티칼 희망텐트 이들은 윤석열 정권 아래 가장 고통받아온 동지들이고, 차별금지법제정 요구를 외면해 온 민주당에, 박원순의 성폭력을 감싸며 피해자를 공격하는 민주당에 분노해온 동지들이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고자 달려오는 미조직 노동자들, 함께 민주노총에서 투쟁해야 할 동지들이다. 민주노총이 진정 길을 열 때다. 내란공범이 날뛰는 세상,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세상, 여성혐오와 소수자 혐오로 가득한 세상을 개조하는 총파업 투쟁에 나서자. 윤석열 정권을 박살내는 과정에서 모든 차별·혐오를 일소하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여성혐오 선동, 차별금지법 반대 공약으로 집권한 정권이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운동에 노동자가 앞장서자.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해 노동자가 나서자. 일터에서부터 성폭력과 성차별을 끝장내자. 이와 함께 대대적인 노동조합 가입운동이 필요하다. 그렇게 민주노총 200만 시대를 열어내자. 가자 총파업! 윤석열 즉각퇴진! 국민의힘 해체! 사회변혁 쟁취! 노동자계급이 준비가 되어있었다면, 윤석열 체포 관련 경호처 지휘를 거부하는 최상목 대행체제에 맞선 파업을 벌였을 것이다. 교착을 뚫어야 한다. 그 길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총파업 깃발을 들고 노동자의 손으로 윤석열 정권과 극우세력을 뿌리까지 청산할 때다. 윤석열 정권을 뿌리까지 청산하는 과정과 함께, 차별과 혐오를 일소하고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쟁취하는 사회변혁의 길을 열자.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내란공범들을 척결하자. 당장 모든 지역구 내란공범 국회의원 사무실로 진격해 즉각 사퇴 투쟁을 벌이자. 비상계엄에 가담한 군경부대를 해체하고, 군경 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 나아가 비상계엄제도 자체를 철폐해 극우세력이 다시는 기본권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하자. 둘째, 윤석열은 전쟁 도발을 통해 계엄령을 준비했다. 다시는 전쟁 도발을 통한 계엄령 발동이 불가능한 세상을 만들자. 전쟁 도발 시도를 철저히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자. 북중러 동맹과 마찬가지로 전쟁위기를 조장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해체하고, 모든 전쟁연습을 전면 중단시키자. 셋째, 노동자 민중의 국가권력 통제를 강화하자. 국회의원 소환제로 극우세력을, 또한 자본의 대리인들을 국회에서 쫓아내자. 검찰과 사법부 등 고위공직자를 선출하고 소환해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두자. 탄핵 시 대통령 파면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해, 헌재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손으로 무도한 권력자를 축출할 수 있도록 하자. 넷째, 혐오정치와 극우정치의 토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위기를 계급투쟁으로 해소하자. 파견법·정리해고제 철폐, 노동권 전면 확대는 물론, 육아·교육·주거·돌봄·노후를 국가책임으로 보장하게 하자. 평등의 토대는 생존권이다. 다섯째, 이 모든 절박한 요구를 쟁취하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하자. 다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윤석열을 낳은 자본주의체제의 거대한 모순은 결코 민주당 정부가 해소할 수 없다. 위성정당 사태로 파산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총파업으로부터 시작하자.2025-01-13 | 조회 3,929 -
노동자 총파업으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퇴진을 넘어 노동자 민중 사회로 전진하자!민주노총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으로,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퇴진을 넘어 노동자 민중 사회로 전진하자! 1월 3일 한남동 관저 앞 1박 2일 철야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들 한국 사회는 하루가 10일 같은 나날을 지나고 있다. 독재의 회상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윤석열은 내각, 군대, 경찰, 극우 집단과 함께 계엄을 선포했다. 이들이 일으킨 내란은 평범한 대중을 역사의 무대로 불러냈다. 계엄과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중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세력에 맞서 문제투성이인 기존의 민주공화국을 지키고 자본주의로부터 강요받던 고통과 처지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역사의 주인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를 저항으로 승화시킨 대중 윤석열의 계엄령 목표와 섬뜩한 포고령은 대중을 심각한 충격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대중은 잠시 위축됐던 감정과 불안을 금세 떨쳐냈다. 거듭되는 집회와 거리 투쟁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저항으로 승화했다. 계엄과 내란을 처음 경험한 10대와 2030 대중은 수천수만 노동자의 참여를 보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고 사회적 소수자와의 연대를 넓혀가며 자신감을 쌓아갔다. 저항의 날들이 더해질수록 지금껏 의심하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 이념, 기존 보수정치가 쥐락펴락해 온 국가에 대한 의문을 싹 틔우며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에 대한 본능적 갈망을 분출하고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내란공범 국민의힘 해체에 앞장선 2030 대중 다수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들이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진 세대다. 온갖 형태의 비정규직과 실업의 굴레에 묶여 미래의 안정적 삶을 꿈꾸지 못하고 절망했다. 그러나 계엄과 내란정세에서 2030 대중은 역사적 무대로 뛰어나와 지금까지의 고통과 절망을 딛고 새로운 삶과 희망을 찾는 용기를 내고 있다. 광장을 찾은 2030 대중은 조직노동자에 대한 과거의 불신을 뒤로 하고 집회와 투쟁에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에게 친화력을 보였다. 민주노총이 싸우는 장소에 찾아가 함께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더 크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답답한 정세를 돌파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특징적 현상은 오랜 기간 억눌려 왔던 대중 의식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 투쟁과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중들 속에 확산되고 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기존의 극우 보수와 중도 보수 양당 정치가 좌우해 온 절망의 정치를 새로운 희망의 정치로 바꾸는 비옥한 토양이 다져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 정세에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의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 같다.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어떤 요구를 내걸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 투쟁할 것인지를 예시하고 있다. 내란의 연속과 현 정세의 핵심 계엄과 내란의 공범이었던 군대, 경찰 수뇌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윤석열을 내란수괴로 지목하는 증거를 쏟아 냈다. 윤석열이 내란수괴로 확정된 만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2명 충원과 탄핵심리 속도로 판단할 때 2명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4월 18일 이전에 파면 결정이 내려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전망이 가능한 이유는 지난 한 달 동안 전국 곳곳에서 저항한 노동자 민중의 요구와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항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면서 탄핵 기각 시도에 빗장을 걸고 탄핵 인용 결정에 쐐기를 박는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구속이다. 내란공모자들의 실낱같은 희망과 저항 의지를 꺾어야 한다는 점, 조속히 내란을 종식하고 대중의 다음 투쟁을 위한 자신감을 높여야 한다는 점, 노동자 민중에게 유리한 정세를 만들어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더 거대한 투쟁의 출구를 열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현 정세의 핵심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구속을 빠른 기간 내에 성취하는 것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극우 반란 선동과 그에 동조하는 극우세력의 총동원령과 극렬 저항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윤석열 체포·구속 저지는 극우세력에게도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들도 윤석열 체포·구속이 곧바로 탄핵 인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세력들 1월 3일 공수처가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체포를 시도했지만, 내란수괴 윤석열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내란 공모·가담자들의 묵인·방조·저항으로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됐다. 개인화기와 집단위력을 동원해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박종준 경호처장 외에도, 대통령 경호처에 체포영장 집행 협조를 지시하지 않은 최상목 권한대행, 55경비단 철수를 지시하지 않은 국방부 수뇌부, 부실한 준비 끝에 사무실에서 보고만 받으며 경호처장을 현행범 체포해야 한다는 경찰 요청을 거부한 오동운 공수처장 등이 그 장본인이다. 윤석열이 체포·구속되지 않았고 권한대행 내각, 군대, 검찰, 공수처 등 내란수괴에 협조하는 자들이 여전히 활개 치는 상황은 내란의 연속을 뜻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극우세력 총궐기 선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대통령 관저에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윤석열 호위무사들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1월 3일 대통령 관저에서 벌어진 사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 사회의 심리적 내전이 대통령 관저 내에서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경호처와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55경비단이 항복하지 않고 극렬 저항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물리적 충돌과 소규모 내전으로 이어질 시한폭탄을 의미한다.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무산으로 극우세력은 고무돼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안도감과 성취감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와 구속이 임박해지고 작은 안도감마저 무너지는 순간, 극우세력은 일부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지막 발악에 나설 것이다. 투쟁에서 패배한 개인과 집단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협과 불행의 원인을 다른 세력과 외부에서 찾듯이, 이후 극우세력은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한 반대와 분노, 민주노총 조직노동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일삼으며 당분간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현 정세의 엄중함을 안다. 내란 공모·가담자에게 맡겨진 윤석열 체포·구속을 기대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노동자 민중은 승리할 게 분명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극우 반동의 몸통뿐 아니라 그 반동 물결의 잔 줄기마저 제압하면서 새로운 변혁과 전진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중 의식의 급진화를 촉진하는 출구 광장 집회와 거리 행진에 참여한 대중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잠시 긴장을 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탄핵 기각을 획책하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한덕수의 탄핵을 요구하며, 극우세력을 선동해 감옥행을 면해보려는 윤석열의 즉각 체포를 요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은 다시 거리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의 의식 변화는 균일하지 않다. 정치적 경험은 의식의 변화를 촉진하지만, 그것은 직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요동치는 정세의 모순적 상황을 겪으며 대중의 의식도 지그재그로 요동친다. 사회 변화를 재촉하는 정세에서 대중을 향한 새로운 요구와 과제, 투쟁의 전망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노동자계급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현 정세에서 대중의 급진화를 가로막는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수처와 경찰에 윤석열 체포·구속을 내맡긴 후, 국회와 헌법재판소 일정을 쫓으며 대중 저항을 단지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만 활용하려 드는 민주당의 우유부단한 태도다. 다른 하나는 진보세력이 정세의 주도권을 민주당에 내주었다는 것, 특히 민주노총 지도부가 광장 대중의 요청인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원만한 일정을 방해하는 내란공모자와 가담자를 향해서는 핏대를 올리며 공격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계획에 순응하는 협력자들에 대해서는 내란 공모·가담자라 할지라도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조기 대선을 위해 중도층을 공략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이런 어설픈 집권 전략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대중의 의식과 투쟁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갇혀 질식당할 수밖에 없다. 현 정세에서 대중의 급진화를 촉진하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민주당이 주도해 국회와 헌법재판소 일정에 가둬놓은 최소 저항선을 넘어서는 노동자들의 전면적 개입이다.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내란공범 국민의힘 해체,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내건 총파업을 조직해 2030 미조직 노동자의 급진화를 촉진하고 더 멀리 전진하는 전국적 민중항쟁의 출구를 활짝 열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길을 연다면, 어떤 방법으로 열 것인가!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중요한 기점에서 몇 번의 길을 열었다. 민주노총은 계엄 해제안 가결 직후 윤석열 탄핵소추 국면에서 무기한 총파업을 선포했다. 철도파업과 금속노조 부분파업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초기 국면에서 하나의 장벽을 돌파하는 길을 열었다. 농민투쟁단이 남태령을 넘는 순간에도 길을 여는 역할을 했다. 1월 3~5일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투쟁에서도 민주노총 확대 간부와 조합원은 광장 대중과 함께 투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몇 번의 길을 열었던 힘은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보다 2030 미조직 노동자와 각계각층 참여자가 광장의 압도적 다수였다는 데서 나왔다. 노동자계급은 격동하는 역사적 순간마다 정세를 주도하는 결정적 길을 열어왔다. 1905년 영국 노동자는 수백만 총파업을 조직해 1906년에 “파업에 대한 자본가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폐기”의 길을 열었다. 1917년 2월 러시아 차르 군주제를 타도한 노동자 총파업은 10월 노동자혁명의 길을 열었다. 1968년 프랑스 학생 시위로 촉발된 투쟁은 노동자 총파업 조직화로 5월 혁명의 길을 열어 드골 정부의 붕괴 직전까지 밀어붙였다.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은 한국 사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을 열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당면 요구를 쟁취하는 수단, 기존 정치를 변화시키는 촉진제, 새로운 노동자사회로 전진하는 무기였다. 역사에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 총파업의 위력을 유감없이 입증해 왔다. 현 정세에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내란을 종식하는 정치파업을 조직해서 미조직 노동자의 생존권 파업을 촉발하고 전국적 민중항쟁을 확산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무다. 중대한 역사적 분기점에서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인식하고 과감하게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은 수많은 피억압·피착취 대중의 지지와 사회적 동맹을 주도하면서 노동자 계급해방 평등사회를 열어갈 자격을 획득했다. 민주노총 조직노동자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움켜쥐자! 윤석열의 계엄과 내란이 만든 정세는 매우 위태롭고 유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에게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싸워야 할 때 과감하게 싸울 줄 알고, 물러서서 투쟁 대열을 정비해야 할 때 정비할 줄 아는 세력이 역사를 주도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그 세력은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며, 지금은 전면적 투쟁에 나서야 할 때이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은 경제적 조합주의에 안주하는 이해집단이라는 냉혹한 비판을 받아왔다. 모든 사회영역으로 비정규직을 확산해서 착취율과 이윤율을 높여온 자본가들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난과 고통의 책임을 민주노총 조직노동자에게 돌리며 귀족노조라 비난해 왔다. 또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배부른 돼지라고 비난해 왔다. 기존의 자본가 정부들은 이런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기며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는 정책을 집행했다.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비판과 혐오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 중심에 2030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계엄과 내란정세에서 집회와 거리로 나온 2030 미조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조직노동자에 대해 변화된 정서와 의식을 보여줬다. 이들은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해야 할 역할인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 장기간 투쟁하는 사업장 노동자와의 연대를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이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화답해야 한다. 지금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모든 단위에서 현 정세에 필요한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 조합원들과 전면적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민주노총의 공식 의결체계에서 힘있는 총파업을 결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구속·퇴진, 내란공법 국민의힘 해체, 극우세력 준동을 제압하는 총파업을 반드시 실현하자! 동시에 민주노총이 윤석열 퇴진과 극우세력 제압 후 한국 사회의 변혁을 위한 정치·경제·사회적 투쟁강령을 정식화하고 중단없는 연속혁명을 추동해 나가자! 현 정세에서 민주노총 조직노동자들이 역사적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는 현장 활동가와 노조 간부들이 결정짓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 조직노동자가 선두에 선 총파업, 그와 결합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 총파업, 여성 억압과 차별 해소와 권리 확장을 위한 여성 파업, 전국 노동자 총파업에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함께하는 사회적 소수자의 파업, 학생 파업과 상가 휴업 등 모두가 나서는 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위대한 나날을 만끽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두의 투쟁이 역사가 될 것이다!2025-01-05 | 조회 3,601 -
12·3 이후 현 정세의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과제에 관한 의견12월 3일 윤석열 비상계엄 발표 사진:로이터 1.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의 성격 12월 3일 저녁 10시 23분, 윤석열이 느닷없이 대국민담화를 시작한 뒤 10시 28분 ‘반국가세력 척결’을 내걸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1시 23분, 계엄사령관이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그러나 4일 새벽 1시 1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통과시켰다. 4시 27분 윤석열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5시간 59분 만이었다. 1)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압살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12·3 담화와 극우세력의 궐기를 촉구한 12·12 담화를 통해 반국가세력의 핵심으로 민주당을 지목했다. 또한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계엄령 선포의 주된 이유로 밝혔다. 3일 밤 정보사령부에는 북파공작부대(HID)를 포함한 38명의 요원들이 다음날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하여 B1 벙커로 이송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방첩사령관이 국정원1차장과 경찰청장에게 제시한 체포대상자 명단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부정선거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윤석열은 선관위 직원들과 체포된 인사들을 고문하여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해 낸 뒤 4월 총선을 무효화하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민주당을 절멸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을 비롯한 민주당계 인사들이 체포대상 명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민주당이 일차적인 공격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체포대상 명단에 한동훈까지 포함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적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동훈은 ‘국회에 가면 체포되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전화를 계엄 선포 직후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밝혔다. 체포대상 명단에 국회 의장과 부의장이 포함된 것, 전·현직 대법관들과 이재명 무죄선고 판사가 포함된 것은 입법부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사법부 또한 겁박하려 했던 노골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계엄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제1호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 금지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의 통제 △파업·태업·집회 금지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광범한 기본권 박탈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압살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선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 처단 등 모든 비판과 저항을 반국가세력의 국가전복 행위로 규정하여 난폭하게 탄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2) 노동자·민중의 기본권에 대한 압살 그런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이었을 것이다. 체포대상 명단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포함돼 있었다. 포고령은 특히 파업·집회·언론·정치활동의 자유를 압살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려 했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파업과 민주노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존재할 수 없고, 좌파정치조직·진보정당·노동단체·시민단체 등도 모두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본가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계급이 쟁취해 온 모든 성과들을 박탈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3)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 12월 3일 낮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점심을 먹으면서 “탱크로 국회를 밀어버리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전차부대를 지휘하는 제2기갑여단장은 3일 밤 선관위 공격을 위해 요원들이 대기 중이던 정보사령부에서 별도 대기했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계속 진행됐다면, 전차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휘젓고 다녔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박정희의 1961년 5·16 쿠데타와 1972년 10·17 쿠데타, 전두환의 1979년 12·12 쿠데타와 1980년 5·17 쿠데타를 재현하려 한 시도였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1961~1987년의 군사파시즘이 전면적으로 부활했을 것이다. 1961~1987년 한국을 지배했던 군사정권은 (파시즘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압살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적인 노조결성권과 파업권 등 노동자계급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파시즘의 한 형태, 즉 군사파시즘이었다. (1920~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등장했던 고전적인 파시즘과 1961~1987년 한국에 존재했던 군사파시즘 사이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고전적인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혁명 근처까지 다다른 상황에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군사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매우 미약한 상황임에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1972년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수립하며 단행했던 10·17 비상계엄이나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을 짓밟으며 군사파시즘 체제를 재수립하는 과정에서 단행했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매우 닮은꼴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노동자·민중이 피로써 쟁취한 모든 권리들을 일거에 박탈하고서 군사파시즘을 전면적으로 부활시키려 획책한 친위쿠데타였다. 또한 1987년의 제한된 민주화에 입각한 현 헌정체제마저 반인민적 음모와 무력을 통해 일거에 전복시키려 한, 인민에 맞선 ‘내란’이었다. 2.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가 발생한 이유 1)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 윤석열이 2022년 3월 대선에서 0.73%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5월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민주당 등 야권은 국회의 63%(189석)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임 2년 뒤에 치러진 2024년 4월 총선에서도 야권이 압승해 국회의 64%(192석)를 장악했다. 윤석열이 4월 총선에서 대패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반동적 정책들 때문이었다. 윤석열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광포한 탄압을 자행했다. 여론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멈춰서긴 했지만 주69시간 노동제 도입을 시도했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평등에 반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였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동조하고,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대법 판결을 무력화했으며, 한미일 동맹 강화와 전쟁연습 확대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놓고서 본인과 부인의 의혹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거부했다. 윤석열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광포한 탄압을 자행했다 4월 총선에서 대패한 결과,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이후 12월 3일까지 2년 7개월 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없는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동안 윤석열은 25번의 거부권을 행사하여 민주당이 주도한 각종 법률과 특검법 등을 무산시켰다. 윤석열의 수하 노릇을 한 검찰은 이재명을 상대로 압수수색 376회 등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여 5건의 형사재판에 회부한 반면, 윤석열과 김건희의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를 회피했다.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대상에는 본인과 김건희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들이 여러 차례 포함됐다. 반면 민주당은 22건의 탄핵소추를 통해 정부 관리들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대상에는 윤석열과 김건희의 의혹 수사를 회피한 검사들과 이재명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포함됐다. 이 과정은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비리를 폭로하고 사법체계를 동원하는, 부르주아 정치질서 안에서 숱하게 되풀이되어 온 암투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암투에서 상황은 윤석열에게 점점 더 불리해졌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동훈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최측근이었으나 차기 대권을 꿈꾸며 정치에 뛰어든 뒤 김건희 의혹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윤석열과 일정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관계는 끝없이 악화되었고, 국민의힘 내 한동훈 세력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동참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윤석열 대선 때 깊이 관여한 정치브로커 명태균과 관련된 폭로였다. 10월 31일 윤석열의 불법적인 공천개입을 시사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12월 2일에는 구속된 명태균이 자신의 휴대폰을 민주당에 제공할 수 있다면서 윤석열·김건희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가 어떻게 심화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가 45년만의 비상계엄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많은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윤석열 개인의 성향과 기질도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 자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상계엄이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게끔 영향을 미친 사회적·정치적 변화일 것이다. 2) 파시즘의 잔재 위에서 극우세력의 재성장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되어 1987년 6월 민중항쟁에서 정점에 이르렀던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투쟁은 군사정권과 야합한 부르주아 보수야당의 배신에 가로막혀 절반의 승리만을 거둔 채 멈춰 섰다. 민주주의는 껍데기로만 쟁취되었고, 군사파시즘은 온전히 청산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세력의 주류였으며 군사정권 시절 박정희·전두환을 떠받치던 극우세력은 1987년의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군대·경찰·행정·사법 등 국가기구 곳곳에서 강력한 기반을 유지했다. 파시즘의 잔재는 ‘1987년 체제’라는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으로 스며들었고 지속되었다. 1990년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민주공화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즉 군사정권 주역들과 보수야당 온건파의 결합을 통해 (오늘날 국민의힘의 원조라 할)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처음에는 군사정권 후예들이 민주자유당의 주류였지만, 1993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군부 내 하나회 세력이 제거되고 1995년 전두환·노태우가 5·17 쿠데타로 내란죄 처벌을 받으면서 주도권이 보수야당 출신의 공화주의 보수파에게 넘어갔다. 지도부를 잃고 중핵이 와해된 군사정권의 잔존 세력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공화주의 보수파로 변신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김대중이 이끌던 보수야당 급진파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로 재정립할 때, (군사정권 잔존세력을 포괄한) 공화주의 보수파는 신자유주의 우파로 재정립했다. 이후 두 세력은 1998년의 김대중 정부부터 2024년의 윤석열 정부까지 자본가정당이라는 근본적 본질에서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를 집행한다는 핵심 정책에서도 엇비슷한 지배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우파가 집권할 때마다 그 속에 내재한 극우적 본성을 드러내면서 노동자·민중을 더욱 거칠게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에 대한 살인적 진압, 2010~12년 금속산업 민주노조들에 대한 와해 공격,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계속된 KBS·MBC 방송 장악, 박근혜 정권 시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2015~16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공세, 2022~24년 윤석열 정권의 화물연대·건설노조 등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극우적 공격은 노동자·민중으로부터 거센 반작용을 낳았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투쟁이 폭발하고 결국 탄핵으로 귀결되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극우적 공격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반격이 축적되고 결집한 결과였다. 그런데 박근혜의 탄핵은 다시 극우세력이 새롭게 성장하는 반작용을 낳았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의 탄핵이 최종 확정될 무렵, 극우세력이 결집한 이른바 ‘태극기집회’는 거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1997년 이후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우파라는 외피에 봉인돼 있던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군부에게 노골적으로 쿠데타를 호소하는 등 거리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극우세력의 재성장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복음주의 우파가 주도했고 예비역 군 장성 등 군사정권 후예들이 결합했다. 극우세력의 기세는 문재인 정권 내내 지속되었고, 극우세력의 대중적 기반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서 극우 유튜버들과 부정선거 음모론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극우세력은 2020년 총선 등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지만,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입당전술을 통해 국민의힘 안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국민의힘에 대한 극우세력의 영향력 강화는 한동안 김종인과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공화주의 보수파의 영향력 확산과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검찰이라는 핵심 관료조직을 틀어쥔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영입되면서 극우세력의 중심으로 부상했지만, 공화주의 보수파의 외피를 쓰고 대선을 치렀다. 윤석열은 집권 직후 이준석을 내쫓고 당권을 장악하면서 극우세력의 본성을 드러냈고, 이후 국민의힘의 주도권은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에게 확연히 넘어갔다. 이후 윤석열은 노골적으로 국민의힘 대표선거에 개입하고 대표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등 불법적이고 반공화주의적인 당무개입을 지속했다. 그러나 친윤계라는 이름 아래 국민의힘의 다수 정치인들이 윤석열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줄서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2023~24년 윤석열이 공식 석상에서 ‘반국가세력 척결’을 되풀이해서 외치며 극우세력의 목소리를 점점 더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동안, 친윤계 또한 공화주의 보수파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극우세력의 본성을 노골화하는 방향으로 점점 이동하고 있었다. 이처럼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개인적 동기를 넘어 사회구조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자면, 군사파시즘의 잔재 위에서 2017년 이후 극우세력이 다시 성장해 온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반영하는 사건이다. 또한 그러한 조건 위에서 군사파시즘의 부활이라는 극우세력의 잠재된 열망을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세계적인 극우세력 부상과의 관련성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그리고 그 사회적 기반이 된 2017년 이후 극우세력의 재성장은 최근 10여 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극우세력이 부상해 온 세계적 경향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등과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 즉 복음주의 우파가 최근의 극우세력 성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의 복음주의 우파는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기를 휘날리고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극렬하게 펼쳐 왔는데, 이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우파가 강력한 시온주의 지지 세력이자 성소수자 혐오 세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극우세력의 논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나타난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주된 명분의 하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했던 2021년 미국 의사당 폭동, 2023년 브라질 의회·대법원·대통령궁 폭동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2021년 미국 의사당 폭동 사진: EPA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세계적인 극우세력의 부상은 대체로 자본주의 위기 심화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로부터 역설적으로 가장 큰 동력을 얻고 있으며, 트럼프의 재집권이 보여주듯 많은 나라에서 상당히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획득해 가고 있다. 또한 극우세력의 집권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심한 사회경제적 공격을 뜻하긴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파시즘으로는 쉽게 진화하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부상은 아직까지는 파시즘의 잔재와 연결된 정치의식의 요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회적 기반 또한 과거 군사파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60대 이상으로 무게중심이 크게 쏠려 있다. 또한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극우세력의 성장이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12·3 친위쿠데타와 같은 파시즘 부활 시도로 매우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3.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이유 1) 어설픈 준비와 자기정당성의 결여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왜 실패했는가? 일차적인 이유는 계엄선포 직후 수천 명의 노동자·민중과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를 위해 국회로 달려간 속도에 비해 군대와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러 달려간 속도가 밀렸다는 데 있다. 그런데 만일 동원된 군대와 경찰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해서라도 국회를 마비시키고자 했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실제로 윤석열은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고, 수방사령관에게 “4명이 들어가 1명씩 끌고 나오라”고 지시했으며, 경찰청장에게도 여섯 차례나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했다. 그러나 군대·경찰 지휘관들은 국회를 봉쇄하라는 윤석열의 명령을 기본적으로 실행하면서도 유혈사태를 야기할 정도의 명령은 이행하지 않았다. 유혈사태와 그에 따른 사후 책임을 감수할 정도로는 의식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대·경찰 지휘관들이 유혈사태를 감수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유혈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선 병사들과 경찰들이 집단 항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 12·3 비상계엄을 총괄기획한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9월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계엄준비 의혹을 제기하는 민주당 의원에게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의 답변은 계엄준비 사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계엄에 대한 군대의 불복종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자신들의 계획에 심각한 역효과를 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그 핵심 주동자들 사이에서조차 자기정당성을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년 이상 친위쿠데타를 논의하고 준비했지만, 윤석열 개인의 위기 타개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넘어서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극우세력의 성장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집권당 국회의원 수십 명을 휘어잡을 정도에 이르렀고, 이것이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조기에 파시즘 부활 시도로 이어졌지만, 친위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의 역량 부족과 충동적 성격 때문에 너무 어설프게 준비하고 실행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실패해 버린 것이다. 2) 광주민중항쟁이 남긴 역사적 힘 그런데 만일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어떤 식으로든 일단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노동자·민중의 항쟁이 이번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항쟁이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 항쟁이 다시 한 번 군홧발의 폭력에 짓밟혔을지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혁명적 패배가 1980년대 한국을 혁명의 시대로 만들었듯이, 학살당한 이들의 붉은 피를 머금고 군사파시즘의 압제에 맞서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펼쳐졌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패배가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부활하고 전진했던 그 과정이 이번에도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1980년대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고 거대한 양상을 띠었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 광주에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민중항쟁을 앞장서 책임졌지만, 그들은 그전에 어떤 조직적 무기도 갖고 있지 못했다. 1987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노동자계급은 조직적 무기를 갖고 있지 못했고 따라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중추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110만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으로 조직되어 있다. 비록 심각한 관료적 후퇴로 고통 받고는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친위쿠데타에 맞선 항쟁 과정에서, 그리고 설령 패배하였더라도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지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은 거대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설령 성공했을지라도 군사파시즘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대를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혁명적 파도가 한국을 휩쓸었을 것이고, 노동자계급은 1980년대보다 훨씬 더 멀리 전진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설령 성공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국회를 봉쇄하러 동원된 군대와 경찰의 지휘관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제한적인 민주화에 그치긴 했지만,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역사 속에서 보여준 극적인 부활과 승리를 모르거나 무시할 수 있는 한국인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군대·경찰 지휘관들을 머뭇거리게 만든 진정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어설픈 대의명분을 갖고도 훨씬 쉽게 유혈사태를 감수했을 수 있다. 그러나 친위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수 있다면 유혈사태까지 감수하기에는 훨씬 더 선명한 대의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3) 국지전 불장난의 실패 12·3 친위쿠데타의 주모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북한을 자극하여 국지전을 유도해 내는 것이었다. 10월 11일 북한은 한국이 10월 3일, 9일, 10일 세 차례에 걸쳐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발표했다.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바로 이 무인기 침투 사건은 국지전을 유도하여 비상계엄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된 도발이었음이 확인되었다. 11월 18일 국방부장관은 북한 오물풍선 원점타격을 지시했지만 합참의 반대에 막혔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12·3 친위쿠데타를 실무기획한 노상원의 수첩에서는 “NLL 북한 공격 유도”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대북전단 살포 무인기 잔해 국지전을 유도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시도는 왜 실패했을까? 10월 31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9’ 발사가 그 이유를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 중·러·북 동맹의 작동으로 자신감이 높아진 북한은 조급하게 국지전에 말려드는 대신 오히려 대담하게 ‘전쟁을 원한다면 전면전을 하자’고 (윤석열 정권이 아닌) 미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 지금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 제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제국주의 패권대결이 매우 격화되어 왔으며, 그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는 대만과 함께 세 번째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반도는 대만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지만, 대만과 달리 미·일·한과 중·러·북의 국제적 대치구도가 이미 팽팽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양의 강력한 무기들이 서로를 겨눠 왔다. 따라서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자칫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가 모두 뛰어드는 대량파괴 국제전으로,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정확한 과정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갖는 이 위험성 때문에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 시도는 실패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정권 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방식으로 한반도 전쟁에 휩쓸려 들어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 시도는 한편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파시즘만이 아니라 전쟁 또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며, 그야말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극심한 위기가 파시즘과 전쟁을 부르는 시대,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즉 위기·전쟁·혁명의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다시 한 번 너무나 명징하게 보여준다. 4. 새로운 계급투쟁 지형의 성격과 전망 1) 극우세력에 맞선 전선의 돌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로 한국의 계급투쟁 지형이 하루 밤 사이에 급변했다. 극우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면 박탈하는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획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형 위에서 노동자계급은 극우세력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주당을 비롯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과 한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 상황은 1917년 8월말 러시아에서 코르닐로프 반란이 일어났을 때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임시정부와 한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형국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노동자·민중과 부르주아 보수야당이 한 편에 서서 싸웠던 전선이 재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은 이와 달랐다.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우파(국민의힘)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민주당)라는 두 자본가세력 모두에 맞서 투쟁했다. 둘 사이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에서는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견결히 고수하면서 두 자본가세력 모두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야 했다. 그와 같은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은 1987년 제한된 민주화와 함께 형성됐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군사정권 잔존 세력이 공화주의 보수파로 변신하고 부르주아 정치질서가 신자유주의 우파 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의 대결구도로 재편되면서 지형이 고착됐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이 12·3 친위쿠데타와 함께 새로운 지형으로 바뀐 것이다. 새로운 지형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투쟁력을 견결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극우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당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에 맞선 투쟁도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새로운 지형의 특징은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이 핵심 과제라는 데 있다.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민주당을 능가하여 주도권을 장악할수록 광범한 대중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고, 따라서 민주당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 또한 더욱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1917년 8월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이끈 소비에트는 코르닐로프 반란군을 무력화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서 거둔 성과는 소비에트로 결집한 노동자·민중의 자신감을 극대화했고, 결국 두 달 뒤 껍데기만 남은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가볍게 제압하고 소비에트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는 10월 혁명으로 귀결됐다. 마찬가지 원리가 지금 극우세력에 맞선 전선에서도 작동한다. 2) 극우세력의 목표와 방법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도발적으로 새로운 전선을 열었지만, 곧바로 허망하게 실패하면서 극우세력을 매우 불리한 위치로 내몰았다. 그러나 정치적·사회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는 극우세력은 만만치 않은 저항과 반격에 나서고 있다. 처음에 윤석열을 비롯한 극우세력은 한동훈과의 타협을 통해 탄핵소추를 피하면서 전열정비의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러나 한동훈이 ‘3~4개월 내 조기퇴진’이라는 항복을 요구하자 타협을 깨고 정면대결의 길로 선회했다. 윤석열은 12·12 담화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고, 12월 14일 탄핵소추가 가결될 때 국민의힘 의원 8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거나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는 응답이 여론조사에서 20~25%를 유지했다. 전광훈 등은 거리에서 극우 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광기어린 선동에 나섰다. 탄핵소추 가결 이후에도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버티기를 통해 세력관계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는 최대한 지연시킬 작전을 펴면서 내란죄 수사는 일체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추가선임 절차를 보이콧하고 친윤계 일색으로 지도부를 재정비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추가임명과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을 거부하면서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현 정세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극우세력의 핵심 목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처벌을 막아내는 것이다. 저들의 논리는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내란이 아니다’로 요약된다.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시도했던 12·3 비상계엄을 본질적으로 옹호하면서 준엄한 단죄를 무산시키려는 것이다.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처벌이 확정될 경우 자신들에게 미칠 후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를 정당화하여 이후에도 다시 시도할 길을 열어두려는 극우적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3) 민주당의 목표와 방법 현 정세에서 민주당의 핵심 목표는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이다. 한편으로는 12·3 친위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말살과 끔찍한 개인적 고초들을 겪을 뻔했기 때문에 민주당 또한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처벌에는 진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전면적인 발전과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권리 쟁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또한 집권할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로서 노동자·민중을 거세게 공격할 것이라는 본질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 당연하게도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은 노동자·민중이 결코 공유할 수 없는 목표다. 사실 윤석열 국민의힘 정권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민주당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표출된 노동자·민중의 열망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 또 하나의 자본가정권답게 최저임금을 찍어 눌렀고, 집값 폭등을 방조했으며, 특권층의 부패를 감쌌다. 윤석열 정권의 광포한 건설노조 탄압을 먼저 시작한 것도 문재인 정권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오로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을 토대로 집권할 수 있었다. 그보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등장시킨 것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1998년부터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펼친 신자유주의 공세는 대량 정리해고의 충격과 함께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산을 불러왔다. 권력의 단맛을 본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반동적인 주류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었다. 민주당 정권 10년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속 집권을 가능케 했다. 너무나 긴박한 현 정세에서도 재집권에 몰두하는 민주당의 본질은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에게 국정안정협의체를 제안하며 여당 노릇을 하려 했던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 안정을 내세워야 다가오는 대선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얕은 계산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는 윤석열·한덕수와 국민의힘에게 전열정비의 시간과 명분만 제공하는 중대한 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170석(56.7%)을 갖고 있는 자신의 의회 권력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군중집회는 자신들의 의회권력 행사를 정당화해 줄 보조수단으로서만, 또한 자신들이 그어놓은 정치적 한계 안에서만 작동하기를 원한다. 만일 민주당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은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압살을 꿈꾸는 극우세력을 제압할 힘은 의회 다수의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이 총파업이라는 고유의 수단을 동원하며 민중항쟁의 주도자로 나설 때에만 극우세력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4)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방법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핵심 목표는 윤석열의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을 가장 단호하고 철저하게 관철하는 것이다. 또한 극우세력의 결집체가 되어 뻔뻔스럽게 윤석열의 파시즘 부활 시도를 옹호하고 있는 내란동조정당 국민의힘을 해체하거나 궤멸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획책하는 쿠데타가 한국 사회에서 다시는 시도될 수 없도록 확고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을 왼쪽으로 크게 이동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광범하게 쟁취하고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를 획기적으로 전진시킬 길을 열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계급은 12·3 친위쿠데타 제압 이후 활짝 열린 광장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요구들을 함께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은 12·3 비상계엄 이전에도 본질적으로 기본권을 박탈당한 삶을 강요당해 왔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비정규직 초과착취와 노동기본권 부정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차별로, 기후위기 가속화와 환경 파괴로, 제국주의 진영 간 패권대결과 전쟁위기로 이미 심각하게 유린당해 왔다. 오죽하면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갖고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윤석열 정권에서나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분쇄해 낸 바로 그 힘으로 이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권리 쟁취를 위한 거대한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계급은 최근 사태와 관련된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들을 함께 쟁취해야 한다. 사문화된 줄로만 알았던 비상계엄이 현실로 튀어나와 군사파시즘 부활을 획책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재발을 막으려면 이제 계엄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찬성률이 75%에 이르는 데도 소수 헌법재판관에게 탄핵심판을 맡겨놓고 기다리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다. 국민투표에 의한 대통령 파면제를 도입해야 한다. 유권자의 의사와 다르게 85명의 국회의원이 탄핵에 반대했으나 다음 선거 전까지는 이들을 응징할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 상시 주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회를 봉쇄하라는 명백한 불법 명령 앞에서도 군대와 경찰이 한편으로는 주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명령을 이행했다. 군대·경찰에게 불법 명령에 대한 거부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윤석열은 관료적 국가기구인 검찰조직을 장악함으로써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검찰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검찰의 지역분권화를 통한 상호감시 및 지휘부에 대한 주민직선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편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은 위력적인 총파업이라는 고유의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폭발적인 민중항쟁의 주도자로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것만이 극렬 저항에 나서고 있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극우세력을 실질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 정세에서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함으로써, 또한 실질적으로 주도할 때에만, 노동자계급이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처벌에 찬성하는 70~75%의 광범한 대중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관철할 힘과 노동자운동의 힘찬 전진을 보장하는 미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016~2017년 촛불항쟁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5~16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은 2016~17년 촛불항쟁의 문을 열었지만, 민중항쟁을 주도할 만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면서 탄핵을 성공시킨 민주당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탄핵소추 이후 헌법재판소 결과가 나오기까지 세 달 동안 열린 광장에서 노동자·민중의 요구가 폭넓게 제기되었지만, 대중적 탄력은 결코 받지 못했다. 촛불항쟁의 승리자가 된 민주당의 정치가 큰 틀에서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선의 핵심 과제, 즉 극우세력의 저항을 진압하며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을 관철하고 국민의힘을 해체·몰락시키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수록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을 제기하고 관철시킬 힘이 확대된다. 역으로 노동자계급이 또 다시 핵심 과제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다시 한 번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이 결정적인 해결사로 기능한다면, 민주당의 정치를 넘어서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는 대중적 호응 없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분출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야 하지만, 핵심 과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결정적 역할 없이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5) 예상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 새로운 계급투쟁 지형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큰 틀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몰락이 모두 실현되는 시나리오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번 기회에 극우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으로서,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이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할 투쟁목표다. 이러한 성과는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을 중심으로 해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이 위력적인 총파업으로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함으로써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 낼 때에만 쟁취할 수 있다. 만일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과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들을 관철해 나갈 수 있는 거대한 동력이 형성될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가 그야말로 획기적인 전진을 시작할 것이다. 민주당의 재집권이 아닌 노동자정부 수립과 노동자세상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동자계급의 전망까지도 상당한 대중 속에서 유의미한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 국민의힘 해체·몰락은 말할 것도 없고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처벌조차 실패하는 시나리오다. 그 형태가 윤석열의 복귀든, 내각제 개헌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결론은 같다. 극우세력의 목표가 실현되는 것으로 노동자계급으로서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물론 여론의 70%가 12·3 친위쿠데타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갖고 있고 군중집회가 계속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극우세력이 궤멸의 위기 앞에서 필사적인 저항과 반격에 나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여론을 넘어 물리력으로도 극우세력을 제압해 나가야 한다. 세 번째,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구속·처벌은 실현되지만 국민의힘 해체·몰락은 실현되지 않는 시나리오다. 윤석열을 단죄함으로써 파시즘 부활 시도에 상당한 경종을 울리기는 하겠지만, 극우세력 또한 국민의힘을 지켜냄으로써 추후 반격을 도모할 진지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세력관계를 크게 바꿔내지 못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이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총파업과 민중항쟁이 충분히 강력하게 전개되지 못한다면, 이 시나리오로 귀결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로 간다면, 이후 상황은 매우 위험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민주당의 재집권으로 귀결될 것인데, 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자·민중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머지않아 노동자·민중 속에 거대한 실망과 환멸이 다시 조성될 것이다. 살아남은 극우세력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세를 불려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점점 더 깊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극우세력 성장은 과거 군사파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60대 이상에 크게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양상처럼 극우세력이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로부터 역설적으로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받으면서 전 세대에 걸친 세력을 구축하게 될 수 있다. 극우세력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관계도 바뀔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은 자본가계급 전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가운데 이루어졌고,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향후 경제위기가 심화된다면 자본가계급 전반이 극우세력의 집권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극우세력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심한 사회경제적 공격을 의미하게 되겠지만, 다시 한 번 파시즘 부활을 획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이번에 확인했듯이,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극우세력의 집권이 매우 빨리 파시즘으로 진화하는 게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로 가게 되더라도 상황이 무조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설령 민주당이 재집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투쟁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이후 사태 전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당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실망과 환멸이 윤석열 국민의힘 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된 것은 노동자운동·노동자정치의 위축과 민주당에의 종속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가능했다. 만일 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자계급이 독립성과 투쟁력을 단호하게 발전시켜 나갔다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은 극우세력이 아니라 노동자운동·노동자정치가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결국 실천적인 요점은 이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위력적인 총파업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은 설령 투쟁이 목표한 만큼 이루어지지 못해 세 번째 시나리오로 귀결되더라도 그에 대한 최선의 준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노동자계급의 투쟁방향 수립을 위하여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 때에는 10월 24일 최순실 태블릿PC가 폭로되고부터 46일 만에 탄핵소추가 가결되었다. 당시 군중집회 흐름 안에서는 민주당의 거국내각 타협 시도와 탄핵 추진을 비판하면서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을 추구하는 노선이 한동안 우위에 섰었다. 하지만 11월 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이 초라하게 실패하자 민주당 중심의 탄핵 추진으로 분위기가 급선회했다. 12월 9일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탄핵소추를 성공시킨 뒤 촛불항쟁의 모든 성과를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12·3 친위쿠데타 시도 후 11일 만에 탄핵소추가 가결되었다. 2016년과 달리 처음부터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이 아니라 ‘부르주아 제도에 의한 탄핵’으로 길이 잡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2016년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일 것이다. 두 번째는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이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을 주도적으로 관철할 만큼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12·3 친위쿠데타 이전 민주노총의 상태는 2016년 최순실 태블릿PC 폭로 이전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세 번째는 민주당이 처음부터 모든 타협을 거부하고 탄핵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제2의 계엄령 선포에 대한 공포 때문에 윤석열의 직무를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켜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 경로를 가지 못하고 ‘부르주아 제도에 의한 탄핵’ 경로를 밟아 왔을지라도,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2시간 33분 만에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힘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던 수천 명의 노동자·민중에게서, 또한 전국 각지에서 그들을 응원했던 수백만, 수천만의 노동자·민중에게서 나왔다. 12월 7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군중집회는 윤석열 탄핵소추가 가결되게 한 결정적인 힘이었으며,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를 향해 전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힘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까지 투쟁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역할을 해왔지만, 자신의 잠재력에 비해서는 매우 제한된 수준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12월 4일 새벽 3시를 기해 ‘윤석열 퇴진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5일, 6일, 11일 세 번에 걸쳐 금속노조와 철도를 중심으로 5만에서 10만 정도가 참여하는 제한된 총파업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군중집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고 상당수 조합원들이 군중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군중집회에서 경찰 바리케이드를 밀어내고 길을 열어낸 모습은 광범한 미조직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낸다면, 군중집회는 폭발적인 민중항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총 내 공식 단위는 물론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들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군중집회에서는 2030 여성들의 주도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다. 양적 기준에서는 2008년이나 2016년의 군중집회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1~22일 남태령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전봉준투쟁단에 2030 여성들 주도로 아래로부터 전투적 연대를 조직하여 28시간 만에 승리를 쟁취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다. ‘남태령 대첩’의 감동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이동권 투쟁 장애인들에 대한 자발적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스스로 연대를 조직하며 광장의 주역이 된 2030 여성들이 현 정세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 정세에서 가장 핵심은 민주노총이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라는 핵심 요구와 함께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을 내걸고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하며 정세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위력적인 총파업을 촉구하고 선도하는 활동을 아래로부터 긴급하게 조직해 나가야 한다. 좌파 정치조직들, 전투적·변혁적 현장 활동가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먼저 주체로 일어서서 그 절실한 필요성을 광범한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민주노총 공식 기구에 전면적인 토론을 제기하고 단호한 결의를 끌어내야 한다. 관료적으로 후퇴한 노동자운동의 상태 때문에 당장에는 충분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같은 역동적인 정세에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도약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과가 무엇이든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번에 극우세력을 궤멸시키지 못한다면,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가 역설적으로 극우세력 성장에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양상이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으로 가장 위험한 부분은 2030 남성이다. 2030 남성은 대체로 2030 여성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2030 남성 사이에서 실업·비정규직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여성·소수자 혐오성향이 강화된다면, 그 상당수가 극우세력의 강력한 사회적 기반으로 포획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극우세력의 파괴력이 몇 곱절 배가될 것이다. 이미 60대 이상이 극우세력의 중요한 기반이 돼 있는 상황에서 OECD 최악의 노인빈곤도 주목해야 한다. 당면한 정세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과정에서 이러한 위험에 맞선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핵심적으로는 노동자운동이 청년실업·비정규직·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할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제기하는 것, 2030 여성운동이 분리주의가 아닌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뻗어나가면서 2030 남성을 견인해 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2024-12-27 | 조회 3,961 -
윤석열이 직무정지 되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과제는 총파업과 민중항쟁이다내란 공범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는 윤석열 정권의 연장일 뿐이다 극우가 결집하고 있다 "비상계엄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 - 12월 12일 윤석열 2차 대국민 담화 이후 극우가 단결하고 있다. 12월 14일 탄핵안 표결에서 국민의힘 이탈표는 12표에 불과했다.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힘 한동훈 지도부는 붕괴했고, ‘윤핵관’ 권성동을 필두로 윤석열 친위대가 당권을 쥐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내부를 단속하며,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에 반대하고 나섰다. 한덕수는 내란·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저울질한다. 윤석열과 계엄을 심의한 한덕수 등 내란 공범들 입장에서 보자면, 향후 윤석열과 함께 처벌되는 것보다 지금 윤석열을 지키는 것이 낫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탄핵 반대 극우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민중항쟁으로 청산될 위기에 놓인 극우세력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자신의 입지를 지키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차기 총선도 많이 남은 마당에 탄핵과 내란죄 규정에 찬성하며 핵심 지지층까지 잃느니, 극우를 결집하는 편이 효율적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탄핵 찬성 여론은 압도적이다. 국민의힘도 아직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고까지 주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극우세력의 준동은 이제 시작이다. 최소한의 방어선을 친 극우는,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는 선동을 가능한 모든 곳으로 확대할 것이다. 한덕수 대행체제와 국민의힘은 거리의 극우파와 결합해 극도의 혼란을 야기하고, 헌법재판소 판결 지연을 유도하며, 이 혼란을 끝낼 방법은 ‘윤석열 직무복귀’뿐이라는 선동과 함께 탄핵 기각을 유도할 것이다. 그렇게 윤석열이 복귀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다시 파업도, 집회도, 노동조합도, 언론의 자유도 없는 세상을 실제로 세우고자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모든 성과를 빼앗으려는 극우세력의 시도를 말이 아닌 투쟁으로 차단하자.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 얼굴만 바꾼 윤석열 정권 ‘국회 소환에 따른 기업인 출석이 의무화되면 경영진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여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다. 영업비밀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기업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 재의를 호소한다.’ - 12월 17일, 경총과 한경협(구 전경련) 등 경제6단체는 한덕수의 ‘국회증언법’ 거부권 행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리고 한덕수는 ‘통제받지 않고 노동자를 착취할 자유’를 계속 누리게 해달라는 자본가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국회증언법과 양곡관리법을 포함한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덕수 대행체제가 윤석열 정부의 기능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6단체가 ‘국회증언법’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 이튿날인 12월 18일, 손경식과 최태원 등 경제4단체장은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무쟁점 법안’,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 합의로 국회상임위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지역균형투자촉진특별법 등 친자본 반노동 입법의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촉구했다. 이 불안한 정국에서도 자본은 노동탄압에 여념이 없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산업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을 철폐해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며, 휴일노동수당, 초과노동수당도 없이 반도체 노동자를 무제한 착취할 수 있게 만든다. ‘지역균형투자촉진특별법’은 숫제 자본천국 노동지옥법으로, 법안에 담긴 자본 특혜만 20개다. 근로기준법상 주40시간노동 규제 면제, 탄력적근로제 규제 면제, 최저임금 효력 면제,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규제 면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업주 안전·보건조치의무 규제 면제 등 자본가를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시키는 법안이다. 이런 법안을 국민의힘과 합의한 주체, 이 와중에도 자본가들과 환담하며 반노동법안 통과 방안을 논의하는 주체, 한덕수와 국민의힘을 비롯한 내란 공범들과 ‘국정운영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주체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한덕수를 비롯한 윤석열 내란 공범들을 처벌하고 윤석열 정권의 노동악법을 폐기하기는커녕, 국민의힘과 함께 또 다른 노동악법을 추진하고 있다. 12월 18일, 자본가 단체들은 조속한 친자본 반노동 입법을 요구했다 윤석열 즉각퇴진! 내란 공범 구속처벌과 국민의힘 해체! 노조법 2·3조 즉각 법제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철폐! 민주노총 총파업, 해제가 아니라 확대할 때 12월 16일, 민주노총이 총파업 지침을 잠시 해제했다. 물론 12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총파업의 긴장감과 동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1차전 승리를 뒤집으려는 극우세력의 준동이 본격화하는 지금, 민주노총의 총파업 해제는 잘못된 결정이다. 총파업 해제 불과 3일 뒤, 한덕수는 자본의 요구를 수용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즉각 퇴진과 한덕수 등 내란공범 구속처벌, 국민의힘 해체, 생존권 쟁취를 요구로 싸움을 확대하자. 첫째, 윤석열 즉각퇴진과 극우세력 청산, 한덕수를 비롯한 내란 공범들의 철저한 처벌을 위한 투쟁 태세를 구축하자. 윤석열이 직무정지되었지만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음을, 오히려 극우세력이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알리며 열린 광장에 노동자의 깃발을 들자. 노동자의 손으로 극우세력을 청산하자는 결의를 가능한 모든 일터에서 확대하자. 둘째, 윤석열표 노동탄압을 철폐하는 투쟁을 유보 없이 전개하자.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각 법제화 △노동조합 회계공시와 타임오프 노동탄압 철폐 △노동조합 공안탄압 책임자 처벌은 물론,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상시법제화 △건설·조선산업 다단계 하도급 철폐와 원청 직접고용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기만적 ‘노동약자법’ 폐기 등 윤석열이 억압해온 요구들을 들고 싸움을 조직하자. 셋째, 윤석열 정권이 조장해온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일소하는 투쟁에 노동자가 앞장서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선동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집권한 윤석열 정권이 남긴 혐오와 차별을 일소하는 투쟁은 극우를 척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회복과 강화, 돌봄공공성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차별철폐 등 윤석열과 극우세력이 그토록 억압해온 평등의 요구를 확대하자.2024-12-20 | 조회 2,6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