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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 물결에 휩쓸리는 금속노조 - 지배자들과 한배를 타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킬 순 없다!사진: 금속노조 지난 7월 초 전미자동차노조(UAW) 간부들이 금속노조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7년 기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임금협약은 그대로 두되, 신규 채용 노동자에게는 기존 노동자의 절반 정도만 받도록 하는 '이중임금제'를 합의한 노조로 오랫동안 어용적 행보로 비판받아 왔다. 2023년 이른바 민주파 집행부가 등장해 차별임금제를 상당히 완화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최근 그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대대적인 이민자 추방, 공무원 대량 해고 등 노동자 민중을 향해 야수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거나말거나(?) 금속노조는 아무런 비판도 없이 이들을 초청하고 함께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양 노조는 자동차산업 공급망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했다. 자본의 의도에 따라 분열하고 반목하지 않고 함께 협력해 싸우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는 양 노조의 실제 행보와는 다른 포장에 불과하다. 관세전쟁이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 전미자동차노조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라 치켜세웠다.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숀 페인은 3월 26일 트럼프가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주요 관세를 발표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십 년간 노동자 공동체를 파괴해 온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기 위해 행동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를 환영한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 관세가 ‘미국 내 생산 회귀를 이끄는 가운데,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고 지역 경제를 황폐화한 정책으로부터 손해 입은 블루칼라 지역사회를 회복시키는 조치’라 주장한다. 숀 페인은 북미에서 판매되는 폭스바겐 자동차의 75%가 멕시코에서 생산된다며 고율 관세로 매우 짧은 시간에 이 생산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생존과 고용은 오직 자본의 생존, 국제적 승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노사협조주의적 관점이 깔려 있다.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에게 일자리가 생길 수만 있다면, 다른 산업,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조합주의적 태도, 이기주의적 태도의 표본이다. 이런데도 '전미자동차노조는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승리'를 말한다. 누구에 대한 승리인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승리" -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산업 관세 부과 조치를 환영하는 UAW성명 자본가들의 장단대로? 나라마다, 산업마다, 기업마다 관세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미국 안에서도 수입 물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을 우려하며 ‘제 발등 찍기’란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클라이슬러, 지프, 램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스텔란티스(피아트와 PSA가 합병해서 만든 그룹) 회장 존 엘칸은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된 제품은 (미국산 부품이 다수 탑재돼 있으므로) 무관세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포드의 최고 경영자 짐 팔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차량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자동차산업에 전례 없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밀어붙이는 대표적 산업인 철강·알루미늄 산업의 자본가들도 모두 관세전쟁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 공장을 둔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알루미늄협회 회장 찰스 존슨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지지하면서도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금속 공급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취사선택한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범위와 속도도 조절한다. 예전에 한국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한칠레 FTA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한일 FTA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했다. 내수시장을 빼앗길 염려가 없었고 칠레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기에 한칠레 FTA는 찬성했지만, 일본 기업 자동차들의 대대적으로 상륙하는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한일 FTA는 반대했다. 이런 자본가들의 장단에 발을 맞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자들이 자기가 고용된 자본의 입장에 따라, 태도 변화에 따라 그때마다 노선을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첫째, 노동자들은 나라별로, 산업별로, 회사별로 갈가리 찢길 수밖에 없다. 둘째, 정부와 자본가들이 퍼붓는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를 논리에 맞서지 못하고 임금 삭감, 정리해고 공격을 허용하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자본가들은 회사와 한 몸이 되어 투쟁과 단결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노동자들을 쉽게 절벽 밑으로 내몰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경쟁 도구로 활용되며, 들러리가 된다. 노동자의 대안은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가 아니라 이윤경쟁체제 자체에 대한 투쟁이며, 자국 시장보호를 위한 자국 자본가들과 연합이 아니라 전 세계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강화다. 피장파장 전미자동차노조가 국제연대의 대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제이슨 웨이든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수석보좌관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7월 10일 열린 ‘전환기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권리 확대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웨이든은 “자유무역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노조 정책으로 작용했다”며,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기업은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으로)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면 한국 노동자도 미국과 같은 고통을 받는다”라며 “UAW가 미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지지하며 오직 자국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이로운 보호무역을 주장하면서,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금속노조도 전 세계적인 물량 경쟁과 공장 이전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다른 대답을 못 한다는 점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피장파장이니 금속노조나 한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변덕? 안타깝게도 제임스 웨이든의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금속노조 장창열 위원장은 7월 10일 총파업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으로, 기후위기로, 트럼프의 변덕질로 전 세계 무역과 생산 공급망이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우리의 일자리를 직접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방어하는 정부의 현명한 대책만큼이나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내 자신의 일자리에서 시작해 한국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입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호한 태도’, ‘한국 산업을 지키는 정의로운 투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나라 노동자가 단결해 모든 나라 지배자와 싸우는 전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계급의 대립을 지우고 국가를 위해 단결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애국주의까지 들이밀고 있다. 결국, 이 논리대로라면 금속노조도 UAW처럼 이렇게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속노조가 한국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전 세계 모든 노동자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먼저,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의 원인은 금속노조 위원장 담화문의 진단과 달리 트럼프의 변덕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4월 2일 대대적인 고율 관세 조치를 발표한 후.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한 이유도 트럼프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주식 폭락,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 생산량·고용 감소 등 부메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관세전쟁은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불안정성을 완화할 수 없는 트럼프 정부의 절박함을 말해준다. 트럼프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관세를 내세웠다. 물론, 관세전쟁은 단지 미국 세수를 늘리고 미국산업을 보호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자본주의 자체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려는 지렛대다. 관세전쟁에는 실제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체계는 국가 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체계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란(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보고서 23p>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더 큰 전쟁 위협과 더 격렬한 세계적 경쟁을 낳을 것이다. 어떤 나라, 어떤 자본이 경쟁의 파고에 휘청거리며 몰락할지 알 수 없지만, 한쪽에서의 부분적 몰락도 세계 전반의 극심한 경제위기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그럴수록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경쟁시키려 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의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금융위기는 협조주의, 애국주의에 빠져들어 노동자 민중이 무장해제 되었을 때, 얼마나 쓰디쓴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줬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산업 살리기, 회사 살리기란 명분으로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다른 전망 10일 토론회에서 이익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미래변화대응 태스크포스(TF) 위원은 “한국 (자동차) 노조 입장에서는 UAW가 우리를 죽이고, 혼자 살겠다고 한다는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차지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혼자 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가 함께 살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는가?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해서 동남아 국가로, 다른 나라로 이전한다고 할 때 어떤 태도를 실천해 왔는가? 누구도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청 대기업들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저항을 통제하기 위해 생산 물량을 이원화·삼원화하곤 한다. 노조가 없는 다른 부품사에서도 동일한 아이템(부품)을 생산하도록 만들어, 노동조합 파업의 효과를 봉쇄하고 생산 차질을 막는다. 이런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의 대안은, 다른 부품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기 위해 아이템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품사에서도 민주노조를 건설해, 물량 이원화·삼원화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며, 같은 아이템을 생산하는 다른 부품사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대체 물량 생산을 거부하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공장 이동과 물량 경쟁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 원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인도와 태국으로 이전한다면 인도와 태국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는 대체 생산을 거부해야 한다. 물량이 이전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총고용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완전 월급제 쟁취를 위해 싸워야 한다. 사업장을 넘어, 국경을 넘어 단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러 곳에서 일국적 전망을 넘어선 공동의 네트워크와 공동의 활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런 전망이 지금 당장 한국 대공장 노조의 손에 잡히는 전망이 될 수는 없다. 지도부의 관료화와 현장 활동가들의 후퇴만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평조합원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전망, 올바른 전망의 씨앗을 계속 뿌려야 한다. 관세전쟁의 충격은 금속노조만이 아니라 모든 노조 앞에 회피할 수 없는 문제를 다시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관세전쟁을 이유로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공격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의 정확한 대치선을 그어야 한다. 민족주의, 애국주의의 포로가 될 것이냐, 국경이 아니라 계급으로 단결해서 전 세계를 바꿀 것이냐? 그 누구도 이 근본적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2025-07-25 | 조회 4,569 -
현대차 불법파견에 맞선 노동자들에게 떨어진 손배 폭탄이 말하는 것노동삼권을 부정하는 ‘내란’ 2025년 7월 3일, 대법원은 또다시 불법파견 범죄자 현대차 자본의 손을 들었다. 현대차 자본은, 자신이 저지른 불법파견 범죄와 비정규직 탄압에 맞서 벌어진 2010년 1공장 CTS(도어 탈착) 공장점거 파업투쟁 등에 연대한 노동자 4명에게 끝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이번 대법원 재상고심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자 포함 35억 원이라는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얼마 전 현대차는 자신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노동자가 죽자, 사망한 노동자의 70대 노모에게 그 금액을 청구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다. 그때도 현대차는 노모에 대한 청구만 제외했을 뿐, 손배소송 자체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그간 현대차 자본이 2010년, 2012년 파업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손배소는 총 17건, 청구액은 231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번에 ‘집회 사회를 보거나 농성에 참여하는 등 파업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다시 노동자에게 35억 원의 손해배상을 물린 것이다. 이쯤이면 사법부가 자본과 결탁해 노동삼권을 보장하는 헌법을 깨뜨리는 ‘내란’ 수준이 아닌가!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 사법부는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게 법을 마음대로 꿰맞췄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와 단체행동은 자본의 위법한 사내하청제도 운영, 초과착취와 탄압,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자본의 주장대로 손배를 인정해주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조합 파업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2023년 6월 대법원 상고심은 개인이 파업의 주체인 노조와 동일한 책임(사측 청구액의 50%)을 부담하라는 판결이 불합리하다며 원심을 파기한 바 있었다.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는 하등 진보적인 판결이 아니었다. 즉, 2023년 6월 판결은 외견상 ‘파기 환송’이었을 뿐, 그 본질은 개개인이 현대차 자본에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를 각자의 책임에 따라 개별 산정하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따라 2025년 2월 13일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당사자들의 책임비율을 하향조정하고, 손배 청구금액을 개인별로 산정해 현대차 자본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7월 3일 대법원 재상고심은, 올해 2월 고등법원 파기환송심 판결을 그대로 승인했다. 2025년 3월 12일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맞선 2010년 CTS 파업 손배소송 재상고 기자회견 (사진: 금속노조) 모든 손배가압류를 금지하라! 민주당의 노조법 3조 개정안을 폐기하라!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2023년 윤석열 정부 당시,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라는 요구는 ‘손해배상 제한’으로 왜곡되었다. 왜였을까? 이는 민주당 입장을 노동자 민중운동이 수용한 결과였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주된 경로를 대중투쟁을 통한 국회의 강제가 아니라,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과의 협력을 통한 입법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모든 손배가압류 금지’ 요구는 민주당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노조법 개정안 3조 2호는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 경과를 보면, 애초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는 ‘부진정연대책임’1)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다른 조항들과 함께 3조 2호 신설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개정안의 다른 조항은 모두 삭제하고 3조 2호만 가져와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명문화했다. 즉, '부진정연대책임 폐기'라는 취지를 왜곡해, 오히려 개인별 책임 명시 조항만 수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손배가압류 철폐’라는 노동자계급의 오랜 요구가 노조법 2·3조 개정운동 정세에서 ‘손해배상 제한’으로 왜곡된 것이다. 이번 판결이 드러내듯, 당시 민주당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이는 ‘노조탄압 방지’가 아니라 ‘개별 책임 명문화’라는 법적 효과를 곳곳에서 낳을 것이다. 1) 부진정연대책임은 ‘공동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 전부를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가들은 부진정연대책임을 활용해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CTS 공장점거 파업이나 KEC투쟁처럼, 발생한 손해 전체에 대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배상을 청구하고,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면 손해배상을 취하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해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는데도, 민주노총은 당시 노조법 3조 개정안을 ‘성과’라고 규정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2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부족하나마 우리가 이 법의 통과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2023년 2월 27일, 노조법 3조 개정안을 설명하는 민주노총 법률원 카드뉴스는 다음과 같다. “손해배상 연대책임을 극복하고 개별책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가 어찌 성과란 말인가? 이번 대법원 재상고심 결과가 드러냈듯,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손배 명문화는 결코 성과가 아니며,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아니다. 2023년 2월 27일 민주노총 법률원 카드뉴스 대중투쟁으로 노동삼권을 사수하자! 노조법 2·3조를 온전히 개정하자!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노조법 2·3조 개정이 얼마나 정당하며 절박한지 수없이 증명해왔다. 특히 내란과 탄핵 시국을 거치며, 노조법 2·3조 개정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개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자본의 이해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노동자에게 손배라는 죄를 물어 노조법 2·3조 개정에 찬물을 끼얹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법’이란 결국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기제임을, 가뭄에 콩나듯 하는 ‘사법 정의’는 계급투쟁의 결과일 뿐임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현대차 자본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는 198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2025년 지금까지 현대차가 위법하게 초과착취한 비정규직노동자 규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노동자를 갈라쳐, 더 빼앗고 저항을 깨뜨리며 현대차 자본이 얻은 직간접적 이익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환산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차 자본의 불법 사내하청 착취에 사법부가 내린 처분은, 고작 ‘벌금 3천만 원’에 불과하다! 2010년 현대차 1공장 CTS 점거파업 (사진: 노동과세계) 이토록 자본의 노동착취와 탄압과 차별, 억압이 극심하기에 노동자가 뭉쳐서 쟁의행위를 하고, 파업으로 노동자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누가 생산의 주인인지를, 계급투쟁으로 자본의 이윤을 침해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 권리, 파업투쟁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수없이 많은 피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이번 35억 손배 폭탄 판결처럼, 정부와 자본은 호시탐탐 노동삼권까지 공격하며 노동자계급의 기본권을 유린한다. 이재명 정부 취임 30일, ‘경제’를 강조한 국정 방향은 그 실제 의미가 ‘자본살리기’인 만큼, 사법부에게 이번 판결의 방향에 관한 중요한 신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재명 정부도, 민주당도, 노동삼권을 유린한 이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하기는커녕 판결에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노동자계급은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 그 위선에 속아줄 여유가 없다. 자본이 감히 공격할 수 없도록 노동자의 파업권을 사수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나아가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과 함께, 하청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진짜 사장인 원청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바로 그 역할을 민주노조가 해야 한다. 노조법 2·3조 개정투쟁 과정에서 민주당에 의존한 결과는 법안 내용의 한계로 그대로 반영되었다. 노조법 2·3조를 전면 개정하고, 파견법을 철폐하기 위해 정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의 분노를 조직해 투쟁으로 나서자. 지금 민주노조가 싸우지 않으면 수많은 비정규직, 간접고용, 불안정,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삼권 행사는 언감생심이다. 이번 35억 손배 폭탄이 손배의 마지막일 수 있도록, 짓밟힌 노동삼권에 대한 분노를 모아 ‘손배’라는 단어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낼 수 있도록 현장을 조직하자.2025-07-05 | 조회 5,299 -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사진: 뉴시스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첫 출근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시장 분절화”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비임금 노동자의 확산과 법 밖의 노동자 보호를 강조했다. 근로감독관들을 만나서는 “가짜 3.3 계약,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 관행을 살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오래전부터 외쳐 왔던 것이기에, 당연히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말들과 더불어 ‘민주노총 전 위원장’, ‘철도 노동자’란 김영훈의 타이틀은 다른 노동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운동 지도자가 정부가 내준 자리를 꿰찬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방용석은 김대중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는데 고졸에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철도·발전·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 파업과 공무원노조 투쟁을 탄압했다. 공무원노조와 대화하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설립 불허방침을 내세웠고 경찰 투입과 간부 체포를 밀어붙였다. 김영훈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김영훈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과 현재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말로 앞으로의 실제 행보가 어떨지 가늠케 했다. 저들도 느낀다 ‘가짜 3.3 계약’은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려고, 근로소득자인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사업소득세(3.3%)를 원천 징수하는 계약 형태인데, 이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80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최소한 수백만 명이다. 이들의 문제를 뺀 노동자 권리 보호는 어불성설이다. 이재명이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가운데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 ‘근로자 추정제도’로 근로자 오분류를 개선해 근로자성을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 원칙이란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에게 근로자성 분쟁이 발생할 때, 일단 이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불 보듯 뻔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제어할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근로자성 추정을 하려면 기존 근로자 정의나 범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도 없다. 기존 대법원 판례 바탕으로 판정하겠다는 뜻인데, 이렇다면 근로자성을 아무리 추정해 봐야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아무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이들의 분노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분간 한국의 계급투쟁은 기존 미조직 상태에 있던 비정규 불안정노동자층이 투쟁과 함께 자기 조직화에 나서고, 여기에 조직 노동자 운동이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의 분노에 조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 전반에서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거치며 극심해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상태를 계급 단결투쟁으로 극복하며, 새롭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재구축해야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 심화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펼칠 시점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분간 이재명 정부는 노조 관료층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노동자들의 역동적 투쟁을 봉쇄하는 전략을 쓰려고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운동을 극우 보수정당에 대한 견제 도구 정도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체제 유지를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통제의 핵심은 바로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청년 노동자의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도 이 노동자들이 지치지 않고 투쟁을 밀어붙였다. 억눌린 용수철이 크게 튀어 오르듯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의 저항은 적절한 때를 만나면 아주 높게 솟구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투쟁 때 등장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말벌’들은 몇십 배, 몇백 배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꼼수, 기만, 탄압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거론하며 “노동기본권을 국제기준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3권은 기약 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가난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고, 대폭 올리면 자본가들이 난리 칠 것 같으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재벌과 원청사가 하청 노동자 적정임금 지급을 책임지도록 원청 사용자 책임을 법제화하는 대신 꼼수를 부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기껏해야 자회사나 무기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의 형태만 바뀌는 기만적인 결과를 낳았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부스러기를 가난한 노동자들과 청년층에 던져 주었을 뿐이었고, 톨게이트 투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노동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가차 없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본가들의 이윤은 철저히 보호됐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박근혜 퇴진 촛불로 움터 나왔던 광장의 에너지를 믿고 독자적으로 치고 나갔다면 볼품없는 것만을 움켜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꼼수, 기만, 탄압이 문재인 정부가 가난한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을 통제했던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도 명확하다. 꼼수에 속지 않고, 기만에 빠지지 않으며, 탄압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저들이 대안을 내놓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승부처에서, 즉 특수고용, 플랫폼, 5인 미만 사업장 부문에서 진짜 대안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노동자성 인정,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 노조할 권리 보장, 사회보험 보장 등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권을 누리면서 조직화와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양의 탈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대결 앞에 놓인 김영훈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대 민주당 정부는 노동자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탄압하면서도 자신을 ‘노동자의 친구’로 위장하려 했다. 그래야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장 수단이 바로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해, 양의 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까지 했던 사람이 참여한 정부는 결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는 포장지는 얼마나 그럴싸한가?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본가 정부와 자본가 정당에 포섭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포섭된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포기한 채 자본가 정부의 시혜에 의지하고, 자본가 정당의 중재와 협조에 기대는 노동운동을 요구할 것이다. 발톱 빠진 호랑이를 무서워할 늑대는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투쟁의 힘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탄압의 몽둥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것이다. 양의 탈 뒤 늑대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벌써 김영훈에게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다. 김영훈의 대답은 예정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도 억눌러야 하는 김영훈이 ‘국가 경제를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는 지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이미 오랫동안 민주당과 손발을 맞춰 온 김영훈을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달래고 압박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을 관철하는 수단이었는데, 김영훈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는 것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기구로 끌어들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만 빼면, 김영훈은 허약한 덫일 뿐이다. 아직 김영훈을 잘 모르는 노동자들도 많지만, 김영훈의 관료적 행태와 출세주의적 행동은 여러 번 드러난 적이 있다.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그는 철도청의 공사 전환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용인하면서 2004년 12월 3일 파업 돌입 1시간을 앞두고 사측과 일방적으로 합의한 전력이 있다. 전기분야에는 자회사가 설립되고 운수분야엔 대규모의 비정규직이 채용되었으며, 인력 충원 없는 3조 2교대 전환으로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 내몰렸다. 철도 해고자들이 철도공사 출범일인 2005년 1월 5일 대전청사 앞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간에, 김영훈은 신광순 공사 사장과 출범식장에서 화합의 케이크를 잘랐다.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출마까지 하고 나서, 아무런 사과조차 없이 2021년 민주당에 기어들어가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20번을 맡는 등,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김영훈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사진: 경남도의회 김영훈 같은 관료들이 자본가 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노동자운동의 근본 대의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정의당에 스며들어있던 정치노선 때문이다. 민주당의 왼쪽 날개 정도로 역할하며 기반을 마련하고, 노조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세를 부풀리는 야권연대 노선, 선거주의 노선의 반영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은 광장의 에너지가 살아 있고, 이재명 정부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을 거세게 받을 수밖에 없는 지금, 최대한 능동적 자세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열린 국면에서 수많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대대적인 분출을 끌어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지지와 의존은 이 소중한 과제에 다가서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자본가 정부의 공허한 약속, 화려한 말 잔치, 수백 번의 거짓말이 노동자의 현실을 바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 밀어주기 정치’의 결과를 수없이 봐왔다. ‘윤석열 정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고 그들을 밀어주는 한, 노동자운동은 거듭 민주당 정부의 디딤돌 역할로 남아 있을 것이고, 민주당 정부는 김영훈 같은 인물을 방패 삼아 노동자들을 저항을 억누를 것이다. 다른 길이 있다. 이재명 정부에 어떠한 신뢰도 주지 않으며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며 모든 자본가 정당으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고쳐 쓰려다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노동해방을 열어가는 노동자 투쟁정당 건설을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진실한 희망은 이 길에 있다.2025-06-28 | 조회 5,044 -
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이준석 약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총 득표율 8.34%를 기록한 이준석이 청년층으로부터 얻은 높은 지지다.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20대 남성으로부터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다음이 36.9%를 얻은 김문수로 이준석과 비등하고, 이재명은 24.0%에 불과했다. 비상계엄 내란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진압한 후 벌어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소수자들이 광장의 중요 주체였다는 점에서, 남성 청년층의 정치적 정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민을 던진다. 20대 남성 청년층은 불안정한 집단이다. 고용불안으로 비정규·플랫폼노동 진입이 일상화된 와중에, 병역의무라는 짐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20대 청년 남성 다수는 청년 여성을 취업시장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준석은 '특정 집단'이 혜택을 독점한다는 선동으로 부상했다. ‘이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있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해당 기득권 집단은 다음과 같다. 모두 힘든데 자신만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문명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 이기적이게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국민연금 개악으로 젊은이들을 수탈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독점하는 중장년층,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에서 테러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는 페미니스트 집단 등등.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준석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준석의 선동은 ‘자신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남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보다 긴 국면에서 보자면, 이준석의 정치적 부상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곧바로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가 급감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당시 20대 남성의 47.7%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던 국면으로, 문재인 정부는 초기 방역 성과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총선은 조국 사태 이후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을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밀어올려 결집할 인물이 가시화되기 전 단계였던 셈이다. 사진: 뉴스1 이런 상황에서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공정성 담론이 그 정치적 표현을 획득하며 확장되는 계기였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와 ‘공천 자격시험제’ 등 공정경쟁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 했다. 이준석은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부패를 토대로 급부상했고, 2022년 윤석열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과 싸우다 부당하게 쫓겨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후광도 얻었다.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의 이면으로서의 이준석’이라는 맥락은 1년 전 치러진 2024년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2024년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거듭된 패악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결과한 조국혁신당 약진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득표는 24.25%로 이준석의 개혁신당 3.61%의 근 7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총선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개혁신당 지지율은 16.7%로 조국혁신당의 17.9%1)와 비등할 정도로 이준석은 청년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2) 1) 창당 초기, 조국혁신당은 ‘20대 지지율 0%’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청년층에게는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조국’은 청년들에게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역겨운 상징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로 드러나듯, 정권 심판론의 확대에 따라 20~30대 일부도 결국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ᅠ것이다)을ᅠ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 조국혁신당의 독자 창당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과 이중성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장한 상황은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을 희석시켰고, 민주당의 ‘정권심판’ 호소력을 강화했을 공산이 높다.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준석 지지율 37.2%라는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거칠게 분류하자면, 20대 남성 37.2%의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나,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기대에 차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바로 그 민주당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주범이라고 여긴다. 계급투쟁의 정치, 그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부상 특히,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의 경우 이준석이 지지자를 결집하는 주된 매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여성의제를 보자. 이준석의 극우 선동처럼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했는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29.3%(2023년)로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민주당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즉, 계급투쟁으로 실질적 성평등을 쟁취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주의=고위직 할당제=불공정’ 선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국민연금 개악이었다. 이준석은 ‘기득권 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3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청년층의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18~29세에서는 반대가 63%, 30대에서는 반대가 58%를 기록했고 이준석은 대선에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운용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세대를 결집했다. 국민연금을 매개로 한 이준석의 청년세대 결집, 이는 계급정치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승리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을 지향하는 사민주의적 연금개혁론자들은 청년층의 반대 여론을 ‘연대의식 부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청년층이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개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 특히 청년노동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2024년 하반기 국정감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1,034만명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사각지대 비중이 높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대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계급투쟁뿐이다. 압도적 저출생은 객관적 현실이며, 국민연금 문제는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국가와 자본은 연금제도 유지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지우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은 낮추어져야 하며,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한다.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에서 드러나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의 정치라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았고, 청년층의 불안과 위기감은 공정을 기치로 내건 우익포퓰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그저 민주당의 정치, 계급협조주의 정치의 허점을 공략하는 반명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극우 선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계급투쟁의 정치다. 2017년 정의당의 몫은 어디로 갔는가 민주노동당-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는 0.93%를 득표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하고 이재명 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완주했으나 예상보다 낮은 득표였다. 민주노동당, 과거의 정의당은 왜 위축되었을까? 잠시 2017년 대선 상황을 돌아보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의 ‘마지막 1분’은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상정을 내세운 정의당은 6.17%를 득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민주당 왼편에서 대안을 찾는 노동자 민중에게 분명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일각이 주장하는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강조해 정의당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심상정의 발언이 2017년 대선에서 반향을 얻었듯, 이는 오히려 정의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기제였다. 문제는 민주당 종속성이다.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위선을 여실히 드러낸 2019년 조국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하며 민주당과 한배에 탔다. 당시 지형상 정의당은 조국 임명 여부에 관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고, 정의당의 동의는 청와대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졌다. 조국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2022년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공정성’ 담론이 청년층을 휩쓸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 속에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했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결국 정의당은 2022년 대선 2.37% 득표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를 겪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이준석, 금태섭과 손잡고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고, 비례대표 의원 류호정과 조성주 등은 실제로 이들과 당을 만들어 개혁신당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또한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하던 세력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했다. 당 주요 인사들이 전혀 통제받지 않고 ‘진보정치’와 하등 관계없이 행보할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정의당의 이념과 조직 구성이 얼마나 노동자계급과 괴리되어 있었는지를,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사진: 뉴스1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거듭되는 위축과 이준석의 약진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한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당보다 왼편의 세력, 즉 사회대전환연대회의 소속으로 출마해 완주했고, 34만 4,150표를 얻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는 점,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권영국 후보가 투쟁현장을 찾으며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의지를 드러낸 점은 노동자 계급정치 확대의 측면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진: 민주노동당 그러나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과거 정의당의 민주당 종속성과 함께,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의 민주당 종속성 역시 문제였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후보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대표가 권영국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한 이유는, 그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으로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추에 속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존재는 한상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한상균의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계급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전투적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결집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악화 기업 지분투자, 부도기업 인수’ 등 공약에는 자본을 위한 경제체제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겠다는 전략도 없다. 자본이 틀어쥔 기간산업은 그대로 두고, 파산기업 인수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가? 권영국 후보의 경제 공약은 사민주의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ᅠ 마찬가지로,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의회주의-개량주의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드러나듯, 일자리보장제가 제시하는 일자리는 호황과 불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도는 임시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이런 제안에 해방적, 이행적 요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153972 권영국 후보가 내건 일자리보장제도는 한때 유행하던 현대화폐이론가들의 논의를 차용한 것이다. 그 주요 이론가인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의 논의3)에 따르면, 일자리보장제도는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즉, 현대화폐이론가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 일자리보장제도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장점으로 내세운다.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이 틀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생산과 산업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을 하등 건드리지 않은 채 정부가 임시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그냥 자본주의 안에서 이대로 살자’는 이야기다. 3) 파블리나 R. 체르네바, 2021, 『일자리보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안』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진 국방·통일·외교통상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의 본질적 한계가 반동적으로까지 드러난 대목이다. 석유·가스·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 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공약은 노골적 추출주의(extractivism)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런 시대인식의 부재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으로 30만 정예 강군 달성’이라는 공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병제는 전쟁의 시장화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 군축이지 모병제 도입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정예 강군’ 육성이 아니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출발이나,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의 정치를 향하여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선 시기에도, 대선이 끝난 지금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민주노총의 공식 노선으로 관철하려는 양경수 집행부의 파행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국회 사회적 대화’ 관철을 위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소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에 조응해 노동운동 출신 거간꾼들을 정부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6월 23일, 정부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위 성명에서도 언급했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몬 핵심 인물이자,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다. 김영훈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다음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상 환영 입장이다. 진작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어야 했을 인물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된 일이 정녕 환영할 일인가? 이재명은 광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중도보수’를 선언했고, 강경보수 인사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며 선거를 치렀다. 당선 후 6월 13일에는 5대 재벌총수 및 6개 경제단체와 만나 자본가들의 민원을 들으며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재벌들에게 인사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유임이 보여주듯 내란세력 청산 지체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이 미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던 와중에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 민주당의 행보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민주노총을 붙들어매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사진: 고용노동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25.06.19.) 중 5월 29일,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인 0.8%로 하향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열강투쟁 격화에 따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보다 크게 밑돈 –0.2%에 불과했다. 관세전쟁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통계임에도, 침체 경향이 분명하다. 자본은 더 강한 노동개악을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재명 정부는 그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대선을 관통해 추진되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노동개악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미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은 ‘고용유연성’을 의제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자본가 정치세력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팔아넘기는 행위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타고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노동자 민중을 노출시키는 길이다.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연대’, 죽어야 할 그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민주노총이 민주당에 대한 압력단체로 전락할 위기 앞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계를 넘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할 정치세력의 형성과 직결된 문제다.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기, 기후재앙과 저출생,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세력이 되는 길은 계급투쟁으로 대안을 만드는 정치세력화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노동자계급은 당하고 또 당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과 결별하자.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축과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순환, 그 단초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광장식 소개’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에서 시작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우군으로,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자체로 발전해온 말벌 동지들, 다수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계급인 이 동지들과,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조직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추동하자. 그 결합이야 말로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열쇠다.2025-06-25 | 조회 6,395 -
성평등은 사라지고 언어성폭력만 남은 대선, 젠더평등을 향한 투쟁에 노동자가 나서자!사진: 연합뉴스 젠더평등 세상, 광장의 요구는 어디에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맞은 조기 대선에서 우리는 다시 윤석열을 마주하고 있다. 광장 안팎에서 노동자 민중은 성평등한 사회를 열망했지만, 성평등 공약은 사라졌다. 심지어 이준석 후보는 5월 27일 TV토론회에서 모든 노동자 민중을 향해 언어 성폭력까지 자행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자본가정당 3곳의 지지율이 90%를 넘는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정권을 낳은 ‘중도보수’ 민주당의 지지율 45%, 윤석열 비상계엄을 옹호한 국민의힘과 극우 파시즘적 혐오선동을 거듭하는 개혁신당 후보의 지지율은 도합 45%가 넘는다. 윤석열을 파면시킨 노동자 민중의 절규를 담은 정치를 찾을 수 없는 대선이다. 광장의 요구를 이어받아 사회대변혁을 주도하며 젠더1)차별에도 투쟁으로 맞서야 할 민주노총은, 자본가정당과 선조차 긋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민주당 지지 안건을 제출한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산별, 가맹 노조가 자본가정당인 민주당 지지 입장을 밝히거나 정책협약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과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원칙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는 퇴행이 벌어지고 있다. 1) 젠더 (Gender) : 생물학적인 성에 대비되는 ‘사회적인 성’을 지칭한다. 흔히 여성답다 (여리고 섬세하고 배려심 많은) 혹은 남성답다(강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고 하는 인식이 성별에 따른 신체적·유전학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체제 내에서 학습된 성 역할이 분리되어 고착된 사회 문화적 결과라는 점에서 제기된 용어로서 광범위하게 성 전반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심화하는 위기에 놓인 자본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더 맹렬히 공격하며,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억압을 강화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자본가 정당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하고 싸우는 것은 것은 더욱 중요하다. 자유주의 세력의 허울뿐인 약속은 대중의 환멸을 낳고, 결과적으로 극우세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결과가 윤석열 정권 탄생이라는 점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민주당, 그 민주당과 연대하는 민주노총이라는 현실 앞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다는 광장의 결의, 젠더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나? 우리는 어떤 길을 어떻게 열 것인가? 사진: 민주노총 극심한 젠더 차별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열망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로 등장해 ‘비상계엄’으로 끝났다. 퇴진 광장에는 2030 여성과 성소수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힘차게 깃발을 펄럭였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 차별의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증언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 반도체특별법 폐기 투쟁 등에 앞장서며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향한 외침을 더욱 확대했다. 이런 투쟁의 토대는 한국 자본주의 그 자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국가, 노인빈곤률과 고령여성 빈곤률 모두 가장 높은 국가다.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생률은 가장 낮은 국가다. 성소수자 권리는 최하위권이다.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젠더 불평등과 노동자 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그대로다. 그러나 조기 대선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암담하기만 하다. 여성, 성소수자, 성평등이 사라지고 언어성폭력까지 일어난 대선 조기 대선에서 자본가 정치세력들은 젠더 불평등과 2030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민중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했다. 민주당 이재명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여성 의제와 젠더평등을 공약으로 담지 않고 남성 유권자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입을 닫았다. 혐오선동으로 연명하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 1호로 걸고,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공약을 내세워 청년 미조직 대중을 혐오정치로 규합하고 있다. 심지어 이준석 후보는 5월 27일 3차 TV토론 생방송에서 공개적 언어성폭력을 자행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을 몰아냈더니 대통령 후보가 젠더갈등, 여성험오를 부추기다 못해 모든 노동자 민중을 향해 TV방송으로 언어성폭력을 가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국민의힘 인사 다수는 이를 두둔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자본가정당 후보들은 아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지금은 어렵다’고 답변했고 김문수 후보는 TV조선 방송연설에서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취업특혜’라고 말했다. 이준석은 ‘전과자도 차별하면 안 되느냐’며 조롱하듯 차별금지법 반대입장을 밝혔다. 물론 어떤 전과는 다른 법률에 따라 취업제한 등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에서 별도 규율하지 않았음에도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고 사회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 이들은 대선에서 한국사회의 심각한 젠더 불평등 해소는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듯 언어성폭력까지 일으키며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며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노동착취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저항력을 약화하기 위해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분열공세를 강화할 뿐이다. 대선에서 젠더평등이 사라지기까지 박근혜 탄핵 뒤 치러진 19대 대선부터 흐름을 한번 돌아보자.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입을 모아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2) 성별 임금격차 해소, 여성 대표성 확대, 젠더폭력 방지, 일·생활 양립 등 성평등을 위한 정책 등 성평등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2)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성평등은 인권의 핵심 가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2017년 2월 16일), “제게 성평등은 체화된 부분이다. 집에서 '밥 줘'라는 말을 한 번도 못해봤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2017년 4월 24일), “여성에 대한 모든 정책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충실하냐를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2017년 4월 25일), “제 삶이 페미니스트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의 권리가 획기적으로 신장될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2017년 2월 23일) 하지만 압도적 지지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선언과 달리, 쇠퇴기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오히려 늘어났으며(통계청: 2017년 32.9% → 2021년 36.3%), 부동산 정책 실패와 자산 불평등 심화는 여성과 청년 등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은 껍데기뿐이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 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OECD 성별 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게다가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박근혜 정부조차 시도하지 않은 조치로, 기본급 외 상여금·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해 최저임금 인상투쟁 자체를 무력화했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사진: 공무원노조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당시, 민주당은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비호하며 전 국가적 2차 가해를 자행하기도 했다. 켜켜이 쌓인 청년층의 분노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던 민주당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멸에서 껍데기뿐인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로, 여성·소수자·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선동으로 이끌렸다. 무엇보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청년과 미조직 노동자의 분노를 체제에 대한 투쟁으로 이끌지 못했고, 기층의 분노는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혐오정치를 앞세워 등장할 토대가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권이 비상계엄 내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자신을 반성하기는커녕 광장의 주인으로 행세했다. 민주당 의존적인 노동자 민중운동이 이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광장은 내란 진압은 물론 ‘차별금지, 성평등,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 노동자운동은 내란 진압을 민주당과 헌재에 의탁한 채 위력적 투쟁을 벌여내지 못했다. 민주당과 독립적인 투쟁을 확대하지 못한 결과는 민주당의 ‘중도보수’ 선언이다. 민주당은 광장의 눈치조차 보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진하고 있고, 우리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지워진 대선을 목도하고 있다. 자본가정당과의 단절, 차별금지법 제정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이 유일하게 그동안 젠더차별을 없애기 위해 투쟁해온 이들과 광장의 목소리를 담아 자신을 ‘페미니스트 대통령 후보’라고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조했다. ‘성평등부서(현 여성가족부) 강화’, ‘낙태죄 대체입법과 임신중지권 보장’, ‘비동의 강간죄 도입’, ‘포괄적 성교육 도입’, ‘성별 임금격차 해소와 돌봄노동자를 포함한 지원 확대’ 등을 제기했다. 물론 의회주의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바꿀 수 없다. 작은 젠더평등 확대조치조차 노동자 민중의 투쟁 없이는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그 투쟁의 시작이 자본가정당과의 단절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민주당과 독립적인 지향과 함께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며, 성평등 확대를 제기하는 권영국 후보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민주당 투항은 젠더평등 포기와 같다 그러나 노동자운동 내 진보당 지지세력과 노사협조주의 세력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민주당이 자본가 살리기를 강조하고, 차별금지법조차 걷어찬 이 마당에도 말이다. 구조적 젠더차별, 여성과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지 않는 정치가 어떻게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는가.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민주당을 지지하면서도 퀴어퍼레이드에 민주노총의 깃발을 휘날릴 것인가? 노동조합의 무지개 깃발은 그저 시늉이었던가? 민주당과 한편에 서서 확대되는 혐오정치에 맞설 수는 없다. 끝내 비상계엄을 통한 극우 파시즘체제 구축 시도로까지 이어진 혐오정치는, 여성의 유연근무제 확대나 육아휴직수당 인상과 같은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미봉책으로는 결코 청산되지 않는다. 초저출생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별 임금격차는 그 무력함을 이미 입증했다. 민주당 지지는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뿐만 아니라 젠더차별에 맞선 노동자투쟁을 포기하는 행위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여성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으로부터의 일탈이자, 광장의 열망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젠더평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동자 투쟁을 확대하자 우리는 수많은 여성과 성소수자, 미조직 노동자, 민중이 평등을 열망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5월 27일 한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발표한 여성노동자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6.8%가 ‘성평등 노동 실현이 자신의 일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평등사회 실현’을 차기 정부에 요구하는 1순위 과제로 꼽았다. 28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여성들에게 계엄은 오래전에 도착한 현실이었다”며 성평등 노동실현 민주노총 5대 요구안3)을 발표했다. 3) '성평등 노동실현을 위한 5대 요구'는 ①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②성별임금격차 해소(성평등 공시제 법제화, 실질임금 인상 ③채용 성차별 근절 ④돌봄중심사회로의 전환 ⑤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 등이다. 사진: 보건의료노조 자본가계급은 대선 이후 체제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더 노골적으로 전가하며 평등의 기반을 허물려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에 대응하는 실천으로 희망의 길을 열어야 한다. 평등은 자본가계급과 맞서 싸우지 않고 진전될 수 없다. 사업장 울타리 안에 갇혀 노동자 정치세력화뿐 아니라 젠더 불평등에 무관심했던 과거를 딛고 노동자답게 싸우는 길로 가자. 혐오와 차별의 일소, 젠더 평등, 계급 단결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향해 나아가자. 가부장적 자본주의 안경을 벗고 젠더평등한 노동자의 관점으로 노동조합과 일터, 사회를 부단히 돌아보고 바꿔가자. 여성이 주로 일하는 직종의 저임금을 이대로 둘 것인지, 여성 노동자 차별에 맞선 싸움을 어떻게 모두의 투쟁으로 만들 것인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독당하며, 화장실과 탈의실조차 편히 사용할 수 없는 고통에 어떻게 공감할 것인지, 노동현장과 노동조합 내 가부장적·성차별적 언어나 문화를 어떻게 손볼지 토론하고 투쟁 과제로 끌어올리자. 최저임금, 노동기본권, 차별금지법, 공공돌봄, 임신중지권, 혼인평등 등 다양한 의제가 노동자운동의 과제다. 젠더차별 해소 투쟁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도 민주당에 대한 청원이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는 교육, 선전, 토론을 통해 현장 투쟁과 거리 투쟁을 결합하며 노동자의 힘을 발휘하자. 젠더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고통받는 모두가 노동자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계급투쟁의 길을 열자. 노동자가 페미니스트이며, 퀴어(성소수자)이자, 앨라이(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다! 젠더평등을 향한 노동자 투쟁, 차별금지법 쟁취를 위한 노동자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자!2025-05-31 | 조회 4,273 -
양경수 위원장은 석고대죄하고 물러나라!사진: 한겨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이 관료들의 발밑에서 무참히 짓이겨졌다. 자본가 정치와는 다른 노동자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노동자계급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됐다. 한국 노동자들도 일제 강점기부터 사회변혁을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를 고민했고, 자본가 지배계급의 정당과 다른 정당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자본가계급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숱한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지켜왔던 최소한의 뿌리마저 무참히 뽑으려 한다. 양경수 집행부는 4월 29일 ‘진보정당 및 진보정당과 연대 연합한 후보’ 지지 방침을 내세워 이재명 지지의 길을 열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 진보정당 후보로 남게 됐다. 하지만, 5월 20일 중집에서는 권영국 후보 지지 결정도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6월 3일을 맞이하게 됐다. 이들의 심각한 죄악이 아무 벌도 받지 않고 얼버무려진다면, 민주노총은 원칙도, 대의도, 규율도 없는 허깨비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금 당장 중집 회의록을 낱낱이 공개하라! 양경수 집행부는 석고대죄하고 지금 당장 물러나라! 최악의 비겁함 민주노총 집행부가 ‘결론 없는 종결’, ‘지지 후보 없음’을 밀어붙인 이유는 권영국 후보에 대한 조직적 지지를 막고 실제로는 이재명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삼척동자도 진보정당과 연대 연합한 후보,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진보당이 굴욕적으로 지지한 후보가 이재명이란 사실을 안다. 양경수 집행부는 비겁하게도 이재명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의 사퇴에 대한 반발로 고미경 민주노총 사무총장과 몇몇 집행부가 사퇴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사퇴 이유를 모르겠다’는 뻔뻔한 거짓말까지 늘어놓았다. 또한 이재명 지지는 2023년 9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정치방침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당시 결정은 다음과 같다. “보수 양당체제 타파와 진보정치세력이 위력적인 대안 정치세력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한다. 보수 양당에는 당연히 민주당이 포함된다. 더구나 최근 이재명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 정당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헷갈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임기 3년에 불과한 집행부가, 대의원대회 하위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가 상위기구 결정을 뒤집을 권한이 있는가? 근본 경계선을 허물어 버리다! 이재명 지지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극우 보수세력뿐 아니라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과도 맞서며 고통 속에서도 지켜 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깃발을 완전히 꺾어버리려는 시도다. 자본가 정치 대 노동자 정치라는 근본 경계선을 완전히 허물려는 시도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2024년 총선에서도 진보당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반미 경력’을 내세우며 진보당의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 교체를 요구하자, 진보당은 당내 논의도 거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녹색정의당은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지역 차원에서는 민주당과 연대하려고 했다. 진보정당의 ‘민주당 이중대’ 노선은 그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 옛 민주노동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대한 어떤 문제 제기도 없이 반MB연대(반이명박 연대)를 추진했다. 정의당의 경우, 노동자 후보임을 내세웠던 여영국 후보조차 2019년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몰두했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조금도 폭로하거나 규탄하지 않았다. 이는 노동자 운동을 민주당이라는 ‘자본가 정당’을 넘어 민주당 ‘자본가 정부’에까지 종속시키는 행위였다. 정의당 대표였던 이정미는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왼쪽 날개”라고도 발언했다. 민주노동당과 그들의 뒤를 이은 몇몇 개량주의 정당은, 자본주의 체제와 정치 질서 안에서일지라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야권연대 노선을 줄기차게 고수하며, 노동자들의 정치적 잠재력을 갉아먹으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순응을 선택했다. 선거 때 잠시 왼쪽을 바라보며 노동자에게 표를 구걸하곤 했지만, 그들의 민주당 추종 경향은 갈수록 강해졌다. 이제 노동자 정치의 퇴보는 진화를 거듭해 대선에서 자본가 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라는 비극적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자본가정당과 함께 내란세력 청산? 이재명은 윤석열 체포 이후 ”안타까운 일, 이제 민생과 경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퇴진 투쟁의 중요한 국면마다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졌고, 수시로 내란세력에게 기회를 줬다. 국민의힘과 함께 꾸린 여·야·정협의체가 대표적인 예다. 윤석을 퇴진 투쟁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세력은 노동자 민중이다. 착취와 억압, 차별과 소외에 짓눌려왔던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내란세력 척결과 함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변혁 요구를 간절히 외쳤다. “거통고 동지들이 서울에 온 지도 65일이 되었습니다. 우린 도대체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까지 반도체, 반도체가 그렇게 잘난 이 국가에서 반도체 때문에 죽는 노동자가 몇이나 더 나와야 우리는, 우리를 죽이는 위험 물질이 그게 도대체 뭔지라도 알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도대체 몇 명의 트랜스젠더가 더 죽어야 우리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몇 명의 발달장애인이 더 죽어야 감옥이 아닌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까?” - 3월 13일, 투쟁 3단위 공동주최 오픈 마이크에서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말벌 시민) 발언 일부 차별금지법 제정과 모든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도 거부하면서, 반도체특별법 제정과 부자 감세 등으로 재벌과 가진 자들의 이익을 앞장세우는 민주당이 어떻게 광장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보수세력은 스스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극우 보수는 민주당 정부의 한계와 무능력으로부터 나오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그럼에도 노동자 운동이 거듭 추락한 민주당 정부와 공조한 결과는 무엇일까? 자본가 정치세력과 다른 왼쪽의 대안을 스스로 지움으로써, 민주당과 다른 대안을 찾는 대중을 극우 보수에 갖다 바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극우 준동의 뿌리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자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토해내는 실업과 불평등, 가난과 생활의 불안정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빈곤에 시달리며 대안을 찾고 있다. 절망적 상황에 놓인 수많은 노인도 마찬가지다. 극우세력은 이런 정치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그들을 공격해야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이,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수호자인 민주당이 극우 준동의 토대를 없앨 수 있는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민주당 정부는 대중에게 쓰라린 환멸과 배신을 안겨 극우가 성장할 토대를 만들 뿐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장악하기 전까지는 극우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자본가계급이 챙기는 이윤도 늘리면서 노동자계급의 고통도 완화하는 자본주의를 꿈꾼다. 노골적인 억압 대신, 사회적 합의나 타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체는 곧 폭로된다.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공격하지 않고 체제를 지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자본주의 위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자본가 정부가 쥔 위기 완화 수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격화하는 국제 경쟁, 과잉 생산과 이윤율 하락, 수요 부족이 모든 자본가 정부를 휘감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온건한 자본가 정부를 표방하다 노골적인 자본가 정부로 변모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재인은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의 힘을 의식하기라도 했다. 이재명은 윤석열을 탄핵한 응원봉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당이라는 이재명의 선언은 그런 뜻이다. 결국, 민주당을 통해서는 내란세력을 척결할 수도,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실현할 수도 없다. 유일한 길 우리는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도 이재명에게 표를 던지려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자본주의 선거제도 자체가 대중의 눈과 귀를 거대 정당들에 고정시키고 있고, 노동자들의 열망을 실현할 다른 정치적 대안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열망은 노동자 정치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모아져야 한다. 느려 보이지만,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며 무엇보다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짓이겨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다시 세우려면 지금까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봐왔듯 의회주의, 개량주의 정당은 노동자투쟁 및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자 조직에 기반한 투쟁정당이 아니다. 이 당들은 현장에서 노동대중과 함께하며 노동자의식을 키우는 선전 선동활동과 과감한 실천활동 대신,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와 TV에서 이름을 알리며 인기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의회주의적 활동에 몰두해 왔다. 이 정당들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모인 현장에 조직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조직의 기초를 지역구나 의회에 두었다. 지역구와 의회 활동 역시 민주당과의 연합 및 종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당원들과 수많은 지지자는 단지 선거 때 표를 던지는 존재로 전락하곤 했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활동과 투쟁은 곁가지가 됐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운동 내에서 배신행위를 저지르는 정당 소속 관료들은, 당의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거리낌 없이 활동한다. 진정 노동자들의 열망을 실현하려면 이런 정당과는 완전히 다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자본가들의 소유권과 이윤 논리에 정면 도전하는 과감한 투쟁을 조직하는 당, 자본가계급에 확고히 맞서면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 진짜 노동자당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하고 노동해방을 향한 투쟁으로 모든 노동자가 떨쳐 일어서도록 조직하는 노동자당, 의회주의와 출세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선거와 의회를 철저히 노동자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혁명적 노동자당,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강령에 근거해 노동자계급을 사회변혁으로 이끌 혁명적 노동자당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없다. 다른 세상을 꿈꿔야만 한다. 다른 세상을 위한 진정한 도구를 찾아야 한다. 계급투쟁이 확장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의식과 자신감이 깨어날수록 진정한 노동자당 건설을 향한 노동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이다. 윤석열 퇴진 투쟁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거대한 잠재력은 빛났다. 이 잠재력은 적절한 때를 만나면 폭발할 것이다. 이 길을 가려면 가장 먼저 낡고 부패한 세력들, 계급투쟁을 감당할 수 없는 세력들과 단절해야 한다. 민주당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노동자 정치를 자본가 정당에 갖다 바치는 세력들과 단절해야 한다. 그들에게 어떠한 환상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양경수 집행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양경수 위원장은 석고대죄하고 물러나라! 자본가 정치와 노동자 정치의 근본 경계선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2025-05-28 | 조회 3,847 -
[기고] 2030 청년학생이 바라는 것은 거대양당을 향한 압도적 굴종이 아니라 독자적 노동자 정치세력화다2025년 2월 21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열린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현장 간담회 [편집자 주] “대선관련 논의 건 심의·의결 결과 : 결론 없이 종결.” 5월 20일, 민주노총 중집은 끝내 대선방침을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안건이 제출된 5월 15일 중집에 이어, 다시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권영국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이 격돌했다. 대선방침을 표결로 결정할지조차 표결에 부친 끝에, 재석 33명 중 14명의 표결 찬성으로 표결은 무산되었다.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5월 20일 게재된 학생사회주의자연대 곽소현 유지원 동지들을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자본가계급 정당을 견인하겠다는 양경수 집행부, ‘압도적 정권교체’가 아니라 ‘압도적 굴종’일 뿐이다 지난 4월 29일 민주노총은 임시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를 열었다. 지난 정기 중집 때 제출되지 않은 대선방침에 대한 단일 안건이 논의에 부쳐졌다. 21대 대선 후보방침 제출안의 마지막 단락에는 ‘진보정당의 후보 및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라는 민주노총 강령 2호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거대 보수양당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 시도한 것이다. 이날 “민주노총 77차 대의원대회 정치방침을 위반하며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문제”라며 “내란수괴를 파면시킨 광장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민주노총이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진보정당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지형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지적한 현장 의견에 대해 양 위원장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견인할 방안으로 제안하는 것”이라는 궤변으로 답하기도 했다. 다행히 임원들과 현장 간부들의 반대로 지난 15일 중집을 통해 전체 총연맹 차원에서의 민주당과 정책협약 시도는 중단되었지만, 위원장이 제출한 해당 정책협약안에 노동3권 보장을 제외한 다른 사회대개혁 요구안(포괄적 차별금지법 포함)이 누락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파란이 일었다. 한편 가맹 노조 중에서는 건설기업노조가 최초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같은 15일), 사무금융노조에서는 지도부가 국회에서의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을 추동하려다 현장 간부들의 반대에 부딪혀 선언 계획 일체를 철회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21대 대선 선거방침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진보당의 김재연 후보가 대선 후보 등록도 전에 이재명 후보 및 민주당에 대한 단일화를 선언하며 물러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압도적 승리가 필요하다는 김재연 후보, 민주당이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견인 대상이라는 양경수 위원장, 내란세력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에 매진하기 위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건설기업노조 박명호 위원장까지. 이들의 입장은 하나의 커다란 맥락에 맞닿아 있다. 바로 압도적인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통한 내란세력 청산이 작금의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다. 이 말은 물론 겉보기엔 크게 틀린 점이 없어 보인다. 초유의 퇴보적인 계엄 포고로 노동자 민중의 목숨을 위협한 내란 세력은 청산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파시스트 내란세력 국민의힘과 윤석열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과도 기꺼이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또한 그 속내에 엄청난 진의를 은닉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의 압도적인 정권교체는 정말 파시스트 내란세력에 맞서는 유일한 길일까? 정말 민주당과 이재명은 광장에 나온 노동자 민중의 연대연합 대상일까? 민주당과의 협업을 추동한 집행부가 조직 노동자 운동의 역사상 양 위원장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코로나19 시기 문재인 정부와 노사정 합의를 강행하려다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 등 퇴행적 합의안으로 인한 현장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 사퇴까지 이르렀던 김명환 집행부가 있고, 보다 과거로 거슬러서는 1998년 1월 김대중 정부 아래 조성된 노사정 위원회에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간의 공정한 고통 분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노측의 수용’과 같은 내용을 합의했다가 극심한 반대로 1기 지도부 사퇴라는 진통을 겪게 된 역사가 있었다. 전례를 따져보면, 민주당과의 협업이 모의될 때는 언제나 ‘사회적 합의’나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합의를 통해 얻게 될 성과’ 따위의 표현이 쓰였다. 그러나 과거의 시도들 속에서 발견 가능한 유일한 진실은 이 표현들이 모두 기회주의적인 관료층 지도부를 변명하는 비굴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23년 민주노총 제11기 임원 선거 양경수 후보조 홍보 포스터 ‘민주주의 사수’가 더 시급하다는 민주당, 무엇을 은닉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영구한 가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쇠락과 노화 정도에 따라 유동적으로 후퇴와 진전을 반복한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민중의 투쟁이 자본가계급과의 싸움에서 힘으로 승리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의 진보를 쟁취하며 발전하지만, 전체 투쟁이 퇴보할 때는 과거 나치당의 등장이나 지난 12월 3일 충격적인 윤석열 정부의 계엄 포고와 같은 파시즘의 모습으로 철저히 퇴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시기나 국가의 문제라기보다 자본주의 체제가 쇠퇴할 때 자본가계급이 더는 “빵도 평화도” 노동자 민중에게 보장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통치를 지속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역사적 주기를 두고 반복하는 까닭에 있다. 2025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전 정부 취임 이래 자영업자 연체율과 폐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고 경제 성장률은 2022년 이후 연속적인 저성장세였다. 윤석열 전 정부에 들어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얼마나 강하게 한국을 강타했는지는 한국은행의 다급한 전망 수정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기 부진이 이어지자 한국은행은 2월 25일, 2025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1.9%에서 1.5%로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한은이 연간 성장률 전망을 이번처럼 0.4% 이상 조정한 것은 윤 정부 초기인 2022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 한국은행은 동시에 물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스태그플래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냈다. 거시지표의 대표 격인 경제성장률을 보면 저성장 국면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한 술 더 떠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관세 정책을 볼 때 1.5% 성장률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22년도 5월 2주차에 52%라는 지지율을 유지하던 윤석열 전 정부가 계엄 포고 거의 한 달 전인 24년도 11월 1주차에 17%라는 암담한 지지율을 받아들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 쇠락의 맥락이 있었다. 즉 군대와 경찰을 등에 업은 윤석열 정부의 충격적인 계엄 포고는 위기를 직면한 자본가계급 극우 정당의 자충수로서 일정 부분 예견할 수 있는 파국이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내란이 일정 부분 예견할 수 있는 수순이었던 만큼 민주당이 자본가계급 정당으로서 이와 같은 내란 사태에 적절히 맞서다가 결정적 순간에 사실상의 양당제 파트너인 국민의힘과 적절한 합의를 취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예견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실제로 민주당은 12·3 내란사태 이후로도 내란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해체와 퇴진을 요구하는 대신 꾸준히 여야정협의체의 추동을 시도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후로도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최 부총리는) 비상계엄에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국무회의장을 뛰쳐나온 사람 아니냐", "경제 신인도 회의를 주재하는 등 국정 공백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임하는 게 한 권한대행보단 좀 낫지 않느냐"고 발언하는 등 입맛에 맞는 파트너로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최상목 대행이 내란세력의 주축으로서 윤석열 체포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때도 민주당은 이재명 당시 원내대표를 통해 그와 같은 최상목 전 권한대행의 행태를 비판할 뿐 실질적인 최상목 대행의 탄핵을 전면화하지는 않았다. 끝내 마은혁 임명을 두고 최상목 대행이 철저히 내란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임명안을 발표했을 때도 민주당은 국정 혼란을 이유로 그를 탄핵하지 않았고, 상식을 벗어나는 판결로 내란세력의 주축이었던 한덕수가 멀쩡히 복귀할 때까지도 최상목에 대한 그 어떠한 탄핵시도도 하지 않았다. 결국 최상목은 5월이 다 되어서야 아무 의미 없는 탄핵안이 발의된 직후 직접 사의를 표명하며 유유히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심판 바깥으로 달아났다. 민주당의 암묵적이며 적극적인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주였다. 하지만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에서의 윤석열 파면이 불투명화의 극치에 다다랐던 3월 말에도 민주당은 여야정협의체의 복원 및 재가동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한 것은 누구였는가? 바로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을 두고 광장연대의 더욱 너른 조직화를 논하는 관료적 지도부의 태도가 섭섭할 정도로 이들은 지난 몇 달간 암묵적이며 적극적인 내란 세력의 파트너였다. 물론 이는 당연한 결과다. 자본가계급 정당이라는 본질을 존속하는 이상 민주당은 아무리 ‘진보적’일지언정 스스로의 목숨이 걸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에만 겨우 반응할 뿐, 촌각을 다투는 순간이 지나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를 위해 안정적인 선에서 내란세력과의 공존을 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압도적 정권교체’라는 그럴듯한 변명은 민주당의 정권 집권을 거치지 않더라도 단결한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극우 파시즘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 나아가 보수양당과 독립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발 다가서는 길이라는 사실을 은닉한다. 애초부터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에는 단 한 번도 노동자와 억압받는 민중 –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포괄된 적이 없었다.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반노동 정치를 펼쳐 왔다. 건설노조 공안탄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역대 최저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남긴 것은 바로 촛불정부를 참칭한 문재인 정권이었다. 정리해고법과 근로자파견제를 입법한 것은 무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정권이었고, 2003년 대대적인 열사정국 직후에도 철면수심의 작태로 비정규직 양산을 재촉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입법시킨 정권이 노무현 정권이었다. 또한 국민의힘이 극단적 여성혐오 행보로 비판받을 때, 민주당도 그와 별다르지 않았다. 구조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 및 여성 청년의 요구에 민주당이 응답한 방식은 조건부 현금성 지원과도 같은 눈가리개 정책이었다.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대출해 주고, 첫 자녀 출산 시 무이자, 둘째 출산 시 원금 50% 감면, 셋째 출산 시 원금 전액 감면,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 제공과 같은 공약은 민주당이 여성 문제를 얼마나 편협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피억압민중의 생존권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차별금지법은 1997년 최초로 주장된 이후 2002년에는 노무현의 대선 공약집에도 포함되어있었지만 2025년에도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만 반복하며 누군가의 생존을 뒤로 밀어두었다. 압도적 정권 교체 실현 위한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 제안 기자회견 사진 이재명의 ‘우클릭’은 전략이 아니라 본질이다 – 파시스트 극우정당 해체는 민주당의 집권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과 청년학생의 총력 투쟁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이재명은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기 전부터 반도체특별법 제정과 ‘희망하는’ ‘고소득’ 노동자에 한한 주 52시간 노동제 유연화를 운운하며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반동적인 정부의 집권을 예고했다. 민주당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정당’이라는 자가 진단이 아니나 다를까, 이재명은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차자마자 극우 인사를 대거 영입하며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로 셀링하기 시작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석연 전 법제처장, 권오을 전 한나라당 의원, 이인기 전 한나라당 의원, 심지어는 홍준표 지지자들까지 이재명 선거 캠프에 포괄되었다. 이중 용산 참사를 자살테러라고 말한 이인기 전 법제처장을 영입한 문제에 대한 질문에도 이재명은 “순수하거나 아무 흠 없는 사람들만 모아서 하면 가장 좋겠지만,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워서 저희로선 최선을 다했다는 말씀”이라는 어이없는 대답으로 일축했다. 심지어 권오을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재명 선거 캠프 영입 이후 “박정희 각하께서 이재명을 말씀”하셨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이에 대한 제지는 전혀 없었다. ‘진보 5당’이라는 허무한 이름을 자기들끼리 정답게 부르며 이재명 단일화를 선언한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은 어땠는가? 같은 선거 진영에 이러한 극우 인사들이 대거 영입되는 문제에 대해 일말의 지적이라도 내놓았는가? 한때나마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와 함께 유일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말하는 진보정당 예비 후보로 각광 받았던 김재연은 “혐오와 차별이 극복되고 사회적 통합이 실현되는 성숙한 선진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제”라는 공동선언문의 관념적인 문구에도 웃음이 만개한 얼굴로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진보당 당내에서 비민주적인 후보 미등록과 일방적 단일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치솟는데도 이들은 어떤 개선 조치나 토론조차 추동하지 않았다. 진보당 내 다수의 실로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내란 세력 청산과 압도적 정권교체라는 그럴듯한 핑계 앞에 마침내 빛을 발한 것이다. 퇴진 광장이 닫히자마자 노동자 민중의 요구는 바로 그 소년공 이재명과 페미니스트 후보 김재연에 의해 땅바닥에 버려졌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어떻게 떨쳐 일어서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제를 이어갈 것이냐의 지점 – 다시 말해 파시스트 극우 정당과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태도가 될 것이다. 12·3 내란 직후에 열린 광장은 지난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보다 더욱 예각화된 민중 투쟁의 정치적 요구들을 여실히 반영했다. 이번 광장을 선도적으로 이끈 것은 단연 2030 여성과 성소수자들이었다. 이들은 세종호텔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주얼리분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처럼 누구보다 민주노조의 선봉에서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집중 연대하며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부상시켰다. “저항하라, 금속노조는 선봉에 선다”나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문장에 2030 청년학생이 열광했던 것은 자본가계급 정당으로서 민주당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한계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아래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착취와 억압에 진짜 맞서는 투쟁을 조직된 노동자운동 (민주노총)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민주노총 산하 민주일반노조가 모집한 민주노총 누구나지회의 경우에는 정 조합원이 아닌 준 조합원의 자격인데도 불구하고 가입 신청 폼을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몇백 명의 신규 가입자가 쇄도할 지경이었다. 2030 청년학생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민주노조의 양식을 원했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들을 변혁하는 조직된 노동자운동의 내용에 환호했다. SNS에서는 윤석열 퇴진 이후로도 민주노총이 계속해서 교체된 정권에 맞서 싸울 수 있으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그때에도 지금과 같이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엄청난 공유 수와 함께 퍼지기도 했다. 광장의 2030 청년학생이 원한 것은 무엇보다도 계급정신에 기초한 노동자운동의 투쟁, 그리고 독자적 정치세력화였다. 양 위원장이 4월 29일 임시중집에서 이재명에 대한 지지 사유랍시고 꺼내든 “민주노총의 사회정치적 영향력, 진보정당의 강화(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질적 실현)”를 위한 기초적인 토대는 이미 광장에서 입증되었다. 오히려 지난 몇 년간 각종 선거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난 2030 청년학생 사이의 무당층 확대는 이들이 사실상의 양당제 형식에 얼마나 지쳤는지, 새로운 정치세력을 기다리고 있는지만을 입증한다. 비록 임원과 현장 간부들의 반대에 의해 다행스럽게도 양경수 지도부의 민주당-민주노총 간 정책협약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재하는 대선방침과 중집에서 드러난 양경수 지도부의 무책임한 태도, 진보정당으로서 사표를 내던지고 굴종의 단일화 반열에 끼어든 진보당의 행보는 오늘날 노동자운동과 그에 기반한 진보정당운동의 핵심에 도사린 기회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소위 ‘반파쇼 인민전선’ 형태를 지향하는 관료적 지도부의 문제를 그대로 까발린다. 민주당은 ‘정권교체’만을 위해 대선에 참여한다. 이재명 후보는 유세 중에 계속해서 ‘압도적 정권교체’를 언급해 왔다. 그러나 광장의 대중과 청년학생은 정권교체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탄핵 광장에서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절박하게 부르짖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것으로 노동자 민중을 위한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랜 역사가 증명했다. 억압받는 민중과 청년학생이 원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나서 허울만 그럴 듯 할 뿐 진정한 개혁을 만들어낼 수 없는 자본가계급 정당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가식적인 진보 정책과 껍데기뿐인 공약으로 대중의 경멸을 자아내는 보수양당 대신, 진짜 청년학생과 억압받는 민중의 삶과 맞닿는 알짜배기 구호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존속이라는 근본적 제약에 갇힌 민주당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민중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심지어는 차선책조차 될 수 없다. 외려 진정 국민의힘 해체와 내란세력 청산을 윈한다면, 노동조합,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집권세력에 오른 윤석열과 그의 뒷배인 내란공범 국민의힘에 맞서는 진정한 활로는 ‘반파쇼’ 기조에 의한 민주당과의 야합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피억압민중의 사람다운 삶을 담보하는 정치세력화에 있다.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핑계로 민주당과 손을 잡겠다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궤변은 광장에 대한 배반이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다는 선언에 환호했던 2030 청년학생은 21대 대선을 둘러싸고 양 위원장이 주도한 퇴보적 논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광장에서 투쟁하는 민주노총의 조합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2030 청년학생이 열어둔 새로운 미래로의 길을 양경수 위원장의 마음대로 퇴보하게 둘 수는 없다. 양 위원장은 최근 중집에서 민주노총의 정상화를 사유로 사퇴한 고미경 전 사무처장의 정확한 사퇴 사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자세히 모르겠다”는 황당무계한 유체이탈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양경수 위원장은 자세히 모르겠는 그 이유를 찾을 때까지 광장에서 당신에게 열광했던 2030 청년학생 연대자들의 기대 어린 얼굴을 면면이 곱씹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나아가는 담대한 방향을, 책임회피가 아니라 계급정신에 의거한 21대 대선의 대선 방침 수립으로부터 열어가야 할 것이다.2025-05-22 | 조회 4,245 -
영원히 꺼지지 않을 해방의 횃불 광주민중항쟁윤석열의 계엄에 맞선 투쟁에서 광주민중항쟁은 부활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 노동자 민중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윤석열 퇴진 투쟁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더욱 엄숙한 마음으로 광주항쟁의 기억을 돌아본다. 피의 일요일부터 계엄군의 도청 철수까지 1979년 박정희의 죽음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부산과 마산 등에서 격렬한 투쟁이 벌어졌다. 1980년 봄, 학생들은 유신체제의 완전한 청산을 위해 투쟁했다. 이들은 유신잔당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의 퇴진, 1972년 박탈한 대통령 직접선거권의 회복, 계엄령 해제를 요구했다. 1980년 5월, 민주화의 요구가 전국적으로 고조되면서 유신체제를 떠받쳐온 군부와 민중의 대결은 결정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서울의 봄’과 광주의 저항을 짓밟으며 군사파시즘 체제를 재수립하려 했다. 신군부의 꼭두각시 같은 최규하 정부는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군인들이 주요 대학을 점령했다. 학생운동 지도부,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전국이 숨죽이고 있을 때 광주에서는 학생, 시민, 노동자들의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었다. 5월 8일부터 16일까지 ‘민족민주성회’라는 두 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횃불 행진 등 투쟁의 분위기가 끓어올랐다. 공수부대 계엄군은 군홧발을 앞세우고 진압봉과 대검을 휘두르며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에 나서 처참한 만행을 저질렀다. 5월 18일은 ‘피의 일요일’이었다. 일요일 오전 계엄 확대 소식을 듣고 모인 전남대 학생들을 맞이한 것은 새벽에 이미 학교를 점령한 특전사 소속 공수부대였다. 공수부대원들은 가정집까지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연행했다. 붙잡힌 사람들은 발가벗겨진 뒤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공수부대들은 맨몸의 시위대를 향해 화염방사기로 공격하기까지 했다. 19일부터 저항도 더 거세졌다. 이제 항쟁은 영세 작업장 노동자, 택시 기사 등 평범한 노동자들이 주도했다. 금남로 차량 시위 5월 20일 오후가 되면서 10만에 이르는 노동자 민중이 금남로를 메웠다. 오후 7시쯤 운수 노동자들이 200여 대의 버스와 택시에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로 들어섰다. 운수 노동자들은 차량을 앞세워 계엄군을 밀어붙였다. 5월 21일 오후 1시 계엄군은 도청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자행했다. 도청 앞 상무관에는 대검에 난자당한 시신, 구타로 얼굴이 짓이겨진 시신, 총격에 머리통이 날아간 시신이 넘쳐났다. 공수부대의 잔혹한 유혈진압이 계속되자 시위대는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고 관청을 습격하고, 무기고를 접수해 무장하기 시작했다. 총과 장갑차로 밀어붙이는 공수부대의 살육에 투석전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시민군 대표’ 이름으로 발표된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팜플릿에서 시민들은 무장 이유에 대해 “그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너도 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광주지역 노동운동의 거름과 불씨였던 들불야학 출신들은 5월 21일부터 ‘투사회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학살을 알려 나갔다. 시내 곳곳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시민군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계속 몸을 던졌다. 증원된 공수부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쳤다. 일부 시위대는 차량을 나누어 타고 광주를 빠져나가 전남 일대를 누비며 진실을 알리고 시위를 널리 퍼뜨렸다. 항쟁은 급속히 화순, 나주, 함평, 영광, 강진, 무안, 해남, 목포 등 16개 지역으로 확산됐다. 5월 23일 투사회보 6호 노동자 민중 시위대는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왜곡 보도하는 MBC와 KBS 방송국을 응징했다. 시민들은 세무서도 공격했다. 자신들을 무참하게 진압하는 군을 위해 자신들의 세금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기존의 국가 기능에 대한 부정, 새로운 국가 질서에 대한 모색이 진행됐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시민군을 상대로 계엄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21일 도청에서 철수하여 외곽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해방공동체 광주는 투쟁하는 노동대중의 힘으로 해방되었다. 노동대중이 광주를 움직였고, 스스로 치안과 행정을 떠맡았다. 계엄군이 광주를 봉쇄해, 광주 노동자 민중은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공급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치 조직과 무장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질서를 잡아나갔다. 시민군 관리 사무실을 만들고 사령부에 접근할 수 있는 통행증과 차량 통과를 위해 안전 통행권, 연료 주입권을 발행했다. 식량이 떨어진 이웃과 쌀을 나누었다. 많은 시민이 주먹밥과 음료수를 이고 거리로 나와 곳곳에서 시민군에게 나누어 주었다. 22일부터 산수시장 아주머니들이 밥을 지어 손수레로 실어다 주었고, 도청에 가족 생사확인을 위해 들렀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동네 사람들과 상의하여 주먹밥과 빵, 우유 등을 가져다주었다. 양동시장과 서방시장에서도 밥을 짓거나 주먹밥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산수동, 학운동, 백운동, 농성동, 운암동, 두암동 등 외곽을 방어하는 지역방위대도 앞장서서 식사를 공급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성을 다해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헌혈에 앞장서 혈액은 남아돌았다. 혼란을 틈탄 매점매석도 없었고 범죄는 없었다. 금융기관이나 금은방 하나 탈취된 곳이 없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너도나도 헌혈에 앞장섰다. 광주 노동자 민중 모두가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했다. 23일 이후 도청 앞 광장에서 여러 차례 궐기대회를 열고, 활발한 민주적 토론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이렇게 해서 노동자 민중이 직접 세상을 운영하는 위대한 광주 해방공동체가 탄생하고 있었다. 진정한 지도부 피 흘려 쟁취한 해방광주는 지도부에 의해 무너져 갔다. 5월 23일 수습대책위원회는 무장을 해제하고 협상하자는 ‘투항파’와, 희생자들의 피에 보답하려면 무기를 들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투쟁파’로 나뉘었다. 부시장을 주축으로 신부, 교수, 변호사, 정치인, 지역유지 등 행정관료와 지역 자본가들로 구성된 수습대책위는 계엄군과 협상에 들어갔고, 시민군의 무기를 회수하여 계엄군에 반납할 것을 결정했다. 이들은 군부독재를 반대했지만, 기존 질서를 뛰어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할 정도로 성장한 노동대중의 힘을 두려워했다. 한국전쟁 때나 쓰던 M1과 카빈소총을 들고, M16으로 무장한 고도로 훈련된 공수부대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5월 23일 오전 도청 내 학생수습대책위원회는 재야수습대책위원회와 합의하여 강제로 무기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궐기대회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에도 도청 수습대책위는 계속 무기를 회수했다. 기동순찰대가 아닌 사람이 총을 들고 있으면, 강제로 총기를 회수해 갔다. 5월 25일 3차 시민 궐기대회에서 투쟁파의 주장이 지지를 얻어 오후 10시 새로운 항쟁지도부를 결성하였다. 시민궐기대회는 수습위의 투항주의 노선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노동대중의 투쟁 의지를 더욱 확산시키는 투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다. 10만이 모인 대회에서 대중은 수습위와 계엄군의 협상 내용 공개를 요구했고, 수습대책위가 제시한 ‘사후보복을 막는 선에서의 타협’은 그동안 흘린 피를 짓밟는 것이라며 사방에서 야유를 보냈다. 노동자 민중은 더 이상 주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투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수습위는 방송시설 전원을 차단하는 등 노골적으로 시민궐기대회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항쟁지도부로 ‘민주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맡은 대변인 윤상원, 기획실장 김영철, 홍보부장 박효선은 ‘들불야학’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요구사항 관철 없이 무기를 반납하는 것은 대중의 피를 빨아먹는 행위’라며 무기 회수에 반대하던 인물들을 만나갔다. 무장해제는 곧 투쟁의 패배를 뜻했다. 계엄군의 또 다른 살육, 그 시작을 의미했다. 우리가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시민들에게 알리고 고등학생 등 총기를 다룬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총기는 회수하되,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총기를 지급하여 재무장하도록 촉구하기로 했다. 또한 시민의 요구로 도청 내 수습대책위원회의 입장을 변경하도록 촉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윤상원 열사 윤상원은 지도부를 새롭게 재편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의 명망가가 아니라 무장봉기의 한가운데서 투쟁을 통해 성장하는 인물에 주목하고, 이들을 새롭게 지도부로 발탁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가령 운수 노동자 출신의 박남선은 목숨을 건 전투 속에서 시민군으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이후 상황실장으로서 시민군의 총지휘를 맡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지도부 구축은 너무 늦었다. 절반 이상의 무기가 반납되었고, 시민들의 자신감과 투쟁력은 상당히 위축되었으며, 계엄군은 진압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새로운 지도부에 의해 투쟁 동력이 살아날 것을 우려한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도청 진압 계획을 세웠다. 도청사수투쟁 도청에서 끝까지 항전했던 200여 명의 시민군 투사들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했다. 공수부대 3개 여단을 비롯해 2만여 명의 자본가군대에 200여 명이 맞서 싸웠을 때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흘린 노동자들의 피를 저버릴 수 없었다. 지도부는 “우리 모두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처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가두 방송을 진행했다. 도청의 투사들은 “폭력과 탄압으로 우리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정신을 짓밟을 수는 없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5월 26일 윤상원은 전라남도청 홍보실에서 대변인 자격으로 10여 명의 외신기자가 참여한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회견을 가졌다. 윤상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기자들에게 남겼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5월 27일 새벽, 윤상원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뒤, 성명불상자로 상반신이 불탄 채 시신이 공개되었다. 공수부대의 마지막 공격이 있기 전 투쟁 지휘자는 “죽어도 좋다는 사람만 남으시오! 오늘 밤 계엄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끝까지 항거할 것이오. 전멸할지도 모르오.”라고 목메어 외쳤다. 남아있던 200여 명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5월 27일 새벽 4시가 지나면서 계엄군이 쏟아내는 총소리가 광주를 울리기 시작했다. 윤상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여러분! 드디어 전두환 살인집단은 이 시각 현재 우리를 죽이기 위해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야수와도 같이 야음을 틈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도청을 비워줘야 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뭉쳐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런 기록을 남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역사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다수는 바로 공장노동자, 목공, 건설노동자, 구두닦이 등 그간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던 노동자들이었다. 2001년에 조사된 희생자 162명의 직업분포를 보면 노동자가 가장 많은 35명, 학생이 31명, 무직이 23명, 불명 17명, 사무직 13명, 자영업 12명, 운수업 및 운전기사가 12명, 서비스직 11명, 농업 4명, 공무원과 방위병 각 2명이다. 학생 사망자 중에는 대학생보다 초중고생과 재수생이 더 많았다. 폭력 앞에 사회공동체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거만하게 주인 행세하던 정치인,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공돌이, 공순이”로 놀림받던 이들,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광주항쟁은 국가권력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누가 국가권력의 실질적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도 분명히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항쟁 과정에서 집단적 힘을 과감하게 동원했다. 광주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생산하던 장갑차를 내주고, 화순의 광산 노동자들은 다이너마이트를 공급했으며, 나주 섬유 노동자들은 트럭을 타고 경찰서 지서를 털어 무기를 도청으로 실어 날랐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이 가진 힘의 1/100도 쓰지 못했지만, 혁명적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영원한 광주항쟁 광주의 투사들은, 미래를 위해 죽는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바꾸어, 목숨과 맞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역사의 연속성, 노동자 민중의 잠재력을 믿었다. 당장의 패배를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다. 도청사수투쟁이 미래의 승리를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당장의 고통, 당장의 이익을 기준으로 투쟁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노동자 민중의 대의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들은 옳았다. 광주민중항쟁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후세들에게 패배주의와 무력감을 남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광주항쟁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역동성을 보여주었고, 노동자 민중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투쟁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였을 때 일어나는 사기 저하는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들은 역사의 사기 저하를 막았다. 피 흘려 쟁취한 해방된 광주를 포기하지 않고 계엄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기에 대중은 이 패배를 이후 승리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었고 투쟁 의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적 패배는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부활했고, 윤석열의 쿠데타에 맞선 투쟁에서도 부활했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은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있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한계를 보인다. 전체 노동자의 공동이익을 위해, 불평등과 차별, 소외에 짓밟히는 전체 민중의 해방을 위해 제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고 무궁무진하다. 광주항쟁 당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조직적 무기를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수많은 파업과 투쟁으로 성장한 110만 민주노총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의 분열, 심각한 관료직 후퇴, 자본가정당에 대한 정치적 굴종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 상태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결코 잊힐 수 없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노동자들은 수년,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썩어빠진 사회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며, 착취와 억압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자본가들과 정부에 맞선 저항은 쉴 새 없이 펼쳐지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적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향해 더 굳세게, 더 거침없이 전진하자.2025-05-16 | 조회 3,021 -
관세전쟁과 열강투쟁4월 9일, 트럼프 정부는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했다. 미국은 호기롭게 발표한 고율 관세 시행을 유보하며 취약함을 드러냈으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관세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 맥락은 무엇이며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관세전쟁, 흔들리는 제국의 노골적 강제력 행사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가 발표한 ‘상호관세’에 상호적인 것은 그 이름뿐이다. 베트남의 경우를 보자. 베트남의 최혜국 관세율, 즉 베트남이 같은 WTO 회원국들에 부여하는 관세율은 9.4%다. 상호관세가 이름처럼 ‘상호적’이라면, 미국이 베트남에 부과하는 세율도 9.4%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발표한 세율은 무려 46%다. 한국 상호 관세율 25%가 계산된 방식은 어떠한가? 2024년 미국이 한국과의 상품무역에서 기록한 적자(660억 달러)를 미국의 한국 상품 수입액(1,315억 달러)으로 나누면 50.2%가 나온다. 이 50.2%가 미국이 주장하는 공정한 관세율이다. 미국은 한국에 50.2% 관세를 매겨야 하나, ‘관대하게도’ 절반으로 깎아 25%만 매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국은 각국 상호관세율을 해당 국가의 △대미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까지 고려한 잠정관세율에서 할인한 수치라고 설명했으나, 실제 관세율 산정 방식은 ‘엑셀 돌리기’에 불과하며 합리적 근거는 전무하다.1) 1)실제 적용된 산식은 다음과 같다. (해당국과의 무역적자 / 해당국으로부터의 상품수입액) ÷ 2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무역 질서를 만들었다. 2차 대전 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난 1970년대, 이윤율 저하에 직면한 미국 자본은 해외로 진출해 더 값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한편, 각국에 시장 개방을 압박했다. 이어 소련-동구권 붕괴와 중국의 자유무역질서 편입에 따라 자본주의 단일 시장이 형성되었다. 세계화의 전성기, 이제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은 역사 속 이야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오른편에서는 ‘맥도날드가 들어선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2), 왼편에서는 열강이 충돌하는 ‘제국주의’ 시대는 가고, 전 세계를 단일 질서로 포섭하는 ‘제국’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호시절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부상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호주의 확대는 ‘열강투쟁 격화’라는 분명한 경향을 드러냈다. 2)소위 ‘골든 아치’ 이론. 골든 아치는 맥도날드의 ‘M’ 로고다. 미국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어들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다.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에 근거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2014년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를 앞질렀다.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순위 (2025, IMF)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는 1기 당시보다 훨씬 더 확장된 관세전쟁을 촉발했다. 트럼프 1기 관세전쟁 대상은 중국이었다. 트럼프 2기 관세전쟁 대상은 미국의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다. 자신이 만든 자유무역 체제를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내가 본 손해를 보상하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는, 흔들리는 패권국 지위를 노골적 수탈로 만회하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를 발표한 4월 2일을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불렀다. 제국주의 국가가 노골적 수탈을 개시하겠다고 선언한 날의 이름 치고는 매우 뻔뻔하다. 관세는 경제전략이자 군사전략이다 2기 트럼프는 ‘스티븐 미란’이라는 인물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최근 화제인 ‘국제 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자 가이드’, 일명 ‘미란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다. 미란은 미국의 지속적 무역적자는 강한 달러 때문이라고 짚으며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과 연동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수출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비축하고 있기에, 달러 강세는 필연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는 무역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란 보고서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주요 수단으로 제시하며3), 다음의 안보·무역 기준들로 각국 관세율을 산정하자고 한다. (미란 보고서, 23p) 3)관세에 따르는 수입물가 상승의 경우, 무역 상대국의 환율 평가절하가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 해당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미국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수준과 비슷한 관세를 적용하는가? - 외환보유고를 과도하게 축적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이력이 있는가? - 미국 기업이 해당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수준과 유사한가? -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가? - 해당국이 중국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한 후 미국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회피하고 있는가? - 나토 국방예산 분담금을 전액 납부하고 있는가? -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의 국제 분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 제재 대상 국가 또는 기업과의 거래, 혹은 그들에 대한 제재 회피를 방조하는가? -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작전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 미국의 적대 세력(테러리스트, 사이버 범죄자 등)을 자국 내에서 보호하거나 수용하는가? -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반미적인 외교 행보를 하는가? 위 기준들에서 드러나듯 미국의 관세전쟁은 단지 미국 세수를 늘리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이러한 체계는 국가 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체계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란 보고서 23p). 관세는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 자본주의 자체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는 지렛대다. 미국은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으며 ‘당신은 누구 편인가’를 묻는 한편, ‘나의 편이 되고 싶다면, 수탈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 관세전쟁에는 실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마라라고 합의’, 미국의 우산 아래 머물고 싶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관세전쟁을 촉발한 미국은 무역·금융·안보를 통합한 ‘안보구역’ 구축에 나서고 있다. 소위 ‘마라라고 합의’다. 100년 만기 채권 구입4) 등 미국이 제안하는 조치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우산에서 배제하겠다고 압박한다. 각국은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달러-금융 시스템과 안보체제에 편입하는 각국이 부담해야 하는 정당한 대가일 뿐이다. 다음을 보자. 4)미란 보고서는 각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보고서 자체에 100년 만기 채권이 ‘무이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세간은 해당 채권이 무이자일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오늘날의 경제와 1980년대의 경제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총부채는 GDP 대비 120%를 초과하는 반면, 플라자합의 당시에는 약 40% 수준이었다. 이는 19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채권시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 다음과 같은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제안한다: 1. 안보구역은 공공재이며, 그 안에 속한 국가는 미국 국채를 매입해 안보구역에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2. 안보구역은 자본재이며, 단기 국채가 아닌 100년 만기 채권으로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안보구역에는 철조망이 있다. 당신이 단기채권을 장기채권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관세가 당신을 안보구역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미란 보고서, 28p)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전 세계를 위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묘사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그간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특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이 특권 덕분에 미국은 수입대금을 지불할 때 자국 통화를 마음껏 발행하고, 상대 흑자국들은 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해왔다. 즉, 미국은 달러로 세계 각국의 실물가치를 흡수해 온 것이며, 이것이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동학이었다. ‘안보구역 건설에는 돈이 필요하다. 100년 뒤에 돌려줄 테니, 일단 돈을 내놓아라’, 미란 보고서가 제시하는 마라라고 합의는 1971년 달러 금태환 중지, 1985년 플라자합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위기에 대한 패권적 해결책일 뿐이다. 미국은 사적 이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하나, 그 명분은 트럼프의 그린란드·캐나다·파나마운하 편입 압박만큼이나 허약하다.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를 이끄는 헤게모니 국가가 아니라, 그저 보다 강한 일개 패권국으로서 힘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위기는 그만큼 깊고 넓다. 세계 자본주의 균열 심화 4월 9일,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금융시장 발작이다. 금융자산은 한 달 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나, 4월 2일 상호관세 발표 후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이보다 더 중요하게 국채 투매에 따른 국채 가격 폭락과 그에 따르는 국채금리(수익률) 상승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몰려 국채 가격이 상승한다(=국채금리 하락). 그러나 이번에는 미 국채 투매가 벌어졌다. 며칠 사이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3.85%에서 4.5%로 급등했고,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0.54% 급등해 4.92%를 기록했다. 채권자들이 그만큼 많은 국채 물량을 투매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대로, 이는 미국 금융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국채금리 급등은 왜 문제인가? 첫째, 막대한 빚을 진 미국 정부에게 국채금리 급등은 치명적이다. 미국 전체 국가부채는 약 36.2조 달러(약 5경원)에 달하며, 이 중 2025년에 갚아야 할 부채만 9.2조 달러(약 1경 3천조 원)로, 전체 빚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금리 인상기, 미국은 이자 부담을 줄이고자 단기채권 발행을 늘렸고, 이에 만기 1년 이하 부채는 전체 부채의 22%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미국 정부는 더 높은 금리로 새로운 빚을 낼 수밖에 없고, 이는 정부의 부채 부담을 훨씬 키운다. 둘째, 국채금리 급등으로 미국 은행과 기업이 잇따라 파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2023년 3월, 뱅크런에 이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드러내듯, 미국 은행과 기업은 상당한 자산을 국채로 보유한다.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국채 가격은 크게 떨어지기에, 국채금리 급등은 은행과 기업이 보유한 자산평가액 급감을 뜻한다. 멀쩡하던 기업이 갑자기 유동성 위기에 몰려 연쇄적으로 파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채금리는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기에,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각급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4월 2일 이후 나타난 채권자들의 미국채 투매는 중요한 징후다. 미국의 의도는 그대로 관철되지 않으며, 그 후폭풍은 미국 주도 세계체제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중국과 브릭스의 팽창에 날개를 달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응해 대미 관세를 125%로 인상했고,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으며, 브릭스 국가들은 물론 남미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나아가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에도 손짓하고 있다. 균열하는 세계 속에서, 중국은 자유무역을 역설하며 동맹을 강화할 좋은 명분을 얻은 것이다. 당장 2025년 3월 30일 한·중·일 경제통상장관들이 5년 만에 3자 회담을 열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담에서 세 국가는 △공급망 협력 강화 △수출통제에 대한 소통 강화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위한 협력을 논의했다. 4월 9일에는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30개 회원국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규탄했다. 트럼프 관세 발표 이후 5년 만에 열린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 현시점에서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인지, 봉합할 것인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관세전쟁을 촉발한 트럼프와 미국 정부조차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다만 확실한 것은 미국의 패권적 행보가 세계 자본주의의 균열을 심화하고 있다는 것, 각국은 각자의 이익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 양상은 명분과 이념으로 무장한 두 거대 진영 사이의 대결이라기보다, 거대 열강과 지역 패권국들의 합종연횡에 가까울 것이다. 국경이 아니라 계급을 기준으로 단결하자 3월 26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노동자계급 공동체를 황폐화한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고자 나선 트럼프 행정부에 갈채를 보냅니다”(숀 페인 UAW 위원장). UAW는 해당 성명에서 △미국 내 생산 확대 △공장폐쇄와 저임금 국가로의 일자리 이전 금지 △미국산 부품 사용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반동적인 입장이다. 트럼프가 이민자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감행하고, 수십만 연방 공무원 노동자를 해고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UAW와 숀 페인 논리대로라면, 미국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은 트럼프 정부와 세계 자본가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동지이기는커녕,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관세로 산업과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 해체가 이루어질 것인지도 미지수일뿐더러, 일부 산업이 미국으로 회귀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기의 미국 자본을 위한 것일 뿐, 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극소수 노동자가 그 수혜자가 될 수는 있으나, 전체 노동자들은 감소한 생산에 따르는 고용 감소, 수입물가 인상이라는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자본은 관세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것이며, 노동자 민중은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삭감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UAW의 입장은 전 세계 노동자들은 물론 미국 노동자들의 입장 또한 대표하지 못한다. 2025년 4월 5일, 미국 전역의 1,400개 도시에서 약 60만 명이 참여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는 그간 이어져온 연금과 공공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수호, 공공부문 해고반대 시위의 연장선에 있으며, 관세정책에 대한 비판 역시 참가자들의 주요 목소리였다. 4월 5일 시위 사진: Oregon Public Broadcasting 고율 관세는 전 세계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를 더 많이 분할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결과이자, 이를 더욱 강화하는 촉매다. 노동자들이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단결하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착취와 실업의 고통을 타국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노동자 내부의 투쟁뿐이다. 자본가들의 전쟁에 노동자가 앞장서서는 안 된다. 심화하는 보호주의 속에서, 한국 자본은 수출 감소를 만회하고자 노동자들의 고용, 임금, 노동조건을 공격할 것이다. 반도체특별법에서 드러나듯 국가는 자본에는 특혜를,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 연장을 비롯한 착취 강화에 나설 것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구조조정에 맞서는 한편, 세계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관세전쟁 뒤로 실제 전쟁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지금, 노동자의 국제연대는 더욱 절실하다.2025-04-19 | 조회 4,414 -
조선업 자본을 위한 비자 탓에 미등록으로 내몰린 이주노동자4월 15일 오후, HD현대중공업 용접공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울산이주민센터에 모였다. 이날 울산이주민센터에서는 조선업 기능인력비자E-7-3(조선업 등 일반기능인력)를 발급받아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가 1년 또는 1년 3개월 만에 쫓겨난 이주노동자 9명과 울산, 대구, 부산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모였고, 많은 언론사 취재진의 관심 속에 ‘미등록으로 내몰리는 울산 조선소 이주노동자 어디로 가야 하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일하러 왔는데 1년 만에 쫓아내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주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 ‘월급 4백만 원, 재계약이 보장된다’는 송출업체의 약속을 믿고 각자의 나라에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각국으로 파견 나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교육받고 합격해, 현대중공업에서 2년간 일한다는 계약서를 쓰고서 한국에 왔다. 막상 현대중공업 직영 계약직으로 입사해서는 새로 1년 계약서를 쓰고 일해야 했다. 현대중공업 입사까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최소 2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연말께부터 1년이 지난 이주노동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3개월~6개월 등 쪼개기 계약 후 계약만료를 통보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를 내쫓고 있다. 숫자는 이미 백 명이 훨씬 넘는 걸로 추정된다. E-7-3비자의 체류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인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현대중공업은 최저임금으로 일할 정주노동자가 부족하다며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일하게 해놓고 1년 만에 내쫓고 있다. 3월 31일, 1년 3개월 만에 현대중공업에서 쫓겨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는 “일하러 왔는데 1년 만에 쫓아내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호소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현중 자본으로부터 어떠한 정보나 안내도 받지 못한 채 ‘헬스 이슈’(건강 문제)라고 인쇄된 사직서에 서명하고,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만 받은 채 거리로 쫓겨났다. 다른 조선소에 이력서도 낼 수 없는 구조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는 동안 ‘최소 1인당 국민총소득(GNI) 80%’ 임금을 약속받았지만, 알 수 없는 공제액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며 한국행 대출금을 갚고 앞으로도 꾸준히 일할 계획과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현중 자본은 이들을 무참히 내쫓았다. 비자 제도의 문제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폐업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다른 회사로 취업도 할 수 없다. 조선소 취업 전까지 다른 직종에서 일하지도 못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냐고 하겠지만, 법과 법무부 내부지침이 그렇기 때문이다. 2023년, 정부가 조선업 자본가들의 요청대로 저임금 숙련 이주노동자들을 손쉽게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준 E-7-3비자는 조선업종 노동만 허용한다. 이직 시에는 D-10구직 비자(최대 6개월)를 먼저 발급받아야 하고, 각종 서류는 물론 조선소 자본가 단체인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고용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애초에 정부가 자본가들의 민원대로 E-7-3비자를 신설하면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송출-송입, 채용에 관한 사항을 공공기관인 대한무역투자공사(코트라) 대신 민간업체(현지 송출업체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이직에 필요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고용추천서’는 조선소 협력업체나 부품사 사장조차 발급할 엄두를 내지 못하니, 구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없다. 추천서 없이 일자리를 찾는 이주노동자는 이력서조차 낼 수 없다. 그럼 이주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장은 “현 사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선업 이주노동자 인력 도입 과정 자체가 기업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예전 문제가 많던 중소기업 연수생제도처럼 20년이 지나 역행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친구집에서 자고 라면을 먹으며 버틴다 현대중공업은 E-7-3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아 이들은 회사에서 쫓겨난 후 실업급여도 아예 받지 못한다. 또한 법무부의 E-7의 구직비자(D-10)는 생계활동을 금지해 아르바이트로 돈 한 푼 벌 수가 없다. 1년여 동안 최저임금 수준으로 대출금 갚고 가족 생활비를 보내며 일했으니 모아둔 돈이 있을 리가 없는데, 한국의 법과 제도는 아무 일도 못 하게 묶어놨다. “지금 돈이 없어서 먹는 게 힘들고, 다른 친구 방에서 같이 자고 도움을 받는다. 라면 먹고 살고 있다. 돈이 없어서 힘든 현실이다. 스리랑카는 힘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문화가 있지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지금 대출도 많이 받고 왔는데, 일을 구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집중단속하고 있어 무섭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집에도 갈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서 자살하고 싶은 심경이다.” 사람이 일하러 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의 인생은 오로지 자본의 이해만 충족한 이주노동자 차별의 법과 제도로 인해 180도 뒤바뀌었다. 이에 대해 긴급 집담회를 주최한 울산이주민센터 김현주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계약 만료인 분들에 대한 회사 입장은 ‘당신들은 가세요’ 다. 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이분들을 미등록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모는 거다. 그런데 정부는 미등록 노동자를 또 단속한다고 한다.” 이미 4월 14일부터 또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위한 5개 부처 합동 단속이 시작되었다. 정부와 자본은 ‘이대로 살 수 없는’ 조선소 현장을 만들어놓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빚더미 안고 순순히 돌아갈래? 아니면 미등록으로 일하다 험하게 붙잡혀 추방당할래?’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번 현대중공업 직영계약직 이주노동자 해고 사태는, 정부와 자본이 이주노동자를 함부로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 취급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준다. 더 값싸게 쓰고 버리려는 또 다른 비자 정부는 자본의 소원대로 E-7-3비자의 임금요건을 매년 완화해 올해는 최저임금과 같으며, 자본은 현대중공업처럼 수십만 원을 임금에서 공제해도 제재받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잔업이나 특근이 없는 달 약 20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고되게 일하다 쫓겨날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 분열 조장과 하향평준화에 열 올리며 더 값싸고 손쉽게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지역 광역형 비자, 울산형 고용허가제를 새로 만들려 한다. 김현주 센터장은 울산시가 새로 도입하려는 ‘지역형 광역비자 시범사업’(E-7-3, 510명)과 ‘울산형 고용허가제’(조선 5개 직종 E-9, 280명)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 자본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E-7-3제도의 희생양”으로 내모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울산시가 새롭게 추진하는 비자 규모가 현대중공업 직영 계약직으로 일하는 E-7-3 이주노동자 800명과 같다며 “새로운 비자 도입이 아니라 현재 여기 와 있는 이분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오세일 부지회장은 정주노동자 고용보장을 원청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고 사용한 현대중공업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윤태현 사무장은 새로운 비자 추진 등이 원청에서 실질적으로 직영 계약직을 없애 아웃소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일자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나요? D-10비자 없는 사람은 빨리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D-10비자 받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와 손잡자 취재진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내용을 아느냐고 물었고, 이주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은 커뮤니티를 금지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면 집에 보내 버린다”고 증언했다.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에 필요한 생활, 업무,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일상적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아프다고 말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참다가, 일요일이 되어서야 울산이주민센터 진료소를 찾기도 한다. 이주노동자에게만 식비를 받으니, 돈을 아끼려 구내식당에 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현장에서 일하던 직영 이주노동자들이 이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기, 격화하는 경제위기에 따라 더 악랄해지는 자본의 착취는 이주노동자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정주노동자가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주노동자를 탓하거나,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를 ‘우리와 다른 존재’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하며 분열해서는 안 된다. 단결투쟁으로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용접해야 한다. 그러할 때 조선소 전체 노동자 착취도를 높이며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를 미등록으로 내모는 야만적 해고를 당장 멈춰라! E-7-3 이주노동자의 적정기간 고용을 보장하라! 계약만료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과 재취업을 보장하라! 사업장 변경·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저임금과 차별 대우를 중단하라! 빚더미를 안고 타국에서 해고된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보통을 용기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증언하며 다른 이주노동자들 맨 앞에 서서 연대를 호소했다. 라면을 먹으며 버티지만, 노동자로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한 동지의 손을 잡자. 뜻있는 울산지역 노동자 활동가들이 구체적 연대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자.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일하며 살아가는 전국 노동자 민중이 단결 투쟁하자.2025-04-17 | 조회 4,4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