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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적실성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1871년 파리 코뮌이 보여주었듯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이란 부르주아지가 운용하던 관료적·군사적 국가 기구를 단순히 넘겨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 계급은 후퇴하고 사회 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부재한 탓에, 좌파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레닌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상 낯선 것이 되어 버렸다. 일당 체제, 그리고 어디에나 스며 있는 관료제의 지배는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에 맞서 옹호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아래 글은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사상 연구소(IPS)에서 곧 출간될 V. I. 레닌의 『국가와 혁명』(The State and Revolution) 스페인어판 신간에 실린 크리스티안 카스티요의 서문이다. 『국가와 혁명』은 레닌이 1917년 8~9월에 쓴 글이다. 이때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여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수립하기에 이른 혁명적 위기의 직전이었다. 역사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이 글은 미완으로 남았다. 레닌은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17년 2월부터 8월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서 끝내 쓰지 못했다. 은신 중이던 레닌은 이 결정적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개념을 명료하게 세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에 핵심 쟁점이었고, 카를 카우츠키 같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이론가들은 이 문제를 온갖 혼란과 왜곡으로 오염시켜 놓았다. 이 지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회 계급과 함께 국가도 “소멸”(extinguished)할 것이며 그것이 어떤 자의적 결정에 따라 “폐지”(abolished)될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는, “소멸”하는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가 아니라 혁명 이후 등장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 계급 권력의 도래가 곧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더 정확하게는 그것의 근본 기둥인 관료제와 군사력의 파괴를 함의한다고 보았다는 점도 그들은 숨겼다. 따라서 『국가와 혁명』은 당대 독일 사회민주당 내부의 지배적 견해(당시 러시아 멘셰비키의 견해와 견줄 만한)를 교정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장을 면밀히 재구성해서 담고 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이 보여주었듯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이란 부르주아지가 운용하던 관료적·군사적 국가 기구를 단순히 넘겨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국가와 혁명』은 보여 준다. 그것은 국가 기구를 완전히 파괴한 다음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기구로 대체하도록 요구한다. 말하자면 소수의 자본 소유자들이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지배할 수 있도록 구조가 설계된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 계급이 그저 “점유”하는(occupying)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의 지배에 적합한 다른 종류의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 파리 코뮌은 상비군과 경찰을 무장한 대중으로 대체했다. 코뮌 구성원들은 그 어떤 정치 공직자도 숙련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없으며 공직자는 선거권자들에 의해 언제든 소환될 수 있음을 확고히 했다. 국가 행정부의 집행 기능을 선출된 대표들이 직접 수행함으로써,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외부에서 실제 권력을 행사하는 부르주아 의회들의 “순전한 사기극”과 달리 코뮌은 “일하는 단체”가 되고자 했다. 계급 사회를 종식시키는 과정 속에서 노동자 국가는 정치·경제 업무를 관리하는 일에 점차 사회 전체를 참여시킴으로써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폐지”하게 될 것이었다. 레닌의 이 책이 어째서 지금도 유효한가?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 계급은 후퇴하고 사회 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부재한 탓에, 좌파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레닌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상 낯선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관료적 전체주의의 중요한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후자는 레닌이 열망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에 관료적 전체주의라는 어둠이 내려앉은 데는 몇 가지 핵심 요인이 작용했다. 10월 혁명은 고립되었고, 내전 중에 혁명 간부들과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사망했으며, 러시아 사회가 전반적으로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현실은 혁명 이후 탄생한 새로운 국가가 관료화하도록 추동했다. 일당 체제, 그리고 어디에나 스며 있는 관료제의 지배는 이후 발생한 20세기의 혁명들에 “본보기”가 되었으나, 이는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에 맞서 옹호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오늘날 정치 지형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변호하는 두 부문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첫 번째 부문은 부르주아 국가의 기능을 치안과 통제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기업들이 더 전제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적 권리를 폐지하려 한다. 동시에 그들은 2008년 위기에서 보았듯이 거대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를 대규모 부채로 몰아넣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부문은 국가가 계급 화해 기관이라는 국가 숭배(fetishism)를 고수하면서 그것이 지배 장치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숨긴다. 승리한 사회 혁명 없이 수십 년이 흘러온 지금,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진보적 변화든 국가라는 틀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갈망하는 변화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만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겨지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로 신비화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이러하다.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중 운동(movilizations), 항거(Revolts), 혁명 운동들이 전면적 혁명 과정으로 전환되면 봉기한 노동자 대중의 권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기구들이 틀림없이 발전해 나올 것이다. 파리 코뮌과 러시아의 소비에트는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탄압에 맞서 자기방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여러 표현 형태를 보여 주었다. 러시아의 경우, 소비에트는 투쟁하는 노동자·농민 공동전선의 가장 위대한 표현으로 출발했고, 혁명 승리 이후에는 새로운 국가 권력의 토대로 변모했다. 이는 파리 코뮌의 교훈과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제시한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모든 혁명다운 혁명은 이 같은 기구들의 출현을 수반할 것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분명히 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쟁점은, 가장 개방적인 자본주의 민주주의보다도 “천 배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새 국가의 물질적·경제적 토대였다. 레닌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실로 “모두”가 국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 가운데 몇몇은 다음과 같다: 가장 선진적인 여러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미 달성된 보편적 문해력, 그리고 우편·철도·대공장·대상업·은행업 등의 거대하고 복합적이며 사회화된 장치에 의한 수백만 노동자들의 “훈련과 규율”, 등등. 이러한 경제적 전제 위에서 “자본가들과 관료들을 타도한 다음, 즉각, 하룻밤 사이에, 생산과 분배의 통제, 노동과 생산물의 계산 업무에서 그들을 무장한 노동자들, 무장한 인민 전체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 뒤, 레닌은 이렇게 덧붙인다. 계산과 통제—그것이야말로 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의 “원활한 작동”, 올바른 기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그들이 평등하게 일하고, 자기 몫의 일을 하며,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계산과 통제는 자본주의에 의해 극도로 단순화되어, 지극히 단순한 작업으로, 즉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감독, 기록, 사칙 연산, 적절한 영수증 발급으로 축소되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과학 기술 일반, 특히 의사소통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한 21세기의 우리는 레닌이 언급한 것보다 훨씬 우월한 전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 휴대전화, 소셜 네트워크는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어떤 경제적·정치적 결정을 내릴지 토론하도록 돕는 수단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경제 자원을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노동일을 단축하여 과학적·문화적 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비합리성을 이 같은 민주주의 안에서 오래지 않아 억제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사회에서는 다세대 주택과 빈민가에 빽빽하게 몰려 사는 수백만 명을 위한 주택 대신에 아무도 살지 않을 집을 짓자는 계획 따위는 제안할 수 없을 것이다. 수억 명이 굶주리는데 한 줌의 인간이 수십 년 쓰고도 남을 부를 축적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라면, 어떤 사람들은 하루 10시간, 12시간 일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 복지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달을 것이며, 그 대신 더 분명한 계획으로 모든 가용한 일을 모든 가용한 노동자에게 나눌 것이다. 누구도 실업 상태로 남지 않고, 누구도 과로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배를 불리기 위해 지구의 미래의 삶을 저당 잡아 환경을 파괴한다는 발상은 한심하게 들릴 것이다. 물론 이 사회는 아직 공산주의는 아니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에서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는 분배 원칙으로, 다시 말해 “필연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옮겨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적 착취가 낳은 모든 치욕과 추악한 것들을 사회에서 철저히 씻어내고 더 전진하기 위한 필수 단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 또는 적어도 압도적 다수가 스스로 국가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이 일을 자기 수중에 쥐고, 보잘것없는 소수 자본가와 자본주의적 악습을 보존하려는 지주 신사층과 자본주의에 의해 철저히 부패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조직하는 그 순간부터, 어떤 형태의 정부든 그 필요성은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더 완전할수록, 그것이 불필요해지는 순간은 더 가까워진다.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지고 “더 이상 엄밀한 의미의 국가가 아닌” 그 “국가”가 더 민주적일수록, 모든 형태의 국가는 더 빠르게 시들어간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새로운 세대는 이 체제가 자신들에게 점점 더 어두운 미래만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 체제에 맞서서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적·혁명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9년 10월 10일, 일간좌파에 스페인어로 처음 게재됨. 2019년 11월 4일, Left Voice에 게재된 영문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Christian Castillo2026-02-09 | 조회 11,027 -
“스리랑카·베트남 처녀 수입하자”는 막말, 진도군수만의 문제는 아니다!김희수 진도군수 김희수 진도군수가 생방송 도중 농촌 인구 소멸에 관해 “외국 처녀를 수입하자”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방송 3사에 생중계된 2월 4일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행정통합 찾아가는 타운홀미팅’에서 나왔다. “광주·전남이 통합할 때 인구 소멸에 대한 것을 법제화해서, 정 뭣하면 스리랑카나 베트남이나 그쪽 젊은 처녀들 좀 수입해갖고 농촌 총각 장가도 보내고, 이런 특별 대책을 해야 한다. 사람도 없는데 산업만 밤낮 살리면 그게 제대로 되겠냐”라는 발언이었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혼인과 출산 대행 상품인가!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 여성을 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존중하지 않고, 혼인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 발언이다. 그것도 사람을 사고 파는, '수입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한 노골적인 인권 침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진도군수의 말은 ‘처녀’라는 표현이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 ‘남자와 성적 관계가 한 번도 없는 여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사용 맥락 역시 여성을 가부장제적 인식에 기반해 젠더차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또 ‘수입하자’는 발언은 인간을 상품과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비인간화다. 이는 단순히 ‘부적절한 표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민중, 특히 평균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하위의 존재로 규정하는 위계의식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공적 자리에서 내뱉은 사건이다.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민의 인권과 존엄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 발언은 여성을 노동력 재생산,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규정하며, 특정 국적의 여성은 더 쉽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재생산한다. 계급구조의 폭력성을 바탕으로 성차별·인종차별을 뒤섞은 억압을 정당화하는 발언이다. 가뜩이나 도시와 농촌의 사회적 격차로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다 다양한 공적 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에서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반동적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이주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 경제적 착취를 구조적으로 은폐한다.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열악한 노동조건, 생계와 송금 등 경제적 압박 속에서 폭력과 차별을 감내하는 결혼 이주민 여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차별과 혐오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군수 하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 그런데 이 발언이 진도군수 공인 한 사람의 문제일까?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상반기가 되어서야 소위 “국제결혼 지원 조례”에 근거해 세금으로 ‘농촌 총각을 이주 여성에게 장가보내’는 결혼 비용 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그동안 이는 농촌 인구감소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외국 여성을 사온다는 ‘매매혼’이자, 이주여성을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취급하는 인권침해 정책이라는 여러 비판에도 거의 10년간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이주여성 정착지원금’ 등으로 제도를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인구대책 수단이자 상품, 농촌 총각 매매혼의 도구로 생각하고 동시에 농촌 비혼 남성을 이주여성 매입자(구매자)로 규정하는 관점은 한국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기인한다. 노동자 민중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도구로 여기는 체제, 가부장적 젠더차별, 성별분업 구조,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유지되는 자본주의적 농촌 구조, 그리고 이주민을 ‘노동력’이나 ‘인구 대책’ 수단으로 활용해 온 국가의 반동적 이주정책이 결합한 결과다. 다시 말해 여성,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처지인 아시아 이주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이번 발언을 가능하게 한 토대다. 젠더차별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주 여성은 ‘수입’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다. 여성과 이주민을 억압하는 구조를 철폐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평등도 존재할 수 없다. 여성 노동자가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가 아니듯, 이주여성 노동자는 농촌 인구감소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적과 인종, 젠더,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노동자이자 존엄한 삶과 노동을 영위해야 할 주체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의로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확대재생산하는 인종차별에 맞서자.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지역 사회의 위기를 이주여성에게 떠안기고 이주여성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을 중단하라!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사고하는 관점이나 이주여성을 결혼과 출산의 도구로 사고하는 관점을 다르지 않다. 이미 한국 인구 20명 중 1명이 이주민이다. 국내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은 다문화 가정*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자본과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한다. 진도군수의 발언을 비판한다면, 국적과 젠더를 활용한 차별에 맞서 노동자 단결을 확대하자. 그것이 노동자 내부를 가르는 저들에 맞서는 우리의 전략이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지난해 다문화 혼인은 2만 1450건으로 1년 전보다 1019건(5.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1월 6일 발표)2026-02-05 | 조회 10,449 -
[기고] 트럼프 정부는 무엇을 수탈하는가? - 한미 관세협상과 노동자 국제주의사진: 뉴스1 트럼프가 이재명에게 소위 ‘백악관 황금열쇠’를 보냈다고 한다. 각 언론에서 앞다투어 지난 이재명 대통령의 '금관' 선물에 대한 보답과 신뢰의 의미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양 정상 간 최고의 협력관계가 형성됐"다는 증거라 밝히기도 했다. 이 열쇠를 받은 다른 사람들을 보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태반이 트럼프 정부의 제국주의 행보에 앞장서 가담해 온 인물들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따르면 ‘황금열쇠는 오직 다섯 개만 제작됐다’고 하나, 열쇠는 황금도 아니고 5개만 제작된 것도 아니다. 자본가 정부 사이의 우애가 노동자 민중에게도 이롭다는 번지르르한 선전의 허구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한미 정부가 양국 자본가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협상을 마친 지금, 노동자 민중은 국제주의적 단결로 양국 정부와 자본가계급에 맞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한-미 자본주의 체제의 약탈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국제적 단결을 추동할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지난 11월 8일 ‘2025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전국노동자대회는 ‘열사 정신계승’이라는 이름답게, 열사의 외침을 되새기는 자리, 자본의 탄압과 착취에 짓밟히면서도 싸우는 우리 곁 수많은 ‘전태일’을 호명하는 자리여야 했다. 그러나 전국노동자대회에는 ‘트럼프의 국가 수탈 저지’라는 공허한 구호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부르고 있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금을 살펴본다. 국가의 이익을 노동자 민중의 이익인 양 여기는 국가주의가 운동사회를 휩쓸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이 결성되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학생사회에서도 ‘트럼프의 경제 수탈을 막아야 한다’는 대자보가 사방에 붙고, 관련한 서명운동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 정세를 ‘국가 수탈’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옳은 진단이 아니다. 트럼프의 국가 수탈을 저지해야 한다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는, 트럼프 정부가 수탈하는 대상을 모호하게 만들 뿐 아니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수탈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즉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국익’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인가? 트럼프 행정부의 수탈은 한-미 자본이 양국 노동자 민중을 상대로 저지르는 행위이다. 따라서 트럼프를 저지할 힘 역시 각국 정부가 아닌, 한국과 미국, 나아가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투쟁에 있다. 물론, 미국의 약탈적 행위는 실존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폭력적 재편에 나섰다. 트럼프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일방적 관세 부과를 경고하며, 관세를 인하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요구했다. 한미 관세협상 역시 마찬가지다. 협상의 주요 골자는 상호 관세율을 15%로 유지하는 대신, 국내 주요 자본의 대미 투자를 확대해 결과적으로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익’에 대한 약탈이 아닌, 노동자 민중에 대한 약탈이다. 트럼프의 ‘수탈’의 짐은, 한국 자본가계급이 아닌, 노동자 민중이 진다. 한국 정부는 관세협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사회복지 예산 축소와 공공부문 민영화로 해소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 역시 미국 생산시설 증축에 따라 국내 일자리를 축소, 구조조정할 것이다. 결국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 자본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청년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청년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 중 하나가 일자리 문제다. 한국 자본이 대미 투자가 아니라 국내 투자를 확대한다면 청년들의 삶이 나아질까?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현실에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청년들이 사라질까? 트럼프 정부 집권 이전에도 청년들의 삶은 악화 일변도를 걷고 있었다. 국내 투자가 확대되면 노동자계급에게도 그 열매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자본가계급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아 이 나라가 비정규직 천국이 되었는가? 자본은 축적한 이윤을 노동자에게 돌려준 적이 없다.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계급투쟁, 국가재정과 기업 이윤을 통제하기 위한 계급투쟁일 뿐, ‘국내에 투자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또한, 미국 노동자 민중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트럼프 정부의 미국 투자 유도 목적은 미국의 전쟁수행 능력과 직결되는 제조업 기반 확대일 뿐, 미국 노동자 민중의 복리가 아니다. 관세정책의 결과 미국 가계부담은 2025년 2월부터 11월까지 1,200달러나 늘었다. 2025년 11월 미국 실업률은 코로나 시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동자 민중은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트럼프 정부 지지율은 급락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조란 맘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여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10월 18일 700만 명이 참여한 NO KINGS 시위 사진: getty images 결국 노동자 민중이 겪을 수탈을 ‘국가’, 혹은 ‘국익’ 수탈로 둔갑시키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한미 자본의 결탁을 교묘하게 가린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국가주의가 아닌, 노동자 국제주의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뒷배로 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시대, 이주노동자 구금과 강제 단속이 난무하는 시대, 노동자 국제주의는 그저 이상적 선언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해방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공개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재벌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자의 생존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국가의 이익은 국민을 향한다는 점에서 이번 한미 협상은 원천 무효’라며 국가의 이익과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동일시했다. 심지어 노동자대회 석상에서 특정 발언자는 "코쟁이", "오랑캐" 등 혐오를 담은 단어를 대거 사용했다. 설령 이 발언이 트럼프나, 미국 자본가를 겨냥한 발언이었다고 한들, 외모와 신체 등에 대한 혐오적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발언을 듣고 모욕감을 느낀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코쟁이’라고 폄하된 외국인과 이주노동자였다. 어찌하여 이러한 발언이 민주노총 차원에서 자정되지 않았을까? 왜 집회가 끝나고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노총 사과문은 게재되지 않았을까? 해당 발언을 둘러싼 경과는 건설현장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조장 등,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단결에 눈감는 노동조합 운동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국익을 강조하는 국가주의, ‘국민’이라는 경계 바깥의 이들을 배제하는 민족주의가 ‘비국민’, 즉 이주민에 대한 배제로 귀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민족주의 선전은 미국 노동자 민중과 단결해 한미 정부와 자본가계급에 맞설 가능성에 눈감으며, 나아가 차단한다. 스물세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며, 인간 해방의 불꽃으로 스러지며 싸웠다. 지금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누구의 곁에 있을까. 정부의 과잉 단속으로 ‘숨을 쉴 수 없다’며 공포에 질린 채 추락사한 이주노동자 고(故) 뚜안의 곁, 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령으로 다시 교섭창구 바깥으로 내몰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곁, 노동조합조차 만들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의 곁이 아닐까. "오직 국익만이 영원하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발화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수십, 수백 명의 '뚜안'을, 한국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입장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심화하는 착취와 수탈에 맞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 손을 잡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단호히 거부하고, 함께 어깨 걸고 투쟁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삶은 변화할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노동자 국제주의로 단결하자!2025-12-31 | 조회 7,191 -
끝도 없는 쿠팡의 범죄경영, 김범석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쿠팡을 국유화하라사진: 연합뉴스 2025년 11월 말, 연 매출 40조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에서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배송지, 주문기록 등 고객정보 3,370만 건이 유출되었으나 쿠팡은 몇 달이 지나도록 유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빗발치는 분노에도, 쿠팡 이사회 의장 김범석은 ‘전 세계 170여 국가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비즈니스 일정 때문에 청문회 출석이 어렵다’며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되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보다. 이번만이 아니다. 김범석은 2015년 ‘농구하다 다쳤다’며 국회 출석을 거부한 이래 단 한 번도 국회에 출석한 적이 없다. 그토록 많은 사건·사고와 범죄에도 김범석은 미국 국적을 방패로 법적 책임을 피해 왔고, ‘쿠팡은 미국 상장기업’이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노동자 사망, 물류센터 화재, 노조파괴 공작,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 등 숱한 문제에 사과는커녕 직접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범죄집단 쿠팡의 추악한 실체 개인정보 유출은 시작이었을 뿐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쿠팡 내부 문건과 메신저 자료에 따르면, 김범석 의장은 고 장덕준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사고에 “시간제 노동자가 왜 일을 열심히 했겠냐”,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직접 지시했고, 관련 CCTV 8대를 본사로 옮기는 등 조직적 은폐공작을 벌였다. 쿠팡이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까지 만들어 체계적으로 사고를 은폐한 정황도 확인됐다. 대외비 매뉴얼은 중대재해 발생 시 △“가족 구성원 중 우호적 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CCTV, 블랙박스 등 영상물 공유를 금지하며 △장례식장에 대응팀을 보내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언론과 노조 동향을 파악하며 △고용노동부 작업중지 명령을 방지하는 등 대응지침을 상세히 담고 있었다. 실제로 쿠팡은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고 정슬기 노동자 유가족에 대해, 또한 2024년 7월 뇌출혈로 숨진 새벽배송 노동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하며 산재신청 포기를 유도했다. 내부고발에 따르면 쿠팡은 기자들에게 유족 연락처를 제공하며 기사화를 막는 데 유족을 동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쿠팡의 구체적 노조탄압 전략 역시 드러났다. 언론에 따르면, 쿠팡이 2015년 작성한 극비 내부보고서 ‘헤르메스(Hermes)’에는 ‘쿠팡맨들의 노조 결성 가능성이 높아지고, 사업 확대로 CEO가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커진다’는 분석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노조 결성 인원을 최소화’하고 ‘CEO가 책임질 사업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대책으로 회사 분할을 제시했다. 배송부문을 쪼개 노조 결성을 봉쇄하고, 김범석의 법적 책임범위를 축소해 형사처벌을 피하자는 계획이다. 이후 실제로 쿠팡은 물류배송 부문을 별도 자회사로 분할해 운영했다. 2024년 초 폭로된 쿠팡 블랙리스트 사건, 즉 ‘PNG 리스트’(Persona Non Grata, 기피인물)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 풀필먼트서비스가 작성한 이 블랙리스트에는 퇴직자 및 노동운동가 등 16,450명 신상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다. 밝혀진 쿠팡 노동자의 죽음만 2020년 이후 29건이다. 올해만 물류센터 노동자 4명, 택배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노동자들이 그토록 죽어나가도, 쿠팡은 재발방지 조치는커녕 막대한 금액으로 정관계 인사들을 줄줄이 영입하고 기밀 매뉴얼까지 제작하며 은폐와 책임회피에 골몰해왔다. 심지어 노동자가 사망하자 계약당사자를 ‘쿠팡’에서 ‘쿠팡 풀필먼트서비스’로 변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쯤이면, 쿠팡은 과장을 보탤 필요도 없이 사회 위에 군림하는 조직적 범죄집단이다. 쿠팡, 국가권력을 주무르는 거대자본 하늘을 찌르는 쿠팡의 오만함에는 이유가 있다. 단지 정보유출 사고 이후에도 대중이 쿠팡을 계속 이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쿠팡은 대통령실 행정관, 국회의원 보좌관, 경찰,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주요 언론사 인사를 대거 영입해 ‘사회공헌팀’이라는 이름의 100명 규모 비밀 대관업무팀을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에 따르면 쿠팡이 운영하는 대관, 곧 로비 조직 규모는 동종업계보다 10배나 많다.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2025년 9월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쿠팡 대표이사와 만났고 70여만 원에 달하는 식사비 역시 쿠팡이 계산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는 물류센터 노동자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쿠팡과 쿠팡이츠 수수료 과다, 납치광고 등 문제로 다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쿠팡 증인 채택이 검토되던 시기였다. 또한 쿠팡 퇴직금 수사 불기소 외압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였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와 쿠팡 대표이사의 면담에서 드러나듯, 쿠팡이 공들여 대거 영입한 정관계, 법조계 인사들이 김범석과 쿠팡의 충실한 방패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방위적 로비가 한국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쿠팡은 미국에서 트럼프 최측근 인사를 비롯해 총 23명을 로비스트로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뉴욕증시에 상장한 2021년부터 최근까지 5년간 1,075만 달러를 로비에 사용했다. 로비 대상은 연방 상·하원뿐 아니라 미 상무부, 국무부, 농무부, 재무부, 무역대표부(USTR),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광범위했다. 5년간 1,075만 달러가 작아 보일 수 있으나, 쿠팡은 매년 로비비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쿠팡보다 훨씬 큰 한국 대자본과 비교해도 쿠팡의 로비 확대 추이는 명확하다. 2024년 기준 주요 자본이 미국에서 지출한 로비비는 삼성 862만 달러, SK 708만 달러, 한화 605만 달러, 현대차 478만 달러, 그다음이 쿠팡으로 331만 달러다. 12월 18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FTA공동위원회’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회의 취소 배경으로 국회가 추진 중인 디지털 규제법안에 더해, 최근 진행되는 쿠팡 대상 조사와 압박이 꼽힌다. 이렇듯 한미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쿠팡과 김범석은, 국회청문회에 쿠팡 한국법인 대표이사랍시고 ‘해롤드 로저스’라는 월급사장을 내보냈고, 그는 동문서답을 거듭하며 국회를 조롱했다. 쿠팡 국회청문회 출석 항의행동 사진: 쿠팡노동자의건강한노동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 범죄자본 쿠팡을 노동자와 사회의 통제 아래 놓기 위한 싸움에 나서자 최근 쿠팡 사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내듯, 대자본은 착취와 수탈로 축적한 이윤을 통해 권력을 사들이며 사회 위에 군림한다. 쿠팡이 벌여온 범죄경영을 단죄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당면 조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쿠팡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연대투쟁 확대와 쿠팡 모든 현장에 굳건히 뿌리박은 노동조합의 건설이다. 모든 쿠팡 노동현장에 노동조합을 굳건히 세우고, 쿠팡이 노조파괴 공작과 함께 해태해 온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연대를 확대하자. △물류센터 △쿠팡친구 △쿠팡이츠 △쿠팡퀵플렉스 등 모든 쿠팡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 적용, 노동조합 결성권 등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싸움을 확대하자. 이와 함께 ‘헤르메스’ 문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은 쿠팡의 노조파괴 행위, 여전히 지속되는 단체협약 체결 해태와 노동조합 고사 유도 행위 등을 엄벌해야 한다. 둘째, 쿠팡의 주요 경영행위에 대한 노동조합과 사회의 통제다. 쿠팡이 만든 중대재해 은폐 매뉴얼이 드러내듯 쿠팡은 산업재해 피해자들과 산재사망 유족에게 ‘언론과 노조 접촉 시 민형사상’ 책임을 언급하며 재해를 숨겨왔고, CCTV를 비롯한 관련 정보까지 ‘영업비밀’이라는 명분으로 숨겨왔다. 무수한 배달노동자를 죽고 다치게 한 쿠팡의 배차 알고리즘 역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다. 이렇듯 대자본은 노동자의 생사에 관련된 정보마저도 철저히 숨기며 피 묻은 이윤을 축적한다. 쿠팡과 같은 범죄경영의 재발을 막는 방법은 쿠팡의 주요 경영정보를 노동자 민중 앞에 공개하고, 대중적 감시 아래 놓는 것이다. 노동권 보호, 산업재해 방지, 개인정보 관리 등 실태를 노동자 민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 대자본 통제의 첫걸음이다. 셋째, 노조파괴와 산재은폐 주범 김범석 의장을 비롯한 쿠팡 주요 경영진과 쿠팡 로비 관련자들의 구속처벌이다. 김범석이 주도한 범죄경영은 물론, 국가권력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벌어진 쿠팡의 로비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징벌해야 한다. 우선 민주당 원내대표 김병기를 비롯해 쿠팡과 접촉한 인사들을 철저히 조사해 쿠팡과 나눈 밀담을 모조리 공개하고, 노동자 사망과 노조파괴, 개인정보 유출, 불법 로비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넷째, 이런 투쟁을 통해 결국 쟁취해야 할 목표는 김범석을 비롯한 범죄자본가들의 경영권 박탈과 기업의 국유화다. 자본가들이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국가권력의 비호 속에 벌금 몇 푼 내고 계속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현실 자체가 자본가들의 범죄경영을 부추긴다. 김범석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쿠팡을 국유화해 노동자 민중이 운영한다면, 쿠팡은 사회를 수탈하는 자본가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이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쿠팡의 범죄경영은 몇몇 자본가의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 결과다. 모든 쿠팡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건설해 쿠팡 자본에 맞설 힘을 결집하고, 노동·시민·사회단체의 광범한 연대로 쿠팡이 은폐한 숱한 범죄를, 쿠팡이 영업비밀이라는 방패로 숨긴 진실을 대중 앞에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쌓인 힘으로 범죄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쿠팡을 국유화해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두는 것, 바로 그것이 자본의 범죄를 뿌리 뽑는 유일한 방법이다. 쿠팡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쿠팡을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한 싸움을 확대하자. 사진: 쿠팡노동자의건강한노동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2025-12-27 | 조회 6,939 -
[기고] 2025 정치캠프 <약탈과 전쟁·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 세션 참여후기[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2025 정치캠프 <위기·전쟁·혁명> 2일차 전체세션 <약탈과 전쟁·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 참여 후기이다. 지난 11월 28일~30일에 열린 2025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치캠프에 참가했다. 작년에도 신청은 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고, 올해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참여했다.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지의 추천으로 정치캠프를 알게 되었으며, 현재 전진을 후원하고 있다. 필자는 대전에서 교육공무직본부 활동을 했고, 지금은 팔레스타인긴급행동 대전모임 활동가로서 팔레스타인 연대, 무기산업 감시, 국제연대 활동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동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모임을 운영하며 무기박람회에 비폭력 행동 등을 해왔지만, 활동이 지속될수록 무기력함이 커지는 경험도 했다. 무기산업의 확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전 세계적 전쟁위기라는 문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명의 활동가가 대응하고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다. 지역에서도 무기산업이 문제이고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잔혹하며 전쟁위기가 노동자 민중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자주 공유된다. 그러나 “그래서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뚜렷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지역의 많은 활동가들은 우리 안의 폭력성부터 마주하는 개인적 실천과 비폭력 행동을 당장의 실천으로 제시한다. 타당하고 필요한 제안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거대한 산업과 위기, 폭력을 그에 비해 너무 작은 실천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남았다. 대전은 특히 한화그룹과 거대 연구단지를 축으로 군산복합도시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전 세계적 위기가 대전의 '기회'가 되고, 그 과정에서 대전의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복지가 보장되는 듯한 현실도 존재한다. 이런 조건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무기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일은 종종 ‘좋은 일’, ‘이상적인 일’ 정도로 취급되곤 했다. 필자 역시 논리와 근거가 충분하지 못해, 이런 쟁점을 정면으로 토론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고민 속에서 정치캠프, 그중에서도 제국주의를 주제로 한 세션에 관심이 갔다. 특히 제국주의 세션 메인 발제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관점으로 현재의 위기를 분석하는 시도가 유의미하다고 느꼈고, 현재의 국제관계가 어떤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특히 미국 내부에서 제조업 강화를 주장하는 논리가, 중국·러시아라는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와 방위체제를 생산할 공급망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를 위해 철강·조선·자동차 같은 산업을 다시 자국 내로 불러들이는 정책이 추진된다는 설명은, 국제정세와 산업구조가 맞물리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국제주의를 견지하는 노동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는 적극 동의한다. 다만 지역의 조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역 노동운동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한국노동자 살리기’에 무게를 두고, 지역 건설노조 투쟁현장에서는 ‘불법노동자 단속 강화’ 같은 구호가 일상적으로 외쳐지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말하기에는,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하나 없는 실정이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라는 조건 속에서,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에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조직하려는 시도나 지역의 이주민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기획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늘 고민이 많다. 아직 뚜렷한 방책을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치캠프에서 얻은 식견을 바탕으로 한 땀 한 땀 조직해 나가겠다. 전진 후원도 꾸준히 이어가겠다.2025-12-19 | 조회 7,093 -
[2025 정치캠프] 약탈과 전쟁·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사진: AP 연합뉴스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2025 정치캠프 <위기·전쟁·혁명> 2일차 전체세션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들어가며 세계화의 전성기, 누군가는 '맥도날드가 들어선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열강이 충돌하는 '제국주의' 시대는 가고, 전 세계를 단일 질서로 포섭하는 '제국'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배적 담론이었던 ‘세계화의 불가역성’이 허상으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화의 호시절은 짧았다. 미국은 쇠퇴했고, 중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곳곳에서 부상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호무역주의 심화는 열강투쟁 격화와 전쟁위기 확대로 급격하게 발전했다. 세계화의 첨병으로 기능하던 WTO는 흔적만 남았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던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폭압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세계는 다시 노골적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시기로 진입했다. 위기와 전쟁, 혁명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 1. 미국 주도 관세전쟁의 본질 1) 대대적 약탈에 나선 트럼프 정부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이름 붙이며 대통령 긴급권한에 근거해 대대적인 고율관세 부과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발표한 소위 상호관세율이 상대국의 △대미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까지 고려해 산정한 잠정관세율에서 할인한 수치라고 설명했으나, 실제 관세율 산정 방식은 ‘엑셀 돌리기’에 불과하며 합리적 근거는 전무하다.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에 있다’고 규정하며 심지어 생명체라고는 펭귄뿐인 섬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수탈의 개시를 알렸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1기 트럼프 정부 당시 이미 중국은 물론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인상 조치를 압박했고, 화웨이·SMIC 등 중국 자본을 규제대상 기업 목록(Entity list)에 올려 서방 공급망에서 퇴출시켰다. 2018년에는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을 제정해 반도체·AI·5G 등 '첨단 전략기술'을 국가안보 범주로 분류하며 중국 기업에 대한 장비·소프트웨어·설계기술 등 수출 제한에 착수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조치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으로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는 한편 트럼프의 보호주의를 충실히 이어갔다. (바이든 정부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영업비밀 열람권까지 요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2기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관세 부과를 압박하며 미국에 대한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자유무역 체제를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내가 본 손해를 보상하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는, 흔들리는 패권국 지위를 노골적 수탈로 만회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유럽연합에 대해 4월 2일 발표한 30%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6천억 달러 투자를, 일본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 미국 투자를, 그리고 한국은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3,500억 달러 투자를 뜯어냈다. 2)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미국 헤게모니 위기에 대응하는 폭력적 질서재편 시도 미국의 약탈은 단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스티븐 미란’이라는 인물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현재 그는 연방준비위원회 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미란은 「국제 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자 가이드」, 일명 ‘미란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다. 보고서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에 대한 예리한 인식에 근거한다. 「‘역사의 종언’이 뒤집히고 국가안보 위협이 다시 돌아오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주요 지정학적 경쟁자가 없던 시기, 미국 지도자들은 제조업 기반 쇠퇴의 의미를 축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단지 무역 상대가 아니라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강력하고 다각화된 제조업 기반은 다시 필수 사항이 되었다. 무기와 방위체제를 생산할 공급망이 없다면 국가안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이, “철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많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외부효과를 분석에 포함하지 않고, 따라서 공급망을 무역 동반자나 동맹국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여기지만, 트럼프 진영은 그러한 신뢰를 공유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국과 동반자 중 상당수는 미국보다 중국과의 무역·투자 규모가 더 크다.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과연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미란 보고서, 5p.) 보고서는 미국의 지속적 무역적자는 강한 달러 때문이라고 짚으며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과 연동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수출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달러가 기축통화인 관계로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비축하고 있기에, 달러 강세는 필연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는 무역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세계경제의 작동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미란 보고서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주요 수단으로 제시하며[1], 다음 기준으로 각국 관세율을 산정하자고 한다. - 해당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미국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수준과 비슷한 관세를 적용하는가? - 외환보유고를 과도하게 축적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이력이 있는가? - 미국 기업이 해당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수준과 유사한가? -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가? - 해당국이 중국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한 후 미국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회피하고 있는가? - 나토 국방예산 분담금을 전액 납부하고 있는가? -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의 국제 분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 제재 대상 국가 또는 기업과의 거래, 혹은 그들에 대한 제재 회피를 방조하는가? -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작전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 미국의 적대 세력(테러리스트, 사이버 범죄자 등)을 자국 내에서 보호하거나 수용하는가? -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반미적인 외교 행보를 하는가? (미란 보고서, 23p.) 위 기준들에서 드러나듯 고율관세 압박은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 자본주의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는 지렛대다.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격화하는 지금, 미국은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으며 ‘당신은 누구 편인가’를 묻는 한편, ‘나의 편이 되고 싶다면, 수탈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체제는 국가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defense umbrealla)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우산(fair trade umbrella)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 (미란 보고서, 23p.) 이렇듯 관세는 단지 경제정책의 기술적 도구가 아니다. 관세부과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현재 미국에게 관세는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다. 보고서는 무역·금융·안보를 통합한 ‘안보구역’을 구축을 제안한다. 이 안보구역을 구축하는 수단이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다. 미국은 각국에 100년 만기 채권 구입[2] 등 조치를 제안할 것이며, 조치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우산에서 배제하겠다는 압박이 따를 것이다. ‘안보구역 건설에는 돈이 필요하다. 100년 뒤에 돌려줄테니, 일단 돈을 내놓아라’, 그러나 각국은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달러-금융 시스템과 안보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일 뿐이다. 현 미국의 정책이 보고서의 청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나, 안보와 경제를 직결시키며 고율관세, 통상압박, 조공과도 다르지 않은 투자 강요에 나선 미국 행보의 본질은 보고서에 담긴 구상과 같다. 미국은 1971년 달러 금태환 중지, 1985년 플라자합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위기에 대한 폭력적 해결에 나섰다. 미국은 사적 이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하나, 그 명분은 트럼프의 그린란드·캐나다·파나마운하 편입 압박만큼이나 허약하다. 폭력적 질서재편에 나선 미국, 그 배경에 미국의 쇠퇴가 있다. 미국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다.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11년 전인 2014년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앞질렀다. 3) 달러체제의 균열, 종이금 대신 진짜 금을 쌓는 제국주의 열강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전 세계를 위해 손해를 감수해 온 것처럼 묘사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손해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의 터무니 없는 특권을 여실히 드러냈을뿐이다. 첫째,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국가 채무가 쌓여도, 달러 가치는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흑자국들은 확보한 달러를 미국 국채와 주식을 비롯한 달러표시 자산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무역적자로 빠져나간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즉, 미국은 기축통화라는 무기로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실물가치를 자국으로 흡수하는 한편, 자국 자산시장을 지탱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2024년 말 기준 한국은행 총자산 약 596조원 중 외화증권이 401조원이며, 이 중 태반이 미국채다. 즉, 무역흑자를 통해 들어온 달러화가 고스란히 미국으로 다시 유입되는 상황을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주식 등 가공자본 축적은 생산을 통한 이윤축적이 아니라 생산될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 즉 기생적이고 투기적인 채권자계급의 성장을 뜻한다. 맑스의 설명처럼, “이윤율이 저하하면 … 다른 한편에서는 …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3] 물론, 미국은 해외 각국이 보유한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나, 그간 미국의 해외 지급액은 미국 자본의 해외투자 수입보다 적었다. 문제는 연금술과도 같은 이 구조가 균열해왔고, 최근 들어 더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3분기, 미국이 외국에 지급한 투자수익은 미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투자수익을 초과했다. 이는 미국이 21세기에 들어 최초로 기록한 본원소득수지(Balance on primary income) 적자다. 미국의 지대수취체제, 금융수탈체제의 균열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본원소득수지 추이 (본원소득 = 미국의 해외투자 수익과 노동소득 – 미국이 해외에 지급하는 투자수익과 노동소득) 금융팽창, 즉 거대한 가공자본(의제자본, ficticious capital) 축적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를 미국으로 흡수해 패권을 유지하던 미국 자본주의가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해외투자로 벌어들이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기존보다 더 높아진 금리가 미국의 본원소득수지 적자의 한 요인이다. 즉, 현재 미국은 양적완화 저금리 국면 당시 해외투자자들에게 지급하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2025년 2분기 말 기준으로 미국 GDP의 118.8%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부채에 더해, 고금리로 매년 지급해야하는 이자부담까지 급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7월 의회를 통과한 감세 및 지출 법안, 소위 ‘크고 아름다운 법안’으로 향후 10년 동안 약 3.4조 달러의 추가 재정적자가 더해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GDP의 6% 이상을 유지할 것이며, 공공부채 대비 GDP 비율은 10년 이내에 128%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0년 그리스 국가부채위기 직전 수준과 유사하다.) 2024 회계년도 기준 미국이 지출하는 이자만 1조 1,33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29%나 증가했다. 부채에 대한 연이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4년이 최초다. 현재 미국이 부채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비용은 국방비, 메디케어(고령자 건강보험)보다 높다. 그렇다면 이자율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현 상황이 중앙은행 정책금리 조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기 추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금리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결정한다. 아래 30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 추이에서 드러나듯, 미국 장기금리는 연준의 수차례 금리인하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채권이 이전처럼 인기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 채권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떨어져있고, 이에 따라 미국이 빚을 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얹어주어야 한다. 30년 만기 미국국채 시장수익률 높은 장기금리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기대 (명목금리 ≒ 실질금리 +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불안 △미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미국채권 매도에 나섰고, 특히 2022년 러우전쟁 이후로 국채 매각 속도를 높여왔다.[4] 이와 함께 중국·러시아·터키·인도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금 축적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물론, 개인들까지 너도나도 금 매입에 뛰어들며 금값이 치솟고 있다. (좌)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 / (우) 금 가격 추이 치솟은 금값과 달러체제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금값 폭등은 달러 위기의 반영이자, 달러 위기를 가속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주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믿음, ‘종이금’(paper gold)으로 여겨졌던 달러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진짜 화폐(眞幣), 즉 ‘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5]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 즉, 상품교환의 오직 순간적인 매개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에 전반적 교란이 일어날 때, 그 교란의 원인이 무엇이든,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힌 관념적인 모습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직접적으로 금속화폐로 변해버린다. 더 이상 보통의 상품은 화폐를 대신할 수 없다. … 사슴이 신선한 물을 갈망하듯 부르주아의 영혼은 유일한 부(富)인 화폐를 갈망한다.」[6] 2. 일대일로 2.0 -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을 시도하는 중국 1) 미국의 급소를 공략하며 활로를 찾는 중국 첫째, 중국은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초반 승기를 잡았다.[7] 중국은 기존 규제에 이어 2025년 4월 희토류 원광 · 산화물 · 금속 · 자석 완제품을 포함한 7개 희토류에 사용처 신고와 수출허가제를 적용하곘다고 나섰고, 중국 밖에서 만든 반도체·배터리·항공전자장비라 할지라도 중국산 희토류를 포함한다면 수출허가 대상으로 포함했다. 2025년 10월에는 규제를 더 강화해, 희토류뿐 아니라 리튬-이온 배터리소재, 항공·방산용 금속 등까지 통제 대상으로 포함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전 세계 공급망과 산업기반 전체를 겨냥한 바주카포 같은 조치”,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의 말이다. 아이폰도, 테슬라 전기차도, F35전투기도 희토류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의 급소를 찾았다. 2025년 10월 30일, APEC을 계기로 약 6년 4개월 만에 열린 부산 정상회담 결과는 중국의 당면 우위를 잘 드러낸다. 미국은 대(對)중국 관세를 10%를 인하하고, 규제 대상 1,300여개 중국기업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총 2만개 이상 중국기업으로 규제를 확대하는 '50% 자회사 규칙' 적용을 1년 동안 중단했다. 자회사 규칙은 미국의 기술통제에 대한 중국의 우회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시도였다.[8] 중국은 그 댓가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통제를 1년 연기하고, 미국산 대두를 구입한다. 중국은 어차피 어디선가는 사야 하고, 기존에도 미국에서 구입하던 대두 수입을 약속했고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거둬들였다. 미국은 대만 문제와 ‘기술안보’ 등 핵심 쟁점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6년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있고, 이것은 다시 트럼프 정부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방이 희토류 추출·분리 역량을 키우고 결과를 내기까지는 5에서 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중국은 미국의 보호주의와 공급망 봉쇄 압박에 대응해 소위 '홍색공급망'을 구축해왔다. 동남아 등지로 생산거점을 이전해 중국제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피하고, 애플ᅠ등 대자본의 공급망 이전에 조응해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무역 확대, 투자 확대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브릭스를 통해 미국에 맞설 우방을 규합하며, 브릭스를 G7에 대한 정치경제적 대항축으로 형성하고자 한다. 2024년에는 이집트·에디오피아·이란·아랍에미리트가, 2025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새롭게 가입해 현 브릭스 가입국은 모두 10개국으로 늘었다. 브릭스는 현재 전 세계 GDP의 약 37.3%를 차지한다. 2024년 카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브릭스 공동선언문에서 드러나듯, 브릭스는 미국과 달리 ‘예측 가능하며 포용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한다.[9] 「우리는 세계무역기구를 핵심으로 하는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적이지 않은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지지하며, 최빈개도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대해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것을 지지하며, 세계무역기구의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적인 무역제한조치를 거부한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결과를 환영하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결정과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 중국은 브릭스를 축으로 위안화 국제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위안화 결제 비중은 달러화(49%), 유로화(21.74%) 파운드화(6.94%)에 이어 3.75%로 4위를 기록했다. 이미 중국은 자국 상품··서비스 무역액의 25% 이상을 위안화로 결제한다. 사우디와 위안화 대출협정을 맺고, 브라질과 교역 시 위안화-헤알화 거래에 합의하는 등,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선 중국 행보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시도와 직결되는 것이 앞서 설명한 중국의 급속한 금 축적이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를 지향하는 중국은, ‘무엇으로 인민폐의 가치를 보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중국이 축적한 금은 그 중요한 보증이다. 중국의 공식 금 축적량은 2,300톤을 초과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이 공식 발표치의 두 배를 넘는 5,500톤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2025년 1월 31일,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는 이들 국가가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다”, “브락스가 국제무역이건, 또는 그 어떤 영역이건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 시도를 하는 국가가 있다면, 관세와 마주할 것이며 미국과는 작별할 것이다.” 트럼프가 브릭스의 탈달러 시도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미국의 통화패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 중국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외교적 공세에도, 중국 경제 내부 조건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국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 가치사슬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했다. 거대한 인구에 기반한 안정적 저임금 노동력 공급과 이를 통한 제조업 중심 자본축적, 거대한 과잉생산을 흡수할 자유무역체제는 중국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러나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 심화는 중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자본주의는 미국 주도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일부이자 수혜자였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위상은 중국 내부의 저임금 생산체제와 자유무역체제가 맞물릴 때만 유지될 수 있었다.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미 2008년 이후 심화해왔다. 무역장벽 확대와 세계 수요 둔화 속에서, 중국의 과잉자본의 배출창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은 대규모 부동산·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왔고, 그 결과 부동산 부문은 GDP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폭증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6년 11% 미만에서 현재 60% 이상에 달할 정도로 폭증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중국은 거대한 잉여노동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1,100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공식 청년실업률만 20%에 달하는 구직난 속에 상당수 청년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은 단순한 밈이 아니라 중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체념과 분노를 표현하는 사회적 징후다. 이런 흐름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위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대외 팽창은 ‘상승하는 강대국의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주어진 것에 가깝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균열 속에서 그 질서의 일부인 중국은 BRICS 확장, 글로벌사우스의 전략적 연대로 새로운 무역대상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과잉생산의 흡수처를 확보하고자 한다. 또한, 각국과의 경제적 연계를 정치적 영향력 투사와 연계하며 미국에 대응하는 세력권을 구축하고자 한다. 금융정보업체 S&P글로벌 추산에 따르면, 중국 수출에서 글로벌사우스 비중은 2015년 35%에서 2024년에는 44%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미국 비중은 18%에서 15%로 감소했고, 서유럽은 14%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의 무역흑자 가운데 글로벌사우스가 차지하는 몫은 54%에 달하며, 이는 미국(36%)과 유럽(23%)을 더한 수준이다. 3) 미국의 폭주가 중국의 활로를 연다 중국을 상대적으로 ‘합리적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존재는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고율관세, 노골적 수탈, 대외원조 축소, 특유의 즉흥적 외교 등으로 우방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현 상황을 기회로, 중국은 내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안으로 제시할 공간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UN의 존재 이유를 문제삼으며 다수의 다자기구에서 철수하고 있음에 반해, 중국은 2025년 9월 1일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 구상을 발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등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를 확대하고 있다.[10] 중국의 주요 행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대일로 2.0’의 부상이다. 정체하는 것으로 보였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프로젝트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중국의 일대일로 관련 투자와 건설 계약 규모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고, 2025년 상반기에는 사업 규모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특히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동·걸프 지역, 남미가 신규 확장 축으로 떠올랐다. 과거 일대일로의 중심이 철도·항만·도로·발전소 등 토목형 인프라 구축이었다면, 현재의 일대일로는 재생에너지·배터리·디지털 통신망·스마트시티 플랫폼으로 확장되어 진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의 과잉생산을 흡수할 해외시장의 구축 과정이자,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을 지지하는 70여개국 대부분은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진화한 일대일로와 함께, 중국은 주로 서방이 우위를 점해온 의제에서도 개입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중요한 행보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선두국가로서의 부상이다. 트럼프가 기후위기를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 정책을 강화할 때, 중국은 태양광·배터리·풍력터빈·스마트 전력망 등에서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며 산업적 우위를 도덕적·외교적 자산으로까지 전환하고 있다.[11] 중국에 따르면, 「일대일로 공동건설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진정한 다자주의를 견지하며, '공동논의 · 공동건설 · 공동공유'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관점을 실천하고, 대립이 아니라 대화를 선택하며, 장벽을 쌓지 않고 장벽을 허물며, 분리나 탈동조화가 아니라 융합을 선택하고, 배제가 아닌 포용을 추구함으로써 국가 간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둘째,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타격 받은 저개발국을 달래며 세력권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잘 드러내는 행보가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다. 미국은 아프리카 20개국을 고율관세 대상으로 지정했으나, 중국은 2025년 6월 아프리카 53개국에 대한 전면 무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이전 33개국에서 모든 아프리카 국가로 무관세 정책을 확대했다. 이미 15년째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유지하는 중국의 아프리카 무역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미국보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더 큰 아프리카 국가는 2003년 18개국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54개국 중 52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이 교역한다.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 조치인 동시에,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대체경로 확보 조치이기도 하다. 셋째, 러시아·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음은 물론, 인도 등 상대적으로 미국과 가까웠던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는 그간 중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협력해왔으나, 트럼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관세율 50%라는 징벌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직후인 8월 30일, 모디 총리는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미국 조치에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시진핑과 모디의 회담 결과에 따르면, 양측은 양자관계에서 일부 갈등 요소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중국-인도 관계는 '제3국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4) 브릭스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미국과 중국의 투쟁은 분명 현 국제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 각국을 양 진영으로 편재하는 ‘신냉전’이라기보다, 1차대전 이전 난마(亂麻)처럼 얽힌 열강의 각축체제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 어느 국가도 대중의 이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두 국가 모두 자국의 질서를 보편규범으로 확장할 정당성이나, 이념적 흡입력이 없다. 확고한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속에, 국가 간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으며 각국은 단기적 이익에 따라 정렬과 이탈을 반복하고 있다. 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브릭스는 반미(反美)라는 대강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을 뿐, 통일된 경제·안보 블록으로 기능하기에는 너무도 균열해 있다. 심지어 ‘반미’도 확실하지 않다. 중국·러시아·이란과 같은 미국의 제재 대상국이 있는 반면, 사우디와 UAE처럼 미국과 군사적으로 깊게 연결된 국가들도 있다. 인도는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쿼드(QUAD)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 결과, 브릭스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행동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브릭스의 확장은 미국의 수탈적 행보에 대한 반작용이 낳은 현상일 뿐 브릭스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태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릭스 소속 국가가 늘어날수록, 브릭스 내부의 균열 역시 커질 것이다. 2025년 4월 브라질 리우 외교장관회의에서 브릭스는 창설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에 실패했다. 쟁점은 유엔 안보리 개혁 문제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자, 남아공과 지역적 경쟁관계에 있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이를 반대했다. 이는 2023년 브릭스 확대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중대한 내부 갈등으로, 신규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기존 회원국에 대한 우대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사례다. 2025년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에도 브릭스는 미국 또는 이스라엘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못한 채, ‘확전에 반대한다’는 수준의 모호한 입장만을 내놓았다. 브릭스가 위기 상황에서 단일한 대오로 기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브릭스의 중심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 역시, 당면 이해관계 속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파트너로 역할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기인한다. 관련,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있었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10년 넘게 추진해온 ‘상하이협력기구 개발은행’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10년 동안 이를 추진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간 러시아의 반대였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개발 자금을 자신이 통제하는 체계를 통해 조달하길 원했으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는 경제·군사적으로 중국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지금,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중-러의 동맹 역시 미국에 대한 반작용에 근거할 뿐, 균열적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브릭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간을 확보하며 당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느슨하고 과도적인 조합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제약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브릭스는 미국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탱되고 있으며, 브릭스의 존재 그 자체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더 이상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체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세계는 조각조각 균열하고 있다. 3.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무장하는 세계 1) 전쟁위기 확대, 군비경쟁 격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비경쟁을 본격 촉발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국방비 지출 총액은 약 2조 7,18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9.4% 증가했다. 이는 연구소가 보고서를 내기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율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 나토 국방비 가이드라인은 각국 GDP의 2%였다. 기준이 만들어진 2014년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해이고, 그해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나토국가는 3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는 GDP 대비 5% 국방비 지출을 결의했다.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군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교육, 의료, 복지예산 감축은 당연한 일이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6년 미국과 맺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12]가 최근 훨씬 구체적으로, 또한 공격적인 개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6년 합의가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으로 투입할 수 있다’고 확인하는 개념적 수준이었다면, 2025년의 전략적 유연성은 실제 작전·전력·외교구조를 변화시키는 실행 패러다임으로 진화했다. 2025년 11월 17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동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들어보이며 “한국은 러시아 북부함대, 중국 북부전구, 북한군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대러 전초기지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언급은 미국이 한국을 전쟁기지로 규정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유사시 대만해협 군사개입’을 언급한 다카이치 사나에의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의 갈등 격화가 드러내듯, 북중러와 한미일의 투쟁은 날이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쟁위기는 남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2025년 트럼프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를 비롯한 미 해군 함대를 카리브해로 파견하며 베네수엘라를 압박했는데, 이는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중남미 개입이다. 미군은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남미 연안에서 공습을 단행해 9월 이후 최소 76명을 사살했고 , 베네수엘라 해역 인근에 핵잠수함까지 배치하며 침공에 준하는 군사개입을 진행했다. 2) 팔레스타인 학살, 그리고 학살에 맞선 투쟁 확대 헤게모니의 침식 속에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는 전쟁과 학살, 그 한 축에 3년째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학살이 있다. 서방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대량학살에 그치지 않고 레바논, 이란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시리아를 공습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 학살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 패권 유지와 직결되어 있다. 미국은 학살이 개시된 2023년 10월 직후 지중해와 홍해에 항모전단을 급파했고, 영국과 함께 예멘 후티세력을 공격했다. 프랑스, 독일 등 나토 소속 주요 열강 역시 해군 투입, 방공방 구축, 군수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동 군사작전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브릭스의 중동-북아프리카 확장과 맞물려 열강투쟁을 심화하고 있다. (2024-2025년 사우디·UAE·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 등이 브릭스에 새롭게 가입했다.) 당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으나,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가입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 자체가 분명 중동지역 패권을 둘러싼 열강투쟁이 격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실린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유럽 국가들의 공허한 제스처 너머에서, 우리는 종종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승리로 보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결과 없는 인정은 공허한 의식일 뿐이다.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과 무기거래를 지속하고, 그들의 스파이웨어를 구매하며,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면, 그러한 제스처는 공범행위가 된다. 제재 없는 인정은 억압자를 보상하고 피억압자를 버린다. 브릭스는 훨씬 더 중대한 것을 제공한다: 구조적 지원이다. 신개발은행(NDB) 접근권, 남남(South-South) 투자, 대안 무역체제, 그리고 무엇보다 - 세계최대 경제권 일부로부터의 정치적 연대. 그것은 정중한 박수와 실질적 동맹의 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참여는 유럽의 위선과 전략적 결별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징적 인정이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 형성에 실질적 참여를 요구한다.」 물론 브릭스는 중동 민중의 해방을 위한 대안이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은 제국주의 학살 뒤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또한 그 학살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10월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는 6만 7천 명을 넘었고 부상자는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살이 시작된 2023년 10월 이후 숱한 UN결의안이 학살중단을 권고하고, 2025년 9월 23일까지 158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지금에도 학살은 지속되고 있다. 2025년 10월 발효된 ‘휴전’ 이후에도 최소 312명이 죽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학살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들마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 흐름은 학살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투쟁이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역사적 최저치로 떨어졌다. 2025년 6월 보도에 따르면, 서유럽 6개국(독일·프랑스·덴마크·이탈리아·스페인·영국) 응답자 중 63-70%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0월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 59%가 이스라엘 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과도하다’는 응답 역시 2023년 27%, 2024년 31%, 2025년 39%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노동자계급의 팔레스타인 연대파업이 정세를 돌파할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9월 22일, 이탈리아 제노바 항만노동자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실은 선박의 작업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며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을 전개했다. 항만뿐 아니라 철도, 교육, 운수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동참했고, 65개 도시에서 50만 명이 가담했다. 이 투쟁은 곧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9월 27일, 베를린에서 10만 명이 참여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금속노조(CGT Metal Madrid)가 ‘이스라엘이 수무드 선단을 공격하는 순간 즉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며 본격적인 연대투쟁이 시작됐다. 10월 2일부터 5일까지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연인원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0월 15일에는 스페인의 양대노총이 조별 2시간 부분파업을 조직했고, 보다 왼쪽의 노동총연맹(CGT)는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하며 보다 강경한 행동을 촉구했다. 학생들 역시 80%가 수업을 거부했다. 이 땅에서도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노동자 국제주의 투쟁을 확장해야 한다. 4. 한국 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 1) 한미관세협정,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의 부상을 꾀하는 한국 자본[13]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정이 타결되었다. 한국은 매년 현금 200억 달러씩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미국에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한국 조선업 자본의 미국 투자에 대한 정부 보증과 대출로 이루어지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투자다. 그 댓가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유지하고, 자동차에 부과되던 25% 관세율을 15%로 낮춘다. 2천억 달러 투자에 대한 배분비율은 원리금 회수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 5:5다. 이에 따라 2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천억 달러 이상의 이윤이 남아야 한다. 연간 이익을 10%로 잡아도 원금 회수에는 20년이 걸리며,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모두 한국정부 손해가 될 뿐이다. 협정 타결 직후 백악관 발표문에는 한국정부가 발표하지 않은 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연간 330만톤의 미국산 LNG를 수입한다. 대한항공은 362억 달러에 달하는 항공기 103대와 137억 달러에 달하는 엔진을 미국기업에게 구매한다. 한국 공군은 23억 달러 규모 조기경보기 개발사업 파트너로 미국기업을 선정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기업과 함께 미국 내 희토류 분리정제 및 자석 생산단지를 개발한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30억 달러를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투자한다, 등등. 트럼프 정부는 이번 거래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더 공고히 하고, 기술혁신에서의 미국 우위를 강화하며, 미국 조선산업 생산력 확대 등을 통해ᅠ미국의 지도력을 다시 세우는 계기였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약탈이다. 그러나 미국이 빼앗은 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의 피땀일뿐, 한국 자본의 이윤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기업에 달러를 빌려주고, 삼성·현대차·한화·포스코 등 기업은 정부로부터 조달한 달러를 미국 제조업과 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투자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가 성공하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확보하는 셈이고, 실패해도 정부가 이를 보전하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즉, 한국 자본은 국가의 비호 아래 안전한 이윤축적 기회를 확보했다. “미국은 프로젝트에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벤더 및 공급업체 선정시 한국 업체를 우선하여야 하며, 개별 프로젝트별로 가능한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하여야 한다. 또한, 투자 이행 과정에서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협의위원회 등을 통해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2025.11.14. 한미관세협정 팩트시트) “우리 기업의 대미 진출 확대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연방토지 임대, 용수·전력 공급, 구매계약 주선 및 규제절차 신속 진행 등 미측의 유·무형적인 지원을 확보하였으며, 미국이 최대한 한국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도록 하여 우리 기업의 미국 사업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조선협력(MASGA)도 우리 기업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2025.11.14. 팩트시트 관련 산자부 보도자료) 이것이 한국 자본가단체 모두가 관세협정 타결을 환영하는 이유다. "한미 양국이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한국경제인협회), "양국간 교역과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증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경총), "22,000여 개 대미 수출 중소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대미 투자와 수출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중소기업협회), "대미 무역, 투자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대한상의), "우리 기업들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투자·수출 전략을 모색할 기반이 마련됐다"(한국무역협회). ᅠ 2,000억불 투자 자금조달 및 현금흐름 구조도 (산자부 2025.11.14.). ‘한미전략투자기금’, 즉 한국 정부가 마련한 달러는 각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한국 주요 기업은 각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임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의 구체적 이윤배분 비율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환영 일색인 자본가단체들의 입장에서 드러나는바, 계약은 자본 측에 유리하게 설계되었을 공산이 매우 크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AI 수출, AI 표준 등에 관한 '기술번영협정'을 체결했으며, 최근 발표된 엔비디아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최신 GPU 대량공급 역시 이번 한미 협정의 결과다. 이번 관세협정은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계급의 이해타산 일치로 맺어진 거래이자, 한국 자본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다. 매해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쓰일 수 있는 30조 원가량의 재정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이전되며, 그 과정에서 한국 대자본은 이윤 축적을 확대한다. 한국정부는 재정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것이며, 이는 복지축소와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민영화 확대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자본의 미국 생산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실업 확대, 구조조정의 고통이 노동자 민중을 덮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 심화, 전쟁산업 확대로 이윤을 쌓는 한국 자본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관세협정뿐만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국방비를 현 GDP의 2.8% 수준에서 3.5%로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 승인을 확보했다. 이는 북중러 블록에 맞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정부 자신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편입이자, 한미일 동맹 강화 속에서 한국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하겠다는 야망의 표출일 뿐이다. 한국의 군사적 팽창은 튼튼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방위산업 수출로도 드러나고 있음은 잘 알려져있다. 2020년까지 한국 방위산업 수출액은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2021년 72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급성장했고,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2024년 95억를 기록하며 이전보다 훨씬 확장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군수산업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한미 기술번영협정과 GPU 대량 도입의 의미 역시 한국 경제 군사부문 팽창과 연동되어 있다. 현 정세에서 GPU는 전략자산이다. 2021년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2024년 삼성그룹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 등 로봇과 피지컬AI 투자를 확대하는 대자본의 행보는 분명 전투로봇과 자율살상무기체계(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LAWS) 개발 등 전쟁산업 고도화와 연관이 있다. 이런 조건에서 GPU 대량 도입은 대자본이 주도하는 전쟁산업 고도화의 중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 자본은 전쟁위기 확대와 군비경쟁 격화를 중요한 이윤축적 계기로 삼고 있으며, 이번 관세협정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 [한반도 및 지역 사안에 대한 공조] “양 정상은 항행·상공비행의 자유와 여타 합법적인 해양 이용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모든 국가의 해양 권익 주장은 국제해양법과 합치해야 함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양 정상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하였으며,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였다.”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 -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에 대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라는 흐름은 이번 협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미동맹 현대화]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포함하여,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양측은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 양측은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이행 진전 상황을 각측 지도부에 보고할 것이다.”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 그 핵심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합의문은 다음과 같다.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동북아 전쟁위기가 미국과 중국의 자유무역 호시절인 2006년보다 훨씬 격화된 지금,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당시 조항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이미 주한미군은 중러를 견제하는 기동군이며,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 코앞에서 미군을 품은 병참기지다. 무장력 강화를 위해 한국군에게는 핵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이라는 약속이 주어졌다. 또한, 격화하는 미중투쟁 속에서 중국의 1/200에 지나지 않는 미국 조선업의 건조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조선소에서는 미국 군함이 건조될 공산이 높다. 미군이 계약한 선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한 현행 존스법을 뜯어고치건, ‘비상 상황’을 명분으로 존스법 적용예외를 추진하건, 합작회사 방식으로 법을 우회하건 말이다.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 “한미 양국은 조선 분야 실무협의체를 통하여 유지·정비·보수,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을 포함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전시키기로 하였다.” “이러한 구상들은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 상업용 선박과 전투수행이 가능한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다.”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3) 바로 지금 이 땅에서의 국제주의 계급투쟁으로 심화하는 열강투쟁은 각급 진영론으로 이어진다. 한국 운동 진영에서도 중국-브릭스 대안론, 미국 주도 세계질서 인정론, 혹은 ‘규칙기반 세계질서’ 수호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쟁투이며, 그 대가를 치르는 존재는 노동자계급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은 격화하는 제국주의 패권대결과 그 위험을 올곧게 해설하고, 반제반전 국제주의 연대투쟁을 전체 노동운동의 과제로 제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연대투쟁 등 국제주의 실천에 앞장서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중동전쟁 위기, 대만해협 위기, 각국 군비경쟁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쟁취투쟁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현장에서 반제반전 연대투쟁을 자기 과제로 여기는 노동자와 노동자조직을 확대하고, 더 넓은 민중조직과 함께 반제반전 정치파업을 조직해가야 한다. 이런 목표 아래, 당면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세전쟁 이후 횡행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대한 독립적 태도에 기반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해야한다. 관세전쟁 이후 확산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자본의 이익이 곧 노동자의 이익이라고 호도한다. 그러나 이번 관세협정 결과가 드러내듯,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 부상을 시도하는 한국 자본은 관세협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다. 국가와 자본에 맞선 독립적 운동을 확대하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의 환성을 거부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자. 둘째, 급속히 팽창하는 한국 전쟁산업 양상과 실체를 드러내며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확대하자. 전쟁산업 확대와 군비증강은 필연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압박, 복지삭감, 기후위기 확대로 이어지며 그야말로 극소수 일부 노동자들이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을 △생존권 쟁취투쟁 △교육·의료·주거 등 복지삭감 반대투쟁 △기후정의 투쟁과 연동해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전쟁을 위한 생산을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으로 전환하라’는 요구와 함께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이주노동자 연대를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 탄압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왜 ‘일은 하지만 사회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만들어내는가? 왜 국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 혐오를 부추기는가? 이주노동자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며, 같은 사람으로서 한국노동자와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저임금-무권리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착취’라는 자본의 이주노동자 도입 목적 자체와 충돌한다. 즉, 정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 경쟁자로 놓으며,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방치하는 한 자본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임금 하한선을 높일 것이며, 이에 따라 평균임금을 높일 것이고, 이는 저임금 정주노동자의 임금투쟁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자본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봉쇄하고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철저한 탄압으로 일관하며, 다양한 민족국가의 노동자들을 유입시키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극심한 착취와 수탈에 따라 저출생이 장기화했고,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 증가는 필연이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연대는 위기로 치닫으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자본주의에 노동자의 단결로 맞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넷째, 의식적 노동운동, 정치적 노동운동을 확대하자. 노동운동이 단지 현장의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운영 방향에 대한 의식적 투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열강투쟁과 함께 확산하는 군사경제와 민족주의를 국가적 생존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다시 강요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노동운동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2025년 3월 26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노동자계급 공동체를 황폐화한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고자 나선 트럼프 행정부에 갈채를 보냅니다”(숀 페인 UAW 위원장). UAW는 해당 성명에서 △미국 내 생산 확대 △저임금 국가로의 일자리 이전 금지 △미국산 부품 사용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반동적인 입장이다. UAW와 숀 페인 논리대로라면, 미국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은 트럼프 정부와 세계 자본가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동지이기는커녕,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다. 당면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산업부문과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넘어,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적의식적 정치투쟁을 형성하자. [각주]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관세에 따르는 수입물가 상승의 경우, 무역 상대국의 환율 평가절하가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2] 미란 보고서는 각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보고서 자체에 100년 만기 채권이 ‘무이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세간은 해당 채권이 무이자일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3] 맑스, 『자본론』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4] 2022년 1월에서 2024년 12월 사이 중국의 공식 미국채 보유액은 27% 넘게 감소해 2015∼2022년 감소율 17%를 크게 뛰어넘었다. 미국의 러시아 해외자산 동결을 목격한 이후, 중국의 미국채 매각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이다. 어느새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은 영국보다도 낮아졌다. [5] 금은 상품의 가치를 ‘질적으로 같으며 양적으로 비교가능한 크기’로 표현하는 일반적 척도로 기능한다. [6] 맑스, 『자본론』 1권, 1편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맑스는 『자본론』 3권, 5편 33장 「신용제도 아래의 유통수단」에서도 마찬가지로 위기 상황에서는 “신용제도(credit system)가 갑자기 화폐제도(monetary system)로 전환”한다고 논한다. 여기서 ‘화폐’란 국가권력이 강제통용하는 불환지폐가 아니라 금이 뒷받침하는 화폐,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상품화폐를 뜻한다. [7] 미국과의 무역전쟁 관련 희토류 통제는 바이든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2023년 8월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허가제를 도입했고, 2024년 12월에는 희토류 가공기술 및 자석 제조기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8] 과거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개별 기업이나 연구기관만 규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고자 자회사를 설립하면, 미국정부가 이를 제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기술과 부품조달이 가능했다. “A new export rule escalates US-China tensions”, PIIE, 2025.10.27. [9] 미국 주도 관세전쟁 속에서,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은 물론 남미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나아가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에도 손짓한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역설하며 동맹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당장 2025년 3월 30일 한·중·일 경제통상장관들이 5년 만에 3자 회담을 열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4월 9일에는ᅠ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30개 회원국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규탄했다. [10] 중국에 따르면, GGI는 다섯 가지 핵심 원칙에 기반한다. △주권 평등 △국제법 준수 △다자주의 실천 △사람 중심 접근방식 △실질적 행동 [11] 물론, 중국의 실제 의도가 기후위기 대응 자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일대일로 에너지 투자가 보다 ‘녹색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투자가 지배적이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일대일로 재생에너지 투자는 95억 달러에서 118억 달러, 그리고 2025년 상반기 94억 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석유·가스 투자는 157억 달러에서 243억 달러, 그리고 440억 달러로 증가했다. 현 행보는 CATL, 화웨이, 롱기 같은 민간기업이 아프리카·동남아·남미에서 배터리공장, 데이터센터, 광산 개발을 주도하고 국유기업은 여전히 정유시설과 파이프라인, 거대 광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형태로 파악된다. [12]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13] 아래 단락은 한미관세협정에 대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성명 “미국의 약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수호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다”를 토대로 보완하였다.2025-12-13 | 조회 9,387 -
새벽배송 제한 논쟁 - 왜 이토록 막중한 노동이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소비자와 노동자의 갈등도,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도 아니다 “새벽배송 못 하면 야채가 쓰레기 돼요”, “소상공인들 다 망하라는 얘기에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10시, 모든 마트가 문을 닫는데 장은 누가 보냐?”, “맞벌이 부부로 어린이집 준비물 준비를 퇴근 후에 해야 하는데, 새벽배송까지 없어지면 아이를 키우지 말라는 소리냐”, 새벽배송 제한에 반대하는 언론들이 쏟아내는 말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초심야시간대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에 출근하는 근무조가 새벽배송 물품을 배송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많은 언론은 이를 ‘새벽배송 전면금지’ 주장처럼 보도했고, 소비자와 노동자 혹은 노·노 갈등으로 프레임을 잡아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있다. ‘택배 공화국’이란 말이 보여주듯 택배는 노동자 민중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택배는 사회 유지에 더 필수적인 노동이 됐다. 물론 심야·새벽배송까지 그렇게 볼 순 없다. 새벽배송 이용자가 2,000만 명 (중복 가입 포함) 이나 되었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자본이 소비자들의 편리를 앞세워 돈을 벌려는 시스템, 노동자들을 무한대로 갈아 넣어 돈을 벌려는 시스템을 만들어왔기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새벽 장보기’를 강요하는 사회 구조,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공공 돌봄의 부재, 살인적 노동강도를 그대로 두고 택배 이용자 증가를 얘기할 수 없다. 4년 전 택배 노동자로 일할 때 이렇게 얘기하는 고객을 만났다. “내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 15년을 살다가 왔는데 낮이고 밤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쉬지 않고 배송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렇게 빨리 배송이 되는 나라가 없다. 그런데도 당일배송 안 되면 기사 탓을 한다. 우리 집은 당일배송 신경 쓰지 말라. 갖다주는 것만으로는 고맙다.” 이토록 중요한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보호 없이 유지될 수 없다 그 노동이 없다면 소상공인이 망하고, 장도 못 보고, 아이도 키우지 못하는 노동이라면, 그 노동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가 없다. 공공적 가치가 아주 크다. 그렇다면 이 노동이 지속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첫째 조건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다. 건강과 생명의 보호 없이 안전하고 빠른 배송은 지속될 수도 없고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최근 택배 노동자에게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2020년 이른바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인력 투입이었다.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 작업을 3~5시간 하다 보면 배송을 나가기도 전에 초주검이 됐다. 애초부터 택배 자본의 책임이었지만 자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택배 노동자에게 공짜 노동을 강요해 왔다. 택배 자본들은 끝까지 기를 쓰고 반대했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과 연이은 과로사가 미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분류인력이 투입됐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대폭 낮아졌다. 물론 택배 자본은 건당 수수료 삭감, 당일배송 강요로 계속 배를 불리고 있고, 장시간 노동, 과중한 업무 등 노동조건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류인력 투입은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분류인력이 투입되지 않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은 곳에 적용되었다. 분명한 예외가 쿠팡이다. 쿠팡은 아직도 분류 작업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그뿐인가? 다회전 배송, 프레시백 수거 등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심야배송 제한은 분류인력 투입과 마찬가지로 택배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다. 한국노총은 ‘주5일 근무제 보장, 주 최대 야간작업시간 50시간 이내’를 요구하지만, 연속적·고정적 심야노동을 그대로 두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제대로 보호할 순 없다. 필수적인 야간노동이라 하더라도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면 노동시간을 4시간 이내로 줄이고, 힘든 노동에 걸맞은 존중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택배는 수만 보를 걸으며 쉴 새 없이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고강도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주 5일 이상 시킨다면 몸이 망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나 오전 7시까지 물량을 다 배송하지 못하면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 아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쿠팡은 클렌징 제도를 폐지했다고 했지만, 사실상 클렌징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SLA(소비자 평가) 제도를 만들었다. 0시부터 5시까지의 노동이 기본으로 있는 한 야간작업 50시간 한도 제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로켓배송 기사로 일하다 과로사한 고 정슬기님이 남긴 카톡 화면 출처: 택배노조 다른 선택은 필요하고 가능하다! 쿠팡이 불 붙인 ‘당일배송’ 경쟁은 전체 택배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예를 들어 CJ대한통운이나 한진, 롯데 역시 휴지와 생수조차 무조건 당일배송을 강조한다. 원청의 지시를 따르는 소장 한마디에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는 택배 노동자 처지에서는 당일배송을 거부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에도 모든 물건을 가득가득 싣고 나가야 한다. 당일에 꼭 배송해야 하는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도 있다. 물량을 조절할 권한이 있어야만 노동자는 무리하지 않을 수 있다. ‘무조건 모든 물량을 당일에 또는 아침 7시 안에 배송해야 한다’는 압박은 자본가들의 이윤과 통제를 위한 기준일뿐,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택배노조는 오전 5시 출근조를 운영해 긴급한 품목을 중심으로 배송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이 왜 불가능한가?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님은 명절을 예로 들면서, 각 플랫폼에 배송 스케줄을 미리 공지하면 소비자들이 그 스케줄에 맞춰 소비 계획을 짤 수 있지 않겠냐고 얘기하더라”라며 “그런데 쿠팡은 오늘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온다, 오늘 오후 늦게 주문해도 내일 새벽에 온다는 스케줄을 플랫폼에서 짠 게 아닌가. 그걸 좀 변화시켜서 오전 5~7시에 받아야 하는 물품이 있다면 상당수의 소비자는 회사가 제공하는 스케줄에 맞춰서 구매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도조차 안 해보고,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2천만 명의 고객이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만 얘기하는 것” - 「택배노조 위원장 “새벽배송 제한, 돌 맞을 각오로 말한 것…누군가는 했어야”」, 11월 11일 민중의 소리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초심야노동 폐지와 소비자의 필요충족은 충분히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기존 자정에서 5시 사이에 배송했던 물건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인력이 충원된다면, 노동자들에게 물량을 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면, 시간제한을 일방적으로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권리와 소비자의 필요 모두 함께 충족할 수 있다. 지난 11일 MBC 100분 토론에 나온 백운섭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장은 “살려달라”라고 하며 “새벽배송 금지는 하지 말고 처우개선, 복지 개선하고, 한 사람 더 뽑고, 두 사람이 함께 배송하고, 인건비 올리고” 등의 얘기를 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쿠팡을 비롯한 택배 자본이 하지 않는 일들이다. ©안진이 노동자들의 힘과 통제 택배산업의 공공적 가치는 노동자들의 힘과 통제에 의해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택배 자본은 걸핏하면 마음대로 택배 단가를 올리고 택배 노동자가 받는 건당 수수료(임금)는 후려친다. 전국택배노조와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를 보면, 아파트 배송 건당 수수료 중위값은 주간이 655원, 야간은 850원이고, 일반 지번은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이다. 2년 전만 해도 야간은 1,200원이 넘는 곳이 많았다. 이렇게 노동자를 쥐어짠 쿠팡은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쿠팡의 2025년 3분기 매출은 12조 8,455억 원으로 전년 동기 10조 6,901억 원 대비 20% 상승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2,245억 원으로, 전년 동기 1,481억 원과 비교해 51.5% 늘어났다. 쿠팡-쿠팡CLS-대리점-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 아래 이중 삼중으로 억압 받는 노동자들은 단가와 물량, 시설 개선과 투자에 대한 목소리는커녕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목소리도 내기 어렵다. 다른 택배사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다단계 착취 구조와 자본의 일방적 횡포는 건드리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굴러가야 할 택배산업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굴러간다. 일부에서는 “소비자는 젖혀두고 자기들끼리만, 즉 노동자와 자본가들끼리만 결정하려 한다”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택배 자본의 속도, 물량 경쟁에서 노동자들의 결정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택배 자본은 택배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노조와의 교섭도 거부했다. 쿠팡은 사회적 대화조차도 참여하지 않았다. 주 7일 배송 문제에서도 노동자들은 인력충원, 임금인상 등 자기방어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안전 배송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수용하지 않았고 부족한 인력과 인프라을 방치한 채 주 7일제를 강행했다. 자본의 이윤 논리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노동자의 건강권도, 소비자의 이익도 지킬 수 없다. 누가 일자리를 빼앗는가? 택배 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고, 택배 노동이 사회를 계속 지탱하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확대되어야 한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쿠팡 야간택배기사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가 새벽배송 제한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은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제안을 이기적인 제안이라 비난했다. 택배노조의 제안이 일자리를 줄이자는 게 아니라 오전 5시 출근조, 오후 3시 출근조로 개편해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은 일자리 감소와 임금 보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저항하면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삭감했는가? 인력충원은 거부하고, 건당 수수료를 후려쳐 더 많은 물량을 감당하게 만들고, 몸이 망가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심야·새벽배송을 선택하게 만들고, ‘새벽배송도 택배노동자들의 선택’이라고 우기는 것은 얼마나 비열한 논리인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해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게 만들고 저항을 봉쇄한 게 누구인가? 이 체제는 노동자를 바닥 향한 경쟁으로 내몬다. 그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는 자본가들은 뻔뻔하게 이렇게 얘기한다. “쿠팡 새벽배송에 종사하는 배송직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 않는다.” (2023년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온 쿠팡CLS대표 홍용준) 2013년 현대·기아차에서 심야노동을 폐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할 때도 자본가들은 비슷한 소리를 했다. “다른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임금은 보전할 수 없다”, “인력감축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굴복했더라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새벽배송 제한이 미치는 영향은 여러모로 검토되어야 한다. 배송은 집하, 운송, 분류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협동 없이는 택배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배송 전 단계의 노동 역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대대적인 인력충원, 양질의 일자리 확대, 다단계 하도급 철폐, 노동강도 완화, 건강권 보장의 방향에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원리는 똑같다. 목숨을 담보로 한 배송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목숨을 담보로 한 운송도, 목숨을 담보로 한 분류도 원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의 이윤보다 노동자의 목숨이 천만 배 소중하다. 이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지만 불가능한 일이 절대 아니다. 분류인력 투입처럼 대자본의 곳간을 열어내면 된다. 그 돈을 노동자들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된다. 택배 노동자들은 택배 노동의 소중함을 안다. 그 누구보다 소비자의 편리를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택배 노동자들의 힘이 세져야 한다. 노동자가 택배산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택배산업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노총 소속 택배노동자들의 제안과 투쟁을 지지하며, 이 근본 대안을 향해 함께 뚜벅뚜벅 전진하자고 제안한다.2025-11-13 | 조회 11,790 -
정년연장에 반대한다사진: 노동과세계 정년연장은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될 수 없다 최근 민주노총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65세 정년연장 법안의 2025년 국회 입법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정년연장이 정말 노동자들의 요구여야 하는가? 주당 노동시간은 줄이자면서 평생의 노동시간은 늘리자는 게 모순되지는 않는가? 정년연장 요구는 일부 정년이 보장된 대기업 정규직, 공공부문의 노동자들만의 이해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사업장은 많지 않다. 현 정년연장 요구의 중심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유노조·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임금 불안정 고령노동자들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후소득 보장체계가 부실하고,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5세로 늦춰진 상황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은 퇴직 후 생존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필자 역시 이런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 사업장의 정년연장 요구에 한정해 동의한다. 그러나 현 법적 정년연장 요구의 전반적 맥락은 이와 다르다. 정부와 자본은 고령화, 연금재정 부담, 숙련인력 유지 등을 명분으로 정년연장을 추진하지만, 실제 목적은 임금피크제 확대, 직무·성과급제 일반화, 탄력근로제 확대, 외주·파견·플랫폼고용 확대와 결합된 ‘장기 사용 가능한 값싼 노동력체제’ 구축이다. 이는 고령노동자 권리 확대가 아니라, 고령노동자를 더 낮은 임금과 더 취약한 위치에 가두고 더 오래 노동하도록 강제하는 조치다. 자본의 의도대로라면, 기업은 숙련노동력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인건비를 대폭 삭감할 수 있고, 청년층에게 돌아가야 할 신규·양질 일자리는 축소되고,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경쟁이 격화된다. 이에 따라 자본은 일자리 문제의 본질이 마치 정년을 둘러싼 노동자들 간 이해충돌인 것처럼 몰고간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정년 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결국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 우리가 노동하고 생산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노동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부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공적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높이고, 교육·의료·주거·노후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라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대안은 ‘무조건적 정년연장’이나 ‘현행 유지’의 협소한 이분법이 아니라, ①공적연금 소득대체율 강화와 사적연금 의존 구조 축소 ②전 사회적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③비정규·간접고용 철폐 ④초과이윤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 ⑤주거·의료·돌봄·교육 공공성 강화를 통해 노후생계를 이유로 고령노동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다. 특히 정년연장 논의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 65세 상향에 따른 소득 공백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국민연금의 문제는 곧 극심한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공적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교육·의료·주거·노후생활에 대한 국가적 보장체제 구축으로 노동자계급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구축하지 못하는 한, 극심한 저출생으로 표현되는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 없이 추진되는 정년연장은 고령노동자에게는 빈곤을 매개로 한 강제적 노동 연장이고, 청년에게는 일자리에 대한 구조적 진입장벽의 확대이며, 전체 노동자계급에게는 임금 하향 압력과 노동자들간의 분열을 확대하는 반동적 정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들의 근본적 요구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체제와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60세까지 정년을 유지하는 비중은 약 17.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23년 6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정년제를 운용하는 기업은 21.2%로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사업체에 노동조합이 있을수록 정년제 운영비율이 높았다. 300인 이상 기업 94.6%, 노조가 있는 기업 95.7%에 정년제도가 있다. 300인 미만 기업의 경우 21.0%, 노조가 없는 기업의 경우 17.8%만이 정년제를 운용하고 있다. 즉, 정년을 보장받는 노동자 대부분은 대기업 정규직,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대다수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0세 정년’도 남의 얘기일 텐데, 65세 정년연장 투쟁에 얼마나 동참할 수 있겠는가? 정년연장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될 수 없다. 더 늦은 은퇴를 거부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을 보자 2023년 프랑스에서는 연금수급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뜨거운 투쟁이 벌어졌다. 마크롱 정부는 2017년 취임 이후 부동산, 동산, 금융자산 등 순자산 전반에 대해 부과되던 부유세(‘부에 대한 연대세’)를 부동산 자산에만 부과하도록 한정했다. 법인세는 33.3%에서 25%까지 낮췄다. 자본가들을 위한 전방위 감세와 함께 마크롱 정부는 연금제도까지 손댔다. 마크롱 정부가 연금수급연령을 단계적으로 64세로 올리며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자, 연금개악에 반대하는 거대한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입법절차를 우회해 연금개악안을 밀어붙이고자 프랑스 헌법 49조 3항, 즉 의회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비상입법조항’까지 발동하며 연금개악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분노는 커졌고, 프랑스 정치권은 극심한 균열로 치달았다. 2024년 조기 총선에서 마크롱 정부 여당인 '르네상스'는 과반을 상실했고, 이후 구성된 내각은 예산안 처리와 긴축을 둘러싼 갈등으로 연거푸 붕괴했다. 결국 2025년 10월, 세 번째 총리로 임명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는 불신임 위기를 피하고자 연금개악을 2027년 대선 이후로 '일시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와 한국의 세부적 상황이야 다를 수 있으나, 큰 맥락은 다르지 않다. 현 상황의 본질은 누가 연금의 재정과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위기로 전쟁과 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속에서 누가 위기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매우 중대한 전투다. 각국 지배계급은 군비를 확대할 돈은 있어도 복지를 확대할 돈은 없다. 반도체산업 자본가에게 갖다줄 돈은 있어도 반도체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갖다줄 돈은 없다. 연금수급연령을 늦추고, 가입기간을 늘려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이 져야 하는가? 아니면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늘려 그들이 책임지게 할 것인가? 마크롱은 이렇게 말했다. “정년연장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연금을 납부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마크롱이 연금개악의 명분으로 삼은 당사자들인 청년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길을 선택했다. 2025년 프랑스 정부의 발표로 연금 개악은 잠시 멈췄으나, 아직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두고 또 한 번 격돌이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 노동자들이 이대로 ‘정년연장’을 요구한다면, 프랑스 지배계급은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봐라, 근면한 한국 노동자들은 당신들과 달리 제발 더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지배계급의 개악조치에 명분을 더해주다니, 안될 일이다. 오히려 우리 한국 노동자들이 더 늦은 은퇴를 거부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으로부터 용기를 얻고,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지배계급을 향해 이렇게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극심한 저출생 위기, 40%에 달하는 노인빈곤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자본이 져라!”, “공적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교육·의료·주거·노후 생활에 대한 국가적 보장체제를 구축하라!” 2023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개악 반대투쟁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를 파탄 낸 지배계급의 책임을 묻자 연금과 정년을 둘러싼 투쟁에 있어 노동자계급의 방향은 ‘정년연장’이 아니라 임금·고용·연금·복지를 결합한 총체적 대안을 쟁취하기 위한 계급투쟁이다. 이미 정년을 보장받는 일부 노동자가 아니라, 대다수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요구,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할 요구를 제출해야 한다. 노동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부의 사용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통제력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는 결코 ‘국회를 통과할 만한 정책’이나 ‘자본가들과 협상 가능한 현실적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자를 단물, 쓴물, 골수까지 빼 먹다 폐기처분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 그 자체에 맞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 속에서, 지배계급은 젊은 노동자와 고령 노동자,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가르며 사회를 파탄 낸 자기 책임을 모면한다. 지금, 노동자의 단결은 국가와 자본에 맞선 투쟁 속에서만 가능하다. 총체적 삶의 위기 앞에, 우리의 요구는 더 많은 고령노동이 아니다. 우리의 요구는 공적연금에 대한 자본 부담 확대와 교육·의료·주거·노후 생활에 대한 국가적 보장체제 구축이다.2025-11-10 | 조회 11,983 -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규탄 기자회견 후기 - 이재명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즉각 중단하라!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2년을 넘어가던 10월 10일, 가자지구 저항군과 이스라엘의 휴전이 발효되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세 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역을 공습했고, 매일 포격과 총격으로 팔레스타인 민중 250여 명이 학살됐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영토 53%를 강제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군의 학살 지속으로 2단계 휴전 이행이 교착상태인 관계로, 휴전은 언제 파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5일(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은 울산시청 남문 앞에서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동지들이 참여했다. 울산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울산긴급행동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대륙금속지회 △GS엔택지회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 △현대자동차지부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울산이주민센터 △울산노동자배움터 △노동자혁명당(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등 노조 간부·조합원과 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다나페트롤리엄은 어떤 기업인가? -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와 한국석유공사의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경과 다나페트롤리엄(Dana Petroleum)은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다. 한국석유공사는 2010년 9월 다나페트롤리엄 주주들에게 공개 주식인수를 제안하며 64.26%의 지지로 경영권을 확보하고, 다음 해 1월에는 지분 100%를 사들여 인수했다. 당시 다나페트롤리엄은 북해(영국·노르웨이·네덜란드), 아프리카(이집트·모로코·세네갈·모리타니아·기니) 지역 가스와 원유탐사·개발 및 생산시설을 가진 영국기업이었다. 한국석유공사의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목적 중 하나가 영국북해 탐사와 개발이익 추구로 추정됐다. 다나페트롤리엄은 북해 30개 유전개발사업에 참여했고, 회사의 가스와 석유 생산량 중 70%가 북해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0년 12월 말, 한국석유공사는 다나페트롤리엄을 제외하고도 17개국 57개 해외 유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국내에서는 ‘4대강 사업’을, 국외로는 ‘자원외교’를 밀어붙였다. 2009년 초부터 페루(사비아-페루), 캐나다(하베스트), 카자흐스탄(숨베) 가스 및 원유탐사 광구와 기업을 줄줄이 인수했고, 다나페트롤리엄은 네 번째 인수기업이었다. 이때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이후 세계 석유업계에서 한국석유공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자화자찬했다. 심지어 “이번에 다나페트롤리엄 인수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편 셈”이라는 해괴한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2월 ‘제4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2010~2019년)’에서 구리, 가스, 석유 등의 발굴과 탐사를 위해 세계 곳곳을 후벼 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소위 ‘자원외교’는 2015년 국회 국정감사 ‘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 보고 등을 계기로 그 터무니없음이 모두 밝혀졌다. 당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에너지 공기업 3사의 손실금은 30조 원에 달했고, 한국공기업들이 떠안은 부채는 56조 원이었다. 이 부담과 책임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어 박근혜 정부의 공공요금 및 담뱃값 인상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석유공사가 인수할 당시 다나페트롤리엄은 부실기업이었다. (석유공사가 앞서 인수했던 캐나다의 ‘하베스트’도 적자 상태였다.) 당시 다나페트롤리엄 지분 100% 장부가액은 1조 9,962억 원이었으나 석유공사는 부채까지 포함해 총 3조 4,000억 원에 다나페트롤리엄을 인수했고, 이명박 정권은 1조 5,000억 원을 더 퍼주고도 ‘적대적 M&A 성공사례’라며 다나페트롤리엄 인수를 과대포장했다. 석유공사가 다나페트롤리엄을 인수하는 과정은 국가와 자본의 공공재정에 대한 전용, 그 자체였다.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빨아먹은 부실기업 다나페트롤리엄,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으로 변신하다 2014년부터 다나페트롤리엄은 막대한 적자에 허덕였다. 2020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석유공사가 투자한 다나페트롤리엄의 투자 대비 회수액은 22억 2,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다나페트롤리엄은 한국석유공사 적자를 늘리는 ‘돈 먹는 하마’로 불렸다. 한국석유공사 부채비율은 2013년 180.1%에서 2019년 3,415.5%로 늘었으며 다나페트롤리엄 적자 역시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윤석열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다나페트롤리엄 매각을 추진했다. 한국 정부와 석유공사가 다나페트롤리엄 매각을 추진하던 2023년 10월 8일, 이스라엘은 전투기 폭격과 지상군 투입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집단학살 자행과 함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유전 탐사권 12개를 시장에 내놓았고, 2023년 10월 말, 한국석유공사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은 이탈리아 기업 ‘에니’, 이스라엘 기업 ‘래시오에너지’와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해 가스와 석유탐사 면허 6건을 따냈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점령과 집단학살을 다나페트롤리엄 이윤을 회복할 계기로 보고 매각을 취소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컨소시엄이 매입한 탐사 지역의 60%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이다. 이스라엘은 12개 탐사 면허를 판매해 약 204억 원을 벌었고, 이 자금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군사점령과 집단학살에 쓰였다.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자원을 수탈하고자 집단학살에 자금을 대는 전쟁범죄 공모기업이 됐다. 한국석유공사와 다나페트롤리엄의 집단학살 공모는 전쟁특수로 이윤을 쌓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행태다. 이뿐 아니라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 17개 지역에서 가스와 석유를 탐사하며 땅을 파헤치는 기후위기 주범으로 규탄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재명 정부 역시 팔레스타인 수탈사업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집단학살에 공모해 피묻은 이윤을 쌓으려는 자본가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자. 11월 26일(수),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를 규탄하는 국제 행동의 날이 열린다 11월 5일 울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 이재명 정부 규탄 기자회견은 시작일 뿐이다.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11월 26일(수) 오후 4시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국제 행동의 날’을 열어 이재명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외칠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자유, 해방을 위한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확대하자! 다음은 11월 5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지들의 발언문과 기자회견문이다. 모두 발언 : 덩야핑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오늘로 집단학살 761일 차입니다. “휴전”이 되었다는데 왜 계속 집단학살 날짜를 세고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매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집단학살이 무엇인지 압니다. 홀로코스트로 나치가 유대인과 장애인, 퀴어와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대중문화를 통해서 누구나 그 역사를 배웠습니다. 한 인구집단을 절멸시키겠다는 의도로, 민간인을 집중적으로 학살하는 것이 집단학살입니다. 그리고 이런 집단학살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누구나 압니다. 혹시 “정상”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산다면 일상이나 상식이라고 바꿔도 되는데요. 이런 뜻입니다. 제가 여기 오는 동안 버스를 탔습니다. 제가 탄 버스가 폭격당하지 않고 이 기자회견장에 도착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은 자신들이 내린 강제 추방령에 따라 피란 가던 민간 버스를 폭격해 사람들을 죽입니다. 휴전이 선포되어 점령군이 철수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의 자동차를 폭격해 일가족을 몰살시킵니다. 노동자가 일터에 나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는 게 정상입니다. 모든 일터를 폭격해 노동자를 학살하고, 모든 관공서를 폭격해 공무원을 말살하고, 모든 병원에 쳐들어가 환자와 의료진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몰살당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집니다. 지난 10월 10일에, 집단학살 중 세 번째 “휴전”이라는 것이 체결된 후, 이스라엘은 하루 열 명씩, 가끔은 백 명씩 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정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성이 마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만은 정상인 것처럼 치부됩니다. 집단학살 1년 가량은 매일 300명, 400명씩 학살당했는데요. 한 병원에서 주민 471명이 단번에 학살당하기도 했어요. 제일 많이 살해당한 날은 700명이 하루 동안 학살당했어요.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에게 밀가루 한 봉지라도 얻어다 주려고 구호품을 받으러 온 주민 118명을 단번에 학살했어요. 강제 추방당해 얇은 텐트 아래 맨몸으로 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을 단번에 불태워 죽였어요. 텐트에서 자는 사람들을 불도저와 탱크로 깔아뭉개 죽였어요. 다른 가족들은 피란 보내고,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와 단둘이 남았던 아들은, 이스라엘 점령군의 탱크에 아버지와 함께 깔려, 온전한 신체라고는 손을 꼭 붙든 팔들만 남았습니다. 처음 들으시죠. 이 모든 일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자행돼서, 결국 이런 일들은 뉴스거리도 안 되는 “정상”적인 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 열 명씩 살해당하는 건 별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도록요. 그게 마치 정상적인 “휴전”의 의미라는 듯이요. 집단학살 첫째 달이던 2023년 10월에, 그것도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한 바로 그다음 날에, 그 무섭고 끔찍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을 통해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를 수탈하는 식민지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면허를 땄습니다. 사실 집단학살 이전에도, 가자지구의 천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해외 자본들이 수년간 계속 준비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민해 왔기 때문에 저는 당시에 이 소식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300, 400명씩 학살당하는 데 대응하느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몇 달 뒤에 가자지구의 인권 단체들이 자회사에 문제 제기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 유럽의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에너지 수탈에 한국기업이 연루되어 있으니, 한국에서 같이 대응 활동을 하자는 연락을 받고서야 뒤늦게, 한국기업이, 그것도 공기업이, 집단학살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고, 한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걸 멈추게 할 책임이 있다는 데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습니다. 여러분, 아동 2만 명의 몸이 찢겨지고 불태워져 학살당할 때, 12개월도 안 된 아기 1천여 명의 머리가 잘리고 숨통이 막혀 몰살당할 때, 이스라엘 점령군의 의도적인 조준 사격으로 아동들이 머리와 가슴과 배에 총을 맞으며 죽어갈 때, 제발 이 학살을 멈추게 해달라는 절규를 듣는 우리의 삶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살던 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어차피 우리 기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돈을 벌 테니까, 우리 기업이 가서 돈을 벌면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하는 활동들을 가자지구에서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지금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도록 한국공기업의 비정상적인 식민지 자원 수탈을 막아냅시다.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국가로 남지 않게, 그렇게 미래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적 과오를 유산으로 떠넘기지 않게, 이제부터라도 함께 행동합시다. 또한 이번 집단학살을 중단시키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를 함께 끝장냅시다. 이스라엘은 77년 전 팔레스타인 원주민 집단학살을 통해 건국했고, 집단학살을 통해 유지돼 왔고, 이제 집단학살로 수익을 얻고 있는 나라입니다. 식민 지배가 계속 “정상”으로 치부되는 한, 이스라엘은 언제고 다시 집단학살을 재개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 최용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전 세계 만악의 근원, 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 미국의 공모와 후원으로 네타냐후가 중심이 돼서 이스라엘이 끔찍하고 참혹한 전쟁을 가자지구에서 벌인지가 2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특히 어린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인들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여성들이 죽어갔습니다. 연로한 노인들이 전쟁의 잔혹함에 무차별적으로 죽어갔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느 사람이, 어느 세계인들이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심판받아야 할 네타냐후 이스라엘은 지구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그런 잔인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끔찍한 전쟁이 한반도에서는 일어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전쟁의 참화가 빚어질 수 있는 이 한반도에, 그것도 한국석유공사가 무참히 사람들을 학살하는 거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의 전쟁 후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지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왜 다물고 있습니까. 돈벌이 때문에 그렇습니까. 돈을 위해서라면 그 수많은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도 된단 말입니까.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런 끔찍한 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것을 든든하게 사수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 심판하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이스라엘이 휴전한 만큼 더 이상의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자기들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과하고 가자지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고 있는 모든 동지와 함께 반드시 이 전쟁의 종식을 위한 모든 연대를 아끼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구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당장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이스라엘 전쟁 지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철수, 철회할 것을 지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고맙습니다. 발언 : 양준석 (울산노동자배움터) 우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규탄해야 하는 것은 가장 일차적으로는 지금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지구인으로서,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가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양심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약탈과 학살, 전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 세계에 관철시켜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일들은 한마디로 이런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어떤 꼴을 당할 수 있는지 그들이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서서 싸우는 것,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심에 부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언제고 빠져들 수 있는 저 거대한 제국주의 공격, 제국주의 수탈, 전쟁위험을 우리 스스로가 막아내는 그런 투쟁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저 끔찍한 집단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이른바 국제 사회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유엔은 2024년 9월에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 가자, 서안,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이 불법적이라고 확인하고 1년 안에 해결하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올해 1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다고 유엔에서 표결하면 뭐 합니까.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그것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미국 앞에서 저들은 아무것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처럼, 한국의 유수한 기업처럼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음으로 양으로 동참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확인한 것은, 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멈추는 힘은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저 기업들, 국가들의 작동을 노동자들의 힘으로 민중의 힘으로 멈춰 세워야 합니다. 시내를 마비시킬, 도로를 마비시키고 항만을 마비시킬 총파업을 하고 온 거리를 뒤덮는 시위를 펼쳐야 합니다. 특히 올해 9월과 10월 이탈리아에서 거대한 총파업과 시위가 일어났고 그것은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발전시켜 왔던 그러한 투쟁의 한 집약점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울산에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들 속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소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울산이 바로 노동자의 도시, 노동자투쟁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에 공모하고 있는 기업들이 몰려있는 도시라는 점도 같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한국석유공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HD현대 굴착기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한국의 무기 수출과 기업들의 공모를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에 다른 어느 곳보다 울산의 노동자 민중이 앞장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 학살을 지원하려고 하는 그 모든 작동을 멈춰 세우기 위한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을 한 발 한 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권리와 평화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언 : 최종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사자 타렉 발언 대독,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공동행동) 오늘 오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정치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얽혀 있습니다. 소위 ‘글로벌 사우스’를 착취하는 데서 그 연관성은 가장 뚜렷합니다. 이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진행 중인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휴전 발표 이후에도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폭탄과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은 매일 같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2년간의 집단학살 기간 동안 학살의 목격자들은 가자지구에 떨어진 폭탄과 미사일의 양을 히로시마급 폭발 수십 차례에 맞먹는 파괴력으로 묘사했습니다. 어떤 추정치를 인용하든 가자의 현실은 명백합니다. 이 공격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생명을 유지하는 시스템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인프라 파괴는 광범위합니다. 주택과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병원과 진료소가 초토화되었습니다. 학교와 대학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물, 위생, 전력 시스템은 마비되었습니다. 가자지구의 생태계는 오랫동안 공격의 희생양이 되어 왔습니다. 점령지에선 민족적 상징이자 경제적 생명선인 올리브 나무가 뿌리째 뽑혔습니다. 이제 독성 잔해와 오염이 물결처럼 밀려와 토양, 공기, 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점령지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원의 약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기후 문제입니다. 모든 폭탄에는 생애주기가 있습니다. 탄약 제조와 수송에서 배출이 시작됩니다. 이를 운반하는 연료 연소로 추가 배출이 발생합니다. 그 뒤에는 유독성 잔여물이 남습니다. 유엔환경계획은 가자지구의 하수처리시설이 가동을 중단했고,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해변과 토양,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수천만 톤의 잔해가 가자 전역을 뒤덮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잔해만 치우는 데도 수년이 걸리며 수만 톤의 이산화탄소 상당량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주택, 학교, 병원을 재건하는 데 수백만 톤이 더 배출될 것입니다. 백린탄 사용이 확인되어 민간인과 환경에 추가적인 장기적 위험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디젤 등 오염을 발생하는 발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전쟁이 기후 위기에 초래하는 대가입니다. 오염된 공기와 물, 중독된 토양, 그리고 한 민족을 치유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지구를 더 뜨겁게 달굴 재건에 대한 부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후정의와 팔레스타인 정의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영국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을 통해 이스라엘의 해상 가스 채굴권 허가에 관여해 왔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스 개발을 진행하며 대형 외국 협력사와 함께 한국 동해에서 탐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인 다나페트롤리엄은 2023년 10월, 학살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가자 해역과 인접한 이스라엘 연안 해상에 대한 탐사권을 이스라엘로부터 획득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지구 공동의 관리자로서 이에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주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생태계와 환경에 끔찍한 피해가 가해지고 더해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한국석유공사와 다나페트롤리엄이 해당 허가권을 철회하고, 팔레스타인 자원의 약탈에 대한 모든 공모를 중단하며, 점령된 민중의 권리를 짓밟지 않는 기후 정의를 실천할 것을 촉구합니다. 11.05.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 규탄 기자회견문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방 운동 세력들이 식민국가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한 것을 기화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휴전이 발효된 10월 10일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 68,000여 명을 학살했고, 부상자는 170,000여 명에 이릅니다. 학살당한 주민 중 60% 이상은 어린이와 여성, 고령자들입니다. 전 세계는 이스라엘 네타냐후와 시온주의자들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를 단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터전인 주거지, 건물, 농경지 등 90%를 파괴했습니다. 지난 8개월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230만 주민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가자지구는 충분한 구호품을 제공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휴전 발효 후 지난 20일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을 세 차례 공습했고, 매일 벌어지는 포격과 총격으로 14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집단학살 재개로 휴전 합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휴전 합의는 미국 트럼프의 폭거나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약속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죽을지언정 절대 물러서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저항, 세계 각국에서 출발한 수무드 구호선단의 가자지구 진입 투쟁, 이탈리아 노동자 총파업과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끈질긴 저항이 이룬 소중한 성과입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폭거와 이스라엘 시온주의자 네타냐후 거짓 언사로는 집단학살 없는 팔레스타인, 전쟁 없는 중동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집단학살이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미국 트럼프를 필두로 이탈리아·독일· 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이스라엘에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뒷배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약 30조 6,000억 원을 이스라엘에 지원했고, 가자지구에 20만 톤의 폭탄을 쏟아붓도록 도왔습니다.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는 이스라엘 점령군과 시온주의자들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전쟁범죄 설계자들입니다. 이들이 100년 넘게 이어온 중동지역 지배 야욕과 천연자원 수탈은 독점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끊임없는 전쟁과 학살의 주된 원인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중동지역 지배 야욕,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는 지금 미국 트럼프의 관세 부과와 투자 강요와 같은 경제 약탈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리비에라 관광지 망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서안지구 합병 결정, 가자지구 부동산 대박 구상은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것이 중동지역의 평화,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난 2년간 서울, 울산, 대전, 춘천, 전주, 대구 등 팔레스타인 연대와 저항의 발자취는 앞으로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에 맞선 국제연대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역을 세 번째 공습한 10월 28일,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은 ‘한국도 가자지구 집단학살 공모 국가’라고 지명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간 8번째 많은 무기와 군수 장비를 이스라엘에 수출한 나라입니다. 한국 정부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합병)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의 터전을 파괴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것을 침묵했습니다. 그 굴착기가 이스라엘의 지상전에 투입되어 가자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이스라엘 집단학살을 방관하며 윤석열의 행보를 추종 중입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서남아시아 국가들의 전쟁과 분쟁을 활용해서 K-방산, MASGA 등 전쟁 무기 수출과 투자 확대로 군수 독점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정치·학술 분야에서도 이스라엘 집단학살에 연루된 자들을 단 한 번도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은 집단학살 공모 국가로 지명되기에 충분합니다. 참으로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국제 사회에서 지탄받는 한국 대기업은 또 있습니다. 바로 울산에 본사를 둔 한국석유공사입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집단 학살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역 유전 탐사권 12개를 팔았습니다. 10월 말 한국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영국 다나페트롤리엄은 이스라엘에 204억 원의 탐사권을 샀습니다. 다나페트롤리엄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6개 지역 탐사권을 받았는데, 그곳의 약 60%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입니다. 다나페트롤리엄이 지급한 204억 원과 탐사권 판매금은 고스란히 집단학살에 쓰였을 게 분명합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 17개 해양을 탐사하며 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기후 위기 주범이기도 합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의 가스와 원유를 수탈하는 집단학살 공범 기업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자원을 수탈하며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한국석유공사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이에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자유, 해방을 원하는 한국의 노동·사회·시민 단체들은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의 가자지구 자원 수탈과 집단학살 공모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으로 우리의 규탄과 실천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11월 26일(수) 오후 4시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중단, 다나페트롤리엄의 투자 철회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개최해 반제반전 국제연대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울산지역 정치·사회·시민 단체들의 참여와 언론 노동자의 많은 관심과 정론 취재를 당부드립니다. 하나,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수하라! 하나, 미국·이탈리아·독일·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집단학살 공모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부동산투기, 관세와 투자 강요 등 모든 약탈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재명 정부는 정치·군사·경제·학술 등 이스라엘과의 모든 협력과 교류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HD현대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터전을 파괴하는 모든 장비 수출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재명 정부,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자원 수탈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팔레스타인의 평화·자유·해방을 향한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를 중단없이 실현하자! 2025년 11일 5일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팔레스타인평화를위한울산긴급행동/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학생공동행동2025-11-07 | 조회 11,380 -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 반도체특별법을 폐기하라사진: 반올림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통과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여야 대립이 극심했던 ‘주 52시간 노동시간상한제 예외 조항’을 민주당이 삭제한 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반도체산업 경쟁력 확보를 앞세워 ‘장시간 불규칙 노동’을 법정기준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계와 야당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법사위에 자동 회부된 반도체특별법안, 즉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은 민주당이 단독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해당 법안은 △대통령소속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위원회’ 설치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관한 정부 지원 의무화 △RE100 실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공급 및 설치비용 지원 △반도체산업지원기금 조성 및 지역 상생협력 사업실시 등을 골자로 한다. 이상의 내용은 여야가 이미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내용들로, 주 52시간제 적용예외 조항을 빼놓고도 기업규제완화 내용 일색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반도체특별법 자체에 인프라 지원 등 의미 있는 내용들이 있으니 일단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부터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첨단산업에 대한 민간기업들의 투자 장벽을 철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세제혜택과 재정지원, 입지규제 완화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겠다는 이 법안을 업계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 52시간 적용예외 조항은 일단 빠졌지만 주 52시간제 적용예외 조항이 빠졌다고는 하나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정부는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인력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 법개정 없이도 노동시간 연장 유연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다.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에서 누차 지적해 온 것처럼, 반도체특별법의 핵심 문제는 △대기업 특혜지원 정책 △입지규제 완화로 인한 환경파괴 △노동건강권 침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의도는 자명하다. 위기에 처한 반도체산업을 구하려면 국가적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인식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법안에서 ‘주 52시간제 적용예외 조항’을 삭제한 이후 노동시민사회의 대응도 급격히 가라앉았다는 사실이다. ‘반도체특별법 폐기’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려 퍼져야 할 지금, 공동의 힘은 제대로 모이지 않고 있다. 여기엔 나름의 원인이 내재해 있다. 먼저, 반도체산업 노동자 노동시간 연장 조항에 비판이 집중되며 특별법의 다른 문제점들은 상대적으로 비가시화되거나 주변화되었다. 다른 한편, 특별법이 반도체‧전자산업에서 정부의 직접투자를 촉진해 고용 증대와 보상 확대의 계기를 제공하리라는 지역‧현장의 기대감 또한 일정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감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란에서, 재생에너지 문제와 맞물려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 그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함) 원칙에 따라 용인산단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주요 생산지역으로 산단을 이전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반도체산단 건설, 비수도권 지역으로 옮기면 정말 괜찮나? 최근 제기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재검토 및 호남권 이전 주장은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반도체특별법은 공공재정을 대자본의 사적 이윤으로 바꾸는 제도적 장치다. 반도체특별법은 대통령 소속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 단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명시한다.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망 및 용수 공급망 설치ㆍ확충에 관한 사항을 국가적 계획으로 마련하며,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대규모 보조금과 인프라 조성 비용을 국가 부담으로 지원한다. 특별회계 자금이 부족할 경우 일반회계나 타 특별회계로부터의 전입도 가능하다. 산업인프라 조성, 보조금 지급, 조세 감면 등 세제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신속처리 및 면제, 인허가 신속 처리, 전문인력 양성까지 보장하는 반도체특별법안은, 사실상 공공 재정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자본의 이윤으로 이전하는 법적 장치이자,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의 전형이다. 반도체산업 국제경쟁 심화를 명분으로, 공공재정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행위는 곧 대중에 대한 노골적 수탈이다. 이 정도면 가히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 아닌가? 반도체특별법 아래 용인산단이 ‘호남산단’으로 바뀌어도 기업 규제완화 정책은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투자와 성장을 가로막는 ‘킬러규제’로 지칭했던 신산업 관련 규제들은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규제합리화’라는 기치 아래 제거 또는 완화해야 할 목표로 떠올랐다. 반도체특별법 역시 기업투자의 걸림돌을 신속하게 제거한다는 정부 계획의 일환이다.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경영계 주문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패스트트랙에 오른 반도체특별법은 기존 법률에 규정된 입지·용도·환경 등에 대한 규제 조항을 한꺼번에 무력화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막대한 재정을 특혜지원하면서도, 반도체특별법안에는 반도체산업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 정규직 고용의무, 이윤 환수, 노동안전보건 의무 준수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관련, 삼성전자 하청업체 ‘명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반도체산업 경쟁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명일은 화성·기흥·온양 사업장 하청기업으로, 850여 명의 노동자를 간접고용하고 있다. 33년 동안 사업을 이어가며 320억원의 주주 배당을 시행하고, 사내유보금 538억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또한 2024년 이자비용이 53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재무적으로 안정된 기업임에도 126명의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이런 탄압에 노조간부를 표적으로 한 전환배치와 해고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주야 맞교대, 월 20일 이상 걷는 노동을 강요받았으나, 1년 단위 도급계약을 이유로 산재 신청조차 제한받았다. 명일 해고자들은 명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동일 업종 재취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산업에 ‘특별법’이 필요하다면, 그 법안의 중심은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가 아니라 이런 처참한 다단계 초과착취의 근절에 있어야 한다. 사진: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 셋째, 반도체특별법은 지역 고용창출을 앞세워 반도체산업 노동자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반도체특별법안 3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무) 4항은 “반도체 특구 입주기업체의 사용주와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파업 금지’라는 노골적 용어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 뿐, 이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무쟁의 선언을 강요하는 조항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조항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이미 광주글로벌모터스(GGM)라는 선례가 있다. GGM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9월 출범한 기업으로, 광주시와 현대차가 민관 공동출자 방식으로 투자협정을 맺은 ‘광주형일자리’ 1호 사업체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광주시는 대기업 투자유치를 위해 ‘적정임금’과 ‘상생협력’을 내걸었는데, 실제로 GGM은 동종 업계의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로 악명을 떨쳤다. 고용지표 개선에 혈안인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노사상생협약’으로 임금억제와 노동권 침해를 강제했던 것이 광주형일자리의 실체였다. 반도체특별법은 지역일자리 확대 명분의 노동권 침해 위험을 내재한다. 넷째,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재벌의 공공자원 전유 문제를 회피한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사업은 비단 용인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산업은 그야말로 ‘전기 먹는 하마’, ‘물 먹는 하마’다. 용인산단 완공 시 예상 전력수요는 10GW 이상으로 추산된다. 수도권 전력수요의 4분의 1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조차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력수요만을 예측한 값이고, 인근에 들어설 300~500여 개 소재‧부품‧장비 업체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15~20GW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 부족 문제 역시 심각하다. 용인산단이 가동된다면 앞으로 하루 167만t가량의 물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서울 1천만 인구 물 사용량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대규모 전력수요 집중 및 물 부족 문제를 해소할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지역 이전은 능사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용인보다는 재생에너지와 물 공급 여력이 충분한 호남권 이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기한다. 그러나 당장 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에 끌어다 쓸 공업용수’가 충분하다는 얘기는 극심해진 기후재난을 애써 외면할 뿐 아니라, 공적자원인 물 이용에 대한 우선순위(농업용수와 생활용수 등)를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다시 반도체특별법 폐기를 위한 싸움을 점화하자 이상의 문제점만 살펴보더라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기업 규제완화 일변도의 반도체산업 육성·지원정책과 특별법이 과연 필요불가결한 것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과 법률은 모두 거대한 규모로 자원 추출과 생산을 가속하는 반도체산업 입지 규제, 노동안전 규제, 화학물질 배출 규제 등을 간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별법은 대부분 일반법이 정한 규제를 회피하고 보다 신속하게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말하자면, 국가와 자본의 입장에서 △환경 및 자원 한계를 고려한 배출량 제한기준 확립 △노동3권 보장과 안전한 작업환경 구축 등의 ‘규제’ 기준이야말로 기업 투자와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추진 과정에서도 반도체산업 재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김을 행사한다. 최초 투자계획부터 부지 선정, 공사 기간은 물론이거니와, 산단 조성 규모와 팹(제조공장)의 개수, 소재‧부품‧장비 협력사 입주 공간까지 자본의 제안을 정부가 승인하는 형태로 모든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번 조성계획과 관련해서는 산단 조성 이래 최초로 정부・지자체・산업계가 함께 참여한 ‘범정부 추진지원단’이 2023년 3월 말 발족했다. 반면, 산업단지 조성과 맞물려 막대한 변화가 예상되는 지역주민과 노동자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수용 대상지역 원주민 피해보상에 초점을 둔 민관공 협의체가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 민중은 특정 기업에 물, 전기 같은 공적 자원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양도하지 않았다. 반도체산업에 대한 공공적 통제는 생태적 한계 준수와 노동권 확대를 위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온갖 규제완화와 재벌특혜로 공적재정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반도체특별법을 폐기해야 한다. 기간산업은 노동자 민중의 손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 민중의 싸움으로 반도체특별법 폐기투쟁을 재점화하자. 사진: 반올림2025-10-23 | 조회 8,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