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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으로는 극우를 막을 수 없다 - 지방선거 결과와 2030 남성 보수화·극우화 추세가 던지는 질문사진: 연합뉴스 ‘계엄’이란 엄청난 사태를 고려하면 민주당이 겉으론 이긴 선거처럼 보여도 내용상으로는 패배한 선거였다. 국민의힘이 격전지로 불렀던 서울과 대구에서 이겼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서울 7곳, 경기도 12곳, 인천 3곳에서 승리했다.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던 추미애의 득표율은 55%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한동훈, 유의동이 당선됐다. 선거 전까지 빈사 상태에 내몰렸던 국민의힘은 부활의 날개를 다시 얻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대안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흡수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은 ‘내란세력 심판’을 우려먹을 뿐 노동자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주식 붐이 없었다면, 민주당은 더 심한 참패를 맛봤을 것이다. 지방선거 최종투표율은 61%였다. 여전히 유권자 10명 중 4명은 투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투표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언론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표에 포함되지 않는 기존 자본가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복합적 요인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은 오세훈의 서울시장 당선은 의미심장한데, 2030 세대 남성의 보수화·극우화 현상이 다시 한번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20대 이하 유권자 가운데 56.8%, 30대에서는 59.7%의 지지를 얻었다. 20대 남성 75.3%의 지지를 받았고, 30대에서도 남녀 모두 우세를 보이며 청년층 전반에서 강한 지지세를 획득했다. 이미지: 한국일보 물론 오세훈 당선 요인은 복합적이다.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았고, ‘한강벨트’로 불리는 용산·동작·영등포·광진·강동에서도 선전했는데, 규제 완화, 빠른 재건축, 재개발을 열망하고 부동산·개발 이슈에 민감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2031년까지 주택 31만 호 공급(27만 호가 한강벨트에 집중), '신통기획' 시즌2 등 부동산 공약을 강조했다. 이미지: 헤럴드경제 청년층의 불만도 흡수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년 사이 대출 규제와 실거주 강제 정책을 폈는데, 전·월세 매물의 대폭 감소와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전·월세 구하기도 힘들어지니 청년들의 불안감과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원오도 주택 31만 호 공급을 외쳤지만, 규제 완화와 대규모 민간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외치는 오세훈의 주장이 더 현실적으고 선명하게 보였다. 정원오는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공임대 주택 등을 강조했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공급량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 높은 경쟁률, 무상이 아닌 유상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임대주택 확대는 주거 불안을 해소할 대안이 되지 못했다. 강남 3구 아파트 소유자를 비롯해 비싼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는 많은 사람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증가와 보유세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오세훈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여러 종류의 불만을 적극 파고들었다. 물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두고 공급만 확대한다고 해서 노동자들과 가난한 민중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시장 원리를 강조하면서 공급 확대 기조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집값은 계속 뛰었고 투기 세력과 다주택자들이 배를 불렸다. 이미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2%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무주택 가구가 전체 가구 중 약 43%에 이른다. 39세 이하 청년층의 무주택 가구 비율은 73.2%다. 그런데 2채 이상 집을 가진 다주택자는 230만여 명이다. 1가구 1주택을 초과하는 주택 소유를 실제로 금지하고, 초과분을 몰수하여 가난한 무주택 노동자 민중에게 공급하는 급진적 조치 없이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 투기 세력의 저항을 제압할 수 없다.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하여 건설사들의 이윤을 통제하고 대출만기 연장과 대출이자 폐지, 차압 금지 등의 조치로 자본가체제가 빚어낸 손실을 노동자 대중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급진적 정책이 아니면 가난한 노동자들은 집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설사 집을 마련해도 평생 빚에 짓눌려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의 이해를 수호하며, 그들 스스로가 가진 자들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이런 급진적 조치를 엄두도 낼 수 없다. 오세훈 당선에는 주폭 논란, 토론 회피, 토론회에서의 동문서답 등 정원오의 자질도 영향을 미쳤다. 정원오는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힘을 결집할 기세와 능력이 전혀 없었다. 민주당 대표 정청래의 “오빠 해봐” 발언이나 민주당 양천구청장 후보 우형찬의 “뽀뽀 한번” 발언은 민주당의 성인지감수성과 인권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말살로 반사이익을 누린 것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오세훈 당선 때 민주당 박영선은 단 한 자치구에서도 오세훈을 이기지 못했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용산과 강남 3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이겼는데도 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삶이 어려워졌는데 집값마저 폭등해 정부를 향한 분노가 솟구쳤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오세훈이 당선됐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의 오세훈 지지 원인을 보수화·극우화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과도한 해석이다. 더군다나 세대는 단일하거나 균질하지 않다. 계급, 지역, 젠더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며, 견해가 합종연횡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2030 남성의 보수화·극우화 추세는 분명하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지만, 오세훈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만들어내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으로도 드러났다. 투표지 부족 사태는 이런 추세에 가속기를 달았다. 각자도생의 삶 지금 2030 세대에 포함되는 1990년대 생들은 IMF 외환위기 여파와 2008년 금융위기 결과를 보고 겪었다. 이들은 생존 경쟁이 쟁점이 되고, 자살이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살았다. 수많은 청년이 사회적 생존 그 자체를 목표로 힘겨운 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헬조선, N포세대, 이생망 등의 단어가 상징하는 청년의 불행과 고통이 사회적 쟁점이 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이런 말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만큼 고통도 누적됐고, 지속됐다. 그런데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더 큰 공포가 다가왔다. 다지털경제와 인공지능은 기존의 일자리를 감소시키거나 그 성격을 변모시키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산업의 변화 역시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재조정을 동반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장래에 대한 불안함은 가중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지만 당장은 개별 대응 말고 살아남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개별화된 불안정 노동만이 반복되는 삶은 협업 경험, 동료의식, 팀워크 감각, 공동체성을 훈련할 기회 등이 부재하거나 지연됨을 뜻하기도 한다. 각자도생의 원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 각자도생의 교리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오랜 기반이다. 그리고 이 강력한 교리는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공정성을 확보해달라”는 외침과 결탁한 덕분에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정당성을 얻기까지 했다. 나는 기득권도, 자원도 비빌 언덕도 없으니, 다 같이 “계급장 떼고 붙어야”한다.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므로 남을 돕거나 지지할 필요도 없다. 타인의 고통과 연대하는 것은 사치다. 당장 나도 먹고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_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창비, 30쪽) 집단적 대응 방법과 구조적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니 많은 사람은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 실현이 마치 고통을 해결할 대안인 것처럼 외친다. 사회 변혁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 채 ‘공정한 경쟁’으로 각자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불평등, 부당함의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말이다. <공정성을 무기화하는 이들의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자신과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을 손쉽게 타자화 및 적대시하고, 그들의 생존 기반을 거부하며(예: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여와 조력 없이도 우리 사회가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라는 인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개별주의적 존재론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_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창비, 34쪽) 지금 ‘공정’ 논리는 극우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다. ‘공정’을 넘는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평등’과 ‘연대’라는 가치로 싸우지 않는다면,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극우를 무너뜨릴 수 없다. 희망을 선동하는 극우 더 격렬해진 경쟁은 청년들이 극우화되는 출발점을 앞당기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이 중학교 때부터,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 과열, 성별 갈등, 소속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특히 남성 청소년들은 권리가 억압되고 피해를 본다고 느낀다. 불안과 억울함을 터뜨릴 곳이 필요하다. 수많은 청소년이 극우 온라인 게시판이나 유튜브를 통해 우익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국민의힘의 주장은 청소년들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을 누가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의식을 갖고 성장한 남성들은 취업 경쟁에 내몰리면서 더욱 “자신들이 부당하게 여성, 이주민 등으로부터 빼앗기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들로부터 뭔가를 빼앗아 와야만 살길이 열린다”라고 본다. “국가는 남성들을 군대에 보내면서 남성들에게 부당한 비용을 내도록 강요하는 대신, 여성은 국가가 보호한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성은 약자’라는 흐름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래서 기성의 시스템 중 특히 여성에 친화적으로 보이는 자유주의 분파에 대해 매우 적대적 성향을 보인다. 일부 청년 남성은 군대, 여성할당제, 페미니즘에 크게 반발한다. 고용 불안, 극심한 불평등,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등은 당장 시급한 문제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장기간 부딪쳐야 하는 과제다. 그런데 그 어떤 정치세력도 이 과제를 돌파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청년들은 민주당 류의 위선적 정치에 배신감을 느끼고 더 극우 운동에 빠져들고 있다. 청년들은 단순한 소위 586 몇몇 정치인들의 위선만을 보아온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다. 말로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해 놓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탐욕스러운 자칭 진보집단과 엘리트들의 실체를 수없이 봐왔다. 젊은 층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물론, 기존의 정치 대안에 대한 배신감은 자유주의 정당만이 아니라 보수주의 정당에도 향한다. 배신감을 느낀 청년 집단들은 기존 정치권 밖의 극우화된 종교 집단이나 극우 운동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결집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적 욕구를 대변하며 보수주의와 달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권과 형식들까지 부정하는 극우 집단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사이비 종교 집단, 극우 집단은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비록 가짜 희망이지만, 강력한 희망을 선동하고 있다. '신의한수', '이봉규TV', '진성호방송', '가로세로연구소' 등 구독자가 수십만에서 100만 명 이상인 극우·보수 성향 채널은 구독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이들처럼 강력하게 희망을 선동하는 집단이 과연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미지: 한국일보 이제 한국 정치에서 극우의 존재는 기본값이다. 극우에 맞선 투쟁은 결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전망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극우의 논리는 여성혐오, 엘리트 혐오, 중국 혐오, 부정 선거에서 범죄, 세금, 부패, 이민 등 모든 이슈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극우의 세력은 아마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추락과 파국의 공포라는 토대가 계속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지형 이번 지방선거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더 많은 불만과 분노가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지율의 허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해졌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지지는 결코,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지지가 아니었다. 국민의힘이 워낙 끔찍한 일을 벌였기 때문에, 그 반사 효과로 민주당이 더 나은 대안인 것처럼 보였다. 두 개의 자본가정당을 뛰어넘는 대안 정당이 없다는 근본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만이 아니라 장기적 정치 지형을 생각하고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당장에 국민의힘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하고 방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재인 정부 밀어 주기’의 정치적 결과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국민의힘이 흡수했고 윤석열이 탄생했다.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민주당과도 단절하고, 이재명 정부에 어떤 신뢰도 주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반도체 호황에 가려져 있지만, 그 밖의 산업은 침체와 구조조정 압력 속에 놓여 있다. 석유화학·철강·배터리 등 그간 한국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산업들이 부진을 겪고있으며, 이에 자본가들도 ‘착시’와 ‘초양극화’를 말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불균형은 깊어지고 있다. 이 위기는, 결국 그 부담을 누가 떠안을 것인가를 둘러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정면 대결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과 정부와 맞선 대담한 투쟁 없이는 생존권을 보호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에 따라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고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청년들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점점 더 심해지는 두려움에서 탈출하기 위한 2030세대의 정치적 발걸음도 빨라질 것이다. 진정한 출구를 찾기 위해 함께 투쟁하지 않은 채, 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 협박, 처벌, 통제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 2024년 윤석열 내란에 맞선 투쟁에서 젊은 세대는 변화를 위해 나섰고 대단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물론 그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거대한 대중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의 의식은 바뀌었다. 노동자들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계급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면, 청년들의 분노는 국민의힘으로, 극우로 흡수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도약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첫걸음은 뿌리째 뽑힌 노동자계급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야만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데, 개량주의·의회주의·관료주의 지도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정책도 없기에 민주당의 날개 밑으로 숨었다. 이제야말로 민주당과 같은 자본가 정당과 섞이고, 심지어 그들의 이중대가 되고 꼬리가 되는 정치와 단절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변혁할 거대한 노동자계급의 힘을 조직하지 않고, 그 힘을 의회의 틀 내에 가두며 노동자들을 표 찍는 수단 정도로 여기는 선거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분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시작하자. 그래서 청년층이 고작 자본가 양당 사이에서, 그리고 극우에서 정치적 대안을 찾는 비극을 끝내자.2026-06-08 | 조회 20,069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Ⅲ]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사회적 대화'는 자본과 정부의 질서 안에 노동자운동을 묶어두는 장치다.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를 가르려 한다면, 노동자는 총단결과 총파업으로 맞서야 한다.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요구를 건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1. 반노동 이재명 정부 - ‘사회적 대화’ 제의와 함께 벌어지는 거침없는 노동 탄압 이재명은 202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의 노동정책은 “반노동 그 자체”이며 “거꾸로 가는 노동 시계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이재명이 언급한 윤석열의 반노동 정책은 ‘건설노조 탄압, 현행 주 52시간제를 주 69시간까지 연장하려는 시도,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와 법 내용 왜곡’이었다. 당시 이재명은 “노동자의 안전한 삶이 곧 민생”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은 “민생을 살리고,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전진하겠다”라며 노동자 대변인인 양 행세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친노동’ 행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2월 20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의 첫 형사재판이 열린 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사장 등에게 “기업 성장이 그 나라 경제성장의 전부다. 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라며 노골적인 친자본 언사를 늘어놓았다. 이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는 자본의 대변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며, ‘법과 정책이 금지하지 않는 행위는 모두 허용할 것’이라며 친자본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재명은 연설 내내 ‘노동’은 단지 2번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 ‘성장’은 23번, ‘경제’는 12번, ‘기업’은 6번을 말하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보여줬다. 이재명 집권 이후인 2025년 6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충현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이재명은 이에 대해 “사람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에서 안전은 가장 먼저 무너진다”라며 “기업의 책임 회피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동자의 생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충현 사망 책임자인 서부발전과 한전KPS 원청 대표는 검찰에 송치되지도 않았다. 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전KPS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고 김충현 대책위원회와의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고 김충현 노동자와 그 동료들의 원청공기업인 한전KPS는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하기까지 했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부문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한전KPS의 항소 포기를 강제하기는커녕 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했다. 2026년 5월 30일 고 김충현 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 사진: 공공운수노조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 첫해 2026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고작 2.9%에 불과했다.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위산업 등 독점자본을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켜 천문학적인 재정을 지원하는 반면, 열악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할 정부의 책임은 방기했다. 마찬가지로 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대표 등이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해 투쟁을 잠재웠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악질 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조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 수단인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폐기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중대한 사건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란한 수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도, 이재명 정부가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부를 대변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지배 방식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 민중 전반을 노골적으로 억압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 민중을 분할하고 탄압한다.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2024년 총선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은 일부 개량주의 진보정당과 자유주의 시민사회를 동원해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들었고, 진보당은 위성정당에 참여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흡수한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선 투쟁과 대선을 경유하며, 민주당과 노동자 운동 상층의 밀착은 더욱 강화됐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재명 지지 대선 방침을 제출했고, 진보당은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에서 사퇴했다. 노동자 운동 일부와의 밀착을 끌어낸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지속하고자 한다. 이것은 이재명 집권 이후 ‘사회적 대화’로 표현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 운동 상층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며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산하려 한다. 반면 최저임금·비정규직·이주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확대는 말 잔치에 그칠 뿐이다. 또한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서 싸운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소수자의 생존권과 평등권은 외면하며 짓누른다. 그 많은 노동자 민중이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음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심지어 국무총리 김민석은 “동성애를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또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 운동 상층 관료들에게 외면받으면 받을수록, 이재명 정부는 전투적으로 싸우는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한다. 이런 조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들은 이런 노동자 운동 상층의 상태와 행보를 보며 투쟁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노동자들을 고사시키려 한다. 사회적 대화를 종용하는 이재명 정부 아래 서광석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BGF리테일은 자신이 원청 사용자임을 부정하며 화물연대와의 교섭을 모조리 거부했고, 폭력 경찰을 앞세워 무리한 대체 수송을 강행하다 결국 4월 20일 열사를 죽였다. 이런 폭력 경찰에 의한 참변은 우연이 아니다.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폭력 경찰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한 고진수 동지를 구속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민주당 노무현 정권 당시 가장 많은 열사가 목숨을 잃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분할 지배에 흔들리는 노동자 운동의 현 상황은 노무현 정권 당시와 비슷하다. 노동자 운동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떨치고, 자본과 정부에 대한 독립성과 투쟁성을 복원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가난한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리를 위한 계급단결 투쟁을 조직할 때, 이재명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에 나설 때, 또 다른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2. 2026년 노동자 투쟁의 핵심 - 원청교섭 쟁취 투쟁을 자본과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이재명 정부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치적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치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간 쌓은 투쟁 성과와 판례를 반영한 결과이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해당 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원청자본가들에게 교섭 의무를 강제하지 못한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 산하 575개 노동조합이 원청자본에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원청자본가들은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가 규정하는 하청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교섭노조 확정을 공고한 원청자본은 고작 21개에 불과하다.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지 못한 점, ‘원청’을 ‘사용자’라고 명시하지 못한 점 등 개정 노조법 자체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원청자본가들은 이 한계를 활용해 교섭을 회피·거부하고 있으며, 노동위원회 역시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로써 개정 노조법 2조가 원청교섭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올해 투쟁 정세의 초점은 개정 노조법에 따른 하청노동자들의 원청교섭 쟁취 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투쟁한 성과인 노조법 개정 이후, 그 개정을 토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약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산별 연맹은 올해 원청교섭을 핵심 투쟁으로 결정했다. 또한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원청교섭과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을 확정한 상황이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이 종합한 원청교섭 상황은 다음 표와 같다.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한 575개 사업장 중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46개로 8%에 불과하다.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21개로 3.7%에 불과하다. 원청자본가들은 하나로 단합해 교섭을 거부하며 2026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저지선을 치고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교섭 요구부터 교섭노조 확정 공고까지 약 45일에 달하는 복잡한 절차에 노동조합을 묶어놓고 자본가들의 원청교섭 무력화 책략을 지원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지난 3월 10일부로 69개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22개 원청자본을 상대로 교섭공문을 발송했다. 그중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뿐이다. 금속노조 69개 지회 중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노조들이 약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은 4월 20일 대표이사 김영일 명의로 노조법 제2조 제2호에 따르면 자신은 교섭 요구 사업장 노동자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에 응할 수 없음”을 금속노조에 통보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교섭 거부를 통보함으로써 금속노조 원청교섭 투쟁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미 금속노조는 조선산업을 제외하면 개정 노조법 시행령 절차에 따른 쟁의권 확보가 어렵다고 예측하고 산하 지회 보충 교섭을 병행해 쟁의권을 확보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원청자본의 교섭 해태와 거부에 따른 난관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2026년 원청교섭 투쟁은 개정 노조법 자체의 허점과 교섭 창구 단일화 시행령의 반노동자적 본질 때문에, 법적 교섭 절차에 얽매여서는 쉽게 돌파할 수 없다. 강력한 총파업 없이 완고하게 교섭을 거부하는 원청자본의 책략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다.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투쟁에 대한 원청자본과 정부의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능한 한 교섭을 거부한다. 둘째, 교섭을 거부할 수 없는 의제가 존재하는 노조는 교섭에 응하되, 교섭을 해당 의제만으로 한정해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와 투쟁을 제한한다. 셋째, 교섭 단위를 분리하여 원청에 맞서 독자적 투쟁을 전개하려는 비정규직 노조들을 상대로, 자회사 등 중간 업체를 앞세워 노동·안전·보건 등 법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요구를 협의한다. 넷째,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 방침에 따라 공동투쟁·공동파업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교섭을 완고하게 거부하며, 투쟁의 파급력에 따라 개별 교섭의 외양을 취한다. 원청자본과 정부의 전략을 분쇄하고 원청교섭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계급단결이 필수다. 올해 원청교섭 쟁취, 7월 총파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막중한 투쟁이다. 산업 호황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등 극히 일부 산업, 그것도 해당 산업 공급망 내 상위 독점기업에 한정됨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25년 8월 기준,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임금 격차는 월 임금 기준 5.52배에서 6.11배로 확대되었다. 중위 임금의 2/3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시급 기준 329만 명으로 전년보다 14만 명 증가했고, 월급 기준 450만 명으로 37만 명 증가했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25년 11월 30일).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이윤 축적은 노동자 내부의 분절과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주도로 본격화하는 노동개악에 대한 대응, 그리고 AI 도입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1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 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 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 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소위 ‘K자 양극화’로 일부 전략산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이 이윤 축적 위기를 겪는 지금, 원청자본은 정부 정책 방향을 지렛대로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경총과 한경협 등 자본가단체 역시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에 발맞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 범위 확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전환, 노동시간 규제 완화,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규제 특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AI 도입에 대한 이재명 정부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과 정부는 전 산업에 걸쳐 AI 기반 산업로봇,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 자율운반로봇, 피지컬AI 등으로 모든 업종과 산업, 생산직과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하려 한다. 이제 자본과 정부는 제조업 전반에 피지컬AI 도입을 본격화했다. 2026년 4월, 산업통상부는 ‘제조암묵지기반 AI모델개발사업’을 공고하고, 자동차·조선·철강·기계·전자·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화학·방산·뿌리산업 등 10대 제조 분야에서 숙련노동자의 경험과 노하우, 곧 '암묵지'를 수집·정제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자가 오랜 시간 축적한 숙련과 판단력을 자본이 데이터로 수집해 사유화하고, 이를 노동자 대체와 노동 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동의권, 보상권, 데이터 소유·통제권, 고용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식노동자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AI로 대체되고 있다. 향후 AI 도입이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 자본가들의 의도대로 추진된다면, 수년 내 모든 산업에서 대량 해고, 노동강도 강화, 노동 통제 강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펼쳐질 것이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정리해고 공세를 기억하자. 당시 자본은 이윤 축적의 위기 앞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자본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와 기간제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우선 해고한 후 정규직까지 정리해고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분할하며 결국 모든 노동자를 공격한 것이다. 지금 자본의 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순차적으로 공장과 사업장을 폐쇄한 후 최첨단 자동화와 로봇 공장으로 재건축하면서, 우선 정규직의 고용은 보장하되 모든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는 것이다. 그다음 소수화된 노조 정규직들의 노동강도와 통제를 강화하고 인원을 계속 축소하려는 게 자본의 전략이다. 또다시 패배하지 않는 길은 자본과 이재명 정부의 분할 전략에 맞선 노동자 총단결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2026년 원청교섭 투쟁,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투쟁의 막대한 중요성이다. 3. 7월 노동자 총파업 - 전체 노동자의 총단결·총파업으로 사회대변혁의 길을 열자 지금은 엄중한 시기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 지도부 일부는 이재명 정부와 유대에 골몰한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가시화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 역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제다. 따라서 올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원청교섭 쟁취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 △미국·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 쟁취를 위한 총파업의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예단할 순 없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절박한 요구를 쟁취하고자 원청교섭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총파업 선봉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민주노총 산하 원청교섭 사업장 노동자, 이재명 정부를 사용자로 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그룹과 싸우는 금속노조 원청교섭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촉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7·8·9월 3차례 총파업을 결의한 금속노조의 경우 6월 지자체 선거, 7월 총파업, 하계휴가, 8~9월 총파업, 민주노총 선거로 이어지는 흐름과 일정은 총파업의 원심력을 높이는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금속노조 안에서도 원청교섭에 나선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 나뉘어 있고,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사내하청 노조와 그렇지 않은 정규직 노조가 나뉘어 있다. 또한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8~9월 총파업을 조직할 계획과 준비 정도에서 금속노조 18만 조합원 내 상당한 온도 차이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결국 관건은 생존권과 고용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원청교섭 투쟁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원청교섭 투쟁은 현장의 힘으로 가능하되, 특정 현장 노동자들의 힘만으로 돌파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거의 모든 자본가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지금,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들고 전체 자본가와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을 벌여야 한다. 심지어 “공공부문 모범사용자가 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허구였음을 드러내듯, 공기업 중 교섭 요구를 공고한 기관은 두 곳에 불과하다. 민간 자본이건 공기업 자본이건, 자본가들은 합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하며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다. 어느새 870만 명으로 폭증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하청노동자의 생존권과 총고용 보장을 위한 원청교섭 쟁취를 목표로 노동자 총단결·총파업의 길로 전진해야 한다.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한다. 그렇기에 이 투쟁은 더 단호할수록, 정치투쟁의 성격을 강화할수록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며, 절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의 지지 속에 펼쳐질 수 있다. 사진: 노동과 세계 원청교섭 쟁취 투쟁은 BGF 자본에 맞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금속산업 사업장, 공공부문 사업장, 대학 사업장 등 개별사업장 교섭을 넘어 공동투쟁·공동파업의 흐름으로 확장해야 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전국적 연대로 확장된 서광석 열사 투쟁이 보여준 교훈이다. 6월 발전 노동자 행진과 최저임금 투쟁은 총파업의 흐름을 형성하는 계기다. 6월 13일,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6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시민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에도 여전히 발전산업 다단계 하청구조를 유지하는 이재명 정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도 고용보장 대책은 없는 발전소 원청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에 함께하자.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7월 총파업으로 가는 길을 다지자. 또한 6월 최저임금 투쟁 시기에는 870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과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일터기본법의 허구를 드러내고, 모든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진짜 사장 책임 요구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자. 원청교섭을 거부하며 개정 노조법을 무력화하는 원청자본가들과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쏟아내는 이재명 정부에 맞서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와 결의로서 아래를 제안한다. ▸ 모든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기본법’을 비롯한 이재명 정부의 가짜 노동권 확대정책, 모든 노동자 원청교섭권 보장은커녕 공공부문 악질사용자로 역할하는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조직하자. ▸ 금속산업과 공공부문 원청교섭 비정규직 사업장들이 원청 대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투쟁에서 선봉에 서자. ▸ 원청교섭 사업장 지도부는 7월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현장 순회, 전체 조합원의 총파업 참여를 위한 교육·선전을 배치하자.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전체 조합원 임단투 결의대회를 열어 올해 임단투 승리와 원청교섭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참여를 결의하자.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 고용 보장 요구,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투쟁으로 결합해야 한다.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업종과 산업별로 원청자본을 압박하는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배치하고, 연대투쟁 확대 속에서 7월 총파업으로 가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자. ▸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 교섭 방침 - “모든 단위 조직은 18만 공동 요구 중 '비정규직 고용과 원청교섭권 보장' 요구의 최소 쟁취 없이 의견 접근할 수 없음” - 을 반드시 사수하자. 이 방침은 원청교섭 투쟁을 일부 비정규직 사업장의 요구로 밀어내지 않고, 금속노조의 공동 투쟁으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 금속노조 원청교섭 사업장 중 현대차그룹 계열 서열 물류사·모듈 부품사·제철소·조선소 지회들에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공동파업을 조직하자. 원청 대자본은 다단계 하청 구조로 노동자를 분할하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에 맞서 원하청 노동자가 공동 요구를 세우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 미국-이란 전쟁과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를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전쟁은 노동자계급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학살과 중동 전쟁 확대는 한국 노동자에게도 군비 증강, 물가 상승, 노동권 후퇴, 민주주의 억압으로 되돌아온다. ▸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 고통 전가에 맞서, 물가상승분을 임금에 자동 반영하는 물가임금연동제 도입과 실질임금 보장을 요구하자. ▸ 차별금지법 제정을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차별금지법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차별, 혐오와 배제에 맞선 최소한의 평등권 요구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함께 내걸고, 7월 총파업을 차별과 배제에 맞선 계급투쟁으로 확대하자. ▸ ‘쉬었음’ 청년과 은둔고립 청년의 증가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든 문제다. 공공부문부터 청년 일자리 창출, 생활임금 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하자. ▸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철폐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AI 도입에 대한 노동자 통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중단 △차별금지법 쟁취 등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투쟁 전선을 열어가자.2026-06-02 | 조회 15,044 -
일상으로 스며든 극우와 자본의 민낯, 그리고 정치적 위선최근 온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사태는 단순한 기업 마케팅 부서의 실무적 일탈이나 ‘윤리적 감수성 부재’로 치부될 수 없는 중대한 사회적 징후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에 ‘탱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하는 “책상을 탁 치니 억”이라는 망언을 마케팅 카피로 사용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합의(노동자·민중의 역사적 투쟁성과)에 대한 도발이다. 이 사태는 단순히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선을 넘은 것을 뛰어넘는다. 첫째, 온라인 커뮤니티의 음지에 머물던 극우적 혐오 밈이 주류 사회와 일상으로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 둘째, 이러한 일상화의 배경에는 ‘멸공’ 등을 부르짖어 온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그간 행보가 만들어낸 조직 문화적 토양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셋째, 이 참담한 비극을 오직 다가올 선거와 진영 결집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킨 부르주아 정치권의 위선이다. 극우적 밈의 일상화와 주류화 과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폭동으로 매도하거나,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 내부에서나 통용되는 그들만의 놀이(?)였다. 그러나 스타벅스 사태는 이러한 극우적 문화가 ‘트렌디한 밈’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대기업의 공식적인 업무까지도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서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거나 “AI에 물어본 문구”라는 식의 해명이 흘러나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일부 직원의 의도적인 ‘도그휘슬(Dog-whistling, 특정 집단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밀한 메시지)’이었다면 기업 내부에 극우적 가치관이 중심을 잡고 있다는 증거이며, 반대로 아무런 의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면 행사가 진행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검토 과정에서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는 폭력성을 인지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게 어느 것이든 둘 다 노동자계급의 가치기준과는 거리가 먼 것일 뿐이다. 정용진 회장의 이념적 행보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극우적 일상화가 대기업 내부에서 버젓이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가지고 있는 극우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 회장은 5월 2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으나 과연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해당 부서 5명 중에 3명이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저 조사가 사실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제출한 2명의 핸드폰이 이후 경찰조사에서 문제되지 않도록 손봐 준 것은 아닐까? 정용진 회장이 이번 사태에 그나마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본의 이윤 앞에 선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 콜옵션 조항이 있는데, 현재 이마트가 가지고 있는 지분 67.5%를 이마트(스타벅스 코리아)의 귀책사유로 인한 브랜드 명성의 훼손이 있을 경우 스타벅스 본사가 35%할인된 금액으로 이마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정용진의 사과는 거센 불매운동과 주가 하락이라는 자본의 ‘손익계산’에 따른 위기탈출용 사과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과 발표에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는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멸공’ 논란을 일으키며 낡은 색깔론을 자극했고, 특정 정치적 진영에 편향된 행보를 가져갔다. 기업의 총수가 공공연하게 우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즐기는 상황에서, 그룹 산하 조직의 문화 역시 알게 모르게 그 눈높이에 맞춰지거나 보수화·우경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최고 경영자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을 가볍게 사용하거나 표현의 자유 정도로 취급하는 조직에서, 실무진들이 민주화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가벼워지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실무진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직문화를 만든 정용진에게 최대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상흔을 정쟁의 도구로만 보는 부르주아 정치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 사태를 대하는 정치권의 위선적인 태도다. 다가올 2026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은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인 ‘사회의 극우화’를 진단하고 치유하기보다는, 이를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진영은 이번 사태를 맹폭하며 자신들이 민주주의와 역사의 유일한 수호자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7년 전 무신사의 유사한 광고 사태까지 다시 소환하며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선택적이다.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노란봉투법이 유명무실하게 되고 있는 상황 앞에서는 자본의 편을 들면서, 선거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 상징 앞에서는 투사로 돌변한다. 이들에게 광주와 87년의 피는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뿐인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자세로 국민의 힘은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맞서 오히려 스타벅스 구매운동을 벌이며 극우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5월 26일 사과발표가 나자마자 민주당은 이를 진정성있는 사과라고 포장을 하고, 국민의 힘은 민주당의 공세에 어쩔 수 없이 한 사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오월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에선 “정용진의 사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진정한 반성과 책임 없는 형식적 사과는 상처받은 시민과 오월 영령들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이며 기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5.18을 제대로 기리는 것은 노동자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는 이윤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극우적 혐오와 역사 왜곡마저 ‘노이즈 마케팅’으로 승인해 버리는 자본의 야만성, 그리고 총수의 그릇된 이념적 편향이 기업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를 구조적으로 바로잡을 의지와 능력 없이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부르주아 정치권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태를 특정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경영진을 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러한 혐오의 언어가 오프라인의 일상과 자본의 권력을 타고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숭고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상품이나 정치인들의 선거용 도구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하다.2026-05-27 | 조회 16,127 -
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각성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의도적 왜곡이다. 그러나 이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 전엔 삼성전자 파업이 없었는데, 왜 지금 노조 파업이 생길까?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2차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답변은 일단 유보했으면 좋겠습니다”_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뭘 유보해요? 노란봉투법 때문에 그런 거지 그거 알면서 그럽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성과급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 아닙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 5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의도적 왜곡 김성원 얘기는 모두 틀렸다. 그전에 파업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24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는데, 이때 핵심 요구도 불투명한 성과급 개선과 투명한 보상 체계 확립이었다. 과거에는 임금·노동시간만 쟁의 대상이었으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후 성과급과 경영 판단까지 파업 대상이 된 게 아니다. 성과급 보상은 대표적인 노동조건으로, 기존 노조법에서도 쟁의행위 대상이다. 2024년 삼성전자 파업 웹자보 지난 1월 대법원이 삼성전자의 성과급(OPI)은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평균임금에 해당하든 말든, 중요한 노동조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합법 파업 대상에 포함된다. 물론 대법원 판단은 자본의 이해에 종속된 판단, 자본에 유리한 판단일 뿐이며, 성과급은 노동력의 대가로 분명 임금의 일부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대상을 소폭 확대하긴 했다. △체불임금 청산 △해고자 복직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권리분쟁’ 사항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포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이 되려면 정리해고, 구조조정처럼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해야 한다는 제한을 덧붙였다. 노란봉투법 이후 모든 경영 판단이 파업 대상이 됐다는 주장은 과장과 왜곡일 뿐이다. 노란봉투법으로 자본가들이 손해배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도 거짓말이다. 자본가들은 여전히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정도 △손해에 대한 관여 정도 등으로 따져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이것이 노란봉투법의 큰 한계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파업은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노란봉투법의 주요 내용인 원청 사용자성 확대, 사용자 정의 확대와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개정 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이 실제로 관련 있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거짓 선동으로 노동자를 공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청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힘이 삼성전자 파업과 노란봉투법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이유는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성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이재명 정부보다 자신들이 자본의 이해를 더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공세를 펼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재명 정부의 태도는?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힘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는가? 김정관 장관은 정부 내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을 가장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재명 역시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자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힘을 싣고 긴급조정권 발동을 내비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이런 압박에 밀려 삼성전자 노조는 특별성과급 재원의 70%를 DS부문 전체에 배정하고, 30%는 메모리, 시스템 LSI(Large-Scale Integration), 파운드리 등 DS부문 산하 각 사업부에 사업부별 실적에 비례해 배정하라는 애초의 요구를 포기하고, 자본의 입장인 40% 대 60%를 수용했다. 노조는 애초부터 수많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꺼내지도 않았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권리를 대변할 생각이 없었다. 영업실적이 부진한 DX(스마트폰, TV, 가전제품) 부문의 성과급 요구도 배제했다. 사회적 고립과 정부의 압박에 밀린 노조는 DS 내부에서도 영업실적에 따른 격차를 최대한 벌리려는 자본의 의도를 뚫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상실한 삼성전자 노조들의 전략 부재는 노동자들 사이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낳고 있으며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렇듯 이번 투쟁의 약점과 한계는 분명하지만, 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과 엮으려는 시도나 긴급조정권 협박은 삼성전자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하려는 공격으로 국민의힘과 정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아니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했다. 노란봉투법이 생겼기 때문에 원청과 투쟁하는 게 전혀 아니다. 노란봉투법이 있건 없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것은 원청이다. 노동부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교섭 의제를 산업안전 문제로 축소하더라도, 수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그랬듯 말이다. SK하이닉스 하청 물류업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피앤에스로지스지회는 4월 30일 하이닉스 청주공장 3캠퍼스 앞에서 “하청노동자는 그림자가 아니다! 여기 사람 있다! SK하이닉스! 대화 좀 합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 지회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과 함께 반도체 생산의 찬란한 성과를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주장하며 직접적인 성과 차별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너무나 정당한 요구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든 사회적 부다.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가치사슬에 포함된 전 세계 모든 노동자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하청 노동자들도 분배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모든 정부는 어떠한 사회적 환수 방안도 없이 천문학적인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삼성과 SK하이닉스에 투입했다. 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역시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관한 정부 지원 의무화 △RE100 실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공급 및 설치비용 지원 △산업인프라 조성, 보조금 지급, 조세 감면 등 세제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신속처리 및 면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야말로 노동자계급 주도로, 막대한 이윤을 환수하고 이를 노동자 민중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반도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잠재력 이번 파업 과정에서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이 꽤 많이 알려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하청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 정규직 파업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세정, 유지보수, 폐기물 처리와 같은 업무들이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1년짜리 소모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 없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거대한 이윤은 불가능하다.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진 자들도 이 점을 느끼고 있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개정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을 연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뜬금없지만, 더 큰 저항, 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계급적 목적이 깔려 있기에, 그들은 맹렬하게 거짓 이데올로기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막대한 이윤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명분과 자신감을 준다. 비록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대단히 낮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이번 삼성전자 파업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도 싸워볼 만한 때가 됐다”라는 자각을 심어줄 것이다. 모두 합해 40만 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정규직들의 힘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그 투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 그 투쟁이 정규직 파업이 지녔던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단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붓자.2026-05-26 | 조회 16,274 -
국민배당금 논쟁은 무엇을 드러내는가‘국민배당금’ 제안은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이 누구의 것이며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촉발했다. 보수세력은 노동자 파업에는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성역으로 놓으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 제안은 다단계 하청구조, 만연한 노동재해, 기후·환경파괴, 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경향을 건드리지 않는다.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호황 앞에, 우리는 국민국가 내 분배론을 넘어 생산수단 소유와 통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국민배당금 제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약 57조 원,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7조 원을 기록했다. 이 막대한 이윤은 AI 인프라 구축과 연동된 수요 폭증의 결과다. 일부는 2026년 두 기업이 합산 600조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본다. 이 거대한 이윤은 AI산업의 ‘병목’으로 부각되는 메모리 공급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한 결과다. 초기 AI 인프라 투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AI 추론기능 부각에 따라 이를 처리할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이에 따라 병목, 즉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이 나타나고 있다. 5월 1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요지는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은 산업 기반의 결과이며, 그렇기에 그 과실 일부는 전 국민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국민배당금’ 제안이다. 국민배당금의 토대는 지속적 초과이윤에서 나오는 초과세수인데, 김용범의 글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다음날인 5월 12일 코스피가 장중 5% 폭락했고, 보수언론은 이를 김용범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공산당 본색’, ‘사회주의 급행열차’, ‘기업이익 배급제’ 등 색깔론 공세를 폈다. 청와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5월 13일, 이재명이 직접 김용범의 국민배당금 제안은 개인의견이고, 배당 제안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에 대한 것이며,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배당하는 방안”이라는 보도는 “음해성 가짜뉴스”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모두 노사관계라는 ‘사적 문제’인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서는 긴급조정권을 통한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이윤에 대한 국가 개입은 비난한다. 양자를 관통하는 믿음은 분명하다. 기업 이윤은 불가침이라는 것이다. 이윤을 위협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은 국가가 제한할 수 있지만,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국가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노동자의 요구는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집단 이기주의이나, 기업이 얻은 이윤은 사적 소유라는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 그 이윤이 국가의 공공재정 투입, 세제 혜택과 인허가 혜택, 연구개발 지원, 전력망 구축, 용수·토지 제공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국가는 이윤에 대해 개입해서는 안된다. 보수세력의 발작적 반응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자유주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조차 AI가 만들어낼 지대(rent)와 초과이윤의 집중을 그대로 둘 수 없으며 정상적인 자본수익률을 초과하는 이윤에 대한 과세와 토지·자연자원에 대한 부담금으로 초과이윤을 환수할 수 있다고 제기한다. 나아가 AI 기업의 부분적 국유화, 모두에게 AI기업 주식을 나눠주는 방안까지 거론한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체제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화에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지조차 초과이윤의 환수를 논하는 상황은, 한국 보수세력의 낡은 반공주의와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물신숭배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국민배당금,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국민배당금은 이런저런 기본소득론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소유와 통제에 대해, 생산과정에 대해 침묵한다.[1] 국민배당금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구축한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 양산, 반도체산업에 대한 국가적 자원 집중과 특혜, 기후·환경파괴적 생산은 하등 건드리지 않는다. 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실태는 그대로 둔 채, 그 불평등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더군다나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제국주의 패권경쟁과 군사AI 경쟁 속에서 전략물자로 격상된 반도체의 지위와도 결부되어 있다. 이렇듯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전쟁산업 확대의 결과이기도 하나, 국민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군사화 문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AI산업과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경쟁이 전쟁 위험을 높이더라도, 그렇게 발생한 초과이윤을 배당하면 된다는 식이다. 둘째, 국민배당금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초과이윤이 오로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은 국민경제 안에서 완결되는 산업이 아니며, 전 세계에 걸친 노동분업과 공동노동의 결과다. 한국 반도체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취한다면, 그것은 ‘한국인’만의 몫이 아니다.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원료 광물을 채굴하는 저임금 위험 노동, 공급망 하단에 위치한 각국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세계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자연자원 수탈의 결과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을 장악한 초국적 자본이며, 한국은 더 이상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 위치한 하청 생산기지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세계적 착취와 수탈의 산물을 국민국가 내부 분배 문제로 축소한다. 필요한 것은 ‘한국 국민에게 얼마를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은 물론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부를 왜 특정 자본이 전용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코노미스트>조차 ‘부분적 국유화’를 거론하는 형국이다. 셋째, 국민배당금 구상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허술하다. AI 인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 투자가 실제로 그만큼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AI 기술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막대한 설비투자가 이윤의 실현을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빅테크 기업의 선점 경쟁에 따른 공급 병목의 결과이며, 그 배경에는 격화하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있다. 물론 이런 이윤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공급이 확대되고, AI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빅테크의 투자 조정이 시작되면,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19세기 철도산업, 20세기 초반 자동차산업,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닷컴 열풍 등은 모두 광기어린 투자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연쇄적 파산과 거품 붕괴를 겪었다. 반도체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국민배당금 논쟁은 중요한 균열을 드러냈다. 반도체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뛰어난 경영 성과’만으로 포장될 수 없으며, 이윤에 대한 처분권은 총수와 주주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이 정당한 문제의식을 협소한 분배론으로 가둔다. 그 결과 국내 반도체산업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 재해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한 초과착취,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심화는 물론 세계적 노동분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수탈, 환경파괴는 건드리지 않은 채, 이를 용인하는 대가로 소액의 금전을 건넨다. 필요한 것은 국민배당금이 아니라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전략산업’은 사회 전체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국제연대 강화와 함께 AI·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중단, 반도체산업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노동시간 단축, 노동안전보건조치 강화, 전력과 물 사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 기후위기 대응을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누구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다. 해답은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계급의 산업통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에 있다. [각주] [1] “분배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고 거기에 중점을 두는 것은 도대체 잘못된 것이다. 소비수단의 그때그때의 분배는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의 귀결일 뿐이다 … 물적 생산조건들이 노동자들 자신의 조합적 소유가 되면, 오늘날과는 다른 소비수단의 분배가 나타난다.” 맑스, 「고타 강령 초안비판」2026-05-22 | 조회 16,054 -
사회적 대화, ‘들어가서 할 말은 하자’는 논리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1998년 같은 합의 형식을 취하건 2006년 같은 배제 형식을 취하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 역시 전혀 새롭지 않다. 노동운동을 대화라는 허울로 묶어두고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며,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개악을 관철하려는 시도의 반복일 뿐이다. 사진: 뉴스1 사회적 대화, 노동개악의 통로 김영삼 정권 이후, 정부와 자본은 종종 ‘경제위기 극복’, ‘고통분담’,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 지도부를 노사정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는 장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가 구조조정과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동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 ‘대화를 거부하면 노동운동이 고립된다’ 등등.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의 결과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법제화였고, 이 합의는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기틀을 만든 분기점이었다. 결국 1999년 2월,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2005-2006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추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수호 집행부는 출범 때부터 사회적 교섭을 강조했다.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 탄압, 철도노조 파업 3시간 만에 공권력 투입,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 파업 탄압,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긴급조정권 발동 등 노무현 정부가 파업을 철저히 탄압하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사정 대화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관철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동개악을 둘러싼 협의 틀로 작동했다. 2005년 1월과 2월,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방침’을 상정했지만 격렬한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3월 17일 중앙집행위원회는 대의원대회를 거치지 않은 채 노사정 교섭 추진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11월 비정규직 관련 개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2005-2006년 내내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로드맵을 노동개악 두 축으로 병행 추진했다. 비정규직법이 기간제·파견 노동을 확산하는 법안이었다면, 노사관계로드맵은 파업권과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이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운동진영이 요구한 것은 상시업무 정규직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폐지,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을 붙여 추진한 법안은 정반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간제노동을 일반화하고, 파견노동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법안은 2006년 11월 30일 국회를 통과했고, 비정규직을 줄이기는커녕 기간제·파견 노동을 합법적 고용형태로 고착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2006년 6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선진화방안, 즉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개악 종합 패키지였다. 2006년 9월, 정부는 민주노총의 뒤통수를 치며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긴급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어 로드맵에 합의했고, 이날 합의된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기존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필수유지업무제도 운용 및 쟁의기간 대체인력의 채용·하도급 허용 △필수공익사업장 확대(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 △부당해고 벌칙조항 삭제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을 60일에서 50일로 단축 등이었다. 1998년과 2006년 모두 사회적 대화가 노동개악으로 이어졌으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노사정위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에 합의했으나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합의는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음에도 정부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한국노총·경총과 전격 합의한 사건이었다. ‘개악안에 합의하지 않겠다’, ‘할 말은 하겠다’는 방침으로 참여한다고 해도, 정부와 자본은 사회적 대화라는 틀로 노동운동을 묶어두고, 합의든 배제든 노동개악을 관철했을 뿐이다. 사진: 매일노동뉴스 청와대 노동절 기념식, 어떤 요구를 말해도 그 본질은 노사정 화해의 장이다 결국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결과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합의건 배제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경험 위에서 2026년 노동절을 관통하는 정세를 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절을 계기로 ‘노동존중’ 외양을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의 틀로 끌어들이려 한다. 5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 노동절 기념식에 관한 언론 보도에는 대통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이 나란히 선 장면이 담겼다. 일부 동지들은 정부 행사 참여가 옳은 일이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투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교섭도 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전에는 대통령 앞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말했고, 노동절 집회에서는 광화문에서 7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 행사에 가서는 축사뿐만 아니라 서광석 열사 사망,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권, 자본의 원청교섭 거부 실태를 고발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비판했다.’ 물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실제로 그런 말들을 했다. 그러나 이런 반론 역시 새롭지 않다. 앞서 말했듯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핵심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는 모두 노동개악이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정부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노동조합 대표자가 ‘요구를 말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어떤 자리에서 이루어졌는가,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 배치되었는가다. 정부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적대하는 계급 대표자들을 모아놓고 노사화해주의를 설파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가 참여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것도 불과 11일 전 열사가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말이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된 논리도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정리해고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1998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청와대 노동절 기념식은, 국가가 ‘노동절’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포섭해 재구성하는 자리였다. 언론은 대통령과 경총 회장,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란히 선 장면을 담았다. 바로 이 장면이 정부가 의도한 정치적 효과였다. 정부는 노사정이 함께 박수치는 장면을 연출하며, 불과 11일 전 서광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지우고 자본에 대한 분노를 희석했으며, 열사의 죽음이 만든 계급투쟁 격화 소지를 제어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의 요구 또한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을 만나 ‘원청자본의 교섭해태 실태’, 심지어 ‘파견법·기간제법 폐기’를 말한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노동개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악과 노동탄압은 사회적 대화와 함께 온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 탄압, 주 69시간제 추진, 노조법 2·3조 개정 거부권 행사 등으로 노동운동을 정면 공격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노동운동 상층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여 상생의 이름 아래 노동개악을 추진한다. 2026년 1월, 정부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이어 3월 19일, 이재명은 정부 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이 원하는 고용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고가 죽음이 아닌 사회’, ‘전환의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등 정부의 언사는 부드럽지만, 그 방향은 지난 정부와 하등 다르지 않다. 이재명 정부도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유연안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와 전환배치, 직무·성과급을 확대하는 대가로 사회안전망을 일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본질은 더 쉬운 해고와 더 많은 비정규직이고, ‘사회안전망’은 이를 위한 부가조치일 뿐이다. 2026년 3월 19일 이재명 정부 1기 경사노위 출범식 이런 거시적 흐름은 주요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노동부 장관과 집권여당 대표 등이 요란하게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했을 뿐, 문제해결은커녕 장기투쟁을 낳은 악질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조차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이재명 정권은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투쟁을 탄압한다. 어디 화물연대 투쟁뿐인가.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공권력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했다는 죄목으로 고진수 동지가 구속당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재명은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요구까지 짓밟으며 택시노동자들을 외면했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일터기본법의 실체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을 노동법 밖에 놓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등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범주가 아니라 노동자성 인정이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전면 적용이다. ‘그래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터기본법은 노동권의 보편화가 아니라 차등화다. 이재명 정부 계획에 따르면, 한쪽에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적용받는 ‘진짜 노동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일터기본법을 적용받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2등 노동자들이 양산된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일하는 사람 사이의 위계, 노동자계급 내 위계를 더 촘촘히 제도화할 뿐이다.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사정이 대등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며 투쟁 대상을 흐린다. 노동자들이 원청자본을 향한 분노와 함께 ‘진짜 사장 나오라’라고 외칠 때,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해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자본에 맞선 투쟁이다. 대통령이 직접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고 말한 공공부문 원청조차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다. 누가 비정규직을 양산했는가? 누가 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배하면서도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다 죽음으로 몰았는가? 누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위장해 권리를 박탈했는가? 국가와 자본이다. 물론 노동자는 국가·자본과 대면할 수 있다. 그 대면은 계급투쟁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노사정은 애초 대등한 힘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경사노위 내 노동자 대표가 그 어떤 논리와 당위로 국가와 자본을 설득해도, 결국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힘이다. 기억하자. 1998년 당시 노사정 합의에는 △실업대책기금 조성 △해고회피 노력 △해고자 우선채용 같은 완충 조항도 포함됐지만, 정세를 규정한 것은 자본이 요구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도 마찬가지였다. ‘직권중재제도 폐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실상은 ‘필수유지업무제도’를 통한 파업 무력화였다. 노동자 대표가 회의장 안에서 아무리 효과적인 논리를 역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말이다. 그 말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계급투쟁이다. 민주노총은 2026년을 원청교섭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곧 한국 자본이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다단계 하도급체계를 계급투쟁으로 뚫어내겠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단절하지 않고 원청교섭 쟁취,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는 불가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거듭 파국을 낳아온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고 △원청교섭 쟁취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와 실질임금 보장 △청년일자리 창출 등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다.2026-05-19 | 조회 17,393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Ⅱ] 근로기준법·노조법이 '기본법'이다! - 일터기본법 제정에 반대한다‘일터기본법’은 권리의 보장이 아니라 권리의 그림자다. 사각지대 해소가 아니라 사각지대의 법제화다. 노동법을 확장하는 기본법이 아니라 노동자를 차별하는 기본법이다. 자본의 책임 회피에 국가가 합법의 도장을 찍어 주는 흐름에 맞서, 우리는 일터기본법 제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사진: 참여와 혁신 1. “새로운 노동”이라는 거짓말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일터기본법’)을 밀어붙이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이렇게 읊는다. “세상이 변했다. 플랫폼이 등장했고 ‘긱 이코노미’가 확산됐다. 프리랜서가 늘었다. 기존 노동법으로는 이 새로운 노동 형태를 포괄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그럴듯하지만, 자본의 책임을 가리려고 정성스럽게 만든 알리바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근로계약 관계로 일하던 노동자를 자본이 ‘외부화’해 만들어 낸 가짜 개인사업자다. 자본은 종속 관계라는 실질을 그대로 둔 채 형식만 바꿔치기했고, 노동법은 그 술수에 끌려다니며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바깥에 내다 버렸다. 플랫폼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노동법의 허술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처음부터 노동자성을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 조직된 노동일 뿐이다. 기술은 그 은폐를 한층 매끄럽게 다듬어 주었을 따름이다. 본질은 똑같다. 노동자를 ‘사업자’로 위장시키는 낡은 수법이다. 프리랜서노동은 또 어떤가. 더 이상 “자유로운 일”이라는 환상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이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권을 외친다. 어째서인가? 그 영역이 산업화되고, 자본의 맨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종속성이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새로운 노동 형태”라는 말 뒤에 숨은 실체는, 노동자성을 박탈하려는 자본의 집요한 시도가 빚어낸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다. 노동자가 노동자인지 아닌지가 모호해서가 아니라, 자본이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둔갑시키려 획책한 결과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법”을 만들어 “별도로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본의 공작을 국가가 승인하는 행위다. 2.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네 가지 핑계 노동법으로 이들을 포괄할 수 없다는 주장은 네 가지 핑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누가 이들의 노동으로 배를 불리는가? 특수고용·프리랜서노동자에게는 그들과 직접 계약을 맺은 기업이 사용자다.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플랫폼 기업과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용업체가 사용자다. 이윤이 흐르는 길을 따라가면 사용자는 반드시 드러난다. ‘사용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로 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일터기본법조차 ‘사업자’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지목하고 있지 않은가. 이름 한 번 바꿔 부른다고 책임이 증발하지는 않는다. “노동시간을 획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준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부와 입법기관의 책무다. 획정이 어렵다면 노동의 양태에 맞는 규율 방식을 법에 담으면 될 일이다. ‘기준 설정이 어려우니 노동법 밖으로 나가라’는 말은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노동자에 대한 배신이다. “지휘·감독 관계가 불분명하다.” 낡아빠진 인식이다. 오늘, 자본은 단지 작업반장이 옆에서 지시하는 방식으로만 노동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이미 오래전 공장형 직접 통제는 물론 노동과정 전반에 대한 유연한 통제를 도입했다. 건당 임금체계는 노동자가 스스로 채찍질하도록 강제하고, 알고리즘은 ‘자유롭게’ 일하는 노동자를 24시간 감시하고 평가한다. 낡은 지휘·감독 개념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본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무능이거나, 따라잡지 않으려는 회피다. “프리랜서들은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가장 악질적인 거짓말이다. 지금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은 정규직 고용과 나란히 놓인 대등한 선택지였던 적이 없다. 해당 직종 자체가 불안정 노동으로 통째로 메워져 있어, 그 직업을 갖는 순간 권리 없는 노동을 강제로 떠안게 되는 구조다. “자유”의 이면에 “권리 없음”이라는 형벌을 묶어 노동자에게 들이미는 이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결국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가로막는 것은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노동법 밖으로 이 노동자들을 내몰며 책임 회피를 제도화하는 국가와 자본의 의지와 기획이다. 3. 권리 차별의 제도화 - 근로기준법 바깥에 쌓는 장벽 일터기본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그 외의 노동자를 노골적으로 ‘갈라놓는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남녀고용평등법·퇴직급여보장법이라는 보호가, ‘일하는 사람’에게는 종이우산 같은 선언적 보호가 차등 분배된다. 법을 통해 노동시장을 ‘근로자’와 ‘노무제공자’라는 두 계층으로 갈라놓는 차별의 고착화다. 머지않아 이 법은 근로기준법으로 진입하려는 노동자들 앞에 가로놓인 벽이 될 것이다. 법원과 행정기관은 ‘기본법이 적용되는 일하는 사람’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를 갈라놓는 해석 기준을 신나게 쌓아 갈 것이고, 지금이라면 근로자로 인정받았을 노동자들이 ‘기본법 적용 대상’이라는 옆길로 밀려날 것이다. 판관들은 ‘어차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있지 않느냐’는 구실로 노동자성을 부정할 것이다. 분기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된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겪는 괴롭힘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규정 적용은 부정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무제공자’로 분리해 보호한 사례가 있다. 택배기사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은 부정하면서, 산재보험법상 ‘특수고용 특례’로 산재보상만 시혜처럼 인정한 사례가 있다. 노동자성의 본체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서 곁가지 권리만 부분 배급하는 이 흐름이, 일터기본법을 통해 전국적·전면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 법은 기본법의 원칙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본래 기본법이란 개별법의 확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등대다. 그러나 이 법은 거꾸로 개별법의 확장을 가로막는 방파제다. 일터기본법 제3조 제2항이 “다른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을 적용한다”고 정한 것은, 개별법 우선·기본법 보충이라는 전도된 구조다. 범위 설정도 기만적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말하면서도 정작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일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노무제공자)으로 대상을 좁힌다. 경제적 종속성을 핵심 개념으로 삼는 노조법상 근로자보다도 협소한 범위이며,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이 보장하는 자영노동자와 자유직업인을 아우르는 ‘노동자(Worker)’ 개념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내걸고 실상은 대상을 배제하는 명백한 입법적 기만이다. 사진: 민주노총 4. 실효성 없는 선언 일터기본법이 외치는 권리 보장은 껍데기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지만 사업주는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가벼운 권고만 받는다. 근로기준법이 괴롭힘 발생 시 사업주에게 조사·징계·피해자 보호 의무를 강제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보수지급, 계약변경·해지 제한, 불이익취급 금지 등 모든 권리조항에 벌칙도, 과태료도, 강제도 없다. 분쟁 해결은 ‘조정’이라는 가장 느슨한 방식에 의지하는데, 사용자가 조정을 거부하면 절차는 그대로 종결된다. 강제이행 수단 없는 권리선언은 법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기만이며, 노동자에게는 차라리 모욕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기본법이기 때문에 처벌조항이나 강제조항을 넣기 어렵다”고 둘러댄다. 그렇다면 묻자. 기본법과 함께 개별법 개정안을 묶어 패키지로 내놓으면 될 일 아닌가?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나중에.” 5. "선언이라도 하면 낫다"? - 2020년 산안법의 교훈 “일단 선언이라도 해 두면 개별법도 따라서 개정되겠지.” 안이한 낙관은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똑똑히 목격했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당시, 제1조 ‘목적’ 조항은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을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으로 바꿔 달았다.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까지 빠짐없이 보호하겠다는 거창한 선언이었다. 언론은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이 지켜진다’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6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조항은 단 4개다. 제5조, 제6조, 제77조, 제78조. 모두 선언적이고 추상적이다. 취객을 응대하고 고객의 욕설을 온몸으로 받아 내지만 감정노동자 건강장해 예방조치(제41조)는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위험한 작업 앞에서 멈춰 설 권리, 작업중지권(제52조)도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전속성 기준’에 따르면 앱을 두 개 사용하는 순간 산안법의 어떤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 무권리 상태로 추락한다. 법의 ‘목적’을 바꿔 보호 범위를 ‘선언’했지만, 지난 6년 동안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제도 개선은 단 한 글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죽고 다친 노동자의 이름만 차곡차곡 쌓여 갔다. 선언은 노동자의 무덤 위에 세워진 비석에 불과했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치료’다. 빈껍데기 입법을 성과로 포장하고, 그 가짜 성과를 명분 삼아 진짜 개혁을 무한정 미루는 패턴이 다시 반복되려 한다. 우리는 이 잔인한 동어반복을 더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6. 반복되는 역사 - 제2의 비정규직법 파견법은 중간착취 금지와 직접고용 원칙에 구멍을 뚫고 간접고용을 합법화하는 통로가 되었다. 도입 당시 ‘한정적·예외적’ 활용을 약속했으나, 결과는 제조업 사내하청과 간접고용의 일상화, 원청 책임의 증발이었다. 기간제법은 또 어떤가.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안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시고용’을 원칙화하고 비정규직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도록 규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근로기준법은 건드리지 않은 채 별도의 ‘기간제법’을 만들었다.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 전환”과 “차별시정제도”를 선전했다. 결과는? 2년이 차기 직전에 계약을 끊고 새로 뽑는 초단기계약의 전면화,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고용의 폭발적 확산, 해소되기는커녕 고착된 임금 차별이었다. 두 법의 공통점은 명백하다. 근로기준법의 원칙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 바깥에 따로 법을 만들어, 자본의 책임 완화 통로를 제도화한 것이다. 지금의 일터기본법은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새 범주를 마련해 한 단계 낮은 권리를 배급하려 한다. 근로기준법 바깥으로 밀려난 노동자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당신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대상인가, 아니면 그냥 자영업자인가.” 노동자, 일하는 사람, 순수 자영업자로 이어지는 단계적 탈락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일터기본법은 이 ‘강등의 기제’가 되어 자본의 책임을 완화한다. 사진: 오마이뉴스 7. ‘추정 조항’이라는 허울 함께 발의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다음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 정부는 이를 두고 노동자성 판단의 일대 진보라며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이 조문은 근로기준법 제104조(감독 기관에 대한 신고) 바로 다음에 온다. 근로자 정의(제2조)는 손대지 않고, 분쟁이 발생한 뒤에야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맡기는 장치다. 게다가 정부는 이 추정 제도의 적용 범위를 “민사소송”으로 한정한다. 노동 사건의 절대다수가 노동청·노동위 단계에서 종결되는 현실에서 이 추정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임금체불 한 건 이기려고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까지 밀고 갈 수 있는 노동자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임금을 다툴 때만 임금에 관하여, 노동시간을 다툴 때만 노동시간에 관하여, 해고를 다툴 때만 해고에 관하여 근로자로 ‘추정’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노동권 보장인가? 권리는 분쟁 앞에서 마지못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일터에서, 매일 작동해야 한다. 8.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 기본법이다 노동관계의 기본법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 이름표를 단 또 하나의 법이 아니라, 이 두 기본법을 현대화해 모든 일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끌어안도록 만드는 일이다. 일터기본법 제정을 당장 중단하라. 이 법은 노동법의 확장이 아니라 노동법의 후퇴이며, 노동자에 대한 배반이다. 근로기준법 제2조가 규정하는 노동자 개념을 확장하고, 제대로 된 노동자 추정 조항을 정의 자체에 새겨 넣어야 한다. 분쟁 단계에서 뒤늦게 작동하는 절차적 추정이 아니라, 일터에서 매일 작동하는 실체적 추정이어야 한다. 자본의 비노동자화 시도를 적극적으로 규율해야 한다. 이미 시행 중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ABC 테스트처럼,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명확하고 강력한 법적 지표를 법령에 담아야 한다. 이 기준의 경우 기업이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려면, △업무 수행에서 기업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롭고(A)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밖의 일을 수행하며(B) △독립적으로 해당 직업 또는 사업을 영위한다는 점(C)을 기업이 모두 입증해야 한다. 변덕스러운 개별 판결에 노동자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자본이 계약 형식을 왜곡하여 노동자성을 박탈하려 한다면 법이 단호히 막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자체의 보완도 미룰 수 없다. 초단시간 노동, 초단기 계약,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 구조, 다양한 고용형태에서 벌어지는 권리의 구멍 등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근기법을 더 촘촘하고 더 단단한 법, 모든 일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끌어안는 법으로 다시 써야 한다. 이는 ‘임금노동관계’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는 노동권 개념 자체를 새롭게 벼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이 권리를 반납한다는 뜻이 되지 않도록, 노동권의 외연 자체가 확장되어야 한다. 노조법 또한 마찬가지다.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을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의 ‘노동자(Worker)’ 수준으로 활짝 열어, 모든 일하는 사람이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할 권리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사용자 개념 또한 실질적 지배력을 휘두르는 자본을 빠짐없이 포착하도록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노동권의 진짜 보장은 제도적 시혜에서 오지 않는다. 단결과 투쟁의 권리를 누가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가에서 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다. 노동자의 이름을 ‘일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변두리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호명해야 한다. 노동자 정의를 그대로 좁게 유지하며 그 노동자가 아닌 이에게 권리의 부스러기를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이에게 노동자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따라붙는 온전한 권리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사진: 노동과 세계2026-05-13 | 조회 21,179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Ⅰ] 2026년 원청교섭 투쟁의 조건과 과제노조법 2조가 개정되었음에도, 하청노동자들은 다단계 하청구조 뒤에 숨은 '진짜 사장'을 상대로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야 한다. 이번 연속기고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는 순서대로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원청교섭 투쟁의 조건과 과제 △일터기본법의 본질 △7월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투쟁방향을 살피고자 한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1. 개정 노조법의 성과와 한계 2025년 개정 노조법의 성과를 살펴보자. 첫째,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하는 '사용자 개념 확대'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 2호, 사용자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가짜 사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비정규직노동자들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둘째, 노동쟁의 대상 일부 확대다. 노조법 2조 5호 개정에 따라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지위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 등에 대해서도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노동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상태로 규정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법률이나 단체협약에 따라 이미 결정된 권리의 이행을 둘러싼 분쟁, 즉 '권리분쟁'은 파업권 행사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노조법 개정은 기존 노조법이 쟁의행위 대상에서 배제해왔던 특정 권리분쟁 사안을 일부 포함해 노동쟁의 범위를 소폭 확장했다. 즉,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시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한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사안을 명시해 쟁의대상을 소폭 확대한 것이다. 셋째, 노조법 2조 4호 라목 삭제를 통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권 확대, 해고자와 퇴직자 등을 조합원으로 포괄할 단결권 확대다. 현행 노조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이를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았다. 이 조항이 노조법 2조 4호 라목이다. 윤석열 정권이 '화물연대는 노조가 아니'라며 공정거래법을 동원해 화물연대 파업을 탄압했듯, 노조법 2조 4호 라목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를 막아왔다. 또한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탄압에서 드러난 것처럼 해고자, 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사유로 한 탄압의 근거 조항이었다. 노조법 2조 4호 라목 삭제로 더 넓은 단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2022년 7월 23일, 옥포조선소 앞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사진: 노동과 세계 그러나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 첫째, 개정 노조법은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지 못했다. 또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노동자로 보는 '노동자 추정조항' 명문화에ᅠ실패했다. 주지하듯 화물노동자, 학습지교사, 택배노동자, 배달라이더, 대리운전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플랫폼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하면서도 법적 신분은 '개인사업자'로 취급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화물연대 탄압처럼, 국가와 자본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교섭을 요청해도 자본가는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요구가 노동자 추정조항 신설이었다. '일단 원청이 고용한 노동자로 보고, 자본이 노동자성을 부정할 경우 이를 증명할 책임을 자본에 지우자'는 요구였다. 이 조항이 빠짐에 따라, '나는 원청자본에 고용된 노동자'임을 입증할 책임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남았다. 더욱 근본적인 지점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너무 좁게 정의하고 있다. 자본은 오래전부터 ‘근로계약’이라는 형식을 우회해 노동자를 외부화해 왔다. △도급 △용역 △위탁 △플랫폼 이용계약 △프리랜서 계약 등 다종다기한 이름과 함께 노동자는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원청자본이 만든 업무체계 안에서 일하고, ‘운임’, ‘수수료’ 등 이름이 붙은 임금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에게 노동자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엄연한 노동자를 노동자 아닌 존재로 규정하고 국가는 그 형식적 계약관계를 핑계로 노동법 적용을 미뤄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노동자를 ‘별도 보호대상’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의 자체를 넓혀 이들을 노동법의 주체로 명시하는 것이다. 둘째, 사용자 정의 확대는 한계적이다. 개정 노조법은 사용자 범위를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개념에 따라 확대했으나, 명시적으로 '원청'을 '사용자'로 본다는 규정은 빠졌다. 이에 따라 '누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인가'를 둘러싼 공방은 필연이며, CU-BGF자본의 행태에서 보이듯 원청은 자신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임을 부인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미 그래왔듯, 원청은 하청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지휘-명령 체계를 은폐하며,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사용자성을 조직적으로 회피할 것이다. 개정 노조법은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올바르나 여전히 추상적 기준만을 제시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누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냐"를 두고 끝없는 공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교섭을 요구받은 자본가들 대부분이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사진: 금속노조 2. 원청교섭은 법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6년 3월 10일,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원청자본의 행보는 대략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사용자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 교섭요구 사실공고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것이다. 셋째, 교섭에 응하더라도 의제를 좁혀 투쟁을 제어하는 것이다. 만천하에 드러난 노골적인 사례가 서광석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BGF자본이다. BGF리테일은 CU편의점에 물류를 배송하는 화물노동자들의 운송료, 배송시간, 배송체계, 업무량과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도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화물노동자들은 일곱 차례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청은 계속 교섭요구를 무시했을 뿐이다. 심지어 서광석 열사 사망 이후에도 BGF 자본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열사 사망 이후 진행한 교섭조차 “긴급 협의”일 뿐이라며 원청책임을 회피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금속노조는 3월 10일부로 69개 산하 지회가 22개 원청자본을 상대로 교섭공문을 발송했으나, 교섭노조를 확정해 공고한 사업장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두 곳뿐이었다. 금속노조 원청교섭 사업장 중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노조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신이 교섭요구 사업장 노동자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사진: 금속노조 원청자본가들의 전략은 단지 ‘거부’에 그치지 않는다. 법 규정상 비정규직노동자와의 교섭을 완전히 거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노동·안전·보건 등 법이 강제하는 문제로 교섭의제를 제한한다. 원청자본이 생산과정, 임금, 고용, 노동시간 등 제반 문제를 지배하고 결정한다는 점은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진짜 사장과 가짜 사장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원청자본은 법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의제로 교섭을 축소하며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악전고투로 법이 바뀌었고, 최소한의 경로가 열렸다. 그러나 여전히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는 극소수다. 이렇듯 현 조건에서 원청자본에 대한 교섭의무 강제는 바뀐 법조문이 이루어주지 않는다. 결국 오늘의 투쟁이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실제로 무엇이 바뀔 것인지를 결정한다. 3. ‘악질사용자’ 이재명 정부는 하청노동자들의 원청교섭을 보장할 의사가 없다 서광석 열사가 사망한 4월 20일 당일,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제2조에 따른 교섭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규정하고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이는 화물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파업’이 아니라 ‘집단운송 거부’, ‘개인사업자들의 담합’이라고 규정하며 공정거래법을 동원해 화물노동자들을 탄압한 윤석열 정권과 하등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이재명 정권은 그 한계가 분명한 노조법 2조 개정안의 테두리를 넘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진출을 용인할 의사가 없다. 민주노총이 집계한 원청교섭 현황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4월 15일 기준, 민주노총 산하 단위노조 558곳이 원청 425곳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섭요구 사실공고를 이행한 곳은 30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노조가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제기해 사용자성이 인정된 이후에야 공고에 나선 곳들이었다. 4월 23일 기준으로는 571곳 원청 회사에 교섭요구 공문을 보냈지만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46곳에 그쳤다. 이재명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원청사용자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교섭을 강제하기는커녕, 복잡한 절차와 소극적 해석으로 자본가들의 교섭 해태를 부추기고 있다. 교섭요구, 교섭요구 사실공고, 교섭노조 확정공고, 교섭단위 분리, 노동위원회 시정신청, 노동부 판단지원위원회 검토 등으로 이어지는 절차는 노동자들에게는 끝없는 관문이다. 반면 원청자본에게는 책임을 부정하고, 교섭을 지연하고, 현장투쟁을 소진시키는 수단이다. 정부가 지배하는 공공부문에서도 이재명 정부는 악질사용자일 뿐이다. “공공부문 모범사용자가 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무색하게, 공기업 중 교섭요구를 공고한 기관은 두 곳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배하는 공공부문에서조차, 원청자본은 비정규직노동자와의 교섭의무 부정으로 일관한다. 이런 정부와 ‘대화’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계급투쟁일 뿐이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매일노동뉴스 4. 지금, 왜 이 험난한 투쟁을 해야 하는가 원청 대자본은 국가권력의 협력과 함께 위험과 부담을 하청자본으로 전가하고, 하청자본은 재하청자본으로, 특수고용노동자에게로 책임을 떠넘긴다. 원청 자본은 납품단가와 계약조건을 통제하면서도 실질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부정한다. 노동자는 원청이 만든 생산과 유통체계 안에서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하청업체 직원이거나 개인사업자로 취급된다. 이 구조에서 원청 대자본의 이윤은 늘어나고, 공급망 하단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임금노예 상태로 한정된다. 서광석 열사의 죽음은 이 구조가 낳은 참혹한 결과다. 열사의 죽음은 BGF라는 악질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대자본의 보편적 행위가 낳은 결과다. 서광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단지 BGF 자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다단계 하청구조 뒤에 숨어 나 자신의 고혈을 빠는 이 땅 자본가들에 대한 분노다. 그 분노를 모아낼 수 있다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대대적 진출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그렇기에 원청교섭 투쟁은 단지 개정노조법을 현장에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다. 원청교섭을 요구한다는 것은 다음 의문을 동반한다. 누가 내 임금을, 운임을, 수수료를 결정하는가? 누가 내 업무량을 정하는가? 누가 인력배치를 결정하는가? 누가 계약해지 여부를 결정하는가? 이 모든 과정 뒤에서 결국 누가 이익을 보는가? 이렇듯 원청교섭 쟁취 투쟁은 자본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다단계 하청구조, 그 속에 숨긴 산업과 생산에 대한 지배력, 생산현장 내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집단적 힘으로 강제하기 위한 투쟁이다. 원청교섭 투쟁은 자본이 공들여 구축한 이윤축적 체제에 대한 집단적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청자본가들이 교섭을 완강히 거부하며 여지조차 주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어렵고 험난하다. 그러나 투쟁으로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을 확장할 수 있다면, 그 파괴력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바로 지금, 목적의식적으로 원청교섭 쟁취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다.2026-05-08 | 조회 21,475 -
연서명은 민주적 토론의 수단이며, 운동의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정당하다올해 사업계획에 대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체회의를 앞두고,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사업계획에 포함된 OSF 기금 수령의 건에 대해 반대 연서명을 받았다. 이는 논의를 보다 폭넓게 촉진하고, 나아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더욱 폭넓게 조직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서명과 같은 수단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매개다. '압박'과 '동원'은 민주주의의 불가분한 요소다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련의 대의원들, 그리고 이에 동참하는 대의원 자격이 없는 평조합원들과, 조합원도 아닌 ‘외부인’들이 모여 현수막을 펼치고 피켓팅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선동발언을 한다. “회계공시 거부하고 자주성을 지킵시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 민주노조가 지켜야할 원칙입니다!” 한 대의원은 조합원 3명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대의원들 바로 앞에서 피켓팅을 하며 말을 건넨다. 어떤 이들은 대의원대회 좌석 하나하나마다 준비한 유인물을 배치한다. 이는 당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민주노총에서 벌어진 논쟁적인 사건들에 관한 행동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에게 회계공시를 강요하였는데, 민주노총 집행부 다수, 일부 산별노조는 이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이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회계공시를 받는 것은 민주노조의 자주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또 당시로부터 얼마 전인 2023년 12월,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가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 촉구’를 내걸고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했었다.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설립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해당 사안을 두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하고 싸워야 할 단결의 대상이 아닌 추방의 대상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의견을 담아, 175개 단체와 894명의 개인이 1월 19일 공동성명을 발행했고, 그 연장선에서 대의원대회 앞에서 피켓팅을 진행했다. 이러한 피켓팅을 보면서 민주노총 집행부, 건설노조 집행부, 회계공시 수용이나 건설노조의 이주민 단속촉구 집회에 찬성하던 대의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나갔을까? 아마도 적잖이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리 대인배라도 자신의 결정과 입장을 반대하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반대파들의 존재가 썩 편하기는 어렵다. ‘저 구호 하나에 담기지 않는 어려운 사정들이 얼마나 많은데…’ 회계공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방을 촉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는 것인데, 그런 본인들의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아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의원대회장에서 선동하는 모습을 보고 대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추진하려던 안건이 부결될까봐 걱정이 되고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예를 보자.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 이후 대선 시기,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즉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하고자 하는 입장을 가졌었다. 이는 중집 내부에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이에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이에 민주노총 내 일부 단위에서는 ‘민주노총이 즉각 지지후보를 결정해야한다’는 취지의 연서명을 받았고, 349명의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연서명을 모아 발표했다. 이 모든 행위는, 회의장(대의원대회, 중앙집행위원회 등)을 벗어나, 해당 사안에 대해 대중들의 참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대중동원(mobilization)’ 행위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상기하였듯 반대입장을 가진 단위들에게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닌가? 이것은 민주주의다. 정확히 이러한 동원과 압박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들이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매개다. 노동자 민주주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확대해온 역사였다. 운동 내부에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계급으로 조직하는 과정의 정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계급은 늘 자본의 독재 아래 살아간다. 자본가가 통치하는 모든 작업장의 기본 원리는 상명하복이며, 이런 환경 속에 보통의 노동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표현하는 법조차 잊어버린채로 살아간다. 노동자계급이 ‘쇠사슬에 묶인 노예’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대로 받고 살라’는 자본가의 독재에 맞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내린 결단에 따라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바로 노동자계급을 그런 존재로 조직해가는 운동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단결의 기구인 노동조합은, 그것이 민주노조라면, 의사결정에 있어 자본가들의 방식과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해야한다. 그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자유로운 의견표현이 전면적으로 보장되고, 서로 다른 의견이 끊임없이 경합하는 가운데 총의를 모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 시기의 단위노조부터, 혁명적 시기에 등장하는 노동자평의회까지, 일정한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운동기구는 불가피하게 대의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대의제 형식은 민주주의의 전면적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필연적 약점을 가진다. 예컨대 간부(집행부, 대의원 등)와 평조합원 간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부들의 의견으로 수렴되지 못하는 평조합원의 의견이 토론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노조 운동은 대의제의 약점을 보완하고, 직접 민주주의에 근접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수단들을 발전시켜왔다. 그런 기술적 수단들의 핵심은 논의가 상층 대의제 기구에 머물지 않고, 각 단위현장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 중집을 구성하는 단위들 중 전국결집 정파에서는 매 중집 때마다 ‘중집 스케치’를 SNS 채널에 발행한다. 중집에서 어떤 안건이 다뤄졌으며, 그 중 특히 주목해서 봐야하는 안건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예컨대 얼마 전 발행된 ‘0319 민주노총 중집 스케치’ 글에서는, 민주노총 정책실이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잠정합의해 온 합의안의 승인 여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소개한다. 앞면에서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와 관련한 협의 내용에 대해, 이것이 자본에게 원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며 격렬한 반대의견들이 제출되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뒷면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선거방침을 둘러싼 양측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신문’은 논의가 중집으로만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훌륭한 대의제의 보완물이다. 중집에서 진행되는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다수 조합원 대중으로 하여금 논쟁의 구도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피켓팅, 현수막, 연서명, 공동성명 발표, 안건발의 등도 그러한 기술적 수단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집행부를 상대로 항의농성을 하기도 한다. 이런 수단들은 특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때 활용되곤 한다. 예컨대 2020년 당시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통과시키려고 했을 때, 여러 단위가 민주노총 건물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중집 회의장에 들어가 피켓팅을 하며 사회적 합의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해당 사회적 합의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매출 급감 등 경영위기에 직면한 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고용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 계급의 이익을 저버리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현장 영상] 민주노총 강경파 ‘노사정 합의’ 반대…김명환 위원장 ‘사실상 감금’ - 한겨레 신문 결국 노사정 합의안은 대의원 과반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김명환 집행부는 사퇴했다. 당시 자본가 언론들은 ‘직선제로 뽑힌 위원장’의 결단을 ‘방해한다’며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 당시 논쟁은 자본가 언론들과 민주노조 운동 사이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자본가 언론은 김명환 위원장의 말을 활용해, “지금 반대파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오후까지 ‘노사정 합의안 폐기 및 대대 안건 부결’ 성명에 서명한 대의원은 전체 1,480명 중 과반인 810명에 달한다. 또 민주노총 부위원장 7명 중 6명, 16개 산별노조 중 9개, 16개 지역본부 전체가 반대하고 있다. 수많은 현장 간부들과 현장조직들이 여기에 합세하고 있다. 과연 누가 민주노총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가? 다수 간부들의 의지를 거역하고 대대를 강행해 야합안을 밀어붙이려 발악하고 있는 김명환 위원장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지를 모아서 민주노총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인가? 자본가 언론들은 말한다. “김명환 위원장은 직선제로 뽑힌 사람이다. 그런데 ‘꼬리’들이 이 ‘몸통’을 뒤흔들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꼬리’에 불과한 김명환 집행부가, ‘몸통’인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의 의지를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 공동성명 | 민주노총 임시대대, 압도적 부결로 민주노총을 바로 세워냅시다! 논쟁적인 안건에 따라오는 피켓팅, 연서명, 심지어 항의농성과 같은 행위들은 표면적으로는 상층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을 향한 호소이나, 본질적으로는 운동을 구성하고 있는 대중들을 향한 호소이다. “우리는 이 안건이 이렇게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동지들, 이 운동의 주인으로서 우리 운동이 이렇게 가도 되는지 판단해주십시오”라고, 대의기구에 속한 이들에게는 물론 전체 조합원 대중에게, 좀 더 넓게는 (노동조합 조직여부를 떠나) 계급 전체에 호소하는 행위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주인은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너르고 단단해지려면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서 OSF재단 기금을 받아 수입의 77%를 충당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업계획 건을 올렸을 때,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연서명을 추진한 것은 이런 운동의 민주주의 전통 위에서 택한 행동이다. OSF재단의 기금을 받자는 제안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중대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안건이라면 그에 걸맞게 격렬하게 논쟁하는 게 민주주의다. 우리의 논쟁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전체회의로 축소될 수 없다. 우리의 관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주체는 차별받고 억압받는 모든 피억압민중들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그리고 그 법이 미국에서처럼 트럼프의 집권을 막지 못하고 각 주의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불법화하는 걸 막지도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 아니라, 진정한 효력을 가진 법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차별금지법 운동을 향한 노동자민중들의 전면적 자기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의가 집행위, 또는 전체회의 구성원들을 넘어 대중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연서명이란 방식을 통해 이 논쟁에 입장을 정할 것을 호소한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여러 단위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주도해온 집행위원회가, 전진이 연서명을 받아 제출한 것이, ‘전체회의에서 여러 맥락의 의견개진을 어렵게 했으며’ 차제연의 ‘의사소통 체계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의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차제연 집행위 단위들이 그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투쟁해온 헌신과 노고를 존중한다. 특히 여러 성소수자 운동 단위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선봉으로서 온갖 탄압을 앞서서 견디며 투쟁해왔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운동이 자본이 자신의 지배를 감출 도구로 쓰이도록 두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이며, 이 논쟁을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대중들과 함께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서명한 개인과 단위들, 그리고 연서명을 추진한 전진을 ‘운동의 외부’로 호명하는 여러 입장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27개 연서명 공동발의단체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차별에 맞서 헌신적으로 투쟁해왔다. 예컨대 27개 공동발의단위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바로 지금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전진의 활동가를 포함해, 연서명에 참여한 많은 퀴어 당사자들도 있다. ‘OSF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손을 잡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또한 성소수자 운동의 일부다. 차별금지법이 '차별에 맞선 운동'이라면, 비록 그것이 직접적으로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투쟁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지라도, 차별에 맞선 투쟁을 해온 이들 모두 이 운동의 일부이다. 그래서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혁명과 민주주의 1917년 러시아혁명의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르포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작가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아래와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존 리드가 1920년 9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동방민중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갔는데, 존 리드의 동의 없이 지노비예프가 연설문을 감수하며 ‘계급전쟁(Class war)’을 ‘성전(Holy war)’로 고쳐쓴 것이다. 존 리드는 지노비예프에게 자기 글을 동의없이 고치지 말라고 요구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견이 없어지면 혁명은 죽는겁니다. 이견을 제기하는 게 혁명이니까! (when you purge the dissent, you kill the revolution. revolution is dissent!)” 지노비에프와 리드가 논쟁하는 이 장면은 영화적 재현일 뿐 실제 사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이 기사에선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 한다. 해당 장면에 뒤이어 곧바로 열차는 백군의 습격을 받아 탈선한다. 해당 장면은 나에겐 러시아혁명이 당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후퇴와 함께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 시기 러시아혁명의 심장이던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가 점차 열리지 않게 되었고[1], 볼셰비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을 겪은 뒤 당내 분파활동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통과시켰는데, 이는 이후 영구화되어 당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무기가 됐다. 즉 혁명이 스탈린 관료체제로 변질되고 퇴보하는 과정은, 곧 반대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전면적 개화는 어떤 모습일까? 상층 대의기구의 깔끔한 합의 아래, 대중들이 통일되고 절제된 요구를 내거는 모습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수백종류의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유인물이 광장에 휘날리고, 평의회와 같은 중요한 대의기구의 결정을 앞두고서는 대회장에서 오만가지 이견이 충돌하며, 그 혼란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판단을 내리는 것.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다수파의 의견이 결정되고, 그럼에도 소수파가 그에 반대할 선전선동의 자유를 잃지 않는 것. 그래서 경험과 실천 속에서 다수파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는 시험대에 오르고, 사태의 전개에 따라 소수파가 더 큰 동의를 얻으면 언제든 다시 다수파가 돼 집행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명의 모습이며,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노동자평의회 다당제의 모습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그런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 그것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능케할 것이고, 나아가 착취와 차별, 억압을 철폐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 [1] 초창기 전러시아소비에트 대회는 1년에 1회 이상 개최되었다. 그러나 1922년부터 2년에 한번 꼴로 개최되다가, 1931년 이후에는 4년 뒤인 1935년에 한번 열리더니, 그 다음 특별대회를 통해 해산돼버렸다. 1920년대 말 이래 소비에트 대회는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단 하나의 기권표도, 반대연설도 없었다. 스탈린이 주도하는 공산당이 경제 5개년 계획을 이미 집행하기 시작한 뒤, 소비에트는 이를 사후 승인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08 | 조회 22,097 -
노동개악 앞에서 노정협의체 참여,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는 스스로 무장해제하는가?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농성하던 세종호텔 노동자들과 연대 동지들이 집단연행 당하고 불과 9일 뒤,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가 2월 11일 이재명 정부의 노정협의체에 참여했다.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한 2년에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규제 완화 등 이재명 정부의 노동개악이 본격화하는 지금, 이는 정부에 노동개악을 합의로 추진할 여지를 주는 위험천만한 선택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정협의체 참여를 철회하라. 민주노총-고용노동부 노정협의체 발족식 사진: 노동과 세계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의 일관된 타협적 태도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25년 6월,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 내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시 지도부는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안건을 중앙집행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럴듯한 ‘연대’의 외피를 썼지만, 그 속내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기존 정치방침을 폐기하고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자는 안건이었으며, 민주노총을 민주당 2중대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였다. 애초 위원장이 제출한 이 안건은 강력한 반발로 부결되었다. 부결 후에도 양경수 집행부는 끝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민주노총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지지 후보 없음’ 방침을 결정했다. 이렇듯 이재명 지지 안건은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으나 양경수 집행부는 이를 밀어붙이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런 흐름은 대선 이후 이재명 정부에 대한 타협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세종호텔 노동자의 절규 위에 세워진 ‘노정 간 신뢰 회복’이라는 기만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이재명 정부가 ‘노정협의체’라는 손을 내밀자마자 이를 바로 받아들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번 협의체 참여에 대해 “노정 간 신뢰를 복원하고, 노동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소통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자평했다. ‘신뢰’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신뢰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정협의체 참여를 결정한 2월 11일로부터 불과 9일 전, 서울 명동 한복판 세종호텔 앞을 기억하는가?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은 이재명 정부의 경찰 병력에 의해 사지가 들려 끌려나갔다. 그들의 절규가 아직 길위에 남아있는데, 지도부는 그 폭력을 자행한 정권과 마주앉아 ‘노동의 미래’를 논하겠다고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짓밟는 정권과 악수하며 ‘파트너십’을 운운하는 것, 이것이 배신이 아니면 무엇인가? 어디 세종호텔뿐인가? 홈플러스 노동자들도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고,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며 청와대에서 농성하고 있다. 투쟁 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자본가 정권의 본능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지도부가 그 칼날 앞에서 투쟁 대열을 정비하기는커녕, 칼자루를 쥔 자들과 “책임 있는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이는 현장의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고, 정권에는 ‘대화하는 정부’라는 면죄부만 쥐여주는 꼴이다. 2월 2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폭력연행 사진: 세종호텔 공대위 이재명 정부는 이미 노동개악 추진을 본격화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발표한 성명서는 더욱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들은 “미국의 관세 압박, 산업 전환, AI 확산 등 대전환의 시기”를 언급하며, 이것이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지 기회가 될지는 정부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진해서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위기가 닥칠 때, 자본가와 그들의 정부가 선택하는 ‘해법’의 본질은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다. 지도부가 언급한 그 ‘복합 위기’ 속에서 자본은 생존을 위해 비용절감을 부르짖을 것이다. 그 비용절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로 ‘고용 유연화’라는 이름의 손쉬운 해고,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이름의 임금 삭감, 그리고 노동시간 연장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노동개악 추진을 본격화했다. 1월 29일 ‘노동구조개혁 TF’ 출범이 알려졌고, 해당 TF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한 2년에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과 맞물려 대대적인 노동개악 관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주노총이 “위기 극복에 함께하겠다”며 협의체에 들어가는 순간, 정부는 이미 절반의 승리를 가져간 것이다. 이제 정부가 추진할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은 “민주노총과 협의를 거친 합리적 대안”으로 포장될 것이다. 지도부는 지금 노동자들을 지키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 직면한 위기를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있어야할 곳은 투쟁하는 노동자 곁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는 호랑이를 잡을 무기를 내려놓고,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성명서에 적힌 “책임 있고 성실하게 협의에 임할 것”이라는 다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누구에 대한 책임인가? ‘국가 경제’라는 명분으로 포장될 자본의 이윤 보장에 대한 책임인가? 진정한 노동조합의 책임은 자본가 정부와의 협조가 아니라, 그들의 착취와 탄압에 맞서 단결하고 투쟁하는 데 있다. 지금 지도부의 행보는 그 모든 원칙을 허물고 있다. 뻔히 보이는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의 불구덩이 속으로 120만 조합원을 끌고 들어가는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 자본가계급과 한편이 되어 위기를 ‘관리’하려는 자들은 노동자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 민주노총이 있어야 할 곳은 따뜻한 정부청사 회의실이 아니라, 찬 바람 부는 세종호텔 농성장이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곁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기만적인 노정협의체 참여를 철회하라. “자본가 정권에 맞선 독자적 투쟁”의 깃발을 다시 들어라. 그것만이 다가오는 경제 위기의 파도 앞에서 노동자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2026-02-19 | 조회 13,9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