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신문 뉴스목록
-
[서평]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올여름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의 저자는 브래디 미카코다. 브래디 미카코는 1965년 생 일본인 여성으로, 1996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민 노동자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라는 책의 부제는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다. 베이비부머 세대란 1946~64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공식 집계로만 5,646만 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의 참상 위에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상당 기간 전후 호황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이윤율 하락으로 전면적 경제위기에 빠져들기 전까지 말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자본주의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경험했던 세대다. 이 세대가 가졌던 정서를 영국 록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시(노동계급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는 이렇게 표현한다. “잉글랜드는 나를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 술과 노름에 중독되는 것만 주의했다면, 성실히 일해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던 세대다. 젊은 날 심취했던 록 음악과 히피 문화란 바로 그 틀에 박힌 삶이 가져다주는 지루함에 대한 반항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신자유주의 이후 전반적 복지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 세대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지표들을 가지고 있다.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시 대표적으로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어두운 조명, 불결해 보이는 카펫, 가죽 의자와 당구대가 뒤엉켜 있는” 저 유명한 펍(pub)에서 축구 중계를 보며 맥주를 들이붓는 잉글랜드 아재들을 쉽게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젊은 세대는 술 자체를 먹지 않는다고. 영국에서 펍(pub)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브래디 미카코는 영국에서 “알코올을 둘러싼 상황 변화가 어떤 면에서는 세대론이나 계급론보다 더 선명하게 저변 사회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술을 멀리하는 것을 두고 ‘문명의 퇴보’라 개탄했던 한국의 어느 아재가 떠오른다. 물론 나 역시 술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정치토론을 했다는 어느 젊은 동지의 말에 적잖은 문화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영국에서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계급이 새삼 주목을 받았던 것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문이다. 그들 상당수가 브렉시트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대다수 젊은 세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브렉시트 찬성을 인종차별이자 경제적 자해 행위로 여겼다. 젊은 세대에게 베이비부머 세대는 좋은 시절에 태어나 누릴 것은 다 누려놓고(“좋은 시절에 섹스도 많이 하고 좋은 음악을 듣던 사람들”), 이제 뒷세대의 앞길을 막은 대책 없는 세대로 취급됐다. 젊은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브렉시트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 같은 젊은이를 향해 세운 가운뎃손가락이었다.” 브래디 미카코는 주변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한 정치적 맥락이 무엇이었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아가 인간에 대해 지닌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노동자들 사이에 세대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연대의 희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연 작가의 내공이 만만찮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자랑이었던 NHS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계급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EU 탈퇴파가 되었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후 호황에 기반했던 복지국가가 70년대 경제위기 이후 무참히 파괴됐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12년 개최된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재들일수록 최근의 기억보다 오래된 과거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미스터 빈’을 연기한 로언 앳킨슨의 명연기도 화제였지만, 간호사 복장을 한 600여 명의 무용수들이 320개의 환자용 침대를 끌고 나와 스타디움 한가운데 횃불로 ‘NHS’를 수놓았던 장면도 큰 화제가 되었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노동당 정부 시절에 탄생한 영국의 무상의료체계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올림픽 개막식에 이를 자랑거리로 삼았을 만큼, 누구나 치료비 없이 무상으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NHS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긍지였다. “영국 사람들은 미국 등의 나라에서 의료보험 문제로 다투면 늘 ‘야만인들이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영국은 소득, 인종, 사회 계층 등과 관계없이 누구든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평등한 의료제도를 70년 동안이나 유지해온 세련된 나라라고 생각했고 이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 위기에 맞닥뜨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공격을 시작하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NHS는 말 그대로 껍데기뿐인 제도가 되었다. NHS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곧바로 전문의를 만날 수 없다. 우선 동네마다 설치된 진료소에 가서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에게 진찰을 받은 이후, 일반의가 소개장을 써주면 비로소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계속된 긴축 재정으로, 일반의를 만나기 위해서 한 달 이상의 예약 기간이, 다시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재 NHS의 실태란다. 이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영국인들은 민간 의료 시설(‘프라이빗 private’)을 이용하고, 돈이 없는 이민자들만 NHS를 이용하는 형편이다. “NHS 대기실에는 이민자들이 가득하다. NHS가 이민자들에게 공중 납치당했다.” 한때는 복지국가의 상징과도 같았던 NHS가 인종차별과 혐오를 낳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극우파는 “브렉시트를 하면 일주일에 3억 5,000만 파운드씩 나가는 EU 분담금을 NHS의 자금으로 돌릴 수 있다”라는 가짜 뉴스를 퍼트렸고, 이것이 노동자들 사이에 상당히 먹혀들었다고 한다. "유럽연합 대신 NHS에 자금을" - 브렉시트 찬성 진영 광고버스. 출처: getty images 브래디 미카코의 남편(그 역시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계급이다)은 아직 NHS가 완전히 망가지기 이전, 무상으로 암 치료를 받고 생존했던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두통 증상으로 암센터에서 다시 진료를 받으려 하니 이제 9주를 기다려야 한단다. 놀란 브래디 미카코가 민간 의료 시설을 이용할 것을 권유하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한다. “NHS를 잃는다면 우리는 영국이 복지국가였던 시절의 유산을 전부 잃어버리게 되는 거야. 대처한테 지는 거란 말이야.” “자기 건강과 돈 중에 뭐가 더 중요해?” “그러니까 이건 건강과 돈만의 문제가 아니야. 더 큰 거라고. 나는 대처한테도, 글로벌 자본주의한테도 질 수 없다고. 물론 가담하지도 않아.” 각자의 방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자존심을 지키는 아재들 브래디 미카코의 남편처럼,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이 젊은 날 경험했던 복지국가의 유산이 상실되는 것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1958년생 노동자 스티브는 노동자들이 살만한 시절(정확히 말하자면 일을 안 해도 실업수당이 충분히 나오던 시절), “할 일이 너무 없어서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고 특정 분야에 별다른 쓸모도 없는 지식을 잔뜩 쌓는 오타쿠”, 아니 “아마추어 연구자”다. 스티브는 긴축 재정으로 동네의 도서관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코피를 흘릴 정도로 분노한다. 지역 정부는 도서관을 폐쇄하고 이를 어린이 놀이방 한구석의 도서 대여 서비스로 몰아넣는데, 스티브는 억지로라도 공공 도서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겠다며 매일 어린이 놀이방으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스킨헤드의 험상궂은 스티브는 동네 꼬마들에게 부활절 달걀을 선물 받는 할아버지가 된다. 스티브는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가 가진 모순된 속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한편으로 스티브는 “이민자가 너무 늘어나 학교와 병원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영국은 이민을 통제할 수 있는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던 EU 탈퇴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티브는, 중국인 이주민 주택에 누군가 인종차별 낙서를 남기자 “다시 잡화점 주인(이주민)이 칼에 찔리던 시절로 퇴행하는 짓은 용서할 수 없다”며 야간 순찰대를 조직해 이주민을 보호한다. 1955년생 택배 기사 사이먼은 런던에서 개최된 트럼프 반대 시위의 맨 앞줄에 참석해 일약 동네의 스타가 된 인물이다. 2018년 트럼프가 미국과 영국의 통상 교섭에서 NHS도 의제에 오를 것이라 발언하자 런던에서는 25만 명이 참가한 거대한 항의 시위가 개최된다. 사이먼은 시위대의 맨 앞줄에 서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의회광장으로 나갔다. “우리의 NHS를 내주지 않겠다”는 플래카드를 들고서. 사이먼 역시 모순적 인물이다. 사이먼은 입버릇처럼 “젊은 세대와 이민자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며 노동조합의 약화 원인을 이주민에게 돌리는 인물이다. EU 이민자들이 “영국 국내 노동자의 대우와 임금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그를 열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먼은 정작 자신의 젊은 조카가 연인인 프랑스 여성과 함께 난생처음 파업에 ‘데뷔’한다고 하니 기뻐서 플래카드를 함께 제작한다. 출처: 출판사 제공 카드 리뷰 사이먼의 조카와 연인은 웨더스푼이라는 술집 체인에서 일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 사이먼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은 “커뮤니티센터 구석에서 따지기 좋아하게 생긴 아저씨가 전단을 돌리는 이미지”이거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제 이들 젊은 세대에게도 파업은 뭔가 ‘힙(hip)’한 것이 됐다. “그런데 파업 말이야. 좀 새롭다는 느낌이야.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연설 따위는 촌스럽지만 일제히 노동을 거부한다니 완전 멋져!” 청년층 사이에서 ‘사회주의(socialism)’가 “새로운 밴드 이름이나 제일 잘나가는 클럽 이름처럼 멋지게 들린다”고 하자, 사이먼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 나라는 부유한 녀석들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우리한테만 ‘먹느냐 먹히느냐’의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 부유층의 ‘요람에서 무담까지’는 정치에 의해 잘도 보호받고 있지. 그 녀석들한테만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샛길을 마련해주고, 규제를 완화해서 장사하기 쉽게 해주었지. 무슨 실패를 해도 그 녀석들한테만큼은 ‘자기 책임’이라고 안 해. 무슨 짓을 어떻게 하든 정부가 뒤를 다 닦아주는 거야. 금융 위기 때도 그랬잖아. 은행을 구한 건 시장이 아니라 정부였다고.”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향해 브래디 미카코는 세대 간 갈등, 정주민 노동자와 이주민 노동자 사이의 갈등의 본질이 결국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음을 노동자들의 일상을 통해 드러낸다. 물론 이를 단지 ‘긴축재정’ 정도로 표현하고 있지만 말이다. “‘자기보다 이득을 보는 사람’을 온 힘을 다해 비난하는 것이 긴축 시대를 사는 이들의 마음가짐이라면, 그 표적은 외국인, 생활 보호 대상자, 싱글 맘 등이 될 것이다. ‘좋은 시대를 산 베이비부머 세대’도 그 한 가지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브래디 미카코는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계급이 가지는 독특한 문화적 지표를 강조하는 것은 가난한 계급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한다. “노동계급 안에는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겪은 공통의 경험이 이들을 같은 계급으로 만든다. 이들이 겪은 같은 경험이란 보수당의 긴축재정으로 공공서비스와 복지가 삭감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노동조합의 약화로 기업의 힘이 비대해진 현 상황에서 악화된 고용 조건과 임금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점 등일 것이다. … 외국인 노동자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계급을 경제적 계층이 아닌 문화적 계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정치 세력과 언론이다.” 영국의 이야기지만, 자본의 고도성장기를 거쳐온 한국의 중장년 세대가 젊은 세대와 겪고 있는 세대갈등과도 무언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 정작 사회민주주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체제 위기와 개량은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이 명백히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사회민주주의를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과 구별되는 진보정치 노선이라 제창하는 이들이 있다. 부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시대는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2022-10-29 | 조회 2,790 -
플랫폼 자본, 이제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한다5일 하고도 반나절. 지난 10월 15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 먹통이 완전히 복구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4,700만이 이용하는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페이, 카카오메일, 심지어 택시 10대 중 4대라는 카카오택시까지 멈췄다. 그 거대한 플랫폼이 백업도 없이 운영되었다니 놀라운 일이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사태 자체가 유야무야 잊히는 상황이다. 사태 후 며칠간 감소하던 카카오 이용자는 불과 3일 만에 회복됐다. 대중이 카카오 플랫폼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카카오가 바로 지금 지배적이기에, 대중은 카카오를 떠나기 어렵다. 소위 락인(lock-in) 효과다. 일러스트: 경향신문 엄연히 ‘사유재산’ 입니다만 돌아보자. 화재 발생 이틀 뒤, 윤석열은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입에서 오랜만에 맞는 말이 나왔다. 이와 함께 윤석열은 카카오를 국가재난관리체계에 편입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재 자율규제 혹은 사후점검 대상인 부가통신서비스가 재난관리 대상이 되면 데이터센터 운영과 사이버보안 관련 점검을 받아야 한다. ‘여태 그런 점검도 안 받았나?’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조치다. 아니나 다를까, 엄연히 사유재산인 카카오에 대해 이런 규제가 적절하냐는 반발이 나온다. 이미 2020년에도 비슷한 법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당사자들이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해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 발의된 일명 ‘데이터센터법(방송통신기본법 개정안)’도 다시 발의된 상황이지만, 사태가 이대로 잊힐 경우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생하는 플랫폼 전 국민이 쓰는 플랫폼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공공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독점’이 문제라고 보고 대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용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의 본성상, 단일플랫폼 즉 독점이 더 큰 편익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상대방도 쓰고, 나도 써야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대여섯개 메신저가 경합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상대방이 어떤 메신저를 쓰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플랫폼이 아니다. 문제는 독점이 아니다. 우리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독점’이라면 반대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문제는 통제받지 않는 플랫폼, 즉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용자에게 기생하는 플랫폼 ‘자본’이다. 그렇다면 플랫폼을 공공재로 바꾸면 어떨까. 카카오뿐 아니라 배달의민족을 비롯한 온갖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은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수수료와 광고수입을 얻는다. 플랫폼 자본이 축적하는 이윤의 본질은 지대다. 플랫폼 자본은 혁신의 이미지를 내걸지만 실상 그 어떤 새로운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면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임금과 고용안정, 노동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다. 통제운동, 사유재산과 기업비밀이라는 방패를 넘어 카카오는 통제받지 않는다. 우리는 카카오가 전 국민 개인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른다. 사태 전, 서비스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몰랐다. 통제받지 않는 자본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자본은 ‘사유재산’과 ‘기업비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노동자 민중의 통제를 거부한다. 그러나 바로 그 사유재산과 기업비밀이 대중의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이를 용인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통제운동이 필요하다. 플랫폼을 공영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임금과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고, 이용자도 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택시노동자, 배달노동자도 수수료에서 벗어나 과속-과로운전을 끝낼 수 있다. 카카오가 분산 서버도 없이 이윤을 탐한 결과 ‘사태’가 났다. 거대 플랫폼 자본이 ‘이렇게 허술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자본의 목적은 결국 이윤일 뿐 공공의 안녕이 아니다. 플랫폼은 공공 소유여야 하며 그 운영은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플랫폼 사회화, 노동자투쟁과 함께 나아가자 카카오의 대응이 워낙 부실했기에, 이용자들이 느끼는 분노는 컸다. 그러나 투쟁 없는 여론은 식기 마련이다. 플랫폼 사회화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실현할 투쟁이 필요하다. 이미 배달노동자, 대리운전 노동자, 택시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플랫폼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노동3권, 생활임금과 고용안정 보장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플랫폼 자체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사진: 라이더유니온2022-10-28 | 조회 2,007 -
레고랜드 사태가 드러내는 것2022년 10월 23일, 정부 경제정책 수장들이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50조+α 유동성 공급계획을 공개했다. 50조원, 코로나19 유행 초입인 2020년 3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비상경제조치 규모와 같다. 그런데도 자본시장은 불안에 떤다. 알려졌듯 비상상황을 촉발한 계기는 ‘레고랜드’ 부도 위기다. 굵직한 재벌계열사가 망한 것도 아니고, 놀이공원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져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김진태는 억울하다. ‘재정자립율 전국 최하위, 강원도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자 결단했을 뿐인데, 왜 내가 국가경제를 파탄 낸 주범이 되어야 하는가?’ 경과를 보자. 놀이공원이 금융시장을 뒤흔들기까지 - 기능하지 않는 최종대부자 10년 전 강원도는 테마파크 개발사업을 벌이는 영국 ‘멀린그룹’과 합작해 ‘강원중도개발공사(당시 LL개발)’라는 시행사를 세워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 중인 2014년,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공사는 3년 지체 후 2020년 개장을 목표로 재개되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공사는 다시 늦어졌고 결국 레고랜드는 2022년 5월 1일, 애초 목표보다 7년 늦게 개장했다. 사진: 레고랜드 코리아 지체를 거듭하며 빚이 늘었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사업비 4,500억원 중 2,050억원을 채권발행으로 조달했고, 그 지급보증은 강원도가 했다. 즉, 개발공사가 발행한 채권은 지방정부가 보증을 서는 최고등급 국공채였다. 개발공사는 입장료 수입과 주변 개발이익으로 빚을 갚을 구상이었다. 전형적인 부동산 프로젝트 금융(PF)이다. 우여곡절 끝에 레고랜드가 개장하고 5개월여가 지났다. 이제 공사비를 갚거나, 채권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9월 28일, 강원도지사 김진태는 채권 만기연장을 하루 앞두고 법원에 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따져보니 중도개발공사 부채 2,050억원 중 412억을 자체 상환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즉, 강원도 빚을 늘리느니 개발공사 자산을 팔고 손을 털기로 했다.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채권자들은 원금과 이자를 받기는커녕 망한 회사의 주주가 된다. 불과 1주일 전 A1등급 채권은 D등급으로 수직 낙하했고, 10월 5일 부도 처리됐다. 사진: 강원일보 레고랜드는 강원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채권금리가 오르던 차다. 즉 빌릴 사람은 많은데, 돈 떼일 위험에 빌려주는 사람은 적어 자금조달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상황에서 지방정부, 즉 국가가 보증한 채권마저 부도가 났다. 그렇다면 기업이 발행한 채권은? 투자자들은 공포에 빠졌고 자본시장은 얼어붙었다. 기업어음 금리 추이 (2022년 1월 초 - 2022년 10월 말. 출처: 한국은행 통계시스템) 레고랜드 사태 후 한화솔루션, LG유플러스, 한진택배 등 대기업 채권마저 유찰됐다. 롯데건설은 돈 구할 곳이 없어 롯데케미칼에 돈을 빌렸고 건설사 연쇄부도설은 금융당국의 ‘루머 엄단’ 방침에도 여전히 시중에 나돈다. 한전, 가스공사, 부산교통공사, 인천도시공사, 인천공항공사 등 공사채도 유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르던 채권금리가 단기간에 치솟았음은 물론, 치솟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채권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이 은행창구로 몰리며 대출금리도 함께 치솟고 있다. 레고랜드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정부도 50조원짜리 대책을 내놓았는데? 문제는 레고랜드 같은 부동산PF 사업이 강원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밝힌 2022년 6월 기준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12조원에 달한다. 올해 말 만기가 도래하는 PF유동화증권 발행 잔액은 27조원에 달한다. 당장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며 역대 최대 재건축단지 둔촌주공조차 자금조달에 실패했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2,500조원 규모 한국 채권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줄이 마르던 차에, 레고랜드라는 작은 불씨가 거대한 인화물질 더미로 던져진 셈이다. 50조원+α로 위기 대응? 정부가 50조원+α 유동성 공급계획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사들인다고 해도 불씨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찬찬히 살피면 정부 재정으로 50조원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자금이 50조원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10월 2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표문 역시 다음과 같다. “기존 시장안정조치에 더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α 규모로 확대하여 운영하겠습니다.” 따져보자. 10월 23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50조원의 구성은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 매입과 P-CBO(회사채 유동화증권) 발행 확대 16조원 △증권사 지원 3조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자 보증 지원 10조원이다. 이중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은행·증권사 등 83개 금융기관이 출자해 만들어진다. 곧 정부자금도 아니고, 즉시 투입되는 여유재원 역시 1.6조원에 불과하다.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여력은 기존 5.5조원에서 10조원으로 4.5조원 늘렸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P-CBO 신규발행 역시 기존 2.6조원에서 5.6조원으로 3조원 늘렸을 뿐이다. 여기에 △증권사 지원 3조원 △PF사업자 지원 10조원을 합해도 정부자금은 총 20조5천억원 들어갈 뿐이다. 더군다나 주로 은행자금으로 만들어지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 펀드출자금 마련을 위한 은행채 발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날마다 치솟는 채권금리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즉, 정부는 채권시장을 진정시키려 은행자금을 끌어오고자 하나, 은행도 채권시장에서 빚을 내야 한다. 은행이 채권발행을 늘리면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는 자금조달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행들이 채권발행을 자제하며 당분간 정부에 협조한다고 해도, 자본시장의 전반적 위기 속에 그 협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상황을 종합할 때, 윤석열 정부는 이자율을 올리면서도 양적완화를 진행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로 몰렸다. 44일 만에 파산한 영국 트러스 정부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을 앞세우는 정부는 아직 그 난처함이 크지 않다고 실제로 판단하고 있거나, 적어도 대외적으로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한다. 현 위기에 대한 철저한 무능 혹은 가당치 않은 허세, 혹은 양자 모두다. 김진태는 강원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위기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금리, 물가, 환율 모두 오르는 위기상황에서 마땅한 방법을 찾기도 어렵다. 더구나 이자보상배율 3년 연속 1미만인 한계기업이 5년 사이 두 배로 폭증한 상황에서(2022년 8월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과잉자본 청산을 영원히 유보할 수도 없는 구조적 조건이다. 그래서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우량기업들이 채권을 사달라며 전에 없던 고금리를 내걸어도, 유찰의 연속이다. 정부대책 발표 이후에도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차(스프레드)는 여전히 2009년 이후 최대로 높다. 오늘도 자금줄이 말라간다. 파산의 공포가 시장에 드리워져 있다. 이렇듯, 외양은 윤석열 중앙정부가 김진태 지방정부를 꾸짖으며 사고를 수습하는 형국이나, 중앙정부도 현 위기를 과소평가하고 있음은 물론, 대응에도 실패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10월 25일, 대통령이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곳곳에서 강조한 것은 ‘재정건정성’이었다. “건전재정 기조로 내년 예산을 편성하기로 확정한 바 있습니다. 내년도 총지출 규모는 639조원으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예산을 축소 편성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와 종부세 등 5년간 60조원의 부자감세를 밀어붙였고, 정작 이 위기에 확대해야 할 공공임대주택 공급예산은 5.7조원이나 삭감했다. ‘작은 정부’와 ‘낙수효과’라는 ‘신념’의 산물이다. 돌이켜보자. 김진태의 레고랜드 회생신청 역시 강원도 재정건전성을 위한 신념과 충정의 산물이었을 따름이다. 춘천의 김진태, 용산의 김진태. 그리고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을 기조로 ‘제2의 대처’를 꿈꾸며 야심차게 출발해 450억 파운드(약 70조원) 부자감세안을 내놓은 후 최단기간에 퇴진한 영국의 김진태, 리즈 트러스 정부까지. 오늘도 수많은 김진태가 자본주의체제 안정화에 실패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희극적 실패. 위기심화의 전형적 징후다. 어느새 국가를 대표하는 무능한 인물들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체제내적 위기관리 수단이 없기에 이 인물들이 실패하는 상황이다. "국가를 운영하지 않는 방법" - 10월 1일자 <이코노미스트> 표지 격돌에 대비하자 모든 곳에서 위기 심화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체제가 스스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지금, 위기의 비용과 고통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될 것이다. IMF가 10월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 제목은 ‘생계비 위기에 대처하기(countering the cost-of-living crisis)’였다. 연대의 확장과 단결의 강화로 자본주의 체제를 겨냥한 큰 싸움을 준비할 때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그 과제에 충실하고자 한다.2022-10-27 | 조회 1,993 -
[출범축하 기고 - 조돈희]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조직출범에 부쳐1987년 이후 ‘사회주의 정치조직’ 또는 ‘진보주의 정당’들이 노동자 민중들에게 뚜렷한 존재감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대감조차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와 노동자 대투쟁의 폭발로 힘을 얻은 진보정치세력과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노동자계급에게 희망을 얻어 지역과 공장에서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근본변혁을 위한 활동에 주력해 왔다. 물론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현장을 떠난 정치세력도 많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굳건하게 버티며 활동가들을 재생산해내면서 지역과 현장을 지키는 많은 운동가와 정치세력들이 끈질기게 ‘생존’해 있다. ‘전진’에 참여하고 있는 동지들도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1987년으로부터 35년이 지난 현재 우리들(혁명적 사회주의부터 진보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냥 ‘생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동지들은 ‘생존’하는 것만을 넘어 체제를 뒤흔들 세력 구축을 위해 ‘전진’을 결의한 것인가 생각해 본다. 2000년 1월 30일에 민주노조운동이 일구어낸 노동자 정체세력화의 실체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었다.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 정당이었지만 노동자계급이 당의 주체였고 노동자들로부터 기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반면,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치세력들(나도 이에 포함된다)은 이와는 다른 대안적 노동자 정치세력으로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보여주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세력 확장에도 실패했다. 노동자 계급투쟁에의 열정과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랬을까? 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위협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까? 자본가계급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과거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 건설을 꿈꾸진 않는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오히려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이 구축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지향은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질서 내에서 경쟁하는 의회주의 정당 건설과는 거리가 멀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성장은 노동자 민중과 함께 투쟁함으로써만 가능하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노동자 민중들 뒤에 있지 않다. 그들의 앞에 있거나 그들의 속에 있다. 그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제언컨대, 이제 ‘전진’은 앞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아직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민주노조를 이끌어갈 중심 주체로 나서기를 멈칫해선 안 된다. 민주노조 선거를 통해 집행부가 되어 ‘제대로 된’ 민주노조운동이 무엇인지 보여 줄 순 없을까? 아직도 노조를 기피하거나 노조가 무엇인지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불법 무한 착취가 가능한 공장들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전 세계 노동자들이 뒤섞여 무한 착취를 당하며 일하는 공단을 찍어서 끈질긴 조직화에 조직의 힘을 쏟아 부을 순 없을까? 내가 사는 곳은 울산이고, 나는 현대중공업 해고자 출신이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현대자동차 4공장 정문 앞쪽에 있다. 나는 현대중공업에서 일찌감치 쫓겨나 내가 하고 싶었던 운동을 일궈내지도 못한 패배한 활동가가 되었지만 그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민주노조운동이건 사회주의 정치활동이건 제대로 된 운동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다. 한편, 조선블럭 생산공장들이 모여있는 온산공단, 전 세계 노동자들이 일하는 그곳에 노동자투쟁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중심에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이 서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동지들이 지향하는 것들이 가슴에 안겨지길 바라 마지않는다. 울산에서 2022.10.18. 조돈희2022-10-20 | 조회 1,949 -
[출범축하 기고 - 도명화]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나도 조심스럽게 꿈꾸어 본다나는 노동자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진정한 노동자가 되었다. 몇십 년을 노동하면서도 내가 노동자인 줄 몰랐다. 그냥 자연스럽게 직장이라는 곳을 다녔고 그 속에서 인정받으면 자긍심이 생겼다. 해고되는 동료들을 보면서 안도감과 함께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인정받으려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조금의 손해도 용납 못 했고 나의 이익 앞에 양보는 절대 없었다. 같은 노동자들과의 경쟁 아닌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 동료를 짓밟고 더 위로 올라서려고만 했던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노동자임을 알게 되며 지난날 내 모습을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후회한 줄 모른다. 노동자가 되면서 주변에 눈길이 갔고 자연스럽게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나는 그렇게 노동자가 되었다. 나의 인생은 노동조합 전후로 완전히 나뉜다. 내가 사는 세상은 조용한 줄만 알았다. 내가 해고되고 투쟁하면서 알았다. 이미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고, 그 투쟁 속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해고된 것도 아님에도 함께 연대하며 삐뚤어진 세상을 향해 함께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알게 되었다. 나의 안위가 전부가 아니라, 불평등과 오만으로 가득한 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까지 우리 투쟁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념을 가진 동지들은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을.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우리가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싸우기도 한다. 부족한 소견이지만 이런 게 사회주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말’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사회주의 운동하는 동지들은 막연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투쟁은 물론, 모든 노동자 투쟁 속에 그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했다. 그것만으로도 의심 많던 나는 그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인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이며 살맛 나는 세상이다.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나도 조심스럽게 꿈꾸어 본다. 누군가는 먼저 시작하고, 이에 공감하는 나 같은 동지들이 계속 늘어나기를 소원해본다. 몰라서 안 할 수는 있어도 알게 된다면 누구든지 함께할 것이다. 항상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는 동지들에게 나의 엄지손가락을 바친다. 짱!! 다시 시작하는 동지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름처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후퇴 없이 전진만 하기 바란다. 동지들이 새롭게 가는 길을 누구보다 축하하며, 부족하지만 힘을 보태도록 노력하겠다. 더 커진 힘으로 더 큰 세상을 기대해 본다. ^^ 건행!!2022-10-19 | 조회 1,895 -
[출범축하 기고 - 김형수]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출범을 축하하며경쟁과 착취의 체제인 자본주의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오늘도 투쟁하는 동지들 반갑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경험이 더 나은 선택과 방향을 잡아가는 길라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고 새로운 희망과 기대 또한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본가들이 덧씌운 '빨갱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경쟁과 착취의 계급사회 자본주의를 거부합니다. 우리 모두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라고 자기 생각과 꿈을 숨김없이 이야기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착취가 없는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누구나 평등한 세상!”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그런 세상을 사는 인간의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길 원합니다. 더 적은 시간 일하고 더 안전하게 일하고, 덜 걱정하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가 확신할 수 있길 원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더 나은 세상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길 원합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욕구가 투쟁의 동력이 되고, 투쟁 과정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길 원합니다.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고 전진하길 원합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의 출범을 축하드리고,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투쟁!2022-10-18 | 조회 1,963 -
[출범축하 기고 - 차헌호]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로 뚜벅뚜벅 전진하는 동지들이 되리라 믿는다투쟁하면서 “사회주의가 대안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내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에게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회주의를 무시무시하게 보는 정서는 이념과 사상을 멀리하는 대중의 입장에서 기인한 현상인 것 같다. 사실 나 스스로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하다. 아사히 투쟁 8년, 자본주의 끝판을 경험한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거리에서 8년을 보내고 있다. 민주노조를 깨려는 자본도 문제지만 노동부, 검찰, 법원까지 우리의 손을 들어도 자본의 불법행위가 해결되지 않는 사회구조가 심각하다. 자본의 힘이 국가 운영체제를 압도한다. 자본가들의 탐욕이 체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자체를 넘어섰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자제할 수 없는 과잉생산, 과잉폭식의 끝판에 와있다. 행정기관, 사법기관의 역할과 존재가 무의미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통제력을 잃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누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갈아엎을지가 문제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하는 사회체제는 무엇일까. 쉽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진보정당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도 아닌 가운데 어디쯤 서 있다. 정치적 입장이 없는 무정치 입장이 가장 많다. 왜 그럴까. 노조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동자 정치의 부재다. 가장 치열한 비정규직 투쟁도 경제적 이익에 머물러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오로지 정규직 전환이 목적이 되기도 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우리의 투쟁이 비정규직을 양산한 사회체제로 향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노조법 1조에 명시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태다. 노동자들의 활동과 투쟁에 정치적 이념과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민주노조를 위해 현장에서 혼신을 다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이 많다. 노동조합 활동에 머물지 않고 더 멀리 전진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의식이 필요하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동지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자신감과 에너지를 충전해주길 바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심장에 활활 타오르는 노동자계급정치의 횃불을 지피는 동지들이 되기를 바란다. 거침없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로 뚜벅뚜벅 전진하는 동지들이 되리라 믿는다.2022-10-17 | 조회 1,896 -
위기와 재난의 시대,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의 깃발을 들자2022년 10월 1일 통합사회주의조직준비위원회 출범총회에서 결정할 새 조직 명칭, 그 후보군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기준은 하나였다. 새 조직 이름에 ‘사회주의’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의 의미는 올초부터 통합을 준비해온 노동해방투쟁연대(준)·사회주의전망모임·사회주의당건설초동모임 모두에게 명확했다. ‘전쟁과 재난과 온갖 사회적 병리현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가 곧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전면화할 시기다.’ 전면화하는 위기의 시대,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의지를 집약해 출범했다. 우리는 위기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다 체제의 위기는 현실이고, 이 위기가 가하는 위협 또한 현실이며, 위기에 대한 해법을 두고 격화하는 계급투쟁 또한 현실이다. 이는 단지 사회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가장 높은 핵전쟁 위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는 집단행동이냐 집단 자살이냐의 갈림길에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말이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2026년까지 세계경제 생산량이 4조 달러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을 담은 IMF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의 요지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위기와 재난의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열강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지금, 세계대전의 공포는 더 이상 역사책 속 이야기가 아니다. 기록적 물가폭등의 고통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수십 년만의 폭우와 폭염’이라는 보도가 더는 새롭지 않을 정도로 기후재난은 잦다. 코로나19·메르스·사스 등 빈번한 인수공통감염병 재난은 박쥐 등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리, 즉 종간 거리가 짧아지는 데 기인하며 이는 자본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2021년 미국 증오범죄 건수가 드러내듯 여성억압과 소수자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돌이켜보자. 2008년 공황 이후 위기의 폭발은 단지 늦추어져 왔을 뿐이고, 그 중심에는 국가권력이 있었다. 10년 이상 지속된 양적완화, 즉 비상수단을 동원한 항상적 국가개입은 폭발을 지연했고 가히 ‘자본을 위한 계획경제’라고 불러도 좋을 거대한 손실의 사회화로 공황의 피해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했다. 물론 국가는 전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가개입 전면화는 과잉자본이 청산되지 않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전면화한 국가개입으로 과잉자본 청산은 지연되었고 이는 위기를 상대국에게 전가하기 위한 무역갈등과 보호주의 심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08년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일상이 되었다.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미국의 공급망 재구축 시도와 당신은 어느 편인지 선택하라는 노골적 압박, 태평양-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중 군사대립,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열강의 대리전. 이는 모두 일관되게 고조하는 위기의 흐름이다.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운동을 확장할 때다 혁명인가 야만인가. 역사의 변곡점은 어느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체제 내 어떤 해법도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금이다. 자유주의가 퇴행하고, 사민주의가 몰락한 폐허 위에 파시즘이 부상하고 있다. 독일대안당, 프랑스국민연합, 스웨덴민주당, 그리고 이탈리아형제당까지 난민·이민자·소수자 혐오를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파시즘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계급투쟁 역시 고조하고 있다. 2019년 기후위기 대응 비용을 민중에 전가하는 유류세 인상 반대로 촉발되어 누적된 불평등 전반에 맞선 투쟁으로 발전한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30년 불평등 체제가 문제’라며 전국을 뒤흔든 칠레 민중항쟁, ‘U세대(유니온 세대) 등장’이라 불릴 만큼 청년주도 신규노조 설립이 지난 10년 합계보다 많아진 최근의 미국, 대처 집권기 이후 최대 규모의 철도파업이 벌어진 영국, 항만파업과 철강노동자 파업이 벌어진 독일, 그리고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인간선언과 함께 모든 노동자의 가슴에 불을 지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까지. 장기지속된 위기는 거대한 부채더미뿐 아니라 계급대중의 분노 또한 켜켜이 쌓아왔다. 바로 지금이 체제에 대한 분노를 사회주의를 향한 지향으로 조직할 때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체제의 위기는 깊고 넓다. 대중의 분노 역시 그러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자본주의가 만든 기후위기에 노동자 생산통제투쟁으로 맞서기 위해 발전·에너지산업 국유화, 공공교통 완전공영화, 산업전환 총고용보장, 노동시간단축을 관철할 생산통제투쟁을 전개하고자 한다. 모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는 지금, 원청과 하청의 경계, 사업장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노동자 산업통제에 나서야 한다. 둘째, 전진은 여성파업 조직운동에 나서고자 한다. 일터와 사회에서 모든 성차별과 성폭력을 철폐하기 위해 여성파업이 필요함을 토론하고 설득할 것이며,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구축으로 여성노동자 주체의 여성해방운동을 확대할 것이다. 셋째, 모든 해고를 금지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투쟁,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확대하는 투쟁에 나설 것이다. 싸울 권리조차 박탈당한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손배가압류 금지는 물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등 모든 노동자의 요구를 걸고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설 것이다. 사회주의를 향해, 함께 전진하자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혁명가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뼛속까지 의회주의에 물든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의회라는 보육원에서 배운 교훈을 혁명에도 적용하려 했다. '무엇이든 하려면 우선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 그들은 이것이 혁명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먼저 다수가 됩시다.’ 그러나 혁명의 변증법은 그와는 정반대다. 다수를 확보한 후 혁명적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전술로 다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길을 여는 방법이다. 이끄는 방법을 아는 당, 즉 상황을 진척시킬 수 있는 당만이 이 격동의 시기에 지지받을 수 있다.” 요동치는 정세 앞에 우리는 소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수가 된 후에야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장정치운동 확대와 계급적 연대 강화로, 사회주의 정치운동 전면화로, 함께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의 깃발을 들고자 한다. 사회주의를 향해, 함께 전진하자!2022-10-14 | 조회 3,8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