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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3]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ᅠ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2023년 12월 3일, 유럽 12개국 극우정당 지도자들이 이탈리아에서 만났다. (사진: AFP) 1.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 확대 확산하는 위기와 전쟁을 토대로,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 최근 제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2023년 12월 18일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이 발표한 전국단위 여론조사 500개 평균에 따르면, 트럼프는 바이든을 2.2% 차로 이기고 있다. 2023년 12월 11일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는 주요 경합주에서도 바이든보다 우위에 있다. 4년 전 바이든이 약 1만 2천표 차로 이긴 조지아주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5% 앞서는 것으로, 2020년 바이든이 약 15만 5천표 차이로 이긴 미시간주에서도 10%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경선에서도 압도적임은 물론이다.1) 1) 2023년 7월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과 친공화당 유권자 중 69%가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밝히는 주요 계획(아젠다 47)은 노숙자를 도시 외곽캠프로 이주시키겠다는 계획, 공립학교 교사에게 ‘애국적 가치’ 수용을 요구한다는 계획,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불공정 무역국’에 대해 이를 더 인상한다는 계획, 불법 이민자 망명 신청 중 멕시코 체류, 불법 이민자 자녀 시민권 자동부여 중단, 국제원조 수천억 달러 삭감과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나토 탈퇴 검토 등을 망라한다.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세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러시아의 승리 인정을 뜻하는데, 이는 미국 헤게모니의 더욱 큰 균열을 부르며 열강의 쟁투를 더욱 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유럽 전역 극우파 부상, 균열하는 유럽연합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 전역에서 극우파가 부상하고 있다. 2023년 12월 3일, 유럽 12개국 극우정당들이 이탈리아에서 회합을 열고 반이민정책 강화와 산업보호를 위한 기후정책 축소를 결의했다. “우리의 목표는 최소한 중도우파와 사회당에 이어 유럽의회에서 세 번째 그룹이 되는 것” - 이 회합을 주최한 이탈리아 부총리 마테오 살비니의 발언이다. “유럽이 아프리카의 ‘5성급 숙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 프랑스 국민전선 당수 조르당 바르델라의 발언이다. 이렇듯 유럽 극우파는 △지정학적 위기 △난민-이주민 유입 확대 △러우 전쟁에 따른 에너지 문제 △신자유주의 이후 취약해진 유럽 사회안전망과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토대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가 유럽을 휘감고 있으며, 현 흐름이 확대될 경우 유럽연합 자체가 균열할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10년 전 '유로화 반대'를 내걸며 창당한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최근 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 기후·에너지위기, 이민자에 대한 불만을 토대로 지지율 2위 정당으로 급부상했다. 당 전략가인 비욘 회케의 ‘참다운 유럽이 살기 위해 이 유럽연합이 죽어야 한다’는 2023년 7월 당대회 선언이 압축하듯, 독일을위한대안의 주요 노선은 기후변화 부정, 이민자 반대, ‘미국으로부터의 해방’, 친러-친중 노선을 추구한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이 부상하고 있으며, 202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프랑스는 2022년 이탈리아 멜로니 정부에 이어 극우가 집권한 주요국이 될 것이다. 북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스웨덴에서는 이민 반대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2022년 2당 지위에 올랐다. 2023년 핀란드 총선에서는 이민에 반대하는 핀란드인당이 2당 지위에 올랐다. 2023년 11월 22일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PVV)이 150석 가운데 37석을 차지하며 1당으로 급부상했고, 헝가리에서는 극우 오르반 정부가 4선 연임에 성공했다. 3.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밀레이 정부 등장 2023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자신을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라고 부르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집권했다. 밀레이는 집권하자마자 소위 ‘충격요법’과 ‘메가 대통령령’을 내놓았는데, 이는 페소화 54% 평가절하2),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대대적 노동권 탄압, 공공사업 축소와 민영화 매각 등을 포괄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대자본가들의 갈채를 받은 1월 16일 밀레이의 다보스포럼 연설은 현 극우파가 추구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낸다. “서구의 가치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빈곤으로 이어지는 가치관에 동조해 서방이 위험에 처했다”, “국제기구가 ‘집단주의’, ‘급진페미니즘’, ‘잔혹한 환경의제’의 영향을 받고 있다.“ 2) IMF 부총재 기타 고피나스는 이를 밀레이 정부의 '대담한' 조치라고 추켜세웠다. 세계 전역 극우세력 확대는 상황은 자본주의 위기의 반영이자, 위기를 격화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1차 대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기존 헤게모니의 균열과 함께 격화하는 열강의 투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4. 이민자, 여성, 소수자에 대한 공격 ‘백인이 아이를 낳아서 유색인종 이민을 막아야 한다’ - 이민자,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공세는 번성하는 극우파의 공통 가치지향이다. 출생률 저하와 노동력 부족에 따라 미국과 유럽 극우파는 임신중지권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고,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대하고 있으며, 인구정책에 입각한 여성 통제를 강화되고 있다. 한편, 각국이 저출생과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유색인종 이민자 혐오공세를 강화하는데, 이는 나치독일이 한편에서는 임신중지를 엄격히 금지하며 출산장려 인구정책을 펴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의 출산을 금지’하는 우생학에 근거해 대대적 강제불임시술을 자행한 역사와 마찬가지다. 관련, 최근 유럽 극우가 대중을 조직하는 주요 경로 중 하나가 소위 ‘거대한 대체 이론’인데, 이는 권력자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낳는 아프리카와 중동 이민자들을 유럽에 유입시켜 백인을 몰아내려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EU 27개 회원국 모두에서 출생률은 인구유지 출생률(대체출산율, 2.1명)을 밑돌며, 이는 체제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재생산 권리를 공격한 결과다. 신자유주의 이후 축소된 사회보장체계와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토대로, 혐오가 번성하고 있다. 이민자, 여성, 소수자에 대한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연대가 절실하다. ‘신, 가족, 조국’을 슬로건으로 집권한 이탈리아 멜로니 정부에게 출생률은 ‘백인의 인종적 생존’에 관한 문제다. 2022년 멜로니는 동성결합 반대론자이자 임신중지권 반대론자를 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33년까지 신생아 수를 연간 50만 명으로 늘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가족주의 이념을 강화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출생률이 감소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가족주의 때문이다. 국가 사회보장 체계가 빈약한 결과, 가족에게 재생산 부담이 전가되는 것이다. 출생률 저하는 그 결과이나, 극우파는 여성을 출산 도구로 놓으며 가족주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멜로니의 이념적 동지, 헝가리 오르반 정부는 혐오 공세를 펴는 유럽 극우의 또 다른 구심이다. 최근 4연임에 성공한 오르반 정부는 2015년부터 2년 주기로 ‘부다페스트 인구정상회의’를 열며 성소수자 억압과 함께 극우적 정상가족주의를 확대하고 있는데, 2023년 인구정상회의에서 오르반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헝가리는 가족을 지원하는 강력한 요새다“, "우리에게는 정치노선 변화가 필요하다. 가능한 한 많은 유럽국가에서 가족친화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민자 혐오 조장에 있어, 현시기 극우는 기존보다 훨씬 세련된 논리를 구사하는데, ‘이민자 급증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혜택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극우가 노동자계급 내 세력을 확대한 주요 배경이다(미국도 마찬가지다). 또한, 여성의 권리를 명분으로 이민자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파도 확대되고 있다. 마린 르펜과 조르자 맬로니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친 여성’을 적극적으로 앞세우기도 한다. AfD 공동대표이자 연방의회대표인 알리체 바이델은 여성이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자유주의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맞선 투쟁의 필요를 드러낸다. 왼쪽부터 알리체 바이델(독일을위한대안), 마린 르펜(프랑스 국민연합), 조르자 멜로니(이탈리아의형제들). 일러스트: guardian 5. 그린래시(greenlash)와 핵발전 확대, 기후위기 대응 퇴조 ”생태 광신주의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2023년 7월,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 정치집회에 대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의 연대사다. 미국, 유럽, 남미를 막론하고 극우파는 기후위기 대응책을 공격하고 있다. 소위 ‘그린래시’, 즉 기후·환경정책에 대한 백래시다. 인플레이션 지속에 따른 생존권 위기, 전쟁위기 확대에 따른 에너지가 상승 등을 조건으로, 극우파는 기후·환경정책을 공격하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소득이 낮을수록 에너지효율이 낮은 자동차나 난방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 민중에게 교통비나 연료비 상승은 큰 부담이다. 생존권 위기의 고통과 분노를 극우가 조직하는 지금, 생태적 전환은 대중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일찍이 이를 드러낸 사건이 2018년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다.3) 녹색자본을 위해 대중에게 전환 비용을 전가하는 시장주의 기후대책과의 적극적 논쟁이 필요하다. 3) 2018년 마크롱 정부는 2019년 1월 유류세 재인상을 발표했는데, 이미 1년간 유류세 23%, 일반 가솔린 유류세 15%가 인상된 뒤였다. 마크롱은 대선 공약으로 유류세 등 ‘탄소세’ 강화를 내건 바 있고, 대중은 가중되는 고통에 분노했다. 심지어 마크롱은 취임 직후부터 부자감세를 밀어붙였다. 사회연대세, 이른바 ‘부유세’를 부동산 중심으로 축소하며 호화 요트와 슈퍼카를 과세대상에서 제외했다. 법인세도 깎은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에 찬 노동자 민중이 뛰쳐나온 것이다. 즉, 노란조끼 운동은 기후·환경대책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전환의 비용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자본과 국가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독일 정당지지율 2위를 달리는 ‘독일을위한대안’은 기후위기가 인간활동의 결과임을 부정한다. 이 극우정당을 급부상시킨 주동력은 이민자에 대한 혐오선동과 ‘히트펌프’ 의무화 반대다. 2023년 9월 독일 연방의회는 석유-가스난방 단계적 폐지 법안을 의결했는데, ‘건물에너지법(GEG, 일명 난방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신규설치 난방시설이 최소 65% 이상의 재생에너지로 가동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히트펌프는 기존 보일러보다 설치비용이 상당히 비싸다.4) 베를린은 소득수준에 따라 신규 히트펌프 비용의 최대 70% 환급을 약속했으나, 침체하는 경제 속에서 고통받는 대중의 불만은 높다. 결국 정부는 특정 조건에서 가스 및 석유난방 기구 신규설치를 계속 허용하는 것으로 법안을 수정했다. 4) 히트펌프 설치 비용은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최소 9천 유로에서 최대 12만 유로까지 다양하다. 독일을위한대안은 추정치 상단을 부각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농민의 이익'을 앞세운 신생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2023년 3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상원 1당이 됐다. 질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가축을 1/3 줄이라는 정부에 반대하는 대중이 결집한 것이다. 영국은 기업 100곳에 북해 석유·가스 시추를 허용했고, 프랑스는 환경규제가 유럽의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유럽연합 환경규제 일시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심화하는 경제위기와 지정학과 경제의 직결 속에, 환경정책이 퇴조하고 있다. 「2024년 글로벌 트렌드」 현대경제연구소, 2023.12.29. 2023년 12월 2일,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미일을 비롯한 22개국이 ‘원자력 에너지 3배 확대 선언’을 발표했다. 주 내용은 기후변화 대응목표 달성을 위해,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인정하고, 2050년까지 핵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2023년 4월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독일에서 역시, 극우파 부상과 함께 핵발전 회귀 여론이 확대될 공산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정책 퇴조는 국제 기후정의운동의 정체와 무관하지 않다. COP28 회의가 열린 두바이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으나 그 규모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세계 기후운동 대중화 계기였던 ‘미래를위한금요일(FFF)’ 운동도 정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통한 생태적 계급투쟁으로 정체를 극복해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노동자들의 거대한 기후정의 파업(mega strike) 사례를 보자. ”미래를위한금요일(FFF)의 정체성은 매주 대규모 시위에 기반했다. 팬데믹이 닥쳤을 때 단체는 더 이상 같은 규모와 빈도로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을 수 없었다. FFF는 자전거, 온라인 시위, 예술 캠페인으로 시위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이전의 대규모 집회와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FFF 참가자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복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학교파업은 이제 주류가 되어 뉴스 가치를 잃었다. 팬데믹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되자 FFF시위는 재개되었지만, 더 이상 매주 열리지는 않았다. … 2023년부터 '미래를위한금요일' 운동은 새로운 전략을 따랐다. 최근 FFF는 독일 통합서비스노조가 조직한 파업에서 대중교통 노동자들과 힘을 합쳤다.“ (원문) "동맹 구상은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의 전략적 공백으로부터 나왔다. 기후운동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더 넓은 사회 영역에 호소하지 못해왔다. '체제를 바꾸자(체제전환, system change)'라는 슬로건은 모든 사람 입에 오르내렸지만, 실제로는 시민불복종이라는 상징적 행동이나 정치적 결정권자를 겨냥한 대규모 시위에 머물렀다. 2020년, 동맹은 기후정의 투쟁에 더 많은 노동계급을 적극 참여시키고, 기후투쟁의 한 형태로서 노동자 파업의 위력을 더하고자 기후 문제를 일터로 가져오고자 했다. … 3월 3일 노동자파업과 기후파업 동시 진행은 노동조합원들과 기후활동가들이 수년간 다리를 만들어 온 결과다. 2020년 초부터 여러 지역 기후운동가들은 대중교통노동자 파업을 지원했다." (원문) 독일 노동자들의 '거대한 파업(mega strike)' 사진: Sven Hoppe2024-02-13 | 조회 2,207 -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2]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ᅠ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1. 미국 주도 공급망 재구축 시도와 러우전쟁, 미국의 호황과 유럽의 침체 2023년 12월 발표된 미국 3분기 GDP성장률 확정치는 전기 대비 연율환산 4.9%(전 분기 대비 약 1.2%)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성장률 구성요소를 분해하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정부지출 확대, 이에 상응하는 민간투자 확대 등이 중요 요소로 드러난다. 즉, 보호주의 산업정책이 미국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1) 1) 미국 3분기 성장률의 가장 큰 요소는 소비지출인데, 저축액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신용카드 부채가 이를 상쇄했다. 아래 그래프가 드러내듯, 미국 제조업 설비투자는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 발효 이후 급증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해외직접투자(FDI) 역시 급증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이 발효된 2022년 8월부터 2023년 말까지, 총 980억 달러에 달하는 142개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이 중 가장 많은 수가 한국 기업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보호주의 산업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2023년 6월 독일 경제부장관 로베르트 하벡의 말을 잠시 옮겨 보자. “이는 선전포고와 같다”, “미국인들은 반도체를 원하고, 태양광산업을 원하고, 수소산업을 원하고, 전기분해장치를 원한다”, “우리가 따라잡지 못하면 핵심 산업은 그들이 가지게 되고 우리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잔인한 현실이다.” 유럽 자본이 자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입되는 현실 앞에, 유럽 각국은 그들 역시 보조금으로 대응하거나, 여력이 없으면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 발효 후 미국 제조업설비투자 급증 추이(좌)는 주요국과 비교해도 독보적이다(우) G7 국가 2023년 성장률 전망치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나 홀로 호황’이다. 보호주의 산업정책 확대와 함께 주요국 성장률 격차가 심화하는 양상이며, 특히 유럽의 정체가 뚜렷하다. 유로존 3분기 GDP는 0.1% 감소해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영국도 3분기 실질성장률 0%, 2023년 성장률 전망치 0.5%로 겨우 역성장을 면하는 수준이다. G7 국가 2023년 실질성장률 전망 (OECD. 2023.11.29.) 미국 2.4% 일본 1.7% 캐나다 1.2% 프랑스 0.9% 이탈리아 0.7% 유로존 평균 0.6% 영국 0.5% 독일 - 0.1% 유럽의 침체 뒤에, 미국의 보호주의와 장기화하는 러우전쟁이 있다. 유럽 에너지 가격은 치솟았고, 유럽 산업자본은 미국 경쟁사보다 에너지 비용을 서너 배 더 많이 지불하고 있다. 특히, 독일경제의 추락은 극적이다. 독일은 2분기 성장률 0%, 3분기 성장률 -0.1% 등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그간 유로존에서 러시아, 중국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독일경제의 침체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통합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를, 또한 이를 재구축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드러낸다. 반면, 미국은 전쟁특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대러시아 제재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괴에 따라, 유럽은 미국산 에너지 의존도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에너지 수출이 급증했고, 급기야 사상 최초로 석유가 2023년 미국 수출액 1위 품목이 될 전망이다. (2023년 9월 기준 원유 생산량 국가별 순위는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이라크, 중국, 브라질, 아랍에미리트, 이란, 쿠웨이트다. 미국의 석유는 OPEC+ 감산에 따른 물가상승 동인을 상쇄하는 핵심 요인이다.) 미국 원유수출 급증 추이 (출처: 미 에너지정보국) 이렇듯, 미국의 보호주의와 장기화하는 전쟁의 피로감은 미국과 유럽의 균열을 부르는 주요 갈등 축이다. 러우전쟁은 미국의 보호주의에 대한 유럽의 불만을 ‘지금은 전시’라는 명분으로 억누르는 기제이나, 유럽의 침체가 길어질 경우 미국의 수탈적 행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2. 미중 투쟁과 미국 주도 공급망 재구축 난항 많은 기관은 공급망 병목 완화와 인플레이션의 추세적 하락을 미국 경기 ‘연착륙’ 주요 근거로 든다. 실제로 팬데믹 정점이 지나며 물류비용은 일정히 하락했으나, 이를 전체 공급망 안정화로 보기는 어렵다.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1월 중국의 유럽연합과 미국 등 대 서방 수출량은 중국 전체 수출량의 45%에 불과했다. 이는 2022년 초의 약 54%에 비해서도 급격히 하락한 수치다. 대신 미국이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은 급증했다. 그렇다면 이는 다변화되고 안정적인 공급망의 형성을 뜻하는가? 그렇지 않다. 공급망은 더 복잡해졌고, 불투명해졌으며, 비싸지고 있다. 중국 자본은 역시 미국의 공급망 이전 시도에 조응해 동남아 등 해외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네트워크 데이터상 글로벌가치사슬(GVC)이 길어지고 있다. 기업 간 평균 거리는 2021년 9.67개에서 2023년 10.03로 증가했다. 이는 중국 공급업체와 미국 고객사를 잇는 공급망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9.18에서 10.11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공급관계 다변화를 함의하는 ‘네트워크 밀도’는 상승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각 공급업체 평균 고객기업 수를 나타내는 Out-degree는 2021년 2.49에서 2023년 2.45로 소폭 하락했으며, 각 기업이 물품을 받는 평균 공급업체 수를 측정하는 in-degree 역시 2021년 2.25개에서 2023년 2.23개로 하락했다. 공급자기업과 수요자기업 사이의 거리가 길어졌다 (BIS.2023.10.) 이렇듯 세계 자본주의 공급망은 길어지고 있으나, 미국 의도대로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 공급업체 의존도가 이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 진영 기업들이 중국을 제외한 비상공급경로를 구축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말뿐임을 시사한다. 열강은 믿을 수 있는 동맹으로 공급망을 재구축하고자 하나, 그 결과는 길어졌을 뿐 다각화되지 못한 공급망이다. 이는 그 자체가 물가인상의 동인이자, 생산의 파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협요인이다. 미국은 공급망 재구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과정은 자국 기업의 피해와 미국 인민의 생존권 악화로 귀결해 바이든 정부 재선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2) 디커플링이건 디리스킹이건, 공급망 재구축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2) 그 단면이 2023년 11월 중국 공급망 엑스포였다. 테슬라, 인텔, 퀄컴, HP, 엑슨모빌, 비자 등 참여 기업 면면은 미국의 난항을 드러낸다. "세계경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해졌지만, 이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미국의 능력은 약해졌다. 냉전 시대 미국은 적국과의 경제교류를 제한하려 했고,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 미국은 이를 촉진하려 했다. 이제 정책 입안자들은 과거 미국 관리들이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제인 상호의존성과 씨름해야 한다. 냉전 시대에는 제조 물류는 정부가 아닌 민간 산업의 영역이었다. 오늘날 미국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이 경제 안보에 매우 중요함에도,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4개 영역에 걸쳐 공급망 검토를 시행했으며 정부 부서가 관련 공급망에 대한 위험을 검토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한 상업 데이터베이스와 민간기업이 공개를 매우 꺼리는 불완전하고 비표준화된 정보에 의존해야 한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공급망 취약점을 파악하는 데 한계적인 경우가 많다. 공급업체가 무엇을 하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문 링크) 3. 중국자본주의의 현재 1) 부채위기 중국은 리오프닝에 따른 초기 추진력이 사라지고 최근 부동산 부문에서 위기가 터져 나오는 등, 위기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경제의 25-30%가량을 차지해온 건설·부동산업이 과잉축적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속에서, 현 중국 부채위기 심화는 미국 주도 금리인상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즉, 미국의 금리인상에는 중국의 부채위기 폭발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3) 이에, 중국 역시 미국의 금리인상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3) 중국외환관리국(SAFE)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달러와 유로 등 외화표시 미결제 대외부채는 총 9조 7,766억 위안(1조 3,530억 달러 상당)으로 미결제 대외부채의 56%를 차지한다. 물론 이는 LGVF 등 위기 진원지에 대한 집계를 포함하지 않는다. "미국 금리의 급격한 상승과 이에 따른 달러화 가치 상승은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의 차입비용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러한 파급효과는 부채부담을 크게 악화시켜 부채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일부 신흥개발도상국의 부채 문제와 금융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금융정책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와 매우 일치하며, 글로벌 개발 금융시스템을 보완하는 새로운 중요 동력이다." (원문 링크) 성장률 저하, 청년실업 확대, 지방정부 부채위기 등에 더해 최근 중국 경제의 뇌관을 구성하는 부동산 부문 부채위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헝다와 비구이위안 사태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는 3,250억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 국가부채보다 많은 금액이다. 컨트리가든(비구이위안)의 부채는 1,900억 달러로 부채 규모는 에버그란데가 훨씬 크나, 컨트리가든이 개입한 지역 부동산 개발사업이 더 많아, 컨트리가든의 파산은 지방정부 부채위기 폭발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 또한, 중국은 10년 전 원대하게 착수한 자본수출 계획, 즉 일대일로의 후과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철도와 공항 등 거대 인프라사업에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수출이 이윤을 남기기는커녕 화려하나 실익이 없는 사업, 소위 ‘흰코끼리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있다. ‘흰코끼리 프로젝트’가 집약하는 중국경제의 심각한 불균형은 중국공산당 통치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서방 일부 관리들은 "중국이 '부채의 함정'을 설치해, 별생각 없이 중국 자금을 지원받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개도국들을 함정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대출을 받은 국가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중국이 해당 국가의 주요 기반 시설에 대한 소유권 등 중국 측에 유리한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불만이다. 실제로, 스리랑카의 경우 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후 중국 자금으로 건설된 함반토타 항구에 대한 운영권을 중국 기업에 넘기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고의로 그런 함정을 설치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중국은행들은 리스크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대출해 줌으로써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들은 대출받은 국가들이 침몰하게 놔두기보다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리서치 그룹인 에이드데이터의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의 은행들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1,850억 달러의 구제금융 대출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는 2010년에는 중국의 해외 대출금 총액 중 구제금융 대출액 비율이 5% 미만이었지만, 2022년에는 그 비율이 60%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원문링크) 2) 중국을 떠나는 서방, 자본유출 위험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으로 유입된 해외직접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9.4% 줄었다. 심지어 3분기에는 유출액이 유입액보다 많았는데, 11월 초 공개된 3분기 중국 국제수지 잠정치에 따르면 FDI는 11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직접투자 순유출은 중국이 관련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초의 일이다. 패권투쟁 격화에 더해, 미중 금리차에 따른 자본이탈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벌어진 일이다. 해외직접투자 감소와 유출에 더해, 외환유출 징조도 있다. 2023년 9월, 10월 모두 외환유출을 기록했는데, 9월 유출액은 2016년 이후 7년 만에 최대폭이었다. 물론 중국은 3조 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에 단기간에 외환위기가 닥칠 공산은 낮으나, 자본유출 지속가능성은 분명한 위험으로 남아있다. 3) 공급망 전쟁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부상하는 브릭스 블록 그러나 중국경제가 붕괴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GDP 대비 중앙정부 부채비율은 약 22%로 G7국가 평균 중앙정부 부채비율의 약 1/8에 불과하다. 중국 지방정부 부채위기, 대략 60조 위안(약 1경 1천조 원)으로 추정되는 지방정부자금조달기구(LGFV) 부채위기4)가 가중되고 있으나, 최근 달러 표시 LGFV 채권가격 급등은 중국정부가 위기를 일정히 관리해내고 있음을 뜻한다. IMF는 2023년 중국 실질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0%에서 5.4%로 상향 조정했고, 주택시장 부채위기가 심화하고 있음에도 산업생산은 확대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산업부가가치 생산량은 2023년 12월에 전년 동월 대비 6.8%, 전월 대비 0.52% 늘었다. 설비가동률은 4분기 75.9%로 3분기 75.6%, 2분기 74.5%, 1분기 74.3%로 추세적으로 늘었다. 4) 중국 지방정부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벌이는 ‘지방정부자금조달기구(LGFV)’ 파산 위기 중국은 미국의 공급망 봉쇄 압박에 대응해 소위 ‘홍색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동남아로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제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피하고, 애플ᅠ등 대자본의 공급망 이전에 조응해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중국의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특히, 중국은 최근 ‘중국 대체제’로 부각되는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고, 중국의 대베트남 수출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015년 베트남 수입시장 점유율 27.67%를 기록한 중국은 2022년 35.1%를 기록하며 무역전쟁ᅠ전보다 10%p가량ᅠ점유율을 높였다. 2023년 11월 누계 중국의 베트남 투자액은 83억 달러로, 1년 전보다 두 배가량으로 늘어, 유입된 외국자본의 30%를 점했다. 2023년 8월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비야디) 역시 1억 4,400만 달러 규모 베트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브릭스를 통해 우방을 규합하고 있다. 2023년 8월 브릭스는 기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에 더해, 사우디·UAE·이집트·이란·에티오피아·아르헨티나를 가입국으로 초청했다(아르헨티나는 밀레이 집권 이후 가입을 철회했고, 사우디는 가입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위안화 국제화 시도 역시 추진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과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상품무역 시 위안화 결제액은 2020년 중반 이후 매월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2023년 위안화 결제비중 성장세는 가파른데, 2023년 1월 1.9%에서 10월 3.6%로 증가했다. 아직 달러(47.25%)와 유로(23.36%)에 비할 바는 아니나, 이미 중국은 자국 상품·서비스 무역액의 거의 30%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와 첫 위안화 대출 협정을 맺고, 중국-브라질 교역 시 위안화-헤알화 거래에 합의하는 등,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선 중국 행보가 확대되고 있다.2024-02-07 | 조회 1,907 -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1]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1. 고물가 지속 2023년 10월 IMF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2022년 3.5%에서 2023년 3%, 2024년 2.9%로 둔화할 전망이다. 11월 OECD 역시 2023년 2.9%, 2024년 2.7%를 예측했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 물가의 추세적 하락, 낮은 실업률과 함께 '연착륙' 시나리오가 대두하나 유로존은 독일과 영국 등 위기가 뚜렷하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상대적 하락은 상당 부분 에너지와 식량가격 하락에 근거한다. 물론 식량가격지수는 10월 기준 120 이상으로 여전히 높으며 쌀가격은 지속적 상승세다. 2022년 폭등세에 비해 진정되기는 했으나, 에너지가도 여전히 높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의 경우 2023년 상반기까지 7,850억 유로(약 1,100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기업과 가계에 투입하는 등 이미 막대한 출혈을 치렀다. 가스 의존도가 높던 네덜란드 전기료는 무려 953% 폭등하기도 했다.1) 원유생산 1위국이자 LNG 수출 1위국으로 뛰어오른 미국 주도 공급확대로 에너지 가격은 일정하게 하락했으나, 전쟁과 지정학적 충돌이 확산하는 현 정세 속에서 에너지 가격은 언제든 폭등할 수 있다. 2023년 6월 이후 OPEC+의 감산 역시 잠재하는 에너지 가격 불안의 한 조건을 구성한다. 최근 중동지역 위기 심화와 함께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 운송에 차질이 계속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유럽의 에너지위기가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1) EU는 2022년 에너지 공동구매 등을 위해 ‘유럽에너지플랫폼’을 출범하고 2023년 말 4회차 거래를 진행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상대적 하락에도,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 근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거나 더디게 하락하는 추세다. 유로존과 일본에서는 높은 근원물가의 유지, 혹은 지속적 상승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고물가의 장기지속적 성격을 드러낸다. IMF 역시 높은 근원물가로 물가안정목표 달성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입장이며, OECD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현 국면 인플레이션은 생산과정 자체의 차질에서 비롯되기에 쉽게 진정시키기 어렵다. 이를 보다 명확히 드러내는 지표가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다. 아래는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과 유럽 산업생산자 물가지수 추이다. 자본가들은 몇 년 전보다 상품을 훨씬 비싸게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독과점 기업, 가격 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자본의 공급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원인이다. 미국(좌)과 유럽(우) 산업생산자 물가지수 추이 (2015-2023) 2.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으로 이어지는 보호주의 심화 고물가를 지속시키는 중요 요인, 보호주의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세계무역 성장률은 2022년 5.1%에서 2023년 0.9%로 하락 후 2024년 3.5%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나, 이는 2000-19년 평균성장률 4.9%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무역장벽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 2022년 세계 각국은 3천 개에 달하는 새로운 무역제한조치를 부과했다. 이런 조치는 2019년 당시 1천개 미만이었다(2023.10. IMF 경제전망). 보호주의는 이전보다 싸게 만들 수도 없는 상품이 쌓이는 상황,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이어진다. 아래 미국 제조업 재고자산 추이에서 드러나듯, 주요국 재고자산이 쌓이고 있다. 공급망 위기에 따른 원자재와 부품재고 확보 시도 역시 재고 축적의 원인이며, 이는 자본회전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2023년 12월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글로벌 대형 제조업체 4,353곳 재고자산 규모는 2조 1,237억달러(약 2,788조원)에 달해, 2019년 12월 말보다 28% 늘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을 비롯한 보호주의 입법, 유럽의회의 핵심원자재법(CRMA)의 승인에 이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승인 등 열강의 보호주의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의 경우, 미국에서는 전기차 한 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EU에서는 2022년부터 대당 평균 6,000유로를 지급한다. 이러한 보호주의는 과잉생산과 중복투자, 곧 과잉축적의 원인이자 그 해소를 둘러싼 제국주의 투쟁 격화의 원인이다. 2007-2023년 미국 제조업 재고자산 추이 3. 고금리의 후과: 늘어나는 기업파산과 부채부담 상대적 호조에도, 미국 경제는 불안하다. 2023년 10월 26일 미국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기업파산은 9월 말까지 연 17,051건으로 늘어 작년보다 30% 증가했다. 특히 중소기업 파산이 증가했으며, 대기업 파산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금리 국면에 빚을 내고, 팬데믹 시기 막대한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기업들의 호시절이 끝나가고 있음을, 쉬운 자금조달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기준금리 인상 전인 2021년 기준, 미국 중소기업은 전체 수입 6%를 부채상환에 사용하는 반면, 대기업은 2% 정도로 알려졌다(골드만삭스). 고금리에 따라 중소기업부터 벌어지는 기업파산 증가는 당연하다. 유럽에서도 파산이 증가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독일 기업파산은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그 주요 원인으로 부채상환 비용 증가, 팬데믹 지원 축소, 그리고 높은 에너지 비용이 꼽힌다.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에서는 10월 파산 건수가 전년 동월 대비 30% 이상 늘었다. 덴마크, 스웨덴, 영국, 스페인, 핀란드, 노르웨이 기업파산율은 2008-2009년 금융위기 직후 파산율보다 높다. 또한,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미국 포함 주요국 정부의 부채 관리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출하는 이자비용은 2020년 3,450억 달러에서 2023년 6,590억 달러(약 900조 원)로 3년 동안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현재 국채이자 지급비용보다 더 큰 정부지출 영역은 사회보장, 메디케어, 국방뿐이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2022년 초까지 EU 각국은 매우 낮은 금리로 빚을 냈고, 심지어 10년 미만 만기에는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당시 금융시장은 저금리 지속을 예상했기에, 유럽연합 집행위가 추정한 2021~27년 장기예산계획 전체에 대한 누적 이자비용은 149억 유로에 불과했다. 값싼 자금조달 시기는 지나갔다. 미 국채 이자비용은 2023년 6,590억 달러에 달하며(좌), 이는 메디케이드, 아동복지 지출, 퇴역군인 복지지출보다 높다(우). 4. 실질임금 감소 일반화,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미국 물가상승률은 2022년 여름 최고치에서 상당히 낮아졌으나 물가하락을 체감할 수 없다는 대중의 불만은 광범위하다. 물가상승률 하락이 물가하락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가격 상승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76%가 미국 경제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74%는 식품가격 상승이 가계재정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오직 14%만이 바이든 정부 집권 후 더 잘 살게 되었다고 답했다. 바이든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넓으며, 그 핵심에 지속되는 고물가, 그리고 공급망 문제가 있다. 2023년 11월 27일 바이든 정부는 ‘공급망 회복위원회’를 출범하고, 공급망 강화를 위한 30여 개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필수의약품 생산 확대를 위한 국방물자생산법 활용(미국은 심각한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관계부처 공급망 데이터 공유 등을 포함한다. 위원회 출범과 함께, 바이든은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기업들’에 경고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으로 기업폭리(mark-up)를 짚은 것으로 재선 전망이 어두운 바이든의 선거운동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UAW 파업을 지지한 맥락도 이에 있다. 통계가 드러내듯, 주요 권역에서 실질임금 감소가 일반화하고 있다. 미국 실질임금은 2020년 이후 감소 추이가 뚜렷하며, 2022년 1분기에서 2023년 1분기 사이, 유럽 24개국 중 22개국에서 시간당 실질임금이 감소했다. OECD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이는 생존권 쟁취 투쟁이 2024년 주요 과제가 될 것임을 뜻한다. 미국 실질중위임금 추이(좌). 주요국 실질임금 감소 일반화(우) [유럽 시간당 실질임금 변화율 (2022년 1분기-2023년 1분기)] 헝가리 -15.6% 리투아니아 -4.9% 프랑스 -1.8% 라트비아 -13.4% 덴마크 -4.4% 스위스 -1.4% 체코 -10.4% 오스트리아 -4.3% 스페인 -1.2% 스웨덴 -8.4% 포르투갈 -3.5% 그리스 -1.2% 핀란드 -7.8% 독일 -3.3% 룩셈부르크 -0.8% 슬로바키아 -7.6% 영국 -2.9% 네델란드 +0.4% 이탈리아 -7.3% 아이슬란드 -2.9% 벨기에 +2.9% 폴란드 -7% 슬로베니아 -2.8% 에스토니아 -5.8% 노르웨이 -2.4% 치솟는 생활비와 불평등이 각국 계급투쟁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10월 기준 미국 파업손실일수는 740만일 이상으로 25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된다. 노동자 임금과 경영진 보수 사이의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노동운동이 확대되고 있으며, 노동운동 지지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이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전미자동차노조 파업이다. 사진: 연합뉴스2024-02-03 | 조회 2,195 -
아르헨티나,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다!1월 24일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전국적으로 150만 명이 참여하는 12시간 총파업이 전개됐다. 대선 과정에서 온갖 기괴한 공약들을 내세웠던 극우 인사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불과 45일 만이었다. 노동자총동맹(CGT), 자치노동자연합(CTA-A), 노동자연합(CTA-T) 등 3대 노총이 주도한 이날 총파업에는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대중경제노동자연합(UTEP), 사회운동 단체들, 문화단체들, 스포츠단체들, 좌파 정당 및 정치조직들까지 광범하게 참여했다. 우파 정권 시절인 2019년 5월 이후 5년 만에 다시 조직된 이날 총파업의 핵심 요구는 밀레이 정권의 ‘충격요법’ 정책들을 철회하라는 것, 특히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과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극우 정권의 초긴축 공격에 맞서 100년 넘게 투쟁으로 쌓아 올린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정의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결의를 모았다. 1월 24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모인 총파업 시위대 (사진:CTA-A) 밀레이 극우정권의 출범 지난해 하반기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은 물가상승률이 150~180%에 이르러 임금의 실질 구매력이 턱도 없이 깎여나가고 빈곤율이 40%를 넘어서는 파국적 상황에서 펼쳐졌다. 밀레이는 자국 페소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겠다는 허황된 물가안정 대책과 ‘특권층’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겠다는 입 발린 약속으로, 절망에서 허우적거리는 상당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선투표 과정에서 ‘특권층’의 한 축인 전통적인 우파 공화당과 손을 잡은 밀레이는 강력한 우파 세력을 품에 안은 극우정권을 탄생시켰다. 12월 10일 취임한 밀레이는 우파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을 치안부·재무부·국방부 등 요직 장관에 임명했다. 특히 공화당 대선후보로서 1차 투표 때 3위를 했던 빠뜨리샤 불리치가 치안부 장관이 됐다. 동시에 18개 부처 가운데 노동사회보장부, 공공사업부, 사회개발부, 환경부, 여성인권부 등 9개를 폐지했다. 밀레이는 자신의 초긴축 정책이 불러올 노동자·민중의 저항을 겨냥해서 취임 연설에서부터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대에게는 사회보조금 수령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협박했다. 치안부 장관은 시위 주최 단체에게 경찰의 진압 경비를 부담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12월 12일, 밀레이는 ‘경제비상조치’를 단행했다. 현재 GDP 5% 수준인 재정적자를 0%로 만들겠다며 △공공지출 대폭 축소 △공공사업 전면 유보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연방예산의 나머지 모든 항목 동결을 발표했다. 또한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면서 자국 페소화를 달러화 대비 54% 평가절하했다.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 12월 20일, 밀레이는 대규모 규제완화를 위한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노동권, 임대차, 가격규제, 민영화, 교육, 연금, 관광, 위성인터넷 서비스, 의약품 판매, 무역, 외국인 토지매입 등 다방면에 걸친 규제완화를 위해 수백 개의 법률을 무력화하는 조치로 12월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메가 대통령령’은 노동권 관련해서 △미등록 고용에 대한 벌금·처벌 폐지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연장 △업무시간 중 노조활동 금지 △필수부문(의료·교육·수도·가스·전기·항공·통신 등)은 파업시 75% 업무유지 △중요부문(운송·식품가공·물류·광산·우편 등)은 파업시 50% 업무유지 △파업 도중 작업장점거·출입봉쇄·기물파손하면 해고 △사업장 단위 조합비 자동공제를 개별 동의로 변경 △기존에 노조가 운영하던 조합원 의료보험에 보험사 진입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임대차 관련해서는 △2020년부터 시행돼 오던 임대차 기간 3년 보장과 임대료 인상 제한 폐지 △미국 달러로 임대료 납부 요구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가격통제와 가격규제도 폐지했다. 리튬채굴 등을 위한 외국인 토지매입도 전면 허용했다. ‘메가 대통령령’은 1994년부터 실행돼 온 헌법상의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한 것인데, 그동안 하나의 대통령령으로 이렇게 수많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정책을 변경한 경우는 없었다. ‘메가 대통령령’은 상하 양원 모두 거부하거나 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하지 않는 한 효력이 유지된다. 현재까지 1월 3일 연방노동항소법원이 △수습 기간 3개월에서 8개월로 연장 △해고시 보상 삭감 △출산휴가 축소 등에 대해서만 시행 중단을 판결한 상태다. 공화당을 포함한 밀레이 세력은 하원의 경우 257석 가운데 79석만을 갖고 있지만 상원의 경우 72석 가운데 39석을 확보하고 있어서, 법적으로만 본다면 ‘메가 대통령령’의 대부분이 그대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12월 27일, 밀레이는 광범한 영역에 걸친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워낙 그 내용이 많아 현지에서도 온전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에는 △국내외 미신고 자산 등록시 중과세 면제 △비례대표제 폐지와 소선거구제 도입 △치안부 장관에게 시위제한 명령권 부여 △‘불법’ 시위에 대한 징역형 대폭 상향 △법률에서 ‘젠더 폭력’ 표현을 ‘가족 간 폭력’으로 대체 △세금·연금·에너지·안보 관련 의회 권한을 2025년까지 대통령에게 이양 등이 포함돼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은 ‘메가 대통령령’과 결합된 ‘옴니버스 법안’을 “노동자계급이 오랜 세월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들과 성과들을 다 쓸어버리려는 공격”이자 “시위와 파업의 권리마저 제한함으로써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충격요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쉽게 보여주려는 듯, 밀레이는 연말을 맞으며 공공부문 계약직 공무원 5천 명의 계약연장을 거부하여 전격 해고했다. 초긴축 정책의 계급적 본질 밀레이는 획기적으로 물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의 취임 이후 오히려 물가가 더욱 급등했다.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페소화 평가절하, 모든 가격통제와 가격규제 폐지 등 물가의 고삐를 푸는 조치들을 줄줄이 취했기 때문이다. 밀레이 취임 이후 며칠 만에 휘발유 가격이 60%, 식료품 가격이 50% 급등했다. 12월 물가가 전월 대비 25.5% 치솟으면서 2023년 전체 물가상승률이 211.4%를 기록했다. 교통보조금 삭감이 적용되는 1월부터는 대중교통 요금이 3배로 폭등했다. 12월 20일 ‘메가 대통령령’과 함께 가격통제가 사라지자, 바로 다음날 보험사들의 의료보험료가 일괄 40% 인상됐고, 30일 만에 식품·의약품·연료 가격이 100% 상승했다. 그 사이 임금의 구매력은 20% 이상 하락했는데, 이는 노동자계급에게서 자본가계급에게로 그만큼의 소득이전이 발생했음을 뜻했다. 밀레이는 ‘특권층’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그의 정권은 ‘특권층’을 중추로 하여 구성됐고, 그의 ‘충격요법’ 정책들은 자본가계급에게 보내는 선물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서도 국제 금융자본과 광산·석유 대자본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풍부한 리튬 자원에 눈독을 들여 온 일론 머스크는 마음껏 리튬을 채굴해 갈 기회가 열리려 하자 밀레이를 크게 칭송하고 있다. 밀레이는 가자지구 학살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상황에서, 수시로 이스라엘 국기를 자기 몸에 휘두르며 이스라엘 네타냐후 학살정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권과, 2019년 브라질 보우소나루 정권의 뒤를 따라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도 공언한다. 반면 자신이 ‘공산주의’로 규정해 온 중국과 브라질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에는 가입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밀레이가 보여준 일련의 정책들에 흡족해 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10일 아르헨티나에 47억 달러 추가대출을 결정했다. 이는 2018년 아르헨티나와 체결했던 총 440억 달러 대출프로그램의 일환인데, 한동안 동결돼 있던 추가대출을 재개하면서 일부 조기대출까지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 대출금에는 2024년 말까지 GDP 2% 수준의 재정흑자를 달성해야 한다는 가혹한 조건이 붙어 있다. 밀레이 정권은 △한시적 수출입세 인상 △에너지·교통보조금 축소 △주 정부와 국영기업에 대한 지원 축소 △사회기반시설 지출 축소 등을 통해 조건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와 같은 대출조건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한 대출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은 피땀을 갈아 넣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저항의 물꼬를 트다 밀레이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투쟁이 시작된 날은 12월 20일이었다. 전투적인 노동조합들과 실업자단체, 그리고 ‘좌파전선’1)이 함께 주최하는 시위가 열려 2만 명이 참여했다. 대통령과 치안부 장관이 도로점거 시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엄벌하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이날 시위대는 경찰과 충돌하며 차도로 나아간 뒤 대통령궁 앞에 위치한 ‘5월 광장’을 장악하고 새벽까지 시위를 벌였다. 이날 밀레이가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5월 광장과 의회 앞으로 몰려나와 새벽까지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조’ 시위를 전개했다. 비슷한 상황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내 여러 지역과 지방 대도시들에서도 전개됐다. 경찰은 어떻게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1) ‘좌파전선’(FIT-U)은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노동자당(PO), 사회주의좌파(IS), 노동자사회주의운동(MST) 등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로 구성된 공동 선거기구이자 공동 투쟁체이다. ‘좌파전선’은 혁명적 강령과 대중투쟁 노선을 견지하는 가운데 다섯 명의 하원 의원을 갖고 있다. 의회에서 혁명적 입장을 제기하는 이 의원들은 노동자 평균임금만을 받고 나머지 급여를 투쟁기금으로 내며, 투쟁현장에서 최선두에 선다. 밀레이 정권이 ‘옴니버스 법안’에서 비례대표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들을 의회에서 제거하려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좌파전선’은 2023년 하반기 치러진 대선과 총선에서 각각 2.7%와 3.3%를 득표했다. 이후 매일같이 간호사, 타이어산업 노동자, 실업자, 공무원 등이 시위를 계속 이어갔다. 최대 노총 CGT와 좀 더 전투적인 CTA에게 총파업에 나서라는 호소와 압력이 빗발쳤다. 밀레이 정권이 ‘옴니버스 법안’을 발표한 12월 27일 CGT 주최로 시위가 열렸다. 원래 CGT 지도부는 ‘메가 대통령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러 법원을 향해 인도로 행진하는 작은 시위를 계획했는데, 2만 명이 몰려나와 법원 앞 광장과 차도를 가득 메워버렸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밀린 CGT는 결국 다음날 다른 노총들과 함께 1월 24일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총파업 계획이 발표되자, 부르주아 언론들은 “새 정부 취임 18일 만에 ‘역사상 가장 빠른 반정부 파업’을 발표했다”면서 비판에 나섰다. 자본가단체들은 “밀레이 정권을 지지하는 맞불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발표했다. 밀레이 정권은 “나는 파업하지 않을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총파업을 좌절시키려는 캠페인에 나섰다. 반면 좌파전선과 전투적인 노조들은 모든 사업장에서, 모든 노동자들 속에서,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총파업을 조직해 나가자고 결의하고 호소했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보여준 총파업 150만 명이 참여한 1월 24일의 총파업은 누가 이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수도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에서 도로와 광장을 점거하고 대규모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도로점거 시위를 엄벌하겠다는 대통령과 치안부 장관의 엄포를 묵사발 냈다. 밀레이 정권의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을 반드시 분쇄하겠다는 요구를 앞세우고 전투적인 노조들, 사회단체들, 지역조직들, 좌파조직들이 함께 행진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노동조합들, 사회단체들, 좌파조직들 등으로 구성된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의회 광장 주변으로 운집하면서 도심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는 조종사들을 필두로 항공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르면서 300편이 넘는 비행편이 모두 취소됐다. 항공노동자들은 밀레이가 추진하는 국영항공사의 사유화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무원, 트럭기사, 인쇄, 은행 부문도 파업에 강하게 동참했다. 버스와 지하철은 오후 7시부터 파업에 동참했다. 수도를 둘러싼 광역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서는 제조업 파업이 힘차게 펼쳐졌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파업이 매우 강력했다. 90초마다 차량을 생산하던 도요타 공장이 완전히 멈춰 섰다. 포드에서도 생산이 마비됐다. 폭스바겐은 휴가 중이었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행진에 나섰다. 금속부문과 식료부문에서도 파업이 벌어졌다. 타이어산업 노동자들은 자체적으로 7시간을 추가해 19시간 파업을 벌였다. 통신사 건물도 거의 텅 비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운영됐다. 그러나 이날 총파업에는 아쉬움도 있었다. 특히 버스와 지하철이 오후 7시부터 파업에 나서면서 파업의 위력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만일 버스와 지하철이 아침부터 파업에 들어갔다면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위 규모도 훨씬 늘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노조 안에서 계급투쟁 노선 활동가들이 더 강력한 파업을 요구하며 내부투쟁을 전개했지만, 파업 시점을 바꿔내지 못했다. 그런데 버스와 지하철 노조 지도부가 보여준 이러한 어정쩡한 자세는 사실 더 큰 문제의 일부였다. 페론주의(키르치네르주의) 세력과 노조관료들 아르헨티나는 공식 경제에 포괄된 노동자들의 40% 정도가 조직돼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의 규모가 큰 나라다. 1930년에 결성된 최대 노총 CGT의 조합원 수는 오늘날 700만에 이른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이끄는 노조관료들은 1940년대 페론주의가 등장할 때부터 그 한 축을 구성해 왔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했던 페론주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흔히 비난받는데, 임금 인상, 단체교섭권 보호, 주택 개량, 사회보험 시행 등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개량적 조치들을 취하긴 했지만, 엄연히 자본주의 착취·억압 체제를 수호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이었다. 페론주의의 일부가 된 노조관료들은 정권으로부터 약간의 개량을 얻어오는 대가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을 억눌렀다. 1970~80년대 군사정권을 거친 뒤, 1990년대에 정권을 잡은 페론주의 우파가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을 때,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의료보험과 연금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사유화와 노동유연화를 수용했다. 그러나 점점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생존권이 파탄나자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려 수십 차례 총파업에 나섰다. 결국 2001년 거대한 경제위기가 터졌고, 강력하게 성장한 실업자운동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민중항쟁이 폭발하면서 2주일 사이에 네 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이후 자본가권력의 통치위기 상황을 수습한 뒤 최근까지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한 게 페론주의 좌파에 해당하는 키르치네르주의였다.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다시금 키르치네르주의를 떠받치는 하위 파트너로 역할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키르치네르주의 정권이 전임 우파 정권의 대규모 임금·연금 개악을 복원하겠다던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데도, 노조관료들은 한 번도 총파업을 조직하지 않았다. 키르치네르주의는 개량을 안겨줄 것 같은 언사를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어정쩡한 수준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거짓말과 모순으로 점철된 정치적 위선, 또 하나의 ‘특권층’이 되어 깊이 빠져든 부패, 물가폭등에 대한 통제력 상실 등 키르치네르주의 정권에 대한 광범한 실망과 분노가 2023년 대선을 앞두고 폭발했다. 극우인사 밀레이가 깜짝 부상하고 집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키르치네르주의가 계속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분명히 그들 또한 IMF와 협력하며 긴축 정책을 실시했을 것이다. 물론 좀 더 유연하게, 특히 노조관료들과 협상하는 방식을 취했겠지만, 그 본질은 밀레이 정권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월 24일 총파업이 벌어질 때까지, 밀레이 정권의 ‘충격요법’에 대해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의 실세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는 침묵했다. 대선후보였던 세르히오 마사는 밀레이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키르치네르주의 정치인들은 총파업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밀레이의 초긴축 정책이 총파업과 거리시위 같은 대중투쟁에 의해 분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본가정부의 정책을 대중투쟁으로 분쇄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이 원하는 것은 대중투쟁의 물꼬를 의회와 법원에서의 말다툼으로 돌리는 것이고, 차악으로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며, 결국 4년 뒤 선거에서 재집권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들의 목표에 부합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총파업이 제한되는 것이다. 문제는 총파업을 공식적으로 이끄는 노조관료들의 대다수가 여전히 페론주의에 빠져 있고 키르치네르주의를 추종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려 총파업을 선언하고 실행했지만,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은 밀레이 정권에 맞서 전면전에 나설 생각이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망은 의회와 법원이 대신해서 밀레이 정권의 독주를 막아주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만큼만 투쟁하면 된다는 페론주의 노조관료들의 본심은 버스와 지하철의 어정쩡한 파업으로도 나타났지만, 1월 24일 총파업 이후 투쟁계획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아래로부터 자주적인 투쟁역량을 건설하기 그러한 노조관료들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있기에, 사회주의노동자당(PTS)을 비롯한 좌파전선은 총파업 계획이 발표된 이후 노조관료들과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의 자주적인 투쟁역량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노조관료들이 의식적으로 토론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좌파전선은 영향력을 가진 사업장들과 전투적인 노동조합들 속에서 대중적 토론을 제기하고 조직해 나갔다. 나아가 지역 단위로 조합원, 미조직 노동자, 특수고용, 실업자, 여성, 학생, 그밖에 공세에 맞닥뜨린 모든 민중을 포괄하여 토론 모임을 갖고 카세롤라조와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전투적인 노조들, 사회단체들, 좌파조직들을 중심으로 ‘민중회의’라는 지역조직들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필두로 여러 지역에서 건설해 나가고 있다. 좌파전선은 일회성 총파업을 넘어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을 완전 분쇄할 때까지 무기한 전면 총파업으로 나아가자는 방향을 제기했다. 또한 △자본의 위기전가 반대 △IMF와의 합의 거부 △고용·임금·연금의 방어 △살인적인 물가인상에 맞서 임금·연금과 특수고용소득의 긴급 인상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 등 모든 긴축정책의 즉각 폐기 △모든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 △폐쇄·정리해고 공장에 대한 노동자 자주관리 △식료품을 비롯한 필수품에 대한 가격통제 △식료품 대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내모는 모든 기업의 몰수와 노동자통제 등과 같은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강령을 모든 모임과 집회에서 제기해 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노동자계급의 명확한 전망을 내걸고 아래로부터 건설되는 자주적인 투쟁역량이 얼마나 강력하게 성장하는가, 그래서 이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노조관료들을 압박해 내고 나아가 압도해 내는가야말로 향후 투쟁의 전망을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다. 세계적 중요성을 가진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과 노동자의 반격 1월 17일, 밀레이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전 세계를 대표하는 자본가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기조의 연설을 하고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그는 “서방 세계가 집단주의와 급진적 페미니즘, 잔인할 정도의 환경 보호 등 사회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위험에 빠져 있다”면서 “자유시장경제만이 기아와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세계경제포럼에서의 연설과 환대는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실험이 오늘날 세계 계급투쟁에서 갖는 의미를 함축해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와 인접한 칠레에서 1973년 쿠데타에 성공한 피노체트는 칠레를 세계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칠레에서 실현가능성이 입증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후 19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화했고,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얼핏 보기에,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200%가 넘어가는 ‘예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나온 ‘예외적인’ 정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예외적인’ 상황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오늘날 세계경제 전반이 통제 불가능한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향해 치달아 가는 과정에서 ‘약한 고리’에서 먼저 불거져 나온 전조증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밀레이의 언행은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 못지않게 기괴하고 극단적인 극우인사들이 줄줄이 집권하는 상황을 세계 도처에서 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두테르테,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같은 자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밀레이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인도의 모디, 이탈리아의 멜로니,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같은 자들도 그 실질적 면모에서는 그리 밀리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지금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극우가 맹렬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직 극우정권이 밀레이 정권만큼 극단적인 초긴축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을 침몰시켜 나간다면, 지금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일 수 있지 않을까? 지구를 덮치게 된 기후재난이 파키스탄의 홍수에서 그칠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휘감게 된 전쟁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경제파탄과 극우정권의 초긴축 정책은 결코 아르헨티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밀레이 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자계급의 투쟁 또한 그만큼 세계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2024-01-31 | 조회 2,194 -
[세계의 여성파업 1] 아이슬란드 -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와 화산,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간 사람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의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자연이 있고 1인당 GDP가 세계 8위인 부유한 나라다. 이보다 더 유명한 점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14년 연속 성평등 국가 세계 1위1)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과 관련해 아이슬란드에 붙는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1980년)’, ‘세계 최초로 의석을 얻은 여성정당(1983년)’,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대통령(2009년)’ 등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27년째 여성의 저임금으로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아이슬란드는 마치 다른 행성인 듯하다. 1) Global Gender Gap Report. 남성과 여성의 권익을 비교하는 통계로 임금,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기준으로 남성의 권익을 1로 두고 여성의 권익을 계산한 지수. 조사대상 146개국 중 0.9를 넘는 나라는 0.912를 기록한 아이슬란드 하나뿐이었다. 한국은 105위로 0.680. 이러한 나라에서 최근 국제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다. 2023년 10월 24일, 성인 여성의 90%가 온종일 ‘여성파업’을 벌인 일이다. 성평등 모범 국가로 국제적 부러움을 사는 아이슬란드에서 거의 모든 여성이 파업했다니 놀라운 뉴스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지 않는가? 파업 참가 여성들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성파업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차별과 억압, 저항의 역사를 살펴보자. 사회를 뒤흔든 1975년 10월 24일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23년 현재 인구 약 39만 명인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던 시기를 지나 870년경 바이킹이 세운 나라다. 과거부터 남성이 바다에 한참 동안 나가 고기를 잡고 여성은 사냥부터 농사일, 모든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보수 우파(우파 연정)가 정권을 잡아 왔다. 경제는 척박한 환경 탓에 비교적 더디게 성장했다. 여성들이 다닐 수 있는 일터는 생선 공장 정도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15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고, 1931년에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8대 기본협약 중 하나인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협약(1951년)’을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58년에 비준했다. 1961년에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했다. 겉으로 보면 여성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만큼 차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915년부터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60년간 의회에 진출한 여성은 단 9명에 불과했다2). 무엇보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1960년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대비 60% 미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에 시달렸다. 특히 여성이 많은 직종의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4%에 수준에 그쳤다. 여성은 집 안에서 온갖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느라 직장에서 일할 수 없었고, 일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에서 차별당하며 일하다 퇴근해서 다시 가사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게 대부분 여성의 일상이었다. 여성은 법과 다른 현실에서 살아갔다. 2) 1975년 기준 여성 하원의원은 전체 의석의 5%인 3명이었다. 그러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국제적 저항 운동의 물결이 아이슬란드의 여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거대한 노동자 투쟁,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의 성장과 여성해방 사상 등에 영향을 받으며 여성운동을 성장시켜 갔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현실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문제의식을 갖고 저항을 통한 변화를 꾀했다. 1970년대가 되자 5대 여성단체의 회원 수가 전체 여성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레드스타킹스(Redstockings)’는 여성단체 중 하나였다. 레드스타킹스는 1970년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단체로 노동절인 5월 1일 빨간 스타킹을 신고 ‘인간이다!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하며 대중 앞에 등장했다. 레드스타킹스는 20~30대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었으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과 여성해방의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직장 내 젠더평등 등 노동의 권리와 임신중지권, 유치원 돌봄의 확장 등 재생산권을 위해 투쟁했다. 1970년 첫 총회에서부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을 안건으로 제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여성의 주체적 파업투쟁으로 깨뜨리자는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5년 후 그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3)로 지정했다. 이를 준비하는 1974년 6월 여성단체 간담회에 초대받은 레드스타킹스는 그 자리에서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당했고 그 후 이들은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1975년 1월에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을 찾았다. “여성이 일터에서의 노동력과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의 힘을 세상에 보여 주기 위해 1년에 하루, 모든 여성이 파업을 벌이자!” 레드스타킹스의 제안에 여성 노동자들이 열광했다. 3) 유엔은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의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레드스타킹스와 노동조합은 더 많은 여성 노동자를 만나며 여성파업을 조직했고 아래로부터 긍정적이고 상당한 여론과 지지를 만들어 갔다. 5월 총리실 주관으로 열린 세계 여성의 해 운영위원회는 그 구성에 노동조합과 레드스타킹스를 포함시켰다. 이 기구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 정치적 입장의 참여와 합의를 우선해 여성파업 제안을 수용하면서 그룹별 대표자, 교사 노동자, 미혼모 등 8명의 이름으로 여성파업을 정식 상정했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일손을 놓거나 휴가를 쓰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거나 가게에서 나서고, 전업주부는 집안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우파 여성과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행동으로 사업주에게 해고될까 봐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며 ‘파업’의 급진성에 반대했고 결국 위원회는 ‘파업(Strike)’ 대신 ‘휴일(Day Off)’로 변경해 합의에 이르렀다. 모든 노동조합이 협력해 날짜를 10월 24일로 정했다.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열린 여성회의에서 아이슬란드 말로 '크베나프리(Kvennafri)'라고 부르는 10월 24일의 선언문4)을 채택하며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파업이 결정됐다. 이날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급진적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세력이 결집하면서 더 많은 여성이 이날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홍보물에 실린 ‘여성 휴일(Women's Day Off)’을 ‘여성파업(Women's Strike)’이라고 불렀다. 4) [전문] 1975년 10월 24일 선언문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Women's Congress)는 여성이 해온 일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오는 유엔의 날인 10월 24일 하루 '데이 오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왜 이러한 제안이 모든 연령의 여성들과 정당들이 모인 의회에서 발의되고 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 누군가가 형편없을 정도로 보수가 적은 직업을 필요로 할 때, 그 구직 광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통상과 무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남성의 평균 임금의 7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아이슬란드 노총(Icelandic Trades Union Congress) 산하의 주요 노동조합에는 여성 대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30,000(한화 약 270,000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부의 아내들은 농부 노조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인 여성들에게 흔히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하우스키핑(가사유지)에 불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보육원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 있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장에서 농부 부인의 노동 기여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1년에 175,000(한화 약 1,600,000원) 이상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취업지원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의 가사노동 경력은 노동 시장에서 그 어떠한 가치로도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 24일에 '데이 오프'함으로써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국제 여성의 해에 이 '데이 오프'의 날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평등, 발전, 평화 1975년 10월 24일, 직장에서 집에서 여성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았다. 여성의 90%가 파업에 참여했다. 여성이 멈추자 사회가 멈췄다. 거의 모든 교사가 여성인 보육원이 문을 닫았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65%가 여성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휴교했다. 주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기관도 문을 닫았다. 각종 상점과 가게가 문을 닫았다. 생산가공 공장이 멈췄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 우체국 업무가 멈췄다. 남성 항공기 조종사는 있었지만, 승무원이 없어 항공사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다. 은행원이 없어 임원들이 커피를 직접 끓이고 창구업무를 봤다. 조판공이 대부분 여성이라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남성 아나운서와 스태프가 남아 여성파업을 보도했다. 남성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는 여성이 작곡했거나 여성을 위한 음악 사이로 어린아이가 노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농촌의 여성파업 상황을 묻기 위해 디제이가 시골 마을 청취자의 집에 전화를 걸자 아이를 돌보던 남성들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 공연자가 없어 공연도 줄줄이 취소됐다. 여성이 멈추자 세상이 멈췄다. [사진: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집에서도 여성이 일을 멈추니 남성들이 집안일과 육아, 가족 돌보기를 해야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거나 아예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과자와 사탕, 연필과 종이를 사다 날랐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녔다. 마트에는 조리가 편리한 소시지와 과자가 일찌감치 품절됐다. 저녁이 되자 주택가 거리마다 연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준비하며 음식을 태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 여성파업 집회는 오후 2시 5분에 시작됐다. 2시 5분은 당시 일터에서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비교해 여성 노동자의 유급노동이 끝나는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렉자르토르그 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여성 인파로 가득 찼다. 광장 인근 거리와 골목까지 여성들이 가득 메웠다. 처음 열린 여성파업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당시 인구의 무려 10%가 넘는 규모였다.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많은 여성이 같은 시간에 여성파업 집회를 열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여성들은 사회를 향해 누구보다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 올렸다. 여성단체 활동가, 여성 노동자, 전업주부 등이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억눌려 온 현실과 권리를 주장했다. 마지막 연사는 54세의 비정규직 가사 노동자 아달헤이두르 비얀프레드스도티르(Aðalheiður Bjarnfreðsdóttir)였다. 그는“여성들이 깨어나고 있다. 여성은 먼 옛날부터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상은 어땠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긴밀하게 협력해 여성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5)”라는 연설에 수많은 사람이 감명받았다. 참가자들은 여성 노동의 거대한 힘을 공감하며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한 평등과 권리를 당당히 외쳤다. 파업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남성들은 이날이 하도 길게 느껴져 ‘긴 금요일’이라고 불렀다. 5) https://kvennasogusafn.is/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역사기록보관소 여성파업이 일으킨 물결 단 하루였지만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것인지를 사회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남성의 눈을 뜨게 했다. 특히 여성파업의 조직 과정에서부터 여성 노동자가 중심 역할을 하며 힘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기업의 자본가들이 휴가나 파업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할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이 노동을 멈추자 사회가 덜커덕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느꼈을 감격과 자신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여성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발견했고 여성이 직접 나서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여성파업의 대오를 함께 이룬 세력들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같이 싸워 갈 힘을 얻었다. 사회는 여성파업에 응답해야만 했다. 여성파업이 있기 전 정치인들은 여성 노동자가 요구하는 하루 8시간 공공보육 시스템에 대해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여성파업의 힘을 경험한 후 정부는 2세부터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8시간 담당하는 유치원법을 제정했다. 1976년에는 직장과 학교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최초의 성평등법(Gender Equality Act)6)이 제정됐고 성평등위원회가 구성됐다. 법 조항 중 하나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급 출산휴가가 보장되고, 제한적이던 임신중지권이 확대됐다. 6) 아이슬란드정부 자료 https://www.government.is/ 8시간 공공보육이 시작되자 육아를 떠맡던 여성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가사도 남성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여성이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고 다양한 사회진출이 가능했다. 단 하루 파업으로 여성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찬 사회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젠더평등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된 것임은 틀림없었다. 여성파업의 파장은 아이슬란드 국경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북미와 유럽의 언론들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10월 24일 여성파업을 보도했는데 수많은 여성이 이 소식에 감격했다.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폭로하고 저항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다. 미국에서 1975년 10월 29일, 전미여성기구가 주도한 미국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1975년 11월 3일, 여성들이 파업위원회를 조직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에서는 여성들이 불평등에 항의하며 첫 여성파업을 벌였다. 폴란드에서 2016년 10월 3일,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검은 월요일’이란 이름으로 파업에 나섰고 노동조합과 남성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에서 10월 19일 임신중지권 보장과 페미사이드에 맞서는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약 50개 국가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에 영감을 얻은 국제 여성파업을 개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분위기가 강했던 탓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심했다. 유명한 가수가 커밍아웃한 후에 이민을 떠나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파업 운동 이후 변화한 젠더평등 인식을 따라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했다. 사회적으로 점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대신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더 크게 여겨졌다. 사회 제도적 변화도 가져왔다. 1996년 동성 간 결혼과 권리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 동성 파트너의 제반 권리가 인정됐고 2006년 자녀양육 등에 이성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2010년 6월 27일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모든 결혼법에 성 중립성을 확대했다. 2009년에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를 총리로 선출하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 도시 곳곳에 성소수자의 인권 존중과 평등을 의미하는 무지개 거리가 조성됐다. 2019년에는 ‘성적자율성법’을 제정해 제3의 성으로 ‘간성’을 인정했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하나씩 오르는 ‘젠더평등’의 계단과 정체된 일터 여성파업은 여성의 시선을 정치로 이끌었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여성이 정치 참여의 평등한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1980년에는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ís Finnbogadóttir)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1981년 창당한 우먼스리스트당(여성의당)은 1983년 선거에서 지지율 5.5%를 기록하고 국회의원 의석 3석을 차지하며 여성정당으로 의회에 처음 진출할 수 있게 했다. 1980년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5.2%로 1960년대 34.3%이었던 것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돌봄 노동 사회화의 일부로서 공공 유치원이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급진적 효과였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임금 차별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일쇼크 영향으로 발생한 심각한 인플레이션7)으로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한 상태여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첫 여성파업이 10년째를 맞았던 1985년 10월 24일, 다시 파업을 벌여야 했다. 7)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주요 소비재와 산업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이 심화됨. 1983년 84%를 기록 성별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파업 돌입 시간은 2시 5분으로 10년 전과 같았다. 1983년 기준으로 여성의 연간 평균임금은 전체 평균 임금의 65%에 그쳤다. 다시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은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 해소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는 10년 만에 다시 거대한 여성파업에 직면하면서 1985년부터 5년 단위의 ‘젠더평등실행계획’을 세워 집행했다. 정부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관리,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젠더평등’노선을 실행해 갔다. [이미지: 여성파업 연도별 임금 격차]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아휴직 사용이 여전히 여성 노동자에게 편중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일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75%대로 높아진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가사·돌봄 노동을 해야 했다. 특히 0세부터 1세의 자녀를 돌보는 육아휴직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주간의 사용 권리가 생겼지만 2000년대 초까지 남성의 실제 육아휴직 사용은 3%대에 불과했다. 1999년 국회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이들이 여성 대중의 요구를 대변했다. 그로 인해 2000년에는 아이 돌봄 노동의 성별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 양육자 남성에 대해서도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급 육아휴직 할당제가 도입됐다. 단계적으로 범위를 늘리다 2003년에는 전면화됐다. 총 9개월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남녀가 3개월씩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3개월은 서로가 자유롭게 나눠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임금은 80%의 평균임금이 보장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남성의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약 45%까지 높아졌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도 동반 상승했다. 남성의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참여와 책임감이 커지면서 아이와의 유대감도 전보다 커졌다. 기업에서의 자본의 통제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았던 현실에 맞서, 투쟁으로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고 제도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바꿔 낸 결과였다. 여성의 독박육아 해소는 기업 자본가들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노동의 착취량이 증가하고 경력단절 없이 높아진 여성 노동의 생산성 또한 자본이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경제는 자본의 성장과 거품, 노동조합의 양보로 표현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아이슬란드 정부와 자본은 시장 자유화 정책과 각종 규제 완화, 민영화, 구조조정, 부유층 감세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금융업이 크게 활성화됐고 2006년 1인당 GDP가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금융 부문을 포함해 자본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전례 없는 성장과 이윤 축적을 누렸다. 여기에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전제로 낮은 임금인상을 수용했다. 생활비보다 높은 임금이 유지되면 기꺼이 만족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를 들면 전기기술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임금 수준이 물가상승에 비례해 충분하다는 이유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간 1.4%씩만 증가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차별받는 여성 노동자의 입장은 달랐다. 최초의 여성파업에서 30년이 지난 2005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세 번째 여성파업에 나서야 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여성파업을 시작한 시간은 2시 8분. 30년간 임금 차별은 단 3분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2시 8분 이후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공짜였다. 여성들은 임금 격차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점차 상승하며 노동조합은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했다. [사진: 200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 사회를 바꾼 두 번째 계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금융과 부동산 거품으로 아이슬란드 경제가 일시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해외투자자들이 자본금을 회수하면서 금융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10월 6일 국가 부도를 선언하고 IMF 구제금융 시기를 맞이했다. 70%에 이르는 기업이 법적 파산 상태에 처하고 실업률이 10%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채무가 약 5억 원 규모나 됐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 책임을 스스럼없이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성난 노동자 민중은 가만있지 않았다. 16주간의 ‘프라이팬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은 매주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연속 16주간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난 노동자 민중은 국회를 포위하고 요구르트 통과 돌을 던졌으며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큰 소리로 두들겼다. 경찰은 처음으로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행자가 속출해도 계속 싸웠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투기를 벌여서 만든 부채를 우리가 대신 갚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래세대를 제물로 삼지 마라”고 외쳤다. 이들은 파산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여 금지, 정부 총리 사임과 새로운 총선, 모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타협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아이슬란드 사회는 투기 자본가들이 스스로 위기의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고 대중 투쟁으로 정부를 몰아내고 자본가들을 구속시켰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구속된 자본가와 총리 등 경제위기 책임자는 총 90명에 이르렀다. 이후 출범한 중도좌파 연정은 항쟁의 압력에 밀려 대중의 요구를 이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저소득층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예산을 전년 대비 36%를 더 사용하고 청년 일자리 제공과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을 강화했다. 민영화했던 모든 은행과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주택 가격의 110%가 넘는 가계부채는 모두 탕감했다. 부유세가 인상됐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금융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을 도출했다. “당시 금융위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특정 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담론과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시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큰 규모의 경제 관련 프로젝트 중에서 산업 프로젝트, 감세 정책, 그리고 주택 단지 개발 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금융 부문이 소수의 남성에 의해 운영됐고, 성 고정관념과 남성들의 문화에 기반한 사업 계획과 운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수 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주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성인지 예산과 성인지 조세정책(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여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노동 및 지역 정책을 개발할 때 성 주류화8)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2012년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8) 성주류화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성인지 관점을 통합하여 정책을 재구조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로 ‘남성 중심 경영’을 지목했다. 소수 상층 남성들의 이윤 추구와 그들 사이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이라는 권력자 남성의 카르텔이 문제라 지적하고 이를 깨뜨리기 위한 경제, 노동시장 분야의 ‘젠더평등’을 해법으로 제출했다. 1975년 여성파업이 정치 분야에서 여성을 평등한 참여자로 만들었다면,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은 경제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강화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50인 이상 기업임원 40% 여성할당제(2013년 시행)와 같이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환을 주되게 시행했다. 이렇게 2008년 항쟁은 1975년 여성파업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든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이 계기를 거치며 ‘젠더평등’이 더욱 강력한 국가 정책으로 등장했는데, 사실 이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했다. 2010년대 이후 여성파업 2시 25분, 38분, 55분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순위에서 젠더평등 수준 1위를 차지했다. 금융위기에 맞선 항쟁 이후 복지와 조세제도가 노동자에게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뀌면서 성별 임금 격차의 완충 역할도 했다. 의회가 2008년 통과시킨 법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항쟁 이후 첫 선거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2.9%로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사회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2010년 10월 24일, 여성의 절반이 모여 공짜 노동이 시작되는 2시 25분 여성파업에 참여해야 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공식 노동자의 45.5%가 여성이었고, 동일 수준의 남녀 노동자를 비교한 성별 임금 격차는 17.5%였다. 그러나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학력 등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32.9%9)나 됐다. 2008년을 기준으로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남성은 90%인데 반해 여성은 65%에 그쳤다. 여성 노동자는 더 유연하고, 더 불안정하고, 더 임금이 낮은 노동조건에 처해 있었다. 9) 아이슬란드 통계청 https://www.statice.is/ [사진: 2010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15년은 계급투쟁의 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인력 충원 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커다란 빈부격차, 그리고 낮은 임금인상률로 노동자의 삶이 제대로 나아지지 않은 채 노동조합 지도부는 낮은 임금인상률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왔다. 아래로부터 분노가 커지면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분 노동조합은 실질최저임금 50%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준비했다. 4월 말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국민의 90% 이상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지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 인구의 73%가 노동자로 일했는데, 여성 노동자가 많은 의료, 교육, 청소 등 직종이 속한 노동조합이나 여러 산업 부문의 여성 노동자도 주요한 파업 대오였다. 총파업을 거치며 여성운동 진영과 노동운동 진영이 함께 다시 여성파업을 준비했다. 2016년 의무할당제를 적용받는 상장기업 이사회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고, 국회의원 41%가 여성이었는데 일부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정치와 경제의 상층 요직에 올라가는 것으로 줄인 성별 임금 격차는 시간으로 계산할 때 6년간 단 13분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 27.5%, 자본의 통치가 강력한 기업 안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 차별은 굳건했다. 2016년 10월 24일 2시 38분, 여성들은 다섯 번째 여성파업을 힘차게 펼쳤다. 정부는 앞으로 2022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듬해 2017년 6월 1일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임금인증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1961년 처음으로 제정한 평등임금법이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권고’하는 내용이었고, 1976년 성평등법 도입, 2008년 남녀평등지위권익법은 노동자가 성별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도입한 법은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내용이었다.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이 있을 경우에는 약 50만 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되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의 임금평등법 개정안이 제출된 것은 2010년이었는데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적용 기준을 정해 2018년 본격적 시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이 넘게 소요됐다. 이제까지 자본가들은 줄곧 여성의 저임금에 대하여 법 위반이나 초과 착취를 반성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면서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려 왔다. 그런 상황에서 동일임금제가 시행되면 ‘남성들의 임금이 깎일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며 백래시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다. 자본가연합단체와 노동조합연합단체가 합의에 이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유럽 전반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관철해 왔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2018년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44.4시간으로 유럽에서는 긴 편이었다. 노동조합은 오랜 요구인 노동시간 단축을 전면에 내세우며 2015년부터 주4일제 도입 실험을 시작했다. 변화된 상황에서 2018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여섯 번째 여성파업에 나섰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노동 착취, 여성 노동에 가중된 초과 착취가 사라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상대적 고용불안, 성별 직종 분리,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가사돌봄 노동의 차별에 분노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28%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그에 따라 2시 55분에 다시 파업의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여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의 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2023년까지 여성파업이 만들어 낸 성과 2023년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시 아이슬란드의 여성에게 향했다.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가 91.2%인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48년 만에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24시간 여성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성별이분법에 따른 여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non-binary)가 함께 참여했다. 여성파업이 진행된 하루 동안 사람들은 남성들만 보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잠을 깼고 대중교통이 지연되는 하루를 맞았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과 많은 상점,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은행은 한 곳만 문을 열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열렸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을 줄였다. 국영항공사는 항공편을 취소했다. 사무실과 호텔 객실 등은 청소되지 않았다. 총리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도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사진: 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이날 여성파업은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 직종 저임금, 성에 기반한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평등을 요구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집회에 모였다. 후사비크, 아쿠레이리, 사우다르크로쿠르 등 10개의 도시에서 파업 집회가 개최됐다. 친구, 가족, 동료들과 함께 참석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21%나 낮다! 이게 평등이라고?’, ‘1975년부터 2023년 여성의 투쟁’ 등이 쓰인 피켓, 플래카드 등을 들고 파업의 요구를 힘껏 소리쳤다. 레드스타킹스가 불러 1975년부터 여성파업의 노래가 된 ‘여성이여, 앞으로!(Onward Girls, 아이슬란드어로 Áfram Stelpur)’, 칠레의 여성투쟁가 ‘강간범은 바로 너다! (A Rapist in your Path, Un Violador en Tu Camino)’ 등을 힘차게 불렀다. 발언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물었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부를 것인가?” 참가자들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파업은 노동조합이 최대의 조직자였는데 공공노조의 프레야 스테인그림스도티르(Freyja Steingrimsdottir)는 “우리는 평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에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하고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의료 서비스나 보육과 같이 여성이 주도하는 직업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고 임금도 훨씬 낮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한 유치원 노동자 스타눈 시구르게르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에는 여성에게 여성이 최고라는 속담이 있다”며 “여성이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원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성파업집회에 참가한 호피(Hófí)는“ 나는 아이슬란드 여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아이슬란드는 천국처럼 이야기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여성만 일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많이 있다. 이 나라는 충분히 부유한 나라이고, 더 낫게 분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여성이 주로 하는 무급 재생산 노동도 강조했다. 주최 측은 캠페인을 통해 미리 남성들에게 ‘하루 동안 남편, 아버지, 형제, 삼촌들이 아침과 점심 도시락 준비, 친척 생일 기억하기, 시어머니 선물 사드리기, 자녀 치과 예약하기 등 가족과 가정에 관련된 일을 책임감을 갖고 맡아달라’고 전했다. 수많은 여성이 유급 휴가를 얻으며 파업에 참여했지만, 응급 구조와 의료 업무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많은 직종,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이번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빼먹지 않고 2023년 여성파업에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슬란드기업연합(SA)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시그리두르 마그레트 오드스도티르는 말로는 여성파업의 대의를 지지한다면서 여성파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여성들이 사용자와 합의 없이 모든 일터에서 파업하면 아이슬란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그는 여성CEO로서 여성파업 대신 사용자와 대화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파업 이후 11월에 열린 ‘레이캬비크 글로벌 포럼’에서 외교부 장관 비야르니 베네딕손은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젠더평등을 실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48년간의 오랜 여성파업의 역사는 여성 차별과 억압을 거대한 대중적 운동으로 돌파하며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첫째, 사회 전체와 모든 이들에게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여성 노동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를 거듭 제공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여성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페미니즘운동을 부상시켰고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둘째, 1975년 여성파업에서부터 유치원을 늘리라는 공공 돌봄 요구를 이뤄냈다. 돌봄 비용의 85% 정부 지원, 교사 1명당 아동 5명 보육 등으로 안전한 공공 돌봄을 강화시키며 여성이 무급 재생산 노동에서 점차 벗어나 사회적 생산 노동의 주체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 남성이 돈 버는 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한다는 근본적 성별 역할 구분을 깨뜨리며 여성이 과거보다 사회를 향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노동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가입10)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노동인구 증가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증가로 이어졌다. 여성 노동자도 노동조합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동함으로써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와 젠더적 요구를 결합하면서 노동조건을 향상해 나가게 됐다. 국제노총(ITUC)이 평가하는 글로벌 권리 지수(Global Right Index)에서 아이슬란드는 1등급인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확장된 보장이 없다면 최고 등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0) 1938년 노동법이 발효된 이래 노동조합 가입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의무화됐다. 1980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단체협약은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에르고 옴니스 원칙(모든 사람을 향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 원칙)'이 적용되어 노동시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게 됐다. 넷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걷어 내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성장시켰다. 여성 총리와 여성 의원의 등장, 여성의 높은 투표율 등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 작동 원리에서 벗어난 게 아니지만 그러한 표현의 하나다. 여성의 90%가 파업으로 사회를 멈추며 주체적 정치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 높이 발전한 정치 인식을 보여 준다. 다섯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정세 변화에 조응하며 노동권을 중심으로 여성의 생존권과 다양한 삶의 권리를 위한 요구와 저항력을 확장했다. 이는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동성결혼 합법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성별 정정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해 소수자 인권을 신장시켰다. 여섯째, 여성에게 맡겨진 독박 가사·돌봄 역할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함으로써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정도를 증가시켰다. 보육, 의료 서비스 등 공적 돌봄이 강화됐다. 2000년부터 시행한 육아휴직 의무할당제와 같이 보육 돌봄에 관한 기업의 휴가나 휴직제도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몫을 명확히 했으며, 가정 내의 무급 재생산 노동을 배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곱째,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화됐다. 여성과 연인들에게 결혼, 임신, 출산이 사회적 통제와 압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변모했다. 전체 출산 아동 10명 중 약 7명(69.4%)이 비혼 출산 아동일 정도로 여성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있게 됐다. 여덟째,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계급의 파업과 같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마비시키는 여성 노동의 파업이 여성의 요구와 투쟁의 힘을 드러내는 효과적이고 높은 수준의 저항 방법임을 각인시켰다. 이 밖에도 여성파업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여성에게는 여전히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여성의 눈물 저항이 만든 사회적 변화에도 자본이 통제하는 기업에서는 여성 차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 문제가 바로 임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동력인 임노동관계에서 성별 임금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터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여성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아이슬란드 남성과 여성의 노동소득에서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교육 수준 등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2010년 32.9%, 2019년에는 25.5%로 여성이 더 낮다. 그 이유는 시간제 노동, 비정규직 노동에 여성의 비중이 높고, 여성이 다수인 직종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금이 낮은 직종의 75%는 여성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교육, 보건, 돌봄, 청소와 식당, 마트 등 서비스와 관광 분야 등이다. 여성 노동자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사의 75%, 교육 분야의 73%, 서비스와 판매의 57%를 차지한다. 여성의 노동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면서 소득과 연동되는 노후 연금도 여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어 여성의 상대적 빈곤은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집에서 이뤄지는 무급 재생산 노동 역시도 아직은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에 장해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절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하며 생산 영역에서의 착취와 재생산 영역에서 무급 가사노동이라는 이중 굴레에 고통받는 현실은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성의 저임금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으면 임금이 더 하락해 버린다.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이중임금제를 적용받고, 노동권을 침해받는 경우11)도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관광업 등에 이주노동자 취업이 증가했고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적극적 이주노동자 수용으로 보완하면서 2023년에는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6.2% 규모가 될 만큼 증가했다. 전체 여성 노동인구의 약 22%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그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8년 아쿠레이리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72만 1,000ISK(크로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60%는 40만 ISK 이하였다. 이주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보다 훨씬 더 낮고 이주 남성 노동자보다 낮았다. 한부모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정주 남성 노동자 > 정주 여성 노동자 > 이주 남성 노동자 > 이주 여성 노동자’의 서열화된 임금 차별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 11) 에플링노동조합(Efling union)은 2017년에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의 60%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2023년 여성파업이 제기한 중요 사항 중 하나는 여성에게 가하는 성에 기반한 폭력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살인 사건이 적은 편이지만 젠더폭력 사건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체 여성의 40%가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전체 여성의 4분의 1은 강간 또는 강간 미수 등의 심각한 젠더폭력을 경험했다.12) 2022년에는 여성 노동자의 3분의 1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에 기반한 폭력13)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젠더폭력은 공연예술이나 언론 등에서 알려진 여성인 경우나 관광, 법조, 보안, 제조, 수리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높았고, 교대근무나 불규칙적이고 장시간 일하는 직종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12) 2018년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연구, 공중보건전문가이자 역학자인 우누르 안나 발디마르스도티르와 아르나 훅스도티르의 연구팀 13) Risk factors for workplace sexual harassment and violence among a national cohort of women in Iceland: a cross-sectional study, The Lancet Public Health, volume7, september 2022. 2022년 다른 통계는 젠더폭력 피해자의 62% 이상이 18세 미만이고, 92% 이상이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여성 쉼터는 정원이 꽉 찬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 범죄도 급증했다. 이주민 여성은 젠더와 인종문제가 겹치며 젠더폭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젠더폭력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젠더폭력의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이러한 폭력 가해자의 절대적 다수는 남성이며, 95.6%가 18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 남성이다. 아이슬란드는 여성파업에 힘입은 젠더평등의 문화가 있고, 2011년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젠더평등 수업을 시행하는 나라다. 여성에게 동등한 정치적, 경제적 권리가 있고 국회의원과 기업 이사회 임원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젠더폭력이 매우 심각한 실상은 ‘북유럽(노르딕)의 역설’이라고 불릴 정도다. 젠더폭력의 참상 앞에서 여성들은 2017년 10월부터 #미투(#MeToo)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 온갖 산업의 재계 고위직, 미디어와 스포츠, 예술계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일어난 추악한 폭력이 끊임없이 폭로됐다. 미투운동이 확산하며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저임금 불안정 고용상태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증언도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잇따랐다. 서비스 분야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가해자는 사업장 내 남성이나 남성 고객이었는데 노동조합 간부인 드리파 스내달은 “남성 고객은 여성 노동자에게 젠더폭력을 행사할 비용도 지불했다고 여긴다. 젊은 여성이 위계적 계층구조의 맨 아래 있다”는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은 2022년까지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이 가시화되면서 피해생존자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와 백래시14)가 심각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전에도 백래시는 젠더 차별을 줄이는 진보한 정책이 생길 때마다 퍼져나간 바 있다. 젠더폭력 사건의 미투운동에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살해 협박이 가해지는 경우마저 종종 일어났다. 피해생존자를 향한 그나마 낮은 수준의 혐오인 ‘그걸 왜 지금 와서 말하냐’는 광범위한 백래시는 오히려 여성들이 꾸준히 비판해 온 경찰과 사법부의 문제점을 가시화하기도 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10%만이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는데 그 이유는 사법부와 경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시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대다수가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도 드물었다.15) 2018년부터 3년간 성폭행 사건 항소심 중에서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40%나 됐다. 14) '세계 최고의 남성 페미니스트' 중 1명으로 뽑힌 적이 있는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전 총리가 술집에서 정치인들과 함께 미투운동을 비난하고 여성 혐오를 쏟아낸 일도 있었다. 15) 2022년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16)이라 지적하며, 성별 격차 해소만으로 젠더폭력 범죄를 줄일 수 없어 사법 체계를 개혁17)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젠더평등으로의 발전이 남성의 분노를 자극하는 기제가 되어 남성이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한다며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젠더 교육이 열악한 탓에 권력 구조를 함께 가르치는 젠더 교육이 대안18)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16)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7) 성폭행 생존자들과 함께 일해 온 변호사이자 사회민주당 의원인 헬가 발라 헬가도티르(Helga Vala Helgadóttir) 18) 아이슬란드대학교 교육대학의 역사학자이자 조교수인 이리스 엘렌버거 여성들은 사회가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인권법원에 아이슬란드 정부를 집단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23년 여성파업의 광장에서 여성들은 “사법부도 공범이다”라고 외치고 ‘강간범은 바로 너!(A Rapist in your Path, 원제 Un Violador en Tu Camino)’라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여성에게 파라다이스는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 전까지 브루클린대학 정치학과 교수 재닛 존슨은 아이슬란드 사회가 여성운동이 강하고 표면상으로 훌륭한 변화와 공식적 평등의 수준이 높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남성이라며 그것이 공식적 젠더평등을 상쇄한다고 비판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성에게 파라다이스인 사회가 가능할까? 2021년 9월 아이슬란드 총리실 산하 성별 임금 격차 TF는 2년여에 걸친 조사를 통해 ‘여성의 일 가치 재평가(Verðmætamat kvennastarfa)’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정부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적 직업’과 ‘여성적 직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전제하며 지난 10년 동안 관련 교육을 진행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결론으로는 법과 제도로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총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젠더평등에 도달하는 데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다. 마치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젠더평등이 경제 발전에 이롭다’는 입장은 분명한 자본주의 논리다. 페미니즘으로 표현하면 매우 익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이슬란드 사회가 젠더평등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것은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여성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다. 여성운동 세력들은 1975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달려가 파업의 전망을 제시한 레드스타킹스와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운동에 힘입어 여성파업을 성사함으로써 주요한 사회세력으로 자리를 잡았고 꾸준히 여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갔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과 함께한다. 노동조합운동 역시 여성파업의 주요한 주체로 역할을 해 왔다. 1975년부터 여성파업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이후 2023년까지 노동조합은 여성파업의 준비부터 참가자 대다수를 조직하는 일까지 꾸준히 활동해 왔다. 사업장과 각 산업 부문에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운동은 아이슬란드 정부와 지배계급을 향해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성별 역할 분리, 성별 임금 격차,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북유럽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가운데 이들 운동 역시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중 하나인 노동조합운동은 노사 윈윈(win-win)을 우선하는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취한다. 청년-중년층 여성은 ‘선택에 자유가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든 신념으로 젠더평등을 요구한다. 최근 10월 24일 여성파업 기념 시위들과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의 인터뷰에서도 정부를 신뢰한다는 표현이나 분배의 평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여성 노동자 민중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 내를 포함한 심각한 젠더폭력 수치는 가부장적 여성 혐오 정서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일 임금인증제가 시행된 후에도 성별 임금 격차는 2019년 25.5%에서 2022년 21%로 4.5%를 좁혔을 뿐이다. 첫 여성파업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어도 전통적 여성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 또 이전에는 모든 계급 여성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많은 일이 이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 가정에서는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과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아웃소싱되고 있다. 게다가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일자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무엇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경제위기가 있다. 2023년 2월 인플레이션은 10.2%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을 찍은 2009년 9월 인플레이션 10.8% 이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 경제의 대불황과 기후위기, 전쟁 속에서 언제든 경제위기가 닥칠 위험성이 높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과 노동자가 일군 지금의 권리를 언제 걷어찰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 민중에게는 1975년부터 여성파업으로 저항해 온 소중한 역사와 저력이 있지 않은가. 저임금 일자리의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든 성을 넘어서 단결한 노동자 투쟁이 국제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변혁적 여성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을 만난다면 아마도 1975년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2023-12-21 | 조회 3,843 -
자본주의가 강요한 정신질환, 각자도생 대신 집단적 변혁을!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종합병원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것은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사연이다. 한때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였을 그들을 아프게 한 것은 비인간적 자본주의 체제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공황장애를 앓는 청년 노동자, 직장 상사의 폭언‧갑질에 불안장애가 생긴 중년 노동자, 취업난에 수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하고 망상 증세를 보이는 청년, 평생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강요된 삶을 버티다 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 등의 이야기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소재다. 드라마는 각자도생의 자본주의로 극심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세히 묘사하고,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따뜻한 연대를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공허하다.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도움의 손길을 보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통장 잔고가 아홉 자리이고 당연하듯 수입차를 끌고 다니는 의사들이나 그런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노동자 대중투쟁의 퇴조는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데 뭉쳐 비인간적 경쟁체제라는 거악(巨惡)을 뒤엎을 수 있다는 낙관적 열망까지도 함께 앗아가 버렸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조차 사라진 시대, 그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집단적 자살, 저출산 11월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는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제목의 중장기 심층연구 결과가 수록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초저출생의 원인은 “청년들이 느끼는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취업 경쟁이 심화된 상태에서,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청년들일수록 희망 자녀수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취업을 못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들은 결혼 의향이 낮았지만, 공공기관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높았다. 미혼 사유, 무자녀인 사유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결과, ‘취업, 생활안정, 집 문제’ 등 “결혼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국 20~39세 청년 2천 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청년 세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설문 응답자의 84.9%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평가했으며, 87.4%는 향후 10년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개인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7.8%,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1.6%에 이르렀다. 국제 금융자본의 두목 가운데 하나인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몇 년 전 한국의 재앙적 저출생을 두고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사회와 같다”고 표현한 건 잘 알려진 일이다. 그나마 출산율이 1명을 넘었던 때의 발언이니, 합계출산율이 0.7명(2023년 3분기)까지 떨어진 지금에는 그 표현의 적절성을 더욱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국의 저출생이 미래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소극적 자살이라는 점은, 실제 자살자 수 통계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된다. 2022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12,90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은 25.2명에 이른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 한국의 자살률이 OECD에서 단연 1위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 비교를 위해 OECD 기준인구로 연령 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을 따졌을 때, OECD 평균은 10.6명, 한국은 22.6명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비인간적 줄 세우기가 유일한 사회 구성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경쟁의 승자에게는 넘치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경쟁의 패자에게는 기초적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로 옹호되는 시대에, 제정신을 부여잡고 살라는 것 자체가 너무도 가혹한 요구일지 모른다. 보건복지부의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만 2,105명의 고립·은둔 청년(19세~39세)이 확인된다고 한다. 이 중 504명은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위험군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81%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고립·은둔을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 등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었다. 임금 노동자의 54.7%(2023년 상반기 기준)가 30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데도 ‘삼백충’이란 비하 표현이 버젓이 통용되는 시대에 청년들이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구역질 나는 ‘정신건강정책’ 심각성은 자본가 정부조차 외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윤석열은 지난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라는 것을 주재했다. 윤석열은 “급속한 산업 발전, 1인 가구의 증가,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붕괴, 과도한 경쟁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투자가 거의 없었다”며,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한 국가 아젠다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떠벌렸다. 구역질 나는 수작이다. 저들이 저출생의 심각성이나 정신건강 대책의 시급성을 떠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 축적의 전제가 되는 노동력 인구의 양적·질적 저하를 걱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을 넘어 생산성에도 문제를 야기하며, 개인의 정신건강은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언한 것, 윤석열이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안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껄인 것은 이런 맥락이다. 자본의 이윤을 철두철미하게 수호하는 자본가 정부는 정작 수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자본의 이윤 질서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오히려 무한경쟁과 부당한 차별을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하며, 성평등의 절박한 요구는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로 뭉개버리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대신 장시간 유연 노동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이 현 자본가 정부다. 그런 자들이 “일상적 마음돌봄 체계”를 구축해 “예방부터 치료, 회복에 걸친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꼴불견이다. 죽지 말고 함께 살자 누군가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 또는 계급 ‘내’에서의 위치를 객관화하지 못한 탓이라 해야 옳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패배자들에게,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지옥이다.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음에도 경쟁의 승자들이 자랑스레 내뿜는 성공 논리 앞에 무력하게 침묵해야 하는 사회에서 불행과 우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모두의 ‘정신건강’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될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사회적 특권을 독점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절대 다수는 일체의 권리에서 배제된다면, 잘못은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질서 그 자체에 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야 생존 가능한 노동자계급 다수의 보편적 고통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박탈 맞은 편에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거대한 부를 앗아간 한 줌의 자본가계급이 있다는 것, 저들 자본가계급이 누리는 무제한적 권력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는 것, 노동자계급이 사소한 차이를 넘어 거대한 단결을 실현하면 자본가 세상을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실한 인간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 계급투쟁의 복구를 통해서만 한국 사회의 각종 병리 현상은 비로소 치유 가능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청년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노동자투쟁이 하나의 ‘선택지’조차 아닌 시대에 막연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길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노동자 계급투쟁이 진전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그러한 길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자본주의에 더 이상 활로가 없다는 점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과 전투적 조직노동자 운동이 앞장서 전체 노동자들과 가난한 청년들, 차별과 억압에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해 싸워나갈 때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은 기필코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2023-12-15 | 조회 1,669 -
[번역] 전미자동차노조의 큰 승리: 미국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편집자 주) 2023년 11월 12일 자로 레프트보이스에 실린 제임스 데니스 호프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e-uaw-won-big-what-does-it-mean-for-the-u-s-labor-movement/ 완성차업체 빅쓰리(지엠·포드·스텔란티스)에 맞선 전미자동차노조(이하 UAW) 파업은 자동차 노동자들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승리였다. 10월 25일, UAW는 41일간의 피켓 시위 끝에 포드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나흘 뒤에 GM과 스텔란티스도 거의 동일한 임금인상, 보너스, 복리후생 패키지에 합의함으로써 수십 년 만에 가장 중요하고 역동적이며 주목받았던 자동차 파업이 사실상 종결되었다. UAW 조합원들은 여전히 잠정합의안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하고 있으며, 목표했던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실제로 미시간주 플린트 지엠공장의 잠정합의 부결이 보여주었듯이, 평조합원들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잠정합의는 자동차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성과를 따낸 이번 잠정합의는 지난 15년 동안 빅쓰리에 양보한 임금과 복리후생의 상당한 회복을 의미한다. 노조는 4년 6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25%의 임금 인상(첫해 11%)과 타결 성과금 5,000달러를 확보했고, 향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임금을 보호할 수 있는 생활비 조정제도(물가임금연동제)를 되찾았으며, 자동차 3사 모두에서 이중임금제 폐지를 향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이처럼 임금 문제에서 승리한 것 외에도, 노조는 파업을 통해 세 자동차 회사 모두 대규모 투자로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노조로 조직할 경로를 보장하게 함으로써,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임금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일리노이주 벨비디어 조립 공장의 재가동과 오하이오주 워런에 있는 울티움 셀 배터리 공장에서 기본 협약에 따라 약 1,000명의 노동자가 추가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번 잠정합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는 공장폐쇄에 맞선 파업권을 포함시킨 것이다. 향후 정리해고가 현실화할 경우 파업으로 맞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중대한 승리라 할 수 있다. UAW 파업은 단지 자동차 노동자들만의 승리가 아니다. 이 파업을 예의주시하고 주목해 온 전체 노동자계급의 승리이기도 하다. 파업에 나선 5만 명 이상의 UAW 조합원과 이들을 지지한 다른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이번 합의의 성과는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연대할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이번 파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가운데 많은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에 나와 UAW 편에 섰으며, 미국에서 한창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상당한 열기를 더했다. 이번 파업의 교훈을 배움으로써 노조들의 (나아가 새로운 노동운동 전반의) 힘과 전투성을 강화하는 것은 특히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경찰이 면책특권을 갖고 살인을 계속하고, 성전환자와 여성들이 민주적 권리를 계속 박탈당하며, 미국이 자신의 힘을 해외에 강제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세금과 수많은 생명을 낭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폭탄이 가자지구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지금, 착취만이 아니라 억압과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노조를 건설하는 건 관건적인 과제다. 전체 계급을 위한 역사적인 파업 UAW 파업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중요한 노동자투쟁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파업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노동자투쟁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8년에 시작된 교사파업 물결부터 경찰폭력에 맞선 2020년 봉기, 팬데믹 이후 신규 노동자 조직화의 폭발적 증가, 2023년의 대규모 파업들(약 20만 명의 배우와 작가 포함)에 이르기까지 미국 노동자계급은 지난 40년간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공세에 빼앗겼던 전투성을 서서히 재건해 왔다. 이러한 새로운 전투성과 계급의식 상승은 UAW 파업의 길을 열었고, 이 파업은 다시 새로운 노동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는 파업 초기에 포드, 스텔란티스, 지엠에서 12,000명 이상의 UAW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나섰을 때, 수천 명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합류하고, 곳곳에서 여러분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이라고 행동으로 말하는 노동조합, 조합원, 노동자들의 연대가 넘쳐나면서부터 분명해졌다. 실제로 파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8%가 빅쓰리에 맞선 UAW를 지지한다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트럼프나 바이든의 지지율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었다. 그 후 UAW와 동맹세력들은 몇 주에 걸쳐 투쟁을 전개했고, 결국 UAW 조합원 3명 가운데 1명이 파업에 참여할 정도로 파업 규모가 커졌다. 다른 조합원들이 일을 계속하며 정규 임금을 받는 동안에도, 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부름에 호응하여 자신의 생계를 희생하며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추위와 비를 무릅쓰고 정문 앞에서 행진을 벌임으로써 트럭과 배달 차량을 막아섰으며, 파업을 깨뜨리려는 관리자와 대체인력에 맞서 강고하게 피켓라인을 유지했다. 파업 참가자들이 사업장 입구를 막는 것을 금지하는 반노조법을 무시함으로써, 피켓라인은 노동자들이 사장의 권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권력과도 맞서는 전쟁의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정신과 하루라도 더 싸우겠다는 헌신이 있었기에 UAW는 처음에는 바이든이, 다음에는 트럼프가, 그리고 나중에는 업계 전체가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 수 있었다. 2007년 이후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연금 제공이 빠졌다는 이유로 잠정합의를 부결시킨 미시간주 플린트 지엠 공장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노력 또한 UAW 평조합원들의 전투성과 계속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평조합원들의 전투성과 힘, 그리고 UAW의 새 지도자 숀 페인의 전투적인 수사는 이번 파업이 공격적인 파업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사실 이번 잠정합의는 이전 합의들에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아오는 성격을 가졌다. 이번 파업에 돌입하기 전까지 UAW는 거의 20년 동안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정부의 구제금융 덕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을 때, UAW 지도부는 회사에 좋은 것이 곧 노동자에게도 좋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일련의 거대한 양보에 동의했다. 이러한 노사협조주의(business union approach)는 2023년 초 페인이 집권할 때까지 UAW의 지배적인 활동 원칙이었으며, 수십 년 동안 전투성과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연히 빅쓰리는 이 기회와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수십억 달러를 이용해 기록적인 이익을 축적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2019년 마침내 UAW가 파업에 돌입했지만, 한 회사에서 파업을 벌여 전형을 만들려는 구태의연한 모델을 따랐다. 이는 앞서 11년간의 손실을 되돌리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의 저조한 임금 인상만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공장폐쇄와 대량 정리해고로 이어져 조합원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상처를 남긴 실패작이 되었다. UAW의 새 지도부는, 양보한 것들을 되찾고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파업을 조직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대담한 요구를 제시하고, 세 완성차업체를 동시에 공격하며, 무엇보다도 전체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이게 지도부가 한 일이었다. 계급투쟁과 연대의 수사가 동반된 전례 없는 대담한 요구들을 공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UAW는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으로 간주하면서 주목하는 파업을 건설할 수 있었다. 페인과 UAW는, 빅쓰리의 CEO와 경영진을 포함한 슈퍼리치에 대한 정기적이고 일관된 비난을 통해, 자동차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복지에 대한 공격이 전체 노동자에 대한 더 큰 공격의 일부라는 점을 주목하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노조 지지자가 알고 있는 사실, 즉 노조원들이 거두는 성과는 모든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포드가 제시안을 낸 지 며칠 후, 도요타와 혼다는 UAW의 조직화 시도를 막고 여전히 타이트한 노동시장에서 빅쓰리와 경쟁하기 위해 생산직 노동자 임금을 각각 9%와 11% 인상했다. 페인은 연설할 때마다 파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이용해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상으로 불평등, 착취, 노동의 존엄성, 연대의 힘과 파업이라는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6만 명 이상의 청중이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정기적인 페이스북 이벤트를 통해 기업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 안에서나 국제적으로나 노동조합 간 연대와 노동조합과 미조직 노동자 간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또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노동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11월 9일 일리노이주 벨비디어에서 열린 집회에서 페인은 일터로 돌아갈 UAW 조합원들에게 다시 한 번 이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경제를 운영한다. 그리고 만일 경제가 노동자계급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경제를 중단시킬 힘이 있다.” 이러한 계급적 분노와 연대의 표출은 외국의 노동자들, 때로는 심지어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까지 경쟁자로 간주하는 미국 노동조합운동 내 노사협조주의와 노동국수주의 정치와 정면으로 상충한다. 실제로 페인은 다른 자동차 회사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경쟁자가 아니라 미래의 UAW 조합원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직접 말하며,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사측의 시도를 약화시켰다. 또한 그는 극심한 착취에 맞선 멕시코 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주 언급하며, 사측이 공장 폐쇄와 해외 이전 위협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대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좋은 합의를 따내거나 빅쓰리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이 파업은 활력을 되찾고 투쟁하는 UAW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전투였다. 페인을 비롯한 새로운 지도부는 UAW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뻗어가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이번 파업의 모멘텀을 활용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UAW는 도요타, 현대자동차, 테슬라 등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조직화에 나설 계획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미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테슬라 공장의 노동자들은 UAW와 함께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UAW는 빅쓰리와의 단체협약 만료일을 모두 4월 30일로 설정하여, 향후 파업이 5월 1일 메이데이에 맞춰 시작될 수 있도록 했으며, 전국의 다른 모든 노조에도 동일한 조치를 취하여 함께 파업에 들어갈 수 있게 하자고 촉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현실화한다면 연대파업을 금지한 태프트-하틀리 법에 대한 도전이며 이를 크게 약화시킴으로써 노조의 정치적 힘을 상당히 증가시킬 것이다. 진정한 계급투쟁 노동운동을 구축하려면 자기 조직화가 필요하다. 이번 파업과 이를 통해 얻은 상당한 성과는 이전 UAW 지도자들의 실패한 노사협조주의 전략에서 벗어난 전환의 결과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지만 거의 4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UAW 같은 거대한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페인의 큰 야망과 계급투쟁적 수사, 전투적인 전 위원장 월터 루써에 대한 존경에도 불구하고, UAW는 여전히 관료적 지도부에 의해 통제당하고 제한돼 있으며, 그 결과 조합원들의 자기조직화가 계속 방해받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민주당에 여전히 묶인 상태로 있다. 예를 들어, “억만장자 계급”에 대한 페인의 비판은 대부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년 예비 선거 캠페인 때 했던 수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페인이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과 점점 더 친밀한 관계를 가져가는 것은 하향식 관료주의 노조 모델에 내재된 모순을 보여준다. 최근 페인이 바이든을 비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절정에 달한 민주당과의 관계는 UAW와 노조 운동에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제기한다. 민주당은 노조가 자신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노조 지도부를 더 가깝게 묶어 내려고 국가가 사용하는 도구다. 이번 파업에서도 우리는 바이든이 어떻게 파업에 대한 “지지”를 활용하여 빠른 합의를 압박하려고 시도하는지, 또한 어떻게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관심사에 신경 쓰는 진보적 인사로 이미지 개선하려고 시도하는지를 보았다. 이러한 모순은 파업 캠페인 내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파업 전술로서 스탠드업 파업(노조가 지정하는 공장만 파업에 돌입하는 전술 -옮긴이)은 사측이 매번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종종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교란 방법이었다. UAW는 매주 새로 파업에 추가되는 공장을 발표함으로써 언론의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파업을 주요한 화젯거리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술은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UAW 조합원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엔진, 차축, 변속기 공장 등 가장 중요한 생산현장 대부분은 계속 가동되었기 때문에, 빅쓰리 기업들은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이는 파업의 모든 힘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GM에서의 전면적인 연금 원상회복 등 노조가 더 많은 요구를 쟁취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파업이 대부분 위로부터 억제되고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UAW 조합원들은 파업 시작 시기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또한 잠정합의들이 논의되는 동안 업무에 복귀하는 것도 사전에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어떤 논의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좋은 단체협약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고 노조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노동운동과 평조합원의 자기조직화는 사측과 자본의 횡포에, 즉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한 줌 소수가 생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실제로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구축하는 데서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업이 각 사업장의 파업위원회에 의해 아래로부터 주도되어야 한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파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조합원들의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를 통해 내려져야 한다. 교섭 과정 내내 모든 협상이 조합원들에게 공지되고 공개돼야 한다. 이를 루이지 모리스와 나는 작년에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조합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노조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장의 모든 조합원들이 정기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회의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교섭을 의미하며, 현장대표자 및 교섭위원을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하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언제든 소환될 수 있으며, 평균임금 이하를 받는 지역 및 전국 단위 노조 지도자들을 현장으로부터 직접 선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언제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할 것인지는 단지 지도부와 교섭팀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이다. 페인은 포드에서의 업무 복귀가 아직 잠정합의에 이르지 않은 다른 자동차 회사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전술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더 많은 것을 위해 계속 싸울 수도 있었던 노조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또한 전체 노동자가 결정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UAW는 억압과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UAW와 미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맹점은 아마도 국가 억압에 대한 지속적인 침묵과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 그리고 때로는 공모일 것이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나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만노조(ILWU)의 지속적인 옹호 활동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다수 노조는 임금, 복리후생, 노동조건 등 소위 먹고사는 투쟁에만 집중하면서 정치 문제를 둘러싼 국가와의 대립을 피해 왔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개입하는 경우는 대개 노동자 권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법안에 관한 것이고, 아니면 단순히 선언문만 내는 수준이다. 이러한 소심함은 부분적으로 국가와 민주당이 노동조합을 역사적으로 포섭한 산물이다. 노동조합이 평화를 유지하고 이념적으로 순응하는 대가로 국가와 민주당은 노동조합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제한된 보호를 제공했다. 그 결과 노동운동은 상당히 위축되었고, 남은 노동운동 또한 점점 더 관료화되고 정치적으로 약화되었다. 더 이상 모든 노동자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게 된 노동조합은 반세기 이상 계급투쟁 전략에서 계급화해 전략으로 후퇴해 왔다. 노동을 국가의 이해관계와 화해시키려는 이 프로젝트는 노동조합, 특히 미국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국가의 성쇠와는 직결돼 있지만 국내외의 광범위한 억압과 착취 문제와는 별개인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낳았으며, 또한 이 관점에 의해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다. “억만장자 계급”을 비판하는 페인과 같은 진보적인 지도자들이 성조기로 장식된 무대에 당당히 서서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민주주의의 무기고”를 채우기 위해 어떻게 무기 제작에 기여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거나 미국 대통령과 함께 행복한 셀카 동영상을 찍을 때, 그들은 광범위한 노동자계급 투쟁에 대한 국가의 탄압을 감추고 미국 노동자들과 미 제국주의 폭력의 피해자인 노동자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확대와 가자지구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이 제공한 무기로 자행된 11,000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UAW가 계속 침묵하고 있는 것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이러한 사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노동의 힘을 이용해 잔학 행위의 가해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노동조합의 영역 밖이라는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 즉 이미 잘 조직되어 있고 정의를 위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잠재력을 가진 작업장에서 노동자계급을 더욱 분열시킬 뿐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안녕과 삶을 위협하는 위기와 전쟁의 시기에, 노조가 민주당과 국가의 이념적, 구조적 사슬에서 벗어나 노동의 힘을 이용해 전체 계급을 위한 정치투쟁을 벌이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UAW 파업이 거둔 의미 있는 승리와 그 덕분에도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노동운동은 민주당에 대항하는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구세주가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투쟁과 자기조직화를 통해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한다.2023-12-02 | 조회 1,971 -
의대 정원 확대로는 부족하다. 이윤 논리를 대신할 무상공공의료가 필요하다!사진: 경향신문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래 집권했던 역대 자본가 정권은 비록 껍데기일지언정 무언가 시대정신을 표방했다. 1992년 김영삼의 ‘군부독재 청산’, 1997년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2002년 노무현의 ‘비정규직 보호’ 등이 그것이다. 2007년 이명박은 ‘7·4·7 경제성장’을 내세웠으며, 2012년 박근혜조차 ‘경제민주화’를 들고나와 표를 획득했다. ‘촛불정부’를 표방한 2017년 문재인도 다르지 않다. 유일하게 예외인 정권이 있다. 현 윤석열 정부다. 윤석열이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반(反) 민주당 정서로 집권하더니 뚱딴지같이 ‘공산전체주의’에 맞선 이념 투쟁을 강조했을 뿐이다. 최상석에 앉아 술자리를 주재하고 싶어서, 나랏돈으로 해외 유람을 다니고 싶어서 대통령을 했다는 시쳇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정치철학이 없으니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추진되는 정책도 없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라는 고갱이를 모두 빠뜨린 안을 ‘국민연금 개혁안’이라고 포장하는 뻔뻔함을 보라. 정치공학에 따른 지지율 계산과 외국 정상과 셀카를 찍는 포퓰리즘 정치가 윤석열 정부의 전부라 해도 무엇이 틀리겠나. 그런 윤석열 정부조차 어쩔 수 없이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 있다. 바로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다. 한국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한참 밑돈다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의사 숫자 지난 10월 윤석열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며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의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 부족한 의사 수를 2만 7,232명으로 예측한 바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비슷하다. 김진현 서울대 보건경제학 교수는 한국에서 인구 1천 명당 활동의사 수는 2.3명(한의사 제외 때는 2.0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5명의 65.7%(한의사 제외 57.1%)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의 경상의료비(전 국민이 1년 동안 보건의료를 이용하는 데 지출한 총액)는 2022년 209조 원에 달하는 등 1인당 의료이용량이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 1인당 의료이용량과 고령사회로의 진입 속도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의사 숫자 부족은 수수방관할 수준이 아니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정부가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이기도 한 특권층 의사 집단의 반발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OECD의 ‘2023년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봉직의의 연간 임금소득은 19만 2,749달러(약 2억 4,600만 원, 2020년)로, 관련 통계를 제출한 OECD 회원국 28개국 중 가장 많다. 또 개원의 소득은 29만 8,800달러(약 3억 8,200만 원, 2020년)으로 역시 OECD 최상위권이다. 한국에서 의사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생 보장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비인간적 입시경쟁교육 체제에서 수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를 의대 입학반에 보내는 현실이 드러내듯이 말이다. 의사 집단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수련의들이 주 80시간의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의사 증원은 ‘공정성 훼손’이라며 결사반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장에 의대 정원을 3,000명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의 징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활동의사 수가 10년 전에 비해 2만 1,611명 증가해 증가율로는 OECD 평균의 1.41배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의대 정원 증원을 막으려 들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는 ‘불법’이라는 딱지를 남발하며 악질 선동을 서슴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가 의사들의 다이아 밥그릇 지키기에는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의료계 대표자 회의.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러나 노동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의사 숫자가 대폭 늘어나봤자,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의료격차, 의료공백은 절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오늘날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부족한 까닭인가? 내로라하는 선진국 영국에서 25%의 국민이 끼니를 거르거나 줄이는 이유는 절대적 식량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편에서는 재화가 무분별하게 낭비되지만, 반대편에서는 필수재의 부족 현상이 상시로 벌어지는 까닭은 자본주의가 이윤 논리로 움직이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은 목전에 당도한 기후재난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쟁 무기 개발, 쓸데없는 마케팅, 금융투기 등에는 천문학적인 자원을 투자한다. 반면 재생에너지 생산이나 인류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필품 생산에는 충분한 자원이 투입되지 않는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의료격차와 의료공백이 자연히 해소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급선무로 지적되는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의료공백 문제를 보자.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방의료원 35곳은 의사 정원 1,330명보다 87명이 부족하며, 국립대병원 17곳은 정원 8,942명보다 무려 1,940명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에서 휴진 과목이 발생하고 있으며, 속초의료원의 경우 18개 진료과목 중 신경외과·정형외과 등 6개 진료과가 개점휴업 상태다. 의대 정원을 늘려 신규 의사를 대량으로 배출하더라도, 이들 중 인구 이천만 명이 넘는 광역수도권 또는 대도시를 두고 저출생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서 병원을 차릴 의사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진료과목별로 적정 의사 수를 계획적으로 배치하고, 진료과목의 특성에 맞춰 의료인력의 적정한 노동강도를 보장하는 일이 단순히 배출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가능하겠는가? 전면적 무상공공의료 체계를 향해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이주민·정주민의 차별 없이 모든 인민이 의료 혜택을 보편적 기본권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의료 영역에서 일체의 영리 추구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생명을 구하는 데 헌신하려는 의사를 대규모로 양성하고, 이들을 의료 수요에 맞춰 지역별·부문별로 계획적으로 배치하며, 진료과목마다 적정한 노동강도를 보장하고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 부문을 전면 국영화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특별히 급진적인 요구도 아니다. 20세기 초반 강력한 노동자투쟁을 기반으로 형성됐던 서구의 무상의료 체계가 단적인 예다. 무상공공의료 체계를 위한 재원은 제약자본의 신약 제조 지적재산권 독점을 철폐하는 등 그간 의료·제약자본이 누려온 천문학적인 이윤을 몰수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금융자본이 돈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의료실비보험을 건강보험으로 통폐합해 과잉진료를 예방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공공의료체계에서 계획적으로 배치된 의료인력은 사후 치료보다는 질병 예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의료 역량의 불필요한 낭비도 막아낼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명료하다. 자본의 이윤이 우선이냐, 아니면 돈 걱정 없이 모든 인민이 온전히 치료받을 권리가 우선이냐 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돕고자 하는 마음,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자연적 본성이다. 치료받을 권리마저 돈벌이의 논리로 재단하는 자본주의, 그 야만을 이제는 중단시켜야 한다. 사진: 노동과세계2023-12-02 | 조회 1,356 -
[번역] 수십 년 만에 가장 중요한 UAW 파업지금 벌어지는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노동자투쟁 가운데서 가장 야심차고 전투적인 투쟁 가운데 하나다. 이 파업은 정치적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니얼 알폰소 (2023년 10월 2일) 이번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중요한 파업이다. 완성차업체 빅3(지엠, 포드, 스텔란티스) 모두를 상대로 한 파업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인 일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번 파업은 노동자계급을 중심 무대에 세웠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향후 양당 지배체제와 계급투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파업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파업의 정치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 체제의 위기 미국은 2008년의 경제 붕괴와 연관된 “유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의 정치적 이니셔티브가 중대하게 실패할 때 유기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음을 뜻했다. 대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대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는 동안 노동자계급은 집을 잃고 위기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오바마 정부는 노조를 공격하고, 공공기관을 민영화하고, 대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했다. 경제가 공황으로 빠져들지는 않았지만, 헤게모니 위기와 추가 경제위기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여러 부문은 서로 다른 방식과 리듬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출생지 시비 운동(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믿는 자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티파티(오바마 정부의 확장재정을 반대하는 보수주의 운동)는 위기에 대한 첫 번째 대응들이었다. 2014년에는 마이클 브라운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에 대응하여 수천 명의 시위대가 미주리주 퍼거슨의 거리로 나가 브라운을 위한 정의를 요구했다. 퍼거슨 시위로 표출된 엄청난 분노는 오바마 정부의 정치가 그들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예비선거는 미국 정치를 격렬한 시기로 밀어넣었다. 트럼프는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불도저처럼 돌진하며 상대 후보들을 무너뜨렸다. 트럼프의 인기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직면한 위기의 표현이었다. 트럼프는 생활여건 악화로 화가 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폐부를 찌르면서 이민자와 정치권을 비난했다. 동시에 버니 샌더스는 “억만장자 계급”을 비난하고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를 옹호하는 한편, 학자금 부채를 탕감하고 공립대학을 무료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신자유주의 지지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보여준 “구태의연한 정치”에 대한 좌절감과 맞물리면서, 샌더스의 선거운동을 둘러싼 열기가 너무 강렬하고 광범위하였기 때문에, 민주당은 예비선거에서 클린턴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 거대한 조직을 움직여야 했다. 클린턴은 러스트벨트 주들에서 근소한 차이로 트럼프에게 패했다. 이번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의 중심지인 미시간주도 그중 하나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는 수십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탈산업화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직접 호소함으로써 공화당을 뒤집어 놓았다. 트럼프주의는 신자유주의 위기의 책임을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돌리기 위해 자본가계급, 중간계급, 노동자계급 일부의 편견을 활용했으며, 금융자본을 옹호하면서 우익 무장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 모든 과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제국주의와 양당 지배체제가 직면한 심각한 도전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드러냈다.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중국을 미국 제국주의의 주요 위협으로 부상시켰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주요 은행들이 도산하는 등 불안정한 서구의 단면을 보여준 반면, 중국 GDP는 매년 7~8%씩 성장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 대한 정책을 더욱 야심차게 전개할 수 있었고, 전기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칩과 리튬 배터리 제조와 같은 중요한 산업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문제와 매파적인 대중국 외교 정책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형성되었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일환으로 미국의 친환경 전환과 재산업화를 주도하는 반면, 트럼프는 화석연료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빅3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친환경 에너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파업은 이른바 친환경 에너지로의 산업전환이라는 도전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전환으로 노동자계급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중국에 대응한다면서 잔인한 노동조건을 정당화하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자들의 관행에 적응할 수도 있다. 또는 영구적인 방어 전략에 입각한 협상을 목표로 산업전환을 둘러싼 교섭 테이블에 앉기 위해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째 방법도 있다. 노동자계급이 생산수단을 직접 장악하고서 지구와 노동자계급, 그리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조율하는 것이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습격은 양당 지배체제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의사당 습격 이후 공화당 의원 147명은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6일 뒤 발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의 약 절반이 바이든이 선거를 도둑질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 지배체제의 대응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부터 마이크 펜스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민주당과 양당 지배체제는 몇 달 동안 미국의 정치를 안정시킬 수 있었지만, 중기적으로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대가를 치렀다. 사법부의 “보나파르트화”가 강력한 예이다. 항상 자본가계급의 기관이었던 사법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민주당 또는 공화당의 편을 들면서 훨씬 더 명백하게 당파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한 정당을 뛰어넘는 수준의 당파적인 역할을 시도하면서 양당 지배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위기에 처한 체제 속에서의 계급투쟁 2008년 이후 가장 광범위하고 격렬했던 계급투쟁의 순간은 2020년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었다. 수백만 명이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경찰 폐지 등 여러 요구를 내걸고 거리로 나섰다. 노동자계급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 자신의 일터에서 운동의 요구를 함께 내걸고 동참했다. 이를테면 항만 노동자들은 시위에 연대하기 위해 작업을 중단했다. 당연히 2020년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대다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투쟁의 중심은 거리였고, 작업장과의 명확한 연결이나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조직화로부터 움터 나오는 힘은 없었다. 운동의 대다수 참여자에게 그러한 문제들은 당장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단점만 보고 “빵과 버터” 요구를 내세우지 않는 운동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흑인이 주도한 억압에 맞선 투쟁은 (역사적 순간마다 전 세계에서 터져 나왔던 모든 종류의 계급투쟁들과 함께) 노동자운동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팬데믹이 야기한 의식의 변화가 더해져 미국에서 수십 년 만에 가장 강력한 노동자운동이 만들어졌다. 노동자계급은 미국의 정치에서 점점 더 큰 존재감을 갖는 주체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파업의 증가를 볼 수 있었다: 2018년 웨스트버지니아·오클라호마·아리조나 등 공화당 지지 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교사파업 물결과 2019년 전미자동차노조(UAW) 파업부터 2021년 10월의 파업물결이 만들어낸 신조어 스타라이크토버(Striketober), 새로운 노동자 세대의 출현, 아마존 노조 조직화 투쟁, 스타벅스 노조 조직화 투쟁까지. 올해 우리는 계급투쟁의 강풍이 휘몰아친 뜨거운 여름을 보냈는데, 이제 가을로 이어지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여전히 파업 중인 가운데, 148일 동안 지속된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은 임금 인상, (드라마가 히트할 경우) 추가보상금 26% 인상, (매우 중요하게도) 인공지능이 작가를 대체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안을 쟁취했다. 한편, UPS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임금 인상, 다중등급제(tiers, 비정규직제) 폐지 등 다양한 요구를 내걸고 현장을 조직했다. 화물운송노조 UPS지부의 잠정합의는 상당한 문제를 갖고 있었고, 물류창고 노동자와 배달운전 노동자 사이의 깊은 분열을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이전 계약보다는 훨씬 나은 계약이었으며, UPS 노동자들이 압력을 조직한 결과였다. 노동자계급의 높은 열망 현장조직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하라’(UAWD: Unite All Workers for Democracy)의 회원이자 지도자 중 한 명인 숀 페인은 자동차 노동자들의 높은 기대와 지난 시기의 양보에 대한 분노의 결과로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노동자들은 ‘집행부 간부회의’(AC: Administration Caucus)가 수십 년 동안 노조지도부를 장악하고서 양보를 거듭해 온 것에 질렸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1인 1표 직선제(미국에서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방식)로 지도부가 선출되도록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또한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시직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권리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게 만들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다중등급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지도부를 원했다. 페인은 이러한 현장 노동자들의 압력에 부응하면서 UAWD를 자동차 노동자들의 선명한 지도부로 세울 수 있었고, 또한 미국 전역의 선진노동자들에게 모범사례로, 노동자계급의 다른 부문들에 대한 잠재적인 지도부로 위치 지울 수 있었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내건 요구들은 매우 진보적이다. 여기에는 단체협약 기간 4년 동안 40% 임금 인상(지난 4년 동안 경영진 보수인상률과 동일 수치), 다중등급제 폐지, 임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주 40시간 임금으로 주 32시간 노동, 공장폐쇄에 파업으로 맞설 권리 보장 등이 포함된다. 40% 임금인상은 출발점이었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노조는 30%대 중반의 임금인상을 논의하고 있다. 주 40시간 임금으로 주 32시간 노동 요구는 아마도 가장 야심 찬 것으로 노동자들의 높은 열망을 표현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다른 노동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워라밸)을 화두로 던져주었다.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은 추가 공격 말고는 노동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이번 파업은 바로 그 점을 노동자들이 보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역사상 가장 친노조 대통령”이라는 바이든은 무노조 저임금 전기차 공장 건설을 위해 자동차 업계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해 왔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공장이 문을 닫아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은 자동차 제조업에서의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에서 첫 번째 전투이다. 이번 파업의 정치적, 이념적 배경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의 뒤집어 놓은 거울과도 같다. 파업 첫날인 9월 15일, 모든 뉴스 네트워크가 페인의 연설을 다뤘는데, 이 연설은 뉴스의 분위기를 결정지었다. 현재 온라인에 널리 퍼져 있는 한 영상에서, CNN의 한 기자가 지엠의 CEO에게 경영진의 보수는 40%가 인상된 상황에서 회사가 노조에게 제시한 인상액이 공정한지 물었다. 할 말이 없었던 CEO는 초점을 흐리면서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페인은 노조가 경제를 방해하는 게 아니다, 노조가 방해하는 것은 그들의 경제, 즉 “억만장자 계급”의 경제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에서 이 새로운 순간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단순히 더 나은 임금을 받기 위해 싸우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2012년 시카고 교사 파업은 신자유주의의 위기로부터 떠오르는 더 넓은 지평을 가진 노동자운동의 분명한 선구자였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적 잠재력을 열어나가는 변화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파업에서 나타난 다중등급제에 대한 공격, 2012년 시카고와 2018년 웨스트버지니아·오클라호마에서 교사들이 벌인 “공동선”을 위한 투쟁 등이 전형적이다.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협상과 파업이 대부분 더 나은 임금에 그리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양보 수준의 조정에 국한돼 있었다. 누구보다 바로 자동차 노동자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 지금까지 파업의 역학 관계 9월 15일에 시작된 파업은 역사상 처음으로 세 공장 모두에서 동시에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빅3에서 각각 한 공장씩 세 개의 공장을 멈추는 것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노조는 파업의 리듬을 통제할 수 있었다. 파업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반복적으로 획득되어야 한다. 이 전술은 회사들이 파업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또한 경영진과 노동자 그리고 주민 모두가 파업이 확대될지 또 어디로 확대될지 확인하기 위해 집중하게 만들면서 파업이 매주 전국 뉴스에 오르내리도록 만든다. 파업이 시작된 지 일주일 후, 노조는 지엠과 스텔란티스의 38개 공장과 배송센터로 파업을 확대하여 총 18,000명이 파업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포드와 협상이 진전된 상태였다. 포드를 남겨두고 지엠과 스텔란티스에만 파업을 확대한 것은 노조가 더 나은 안을 제시하는 회사에 보상을 하겠다는 신호였다. 지난 29일에는 포드와 지엠에서 파업이 확대되어 7,000명의 노동자가 추가로 파업에 참여했다. 페인은 라이브 스트림에서 이번에는 스텔란티스가 진전된 안을 내놨기 때문에 포드 대신 스텔란티스가 파업확대를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 전략의 가장 영리한 측면 중 하나는 강력하고 진보적인 요구와 빅3가 거둔 이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방어적 입장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지난 15~20년 동안 회사들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는 동안 노동자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만일 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노조가 이러한 방어적 입장에만 머물렀다면 파업은 약화되었을 것이다. 노조의 전략은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사장들은 파업 첫날부터 수천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현장에서 괴롭힘을 강화하면서 보복에 나섰다. 사기가 여전히 높고 특히 파업이 확대된 이후 더욱 그렇지만,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파업의 특성상 사기가 저하될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파업 초기에 노동자들은 어느 공장이 왜 파업에 들어가는지 알지 못해 불만을 표출했다. 파업의 확대는 주로 회사의 보복과 파업의 지리적 확대로 인해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 정도 규모의 파업을 조정하려면 다양한 층위의 자동차 노동자를 통합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노력을 펼치면서 광범위한 지역사회 및 전국 수준에서 대중적 지지를 조직해야 한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작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레프트보이스가 말해 왔듯이, 이번 파업은 아래로부터 조직되어야 한다. 평조합원들이야말로 지역사회를 설득하고 파업에 참여시키는 방법, 공장 내 세력 관계(파업을 지지하는 사람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 노동자들이 파업을 어디까지 할 의향이 있는지, 파업의 단점이 무엇인지 등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사측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노조는 현장 및 지역에서 파업위원회를 조직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파업위원회에는 해고노동자들을 참여시켜야 할 것이며, 파업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은 파업에 대해 그리고 다음 단계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파업위원회는 10년 이상 빅3의 부품을 조립해 온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자동차 생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파업을 다른 공장으로 확대하고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조직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파업위원회는 지역 파업위원회에 파견할 대표를 선출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파업을 더욱 조율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평조합원들과 긴밀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맺는 전국 파업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평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전국 파업위원회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현상: 전투적이고 개량적인 노조관료주의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높은 열망에 의해 추동되면서, 또한 전통적인 노조 관료주의가 이에 대응하고 적응하려는 도전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개량적 노조관료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는 UPS에서 “파업 준비” 캠페인을 조직한 사라 넬슨과 숀 오브라이언 같은 인물이 포함된다. 현재로서는 숀 페인에 의해 구현되고 있는 UAWD가 가장 첨예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개량적 노조관료주의는 진보적인 요구와 능숙한 전술을 갖춘 전투적인 리더십으로, 노동자계급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인 노사협조주의(business unionism)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노사협조주의가 오로지 계급 화해에 몰두하는 반면 페인은 자주 계급적 노선을 강조한다. CEO와 악수하며 교섭하는 대신, 페인은 노동자와 악수했다. 노동자들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는 노조가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가 아니라 억만장자의 경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관료주의다. 이번 파업은 그 준비부터 일상적인 업무, 파업 확대 여부, 장소와 시기 등 모든 것이 노동자의 의미 있는 참여 없이 위에서 조직되고 결정된다. 비록 페인 역시 오브라이언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결정사항이나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이는 평조합원들의 참여나 의견 수렴에 입각해 결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평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총회, 토론, 의사결정 같은 조직적 측면의 문제만을 따지는 게 아니다. 이것은 양당 지배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많은 승리를 거두어 노동자들의 정치적 지평을 그 안에 가둬두려는 보다 광범위한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이 새로운 노조관료주의는 민주당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2016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노동자계급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다.’ 페인은 지금까지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26일 바이든이 피켓라인에 함께 한 것을 칭찬했다. 이것은 그가 지난주 트럼프의 파업 관련 발언과 27일 비노조 공장 방문을 강하게 비판한 것과 대조된다. 노조는 바이든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다른 선거 때와는 뚜렷하게 다르게 자신들의 방식에 따라 그렇게 하려고 한다. 파업과 재편성 양당 지배체제는 최근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행동해야 했다. 지난해 12월 의회는 철도 노동자들이 잠정합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올해 바이든 정부는 UPS 협상에 직접 관여했지만, 바이든은 개인적으로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에서는 불가능했다. 바이든은 노동자들이 “공정한 몫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고, 빅3에 대해서는 “더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파업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파업에 직접 관여하도록 파견되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27일 또 다른 당내경선 예비 토론을 건너뛰고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기로 결정하자, 바이든은 26일 피켓라인에 동참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유기적 위기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트럼프가 노동자들에게 연설하는 모습, 바이든이 피켓라인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두 후보가 전기차에 대한 정책을 논의하는 모습, 파업을 지지하며 주먹을 치켜든 노동자들의 모습이 몽타주처럼 찍힐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2024년 대선의 승자는 많은 부분 지금 결정되고 있다. 내년 11월에 누가 승리하든 결정적인 주에서 승리하는 자가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미국 정치의 중심 무대에 서는 또 다른 방법이다. 재편성(realignment, 혹은 재정렬)은 부분적으로 주민의 광범한 부분이 하나 또는 일련의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결과로 일어난다. 1930년대에 민주당은 체제 내 세력관계를 유리하게 만들어 뉴딜정책을 통과시키고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새롭게 떠오르던 산별노조의 관료제와 연합했다. 루즈벨트의 당은 노동자계급에게 훨씬 더 매력적이었고,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 준비는 민주당과 노조관료제를 더욱 단결시켰다. (주별 권리를 강조했던) 딕시크래트 세력은 민권운동이 민주당을 변화시키자 민주당을 떠나 악명 높은 “남부전략” 속에서 공화당에 결합했다. 이 모든 것이 “재편성”의 과정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민주당은 노동자계급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고 점점 더 교외 중산층 표심에 집중했다. 빅3에게 구제자금을 제공하는 등 민주당이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이러한 탈편성(dealignment, 혹은 탈정렬)을 활용하여 공화당의 이전 지도자들보다 훨씬 더 나은 방식으로 공화당과 노동자계급의 관계를 설정했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는 격전지 주에서 노동자들의 불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2016년 이후 세력을 확장한 자코뱅과 DSA는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당의 방향을 노동자계급 쪽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해 왔으며, 이는 당이 빵과 버터 같은 “범계급적인” 요구에만 집중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좌파 노조관료제의 출현과 발전은 이러한 전략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 전략은 계급 행동주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투적 언어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하며, 이는 이미 자코뱅의 페이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보다 전투적인 개량주의(즉 사회민주주의 스타일의 “사회주의”) 시기에 들어선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전반적인 전략적 목표는 노동자들의 좌절감과 전투성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여 민주당이 “사회주의”(일명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줄 사회민주주의적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하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이 정치의 문제는 이게 공상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잘 알다시피, 민주당은 금융자본의 정당이며, 미국 자본가계급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 썩어빠진 양당 지배체제의 주춧돌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승리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승리이다. 그러나 개량주의자들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즉 파업이 민주당에서 이탈한 노동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고 아직 민주당을 떠나지 않은 노동자들을 붙잡아두는 데 사용된다면, 노동자계급은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신 이번 파업이 양당 지배체제에 믿음을 두지 않고 평조합원들을 자기 운명의 주체로 조직해 낸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트럼프주의와의 동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정치적 창의력을 발휘해 계급투쟁으로 단결하는 데 달려 있다. 양준석 옮김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e-uaw-strike-is-the-most-important-strike-in-decades/2023-10-18 | 조회 1,934 -
어린이 급식비 삭감해 방위비 늘린 윤석열, “한반도 위기 공세에 ‘영끌’”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액이 삭감됐다는 말이 한두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뼈가 드러나도록 앙상하게 잘려 나간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권리 예산이 그것이다. 반면 전체 예산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방위비는 대폭 증가했다. 말로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권리를 빼앗아 국방비에 몰아준 꼴이다. 이를테면 어린이 학교 급식 예산까지 삭감해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 같은 무기 구입비로 야무지게 털어냈다. 이 예산은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F-35A를 생산하는 미국 록히드마틴 항공사 계좌로 따박따박 입금된다. 심지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이 5.1%에서 2.8%로 하향 조정됐지만, 국방예산 증가율은 4.4%에서 0.1%p 더 늘었다. 그러면 잘려 나간 곳은 어디일까? 교육·어린이·돌봄 사업 예산 삭감 가장 많이 털린 예산은 작년에 비해 6조 3,725억 원이나 감액된 교육부 예산이다. 유·초·중등교육 예산은 무려 7조 1,714억 원(전년도 대비 8.9%)이 삭감됐다. 초중등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023년 대비 6조 8,748억 원(전년도 대비 9.1%)이 감소했고,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는 2,594억 원(전년도 대비 7.5%)이 감액됐다(참조 : <교육부 내년 예산, 유초중등 공교육비 '역대급 삭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크게 삭감되면서 당장 내년부터 학교급식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무상급식 체계가 교부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내 돌봄 공간 조성과 아침·저녁 틈새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다함께돌봄센터 사업 예산도 2023년 22억 7,000만 원에서 전액 삭감됐다. 올해 491억 4,000만 원이 편성되었던 어린이집 확충 사업 예산도 416억 2,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이외에도 교육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교육 관련 노동조합 8곳의 사무실 운영 지원에 필요한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참조 : <전교조·교사노조 지원예산 전액 삭감… 소통·협력은 어디 가고?>). 성평등 예산 삭감 성평등 예산 역시 삭감됐다. 여성가족부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하는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하고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이 사업에 올해 배정된 예산은 5억 5,600만 원이었다. 양성평등 지원 예산도 2,407억 원으로 2.5% 줄었다. 이외에도 여성가족부는 지난 9월 2024년 예산안에서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해 제출했다. 올해 해당 예산은 총 12억 7,300만 원이었지만, 내년 예산안에서는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이 사업이 그나마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사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예산 삭감은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여가부가 발표한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서도 노동 경험 청소년 가운데 29.5%가 부당 처우를 당한 적이 있었다. 12.6%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일터에서의 위계, 노동 관련 법 지식 부족 등으로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은 임금체불, 부당해고, 성희롱, 성폭력, 부당노동행위 등 각종 부당한 처우를 당한 청소년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가부가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유는 고용노동부와의 ‘기능 중복’이다. 하지만 노동부에는 해당 사업에 대한 예산이 전혀 잡혀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고용노동부의 2024년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 사업의 예산은 16억 1,300만 원으로 2023년 16억 2,300만 원보다 오히려 0.6% 줄었다(참조 : <‘당해도 말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 돕던 단 한 곳, 정부가 ‘뒤통수’?>). 고용노동부는 지난 24년간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등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내년 예산도 올해 12억 원에서 5억 원을 대폭 삭감해 책정했다. 사회서비스원 예산도 삭감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전국 16개 시도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중앙정부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다. 또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관련 내년 예산안은 177억 3,100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 해당 예산은 302억 1,900만 원이었다. 사회서비스원은 영유아 돌봄, 노인요양 등 돌봄 사회서비스의 민간 의존을 벗어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기관이다. 사회서비스원이 진행하는 사회복지시설평가 사업 예산 역시 2023년 61억 5,000만 원에서 2024년 6억 6,300만 원으로 줄었다. 사회복지시설평가 사업 중 지역복지사업평가는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소규모 생활권이 지역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다(참조 : <[심층기획-2024년 긴축 예산 후폭풍] 쪼그라든 청년 일자리·복지 예산… 고용 충격·취약층 부담 증폭 우려>). 장애인 권리 예산도 역시나 줄어 일명 ‘동료지원가 사업’이라고 불리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이 사업은 중증장애인을 고용해 이들이 일터에서 동료 장애인을 만나게 하고, 장애인들의 취업과 모임 등을 도와주는 것으로,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을 목적으로 한다. 노동부는 2023년 23억 100만 원이었던 사업비를 2024년 16억 1,000만 원 수준으로 낮춰서 제출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전액 삭감했다. 2023년 6월 말 현재 전국 동료지원가 수가 187명인데, 이들은 이번 예산 삭감으로 내년부터 실직자가 되는 처지에 놓였다(참조 : <갈수록 줄어드는 장애인 관련 예산,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나?>). 장애인복지시설기능보강 사업 예산도 263억 3,000만 원에서 236억 원으로 축소됐다. 이 예산은 장애인 복지시설을 늘리고 시설 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다. 정부는 성과를 보여줄 지표 관리와 집행 실적에 대한 관리를 문제 삼았다. 이와 함께 희귀질환자 지원 예산도 올해 430억 원에서 2024년 296억 원으로 삭감됐다. 희귀질환자 지원 대상자 가운데 2만 명 이상이 저소득자인 터라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과 고통이 더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 2023년 71억 800만 원이었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2023년 현재 전국 9개소, 소지역센터 35곳이 있다. 이 센터들은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와 생활법률 등을 교육해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고 임금체불과 산재 등과 관련한 상담을 진행한다. 또한 출산과 자녀 취학 등의 생활지원 활동도 벌인다. 정부는 2024년에 역대 가장 많은 12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새로 들이기로 한 상태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에 적응하도록 돕는 인프라는 없애려는 것이다(참조 :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0원’… 거점센터 사실상 폐지 수순>). 이외에도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일자리창출지원사업 등 수많은 민생 예산이 싹둑 잘렸다. 그러나 방위비는 역대급 반면 내년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4.5% 증가한 59조 5,885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방위력 개선비를 모두 17조 7,986억 원 증액했다. 특히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추가로 들여오는 사업을 비롯해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3축 체계' 고도화와 군사정찰 위성 획득을 목표로 하는 ‘425 사업'에 모두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됐다. 아울러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 성능 개량에 246억 원, 한국형 구축함 KDX-Ⅱ 성능개량에 192억 원이 들어간다(참조 : <“병장 봉급 165만 원”…내년 국방예산 59조 5천억 원>). 더욱이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 뉴델리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3조 원) 가량을 유무상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역대급 긴축 재정을 편성한 이유를 세수결손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기가 둔화하여 59조 1천억 원이나 덜 걷혔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기업 법인세나 양도소득세, 부가세가 크게 줄었다. 그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는 빚을 내는 대신 칼자루를 쥐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초기에 발표된 법인세·보유세·상속증여세·금융투자소득세를 비롯한 대규모 부자 감세를 떠올리면, 정부가 쥔 칼자루의 방향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 정부가 추산한 법인세(최고세율 25%에서 22%로 인하) 세수 감소액만 5년 간 약 30조 원에 달했는데, 학계에서는 최대 260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더구나 방위비가 대폭 늘어난 점을 생각해 보면, 정부가 말하는 ‘재정건전성’도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즉 복지비를 줄여 방위비를 늘리는 예산 편성은 오로지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아래 미중 갈등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 비용을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겉으로는 중국, 북한, 러시아를 향해 주먹을 치켜올리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노동자 민중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2023-10-16 | 조회 2,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