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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3개 메가프로젝트 노동개악, 사회적 대화를 걷어치우고 투쟁의 전열을 정비하자이재명 대통령은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주문했다. 정권이 그토록 밀어붙이는 메가프로젝트와 함께, 전면적 노동개악이 오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메가특구 △주 52시간 상한 제외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 업무 확대 등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자본을 위한 무제한적 노동시간을 강요하는 조치들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노동운동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 맞선 총파업 총투쟁에 나서야 한다. 사진: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노동절의 축배 지난 노동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단상에 올라 환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경수 위원장의 환한 웃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메가특구특별법으로 노동개악 추진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신들의 야당 시절 내걸었던 반도체특별법 내 '주 52시간제 예외' 반대 방침도 손바닥 뒤집듯 뒤엎어 버렸다. 급기야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전남본부는 메가특구를 환영하는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주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이를 뒷받침할 '메가특구특별법'은 주 52시간제 예외, 기간제 사용 기간 4년으로 연장, 파견 업종 확대 등 명백한 노동권 후퇴와 노동유연화를 강요하는 신호탄이다. 자본가들이 이 개악을 메가특구에만 한정 짓지 않고,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운운하며 전 산업으로 확대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지도부는 투쟁의 칼을 빼 들기는커녕, ‘사회적 교섭’(노사정 대화) 복귀를 공식화하며 자본과의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투항적 기조는 중앙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산하 지역본부 역시 지자체 단위 '노사민정협의회'나 '지역 교섭'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며 투쟁의 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상생’을 명분으로 포장된 지역 노사정 대화 시도들은, 결국 메가특구와 같은 자본의 거대한 착취 실험장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노동자계급을 들러리로 전락시킬 것이다. 노동개악이 몰려오는 지금, 중앙이건 지역이건 기만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에 민주노총을 얽매려는 지도부가 과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겠는가? 사진: 뉴스1 자본가들의 축배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 노동특례는 ‘첨단산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그 실질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시간 규제를 허무는 노동개악이다. 정부는 메가특구 내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연장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의 서면 동의’를 전제한다고 하나, 애초 자본과 노동자의 힘은 대등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동의’ 확인은 당연히 해고 압박을 동반하는 강제일 수밖에 없다.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는 자본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방안이 시행되면 메가특구 내 기업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도 4년 동안 단물만 빼먹고 버릴 권한을 확보하게 되며,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한 직장 내 갑질이나 부당 노동 강요에 노동자가 노출되는 기간도 그만큼 길어진다. 또한, 반도체·인공지능 등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한도 예외를 추진하고 있다. 연구개발 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주 52시간으로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기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충분한 인력을 고용해 노동 강도를 줄이는 대신, 기존 노동자를 더 오래 일하게 해 비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선택이다. 주 52시간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허물면, 밤샘과 연속 근무가 일상화되고 노동자의 건강과 삶은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일정 소득 이상 노동자를 노동시간 규제와 연장노동 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추진하고 있다. 파견 허용 업무 대폭 확대 역시 추진되고 있다. 현행법은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청소, 경비 등 32개 업무로 제한하고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정부의 조치는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복지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이는 자본에게 세계시장 내 경쟁에서 우위를 안기는 선물이 될 것이다. 최대 6개월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개악 역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은 일반 업무는 1개월,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는 최대 3개월이다. 정부는 이를 최대 6개월까지 확대하려 한다. 정산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 특정 기간에 노동시간을 집중시킨 뒤 나머지 기간의 노동시간을 줄여 전체 평균을 맞출 수 있다. 자본은 이를 통해 집중 기간에는 주 8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다. 당연히 초과근로수당 등도 없을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생산일정이나 프로젝트 마감에 맞춰 인간의 노동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이면, 노동자의 일상생활과 생체 리듬을 철저히 붕괴시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진짜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의 환상을 깨고 단위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자본에 맞선 투쟁으로! 상층부의 타협적인 노사정 대화 기조에도 불구하고, 기층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열망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하청, 파견, 용역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간 자행된 중간착취의 굴레를 끊어내고, ‘진짜 사장’인 원청과 직접 교섭하겠다며 투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이 투쟁을 개별 사업장이나 단위노조의 원청교섭 쟁취에만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는 개별 현장의 승리를 단숨에 집어삼킬 ‘메가특구특별법’이라는 폭탄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메가특구특별법에 담긴 규제 특례는 합법적인 무한 착취를 보장하는 '노동 개악의 종합판'이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피를 토하며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분별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양산 체제를 끝장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메가특구는 바로 그 간접고용과 장시간 노동을 전체 노동시장으로 확장하는 교두보다. 이 법안이 통과되어 전국 곳곳에 '노동권 예외지대'가 들어선다면, 우리가 힘겹게 쟁취해 낸 원청교섭의 성과조차 거대한 규제 완화의 해일 앞에 모래성처럼 휩쓸려 갈 것이다. 자본은 더 싸고 유연한 노동력이 널린 메가특구로 공장을 빼돌리고, 특구의 기준을 전국 표준으로 만들자며 우리 목을 조여올 것이다. 그렇기에 단위노조의 원청교섭 투쟁과 메가특구 저지 투쟁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싸움이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향해 쏟아낸 분노는 각 사업장 ‘진짜 사장’들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을 제물 삼아 이윤축적을 확대하려는 국가권력으로, 또한 자본의 이윤을 위한 국가적 동원 사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로 향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은 만연한 '사회적 대화'와 '상생 교섭'의 환상을 단호히 끊어내고, 현장의 힘을 더 넓은 전선으로 확장해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회적 대화 복귀 같은 기만적인 타협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조합원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을 선언해야 한다. 투쟁의 의지를 모아내고 조합원들에게 명확한 전망을 밝히는 것, 그것이 지금 민주노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7월 15일 민주노총 총파업 서울 집회 사진: 노동과 세계2026-08-12 | 조회 650 -
발전통합은 발전소 노동자 총고용 보장하고 기후위기 막는 출발점이어야 한다!발전공기업 ‘1사 통합’은 발전산업 분할이 낳은 중복과 비효율을 바로잡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발전산업 분할 이후, 관리조직의 중복적 비대화 등에서 기인하는 추가비용은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왔다. 또한,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직접 건설 역량은 약화되고 민간사업자와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구매에 대한 의존은 커졌다. 발전통합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 없는 정의로운 전환,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후위기 대응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2월 의뢰한 발전통합 관련 연구용역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에 대한 중간보고회에서 ‘발전공기업 1개사로 통합이 최적’이라는 권고가 나왔다. 보고서가 ‘1사 통합을 최적’으로 제시한 이유는 ‘재생에너지·해상풍력 등 대형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 가능’하고 ‘단일 법인 내 직무 전환‧인력 재배치 가능 등 정의로운 전환에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사 통합’이 재생에너지 건설 및 정의로운 전환에 용이 연구용역을 수행한 삼일회계법인은 ‘△에너지 전환 실행력 확보(투자 자본력 결집) △리스크 저감 구조 형성(좌초자산·단일전원 리스크 해소) △운영 효율성 제고(중복 제거, 규모의 경제) △정의로운 전환 용이(고용 및 지역사회 충격 흡수) 등 4대 원칙을 통해 발전공기업의 개편 방향을 검토했다’며 ‘권역별 2~3사로 통합’이나 ‘지주+권역별 2~3개 자회사 구조’보다 ‘1사 통합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연구용역 중간보고회에는 학계(5명)와 노조(3명), 시민단체(1명), 경영계(1명) 등 10명의 패널이 참가해 대체로 찬성과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당연한 결론 사실 ‘1사 통합’은 당연한 결론이다. 2001년 한수원을 포함한 발전 6사가 한전으로부터 분리된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발전노동자들이 벌인 38일간의 강고한 투쟁으로 발전소 민영화는 저지했지만, 6개로 나눠진 발전소의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우선 연료구매비가 크게 늘었다. 연료비는 전력 생산 전체 비용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런데 발전산업이 분리되기 전에는 한국전력이 연료를 한꺼번에 사들여 가격을 낮출 수 있었지만, 분사 이후 각 발전 회사가 따로 연료를 구매하면서 발전사의 구매 경쟁이 심해지고, 연료 가격이 오르게 되었다. 이에 더해 분할된 발전사별로 부두를 공유하지 못해 선박이 항구에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에 따라 ‘체선료’(배가 하역을 기다리는 동안 선주에게 지불하는 비용)도 늘어났다. 발전산업 분할 이후, 체선료는 2002년 당시보다 100배 가까이 급증했다. 2020년 국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체선료는 1,054억원으로 뛰었다. 2002년 12억원에 불과하던 체선료가 2008년 100억원 이상으로, 다시 1,000억원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에는 발전사들이 따로 연료를 사면서 발생한 구매 비효율과 운송 지연으로, 유연탄 구매 비용만 해도 매년 5,000억 원 이상이 추가로 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불필요한 전력거래시장 개설과 관리조직의 중복적 비대화로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했고,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전기요금에 전가되었다. 발전사 분할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할 역량도 약화시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발전공기업이 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자체 건설로 이행한 비중은 2014년 54.4%에서 2025년 18.7%로 크게 떨어졌다. 발전공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설비를 직접 건설하기보다, 민간사업자가 생산한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는 방식에 의존해 온 것이다. 이처럼 공공의 직접 투자와 건설 역량이 약화되면서 민간 의존도가 높아졌고,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왔다. 그간 명백히 드러난 발전산업 분할의 문제로, 발전 5사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민간자본을 대변하는 정부관료들의 방해로 무산됐다. 안심은 No! 발전통합 연구용역 결과는 당연한 결론이지만 자본과 이들을 대변하는 정부관료의 방해를 뚫고 만들어낸 커다란 성과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용역보고서를 정부가 그대로 따를지도 불투명하고 이어지는 통합과정에서 애초 취지와 다르게 변질될 수도 있다. 또한 25년 넘게 다르게 유지됐던 조직 체계와 노동조건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인력구조조정과 노동조건 개악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가만히 기다려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 발전 5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는 더욱 커다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민간과 공공의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풍력 개발의 장단점은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드러났다. 민간 주도 재생에너지 개발은 공공 주도에 비해 비용도 많이 발생할 뿐 아니라 안정성도 많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민간사업자들은 금리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사업을 지연하거나 철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기업은 이윤이나 시장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건설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에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간자본과 정부관료들은 언제든지 민간 주도의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이미 민간자본이 90% 이상 장악한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민간자본과 정부관료의 방해를 뚫고 공공주도 재생에너지를 확장해야 한다. 2025년 12월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발전소 폐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 발전 5사가 하나로 통합된다고 자동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정부관료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발전소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만이 단 한 명의 해고도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발전통합을 통한 공공 전력산업 확장이 필수적이다. 자본과 정부가 주도하는 이윤 기반의 대책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만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 발전통합은 발전소 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고 기후위기를 막는 출발점이어야 한다!2026-08-09 | 조회 7,851 -
보완수사권 폐지라는 가짜 개혁지난 7월 31일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8월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개정안은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검사의 직접 수사를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는 폐지하고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만 가능)과 직접 영장 청구권도 폐지된다. 10월 2일 검찰청은 해체된다. 기소와 공소 유지만 전담하는 공소청과 부패·경제·방위산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범죄 등 6대 중대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립된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것을 검찰 개혁의 완성이라 부르고 있으며, 국민의힘은 법치주의의 파괴라며 이재명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정부와 여야는 검찰과 경찰 중 어느 기관이 더 많은 힘을 가질 것인지를 검찰 개혁의 핵심 쟁점처럼 내세운다. 그러나 핵심은 권한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아니다. 본질은 그 권한을 어떤 계급의 이해를 위해, 어떤 계급의 통제 아래 행사할 것인가에 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검찰 개혁의 필수 수단? 정부와 민주당은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검찰이 기소권, 수사권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잉수사, 인권유린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권을 가진 검사가 기소권도 가지고 있으면, 수사는 곧 기소의 의미를 갖게 되어, 즉 수사한 것을 기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과잉수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기소권을 가진 사람이 수사까지 하면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각종 회유와 협박을 통한 수사를 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무기로 정치적 목적의 표적 수사나 별건 수사를 자행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사들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겨눴을 때는, 특별검사가 박근혜에 대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했을 때는 열렬히 환영했다. 검찰의 칼끝이 조국을 비롯한 자기 정치세력의 위선과 비리를 겨누면 ‘과잉’수사고, 정치적 경쟁자들을 겨누면 ‘정의’인가? 윤석열의 내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 보유하고 판사·검사·경찰관을 제외한 대상에 대해서는 직접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로 이송하여 기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이는 권력을 나누는 것만으로 그 권력의 책임 있고 정의로운 행사가 보장되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자체가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향상하지 않는다. 권한이 분리되면 기소 기관이 수사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중대범죄의 경우, 증거관계가 복잡하고 피의자도 전문 변호사를 동원해 자신을 방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사람이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지 않는다면, 국가기관 사이의 책임 전가와 부실 수사가 더 극악한 양상으로 펼쳐질 수 있다. 보완수사권 폐지도 검찰 개혁의 필수 수단이 될 수 없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 고 김창민 영화감독 사건 유족은 경찰의 부실 수사를 거론하며 검사의 보완수사권 유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광주에서 여고생을 죽인 장윤기 사건에서도 경찰의 은폐·부실 수사가 쟁점이 되면서 ‘보완수사권 유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동자 민중은 검찰의 억압과 탄압뿐만 아니라, 경찰의 억압과 탄압도 수없이 겪어왔다. 경찰은 검찰 못지않게 썩어 있으며,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며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억누르는 기구다. 노동자 민중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경찰에 아무리 신고해도 경찰이 수사조차 안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기에 정당한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 홍기원은 “성폭력과 스토킹, 아동·장애인·노인 학대, 가정폭력 등의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나 보이스피싱이나 유사수신 행위, 공소시효나 구속기간이 임박한 사건”에 한해 검사의 보완수사를 허용하는 별도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별도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가 별건 수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동일성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보완수사 중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 지방공소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 별도 개정안조차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을 무기로 한 정치적 표적 수사가 문제라면 이 개정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검찰을 길들이려는 민주당은 무조건적인 보완수사권 폐지만 고집했다. 민주당의 정치적 맹목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중대한 위법 수사'가 이뤄졌거나 검사의 공소권 행사로 인해 '소추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 있을 때 법원이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재판을 끝낼 수 있도록 공소기각 사유를 확대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민주당은 현행 형사소송법 327조 2호의 규정을 구체화한 것뿐이라 하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재판에도 소급하여 적용하겠다는 속셈"이라 비판한다. 이재명 스스로 당당하게 재판받아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하면 끝날 논란인데, 이재명은 아무 말이 없다. 검찰은 어느 계급에 의해,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물론 현재의 검찰은 개혁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선출되지도 않은 검사들이 주권자 위에,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에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만, 노동자 민중에게는 대단히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본가들의 온갖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산재살인, 불법파견에 대한 태도와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삼성 장학생’, ‘떡값 검사’, ‘스폰서 검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검찰은 수백 가지 사슬로 재벌들과 얽혀 있다. 자본가들의 온갖 착취와 불법, 범죄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검찰 권한의 확대를 요구한다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가장 절실한 요구엔 침묵하며 오히려 억압하는 본성을 지닌 검찰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중의 분노를 조금은 반영해야, 자신들의 권력을 마음껏 유지할 수 있기에 때때로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검찰 자체가 정부 핵심, 자본가 정당 핵심을 물밑에서 조종하고 권력을 좌우하려는 자본가 정치의 숨겨진 실세다. 수많은 검사가 정치권과 연줄을 대고 있으며, 정보력과 수사권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을 위협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해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랐다. 과거 윤석열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고 주장했는데, 검찰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술수일 뿐이었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법전 따위를 암기했을 뿐, 노동자 민중의 열악하고 비참한 처지와 담을 쌓고 안락한 부르주아적 지위를 누리는 자들이 노동자 민중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수사 및 기소권을 가질 권리는 전혀 없다. 검사의 자격과 기준이 로스쿨이나 사법시험 따위가 되어선 안 되며, 노동자 민중이 공수처 검사들, 중수청 검사들을 직접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언제나 소환하고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모든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선출한 검사들,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대표성을 획득한 검사들,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검사들이라면, 그들이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권한을 갖고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범죄를 처리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마땅한 일이다. 사법부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배심원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당연히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배심원들이 압도적 다수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 정치구조에 맞선 혁명적 정치투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그 투쟁은 자본가 정당 모두, 검찰과 경찰 모두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투쟁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돼야 가능하다. 검찰과 경찰 모두에 맞선 투쟁 수사권이 폐지된다고 해도 검찰의 권력이 대폭 약화할 리 없다. 검찰 대신 들어서는 공소청은 사실상 계속 기소권을 독점한다. 민주당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청소년 성범죄, 스토킹, 장애인학대, 노인학대 등 약자 대상 7개 범죄의 경우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불송치 사건까지 공소청에 넘기는, 이른바 '전건 송치'를 도입하려 하는데, 검찰의 권한은 계속 막강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사법경찰관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시정조치요구권, 재수사요구권을 갖게 된다. 경찰이 검찰에게 송치하지 않은 사건이라도, 사건 기록은 검사에게 모두 통보되고, 검사는 직권으로 3개월 이내에 경찰에 재수사 요구를 할 수 있다. 검찰의 권한은 대부분 유지됨에도, 노동자 민중이 검찰을 통제할 수단과 방법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이번 개편으로 국가 내부의 권력 배분이 달라지더라도, 그 기관들이 자본주의 질서를 수호하고 노동자 민중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법과 질서’란 지배하는 계급이 분명한 우위를 갖고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에, 당연히 지배계급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종종 ‘법치국가’, 즉 권력자가 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곤 하는데, 이미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법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검찰과 경찰은 모두 ‘법과 질서’를 외치며 자본가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그 지배를 정당화했다.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들의 권한이 침해될 때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실제 몇몇 지점에서는 대립하기도 하지만 ‘법과 질서’라는 명분으로 노동자 민중을 억누르는 데에서는 한 몸이다. 경찰이 대체인력을 비호하며 파업 노동자를 짓밟아 서광석 열사를 죽게 만들고,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파업 노동자들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한 화물연대 CU 노동자 투쟁만 떠올려봐도 분명하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권리는 검찰과 경찰의 권한 조정으로 실현될 수 없다. 검찰과 경찰 모두 억압기구로서 노동자 민중에게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며, 대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검찰이냐 경찰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고 확대할 것인가다. 검찰과 경찰을 해체하고 노동자 민중 자신의 힘으로,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조직의 힘으로 세상을 운영해 나가지 않는다면, 노동자 민중의 해방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전이라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법·제도를 개선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이 달라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당에도 종속되거나 섞이지 않고 경찰과 검찰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지는 가짜 개혁은 노동자 민중에게 어떤 실질적 변화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이다.2026-08-06 | 조회 12,903 -
국가인권위 안창호 사퇴에 나선 노동자의 목소리, 폭염처럼 쏟아지는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메아리를!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 사퇴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안창호 퇴진, 차별금지법 쟁취를 비롯한 민주적 기본권 쟁취투쟁과 함께,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나아가자. 탄핵당한 윤석열은 재판장에 섰지만, 그가 임명한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최저 기준, ‘보루’를 상징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안창호 위원장 사퇴를 위해 계속 투쟁하고 있다. 최근 노동자들은 과장 보직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인권위의 책무를 저버린 안창호 사퇴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자 국민의힘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이 29일 인권위 과장급 간부 6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 금지’를 운운하며, 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일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파시스트 공무원 노동자들은 2024년 안창호 위원장 지명 당시부터 ‘차별이 정당하다’는 안창호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싸워왔다. 선임 후에도 현장에서 극우보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며 인권위를 파행으로 내모는 행태를 맞서며 부당 인사를 비롯한 현장탄압을 견뎌왔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노동·시민·사회운동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과 안창호 사퇴 등을 요구했다. 자본가를 위해 운영되는 국가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자 민중, 사회적 약자의 민주적 권리를 최소한으로나마 대변하는 보루로 역할할 수 있도록 극우적 수장을 쫓아내려 했다. 노동현장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방어선을 지키는 노동자들은, 극우 이데올로기가 관철되는 과정과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계급 착취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계급 내부를 분열시키고 사회적 약자, 여성, 소수자에게 불평등의 책임을 전가하는 혐오 공세를 현장에서 겪고 있다. 노동자들이 양심과 자신의 노동에 대한 사명감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정당한 투쟁은 인권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맑시스트와 파시스트가 우리 사회에 활개 치면서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고 말한 안창호. 그들의 조직적 세력은 ‘파시스트’다운 목소리로 인권위를 무너뜨리고, 현장에서 불평등에 맞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그런데 이들은 단지 현장 노동자를 겨냥하는 게 아니다. 파시스트적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법과 공권력은 물론 폭력까지 동원해 노동자 민중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다.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인권위 현장에서 자본과 극우 논리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은 중요한 ‘자정작용’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 파행도 자본주의 억압체제의 단면임을 인식하고 ‘민주주의인 척’하는 민주당식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도 단절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창호 위원장을 몰아낸다고 노동자, 소수자들의 인권이 가파르게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겪는 불평등을 양산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피해 구제를 위해 인권위 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평등한 사회를 구축할 수는 없다. 이는 개별 사업장 노동조합의 노력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체제를 피억압 계급의 힘으로 바꾸는 투쟁이 필요하다. 특히 자본가 살리기에 목맨 이재명 정부에 대항해 노동자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국힘, 파시스트가 노동자 투쟁을 절멸시키려는 탄압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 민중이 내쫓은 윤석열을 대신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이재명 정부는 이미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까지 좁혀지는 결과도 나타난다. 해당 여론조사에 따르면 18세부터 29세까지 양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56.3% 민주당 23.2%였고, 30대의 경우 국민의힘 43.2%, 민주당 34.3%였다. 이는 극우 보수세력이 소외된 청년 노동자들의 불만을 흡수하며 다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염처럼 쏟아지는 불평등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 이재명 정부는 노동, 주거, 인권, 복지, 에너지, 기후 등 전반적 정책이 모두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우선하고 있다. 정부 말대로 한국은 “소득불평등은 주요국 대비 여전히 높고, 자산격차는 최고 수준”인 나라다. 노동자 민중은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이중삼중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통계 역시 이를 드러낸다. 2024년 처분가능소득 기준 소득 5분위 배율은 5.78배로 전년(5.72배)보다 확대됐고, 상대적 빈곤율도 15.3%로 전년(14.9%)보다 높아졌다. 소득격차와 빈곤 모두 악화되는 양상이다(국가데이터처,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그런데도 정부는 자산시장 부양에 골몰할 뿐, 불평등 해소에는 하등의 실질적 조치가 없다. 최저임금은 최저 수준의 인상을 거듭한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비정규직, 작은 사업장, 청년, 고령자. 빈민, 장애인, 사회적 약자 권리 보장을 위한 실행은 없다. 정부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재앙에 불을 붙이며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강행해 자본에게 돈벼락을 선사하면서도, 독점 대기업이 원청으로서의 교섭 의무를 걷어차도 아무 강제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평등은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폭염처럼 쏟아지는 불평등에 수많은 이들이 쓰러지는데도, 민주노총은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 대신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 마련에 나섰다. 노동자 운동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전체 노동자 민중을 위한 독자적 투쟁을 벌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차별에 대한 분노’는 극우·보수세력의 혐오선동 연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창호 위원장의 횡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온전히 단결할 수 있도록, 불평등 체제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자.2026-07-31 | 조회 19,229 -
메가프로젝트, 자본을 위한 국가적 동원체제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이재명 정부가 자본의 이윤을 위한 국가적 동원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노동자 민중운동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노동권 후퇴와 막대한 공공자원의 전유를 동반하는 반노동·반생태 축적전략으로 규정하고 반대해야 한다. 사진 : 청와대 사진기자단 1873년 9월 18일, 미국 최고의 투자은행이 무너진 날 1873년 9월 18일, 미국 최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였던 ‘제이 쿡 은행’이 파산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전쟁국채를 팔아 ‘미국을 구한 은행가’라고 불린 제이 쿡은, 당대의 성장산업인 철도에 명운을 걸었다. 대륙횡단 철도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미국을 다시 한번 가로지르는 북태평양 철도(Northern Pacific Railway) 건설에 뛰어들었다. 시장에서 과잉설비라는 의구심이 번지며 철도회사 주식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철도채권 가격이 주저앉았고, 당대 최고의 투자은행이라 불리던 그의 은행이 지급을 정지했다. 이 파산은 공황을 촉발했다. 미국의 공황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위기를 증폭시켰고, 세계경제는 1890년대까지 긴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이는 이미 한 세대 전 영국이 겪은 일이었다. 1840년대 ‘철도 광풍’의 절정이던 1846년, 영국 의회가 한 해 통과시킨 철도회사 설립법만 263건, 종이 위에 그려진 노선만 9,500마일이었다. 그 노선 중 1/3은 건설되지도 않았다. 투자자들은 평균 이상의 수익을 약속하는 종이에 돈을 밀어 넣었으나, 철도회사들이 약속한 수익은 애초에 부풀려진 것이었다. 이런 환상은 1847년 공황과 함께 청산됐다. 오늘 세계는 또 하나의 ‘철도 광풍’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에는 철도가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알파벳 등 거대 자본은 아직 안정적 수익모델조차 확립되지 않은 AI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 확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으며, 각국 정부도 막대한 보조금과 산업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AI는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실제로 이윤을 낳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유망한 기술일수록 자본의 투기적 진출은 격렬했음을, 그 청산 비용은 어김없이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었음을 증언한다. 자본을 위한 국가적 동원 2026년 6월 29일,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두 재벌 총수를 ‘국민 영웅’이라 부르며 허리 숙이기도 했다. 계획의 핵심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 400조 원씩 총 800조 원을 들여 서남권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팹) 4기를 짓고, 충청권에는 81조 원을 투입해 온양·천안의 신규 HBM팹과 청주의 HBM패키징 공장을 묶어 후공정 거점을 만든다. 동남권과 대경권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거점으로 육성한다. AI데이터센터는 SK·GS·네이버 등이 참여해 550조 원을 들여 울산·동해·세종 등지에 1단계로 2029년까지 8.4기가와트, 2035년까지 18.4기가와트 규모를 구축한다.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정부가 직접 로봇을 선제 구매해 초기 시장을 구축하기로 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대가로, 국가는 생산 조건을 제공한다. △전력망과 용수 △공장부지 △인허가 신속 처리 △반도체 특별회계 △데이터센터 전용 전기요금제 △초저리 장기임대 산업단지 등이 정부가 제공하는 목록이다. 여기에 반도체 호황이 가져다줄 초과 세수로 ‘미래대응기금’을 만들어 다시 이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기업은 이윤을 가져가고, 자원과 위험은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구조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야말로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서남권 클러스터에만 전력 6.3기가와트와 하루 65만 톤의 물이 필요하다. 전력은 대형 원전 4기 이상, 용수는 인구 200만 이상의 광역시가 하루에 쓰는 물에 해당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LNG발전소 증설, 노후 원전 수명연장, 신규 원전과 SMR 건설 등 모든 발전원을 총동원하겠다는 계획이다. 7월 6일 점검회의에서 대통령은 ‘속도전’을 주문하면서 환경영향평가 기간 단축을 지시했고, 토지 확보에 관해서는 ‘협의 취득과 강제수용 절차를 동시에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가 전력과 물과 토지를 대고, 세금으로 다시 이윤축적을 뒷받침하는 이 구조는 결국 위험은 사회화하고 이윤은 사유화하는, 자본을 위한 국가적 동원체제다. 메가특구, 노동권 예외지대 7월 5일 고위 당정협의는 ‘메가특구특별법’을 비롯한 관련 입법을 연내에 마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법에는 노사협의를 조건으로 한 노동시간 규제 적용제외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7월 10일 출범한 민주당 ‘메가프로젝트 특위’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한도 적용예외를 포함한 ‘파격 특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에서 빠진 주 52시간 적용예외 조항이 ‘특구’라는 우회로를 타고 되살아나고 있음은 물론, 적용 예외를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요구와 ‘파업 없는 특구’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노동권 예외지대가 만들어질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렇듯 메가특구는 노동권 억압을 제도화한다. ‘광주형 일자리’를 돌이켜보자. 현대차 위탁생산 공장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기존 완성차업체 절반가량 임금을 적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와 복지 등 사회적 임금을 지원한다며 ‘적정임금-적정노동시간’을 원칙으로 걸고 출발했다. 소위 ‘상생형 일자리’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어떠했는가. 현실에서 ‘상생’은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사측은 ‘상생협정서’를 근거로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노조 활동을 제한했고, 선전물 훼손과 쟁의행위 방해, 노조 간부 사업장 출입 제한까지 가능한 모든 노동탄압을 자행했다. 결국 '상생형 일자리'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노동3권을 억압하는 기제였던 셈이다. 메가특구와 연결되는 더 적나라한 사례는 경제자유구역이다. 구역에 입주한 외투기업에는 파견노동자를 더 넓은 업무에 쓰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된다. 메가특구는 이러한 예외를 AI·반도체 등 전략산업 전반으로,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 확대하려는 시도다. 특정 지역과 산업에 노동법의 예외를 허용하면, 자본은 다른 지역과 사업장에도 같은 특례를 요구하며, 이는 노동권 자체의 형해화로 이어진다. 지역 간에는 더 많은 보조금과 더 낮은 규제, 더 유연한 노동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향한 질주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메가프로젝트에는 금융·세제지원, 규제특례, 인허가 단축, 인력양성 등 자본의 이윤을 위한 사업 항목은 빼곡한 반면,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 알 권리에 관한 항목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은 균열을 드러냈다. 6월 29일, 정부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직후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환영하며 ‘신속한 추진을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남본부는 7월 1일 성명에서 정부와 기업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시 착공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정서가 어디로부터 비롯하는지는 모두 안다. 상대적 저개발,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구유출과 지역소멸의 공포, 일자리 확대라는 기대 등이다. 그러나 일자리 확대라는 명분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장은 고도 자동화 시설인 관계로, 투자 규모에 비해 고용창출은 많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2.4로, 제조업 평균 5.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도 하청업체 불안정노동자를 양산해 온 것이 반도체산업의 얼룩진 이력이다. 거대한 AI 투자를 추동하는 힘 2025년 전 세계 AI 인프라 투자는 4,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30년까지 누적 투자 규모는 5조 달러 이상으로 전망된다. 도대체 무엇이 이처럼 막대한 투자를 추동하는가. 첫째는 노동력 대체를 통한 이윤율 제고다. LLM이건, 피지컬 AI건, 결국 AI 투자의 목적은 노동력을 대체해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는 것이다. 2025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00여 기업 중 41%가 AI 도입에 따라 2030년까지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AI 투자에 열을 올리는 빅테크들 자체가 이미 대량해고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9천여 명을 감원했고, 2026년에는 추가로 4,800명을 감원했다. 메타는 AI 투자 확대와 조직재편을 추진하며 8천여 명을 감원했다. 아마존 역시 자동화 구조조정 과정에서 약 1만 6천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자본에게 AI는 무엇보다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다. 둘째는 자본 간 경쟁이다. 자본주의에서 개별 기업의 투자 결정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경쟁자들이 AI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와중에 투자를 멈추는 기업은, 시장에서 패배해 축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AI가 실제로 이윤을 가져다줄 것인지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자본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거대 IT 기업들, 소위 ‘하이퍼 스케일러’들이 막대한 자원을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확보에 쏟아붓는 이유다. 셋째는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은 AI가 현대전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음을 드러냈고, 이제 미국과 중국에게 반도체와 AI는 단지 또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자산이다. 군사 AI기업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알렉스 카프는 노골적으로 기술기업과 군대의 결합을 촉구했다. “실리콘밸리의 공학 엘리트는 국가 방위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19세기 철도가 식민지 쟁탈전과 신속한 군사력 배치의 중요 수단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AI는 전쟁의 핵심 기술이다. 즉, AI 투자 경쟁은 곧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경쟁이다. 팔란티어의 인공지능 플랫폼(AIP) 시연 화면 그 어떤 자본도 과잉축적의 결과를 피해갈 수 없다 최근 한국 자본주의의 호황 역시 이러한 경쟁의 산물이다. 반도체 호황, 조선업 호황, 방위산업 호황 모두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증강과 직결되어 있다.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겠다는 선언이다. 국가는 자본의 이윤축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자본은 초과이윤을 취하고,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노동권 후퇴, 환경 파괴의 비용을 떠안는다. 그런데, AI-반도체 산업은 실제로 그렇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줄까? 물론 AI가 엄청난 기술일 수는 있다. 또한 일정 기간 막대한 이윤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렇게 AI산업에서 나오는 초과이윤을 기대하며 뛰어들지만, 바로 그 기대가 과잉축적을 낳는다. 19세기 철도산업이 그랬다. 철도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며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혁신적 기술이었지만, 과잉축적의 결과는 1847년과 1873년 공황으로 이어졌다. 공황 이후 살아남은 것은 소수의 거대자본이었고, 파산과 실업의 비용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었다. 20세기 초 전기산업,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였다. AI-반도체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미 우리는 AI산업 과잉축적의 중요 징후를 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소위 ‘순환거래’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오라클 등 빅테크는 서로에게 투자하고 거래한다. 매출은 산업 내부를 순환하며 서로의 이윤을 부풀린다. 이러한 구조는 실제 최종수요보다 투자 자체가 산업을 지탱하게 만들고, 과잉축적의 파국적 위험을 확대한다. 한 추산에 따르면, AI산업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본지출(capex)은 매년 70%씩 폭증하고 있으나, 운영현금흐름은 23%만 증가하고 있다. 추세가 변하지 않을 경우, AI기업들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최근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나타나는 주식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은 빅테크의 AI인프라 투자가 이미 ‘과잉’일 가능성에 대한 금융시장의 날선 의구심을 반영한다. 이런 우려에도 AI자본은 폭주하고 있다. 이런 모순 속에서, AI가 창출하는 이윤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도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는 영업현금흐름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간산업 소유와 통제를 향한 계급투쟁을 확대하자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으로부터 나오는 초과 세수로 국민배당금을 지급하자는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용범의 제안은 ‘반시장적’이라는 거센 공세 속에서 사실상 좌초했다. 그러나 미국 풍경은 사뭇 다르다. 버니 샌더스는 2026년 6월 ‘미국 AI 국부펀드법’을 제안해 AI 대기업들이 50% 지분을 일회성 세금으로 납부하게 하고, 이를 국부펀드에 귀속시키자고 제안했다. 국부펀드는 의결권을 가진 주주로서 기업 이사회에 참여하고, AI기업이 창출한 이윤은 전 국민에게 배당하거나 의료·교육·주거 등 공공서비스에 활용한다. 법안에 따르면,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민주적 AI를 위한 독립위원회’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 인준을 거쳐 구성된다. 이 위원회는 국부펀드가 보유한 주식 지분으로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기업 결정을 막고 △공공의 복지와 안전, 공정성,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경영을 요구하며 △국부펀드를 운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AI산업 수장들 역시 이런 흐름에 동조적이라는 점이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미국 정부가 오픈AI 지분 일부를 보유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클로드AI를 개발한 앤트로픽 역시 기업 지분을 활용해 신생아와 노동시장 진입자, AI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 자본계좌를 만들어주자고 제안했다. 트럼프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이런 제안을 소위 ‘트럼프 계좌(Trump Accounts)’ 재원으로 삼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계좌는 2025년부터 2028년 사이 출생한 모든 미국 시민에게 정부가 1,000달러를 출연해 장기 투자계좌를 개설해주는 제도다.)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력을 대체하며,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기술로 사용되는 AI산업 자체는 그대로 두고 AI가 창출하는 부를 일부 분배하자는 주장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AI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이윤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대되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만연한 불평등이 자본주의 자체의 정당성을 흔들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첫 주택을 구입할 때 부모의 지원금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지원 규모는 대부분 부모의 재산에 달려 있다. 이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자유시장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늘날 우려스러울 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더 큰 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 이 실험은 AI 확산이 가져올 격변에 대비하는 데 있어서도 특히 유용하다. AI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장 급진적으로 전망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자본 보유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반면 노동자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기술에 대한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공공 지분(public stake)이 폭주하는 불평등과 정치적 불안을 막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중 샌더스의 제안은 AI기업의 소유권 절반을 국가로 귀속하고, 이를 ‘민주적 AI를 위한 독립위원회’를 통해 관리하며 기업 경영에 관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기존 재분배 정책보다 진전된 구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는 어디까지나 국가가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며, 노동자 민중이 생산과 투자, 기술개발 방향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아니다. 물론, 이는 샌더스 혹은 더 급진적인 제도적 제안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계급투쟁에 달린 문제다. 1970년대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 역시 기업 소유를 점진적으로 사회화하려는 야심찬 구상이었지만, 자본의 거센 반격과 사민당 정부의 후퇴로 법안은 대폭 축소되었고 결국 폐지되었다. 임노동자기금의 역사적 사례가 드러내듯, 산업과 생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결국 계급투쟁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 권력의 문제다. 자본의 이윤을 위한 국가적 동원체제에 맞서, 우리는 산업을 누가 소유하고 누구를 위해 운영할 것인가, 누가 그 발전 방향을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메가프로젝트가 형해화하는 노동권에 대한 방어는 물론, 막대한 공적 자원이 투입되는 기간산업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투자가 거대해질수록, 그리고 그 실패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될 위험이 커질수록 산업 통제는 더욱 절실한 요구다. 이 모든 투쟁의 출발점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조운동이 메가프로젝트를 노동권 후퇴와 막대한 공공자원의 전유를 동반하는 반노동·반생태 축적전략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데 있다.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포함한 메가특구 반노동 정책에 맞선 투쟁은 물론, 지역주민과 기후정의운동을 포함해 공동전선으로 나아가자. 바로 지금, 기간산업의 민주적 통제를 향한 투쟁을 시작하자.2026-07-24 | 조회 24,288 -
누구의 자유인가,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 왜곡되고 박제된 광주를 넘어최근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일고와의 경기 중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구호를 외치는 사건이 발생해 많은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더 깊은 본질은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발언으로 드러났다. 그는 "5·18이 성역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이를 “김일성 사진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 북한의 모습”에 빗댔다. 비판이 거세지자 그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5·18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것 역시 보호받아야 할 자유인 셈이다. 거센 비판 끝에 결국 이병태의 사퇴로 일단락되기는 했으나,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을 한낱 ‘철없는 학생들의 실수’나 ‘고위 공직자의 개인적 망언’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1980년 5월 광주 이후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5월 광주’가 왜 끊임없이 논란의 한복판에 서야만 하는지, 그리고 한국 지배계급이 광주의 혁명적 기억을 어떻게 통제하고 억압하려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계급투쟁'의 단면이다. 극우·보수 국민의힘 세력과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세력을 막론하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은 5월 광주가 품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그 폭발력을 두려워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혁명정신을 지워나가고 있다. 심지어 극우 세력은 5월 광주를 조롱할 권리마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포장한다. 이번 논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요구하는 자유는 누구의 자유이며,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극우 세력의 ‘광주 지우기’와 혐오 비즈니스 국민의힘으로 대변되는 극우·보수 부르주아 세력은 1980년 이후 단 한 번도 광주의 투쟁 자체를 온전히 긍정한 적이 없다. 이들은 끊임없이 5·18의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항쟁 주체들을 악마화하려 시도해 왔다. 이들이 내세우는 왜곡의 논리는 매우 집요하고 체계적이다. 첫째, 북한군 600명 특수부대 개입이라는 황당무계한 낭설, 둘째, 시민들이 먼저 무기고를 탈취했다는 식의 ‘무장폭동’ 프레임, 셋째, 유공자 명단 비공개를 빌미로 한 가짜 유공자 특혜 논란, 넷째, 신군부 수뇌부의 발포 명령 부인 및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수차례의 국가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1997년 대법원 판결, 심지어 미 국무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모두 명백한 허위로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 사실들을 몰라서일까? 결코 아니다. 이는 지극히 다분한 '계급적 의도'를 품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에 맞서 스스로 총을 들었던 노동자 민중의 ‘무장 항쟁’ 그 자체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피지배계급이 단결하고, 무장해 쿠데타에 맞선 5·18의 선례는 그 자체로 불온하며 영원히 격리해야 할 두려운 기억이다. 이들에게 노동자 민중이란 통제와 착취의 대상일 뿐이며 결코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인데, 5·18은 그에 대항한 너무나도 명확한 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도로 발달한 뉴미디어 시대의 자본주의적 수익 구조가 결합하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혐오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5·18에 대한 극단적 조롱과 왜곡은 곧 막대한 후원금과 높은 조회수로 직결된다. 이병태 부위원장의 오만한 태도나 학생들의 ‘탱크 데이’ 조롱은, 역사를 이윤 창출 도구로 전락시킨 이 천박한 혐오산업의 생태계와 이를 통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극우 세력의 노골적인 합작품이다. 진짜 책임은 이 혐오의 구조를 방조하고 이득을 취하는 자들에게 있다. 사진: KBS 누구의,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 극우세력이 내세우는 자유, 그 계급적 본질 극우 세력과 이병태 등이 5·18 폄훼를 방어하며 내세우는 논리는 다름 아닌 '표현의 자유'다. 이병태는 김수영의 시를 빌려와 "서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쳐도 허용되어야 한다"며 자신을 원칙적 자유주의자로 포장했다. 그러나 이병태가 표현의 자유를 말하려거든 김수영의 시부터 제대로 읽어야 한다. 1960년, 김수영은 그의 시 ‘김일성 만세’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썼다. 김수영이 요구한 자유는 국가와 지배계급이 금지한 것을 말할 자유, 지배계급의 억압에 맞서 노동자 민중이 말할 자유였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김수영이 말하는 ‘자유’와 이병태가 말하는 ‘자유’는 같은가? 민중이 피 흘려 쟁취한 ‘자유’와, 그 자유를 쟁취한 민중을 조롱하고 역사를 왜곡할 ‘자유’는 과연 같은 것인가? 군사 독재시절 표현의 자유가 있었는가? 사태가 드러내는 가장 뼈아픈 모순은, 극우 세력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1980년 광주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비롯한 숱한 희생으로 쟁취한 권리라는 점이다. 이들이 부르짖는 표현의 자유는 역사적 맥락을 철저히 거세한 기만에 불과하다. 이병태가 말하는 ‘자유’의 본질은 그의 반노동 행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기업에 ‘해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원청교섭의 권리에 대해서도,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한다’며 비난했다. 그가 원하는 자유는 결국 무제한적 착취의 자유, 지배계급의 자유일 뿐이다. 지금의 극우 세력은 민중이 피흘려 쟁취한 권리에 무임승차한 것도 모자라, 그 자유를 핑계삼아 정작 그 자유를 낳은 위대한 투쟁을 조롱하고 공격한다. 결국 이들은 '왜곡의 자유', ‘노동자 민중을 착취하고 탄압할 자유’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김수영, 「김일성 만세(1960)」 육필 원고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은 광주를 진정 계승하고자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더욱 교묘하게 5·18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이들은 5·18 광주 민주항쟁의 역사적 후광과 도덕적 우위 없이는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매년 5월이 되면 앞다투어 광주로 내려가 눈물을 흘리며 5·18을 추모하지만, 그 방식과 목적은 철저히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에 복무한다. 이들은 광주 민주항쟁을 단순히 ‘군부 독재의 폭압에 희생당한 선량한 시민들의 평화로운 시위와 억울한 죽음’으로만 축소시킨다. 부르주아 정치권은 5·18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인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민중의 투쟁정신과 자본가계급의 탄압에 맞선 혁명적 투쟁’이라는 정신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그들은 광주를 ‘합법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 회복’(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지배 체제에 가장 안전하고 무해한 틀 안에 가두었다. 5·18을 국가기념일로 만들고 기념비도 세워주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광주의 혁명성을 영원히 매장하려는 '박제화' 작업에 불과했다. 희생과 민주주의만을 강조할 뿐, 민중항쟁의 폭발적인 혁명 정신을 일상으로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의 위선은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광주 영령들을 칭송하는 바로 그 입으로, 반도체산업 자본이 이윤을 축적할 ‘자유’, 무제한적으로 환경을 파괴할 ‘자유’를 요구한다. 이렇듯 이들에게 5·18의 민중은 오직 '죽은 민중'일 때만, 민중이 쟁취한 권리는 오직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아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다. 꿈틀거리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타격하는 '살아있는 노동자'의 저항 앞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부르주아 권력이라는 하나의 얼굴로 뭉쳐 탄압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다. 5·18은 민중의 투쟁과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길 우리가 왜곡의 늪과 박제의 틀을 깨고 다시 복원해야 할 광주의 진실은 단 하나다. 그것은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과 폭력에 맞선, 능동적인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었다. 항쟁의 폭발 과정을 복기해 보라. 초기 전남대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계엄령 해제 요구 시위로 시작되었으나, 공수부대의 대검과 곤봉이 춤추는 무자비한 유혈 진압이 시작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투쟁의 주도권을 쥔 것은 이 땅의 핍박받던 기층 민중이었다. 택시와 버스 기사들은 200여 대의 차량을 이끌고 계엄군에 맞섰으며 시장 상인과 주부, 여성 노동자들은 골목마다 주먹밥을 만들어 나르며 투쟁에 함께했다. 무엇보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시 외곽의 예비군 무기고를 열어 ‘시민군’을 결성하고 최전선에 섰던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는 최후의 방송을 들으며 도청에 남아 죽음을 맞이한 지도부의 다수는 식당 종업원,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구두닦이, 가구점 직공, 야학 노동자 등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멸시받고 착취당하던 평범한 노동자계급이었다.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며 연대했고, 스스로 무장했다. 이것이 5·18의 정신이며 진실이다. 5월 광주, 도청광장 과거의 기념일을 넘어, 오늘의 투쟁으로 이재명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이병태 부위원장의 망언을 ‘인사검증 실패’, ‘국민 통합 저해행위’ 정도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사태의 본질을 교묘하게 비껴가는 것이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통합’ 문제가 아니다. 왜 지금까지도 5월 광주는 조롱과 왜곡의 대상이 되는가? 그 근저에는 국가권력에 맞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무장한 혁명적 민중을 지우려는 지배계급의 계급투쟁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왜곡의 명분 역시 이 비열한 투쟁의 일환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쟁취한 자유, 극우 세력은 바로 그 자유를 광주의 투쟁을 조롱하고 왜곡할 권리로 뒤집으려 한다. 이렇듯 문제는 추상적인 자유 일반이 아니라 자유의 계급성이다. 억압받는 자가 싸울 자유인가, 억압하는 자가 더 억압할 자유인가? 극우는 거짓과 조롱으로 광주의 역사를 악마화하여 물리적으로 지우려 하고, 민주당류는 광주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수동적 희생의 비극으로만 포장하여 체제 내로 흡수하려 한다. 수단과 방법은 다르지만,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무장 항쟁’이라는 혁명의 뇌관을 해체하려는 목적에 있어서 두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같은 배를 탄 동업자들이다. 그렇기에 노동자계급에게 5·18은 결코 1년에 단 하루, 슬픈 추모가를 부르며 묵념하고 지나가는 과거의 화석화된 기념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5·18은 착취받는 기층 민중이 스스로 무장하고 단결할 때, 억압적인 국가 기구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얼마나 강력하게 싸울 수 있으며, 얼마나 완벽한 대안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가장 날카로운 역사적 무기다. 야구장에서 울려 퍼진 혐오 섞인 조롱과 지배계급의 오만함을 영원히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광주의 정신을 다시 찾아오는 투쟁이다. 그 투쟁은 1980년 5월, 이름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과 구두닦이들이 도청을 사수하며 보여주었던 그 처절한 계급투쟁의 연대와 정신을, 오늘날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해방을 위해 싸우는 수백만 노동자 속에서 현재진행형의 불꽃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사진: 전병철2026-07-10 | 조회 32,984 -
투표용지 부족 사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해당 지역 재투표를 요구한다필요한 것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대중의 요구를 분명히 옹호하는 것이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하던 국가가 상당수 대중의 참정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선거무효와 재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해당 지역 선거무효와 재투표 요구를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권리 요구로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나 권리는 규정의 존재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용지 부족’이라는 직접적 사태에 대한 개선과 재투표를 넘어, 근본적 대안은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 곧 노동자 민중의 정치주체화다. 우리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가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지 않고 투표소에 갈 권리,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모든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언제라도 소환할 권리,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할 권리, 선관위를 포함해 베일에 싸인 국가기구를 노동자 민중이 통제할 권리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초유의 사태 6월 3일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된 문제처럼 알려졌지만, 6월 8일 발표에서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는 91곳으로 늘었다. 그중 26곳에서는 실제로 투표가 일시 중지됐고, 투표용지가 추가 배부된 투표소도 140곳에 이르렀다. 투표 마감이 연장된 곳도 있었고,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 상당수는 장시간 대기해야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는 점이다. 선관위 역시 높은 예상 투표율을 알고 있었다. 선관위는 심지어 전체 유권자의 110% 수준으로 투표지를 인쇄하겠다며 예산을 편성하고도, 실제 투표용지 인쇄 지침은 ‘투표소별 유권자의 50% 이상’이라는 낮은 기준으로 결정했다. 이번 사태로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나 ‘참정권 박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책임자 사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당연하다. 우선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투표가 중단되었고, 유권자들이 기다려야 했으며, 일부 유권자들이 돌아가거나 투표하지 못했다. 이는 선거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국민주권’을 말하지만, 그 주권 행사의 최소 조건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특검까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선관위의 관리 부실과 현장대응 실패, 선거관리제도 개혁 문제로 규정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투·개표 동시 진행, 투표함 반출, 출구조사 발표, 선거 효력 문제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아 선거 전반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알려진 직후 ‘재투표’를 외쳤으나, 오세훈 당선 이후 특검과 국정조사를 중심으로 걸며 사실상 재투표론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6월 7일,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잠실 집회 여론에 편승해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를 요구한 이후 당론이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다. 물론 장동혁의 동기는 지방선거 패배 및 자신이 제명한 한동훈의 당선 등으로 위태로워진 본인의 정치생명 연장일 뿐이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장동혁의 목적이 ‘국민주권 회복’이 아닌 만큼, 장동혁은 재선거 요구가 오세훈 시장의 당선 무효를 뜻하는지에 대해서도 얼버무렸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를 극우세력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이후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 앞에서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 집회를 단지 극우 집회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잠실에 모인 상당수 대중은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명백한 선거관리 실패와 참정권 침해에 분노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초기에 일부 참가자들은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실선거’라며 극우적 부정선거론과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현장의 정치적 주도권이 극우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 쪽으로 상당 부분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봐야 한다. ‘재선거’ 요구는 점차 부정선거론, 사전투표 폐지론, 계엄 옹호와 윤석열 복권론, 성조기와 MAGA 피켓 등과 뒤섞이고 있다. 잠실에 모인 대중 전체가 극우세력이 아니라는 점도 진실이지만, 집회의 헤게모니가 극우세력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는 점도 진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운동은 이 사태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참정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극우세력이 독점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교훈이 있다. 촛불 정부를 자처하던 문재인 정권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불평등 심화와 부동산 폭등이었고, ‘조국사태’였다. 그 실패와 위선이 낳은 대중적 분노 앞에 노동자 민중운동이 독자적 대안을 내세우고 조직하지 못했을 때,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은 윤석열과 극우세력이었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분노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민중운동이 이 문제에 침묵한다면, 그 분노를 장악하는 것은 결국 극우세력이다. 필요한 것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도,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대중의 요구를 분명히 옹호하는 것이다. 국가는 선거 때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하던 국가가 상당수 대중의 참정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선거무효와 재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해당 지역 선거무효와 재투표 요구를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권리 요구로 다시 세워야 한다. 사태가 드러내는 진실 첫째, 이번 사태는 국가기구가 얼마나 관료적·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기관’이라는 명목으로 하등의 대중적·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다. 선관위의 실제 운영은 해당 기관 상층이, 기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침을 만들고, 책임은 아래로 떠넘기는 관료적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선관위는 자기 편의를 위해 낮은 인쇄 기준을 정했고, 지역선관위는 그 하한선에 맞춰 물량을 줄였으며, 실제 항의와 혼란은 현장 선거사무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투표 과정에서 이미 용지 부족 징조가 나타났으나, 신속한 추가 공급과 유권자 안내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잔여 용지 관리부담 감축’이라는 행정편의주의에 좌우된 결과다. 둘째, 그렇다면 국가기구는 왜 관료적·편의적으로 운영되는가. 이번 사태는 그 이유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면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대중의 정치 참여를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뿐이다. 오히려 국가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수동성을 전제하고, 나아가 겹겹의 봉쇄장치로 수동성을 조장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바로 그 운영원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국가는 '국민주권'을 말하면서도, 유권자들이 높은 투표율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을 예외 상황으로 취급했다. 자본주의 선거의 본질적 한계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같은 한 표를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그 정치적 자유는 몇 년에 한 번 자신을 지배할 대표를 고르는 순간으로 제한된다. 그렇게 구성된 정부와 의회는 대중의 통제 밖에서 지배계급을 위해, 지배계급에 의해 작동한다. 노동자 민중은 ‘주권자’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지배권력의 객체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자본주의 지배권력의 본질은 더 분명해진다. 노동조합 선거의 예를 들어보자. 노동조합 임원선거는 적어도 재적 조합원 과반수 투표와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즉, 노동조합 안에서는 형식상으로라도 조합원 다수의 참여와 동의를 지도부 선출의 최소조건으로 삼는다. 선출된 임원 역시 조합원 투표로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민주주의는 대중 다수가 지지하지 않아도, 심지어 투표조차 하지 않아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 사이에서 권력을 창출하고 배분하고 유지한다. 그런데도 국가는 그 결과를 ‘국민의 선택’이라고 부르며 정당화한다. 물론 지배계급 내부에서도 격한 분쟁은 벌어진다. 이 분쟁에 피지배계급 일부를 동원하기도 한다. 예컨대 검찰이 수사권을 가질 것인가, 경찰이나 별도기관으로 이관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그렇다. 그러나 자신을 탄압하는 권력을 검찰이 휘두르건, 경찰이 휘두르건 피지배계급에게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을 검찰이 탄압하건 경찰이 탄압하건 탄압기구의 계급적 본질은 같다. 이렇듯 자본주의 국가는 보편적 참정권을 말하지만, 권력의 재생산과 운영은 대중의 낮은 참여와 비개입을 전제한다. 지배권력에게 대중은 관리와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국민주권’이라는 형식상 명분과 실제 권력의 작동 방식 사이의 간극이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형태로 폭발한 사건이다. 셋째, 이번 사태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관료적, 행정편의적 대응이 음모론을 어떻게 확대재생산하는지를 드러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를 줄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잔여 용지가 많을 경우 부정선거 음모론 세력이 이를 투표 조작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음모론에 대응하는 방법은 음모론의 논리구조 내에 갇혀 투표용지를 줄이는 행정편의적 방식이 아니어야 했다. 필요한 대응은 더 공개적인 운영과 민주적 통제로 음모론의 존재근거를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전에도 대중적 불신을 키워왔다. 2023년 5월 불거진 대규모 채용비리가 대표적이다. 2025년 2월, 감사원은 2013년 이후 선관위의 경력경쟁채용 291회를 전수조사해 878건의 규정위반을 적발했고, 고위직부터 중간간부에 이르기까지 가족·친척 채용청탁, 면접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도 채용비리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 징계와 임용을 취소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대중적 감시와 통제를 수용하기보다,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을 방패 삼아 폐쇄적 운영 구조를 유지해왔다. 넷째, 이번 사태는 형식적 참정권과 실질적 참정권의 간극을 드러냈다. 물론 이 간극은 이번 사태로 드러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표권은 형식적으로 모든 유권자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조건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장시간·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등은 투표권을 갖고 있어도 실제로 행사하기가 어렵다. 나아가 이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 사회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애초에 투표할 권리 자체가 없다. 다섯째, 이번 사태는 정당한 분노가 우익에게 흡수되는 경로를 드러낸다. 참정권 침해는 실제로 있었다. 그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를 민주적 권리 확대로 이끄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세력 부족으로, 극우는 그 분노의 방향을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틀고자 한다. 이 분노를 극우세력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극우가 이 문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로 명백히 발생한 대중의 참정권 침해를 덮어서는 안 된다. 대안은 무엇인가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다면, 해당 선거에 대한 재투표 요구는 정당하고 또 정당하다. 이는 참정권이라는 민주적 기본권에 대한 요구다. 독일 베를린 재투표 사례 역시 있다. 2021년 9월 26일 베를린에서는 연방의회·주의회·구의회 선거에 더해 주민투표(부동산기업 ‘도이체보넨’ 몰수 여부)가 동시에 치러졌고, 같은 날 베를린 마라톤까지 겹치며 선거관리가 혼란에 빠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잘못된 투표용지가 배부됐으며, 투표 지연이 발생했다. 그 결과 베를린 주의회 선거는 2023년 2월 전면 재실시됐고, 연방의회 선거 역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베를린 2,256개 투표구 중 455곳에서 다시 치러졌다. 재투표 요구는 음모론과 무관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관해야 한다. 재투표 요구의 원천 근거는 실제로 벌어진 참정권 침해다. 그렇기에 노동자 민중운동은 재투표 요구를 ‘일부 극우세력의 주장’으로 일축해서는 안 된다. 그 요구가 극우세력의 음모론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필요한 지역과 선거 단위에서 재투표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투표용지 부족이었기에 용지를 충분히 준비하고, 용지 인쇄와 배정 등에 관한 규정을 공개하고 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권리는 규정의 존재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용지 부족’이라는 직접적 사태에 대한 개선과 재투표를 넘어, 근본적 대안은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 곧 노동자 민중의 정치주체화다. 우리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가 경제적 부담을 우려하지 않고 투표소에 갈 권리,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모든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언제라도 소환할 권리,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공직자를 선출할 권리, 선관위를 포함해 베일에 싸인 국가기구를 노동자 민중이 통제할 권리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는 ‘국민주권’이라는 공허한 말을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참정권은 노동자 민중이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다. 국가가 그 권리를 침해했다면, 그 침해에 맞서고, 그 침해가 벌어진 근본 원인을 진단하며,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 싸워야 한다.2026-06-10 | 조회 26,930 -
민주당으로는 극우를 막을 수 없다 - 지방선거 결과와 2030 남성 보수화·극우화 추세가 던지는 질문사진: 연합뉴스 ‘계엄’이란 엄청난 사태를 고려하면 민주당이 겉으론 이긴 선거처럼 보여도 내용상으로는 패배한 선거였다. 국민의힘이 격전지로 불렀던 서울과 대구에서 이겼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서울 7곳, 경기도 12곳, 인천 3곳에서 승리했다.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던 추미애의 득표율은 55%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한동훈, 유의동이 당선됐다. 선거 전까지 빈사 상태에 내몰렸던 국민의힘은 부활의 날개를 다시 얻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대안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흡수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은 ‘내란세력 심판’을 우려먹을 뿐 노동자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주식 붐이 없었다면, 민주당은 더 심한 참패를 맛봤을 것이다. 지방선거 최종투표율은 61%였다. 여전히 유권자 10명 중 4명은 투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투표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언론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표에 포함되지 않는 기존 자본가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복합적 요인 많은 사람의 예상을 뒤엎은 오세훈의 서울시장 당선은 의미심장한데, 2030 세대 남성의 보수화·극우화 현상이 다시 한번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3사 공동 출구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20대 이하 유권자 가운데 56.8%, 30대에서는 59.7%의 지지를 얻었다. 20대 남성 75.3%의 지지를 받았고, 30대에서도 남녀 모두 우세를 보이며 청년층 전반에서 강한 지지세를 획득했다. 이미지: 한국일보 물론 오세훈 당선 요인은 복합적이다.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았고, ‘한강벨트’로 불리는 용산·동작·영등포·광진·강동에서도 선전했는데, 규제 완화, 빠른 재건축, 재개발을 열망하고 부동산·개발 이슈에 민감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2031년까지 주택 31만 호 공급(27만 호가 한강벨트에 집중), '신통기획' 시즌2 등 부동산 공약을 강조했다. 이미지: 헤럴드경제 청년층의 불만도 흡수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년 사이 대출 규제와 실거주 강제 정책을 폈는데, 전·월세 매물의 대폭 감소와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전·월세 구하기도 힘들어지니 청년들의 불안감과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원오도 주택 31만 호 공급을 외쳤지만, 규제 완화와 대규모 민간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외치는 오세훈의 주장이 더 현실적으고 선명하게 보였다. 정원오는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공임대 주택 등을 강조했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공급량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 높은 경쟁률, 무상이 아닌 유상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임대주택 확대는 주거 불안을 해소할 대안이 되지 못했다. 강남 3구 아파트 소유자를 비롯해 비싼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는 많은 사람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증가와 보유세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오세훈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여러 종류의 불만을 적극 파고들었다. 물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두고 공급만 확대한다고 해서 노동자들과 가난한 민중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시장 원리를 강조하면서 공급 확대 기조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도 문재인 정부 때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집값은 계속 뛰었고 투기 세력과 다주택자들이 배를 불렸다. 이미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2%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무주택 가구가 전체 가구 중 약 43%에 이른다. 39세 이하 청년층의 무주택 가구 비율은 73.2%다. 그런데 2채 이상 집을 가진 다주택자는 230만여 명이다. 1가구 1주택을 초과하는 주택 소유를 실제로 금지하고, 초과분을 몰수하여 가난한 무주택 노동자 민중에게 공급하는 급진적 조치 없이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부동산 문제를 풀 수 없다. 투기 세력의 저항을 제압할 수 없다.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하여 건설사들의 이윤을 통제하고 대출만기 연장과 대출이자 폐지, 차압 금지 등의 조치로 자본가체제가 빚어낸 손실을 노동자 대중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급진적 정책이 아니면 가난한 노동자들은 집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설사 집을 마련해도 평생 빚에 짓눌려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의 이해를 수호하며, 그들 스스로가 가진 자들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이런 급진적 조치를 엄두도 낼 수 없다. 오세훈 당선에는 주폭 논란, 토론 회피, 토론회에서의 동문서답 등 정원오의 자질도 영향을 미쳤다. 정원오는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힘을 결집할 기세와 능력이 전혀 없었다. 민주당 대표 정청래의 “오빠 해봐” 발언이나 민주당 양천구청장 후보 우형찬의 “뽀뽀 한번” 발언은 민주당의 성인지감수성과 인권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말살로 반사이익을 누린 것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오세훈 당선 때 민주당 박영선은 단 한 자치구에서도 오세훈을 이기지 못했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용산과 강남 3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이겼는데도 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삶이 어려워졌는데 집값마저 폭등해 정부를 향한 분노가 솟구쳤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오세훈이 당선됐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의 오세훈 지지 원인을 보수화·극우화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과도한 해석이다. 더군다나 세대는 단일하거나 균질하지 않다. 계급, 지역, 젠더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며, 견해가 합종연횡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2030 남성의 보수화·극우화 추세는 분명하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지만, 오세훈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만들어내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으로도 드러났다. 투표지 부족 사태는 이런 추세에 가속기를 달았다. 각자도생의 삶 지금 2030 세대에 포함되는 1990년대 생들은 IMF 외환위기 여파와 2008년 금융위기 결과를 보고 겪었다. 이들은 생존 경쟁이 쟁점이 되고, 자살이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살았다. 수많은 청년이 사회적 생존 그 자체를 목표로 힘겨운 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헬조선, N포세대, 이생망 등의 단어가 상징하는 청년의 불행과 고통이 사회적 쟁점이 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이런 말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만큼 고통도 누적됐고, 지속됐다. 그런데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더 큰 공포가 다가왔다. 다지털경제와 인공지능은 기존의 일자리를 감소시키거나 그 성격을 변모시키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산업의 변화 역시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재조정을 동반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장래에 대한 불안함은 가중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지만 당장은 개별 대응 말고 살아남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개별화된 불안정 노동만이 반복되는 삶은 협업 경험, 동료의식, 팀워크 감각, 공동체성을 훈련할 기회 등이 부재하거나 지연됨을 뜻하기도 한다. 각자도생의 원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 각자도생의 교리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오랜 기반이다. 그리고 이 강력한 교리는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공정성을 확보해달라”는 외침과 결탁한 덕분에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정당성을 얻기까지 했다. 나는 기득권도, 자원도 비빌 언덕도 없으니, 다 같이 “계급장 떼고 붙어야”한다.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므로 남을 돕거나 지지할 필요도 없다. 타인의 고통과 연대하는 것은 사치다. 당장 나도 먹고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_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창비, 30쪽) 집단적 대응 방법과 구조적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니 많은 사람은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 실현이 마치 고통을 해결할 대안인 것처럼 외친다. 사회 변혁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 채 ‘공정한 경쟁’으로 각자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불평등, 부당함의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말이다. <공정성을 무기화하는 이들의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자신과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을 손쉽게 타자화 및 적대시하고, 그들의 생존 기반을 거부하며(예:정규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여와 조력 없이도 우리 사회가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라는 인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개별주의적 존재론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_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창비, 34쪽) 지금 ‘공정’ 논리는 극우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다. ‘공정’을 넘는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평등’과 ‘연대’라는 가치로 싸우지 않는다면,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극우를 무너뜨릴 수 없다. 희망을 선동하는 극우 더 격렬해진 경쟁은 청년들이 극우화되는 출발점을 앞당기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이 중학교 때부터,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 과열, 성별 갈등, 소속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특히 남성 청소년들은 권리가 억압되고 피해를 본다고 느낀다. 불안과 억울함을 터뜨릴 곳이 필요하다. 수많은 청소년이 극우 온라인 게시판이나 유튜브를 통해 우익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국민의힘의 주장은 청소년들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을 누가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의식을 갖고 성장한 남성들은 취업 경쟁에 내몰리면서 더욱 “자신들이 부당하게 여성, 이주민 등으로부터 빼앗기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들로부터 뭔가를 빼앗아 와야만 살길이 열린다”라고 본다. “국가는 남성들을 군대에 보내면서 남성들에게 부당한 비용을 내도록 강요하는 대신, 여성은 국가가 보호한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성은 약자’라는 흐름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래서 기성의 시스템 중 특히 여성에 친화적으로 보이는 자유주의 분파에 대해 매우 적대적 성향을 보인다. 일부 청년 남성은 군대, 여성할당제, 페미니즘에 크게 반발한다. 고용 불안, 극심한 불평등,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등은 당장 시급한 문제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장기간 부딪쳐야 하는 과제다. 그런데 그 어떤 정치세력도 이 과제를 돌파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청년들은 민주당 류의 위선적 정치에 배신감을 느끼고 더 극우 운동에 빠져들고 있다. 청년들은 단순한 소위 586 몇몇 정치인들의 위선만을 보아온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다. 말로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해 놓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탐욕스러운 자칭 진보집단과 엘리트들의 실체를 수없이 봐왔다. 젊은 층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분노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물론, 기존의 정치 대안에 대한 배신감은 자유주의 정당만이 아니라 보수주의 정당에도 향한다. 배신감을 느낀 청년 집단들은 기존 정치권 밖의 극우화된 종교 집단이나 극우 운동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결집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적 욕구를 대변하며 보수주의와 달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권과 형식들까지 부정하는 극우 집단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런 기회를 활용해 사이비 종교 집단, 극우 집단은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비록 가짜 희망이지만, 강력한 희망을 선동하고 있다. '신의한수', '이봉규TV', '진성호방송', '가로세로연구소' 등 구독자가 수십만에서 100만 명 이상인 극우·보수 성향 채널은 구독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이들처럼 강력하게 희망을 선동하는 집단이 과연 있는가 싶을 정도다. 이미지: 한국일보 이제 한국 정치에서 극우의 존재는 기본값이다. 극우에 맞선 투쟁은 결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전망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극우의 논리는 여성혐오, 엘리트 혐오, 중국 혐오, 부정 선거에서 범죄, 세금, 부패, 이민 등 모든 이슈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극우의 세력은 아마 국민의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추락과 파국의 공포라는 토대가 계속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지형 이번 지방선거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더 많은 불만과 분노가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지율의 허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해졌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지지는 결코,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지지가 아니었다. 국민의힘이 워낙 끔찍한 일을 벌였기 때문에, 그 반사 효과로 민주당이 더 나은 대안인 것처럼 보였다. 두 개의 자본가정당을 뛰어넘는 대안 정당이 없다는 근본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만이 아니라 장기적 정치 지형을 생각하고 대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당장에 국민의힘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하고 방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재인 정부 밀어 주기’의 정치적 결과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국민의힘이 흡수했고 윤석열이 탄생했다.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길이 있다. 국민의힘만이 아니라 민주당과도 단절하고, 이재명 정부에 어떤 신뢰도 주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반도체 호황에 가려져 있지만, 그 밖의 산업은 침체와 구조조정 압력 속에 놓여 있다. 석유화학·철강·배터리 등 그간 한국 자본주의를 떠받치던 산업들이 부진을 겪고있으며, 이에 자본가들도 ‘착시’와 ‘초양극화’를 말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불균형은 깊어지고 있다. 이 위기는, 결국 그 부담을 누가 떠안을 것인가를 둘러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정면 대결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과 정부와 맞선 대담한 투쟁 없이는 생존권을 보호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에 따라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고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청년들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점점 더 심해지는 두려움에서 탈출하기 위한 2030세대의 정치적 발걸음도 빨라질 것이다. 진정한 출구를 찾기 위해 함께 투쟁하지 않은 채, 그들에 대한 도덕적 비판, 협박, 처벌, 통제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 2024년 윤석열 내란에 맞선 투쟁에서 젊은 세대는 변화를 위해 나섰고 대단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물론 그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거대한 대중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의 의식은 바뀌었다. 노동자들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계급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면, 청년들의 분노는 국민의힘으로, 극우로 흡수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도약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첫걸음은 뿌리째 뽑힌 노동자계급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야만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데, 개량주의·의회주의·관료주의 지도부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정책도 없기에 민주당의 날개 밑으로 숨었다. 이제야말로 민주당과 같은 자본가 정당과 섞이고, 심지어 그들의 이중대가 되고 꼬리가 되는 정치와 단절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변혁할 거대한 노동자계급의 힘을 조직하지 않고, 그 힘을 의회의 틀 내에 가두며 노동자들을 표 찍는 수단 정도로 여기는 선거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분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시작하자. 그래서 청년층이 고작 자본가 양당 사이에서, 그리고 극우에서 정치적 대안을 찾는 비극을 끝내자.2026-06-08 | 조회 18,864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Ⅲ]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사회적 대화'는 자본과 정부의 질서 안에 노동자운동을 묶어두는 장치다.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를 가르려 한다면, 노동자는 총단결과 총파업으로 맞서야 한다.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요구를 건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1. 반노동 이재명 정부 - ‘사회적 대화’ 제의와 함께 벌어지는 거침없는 노동 탄압 이재명은 202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의 노동정책은 “반노동 그 자체”이며 “거꾸로 가는 노동 시계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이재명이 언급한 윤석열의 반노동 정책은 ‘건설노조 탄압, 현행 주 52시간제를 주 69시간까지 연장하려는 시도,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와 법 내용 왜곡’이었다. 당시 이재명은 “노동자의 안전한 삶이 곧 민생”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은 “민생을 살리고,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전진하겠다”라며 노동자 대변인인 양 행세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친노동’ 행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2월 20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의 첫 형사재판이 열린 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사장 등에게 “기업 성장이 그 나라 경제성장의 전부다. 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라며 노골적인 친자본 언사를 늘어놓았다. 이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는 자본의 대변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며, ‘법과 정책이 금지하지 않는 행위는 모두 허용할 것’이라며 친자본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재명은 연설 내내 ‘노동’은 단지 2번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 ‘성장’은 23번, ‘경제’는 12번, ‘기업’은 6번을 말하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보여줬다. 이재명 집권 이후인 2025년 6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충현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이재명은 이에 대해 “사람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에서 안전은 가장 먼저 무너진다”라며 “기업의 책임 회피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동자의 생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충현 사망 책임자인 서부발전과 한전KPS 원청 대표는 검찰에 송치되지도 않았다. 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전KPS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고 김충현 대책위원회와의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고 김충현 노동자와 그 동료들의 원청공기업인 한전KPS는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하기까지 했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부문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한전KPS의 항소 포기를 강제하기는커녕 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했다. 2026년 5월 30일 고 김충현 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 사진: 공공운수노조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 첫해 2026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고작 2.9%에 불과했다.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위산업 등 독점자본을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켜 천문학적인 재정을 지원하는 반면, 열악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할 정부의 책임은 방기했다. 마찬가지로 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대표 등이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해 투쟁을 잠재웠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악질 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조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 수단인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폐기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중대한 사건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란한 수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도, 이재명 정부가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부를 대변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지배 방식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 민중 전반을 노골적으로 억압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 민중을 분할하고 탄압한다.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2024년 총선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은 일부 개량주의 진보정당과 자유주의 시민사회를 동원해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들었고, 진보당은 위성정당에 참여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흡수한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선 투쟁과 대선을 경유하며, 민주당과 노동자 운동 상층의 밀착은 더욱 강화됐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재명 지지 대선 방침을 제출했고, 진보당은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에서 사퇴했다. 노동자 운동 일부와의 밀착을 끌어낸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지속하고자 한다. 이것은 이재명 집권 이후 ‘사회적 대화’로 표현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 운동 상층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며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산하려 한다. 반면 최저임금·비정규직·이주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확대는 말 잔치에 그칠 뿐이다. 또한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서 싸운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소수자의 생존권과 평등권은 외면하며 짓누른다. 그 많은 노동자 민중이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음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심지어 국무총리 김민석은 “동성애를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또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 운동 상층 관료들에게 외면받으면 받을수록, 이재명 정부는 전투적으로 싸우는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한다. 이런 조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들은 이런 노동자 운동 상층의 상태와 행보를 보며 투쟁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노동자들을 고사시키려 한다. 사회적 대화를 종용하는 이재명 정부 아래 서광석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BGF리테일은 자신이 원청 사용자임을 부정하며 화물연대와의 교섭을 모조리 거부했고, 폭력 경찰을 앞세워 무리한 대체 수송을 강행하다 결국 4월 20일 열사를 죽였다. 이런 폭력 경찰에 의한 참변은 우연이 아니다.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폭력 경찰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한 고진수 동지를 구속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민주당 노무현 정권 당시 가장 많은 열사가 목숨을 잃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분할 지배에 흔들리는 노동자 운동의 현 상황은 노무현 정권 당시와 비슷하다. 노동자 운동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떨치고, 자본과 정부에 대한 독립성과 투쟁성을 복원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가난한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리를 위한 계급단결 투쟁을 조직할 때, 이재명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에 나설 때, 또 다른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2. 2026년 노동자 투쟁의 핵심 - 원청교섭 쟁취 투쟁을 자본과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이재명 정부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치적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치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간 쌓은 투쟁 성과와 판례를 반영한 결과이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해당 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원청자본가들에게 교섭 의무를 강제하지 못한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 산하 575개 노동조합이 원청자본에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원청자본가들은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가 규정하는 하청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교섭노조 확정을 공고한 원청자본은 고작 21개에 불과하다.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지 못한 점, ‘원청’을 ‘사용자’라고 명시하지 못한 점 등 개정 노조법 자체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원청자본가들은 이 한계를 활용해 교섭을 회피·거부하고 있으며, 노동위원회 역시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로써 개정 노조법 2조가 원청교섭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올해 투쟁 정세의 초점은 개정 노조법에 따른 하청노동자들의 원청교섭 쟁취 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투쟁한 성과인 노조법 개정 이후, 그 개정을 토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약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산별 연맹은 올해 원청교섭을 핵심 투쟁으로 결정했다. 또한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원청교섭과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을 확정한 상황이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이 종합한 원청교섭 상황은 다음 표와 같다.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한 575개 사업장 중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46개로 8%에 불과하다.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21개로 3.7%에 불과하다. 원청자본가들은 하나로 단합해 교섭을 거부하며 2026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저지선을 치고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교섭 요구부터 교섭노조 확정 공고까지 약 45일에 달하는 복잡한 절차에 노동조합을 묶어놓고 자본가들의 원청교섭 무력화 책략을 지원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지난 3월 10일부로 69개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22개 원청자본을 상대로 교섭공문을 발송했다. 그중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뿐이다. 금속노조 69개 지회 중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노조들이 약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은 4월 20일 대표이사 김영일 명의로 노조법 제2조 제2호에 따르면 자신은 교섭 요구 사업장 노동자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에 응할 수 없음”을 금속노조에 통보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교섭 거부를 통보함으로써 금속노조 원청교섭 투쟁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미 금속노조는 조선산업을 제외하면 개정 노조법 시행령 절차에 따른 쟁의권 확보가 어렵다고 예측하고 산하 지회 보충 교섭을 병행해 쟁의권을 확보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원청자본의 교섭 해태와 거부에 따른 난관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2026년 원청교섭 투쟁은 개정 노조법 자체의 허점과 교섭 창구 단일화 시행령의 반노동자적 본질 때문에, 법적 교섭 절차에 얽매여서는 쉽게 돌파할 수 없다. 강력한 총파업 없이 완고하게 교섭을 거부하는 원청자본의 책략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다.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투쟁에 대한 원청자본과 정부의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능한 한 교섭을 거부한다. 둘째, 교섭을 거부할 수 없는 의제가 존재하는 노조는 교섭에 응하되, 교섭을 해당 의제만으로 한정해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와 투쟁을 제한한다. 셋째, 교섭 단위를 분리하여 원청에 맞서 독자적 투쟁을 전개하려는 비정규직 노조들을 상대로, 자회사 등 중간 업체를 앞세워 노동·안전·보건 등 법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요구를 협의한다. 넷째,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 방침에 따라 공동투쟁·공동파업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교섭을 완고하게 거부하며, 투쟁의 파급력에 따라 개별 교섭의 외양을 취한다. 원청자본과 정부의 전략을 분쇄하고 원청교섭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계급단결이 필수다. 올해 원청교섭 쟁취, 7월 총파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막중한 투쟁이다. 산업 호황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등 극히 일부 산업, 그것도 해당 산업 공급망 내 상위 독점기업에 한정됨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25년 8월 기준,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임금 격차는 월 임금 기준 5.52배에서 6.11배로 확대되었다. 중위 임금의 2/3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시급 기준 329만 명으로 전년보다 14만 명 증가했고, 월급 기준 450만 명으로 37만 명 증가했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25년 11월 30일).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이윤 축적은 노동자 내부의 분절과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주도로 본격화하는 노동개악에 대한 대응, 그리고 AI 도입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1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 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 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 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소위 ‘K자 양극화’로 일부 전략산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이 이윤 축적 위기를 겪는 지금, 원청자본은 정부 정책 방향을 지렛대로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경총과 한경협 등 자본가단체 역시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에 발맞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 범위 확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전환, 노동시간 규제 완화,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규제 특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AI 도입에 대한 이재명 정부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과 정부는 전 산업에 걸쳐 AI 기반 산업로봇,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 자율운반로봇, 피지컬AI 등으로 모든 업종과 산업, 생산직과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하려 한다. 이제 자본과 정부는 제조업 전반에 피지컬AI 도입을 본격화했다. 2026년 4월, 산업통상부는 ‘제조암묵지기반 AI모델개발사업’을 공고하고, 자동차·조선·철강·기계·전자·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화학·방산·뿌리산업 등 10대 제조 분야에서 숙련노동자의 경험과 노하우, 곧 '암묵지'를 수집·정제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자가 오랜 시간 축적한 숙련과 판단력을 자본이 데이터로 수집해 사유화하고, 이를 노동자 대체와 노동 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동의권, 보상권, 데이터 소유·통제권, 고용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식노동자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AI로 대체되고 있다. 향후 AI 도입이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 자본가들의 의도대로 추진된다면, 수년 내 모든 산업에서 대량 해고, 노동강도 강화, 노동 통제 강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펼쳐질 것이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정리해고 공세를 기억하자. 당시 자본은 이윤 축적의 위기 앞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자본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와 기간제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우선 해고한 후 정규직까지 정리해고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분할하며 결국 모든 노동자를 공격한 것이다. 지금 자본의 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순차적으로 공장과 사업장을 폐쇄한 후 최첨단 자동화와 로봇 공장으로 재건축하면서, 우선 정규직의 고용은 보장하되 모든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는 것이다. 그다음 소수화된 노조 정규직들의 노동강도와 통제를 강화하고 인원을 계속 축소하려는 게 자본의 전략이다. 또다시 패배하지 않는 길은 자본과 이재명 정부의 분할 전략에 맞선 노동자 총단결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2026년 원청교섭 투쟁,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투쟁의 막대한 중요성이다. 3. 7월 노동자 총파업 - 전체 노동자의 총단결·총파업으로 사회대변혁의 길을 열자 지금은 엄중한 시기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 지도부 일부는 이재명 정부와 유대에 골몰한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가시화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 역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제다. 따라서 올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원청교섭 쟁취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 △미국·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 쟁취를 위한 총파업의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예단할 순 없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절박한 요구를 쟁취하고자 원청교섭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총파업 선봉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민주노총 산하 원청교섭 사업장 노동자, 이재명 정부를 사용자로 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그룹과 싸우는 금속노조 원청교섭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촉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7·8·9월 3차례 총파업을 결의한 금속노조의 경우 6월 지자체 선거, 7월 총파업, 하계휴가, 8~9월 총파업, 민주노총 선거로 이어지는 흐름과 일정은 총파업의 원심력을 높이는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금속노조 안에서도 원청교섭에 나선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 나뉘어 있고,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사내하청 노조와 그렇지 않은 정규직 노조가 나뉘어 있다. 또한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8~9월 총파업을 조직할 계획과 준비 정도에서 금속노조 18만 조합원 내 상당한 온도 차이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결국 관건은 생존권과 고용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원청교섭 투쟁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원청교섭 투쟁은 현장의 힘으로 가능하되, 특정 현장 노동자들의 힘만으로 돌파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거의 모든 자본가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지금,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들고 전체 자본가와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을 벌여야 한다. 심지어 “공공부문 모범사용자가 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허구였음을 드러내듯, 공기업 중 교섭 요구를 공고한 기관은 두 곳에 불과하다. 민간 자본이건 공기업 자본이건, 자본가들은 합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하며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다. 어느새 870만 명으로 폭증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하청노동자의 생존권과 총고용 보장을 위한 원청교섭 쟁취를 목표로 노동자 총단결·총파업의 길로 전진해야 한다.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한다. 그렇기에 이 투쟁은 더 단호할수록, 정치투쟁의 성격을 강화할수록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며, 절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의 지지 속에 펼쳐질 수 있다. 사진: 노동과 세계 원청교섭 쟁취 투쟁은 BGF 자본에 맞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금속산업 사업장, 공공부문 사업장, 대학 사업장 등 개별사업장 교섭을 넘어 공동투쟁·공동파업의 흐름으로 확장해야 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전국적 연대로 확장된 서광석 열사 투쟁이 보여준 교훈이다. 6월 발전 노동자 행진과 최저임금 투쟁은 총파업의 흐름을 형성하는 계기다. 6월 13일,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6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시민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에도 여전히 발전산업 다단계 하청구조를 유지하는 이재명 정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도 고용보장 대책은 없는 발전소 원청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에 함께하자.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7월 총파업으로 가는 길을 다지자. 또한 6월 최저임금 투쟁 시기에는 870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과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일터기본법의 허구를 드러내고, 모든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진짜 사장 책임 요구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자. 원청교섭을 거부하며 개정 노조법을 무력화하는 원청자본가들과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쏟아내는 이재명 정부에 맞서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와 결의로서 아래를 제안한다. ▸ 모든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기본법’을 비롯한 이재명 정부의 가짜 노동권 확대정책, 모든 노동자 원청교섭권 보장은커녕 공공부문 악질사용자로 역할하는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조직하자. ▸ 금속산업과 공공부문 원청교섭 비정규직 사업장들이 원청 대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투쟁에서 선봉에 서자. ▸ 원청교섭 사업장 지도부는 7월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현장 순회, 전체 조합원의 총파업 참여를 위한 교육·선전을 배치하자.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전체 조합원 임단투 결의대회를 열어 올해 임단투 승리와 원청교섭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참여를 결의하자.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 고용 보장 요구,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투쟁으로 결합해야 한다.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업종과 산업별로 원청자본을 압박하는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배치하고, 연대투쟁 확대 속에서 7월 총파업으로 가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자. ▸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 교섭 방침 - “모든 단위 조직은 18만 공동 요구 중 '비정규직 고용과 원청교섭권 보장' 요구의 최소 쟁취 없이 의견 접근할 수 없음” - 을 반드시 사수하자. 이 방침은 원청교섭 투쟁을 일부 비정규직 사업장의 요구로 밀어내지 않고, 금속노조의 공동 투쟁으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 금속노조 원청교섭 사업장 중 현대차그룹 계열 서열 물류사·모듈 부품사·제철소·조선소 지회들에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공동파업을 조직하자. 원청 대자본은 다단계 하청 구조로 노동자를 분할하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에 맞서 원하청 노동자가 공동 요구를 세우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 미국-이란 전쟁과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를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전쟁은 노동자계급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학살과 중동 전쟁 확대는 한국 노동자에게도 군비 증강, 물가 상승, 노동권 후퇴, 민주주의 억압으로 되돌아온다. ▸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 고통 전가에 맞서, 물가상승분을 임금에 자동 반영하는 물가임금연동제 도입과 실질임금 보장을 요구하자. ▸ 차별금지법 제정을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차별금지법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차별, 혐오와 배제에 맞선 최소한의 평등권 요구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함께 내걸고, 7월 총파업을 차별과 배제에 맞선 계급투쟁으로 확대하자. ▸ ‘쉬었음’ 청년과 은둔고립 청년의 증가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든 문제다. 공공부문부터 청년 일자리 창출, 생활임금 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하자. ▸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철폐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AI 도입에 대한 노동자 통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중단 △차별금지법 쟁취 등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투쟁 전선을 열어가자.2026-06-02 | 조회 14,372 -
일상으로 스며든 극우와 자본의 민낯, 그리고 정치적 위선최근 온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사태는 단순한 기업 마케팅 부서의 실무적 일탈이나 ‘윤리적 감수성 부재’로 치부될 수 없는 중대한 사회적 징후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에 ‘탱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하는 “책상을 탁 치니 억”이라는 망언을 마케팅 카피로 사용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합의(노동자·민중의 역사적 투쟁성과)에 대한 도발이다. 이 사태는 단순히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선을 넘은 것을 뛰어넘는다. 첫째, 온라인 커뮤니티의 음지에 머물던 극우적 혐오 밈이 주류 사회와 일상으로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 둘째, 이러한 일상화의 배경에는 ‘멸공’ 등을 부르짖어 온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그간 행보가 만들어낸 조직 문화적 토양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셋째, 이 참담한 비극을 오직 다가올 선거와 진영 결집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킨 부르주아 정치권의 위선이다. 극우적 밈의 일상화와 주류화 과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폭동으로 매도하거나,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 내부에서나 통용되는 그들만의 놀이(?)였다. 그러나 스타벅스 사태는 이러한 극우적 문화가 ‘트렌디한 밈’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대기업의 공식적인 업무까지도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서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거나 “AI에 물어본 문구”라는 식의 해명이 흘러나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일부 직원의 의도적인 ‘도그휘슬(Dog-whistling, 특정 집단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밀한 메시지)’이었다면 기업 내부에 극우적 가치관이 중심을 잡고 있다는 증거이며, 반대로 아무런 의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면 행사가 진행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검토 과정에서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는 폭력성을 인지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게 어느 것이든 둘 다 노동자계급의 가치기준과는 거리가 먼 것일 뿐이다. 정용진 회장의 이념적 행보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극우적 일상화가 대기업 내부에서 버젓이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가지고 있는 극우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 회장은 5월 2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으나 과연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해당 부서 5명 중에 3명이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저 조사가 사실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제출한 2명의 핸드폰이 이후 경찰조사에서 문제되지 않도록 손봐 준 것은 아닐까? 정용진 회장이 이번 사태에 그나마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본의 이윤 앞에 선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 콜옵션 조항이 있는데, 현재 이마트가 가지고 있는 지분 67.5%를 이마트(스타벅스 코리아)의 귀책사유로 인한 브랜드 명성의 훼손이 있을 경우 스타벅스 본사가 35%할인된 금액으로 이마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정용진의 사과는 거센 불매운동과 주가 하락이라는 자본의 ‘손익계산’에 따른 위기탈출용 사과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과 발표에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는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멸공’ 논란을 일으키며 낡은 색깔론을 자극했고, 특정 정치적 진영에 편향된 행보를 가져갔다. 기업의 총수가 공공연하게 우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즐기는 상황에서, 그룹 산하 조직의 문화 역시 알게 모르게 그 눈높이에 맞춰지거나 보수화·우경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최고 경영자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을 가볍게 사용하거나 표현의 자유 정도로 취급하는 조직에서, 실무진들이 민주화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가벼워지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실무진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직문화를 만든 정용진에게 최대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상흔을 정쟁의 도구로만 보는 부르주아 정치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 사태를 대하는 정치권의 위선적인 태도다. 다가올 2026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은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인 ‘사회의 극우화’를 진단하고 치유하기보다는, 이를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진영은 이번 사태를 맹폭하며 자신들이 민주주의와 역사의 유일한 수호자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7년 전 무신사의 유사한 광고 사태까지 다시 소환하며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선택적이다.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노란봉투법이 유명무실하게 되고 있는 상황 앞에서는 자본의 편을 들면서, 선거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 상징 앞에서는 투사로 돌변한다. 이들에게 광주와 87년의 피는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뿐인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자세로 국민의 힘은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맞서 오히려 스타벅스 구매운동을 벌이며 극우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5월 26일 사과발표가 나자마자 민주당은 이를 진정성있는 사과라고 포장을 하고, 국민의 힘은 민주당의 공세에 어쩔 수 없이 한 사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오월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에선 “정용진의 사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진정한 반성과 책임 없는 형식적 사과는 상처받은 시민과 오월 영령들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이며 기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5.18을 제대로 기리는 것은 노동자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는 이윤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극우적 혐오와 역사 왜곡마저 ‘노이즈 마케팅’으로 승인해 버리는 자본의 야만성, 그리고 총수의 그릇된 이념적 편향이 기업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를 구조적으로 바로잡을 의지와 능력 없이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부르주아 정치권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태를 특정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경영진을 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러한 혐오의 언어가 오프라인의 일상과 자본의 권력을 타고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숭고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상품이나 정치인들의 선거용 도구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하다.2026-05-27 | 조회 15,5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