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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규탄 기자회견 후기 - 이재명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즉각 중단하라!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2년을 넘어가던 10월 10일, 가자지구 저항군과 이스라엘의 휴전이 발효되었다.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세 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역을 공습했고, 매일 포격과 총격으로 팔레스타인 민중 250여 명이 학살됐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영토 53%를 강제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군의 학살 지속으로 2단계 휴전 이행이 교착상태인 관계로, 휴전은 언제 파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5일(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은 울산시청 남문 앞에서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동지들이 참여했다. 울산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울산긴급행동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대륙금속지회 △GS엔택지회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 △현대자동차지부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울산이주민센터 △울산노동자배움터 △노동자혁명당(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 등 노조 간부·조합원과 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다나페트롤리엄은 어떤 기업인가? -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와 한국석유공사의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경과 다나페트롤리엄(Dana Petroleum)은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다. 한국석유공사는 2010년 9월 다나페트롤리엄 주주들에게 공개 주식인수를 제안하며 64.26%의 지지로 경영권을 확보하고, 다음 해 1월에는 지분 100%를 사들여 인수했다. 당시 다나페트롤리엄은 북해(영국·노르웨이·네덜란드), 아프리카(이집트·모로코·세네갈·모리타니아·기니) 지역 가스와 원유탐사·개발 및 생산시설을 가진 영국기업이었다. 한국석유공사의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목적 중 하나가 영국북해 탐사와 개발이익 추구로 추정됐다. 다나페트롤리엄은 북해 30개 유전개발사업에 참여했고, 회사의 가스와 석유 생산량 중 70%가 북해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0년 12월 말, 한국석유공사는 다나페트롤리엄을 제외하고도 17개국 57개 해외 유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국내에서는 ‘4대강 사업’을, 국외로는 ‘자원외교’를 밀어붙였다. 2009년 초부터 페루(사비아-페루), 캐나다(하베스트), 카자흐스탄(숨베) 가스 및 원유탐사 광구와 기업을 줄줄이 인수했고, 다나페트롤리엄은 네 번째 인수기업이었다. 이때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이후 세계 석유업계에서 한국석유공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자화자찬했다. 심지어 “이번에 다나페트롤리엄 인수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편 셈”이라는 해괴한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2월 ‘제4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2010~2019년)’에서 구리, 가스, 석유 등의 발굴과 탐사를 위해 세계 곳곳을 후벼 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소위 ‘자원외교’는 2015년 국회 국정감사 ‘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 보고 등을 계기로 그 터무니없음이 모두 밝혀졌다. 당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에너지 공기업 3사의 손실금은 30조 원에 달했고, 한국공기업들이 떠안은 부채는 56조 원이었다. 이 부담과 책임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어 박근혜 정부의 공공요금 및 담뱃값 인상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석유공사가 인수할 당시 다나페트롤리엄은 부실기업이었다. (석유공사가 앞서 인수했던 캐나다의 ‘하베스트’도 적자 상태였다.) 당시 다나페트롤리엄 지분 100% 장부가액은 1조 9,962억 원이었으나 석유공사는 부채까지 포함해 총 3조 4,000억 원에 다나페트롤리엄을 인수했고, 이명박 정권은 1조 5,000억 원을 더 퍼주고도 ‘적대적 M&A 성공사례’라며 다나페트롤리엄 인수를 과대포장했다. 석유공사가 다나페트롤리엄을 인수하는 과정은 국가와 자본의 공공재정에 대한 전용, 그 자체였다.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빨아먹은 부실기업 다나페트롤리엄,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으로 변신하다 2014년부터 다나페트롤리엄은 막대한 적자에 허덕였다. 2020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석유공사가 투자한 다나페트롤리엄의 투자 대비 회수액은 22억 2,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다나페트롤리엄은 한국석유공사 적자를 늘리는 ‘돈 먹는 하마’로 불렸다. 한국석유공사 부채비율은 2013년 180.1%에서 2019년 3,415.5%로 늘었으며 다나페트롤리엄 적자 역시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윤석열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다나페트롤리엄 매각을 추진했다. 한국 정부와 석유공사가 다나페트롤리엄 매각을 추진하던 2023년 10월 8일, 이스라엘은 전투기 폭격과 지상군 투입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집단학살 자행과 함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유전 탐사권 12개를 시장에 내놓았고, 2023년 10월 말, 한국석유공사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은 이탈리아 기업 ‘에니’, 이스라엘 기업 ‘래시오에너지’와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해 가스와 석유탐사 면허 6건을 따냈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점령과 집단학살을 다나페트롤리엄 이윤을 회복할 계기로 보고 매각을 취소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컨소시엄이 매입한 탐사 지역의 60%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이다. 이스라엘은 12개 탐사 면허를 판매해 약 204억 원을 벌었고, 이 자금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군사점령과 집단학살에 쓰였다.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자원을 수탈하고자 집단학살에 자금을 대는 전쟁범죄 공모기업이 됐다. 한국석유공사와 다나페트롤리엄의 집단학살 공모는 전쟁특수로 이윤을 쌓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행태다. 이뿐 아니라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 17개 지역에서 가스와 석유를 탐사하며 땅을 파헤치는 기후위기 주범으로 규탄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재명 정부 역시 팔레스타인 수탈사업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집단학살에 공모해 피묻은 이윤을 쌓으려는 자본가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자. 11월 26일(수),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를 규탄하는 국제 행동의 날이 열린다 11월 5일 울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 이재명 정부 규탄 기자회견은 시작일 뿐이다.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11월 26일(수) 오후 4시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국제 행동의 날’을 열어 이재명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외칠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자유, 해방을 위한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확대하자! 다음은 11월 5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지들의 발언문과 기자회견문이다. 모두 발언 : 덩야핑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오늘로 집단학살 761일 차입니다. “휴전”이 되었다는데 왜 계속 집단학살 날짜를 세고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매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집단학살이 무엇인지 압니다. 홀로코스트로 나치가 유대인과 장애인, 퀴어와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대중문화를 통해서 누구나 그 역사를 배웠습니다. 한 인구집단을 절멸시키겠다는 의도로, 민간인을 집중적으로 학살하는 것이 집단학살입니다. 그리고 이런 집단학살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누구나 압니다. 혹시 “정상”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산다면 일상이나 상식이라고 바꿔도 되는데요. 이런 뜻입니다. 제가 여기 오는 동안 버스를 탔습니다. 제가 탄 버스가 폭격당하지 않고 이 기자회견장에 도착하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은 자신들이 내린 강제 추방령에 따라 피란 가던 민간 버스를 폭격해 사람들을 죽입니다. 휴전이 선포되어 점령군이 철수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의 자동차를 폭격해 일가족을 몰살시킵니다. 노동자가 일터에 나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는 게 정상입니다. 모든 일터를 폭격해 노동자를 학살하고, 모든 관공서를 폭격해 공무원을 말살하고, 모든 병원에 쳐들어가 환자와 의료진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몰살당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집니다. 지난 10월 10일에, 집단학살 중 세 번째 “휴전”이라는 것이 체결된 후, 이스라엘은 하루 열 명씩, 가끔은 백 명씩 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정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성이 마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만은 정상인 것처럼 치부됩니다. 집단학살 1년 가량은 매일 300명, 400명씩 학살당했는데요. 한 병원에서 주민 471명이 단번에 학살당하기도 했어요. 제일 많이 살해당한 날은 700명이 하루 동안 학살당했어요. 굶어 죽어가는 가족들에게 밀가루 한 봉지라도 얻어다 주려고 구호품을 받으러 온 주민 118명을 단번에 학살했어요. 강제 추방당해 얇은 텐트 아래 맨몸으로 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을 단번에 불태워 죽였어요. 텐트에서 자는 사람들을 불도저와 탱크로 깔아뭉개 죽였어요. 다른 가족들은 피란 보내고,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와 단둘이 남았던 아들은, 이스라엘 점령군의 탱크에 아버지와 함께 깔려, 온전한 신체라고는 손을 꼭 붙든 팔들만 남았습니다. 처음 들으시죠. 이 모든 일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자행돼서, 결국 이런 일들은 뉴스거리도 안 되는 “정상”적인 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 열 명씩 살해당하는 건 별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도록요. 그게 마치 정상적인 “휴전”의 의미라는 듯이요. 집단학살 첫째 달이던 2023년 10월에, 그것도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한 바로 그다음 날에, 그 무섭고 끔찍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을 통해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를 수탈하는 식민지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면허를 땄습니다. 사실 집단학살 이전에도, 가자지구의 천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해외 자본들이 수년간 계속 준비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민해 왔기 때문에 저는 당시에 이 소식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300, 400명씩 학살당하는 데 대응하느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몇 달 뒤에 가자지구의 인권 단체들이 자회사에 문제 제기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 유럽의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에너지 수탈에 한국기업이 연루되어 있으니, 한국에서 같이 대응 활동을 하자는 연락을 받고서야 뒤늦게, 한국기업이, 그것도 공기업이, 집단학살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고, 한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이걸 멈추게 할 책임이 있다는 데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습니다. 여러분, 아동 2만 명의 몸이 찢겨지고 불태워져 학살당할 때, 12개월도 안 된 아기 1천여 명의 머리가 잘리고 숨통이 막혀 몰살당할 때, 이스라엘 점령군의 의도적인 조준 사격으로 아동들이 머리와 가슴과 배에 총을 맞으며 죽어갈 때, 제발 이 학살을 멈추게 해달라는 절규를 듣는 우리의 삶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살던 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냥 어차피 우리 기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돈을 벌 테니까, 우리 기업이 가서 돈을 벌면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하는 활동들을 가자지구에서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지금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도록 한국공기업의 비정상적인 식민지 자원 수탈을 막아냅시다.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국가로 남지 않게, 그렇게 미래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적 과오를 유산으로 떠넘기지 않게, 이제부터라도 함께 행동합시다. 또한 이번 집단학살을 중단시키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를 함께 끝장냅시다. 이스라엘은 77년 전 팔레스타인 원주민 집단학살을 통해 건국했고, 집단학살을 통해 유지돼 왔고, 이제 집단학살로 수익을 얻고 있는 나라입니다. 식민 지배가 계속 “정상”으로 치부되는 한, 이스라엘은 언제고 다시 집단학살을 재개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 최용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전 세계 만악의 근원, 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 미국의 공모와 후원으로 네타냐후가 중심이 돼서 이스라엘이 끔찍하고 참혹한 전쟁을 가자지구에서 벌인지가 2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특히 어린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인들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여성들이 죽어갔습니다. 연로한 노인들이 전쟁의 잔혹함에 무차별적으로 죽어갔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느 사람이, 어느 세계인들이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심판받아야 할 네타냐후 이스라엘은 지구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그런 잔인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끔찍한 전쟁이 한반도에서는 일어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전쟁의 참화가 빚어질 수 있는 이 한반도에, 그것도 한국석유공사가 무참히 사람들을 학살하는 거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의 전쟁 후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지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왜 다물고 있습니까. 돈벌이 때문에 그렇습니까. 돈을 위해서라면 그 수많은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도 된단 말입니까.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런 끔찍한 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것을 든든하게 사수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 심판하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이스라엘이 휴전한 만큼 더 이상의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자기들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과하고 가자지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고 있는 모든 동지와 함께 반드시 이 전쟁의 종식을 위한 모든 연대를 아끼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구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당장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이스라엘 전쟁 지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철수, 철회할 것을 지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고맙습니다. 발언 : 양준석 (울산노동자배움터) 우리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규탄해야 하는 것은 가장 일차적으로는 지금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지구인으로서,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가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양심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약탈과 학살, 전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 세계에 관철시켜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일들은 한마디로 이런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어떤 꼴을 당할 수 있는지 그들이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서서 싸우는 것,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은 우리의 양심에 부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언제고 빠져들 수 있는 저 거대한 제국주의 공격, 제국주의 수탈, 전쟁위험을 우리 스스로가 막아내는 그런 투쟁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저 끔찍한 집단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이른바 국제 사회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유엔은 2024년 9월에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 가자, 서안,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이 불법적이라고 확인하고 1년 안에 해결하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올해 1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다고 유엔에서 표결하면 뭐 합니까.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그것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미국 앞에서 저들은 아무것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처럼, 한국의 유수한 기업처럼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음으로 양으로 동참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확인한 것은, 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멈추는 힘은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저 기업들, 국가들의 작동을 노동자들의 힘으로 민중의 힘으로 멈춰 세워야 합니다. 시내를 마비시킬, 도로를 마비시키고 항만을 마비시킬 총파업을 하고 온 거리를 뒤덮는 시위를 펼쳐야 합니다. 특히 올해 9월과 10월 이탈리아에서 거대한 총파업과 시위가 일어났고 그것은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발전시켜 왔던 그러한 투쟁의 한 집약점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울산에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자들 속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소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울산이 바로 노동자의 도시, 노동자투쟁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에 공모하고 있는 기업들이 몰려있는 도시라는 점도 같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한국석유공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HD현대 굴착기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한국의 무기 수출과 기업들의 공모를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에 다른 어느 곳보다 울산의 노동자 민중이 앞장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해서 그 학살을 지원하려고 하는 그 모든 작동을 멈춰 세우기 위한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을 한 발 한 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권리와 평화를 지키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언 : 최종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사자 타렉 발언 대독,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공동행동) 오늘 오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정치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얽혀 있습니다. 소위 ‘글로벌 사우스’를 착취하는 데서 그 연관성은 가장 뚜렷합니다. 이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진행 중인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휴전 발표 이후에도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폭탄과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은 매일 같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2년간의 집단학살 기간 동안 학살의 목격자들은 가자지구에 떨어진 폭탄과 미사일의 양을 히로시마급 폭발 수십 차례에 맞먹는 파괴력으로 묘사했습니다. 어떤 추정치를 인용하든 가자의 현실은 명백합니다. 이 공격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생명을 유지하는 시스템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인프라 파괴는 광범위합니다. 주택과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병원과 진료소가 초토화되었습니다. 학교와 대학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물, 위생, 전력 시스템은 마비되었습니다. 가자지구의 생태계는 오랫동안 공격의 희생양이 되어 왔습니다. 점령지에선 민족적 상징이자 경제적 생명선인 올리브 나무가 뿌리째 뽑혔습니다. 이제 독성 잔해와 오염이 물결처럼 밀려와 토양, 공기, 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점령지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원의 약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기후 문제입니다. 모든 폭탄에는 생애주기가 있습니다. 탄약 제조와 수송에서 배출이 시작됩니다. 이를 운반하는 연료 연소로 추가 배출이 발생합니다. 그 뒤에는 유독성 잔여물이 남습니다. 유엔환경계획은 가자지구의 하수처리시설이 가동을 중단했고,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해변과 토양,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수천만 톤의 잔해가 가자 전역을 뒤덮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잔해만 치우는 데도 수년이 걸리며 수만 톤의 이산화탄소 상당량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주택, 학교, 병원을 재건하는 데 수백만 톤이 더 배출될 것입니다. 백린탄 사용이 확인되어 민간인과 환경에 추가적인 장기적 위험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인프라가 손상되면서 디젤 등 오염을 발생하는 발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전쟁이 기후 위기에 초래하는 대가입니다. 오염된 공기와 물, 중독된 토양, 그리고 한 민족을 치유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지구를 더 뜨겁게 달굴 재건에 대한 부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후정의와 팔레스타인 정의가 분리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영국 자회사 다나페트롤리엄을 통해 이스라엘의 해상 가스 채굴권 허가에 관여해 왔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스 개발을 진행하며 대형 외국 협력사와 함께 한국 동해에서 탐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인 다나페트롤리엄은 2023년 10월, 학살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가자 해역과 인접한 이스라엘 연안 해상에 대한 탐사권을 이스라엘로부터 획득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지구 공동의 관리자로서 이에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주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생태계와 환경에 끔찍한 피해가 가해지고 더해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한국석유공사와 다나페트롤리엄이 해당 허가권을 철회하고, 팔레스타인 자원의 약탈에 대한 모든 공모를 중단하며, 점령된 민중의 권리를 짓밟지 않는 기후 정의를 실천할 것을 촉구합니다. 11.05.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기업 한국석유공사 규탄 기자회견문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방 운동 세력들이 식민국가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한 것을 기화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휴전이 발효된 10월 10일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 68,000여 명을 학살했고, 부상자는 170,000여 명에 이릅니다. 학살당한 주민 중 60% 이상은 어린이와 여성, 고령자들입니다. 전 세계는 이스라엘 네타냐후와 시온주의자들의 집단학살과 전쟁범죄를 단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터전인 주거지, 건물, 농경지 등 90%를 파괴했습니다. 지난 8개월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230만 주민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가자지구는 충분한 구호품을 제공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휴전 발효 후 지난 20일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을 세 차례 공습했고, 매일 벌어지는 포격과 총격으로 14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집단학살 재개로 휴전 합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휴전 합의는 미국 트럼프의 폭거나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약속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죽을지언정 절대 물러서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저항, 세계 각국에서 출발한 수무드 구호선단의 가자지구 진입 투쟁, 이탈리아 노동자 총파업과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끈질긴 저항이 이룬 소중한 성과입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폭거와 이스라엘 시온주의자 네타냐후 거짓 언사로는 집단학살 없는 팔레스타인, 전쟁 없는 중동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집단학살이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미국 트럼프를 필두로 이탈리아·독일· 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가 이스라엘에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뒷배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약 30조 6,000억 원을 이스라엘에 지원했고, 가자지구에 20만 톤의 폭탄을 쏟아붓도록 도왔습니다.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는 이스라엘 점령군과 시온주의자들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전쟁범죄 설계자들입니다. 이들이 100년 넘게 이어온 중동지역 지배 야욕과 천연자원 수탈은 독점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끊임없는 전쟁과 학살의 주된 원인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중동지역 지배 야욕,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는 지금 미국 트럼프의 관세 부과와 투자 강요와 같은 경제 약탈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리비에라 관광지 망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서안지구 합병 결정, 가자지구 부동산 대박 구상은 그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것이 중동지역의 평화,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난 2년간 서울, 울산, 대전, 춘천, 전주, 대구 등 팔레스타인 연대와 저항의 발자취는 앞으로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에 맞선 국제연대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역을 세 번째 공습한 10월 28일,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은 ‘한국도 가자지구 집단학살 공모 국가’라고 지명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간 8번째 많은 무기와 군수 장비를 이스라엘에 수출한 나라입니다. 한국 정부는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합병) 굴착기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의 터전을 파괴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는 것을 침묵했습니다. 그 굴착기가 이스라엘의 지상전에 투입되어 가자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이스라엘 집단학살을 방관하며 윤석열의 행보를 추종 중입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서남아시아 국가들의 전쟁과 분쟁을 활용해서 K-방산, MASGA 등 전쟁 무기 수출과 투자 확대로 군수 독점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정치·학술 분야에서도 이스라엘 집단학살에 연루된 자들을 단 한 번도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은 집단학살 공모 국가로 지명되기에 충분합니다. 참으로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국제 사회에서 지탄받는 한국 대기업은 또 있습니다. 바로 울산에 본사를 둔 한국석유공사입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집단 학살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역 유전 탐사권 12개를 팔았습니다. 10월 말 한국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영국 다나페트롤리엄은 이스라엘에 204억 원의 탐사권을 샀습니다. 다나페트롤리엄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6개 지역 탐사권을 받았는데, 그곳의 약 60%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입니다. 다나페트롤리엄이 지급한 204억 원과 탐사권 판매금은 고스란히 집단학살에 쓰였을 게 분명합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전 세계 17개 해양을 탐사하며 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기후 위기 주범이기도 합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해역의 가스와 원유를 수탈하는 집단학살 공범 기업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자원을 수탈하며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한국석유공사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이에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자유, 해방을 원하는 한국의 노동·사회·시민 단체들은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의 가자지구 자원 수탈과 집단학살 공모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으로 우리의 규탄과 실천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11월 26일(수) 오후 4시 한국석유공사 앞에서 이스라엘 집단학살 공모 중단, 다나페트롤리엄의 투자 철회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개최해 반제반전 국제연대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울산지역 정치·사회·시민 단체들의 참여와 언론 노동자의 많은 관심과 정론 취재를 당부드립니다. 하나,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지구에서 전면 철수하라! 하나, 미국·이탈리아·독일·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집단학살 공모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부동산투기, 관세와 투자 강요 등 모든 약탈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재명 정부는 정치·군사·경제·학술 등 이스라엘과의 모든 협력과 교류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HD현대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터전을 파괴하는 모든 장비 수출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이재명 정부, 한국석유공사·다나페트롤리엄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자원 수탈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팔레스타인의 평화·자유·해방을 향한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를 중단없이 실현하자! 2025년 11일 5일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팔레스타인평화를위한울산긴급행동/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학생공동행동2025-11-07 | 조회 11,370 -
[기고] 이주민 혐오를 넘어, 한국사회 내부의 국경을 넘어거리에서 만나는 반갑지 않은 극우집회 사진=연합뉴스 금은방, 청계천, 관광객들이 밀집된 번화가...명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요즘 명동에 가면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 새로 보인다. 바로 활발한 집회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을 만나는 일은 동지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집회가 요즘 자주 보인다. 근래 명동을 포함한 서울 각지에서 ‘자유대학’ 등 극우 유투버들이 주축이 되어 혐중시위를 열고 있다. 2022년 20건, 2023년 15건, 2024년 13건 수준에서, 2025년은 10월 기준 65건으로 그 빈도수가 폭증하였다. 200여 명의 참가 인원이 행진까지 하는 극우집회 현장에서는 육성이나 피켓을 통한 혐오 표현과 비속어가 난무한다. 이주민과 외국인의 인권을 위협하는 명백한 혐오발언 행위다. 지난 겨울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와 이어진 탄핵 국면은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광장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지만, 극우 세력이 거리에 나서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당시 광화문 등지에서 “Yoon Again” 구호를 외치던 ‘자유대학’이나 ‘민초결사대’ 등의 단체는 이제 명동과 대림동에 가서 “China Out”, “CCP(Chinese Communist Party, 중국공산당) Out“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히틀러의 배후중상설과 닮은 극우의 부정선거 음모론 윤석열 내란옹호 집회와 혐중 집회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요구를 내건 두 집회에 “Stop the Steal”(직역하면 “도둑질을 멈춰라”, 선거 때 표를 ‘도둑질’했다는 의미로, 부정선거론을 믿는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외치는 구호다.) 구호가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에 불복하자 미국 극우 세력이 외치던 구호를 한국 극우 세력이 수입한 것이다. 극우 세력의 세계관에서 ‘좌파’ 정당의 선거 승리는 같은 ‘좌파’인 중국 공산당의 개입 아래 이루어진 부정선거 덕이라는 논리다. 집회 현장에는 부정선거뿐 아니라 ‘자국민 역차별’을 이유로 집회에 참가했다고 밝히는 청년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사회 곳곳에 침투해 사회적 특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들의 세계관은 탄핵당한 전 대통령이 노조를 겨냥하고 쓴 ‘카르텔’ 등의 표현, 그리고 한 세기 전 독일에서 파시즘 정권을 탄생시킨 배후중상설 등의 음모론과 놀랍도록 겹쳐 보인다. 배후중상설이란 당시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대공황 속 경제불황이 금융업 등으로 ‘기득권’을 형성한 유대인과, 반국가적인 사회주의자 등 좌파의 음모로 야기된 문제라는 공상적인 믿음이다. 100년 전 독일의 배후중상설부터 오늘날 한국의 부정선거론까지, 항상 왜곡과 거짓에 기반을 둔 극우 세력의 선전선동은 사회 내부에 표적을 만들어 혐오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정세 인식을 좀먹는다. 이주민 혐오는 체제가 낳은 구조적 문제 이주민 혐오는 길거리 외에도 사회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이주 배경을 지닌 김 모 일병이 병영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렸다. 김 모 일병은 평소 부대원들로부터 중국인 비하 표현으로 불리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어 계속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혐중시위와 김 모 일병 사건이 단지 소수의 유별난 개인이 이주민을 대상으로 위협하거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탈행위일까? 인권감수성과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함양하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혐오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일까? 이주민 혐오는 몇몇 부도덕한 개인들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이주민 혐오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깊숙이 심어진 구조적 문제이다. 이는 노동 현장에서 이주노동자가 겪는 위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나주 벽돌 공장에서 있었던 ‘지게차 가혹행위’ 사건, 폭염 속 작업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화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등 최근에도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중간관리자의 폭언 및 갑질, 온열질환 산재 인정 및 작업중지권, 불법파견 및 산업현장 안전 미비 등 이주노동자가 겪는 위험은 정주민 노동자도 겪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이중삼중의 구조적 억압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겪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주민 노동자가 겪는 노동 문제와 동일한 구조에서 비롯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주노동의 현실을 반영하는 특수성도 지니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2024)와 이를 다룬 기사 「기록되지 않는 죽음, 이주노동자 산재···93.6%는 원인불명」(뉴스민)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3,340명이다. 이중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망자는 137명, 산재 사망을 신청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사망자 32명, 산재가 아닌 이유로 사망한 사망자가 45명이었다. 3,340명의 전체 사망자 중 214명만 사인이 파악되었다. 즉 2022년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93.6%는 원인조차 불명인 상황이다. 또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는 업무상 사고 사망자 비율이 업무상 질병 사망자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데, 해당 보고서의 대표 저자 김승섭 교수는 이 통계 또한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업무상 질병 사망을 추적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추정이다. 질병 사망은 사고 사망보다 산재 사망으로 인정받기 어려워 이주노동자에게 그 장벽이 더 높게 작용할 것이며, 질병을 얻고 본국으로 돌아가 사망하는 경우처럼 사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업무상 질병 사망자 수도 많을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 해석에도 의구심을 표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이 개선되기보다는 더 위험한 노동이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고 그들의 사망이 지워지고 있기 때문에 통계로 봤을 때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이 제대로 파악되지도, 기록으로 남겨지지도 않는 현실이 이주노동 문제의 구조성과 특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APEC 위해 이주노동자를 ‘치워버린’ 이재명 정부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국가 폭력에 의해 사망하였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대대적인 2차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출입국사무소에 의해 10월 28일 오후 성서공단 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기습적으로 단속이 이뤄졌다. 단속 과정을 피해 공장 시설에 몸을 숨긴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29일 성명을 발표해 정부합동단속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국제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이주민 혐오의 제도적 반영이자 재생산이다. 정부의 이주민 혐오가 또 다시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참극을 불러왔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노동자 단속 사건에는 열을 올리던 이재명 정부가, 미국에서 국빈이 오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국가 폭력을 행사했다. 이렇듯 국가는 고용허가제 같은 구조적인 방법으로도, 이주노동자 단속이라는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으로도 이주노동자를 억압한다. 소수자 혐오를 먹고 자라는 극우세력 자본주의는 억눌린 분노를 조작한다. 지배계급과 체제를 향해야 할 민중의 분노가 표적이 되기 쉬운 소수자를 향할 때, 혐오가 발생한다. 자본주의는 그 혐오를 동력 삼아 구조적 모순과 억압을 유지하고 강화하고자 한다. 마치 100년 전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던 때 거리에서 공포정치를 행하던 돌격대처럼 극우세력은 이주민을 포함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자국민보호연대’ 같이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단체의 출현은 한국식 파시즘의 출현이라는 비극의 예고편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는 고용허가제나 산업재해 비가시화와 같은 구조적 억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국가폭력을 동원해 억압을 강화한다. 극우에 맞서, 이주노동자와 단결하자 혐중시위 등 이주민 혐오와 결부해 준동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선동과, 제도적으로 뿌리 박혀 있는 구조적 모순을 일시에 해소하기에는 그 길이 요원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에 있었던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와 9월 21일에 있었던 ‘2025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는 그 길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양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이 주체로 구성되어 발언하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스스로의 요구를 가시화하는 모습, 그리고 이에 연대하는 정주노동자들이 대오를 이뤄 거리로 나서는 모습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명확한 방향이다. 파멸의 길을 걸을 것인지 다가올 재난을 막고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현실을 바꿔낼지는 노동자민중의 손에 달려 있다. 물리적 국경을 넘어 노동자 국제주의를 달성하는 일이 중요하듯, 한국 사회 내부의 국경을 넘는 연대도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참고기사] “혐중 아니라며 “중국으로 가!”…SNS 소문이 갈등으로”, SBS 뉴스 “명동 일대 제한·금지 집회 40%가 ‘혐중’…올해만 5배 늘어”, 한겨레 “군대서, 공장서, 거리서…폭력으로 진화한 이주민 혐오”, 한겨레 “오늘도 명동 인근서 ‘혐중 시위’…200명 행진 신고”, 연합뉴스 “트럼프와 윤석열의 ‘스톱 더 스틸’”, 한겨레 “병영 내 괴롭힘으로 투신한 일병…육군 ”엄중히 인식, 엄정 처리할 것“”, 연합뉴스 “아리셀 참사의 교훈…산재 키우고 은폐시킨 근본 원인은 ‘불법파견’”, 한겨레 “기록되지 않는 죽음, 이주노동자 산재···93.6%는 원인불명”, 뉴스민 “성서공단 단속 피하던 20대 이주노동자 사망···민주노총 “폭력적 합동단속 멈춰라””, 뉴스민 “[성명]이재명 정부는 정부합동단속 즉각 중단하라!”, 민주노총 대구본부2025-11-06 | 조회 8,734 -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5[편집자 주] 202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히메나 베르가라의 이 글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계급적·국제주의적 전략을 제시한다. 본 번역은 글의 분량상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전편 읽기]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1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2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3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4 2024년 10월 5일 집단학살 1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집중집회 연속혁명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 미국 사회주의해방당(PSL)과의 토론을 위한 노트 팔레스타인 해방의 성격, 역학관계, 그리고 주체에 대한 논쟁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과 민족해방운동 사이에서 벌어진 전략적 논의의 일부였다. 이는 동시에 트로츠키주의와 스탈린주의 간 논쟁의 중심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세대가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전 세계 피착취·피억압 민중의 해방투쟁을 재검토하는 지금,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사실상 지도하는 인사들이 제시하는 일국 수준의 정치노선은,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그들의 국제전략에 의해 규정되며, 또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기초한다. 사회주의해방당(PSL)은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내 주요 조직 중 하나다. 이 조직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직후부터 즉각 운동을 조직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이유로 탄압과 박해를 받아왔다. PSL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대한 정치적 방침은 전국적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해 휴전을 요구하고,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에 이스라엘에 대한 외교적 조치를 촉구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데 집중되어왔다. 국제적으로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결의안을 활용해 미국에 맞서 팔레스타인에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압박하는 데 의존해왔다. 이는 식민지 및 반식민지 국가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에 유리한 정책을 관철하는 데 있어 이러한 기구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궁극적으로 PSL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일반적 관념과 부합한다. PSL의 조 타셰(Joe Tache)는 “팔레스타인 운동이 민족해방 투쟁인 이유 Why the Palestine Movement is a Struggle for National Liberation”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러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잔혹행위는 유례없이 끔찍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식민 관계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민족이 민족적 억압을 받았다. 어떤 경우에는 민족적 억압이 한 국가의 국경 안에서 나타난다. 미국 내 흑인과 원주민에 대한 오랜 억압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경우 식민 세력이 식민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도 식민지를 식민 지배국과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취급하는 사례도 있다. 식민주의 시대의 민족적 억압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주로 이런 형태를 취했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역학관계가 혼재되어 있다. 이스라엘 국경 내에 거주하는 16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보유했음에도 시온주의 정권에 의해 체계적으로 억압받는다.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등 점령지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자(이스라엘 국경 내 팔레스타인인)의 경우, 이스라엘이 동등한 국적과 지위를 부정함으로써 제도화된 차별과 배제를 겪는 한편,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토지 강탈, 주택 철거, 이동 제한, 대규모 체포, 정치적 반대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을 포함한 다양한 억압에 시달린다.” 위 문단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물론 이스라엘은 타셰가 묘사한 대로 내부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가진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이며, 일란 파페 등 다른 역사학자들도 이를 상세히 기술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의 예외성은 단지 '내부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타셰는 이스라엘의 이중적 성격, 즉 이스라엘은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이자 동시에 제국주의의 거점(enclave)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누락하고 있다. 2023년 11월 4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사진 : Celal Gunes / Anadolu via Getty Images) 이전 세기, 특히 19세기 식민열강과 달리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주도한 세계질서 재편 시도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은 아랍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지역적 군사동맹을 설립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아랍 지역의 자원을 차지하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아랍 지역에서 계급투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과 사실상 공생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 공생관계는 군사·정보·기술자원 공유에 기반할 뿐만 아니라, 미국 양당체제의 윤곽, 그리고 공공·민간 제국주의 기관들의 윤곽 자체를 형성해왔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에 관한 타셰의 글과 사회주의해방당(PSL)의 다른 글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에 있어 바이든과 미국 제국주의의 역할을 올바르게 규탄한다. 이들은 10월 7일 성명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미국의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모든 팔레스타인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의 예외적 성격을 제국주의적 거점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의 국제적 차원을 지우고 있다. 이는 PSL이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그리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남아프리카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아파르트헤이트는 무너질 것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타셰는 남아공과 팔레스타인을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비유한다. 비록 타셰가 이 두 사례 사이의 중요한 유사점을 지적하지만, 이 두 체제는 각 투쟁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 비교는 PSL이 민족해방과 제국주의 자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경우, 타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즉 쇠퇴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와는 달리, 이스라엘이라는 인공적 국가를 창조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목적이 중동 지역에서 부상하던 미국 제국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러한 전략적 목표는 제국주의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아랍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억제하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치명적인 군사력을 지역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 측면을 간과하면, 이스라엘을 창조한 바로 그 체제를 문제 삼지 않고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타셰는 아래와 같이 썼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유지하는 핵심 세력이다. 따라서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특별한 책임이 있다. 이 운동의 역할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이념이나 전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민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 자신의 사회를 어떻게 조직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5개월간의 대규모 시위, 가장 최근에는 미 공군 병사 아론 부시넬의 충격적인 희생이 보여주었듯이, 시온주의자들의 선전과 미국 정부의 확고한 이스라엘 지지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강조는 필자) PSL의 운동에 대한 관점은 바이든 행정부의 네타냐후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전략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하는 동시에, ‘언커미티드(Uncommitted)[1] 캠페인과 같은 움직임을 통해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재선을 위협해 바이든에게 휴전을 명령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다. 궁극적으로 PSL은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본질과 시온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전략적으로 오해하고, 따라서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거대 양당제에 압력을 가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식민주의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도록 보다 관대한 정책을 채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온주의 식민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의존하며, 동시에 미국 제국주의 역시 시온주의 식민주의에 의존한다. 이는 두 국가가 이해관계 충돌을 전혀 겪지 않거나, 바이든이 네타냐후와 대립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는, 두 체제의 구조적 관계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미국 지배체제는 이스라엘이 미국을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전쟁에 끌어들이고, 그 전쟁 과정에서 이미 흔들리는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을 이스라엘 자신이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어떠한 의미에서, 미국의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실존적이다. 이 반동적인 미국-이스라엘 동맹을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부르주아적 관점의 국제주의 전략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관점을 발전시켜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제국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공동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은 아랍 노동자계급과 농민, 도시빈민 등 중동 전역의 피억압 민중이다. 2025년 4월 20일 모로코 탕헤르항에 이스라엘행으로 의심되는 전투기 부품을 실은 선박 입항에 항의하며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이 시위를 벌였다. (사진 : AFP)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 지역 민중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제국주의의 경제적·군사적 공세가 아랍 민중에게 안긴 모든 불만, 폭력, 절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에는 그들의 정부가 행한 억압 또한 포함된다. 자본주의적 ’민족해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랍 국가들은 그들이 아무리 제국주의에 부분적으로 반대하더라도 미국 패권의 균열을 피하고자 대중을 억눌러 왔다. 무엇보다 아랍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계획을 도입하며, 자본주의적 사회와 생산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 했다.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단계로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단순히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투쟁’으로 축소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PSL에게 있어서 이 ‘민족’의 계급적 성격은 불분명하며, 그들이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를 명확히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가 이스라엘 국가와 공존할 수 있을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타셰는 가이아나 출신 역사학자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를 인용하며 아래와 같이 썼다. “민족적 억압은 한 민족을 그들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배제한다. ‘역사로부터의 배제는 식민주의가 가져온 권력 상실의 논리적 귀결이다.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력은 역사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보증이다. 식민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가장 수동적인 의미를 제외하면, 역사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팔레스타인 사례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군홧발 아래 있는 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사회적·경제적 발전 문제를 온전히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주택, 병원이 언제든 폭격되거나 파괴될 위협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반시설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적·문화적 발전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일상적인 이동과 기본적인 권리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정치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팔레스타인 경제의 거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이 개발과정을 시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PSL의 구성원들은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내 여러 조직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지도부와 기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PSL 자신은 팔레스타인 해방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마치 역사적 법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먼저 하나의 국민국가로 스스로를 구성해야 하며, 그 이후 남아공의 탈아파르트헤이트 시기처럼 경제적·문화적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접근의 한계는 남아공의 사례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다. 그 나라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멍에 아래 고통받고 있으며, 흑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극단적 착취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실존하는 아랍 지도부의 정치적 강령, 입장, 전략의 맥락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경우, 이들은 명시적으로 투쟁을 벌이지만, (1967년에 설정된 국경을 암묵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존재 또한 사실상 인정하면서) 이란식 근본주의 국가, 즉 종교적 권위주의 체제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체제는 결국 자본주의적 계급 구조 위에 세워진 종교적 독재 정권일 뿐이다. 즉, PSL과 민족해방운동 지도부 모두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의 존재론적 의미와 모순된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유일한 해결책은, 두 국가 체제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본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PSL은 명시적으로 두 국가 해법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레스타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처럼 탈식민적 자본주의 국가를 세워 지역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정치적 지향은 앞서 설명한 스탈린주의 정책과 중요한 유사점을 가진다. 스탈린주의는 1920년대 말 공산당들로 하여금 ‘반제국주의 공동전선’(anti-imperialist united front) 전술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르주아 또는 소부르주아 민족해방운동 지도부와의 정치적, 때로는 군사적 협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한 의미에서 PSL의 반제국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비판적으로 맞서는 한 그들의 계급적 성격에 상관없이 어떤 지도부나 국가라도 지지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국가들이 자국의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민족해방 투쟁을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우리가 제국주의를 단순한 대외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를 철저히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 뿐이다. 트로츠키주의 분파로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하마스를 포함한 그들의 저항운동이 식민점령에 맞서 군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 조직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방법, 정치, 전략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PSL이 민족주의 지도부에 대해 무비판적인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태도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오로지 민족적 투쟁으로 이해하는 그들의 관점과 일관성을 이룬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시온주의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불명확하게 남긴 채) 팔레스타인인들은 독립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으며 지역적 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고도 점진적인 자본주의 발전의 고유한 리듬을 따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할 세력이 (근본주의와 세속주의를 막론하고) 아랍 세계의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곧 ‘억압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시 말해, 미국 내 운동의 역할은 이러한 투쟁의 결과를 지도하려 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 즉 그들이 독립적인 역사적 발전 과정을 되찾고 집단적으로 미래를 형성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진정한 국제주의는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서로 존중할 때만 형성될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에 사는 노동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지시하려 든다면, 그것은 그 존중을 훼손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자신을 ‘세계의 경찰’로 자처하며, 미국 노동자들은 피억압 민족의 일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선전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직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에만 봉사하며, 우리의 운동을 해친다.” 이러한 고찰들에서 ‘반제국주의’나 ‘노동자계급’과 같은 개념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및 지역의 노동자, 무산 농민 대중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들 대중에게는 시온주의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정치와 동시에, 아랍 국가들이나 어떤 부르주아 국가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즉, 중동 전역의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정부들에 맞서 연대와 동맹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조직이 아니다. 그들은 레바논, 카타르, 이란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정치적·군사적·경제적으로 의존한다. 2025년 9월 2일 이집트에서 열린 다국적 군사훈련 브라이트스타25에 참여한 미국, 이집트, 사우디라아라비아 군대. 군사훈련은 미국과 이집트가 공동 주관했다. 이런 유형의 ‘반제국주의’, 즉 계급적 관점이 아닌 ‘국가적’ 관점에서 기초한 반제국주의는 현 세계질서에 대한 PSL의 국제적 전망의 일부다. PSL에게 있어 중국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으로 비춰진다. 그들에게 중국은 ‘진보적인 대안’이다. 이러한 관점은 PSL이 중국공산당을 평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중국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China is not our enemy)’라는 글에서 중국공산당의 최근 당대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실제로,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다룬 사안들은 중국 인민의 복지에 깊이 관심을 가지며,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려는 집권당의 진지한 의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작업은 미국 상원 회의장이나 민주당-공화당 양당의 전국위원회 회의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진지함과 성실함으로 수행되었다.” 그러나 PSL은 두 가지 사실을 완전히 누락한다. 첫째, 중국 사회는 오늘날 극도로 위계화된 계급 사회로 변모했으며, 사치스러운 부르주아지와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인종적 억압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탄압을 당하고 있는 거대한 프롤레타리아층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국제적 무대에서 중국은 점점 더 제국주의적 특성을 갖춰나가고 있으며, 반(半)식민지 세계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또한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의 현실을 무시한다. 중국의 노동자들과 청년들은 공장과 사회 전반에서 더 나은 생활조건을 요구하며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맞서 싸워 왔다. PSL이 중국을 미국 지배의 ‘차악(lesser evil)’ 혹은 ‘대안’으로 여기는 태도는, 그들의 중국공산당의 강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 속에서도 드러났다. 이 정책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계급투쟁을 촉발했다. 마찬가지로, PSL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평화 협상’ 노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NATO에 대해 올바르게 비판하면서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서는 ‘반미 블록’의 일원으로서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하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국제 노동자계급은 쇠퇴하는 미국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성격과 야망을 지닌 중국 국가 사이의 충돌 속에서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다. 우리에게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국주의적·호전적 경향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해방을 포함한 모든 피억압 민중의 자결권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이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자브라 니콜라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연속혁명의 관점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의 계급적 역학을 요약한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적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은 지역 내 모든 지배계급과 정권에 맞선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들 계급은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이며, 제국주의는 그들을 통해 지역을 지배한다. 그들의 정권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정치적 형태이다. 반제국주의 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은 오직 빈농의 지지를 받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으로서, 지주, 종교적 매판 계급, 신흥 부르주아지를 상대로 아랍 세계에서 시온주의에 맞서야만 가능하다. 아랍 동부[2]에서의 연속혁명은 해당 지역 전체를 기반으로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이 지역의 불균등 발전으로 인해, 혁명적 상황 혹은 준혁명적 상황은 서로 다른 시점과 장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투쟁은 반드시 전체 아랍 혁명의 일부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전 지역 대중투쟁이 직접적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전략은 대중의 요구를 지역 전체의 문제로 통합해 ‘권력’의 문제를 아랍 동부 전체에서 제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오직 이러한 방식으로만, 특정 시점에서 가장 진전된 투쟁들을 아랍 국가들의 군대, 시온주의 국가의 군대, 그리고 잠재적인 제국주의 개입으로부터 가능한 최대로 지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만, 어떤 한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이 반동 세력들에 의해 분쇄되지 않고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다.” PSL이 제시하는 미래의 반제국주의 투쟁 전략은 매우 다른 그림을 그린다. 벤 베커(Ben Becker)는 PSL이 “노동자계급 속에서 반제국주의 정치의 토대를 세우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국가들)와의 연대를 지향하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싸운다”고 썼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반제국주의 정치와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가 어떤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PSL과 큰 차이를 가진다. 우리에게 있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은, 그 국내적·지역적 표현이건, 국제적 무대에서건 (특히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 내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서) 노동자계급, 빈민, 학생, 피억압 민중의 독립적 행동이 필요하다. 국내적·지역적 수준에서, 이러한 투쟁은 시온주의 국가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든 정당한 요구, 특히 자결권 요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는 곧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인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다. 이 투쟁, 즉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를 향한 투쟁은 오직 아랍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팔레스타인 대중이 주체가 되어, 그 투쟁을 주도하고 물질적·정치적 지원을 제공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랍 프롤레타리아가 자국 정부에 맞서 봉기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하며, 이집트 같은 국가들에서 그 요구는 즉각적인 국경 개방이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현재 젊은 세대와 노동자계급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거대 양당제가 무기, 기술,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적 공격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와 벨기에의 노동자들이 무기 선적을 막았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미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거리에 나선 수십만의 대중들, 대학의 이스라엘 투자 철회를 요구하며 싸우는 대학생들의 정신을 받아 미국 노동운동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가자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실물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무기 수송을 차단하고, 전쟁 물자 생산을 거부하며, 제국주의 전쟁기구가 학살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집단학살을 멈추고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맞서 실질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사회적 세력이다. 지역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특히 미국에서 그러하다. 또한 국제 노동자계급은 피억압 민중, 농민, 도시빈민, 청년과의 동맹을 통해 시온주의 국가에 맞설 수 있다. 이러한 단결을 통해 단일하고, 세속적이며, 대중의 자기조직화에 기반한 다민족 국가를 건설할 힘을 가질 수 있다. 그 국가는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해방된 사회주의 팔레스타인이다. 그곳에서는 아랍인, 유대인, 그리고 중동의 문화적 다양성을 구성하는 모든 민족·종교 집단이 시오니즘과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투쟁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은 국제주의적 지지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그 구체적 형태는, 젠더·인종·종교적 억압의 토대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모든 토대를 허무는 사회 조직체제 안에서 지역 간 경제적·문화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중동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다. 2025년 9월 말부터 이어지는 모로코 반정부 시위에 팔레스타인 연대 상징인 쿠피예를 두르고 참여한 시위자.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은 각국 민중의 자국 지배체제를 향한 분노와 연결되고 있다 (사진 : BBC)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역자주) ‘지지후보 없음’, 2024년 미국 대선 및 민주당 당내 경선 진행 과정에서 아랍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친이스라엘적 행보를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말고 '지지 후보 없음'에 기표하자는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2] (역자주) 마그레브(해가 지는 땅)의 반의어로써 마슈리크(해가 뜨는 땅). 이라크, 레반트, 이집트, 수단, 아라비아반도에 이르는 아랍 동부 지역을 지칭한다.2025-10-19 | 조회 6,880 -
이탈리아 항만노동자들이 쏘아올린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 -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저지투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지속해 온 집단학살은 전 세계를 끝없는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2년 동안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가 저질러 온 전쟁범죄는 1948년 이후 77년째 계속되는 불법점령과 강탈의 역사 속에서도 차원을 달리하는 잔인무도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지난 2년 동안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수도 없이 열렸다. 많은 나라에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러 나라의 대학생들이 캠퍼스 점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만으로는 이스라엘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군사적·경제적·정치적으로 옹호하는 현실도 바꿀 수 없었다. 유엔도 무기력했다. 여러 차례의 휴전 요구에 덧붙여 2024년 9월 18일에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불법점령을 1년 이내에 중단하라는 결의까지 유엔총회에서 통과됐지만, 이스라엘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유엔총회 결의와 상관없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스라엘 지원이 지속되고, 또한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강제력 있는 결의는 미국이 거부권을 거듭 행사하며 차단하는 까닭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전쟁범죄에 대한 세계 여론이 워낙 악화되면서 각국 정부의 대응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기는 했다. 이를테면 9월 21일에는 영국, 캐나다, 호주, 포르투갈이, 9월 22일에는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팔레스타인을 주권국가로 승인했다. 이로써 유엔에 가입한 193개 국가 가운데 154개국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게 됐다.[1]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의 존재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9월 26일 유엔 연설에서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팔레스타인을 불법점령하고 강탈하며 집단학살하는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를 그대로 놔둔 채 외교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만을 말하는 것, 즉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은 현실에서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공허한 해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2] 지금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멈춰 세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계 각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연계와 지원을 차단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철저히 고립·약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각국 정부에 강제하고 나아가 실력으로 관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은 바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계 각국의 노동자운동 전반이 오랜 침체와 후퇴에 시달려 온 까닭에 지난 2년 동안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지 못해 왔다. 그런데 최근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하고 중단시키기 위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항만노동자들이 그 진원지가 됐다. ‘수무드 선단을 공격한다면 유럽 전체를 봉쇄하겠다’ - 제노바 항만노동자들이 불붙인 9/22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 8월 31일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해안봉쇄를 뚫고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글로벌 수무드 선단’ 출항식이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나라에서 열렸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은 지난 6월 마들린 호가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나포되면서 이루지 못한 과제를 더 거대한 규모에서 실현하기 위해 추진된 국제 프로젝트였다.[3] 수무드 선단의 주된 출발지는 지중해 반대편에 자리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44개국에서 온 350여 명이 20척의 배를 타고 (날씨 때문에 다음날) 출항했다. 같은 날 이탈리아 제노바에서도 4척의 배가 출항했다.[4] 수무드 선단의 출항을 보기 위해 제노바 항구에 4만 명이 집결한 자리에서 풀뿌리 노동조합 결집체인 USB에 소속된 제노바 항만노동자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수무드 선단 동지들과 연락이 20분이라도 끊기면 유럽 전체를 봉쇄하겠다. 제노바 항구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컨테이너가 매년 1만 3천에서 1만 4천 개씩 선적되는데, 수무드 선단이 가자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못 하나도 이스라엘로 가지 못하게 막겠다."[5] 9월 8일부터 공해상을 지나는 수무드 선단에 대한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이 시작됐다. 이에 USB 소속 항만노동자들은 9월 22일 이탈리아 주요 항구를 모두 봉쇄하는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을 단행하기로 결의하고 이탈리아 전체 노동자·민중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이탈리아 멜로니 정부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고 ‘유럽의 재무장’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자체를 마비시키는 게 투쟁의 목표가 됐다. 9월 22일 ‘모든 것을 봉쇄하라’(Blocchiamo Tutto)는 슬로건 아래 제노바, 베네치아, 트리에스테, 리보르노, 라벤나, 살레르노, 라스페치아 등 이탈리아의 모든 주요 항구가 봉쇄됐다.[6] 대중교통의 90%, 철도의 50%가 마비됐다. 교사들도 대거 파업에 동참해 일부 지역에선 파업참가자가 70%에 이르렀다. 총파업과 함께, 65개 도시에서 50만 명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벌였다. USB는 조합원 25만에 불과한 작은 노총이지만, 520만 조합원을 가진 이탈리아 최대 노총 CGIL의 평조합원 상당수가 총파업에 동참한 까닭이었다.[7] 학생들도 대거 동참했다. 이날 로마에서는 10만 명이 거리행진을 갖고 테르미니 기차역을 봉쇄했다. 동부 외곽순환도로를 점거해 모든 도시교통을 마비시켰다. 라사피엔자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스라엘 대학과의 교류협력 중단을 요구하며 점거투쟁에 돌입했다. 밀라노에서는 5만 명의 시위대가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점거하려고 하면서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M4 지하철노선이 한동안 중단됐다. 나폴리에서는 1만 명이 중앙 기차역을 봉쇄했다. 시위대가 출입통제선을 돌파하여 승강장까지 점거했다. 토리노에서는 1만 명이 기차역과 철로를 점거했다.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사진을 불태웠다. 항구가 봉쇄된 제노바에서는 2만 명이 팔레스타인 깃발 수백 개를 앞세우고 항구부터 도심까지 행진했다. 피렌체에서는 1만 명이 고속도로 출입구를 봉쇄한 뒤 항공군수업체 레오나르도 본사 앞으로 행진했다. 볼로냐에서는 1만 명이 고속도로 입구와 시내 중심가 도로를 점거한 뒤 미국 영사관 앞으로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의 강의를 중단시켰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의 불길 이탈리아 노동자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패배와 후퇴만을 거듭해 왔고, 패배적인 타협에 갇히면서 자신의 힘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항만노동자들이 파업과 계급투쟁의 전통을 되살려내자 그 파장이 이탈리아와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9월 22일 이후 매일같이 이탈리아 전역 수십 개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이탈리아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을 규탄하는 집회, 도로봉쇄, 대학점거 등이 계속됐다. 군비증강 반대, 긴축 반대도 중요한 이슈로 제기됐다. 9월 23일 밤 10여 척의 수무드 선단을 상대로 이스라엘 드론이 섬광탄 공격을 가했다. 24일 USB는 “수무드 선단 공격에 맞서 26일부터 전국 100개 광장에 대한 무기한 점거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했다. CGIL도 “수무드 선단에 대한 추가 공격이 발생할 경우 총파업 단행”을 선언했다. 멜로니 정부조차 수무드 선단에 승선 중인 이탈리아 시민을 보호하겠다며 구축함 파견을 지시했다.[8] 9월 22일 이탈리아 항만노동자들이 벌인 총파업의 충격파는 지중해를 접한 다른 나라 항만노동자들에게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9월 27일 제노바 항구에서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 등 지중해를 둘러싼 각국의 항만노동자들이 모여 국제적인 공동파업을 추진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집단학살과 전쟁에 반대하고, 긴축을 강요하는 유럽 재무장에 반대한다”, “다가오는 유럽의 전쟁을 멈춰 세우기 위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 공동파업을 추진하자는 결의안을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통과시켰다. 대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모로코와 튀르키예 항만노동자들도 결의안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국제 공동파업을 벌일 날짜는 각 국가 노조별로 결의안에 대한 승인절차를 거친 뒤에 정하기로 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이 국제 공동파업으로 추진되기에 이른 것이다. 국제회의 이후 제노바 항구에서 5만 명이 결집한 시위가 열렸다. 항만노동자들은 ‘이스라엘로 가는 어떤 것도 선적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항만 상황을 모니터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 돌아가 도크를 봉쇄하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외쳤다. “항만노동자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무기운송을 차단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한 18세 학생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계급이 경제를 마비시킬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나는 지금 고등학생이지만 미래의 노동자로서 이것을 확실하게 배웠다.” 이날 제노바 항구 시위에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많았다. 주변 아파트 창가에서는 시위를 지지하며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 왔고, 발코니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내건 사람들도 있었다. 언론은 ‘27일 밤 제노바 항구 전체가 팔레스타인 깃발 색깔로 뒤덮였다’고 묘사했다. <9월 27일 제노바 항구 앞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시위> 한편 스페인 노동총동맹(CGT) 소속 마드리드 금속노조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제노바 항만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10월 6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1일 선언했다. 이것은 10월 15일 스페인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을 단행하자는 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많은 노조들이 15일 총파업 동참을 선언하고 있는데, 대규모 노조들 중심으로 2시간 총파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바스크 지역 노조들은 24시간 총파업을, 갈리시아, 카탈루냐, 안달루시아 등의 지역 노조들은 4시간 총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이탈리아 총파업의 파장과 연결된 또 하나의 사건은 9월 27일 독일 베를린의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였다. 그동안 독일에서는 모든 기성 정당과 언론이 이스라엘을 엄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되풀이했다. 여론조사에서는 80%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정당하지 않고 이스라엘로 가는 무기운송을 축소 또는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상황임에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하면 유럽 어느 나라보다 심하게 탄압받았다. 그러나 이날 ‘가자를 위해 함께’ 시위에 10만 명이 참여하면서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로 팔레스타인 연대행동이 전개됐다. <9월 27일 베를린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그동안 독일에서는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구호를 외치면 경찰이 ‘불법’이라며 무조건 체포했지만, 이날은 거대한 참가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던 언론들도 이날은 시위대의 목소리를 내보내며 한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날 베를린 집회가 5만 명이 모였던 6월 집회보다 훨씬 커질 수 있었던 데에는 좌파당의 입장 선회 또한 중요한 변수가 됐다. 원래 좌파당은 다른 기성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친이스라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팔레스타인 활동가를 당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 2월 총선을 전후해서 극우 부상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좌파당에 몰려든 수만 명의 청년세대 신입당원들이 지도부에게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다. 좌파당 지도부는 물가문제에만 집중하면서 팔레스타인이나 재무장 등의 이슈를 회피하려고 했지만, 아래로부터 청년세대가 가하는 압력에 밀려 결국 이번 베를린 집회를 공동 주최하게 됐다. 좌파당 지도부는 연단에 올라 쏟아지는 야유를 받은 뒤 ‘너무 오래 침묵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평조합원 교사들과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조들(교육과학노조 GEW와 공공서비스노조 ver.di)이 시위에 함께하도록 만들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도 이날 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발언했다. 한 18세 이스라엘 청년은 징집을 거부했다고 한 달 동안 독방에 갇힌 경험을 이야기하며 집단학살을 멈추기 위해 파업·봉쇄·제재를 조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스라엘 출신 작가와 바이올린 연주자도 집회의 공동 조직자에 포함됐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 나포에 항의하는 긴급 시위와 총파업 한편 10월 1일 저녁부터 3일 오전까지 글로벌 수무드 선단 42척이 모두 이스라엘 군에 의해 나포되면서 유럽과 세계 곳곳으로 투쟁이 뜨겁게 확산됐다. 1일 저녁 이탈리아에서는 수무드 선단 나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CGIL과 USB가 3일 총파업 단행을 선언했다. 로마의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긴급 집회가 열려 역과 주변 도로가 마비됐다. 지하철역도 여러 개 폐쇄됐다. 제노바에서는 항구 앞에서 밤 10시에 긴급 집회가 열렸다. 나폴리에서는 중앙기차역이 점거됐다. 토리노에서는 밤 9시 30분에 긴급 집회가 열려 기차역이 봉쇄됐다. <10월 1일 저녁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을 점거한 시위대> <10월 1일 밤 제노바 항구 앞에서 열린 긴급집회> 2일 프랑스에서는 노동조합들이 주도하는 긴축 반대 총파업과 시위가 40만 명의 참여 속에 열렸는데, 글로벌 수무드 선단 나포 소식이 전해지면서 팔레스타인 연대와 이스라엘 규탄이 특히 대학생과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핵심 이슈가 됐다. 파리 북역의 철도노동자들이 총회를 열고 역을 봉쇄했고, 집단학살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들의 본사 앞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2일 오전 아일랜드에서는 더블린의 항만노동자들이 수무드 선단 나포에 항의하며 항구 일부를 마비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최소 11명이 체포됐다. 2일 오후 터키에서는 수무드 선단 나포에 항의하며 45척의 배가 가자를 향해 새로 출발했다. 2일 오후와 저녁에 스페인, 독일, 스웨덴, 튀니지, 캐나다,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도 다양한 항의 집회와 시위가 전개됐다. 3일 이탈리아에서는 CGIL과 USB가 주도하는 총파업이 전개되어 교통과 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서비스가 마비됐다. 100개가 넘는 도시들에서 200만 명 이상이 시위에 나섰다. 로마에서만 3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10월 3일 로마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사진-AP)> 이스라엘의 가자 불법 봉쇄를 뚫고 인도적 지원물품을 직접 전달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 프로젝트에 이어 ‘천 개의 마들린’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9월 27일부터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등에서 새로운 배들이 출항했는데, 10월 4일 현재 11척이 가자 해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약탈과 전쟁·학살로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멈춰 세우기 위해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 운동으로 나아가자! 끝없이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세계 자본가계급은 약탈과 전쟁·학살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군비확장은 이미 직접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삶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앞으로 전체 인류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준다. 약탈과 전쟁·학살로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필사적으로 멈춰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전 세계 노동자·민중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저지투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 항만노동자들이 쏘아올린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이라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이곳 한국에서도 함께 열어가는 것이다. 한국은 이스라엘에 여덟 번째로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이며, 특히 한화시스템즈는 이스라엘 무기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가 생산하는 굴착기는 오랜 시간 서안지구 등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옥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한국석유공사는 가자지구 앞바다를 약탈하는 이스라엘의 가스유전 개발에 영국계 자회사를 통해 동참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이스라엘 대학들과 교류협력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한국의 노동자계급 또한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의 깃발을 치켜올리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합류해야 할 마땅한 책임이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 노동자운동의 현 상황에서는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탈리아 항만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세계 노동자투쟁의 확산은 한국에서도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또한 지난 2년 가까이 울산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공식 결의를 바탕으로 글로비스울산지회, 현중하청지회, 현대차비정규직 이수기업, 현대차 열사회 등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과 노동정치단체들의 꾸준한 참여 속에 격주 팔레스타인 연대집회를 지속해 온 것은 한국 노동자들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확산시켜 갈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전국 곳곳의 단위 현장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급 노조의 공식기구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토론을 조직하고 규탄 입장을 발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 참여하고,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선전전을 조직해 보자.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에 떨쳐나선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도 공유해 나가자. 이스라엘의 저 잔인무도한 집단학살을 멈춰 세우지 못한 2년을 맞이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노동자운동을 새롭게 결의해 보자. [후주] [1] G7 국가들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완고하게 거부해 왔지만, 이번에 영국, 캐나다, 프랑스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아직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G20 국가들 가운데 아직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은 국가는 위 4개국과 한국의 5개국만 남았다. 한편 9월 12일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으로서 ‘두 국가 해법’의 이행을 지지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압도적 다수인 142개국이 찬성했고 한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10개국만이 반대했다. 12개국은 기권했다. [2] 결국 팔레스타인의 해방은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 대신 무슬림·유대인·기독교인·무신론자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를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에 수립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익을 중동 지역에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 시온주의 국가를 극복하는 전망은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극복하는 전망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3] 스웨덴의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 7개국 12명이 승선한 마들린 호는 분유, 밀가루, 쌀, 기저귀, 의료키트, 목발 등 가자지구에 전달할 인도적 지원물품을 싣고 6월 1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출항했으나 9일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군에게 나포됨으로써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4]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나라에서 출발한 수무드 선단은 최종적으로 57개국 462명을 태운 42척의 배로 구성됐다. [5] 제노바 항만노동자들은 이전에도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맞서 싸운 역사가 있었다. 2019년에는 전쟁 중인 예멘으로 가는 무기 선적을 거부했다. 2021년에는 이스라엘로 무기를 운반한다고 의심되는 모든 선박에 대한 선적 거부를 선언했다. 2025년 6월과 8월에도 이스라엘로 향하는 군수품 선적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다. [6] ‘모든 것을 봉쇄하라’는 슬로건은 9월 10일 프랑스에서 열린 같은 이름(Bloquons Tout)의 긴축반대 시위에서 가져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파업·시위가 상호 높은 교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7] CGIL은 9월 22일 총파업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피하기 위해 19일 비슷한 요구를 내걸고 공공서비스 부문은 제외한 채 지역·부문별로 2시간에서 4시간의 총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CGIL 평조합원 상당수가 9월 22일 총파업에 동참했고, 자신의 지도부에게 수천 통의 항의 이메일을 발송하는 등 강력한 항의를 보냈다. [8] 이탈리아 구축함은 9월 30일 수무드 선단이 가자지구 해안에 근접하자 호위를 중단했다.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2025-10-05 | 조회 6,351 -
[번역] 네팔: 부패에 맞선 한 세대의 반란이 기사는 국제 사회주의 매체인 La izquierda Diario(일간좌파) 국제 편집부가 9월 9일 작성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카트만두, 2025년 9월. 최근 네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열기로 거리가 들끓고 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많은 이들이 교복 차림에 목이 쉬도록 외치며, 시내 중심가 마이티가르 만달라를 가득 메우고 의회로 행진하고 있다. 연기와 재 냄새가 평소 네팔 수도 공기를 가득 채우던 향과 향신료 냄새를 압도한다. 평화 시위로 시작된 행진은 경찰의 탄압이 시작되면서 분노의 밤으로 변했다. 수십 년간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노골적인 부패에 분노한 민중들이 역사적인 의회 건물을 포함해 주요 정당 본부들을 불태웠다. 불길은 밤을 밝히며 가구와 문서뿐만 아니라, 이미 취약한 정치 계급의 정당성마저 집어삼켰다. 그들은 민중의 고통과는 동떨어진 계급(Caste, 카스트)으로 여겨졌다. 유명한 정치 지도자들의 자택이 포위당하는 가운데, 경찰은 “더 이상은 그만!”(“Enough is enough”, “basta”)이라고 외치는 세대를 향해 최루탄, 고무탄, 심지어 실탄까지 동원해 대응했다. 그날 최소 19명이 사망했고, 이후 며칠간 이어진 시위까지 총 22명 사망했다.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병원은 포화 상태였고, 무차별 사격은 물론 심지어 병원과 가정 내에서의 경찰 폭력 사례가 보고되었다. 인플루언서, 유명인사, 심지어 ‘2022 미스 네팔 어스’까지도 이 학살과 인권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규탄했다. 그러나 공식 대응은 언제나 그랬듯 같았다: 국민에게는 총알, 정치인에게는 피난처. 폭동의 직접적 계기는 정부가 8월 말 26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차단한 결정이었다. 이는 인터넷 ‘남용’ 방지를 명분으로 했으나, 실상은 소셜미디어에서 고조되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인구의 90%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며 활발한 온라인 생활을 하는 국가에서 이는 치명적 공격이었다. 현지 규정을 준수한 틱톡만 예외로 허용되면서, 베이징(중국)과의 정치적 유착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넷에서 생활하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세대에게, 디지털 검열은 분노를 폭발시키게 한 최후의 결정타였다. 그러나 불만은 훨씬 오래전부터 쌓여왔다. 시위는 특정 정당이나 가시적인 지도자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조직된 분노의 유기적 폭발로, 이른바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에게 실업과 강제 이주, 그리고 탐욕스러운 엘리트에 의해 미래가 빼앗겼다는 확신만을 제공한 민주주의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이다. 그들의 전투 구호인 “부패에 맞서자”는 단순하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학생, 전문직 종사자, 일반 시민을 단결시키며, 내전 종식 이후 네팔을 지배해 온 기득권에게 전례 없는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힌두 왕조에서 취약한 민주주의로 현재의 좌절감이 얼마나 깊은지 이해하려면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6년까지 네팔은 세계 최후의 힌두 왕국으로, 수십 년간 모든 반대를 억압한 절대군주제가 통치했다. 군주제와 마오주의 반군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1996-2006)은 17,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며, 의회군주제 수립으로 급진적 변화의 길을 여는 듯 했다. 그러나 1990년대의 내전도, 가짜 민주주의도 부패와 족벌주의 관행을 끊어내지 못했다. 2008년 군주제가 폐지되고 네팔은 연방 민주 공화국을 선포했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시대가 시작된 듯했다. 2015년 새 헌법이 제정되고 세속 체제가 확립되며 평화와 번영, 포용의 시대가 약속되었다. 그 이후로 이 나라는 열 명 이상의 총리를 거쳤는데, 거의 모두가 자본주의 체제와 부패에 적응한 ‘공산’당 출신이었다. 권력을 분배하기는 커녕, 새 정권은 권력을 새로운 엘리트 집단—네팔 의회당, 네팔 공산당(UML), 그리고 전 마오주의자—의 지도자들에게 집중시켰다.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K.P. 샤르마 올리, 푸슈파 카말 다할 “프라찬다” 같은 동일한 인물들이 지난 17년간 권력을 번갈아 가며 장악해 왔으며, 국가가 정체되는 동안 각 정부부처와 특권을 서로 간에 분배해 왔다. “정치체제 전환”(Regime change, cambio de régimen)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결국 특정 세력들을 위한 특권 생산 공장이 되어버렸다. 체계적 부패와 사회적 심연 이 정당들이 구축한 체제는 후원과 뿌리 깊은 부패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정부와 국영 기업 직위는 능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충성하는 자들 사이에서 분배된다. 중국이나 인도로부터의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들은 비용 초과와 끝없는 지연으로 얼룩져, 정치인과 계약자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 미완성 고속도로와 유령 공항만을 남긴다. 정치 계급이 부유해지는 동안, 일반 시민들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실업과 불완전고용은 특히 젊은 층에서 만연하다. 추정치에 따르면 실업률은 20~30%에 달한다. 정규 경제는 매년 졸업하는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흡수할 능력이 없다. 수백만 네팔인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이주이다.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카타르,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인도 등에서 종종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하는 친척들이 보내는 송금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재능과 젊은 에너지의 지속적인 유출이다. 지난해만 해도, 약 74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찾아 국외로 떠났다. 현대 국가의 기둥이라 여겨지는 교육과 보건은 많은 이들에게 접근 불가능한 사치품이다. 공교육이 열악한 탓에 가족들은 질 좋은 사립교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진다. 공공 의료 서비스는 불충분하며, 의료 비상사태는 가정을 영원히 파산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현실은 정치 계급과 그 추종자들의 사치스러운 삶과 극명히 대비된다. 여기서 네포베이비(영어로 ‘nepo-baby’, 즉 '친인척 우대주의의 산물(Nepotism)'이라는 용어에서 차용)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네팔에서는 특히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명백한 능력 없이도 의회 의석, 정당 지도부 자리, 국가 계약, 대사관 직위를 물려받는 권력 정치인의 자녀들을 가리킨다. 평범한 청년이 도하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위해 이민을 가야 하는 반면, 네포베이비들은 혈통만으로 특권과 권력의 삶을 누리며, 옛 체제 못지않게 특궈적인 현대적 정치 카스트 체제를 영속화한다. 자연발생적 반란인가, 지정학적 게임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추동되고, 포섭되거나 체포될 수 있는 명확한 지도부가 없는 수평적·분산적 시위 양상은 이를 자연발생적 반란으로 보는 주된 근거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는 기존 정당과의 어떠한 연계도 공개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의 분노는 실생활에서 겪은 실망에서 비롯된 진정성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분석이 날카롭게 지적하듯, 네팔과 같은 지정학적 위치의 국가에서는 누구도 결코 완전히 확신할 수 없다. 네팔은 역사적으로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거대 이웃국가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잡아왔다. 뉴델리는 전통적으로 네팔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베이징은 신실크로드 계획 하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한편 워싱턴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자국의 이해관계권 내 국가로 간주하는 네팔의 불안정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외부 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권 교체'를 추진하기 위해 정당한 불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첩보 기관들이 그림자 속에서 시위를 조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으며, 대중의 분노는 외부 조작의 산물이라기엔 지나치게 진정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불신과 간섭 가능성은 네팔의 모든 위기에 항상 드리워진 유령이다. 올리 전 총리 자신도 “불순한 세력”이 시위를 납치했다고 비난했으며, CIA가 배후인지, 중국이 틱톡 보호를 위해 움직이는지 등 외부 간섭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유포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외국 세력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이 체제에) 신물이 난 청년들의 모습이다. 투쟁은 계속된다: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체제 탄압, 그리고 엘리트 계층의 주택과 건물에 대한 방화로 완성된 올리의 몰락은 민중의 승리라고 환호받았다. 정부는 통신망 차단 조치를 해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권력층의 부패와 경멸을 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근본적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네팔은 의존적 자본주의의 실험장으로, 민주주의는 오직 부유층을 위해 작동하며 청년과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몫만 챙기려는 기존 정당이나 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을 조직하는 길 밖에 없다. 네팔 Z세대의 반란은 본질적으로 전 세계 남반구 국가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분노가 조직화되면 검열도 총알도 이를 막을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네팔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정치 권력의 상징을 불태우는 행위는 무분별한 파괴 행위가 아니다. 실패한 정화 의식이며, 과거를 불태워 새로운 시작을 강요하려는 절박한 시도다. 네팔의 Z세대는 단순히 정권 교체(change of government, cambio de gobierno)를 넘어 체제 변화(Change of system, cambio de sistema)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은 면책 특권의 종식, 외국 여권에 의존하지 않는 미래, '네포베이비'와 부패 정치인들이란 부담 없이 조국을 건설할 기회를 요구한다. 그들의 성공 또는 실패는 네팔의 미래를 재정의할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의 이행되지 않은 약속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모든 국가에 울림을 줄 것이다.2025-09-11 | 조회 7,978 -
[번역] 미국의 현대차 공장 대규모 이민 단속은 모든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이 글은 미국의 사회주의 매체 Left voice에 2025년 9월 5일 작성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필자는 Madeleine Freeman이다. 조지아주 현대자동차의 신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약 500명의 노동자가 잔혹한 이민 단속 작전의 일환으로 체포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액 자금을 지원받는 반이민 부대(Anti-immigration foce)를 동원해 작업장을 표적으로 삼는 가운데,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은 노동자를 보호하고 대규모 추방을 막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 (사진: Mike Stewart) 9월 4일, 수백 명의 가면을 쓴 연방 요원들이 조지아주 현대자동차의 대규모 제조 단지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들이닥쳐 대규모 이민 단속과 이민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벌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국적으로 잔혹한 추방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단일 작업장 단속으로는 최대 규모인 이번 작전에서 450명 이상이 퇴근 시간에 체포됐다.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 진한 빨강 */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밑줄 제거 */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hover 시 더 진한 빨강 */ } 이 노동자들은 현재 ICE(이민세관단속국) 시설에 구금되어 가족과 단절된 상태이며 추방 위협에 직면해 있다. 공장을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법집행기관에 공장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를 무제한 허용했다. 동시에, 공장단지 내 다른 현장에서는 생산이 중단되지 않았다고 투자자들에게 확신시켰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체포된 다수는 현대자동차가 연말까지 공장 가동을 목표로 고용한 한국인 노동자들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체포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사태 수습과 지연 없는 공사 재개를 위해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했다. 연방 및 주 당국의 수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이뤄진 이번 단속속은 미국 내 외국 제조업 진출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자동차는 조지아주에 이 시설을 설립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한국이 미국 프로젝트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가로 트럼프 행정부의 압도적 관세를 피하고 15%로 인하된 관세율을 적용키로 한 협정의 일부다. 이 단속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 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현대차의) 이 사업과 향후 (유사한) 사업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건에 따라 운영되게 하려한다. 즉 미국 내 제조업 부흥 계획과 맞물려, ‘미국인’ 노동자 일자리 우선이라는 외국인 혐오적 명분 아래 미국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착취 조건을 창출하려는 의도다. 현대자동차 공장 단속은 전국 각지의 사업장에서 벌어진 다른 단속들과 동시에 진행됐다. 뉴욕 북부에서는 영양바 제과업체 공장 노동자 수십 명이 유사한 작전으로 체포됐다. 또한 연방 법원이 플로리다의 잔혹한 ‘앨리게이터 알카트라즈’ 수용소 운영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주에 또 다른 승리를 거뒀다. 이러한 직장 단속은 트럼프의 정책이 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잔혹한 공격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다. 오늘날 이주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이미 진행 중인 미국 내 모든 노동자에 대한 공격의 길을 닦고 있다. 이민 신분에 관계없이 말이다. 트럼프가 대량 추방 계획의 일환으로 사업장을 표적으로 삼는 만큼,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은 이러한 공격에 맞서는 방어의 최전선이 되어야 한다. 공격받는 노동자의 노조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우파는 이러한 작전을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미등록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좋은 의미에서) ‘단속’하는 것으로 포장하려 한다. 노동운동 내 일부 세력들은 트럼프 정부와 더 나은 조건을 협상하려는 의도로 이 허위 논리를 받아들였다. 팀스터 노조(Teamsters)의 숀 오브라이언(Sean O’Brien) 위원장처럼 이러한 공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미등록 노동자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추방당하는 동안 침묵을 지키는 식으로 말이다. 남부 지역에서 기업들은 반노조적인 ‘근로자 선택권 법(역주: 노동조합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고, 숀 페인이 이끄는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남부 지역 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앨라배마주 현대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UAW 산하 노조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노동조합이 트럼프의 공격에 맞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독보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의 외국인 혐오 정책과 그 정책이 미국 내 노동자뿐 아니라 해외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함을 의미한다. 페인 같은 노조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한 채 관세,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민족주의 프로젝트를 찬양해왔다. 미국 노동자들의 조건은 이주노동력을 제거하거나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공격함으로써 개선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노동자의 조건을 보호하고 개선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전 세계 이민자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면적 공격의 표적이 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방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사업장 단속 반대시위들의 사례—지역민과 노조원들이 그들의 지역구성원을 납치와 추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벌인 용감한 노력—를 따라, 노동조합은 집단적 힘을 모아 이러한 단속을 저지하고,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납치된 모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작업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취약해지는 곳이 아니라, 가장 강해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작업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극우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동료 노동자들과 나란히 서는 곳이 되어야 한다.2025-09-06 | 조회 7,678 -
[기고] 러시아에서 부랴트인들의 식민화: 탈식민주의 혁명과 국제주의를 향하여이 글은 8월 29일(금) 진행된 '정세집담회: 러시아 소수민족 입장에서 바라본 러-우전쟁'에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던 글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이 링크를 통해 영어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발제는 러시아 식민제국과 그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북부, 시베리아, 그리고 극동 지방의 선주민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에 초점을 두고, 제 어머니가 속한 민족인 부랴트인들을 위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투바인과 사하인으로 대표되는 시베리아 지방 튀르크인들의 경우, 제가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며 그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심도 있게 다룰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또한 몽골 민족의 식민지화를 다룰 예정이지만, 시베리아 튀르크족, 우랄족, 퉁구스족, 에스키모-알류트어족, 그리고 중국-티베트 민족이 경험한 식민화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싶습니다. 서문 부랴티야 공화국은 현재 러시아 연방의 통치하에 있으며, 바이칼 호 남쪽, 동쪽, 그리고 서쪽 약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바이칼 호 북쪽에는 이르쿠츠크 주가 있습니다. 부랴티야 공화국의 현재 수도는 울란우데입니다. 부랴티야 공화국은 면적 약 351,000 km2에 약 978,000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랴티야 공화국이 오늘 발제의 중심이 될 것이며, 이르쿠츠크 주 역시 언급될 것입니다. (러시아 내 부랴티야 공화국의 위치) (확대해서 본 부랴티야 공화국의 지도. 울란-우데를 수도로 하고 바이칼 호수 동편을 중심으로 위치해있다.) 러시아 제국 이전의 삶 부랴트인은 몽골인과 비슷하게 말이나 양과 같은 가축을 몰고 다니는 유목 생활을 했습니다. 별개로 유르트 대신 목조 주택을 짓는 등 목가적인 생활방식을 택한 부랴트인들 또한 존재했는데요, 이들은 농작물 재배가 용이한 토양을 가진 바이칼 호 서부에 정착하게 됩니다. 다만 시베리아 전역의 부랴트인들이 몽골인들처럼 사냥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은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처럼 부랴트인 역시 16세기까지 샤머니즘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에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전파됨과 함께 부랴트인 역시 티베트 불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서부 산림 지역의 부랴트인은 여전히 샤머니즘을 숭배했습니다. 부랴트인은 물물교환에도 참여했는데요, 동물성 제품을 중국의 직물과 금속으로 교환했습니다. 부랴트 사회는 칸 귀족이 다른 부랴트 계층 위에서 군림하는 칸 귀족제로 구성되었습니다. 동부 부랴트인 중에는 ‘노욘’이라고 불리는 부유한 목자들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유지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물물교환 또한 상호부조 내지는 상호주의적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3세기의 부랴트인은 칭기즈칸의 통치 하에서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부랴트인은 퉁구스인과 사모예드인에게 피해를 끼친 분쟁들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분쟁들로 인해 부랴트인이 러시아에 알려졌습니다. 러시아가 퉁구스와 사모예드인들을 약탈하기도 전에 이미 부랴트인들이 모든 걸 갈취해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의 첫 접촉, 그리고 정복 부랴트인의 존재를 알게 된 지 20년가량 후, 러시아는 부랴트인들을 정복하기로 결정합니다. 부랴트 정복의 주요 원동력은 바이칼 지역에 풍부했던 은이었습니다. 첫 공격은 1628년의 예니세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초반의 러시아군은 약탈은 하지 않았지만, 여성과 아이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이듬해, 베케토프 사령관이 부랴트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안가르 정복이 끝날 무렵, 점령된 영토의 재명명 작업이 시작했습니다. 각 지역의 이름은 ‘브라츠크’, ‘이딘츠크’, ‘이르쿠츠크’로 바뀌었습니다. 부랴트인들은 이에 대항하여 1634년 반러시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은 1641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를 계승한 대규모 항거운동이 1644년 벌어졌으나 결국 이르쿠츠크의 완전 포위로만 이어집니다. 1640년대의 부랴트인들은 자신들이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남쪽의 몽골로 이주합니다.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대다수의 부랴트인들은 (대부분 몽골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리고 동슬라브족이자 동방정교회 신도들로 구성된 '코사크'족이 러시아로부터 유입되어 대신 부라티야를 점령합니다. 러시아 차르 통치 하의 생활 러시아에 의해 도입되기 전까지 노예제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랴티야의 칸들과 노욘들은 생산력을 위해 비-귀족 계층을 착취하기 시작합니다. 부랴트인들은 코사크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러시아에 의해 중국 국경의 경비군으로 차출되었습니다. 1822년, 외국인에 대한 법령이 만들어졌습니다. 외국인들은 목축민, 유목민, 떠돌이의 세 분류로 나누어졌으며, 부랴트인들은 이 중 유목민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분류는 곧 대초원 행정지역 내에서 부랴트 선주민인 관리자가 부랴트인들을 관리하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각 대초원 행정지역은 자체적인 관할권을 가졌고, 관리직은 선출되거나 (누가 선출하는지는 명시되지 않음) 귀족제 하에서 상속되었습니다. 부랴트인들에겐 자치권이 주어졌지만, 토지에 대한 권리는 없었습니다. 영토는 오로지 러시아 제국의 소유였습니다. 이 영토는 유목민들이 사용할 수 있고 공인되지 않은 수탈로부터 보호되도록 규정되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존재하는 귀족제를 이용해 부랴트인의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종교의 문제 부랴트인들에게는 기독교와 불교, 두 가지의 종교가 강제되었습니다. 동시에 부랴트인들은 샤머니즘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서부에서는 기독교가, 남동부에서는 불교가 강요되었습니다. 반세기동안 기독교인들은 폭력적인 세레와 샤머니즘 유물을 불태우는 방식으로 부랴트인들을 개종시키고자 했습니다. 기독교 개종의 첫 시도는 실패했으나, 두번째 시도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은 부랴트어를 배우고, 학교를 건립하고, 기독교 경전을 출판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애로워 보이고자 했으나, 그들의 첫번째 시도 이후 부랴트인들은 기독교로의 강제 개종에 저항하는 의미로 대부분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부랴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져버리도록 강요당했습니다. 부랴트인들의 불교 수용의 기저에 저항심이 있음을 눈치 챈 러시아인들은 불교 수출의 주역이었던 몽골과 부랴트인들 간의 접촉을 끊으려 했습니다. 표토르 1세는 또한, 예카테리나 2세와 다르게 통치 기간동안 확고한 반불교적 개혁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부랴트인들의 러시아어 교육은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이는 몽골인들과 달리 부랴트인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부랴트인들은 글공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저항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20세기 러시아 정부는 20세기부터 부랴트인들의 문화유산과 함께 부랴트인들이 거주하던 대초원 지역의 자치권을 완전히 말소하고자 했습니다. 통치적 자치권과 함께 문화유산 일부를 보존했던 초반부와는 상반되는 행보입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부랴트인들은 민주적 자치권과 부랴트어로 수업하는 학교들의 창설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이 때문에 부랴트인들은 ‘러시아화’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부 부랴트인들은 부랴트식 이름을 유지한 반면, 서부 부랴트인들은 아이들에게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에트 혁명 러시아어에서 부랴트어로의 지역어 변경이나, 20세기의 점령지 개혁안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경향성이 부랴트인들에게 이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서 부랴트인들 일부는 러시아에서 독립한 범몽골 국가를 창설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라마 네이스 게겐을 따라 백군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부랴트인들이 대다수 적군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자 부랴트인들은 대부분 몽골과 중국으로 대피하여 이주하게 됩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스탈린주의 소비에트 연방은 서부 부랴트인과 동부 부랴트인의 부랴티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으로의 통합을 적절히 해냅니다. 이는 범몽골주의를 더더욱 강화시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7년, 부랴트인 지식인들과 정치 고위층들이 일본과의 공모 혐의를 받게 되고, 이는 6개 지역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고려인들 역시 비슷한 혐의에 시달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들을 시베리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호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러시아의 고려인 비율이 인접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낮은 이유입니다. 초기의 레닌 정부는 범몽골주의를 반대하지 않았으나, 1937년 스탈린의 탄압 하에서 소비에트 정부는 범몽골주의에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이 대응책은 반종교 운동, 집산화, 그리고 러시아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라마(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와 샤먼들이 수감되었습니다. 이들은 부랴트인들에게 문화적 성유물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외국인 법령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유목민들과 다르게 목축민들은 러시아 제국 시기의 농노와 비슷한 정도의 권리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랴트인들의 반(半)유목민으로의 재분류는 부랴트 인구의 도시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또한, 몽골어가 그러했듯, 부랴트어에 키릴식 글자가 사용되도록 강요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몽골로 이주한 부랴트인들은 이후 중국인들, 카자흐인들, 그리고 부랴트인들을 혁명의 적으로 규정한 몽골의 처이발상에 의해 탄압당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소련이 붕괴하기 전인 1990년, 부랴트인들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민족’임을 근거로 하여 소비에트 연방에 영토의 회복과 통합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옐친 정부는 부랴트인들의 높은 학력을 이유로 ‘억압받는 민족’ 지위를 얻을 수 없다고 답합니다. 부랴트인들의 과잉교육에는 일부 진실이 있긴 합니다. 몽골 문자를 문자 체계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련 치하의 부랴트인들은 학문적 성취를 얻기 위해 급히 분투했습니다. 유엔마저 부랴트인들이 받는 탄압을 인정했음에도 1994년의 현 러시아 연방은 그 탄압을 부인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고 2007년, 부랴트인들은 다시 한번 항소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언론은 뒤이어 이 항소를 비웃었습니다. 2007년에서 2010년은 자발적 입국에 대한 선전이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푸틴은 부랴트인들이 보호를 명목으로 자발적으로 러사아에 합병당한 것마냥 가장하며 역사를 다시 쓰려 했습니다. 물론, 제가 앞서 부랴트인의 식민화에 대해 서술했듯이, 이는 거짓입니다. 곧이어 학교들은 부랴트어를 ‘개들의 방언’이라 부르며 부랴트어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러시아 제국 당시부터의 자원 약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원(금속류)은 모두 모스크바에 경제적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부랴트인들은 군인으로 차출되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뇌물을 대가로 부랴트인 자신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입니다. 부랴티야 공화국은 동부 러시아와 함께 가장 군사화된 지역들 중 하나입니다. 부랴티야는 추코트카 자치구, 투바 공화국과 함께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경제 약화는 (금속류를 비롯한) 자원들이 러시아 서부로부터 경제적으로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부랴티야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최저임금 이하만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부랴티야의 경제적 불리함이 부랴티아를 금전 기반의 군사화에 취약하게 만듭니다. 우크라이나에 가장 먼저 진입한 군대는 부랴트군이었습니다. 러시아군 사망자 중 2.5%가 부랴트인이었는데, 부랴트인은 러시아 인구 중 0.35%만을 차지합니다. 즉, 100,000명 중 252명이 전사하는 것입니다. 1,3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모스크바 일대에서 1,20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100,000명 중 9명만이 사망한 것입니다. 이 퍼센트 격차는 선주민 인구가 있는 지역들이 포격 대상이 되며 과중하게 군사화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다른 러시아 서부지역에는 이러한 과중한 군사화 계획이 없습니다. 하바롭스크 지역, 특히 하바롭스크의 선주민들 역시 군사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랴트인들의 참전 독려에는 강력한 선전 또한 사용되고 있습니다. 크렘린 궁의 정부가 시위, 특히 반전 · 반정부 시위를 강경하게 탄압하는 동안 “러시아인들은 항복하지 않으며, 부랴트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와 같은 슬로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탈식민주의 혁명과 국제주의를 향하여 반식민주의의 보루였던 소련은 구 러시아 제국의 선주민들을 진정으로 해방시키지 못했습니다. 소련 혁명 당시 선주민들은 자신들이 대표된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자치권이나 독립에 대한 희망 없이 이민을 택했습니다. 초기 소련은 범몽골주의를 어느 정도 지지했으나, 스탈린 정권은 범몽골주의를 과격하게 반대하며 구 러시아 제국에서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지배에 저항하는 선주민들을 징벌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선주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새로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선주민들이 선주민 인구와 영토의 완전한 독립 내지는 최대한도의 자치권을 원하고 있고, 부랴트인과 사카인으로 대표되는 일부는 범몽골주의적 민족주의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부랴티야 해방운동 내 이런 민족주의적 행보들은 부랴트인들의 완전한 해방을 이룩하는 대에 충분치 않습니다. 대다수 부랴트 혁명집단이 택하는 범몽골주의적 관점은 결국 부랴티아의 몽골 합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칭기즈칸의 대제국 때 처럼 말이지요. 범몽골주의의 호소력에 대해서는 이해합니다. 부랴티야 단독으로는 해방을 이룩하기에 힘이 부족하니까요.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제가 부랴티아의 해방이 오로지 국제주의적인 반식민주의 혁명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이유입니다. 부랴트인들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식민지화된 다른 이들과 연합하여 모든 식민지화된 땅의 해방을 불러와야 할 것입니다. 이 발제에서 저는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식민화된 이들의 관점을 고려하고, 단지 유럽의 전통적인 서구 제국주의와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식민주의로부터만 식민지화된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에트 연방 시절 결국 선주민의 해방을 불러오지 못한 제국주의적 세력으로서의 러시아 또한 고려할 것을 독려하고 싶습니다. 번역: 주드2025-09-05 | 조회 7,736 -
인도네시아에서 누적된 불평등과 폭력진압에 맞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다.8월 말부터 오늘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강경진압에 맞서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시위 상황을 추적했다. 터무니없는 국회의원 주택수당 신설 8월 25일 월요일, 시위대는 ‘국회 해산’(“bubarkan DPR”)을 외치며 자카르타 국회 의사당(DPR) 건물 밖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원들과 평범한 노동자민중 사이의 엄청난 불평등이 이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의 도화선은 2024년 9월부터 인도네시아 하원의원 580명에게 월 5000만 루피아(423만원)의 주택수당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었다. 주택수당을 포함한 하원의원의 총 급여는 월 1억 루피아(약 846만원) 정도가 된다. 이 새로운 수당의 근거는 현 임기(2024-2029년) 의원들이 이전과 달리 정부 주택을 제공받지 못하므로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많은 의원들이 자카르타 출신이 아니어서 수도에 머무를 때 숙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추가 근거로 제시되었다.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 진한 빨강 */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밑줄 제거 */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hover 시 더 진한 빨강 */ } 이 수당 발표는 여러 이유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첫째, 5천만 루피아라는 금액이 '평범한 인도네시아인'의 소득보다 훨씬 높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며, 납세자의 돈을 낭비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하원 부의장인 카디르 의원이 5천만 루피아 금액 산정 근거로 제시한 말도 안 되는 계산이 바이럴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는 인터뷰에서 횡설수설하며 “보통 월세가 300만 루피아인데, 근무일인 26일을 곱하면 월 7800만 루피아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자카르타의 월세는 300만 루피아 수준이 맞다. 그는 월세를 일세로 혼동해 얘기하며, 실제보다 월세가 26배 더 높다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이 조롱당하자 다음날엔 “300만 루피아에 12개월을 곱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월 주택수당 5천만원을 지급하는 게 여전히 “공직 의무 수행을 생각할 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한국에 상황에 대입해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여의도 주변 임대료가 워낙 비싸서, 국회의원들에게 ‘매월 2천만원’의 주택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 아니냐는 항의에 대해 국회부의장인 이학영이 나와 기자들 앞에서, “여의도에서 집을 구하려면 2600만원 정도 월세를 내야한다.”고 설명한 셈이다. 여의도 월세가 100만원 정도인 것도 모르냐는 조롱을 받자, 다음날 “그래도 공직 의무 수행을 생각하면 월 2천만원 정도는 지급하는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이후 하원 부의장은 다시 2025년 8월 26일, “이 수당이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1년간만 적용되며, 주택 비용으로만 사용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5년 간의 월세 비용을 1년 간 받는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주택수당은 5년 간 지출이 예상되는 월세의 최소 3배를 넘는 돈이다. 이와 같은 큰 돈을 세금으로 지급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월세 실정도 모른채 제대로 된 근거조차 대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상황은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정당한 분노를 자아냈다. 불평등이란 화약고가 누적돼있었다. 주택수당이 도화선이 됐지만, 이는 민중들의 거대한 분노를 터뜨린 표면적 계기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주거권’을 논하며 호화로운 주택수당을 스스로에게 지급하는 반면, 수도 자카르타에서 사는 사람들의 평균 임금은 월 540만 루피아(45만 7천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농촌지역 평균임금은 이보다도 훨씬 못한 월 217만 루피아(18만 3천원)에 불과하다. 특히 비정규 교사의 급여는 굉장히 낮은데, 경우에 따라서는 최저임금도 안되는 월 100~200만 루피아에 불과하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은 2025년 초 경제성장이 둔화되며 더욱 심화됐다. 실업은 급증했고 물가상승률이 올라갔다. 2025년 상반기 해고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2.1% 증가했다. 이런 충격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자에게는 더 큰 불안정을 야기한다. 반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에 경제상황을 이유로 교육과 의료 예산을 삭감하고,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예산도 삭감했다. 이렇듯 민중들이 부담해야할 고통이 천정부지로 늘어나는 와중 ‘주택수당’ 인상이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누적된 분노에 불을 지핀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받고있는 임금수준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높은 것인지도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체감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이번 주택수당 5천만 루피아를 더해, 매월 월급으로 가져가는 1억 루피아는 최저임금의 약 18.5배이다. 한국의 월 최저임금(209만원)과 비교해본다면, 한국 국회의원이 월 3881만원을 수령해가는 셈이다. 온라인 미디어 포럼 Kok Bisa는 정치인과 일반 시민의 구매력을 비교했는데, 이에 따르면 정치인의 급여로는 집을 살 수 있는 데 2년 1개월이 걸리는 반면,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같은 집을 사려면 38년 7개월이 걸린다. 더군다나 정치인들은 소득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는다. 법에 따라 국가가 이를 대신 부담해주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월급의 5.4%밖에 안되는 임금으로 자카르타에서 생존을 이어가야하는 민중들이 보기에, 주택수당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분노스러운 불평등의 정당화였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의원수당 철폐, 국회 해산’이라는 인도네시아 민중의 요구는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극심하게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정당한 요구였다. 강경진압이 부른 배달노동자의 죽음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하원의원들은 시위대를 조롱했다. 아흐마드 샤로니 하원 제3위원회 부의장은 “하원을 해체하라고 외치는 시위대는 가장 멍청한 족속들이다.”라는 폭언을 공개석상에서 쏟아냈다. 앙가 라카 프라보워 통신디지털부 차관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TikTok과 Meta에 '도발적 콘텐츠'의 플랫폼 퇴출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8월 28일에는 최저임금 인상, 대량해고 중단, 노동세 개혁 등의 요구사항을 내건 노동조합의 시위가 벌어졌다. 그 뒤 학생시위대와 경찰 간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 등을 사용해가며 학생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최소 600명을 체포했다. 그런데 그날 밤 경찰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며, 배달노동자로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하고 있던 아판 쿠르니아완(Affan Kurniawan)이 차에 치이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장갑차는 쿠르니아완을 깔아뭉갰고, 세상을 떠난 그의 나이는 고작 만 21세였다. 아판 쿠르니아완의 죽음으로 “경찰은 살인자다”라는 구호가 확산되었고, 분노한 오토바이 택시, 배달기사들 수천 명이 아판 크루니아완의 장례행렬에 동참했다. (죽은 배달노동자 아판은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이기도 했다. 그의 집 담벼락에는 그가 직접 그린 ‘Free Palestine’ 그림이 그려져있다.) 아판의 죽음과 함께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시위대는 전국 여러 도시의 경찰서를 공격했고, 일부 의원과 장관들의 호화 별장이 약탈됐다. 시위대는 일부 관공서 건물도 불태웠다. 8월 30일에는 민중을 ‘멍청하다’고 비웃은 아흐마드 샤로니 의원의 집이 습격당하고 약탈됐는데, 생중계된 영상을 보면 110억 원짜리 리샤드 밀 시계를 포함해 사로니의 호화품들이 군중들에 의해 운반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사건은 국회의원들이 불평등의 수혜를 누리며 얼마나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부건물이 피해를 입은 시위가 벌어진 곳들. 출처: 로이터 급격히 확산되고 격화된 시위에 놀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의회 지도자들과 함께 “의원 수당과 해외 출장을 포함한 여러 정책을 철회”하겠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일부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을 ‘테러’와 ‘반역’으로 정의하며 군경에 엄중대응을 명령했다는 말로 민중들을 겁박 중이다. 한편으론 아판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일선경찰관 7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프라보워 대통령은 경찰청장에 대한 해임요구를 거부하고 있고, 오히려 9월 1일 폭동으로 부상당한 경찰관들을 방문해 경찰청장에게 그들을 승진시키라고 요청했다.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1,200명 이상을 체포했으며 인권 단체들은 20명의 실종 사건을 규탄하고 있다. 아판 쿠르니아완의 죽음이 상징하는 계급불평등 아판 쿠르니아완의 죽음은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왜 그렇게 큰 분노를 자아냈을까? 아마도 플랫폼 배달 노동자인 그가 국가폭력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어야 했던 상황이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민중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추정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2천만 명의 노동자가 플랫폼을 통해 소득의 일부를 얻으며, 이 중 450만 명은 플랫폼으로 전 소득을 창출한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해당 플랫폼 노동자의 58%가 이전에 정규 부문에서 고용된 경험이 있다. 즉, 많은 이들에게 플랫폼 노동은 정규부문에서 일자리를 잃고 찾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다. 스마트폰이 인도네시아에 보편화되기 훨씬 전부터, 즉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런 비공식 노동자들은 존재해왔다. 특히 대표적인 것은 오젝(ojek,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로,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마카사르, 메단 등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 교통 시스템에서 오랫동안 핵심 역할을 해왔다. 이들 오토바이 택시 기사 다수는 정규직 일자리나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소도시나 농촌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운전한다. 2015년부터 인도네시아 대표 플랫폼 기업인 고젝(Gojek)이 우버식 주문형 교통모델을 따라한 중개플랫폼으로 등장했다. 오토바이 택시 중개플랫폼으로 출발한 고젝은 차량 호출(VTC), 음식 배달, 전자 결제, 심지어 자동차 정비, 마사지, 연료 배달 서비스 등 20여 가지 이상의 ‘온디맨드 서비스(주문형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5년 말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싱가포르 기업 Grab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했다. 오토바이 택시 드라이버와 같은 많은 인도네시아의 비공식 노동자들에게 플랫폼 자본의 등장은 기존의 비공식적 노동구조를 벗어나, 더 큰 수익을 보장해주는 길로 보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배달의 민족’ ‘쿠팡’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한 이후,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인도네시아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처음에 ‘많은 수익’을 약속했던 플랫폼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플랫폼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요구했다. "48세 운전사 누르야니*는 그랩과 고젝 양쪽에서 일한다. 그녀는 플랫폼 일을 시작했을 때 하루 30만 루피아(약 17유로 또는 19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현재는 요금이 하락하고 플랫폼의 수수료가 증가하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하루 17시간 일해도 10만 루피아(6유로 또는 7달러)도 벌지 못한다. “유류비는 포함되지 않고, 식비도 포함되지 않으며, 때로는 주차비도 내야 하는데 고객은 주차비를 내주려 하지 않아요”라고 누리아니는 말한다. 사실 많은 오젝(오토바이 택시) 운전자들은 앱 기반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승차 기회를 얻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처음에는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위카크소노 씨는 “플랫폼이 시범 운영을 시작했을 때, 운전자 파트너들의 복지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센티브나 요금을 제공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폼의 사업 관행이 온라인 오토바이 택시 운전자 파트너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젝(Gojek) 소속 55세 운전자 루슬리*는 초창기에는 하루 12명 승객을 태우면 기본 요금 외에 20만 루피아(11.5유로 또는 13달러) 보너스를 받을 수 있어 하루 70만 루피아(40유로 또는 43달러)를 벌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오늘날 그와 동료들은 동일한 노동량으로 하루 20만 루피아를 벌면 운이 좋은 편이다."(출처: Long silenced, Indonesia's platform workers are organizing and fighting for their rights) 아판 쿠르니아완의 죽음은 현 정부가 빈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던 “기업가정신”과 플랫폼 자본주의가 실제로는 어떻게 노동자들을 더 큰 빈곤으로 몰아넣었고, 그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국가폭력에 의해 탄압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물대포와 최루탄, 장갑차가 인도네시아 정부의 진압작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한국은 독재정권 시절부터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광주의 노동자민중은 독재자 전두환을 비호하는 계엄군에 맞서 노동자민병대를 꾸리고 역사적인 광주민중항쟁을 이끌었다. 1980~90년대에는 백골단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잔혹한 탄압에 맞섰다. 이후 백골단과 최루탄 대신 등장한 ‘최루액 물대포’에 맞아 2015년에는 백남기 농민이 살해됐다. 수많은 열사들을 떠나보내며 투쟁한 끝에, 우리는 현재 최소한 국가기구가 백골단 같은 노골적 국가폭력을 자행하진 못하도록 막아내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을 거치며, 2021년 살수차를 전량 폐기시켰고, 국가는 시위진압에 현재까지는 더 이상 물대포를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최루탄과 물대포가 오늘날에도 시위대를 향해 버젓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물대포와 최루탄은, 바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수출된 것이다. 한국의 특수차량 생산업체 대지정공(주)는 2009년 인도네시아 경찰청에 200억원 규모의 물대포차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까지 인도네시아에 700대 가량의 물대포차를 수출했다. 이를 통해 대지정공(주)는 물대포차 수출 부문 세계 1위 업체가 됐고, 베트남, 쿠웨이트, 보츠와나, 페루, 차드, 이디오피아 등 많은 국가들에도 물대포차를 수출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는 이라크에 이어 한국 최루탄 수출 대상 2위 국가다. 한국은 201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5년 반 동안 인도네시아에 64만 9천발의 최루탄을 수출했다. 배달노동자 아판을 깔아뭉개 살해하는데 사용된 바라쿠다 장갑차 또한 한국에서 수출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구 대우종합기계)는 2004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총 45대의 바라쿠다 장갑차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다. 이 장갑차는 단순 수송 장비가 아니라 중기관총과 돌격소총을 탑재할 수 있는 사실상 ‘이동식 무기고’로 알려져 있다. 바라쿠다 ‘폭동 진압’ 차량은 이번 자카르타 시위뿐 아니라 웨스트파푸아 지역에서도 빈번히 투입되어,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압의 상징이 되어 왔다. (전쟁없는세상 성명 中) 한국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통해 우리는 제한적이나마 집회시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는 국경안에 갇혀있고, 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위한 한국의 장비와 기술은 버젓이 인도네시아에서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불평등과 부패에 맞서는 인도네시아의 민중들과 연대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요구 이번 반정부 시위는 국회의원들의 주택수당 인상에서 촉발되었지만, 인플레이션과 대량해고, 누적된 불평등, 경찰의 강경진압, 정치인의 부패 등 여러가지 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이다. 그만큼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요구는 다양한 양상을 띄고 있고, 요구의 강도 또한 다양하다. 그 중 의회 해산, 대통령직 사임, 부통령 기소, 조코위 가문(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이자 현 부통령의 가문)의 부패의혹 수사 등 정치인들을 향한 급진적 요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호응을 얻었다. 한편 몇몇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여러 시민단체들의 개별 요구사항과 학계 및 노동조합의 성명을 종합해 발표한 25개(17개의 단기적 요구와 8개의 장기적 요구) 요구사항도 대중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해당 요구가 시위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내부동학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인도네시아 시위대의 대중적 정서와 요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임을 고려해 아래에 소개한다. [단기적 의무(9월 5일까지 이행)] 프라보워 대통령의 의무 1. 민간 치안활동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시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없도록 보장하라. 2. 아판 쿠르니아완, 우마르 아마루딘 및 8월 28-30일 시위 중 경찰 폭력의 모든 피해자 사건에 대해 명확하고 투명한 권한을 가진 독립 조사팀을 구성하라. 국회의 의무 3. 국회의원 급여/수당 인상을 동결하고 (연금을 포함한)신규 시설을 취소하라. 4. (국회의)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급여, 수당, 주거, 국회 시설). 5. 국회 명예위원회가 (부패근절위원회(KPK)를 통한 수사를 포함하여) 문제 의원을 조사하도록 촉구하라. 각 정당 대표들의 의무 6. 비윤리적 행위로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국회의원 당원들에 대한 해임 또는 엄격한 제재를 부과하라. 7. 위기 속에서 국민 편에 서겠다는 당의 의지를 표명하라. 8. 학생 및 시민사회와의 공개 대화 공간에 당 간부를 포함시켜라. 인도네시아 공화국 경찰의 의무 9. 구금된 모든 시위자를 석방하라. 10. 경찰 폭력을 중단하고 이미 마련된 군중 통제 표준 운영 절차(SOP)를 준수하라. 11. 폭력 및 인권 침해 행위를 저지르거나 지시한 구성원 및 지휘관을 투명하게 체포하고 처리하라. 인도네시아 국군(TNI)의 의무 12. 즉시 주둔지로 복귀하고 민간 치안활동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 13. 국군 구성원이 국가경찰의 기능을 대신하지 않도록 내부 규율을 강화하라. 14. 민주주의의 위기 발생 시 민간 영역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국군이 공개적으로 약속하라. 경제 부문의 의무 15. 인도네시아 전역의 (교사, 근로자, 의료 종사자, 오토바이 택시 운전자 등을 포함한)모든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라. 16. 대량해고를 방지하고 계약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하라. 17. 최저임금과 외주화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과 대화를 시작하라. [장기적 의무: 1년 뒤(2026년 8월 31일)까지] 1. 대대적인 하원 정화 및 개혁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독립적인 감사 실시. 국회의원 자격 요건 강화(부패한 사람 배제) 및 성과 평가를 위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 설정. 종신 연금, 특별 교통편 및 경호, 국가 예산으로 세금 부담 등의 국회의원 특혜 폐지. 2. 정당 개혁 및 행정부 감독 강화 정당은 연초 첫 재정 보고서를 공개해야 하며, 국회는 야당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3. 공정한 세제 개혁안 마련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국가 예산 이체 균형을 재검토하고,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증세 계획을 취소하며 공정한 세제 개혁안을 마련한다. 4. 부패자 자산 몰수법 비준 및 시행 국회는 부패 근절에 대한 진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올해 회기 중 즉시 자산 몰수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며, 이는 KPK(부패근절위원회) 및 부패법의 독립성 강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5. 경찰을 전문적이고 인도주의적으로 만들기 위한 지도부 및 제도 개혁 국회는 경찰법을 개정해야 한다. 경찰 기능의 분권화: 우선적으로 공공 질서, 치안, 교통 기능을 12개월 내에 분권화한다. 6. 예외 없는 국군의 주둔지 복귀 정부는 대규모 농업(식량 단지)과 같은 민간 프로젝트에서 TNI의 권한을 올해 안에 철회해야 하며, 하원은 국군법 개정을 시작해야 한다. 7. 인권위원회(Komnas HAM) 및 독립 감독 기관 강화 국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옴부즈만과 국가경찰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 8. 경제·고용 부문 정책 재검토 원주민과 환경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PSN(국가전략프로젝트) 정책 및 경제 우선순위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인민, 특히 노동자에게 부담을 주는 일자리 창출법에 대한 평가, 그리고 다나타라(인도네시아 국부펀드) 및 공기업에 대한 거버넌스 감사 평가를 실시하라. ----- 이 17+8 요구 사항은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유포된 다양한 요구와 촉구 사항을 요약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7일간의 요구 @salsaer @jeromepolin @cherylmarella 댓글과 인스타그램 스토리란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투표한 결과입니다. -211개 시민사회단체의 긴급성명 (YLBHI 웹사이트 게시) -인도네시아 법률정책연구센터(PSHK) 보도자료 -인도네시아대학교(UI) 공증인 석사과정 학생회 입장성명 -인도네시아대학교 환경법·기후정의센터 입장성명 -노동 시위 요구사항 (2025년 8월 28일) -Reformasi Indonesia가 Change.org에 게시한 투명성과 사법 개혁을 위한 12가지 국민 요구사항 (40,000명 이상 서명) ※본 요약은 상기 다양한 참고 자료의 핵심을 포착하고자 하며, 모든 세부 사항을 완전히 포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 요약은 동시에 유포될 수 있는 다른 주장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2025-09-03 | 조회 8,548 -
[정세집담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입장이 글은 8월 29일(금) 진행된 '정세집담회: 러시아 소수민족 입장에서 바라본 러-우전쟁'에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던 글이다. 이 링크를 통해 영어번역본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푸틴은 3일 안에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일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자포리자와 헤르손 주도 대부분 점령했다. 그러나 수도인 키이우까지 직선로로 점령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몇 차례 반격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2022년 11월 헤르손 시를 탈환하고, 2023년 자포리자 주 로보티네를 확보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제한적이었다. 2024년 8월에는 러시아 쿠르스크 주에 공세를 펼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러시아가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 대부분을, 그리고 자포리자와 헤르손의 상당 부분을 점령한 상태에서 전선이 고착화됐다. 얼마 전 트럼프가 푸틴과 젤렌스키를 각각 만나며, 휴전과 평화협정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대결이라는 전략적 목표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여되는 비용을 줄이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에게 미국이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푸틴에게 각각 더 많은 것을 양보할 것을 요구하며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고, 언제 실제로 휴전과 평화협정이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이 전쟁을 수행하고 관여하고 있는 어떤 주체도,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민중의 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반동적인 전쟁에 대해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이전 조직 중 하나인 노동해방투쟁연대는 2022년 3월 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즉각 중단하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NATO를 해체하라!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패권대결·전쟁책동·억압침탈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구호는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이 구호를 둘러싼 몇가지 측면들에 대해 이 글을 통해 다루고자 한다. [사진: Viacheslav Ratynskyi / the Collection of war.ukraine.ua]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반동적인 제국주의 침략일 뿐이다. 푸틴과 레닌은 정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에 의해 오랫동안 민족억압을 겪어왔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권 보장이라는 올바른 입장을 가졌다. 레닌은 당시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주변 민족들의 민족자결권과, 그들의 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할 권리”에 대해서 얘기했다. 푸틴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선포하며 이를 비난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는지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아래는 레닌이 1917년 6월에 쓴 글로, 제정러시아의 민족억압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주의자라면 누구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자유롭게 분리할 권리를 부인할 수 없다. 이 권리를 조건 없이 인정해야만 우크라이나인과 대(大)러시아인의 자유로운 연합, 한 국가 안에서 두 민족의 자발적인 결합을 옹호할 수 있다. 이 권리를 조건 없이 인정해야만 차르가 다스리던 저주받은 과거를, 언어·영토·성격·역사에서 매우 가까운 두 민족이 모든 점에서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완전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청산할 수 있다. 저주받은 차르 체제는 대(大)러시아인을 우크라이나 인민에 대한 사형 집행자로 만들었고,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모국어로 말하고 공부하는 것을 금지시킨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했다. 러시아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진정으로 민주적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를 위해,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우크라이나 노동자와 농민에게서 형제적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 그런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은 자유롭게 분리할 권리를 포함해서 우크라이나의 모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작은 국가의 존재를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나라의” 자본가들과 다른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에 맞서는 세계 노동자들의 가장 긴밀한 연합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결합이 자발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를 조금도 잠시도 신뢰하지 않는 러시아 노동자는 이제 우크라이나인들의 분리할 권리를 지지한다. 자신의 우정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그들을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동등한 동맹이자 형제로 대우함으로써 그들의 우정을 얻고자 분투하면서."[1]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는 연설에서 레닌의 이러한 입장을 아래와 같이 비난했다. "현대의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셰비키의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과정은 사실상 1917년 혁명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레닌과 그의 동지들은 이 일을 러시아에 몹시 무례한 방식으로 했습니다. 러시아 고유의 역사적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분리, 강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러시아와 러시아 민족들의 역사적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레닌의 국가 건설 원칙들은 단순한 과오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것이었습니다."[2] 푸틴의 요지는, 레닌이 이끈 러시아혁명 이후 노동자국가가 민족자결권 원칙을 고수하고, 소비에트 헌법에 이를 명시한 것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가능하게 했고, 이로써 러시아 민족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푸틴은 레닌의 노동자 국제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에 뒤이은 대러시아 민족주의의 계승자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러시아인들을 파시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밖에 없다는 푸틴의 수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한 달 전 ‘독일 민족의 보호를 위해’ 독일의 팽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던 히틀러의 수사와도 판박이다. “1000만이 넘는 독일인이, 우리나라 국경에 인접하고 있는 두 나라에 살고 있다.… 독일로부터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해서, 권리의 박탈, 즉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일반적인 여러 권리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국경 연변에 살며, 스스로의 노력으로서는 도저히 그 정치적・정신적 자유를 획득할 처지에 있지 못한, 이들 독일 민족을 보호하는 것은 독일의 큰 관심사에 속하는 것이다.”[3] 스탈린이 반혁명으로 노동자국가를 파괴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억압을 부활시켰다.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반혁명으로 등장한 국가자본주의 소련의 유산 위에 존재한다.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러시아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초중반까지, 레닌이 정식화한 민족자결권에 입각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의 자율성과 민족적 요구들을 존중했다. "1923년 소련 전체에 ‘토착화’ 정책이 도입되어 각 공화국의 민족, 문화에 따른 시책이 종용되었다. 그야말로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정책이기도 했다. … 1922년 정부 직원의 35퍼센트, 공산당원의 23퍼센트였던 우크라이나인 비율이 1926년부터 1927년에는 각각 54퍼센트, 52퍼센트로 상승했다. … 우크라이나어 사용도 장려됐다. 정부 직원 가운데 우크라이나어를 하지 못하는 직원은 우크라이나어 코스를 이수하여 1년 내에 습득하지 못하면 해고됐다. 정부 문서, 간행물의 우크라이나어 작성으로 1922년에 20퍼센트였던 우크라이나어 문서가 1927년에는 70퍼센트로 상승했다.. 또한 당의 업무도 우크라이나어로 이루어졌다. … 학교 교육에서도 우크라이나어화가 이루어졌다. 1929년에는 일반 교육의 80퍼센트, 대학 교육의 30퍼센트가 우크라이나어만으로 이루어졌다. 신문과 서적의 우크라이나어화도 추진되어 전체 출판물 가운데 우크라이나어 출판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1922년 27퍼센트에서 1927년 50퍼센트 이상이 됐다. … 역사학자이자 중앙 라다의 대통령이었던 흐루셰브스키도 귀국하여 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으로서 우크라이나사 연구에 착수했다. … 종교면에서도 우크라니아화가 나타났다. 우크라이나의 정교도는 예전부터 모스크바로부터의 독립을 원했고 1920년에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가 설립되어 1921년에는 키예프 및 전 우크라이나 부주교가 임명됐다. 독립 정교회의 의식에는 교회 슬라브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가 사용됐다."[4]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소련 공산당에서 스탈린이 권력을 쥐고, 1930년대 일국사회주의론에 기반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민족억압이 체계적으로 부활했다. 그 참혹한 결과 중 하나는 1932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었다. 스탈린은 민족 억압과 대기근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가혹한 숙청으로 진압했다. "우크라이나화는 1930년대 전반까지 계속됐으나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단속이 시작됐다. 원칙적으로는 완고하지만 전술에는 유연했던 레닌이 1924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트로츠키(1879~1940), 지노비예프(1883~1936) 등 라이벌을 추방하고 1927년에 스탈린(1879~1953)이 권력을 장악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 앞서 기술한 것처럼 스탈린은 오히려 농민을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 세력으로 여긴 때가 있어, 농민을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거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그 수단이 된 것이 1928년에 시작되어 1929년부터 강제화된 ‘농업 집단화’다. … 농민들은 저항했다. 어쩔 수 없이 집단 농장에 들어가게 된 농민들은 기르던 가축을 도살하여 식용으로 삼거나 팔아버렸다. 1928년에서 1932년 사이에 우크라이나는 가축의 절반을 잃었다. 그러나 당과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집단화를 추진했다. 저항하는 이는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 우크라이나에서 이 집단화는 1930년과 1931년에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 집단화된 농가 비율은 1928년 3.4퍼센트에서 1935년에는 91.3퍼센트에 달했다. … 집단화는 스탈린과 당 지배의 영속화에는 이바지했을언정 우크라이나에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가 바로 1932년~1933년에 일어난 대기근이다. 1930년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은 2100만 톤으로 비교적 양호했고 정부 조달량은 760만 톤이었다. 이 조달량은 이미 1920년대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1931년은 흉작으로 전년 대비 65퍼센트인 1400만 톤에 그쳤지만 조달량은 달라지지 않았다. 1932년에도 생산량은 1400만 톤으로 전년과 같은 흉작이었다. 이러한 수확량 감소는 집단화에 의한 혼란이 주된 원인이었다. … 농민들은 이러한 조달 방식에 저항했지만, 모스크바의 당과 정부는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당 활동가는 농가에서 곡물을 압수할 법적 권리를 가졌다. 도시의 당 활동가 무리는 농가로 찾아가 집집마다 돌며 마루를 부수면서까지 곡물을 찾아냈다. 굶지 않은 이는 음식물을 숨긴 것으로 간주했다. 음식물을 감춘 이는 사회주의 재산을 절도한 것으로 간주하여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이로써 기근은 1933년 봄이 되어 절정에 달했다. 기근은 소련 안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북캅카스 지역에서 발생했다. 도시 주민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 굶주리고 곡물 생산이 적은 러시아 중심부가 아니라 곡창 우크라이나에서 기근이 발생한 몹시 비정상적인 사태였다. 농민들은 빵이 없어서 쥐, 나무껍질, 잎사귀까지 먹었다.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다수 전해진다. 마을 전체가 절멸한 곳도 있었다. 흐루쇼프의 회상록에는 한 대의 열차가 굶어 죽은 사람들의 사체를 가득 싣고 키예프 역으로 들어왔는데, 폴타바에서 키예프까지 계속해서 사체를 실었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실려 있다. … 이 기근으로 발생한 아사자의 수는 소련 정부가 감추고 있었던 탓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느 학자는 300만 명에서 600만 명 사이로 추계했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의 공식 견해와 쿠치마 대통령(1938~)의 머리말이 실린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것』(1998)에 따르면 이 기근으로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는 350만 명이 아사했고 출산율 저하를 포함한 인구 감소는 500만 명에 달했으며 그 밖에 북캅카스에 거주한 우크라이나인 약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북캅카스 출신이자 외가 쪽이 우크라이나계로 추정되는 고르바초프(1931~)에 따르면 자신의 마을에서도 이 기근으로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 이 기근의 첫 번째 특징은 강제적인 집단화와 곡물 조달로 인해 발생한 인위적인 기근이며 필연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기근은 유대인에 의한 홀로코스트에 필적할 만한 제노사이드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두 번째 특징은 러시아 자체는 이 기근을 거의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자행했다는 설이 제기됐다. 그 증거로 “민족 문제는 농민 문제를 말한다”라는 스탈린의 발언과 1930년 『프라우다』지의 “우크라이나의 집단화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개인 소유 농가의 농업)의 기반을 파괴하는 특별한 임무를 갖는다”라는 구절을 들었다. 세 번째 특징은 이 기근이 소련에서는 가능한 한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 1986년에 이르러서도 소련 관제의 우크라이나사는 ‘지독한 식량 문제가 있었다’고만 서술했을 뿐 기근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스탈린의 권력 장악으로 우크라이나 자치에 제한이 가해지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인들이 농업 집단화와 곡물 조달에 저항하자 그 흐름은 더욱 강화됐다. 1920년대에 활약한 인텔리 문화인에 대한 공격도 시작됐다. 1931년에는 흐루셰브스키 아카데미의 역사 부문도 폐쇄됐다. 그는 러시아로 추방되어 1934년 캅카스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1932년 즈음부터는 공산당원에 대한 숙청이 시작됐다. 소련 전체의 대숙청은 1936년부터 1938년에 걸쳐 일어났으므로 우크라이나에 한해서는 몇 년 앞서 시작된 셈이 된다. … 스탈린은 1933년에 발생한 기근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공산당원들에게 전가했다. 1933년에는 교육의 우크라이나화를 촉진한 고참 볼셰비키이자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교육 코미사르(각료)였던 스크리프니크(1872~1933)를 자살로 내몰았다. 그 밖에 우크라이나화를 추진한 유력 당원들이 자살하거나 유형을 당하는 등 홀연히 사라졌다. 1933년부터 1934년에 걸쳐 우크라이나 공산당은 10만 명의 당원을 잃었다고 한다. … 1936년부터 1938년에는 숙청의 대상이 우크라이나인을 포함한 소련인 전체로 확대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각료 17명도 체포된 후 처형됐고 류브첸코 수상(1897~1937)은 자살했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원의 37퍼센트에 해당되는 17만 명이 숙청됐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의 공산당은 괴멸 상태에 빠졌다. 1930년대 말에는 각 공화국의 자치가 대부분 완전히 사멸됐다. … 소련 전체의 교육과 문화는 일률화, 러시아화됐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어 교육이 필수가 됐다. 우크라이나어의 알파벳, 어휘, 문법은 러시아어와 가까워졌다. 우크라이나인도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의 문학을 읽도록 장려됐다. 신문과 잡지에서도 우크라이나어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로써 1920년대에 꽃피웠던 우크라이나 문화는 이 시기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5]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시대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정한 유화정책이 있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때까지 지속적으로 스탈린 반혁명 이후 국가자본주의가 된 소련 아래에서 지속적인 민족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소련의 관료적 명령경제 체제는 우크라이나의 산업과 농업 생산을 정체시켰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고르바초프 취임 후 글라스노스트를 통해 1390년대의 대기근과 숙청 등의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며, 소련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분노가 터져나왔다. "브레즈네프, 셰르비츠키 시대의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의 사용이 장려되고 우크라이나어의 사용에는 간섭이 뒤따랐다. ... 그 결과 1969년부터 1980년에 걸쳐 우크라이나어 신문의 비율은 46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줄었고, 1958년부터 1980년 사이에 우크라이나어로 출판된 책은 60퍼센트에서 24퍼센트까지 감소했다. … 경제 상황을 보면 흐루쇼프 시대에는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목표가 있어 여전히 의욕적인 면이 있었지만 경제 성장률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정체 상태에 빠졌다. 제5차 5개년 계획(1951~1955) 동안의 우크라이나 공업의 연간 성장률은 13.5퍼센트였지만 30년 후의 제11차 5개년 계획(1981~1985) 동안에는 3.5퍼센트로 떨어졌다.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심각한 에너지 부족이 일어났고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드네프르강에 거대한 댐이 연달아 건설되면서 드네프르강은 연이어진 인공 호수처럼 변해버렸다. …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소련의 농업 전체가 정체됐다. 브레즈네프 시대 후반에는 소련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게 일반화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는 관료 통제에 의한 비효율, 이윤 동기 및 경쟁 부재에 의한 노동 의욕의 감퇴 등이 있었다. 이 점은 반대로 이윤 동기가 작용했던 주택에 부속된 자영 채소밭의 높은 생산성으로 증명된다. 1970년, 우크라이나에서 전체 농지의 몇 퍼센트에 불과했던 자영 채소밭은 농가 수입의 36퍼센트를 차지했다.[6] … 우크라이나에서 소련 체제에 대한 불신이 처음으로 고조된 계기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고다. 1986년 4월 26일, 키예프 북쪽 방면으로 약 10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192톤의 핵연료 중 4퍼센트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 히로시마형 원자폭탄 500발분의 방사능이 확산됐다. 사고 자체로도 사상 초유의 재난이었지만 사태를 한층 더 악화시킨 것은 소련의 은폐 구조였다.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획득한 지 1년 남짓 됐고 글라스노스트도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던 탓에 사고는 28일까지 감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좀 더 빨리 공표하여 필요한 조처를 취했다면 구할 수 있었던 많은 생명을 잃었고 몇만 명의 사람은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소련은 생산지상주의로 그동안 환경 문제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문제가 일어나도 감추기만 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제1중화학 공업지대라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공장과 광산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흘러넘치고 있었고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는 소련 유수의 오염지대가 되어 주민들의 건강 문제가 심각해졌다. 글라스노스트가 정착해가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불만이 터져나왔다. 긴 시간 터부시됐던 역사의 ‘공백’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일어난 대기근이 공공연하게 논의됐고 1930년부터 1940년대에 보안 경찰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의 대규모 무덤이 발견됐다."[7] 소련의 무기력 아래 1989년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이 시작됐고, 1990년 3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의회인 ‘최고회의’(베르호우나 라다)의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4분의 1 의석을 획득했다. 1990년 7월 16일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주권 선언을 했고, 1991년 8월 24일 거의 만장일치로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1991년 12월 1일, 국민투표에서 90.2퍼센트의 찬성으로 독립을 확정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부패한 관료 지배계급(올리가르히)을 물려받았는데, 이 유산은 오늘날까지 우크라이나 민중을 억압하고 있다. 2004년 오렌지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운동에서 ‘부패 청산’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공통된 구호였다.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과정은 ‘친러'와 '친서방’ 지배계급 세력 간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는 진자 운동을 반복해왔는데, 부패는 ‘친러’와 ‘친서방’을 가리지 않았다. ‘부패 척결’을 내걸고 2019년에 당선된 젤렌스키도 현재 부패스캔들에 연루돼있고, 2025년 7월에는 젤렌스키의 반부패기관 통제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에서 극우 파시즘을 강화할 뿐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네오나치’가 성장하고 있다며, 이를 침공의 근거로 삼았다. 그런데 실제 우크라이나에서는 극우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회학자이자 ‘Lefteast’의 편집자인 볼로디미르 이셴코는 프랑스 사회주의 잡지 <연속혁명>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극우의 상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프랑스의 극우, 주로 르펜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은 우크라이나에서 논의되는 운동들보다 훨씬 덜 극단적이다. 르펜의 정당은 아마 나치 상징을 사용하지 않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정권과의 협력에 대해 더 정교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세계대전 시기 파시스트들로부터) 정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와 다르다. 당신이 언급한 스테판 반데라(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연합한 극우 성향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는 공개적으로 미화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특히 아조프 대원들에 의해 와펜 SS(나치 민병대의 일종)가 미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극우의 극단주의 수준은 서구 극우보다 훨씬 높다. 최근 그들은 서부 우크라이나 최대 도시인 리비우에서 ‘네이션 유로파’라는 국제 회의를 개최했는데, 여기에 독일의 드리테 베그, 이탈리아의 카사 파운도 등 여러 유럽 국가의 유사 네오나치 단체들을 초청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스보보다(Svoboda) 정당을 비롯해 아조프/국민군(National Corps)의 주요 인사 등 주요 극우 조직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 우크라이나 정당, 조직, 군사 부대는 일반적으로 단순히 '극우'로 불리지만, 서구의 주류 극우 정당보다는 훨씬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서구 단체들과 국제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참고로, 이 회의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군사 부대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HUR)과 연계되어 있다. … 의회 지위를 추구하는 서구의 주요 극우 정당들과 달리, 우크라이나 극우의 힘은 항상 거리 동원 능력과 폭력의 위협에 있었다. 중요한 점은, 2012년 선거에서 극우 스보보다당이 1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한 차례를 제외하면, (서부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방 의회에서는 훨씬 더 큰 대표성을 확보하고 최대 파벌을 형성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선거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주된 권력 원천은 과두 정당이나 취약한 자유주의 정당들과 달리, 의회 밖에서의 동원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전후 유럽의 파시스트 운동 계열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조직(OUN)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전통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 이제 아조프여단은 전쟁의 영웅으로서 매우 합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그들은 특별한 미디어 관심을 누리며 자신들을 엘리트 부대로 포지셔닝하고, 미디어가 이를 확언해주고 있다. 아조프 연대 소속 연사들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또한 2022년 이전에 그들을 네오나치라고 부르던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 서방 언론들 덕에, 그들은 일종의 이미지 세탁(White-washing) 효과를 누렸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명목상의 극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및 서방 엘리트들이 우크라이나 극우와 민족주의를 미화하는 데 공모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 미국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역사학자 마르타 하브리슈코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책, 우크라이나 극우에 대해 비판적으로 글을 쓰며 계속해서 수천 건의 위협, 특히 살해 위협과 강간 위협을 받고 있다. 당신의 의견으로는 아조프가 우크라이나 극우의 주력 세력인가? 그들은 마리우폴과 바흐무트 전투로 인해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극우 세력의 재편 과정에서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가? 오히려 그들은 확장되었다. 현재 국가수비대 내 제3돌격여단과 아조프여단 두 여단, 그리고 군사정보부에 소속된 특수부대 크라켄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미디어 노출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그들의 세탁된 정당성도 확장되었기에, 그들은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그들은 비정치화되지 않았다."[8] 푸틴이 얘기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의 반복된 침공과 군사적 위협이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즘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번 전쟁을 거치며 아조프여단 등 우크라이나의 극우는 ‘전쟁영웅’ 칭호를 얻고, 영향력을 더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즘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반동적 전쟁을 지금 당장 중단시켜야한다. 정리하자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파시스트’를 빌미삼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이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팽창야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스탈린 반혁명 이후 오랜시간 이어져온 국가자본주의 소련의 민족억압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에서 극우 민족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꼬여버린 역사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제국주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파시즘을 강화하는 반동적 침략전쟁일 뿐이다. 2. 서방제국주의와 NATO가 우크라이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역사적 배경 위에서 벌어진 것이며, 어째서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침략전쟁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사태의 다른 측면인, NATO와 서방 제국주의의 위선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러시아의 반동적인 군사적 대응을 만든 건 NATO의 동진정책이었다. 1990년에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통일 독일에 나토군을 주둔시키며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공문구에 불과했고, NATO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회원구을 받으며 동진을 이어왔다. 나토는 독일 통일 당시 ‘1인치도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란 미국 국무장관의 선언과 반대로, 빠른 속도로 러시아 국경을 향해 가입국을 확대해왔다. 1999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NATO에 가입했다.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는 2002년 공식 가입 초청을 받았으며 2년 후 가입 절차를 완료했다.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는 2009년 가입했으며, 마케도니아는 2020년에 가입했다. 러시아와의 거대한 물리적 경계선인 우크라이나는 2008년 NATO 가입 과정인 Membership Action Plan(MAP)을 신청했으며, 유로마이단 이후인 2014년 가입 의사를 공식 목표화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연설에서도 제임스 베이커의 말을 인용하며, NATO의 지속적인 동진 위협을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실제로 NATO는 소련 해체 이후에도 동진을 거듭했고, 러시아를 상대로 한 군사적 위협을 증대시켜왔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당화될 순 없으나, NATO의 지속적인 동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푸틴의 반동적 반응을 낳은 것은 분명하다. [1997년 이후 나토의 확장을 보여주는 지도]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핑계삼아 끊임없이 자기 세력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독일 사회주의자 내대니얼 플래킨이 지적하듯, 이런 위협은 의도적으로 과장돼있다. "현재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민주당 내 '사회주의자'를 포함한 미국 의회는 추가 무기 지원으로 400억 달러를 승인했다. 독일 자본가들은 군대에 추가로 1000억 유로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된다. … 물론 현실은 부패한 러시아 정권의 군대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에서 겨우 조각을 뜯어내는 데도 힘겨워한다는 점이다. 나토의 새로운 군국주의는 방어와 무관하다. 제국주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중국과의 더 큰 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신형 무기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새로운 제국주의 모험에 사용될 것이다. 1914년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독일 제국은 유럽에서 가장 야만적인 국가였던 러시아의 독재 정권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장군들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에게 이 전쟁이 독일 노동계급이 누리는 제한된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차르는 어떤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 독일 장군들은 노동자들의 파업권, 집회권, 심지어 의견 표현권마저 박탈했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계엄 상태를 정당화한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소책자에서 러시아가 독일을 정복하려 한다는 주장의 터무니없음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차르가 유럽이나 달을 병합하려 한다고 가정하는 게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오늘날 푸틴이 폴란드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으며, 미국 국민을 위협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큰 위협은 지구상 어디든 죽음의 비를 내릴 수 있는 무적의 수단을 가진 나토 군대에서 온다."[9] NATO는 미국과 유럽의 팽창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제국주의 전쟁 기계다. 나토는 회원국을 잠재적 침략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방어적’ 동맹이라는 수사를 내세운다. 그러나 나토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과 ‘민간인 보호’등을 명목으로 적극적인 ‘공격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코소보 전쟁, 2001~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11년 리비아 내전 개입이다. “나토 역사상 최초의 합동 공격 작전은 1995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에서 세르비아군을 상대로 벌인 침공이었다. 이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이어진 지역 내 독립 전쟁의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나토가 모든 군사력을 쏟아부은 것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때였다. 13개국에서 파견된 600대의 전투기가 코소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폭격했으며, 이로 인해 2,500명에서 5,7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했으며, 우라늄 폭탄 사용으로 인한 막대한 물질적·환경적 피해가 발생했다. 나토 개입의 명분은 코소보에서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범죄를 자행한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코소보 알바니아인의 정당한 자결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발칸 반도라는 러시아의 영향권에 나토의 존재감을 확대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었다.[10]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9·11 테러 배후 조직의 지도자 빈 라덴이 그곳에 은신 중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지역 내 이익은 무슬림 국가인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아랍 세계까지 포함하는 더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 핵심 지역을 장악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우위를 제공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 지역에서의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국 기업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년간 지속되었으며, NATO 군대의 굴욕적인 철수와 함께 탈레반 정부 손에 나라가 넘어가며 종결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인구는 황폐화되었으며 — 현재 인구 평균 연령은 18세이다.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남겼고, 전면적인 내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또 다른 결과는 나토 회원국들 내부에서 이슬람교도 인구에 대한 외국인 혐오 정책과 차별이 확산된 것이다. … 2011년 5개월 동안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에 대해 NATO는 공습과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3월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표결했으며, 20개국이 넘는 국가들이 무기 지원 또는 직접적 개입을 통해 참여했다. 나토의 행동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혁명적 과정 속에서 해당 지역에서 공세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42년간 리비아 대통령을 지낸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랍의 봄 운동의 결과로 축출된 지역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집권 당시 소비에트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의 정부는 수년간 쇠퇴해 왔다. 미국과 유럽은 군사적 개입 외에도 반군 단체에 무기와 훈련을 지원하며 자금을 제공했다. 2011년 10월 11일, 카다피는 미국이 지원하는 반대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이로 인해 리비아 내부에 권력 분열을 초래하는 내전이 발발해 두 개의 정부가 생겨났다.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이에 대해 웃으며 “우리는 왔고, 보았고, 그가 죽었다”고 발언했다. 나토(NATO)는 이러한 봉기를 '인도적 지원'이 아닌 서방 이익에 유리한 새 정부를 세워 영토 통제권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다. 리비아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근과 분쟁을 피해 도피하는 난민 통제에 전략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가스·석유 매장량으로 지역 지정학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군사 작전을 주도했으며 석유 거래로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리비아는 여전히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나토군은 이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리비아인들의 권리는 유린되었고, 기아와 완전한 파괴로 인해 수백만 명이 고향을 떠났다."[11] 서방 제국주의는 우크라이나에게 굴종과 광물을 요구한다. 올해 2월 트럼프는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노골적으로 젤렌스키에게 모욕을 주었다. 출입기자와 부통령 J.D.밴스는 젤렌스키에게 정장을 입고 오지 않았다느니, 미국에 대해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았다느니 무례한 말을 쏟아냈고,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너는 (협상할) 카드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미국에 대한 굴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화난 표정으로 광물협정에 서명하지 않고 회담장을 빠져나갔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결국 광물협정을 통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50%씩 출자해 ‘미국, 우크라이나 투자 재건펀드’를 만들어, 우크라이나의 광물과 에너지 자원 투자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10년 간 광물산업 투자를 통해 얻은 순이익은 반반씩 나누되,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위해 쓰기로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실제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광물산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려면 10년 이상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광물협정에 따라 앞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래에 미국의 미래 군사지원을 펀드 기여금으로 간주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광물을 탐내는 것은 중국과의 경쟁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는 흑연, 티타늄, 리튬과 같은 필수 희귀 광물이 대량 매장돼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미래 산업(AI,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천연자원이다. 트럼프는 중국으로부터 자유롭고, 미국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천연자원 공급망을 확보하려고 한다. 중국은 이미 몇 십년 간 남미와 아프리카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핵심광물에 대한 통제권을 늘려왔다. 오늘날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고, 천연자원의 가공산업에서는 거의 9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지 며칠 후 중국 정부가 흑연과 텅스텐을 포함한 20개 이상의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규제로 반격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천연자원에 대한 우위가 얼마나 중요한 위협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트럼프는 미국의 NATO 방위비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유럽 동맹국들에게 줄기차게 방위비 인상을 요구해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비 지원에서도, 유럽의 동맹국들이 더 많은 몫을 부담해야한다고 강조해왔다. 또한 얼마 전 8월 18일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진행한 회담에서 젤렌스키는 트럼프에게 미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겠다고 약속해야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을 노리는 건 단지 트럼프의 미국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유럽의 동맹국들도 전쟁이 길어지고 방위비 부담이 커질수록, 우크라이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국의 이익에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군무장관은 얼마 전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광물 협정 체결이 임박하자, 노골적으로 자신들도 광물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한다고 발언했다. ("프랑스 방위산업도 특정 원자재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비용을 분담하는 자신들의 ‘지분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래 한 EU정책자문가의 사설은 EU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개입을 해야만 더 많은 지분권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번 주 초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고, 미국이 천연자원을 얻으며, 유럽이 평화유지 비용을 부담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 궁극적으로 EU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군사적 지원 확대 노력은 EU가 제공할 수 있는 가능한 안보 보장 협상과 병행되어야 한다. 후자는 우크라이나가 경제 회복과 재건을 위한 신뢰할 수 있고 강력한 유럽의 지원을 바탕으로 할 때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우크라이나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EU가 모든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의지를 더 많이 표명할수록, 향후 어떤 협상 테이블에서도 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 신뢰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12] 우크라이나 경제는 이미 3년 반의 전쟁으로 파탄난 상태다. 우크라이나의 GDP는 2022년 28.8% 감소한 후, 국제원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2023년 5.5%, 2024년 2.9% 증가했다. 국제원조 없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의 지속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러시아의 공세가 시작된 첫 달,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채를 판매하고 화폐를 발행하며 적자를 메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해 연말 기준 우크라이나의 경제 규모는 거의 3분의 1 규모로 축소되었으며, 물가는 25% 이상 치솟았다. ... 전쟁 전 우크라이나의 발전량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에 의해 파괴되거나 점령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2022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러시아가 자국 에너지 인프라를 1000번 이상 공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우크라이나 경제의 또 다른 큰 문제는 3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력이다.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 국외로 떠난 피난민, 계속되는 동원이 그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 게다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 거의 4분의 1이 피난민이 되었다. UN에 따르면 해외에 거주 중인 우크라이나 난민은 현재 약 700만 명 수준이며(그중 6300만 명이 유럽에 거주한다) 국내 실향민 또한 460만 명이나 된다."[13]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어느정도의 지분권을 갖고 나눠먹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그들의 수사와 달리, 미국과 유럽이 방위비의 댓가로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에게 심각한 경제적 종속을 불러올 청구서를 내밀 것은 분명하다. 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호자 행세를 하는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가자지구에서 진행중인 집단 학살에 공모하는 바로 그 세력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탈의 자유를 제공하는 댓가로 얻어지는 NATO의 안보보장은 과연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제공할 수 있는가? NATO 내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친러 성향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들이 하는 말 중 이런 얘기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면 NATO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고, 이는 NATO와 러시아의 전면전이라는 더 큰 전쟁을 낳을 수 있다.”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한 근거를 취사선택하는 것일 뿐이지만, 이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혹은 NATO 동맹국들의 안보지원은 러시아와의 전쟁위협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며, 절대로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 제국주의 패권대결의 총체성 속에서 러우전쟁을 바라봐야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어떤 좌파들은 이 전쟁을 제국주의 세력 간의 대리전이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가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NATO의 무기지원을 지지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총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 사회주의자 나다니엘 플라킨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을 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와 세르비아 전쟁에 비유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1967년 레닌 사상에 관한 연구의 후기에서 레닌주의의 핵심 범주로 “총체성”을 강조하였다: “혁명적 실천을 지향하는 계급의식을 올바르게 가리키는 것은 바로 총체성이다. 총체성을 향한 지향 없이는 역사적으로 진실한 실천은 존재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 중 누구도 총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전쟁을 미국 헤게모니 쇠퇴기 속 강대국 간 고조되는 긴장의 일부가 아닌, 두 불평등한 국가 간의 갈등으로 보길 원한다. 즉, 그들은 우리가 세계적 제국주의의 총체성으로부터 분리된, 임의로 정의된 전쟁의 일부만을 보길 바라는 것이다. … 여기서 LIT-CI[14]의 입장은 특히 기이하다. 그들은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묻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 상황에서는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약하고 종속적인 국가(러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나토의 침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나토의 패배를 지지할 것이다.” 따라서 미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발포한다면, LIT-CI는 180도 입장을 바꿀 것이다: 그들은 젤렌스키 지지를 중단하고 즉시 러시아군 편에 설 것이다. 문제는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원”과 직접적인 제국주의 개입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LIT-CI의 두 입장, 즉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가상의 러시아 지원 모두 잘못되었다. 이는 세계 정세의 총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극히 기계적인 사고의 결과이다. …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동의하듯, 제1차 세계대전은 일련의 고립된 민족해방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 간의 세계적 갈등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위해 싸워야 했다. 이는 “조국”이 파괴 위협에 직면했을 때조차 “국방”에 용감히 반대했던 세르비아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예산에 반대한 세르비아 사회주의자들을 칭송했다. 이 입장은 전체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나토 국가들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야 한다.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새로운 갈등과 전쟁이 발생할 것이며, 각 제국주의 세력은 자신들의 침략을 ‘민주주의’와 ‘자결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항상 전쟁 선전의 언어였다. 사회주의자들은 독립적인 입장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에도 적용된다. 우크라이나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이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여, 나토와 러시아 제국주의 양측으로부터 국가를 해방시키는 전망을 가지고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반동적 전쟁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이다."[15] 3. 위기와 전쟁의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열었다. 이미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상당히 약화되었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 시대에 위기에 빠진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위기를 상대국에게 전가하기 위해 치열한 정치군사적 다툼을 벌인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과 중동의 전쟁위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과 개입강화, 유럽에서 극우파시즘의 부상과 군비인상, 동아시아에서 북중러-한미일 진영의 강화는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표현들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위기의 표현이자 위기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는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가 됐고,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올해 전승절 행사에서 러시아는 중국과의 동맹을 과시했고, 9월 3일에 열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는 푸틴과 김정은, 시진핑이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한편 얼마 전인 6월 나토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국방비를 자국 국내총생산의 5%까지 늘린다는 합의를 통과시켰는데, 이는 유럽 각 국에서 기존 국방비를 2~3배 이상 인상해야함을 의미한다.[16]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복지를 위한 공공재정은 줄어들 것이며, 기후위기 대응 또한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미국의 주도 아래 이뤄진 NATO의 동진정책과 러시아의 팽창적 야욕이 만나 벌어진 이 반동적인 전쟁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노동자민중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잔혹한 행위를 하고, 죽고 죽여야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7만여명에서 15만여명[17], 러시아에서는 최소 18만여명에서 25만여 명까지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다.[18] 발제 2에서도 강조되듯, 러시아에서 징집돼 사망한 이들 중 불비례한 숫자가 소수민족과 가난한 주변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나왔다.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NATO가 가져다줄 수 없다. 러시아도 가져다줄 수 없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노동자민중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노동자민중의 국제연대와 단결을 통해 반동적 전쟁을 끝내고 각국의 군사적 팽창 시도를 저지하여 노동자혁명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운동의 실마리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주변국에서 전쟁을 멈추고 나토와 푸틴 양측 모두와 독립된 노동자의 운동을 조직할 실마리가 얼마나 있는가? 전쟁 초창기인 2022년 4월에, 러시아 군을 지원하던 벨라루스에서 철도노동자들이 고의적 사보타지를 통해 러시아 군사장비 수송을 막고 손상시켰다.[19]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철도노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며 나토의 무기수송을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해 2주간 무기수송을 지연시켰다.[20] 안타깝게도 이러한 저항이 보다 폭넓은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역할해야할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러시아에서는 2022년 9월에 평화운동단체가 주도한 반전시위로 1300여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 7월 젤렌스키 정부의 반부패기관 통제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아직 그 이상의 대중적인 반전운동의 소식은 포착하지 못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벨라루스 철도노동자들은 친러 벨라루스 정권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에서 나토의 군사개입, 러시아의 침공을 반대한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탄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에 기반한 탄압도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LGBT는 서구가 퍼뜨린 극단주의 이데올로기’라며 성소수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어린이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증오심을 가르치고 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고 극우파시즘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중학교 시절부터 자동소총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애국심과 파란색, 흰색, 빨간색 깃발에 대한 사랑, 그리고 레닌에 대한 증오를 가르친다. 우크라이나에 자결권을 부여한 이가 바로 레닌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우크라이나인을 증오하도록 가르친다. 오늘 그들을 증오하도록 가르쳐 내일 무의미한 전투에서 마을마다, 킬로미터마다 완전히 황폐화된 동부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을 죽일 수 있도록 말이다.[21] 예를 들어, 오데사처럼 압도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도시에서도 우크라이나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선택 과목으로도 없다. 그곳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80~90%가 부모와 러시아어로 대화할 것이다. 최근 제출된 법안은 교실 내 교사와의 대화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 학생들 간의 사적인 대화에서도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 이 법안은 이미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받았다."[22] 한편 우크라이나 사회학자 볼로디미르 이셴코는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노동계급의 현재 조직화 정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다. "현재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노동운동은 전쟁 이전부터 이미 취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정치적 파업은 1993년 돈바스 광부들이 벌인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돈바스의 자치권과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파업조차 소위 '붉은 이사들'이라 불리는 소비에트 기업 경영진들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소비에트 붕괴 직후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으며, 파업을 정부로부터 특정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결국 파업은 조기 선거와 정부 교체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진정한 대규모 파업은 없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소규모 파업만 목격해왔는데, 이는 대개 특정 기업에 국한되거나 기껏해야 경제의 일부 분야에 그쳤으며, 정치화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참고로,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당시 정치적 파업을 시작하지 못한 점이 정부에 대한 영향력 부족으로 인해 폭력적 격화로 이어졌습니다. 정부는 시위자들에게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이 시위의 폭력적 전략을 추진할 기회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맞습니다, 이 전면적 침공 이후 파업은 금지되었습니다. 발생한 파업들은 아마도 비공식적 파업일 것입니다."[23] 그의 분석이 맞다면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 노동자계급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조직화해야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 여기서 국가자본주의 소련의 유산은 우크라이나에서 극우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 모두에 맞설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대안을 만드는 과정을 한층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셴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른바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의 주류는 ‘우크라이나 공산당’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보다 훨씬 수가 적은(전성기 때에도 1/100 정도 되는), 서구의 민주사회주의 및 자유주의 좌파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하고 군에 자원입대 하는 등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잔혹한 징병제가 시행되고, 또 다수의 우크라이나 민중이 전쟁 지속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24], 이들은 전쟁에 대한 입장을 조심스럽게 재검토하고 있다. 이셴코가 분류하는 마지막 부류의 좌파에 대해 이셴코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크라이나 좌파의 세 번째 세력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25]인데, 내가 “신소비에트 부흥”이라 부르는 현상의 일부로, 많은 구소련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크루즈키(kruzhki)’—문자 그대로 '동아리'를 의미—로 조직되며, 단순한 마르크스-레닌주의 독서 모임을 넘어선 원시적 정치 조직이다. 러시아에서 훨씬 더 대중적이어서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한다. 러시아, 벨라루스, 중앙아시아에서 크루즈키는 소련에서 단 하루도 살지 않았지만 자국 사회·정치 현실에 비판적인 수천 명의 젊은이들을 포괄하며,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그 현실을 다루는 수단을 찾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도 이 단체들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확장되었다. 탈공산화, 반러시아 민족주의 및 반공주의 정서 고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단체들은 거의 창립 초기부터 정부에 반대하는 동시에 혁명적 패배주의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100년 전 붕괴하는 러시아 제국에서처럼 사회 혁명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단체는 창립 초기부터 강제 징병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국제주의를 호소하며, 우크라이나 국가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다."[26]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 밖의 구소련 국가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이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흐름은 ‘친서방’ 노선도 ‘친러’ 노선도 구소련 국가의 노동자민중들에게 자유와 빵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물음의 반영일 것이다. 이미 여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 전쟁에 반대했고, 그 결과로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행위에 맞선 투쟁이 대중적으로 폭발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 방향이 틀렸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민중이 쇼비니즘 이데올로기에 짓눌리고 탄압받고 있는 상황은, 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고, 직접적인 탄압에서 좀 더 자유로운 전 세계 각 국의 노동자들이 더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함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한국 사회주의자의 일차적 과제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에 지속적으로 155mm 포탄 60만 발을 보내며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왔다. WP는 2023년 12월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보낸 포탄이 모든 유럽 국가의 공급량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북조선은 지난 2025년 4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군대를 파병했음을 공식 승인했다. 북한이 2024년 한 해에만 포탄 900만 발을 공급했다는 보도도 있다.[27] 러우전쟁을 통해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보내진 탄약과 군인이 서로 맞붙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고조로 강화되었고 앞으로도 강화될 미중패권대결은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끊임없이 고조시키고 있고, 이것이 열전으로 비화한다면 한반도에서의 대리전으로 나타날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을 중단시키고, 북한의 전쟁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노동자민중과의 연대일 뿐 아니라 한반도에 닥칠 전쟁을 막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갈 길은 아직 요원하다. 이재명이 8월 25일 트럼프를 만나 MAGA가 적힌 모자와 MASGA딜[28]을 상징하는 거북선을 선물하는 등 엄청난 아부를 하고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 “미리 일본과 만나서 대통령께서 걱정하는 (위안부) 문제를 다 정리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 입장을 더는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방비를 늘리겠다.” 이재명이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한 발언들이다. 정상회담의 모든 의제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에 관한 것이었고, 이재명은 모든 대목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임을 호소했다. 이로써 이재명은 자신에 대한 ‘오해’, 즉 친중·친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불식시켰고, “함께 갑시다”라는 주한미군 슬로건까지 인용하며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한국을 강조했다. 이에 더해 한국 자본가들은 대미 추가 투자 1,500억 달러를 약속하며 패권 유지를 위해 제조업 부흥을 꾀하는 트럼프를 기쁘게 했다. 물론 이는, 한국이 이미 약속한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마찬가지로 국책금융기관 대출과 지급보증으로 충당될 것으로 예상되어 한국 자본가들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미국에게 이번 회담은, 열강투쟁 격화 속에서 ‘한국은 누구 편인가’를 묻는 자리였다. 그리고 미국은,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 담긴 ‘국익 중심 실용외교’는 그저 수사일뿐, 한국은 확실한 미국편임을 확인했다. 이에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즉각 경고했다.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해 미국의 명령을 따른다면 자국 운명을 위험한 수레에 묶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핵을 영원히 내려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입장은 절대불변”,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 이런 이재명의 외교행보가 ‘현명’하다며 치켜세우는 목소리가 많다.[29] 그러나 이재명이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수장으로서 아무리 현명한 처세술을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 자본주의란 체스판의 규칙 아래 현명한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 이 게임은 한 턴이 지날 때마다 제국주의 패권대결의 논리를 따라 더 큰 전쟁과 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게임을 멀찍이 지켜볼 수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죽음과 비극을 눈앞에서 지켜봐야하는 체스판 위의 말이다. 이 체스판을 뒤집지 않고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재명 정부의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출발하자. 올바른 관점을 분명히 세우고, 노동자 국제연대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해나가자. ------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Lenin, 1917.06.15., The Ukraine, Pravda No.82.,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jun/28.htm [2] 통일시대, 2022, 「푸틴대통령의 2월 21일 연설 전문」,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703 [3] 배진영, 2018, 「평화만을 추구하다 전쟁 불러들인 네빌 체임벌린」, 월간조선, 2018년 6월,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806100042 [4] 구로카와 유지, 2022, 유럽 최후의 대국 - 우크라이나의 역사, 안선주 역, 2022, 글항아리, 제7장 [5] 같은 책. [6] 같은 책. [7] 같은 책, 8장. [8] Philippe Alcoy & Sasha Yaropolskaya, 2024, “There Is No Enthusiasm in Ukraine”: Interview with Volodymyr Ishchenko, Left Voice, https://www.leftvoice.org/there-is-no-enthusiasm-in-ukraine-interview-with-volodymyr-ishchenko/ [9] Nathaniel Flakin, 2022, Reading Rosa Luxemburg’s ‘Junius Pamphlet’ in Times of War, Left Voice, https://www.leftvoice.org/reading-rosa-luxemburgs-junius-pamphlet-in-times-of-war/ [10] Josefina L. Martínez and Diego Lotito, 2022, NATO and Imperialist Military Expansionism, Left Voice, Originally published in Spanish on May 21, 2022 in Ideas de Izquierda., Translated by B.C. Daurelle, https://www.leftvoice.org/nato-and-imperialist-military-expansionism/ [11] Claudia Ferri, 2022, Three Interventions That Show NATO’s Imperialist Role, Left Voice, First published on March 1 in Spanish in La Izquierda Diario., https://www.leftvoice.org/three-interventions-that-show-natos-imperialist-role/ [12] Julian Bergmann, 2025, Opinion: Amid US fallout, time for the EU to step up assistance to Ukraine, Devex, https://www.devex.com/news/opinion-amid-us-fallout-time-for-the-eu-to-step-up-assistance-to-ukraine-109458 [13] 아나스타샤 자누다, 2025, 「우크라이나 경제는 앞으로도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까?」, BBC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p9x9eeyxxyo [14] 국제노동자연맹 제4인터내셔널(LIT-CI)은 모레노-트로츠키주의 조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무기지원을 지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5] Nathaniel Flakin, 2023, Ukraine Is Not Vietnam, Left Voice, https://www.leftvoice.org/ukraine-is-not-vietnam/ [16] 2024년 나토 방위비 분담금의 평균은 GDP의 2.2%이다. [17] UALosses 프로젝트는 사상자를 이름별로 기록했고, 이에 따라 2025년 8월 7일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73,920명과 실종자 75,253명을 집계했다. [18] BBC News Russian과 Mediazona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2025년 8월 초 기준 189,051명에서 273,073명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19] Marius Rautenberg, 2022, Belarus Rail Workers Sabotage Russia’s Attack on Ukraine: Building an Independent Position on the War, Left Voice, First published in German on April 4 in Klasse Gegen Klasse, https://www.leftvoice.org/belarus-rail-workers-sabotage-russias-attack-on-ukraine-how-an-independent-position-on-the-war-can-be-built/ [20] Simon Zinnstein, 2022, Greek Railroad Workers Block Delivery of U.S. Tanks to Ukraine, Left Voice, First published in German on April 3 in Klasse Gegen Klasse, https://www.leftvoice.org/greek-railroad-workers-block-delivery-of-u-s-tanks-to-ukraine/ [21] Sasha Yaropolskaya, 2025, Sasha Yaropolskaya: “The Only Possible Response to the War in Ukraine Is Internationalist”, Left Voice, https://www.leftvoice.org/sasha-yaropolskaya-the-only-possible-response-to-the-war-in-ukraine-is-internationalist/ [22] Philippe Alcoy & Sasha Yaropolskaya, 2024, “There Is No Enthusiasm in Ukraine”: Interview with Volodymyr Ishchenko, Left Voice, https://www.leftvoice.org/there-is-no-enthusiasm-in-ukraine-interview-with-volodymyr-ishchenko/ [23] 같은 기사. [24] “‘승리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는 여론은 눈에 띄게 줄었다. 2022년에는 73%에 달했던 결사항전 여론이 2023년 63%, 작년 38%로 줄었고, 올해는 24%까지 떨어졌다.”, 이영경, 2025, 「전쟁에 지친 우크라 “결사항전보다 종전”···결사항전 여론 73→24%」,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072004001 [25]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스탈린주의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여기서 이셴코가 언급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소련에 살아본 경험이 없지만, 그 유산인 자신의 나라(러시아,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등)에서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는 점에서 정통 스탈린주의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어보인다. 다만 그 비판의 근거를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자장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고,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마오주의를 차용하는 중국의 젊은 마오주의자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6] 같은 기사. [27] 박현주, 2025, 「“북한이 포탄 900만발 보내자…러시아는 판치르 넘겨줬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0069 [28]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의 줄임말로,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전략적 협력 구상이다. [29] 심지어 조선일보조차 “불협화음 없이 무난하게 첫 단추를 잘 꿴 셈”이라고 평가했다.2025-09-01 | 조회 8,853 -
{기고}대만 노동자들이 10년 투쟁 끝에 얻은 ‘4+1일’ 공휴일 확대, 노동자의 국제연대로 장시간 노동 끝장내자대만 노동절 시위 "시대착오적 정권은 노동권을 무시한다" 사진: CNA 5월 9일, 대만 입법원은 새로운 공휴일과 노동절의 적용 범위에 공공부문 노동자를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이어진 10년의 투쟁 끝에 대만의 공휴일이 기존보다 ‘4+1일’ 늘어난 것이다. △신정 전날 △공자 탄신일 겸 스승의 날인 9월 28일 △광복절 겸 구닝터우 전투(Battle of Guningtou) 기념일인 10월 25일 △헌법절 12월 25일로 4일이 새로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기존에는 민간에만 적용되었던 국제 노동절인 5월 1일이 올해부터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도 확대 적용되어 사실상 1일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1인당 연간 공휴일 수가 기존 12일에서 16일로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안은 원주민 부족들이 전통적인 의식에 따라 3일을 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의 통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초과노동을 하고서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실질 급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사와 공무원들은 노동절에도 쉬지 못했다. 특히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도 쉴 수 없었다. 전국교사노조연맹(NFTU), 전국교육연합연맹(NFEU) 등은 이러한 불평등에 맞서 수년간 시민단체들과 함께 싸워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 2월,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과거에 감축되었던 공휴일을 복원하고자 입법안을 제안했다. 같은 해 5월 1일 노동절 시위에서 노동권 단체들은 주4일제,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공휴일 연장을 포함한 7개의 주요 요구안을 내걸었다. 대만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에 맞선 삼십여 년간의 투쟁이 만든 하나의 성과이다. 대만 노동운동은 독립노조를 형성하고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이며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2014년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파괴적인 전망을 인지한 청년학생들이 ‘해바라기 운동’으로 알려진 노학연대를 실현했다. 해바라기 운동은 2014년 3월에 약 24일간 이어졌던 입법원 점거 시위이다. 당시 여당인 국민당이 중국과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맞서 학생과 시민단체가 입법원을 점거한 것이다. 이 시위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 운동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과 저임금 문제 등을 언급하고 총파업을 촉구하는 등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는 광장 정치로 나아가고자 했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최저임금이 10년 동안 동일하게 유지되었을 정도로 노동운동이 위축되어 있던 상황에서 학생운동은 2014년에 해바라기 운동으로 절정을 맞이했고, 노학연대로써 노동운동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노동부의 ‘공휴일 7일 축소 및 40시간 근무제’ 도입 계획안에 맞선 공휴일 감축 반대 시위 및 주 40시간제 개혁 투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 5월, 이주노동자들은 계약기간 상한선 폐지와 함께 5월 1일 노동절의 공휴일 적용 범위 전면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5월 9일 국민당(KMT)과 인민당(TPP)이 법안을 공동 발의하였고, 57:50의 표결로 통과된 것이다. 다만 여당인 민진당(DPP) 의원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공휴일 확대는 단지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10년간 이어져 온 노동자 투쟁과 이에 연대해 온 민중의 여론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공공부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도 공휴일 및 유급휴가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등, 더 많은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쟁취한 것이다. 이를 위해 10년 동안 대만의 노동자와 시민은 여러 차례의 토론회, 지지 기자회견, 서명운동, 행진, 시위를 이어 왔다. 대만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입법안을 대만 노동자들이 간신히 얻은 승리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가장 약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국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공휴일을 둘러싼 노동운동 역사가 있다. 한국의 공휴일은 오랫동안 노동법상 휴일이 아니었다. 사업장에 따라 공휴일은 유급휴일이 되기도 하고, 노동일이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노동부가 내놓은 표준취업규칙(2008년)을 기반으로, 사용자들은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거나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등 편법적인 작업을 벌였다. 2023년에 와서야 5인 이상 사업장에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이 의무화되었으나(‘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단계적 민간 적용),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은 휴업수당 없이 무급으로 쉬거나 가산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근무해 왔다. 이렇듯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의 위험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있었다. 2014년 민주노총의 ‘노동절 유급휴일 권리찾기 운동’, 2017년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운동’ 등을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 투쟁에도, 2025년인 지금까지도 한국 공휴일에는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당장 250만명 가량의 5인 미만 사업장 임금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공휴일에도 법적 유급휴일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만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한국보다 평균임금이 낮고, 노동운동 역시 한국보다 취약하며, 점점 길어지는 노동시간과 높아지는 노동강도에 더불어 급여는 3년 연속 줄어 왔다. 또한 평균적으로 8일마다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등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자본가들이 실적평가제나 책임제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고 초과근무를 요구한다. 노동시간이 가장 높은 제조업에서, 노동자들은 매달 18.1시간 초과 근무한다. 이 외에도 의료산업과 배달 산업 등에서도 초과노동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초과노동 문제는 일자리 감소에 따라 실직을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이 야근을 감내하며 극심해졌다. 이는 7.6%에 불과한 대만 노동조합 조직률과 직결되어 있다. 실업의 공포로 노동자를 규율하며 초과노동으로 이윤을 짜내는 대만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고 거둔 이번 승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만 노동자들의 승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의미가 깊다. 한국 자본주의는 각 산업 노동시간 연장으로 이윤축적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추진과정에서 이미 반도체산업 연구개발인력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 2025년 3월 서일준 등 20인이 발의한 ‘조선산업 지원 특별법안’ 역시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노동을 당사자 합의로 가능케하자고 명시했다. 전 세계 자본가들은 늘 ‘대만 노동자들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산업의 생존을 위해 더 오래 일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산업경쟁력 확대를 위해 수당도 없이 일한다’며 자국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를 억누른다. 노동시간 연장과 착취 강화 시도를 노동자의 국제연대로 끊어내야 한다. 심화하는 위기, 착취 강화로 연명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자. 참조 Labor activists protest plan to reduce holidays (15.09.15, Taipei Times) Labor groups protest to push shorter work hours (15.01.07, Taipei Times) Taiwan: 7 years since the Sunflower Movement (21.04.07, In Defence of Marxism) Groups to demand four-day workweek on May 1 (25.04.23, Taipei Times) Migrant worker groups urge lifting of employment length restrictions (25.05.18, Focus Taiwan) 工人鬥陣十年 國假終於增加 (25.05.09, 公民行動影音紀錄資料庫(Civilmedia@TW)) Taiwan passes new law adding 4 additional national holidays (25.05.09, Focus Taiwan) 壓垮台灣勞工的高工時與血汗過勞 (25.04.30, International Socialist Alternative Taiwan) Four new national holidays approved by legislature (25.05.09, Taipei Times) Taiwanese Workers Have Shown Us How to Gain Ground in the Neoliberal Era (22.06.12, Jacobin)2025-08-06 | 조회 7,8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