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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이탈리아 - 피렌체 아침에 출발한 비행기가 약간의 연착을 거쳐 피렌체 공항에 도착한 것은 정오 남짓.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인데도 바로 앞의 정류장에서부터 군인들을 마주쳤다. 아, 지금 온 트램은 시내로 안 간다고요? 파리에서 런던으로 넘어갈 때의 영어가 이렇게나 친근한 언어였던가 하는 기분과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어는 한 문장 중에 한 단어만 정도 귀에 들어온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 내내, 어쩌면 경찰보다도 많은 군인을 길에서 마주친다. 밤에는 검문에 걸린 듯 군인에게 둘러싸인 사람들도 본다. 마지막 날 들른 볼로냐 중앙역에는 군용 인식표를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있었다. 관광도시라서? 혹은 착륙하자마자 외교부가 칼같이 보내온 ‘치안과 마약에 주의하라’는 문자와 같은 맥락으로? 캐리어와 함께 매장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건너와 체크인을 하고 시간을 보니, G 동지가 연결해 준 오늘 시위에 참석하는 L 동지를 미리 만나 설명을 듣겠다는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하다. 시작 전까지는 도착하겠다는 연락을 보내고 간단한 세부사항을 묻는다. “공장을 점거하여 집단해고된 노동자들이 친환경적이고 자주적인 공장 운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의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며, 대개 경찰과의 충돌은 없다.” 좋군요, 우리도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첫 끼로 햄과 치즈가 든 피자-빵(아마도 파누오초)을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해치우고는 버스에 오른다. 숏폼으로 시위 영상을 보는 승객의 옆자리에서 금속노조 조끼를 입는다. 10월인데도 아직 여름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햇살이 따갑고 날씨가 더워서, 노조 모자도 가져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Collettivo di fabbrica GKN 주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는 다비드 상이 전시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려 대학 뒤편의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경찰이 둘쯤 보이고, 가방에 여러 개의 퀴어 플래그 뱃지를 달거나 쿠피예를 걸치거나 노란색 깃발(나중에 현장의 동지에게 유명한 반군사 단체의 깃발이라고 듣는다)을 든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걸 보고 안심하고 따라붙는다. 졸업 시즌이라 붐비는 대학교 앞을 돌아 샛길로 들어가면 광장에 도착한다. 집회 시작 전부터 투쟁 굿즈 가판대며, 동지들이 선전물을 나눠주는 작은 테이블, 모금함을 든 사람이며 책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아나키즘이나 반-시온주의 상징 등과 함께, 한 손에는 팔레스타인기를, 한 손에는 투석구를 든 유명한 시위대의 사진이 뱃지로 판매되는 것을 보며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동시에, 그 모습이 오늘 시위의 테마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매대 앞에서 가진 현금을 가늠하다 슬로건이며 핀버튼이며 마그넷 같은 것을 몇 종 산다. 배포대를 접을 준비를 하는 동지들과 인사하고 유인물을 받아든다. 동지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는 'Solidarlity' 한 단어만이 귀에 꽂혀온다. 다양한 단체의 깃발들이며 행진을 위해 길게 펼쳐진 현수막들은 붉은색과 흰색이 주된 색조로, 천 위에 손으로 쓰고 그린 것이 생각보다 많다. 확성기를 들고 행진 내내 노래를 부르게 되는 영어를 잘하는 동지가 '우리를 잃어버리면 이 못생긴 깃발을 따라오면 돼'라고 했던 오늘 함께하게 될 조직의 깃발도 붉은 천 위에 손으로 쓰여있다. 크기가 크거나 깃대가 길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깃발이 마치 손깃발을 키워놓은 양 흰색 플라스틱 깃대에 천 전체가 걸려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비드가 붉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노동 의제 시위이겠거니 한 것 치고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상징들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행진이 시작되면 동지들이 내내 부르는 노래들 또한 그러하다.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자니 행진이 시작할 때쯤 '저런 걸 찍어야지'라며 한 동지가 앞쪽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저게 뭐냐고 기겁하자 '스포츠 경기 응원 등에서도 사용되는, 근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덕덕고(DuckDuckBot. 구글 등과 달리 개인정보 보호를 모토로 계정 기능, 검색어 수집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일부-오픈소스 검색엔진)로 'Fumogeno'의 이미지 검색 결과를 보여줘서 에펠탑 앞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납득한다. 한편으로는 화기로 오인되지는 않는 것인가? 경찰에게 제지받지 않아? 하고 한국에서 온 연대자로서는 머리가 멍해진다. Insorgiamo: '기립하라, 봉기하라'. 시위의 주최단위인 GKN 피렌체 공장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사회적 운동. 기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 저항운동의 구호. 눈부신 햇살 아래 어느 단위든 씩씩하게 행진하지만, 나의 일행들은 한눈에 봐도 작은 단위인데도 쉼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고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대오 안에서도 존재감 있게 느껴진다.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클라이맥스. 영원히 불나비를 부르며 진격하는 말벌부대를 상상해보라. 탄핵 정국의 '축제 같은 시위'에 대한 누군가의 엄중한 지적이 한층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잠시 대오가 멈추고 노래가 잦아드는 쉬는 시간에도 지치지도 않고 서로 장난치고 입을 맞추고 방금 전까지 부르던 네타냐후를 규탄하는 노래를 어깨에 힘을 빼고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그 활력에 감탄한다. 동시에, 시위의 행선지도 종료 시간도 모르고, 불리우는 노래도 구호도 평소와는 모두 다르고, 몇 시간 전에 처음 밟은 땅의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도 외치지도 못해서 동지들의 성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조끼 주머니의 '응급용 카주'를 꺼내 열심히 불던 입장에서는 '나도 저런 동지들이 있는데, 저런 거 할 줄 아는데' 하고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고, 동시에 내가 광장에서 만나온 동지들을 하나씩 겹쳐보며 나름대로 마음으로 다가서 보기도 한다. 파리와도 런던과도 다른 직선적인 건축양식.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위로 맑은 날씨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며 풍경을 만들고, 몇 시간에 걸쳐 걷다 보면 해가 기울어 감에 따라 시가지는 점차 얼굴을 바꾸어간다. 통일감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은 평범한 가정집에 내건 팔레스타인 깃발이며 인클루시브 프라이드 플래그, 낯익은 배색으로 늘어놓은 빨랫감, 무심하게 난간에 걸쳐진 쿠피예, 때때로 육교 위에서며 가게 위층이며 열린 창 너머로 환호를 보내오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대오는 컸고, 경찰은 보이지 않았고, 퀴어문화축제나 퇴진광장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종류의 환대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와 빈도로 접해서 얼떨떨해진다. 여기서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좌파 운동 바깥에서도 이렇게나 지지를 얻고 있단 말인가? 대오가 잠시 멈추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모자의 머리띠는 무슨 의미인가?” 단결, 투쟁,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로고입니다. “어디서 왔나?” 한국입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떤가?” 어, 오늘 열린 2주년 집회에 천명 정도 왔습니다. “좋군. 오늘 뉴욕에서 열린 No Kings 시위에는 10만 명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인터내셔널?) 그래, 인터내셔널, 당신은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시위에 나와 우리를 지지해줘서 고맙다.” '이 이야기의 올바른 편'이라는 단어가 서정적으로 들림과 동시에 아주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듯한, 유럽에서 내내 느껴왔던 오늘의 나의 운동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연결된 거대한 흐름 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얼마쯤 지나자 같은 노래가, 같은 구호가, 반복되는 단어가 점차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이며 이스라엘이며 팔레스타인이며 평화이며 종식 같은 단어들을 '고맙습니다'나 '미안합니다'보다 먼저 익히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시위대의 기세도 약간은 잦아들어 대오가 잠시 멈추면 차도에 앉거나 담배를 말아 불을 붙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프랑스도 한국에 비해 흡연에 관대하기는 했지만, 행진 한복판에서? 전노대며 결의대회 때마다 들리는 사회자의 '흡연은 대오 밖에서'라는 잇따른 고지와, 대오가 멈추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옆으로 빠졌다가 어느새 돌아오는 금속노조의 아저씨들을 떠올린다. 운동의 실천과 면면에서는 의제만 조금 바뀌어도 언제나 새로움을 느껴왔지만, 정말로 함께 걸으며 무언가를 외친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 Scuola per la Palestina: '팔레스타인을 위한 학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탈리아 교사 네트워크 Società operaie di mutuo soccorso (SOMS): 이탈리아 노동자 상호부조협회. 1848년 혁명의 영향 하에서 탄생함. '마르완 바르구티를 석방하라' '투쟁하는 GKN 노동자들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FLC-CGIL Università di Firenze: '피렌체대학교 이탈리아 노동총연맹(Confederazione Generale Italiana del Lavoro, CGIL) 지식노동자연맹(Federazione Lavoratori della Conoscenza , FLC)' '공공재 수호를 위해 단결' '누구든 경찰을 싫어한다(프랑스어)' 몇 시간씩 걸어 슬슬 지쳐갈 때서야 하루 동안 그다지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조금 긴 휴식 이후 행진이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자, 기운을 찾은듯한 시위대와 대조적으로 나이든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인도 쪽으로 빠져나와 대오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눈에 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언제 끝나는지 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점차 시가지를 벗어나, 해가 기울어 서늘한 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 아스팔트가 깔리고 근처에서 차가 다니는 황량한 국도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가드레일을 몇 번 넘다 보니 일행들과도 흩어지고, 그럼에도 여전히 앞뒤에서 한 방향으로 걷고 있는 대오를 따라간다. 걷다 보면 머리 위에 걸린 표지판의 공항 마크가 눈에 들어와 불현듯 오늘의 목적지를 깨닫는다. 아, 공항. 사람도 많고 좋지. 뭔가…선전전이라도 하는 건가? 한참을 걷다 보면 예상대로 오늘만 두 번째 보는 낯익은 공항이 보이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상상 이상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의 유리문을 들어서자 모든 곳에 사람이 차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접한 새로운 전략, '주요시설 점거'. 이 정도의 시위대가 이 정도의 공간에 들어가면 물리적으로 공항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밀집한 사람들의 냄새와 열기. 쉼 없이 공간 안을 울리는 구호와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거나 가끔 양 주먹을 쥐어 보이는 일종의 항의행동을 한다. 주최단체의 긴 현수막이 공간을 만들며 선전물의 역할을 한다. 드문드문 나갈 길을 찾지 못해 당황한 이용객들이 보인다. 시위대를 따라 앞으로 나가다 보면 공항의 반대쪽 끝에 가까워진다. 한쪽 끝에는 한 무리의 세룰리안 블루 색의 헬멧과 검은 슈트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아마도 이 나라의 기동대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젠더를 인식할 수 있는 기호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고 느껴 약간의 의문에 빠진다. 머잖아 그들이 삼단봉으로 나보다 조금 앞 열에 있던 참가자들을 구타한다. 순간 얼어붙기도 잠시 곧이어 사람들이 기동대 쪽으로 움직이며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이 사람들에게 밀집 사고 트라우마는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 반, 항의 반의 생각을 머릿속에 띄우면서도 앞뒤의 사람들에 섞여 속절없이 한 사람분의 부피를 보탠다. 얼마지않아 압력이 사라지고-대치가 풀리고-저지선을 넘는 데에 성공해 그때까지 기동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오른쪽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걸음을 옮긴다. 기동대 몇몇만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난간 너머로 삼단봉을 휘두르며 때늦은 저지를 시도한다. 2층에는 탑승 게이트가 보이고(도착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작은 공항이다), 여전히 팔레스타인 깃발 한 쌍이 시위대의 머리 위에서 힘차게 춤추고, 1층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영상을 촬영하자 몇몇이 저지하는 제스처를 건네 스마트폰을 내리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는걸 보고 눈치를 보며 다시 카메라를 켠다. 넋이 나간 상태로 아직 본 적 없는 채증 카메라를 뒤늦게 염두에 두고 구호가 적힌 슬로건으로 얼굴을 가리자 누구는 손짓으로 내리라고 하지만('테러리스트'를 연상해서?) 막상 해산할 때 보면 여러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원이 공유하는 명확한 룰은 성립하기 힘들다.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선언하고 사람들이 중간중간 환호한다. 한층 기세를 얻은 노래와 구호가 이어지고, 그것이 잠잠해지면 대오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올라온 계단으로 천천히 질서 있게 내려온다. 이 많은 인원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기동대의 저지선 뒤쪽에 있던 작은 카페의 진열장 유리가 산산조각 나 계단 앞부터 쏟아져 있다. 아마도 충돌에 휘말려 부서진 거겠지. 혹은 시위대에 대한 반감을 염두에 두고 기동대가 부쉈거나. 'Sigfrido Ranucci(이탈리아의 언론인. 이 시위가 있기 이틀 전 마피아에 의한 차량 폭탄테러의 표적이 되었다.)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다. 기립하라!' 부서진 진열장. 바닥에 유리조각이 쏟아져 있다. 나가는 길은 들어올 때와는 반대쪽 출구라 내려오면 머잖아 자동문을 마주친다. 공항을 나서기 직전 인파 속에서 L 동지가 나타난다. 나의 얼굴을 보며 걸어온 첫마디는 “나는 몰랐다”. 생각지 못한 강도의 현장을 맞닥뜨린 충격과의 간극에 뭔가 따지고 싶어졌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게릴라 행동이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주차장에서 다시 북소리와 음악과 구호를 발산하며 대오가 모이기를 한동안 기다리고, 공항을 나와 아스팔트 도로 위로 오르면 먼 하늘에서부터 희미한 저녁노을이 번져온다. 아까의 선언 같은 것으로 힘을 얻은 모양인지 시위대는 다시 목청껏 노래하고, 이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나는 동지들 곁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터덜터덜 걸으며 이제는 뇌리에 지져진 돌림노래를 카주로 따라 연주한다. 그런 와중에도 하늘은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어가고 공항을 나오면서부터 심심찮게 피어오르던 붉은 색과 녹색의 연기며 때때로 쏘아 올리는 불꽃 또한 허공을 가르며 감색으로 깊어져 가는 배경을 점차 아름답게 수놓는다. 여러 가지 생각은 들지만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처음 출발했던 곳 인근에서 대오 정비를 하고 해산할 즈음엔 이미 밤이 깊어 사위가 어둑하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네 명 정도의 동지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서다, 행진 진행 방향의 끝에서 경찰 밴 몇 대와 삼단봉과 방패를 들고 있는 십수 명의 기동대를 찾아내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상상 이상의 현장이었음에도 아무도 연행되지 않은 것에 새삼 안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2층의 열린 창 너머로 환호하며 인도를 걷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가족(아마도 아래층 가게를 운영하는)들과 거기에 응답하는 동지들의 대화가 퍽 다정하게 들린다.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다 창 아래의 피자가게로 별 고민 없이 들어선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나에게 돌아온 첫 마디는, “그 옷은 무엇인가”. 우리 노조 유니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조끼가 노조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매번 설명하면서 다시 놀란다. “한국의 전쟁무기 수출은 팔레스타인 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어, 우리 '진짜 사장'은 한화인데, 한화는 '한국 화약'의 약자이고 당연히 전쟁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느 정도인가” 음…오늘 2주년 집회에 천 명쯤 왔다. 그래도 작년보단 많아진 것이다. “괜찮네, 잠깐, 몇천? 아니면 일천?” 일천(현장의 동지로부터 시작 시에 집계된 인원만 들었다). “적군…. 하지만 거긴 머니까 말이지” 이 대답에 새삼 지정학적 요건이라는 변수를 상기한다. 지중해의 맞은 편. 가자행 선단을 출발시킬 수 있는 위치. 수무드 선단의 안전에 따라 파업을 결의한 바다 위의 항만노동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대체로 번역기를 사용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행동력이나 언어나 IT능력과 같은 교섭력이 좋은 비교적 젊은 동지 한 명이 소통을 맡고, 연장자로 여겨지는 차분한 인상의 한 명 정도가 토의의 중심이 되어 의견을 내거나 취합하거나 하는 흐름으로, 이와 비슷한 모습은 다음날 로마에서도 보게 된다. 골판지 상자 위에 무심히 올려져 나온 나폴리 피자에서는 앤초비의 짠맛이 두드러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 하나당 피자 한 판으로, 일행과 나누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접시의 튀긴 공 같은 것 중 붉은 색은 아란치니. “삼성 노조가 파업한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의 의미인가?” T 동지도 전국삼성노동조합의 파업 이야기는 알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새삼 삼성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놀란다. 더불어,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현재 이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주된 담론으로 여겨지는지를 체감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파업은 아니라는 대답에 이어 겸사겸사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나 전삼노 간부들의 비리며 한국에서는 정치파업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를 거쳐 노조 간부들의 총파업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노조관료주의는 아직 국적과 소속을 불문하고 어느 테이블에서도 실패한 적 없는 주제로, 대화를 통해 이탈리아 또한 비슷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다. “오늘 시위는 마음에 들었나?” 마음에 들었지만,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공항 점거는 사전에 계획된 건가? 우리는 오늘 시위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퇴각했나? 왜 공항 2층에서 사람들이 기뻐했나? 일단 나는 이 시위를 공장 자주관리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의제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계획되었지만 고지되지는 않았다. 기뻐한 것은 아니고 점거를 통해 우리의 강력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동의의 의미로 환호했다. 오늘 우리가 옹호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을 했기 때문에 해고되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까지 하진 않지만, 최근 몇 주간 교착된 정세로 인해 가중된 압력이 터져 나온 것이다.” 요컨대 위력 행사이군. 왜 해고노동자를 지지하는 시위가 동시에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인지 납득했다고 전한다. 점거현장의 분위기와 대답을 겹쳐보며 '데모'가 무엇의 약자인지 새삼 깨닫는다. 시위에서 나온 구호나 노래들을 정확하게 알려주면 감사하겠다고도 말한다. “'멜로니 정부는 물러가라, 모든 것을 봉쇄하자, 파업하라, 파업하라' 같은 반정부 구호를 많이 외쳤다.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강에서부터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같은 구호도 외쳤다.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위한 구호도 많이 외쳤다.” 이탈리아어 원문을 훑어보며 그게 이런 뜻이었군. 하고 끄덕인다. 나는 이제 이탈리아어로도 '파업하라'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감사합니다'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른다. 말이 나온 김에 좋아하는 민중가요도 물어본다.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부른 'Fischia il vento'를 제일 좋아하지만 인터내셔널도 좋아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 고민 끝에 임정득 가수님의 '벨라 차오' 번안이나 금속노조가, 팔레스타인 정기집회에서 자주 듣던 'Leve Palestina, krossa sionismen' 등을 답한다. 한국에서 '파르티잔(빨치산)'은 과격파 좌파 운동가를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금속노조가의 가사에 흥미를 보이기에 영상을 찾는 김에 나온 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고공해제 영상도 보여준다. 내친김에 2022년 파업 당시 부지회장의 사진도 보여준다. 눈빛이 형형한 다박수염의 남자가 올라간 이유를 대답하다 보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거쳐 한국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 이야기까지 넘어간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좌파 전반의 통일에 대한 희망, 우파의 전쟁 위협과 매카시즘의 수단,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 이북에서 온 조부의 이야기는 이 땅에서 드물지 않다는 설명을 한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이 주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한국인으로서는 의외의 접근에 잠시 멍해진다. 오늘만 몇 번을 이렇게 되는 것인지. 북한이 기근과 빈곤을 거치며 퇴보한 이유 중 하나로 소련의 붕괴를 꼽을 수는 있겠으나, 북한에 이미 자유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았으며 돈이 있다면 외국의 문물도 어느 정도 접할 수 있다는 것, 나의 관점에서 현재의 북한은 단순한 세습독재국가에 가까우며 매체에서도 자본주의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모순이나 병폐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나면 저쪽에서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심화된 질문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이 굶고 있는가?” 북한 내에서 외국 통화가 더 가치가 높은 현상이며, 외국 친지로부터의 송금이나 외국 주재 요리점, 단속을 피해 중국으로 일하러 다녀오는 등이 GDP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한 다음, 음식이 아예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가치체계의 붕괴와 불평등이 결과적으로 인민의 배를 고프게 한다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몇 년에서 몇십 년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참고하므로 현재 정세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고도 말한다. 동지들이 접하는 주류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자,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좌우를 막론하고 이야기되어온 익숙한 이미지이지만, 어쩌면 저 동지들에게는 오늘 새롭게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생각한다. 한국에는 사회주의자 K-팝 스타가 있는지도 물어온다. 표정을 보니 이전보단 격의 없는 질문이라고 느껴져 짧은 대화 속에서도 거리감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정치적 지형 때문에 가수가 자신의 정치신념을 밝히기는 쉽지 않으며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없지만 부적절한 노동환경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한 아이돌은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 해산할 때가 다가오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전략에 대해 묻는다. 피로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한국의 분단이 미-소의 대리전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적 측면,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하다고 말하자 좌중은 일제히 환호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는 길에 천과 깃대가 분리되지 않은 깃발을 말아쥐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다 누군가가 받아들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어딘지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져, 다음에 또 봐요, 하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돌아가는 길에 신나서 셔터를 눌렀지만 이 정도는 서막에 불과했다 두어명의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검문(같은 것)을 겪고 있는 장면을 마주친다 [지난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 [다음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3) 이탈리아, 스위스, 다시 한국2026-01-27 | 조회 9,629 -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1) 프랑스, 영국프랑스 가족의 개인전으로 10월 초 파리 방문 예정이 잡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생각은 전부터 있었지만 급하게 계획을 시작해, 가이드 북 한 권에 기대어 파리-런던-로마-인터라켄 루트로 일정의 개요만 정한다. 마침 9월의 파리는 한창 총파업으로 떠들썩했다. 9일 아침에 출발해, 태양의 운행을 거슬러 열 네시간을 날아가면 현지 시각으로 같은 날 오후에 착륙한다. 줄곧 밝기만 한 창 옆에서 내내 졸면서 마비된 시간감각까지 더해져 하루를 득본 기분을 느낀다. 시내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가족과 함께 시내에 머무르며 숙소와 갤러리가 있는 파리 3, 4구역 위주로 움직였다. 남쪽으로 강을 끼고 상대적으로 도시의 부가 집중되는 지역으로, 관광지나 미술관이나 브랜드 매장, 그리고 실외기도 설치되지 않아 에어컨이 없는 오래된 건물들이 잔뜩 있었다. 3구의 퀴어 씬에 관심이 있어 LGBT 센터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고, 대신 인근의 문 앞에 프라이드 플래그를 다섯 개쯤 건 성인용품점이나 횡단보도의 무지개 정도만 눈에 담는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커다란 그림 곳곳에는 프랑스 국기의 모티프가 산적해 있다. 이 사람들에게 예술과 혁명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파리 3구 인근에서 찍은 사진. FREE PALESTINE(팔레스타인에 자유를), EAT The Rich(부자를 잡아먹자), ACAB(모든 경찰은 후레자식이다), Fuck le macronisme(마크롱주의 엿먹어라) 같은 낙서들이 눈에 띈다. 13일 오후에야 혼자가 되어 런던행 유로스타가 있는 10구의 파리 북역 근처 도미토리로 이동했다. 이전 일정에서도 가끔 경찰에 대한 반감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표시하는 그래피티나 스티커를 보긴 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역(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승을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에서 내려서 도미토리로, 또 거기에서 북역이며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등을 오가는 이 하루 저녁 동안에는 그동안 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좌파적 색채의 포스터나 연대의 슬로건을 볼 수 있었다. 파리 북역에서 파리 북역은 '이민자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치안이 나쁜' 지역이라는 인터넷의 '경고'를 떠올린다. 파리 북역 인근은 세계요리점이나 수입 식료품점, 전통의상점 등이 있는 서아시아계 이민자 거리로, 담배 같은 물건들을 파는 행상인들이 종종 있었다. 도미토리에 도착할 무렵 다음날 북역 인근에서 만나게 될 T 동지에게 저녁의 집담회 일정을 추천받아, 일정을 변경해 체크인 후 바로 출발한다. 목적지는 북역에서 고속열차로 한 정거장을 가면 나오는 93번 지역인 생드니. 역에서 무역노조 사무실까지는 북역보다 피부색이 어둡고 아프리카계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고, 파리 중심가보다는 좀 더 현대적이고 개량된 건축양식의, 길에는 트램이 다니고 통속적인 품목이 늘어선 슈퍼나 저렴한 빵집 등이 있는 한적한 주택가였다. 교통이나 입지,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파리 시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위성도시로 느껴졌다. 생드니에서 역에서 주택가로 들어가자 T 동지가 연결해준 집담회 참가자 I 동지가 근처까지 나와 같이 올라갔다. 긴장한 탓에 동지의 유창한 영어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사무실을 향했지만, 무역노조 사무실을 보고 웃으며 카메라를 꺼내 들자, 시선을 따라간 끝을 보고 같이 웃는 것으로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한다. 생드니의 무역노조 사무실. 이탈리아에서도 종종 보게 될 스프레이로 그린 낫과 망치를 이때 처음으로 보았다. 집담회가 이루어진 공간은 작고 조명이 약했다. 참가자들은 철제 테이블을 ㅁ자로 두고 둘러앉았고, 문이 열려있어 방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 쪽에 의자를 두거나, 비치되어 있는 남은 책상에 걸터앉았다.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회자가 노트북을 보며 긴 이야기를 끝마친 다음 다른 동지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통역 앱을 켜거나 I 동지에게 묻거나 하면서 포착한 개념들: [9월 사회운동과 그 결과 | 노조관료화(투쟁을 꺼려하는 간부들) | 마크롱의 재선 요구와 제도권 좌파 정당들의 선거만능주의 | 투쟁을 통해 급진 민주주의 요구를 제시할 필요성 |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이탈리아의 총파업 | 9월 운동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조직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조직의 사후전략 | 마린 르펜에 대한 비판(이베리아 포퓰리즘(스페인 복스당)과의 연관?) | 제5공화국의 끝 | 마크롱에 대한 반감(탄핵이라는 단어가 나옴) | 2019년의 영향(체념? 소진?) | 학생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파편적인 정보들이었지만 시위와 총파업을 기대하고 도착한 파리가 생각보다 조용해서 의아했던 부분들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그들은 지난 정국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계획하고, 9월에 조직된 사람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4월 20일의 서울에 도착해 비상행동 시위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6시 반부터 시작된 집담회는 8시 반 정도까지 이어졌고, 우리 이후에는 다른 팀이 회의실을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뒤풀이는 인근의 프렌치프라이가 맛있는 노천 바. 프랑스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많다. I 동지와 번역기로도, 또 영어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부르주아지bourgeoisie'나 '레짐Régime'과 같은 단어들이 프랑스어의 발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혁명의 나라라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22년 도크게이트 점거와 25년 고공농성을 포함한 거통고의 투쟁 이야기를 하자 멋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감사와 함께 따라오는 석연찮음을 말로 만들어, “그러나 우리는 선진 노동자와 후진 노동자 간의 간극이 크다. 프랑스처럼 다 같이 안전한 총파업을 하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강력한 투쟁을 해왔는가?” 하고 되물었다. 단어를 고르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동지에게 “Dangerous?” 하고 묻자 “위험한” 투쟁은 아니라고 하며 예시들을 들어 보였다. “이를테면 연료를 수송하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한다면 경찰차도 도로 한복판에서 서버린다”는 말을 하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결정적 액션'으로 주요 도로나 식료품점을 봉쇄하는 것을 언급했다. 한국의 노조운동에 결합한 관점에서 '봉쇄'라는 개념에 의아함을 느끼고 되묻는다.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점거할 수 있어? 실패한 총파업 같은 건가?” 하고 물으니 I 동지는 조금 난감해하다, “9월과 같은 정치, 경제적 요구가 결합한 대규모 운동에서는 수십만명 규모의 대규모 시위와 기업 봉쇄 등이 연계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내일 동지들과 만나서 더 나은 설명을 듣도록 하라”고 이야기한다. 자리를 정리하며 건넨 “마지막으로, 당신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동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철도노동자인 A동지(모로코계 프랑스인으로 철도노조 파업을 포함한 다양한 캠페인을 주도했다.), 변호사인 E동지(노동 변호사이자 운동가.), 고등학교에서의 T와 대학 시절의 동지” 같은 사람들을 언급한다. “T 동지와 고등학교 동기였어요?” 하고 되묻자 어떤 체제나 구조와 관련된 것 같은 전부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문장의 의미는 다음 날 T 동지와의 만남에서 대략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다음 날, T 동지와 만나기 전에 에펠탑과 마르스 광장을 구경한다. 마르스 광장 쪽으로 발을 옮기자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의 큰 슬로건 현수막, 뭔가 타는 냄새와 회색의 연기. 이어지는 환호성. 이것은…트랙터? 그리고 멀찍이 서 있는 방패를 든 경찰들…. 구경하느라 약간 늦을 것을 고할 겸, 연기와 타는 냄새에 놀란 마음으로 T 동지에게 “마르스 광장인데, 트랙터가 있다. 무언가의 데모인가?” 하고 설명하니 ‘좌파 농민단체의 데모’라고 했다. 발언 사이사이에 “oui(프랑스어로 ‘그렇다’라는 뜻)” 같은 화답을 들으며, 파리에도 전봉준투쟁단과 ‘맞습니다!’가 있군…같은 생각을 하며 떠나려는 찰나 시위대는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곧이어 EDM이 나오며 몸을 들썩이거나 바닥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T 동지는 “이들이 파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최근 조직된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들 트랙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니 “우리 쪽에는 농민 의제 시위에 그렇게 쿨한 이미지는 없어서 의외”라 한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지요. 방패를 들고 각반을 찬 경찰(기동대?)들.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다. '유기농 식품이 암을 예방한다' 농민연맹Confédération paysanne의 EU와 메르코수르 4개국의 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북역 근처의 소박한 알제리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T 동지에게로 서둘러 향한다. T 동지는 일어가 유창한 일본계 프랑스인으로, 대화하는 동안 다른 프랑스 동지들의 질문도 일어로 번역하여 전달해주었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언급하며, 아프리카에 가지 않는 한 이런 제대로 된 알제리 음식을 먹어볼 일은 없으니 가족이나 친지들이 파리를 방문할 때에는 데려온다는 설명에서 연속혁명의 반제국주의적 지향이 생활속에 녹아서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패스트리로 고기나 야채 등을 감싸 튀긴 알제리 요리 부렉Bourek 자리에 앉아 들은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은 수험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들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당사자 단체가 있어?”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얼떨떨하며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동지의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의 소자고령화(저출생 고령화의 일본식 조어) 문제는 수험압박과 관련이 있어?” “물론, 당연하게도.”라고 답했다. 이날 자리한 동지들은 (기억하기로는) 조직 산하 학생단체의 학생 운동가들로, 대학 내에서의 활동이나 조직화는 물론이고, “우리는 고등학생들을 조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의' T. 간밤의 I 동지의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동시에 고등학생 운동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조어였다. “한국의 대학생 운동은 어때? (일본의 전학련과 같은) 관련 단체들은 있어?” 라던가, 일본의 6,70년대 학생운동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의 전국 대학 단체 선거에서 동지들이 속한 조직 쪽의 사람들이 많은 득표수로 당선되어 대학 사회에서의 약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곧 올 동지는 파리 8대학에 버금가는 우수한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것과 같은 '대학 이름이 정체성이 되는' 설명을 들으며 여기에서조차…라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쪽에서 대공장노조의 이름이 거론되듯 학생운동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활과 운동의 주된 무대가 곧 정체성이 될 수 있으리라는 묘한 납득을 얻기도 하였다. 내가 나온 대학은 재학 당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행렬의 선두에 있었기에 소속감이나 주위 환경등의 영향으로 당사자로서의 대학생 운동은 참가한 경험도 아는 바도 관심도 많지 않았으므로,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지와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동시에, 관심사가 명확한 동지의 질문들에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설명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사회가 뒤숭숭해지며 마린 르펜과 같은 극우가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아나키스트나 마오주의와 같은 극좌(이 단어를 건조한 지칭으로 들은 것은, 살면서 사회주의 기초학습을 포함해 세 번째였다) 사상 또한 힘을 얻고 있으며, 우리 조직 또한 그들을 고려하여 활동의 전략을 짜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범좌파 자체가 세가 적어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극좌라는 구분조차 잘 안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마오주의자 개인과 아나키스트 단체를 본 일이 있다”고 답하자, 한국의 '빨갱이' 탄압의 설명을 들은 T 동지는 놀라며 “그 사람들은 경찰이나 국가로부터 탄압받거나 하지 않아?” 하고 물었다. “딱히? 아나키스트라니, 그게 뭐야? 라는 느낌이지. 애초에 아나키스트라 긴밀하게 조직되지도 않고.”라고 답했을 때 그가 느꼈을 황당함에 대해서는 귀국 후 한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회원 규모가 몇 백명에 달하지만 파리의 물가 때문에 올해 말에야 사무실을 얻게 되는, '고등학생을 조직하고' '극좌를 염두에 두며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 이야기를 잔뜩 나누고 여러 가지를 알게 되어 즐거웠으며, 지구 반대편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설레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회에서 보이는 진보적 단면들이며 프랑스의 정치지형과 그 위에서의 생각치 못한 운동의 방식 등은 여러 가지 통찰과 스스로를 깨치는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한' 투쟁과 '강력한' 투쟁은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며, “정치파업은 금지되어 있으며, 경제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교섭과 조정을 거치고 국가기관에 신고 후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거나, “아이가 셋 이상이면 출국할 때 줄을 안 선다는 것 따위가 우리의 저출생 정책이다”라거나 “우리나라 극우는 기독교와 그 계열 컬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식민지배의 영향인지 통상의 자국우월주의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숭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부분을 들을 때마다 T 동지와 그 일행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 네시간을 가면 당연하다고 여긴 것은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 당연하게 되는 곳이 있다는 것.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영국 프랑스를 뒤로하고 유로스타를 통해 육로로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프랑스 동지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의 동지들이 생각나 실례를 무릅쓰고 런던에 계시는 아는 동지께 연락 해봤다. 체류 기간 중에는 아쉽게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결합할만한 단체나 시위를 추천해달라고 말하니,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인스타그램 계정(@palestinesolidarityuk)과 더불어 '영국 정부가 시위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 경찰력을 동원해 대규모 체포가 이루어졌다. 신변 보호를 위해 집회 참가를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답을 들었다. 계정을 둘러보니 현재 가장 가깝게 예정된 시위는 토요일로 참가일정이 맞을 것 같지 않고, 프랑스에서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과 팔레스타인 총파업이 강력하다는 이탈리아의 정세에 대한 기대를 안고 현지의 활동에 결합할 방법을 찾다 이탈리아의 한 사회주의 조직의 동지들과 연락이 닿게 된다. 런던에서는 특별히 예정된 만남이 없으니 짧은 일정동안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생각한것도 무색하게,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킹스 크로스 역 인근의 숙소에서 빨래방으로 가는 길에 심상찮은 외관을 한 서점과 마주친다. '1945년부터 영업한 급진적 서점' Housmans 세탁이 끝나고 둘러본 내부는 외관 이상으로 굉장해서, 한국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담론들도 아동/청소년 도서나 그래픽 노블 등의 낮은 접근성을 가진 매체로 비치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관련된 유인물을 배부하고 굿즈를 장식하거나 판매하고 있었고, 직접수유 친화/반-인종차별적 '안전공간'으로서의 명시나 청소년을 위한 할인이나 다른 손님이 책값을 대신 내주는 시스템 등 여러 방식으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인칭대명사 뱃지가 He/Him밖에 없는 것에 아쉬워하는 동시에 좌파 서점 고객의 성비에 대해 생각해보며 이런저런 뱃지나 '래디컬 플레잉 카드(역사의 진보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나 작은 책자를 사서 나온다. 이후에 목적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 저녁 만에도 거리에서 메시지 카드 전문의 문구점이며 크고 작은 서점과 다양한 문구류들을 마주치고 그때마다 즐거워했지만, 다음 날 영국박물관을 나와 세인트폴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의도도 노력도 없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아무리 서점이 많다고는 해도 이게 이 도시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 일일지 가늠해보며 혼란에 빠졌다. '사회주의 서점' 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쉽고 짧은 이론서 등이 눈에 띄고, 입지 때문인지 좀 더 가게가 작고 구성이 간결하며 현대적인 인테리어라는 것 외엔 범좌파적 의제의 폭이나 내용의 관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한눈에 봐도 좌파언론 같은 제목에 뒤표지까지 기사가 적힌 잡지들을 둘러보다 작은 '붉은 별' 뱃지와 책 몇 권을 구매한다. '사회주의 서점' Bookmarks 런던의 성이며 사원 같은 관광지들은 4시 반이면 영업을 종료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 의아해한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갈 곳은 없어도 중랑천을 닮은 템즈강도 보고, 저녁 하늘에 불을 밝히는 빅 벤도 보며 거리를 방황하다 보면 다양한 스티커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지나간 시위나 기후위기 관련 서적의 북 토크 홍보 전단 같은 것들이 고전적인 방식의 조직화가 아직도 유효하게 여겨진다는 놀라움을 준다. 파리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세속적이고 고도화된 이 도시가 왕과 서점과 메시지 카드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적 문화 속에 있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도 적용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충분한 의료복지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런던에서 항상 보였던 영국 혁명 공산당(RCP.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의 선전물은 대부분 QR코드가 훼손되어 있었다. 칼 마르크스 워킹 투어. 매주 일요일 출발. 코비드 19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벽.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상징들. 하마스에 구금된 인질의 귀환을 바라거나, 팔레스타인의 행동들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족히 20여 종은 될 팔레스타인 연대의 스티커와 곳곳에 보이는 공산당의 선전물. 동시에 그중 절반 이상은 뜯겨나가거나 덧칠되거나 다른 스티커로 덮혀 있었고, 방문한 나라들 중 이스라엘 측을 대변하는 메시지 또한 가장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래쉬와 백래쉬 모두 강하고 그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국지적으로 퍼져나가는 장과 장이 거리 곳곳에서 부딪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영국 정부가 시위대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반영하는 이 도시의 정세를 상상해본다.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러 버킹엄 궁을 향했을 때, 금요일 낮치곤 유독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같은 역에서 다 같이 내리고, 전철 안에서 코스프레를 닮은 검은 정장에 높은 실크햇을 쓴 남성이 생활감 넘치는 비닐봉지를 든 것을 목격한다. 의아해하던것도 잠시 열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몇몇 남성들, 심지어 겉보기 남성이 아닌 사람까지 '영국 신사'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경찰의 통제가 필요할 정도로 인근을 가득 메워 정작 교대식은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대다수가 전형적인 코카서스계 백인의 인상에 유아차를 끌고 나온 생활감 넘치는 가족들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마냥 관광객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행사가 끝나고 바로 옆의 버킹엄 궁 정원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익숙하게 무시하는 수많은 새들과 다람쥐에 둘러싸여서도, '왕실 납품' 티 브랜드의 매장 맨 위층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이 차갑고 세속적인 도시에서 이토록 존중의 대상이 되는 고루한 개념, '이 사람들에게 왕이란 무엇인가'라는 얼떨떨한 의문은 가시지를 않는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군중들. 비수기의 유럽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던 장소이다. 무지개들. 축구 팀 이름으로 여겨왔던 단어들이 전부 런던의 지명이라는 것에 놀랐는데, 지지하는 팀의 이름으로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모습도 신기하다. 방문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영국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대도시 특유의 개인주의와 영어권-제국의 다문화적인 배경의 구성원들을 고려한 것인지 식이지향에 대한 고려를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 고통받는 생명으로서의 동물을 묘사하며 비거니즘을 촉구하는 스티커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탭, 식당에서의 알러지 여부를 묻는 질문 같은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들에서는 도리어 찾기 힘든 광경이었다. 포장은 물론 상품에서도 콩기름 잉크나 재생지, 혹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이 비교적 보편화된 것도 눈에 띄었다. 재료를 전부 선택할 수 있는 파이브가이즈의 탄생이며 써브웨이의 패스트푸드 점유율 1위, 비거니즘이나 생태주의를 필두로 하는 진보적 가치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는 러쉬(Lush)가 만들어진 토양 등에 대해 나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맥도날드의 비건 메뉴. 병아리콩으로 만든 너겟 같은 것Dipper과 소스에서는 커리 맛이 난다.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마주한 시위 선전물의 날짜가 모두 주말인 것을 보아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순서를 바꾸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반쯤 도달한다. 마침 이탈리아 조직의 G 동지로부터 '18일 피렌체 시위가 볼만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지막 날 로마에서 취리히로 가는 환승편을 취소하고 대신 18일 아침에 출발하는 런던발 피렌체행 항공편을 예약한다. 시위 장소까지의 경로를 찾다 '피렌체 공항은 시내와 가까워 도보로도 접근이 가능하다'라는 정보를 보고 무슨 효용이 있는 건지 고민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다시 짐을 꾸린다. [다음 글 보기] [기고] 유럽투쟁기행: 날짜변경선을 넘어서 (2) 이탈리아 피렌체2026-01-27 | 조회 9,071 -
전쟁범죄 동조자 유발 샤니 교수는 고려대를 떠나라!1월 19일 오후 1시 고려대학교 SK미래관 앞에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고려대 구성원 및 시민사회 일동'이 '고려대학교의 유발 샤니 이스라엘 교수 초빙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휴먼아시아와 고려대 국제인권센터, 국제대학원 등이 주최하는 '국제 AI 인권장전 세미나'에 기조강연자로 유발 샤니(Yuval Shany)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법학교수가 참여하는 것을 규탄하고 이를 보이콧하기 위해서였다. 재한 팔레스타인 학생, 고려대학교 학부생, 대학원생, 강사,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민사회 구성원 등 다양한 이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참여하며 유발 샤니 교수와 고려대학교를 목소리 높여 규탄했다. 기자회견 전후로 유발 샤니 초청에 맞선 항의행동이 고려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강연 5일 전부터 주요 게시판에 유발 샤니와 그를 초청한 고려대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고, 학내 구성원 대상연서명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강연장 입구에서 ‘고려대는 이스라엘 전쟁범죄 동조자와 학술협력 동결하라!’, ‘집단학살 옹호하는 유발샤니 규탄한다!’ 등 항의 구호를 함께 외치고, 강연 후에는 캠퍼스를 떠나는 유발 샤니를 쫓아 항의 피케팅을 진행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팔학(@studentcoalition.kr)님의 공유 게시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점령과 집단학살이 지속되는 와중에,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 학자를 초청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것도 ‘인권’을 주제로! 이스라엘이 학교, 대학 등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폭격과 학살, 이른바 교육학살(Scholasticide)을 자행했음을 고려하면, 고려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과 이스라엘 학계의 교류는 그 자체로 규탄 대상이다. 이 기사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과 유발 샤니 교수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식민점령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이들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이들과 협력하는 한국 대학과 학계가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얼마나 깊숙이 공모하고 있는지,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얼마나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지 드러날 것이다. 대자보 문구를 일부 인용하자면, “강의실이 호화로운 만큼, 그럴싸한 이론이 마이크를 통해 또렷하게 전달되는 만큼, 연사들의 높은 명망만큼, 커져가는 참여자들의 박수소리만큼,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현실과의 대조는 강연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이다. 축제 같은 분위기 아래 펼쳐지는 공허한 ‘인권과 평화’의 아우성이 집단학살과 식민점령을 외면하는 침묵을 더욱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집단학살과 식민점령의 씽크탱크 유발 샤니가 재직 중인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은 어떤 곳인가. 2024년 9월 20일, ‘팔레스타인 대학교수 및 직원 노조연맹’(PFUUPE)과 ‘팔레스타인 과학기술 아카데미’(PalAST)는 이스라엘 대학들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에 기여하고 있는지 각 대학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이에 대한 보이콧과 협력 중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공동으로 발행했다. ‘교육학살’에 직면한 팔레스타인 학계 구성원들은 호소문을 통해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의 76년 정착민 식민지 분리주의 통치, 그리고 현재 국제사법재판소가 점령지 가자지구에서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학살이라고 판결한 사건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이스라엘 학술기관들이 국제법을 위반해 왔기 때문에 윤리적 고려와 국제법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호소문은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교육학살에 대한 직접적 공범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유발 샤니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스코푸스산(Mount Scopus) 캠퍼스에 재직 중이다. 스코푸스산 캠퍼스가 위치한 동예루살렘은 1967년 이스라엘이 군사점령한 땅으로, 이곳에 점령국 시민들이 거주하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점령지에 세워진 캠퍼스 역시 이스라엘 정착촌과 마찬가지로 존재 자체가 제4차 제네바협약을 위반하는 중대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여기 속한 교수 등 종사자 개인 역시 적극적인 전쟁범죄 공모자로서 보이콧 대상이다. 히브리대학교는 고교졸업자 중 소수 엘리트를 선발하여 첨단 군사과학 인재로 육성시키는 ‘탈피오트’ 군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해당 프로젝트는 이스라엘 공군과 육군의 후원을 받는다.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졸업한 이들은 군복무와 고등교육을 병행하며 이스라엘군의 R&D와 정보전에 동원된다.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이명박정권 시기 국방부 주도로 고려대학교에 설립된 계약학과인 사이버국방학과 설립과 운영에 롤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잠시 동예루살렘에 주목해보자. 202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군사점령이 불법이라고 결정하고, 이에 따라 2024년 9월 유엔총회가 각국에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지에서 철수하도록 경제, 외교, 군사, 기타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바로 지금 동예루살렘에서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통제, 정착민 폭력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1월 19일 이스라엘 식민당국은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 본부를 철거했다.[1] 이는 이스라엘 당국이 2024년 UNRWA를 불법화하고, UNRWA 직원들을 표적 살해하고, 산하 학교, 병원 등 구호시설을 파괴해온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먼아시아는 불과 며칠 전 요르단 제라시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구호활동을 진행했다고 SNS에 게시했다. 물론 이러한 구호행위까지 부적절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활동은 필연적으로 다음 질문에 직면한다. “‘팔레스타인 난민’이란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난민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나크바에서 기원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저지른 인종청소와 원주민 추방의 결과가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 등 아랍과 전 세계에 퍼진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비참한 현상유지가 아닌, 팔레스타인 고향 땅으로의 귀환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염원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과 귀환권은 유엔총회결의 194에 명시되어 있지만, 그 실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시온주의 체제의 철폐다. 시온주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지탱하는 대학 등 이스라엘 국가기구에 대한 단호한 거부는 시민사회와 NGO에게도 요구되는 책임이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유발 샤니 교수: 이스라엘군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다 「국제 AI 인권장전 세미나」의 주최측은 유발 샤니를 예루살렘 히브리대 법학교수, 옥스포드 대학교 AI 윤리 연구소 석좌연구위원, 전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장 등 화려한 직함으로 소개했다. 이는 여타 학술행사에서 공개된 유발 샤니의 이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유발 샤니를 환대하는 이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이력이 있다. 유발 샤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과 이스라엘군, 이스라엘 법무부의 자문을 맡아왔다. 학살자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점령군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 법무부 역시 점령과 학살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기관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군과 정부부처와 함께 일한 경력으로 인해 2018년 유발 샤니가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될 당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선택적으로 나열된 경력이 그의 손에 묻은 피까지 지울 수는 없다. 법률학자로서 유발 샤니의 ‘전문성’과 학술적 권위는 이스라엘군의 집단학살과 식민점령을 옹호하는 데 쓰인다. 유발 샤니는 국제법 전문매체인 〈저스트 시큐리티〉에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논설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이러한 논설은 20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기한 집단학살(Genocide) 소송, 2024년 국제앰네스티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보고서, 유엔 등 국제기구의 집단학살 규탄 등을 주로 겨냥한다. 2023년 10월 논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10월 9일 사용한 “전면 봉쇄(total siege)”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이스라엘군이 민간인들이 가자 남부로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기에 국제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민간 시설을 표적 삼아 공격하고 공공 서비스로의 접근을 차단한 행보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이 언급한 “집단처벌”[2]에 관해서도, 집단처벌 규정이 합법적 조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군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2024년 10월 국제엠네스티 보고서 반박기고에서는, 이스라엘이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으며, 여러 건의 국제인도법 위반이 발생하여 보호대상집단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만으로 집단학살이라고 추론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매체의 팟캐스트에서는 ‘이스라엘이 민간인들에게 특정 지역을 떠나라고 미리 경고를 하는 등, 피해 최소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학살이 2년 넘게 지속되는 지금, 우리는 이러한 옹호가 철저히 거짓임을 보고 있다. 가자 남부 라파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무참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벌어진 것은 가자지구 전역의 끔찍한 기아였다. 이스라엘군은 병원, 학교, 주거지 등 생존에 필수적인 민간 시설을 파괴했으며 가자지구 주민들은 최소한의 생존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은 민간 시설 폭격 후 민간인을 구조하러 오는 구급대원 등을 공격하는 ‘더블 탭’ 전술을 시험하기도 했다. 유발 샤니 초청강연 주제가 ‘AI의 윤리적 활용’이라는 사실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AI기술이 팔레스타인 민중을 '효율적'으로 학살하고, 식민점령을 공고화하는 데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7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 보고서 "(가자지구) 점령 경제에서 집단학살 경제로"는 이스라엘 점령군이 데이터 처리 및 표적 목록 생성에 각종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으며, 빅테크 기업과 대학은 이스라엘과 협력하며 이윤을 쌓고 있음을 지적한다. 강연 직후,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강연장을 나서는 유발 샤니에게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유발 샤니는 ‘나는 AI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AI를 집단학살에 활용 중인 자국의 책임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대답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쓴 「국제 AI 인권장전의 필요성과 실현가능성 백서」에서도 드러난다. 백서는 다양한 법령과 사례를 들어 AI의 윤리적 이용에 대해 역설하나, AI를 집단학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 한마디도 없다. 이러한 유발 샤니의 입장과 행보는 소위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에 부합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유대인의 민족자결권과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모두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2. 종종 이스라엘 정부 또는 정착민들을 비판하지만, 절대 시온주의 이념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3. 팔레스타인 귀환권 보장을 거부하고 정착민 식민주의 폭력을 경시하면서 ‘두 국가 해법’을 주창한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유대 국가와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도 지지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유대민족국가체제를 옹호할 뿐이다. 가자 구호선단에 참여한 한국 시민 납치까지 선동하다 2025년 10월 초, 이스라엘군은 구호물품을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천개의 매들린 호’ 선단에 참여한 한국인 활동가 해초를 공해상에서 납치하고 강제 구금했다. 해초 활동가뿐만 아니라 ‘글로벌 수무드 함대’ 등 선단 수십 척이 이스라엘에 의해 나포되고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활동가 수백 명이 강제 구금과 잔혹한 폭력을 겪었다. 이 피랍에 대해 유발 샤니도 한마디를 얹었다. 유발 샤니는 가자 구호선단 나포에 대해, ‘가자지구 봉쇄가 무기반입을 막으려는 군사적 목적이라고 정당화될 수 있기에, 선박들이 이 봉쇄를 깨려는 의도를 가졌다면 사전경고 후 나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자 봉쇄는 정당하며 이스라엘군의 구호활동가 납치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구호활동가 납치마저 정당화한 인물을, 인권 주제 강연에 기조강연자로 세우는 고려대학교의 행보를 도대체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군/정부 자문 이력을 누락하고, 학살과 점령에 이어 구호활동가 납치까지 정당화하는 유발 샤니 교수의 과오에 대한 침묵은 또 하나의 학살 공모행위이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식민점령을 정상으로 포장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라 필자는 이스라엘 대학과 학술기관이 집단학살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복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보이콧의 대상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이 나올 수 있다. 이스라엘 기관에 속한 개인까지 보이콧하는 것은 과도하지 않은가? 학술보이콧으로 학문의 자유와 독립성이 과도하게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일란 파페처럼 시온주의 체제 철폐를 요구하는 이스라엘 출신 학자들도 있지 않은가? 기자회견 후, 고려대학교 국제인권센터장이자 휴먼아시아 대표이사인 서창록 고려대 교수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에 보낸 메일도 이러한 논지다. “이러한 이유로, 국적이나 소속을 이유로 학술행사 자체를 중단하거나 발언의 기회를 사전에 제한하는 것은 학문의 자율성과 대학의 기본 원칙과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학술행사는 특정 국가나 정부의 정책, 군사행위, 또는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유발 섀니 교수는 오랫동안 국제 인권 규범의 형성과 발전을 연구해 온 학자로,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인권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자입니다. 그의 국적이나 소속 기관을 이유로 이번 학술행사에서의 참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인권 규범의 진전을 이끌어 온 학문적 논의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는 진부하고 태만한 변명이다. 이런 변명은 ‘이스라엘 학술·문화 보이콧 팔레스타인 캠페인’(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 이하 학술 보이콧 캠페인) 속에서 숱하게 반박되어왔다. 학술보이콧 운동은 특정 개인의 정체성이나 견해만으로 개인을 보이콧하지 않는다. 학술 보이콧 캠페인 가이드라인은 이스라엘 학자들이 이스라엘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보이콧을 적용할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학술 보이콧 캠페인 가이드라인은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공모하거나 연루된 개인은 보이콧 대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서 설명했듯, 유발 샤니가 보이콧 대상인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 학자라서가 아니다. 인권과 국제법을 다루는 강연에 이러한 인사를 기조강연자로 초청하는 것은, 학술보이콧 가이드라인이 명시하듯 점령과 학살을 ‘정상화’(normalization)[3]하려는, 즉 점령과 학살을 정상으로 포장하려는 기획이다. 이러한 정상화 기획은 직접적 집단학살 가담, 노골적 학살 선동에 비해 간과되기 쉽다. 그러나 정상화 기획은 자기 논거를 ‘국제법’, ‘인권’, ‘학술적’ 중립 따위에 두기에, 시온주의를 보다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에 다니는 팔레스타인인 타렉 함단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학계의 책임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교육학살이 지속되는 와중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법학부 유발 샤니 교수를 ‘국제 인공지능 인권장전’ 세미나 연사로 초청한 모욕적 결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인권’을 함께 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이스라엘이 인권을 무시하고 직접 유린하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경우일 뿐이지, 그 어떠한 방식으로건 학술적 의미의 인권을 논할 발언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계가 조작된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방치할 수 없습니다. 거리는 저항 행렬로 가득합니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더 이상 “너무 복잡하다”가 아니라, “그들이 아이들을 또 살해하다니 믿을 수 없다”입니다. 우리가 인권을 설파하면서도 국제적 살인자들을 학문의 전당에 초청해 인권을 이야기하게 한다면, 우리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까? 고려대학교가 세미나를 열고자 한다면, 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절단장애 아동이 발생하는 곳이 팔레스타인이라는 현실을 다루는 세미나를 요구합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학교, 어린이집, 대학을 겨냥한 직접적 폭격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요구합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다루는 세미나를 요구합니다.“ 유발 샤니 초청은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박민상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고려대분회 조합원이 지적했듯, 학술적 중립과 학계의 권위를 명분으로 학살과 파괴를 묵인하고 연장하는 행위이다. 당면한 폭력과 부정의 앞에 침묵하는 학문은 잡담에 불과하다. 가자지구 학자들과 대학 책임자들의 공개서한을 기억하자. “우리는 전 세계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점령된 팔레스타인에서 계속되는 교육학살에 맞서 저항하자고 호소합니다. 파괴된 팔레스타인의 대학 재건을 위해 협력하자고 호소합니다. 팔레스타인 학술기관을 무력화하고 훼손하며 약화하는 모든 계획을 거부하자고 호소합니다.” 더욱 철저한 학술보이콧 실천으로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을 확장해 나가자 이번 고려대학교 유발 샤니 교수 초청 규탄 기자회견과 항의행동은 한국 대학과 시온주의 학자의 협력에 저항한 첫 사례다. 학술보이콧 운동에 대한 이스라엘 당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역설적으로 이 운동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의미있게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대학과 이스라엘 학계의 협력이 강화되는 지금, 학술보이콧 운동은 대학 내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확대하는 또 하나의 계기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싸움을 확대하자! [1] 철거에는 한국 기업인 HD현대가 생산한 굴삭기가 사용되었다. [2]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이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처벌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집단처벌은 제4차 제네바 협약에서 금지한 전쟁범죄로, 일부 개인의 행위에 대해 집단 전체를 처벌하는 것을 뜻한다. http://www.snujn.com/news/74022 [3] 학술 보이콧 가이드라인은 이스라엘 ‘정상화’ 프로젝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양자건 다자건, 팔레스타인인과(또는) 다른 아랍 지역인이 한편에, 이스라엘인이 다른 한편에 참여하는 문화활동, 프로젝트, 행사, 생산물 중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에 대칭성/동등성이 존재한다는 그릇된 전제를 바탕으로 하거나, 식민 지배자와 식민 지배를 받는 자가 소위 ‘갈등’에 같은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들은, 지적으로 부정직하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형태의 ‘정상화’에 해당하며 보이콧되어야 한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2026-01-23 | 조회 5,882 -
[기고] 이주노동자 뚜안 사망사건 대책활동 및 투쟁경과와 앞으로의 과제들어가는 글 한 이주노동자가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살해당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 이주노동자가 죽었고, 또 그 과정에 국가공권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해당한 이주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죽음의 배경이 된 제도와 정책을 폐기하든가, 최소한 전향적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이주노동자 모두의 죽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글이 끝나지 않은 투쟁, 포기할 수 없는 투쟁에 대한 우리 모두의 다짐으로 읽히길 바란다. 1. 뚜안 사망사건의 발생 경과 지난 10월 28일 베트남 출신 청년 노동자가 공장으로 들이닥친 법무부 출입국단속반을 피해 2층 창고 구석 실외기 뒤에 숨어 있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3층에서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다. 윤석열 정권에서 수립된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23-27)’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재명 정권은 25년 4월에 이 계획에 따라 1차 합동단속(4월15일-6월30일, 77일간)을 실시하였고, 지난 9월 30일 ‘APEC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2차 합동단속’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보도자료를 본 전국의 이주단체와 민주노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성명서를 내고, 합동단속 계획을 철회하고 이주노동자 노동권보장, 미등록노동자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였다. 특히 10월 17일 공식 출범한 ‘사람이 왔다-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10월 28일 전국의 각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일인시위 혹은 다인시위를 진행하였다. 단속추방이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상 혹은 사망을 막아보겠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이 이를 비웃기나 하듯, 대구 성서공단의 한 업체에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이 단속 과정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청년이 단속을 피해 숨어 있으면서 남긴 SNS 메시지가 가슴을 저민다. -15:26 나는 숨어 있다, 무섭다 ㅜㅜ -16:35 무섭다 -17:20 죽겠다. 어떻게 ㅠㅠ- 그동안 법무부 출입국단속반의 단속으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표1: 단속으로 인해 사망, 중상을 당한 미등록 이주민) 물론 이 표는 어떤 식으로든 드러난, 혹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사고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묻혀 버린 이주노동자의 비극은 이 표를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2. 뚜안 사망사건의 발생원인 ① 윤석열정부의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 2022년 연말 법무부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 단속 할당량에 따른 목표치를 세우고 단속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보도자료를 통해 상/하반기로 나누어 연 2차례 합동단속을 실시하고 2027년까지 약 43만 명이 넘는 미등록노동자(2023년 9월 기준)를 약 20만 명까지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도 목표 2023 58,400 (단속+자진출국) 2024 70,760 (단속+자진출국) 2025 86,645 (단속+자진출국) (표2) 2022년 법무부가 수립한 단속 목표치 윤석열 정부와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한동훈에 의해 세워진 이 잔인한 계획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2월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 입법예고’를 통해 출입국단속반 인원을 증원하고 그 증원된 인원만큼 단속 실적을 올릴 것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 실적위주의 폭력적 단속은 그대로 계속됐다. ‘그동안 단속 과정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는 비극이 반복되었으므로 불가피하게 단속을 하더라도 증원된 인원은 이주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요원으로 배치를 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은 하지 않고, <표2>에서 보이듯이 오히려 더 숫자채우기가 강화되어 왔다. ② APEC의 성공적 개최라는 허황한 명분 앞에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2025년 9월 30일 법무부는 ‘2025년 2차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 실시’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66일간 정부 5개부처(법무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노동부)가 합동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단속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합동단속은 그 명분이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을 통한 ’APEC 2025 KOREA’의 성공적 개최‘였다. 도대체 미등록노동자들이 APEC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APEC의 성공적 개최에 목을 매는 관료들의 전형적 탁상행정이 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이 보도자료 중의 한 문장은 참으로 궁색하다. “…이번 정부합동단속 기간에는 ‘APEC 2025 KOREA’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그래서 바로 다음 날인 10월 1일 민주노총 경주지부, 금속노조 경주지부, 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이주노동자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며 우리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공동 대응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③ 이주노동자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는 복잡다단한 비자 제도 비자 제도는 근대 국민국가가 고착화된 이후 국민/비국민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규직/비정규직, 정주 노동자/이주노동자, 등록노동자/미등록노동자, 헤아릴 수 없이 우리를 갈라치기하고 이를 통해 울타리 안의 성원을 관리하고 이윤을 착취하는 자본과 정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국민/비국민의 갈라치기를 강요한다. 국민/비국민의 갈라치기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를 잡아야만 그 모든 갈라치기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비자 종류는 세분하면 260개가 넘고, 취업과 관련한 비자 종류도 대분류만 무려 34가지이다. 이렇게 복잡한 비자는 이주노동자 혹은 이주민의 신분을 규정한다. 어떤 비자를 발급받는가에 따라 그의 삶이 결정된다. 비자 제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주노동자는 자칫 잘못하는 순간 비자를 잃게 되고 미등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주노동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도 결국 사업장을 변경하는 문제와 비자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자별로 업종별 취업이 제한되거나 금지되기도 하고 지역별 이동이 제한되기도 한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부여받은 비자의 종류에 따라 노예의 삶을 살든가 아니면 강제추방되든가의 선택만이 강요될 뿐이다. 유학생이었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뚜안님이 발급받은 비자는 D-10 비자인데 이는 구직활동비자라고 불린다. D-10 비자는 제조업종(구체적으로 소위 3D업종으로 불리는 뿌리산업이나 건설업 등) 취업이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대학을 졸업했으니, 전문인력이므로 단순한 업무를 반복하는 업종에 취직해서는 안 된다는 비현실적 이유다. 이런저런 일자리를 찾다가 결국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성서공단에서 일했던 그는, 취업이 제한된 업종에서 일하다가 단속에 적발되면 이후 체류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단속을 피해 숨을 수밖에 없었다. ④ 지방대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유학생 유치계획 최근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지만 유학생을 재정확충의 수단으로 여기고 그들의 졸업 이후의 삶이나 유학생활 등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지방대학의 현실도 문제이다. 유학생들을 옥죄는 비자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전혀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졸업 이후에 한국에서 이후의 삶을 계획하는 학생들에게 안정적 체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할 말은 많지만, 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간략히 언급만 하고 이하 줄인다. 3. 대책활동 및 투쟁 경과 10월 28일 비극적인 사고 소식을 접하고 대구, 경북지역 시민 사회 노동 이주단체들이 함께 모였다. 더 이상의 비극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마음들이 모여 ‘‘이주노동자 뚜안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강제 단속 중단을 위한 대구/경북 대책위원회(이하 뚜안 사망사건 대책위)’를 결성하였고 바로 대구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24시간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11월 16일에는 금속노조 성서공단 지역지회 조합원들과 많은 베트남 이주민, 유가족이 함께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행진이 대구 성서공단에서 있었고, 11월 20일에는 대구 시내에서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이재명정부 강제단속 규탄, 이주노동자 故 뚜안 대구추모제’를 열었다. 철야농성을 전후하여 대구 출입국 관계자들을 두 차례 면담했으나 ‘법적 절차를 지켰고, 뚜안님의 사망은 단속이 종료된 이후에 벌어진 일이므로 책임이 없다’는 무책임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에 ‘뚜안 사망사건 대책위’는 투쟁의 수위를 끌어올려 단속추방 일변도의 현 정부 정책의 기조에 변곡점을 만들어 내고, 체류권 보장 정책으로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12월 9일부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하였다. 대통령집무실 앞 노숙 농성이 시작되며 뚜안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단속추방 정책에 분노하는 많은 이들이 노숙 농성에 함께 결합하고 이 투쟁에 동참하였다. 매일 중식 선전전에 각 단체의 활동가들과 연대시민,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함께하여 이 투쟁을 알렸고, 종교계를 중심으로 서울 대통령집무실 앞과 대구시내, 부산출입국 앞에서 성탄절을 전후한 예배와 미사 등을 열었다.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의 대책마련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로 옮기고 난 뒤에는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이 함께하는 108배를 시작했다. 유가족이 함께하는 투쟁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 투쟁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0월17일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 왔다-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네트워크’는 이 사건을 알리고 전국적인 항의행동을 조직하여 매주 수요일 전국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일인시위를 중심으로 한 항의행동을 이어가도록 하는 한편, 서울 출입국 세종로 출장소 앞에서 매주 추모문화제를 열면서 뚜안의 죽음이 묻히지 않고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민 체류권 보장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을 이어갔다. 유가족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11월 30일 오체투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12월 14일 전국이주노동자대회 등을 통해 ‘정부의 사과, 책임자처벌, 진상규명, 단속추방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체류권 보장’ 등을 요구하였다. 12월 23일에도 ‘불법사람은 없다. 더 이상 죽이지마라. 뚜안님 추모 및 강제 단속 중단 투쟁문화제’가 열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100명 남짓 동지들이 함께 모여 투쟁의 결의를 이어 나갔다. 이날의 투쟁 발언은 다 가슴을 저미는 내용이었지만 류금신동지가 공연을 하면서 ‘지금 내리는 비는 뚜안님과 고통당한 혹은 살해당한 이주노동자들이 흘리는 눈물이다. 함께 비라도 맞자’라고 호소하면서 분위기를 숙연하게 했다. 이날 오전에는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뚜안 사망사건 진상조사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10월28일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 등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특히 단속종료 시점과 뚜안님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법무부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다양한 정황 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날 대구의 성서공단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나와 증언 형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고발하는 발언을 했다. 그중 한 명, 미등록 신분의 이주노동자가 한 발언은 보고회 참석자 모두를 울게 했다. 그 발언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 미등록이지만 버리지 않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뚜안 소식 들으니까 뚜안 아니고, 나도 언제든 이런 일 당할 수 있구나 해서 불안합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합니다. 어디 나가면 뒤를 보게 되고 경찰 등 다른 친구들이 너 동네 경찰 있다고 하면 만약 나가고 싶어도 숨어서 다시 집에 왔습니다. 지금 한국 정부에는 초등학교 들어가면 부모님도 합법화된다는 소식은 있는데, 저도 2년 더 기다려 보자, 애도 합법화되고 부모님도 합법화된다고 생각했는데 뚜안 생각해서 나도 2년 동안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제 한국에서 기대 없이 살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대한 미운 마음 가지고 저는 베트남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단순히 미등록인데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뚜안도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뚜안 꼭 잡아야 한다고 하는 거 들어보니까 뚜안이 위험한 범죄자도 아닌데. 자기 생활 좀 나아지고 그리고 부모님도, 남동생도 도와주려고 자기 비자 때문에 숨겨야 했었지만 범죄자가 아닌데. 한국에 범죄자가 많아요. 그런데 그들은 안 잡고 우리 미등록만 잡습니까. 그건 너무 밉습니다. 밉고, 한국 밉고 그리고 예전에 너무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랑하지 않고 미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동지들 우리 미등록자 버리고 관심 끄면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4. 대책활동 및 투쟁의 성과와 한계 마침내 2025년의 마지막 날 법무부 이민조사과장과 대구 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소장이 뚜안의 유족 앞에 고개를 숙였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사과 방침을 전한 이들은 뚜안님 부모님들의 안정적 체류와 이후 대책활동을 위한 체류비자 발급을 약속했고, 대책위 활동가들에게 단속을 중단할 수는 없지만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을 우선시한 단속활동이 되도록 전면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 일변도의 정책을 점검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겠다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대책위 활동가들은 이주민 정책의 전반적인 문제, 특히 미등록노동자의 단속과 관련하여 대화 테이블을 구성해 보자고 제안했지만,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듣고 그 자리를 일어서야 했다. 이후 남은 숙제이기도 하다. 이번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번 투쟁을 사실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뚜안님의 아버지 부반숭 동지가 당국의 사과를 받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저희 가족은 기관의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과가 저희 가족만을 위한 것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65일 동안 뚜안과 우리 가족을 지켜보며 함께 아파하고 연대해 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이 사과를 함께 들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관계기관의 책임과 성찰 그리고 변화의 의지를 사회 전체가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 뿐인 사과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1월 2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앞 농성단을 해산했고, 1월 9일에는 대구출입국 앞 농성장도 해단했다. 1월 9일 해단식에는 200여 명의 동지들이 함께 모였고 뚜안님 유가족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이후 과제로 남겨진 투쟁을 함께 이어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번 투쟁이 가지고 있는 성과와 한계는 농성단을 해단하면서 발표한 투쟁결의문과 성명서로 대신한다. [투쟁결의문] 불법인 사람은 없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故 뚜안 사망 진상규명과 강제단속 중단 촉구 농성 해단식 투쟁결의문 농성은 마무리되지만, 투쟁은 계속된다. 지난 10월 28일 베트남 청년노동자 故뚜안님이 대구 성서공단 내 제조업체에서 4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끼몰이식 정부 합동단속을 피하다 추락 사망한 이래 대구경북대책위와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를 비롯한 전국의 이주, 노동, 인권, 시민사회 운동 진영은 이 사건이 △윤석열정부의 단속기조를 이은 이재명정부의 합동단속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고 △APEC을 빌미로 미등록을 희생양 삼은 반인권적 행태이자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억압 정책이며 △법무부의 인권보호 준칙조차 지키지 않은 야만적 단속으로 규정하여 강력히 규탄하였고, 故 뚜안님 사망에 대한 정부 사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미등록 강제단속 중단을 요구하며 쉼 없이 싸워 왔다. 스물다섯 해 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딸을 잃은 유가족도 원통한 마음을 안고 투쟁에 앞장섰다. 우리는 사건 직후부터 규탄 성명 발표, 대통령실 앞 이주인권단체 규탄 기자회견, 11월 13일부터 진행 중인 대구출입국 앞 천막농성과 매주 벌어진 전국적인 출입국사무소 항의행동, 네 차례 촛불 추모행진과 문화제, 오체투지 행진, 12월 9일부터 시작된 대통령실 앞 노숙농성, 국회 토론회,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전국 동시다발 공동행동, 진상조사 중간 보고회, 종교계 기도회, 청와대 앞 릴레이 108배 등을 통해서 사안을 전 사회적으로 알리고 투쟁하였다. 이에 따라 사회 각계각층에 공감대가 확대되었고 뚜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는 뚜안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정의를 바라는 이들의 염원과 지속적인 투쟁으로 가능했으며 이 사회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다시금 분명한 의제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부름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출입국은 단속반이 떠나고 난 뒤의 일이므로 개인 과실이라며, 사과와 진상규명을 외면했다. 최소한의 자료 요구에도 법무부는 응하지 않고 국회의원실 등의 요구에만 찔끔찔끔 내놓았을 뿐이다. 이에 대책위와 이주인권, 시민사회는 투쟁을 진행하면서, 대통령실 경청수석실, 국회의원실, 노동부 등을 통해 다각적인 경로로 요구를 제기하였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법무부 측은 유가족과 농성단을 만나 사과를 표명했고, 유가족 체류 보장, 현재와 같은 미등록 이주민 강제단속 정책 일부 변경 및 논의 테이블 구성 검토, 자료제공 검토 등을 밝혔다. 이는 우리 투쟁의 성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구의 온전한 수용은 아니며 명시적 책임을 인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뚜안 아버님도 사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사과는 받았지만,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하고 구금하는 제도와 절차 전반에 대해 반드시 개선이 이루어져, 더 이상 ‘제2의 뚜안’이 발생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처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는 부모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아버님의 말처럼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강제단속과 추방 중심 정책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오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 수백 수천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뚜안 아버님 말대로, 정부의 사과가 뚜안 가족만을 위한 것으로 남아서는 안되며 모든 피해 이주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서울 대통령실 앞에서 진행된 故뚜안 사망 진상규명과 강제단속 촉구 농성투쟁은 일단락하지만 앞으로 더욱 힘을 모으고 연대를 넓히고 사회적 의제화하여 남은 진상규명과 강제단속 중단의 과제를 현실화하고자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근기법·파견법·산안법·중처법에 대한 고소고발을 통한 노동부 조사, 故뚜안 산재승인을 위한 과정들이 산적해 있고, 윤석열 정권에서 시작한 ‘불법체류 50% 감축 5개년 계획’중단 투쟁,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안정적 체류권 보장을 위한 투쟁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며 투쟁의 결의를 밝히는 바이다. - 이재명 정부는 故뚜안 사망사건 제대로 진상규명 실시하라! - 윤석열정부의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 폐기하라! - 강제단속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민 체류권 보장 정책 수립하라! - 노동부는 사업주, 파견사업주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하라! - 투쟁은 계속된다! 단속 중단과 미등록 이주민 권리보장 연대투쟁 확대하자! 2026년 1월 2일 故 뚜안 사망 진상규명과 강제단속 중단 촉구 농성 해단식 참가자 일동 5. 앞으로의 과제 ① 철저한 진상규명 법무부 당국자가 사과를 하러 온 자리에서 ‘단속은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대구출입국 앞에서 열린 금요추모 집회에 참석하여 발언했던 민주노총 부위원장 동지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언급했다.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다치고 죽는 이주노동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뚜안님의 죽음이 더욱 그렇다. 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진상을 밝혀야만 사람을 죽이는 ‘미필적 고의’인 단속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다. ② 단속추방 중단 최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있는 미등록노동자를 찾아가는 모임인 ‘마중’의 활동을 그만두고 새로운 오솔길을 모색해 보겠다고 소회를 밝힌 한 활동가가 그렇게 말했다. ‘보호소가 있는 한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단속될 수밖에 없다고....’ 보호소는 단속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구금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지만 현실은 보호소가 있기 때문에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단속된다는 이 역설은 역설이긴 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친다.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제도의 불법성이 먼저다. 불법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복잡다단한 비자제도를 설계해서 이주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그 벼랑에서 떨어진 이주노동자를 오히려 불법으로 낙인찍고 보호란 명분으로 보호소에 구금하거나 아예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여 격리시킨다. 불법적인 제도 안에는 그 제도의 불법적 폭력을 감수하는 노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표1>에서 보여준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그렇다. 우선은 이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포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③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안정적 체류권 확보 복잡다단한 비자제도를 단순화하게 만드는 투쟁과 아울러 이 비자제도의 희생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의 정당한 시민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묵인한 비자제도로 인해 불법으로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회복은 우리의 남은 과제이다. ④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라는 외침을 다시 가슴에 담았으면 한다.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폭력적인 제도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고 간절히 호소한다. 35명의 비극(표1)이 반복된 이후에 결국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죽었다. 이제 우리가 이 비극을 끝내야 한다. 故 뚜안님의 명복을 빈다.2026-01-15 | 조회 6,464 -
[번역] 이란의 혁명: 노동자만이 하메네이와 팔라비에게 맞서 흐름을 바꿀 수 있다번역: 레비 2026년 1월 12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이란 봉기가 확산하는 가운데 미국이 개입 위협을 고조시키자, 레자 팔라비는 트럼프와 이스라엘의 지지를 등에 업고 현 운동의 방향을 틀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메네이(Khamenei) 정권과 친제국주의적인 샤(Shah)왕정 복고 시도 모두에 맞서, 오직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대중운동만이 진보적인 길을 열 수 있다. 한 테헤란 주민은 르몽드(Le Monde)에 이렇게 전했다.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모였고, 그들의 용기는 귀감이 될 만했습니다. 저는 밤 8시부터 자정까지 테헤란(Tehran) 도심에서 북부까지 행진했으며 보안군은 최루탄과 펠렛건으로 공격했습니다. 대다수의 구호는 레자 팔라비를 지지하는 문구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었습니다." 이 증언은 현 국면의 거대한 규모와 그 안에 내재한 모순을 동시에 보여준다. 역사적인 규모의 민중 운동이 열어낸 기회와, 그 운동이 마주한 심각한 위협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레자 팔라비를 지지하는 공세적인 캠페인을 통해 운동의 일부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한편, 제국주의에 완전히 종속된 정권을 세우기 위해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치명적인 위협은 한 가지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바로 하메네이에 대한 반란이 과연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하는 하메네이의 공포 정치 목요일 밤을 지나 금요일로 넘어가면서, 이슬람 공화국의 반동 정권에 맞선 시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수만, 어쩌면 수십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란의 양대 도시인 테헤란과 마슈하드(Mashhad)에서 정권의 민병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는 영상들은 질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시위대는 더 이상 경찰의 돌격에 흩어지지 않고 억압에 직접적으로 맞서고 있다. 여러 영상에서는 시위대가 자신들의 진군을 가로막는 보안군과 경찰 바리케이드를 향해 차량으로 돌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러한 격화는 이란 쿠르디스탄의 코말라당(Komala in Iranian Kurdistan)을 비롯한 쿠르드계 조직들이 호소한 파업 이후에 나타났다. 이는 쿠르드 지역의 본격적인 저항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마흐사 아미니 피살 이후의 봉기를 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일람(Ilam) 주는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테헤란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으며, 상인들, 특히 바자르(Bazaar, 상점가)의 상인들이 시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12월 28일 이후 31개 주 111개 도시에서 약 350건의 시위가 기록되었다. 학생들 또한 대학 내에서 시위를 조직하며 청년 대중운동과 노동자계급의 도시 봉기를 연결하는 등,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시위 11일 차인 1월 7일 수요일에는 10개 대학이 동참했으며, 12월 말부터는 총 35개 이상의 대학이 시위에 참여했다. 1월 9일 금요일 연설에서 하메네이는 시위대를 "외세에 복무하는 용병"이라 비난하며 봉기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는 익숙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전술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바시즈(Basij) 민병대가 시위 진압의 주력이었지만, 이러한 규정은 최고지도자 직속의 '군대 안의 군대'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소속 공격부대의 투입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RGC는 2022년 봉기 당시 제한적으로 투입된 이후, 이미 이란 쿠르디스탄 지역에 배치된 상태다.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은 대규모 탄압이 임박했음을 암시한다. 가장 잔혹했던 사건 중 하나는 다친 시위대가 치료받고 있던 일람의 한 병원을 급습한 일이다. 또한 테헤란과 동맹 관계인 이라크의 시아파(Shiite) 민병대가 개입했다는 보고도 잇따른다. 보안군이 실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재까지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흔들리는 정권 이번 시위의 새로운 물결은 석유 노동자 파업이 두드러졌던 2019년 운동과 2022년 봉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는 하메네이 정권의 취약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은 이스라엘 및 미국과의 대치를 거치며 약화되었다. 지역 내 동맹 간 결속은 큰 타격을 입었고, 경제 제재는 이미 허약한 경제를 초토화했으며, 내부 분열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곧 닥쳐올 후계자 문제는 하메네이의 40년 통치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심판으로 번지고 있다. IRGC가 연이어 패배하면서 정규군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미국과의 타협을 주장하는 "개혁파"는 세력을 얻고 있다. 분석가들은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와 하산 호메이니(Hassan Khomeini) 같은 인물들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꼽는다. 정치 분석가 캄란 보카리(Kamran Bokhari)가 지적했듯이, 정권은 전쟁 이후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회적 통제 완화나 미국과의 외교 재개 같은 '통제된 개혁'을 모색하는 한편, 제국주의 자본에 대한 부분적인 개방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봉기가 일어나기 불과 며칠 전,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가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란 민간 부문 발전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핵 합의, 안보 협정, 경제 협력을 제안했다. 현상 유지든 개혁이든, 지배층 내부의 역학 관계는 대중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무력에 의존하는 통치, 즉 보나파르티즘적 귀결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국주의 개입의 위협 외부의 압박은 빠르게 거세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공격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미 제국주의는 이란에 대한 개입을 공공연하게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이 시위대를 탄압할 경우 미국이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한 뒤 "개혁파"와 협상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부 역시 베네수엘라를 경고의 사례로 명시하며 비슷한 위협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공격 계획을 승인하고 군에 최고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이와 동시에 제국주의는 레자 팔라비를 다시 무대 위로 소환했다.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오랜 동맹이자 서방 및 이스라엘 언론이 적극적으로 띄우고 있는 샤의 후계자는, 이란 내 지지 기반이 과장되었음에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의 복귀는 엄청난 위험을 내포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지지를 받는 팔라비는, 1979년 성직자 계급이 혁명을 가로채기 전 노동자 평의회가 타도했던 바로 그 독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복귀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완전한 종속, 이란 자원의 약탈, 그리고 노동자 착취의 심화를 의미할 뿐이다. 그가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하든, 팔라비가 제공하는 것은 이란 민중들이 이미 겪어 본 낡은 독재의 잔재에 불과하다. 제국주의로부터 독립된 노동자계급의 중심 역할 이번 봉기에는 리알화 붕괴로 급진화된 상인과 바자르 소유주, 그리고 마흐사 아미니 봉기를 겪으며 성장한 청년 세대 등 새로운 계층이 합류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힘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에게 있다. 오늘날 노동계의 참여는 아직 고르지 않지만, 사우스 파르스(South Pars) 가스 시설의 파업, 자그로스(Zagros)와 로레스탄(Lorestan) 지역 정비 노동자들의 투쟁, 교사, 트럭 운전사 및 석유 노동자들의 연대 성명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만약 이란 노동자계급이 하메네이와 제국주의 모두에 맞서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나선다면, 팔라비에 의한 봉기 가로채기를 막고 리비아식 참사를 피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정치 총파업은 이제 오직 폭력적인 탄압으로만 연명하는 정권을 무너뜨리고, 계급의 힘에 뿌리내린 진보적 결실의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승리는 중동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켜 계급투쟁을 재점화하고 팔레스타인 투쟁을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위험은 실로 막대하지만, 가능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크다. 단, 그 가능성은 하메네이에 맞선 투쟁이 제국주의로부터, 그리고 1979년의 패배를 지우고 꼭두각시 왕정을 복원하려는 자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전개될 때만 현실이 될 수 있다.2026-01-15 | 조회 5,175 -
[번역] 미국 제국주의는 베네수엘라에서 물러나라!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미 대륙 총파업과 국제적 대중운동을 위해!트럼프의 신식민주의적 도발에 맞서, 미주대륙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국제조직인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PR-FI)은 노동조합과 사회·정치 운동이 미주 전역 노동자계급 총파업에 나서자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자민중의 자기조직화와 미주대륙 총파업을 통해, 권위주의 베네수엘라 정부와 독립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자는 CPR-FI의 성명을 지지하며, 해당 성명을 번역해 소개한다. 작성자: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PR-FI) 2026년 1월 10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미국 군대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라틴아메리카를 겨냥한 제국주의 공세의 도약이다. 이는 단순히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워싱턴의 명령에 도전하는 모든 민족에게 보내는 잔혹한 경고이다. 이러한 신식민주의의 확대에 맞서 외교적 규탄과 추상적인 평화의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적, 국제주의적, 계급적 기반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PR-FI)과 일간좌파 국제 네트워크는 노동조합 연맹과 사회·정치 운동 단체들, 특히 이번 공격을 규탄한 단체들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노동자 계급 파업을 촉구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저지하고, 미국 제국주의를 베네수엘라에서 추방하며,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대중 투쟁을 열 수 있는 국제적 대중운동의 핵심이 될 것이다. 1월 3일 새벽부터 세계는 미주대륙에서 미군의 베네수엘라 공격이라는 범죄적 침략을 목격하고 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신식민주의 공세의 재앙적 전환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실리아 플로레스를 납치하고 베네수엘라 영토를 폭격하여 최소 80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 전쟁 행위이자 주권 침해는 베네수엘라의 전략적 부를 장악하고 전 지역 및 그 너머에 위협적 메시지를 보내면서, 추출주의적 약탈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무력으로 강요하려는 것이다.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PR-FI)은 이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 가장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다. 비록 우리는 베네수엘라 정부에 반대하는 좌익이며 반제국주의 세력이지만, 미국 제국주의 국가와 그 사법 체계가 그들을 심판할 권리가 없기에 마두로와 플로레스의 석방을 요구한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군사적 진영에 분명히 서며, 이를 물리치기 위해 국제 노동계급과 세계 민중의 대중적 결집을 촉구한다. 이는 현재 델시 로드리게스가 이끄는 마두로 정부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행하는 것이다. 이 정부는 노동자와 민중 운동을 탄압하면서 경제 위기와 제재의 부담을 노동자 계급에게 전가한 극도로 반노동적인 부르주아 정권이다. 이 정부는 자본과 제국주의에 대한 협정, 양보, 항복을 통해 국가 자원을 넘겨주었고, 이로써 이번 개입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정부는 선거 사기와 권위주의적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이 지역 전체에서 좌파 정치를 불신하게 만드는 우익의 가장 효과적인 선전 도구가 되었으며, 오늘날 대중적 반제국주의 결집 가능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유산을 남겼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제국주의를 패배시키는 것이 세계의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중대한 이익임을 주장하지만, 반제국주의를 명분으로 정권을 방어하는 것은 민중을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시키고 민중 저항을 국가 탄압과 혼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한다. 공격의 본질: 가면을 벗은 제국주의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가한 군사 작전은 이 지역의 최근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표면적 명분인 이른바 “마약 밀매와의 전쟁”과 “마약 테러리즘”은 무력 개입, 점령,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재활용된 낡은 제국주의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그 어떤 수사적 가면도 벗어던지고, 베네수엘라를 미국이 관리해야 할 영토로 간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먼로 독트린의 최악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이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에 대한 식민지적 폭격으로 대담해진 트럼프는 콜롬비아, 멕시코, 심지어 그린란드까지 위협하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 지역들이 미국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한 쿠바가 “곧 무너질 것”이라며 쿠바의 경제 위기를 베네수엘라 석유 의존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발언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과 함께 제국주의적 압박과 개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어떤 공격에 직면하더라도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다: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쿠바를 방어한다. 쿠바에서 손 떼라! 제국주의 봉쇄와 금수 조치를 중단하라! 미국은 관타나모에서 철수하라! 미국은 마약 밀매와의 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약 밀매에 있어 미국은 세계 최대규모의 시장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 통제를 강요하고, 지역적 규율을 강제하며, 공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특권적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등 다른 강대국들을 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라틴아메리카를 두고 벌이는 경쟁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광물, 희토류 매장량과 지정학적 위치는 이 나라를 핵심 표적으로 만든다. 이 나라를 거대한 석유 식민지로 만들려는 것이 바로 진정한 '전환'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침공을 저지하고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은 모두의, 특히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이들의 시급한 과제다. 한편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국제법”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트럼프의 공격을 거의 직접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관련 위협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국제적 역할이 쇠퇴하고 있는 EU에 경보를 울렸다. EU 역시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석유 및 자원 약탈의 몫을 차지하려 하며, 레프솔, BBVA, 토탈 에너지 등 그들의 다국적 기업을 위해 EU-메르코수르 협정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럽 제국주의와 그 다국적 기업들에 맞서 싸우며, 수십 년간 라틴아메리카에서 약탈당한 기업과 자원의 무상 반환을 요구하는 이유다. 군사 공격 이후 베네수엘라 정부의 정치적 파산 이처럼 예외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베네수엘라 정부의 대응은 그 정치적·전략적 파산을 여실히 드러냈다. 니콜라스 마두로의 납치와 델시 로드리게스의 새 집권층으로의 등극은 외세의 공격과 제국주의적 강요의 심각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정권을 극도의 취약 상태에 놓이게 했다. 혁명적 관점에서, 필수적으로 마두로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제국주의의 힘에 맞닥뜨렸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정치적·전략적 한계가 이끈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마두로, 정부 지도부, 군 고위 지휘부는 어떤 한계도 없이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적 앞에서 대중을 정치적으로 무장 해제시킨 채 국가를 극도의 취약 상태로 몰아넣은 책임이 있다. 초기 차비즘은 미국 제국주의와의 공개적인 마찰을 특징으로 하는 반제국주의적 수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차비즘 정권은 국가의 종속적 자본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타파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 국제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남은 것은 급진주의의 허울뿐이었으며, 그 이면에서는 외국 자본(부채 상환 및 신규 차입, 국내에서 창출된 모든 이익의 해외반출 허가, 석유 거대 기업에 대한 거의 완전한 세금 면제, 광물 자원 제공)과 국내 유산 계급(전통적 부유층과 차베스주의와 함께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지 모두)의 이익이 충족되었다. 베네수엘라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도 자원이 부족해진 상태가 되었고, 노동권 해체, 볼리바르 화폐 가치 붕괴, 임금 및 연금 삭감, 가격 완전 자유화, 달러화 정책, 노동운동 및 민중불만에 대한 탄압으로 노동자계급과 빈곤층에게 그 부담을 전가했다. 노동자계급이 경제위기와, 이후 제국주의 제재의 주된 타격을 감당하는 동안, 새롭게 부유해진 고위 민간·군사 관료들로 구성된 통치 계급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점점 더 대중적 지지를 상실해갔다. 친제국주의 야당의 포위 공격에 직면한 정부는 군대와 경찰, 준군사 조직의 행동을 통치의 축으로 삼아 억압적 국가 기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방향성은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대중적 기반을 물질적·정치적으로 훼손했다. 노동운동을 자본주의 통치 전략에 종속시키고, 점차 민간 자본과 탄압에 의존함으로써 정부는 결국 미국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욕망 앞에서 민중의 무장 해제를 자초했다. 그 결과 대중의 의식적·조직적 지지의 부재 아래 직접적 공세에 저항할 수 없는 국가 기구만 남았다. 이러한 방향성은 노동자 계급이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할 실질적 역량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 정부는 제국주의와의 강제 협상보다 결집하는 대중을 더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공격을 받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조직적 대중 저항을 촉구하기보다 협상적 해결책 모색, 외교적 중재 호소, 합의 탐색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공식적 대응은 형식적 성명, 제도적 차원의 규탄, 반복되는 추상적 ‘평화’ 호소로 축소되었으며, 델시 로드리게스가 서한을 통해 “트럼프 정부에 협력 의제 마련을 위한 공동 작업 초대”를 제안할 정도로 협상 채널 재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마두로주의자(Madurista) 기구는 제국주의에 저항할 어떤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권력을 쥔 차베스주의의 권위주의적 퇴보가 초래한 논리적 결과다. 차베스주의는 우고 차베스 정부 시절 누렸던 선거적 정당성을 점차 내버리고, 대신 지난 대선 때와 같이 사기에 의존해 왔다. 이러한 궤도의 또 다른 결과는 수백만 베네수엘라인의 대량 이주로 드러났다. 수년간 종속적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며, 민중 조직을 포섭·무력화하고, 독립적인 좌파를 탄압하며, 러시아·중국·유럽 자본(셰브론 같은 미국 다국적 기업을 포함)과의 동맹을 심화시킨 끝에, 정부는 일관된 저항을 제공할 능력이 없음을 입증했다. 정부는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할 수밖에 없는 대중 저항을 촉발하기보다는 항복하는 것을 선호한다. 군대는 다른 부르주아 기관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국가 방위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자신들의 사업과 생존에 더 관심이 있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내세워온 '군복을 입은 민중'이 아니라 억압의 도구일 뿐이다.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부르주아지: 자신들의 학살자를 찬양하다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같은 인물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완전히 복종하며, 외국 세력의 직접적인 대리인으로서 자국민을 학살한다.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지의 침략에 대한 반응은 하인 같은 비열함 그 자체였다. 바로 이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지의 광범위한 계층과 노골적으로 친제국주의적인 정부들의 반응은 이 사태에서 가장 역겨운 측면 중 하나였다. 대통령들, 외무장관들, 언론들은 침략을 축하하거나 개입을 정당화하거나 공모적인 침묵을 유지했다. 이러한 노골적인 비굴함은 역사적 진실을 확인시켜 준다: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지는 그 이익이 구조적으로 제국주의 자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주권을 일관되게 수호할 능력이 없다. 20세기 전반에는 멕시코의 카르데나스(Cárdenas), 브라질의 바르가스(Vargas), 아르헨티나의 페론(Perón)(초기 대통령 재임 시절)과 같은 부르주아 정부가 제국주의적 야욕에 부분적으로 맞서기도 했지만,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지는 1960~70년대 노동운동의 부상에 점차 겁을 먹고, 세계경제의 변화(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대외 부채 부담, 민영화 등)에 직면하면서 자국민을 약탈하는 제국주의의 동반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심화시켰다. 아르헨티나의 밀레이를 비롯한 지역 내 우파 정부들은 군사 공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제국주의 자본의 하위 파트너인 이들 토착 부르주아지는 워싱턴에 대한 복종을 자국 노동계급을 깨부수고 국가 자원을 더욱 잔혹하게 착취할 수 있는 보증으로 본다. 그들의 역할은 약탈을 위한 지역 경찰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트럼프에게 복종하는 조건을 협상해 온 룰라(Lula)나 셰인바움(Scheinbaum) 같은 지역 내 ‘진보적’ 정부들의 무기력함을 규탄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군사적으로 공격하고 지역 여러 국가들을 위협하는 동안 미지근한 성명만 내놓고 있다. 룰라의 경우 군사 개입 비판에서조차 트럼프와 미국을 언급하지 않으며, 미국의 카리브해 봉쇄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워싱턴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진보적’ 정부들의 정책은 단계적 항복에 불과하며, 이는 결국 미국이 지역에서 새로운 공세를 강화하는 데만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공세는 조만간 그들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룰라와 같은, 트럼프에 대한 화해적 정책은, 역사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다. 행동하는 국제주의: 세계의 거리에서,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연대 이러한 제국주의 군사 침략에 맞서 전 세계 노동자 계급, 청년, 운동 진영에서 비록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국제적 대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미국, 유럽 및 여타 지역에서 제국주의 공격을 규탄하는 집회, 시위, 성명,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마두로 정권의 노골적인 반동적 성격은, 수십 년 만에 이 지역을 겨냥한 미국의 첫 번째 폭력적 공격에 맞선 대규모 대중운동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어왔다. 그렇기에 세계를 움직여왔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행진, 학생 점거, (가자로 향하는)함대, 이탈리아의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가장 선진적 요소들에 의지하여, 계급 독립성을 바탕으로 국제주의 관점의 일관된 반제국주의 대중운동를 재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에 맞서, 일간좌파 국제 네트워크와 CPR-FI는 거리에서의 전투적 행동을 촉구하며 대응해왔다. 미국을 포함해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까지, 멕시코에서 프랑스까지, 브라질에서 독일까지, 우리는 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하기 위한 대중운동, 피켓팅, 집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우리는 공동행동, 조정(coordination), 대중운동 호소를 촉진하며, 수사적이지 않으며 전투적인 국제주의를 재확인했다. 이 아래로부터의 연대는 제국주의 공세에 맞서는 근본적인 지지점이다. 미국에서는 좌파의 목소리를 통해, 괴물의 심장부에서 우리는 적이 내부에 있음을 고발하며 요구한다: 베네수엘라 침략을 위한 단 한 푼의 달러나 총알도 허용하지 말라!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손 떼라! 미국 제국주의를 타도하라! 트럼프가 미국 제국주의의 쇠퇴를 다루기 위해 투사하려는 강경한 이미지의 이면에는, 트럼프 정부의 다중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는 2025년 말 선거에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지지율도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MAGA 운동으로 표현되는 그의 가장 가까운 사회적 기반조차도 내외 정책을 둘러싸고 점점 더 격렬해지는 분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수백만 명이 “왕은 없다”는 구호로 미국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ICE(이민세관단속국)의 급습은 로스앤젤레스의 봉기, 시카고의 저항, 그리고 최근 ICE 요원에 의해 살해된 이민자 권리 운동가 르네 니콜 굿에 대한 미니애폴리스 시위에서 드러났듯 점점 더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우리 모두는 미국 내외를 막론하고 적진에서 일어나는 이 동요를 인식해야 한다. 전 아메리카 대륙을 아우르는 대중운동만이 제국주의의 재식민화 시도를 저지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이끄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수억 명의 억압받는 민중들의 힘 앞에서, 거대한 미군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회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환경운동, 학생 단체, 원주민 운동을 포함한 거대한 양대륙의(bicontinental) 운동이 트럼프와 우익 세력을 패배시켜야 한다. 미주 전역의 대규모 노조들은 트럼프와 제국주의에 맞서 일어나야 하며, 미국 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손 떼라'는 ‘노킹스(No Kings)’ 시위를 통해 결집한 수백만 명, ICE에 저항하는 수백만 이민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반란을 일으킨 거대한 반인종주의 운동, 대학·학교·직장에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서 일어난 청년들과 함께해야 한다. 저항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어, 제국주의의 진격을 막을 수 있도록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몰아내자! 이것이 우리의 국제주의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성명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와 그 모든 대리자들을 물리칠 유일한 방법으로서, 아래로부터 조직되고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의 대응을 촉진하며, 대중과 함께 싸우러 나간다. 제국주의에 맞선 우리의 투쟁은 마두로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은 실상 전 세계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인민에 대한 공격이며, 워싱턴의 지시에 반대하는 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침략의 서막이다. 부르주아 국가의 틀 안에서, 엘리트들 간의 협정, 궁정 외교를 통한 해결책은 없다. 오직 독립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민중들의 국제적 연대만이 이 진격을 저지하고 진정한 해방적 전망을 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 조직, 노동조합, 청년 조직, 페미니스트 조직, 풀뿌리 활동가들에게 소위 “진보적” 부르주아 정부나 군부 계층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이, 각국에서 투쟁의 조직화와 행동을 촉진할 것을 촉구한다. 제국주의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직 세계의 억압받는 이들의 의식적이고 독립적인 결집 속에 있다. CPR-FI는 명확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우리는 베네수엘라의 군사적 편에 서서 미국에 대항하지만, 베네수엘라 국가를 운영하는 부르주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억압적인 정부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권을 지지함으로써 반제국주의 대의에 대한 서반구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이들의 지지와 결집을 이뤄낼 수 없다. 우리의 과업은 자본주의 질서 내의 계급 화해 프로젝트나 대안적 해결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독립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략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교훈을 재확인한다: 종속적 자본주의 내에서는 지속적인 민족 해방이 불가능하다. 진정한 주권은 오직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새로운 토대 위에서 사회를 재조직함으로써만 쟁취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이 전망은 제국주의, 지역 부르주아지 및 그 정부들에 대한 혁명적 대안으로서 전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건설을 위한 투쟁 속에서 구체화된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 공격에 맞서, CPR-FI는 라틴아메리카와 세계의 노동자계급 및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긴급한 전략적 행동 강령을 제시한다: 우리는 미국의 공격을 규탄한 단체들을 시작으로, 노동조합, 사회운동 및 좌파 세력이 노동자계급의 대륙 총파업을 호소할 것을 요구한다. 대륙적 규모의 노동자계급 행동을 통해 트럼프의 진격을 저지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노동조합(아르헨티나의 CGT-CTA, 브라질의 CUT, 칠레 CUT 등)이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제국주의 전쟁 기계를 저지하기 위한 대륙 총파업의 일부로서 각국에서의 대중운동과 함께 전국적 파업을 선언할 것을 호소한다. 군사적 침략의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 항만 노동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자매형제들을 죽이는 무기 선적을 거부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의 연대를 위해 운송부문부터 공장까지 모든 것을 중단시켜야 한다. 이탈리아 노동계급은 최근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서 국가를 마비시키고 반(反)식민 투쟁을 벌인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제 대륙 총파업을 통한 반제국주의 투쟁을 제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다. 우리는 제국주의에 의해 납치된 니콜라스 마두로와 그의 아내 실리아 플로레스의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들을 재판할 미국 법원의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만이 그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의 평회원들이 민주적으로 조직한 각국의 행동 위원회(action committees)를 기반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략에 맞서 싸우는 자기조직화 운동을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민중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무조건적으로 수호한다.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몰아내자! 우리는 모든 미군 병력, 함정, 항공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와 대륙 내 모든 외국 군사 기지의 해체를 요구한다. 우리는 외채 상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베네수엘라와 우리나라의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민중은 우리를 약탈하기 위해 억압자들이 발생시킨 빚에 대해 한 푼도 갚을 의무가 없다. 셰브론을 비롯한 모든 다국적 석유, 광업, 농업 기업을 비롯한 제국주의 기업들의 무상 몰수를 요구한다. 라틴아메리카 땅에 있는 모든 미국 소유 기업들은 침략에 대응하여 노동자 통제 하에 국유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의 모든 무역 및 안보 협정 및 조약(USMCA, 번영동맹(Alliance for Prosperity, TIAR 등)의 종료를 요구한다. 경험은 어떤 민족 부르주아지도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해방의 유일한 보장은, 노동자와 억압받는 이들의 정부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위해 투쟁하며, 빈곤, 종속, 환경 파괴, 자본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한 경제를 민주적으로 계획한다.2026-01-14 | 조회 5,700 -
[번역] “무장했다…개입 준비 완료”: 트럼프, 이란에 새로운 제국주의적 공격 위협작성자: 니나 샤르티에(Nina Chartier) 2025년 1월 5일 Révolution Permanent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사진: CBC 뉴스 화면 캡처. 베네수엘라 공격과 동시에 트럼프는 파렴치하게도 이란을 뒤흔드는 시위가 염려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수십 년 간의 제재와 ‘12일 전쟁’의 폭격 이후 이란 민중이 처한 상황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2025년 말부터 이란은 리알화 붕괴와 인플레이션이 야기한 시위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미들이스트슈거(Middle East Sugar) 노동자들, 사회복지 부문 노동자들,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 노동자들, 은퇴자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점점 가혹해지는 삶의 조건을 규탄했다. 이는 악랄한 제국주의적 제재와 이란 지배계급을 보호하기 급급한 이슬람 체제의 파국적 통치가 결합된 결과다. 그리하여 수도 테헤란(Tehran)뿐 아니라 아바즈(Ahvaz), 이스파한(Isfahan), 슈시(Shush), 도루드(Dorud) 등 여러 도시에서 노동자계급의 여러 부문이 파업이나 시위에 나섰다. 하메네이의 권위주의적 정권에 저항하면서 이들의 사회적 요구는 곧 정치적 요구로 변했다. 하메네이는 주저 없이 시위를 폭력 진압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여러 NGO에 따르면 경찰은 최소 18명의 시위 참가자를 살해했고 수백 명을 체포했다.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마두로를 납치하기 몇 시간 전에 트럼프는 완전히 위선적인 성명을 통해 이슬람 정권에 대해서도 똑같은 제국주의적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란이 비폭력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그들을 살해한다면, 미합중국이 구하러 갈 것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고, 무장했으며, 개입할 태세를 갖추었다.”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의 경우처럼 트럼프는 시위대와 “민주주의”를 걱정한다고 뻔뻔하게 주장하지만, 미국과 제국주의 동맹국들이야말로 수십 년 간의 제재와 ‘12일 전쟁’의 폭격을 통해 이란 민중을 현 상태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사실 1979년 이후로 미국의 정치권 전체가 제재와 금수조치를 통해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왔다. 같은 방식으로 미국과 CIA는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라틴 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 때로는 폭력을 동원해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다. 워싱턴의 지정학적 통제를 벗어나는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인정했듯이, 무엇보다 그 나라들의 자원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란이 세계 주요 산유국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1953년 미국이 모사데크(Mossadegh) 정부를 전복하면서 이란에 큰 상처를 남긴 약탈과 강탈 정책은 샤(shah)의 독재 정권으로 계승되었고, 독재정권의 유례없는 폭력은 1979년 혁명으로 직결되었다.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제국주의적 공격과 숨 막히는 제재로부터 민중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란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위해 연이은 위기를 관리해 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부패한 이슬람 공화국 정권을 타도할 정당성은 오로지 이란 노동자들과 민중 계급에게만 있으며, 이는 1979년 혁명이 시아파 성직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비틀리기 이전까지 두드러졌던 계급투쟁이라는 방법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리고 당시 쇼라(Shura, 노동자 평의회)에서 구체화된 자주적 조직화 방식을 되살림으로써 가능하다. 워싱턴과 친제국주의 왕정주의자들로부터 독립된 이 같은 해결책만이 이란 민중을 이란 부르주아지라는 기생적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제국주의에 더욱 효과적으로 맞서게 할 것이다. 시위가 계속되고 탄압이 강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가능한 한 폭넓은 노동자계급의 시위를 기대해야 한다. 11월 정유 노동자 파업은 이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최근 몇 달간 활발해졌음을 보여 주며, 이는 2021년 정권을 뒤흔들었던 석유 부문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떠올리게 한다.2026-01-11 | 조회 5,399 -
[번역] 이란 인플레이션 위기, 바자르 폐쇄 이후 전국적 시위 촉발작성자: 미리암 알라니즈(Maryam Alaniz) 2025년 12월 30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심화되는 인플레이션 위기가 이란 전역에서 시위를 야기하는 가운데,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전국 여러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위는 제국주의적 제재, 긴축, 탄압으로 점철된 더 폭넓은 사회적 위기를 반영한다. 역사적인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가 폐쇄되면서 날로 악화되는 인플레이션 위기가 거리로 터져 나왔고, 이란은 전국적 시위 이틀째에 들어섰다.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생필품을 구할 수 없게 되면서 여러 도시로 분노가 퍼져 나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월요일 온라인에 공유된 영상들은 테헤란을 포함해 최소 세 곳의 도시에서 보안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 가스를 발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랜드 바자르 폐쇄가 지닌 무게는 당장의 경제적 영향 그 이상이다. 오랫동안 사회 안정의 기준으로 여겨진 그랜드 바자르는 이란의 상업의 중심에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이는 1979년 혁명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폐쇄는 대체로 신중하고 정권에 순응한다고 간주되어 온 집단 내부에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며, 극단적인 환율 변동과 인플레이션 하에서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바자르 시위는 최근 여러 투쟁의 물결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더욱 활성화된 노동 계급 부문들의 행동과 결합하고 있다. 일요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최소 14건의 항의 행동이 보고되었다. 슈시(Shush)의 설탕 노동자들은 체불 임금 지급, 고용 안정 보장,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도루드의 철도 노동자들은 민영화와 고용 불확실성에 맞선 파업을 연장했다. 테헤란(Tehran), 아바즈(Ahvaz), 이스파한(Isfahan), 라슈트(Rasht), 케르만샤(Kermanshah)의 연금 생활자들은 구매력 붕괴와 의료 접근성 악화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다. 복지 부문 노동자들, 석유와 가스 등 전략 부문의 도급 운전기사들, 타카브(Takab)의 광부들도 시위를 벌였으며, 그들 가운데 다수는 여러 날 동안 행동을 이어갔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거리 시위 또한 여러 도시에서 확대되었다. 몇몇 도시에서는 시위 중에 노골적인 반정부 구호가 나왔는데, 이는 인플레이션과 생활 조건에 대한 분노가 점점 더 성직자 정권 자체를 향한 광범위한 반대로 바뀌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셜 미디어에서 확산되는 영상들은 그랜드 바자르 근처 사아디 거리와 주변 지역을 포함한 테헤란 중심부에 군중이 집결한 모습을 보여 준다. 국제적으로 널리 퍼진 한 영상은 홀로 보안군에 저항하는 시위자를 담고 있는데, 이 모습은 천안문 같은 역사적 항거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 탄압에 맞서는 저항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커지다 경제학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이란이 하이퍼인플레이션 국면에 접근하고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리알화는 극적으로 붕괴해 자유시장 환율 기준 미국 달러당 142~145만 리알 수준으로 추락했는데,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대략 114만 리알이었다. 공식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40퍼센트를 초과하는데, 식료품 가격은 70퍼센트 이상 상승했고 의료비는 약 50퍼센트 올랐다. 연료 가격 인상, 세금 인상, 긴축 조치가 이어지면서 추가적인 물가 충격이 예상되었고, 그 결과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판매를 제한하거나 아예 영업을 중단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통화 붕괴는 단순한 기술적 실수 탓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리되는 위기의 산물이다. 달러 부족, 외환 보유고에 대한 접근 제한, 연줄 있는 엘리트를 보호하는 환율 체계가 제국주의적 제재와 결합하여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 상류층의 이윤과 특권이 보호받는 동안 노동자들, 연금 생활자들, 영세 상인들은 연료비 인상, 임금 및 연금 삭감, 물과 에너지 같은 기초 서비스의 제한 등으로 인해 강제로 충격을 떠안고 있다. 현재의 시위가 2017~2019년과 같은 더 큰 전국적 봉기로 확대될지, 쿠제스탄 물 시위처럼 지역적 궐기로 분출할지, 혹은 여러 도시에서 대중이 히잡 강제법을 거부하는 조건을 만들어 냈던 2022년 페미니스트 시위와 만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란 민중이 모든 방향에서 압박받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적 제재에 의해서, 전쟁과 지역적 불안정의 경제적 효과에 의해서, 그리고 긴축과 탄압으로만 대응하는 반동적 정권에 의해서 말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와 성직자 통치로부터 자유로운 이란을 위하여 이란에서 전개되는 위기는 미국 제국주의의 더 광범위한 공격이라는 맥락 안에서 고찰해야 한다. 미국의 공세는 트럼프 정부에서 강화되기는 했지만 초당적 합의와 동맹국들의 국제적 연합을 통해 지속되어 왔다. 실제로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오늘 이란과 가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미리 회동 일정을 잡았고, 정권 교체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제재, 경제 전쟁, 군사 개입 위협은 이란뿐 아니라 워싱턴의 지정학적 통제를 벗어난 베네수엘라 등 여러 국가를 겨냥한 정권 교체 전략의 핵심 도구들이다. 인플레이션, 물자 부족, 사회 붕괴는 이 전략의 의도치 않은 부산물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들이다. 이란의 역사 자체가 날카로운 교훈을 준다. 역사상 최초의 CIA 쿠데타를 통해 레자 샤(Reza Shah)와 그 아들의 독재 정권을 강요당한 일부터, 혁명 과정을 봉쇄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계략과, 수많은 민간인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이 살해당한 최근의 12일 전쟁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력의 개입은 이란 민중과 지역 전체의 해방이 아니라 종속을 일관되게 강제해 왔다. 동시에 이란 정권은 제국주의의 무고한 표적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배계급의 통치 세력이다. 이른바 개혁파 대통령인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정부 시기 이란은 연료 가격 인상 같은 긴축 조치를 감행하는 한편, 정치범을 상시적으로 수감하고 살해하는 등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대응해 왔다. 미지급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붕괴하는 생활 수준에 항의하는 연금 생활자들, 국가 폭력에 맞서는 여성과 청년들은 정권의 자기 보존을 위해 자신들에게 전가된 위기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 전 지구적인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연대자들, 특히 제국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연대자들에게 이 같은 현실은 분명한 정치적 과제를 제시한다. 우리는 이란에 가해지는 제국주의적 제재, 경제 봉쇄, 군사 개입 위협을 규탄해야 하며, 이란 정권이 이란 민중에게 강요하는 긴축과 탄압 또한 규탄해야 한다. 지금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는 시위는 아직 통일된 전국적 봉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시위들은 지금이 사회 여러 부문에 걸쳐 인플레이션, 탄압, 사회 붕괴가 서로 중첩되는 불안정한 순간임을 알려 준다. 이러한 투쟁이 파편화된 상태로 남느냐, 서로 맞물려 결합하기 시작하느냐에 따라 위기의 다음 국면이 좌우된다. 그 단계는 제국주의적 압력과 점점 수렁에 빠지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시에 짓누르는 가운데 펼쳐질 것이다.2026-01-11 | 조회 5,742 -
울산에서 스코틀랜드까지, 한국석유공사와 다나 페트롤리엄을 규탄하다지난 2년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군사점령에 맞서 싸워온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들이 11월 26일 울산 한국석유공사 본사 앞에 모여 한국석유공사·다나 페트롤리엄 규탄 국제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소속 노동조합,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단체, 한반도 평화 단체, 기후정의운동 단체, 환경운동단체, 진보 4당, 정치·노동·사회·시민 단체, 개별활동가들이 한국석유공사 앞에 모였다. 서울에서 달려온 버스가 집회장에 도착하며 ‘국제행동의 날’ 사전행동이 시작됐다. 노동당, 정의당 현수막이 걸린 집회장에서 오픈마이크, 현수막 걸기, 연날리기, 피켓 만들기, 분필 행동, 피켓 걸기, 노래 배우기, 커피 나누기 등 다양한 행동은 국제행동의 날 집회를 돋보이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작지만 소중한 국제연대 불꽃 ‘국제행동의 날’은 한국 울산과 영국 스코틀랜드와 런던에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팔레스타인의평화를위한울산긴급행동, 기후정의동맹, 기후위기비상행동,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석유공사 앞에는 서울, 울산, 부산, 대전 등에서 50개 단체와 활동가 150여 명이 참가했다.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팔레스타인연대캠페인(SPSC) 등 수십 명의 활동가가 다나 페트롤리엄 본사가 있는 스코틀랜드 애버딘 및 에든버러, 런던 주재 한국대사관 앞 항의행동을 조직했다. 지난 10월 휴전 발효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학살과 봉쇄가 지속되는 가자지구, 극우 시온주의자들의 테러와 불법 점령촌 확장으로 고통받는 서안지구 등 팔레스타인 현지 단체들도 국제행동의 날 집회의 의미와 정신에 연대했다. 좌: 다나 페트롤리엄 스코틀랜드 본사 / 우: 런던 주재 한국대사관 국제행동의 날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가자지구 점령과 집단학살에 맞선 긴 투쟁의 연장에 있는 집회였다. 또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직후, 석유공사가 100% 지분을 소유한 다나 페트롤리엄을 통해 가자지구 원유와 가스를 수탈하는 범죄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항의행동이었다. 나아가 한국석유공사가 지구 곳곳에서 벌이는 기후위기 가속 행위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자원 수탈, 전쟁과 학살로 이윤을 쌓는 자본, 기후위기 등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낱낱이 폭로했다. 또한 지난 10월 10일 3단계 휴전안 발효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지구 53% 이상을 점령하고 있으며 수백 명을 학살했음을, 팔레스타인 230만 민중의 자결권을 짓밟고 있음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저항을 결의했다. 이스라엘과 한국석유공사의 집단학살 공모를 규탄한 연사들 국제행동의 날 집회는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지혜 활동가의 사회로 시작했다. 연사들은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와 집단학살, 집단학살 공모와 기후위기 등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석유공사와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연대를 호소했다. 여는 발언에 나선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한나 활동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서구 언론의 거짓 선전을 비판하고 “일제강점기에 누가 가해자인지 이해하는 것이 복잡하지 않은 것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는 전혀 헷갈릴 게 없다”고 발언했다. 또한 지난 10월 발효된 휴전에 대해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집단학살을 재개할 수 있고 심지어 이미 수백 번 휴전을 어겼으며 지금도 ‘저강도’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며 식민지배와 군사점령 지속 아래 이루어진 휴전의 기만성을 비판했다. 이어서 전쟁범죄에 가담하며 죽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HD현대,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한국석유공사, 카이스트, 연세대학교 등등 이스라엘과 거래하고 교류하는 기업과 기관”들을 규탄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 기업과 정부의 지원과 거래, 그리고 관계를 끊어내는 게 한국인들의 책임”이라며 발언을 맺었다. 다음으로 가자지구 출신 난민 활동가 살레 알-란티시 동지의 당사자 발언이 뎡야핑 활동가의 통역과 함께 이어졌다. 그는 어린 시절을 소환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전쟁의 실체를 폭로했다. “전쟁과 숨 막히는 봉쇄는 일상의 작은 일도 고통스럽게 만든다. 정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고 이스라엘 점령군이 고의로 전력을 무기로 삼아 가자지구 민간인을 억압하고 체계적으로 해치는 노력의 일부”라며, “이스라엘은 연료 반입을 어떨 땐 허용하고 어떨 땐 차단하면서 가자지구를 압박하고 고의로 파괴하려 든다. 설상가상으로 이 연료 자체가 약탈당한 자원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천연자원을 약탈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게 막았고, 전쟁의 무기로 활용했다”고 발언했다. 따라서 억압체제를 강화하는 거래에 대한 참여는 범죄 공모이며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타국을 점령하는 정부와 사업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을 희생시키고 파시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렇기에 한국석유공사는 이스라엘과 모든 협력을 즉각 멈춰야 하며, 이것은 단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 의무임을 강조했다. 이어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최용규 본부장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은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한 후, 한국석유공사가 전쟁에 에너지를 대고 있다며, 석유공사는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인 앞에 사과하고 즉각 이스라엘에 에너지를 대는 행위에서 모두 철수하라”고 발언했다. 또한 “한반도는 언제든 미국이 마음먹으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인데도 “이스라엘이 벌이는 이 참혹한 학살에 왜 정부기관인 한국석유공사가 에너지를 대는 것이냐?”고 규탄하며, 한국석유공사에 “즉각 철수해서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해방은 반드시 올 것이며, 이스라엘 네타냐후는 전 세계 민중 앞에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라고 참여자들을 독려했다. 다음은 지난 5년간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끝내고 2026년 1월 1일부로 현대건설기계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변주현 조합원의 발언이 있었다. 복직할 현대건설기계를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그 이유가 “현대건설기계에서 생산하는 굴착기와 건설장비들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삶의 터전을 부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확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 방산기업, 건설기업, 에너지 기업들은 지금 당장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사죄하라”고 발언했다. ‘K-방산’을 외치며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무기 판매에 열 올리는 이재명 정부와 석유공사를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며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사용되어 학살 도구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들은 잿더미가 된 팔레스타인을 재건하는 평화와 자유의 수단, 삶과 생존의 수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전쟁과 화석연료 채굴·수탈을 폭로한 연사들 이날 국제행동의 날에는 기후정의를 위해 싸우는 단체들이 참여했다. 기후정의동맹 은혜 활동가는 가자지구에는 “4,530억 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와 710억 달러에 달하는 17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둘은 바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끊어내야 할 ‘화석연료’ 에너지원”이며, “2023년 10월 말,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팔레스타인 땅에 투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영국, 이탈리아, 한국 등 6개 대기업에 12개의 탐사권을 부여”했고, 한국석유공사가 “강탈당한 바다에 기생해 돈맛을 보려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병원도 학교도 지하철도 공장도 전부 전기로 돌아간다. 그런데 에너지를 소수 기업의 돈벌이로 맡겨도 되는가? 전쟁범죄와 학살의 연료로 쓰이게 둬도 되는가?”라고 묻고, “누구나 차별 없이, 삶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보장받아야 한다. 에너지를 쏠쏠한 사업거리로만 다루는 다나 페트롤리엄, 한국석유공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순진한 척 공모하는 한국 정부를 더 이상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지금이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 함께 싸울 시간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후정의는 세상의 착취가 자본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우리의 투쟁과 해방도 반드시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에너지 자본에 맞서는 투쟁으로, 기후부정의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함께 맞서자!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우자!”라는 호소로 발언을 마쳤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김은정 공동대표는 한국은 이미 “원유 가스 소비 세계 9위, 수입 4위국으로 여전히 기후악당”인데, “윤석열 정부가 산유국의 꿈을 호들갑스럽게 부풀리며 진행했던 동해 가스전 탐사사업인 대왕 프로젝트 역시 혈세 낭비, 반기후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현재진행형”이며, “현 정부는 석유공사의 부패를 없애고 경제성만 갖춘다면 동해 가스전 탐사를 막지 않겠다는 것인데 과연 실리 중심의 이재명 정부답다”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탐사는 “그 자체로 매우 적극적인 기후파괴 행위”이며, “풀 한 포기, 낱알 하나까지 모든 걸 몰살시키고 물, 식량, 에너지 어느 것 하나 남겨놓지 않음으로 회복 불능상태를 만드는 팔레스타인 초토화 전략은, 자본의 자기증식과 무한한 잉여를 위해 지구 구석구석 사람과 자원을 약탈하고 남은 연료를 모조리 태움으로서 지구를 회복 불가능 상태로 몰아가는 초토화와 닮아있다”라고 밝히며, “국익 명분으로 자행되는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자원 수탈을 당장 중단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발언을 맺었다. 이어 한예종 돌곶이포럼의 노래와 율동 공연으로 분위기를 전환한 후, 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 이현숙(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현숙 공동대표는 “석유로 돈 버는 공장이 즐비하고 핵발전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끼고 있는 울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한국 최초의 공해병인 ‘온산병’이 울산에서 발생했고, 70년대 말부터 85년까지 이어진 반공해투쟁과 환경운동의 태동을 소개한 후 발언을 이어갔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여전히 석유공사는 “더 많은 석유 가스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쓰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을 넘어 “팔레스타인 해안까지 가서 채굴하는 한국석유공사 자회사 다나 페트롤리엄 상황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발언했다. 이어서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중동에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끊긴 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단숨에 화석연료 생산자 순위에 오른” 상황이며, 팔레스타인은 “지구촌 최대의 학살 현장이자 에너지 수탈 현장”이라며, 팔레스타인의 자원수탈과 점령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결의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다나 페트롤리엄 본사가 위치한 스코틀랜드에서 보내온 연대 발언 마지막 발언은 국제행동의 날 제안 단체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팔레스타인연대캠페인(SPSC) 데이브 활동가가 전해온 연대 발언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김계화 부본부장이 대독했다. 아래 전문을 싣는다. “스코틀랜드는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자원을 수탈하는 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사업에 공모해 온 역사가 있다. 애버딘에 본부를 둔 기업들이 과거와 현재에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와 공모하는 행위는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더 공격적이고 수위 높은 행동을 취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스코틀랜드에서 우리는 오늘 애버딘의 다나 페트롤리엄 본부 앞에 모였다. 분노하는 마음으로 모인 것이다. 우리 도시에 본부를 둔 기업이 정착민 식민주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와 사업을 한다는 것에 분노해서 모였다. 석유 가스 산업은 이미 윤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한계가 없겠는가? 팔레스타인의 해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된 구역에서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가스를 탐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이고, 다나는 이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기업들엔 주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주된, 혹은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정체불명의 주주들이 있기에 우리가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다. 다나와 이스라엘 간의 거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을 때 다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한국 정부가 소유하는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가 다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처음 이 소식을 알게 된 후 낙담했다. 다나의 주인들이 수천 마일 거리 멀리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스코틀랜드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운동을 연결시키며 가자지구 해역에 위치한 다나의 사업, 즉 오늘날 세계에 잘못된 모든 것을 상징하는 사업에 대한 글로벌 캠페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오늘 11월 26일, 한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모인 우리는 지리적으로 멀지만, 분노와 수치심이 가득한 마음에 있어서는 단결되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와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와 기존대로 정상적인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명확한 요구에 다나 페트롤리엄과 한국석유공사 그리고 한국 정부가 응할 때까지 우리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자. 지중해부터 요르단강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한국석유공사 규탄 1만 명 서명 전달 및 항의행동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한국석유공사 규탄 1만 서명과 국제행동의 날 요구를 들고 한국석유공사 본사로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소리 높여 집단학살을 규탄했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호소했다. 한국석유공사 건물 1층 로비 건너편에 모인 참가자들은 대표단을 본사로 보낸 후에도 노래와 구호를 외쳤고, 분필 행동을 진행했다. 얼마 후 돌아온 대표자들은 한국석유공사 관계자에게 국제행동의 날 참가자의 요구와 1만 명 서명을 전달하고, 가자지구 집단학살 공모 중단 요구에 한 달 내 답변을 요구했다고 보고했다. 대오는 석유공사를 더 압박할 항의행동의 필요를 공유하고 본집회 장소로 이동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쫓기듯 프로그램을 진행해 아쉬움도 있었지만, 계획한 프로그램과 항의행동을 모두 진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집회 장소에서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또한 노고를 격려하고 다시 모여 투쟁할 날을 기약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국제행동의 날이 울산지역에 선사한 소중한 것들 한국석유공사·다나 페트롤리엄의 집단학살 공모, 한국 기업과 기관들의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의 협력과 교류, 화석연료 채굴 기후악당 기업, 이재명 정부의 군수물자 수출과 지원을 규탄하는 국제행동의 날은 참으로 소중하고 뜻깊은 집회였다.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활동가들의 제안과 준비,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한국석유공사 앞 국제행동의 날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울산지역은 한국석유공사 규탄 국제행동의 날 집회로 많은 것을 얻었다. 지난 2년 팔레스타인평화를위한울산긴급행동의 중심 역할을 맡아온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노동조합을 비롯해 정당·정치·노동·사회·시민 단체들이 한자리에 가장 많이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아직 더 강력한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울산지역 HD현대, 한국석유공사를 공동투쟁 대상으로 재확인하며 국제연대의 발걸음을 더 내딛는 자리였다. 특히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소속 노조들의 임원 선거, 산별노조 투쟁 일정, 연말이라는 조건에도 노조 간부와 지역 활동가 수십 명이 참가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가자지구 점령과 집단학살, 전쟁과 기후위기의 연관성 등 다양한 사안을 접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난 2년간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군사점령과 집단학살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 노동자 파업과 급진적 가두투쟁이 이어졌다. 이탈리아 노동자 파업과 거리 투쟁은 멜라니 정부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그간 한국 조직노동자들의 팔레스타인 연대집회 참여율은 매우 낮았다는 점에서, 울산지역 노동자 수십 명이 국제행동의 날에 참가한 것은 중요한 성과이다. 팔레스타인 평화·자유·해방을 향한 국제연대는 계속돼야 4년 째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중동 국가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 미국 유일 패권의 약화와 미-중 패권투쟁 격화, 이런 변화의 틈새에서 지역패권을 꿈꾸는 지역 강국 간 분쟁과 전쟁, 남중국해와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 사이 전쟁 위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세계가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은 20세기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라는 트로츠키 말을 떠올린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인류에게 ‘야만이냐, 사회주의냐?’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에 세계 혁명세력과 노동자 민중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한, 세계 곳곳 분쟁은 결국 야만으로 치닫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그에 맞선 투쟁은, 미국과 중국의 투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동아시아 열강투쟁과 마찬가지로 국제정세의 중심에 있다. 이스라엘은 점령 중인 53% 이상의 가자지역을 자기 영토라고 선전하며 식민지배의 야욕을 불태운다. 불안정하기 그지 없는 ‘휴전’은 가자지구 230만 주민에게 길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의 점령지 완전 철수, 가자지구 봉쇄해제와 지원, 집단학살과 인종청소 반대를 외치는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이어가고 확대할 동력일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 함께 가자지구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확대하자! 나아가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자유롭고 해방된 팔레스타인을 향한 국제연대를 강화하자! 지난 2년 한국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성과와 앞으로 이어질 투쟁이, 위기·전쟁·혁명의 시대에 더 크고 더 급진적인 반제반전 국제연대를 건설하는 밑거름이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트로츠키의 말처럼,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2025-12-18 | 조회 7,545 -
[2025 정치캠프] 약탈과 전쟁·학살로 치닫는 자본주의 국제질서사진: AP 연합뉴스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2025 정치캠프 <위기·전쟁·혁명> 2일차 전체세션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들어가며 세계화의 전성기, 누군가는 '맥도날드가 들어선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열강이 충돌하는 '제국주의' 시대는 가고, 전 세계를 단일 질서로 포섭하는 '제국'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배적 담론이었던 ‘세계화의 불가역성’이 허상으로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화의 호시절은 짧았다. 미국은 쇠퇴했고, 중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곳곳에서 부상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호무역주의 심화는 열강투쟁 격화와 전쟁위기 확대로 급격하게 발전했다. 세계화의 첨병으로 기능하던 WTO는 흔적만 남았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던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조금이라도 연장하고자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폭압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세계는 다시 노골적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시기로 진입했다. 위기와 전쟁, 혁명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 1. 미국 주도 관세전쟁의 본질 1) 대대적 약탈에 나선 트럼프 정부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이름 붙이며 대통령 긴급권한에 근거해 대대적인 고율관세 부과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발표한 소위 상호관세율이 상대국의 △대미 관세 △비관세 장벽 △환율 조작까지 고려해 산정한 잠정관세율에서 할인한 수치라고 설명했으나, 실제 관세율 산정 방식은 ‘엑셀 돌리기’에 불과하며 합리적 근거는 전무하다.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이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에 있다’고 규정하며 심지어 생명체라고는 펭귄뿐인 섬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수탈의 개시를 알렸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1기 트럼프 정부 당시 이미 중국은 물론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인상 조치를 압박했고, 화웨이·SMIC 등 중국 자본을 규제대상 기업 목록(Entity list)에 올려 서방 공급망에서 퇴출시켰다. 2018년에는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을 제정해 반도체·AI·5G 등 '첨단 전략기술'을 국가안보 범주로 분류하며 중국 기업에 대한 장비·소프트웨어·설계기술 등 수출 제한에 착수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조치를 철회하지 않았으며,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으로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는 한편 트럼프의 보호주의를 충실히 이어갔다. (바이든 정부는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영업비밀 열람권까지 요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2기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관세 부과를 압박하며 미국에 대한 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자유무역 체제를 노골적으로 뒤집으며 ‘내가 본 손해를 보상하라’고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는, 흔들리는 패권국 지위를 노골적 수탈로 만회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유럽연합에 대해 4월 2일 발표한 30%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6천억 달러 투자를, 일본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 미국 투자를, 그리고 한국은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댓가로 3,500억 달러 투자를 뜯어냈다. 2)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미국 헤게모니 위기에 대응하는 폭력적 질서재편 시도 미국의 약탈은 단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조치가 아니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스티븐 미란’이라는 인물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했다(현재 그는 연방준비위원회 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미란은 「국제 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자 가이드」, 일명 ‘미란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다. 보고서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에 대한 예리한 인식에 근거한다. 「‘역사의 종언’이 뒤집히고 국가안보 위협이 다시 돌아오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주요 지정학적 경쟁자가 없던 시기, 미국 지도자들은 제조업 기반 쇠퇴의 의미를 축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단지 무역 상대가 아니라 안보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강력하고 다각화된 제조업 기반은 다시 필수 사항이 되었다. 무기와 방위체제를 생산할 공급망이 없다면 국가안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이, “철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많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외부효과를 분석에 포함하지 않고, 따라서 공급망을 무역 동반자나 동맹국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없다고 여기지만, 트럼프 진영은 그러한 신뢰를 공유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국과 동반자 중 상당수는 미국보다 중국과의 무역·투자 규모가 더 크다.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과연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미란 보고서, 5p.) 보고서는 미국의 지속적 무역적자는 강한 달러 때문이라고 짚으며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기능과 연동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수출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달러가 기축통화인 관계로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비축하고 있기에, 달러 강세는 필연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는 무역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세계경제의 작동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미란 보고서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주요 수단으로 제시하며[1], 다음 기준으로 각국 관세율을 산정하자고 한다. - 해당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미국이 그들에게 부과하는 수준과 비슷한 관세를 적용하는가? - 외환보유고를 과도하게 축적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이력이 있는가? - 미국 기업이 해당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수준과 유사한가? -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가? - 해당국이 중국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한 후 미국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회피하고 있는가? - 나토 국방예산 분담금을 전액 납부하고 있는가? - 중국, 러시아, 이란 등과의 국제 분쟁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 - 제재 대상 국가 또는 기업과의 거래, 혹은 그들에 대한 제재 회피를 방조하는가? - 다양한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작전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 미국의 적대 세력(테러리스트, 사이버 범죄자 등)을 자국 내에서 보호하거나 수용하는가? -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반미적인 외교 행보를 하는가? (미란 보고서, 23p.) 위 기준들에서 드러나듯 고율관세 압박은 무역과 안보를 직결시키고 세계 자본주의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축하는 지렛대다.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격화하는 지금, 미국은 경제와 안보를 하나로 묶으며 ‘당신은 누구 편인가’를 묻는 한편, ‘나의 편이 되고 싶다면, 수탈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체제는 국가안보와 무역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구현할 수 있다. … 미국의 방위 우산(defense umbrealla) 안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공정무역 우산(fair trade umbrella) 안에도 들어와야 한다.」 (미란 보고서, 23p.) 이렇듯 관세는 단지 경제정책의 기술적 도구가 아니다. 관세부과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현재 미국에게 관세는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다. 보고서는 무역·금융·안보를 통합한 ‘안보구역’을 구축을 제안한다. 이 안보구역을 구축하는 수단이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다. 미국은 각국에 100년 만기 채권 구입[2] 등 조치를 제안할 것이며, 조치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는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우산에서 배제하겠다는 압박이 따를 것이다. ‘안보구역 건설에는 돈이 필요하다. 100년 뒤에 돌려줄테니, 일단 돈을 내놓아라’, 그러나 각국은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 제공하는 달러-금융 시스템과 안보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일 뿐이다. 현 미국의 정책이 보고서의 청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나, 안보와 경제를 직결시키며 고율관세, 통상압박, 조공과도 다르지 않은 투자 강요에 나선 미국 행보의 본질은 보고서에 담긴 구상과 같다. 미국은 1971년 달러 금태환 중지, 1985년 플라자합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위기에 대한 폭력적 해결에 나섰다. 미국은 사적 이익을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하나, 그 명분은 트럼프의 그린란드·캐나다·파나마운하 편입 압박만큼이나 허약하다. 폭력적 질서재편에 나선 미국, 그 배경에 미국의 쇠퇴가 있다. 미국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다. 2차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에 달하던 미국 GDP 규모는 1985년 플라자합의 당시 35%로 줄었고, 이제는 세계 GDP의 24-25% 가량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다. 최근 중국의 경제위기로 미·중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착시다. 첫째,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중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 본 미국 경제 규모는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중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된다. 둘째, 최근 3년 사이 위안화 가치는 달러보다 15%가량 하락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달러 기준으로 본 중국 산출량은 15% 과소평가 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명목 GDP는 28조 달러, 중국은 18조 달러이나, 세계은행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는 이미 11년 전인 2014년 중국경제가 미국경제를 앞질렀다. 3) 달러체제의 균열, 종이금 대신 진짜 금을 쌓는 제국주의 열강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전 세계를 위해 손해를 감수해 온 것처럼 묘사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손해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의 터무니 없는 특권을 여실히 드러냈을뿐이다. 첫째,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국가 채무가 쌓여도, 달러 가치는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중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흑자국들은 확보한 달러를 미국 국채와 주식을 비롯한 달러표시 자산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무역적자로 빠져나간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즉, 미국은 기축통화라는 무기로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실물가치를 자국으로 흡수하는 한편, 자국 자산시장을 지탱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2024년 말 기준 한국은행 총자산 약 596조원 중 외화증권이 401조원이며, 이 중 태반이 미국채다. 즉, 무역흑자를 통해 들어온 달러화가 고스란히 미국으로 다시 유입되는 상황을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주식 등 가공자본 축적은 생산을 통한 이윤축적이 아니라 생산될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축적, 즉 기생적이고 투기적인 채권자계급의 성장을 뜻한다. 맑스의 설명처럼, “이윤율이 저하하면 … 다른 한편에서는 … 투기와 투기의 일반적 촉진이 나타난다.”[3] 물론, 미국은 해외 각국이 보유한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나, 그간 미국의 해외 지급액은 미국 자본의 해외투자 수입보다 적었다. 문제는 연금술과도 같은 이 구조가 균열해왔고, 최근 들어 더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3분기, 미국이 외국에 지급한 투자수익은 미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투자수익을 초과했다. 이는 미국이 21세기에 들어 최초로 기록한 본원소득수지(Balance on primary income) 적자다. 미국의 지대수취체제, 금융수탈체제의 균열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본원소득수지 추이 (본원소득 = 미국의 해외투자 수익과 노동소득 – 미국이 해외에 지급하는 투자수익과 노동소득) 금융팽창, 즉 거대한 가공자본(의제자본, ficticious capital) 축적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를 미국으로 흡수해 패권을 유지하던 미국 자본주의가 난관에 봉착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해외투자로 벌어들이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 상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기존보다 더 높아진 금리가 미국의 본원소득수지 적자의 한 요인이다. 즉, 현재 미국은 양적완화 저금리 국면 당시 해외투자자들에게 지급하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2025년 2분기 말 기준으로 미국 GDP의 118.8%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부채에 더해, 고금리로 매년 지급해야하는 이자부담까지 급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7월 의회를 통과한 감세 및 지출 법안, 소위 ‘크고 아름다운 법안’으로 향후 10년 동안 약 3.4조 달러의 추가 재정적자가 더해질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GDP의 6% 이상을 유지할 것이며, 공공부채 대비 GDP 비율은 10년 이내에 128%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0년 그리스 국가부채위기 직전 수준과 유사하다.) 2024 회계년도 기준 미국이 지출하는 이자만 1조 1,33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29%나 증가했다. 부채에 대한 연이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4년이 최초다. 현재 미국이 부채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비용은 국방비, 메디케어(고령자 건강보험)보다 높다. 그렇다면 이자율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현 상황이 중앙은행 정책금리 조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기 추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기금리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결정한다. 아래 30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 추이에서 드러나듯, 미국 장기금리는 연준의 수차례 금리인하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채권이 이전처럼 인기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 채권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떨어져있고, 이에 따라 미국이 빚을 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얹어주어야 한다. 30년 만기 미국국채 시장수익률 높은 장기금리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기대 (명목금리 ≒ 실질금리 +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불안 △미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미국채권 매도에 나섰고, 특히 2022년 러우전쟁 이후로 국채 매각 속도를 높여왔다.[4] 이와 함께 중국·러시아·터키·인도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금 축적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물론, 개인들까지 너도나도 금 매입에 뛰어들며 금값이 치솟고 있다. (좌)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 / (우) 금 가격 추이 치솟은 금값과 달러체제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금값 폭등은 달러 위기의 반영이자, 달러 위기를 가속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 주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믿음, ‘종이금’(paper gold)으로 여겨졌던 달러가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진짜 화폐(眞幣), 즉 ‘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5]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실적인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화폐는 유통수단, 즉, 상품교환의 오직 순간적인 매개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교환가치의 독립적 존재형태, 일반적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 메커니즘에 전반적 교란이 일어날 때, 그 교란의 원인이 무엇이든,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힌 관념적인 모습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직접적으로 금속화폐로 변해버린다. 더 이상 보통의 상품은 화폐를 대신할 수 없다. … 사슴이 신선한 물을 갈망하듯 부르주아의 영혼은 유일한 부(富)인 화폐를 갈망한다.」[6] 2. 일대일로 2.0 -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을 시도하는 중국 1) 미국의 급소를 공략하며 활로를 찾는 중국 첫째, 중국은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초반 승기를 잡았다.[7] 중국은 기존 규제에 이어 2025년 4월 희토류 원광 · 산화물 · 금속 · 자석 완제품을 포함한 7개 희토류에 사용처 신고와 수출허가제를 적용하곘다고 나섰고, 중국 밖에서 만든 반도체·배터리·항공전자장비라 할지라도 중국산 희토류를 포함한다면 수출허가 대상으로 포함했다. 2025년 10월에는 규제를 더 강화해, 희토류뿐 아니라 리튬-이온 배터리소재, 항공·방산용 금속 등까지 통제 대상으로 포함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전 세계 공급망과 산업기반 전체를 겨냥한 바주카포 같은 조치”,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의 말이다. 아이폰도, 테슬라 전기차도, F35전투기도 희토류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의 급소를 찾았다. 2025년 10월 30일, APEC을 계기로 약 6년 4개월 만에 열린 부산 정상회담 결과는 중국의 당면 우위를 잘 드러낸다. 미국은 대(對)중국 관세를 10%를 인하하고, 규제 대상 1,300여개 중국기업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총 2만개 이상 중국기업으로 규제를 확대하는 '50% 자회사 규칙' 적용을 1년 동안 중단했다. 자회사 규칙은 미국의 기술통제에 대한 중국의 우회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시도였다.[8] 중국은 그 댓가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통제를 1년 연기하고, 미국산 대두를 구입한다. 중국은 어차피 어디선가는 사야 하고, 기존에도 미국에서 구입하던 대두 수입을 약속했고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거둬들였다. 미국은 대만 문제와 ‘기술안보’ 등 핵심 쟁점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6년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있고, 이것은 다시 트럼프 정부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방이 희토류 추출·분리 역량을 키우고 결과를 내기까지는 5에서 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중국은 미국의 보호주의와 공급망 봉쇄 압박에 대응해 소위 '홍색공급망'을 구축해왔다. 동남아 등지로 생산거점을 이전해 중국제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피하고, 애플ᅠ등 대자본의 공급망 이전에 조응해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과의 무역 확대, 투자 확대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셋째, 중국은 브릭스를 통해 미국에 맞설 우방을 규합하며, 브릭스를 G7에 대한 정치경제적 대항축으로 형성하고자 한다. 2024년에는 이집트·에디오피아·이란·아랍에미리트가, 2025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새롭게 가입해 현 브릭스 가입국은 모두 10개국으로 늘었다. 브릭스는 현재 전 세계 GDP의 약 37.3%를 차지한다. 2024년 카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브릭스 공동선언문에서 드러나듯, 브릭스는 미국과 달리 ‘예측 가능하며 포용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한다.[9] 「우리는 세계무역기구를 핵심으로 하는 개방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적이지 않은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지지하며, 최빈개도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대해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것을 지지하며, 세계무역기구의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적인 무역제한조치를 거부한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결과를 환영하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결정과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 중국은 브릭스를 축으로 위안화 국제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위안화 결제 비중은 달러화(49%), 유로화(21.74%) 파운드화(6.94%)에 이어 3.75%로 4위를 기록했다. 이미 중국은 자국 상품··서비스 무역액의 25% 이상을 위안화로 결제한다. 사우디와 위안화 대출협정을 맺고, 브라질과 교역 시 위안화-헤알화 거래에 합의하는 등,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선 중국 행보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 시도와 직결되는 것이 앞서 설명한 중국의 급속한 금 축적이다.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를 지향하는 중국은, ‘무엇으로 인민폐의 가치를 보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중국이 축적한 금은 그 중요한 보증이다. 중국의 공식 금 축적량은 2,300톤을 초과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이 공식 발표치의 두 배를 넘는 5,500톤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2025년 1월 31일,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는 이들 국가가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강력한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다”, “브락스가 국제무역이건, 또는 그 어떤 영역이건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 시도를 하는 국가가 있다면, 관세와 마주할 것이며 미국과는 작별할 것이다.” 트럼프가 브릭스의 탈달러 시도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미국의 통화패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 중국이 보여주는 자신감과 외교적 공세에도, 중국 경제 내부 조건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국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 가치사슬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했다. 거대한 인구에 기반한 안정적 저임금 노동력 공급과 이를 통한 제조업 중심 자본축적, 거대한 과잉생산을 흡수할 자유무역체제는 중국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러나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 심화는 중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자본주의는 미국 주도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일부이자 수혜자였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위상은 중국 내부의 저임금 생산체제와 자유무역체제가 맞물릴 때만 유지될 수 있었다.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미 2008년 이후 심화해왔다. 무역장벽 확대와 세계 수요 둔화 속에서, 중국의 과잉자본의 배출창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은 대규모 부동산·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왔고, 그 결과 부동산 부문은 GDP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폭증한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6년 11% 미만에서 현재 60% 이상에 달할 정도로 폭증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중국은 거대한 잉여노동력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1,100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공식 청년실업률만 20%에 달하는 구직난 속에 상당수 청년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은 단순한 밈이 아니라 중국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체념과 분노를 표현하는 사회적 징후다. 이런 흐름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위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대외 팽창은 ‘상승하는 강대국의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주어진 것에 가깝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균열 속에서 그 질서의 일부인 중국은 BRICS 확장, 글로벌사우스의 전략적 연대로 새로운 무역대상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과잉생산의 흡수처를 확보하고자 한다. 또한, 각국과의 경제적 연계를 정치적 영향력 투사와 연계하며 미국에 대응하는 세력권을 구축하고자 한다. 금융정보업체 S&P글로벌 추산에 따르면, 중국 수출에서 글로벌사우스 비중은 2015년 35%에서 2024년에는 44%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미국 비중은 18%에서 15%로 감소했고, 서유럽은 14%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의 무역흑자 가운데 글로벌사우스가 차지하는 몫은 54%에 달하며, 이는 미국(36%)과 유럽(23%)을 더한 수준이다. 3) 미국의 폭주가 중국의 활로를 연다 중국을 상대적으로 ‘합리적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존재는 미국이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고율관세, 노골적 수탈, 대외원조 축소, 특유의 즉흥적 외교 등으로 우방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현 상황을 기회로, 중국은 내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안으로 제시할 공간을 넓히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UN의 존재 이유를 문제삼으며 다수의 다자기구에서 철수하고 있음에 반해, 중국은 2025년 9월 1일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 구상을 발표하며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등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를 확대하고 있다.[10] 중국의 주요 행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대일로 2.0’의 부상이다. 정체하는 것으로 보였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프로젝트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중국의 일대일로 관련 투자와 건설 계약 규모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고, 2025년 상반기에는 사업 규모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특히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중동·걸프 지역, 남미가 신규 확장 축으로 떠올랐다. 과거 일대일로의 중심이 철도·항만·도로·발전소 등 토목형 인프라 구축이었다면, 현재의 일대일로는 재생에너지·배터리·디지털 통신망·스마트시티 플랫폼으로 확장되어 진화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의 과잉생산을 흡수할 해외시장의 구축 과정이자,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을 지지하는 70여개국 대부분은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진화한 일대일로와 함께, 중국은 주로 서방이 우위를 점해온 의제에서도 개입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중요한 행보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선두국가로서의 부상이다. 트럼프가 기후위기를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 정책을 강화할 때, 중국은 태양광·배터리·풍력터빈·스마트 전력망 등에서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며 산업적 우위를 도덕적·외교적 자산으로까지 전환하고 있다.[11] 중국에 따르면, 「일대일로 공동건설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진정한 다자주의를 견지하며, '공동논의 · 공동건설 · 공동공유'라는 글로벌 거버넌스 관점을 실천하고, 대립이 아니라 대화를 선택하며, 장벽을 쌓지 않고 장벽을 허물며, 분리나 탈동조화가 아니라 융합을 선택하고, 배제가 아닌 포용을 추구함으로써 국가 간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둘째,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타격 받은 저개발국을 달래며 세력권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잘 드러내는 행보가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다. 미국은 아프리카 20개국을 고율관세 대상으로 지정했으나, 중국은 2025년 6월 아프리카 53개국에 대한 전면 무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이전 33개국에서 모든 아프리카 국가로 무관세 정책을 확대했다. 이미 15년째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유지하는 중국의 아프리카 무역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미국보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더 큰 아프리카 국가는 2003년 18개국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54개국 중 52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이 교역한다.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 조치인 동시에,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대체경로 확보 조치이기도 하다. 셋째, 러시아·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음은 물론, 인도 등 상대적으로 미국과 가까웠던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는 그간 중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협력해왔으나, 트럼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관세율 50%라는 징벌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직후인 8월 30일, 모디 총리는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미국 조치에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시진핑과 모디의 회담 결과에 따르면, 양측은 양자관계에서 일부 갈등 요소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한 중국-인도 관계는 '제3국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4) 브릭스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미국과 중국의 투쟁은 분명 현 국제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 각국을 양 진영으로 편재하는 ‘신냉전’이라기보다, 1차대전 이전 난마(亂麻)처럼 얽힌 열강의 각축체제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 어느 국가도 대중의 이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두 국가 모두 자국의 질서를 보편규범으로 확장할 정당성이나, 이념적 흡입력이 없다. 확고한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속에, 국가 간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으며 각국은 단기적 이익에 따라 정렬과 이탈을 반복하고 있다. 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브릭스는 반미(反美)라는 대강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을 뿐, 통일된 경제·안보 블록으로 기능하기에는 너무도 균열해 있다. 심지어 ‘반미’도 확실하지 않다. 중국·러시아·이란과 같은 미국의 제재 대상국이 있는 반면, 사우디와 UAE처럼 미국과 군사적으로 깊게 연결된 국가들도 있다. 인도는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쿼드(QUAD) 회원국이기도 하다. 그 결과, 브릭스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행동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즉, 브릭스의 확장은 미국의 수탈적 행보에 대한 반작용이 낳은 현상일 뿐 브릭스가 새로운 세계질서의 모태가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릭스 소속 국가가 늘어날수록, 브릭스 내부의 균열 역시 커질 것이다. 2025년 4월 브라질 리우 외교장관회의에서 브릭스는 창설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에 실패했다. 쟁점은 유엔 안보리 개혁 문제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자, 남아공과 지역적 경쟁관계에 있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이를 반대했다. 이는 2023년 브릭스 확대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중대한 내부 갈등으로, 신규 아프리카 회원국들이 기존 회원국에 대한 우대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사례다. 2025년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에도 브릭스는 미국 또는 이스라엘을 명시적으로 규탄하지 못한 채, ‘확전에 반대한다’는 수준의 모호한 입장만을 내놓았다. 브릭스가 위기 상황에서 단일한 대오로 기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브릭스의 중심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 역시, 당면 이해관계 속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파트너로 역할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기인한다. 관련,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있었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10년 넘게 추진해온 ‘상하이협력기구 개발은행’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중국이 10년 동안 이를 추진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간 러시아의 반대였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개발 자금을 자신이 통제하는 체계를 통해 조달하길 원했으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는 경제·군사적으로 중국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지금,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중-러의 동맹 역시 미국에 대한 반작용에 근거할 뿐, 균열적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브릭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간을 확보하며 당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의 느슨하고 과도적인 조합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제약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브릭스는 미국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탱되고 있으며, 브릭스의 존재 그 자체가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더 이상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체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세계는 조각조각 균열하고 있다. 3.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 무장하는 세계 1) 전쟁위기 확대, 군비경쟁 격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비경쟁을 본격 촉발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세계 국방비 지출 총액은 약 2조 7,180억 달러로, 2023년 대비 9.4% 증가했다. 이는 연구소가 보고서를 내기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율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 나토 국방비 가이드라인은 각국 GDP의 2%였다. 기준이 만들어진 2014년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한 해이고, 그해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나토국가는 3개에 불과했다. 그리고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는 GDP 대비 5% 국방비 지출을 결의했다.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군비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교육, 의료, 복지예산 감축은 당연한 일이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6년 미국과 맺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12]가 최근 훨씬 구체적으로, 또한 공격적인 개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6년 합의가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으로 투입할 수 있다’고 확인하는 개념적 수준이었다면, 2025년의 전략적 유연성은 실제 작전·전력·외교구조를 변화시키는 실행 패러다임으로 진화했다. 2025년 11월 17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동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들어보이며 “한국은 러시아 북부함대, 중국 북부전구, 북한군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대러 전초기지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언급은 미국이 한국을 전쟁기지로 규정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유사시 대만해협 군사개입’을 언급한 다카이치 사나에의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의 갈등 격화가 드러내듯, 북중러와 한미일의 투쟁은 날이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쟁위기는 남미로도 뻗어나가고 있다. 2025년 트럼프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를 비롯한 미 해군 함대를 카리브해로 파견하며 베네수엘라를 압박했는데, 이는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중남미 개입이다. 미군은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남미 연안에서 공습을 단행해 9월 이후 최소 76명을 사살했고 , 베네수엘라 해역 인근에 핵잠수함까지 배치하며 침공에 준하는 군사개입을 진행했다. 2) 팔레스타인 학살, 그리고 학살에 맞선 투쟁 확대 헤게모니의 침식 속에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는 전쟁과 학살, 그 한 축에 3년째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학살이 있다. 서방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대량학살에 그치지 않고 레바논, 이란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시리아를 공습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 학살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지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 패권 유지와 직결되어 있다. 미국은 학살이 개시된 2023년 10월 직후 지중해와 홍해에 항모전단을 급파했고, 영국과 함께 예멘 후티세력을 공격했다. 프랑스, 독일 등 나토 소속 주요 열강 역시 해군 투입, 방공방 구축, 군수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동 군사작전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브릭스의 중동-북아프리카 확장과 맞물려 열강투쟁을 심화하고 있다. (2024-2025년 사우디·UAE·이란·이집트·에티오피아 등이 브릭스에 새롭게 가입했다.) 당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으나,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가입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 자체가 분명 중동지역 패권을 둘러싼 열강투쟁이 격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실린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유럽 국가들의 공허한 제스처 너머에서, 우리는 종종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승리로 보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결과 없는 인정은 공허한 의식일 뿐이다.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과 무기거래를 지속하고, 그들의 스파이웨어를 구매하며,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면, 그러한 제스처는 공범행위가 된다. 제재 없는 인정은 억압자를 보상하고 피억압자를 버린다. 브릭스는 훨씬 더 중대한 것을 제공한다: 구조적 지원이다. 신개발은행(NDB) 접근권, 남남(South-South) 투자, 대안 무역체제, 그리고 무엇보다 - 세계최대 경제권 일부로부터의 정치적 연대. 그것은 정중한 박수와 실질적 동맹의 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팔레스타인의 브릭스 참여는 유럽의 위선과 전략적 결별을 의미한다: 그것은 상징적 인정이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 형성에 실질적 참여를 요구한다.」 물론 브릭스는 중동 민중의 해방을 위한 대안이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은 제국주의 학살 뒤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또한 그 학살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2025년 10월 기준, 가자지구 사망자는 6만 7천 명을 넘었고 부상자는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살이 시작된 2023년 10월 이후 숱한 UN결의안이 학살중단을 권고하고, 2025년 9월 23일까지 158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지금에도 학살은 지속되고 있다. 2025년 10월 발효된 ‘휴전’ 이후에도 최소 312명이 죽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학살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국가들마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 흐름은 학살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투쟁이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역사적 최저치로 떨어졌다. 2025년 6월 보도에 따르면, 서유럽 6개국(독일·프랑스·덴마크·이탈리아·스페인·영국) 응답자 중 63-70%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0월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 59%가 이스라엘 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과도하다’는 응답 역시 2023년 27%, 2024년 31%, 2025년 39%로 상승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노동자계급의 팔레스타인 연대파업이 정세를 돌파할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2025년 9월 22일, 이탈리아 제노바 항만노동자들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실은 선박의 작업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며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을 전개했다. 항만뿐 아니라 철도, 교육, 운수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동참했고, 65개 도시에서 50만 명이 가담했다. 이 투쟁은 곧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9월 27일, 베를린에서 10만 명이 참여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금속노조(CGT Metal Madrid)가 ‘이스라엘이 수무드 선단을 공격하는 순간 즉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며 본격적인 연대투쟁이 시작됐다. 10월 2일부터 5일까지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연인원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0월 15일에는 스페인의 양대노총이 조별 2시간 부분파업을 조직했고, 보다 왼쪽의 노동총연맹(CGT)는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하며 보다 강경한 행동을 촉구했다. 학생들 역시 80%가 수업을 거부했다. 이 땅에서도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노동자 국제주의 투쟁을 확장해야 한다. 4. 한국 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 1) 한미관세협정,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의 부상을 꾀하는 한국 자본[13]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정이 타결되었다. 한국은 매년 현금 200억 달러씩 10년에 걸쳐 총 2,000억 달러를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미국에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한국 조선업 자본의 미국 투자에 대한 정부 보증과 대출로 이루어지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투자다. 그 댓가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유지하고, 자동차에 부과되던 25% 관세율을 15%로 낮춘다. 2천억 달러 투자에 대한 배분비율은 원리금 회수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 5:5다. 이에 따라 2천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천억 달러 이상의 이윤이 남아야 한다. 연간 이익을 10%로 잡아도 원금 회수에는 20년이 걸리며,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모두 한국정부 손해가 될 뿐이다. 협정 타결 직후 백악관 발표문에는 한국정부가 발표하지 않은 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연간 330만톤의 미국산 LNG를 수입한다. 대한항공은 362억 달러에 달하는 항공기 103대와 137억 달러에 달하는 엔진을 미국기업에게 구매한다. 한국 공군은 23억 달러 규모 조기경보기 개발사업 파트너로 미국기업을 선정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기업과 함께 미국 내 희토류 분리정제 및 자석 생산단지를 개발한다. LS그룹은 2030년까지 30억 달러를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투자한다, 등등. 트럼프 정부는 이번 거래가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더 공고히 하고, 기술혁신에서의 미국 우위를 강화하며, 미국 조선산업 생산력 확대 등을 통해ᅠ미국의 지도력을 다시 세우는 계기였다고 선전한다. 이것은 약탈이다. 그러나 미국이 빼앗은 것은 한국 노동자 민중의 피땀일뿐, 한국 자본의 이윤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기업에 달러를 빌려주고, 삼성·현대차·한화·포스코 등 기업은 정부로부터 조달한 달러를 미국 제조업과 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투자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가 성공하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확보하는 셈이고, 실패해도 정부가 이를 보전하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즉, 한국 자본은 국가의 비호 아래 안전한 이윤축적 기회를 확보했다. “미국은 프로젝트에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벤더 및 공급업체 선정시 한국 업체를 우선하여야 하며, 개별 프로젝트별로 가능한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하여야 한다. 또한, 투자 이행 과정에서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협의위원회 등을 통해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2025.11.14. 한미관세협정 팩트시트) “우리 기업의 대미 진출 확대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연방토지 임대, 용수·전력 공급, 구매계약 주선 및 규제절차 신속 진행 등 미측의 유·무형적인 지원을 확보하였으며, 미국이 최대한 한국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도록 하여 우리 기업의 미국 사업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조선협력(MASGA)도 우리 기업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2025.11.14. 팩트시트 관련 산자부 보도자료) 이것이 한국 자본가단체 모두가 관세협정 타결을 환영하는 이유다. "한미 양국이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이라는 대원칙을 공유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한국경제인협회), "양국간 교역과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증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경총), "22,000여 개 대미 수출 중소기업들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대미 투자와 수출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중소기업협회), "대미 무역, 투자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대한상의), "우리 기업들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투자·수출 전략을 모색할 기반이 마련됐다"(한국무역협회). ᅠ 2,000억불 투자 자금조달 및 현금흐름 구조도 (산자부 2025.11.14.). ‘한미전략투자기금’, 즉 한국 정부가 마련한 달러는 각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한국 주요 기업은 각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임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의 구체적 이윤배분 비율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환영 일색인 자본가단체들의 입장에서 드러나는바, 계약은 자본 측에 유리하게 설계되었을 공산이 매우 크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AI 수출, AI 표준 등에 관한 '기술번영협정'을 체결했으며, 최근 발표된 엔비디아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최신 GPU 대량공급 역시 이번 한미 협정의 결과다. 이번 관세협정은 한국 지배계급과 미국 지배계급의 이해타산 일치로 맺어진 거래이자, 한국 자본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다. 매해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쓰일 수 있는 30조 원가량의 재정이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이전되며, 그 과정에서 한국 대자본은 이윤 축적을 확대한다. 한국정부는 재정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할 것이며, 이는 복지축소와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민영화 확대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자본의 미국 생산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실업 확대, 구조조정의 고통이 노동자 민중을 덮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 심화, 전쟁산업 확대로 이윤을 쌓는 한국 자본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피땀을 자본의 이윤으로 바꾸는 관세협정뿐만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국방비를 현 GDP의 2.8% 수준에서 3.5%로 올리겠다고 약속했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 승인을 확보했다. 이는 북중러 블록에 맞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한국정부 자신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편입이자, 한미일 동맹 강화 속에서 한국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하겠다는 야망의 표출일 뿐이다. 한국의 군사적 팽창은 튼튼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방위산업 수출로도 드러나고 있음은 잘 알려져있다. 2020년까지 한국 방위산업 수출액은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2021년 72억 5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급성장했고,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2024년 95억를 기록하며 이전보다 훨씬 확장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군수산업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한미 기술번영협정과 GPU 대량 도입의 의미 역시 한국 경제 군사부문 팽창과 연동되어 있다. 현 정세에서 GPU는 전략자산이다. 2021년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2024년 삼성그룹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 등 로봇과 피지컬AI 투자를 확대하는 대자본의 행보는 분명 전투로봇과 자율살상무기체계(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 LAWS) 개발 등 전쟁산업 고도화와 연관이 있다. 이런 조건에서 GPU 대량 도입은 대자본이 주도하는 전쟁산업 고도화의 중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 자본은 전쟁위기 확대와 군비경쟁 격화를 중요한 이윤축적 계기로 삼고 있으며, 이번 관세협정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 [한반도 및 지역 사안에 대한 공조] “양 정상은 항행·상공비행의 자유와 여타 합법적인 해양 이용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모든 국가의 해양 권익 주장은 국제해양법과 합치해야 함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양 정상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하였으며,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였다.”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 -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격화하는 동북아 전쟁위기에 대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라는 흐름은 이번 협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미동맹 현대화] “한미 양국은 북한을 포함하여,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양측은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 양측은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이행 진전 상황을 각측 지도부에 보고할 것이다.”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 그 핵심은 물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합의문은 다음과 같다.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동북아 전쟁위기가 미국과 중국의 자유무역 호시절인 2006년보다 훨씬 격화된 지금,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당시 조항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이미 주한미군은 중러를 견제하는 기동군이며,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 코앞에서 미군을 품은 병참기지다. 무장력 강화를 위해 한국군에게는 핵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이라는 약속이 주어졌다. 또한, 격화하는 미중투쟁 속에서 중국의 1/200에 지나지 않는 미국 조선업의 건조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조선소에서는 미국 군함이 건조될 공산이 높다. 미군이 계약한 선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한 현행 존스법을 뜯어고치건, ‘비상 상황’을 명분으로 존스법 적용예외를 추진하건, 합작회사 방식으로 법을 우회하건 말이다.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 “한미 양국은 조선 분야 실무협의체를 통하여 유지·정비·보수,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을 포함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전시키기로 하였다.” “이러한 구상들은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 상업용 선박과 전투수행이 가능한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다.”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3) 바로 지금 이 땅에서의 국제주의 계급투쟁으로 심화하는 열강투쟁은 각급 진영론으로 이어진다. 한국 운동 진영에서도 중국-브릭스 대안론, 미국 주도 세계질서 인정론, 혹은 ‘규칙기반 세계질서’ 수호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쟁투이며, 그 대가를 치르는 존재는 노동자계급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은 격화하는 제국주의 패권대결과 그 위험을 올곧게 해설하고, 반제반전 국제주의 연대투쟁을 전체 노동운동의 과제로 제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팔레스타인 연대투쟁 등 국제주의 실천에 앞장서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중동전쟁 위기, 대만해협 위기, 각국 군비경쟁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쟁취투쟁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현장에서 반제반전 연대투쟁을 자기 과제로 여기는 노동자와 노동자조직을 확대하고, 더 넓은 민중조직과 함께 반제반전 정치파업을 조직해가야 한다. 이런 목표 아래, 당면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세전쟁 이후 횡행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대한 독립적 태도에 기반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해야한다. 관세전쟁 이후 확산하는 산업주권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자본의 이익이 곧 노동자의 이익이라고 호도한다. 그러나 이번 관세협정 결과가 드러내듯, 국가를 등에 업고 세계적 독점자본으로 부상을 시도하는 한국 자본은 관세협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다. 국가와 자본에 맞선 독립적 운동을 확대하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의 환성을 거부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자. 둘째, 급속히 팽창하는 한국 전쟁산업 양상과 실체를 드러내며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확대하자. 전쟁산업 확대와 군비증강은 필연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압박, 복지삭감, 기후위기 확대로 이어지며 그야말로 극소수 일부 노동자들이 그 수혜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을 △생존권 쟁취투쟁 △교육·의료·주거 등 복지삭감 반대투쟁 △기후정의 투쟁과 연동해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노동자계급 국제주의는 ‘전쟁을 위한 생산을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으로 전환하라’는 요구와 함께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이주노동자 연대를 확대하자. 현 정세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 탄압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왜 ‘일은 하지만 사회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만들어내는가? 왜 국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 혐오를 부추기는가? 이주노동자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며, 같은 사람으로서 한국노동자와 동일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저임금-무권리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착취’라는 자본의 이주노동자 도입 목적 자체와 충돌한다. 즉, 정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 경쟁자로 놓으며, 이주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를 방치하는 한 자본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임금 하한선을 높일 것이며, 이에 따라 평균임금을 높일 것이고, 이는 저임금 정주노동자의 임금투쟁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자본은 이주노동자의 단결을 봉쇄하고자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철저한 탄압으로 일관하며, 다양한 민족국가의 노동자들을 유입시키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극심한 착취와 수탈에 따라 저출생이 장기화했고,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 증가는 필연이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연대는 위기로 치닫으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자본주의에 노동자의 단결로 맞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넷째, 의식적 노동운동, 정치적 노동운동을 확대하자. 노동운동이 단지 현장의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운영 방향에 대한 의식적 투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열강투쟁과 함께 확산하는 군사경제와 민족주의를 국가적 생존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다시 강요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 노동운동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2025년 3월 26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노동자계급 공동체를 황폐화한 자유무역 재앙을 끝내고자 나선 트럼프 행정부에 갈채를 보냅니다”(숀 페인 UAW 위원장). UAW는 해당 성명에서 △미국 내 생산 확대 △저임금 국가로의 일자리 이전 금지 △미국산 부품 사용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반동적인 입장이다. UAW와 숀 페인 논리대로라면, 미국 노동자들과 한국 노동자들은 트럼프 정부와 세계 자본가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동지이기는커녕,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다. 당면 경제적 요구를 넘어, 산업부문과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넘어,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적의식적 정치투쟁을 형성하자. [각주] .footnote-ref, .footnote-target { scroll-margin-top: 200px; color: #E60012; text-decoration: none; } .footnote-ref:hover, .footnote-target: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1] 관세에 따르는 수입물가 상승의 경우, 무역 상대국의 환율 평가절하가 미국의 수입물가 상승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2] 미란 보고서는 각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보고서 자체에 100년 만기 채권이 ‘무이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세간은 해당 채권이 무이자일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3] 맑스, 『자본론』 3권, 3편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4] 2022년 1월에서 2024년 12월 사이 중국의 공식 미국채 보유액은 27% 넘게 감소해 2015∼2022년 감소율 17%를 크게 뛰어넘었다. 미국의 러시아 해외자산 동결을 목격한 이후, 중국의 미국채 매각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이다. 어느새 중국의 미국채 보유량은 영국보다도 낮아졌다. [5] 금은 상품의 가치를 ‘질적으로 같으며 양적으로 비교가능한 크기’로 표현하는 일반적 척도로 기능한다. [6] 맑스, 『자본론』 1권, 1편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맑스는 『자본론』 3권, 5편 33장 「신용제도 아래의 유통수단」에서도 마찬가지로 위기 상황에서는 “신용제도(credit system)가 갑자기 화폐제도(monetary system)로 전환”한다고 논한다. 여기서 ‘화폐’란 국가권력이 강제통용하는 불환지폐가 아니라 금이 뒷받침하는 화폐,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상품화폐를 뜻한다. [7] 미국과의 무역전쟁 관련 희토류 통제는 바이든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2023년 8월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허가제를 도입했고, 2024년 12월에는 희토류 가공기술 및 자석 제조기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8] 과거에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개별 기업이나 연구기관만 규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고자 자회사를 설립하면, 미국정부가 이를 제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기술과 부품조달이 가능했다. “A new export rule escalates US-China tensions”, PIIE, 2025.10.27. [9] 미국 주도 관세전쟁 속에서,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은 물론 남미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 나아가 미국의 전통적 우방들에도 손짓한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역설하며 동맹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당장 2025년 3월 30일 한·중·일 경제통상장관들이 5년 만에 3자 회담을 열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4월 9일에는ᅠ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30개 회원국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을 규탄했다. [10] 중국에 따르면, GGI는 다섯 가지 핵심 원칙에 기반한다. △주권 평등 △국제법 준수 △다자주의 실천 △사람 중심 접근방식 △실질적 행동 [11] 물론, 중국의 실제 의도가 기후위기 대응 자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일대일로 에너지 투자가 보다 ‘녹색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화석연료 투자가 지배적이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일대일로 재생에너지 투자는 95억 달러에서 118억 달러, 그리고 2025년 상반기 94억 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석유·가스 투자는 157억 달러에서 243억 달러, 그리고 440억 달러로 증가했다. 현 행보는 CATL, 화웨이, 롱기 같은 민간기업이 아프리카·동남아·남미에서 배터리공장, 데이터센터, 광산 개발을 주도하고 국유기업은 여전히 정유시설과 파이프라인, 거대 광산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형태로 파악된다. [12] “반기문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정부의 양해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13] 아래 단락은 한미관세협정에 대한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의 성명 “미국의 약탈, 필요한 것은 산업주권 수호투쟁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국제연대다”를 토대로 보완하였다.2025-12-13 | 조회 9,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