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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ICE반대운동을 이끄는 디트로이트 ‘민중총회’디트로이트에서 수백 명이 모인 ‘민중 총회(People's Assembly)’가 결성되어 이민세관단속국(ICE)과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전략을 토론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보여 준 민주적·독립적인 자기조직화 모델은 다른 도시에서도 본받을 만한 유용한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공동체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전국 각지의 주민들은 어떻게 이웃을 지켜낼지, 어떻게 ICE의 단속에 맞서 방어할지 자문하고 있다. 교사, 간호사, 동네 주민들은 ICE가 들이닥칠 때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학생들은 반ICE 집회에서 ‘권리 알기’(Know Your Rights) 전단지를 돌린다. 시카고에서는 ICE가 학교에 진입하려 한다고 판단한 교사들이 그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시카고 교원 노조는 이민 단속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생추어리 팀(sanctuary teams)’을 만들어 ICE 대응 체계를 구축했으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앞 집회 참여자들이 다 함께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워크인(walk-in)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세인트루이스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댈러스와 LA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반ICE 집회가 잇따랐다. 이런 저항과 항의 행동이 중요한 까닭은, 반동 정치가 아직 이 나라를 통째로 삼키지는 못했다는 분명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끊임없는 행정 조치로 우리를 짓누르려 들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직해 맞받아칠 길을 찾아내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ICE에 어떻게 맞설지 논의하는 ‘민중 총회’(People’s Assembly)를 결성했다. 이 자리에는 이민자, 교사, 학생, 각계각층의 노동자, 다양한 좌파 그룹이 함께했다. 이들은 ICE를 어떻게 밀어낼 것인가를 두고 여러 전략을 토론한 끝에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 후로 수백 명이 계속 모여서 합의된 전략과 전술들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공동전선 성격의 총회는 자기조직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 경험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총회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좌파, 노동조합 운동, 공동체 세력이라는 서로 다른 경향을 하나로 묶는 일의 힘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힘이 지속되려면 운동이 스스로 힘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까지 알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과 그들에게 종속된 제도권 비영리 단체 관료 및 노조 관료들의 포섭 전술을 경계하고 그에 맞서야 한다. 지금 토론 중인 핵심 사안 중 하나는 ICE와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구체적 전략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단속이 벌어질 때 활동가들을 신속하게 소집하는 대응 네트워크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광범위한 정치 투쟁을 통해 예방에 주력할 것인가, 사람들이 자기 일터에서 조직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부추기는 공포의 문화와 서사에 맞서 선전과 정치 교육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이 문제다. 이 총회의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으로 조율하여 여러 전략을 동시에 실행하기 위해 다수의 실행 그룹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이는 토론 자체가 민주적이고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ICE가 우리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끌어내려 할 때 이에 맞서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모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전술적으로는 유연하되, 민중의 저항과 대응을 지원하고 그 역량을 키우는 데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ICE를 감시하는 순찰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ICE에 맞선 집단적 대응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을 전략적으로 뒷받침하고 그들의 힘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우리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것의 한 예가 바로 교사들이 학교에서 만들고 있는 생추어리 팀이다. 교사들의 사례는 병원과 그 밖의 일터에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이런 위원회를 어떤 모습으로 구성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서, 한 고등학교 교사와 한 임상의의 설명이 최근 『레프트보이스』에 실렸다. 또한 운동은 공동체가 ICE에 대한 집단적 대응을 함께 구체화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지역 총회(neighborhood assemblies)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단속이 벌어질 때 1선 방어선은 언제나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이웃, 동료, 학교 직원, 병원 직원, 교회 신자들이다. ICE가 들이닥치면 우리 모두가 대응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식당이 단속을 앞두고 문을 걸어 잠그면, 이 식당은 함께 나서서 자신을 지지해 줄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민중 총회”는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집단이 한자리에서 조율하는 장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ICE에 가장 큰 타격을 입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요구를 더 광범위한 운동이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일부 학교와 병원 행정처는 본인이 미등록 이주민이거나 미등록 가족을 둔 학생을 지지한다고 나서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장과 선출직 공직자들이 움직이기를 마냥 기다리거나 거기에 기댈 수 없다. 결국 학생, 환자,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은 다름 아닌 일선 직원들이다. 당신이 ICE의 표적이 될 위험이 있는 이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한다면, 사장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ICE가 문을 두드릴 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자. 동료들이 다 함께 입장을 밝히는 공동 성명을 작성하자. 다른 일터와 손을 맞잡고 민중 총회에 함께하자. 거듭 강조하지만, ICE를 밀어내고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는 싸움은 여러 층위가 얽힌 투쟁이고, 전국 각지에서 시기와 장소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리에서, 학교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대중 운동과 집단 행동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피하지 못했던 함정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박한 마음이 짙어지고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센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토론을 건너뛰고 행정적 구조나 막후 조직을 세우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이 놓치는 것은, 대중 총회와 노동자 위원회의 힘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쌓인 신뢰와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 길은 더디고 어수선할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이 생겨나며, 이 힘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주인이 되고 총회의 결정을 직접 실행하게 만드는 주체성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활동가와 조직가들은 무엇이든 ‘시스템화’하려는 본능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나 절차 자체를 내다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민주적 과정을 건너뛰기 위한 ‘지름길’로 써먹는 순간, 우리는 정작 위원회나 총회가 가진 잠재력의 발목을 잡게 된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을 진행 중인 운동에 끼워 넣을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본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새로운 모임 자체를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단위로 대해야 한다. 이민자를 향한 공격에 새로운 입법으로 응수하자는 압력도 만만치 않다. 이민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다지기 위한 입법 조치는 분명 중요하다. 이민자를 지지한다고 자처하는 지방 정부와 주 정부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호 입법을 통과시키고 ICE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입법 활동조차 없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의원들에게 전화를 거는 방향으로 운동을 전환하는 순간 우리의 힘은 거리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ICE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위험에 처한 우리 이웃들도 다름 아닌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하건대 디트로이트 민중 총회의 사례는 전국 각지의 운동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값진 경험이다. 계급 독립성을 위해 싸우는 자기조직화 단위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운동을 강화할 수 있고 포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2025년 2월 7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Brian H. Silverstein and Tristan Taylor 번역: 강성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5-25 | 조회 15,225 -
[번역] 당, 전위, 대중 - 아르헨티나의 경험들급진 좌파 조직은 계급투쟁 전위들과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어떻게 더 넓은 대중과 결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2025년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당대회 문서에서 저자는 이 물음들에 답하며, 계급투쟁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을 건설하려는 PTS의 기획이 거둔 성공과 아울러 그 한계까지 탐구한다. 다음은 PTS 20차 당대회에 제출되어 전국지도부가 승인한 문서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PTS 20차 당대회의 정치적 지향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몇 가지 수립하고자 한다. 먼저 (1) 우리 조직, (2) 전위 즉 노동계급의 가장 전투적이고 조직된 부문으로서 청년과 여타 전투적 운동을 포함, (3) 우리의 더 넓은 토대인 대중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투적·반관료적인 계급투쟁의 전위가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확대 가능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3월 12일 가혹한 국가 탄압에 맞서 축구 팬과 노동자들이 연금 생활자들을 지키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면서 사회 불안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이 사태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의 종말을 연 2017년 12월의 소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당시에 민족주의적인 페론주의 부르주아 정당은 민중의 불만을 2019년 선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의 귀결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세르히오 마사가 주도한 재앙적 정부였다. {2017년과 다른} 새로운 측면은 이것이다. 저항이 지속적으로 발전·확산되어 정치적 총파업에 이를 경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지닌 전투적 세력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출현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결합은 질적 도약을 의미하며, (예비) 혁명적 상황을 향한 길을 열 것이다. 이 세력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1) 교사, 공공 부문 노동자, 학생, 연금 생활자, 불안정·자영 노동자로 구성된 주민 총회들(잠시 둔화되었으나 다시 활성화 중이다); (2) 반관료제 경향을 포함한 광범위한 노동 투쟁; (3) 매주 수요일 의회 앞 시위를 통해 대통령의 연금 연동제 거부에 맞선 투쟁을 이끈 연금 생활자 집단; (4) 2024년 10·11월 100개의 대학 캠퍼스 점거로 정점에 달한 학생운동(학장단, 노조 관료들, 아르헨티나 대학생연맹에 의해 기세가 꺾였으나, 이제 막 학교로 돌아온 새로운 학생 활동가 층을 형성했다); (5) 2024·2025년 두 차례의 대중적 동원을 이끈 여성 운동; (5) 밀레이가 다보스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를 아동 성학대와 결부시키는 발언을 한 데 대응해 2월 1일 놀라운 위력을 과시한 LGBTQIA+ 운동. 이 운동 중 다수가 부침을 겪고 있으나, 이는 모두 배움의 경험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투적·조직적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변혁적 도약을 위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3월 12일 시위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찰 탄압에 맞선 결의뿐 아니라 노동총연맹(CGT)을 향해 분출된 증오 때문이기도 했다. 이 분노는 CGT의 무대응을 규탄하는 구호, 피켓, 연설로 표면화되었다. 분노가 너무도 뚜렷하여 노동총연맹 최고 지도부의 일원인 엑토르 다에르가 4월 전국 파업을 소집해야 할 정도였다. 정부가 연금 생활자 급여 삭감을 시도했을 때 결집하여 저항한 축구 팬들 역시 똑같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러한 순간들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람들은 탄압을 규탄하면서 정부와 그 졸개들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 세력들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작업장과 학생 운동 양측에서 전투적이고 독립적인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PTS의 앞에 놓인 과제는 각 영역에 적합한 조직 형태들을 촉진함으로써 이러한 발전을 과감하게 추동하는 것이다. 노조 안에서의 활성화와 작업장 위원회부터, 우리가 이미 건설하고 있는 광범위한 조직까지 말이다. 여기에는 자기조직화된 학생 집단, 재활성화된 주민 총회, 투쟁 중인 문화 운동, 보건 의료 집단 등 상이한 조직 형태가 포함된다. 이미 이러한 형태의 조직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 성장시키고, 조율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당, 전위, 대중의 관계에 관하여 PTS에게 총파업은 전략적 지향의 일부다. 총파업의 전망은 2001년 아르헨티나 봉기나 2019년 칠레 봉기보다 한결 밝다. 두 봉기 모두 최종 국면에 이르러서야 부분적 총파업으로 나아가는 데 그쳤고, 지배계급은 통제력을 되찾았다. 칠레의 경우 정권은 봉기를 기만적 제헌 의회로 우회시켜 증오의 대상이었던 피녜라 정부를 유지시켰다. 그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대안적 정치 노선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을 갖춘 조정 기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봉기들은 봉쇄, 우회, 패배시키기가 더 쉽다. 이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 특히 생산과 분배의 심장부로부터 자본주의의 지배에 도전하는 능력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학생운동의 본질적 역할을 주변화한다. 투쟁 과정에는 노동계급의 미조직 부문 및 빈민의 참여가 중요하고 많은 경우 이들의 전투성이 가장 즉각적·폭발적이지만, 이 과정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는 것은 노동계급의 결정적 부문들과 결합하는 데 달려 있다. 노동계급에 뿌리를 두고 또한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이 결합한 정치적 총파업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간의 대치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결정적 시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노동자 정부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사회주의·국제주의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인 투쟁 현장에 개입해야 한다. 작업장(작업장 위원회와 노조), 학교(및 학생회), 불안정 부문 및 피억압 부문(여성, LGTBIQIA+ 공동체)에서 출현하는 모든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다른 정치적 경향들, 특히 페론주의의 영향력과 노조 관료의 영향력에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 바로 우리가 ‘행동 위원회’라 부르는 것, 즉 전투적 노조, 작업장 위원회, 학생회, 연금 생활자 단체, 주민 총회, 문화 운동을 결합시키는 기구다. 이 기구들은 더 광범위한 조정 구조(노동자 평의회)로 진화할 수 있으며, 관료들과 더 공공연하게 효과적으로 대결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의 접근법은 공동전선 전술을 따른다. “따로 행진하되, 함께 타격한다.” 우리는 당과 전위와 대중의 관계를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 형태로 구상한다. 혁명 정당은 노동계급, 청년, 지식인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문들을 결집시킨다. 혁명 정당은 정의상 국제주의적이다. 전위는 노동자 조직, 학생운동, 페미니즘 및 여타 투쟁 조직체들 속에서 형성된다. 이와 관련된 우리의 과제는 투쟁을 선도하는 경향들을 단결시키면서 이들 사이의 열린 논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전위 부문과 그 지도부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는 승리에 필요한 강령과 전술을 견지하면서 개량주의 세력에 도전하는 우리 당도 포함된다. 전위는 투쟁 속에서 단련된다. 대중은 이러한 투쟁 경험을 통해 이전의 믿음을 깨고 나와 전위 및 혁명 정당의 영향 하에 좌측으로 이동할 수 있다. PTS는 이러한 도전에 뛰어들어, 계급투쟁으로 단련되는 전위라는 톱니바퀴를 통해 대중과 만남으로써 대중적 영향력을 얻고자 한다. 이는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기 전 볼셰비키 당을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적 경험에서 도출한 교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위로부터’ 획득하는 그 어떤 선거 및 의회에서의 영향력도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주민 총회, 문화센터, 소셜 미디어, 심지어 우리가 주최하는 PTS 공개 집회조차도 산발적인 접촉에 불과하며, 그 위에 세워진 조직은,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통해 우리는 강력한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기층에서의 활동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구조적 힘을 발전시키지 못한 당은 ‘거리에서는’ 가시적 존재감을 자랑하더라도 선거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 강화와 신입 당원 모집은 (작업장과 학교에서) 전위 및 대중과의 유기적 관계를 벼리는 것과 불가분하다. ‘유기적 관계’란 일시적 교류나 (국가 선거든 노조 선거든 학생 선거든) 선거 활동을 넘어서는 더 깊고 더 일관된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관계다. 지금 우리 조직은 상당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 부문은 60개 이상의 노조에서, 학생운동 부문은 32개 대학, 48개 중등학교, 24개 기술학교에서 활동한다. 활동가의 규모를 꾸준히 키웠고,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계급투쟁에서 가장 활발한 동지들을 계속 조직하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일부 예외도 있지만, 여전히 작업장과 학교의 기층 대중과 유기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밀레이 정부 하에서 우리의 중대한 한계 중 하나는 지속적인 대중 행동의 부재였다. 투쟁은 고립된 상태로 폭발했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그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과거 활동에 대한 자기 비판과 평가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 총회의 경우(지난 한 해 동안 대부분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역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인근의 투쟁과 연결된 공동 행동 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 예컨대 우리는 GPS 항공 노동자들을 노동부 직원들, 인권 추모 구역들(군사 정권에 납치되고 살해당한 수천 명을 기리는 건물과 공간들), 보나파르테 병원 및 철도 부문 노동자들과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일부 투쟁들이 패배하면서 더 광범위한 단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총회가 활동하는 지역에 위치한 작업장 또는 학교와 지속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정치적 선동은 엇갈린 결과를 낳았지만 우리의 개입은, 특히 상반기와 대학 점거의 물결 동안, 일관되게 집단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중운동 활성화와 광범위한 반관료주의 경향이 부재한 상황에서, 가장 전투적인 활동가들을 조직해 내는 우리의 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기존의 전위는 더 넓은 기층 대중과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수도 바깥의 일부 지역 당은 더 많은 풀뿌리 조직 활동을 수행했다. 2023년 네우켄의 교사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노동 조직화가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분명한 사례였다. 우리는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 ‘빵과 장미(Pan y Rosas)’를 통해 젠더 기반 요구를 둘러싼 더 광범위한 운동을 전개했고, 빵과 장미의 행사에서는 기존 활동가들을 넘어선 폭넓은 참여가 있었다. 이는 대체로 수동적인 채로 남아 있던 노동 부문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고와 운동의 상당 부분은 12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대중운동 일정을 거치면서 가장 적극적인 동지들을 먼저 활성화하고 조직하는 일에, 그리고 이어서 당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는 노조 선거와 학생 선거를 포함해 진행 중인 투쟁들에 일관되게 개입했고, 이데올로기 투쟁의 영역에서 다양한 운동을 출범시켰다. 예컨대 공개 포럼, 워크숍, ‘공산주의적 미래를 위한 날들’이라 이름 붙인 토론회가 있었다. 새로운 전위 운동 과정의 출현, 특히 주민 총회와 (점거의 물결에서 정점에 달한) 대학 투쟁은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언제나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과정을 우리의 발판이 존재하는 기존 노동자 부문과 연결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상당수의 새로운 당원이 충원되었다. 당원 유입의 결과 우리가 주도하는 대학 기반 학생조직들이 급성장했는데, 학생조직들의 회원 수가 두 배로 늘었으며 질적으로도 훨씬 향상되었다. 투쟁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조직 노동운동과 관련된 PTS의 「활동 결산」은 우리의 투쟁 개입 내용과 참여 정도를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이 문서는 조직의 핵심적 한계를 짚고 있다. 광범위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 또는 우리가 기반을 가진 작업장에서 평조합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체계적 전략의 부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결함은 수동성과 후퇴가 두드러지는 부문들에서 특히 명확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서, 1935년 레온 트로츠키가 프랑스 지부를 분석한 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혁명적 활동과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 사이에 놓인 간극을 관찰하고 인상적인 서술을 남겼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우리 동지들이 집회를 조직하고 팸플릿을 배포하고 시위에 참여하지만, 행사가 끝나면 노동자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구호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우리는 그들의 일상적 투쟁, 그들의 공장, 그들의 노조와 연결된 견고한 다리를 놓지 못했다. 그래서 행사는 매번 막다른 골목에서 끝난다. 우리만 남고, 노동자들은 개량주의가 통제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통찰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핵심적 모순 가운데 하나를 포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활동하는 작업장의 일상 생활에 더 깊이 관여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문화적 참여를 포함한다. 노동자의 생활이 점점 더 원자화되고, 소셜 미디어와 대중 문화의 영향 하에 가족 및 개인의 공간으로 삶이 후퇴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관료들이 지배하고 임금과 단체 협약이라는 협소한 목표에 초점을 맞춘 노조 또한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조직을 침식해 왔다. 아주 드물게 다른 좌파적 세력이 의미 있는 행위자가 되는 경우에도 이처럼 유리된 정치 양식은 그대로 반복된다. 이들은 노동계급으로부터 비슷하게 유리된 기구들을 건설하며,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영향력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조성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대중 투쟁이나 반관료주의 조직화 노력이 뿌리내리면 노동자들의 자체적 운동으로 이러한 경향이 뒤집힐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수백 명의 무당파 활동가들과 공동의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사례들에서 이러한 지향이 드러난다. 즉, 작업장과 대학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확장한 이동식 보건소(시위대 의료 지원을 위한 이동식 거점); 철도 노동자 해고에 맞선 ‘기차를 지키자’ 캠페인; (사탕수수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투쿠만에서 그리고 지역 노동자들의 거점인 마디그라프 클럽에서 열린 ‘노동자의 우애’ 축구 토너먼트; 포사다스 병원을 지키기 위한 연말 축제; 모론 지역 총회와 함께 열린 노라 코르티냐스(Nora Cortiñas) 추모식; 보나파르테 병원 투쟁을 지지한 ‘노동하는 청년 축제’; 그리고 비교적 잠잠한 시기에도 폭넓게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당의 공간과 문화센터들을 활용한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의미 있음에도 여전히 고립된 상태이며, 아직 우리가 활동하는 부문들의 일상 현실에 뿌리내린 체계적 정책으로 종합되지는 못했다. 교사 노조를 보면, 우리는 전국의 여러 노조에 걸쳐 상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으며 당원과 유관 조직의 동지를 포함 800명이 넘는 동지가 활동한다. 그중 약 250명이 자기 학교에서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부문 내에서 우리 당은 매우 불균등하다. 평조합원을 포괄하는 기층 투쟁이 없을 때엔 우리는 학교의 동지들과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건설하기보다는 (노조관료들이 주도하는) 노조 내부의 정치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투쟁이 분출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더 쉬워진다. 공동의 조직에 대한 요구가 더 광범위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수의 공장에서 여러 투쟁과 노조 활동에 관여했고, 종종 사측의 보복과 관료적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투쟁에 대한 개입’과 ‘동료 노동자들의 일상에 함께 참여하려는 노력’을 결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4년 점거를 통해 우리는 대학에서 거의 1,300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당원과 무당파가 섞인) 세력을 조직했는데, 이는 다른 어떤 좌파 조직보다도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밀어붙여서 대학의 기층 교수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든가, 관료적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소극성에 투쟁을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국면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규모로 조직된 4월 23일 집회 이후, 우리는 PTS의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계획을 충분히 조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교수직과 사무직 모두의 임금 정상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활동적 대학 부문들을 결집시키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학교 폐쇄에 대한 우려가 첫 행진을 추동했던 것에 비해, 이 요구안은 훨씬 적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가 대학을 폐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대중의 관심이 식었고, 우리는 강의실 차원의 접근을 넘어 기층에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공립 대학과 노동자 임금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학교 자체에서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한 가지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다면 교수들과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신들의 기층과 다시 연결되고, 199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상실된 학생 조직화 관행을 복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 차원의 이 투쟁은 장기적인 것이지만, 노동운동에서 우리가 직면한 핵심 과제들과도 교차한다. 한 가지 긍정적인 사례는 라누스대학교 투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활동(강연과 워크숍)’을 투쟁 기간 독립적인 ‘자기조직화’ 활동의 조직화 및 학교 기층 대상 사회적 접촉 활동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략 덕분에 우리는 학생회 선거에 대담하게 개입해 지역 사회 보건학과 학생회(CeSaCo)를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었다. 코마우에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변화하는 정세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우리를 향한 부름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획을 대담하게 시도하라는, 당과 전위와 대중이라는 각각의 차원에서 활동하라는 부름 말이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 기회를 붙들고 우리의 사상과 실천을 시험할 때다. 스페인어: https://www.laizquierdadiario.com/XX-Congreso-PTS-La-relacion-entre-el-PTS-la-vanguardia-y-las-masas (저자: Fredy Lizarrague) 영어: https://www.leftvoice.org/the-party-the-vanguard-and-the-masses-experiences-from-argentina/ (번역: Remo Erdosain) 한국어: 강성윤 역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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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파에 맞서서 승리하는 법: 밀레이에 맞선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서 얻은 교훈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아르헨티나의 병원 노동자들, 교사들, 대학 교직원과 학생들은 자기 조직화, 계급적 독립성, 현장 조직화를 무기 삼아 긴축 프로그램과 예산 삭감에 맞설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맞이한 트럼프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노동 계급을 공격 중이며, 특히 이민자 공동체, 성소수자, 유색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반격에 나서지만, 흔히 그렇듯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의견이 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서 좌파 투쟁가들과 정치 활동가들이 축적해 온 경험은 미국에서 투쟁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왜 아르헨티나를 주목해야 하는가? 한편으로, 아르헨티나에서는 급진적 자유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정부의 실험이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움직임은 중심부 국가들의 우파가 정책을 쇄신하는 데 영감을 제공하곤 했다. 이를테면 1970년대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추진한 프로그램은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초기 실험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급 조직화와 저항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는 곳 또한 주변부 국가들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혁명적 좌파연합 중 하나가 존재하며, 계급투쟁과 사회운동의 역사가 풍부하기 때문에 집단적 저항의 기억, 노동계급의 투쟁방법에 대한 신뢰, 직접행동이라는 전통을 남겨 놓았다. 밀레이, 부르주아 야당, 좌파 먼저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주요 정치 행위자들을 개괄해 보자. 정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하비에르 밀레이는 매우 연극적인 인물이다. 논쟁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던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옹호하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모습으로 텔레비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밀레이는 자신을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브랜딩했지만, 그의 인기가 높아진 데는 미디어 재벌 에두아르도 에우르네키안의 힘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나아가 2023년 대선 승리는 낡은 정치 브로커들과 극도로 실용주의적이고 원칙 없는 권력 협상을 벌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밀레이의 담론과 정책이 워낙 기이했고 지난 20년간 나라를 지배해 온 두 연합(키르치네르주의와 “변화를 위한 연합(Juntos por el Cambio)”)에 맞서는 “아웃사이더”를 자임했기 때문에, 그는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후에도 반기득권 수사의 혜택을 계속 누렸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그의 경제 노선은 본질적으로 정부 긴축, 규제 완화, 자본가계급 특혜 정책의 새로운 판본이며, 노동자조직 악마화와 노동자투쟁 탄압을 수반한다. 밀레이와 그를 지지하는 운동을 낳은 국내적인 토양이 분명히 있지만, 이것이 일국에 국한된 현상은 결코 아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도널드 트럼프,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로 이어지는 전 지구적 우파 정부 물결의 일부다. 하비에르 밀레이는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의 확고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밀레이에 대항하는 부르주아 야당으로는 중도 및 중도좌파 정치인들을 포괄하는 잡탕과 같은 페론주의 연합, 그리고 “변화를 위한 연합”의 중도우파 잔여 세력이 있다. 후자는 두 정당으로 분열되었는데,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이며 중산층 기반인 급진시민연합(UCR)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제안(PRO)이다. 밀레이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바로 이 두 주류 정당을 맹공격함으로써 담론을 형성했다. 이들은 곧 “정치 카스트”였다. 그러나 밀레이는 결선 투표를 며칠 앞두고 마크리와의 거래를 통해 내각의 몇 자리를 내주고 마크리 지지자들의 표를 확보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2023년 PRO의 대선 후보였던 파트리시아 불리치로, 이후 밀레이 정부 치안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페론주의는 빅텐트 조직으로, 후안 D. 페론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개발주의를 느슨하게 계승한 정치 이념을 내세운다. 키르치네르주의는 세기 전환기 이후 페론주의 내에서 지배적 분파로 자리 잡은 중도좌파 정치 기획으로, 처음에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그의 사망 이후에는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가 이끌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했으며 2019~2023년에는 더 광범위한 (비키르치네르주의) 페론주의 연합의 일부로서 다시 권력을 잡았다. 키르치네르주의는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딛고 부상했다. 그 위기는 2001년 민중 봉기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축출되며 막을 내렸다. 이런 배경 때문에 키르치네르주의는 대중운동과 전투적 노동계급에 많은 부분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정치적 지지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포괄적 복지 정책과 일정 수준의 경제적 재분배를 실시했으며, 사회운동과 인권 단체를 포섭했다. 키르치네르주의의 핵심 과제는 국가 제도의 정당성을 회복하여 사회 질서를 복원하고 자본 축적을 위한 조건을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임기 말인 2015년에, 그리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키르치네르 행정부 시기인 2019~2023년에는 더더욱, 빈곤율이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율도 폭등했으며, 이들의 정치 기획에 대한 환멸감이 모든 사회 계층에 깊숙이 침투했다. 밀레이의 집권을 이해하려면 키르치네르주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2015~2019년 마크리의 과도기 정권이 (미온적으로나마) 노동운동을 길들이려 시도하고 단편적 긴축(마크리는 충격 요법에 대비되는 “점진주의”를 내세웠다)을 실시하여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부양하려다 실패한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대다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중요도와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한다. 2011년 창설 이래 좌파노동자전선(FIT-U)은 민중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FIT-U는 현재 연방 의회에서 5석, 주 의회 및 지방 의회에서 수십 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노동계급의 계급적 독립성을 바탕으로 쟁취한 것이다. 이 같은 계급 독립 정치는 좌파전선 원내 교섭 단체가 밀레이 정부의 모든 조치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반대한 유일한 교섭 단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나아가 소속 의원 전원이 교사 수준의 소득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 세비는 노동자 투쟁과 사회적 투쟁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좌파전선의 유명 인사들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제나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이를테면 전 대선 후보이자 연방 의원인 니콜라스 델 카뇨와 미리암 브레그만은 모두 좌파노동자전선 소속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당원으로, 의회에서 정부의 탄압을 끊임없이 고발하는 동시에 현장 투쟁에 연대한다. 이들이 노동운동가들,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퇴직자들, 병원 해체에 맞서는 의료 노동자들과 함께 최루액을 맞고 후추 스프레이를 맞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좌파노동자전선의 활동 무대는 의회로 국한되지 않는다. 소속 활동가들은 전국 수백 개 노조 지부에서 지도자나 조직가로 활동하고, 수십 개 대학에서 조직을 이끌며, 강력한 여성운동 조직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대열에 속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리고 특히나 노동운동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좌파노동자전선 주요 단위인 PTS 활동의 핵심이다. 행위함으로써, 또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아르헨티나의 정치 상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내 행위자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노조 관료들이다.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은 역사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축에 속했으며, 400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전체 노동인구의 약 25퍼센트, 공식 고용 노동자의 거의 40퍼센트)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조는 통상 페론주의 성향의 관료적 분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인과도 기꺼이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노동조합 총연맹이 두 개 있다. 가장 크고 가장 관료적인 CGT, 그리고 CGT에서 갈라져 나온 전투적이고 (약간이나마 더) 민주적인 CTA다. 이 상급 노동 조직들은 국가 경제를 마비시킬 힘을 갖고 있지만, 지도부는 (종종 용역 깡패까지 동원하면서) 조합원의 참여와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가로막고, 파업 조직을 회피할 구실을 늘 궁리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외부 행위자를 빼놓으면 전체 구도가 완성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다. IMF는 역사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 시장 및 긴축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IMF는 “최후의 대부자”, 말하자면 국채 매입자를 찾지 못하는 나라에 신용이라는 생명줄을 제공하는 지위 덕분에 공공 정책에 대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IMF 대출에는 통상 “조건부 이행 사항”이 붙는데, 여기에는 대개 재정 적자 축소 또는 해소, 사회 지출 삭감, 자유 무역 장벽 최소화 등의 요구가 포함된다. 중간 선거를 앞둔 밀레이 정부 밀레이 정부는 임기 초부터 자랑할 만한 핵심 성과를 하나 거두었는데, 바로 인플레이션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권 안정의 주된 토대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은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를 짓눌러 온 문제였다. 마크리 집권기(2015~2019년)에 연 40퍼센트였던 물가상승률은 2023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임기 마지막 해 200퍼센트를 돌파하며 치솟았다. 이례적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이토록 불안정한 경제 환경에서 국내외 자본의 투자를 가로막아 재계를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거대한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임금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고, 가격을 예측할 수 없는 노동자 가정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역대 정부가 가격 통제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하비에르 밀레이는 취임하자마자 가격을 자유화하고,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한 친시장 정책과 여러 조치를 통과시켰다. 포퓰리즘적 “아웃사이더” 담론을 내세웠지만 그의 경제 정책은 교과서적인 신자유주의 충격 요법 그 자체였다. 집권 첫 주에 정부는 자국 통화를 50퍼센트 평가 절하하고 가격을 자유화했으며, 이로 인해 실질임금이 급락했다. 공공 지출 총액을 29퍼센트 삭감했고, 연방 정부의 주요 감축 조치는 13개 부처 폐지(또는 “차관급”으로 격하), 모든 공공 인프라 사업 동결, 보건·교육·과학 분야 지출 대폭 삭감 등을 포함했다. 2025년 6월까지 정부는 공무원 5만 명을 해고했다(취임 당시 공무원은 총 20만 5천 명이었다). 물가는 초기에 급등한 이후 안정되었고, 인플레이션은 2023년 12월 월 약 25퍼센트에서 1년 뒤 월 2.5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경기 냉각 정책에는 필연적으로 침체의 위험이 따르는데, 아르헨티나는 사회적·경제적 상황자체가 이미 참담했다. 2025년 상반기에 부분적으로 회복되기는 했으나 밀레이 집권 첫 해 경제 활동은 3.5퍼센트 감소했고, 2023년 11월부터 2024년 8월 사이에 거의 14만 개의 일자리(민간 부문 전체 고용의 2.2퍼센트)가 증발했다. 초기 정책들이 시행된 직후 빈곤율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이후 감소하기는 했으나 이미 높았던 2023년 빈곤율 언저리에서 고착되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실업률은 최근 4년 중 최고치인 7.9퍼센트까지 올라섰고, 비공식 고용을 비롯한 각종 불안정 노동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이전의 0.41에서 0.47로 뛰어올랐다. 여러 논평가들은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중의 묵묵한 인내가, 특히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바로 그 인내가 역대 정권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드러내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눈에 띄게 나빠진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밀레이에게 자신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기회와 더 많은 시간을 기꺼이 주려 했다. 밀레이의 목표는 판을 엎고 다시 투자를 끌어모아 대폭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구상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새로 짜는 것, 말하자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임금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이를 통해 착취와 이윤 창출의 기회를 늘리고 확대하려 한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먼저 아르헨티나 노동계급과 그 조직들, 그리고 과거 투쟁으로 쟁취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에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한다. 대부분의 전국 단위 노조가 관료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해도, 지도부는 여전히 지지 기반을 이루는 목소리들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 조합원들의 핵심적인 권리가 박탈당하면 조직적 운동에 나서라는 거대한 압력이 지도부에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5년 들어 밀레이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여러 스캔들에 맞닥뜨렸다. 첫 번째는 리브라($Libra) 스캔들로, 하비에르 밀레이 본인이 소셜 미디어 X에서 해당 암호 화폐를 홍보한 뒤 투기꾼들이 투자 회수 사기를 통해 2억 5천만 달러를 챙긴 사건이다. 이어서 마약 유통업자들의 뇌물과 연루된 부패 사건이 터졌는데, 음성 녹음에는 하비에르의 여동생이자 대통령 최측근 자문인 카리나 밀레이가 직접 연루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는 밀레이의 정당인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의 간판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중간선거 첫 번째 후보였던 호세 루이스 에스페르트가 마약 사건에 휘말려 선거운동 도중 후보직을 사퇴했고, 연방 판사에 의해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다. 경제는 도약하지 못하고, 국제수지 적자와 결부된 모순이 심화되면서 단기 및 중기 경제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가 2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제공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표는 밀레이에게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절실한 생명줄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또 다시 타국의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밀레이가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대출을 승인하겠다고 못 박았다. 좌파전선의 전 의원이자 전국 지도자인 미리암 브레그만이 비난했듯이, 이 합의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이 심화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강경한 태세를 유지하면서 타협 불가 이미지를 내세우려 한다. 그러나 밀레이 취임 이후 계급투쟁의 윤곽을 드러낸 중요한 운동이 몇 차례 있었다. 두 차례의 총파업, 교육을 지키기 위한 대규모 시위, 성소수자의 권리와 공공 의료를 위한 대규모 시위, 운수·교사·공무원 파업, 그리고 주요 도시 전역에서 열린 대중 집회가 그것이다. 이 모든 투쟁 가운데 지금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정부를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거나, 정부에 맞서 싸우는 방법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반격하다 아르헨티나에서 공립대학들의 권위는 상당하다. 등록금이 전액 무료임에도 공립대학 학위는 대부분의 경우 사립대학 학위보다 높이 평가된다. 2024년 10월 정부는 공립대학을 겨냥했다. 이것이 첫 번째 공격은 아니었다. 밀레이가 취임 직후 내놓은 2024년 예산안에서 연방 정부가 전국적으로 직접 지원하는 국립대학 재정이 대폭 삭감되었다. 페소화 기준 예산은 2023년 수준에서 동결되었지만, 연간 288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거의 70퍼센트 삭감과 다르지 않았다. 2024년 4월, 50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립대학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는 지난 20년간 가장 큰 대중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10월에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의회가 통과시킨 고등교육 긴급 재정지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하나둘 시작된 대학 점거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학생들은 전국 30개 국립대학에서 80곳 이상의 건물 점거를 조직했고, 교원 및 비교원 직원의 임금 인상과 대학 예산 전반의 증액을 요구했다. 노동조합과 대학생 연합은 두 차례의 전국 파업과 주요 도시에서의 대규모 행진을 조직했다. 이 강력한 운동 앞에서 정부는 빠르게 뒷걸음질쳤다. 밀레이는 공립대학에 등록금을 부과하겠다는 암묵적 위협을 교묘하게 내비쳤으나, 충돌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만에 공립대학 무상 원칙을 폐기하지 않겠다고 직접 나서서 밝힐 수밖에 없었다. 이 운동에 불을 붙이고 힘을 실어 준 것은 수십만 명의 학생, 교사, 교수, 대학 직원들로 이루어진 풀뿌리 조직이었다. 이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민주적 토론과 의사 결정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각 학교의 활동가 수백 명이 총회에 모여서 토론하고 다음 행동을 표결로 정했다. 좌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이상화하거나 저절로 생긴 현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좌파 정치 활동가들은 이러한 자기 조직화 기구들을 구축하고, 발전시키고, 쟁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좌파노동자전선 소속 PTS 당원들은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위해 쉼 없이 싸웠다. 이 투쟁 국면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낸 조직과 기관으로는 전국대학간위원회(CIN, 전국 대학 총장 협의체), 대학 노조 연합(Frente Sindical Universitario), 그리고 학생운동 대표들이 있었다. CIN의 구성원은 대부분 오래된 두 부르주아 정당(페론주의와 급진시민연합)에 소속된 총장들로, 직접 행동을 만류하거나 약화시키려 했고 학부 건물 점거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원격 수업으로 전환하여 운동을 고립시키려 했고 관심을 오로지 의회에서의 예산 협상으로 집중시키려 했다. 대학 노조 지도부도 투쟁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두 차례의 매우 성공적인 파업과 전국 행진 이후 정부가 약세를 보이던 시점에 그들은 세 번째 전국 교육 행진 소집을 거부했다. 학생 조합은 당연히 학생들의 도덕적 열기와 투쟁 의지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많은 점거 현장에 참여하고 점거를 이끌었다. 이를테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철학부 학생 조합 사무총장인 루카 본판테는 CIN의 타협적 노선을 거듭 규탄하면서, 지속적인 직접 행동과 전국적 학생운동 조율을 촉구했다. 그러나 전국 조직과 다수의 주·지방 조직에서 학생 조합 지도부는 대부분 급진시민연합과 페론주의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점거를 적극적으로 말리면서 초점을 2025년 대학 예산을 둘러싼 의회 논의로 돌리려 했다. 학생들과 대학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역할은 의원들의 토론과 표결을 지켜보는 수동적 구경꾼에 불과했다. 이 투쟁의 핵심 교훈은 직접 행동과 자기 조직화야말로 대학 운동의 진정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와 학생 조합의 관료들은, 제도적 경로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든 아니면 자신들의 손을 벗어날지도 모르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든 간에, 운동의 급진적인 칼날을 무디게 하고 가로막기만 했다. 게다가 주류 부르주아 정당 성향을 가진 조직들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거스를 수 없을 때만 행동에 동참하고, 그 와중에도 운동을 해체하고 고립시키고 잠재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며, 투쟁의 현장과 동떨어진 의회 논의로 대화의 장을 옮기기 위해 애썼다. 꼼짝도 하지 않는 병원 교육과 더불어 의료 부문 또한 밀레이 행정부 출범 초부터 공격 대상이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병원 예산은 최대 54퍼센트까지 삭감되었다. 고등 교육을 공격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밀레이 행정부는 더 작고 만만해 보이는 표적을 겨냥했다. 바로 연방 정부 관할로 운영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정신건강 병원이었다. 보나파르트 병원은 아르헨티나에서 유일하게 정신질환과 중독에 대해 여러 분야의 통합 치료를 수행하는 전문 병원이다. 이 공격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기관에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작업은 아르헨티나의 어떤 의료 시설과도 다르다. 의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사회과학자, 음악치료사 등이 협력해서 정신건강 환자에게 총체적 치료법을 제공한다. 인권 활동가이자 오월광장어머니회 소속인 라우라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딴 이 병원은 진보적이고 평등한 의료의 상징이다.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병원 노동자들은 입원 병동과 응급실을 폐쇄하라는 정부 공문을 받았다. 몇 시간 뒤, 이 조치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 실행될 병원 최종 폐쇄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 왔다. 공무원 노조(ATE)가 긴급 회의를 소집했고, 곧이어 총회에서 자신들의 몸으로 병원을 지키기로 표결했다. 점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팔짱 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최대한 관심을 끌어야만 했다. 정부는 평화로운 시위에도 물리력을 행사할 의지가 있음을 이미 충분히 입증했다. 보나파르트 노동자들은 언제든 폭력적으로 진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병원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지체 없이 바로 그날 거리로 나가 전단을 돌리며 지역 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숨 가쁜 속도로 다음 날인 토요일 저녁 연대 음악회를 조직했고, 여러 밴드가 투쟁에 연대하며 무대에 올랐다. 환자들과 인근 지역 및 그 너머 주민들의 뜨거운 지지가 쏟아지며 조직화에 힘이 실렸다. 10월 7일 월요일에는 병원을 “껴안는” 연대 집회에 수백 명이 모였고, 기자회견에는 국회의원, 인권 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함께했다. 맨 처음 회의를 소집한 것은 노조 현장위원회였지만,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병원을 조직하고, 각기 다른 과제(언론 대응, 연대, 환자 돌봄 등)를 조율할 위원회를 꾸리고, 투쟁 전략을 결정했으며, 노조 공식 지도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 건강 전문가 훌리에타 슈발리에의 회고에 따르면, 병원 직원이자 조합원으로 지낸 11년 중에 어떤 행동을 할지 “직접 투표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용 형태, 조합원 여부, 소속 부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총회에 모여 매 결정마다 거수로 표결했다. 투쟁 첫 2주 동안 총회는 거의 매일 열렸다. 훌리에타는 자신들이 보건 부문 안팎에서 투쟁하는 다른 노동자 집단들과 빠르게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게 된 과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포사다스 병원, 가라한 병원, 철도 노동자, 공항 노동자 등이 연대의 대상이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대학 투쟁에도 주의를 기울여 의과 대학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싸우는 부문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이러한 연대는 곧 결실을 맺었고, 보나파르트 병원은 정부에 맞선 대중 행동과 저항의 진원지가 되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한발 물러서서 병원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임박한 폐쇄 위험은 넘겼지만 정부가 병원 “구조조정”을 고집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구조조정은 병원을 서서히 고사시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병원 존치를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은 정부의 명백한 패배였고, 보나파르트 병원은 전국적으로 밀레이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보나파르트 병원 직원들을 대표하는 두 노조의 지도부는 단결, 결집, 민주적 의사 결정을 요구하는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조 대표들이 정부 당국과 만나 모든 일자리와 부서를 포함한 병원 존치 합의에 서명하면서 정부와 함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동의해 버렸다. 구조조정이란 통상 해고와 부분 폐쇄를 포함하는 긴축의 완곡한 표현이다. 이후 병원 총회는 어떠한 형태의 구조조정에도 반대한다고 표결했고, 이는 현장 조합원들이 자기 지도부보다 더 왼쪽에 서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일간 좌파>와의 인터뷰에서 보나파르트 병원 핵심 조직가 중 한 명인 하비에르 리오스는 이 투쟁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정부를 후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현장 조합원의 힘, 지역 사회와의 유대 구축, 병원의 벽(과 인력) 너머로 확산된 광범위한 능동적 저항 운동 덕분이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투쟁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기금을 모으고, 서로의 현장에 달려가고, 가장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 연대를 체현하는 운동이 만들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사들이 파업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 파업은 누가 우리의 동지이며 누가 우리의 적인지 선명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파업은 5월에 시작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최대 공립 교사 노조인 수테바(SUTEBA)가 정부와의 잠정 합의안을 발표하고 표결에 부친 뒤였다. 잠정 합의안은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소수의 교사를 대표하는 노조인 FEB가 파업을 소집하도록 추동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정부는 현재 중도 좌파 경제학자 악셀 키실로프가 이끌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정부의 경제부 장관이었던 그는 현재 페론주의 내 지배적 분파인 키르치네르주의의 주도권을 두고 크리스티나와 다투고 있다. 지난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중간 선거에서 키실로프의 후보들이 밀레이 측 대리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뒤 야당 내에서 그의 입지가 높아졌다. 키실로프는 밀레이에 대한 저항의 선봉을 자처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가 밀레이의 경제 노선에 맞서는 “방패”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FEB가 파업을 선언하자마자 키실로프는 파업에 참여하는 교사들에 대해 결근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위협은 파업을 무력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키실로프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분명히 드러냈다. 수테바 지도부는 언제나 그렇듯 보수적 역할을 맡았고, 조합원의 극히 일부에게만 의견을 물었으면서도 잠정 합의안이 압도적 다수의 동의로 통과되었다고 둘러댔다. 수테바 내 좌파 분파인 물티콜로르가 파업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내 최대 지구의 조합원 압도적 다수가 파업 호소에 응했다. 이러한 결과는 놀랍지 않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들은 생계를 위해 두 곳, 심지어 세 곳의 일자리를 가진 경우가 허다하다. 수테바가 협상한 임금 인상은 고작 4퍼센트(수개월 후 7퍼센트로 상향)였고, 2025년 물가상승률이 (작년보다 나아진 수치임에도) 27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이 인상분은 사실상 감소한 소득분을 메우기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이미 빈약한 임금을 또다시 깎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활비를 감안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실제로 전국에서 교사 임금이 가장 낮은 세 개 주 가운데 하나다. 교사들에 대한 키실로프의 적대 행위는 그가 가진 정치적 입장의 민낯을 드러낸다. 키실로프는 겉보기에는 밀레이의 노골적 신자유주의와 매우 다르지만, 여러 근본 요소와 목표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전투적 수사를 내세우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경제 정책은 밀레이와 마찬가지로 국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 키실로프는 관광업, 제조업, 광업 부문에서의 대규모 자본 투자에 대해 향후 30년간 파격적인 세금 감면을 제공하는 등 여러 경제적 특혜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의 노선이 IMF 및 기타 국제 금융 기구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종속에 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고착시킨다는 점이다. 고용주들에게 밀레이의 집권은 공세에 나서라는 신호였다. 그들은 노동운동가를 해고하고, 더 낮은 임금으로 협상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노동자투쟁에 대한 주 정부의 답변은 “강제 조정” 조치였다. 말하자면 노동자에게는 업무 복귀를, 고용주에게는 괴롭힘, 불법해고, 임금삭감 중단을 강제하는 조치다. 문제는,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 위험 때문에 이 조치에 따라야 하는 반면, 고용주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이를 무시할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강제 조정은 고용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투쟁을 무력화하는 몽둥이 구실을 할 뿐이다. 다시 말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키실로프 행정부는 밀레이의 정책에 대한 그 어떤 “방패”도 되어 주지 않는다. 진보적 수사로 포장되었을 뿐, 자본 투자에 보상하고 저임금을 유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를 규율하는 정책의 온건한 판본이다. 그러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교사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키실로프의 임금 삭감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에 힘입어, 물티콜로르와 반대파 지부들은 정부와 로베르토 바라델 예하 수테바 지도부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물티콜로르 지도자이자 전 연방 의원인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의 발언에 따르면, 수테바 지도부는 “사실상 키실로프 행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이 사례가 무엇보다 잘 보여 주는 것은, 수사가 아무리 좌파적이어도 부르주아 정치인은 자본주의 게임의 규칙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좌파는 시장과 노동자를 중재하겠다고,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국가 관리자에게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경험이 입증하듯, 시장의 압력 하에서는 투자와 기업 이윤을 촉진하려는 충동이 민중의 안녕보다 언제나 우선한다. 이 사례에서도 역시 노조 관료층은 운동을 잠재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좌파를 위한 전망과 교훈 우파 정부의 공세에 맞서려면 정치적 차이를 잠시 잊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듣는다. “지금은 전략을 논할 때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킬 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의 파렴치한 공격에 맞서서 가능한 한 가장 넓은 운동을 능동적 저항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차이를 숨기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좌파야말로 극우에 대한 최선의 방어다. 이 글에서 다룬 사례들은 좌파 활동가들이 밀레이에 맞선 싸움을 선도하는 모습을 가득 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철학부 학생 조합 사무총장 루카 본판테는 PTS 당원이며, 보나파르트 병원의 하비에르 리오스, 교사 활동가이자 전 의원인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혁명적 활동가들은 투쟁 현장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고, 동료 노동자, 학생, 사회운동 활동가를 조직하며, 노동계급의 힘을 강화하는 타협 없는 강령을 제시하고, 자기 조직화 기구 건설을 추동한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방어적 투쟁에 힘과 예리한 칼날을 부여한다. 이것이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조직화의 결실이라는 점도 강조할 만하다. PTS는 1990년대에 혹독한 시절을 겪었다. 활동가는 전국에 수백 명뿐이었고 대중적 인지도는 미미했다. 그러나 혁명 정당, 전투적 정당을 건설한다는 전략적 목표가 1988년 창당 이래 모든 투쟁과 모든 전술적 결정에 방향을 제시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아르헨티나 좌파 대부분이 키르치네르주의를 지지하거나 그쪽에 합류했지만, PTS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한 소수 조직 가운데 하나였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 좌파전선에 통합되어 있다. PTS가 지금 이 투쟁들에 내부적으로 개입하면서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사회주의적·반제국주의적 강령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원칙에 입각한 조직화와 당 건설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좌파전선은 IMF를 비롯한 전 지구적 금융 기구들과 제국주의적 종속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단절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유일한 전국적 세력이다. 이 투쟁들이 밀레이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자기 조직화 기구를 만들어 민주적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노조 및 여타 운동의 관료적 지도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들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현장 조합원의 힘을 키우고 지역 사회와 강한 유대를 맺음으로써 정부의 공격에 맞선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진보적 수사와 소소한 양보를 제시하면서 시장의 지배를 유지하고 재정 균형을 위해 필요할 경우 노동자를 규율하는 차악의 정부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미국 좌파는 이러한 경험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실천이 재현된다면 트럼프에 저항하는 운동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두 자본주의 정당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좌파의 토대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국 단위 노조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민국(ICE)에 의한 이주민(또는 이주민처럼 보이는) 노동자 납치와 공포 조성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연방 공무원에 대한 대규모 해고와 노조가 교섭으로 쟁취한 권리의 박탈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조직하는 데도 실패했다. 노조 관료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노조 내부에 반대파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은 오늘날 절박한 과제다. 오늘날 미국 좌파에게 특히 어려운 과제는 조란 맘다니 현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이다.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는 맘다니의 선거운동은 뉴욕 시 노동계급과 좌파 전반에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기성 정치권과 보수 정치인들에게는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맘다니의 공약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보적이며, 뉴욕 시 노동계급 가정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노동계급의 권리를 확장하고 자본의 힘을 억제하는 조치들을 지지할 수 있고 또 지지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대중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맘다니 개인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고 그의 캠프에 결집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가 11월에 당선되더라도, 취임 직후 시내 대기업을 만족시키라는 즉각적 압력에 직면할 것이고 자기 공약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뉴욕 시의 정치 브로커들이나 재계 엘리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이 그들의 부와 이익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민주당에서 출마한 좌파 성향의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정치인들의 전례를 보면, 그들이 현 상태에 도전하거나, 시장의 명령에서 벗어나거나, 독립적인 노동계급 정치 조직의 발판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은 사라질 것이다. Left Voice에 2025년 10월 26일 발행된 기사를 번역함. 저자: Remo Erdosain 번역: 강성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4-27 | 조회 28,583 -
가자지구·이란 참상 폐허 위에 선 우골탑, 한국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더욱 강고해져야 한다.지난 3월 신학기를 맞아 여러 대학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취업박람회에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불법점령 등 여러 전쟁범죄에 연루된 기업들도 참여했다. 이에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이 취업박람회에 참여하는 것을 규탄하는 집회와 저항행동이 각 대학에서 펼쳐졌다. 본 기사는 집단학살 연루 기업의 취업박람회 참여 규탄 행동이 전개된 경과와 배경, 후기를 담은 프레시안 연속 기고 기사의 보강판이다. 프레시안 기사 ‘가자지구·이란 참상 폐허 위에 선 우골탑, 대한민국 대학교들(2026.04.11.)’의 내용 일부를 기고자가 직접 수정/보완하여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온라인 기사로 게재한다.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에 벌어진 참극, 그리고 이스라엘의 ‘교육학살’ 2026년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침공을 개시했다. 침공 첫날 아침 10시경, 이란 남부 미나브 시 샤자라 타이예베 여자 초등학교에 세 차례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떨어졌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미 해군 함정에서 발사되었다. 오차 범위가 고작 몇 미터에 불과한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이 정조준한 것은 수업이 한창인 학교였다. 이 폭격으로 170여명이 살해당했고,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이 마치 자유를 빼앗긴 인질처럼 묘사하던 사람들, 제국주의자들이 직접 해방시켜주겠노라 호언장담하던 사람들, 바로 이들을 제국주의자들이 직접 죽인 것이다.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학살 사망자를 위해 조성된 공동묘지 미나브 초등학교 학살이 고의라는 증거는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3월 10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민간 기반 시설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란이 다시는 국가로서 재건될 수 없도록 쉽게 파괴할 수 있는 목표물들을 제거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대학 등 수많은 민간 시설이 포화에 뒤덮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3월 28일 테헤란 과학기술대와 이스파한 공과대학을 폭격했다. 4월 6일에는 이란의 주요 과학기술 대학인 테헤란 샤리프 공과대학교에도 폭격이 이어졌다. 이란 과학기술부는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최소 30개 대학이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참혹하다. 동시에 낯익은 광경이다. 이스라엘이 학교 등 민간 시설을 표적으로 삼으며 철저하게 파괴하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모습은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이어지는 내내 셀 수 없이 반복되었다. 교육 클러스터 및 유노샛(UNOSAT) 자료에 따르면, 가자지구 학교의 97%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전체 학교 건물 중 432개(76.6%)가 “직격탄” 피해를 입어 약 469,222명의 학생과 17,564명의 교사가 영향을 받았다. 가자지구 학교 건물의 91.8%(564개 중 518개)는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선 완전한 재건 또는 대규모 복구 작업이 필요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23년 10월 27일 기준 가자지구 625,000명 이상의 학생과 22,500명 이상의 교사가 있다고 보고했다, 현재 이들은 교육받고 교육할 권리를 전적으로 박탈당했다. 2025년 9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교육부 및 고등교육부 발표를 인용하여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17,237명 이상의 초중고등학생과 1,271명의 대학생, 그리고 967명의 교육 관계자가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통신사 와파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고등 교육 기관 12곳이 파손되거나 파괴되어 대학교육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학습의 터전을 전적으로 상실한 가자지구 학생들은 피난민 캠프와 천막을 거점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이어나가고 있다. 파괴된 학교와 교원을 포함한 교육 인프라를 재건하는 작업에는 최소 몇 달,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자지구 집단학살로 파괴된 알 아크사 대학 정문과 파괴 이전 모습 학교, 대학 등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폭격과 학살을 통틀어 교육학살(Scholasticide)이라 칭한다. 교육학살은 옥스퍼드 대학 카르마 나불시(Karma Nabulsi) 박사가 2008~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당시, 학교, 교육부 등 교육과 관련된 건물이 표적이 된 상황을 묘사하고자 고안한 용어다. 교육학살은 교육 시스템, 즉 수 세대의 지적·사회적·문화적 역량을 기르고 재생산하는 체계에 대한 고의적 파괴다. 이는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인종청소-아파르트헤이트, 정착민 식민주의 정책의 연장선이다. 파괴된 교육 인프라는 현지 교육의 ‘열악하고’ ‘열등한’ 교육 여건으로 비추어진다. 이는 제국주의적 교육 제도와 인프라의 도입을 촉구하는 명분이 된다. 교육 시스템의 재건 과정에서, 독립적인 교육의 가능성은 서구와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적 헤게모니로 대체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전략을 이란 침략전쟁에도 동원하며, 중동 사회 전체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을 위한 전쟁기계에 한국 대학과 기업이 협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침략전쟁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 그 배경에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외교적 후원이 있다. 잠시 5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상대로 폭격과 함께 선제공격을 가했다.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이 전쟁을 누군가는 6일 전쟁, 누군가는 제3차 중동전쟁으로 부른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은 이 전쟁을 나크사(Naksa)라고 부른다. ‘패배’ 혹은 ‘악화’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 이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과 이집트 시나이반도, 그리고 시리아 골란고원을 군사점령했다. 군사점령의 결과, 1948년 나크바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나크사 이후 또 다시 삶의 터전을 상실했다.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멍에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의 중동 거점으로써 설립된 정착민 식민주의 체제이자 프로젝트다. 제국주의의 중동 거점이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부터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까지 영향을 뻗는 것, 그 결과로 제국주의 패권이 중동 전역을 장악하는 것, 그것이 ‘유프라테스 강부터 이집트 강까지’라는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프로젝트의 실체다. 1967년 전쟁을 통해 시온주의자들의 꿈은 거의 실현될 뻔했다. 그리고 이번 집단학살과 이란 침략전쟁, 그리고 레바논 폭격을 통해 그 꿈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에 앞서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는 이스라엘에 중동 전역에 대한 ‘성경적’ 권리가 있다는 망언을 남겼다. 1967년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외교적 뒷배로 남았던 미국은, 이제 이스라엘과 나란히 침략군의 선두에 서고 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폭격으로 민간인과 UN 평화유지군을 살해하고 있는 와중에도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 제국주의 첨단 무기 지원과 기술 협력 역시 이스라엘이 전쟁과 학살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전장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신무기 실험장이다. 1967년 전쟁 당시, 기습적 선제공격으로 이집트 공군을 궤멸시킨 것은 이스라엘 공군 소속 프랑스산 미라쥬 III 전투기였다. ‘채찍(שוט, sho’t)’이라는 이름의 영국산 센추리온 전차, ‘공성추(מגח, Magach)’라는 이름의 미국산 패튼 전차가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뒤덮었다. 2026년 이란 침략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상징을 달은 F-35 전투기와 정밀 유도 무기가 학교 등 민간 시설을 조준하며 무차별적인 폭격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967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주력 전차였던 영국산 센추리온 전차 기반의 '숏(Sho't)' 전차,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진압하는데 동원된 이스라엘군의 미국산 패튼 전차 기반 '마가크(Magach)' 전차, 1967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운용한 프랑스 다쏘(dassault)사의 미라쥬 III 전투기 이제는 그 군사기술의 전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함께하고 있다. 2025년 10월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가자 집단학살: 집단적 범죄’ 보고서는 F-35 스텔스 전투기에 부품을 공급한 19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명시하고 있다. HD현대,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한국 기업들이 항공, 전자전, 드론, 로봇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취업박람회, 현장실습 등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에 침투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운용중인 F-35 라이트닝 전투기 공모의 규모와 구체적 협력의 측면에 있어 취업박람회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업이 대학에 침투할 때, 취업박람회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취업박람회는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명목으로 협력을 정당화한다. 집단학살 공모기업과 학생 사이의 접촉면이 늘어나고 친숙해지는 가운데, 집단학살 공모가 마치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일인 것처렴 여겨진다. 이것이 바로 집단학살을 ‘정상화(Normalization)’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공모가 대학에서 용납되어선 안된다. 모든 학살 공모자들을 대학에서 쫓아내는 것이 ‘실질적인 연대’의 실현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 특히 대학의 학생들과 교직원, 학계 종사자들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교육학살에 대해 ‘이 학살에 대한 모든 공모 행위를 종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5년 7월 발표된 가자 대학 총장들의 공개 서한은 ‘상징적 연대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 실질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이제는 단순한 선언을 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협력이란 팔레스타인 해방을 단호히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멈춰 세우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학술보이콧 운동을 통해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보이콧이란 이스라엘 국가기구와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기업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퇴출시키는 운동을 의미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목소리에 부응하는 대학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2024년 4월 17일 미국 컬럼비아 대학을 시작으로 전 세계 대학에서 전개된 점거농성 물결 아래, 대학의 이스라엘과의 투자관계 철회, 집단학살 공모기업과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2023년 UC 버클리 대학 정문 아래를 지나는 팔레스타인 연대 대오 행렬 2024년 4월 28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대학(PSU)에서는 학생들이 수개월간의 시위와 점거농성을 벌인 끝에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군수업체 보잉과의 관계를 잠정적으로 단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24년 5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는 2주간의 학생 시위 끝에 무기 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기로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투자 철회 대상 기업 목록에 있는 캐터필러, 록히드 마틴, 레오나르도, 팔란티어의 보유 주식을 매각했다. 2024년 1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UvA) 교직원 다수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인 FNV는 4일간의 파업을 벌였다. 교직원 조합원의 84%가 참여한 이 파업은 이스라엘에 대한 학문적 보이콧을 위한 최초의 공식 노동조합 파업이다. 파업의 결과로 2025년 7월 암스테르담 대학교는 집단학살에 연루된 기업과의 관계 단절과 물품 조달 중단을 약속했다. 2024년 5월 전개된 암스테르담 대학 교직원노동자들의 파업 집회 2025년 6월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TCD)는 아일랜드에서 최초로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라는 권고를 수용하고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기업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8월 27일,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 강사인 페이린 카오(Peyrin Kao)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에 기술이 이용되는 것에 항의하며 38일간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단식투쟁 기간 동안 집단학살에 과학기술이 동원되지 않길 바라는 이공계 학생과 교직원들을 중심으로 'STEM for Palestine‘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결성되었다. UC 캠퍼스들은 2005년부터 2022년까지 국방부,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제너럴 아토믹스, 보잉, 그리고 이스라엘 국방부로부터 총 56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UC 캠퍼스들은 총 1,428건의 군사 자금 지원 연구 보조금을 받았다. 대학 당국은 페이린 카오에게 2026년 봄 학기 동안 무급 정직 처분을 내리고, 팔레스타인 연대에 참여한 학생 및 교직원 160명의 명단을 트럼프 정권에 제출했다. 카오의 복직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STEM for Palestine’은 4월 7일 버클리 캠퍼스에서 집단학살 공모기업을 배제한 "대안적 진로 박람회(CALternative Career Fair)"를 개최했다. 학술보이콧이 유효하게 관철된 대학의 사례를 살펴보면, 학부생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강사, 교직원 등 학내 노동자를 포괄하는 대학구성원들의 연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한 힘의 합력을 넘어 대학과 자본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힘을 창출할 수 있다. 대학의 연구와 강의를 전담하는 대학원생과 강사노동자, 학교를 유지보수하고 사무를 관리하는 시설, 교직원 노동자와의 연대는 대학의 학술적 보이콧 이행을 위한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 대학에서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종식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촉구하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4년 10월 4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고려대학교와 이스라엘 대사관과 대학 등 기관, 집단학살 공모 기업의 협력 중단을 촉구하며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에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소속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같은 자리에는 현대건설기계 하청업체에서 노조를 조직하다가 직장폐쇄와 함께 일터에서 쫒겨난 해고노동자가 함께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는 굴삭기를 수출하고, 대학에서 채용설명회, 산학협력 등을 매개로 대학기업화 행보를 가속하는 HD현대를 규탄했다. 대학 안팎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 대한 공통의 입장과 실천을 쌓아나가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우리의 대학은 팔레스타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교육학살에 맞서 당당히 말한다. ‘우리는 이 대학들을 텐트에서 세웠고. 우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텐트에서 다시 한 번 대학을 재건할 것입니다’. 가자지구의 학생과 교사, 교직원들은 파괴된 학교 건물을 대신해 천막에서 교육을 이어가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굳건한 ‘수무드(저항)’ 정신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한편, 학교를 폭격하고 학생과 교사들을 천막으로 내몬 장본인이 누구인가를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그 배후에 놓인 제국주의의 타도 없이 재건은 요원한 일이다. 팔레스타인 교육계의 선언은 팔레스타인을 넘어 전 세계의 대학, 학문공동체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팔레스타인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대학은 단순한 건물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우리는 학생, 교수진, 직원으로 구성된 학문공동체로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사명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월 5일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연루 기업의 대학 취업박람회 참여를 규탄하며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과 협력하는 우리의 대학은 지금 진정으로 안녕한가. 우리는 대학에서 집단학살로 이윤을 거두는 기업들에 굴종하는 대신,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술보이콧 운동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연대인 동시에 우리의 대학과 학문공동체를 향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대학은 때때로 우골탑, 상아탑 등 타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공간으로 비유되곤 한다. 대학은 공동체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산물인 동시에 공동체 그 자체이다. 집단학살 공모 기업과 한국 대학은 다른 공동체의 파괴를 대가로 번영을 도모하고 있진 않은가. 가자지구 대학의 폐허,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의 잔해 앞에 대학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과연 떳떳한가. 그렇지 않다면, 집단학살을 지탱하고 있는 구체적인 공모의 탑을 지금 당장 무너뜨리자. 고려대학교에 걸린 취업박람회 보이콧 현수막2026-04-14 | 조회 23,839 -
빅테크 자본에 투자하는 소로스 펀드는 집단학살에서 자유롭지 않다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열린사회재단(Open Society Foundation)’으로부터 사업기금을 지원받을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이를 결정하기 위한 26일 전체회의를 앞두고, 차제연 집행위는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 기금 수령 조건이 특정 집단·의제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는 경우, 기금의 운용방식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라는 차제연의 목적에 명백하게 반하거나 해가 되는 경우에는 연대체 차원의 최소 기준선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여야”하며,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볼 때 OSF가 차제연 차원의 최소 기준선을 위배하는 기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OSF 기금신청 제안을 반대하는 연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조지 소로스라는 국제 금융자본가와 그 자선사업기구인 열린사회재단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포함해, 빅테크 자본들이 세계를 파괴하고 노동자민중을 위기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체제 지배계급의 불가분한 일부임을 말하고 싶다.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열린사회재단의 시초축적은 금융수탈이다 열린사회재단(OSF)의 기금의 원천은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로부터 나온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금융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 금융자본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이 창출한 부를 자본이 착취해 강탈한 결과의 일부다. 특히 금융자본은 단지 산업자본의 착취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시세차익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고유의 수탈적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금융수탈’이라 부른다. 금융자본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벌어들이는 만큼, 노동자민중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 소로스 펀드는 실제로 어떻게 이윤을 획득해왔는가? 예컨대 그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방산기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예측하며 방위산업체 주식을 쓸어담아 수익을 냈다. 마치 오늘날 이란 침략전쟁으로 한국 방산주들이 뛰고 있는걸 보고, 여기에 투자해 돈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민중이 군축과 평화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할 때, 그는 전쟁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댓가로 돈을 벌었다. 소로스 펀드의 가장 유명한 수익창출 일화는 외환투자와 공매도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를 통해 한 달만에 1조 2천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그가 벌어들인 천문학적 이윤은 땅에서 솟았는가? 아니다, 영국노동자민중이 노동으로 만들어낸 부를 수탈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외환위기 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위기에 내몰린 저개발국의 통화를 공격해 돈을 벌었다. 헤지펀드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돈을 번다. 위기가 발생할 것처럼 보이면 위기에 ‘베팅’함으로써,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돈을 번다. 금융투기꾼들이 좋아하는 말처럼 세상에 ‘공짜는 없고’, 그가 수탈한 부 만큼의 손실을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경제위기로 감당해야한다. 그 과정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복잡한 연쇄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소로스 펀드의 이윤은 노동자민중의 피땀을 강탈한 것”이라는 명제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그가 천문학적 부를 거머쥔 것은, 천문학적인 수탈의 결과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생산물을 수탈하는 것, 그것 외에 금융자본의 이윤에 다른 원천은 없다. 빅테크 자본의 돈줄인 소로스 펀드, 오늘날 집단학살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이 소로스가 ‘자선사업’을 할 수 있게된 과거의 축적에 관한 이야기라면, 오늘날은 어떨까. 2025년 4분기,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소위 AI, 빅테크 기업들이다. 포트폴리오 1위는 아마존, 2위는 구글, 5위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소로스 금융자본이 투자하여 이익을 분배받는 이 빅테크 자본들은 어떤 자본들인가? 자연과의 대사를 고려하지 않는 데이터센터의 과잉건설로 지역환경을 파괴하고, 물과 전기를 낭비하며, 천연가스와 원자력 사용을 부활시키는데 앞장서는 기업들이다. 소로스 펀드가 AI를 넘어 ‘우주’ 산업에 투자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주에서 추출산업을 지속하겠다는 허황된 기술절대주의로 세계가 공멸을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덮으려는 게 스페이스X, 아마존, 구글 등 우주 탐사기업이 하고있는 역할이다. 더욱이 소로스 펀드의 투자를 받는 빅테크 자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클라우드 서비스와 AI기술 등 집단학살을 위한 군사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대표로 소로스 펀드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많은 지분(7.30%)을 차지하는 아마존을 보자. BDS운동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아마존은 프로젝트 님부스를 통해 구글과 함께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한다. 아마존이 제공하는 클라우드는 수만 개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표적 데이터베이스’로 사용된다. 기존에 이스라엘은 자체 클라우드를 운영해왔는데, 2023년 10월 가자지구 침공 이후 ‘전례없는 컴퓨팅 성능’이 필요해 아마존으로부터 클라우드를 구매했다고 한다. 즉 집단학살을 가속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아마존이 이를 현실화할 클라우드 기술을 제공해준 덕택에 AI의 지원을 받는 신속한 집단학살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이 라벤더, where’s daddy 등 AI시스템을 활용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살해 목록’을 작성하고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자지구 언론인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는 빅테크가 제공하는 기술이 어떻게 그의 삶의 모든 부분을 감시해왔으며, 학살에 사용되고 있는지, 아래와 같이 증언한다. +972 매거진과 로컬 콜(Local Call)의 보도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추측되는 위험도에 따라 분류했다. 분류 점수 한 점 차이로 사람의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정보기관 관련인들은 기자들에게 이러한 시스템 중 하나는 개인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와의 연관성에 따라 점수를 매겼으며, 수만 명의 이름을 다루었다. 폭격 승인 명령은 빠르게는 30초 이내에 떨어질 수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건물을 유형과 수용 인원에 따라 분류하여 폭격 대상을 선정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8200부대의 현역병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및 메타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예비군들의 협력으로 제작된 AI 도구들이 아랍어로 작성된 문자 메시지와 SNS 게시글을 분석했다. 그러한 분류 시스템이 무장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시스템과 협력하면, 단지 이들과 인접한 곳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일가족이 멸절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 전쟁이 시작되고부터, 나는 알자지라, The Nation, 그리고 +972 매거진과 같은 언론을 통해 가자지구에 대해 보도해 왔다. 2023년 10월 말 무렵, 내 핸드폰은 내가 작성한 기사를 인용하며 살해 협박을 하는 문자들로 가득했다. … 12월 6일, 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집에 들렀다. 내가 걸어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아랍어로 말하며 자신을 데이비드로 소개했다. 이스라엘 군 소속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하비비(아랍어로 “자기야/얘야” 정도의 뜻)로 부르며, 내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로 가득한 삼 층 건물을 대피시킬 시간이 이십 분 정도 있다고 했다. … 달리 갈 곳도 없는 우리들을 억지로 이동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머무르기를 택했다. 이튿날 오전 7시 30분, 나는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며 내 아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도드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굉음은 경고 없이 날아왔다. 집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쪼개지거나 벽이 무너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갑작스러운 무게, 콘크리트와 쇠가 나를 납작하게 눌렀다. 내 두 팔이 붙박혔고, 두 다리가 갇혔고, 내 입과 폐로 먼지가 들어찼다. 내 아내와 아들을, 부모님을 불렀다. 처음에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때 내가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아들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리멍덩해졌다. 어딘가 위에서 돌들이 움직였다. 흐린 음성들. 나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구조자들이 마침내 잔해를 깨고 들어왔을 때, 빛이 파고들어 왔다. 손들이 잔해를 긁어냈다. 그들은 내가 의식을 되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끄집어냈다. 그들은 내 아내와 아들을 꺼냈다. 네 사람이 죽었다. 사촌 둘과 이웃 둘. 이웃 하나는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내 집에 있음을 알았다. 아마도 내 핸드폰으로 나를 거기까지 추적했다. 시스템은 내 동선을 먼저 특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를 기준으로 그 반경 내 모두를 이스라엘군 기준 감수할 만한 부차적 희생으로 집계했다. ... 그는 내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의 학적, 일, 그리고 내가 기사를 작성한 장소들. 앗-쉬파, 알-아우다, 앗-다라즈. 이를 순서대로 읊었다. 그는 내 친척에 관해 물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가 대신 내 사촌들의 이름을 읊었다. 내 가족들이 피신 중인 대피소가 있는 지역을 특정했다. 내가 답하든 얼버무리든 그의 노트는 이를 모두 기록했다. 심문은 수 시간 이어졌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던 그 시간 중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 심문관 눈앞에 있는 스크린에는 내 삶의 사본이 담겨있었다. 쉼 없는 감시, 수집한 전화 통화, 카메라, 그리고 위성 좌표로 쌓아 올린 판본이. 그리고 그는 내 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라픽은 아직 잘 있습니까? 가슴은 좀 괜찮고?” 그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건 내 집안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나를 2022년으로 돌려보냈다. 라픽은 고작 산후 11달이었고, 우리는 아랍에미리트공화국에 있었다. 라픽은 폐렴에 걸려 두바이 병원에서 이틀을 보내야 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에, 나는 글에서 다루지도 않았고 언론에 내보내지도 않은 내 삶의 내밀한 사항이, 나타났다. 심문관은 그걸 체크 박스 짚고 넘어가듯 입에 올렸다. 내 아들의 짧은 병원 신세에 대해 어딘가에서 들었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공화국 병원 기록에서? 내 통화 기록에서? 내 이메일 사본에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무함마드 알 므하위시의 글 전문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빅테크 자본들은 가자주민들에 대한 완전한 감시, 추적, 학살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한다. 소로스 펀드는 바로 그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있다. 한편 열린사회재단(OSF)은 10월 7일 이후 자행된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할 때,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을 규탄‘하고, ‘이스라엘에게는 자위권이 있다’라는 문장을 삽입한 다음, ‘이스라엘이 지나친 복수를 하며 가자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휴전과 두 국가 해법 등등에 대해 얘기한다. 열린사회재단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해 발행한 성명 전반에서 식민지배의 현실을 지우는 양비론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이 어떻게 식민점령의 현실을 가리고 집단학살을 용인하는지, 그래서 조지 소로스가 거액을 후원한 바이든 정부가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유지하며 ‘학살자 조’라 불리게 되었는지 지난 몇년 간 목격했다. 양 당사자 간의 문제로 보게 되면 양비론을 피할 수 없다. 양비론은 어느 순간, 이스라엘이 지나치긴 하지만 팔레스타인도 일정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는 밑그림으로 작용한다. 팔레스타인이 저항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식민화를 멈출 것이라는 기이한 논리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틀린 사고지만, 지금은 특히 발화자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집단학살 정당화 논리와 일치하기 때문에 한층 위험한 관점이다. 상기하였듯 소로스 펀드는 빅테크 자본에 투자해 돈을 번다. 빅테크 자본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을 파괴한다. 한편 소로스 펀드의 돈에 의해 운영되는 열린 사회 재단은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를 우려하고, 이스라엘에게 자제를 촉구한다. 그리고 인종정의에, 여성의 권리에, LGBT의 권리에 후원한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여성과 성소수자가 빅테크 자본의 공모에 의해 감시, 추적당해 죽어가는 동안 말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OSF 자선사업은 조지 소로스의 손에 묻힌 피를 닦아내는 손수건이다”는 말 외에 나는 이 현실을 이해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총체적 진실이다. 빅테크 자본을 포트폴리오에 담아 돈을 버는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와 열린사회재단은 동일한 체제의 앞뒷면이다. 만약 조지 소로스와 유사하게, ‘자선사업’을 많이 해온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자는 논의가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빌게이츠는 앱스타인과 직접 연루돼 여성들을 착취했고, 이스라엘과 공모하는 핵심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이다. 그의 자선단체로부터 돈을 받자는 결정은 훨씬 더 쉽게 반대에 부딪혔으리라 상상한다. 그런데 단지 좀 더 교묘하고, 좀 더 연루의 사슬이 길 뿐, 소로스 재단과 빌게이츠 재단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삼성대자본이 비슷한 방식으로 삼성인권재단을 운영한다면 어떨까. (그런 자선사업을 삼성이 하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해보는 것이다) 삼성이 한편에선 고 김치엽 님을 포함한 반도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베트남으로 노조파괴를 수출하고 오염, 산재를 외주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권을 말하며 시민단체를 후원한다면 우리는 이를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삼성은 가깝고 소로스는 멀게 느껴진다 하여 소로스 재단의 후원을 받을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에 나서자 이 글을 통해 해당 ‘자금의 출처가 중대한 인권 침해에 직접 연루된 경우’인지에 대한 판단을 재고해주실 것을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참여하는 동지들에게 요청드린다. 이 세계에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오늘도 유지될 수 있는 것, 학살과 전쟁이 벌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조지 소로스를 포함한 한 줌의 자본가들이 이 세상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선사업이라고 내놓는 그의 부는 금융수탈을 통해 노동자민중에게서 강탈해간 부이며, 노동자민중의 운동은 그런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여기까지 왔다. 단지 과거의 축적과정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날에도, 이 금융자본가가 자선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부의 원천은 지구를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과정에 적극 연루돼 있으며, 그로부터 수익을 얻고 있다.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함께하는 동지들, 차별과 억압에 맞서 함께 싸워온 동지들이 이 정도 사실을 모를 동지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지들에게 OSF의 후원을 받지 말자고 호소하는 걸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 노동자운동을 현실로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필자 또한 크나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동이 금융투기자본의 후원을 받는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뒤집을 수는 없다. “상당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은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중요 과제로 여기지 않았거나, 중요 과제로 여기는 경우에도 이를 지역으로, 현장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재정이 부족하다면, 바로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OSF 기금을 받는 대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과 함께 더 넓은 운동을 조직하자고 제안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동투쟁을, 재정지원을 모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요구합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중적인 노동자 운동을,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합시다. 이를 통해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관철해냅시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는 오래된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비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인권운동과 노동자민중운동의 굳건한 연대를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쟁취해 냅시다. 그 길에 사력을 다해 연대하겠습니다.”라는 반대 연명 제안문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본다. 나 또한 사력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3월 26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세집담회]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투쟁, 이렇게 하자!’를 진행한다. 해당 정세집담회를 계기로 더 큰 차별금지법 쟁취 노동자 운동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3-24 | 조회 15,752 -
학살과 전쟁에서 이윤을 얻는 한국은 이미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일원이다한국은 이제 트럼프가 동맹국으로 제일 먼저 파병을 요구하는 다섯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일원인 이 국가에서, 한국정부와 자본의 학살공모, 전쟁장사, 그리고 이제 전쟁동참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땅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다.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제국주의 패권을 강화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지금껏 대자본가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팔고 학살자들과 손잡는 것을 거리낌없이 해왔듯이,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가 달라졌을 땐 언제든 파병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행하여 이윤을 얻는 이 체제의 일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멈출 책임이 있다. 3월 20일, 오전 11시 트럼프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대한 검토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청년학생 기자회견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군함을 보내려는 이재명 정부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며 시작된 전쟁이 20일 째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침공 이후, 자신을 이란 신정체제에 맞선 구원자처럼 선전했고, 이미 결정적 타격을 가했으며, 전쟁이 곧 끝날 것처럼 언사를 이어갔지만, 전쟁의 진행양상은 트럼프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오판과 군사적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비록 사상자 수나 군사전력에서 열세를 피할 순 없지만, 오랜 시간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해온 이란은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군사적 반격을 이어가며 미국을 당혹케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마두로를 납치한 뒤, ‘델시 로드리게스’를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성공한 경험에 도취되어 충분한 전략적 고려 없이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암살 후, 트럼프는 이란 내 친미 대중시위를 선동하고, 이란의 ‘로드리게스’를 찾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이란은 3월 8일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최고 지도자로 선출하면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중심의 강경 대응테세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드론, 미사일 등 군사적 반격 능력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방공 요격미사일이 바닥날 때까지 값싼 드론 공격을 지속하는 전략을 썼다. 이란의 샤헤드-136 드론 한 대당 가격은 약 6천만원 수준이지만, 이를 막기 위해 미국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이 사용하는 요격 미사일은 개당 약 60억 원 수준이다. 파괴된 레이더와 소진된 미사일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 등에서 패트리어트와 사드체계를 중동으로 긴급 공수해야했다. 이번 전쟁은 그 시작부터,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질서에 비춰보아도 매우 정당성을 상실한 전쟁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핵협상 도중 선제공격을 하며, ‘임박한 위협’에 대해 ‘예방적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핵 협상 과정에 있던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위협’을 가했다는 증거는 당연히 어디에도 없다. 이후 미국은 “이번 작전의 목표는 이란 정권이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란이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무장을 추구한다는 것이 예방 공격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주변국에 미사일 공격을 일삼아온 이스라엘과, 세계 최대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수십차례 타국을 침공해온 미국의 존재 자체도 예방 공격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침공은 중동 패권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가 억압국을 향해 벌이는 가장 반동적인 전쟁이다. 전쟁에 대한 미국 국내 지지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낮다. 개전 직후부터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30% 이하였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을 당시(97%),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92%), 2003년 이라크전(76%)와 눈에 띄게 차이난다. 국제적 반전운동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좌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열려있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국제연대 투쟁에 나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파병 요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략적 궁지에 내몰린 현 상황이, 네타냐후와 트럼프로 하여금 더욱 노골적으로 반동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중 한가지는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을 공격하며 군사시설을 넘어 주요 산업시설을 타격한 것이고, 또 한가지는 다른 국가들을 직접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시키려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3월 14일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5개국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캐나다, 호주, 독일 등 주요 동맹국들은 이를 거절했다. 중국도 곧바로 거절 의사를 표명했고, 일본과 한국은 19일까지 분명한 답 없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파병에 관해, “SNS 자체를 공식적 요청이라 보지 않는다. 공식 요청을 받은 바 없기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요청이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모호한 답변만 내놓았다. 관세협상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왕관까지 선물하며 아부하던 이재명 정부가 현재까지 파병에 이렇듯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정당성도 없고 전략적으로도 궁지에 몰린 이 더러운 전쟁에 파병함으로써 한국 자본가계급이 당장 얻을 이익이 많지 않다는 계산의 결과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사태전개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변할 수도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적극적 하수인 노릇을 하는 국민의 힘 일각은 이미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적극 참여’하여, 그 댓가로 미국의 경제, 통상 압박을 피하고 ‘신속한 핵 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안보 전략자산 확보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파병에 소극적인 나토 동맹국들과 한국, 일본 등을 향해 격노를 쏟아내며 노골적인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고 있다. 사태전개에 따라 트럼프가 격한 보복을 현실화하거나, 이 더러운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쥐게 되었을 때,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고 거리낌없이 파병을 결정할 수도 있다. 애초에 이재명 정부가 고려하는 것은 국익, 즉 한국 총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 뿐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협력해온 한국 이번 중동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간 자행해 온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 굴착기 수출, 가스개발 동참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해왔다. HD현대는 굴착기 수출을 통해 이스라엘의 식민지 점령을 오랫동안 지원해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2012년 HD현대의 굴착기가 불법 정착촌 확장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제기한지 14년이 지났다. 그 이전부터 십수년 넘는 세월 동안 HD현대의 굴착기 판매는 지속되었고, 마사페르 야타를 포함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수많은 불법 정착촌 건설에 공병기계로 사용됐다. HD현대는 십수년 동안 이어진 질의와 항의에 한번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현재 이스라엘을 향한 굴착기 수출은 하청업체 에프코 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HD현대는 “주택 철거 현장에 쓰인 장비는 없다” ”이스라엘 철거 업무 등 정부 기관에 판매한 자료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최근 몇년 간 가옥파괴에 HD현대 굴착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사진을 끝없이 제시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최소 54건의 건물, 주택, 사업장 철거에 HD현대와 HD현대인프라코어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올해 1월, 휴전안이 발효된 직후에도 이스라엘은 HD현대의 굴착기를 사용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주택을 파괴했다. 1월 17일, 이스라엘 군이 두산인프라코어 로고가 새겨진 굴착기를 사용해 가자지구 북가자주 자발리아 민중들의 집을 파괴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21년 HD현대가 인수 합병한 기업이다. HD현대의 미국, 이스라엘과의 연루는 이뿐만이 아니다. HD현대는 2021년부터 이어온 미국 AI기업 팔란티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최근 확대강화했다. 팔란티어는 CIA의 투자를 받아 2003년 설립된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기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2025년 7월 1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집단학살을 지원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관여한 기업 명단이 담긴 보고서에서 팔란티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스라엘 군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표적 목록을 생성하기 위해 “라벤더(Lavender)”, “고스펠(Gospel)”, “Where’s Daddy?”와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이는 현대전을 재편하고 인공지능의 이중용도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3년 10월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기술 협력을 이어온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 Inc.)는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 군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팔란티어가 자동 예측 치안 기술, 군사 소프트웨어의 신속하고 대규모 구축 및 배치를 위한 핵심 방위 인프라, 그리고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위해 실시간 전장 데이터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제공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2024년 1월, 팔란티어는 이스라엘과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연대”를 표명하며 텔아비브에서 이사회 회의를 개최했다. 2025년 4월, 팔란티어의 최고경영자는 팔란티어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다는 비난에 대해 “대부분 테러리스트들이 맞다”고 답변했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의 불법적 무력 사용에 대해 경영진이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의도적으로 용인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행위를 방지하거나 관여를 철회하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팔란티어가 만든 ‘고담(Gotham)’ 소프트웨어는 감시 영상과 같은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압축하여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환하는 기술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미 미군의 핵심 도구로 활용됐다. 팔란티어는 미국이민단속국(ICE)과도 협력해 미등록 이주민을 선별, 감시, 추적하는 AI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끔찍한 집단학살 공모기업이기에, 2023년 이후 영국 의료노동자들은 팔란티어가 계약을 통해 국민의료서비스(NHS) 데이터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HD현대와 팔란티어의 협력강화는 작년 8월,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가 체결한 마스가 프로젝트와 연결돼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중 패권대결에 있어 미국의 약점인 군함 건조,보수 능력을 보완해주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즉 이재명 정부와 HD현대 자본은 세계에 더 큰 전쟁을 불러올 미국의 해군력 증강에 적극 협력하고, 이 과정에 집단학살에 AI를 사용해온 군사기업과 협력함을 통해 이윤을 얻고 있다. 방산기업 한화 또한 이스라엘 집단학살에 적극 협력하는 기업이다. 한화는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엘타 시스템즈, 엘빗 시스템즈와 2021년 MOU를 체결했다. 엘타 시스템즈는 킬러 드론을 공급하는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의 자회사이며, 팔레스타인 마을의 조직적 파괴를 위한 무인 불도저를 개발한다. 엘빗 시스템즈는 이스라엘 군이 사용하는 드론과 지상장비의 85%를 생산하고, 서안지구 분리장벽 감시 시스템을 공급했다. 엘빗시스템즈는 백린탄, 집속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제조 전력도 있다. 이러한 전범기업과 지금도 거래하며 한화는 이윤을 얻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LIG넥스원이 인수한 고스트로보틱스의 군용 로봇은 이스라엘군에 공급되어 그들의 군사작전에 활용되었다. 한국 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과 협력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은 이스라엘 방산기업 라파엘의 탱크 방호체계를 도입해 자사 전차에 장착·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파괴를 효율화하고 폭력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한다. 민간 대자본 뿐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연루돼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 다나페트롤륨을 통해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를 수탈하는 식민지 개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은 해양가스 탐사권을 다나 페트롤륨을 포함한 컨소시엄에 판매했는데, 이스라엘이 판매한 6개 탐사권 면적의 62%는 팔레스타인의 배타적 경제수역이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해당 식민지 프로젝트 동참 결정이 이스라엘이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한 바로 다음 날 진행됐다는 것이다. 다나 페트롤륨과 함께 해당 컨소시엄을 주도했던 이탈리아 석유기업 에니(Eni)는 작년 12월 “향후 이 지역에서 활동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며 철수 의사를 보였다. 이는 작년 9월부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탈리아의 총파업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다. 반면 한국석유공사는 작년 11월 26일 국제행동의 날 집회 때 진행된 면담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잘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했을 뿐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석유공사는 가스전 수탈에 대해 어떤 책임있는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주요 대학들은 이스라엘과 학술 교류 또한 적극적으로 이어왔다. 고려대학교는 십수년 전부터 이스라엘 대사관과 수차례에 걸쳐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 정부, 이스라엘 대학과 고려대 간의 학술적 연계를 강화하고, 이를 재정확보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고려대학교는 1월에는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논설을 생산해온 시온주의자 유발 샤니 교수를 초청해 ‘국제 AI 인권장전 세미나’를 열었다. 이스라엘이 AI기술을 전면도입해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일을 가속하는 동안 말이다. 이에 유발 샤니 교수 초청에 항의하는 투쟁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어 3월의 시작과 함께 학살에 공모하는 방산기업들이 버젓이 대학에서 취업박람회를 여는 것에 항의하는 투쟁도 전개되었다. 전쟁장사꾼들의 새로운 기회 한국은 수많은 곳에 무기를 수출하며, 세계의 무기상 역할을 해왔다. 한국이 판매한 무기는 세계 온갖 지역에서 억압자들의 도구로 사용돼왔다. 인도네시아에선 한국산 장갑차와 물대포, 최루탄이 시위진압용으로 사용되었다. 미얀마 군부도 한국산 최루탄을 시위진압을 위해 사용했다. 이번 중동전쟁도 한국의 방산자본들에게 무기수출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LIG넥스원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2를 UAE(2022년), 사우디(2024년), 이라크(2024년)에 판매해왔다. 이번에 천궁-2가 이란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우수한 성능을 보이자, 지난 3개월 기준 저점 대비 LIG넥스원(120%), 한국항공우주(68%), 현대로템(23%) 등 방산기업들의 주가가 올랐고, 군수자본은 K9 자주포, 포병전투장갑차 레드백, 전투기 KF-21, K2 전차 등의 전쟁무기 계약 확대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지난 몇년 간 이어진 학살과 전쟁으로부터 무수한 이득을 얻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대자본이 특히 가증스러운 점은, 제국주의 세력과 손잡고 웃으면서, 학살에 기술과 자원을 제공해왔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제국주의 학살과 침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 침공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공식입장을 낸 사안은 오직 ‘중동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의 신속한 대피’뿐이었다. 해당 침공은 이란과의 핵협상 도중 벌어진 것이었고, 기만적인 부르주아 세계질서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국제법을 버젓이 위반한 행위였음에도,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이 미납 지역 초등학교를 폭격해 초등학생들을 일거에 대량 살해한 사실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한국에 배치된 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사드 체계의 중동 반출을 받아들이며, 미국이 명분없는 반동적 전쟁에 자원을 동원할 자유를 지지했다. 한국 정부가 인권과 평화에 대해 내세우는 모든 법적, 도덕적 기준은 미국과 이스라엘 앞에서 산산히 흩어졌다. 그런 잣대를 정직하게 들이대는 순간, ‘국익’(이라 부르는 총자본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들에게 도덕과 윤리기준이란 이익 앞에서 얼마든지 휘어질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명분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얼마나 반동적이고 더러운 짓이든, 그 앞에서 침묵하는 게 ‘코스피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중동에 병력을 파견한 전력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전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3600여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가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뒤 ‘호르무즈 호위 연합’ 참여를 요청한 것에 응답하며 320여 명의 청해부대 병력을 호르무즈 해협에 보냈다. 노무현은 2003년 4월 1일, 취임 1달 만에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뒤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분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세계질서도 힘이 아닌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져야 합니다.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국내정치에서도 명분론보다는 현실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습니다. 명분에 발목이 잡혀 한미관계를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것보다, 오랜 동안의 우호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하여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저는 어려운 우리 경제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국의 대북 공격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없을 것임을 국제투자가들에게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본 결과, 그들은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전쟁의 위험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한미관계의 갈등요소를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파병 결정은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정부에게 ‘명분’, 즉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국익이라는 ‘실리’ 앞에서 언제든 치워질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더러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도와주고,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여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이라크의 노동자민중이 처한 억압에 대해선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민족적이다. ‘국제 투자자들이 전쟁위험성보다 한미관계 갈등을 불안요인으로 본다’는 사실을 파병을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계급적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제국주의와 손잡기를 택한 결과는 무엇인가? 2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는 더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되었고, 미국 제국주의는 미중 패권대결에서 지지 않겠다는 몸부림으로 세계 곳곳에서 수탈과 침략을 노골화하며 동아시아 미중 간 전면전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향해 우리를 끌어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충분한 역량이 있다”며 수출기업 지원 등 전쟁추경 신속 편성을 요구했다. 그에겐 중동전쟁이란 새롭게 제시된 게임의 조건일 뿐이다. 게임의 목표는 국익의 극대화다. 한국정부와 자본이 걱정하는 위기는 오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경제적 위기다. 특히 얼마 전 축배를 터뜨린 ‘코스피 6천’ 거품이 흔들리는 것이다. 한국정부와 자본이 기대하는 기회는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다. 명분없고 더러운 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스러져갈 민중들의 삶은 관심사조차 아니다. 한국은 이제 트럼프가 동맹국으로 제일 먼저 파병을 요구하는 다섯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일원인 이 국가에서, 한국정부와 자본의 학살공모, 전쟁장사, 그리고 이제 전쟁동참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땅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다.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제국주의 패권을 강화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지금껏 대자본가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팔고 학살자들과 손잡는 것을 거리낌없이 해왔듯이,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가 달라졌을 땐 언제든 파병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행하여 이윤을 얻는 이 체제의 일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멈출 책임이 있다.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2026-03-20 | 조회 14,677 -
[기고] Tạm biệt — 뚜안님 100일재에 동행하여 남기는 기록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뚜안님과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여러 번 깨달을 때마다, 나는 우리 노동자 민중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각각의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공통의 감각. 계속 되는 자본의 갈라치기와 대상화의 홍수 속에서, 범람하는 탈인간화에 나는 계속해서 우리가 사람임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두고 가야 하는 기억이 있다. 그런다고 나에게서 온전히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전부 짊어지고 살아가기에는 결국 침잠되어버리기에. 상실을 겪으면 나는 특히 그런 강박을 느낀다. 그 순간들을 따로 떼어두고 가지 않으면 내가 잡아먹힐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난 2025년 10월 28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단속으로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뚜안님의 가족들도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을지. 감히 짐작해 본다. 사건이 발생하였던 당시에 나는 개인적으로 두고 가야 할 오래된 기억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저 공교롭게 이 일에 함께 하게 되어, 개인 연대 시민의 자격으로 대책위가 주도한 거의 모든 투쟁의 순간에 자리했다. 1인 시위부터 100일재 참여까지 최선을 다한 동지들과 유족들이 있어 나 역시 그들과 심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영적으로 민감한 편이라 망자와 관련된 일이나 종교 의식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정리하고자 했던 오래된 기억 또한 망자에 대한 일이었기에, 사건들이 닥친 김에 직면하고자 좀 더 적극적으로 ‘죽음'을 들여다 봤다. 세상을 사랑할 줄 알던 이들의 이른 죽음,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고자 열망하던 날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당신을 압니다. 살아가는 일조차 허락받아야 하고 숨죽여 떨어야만 하는 삶을 알고 있습니다. 살아서 만난 적이 없어도, 나 또한 당신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하늘 아래에는 나만 남아 숨쉬고 있지만, 앞으로의 날들에는 누구도 이런 고통을 다시 겪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요. 부디 편히 쉬시길.」 — 대구 출입국 사무소 앞의 뚜안님 분향소 방명록에 남긴 말 뚜안 대책위가 서울에서의 농성을 정리하던 날, 뒤풀이 자리에서 활동가인 태은 동지가 2월에 있을 100일재를 지내러 베트남을 가자는 말을 꺼냈다. 분위기에 취해, 그리고 뚜안님이 살던 곳이 궁금하여 같이 가고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렇다 해도 나는 대책위의 사람도 아니고 재정이 준비된 상태도 아니라 현실적으론 어려울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대구의 분향소를 정리하는 날에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장 희정 동지에게 동행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대책위 사람들 또한 갈 수 있을지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가능하면 좋겠지만 못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1월의 어느 날 눈을 뜨기 전 아침, 꿈에 뚜안님이 등장했다. 이렇게 대화하게 되어 너무 좋다고, 소개시켜 줄 사람이 많다며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꿈에서 본 사람들은 그의 조상들이었던 거 같은데, 일어난 뒤에 신나서 돌아다니던 뚜안님을 떠올리니 아무래도 베트남을 가야할 성 싶어 결심이 섰다. 곧바로 희정 동지에게 동행하겠다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고 여권을 만들러 밖으로 나갔다. 내란으로 정신없던 시기에 만료됐던, 돈도 시간도 여의찮아 해외 갈 일이 망연하다고 방치해 둔 여권이었다. 그 날이 뚜안님 아버지인 부반숭 동지의 생신이었다는 걸 저녁에 알게 되자, 뚜안님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초대를 했는데 안 간다면 정말 속상해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가는 건 현실성 운운하며 따지고 재는 일과 발 빼는 일이라니 부끄럽다. 뚜안님은 먼저 도전하고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었을 거 같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랬기 때문이었다고, 중간 보고회에서 그의 친구였던 혜인님이 말했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대한민국이 그렇게 도전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인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뚜안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겐 그랬던 모양이다. ‘어메리칸 드림’에 이은 ‘코리안 드림’이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허황된 꼴을 좋게 포장한 거 같아서 그런 표현을 듣는 마음이 불편했다. 호치민에서 만났던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라서 사실 더 괴로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취급했는지. 그리고 제국이 되고 싶어하는 한국의 정부와 자본가들이 떠올랐다. 호치민 곳곳에 뿌리내린 한국 자본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미국이 한국전쟁 이후 원조한 방식을 그대로 써먹은 게 뻔했다. 베트남도 오래도록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내전으로 끔찍한 날들을 보냈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았다. 곳곳에 서양식의 건물이나 주변의 집들처럼 개방되어 있지 않은 ‘저택’들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기후가 따뜻해서 그런지 집들도 가게들도 1층은 벽보다 창문이나 문의 면적이 넓은 편이었다. 문이 있어도 대다수가 유리문으로 내부가 잘 보이는데, 저녁에는 대문을 닫는다 쳐도 생활하는 시간에는 대부분 문을 활짝 열어놓는 식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제 일제 목조 건물이나 강점기 당시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도 쓰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박물관이나 특수한 목적의 건물로 거의 보존해 놓는 편이라, 그 시대를 일상과 분리시킨 듯도 하다. 마치 과거의 편린은 박제가 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혹은 옛날 일은 남 얘기인 것처럼. 유사한 맥락으로 한국에서는 빈자와 부자가 철저하게 분리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부분들 때문인지, 나는 베트남 땅에서 어떠한 여유를 느꼈다. ‘사회주의 국가’라기엔 제국의 자본에 의존도가 크고 수도인 호치민시 역시 땅값이 비싼 곳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서는 한국에 만연한 조급함이나 짜증을 본 적이 없었다. 고작 며칠 머무른 걸로 하나의 나라를 다 파악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소통이 어렵지 않았고 왠지 ‘괜찮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는 가게와 집집마다 놓인 작은 재단 때문에 초반에 자주 어지러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가졌기 때문인지 그들에게서 선함과 거기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졌던 거 같다. 뚜안님이 고향을 그리워 하셨던 이유를 왠지 알 듯도 했다. 나도 그곳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와 그 시간의 향수를 느꼈다. 단순히 저개발지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뚜안님이 나고 자랐다는 동네에는 사람들이 서로 용인하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집집마다 걸린 화초나 여기저기 심어져 있는 풀과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집을 지을 때 먼저 심어진 나무를 베거나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희정 동지가 얘기해 줬다. 이런 걸 비롯해서 한국에선 어림도 없는 일들을 보고 들었더니, 험지에서 도대체 무슨 고생들을 사서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존엄이 그들에겐 더 싼 값이었을지. 아니, 그 누구도 자신의 존엄이 그렇게 싸게 팔릴 거라 예상하며 이주 노동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단지 거기까지 왔기에 버티기를 각오했을 뿐.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지역을 옮기며 그런 각오를 해봤어서, 감히 짐작한다. 비록 나에겐 이렇게 아늑해서 그립고 돌아가고픈 고향이 없어도 말이다. 비록 자본의 침식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부디 이 곳의 사람들은 한국이 간 끔찍한 제국의 길을 따라가지 않기를 바랐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온 나와 태은 동지를 공항 앞에서 부반숭 동지가 마중 나오셨다. 호치민에는 공항이 하나 뿐이었고, 공항 건물 내에는 공항을 직접 이용하거나 근무 등의 명확한 용건이 있는 사람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몇 겹의 인파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다가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드셨다. 한국에서 뵀던 때보다 표정이 훨씬 좋아 보였고, 염색도 하셔서 더 젊어 보이셨다. 우리 짐을 계속 들어주려고 하셨어서 말리느라 애썼다. 뚜안님의 어머니 후옌님이 한 시간 뒤쯤 다른 동지들과 함께 도착한대서 공항 밖에 딸린 카페에 앉아 기다렸다. 반숭 동지는 날이 덥고 사람도 많은 데서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번역기로 써서 전하셨다. 우리 쪽으로 뚜안님의 외숙모 후에님이 오셔서 반숭 동지와 말을 나누시다가, 후에님이 우리를 먼저 숙소에 데려다 주라하여 반숭 동지가 택시를 불러 동행하셨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서, 뚜안님의 외할머니와 다른 분들이 계시는 집으로 가서 동지들을 기다렸다. 호치민에서 뚜안님이 지내시던 외할머니 댁이라 들었다. 뚜안님의 외할머니 흐엉님은 딸인 후옌님과 확실히 닮으셨는데, 왠지 세월을 견뎌오신 듯한 무거움이 느껴졌다. 뒤에 동지들과 도착한 후옌님을 7년 만에 만나셨을 때 우는 딸의 손을 잡아주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인자하게 웃는 모습도 자주 보이셨지만 감정 기복이 크지 않으셔서, 집안을 지탱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뉴스민의 박중엽 기자님 기사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식들을 건사하셨다는 인터뷰가 실린 걸 봤다. 반숭 동지는 흐엉님의 집에서 접이식 밥상 상판 두께의 알루미늄 판을 네 개나 들고 나오셨다. 우리와 함께 투쟁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씩이 출력된 물건이었다. 그 중에 둘은 성서지회 사무실에 걸도록 가져가라 하셨다.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과 지인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를 소개하셨는데, 투쟁의 순간들을 자랑스러워 하시는 듯했다. 유족이 직접 나섰기에 기존과는 다르게 좀 더 나은 결과가 있던 투쟁이라 생각했는데, 그가 투쟁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거 같다. 풀어낼 수 없는 커다란 감정들을 투쟁을 하면서 좀 더 감당하실 수 있게 됐을 지도 모른다. 후옌님은 도착하여 흐엉님을 붙잡고 울며 한참을 말씀하시다가, 2층에 올라가서 뚜안님과 외가 조상님들의 사진이 걸린 곳에서 또 한참을 울며 말씀하셨다. 향을 피우고 초를 켜둔(귀신들을 부르는) 곳이라 나는 가급적 빨리 나오고 싶었는데, 뚜안님의 영정 앞에 합장하고 선 후옌님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베트남어를 거의 모르지만 어떤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뚜안님을 마음에서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다는 말, 잘 되진 않을 지라도 노력할 거라는 말, 그리고 앞으로 뚜안님처럼 세상을 뜨는 사람이 없도록 할 거라는 말. 북베트남 사람인 다혜 동지가 통역하기로, 후옌님이 이제야 뚜안님을 보낼 마음이 들어 처음으로 편히 쉬라는 말을 꺼냈다고 했다. 그 날은 후옌님의 마음이 충분히 극복할 힘을 낼 수 있어 보이지 않아서 안쓰러웠다. 뚜안님의 남동생인 득안님은 오후 늦은 때 귀가했지만 낯선 손님들이 가득해서 안쪽 부엌에 들어가 혼자 식사했다. 얼굴이 뚜안님과 많이 닮아서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다. 같은 방을 썼던 태은 동지는 숙소에 돌아와서 그가 뚜안님과 너무 닮아서 속상했다 말했다. 내가 뚜안님의 부모라도 그를 볼 때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이 떠올라 힘들 거 같아 많이 공감했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자 득안님은 반숭 동지와 함께 호치민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거리로 우리를 안내해 줬다. 도시의 밤이 화려한 불빛으로 밝은 건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그곳은 여기저기에 꼬마 전구를 두른 장식이 많은 게 아기자기해서 예뻤다. 도로는 오토바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도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없어도, 활기찬 밤거리를 걷는 게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많은 곳도, 화려하게 밝은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누비던 뚜안님이 그 시간의 거리를 활보하던 모습을 상상하자, 마음이 아리면서도 흐뭇했다. 득안님이 뚜안님의 SNS에 게시된 적 있는 응우옌후에 거리로 데려가 줘서 넓은 공터에 멈춰 바람을 쐬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100일재를 지내는 날 즈음에 뜬 보름이라 한국 무속에서 보름달의 빛이 망자들을 이끌어 준다 믿는 게 떠올랐다. 휴대폰 카메라로 달 사진을 찍는 나에게 박기자님이 베트남에서 보는 달은 다르냐고 물었다.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대답하면서, 변함없는 어떤 걸 생각했다. 어디에서 보든 같은 달처럼, 어디에서 왔든 모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낯선 거리에 가득 찬 낯선 사람들이 저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밤풍경이 새삼 소중했다. 옆에 나란히 선 동지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보름달처럼 차올랐다. 불교의 장례를 잘은 몰라도 49일재면 끝인 셈인데 100일재를 또 지내는 이유를 박기자님이 물어보니 저승에서의 심판을 잘 치르게 부탁드린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게 장례의 진짜 끝이라 앞으로는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일만 있다 들었다. 내가 느낀 바로는 뚜안님을 조상들이 다 잘 데려가셨고 일도 거진 마무리 되었기에, 100일재는 뒤풀이 같은 의식이었다. 그래서 첫 날부터 쏟아진 후옌님의 눈물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체투지 날이나 서울 농성 해단식 날처럼 울진 않았던 거 같다. 첫번째 100일재는 유골함이 안치된 린손하이호이 절에서 이튿날에, 두번째 100일재는 그 다음 날 흐엉님의 집에서 치뤄졌다. 이틀에 걸쳐 두 번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당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친척들을 위해 집에서 한 번 더 하는 거라고 들었다. 린손하이호이 절이 숙소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동지들이 걸어 가자고 했다. 희정 동지는 가는 길에 뚜안님 영정 앞에 놓을 꽃을 사려고 꽃을 파는 곳이 있나 내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 전 날에도 두바이 쫀득 쿠키가 한국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란 걸 알고 하노이에서 사온 그 간식을 뚜안님 영정 앞에 올려 놓으셨다. 걸어가는 길은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좁은 인도 여기저기의 시멘트가 깨져 있어서, 나는 거의 바닥만 보며 걸었다. 도로에는 쉴새 없이 오토바이가 다니고 가끔 군데군데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신호등은 고사하고 횡단보도 표시도 흐려 도보로 다니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쉽게 보이는 지하 대공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지하 환풍구를 비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철망 위를 걸어다닐 때면 발밑의 빈 감각에 불안감을 느끼곤 했다. 그 때문인지 베트남의 길에서 되려 안정감이 느껴졌다.(물론 보도 경사에 미끄러져 한 번 거하게 넘어지긴 했다.) 비록 베트남의 절은 린손하이호이 한 군데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한국의 절 대부분이 산에 있거나 납골당의 접근성이 좋지 않은 것과 차이가 있어서 신기했다. 절의 규모가 비교적 작았는데, 바로 앞에 한국 대형 마트가 엄청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게 거슬렸다. 호치민 땅값이 비싸도 거대 자본들은 과세의 치외법권인 거처럼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빨간 바탕에 노란 낫과 망치 그림의 깃발이 황성적기와 함께 거리 곳곳에 나부꼈지만, 그 혁명의 색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뚜안님을 비롯한 망자의 유골함이 봉안된 탑에 올라가 인사를 하고 내려와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다. 한국의 절이 대부분 목재로 지어진 것과 다르게 베트남의 절은 다른 건물들과 비슷한 대리석 바닥에 석조 건물이었다. 더운 지방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절에서 맨발로 다니는 게 문제되지 않아서 관대하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어는 잘 모르지만 불경을 외는 말에서 익숙한 산스크리트어가 들렸다. 천수경을 읊고 반야심경도 읊고 관세음보살도 찾은 거 같다. 시간마다 드리는 예불과 달리 뚜안님의 가족들이 의뢰한 의식이라 그런지 반숭 동지와 후옌님, 흐엉님에게 스님이 불경을 읽는 도중에 향을 비롯해서 뭔가를 건네셨다. 한국의 절에서보다 사용하는 타악기의 종류가 많았던 거 같고, 금속 악기나 큰 북을 중간중간 자주 쳤던 거 같다. 예불이 끝나고 뒷편의 선대 주지 스님이셨던 것 같은 분들의 영정 앞에서도 인사를 드린 후, 봉안탑으로 올라가 뚜안님의 영정 앞에 차려진 상에서 제를 지냈다. 뚜안님의 유골함은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유골함과 다르게 생겼다고 태은 동지가 말했다. 둘러보니 정말 다른 유골함들은 연꽃 봉오리처럼 생겨서 녹색이나 흰색, 옥색같은 차분한 색에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뚜안님의 유골함은 분홍색인 데다 금색 펄이 들어갔는지 상당히 화려해서 눈에 띄었고, 사진이 앞에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 아끼던 친구의 납골당을 갔을 때 본 바에 의하면, 한국의 유골함에는 가운데 이름만 새기고 이름표나 사진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디에서 장례를 치렀는지에 따라 유골함의 모습이 다르게 남는 걸 알았다. 뚜안님 부모님이 한국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진공 유골함으로 골랐다는 얘길 희정 동지에게서 들었다. 가격을 듣고 판매자가 상당한 바가지를 씌웠다 싶었지만, 자식의 마지막 길에 구태여 돈을 아끼고자 셈을 할 분들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더 마음이 안 좋았다. 처음에 봉안탑에 올라왔을 때부터 눈물을 보이던 후옌님은 결국 의식 내내 우셨고, 뚜안님의 사촌 언니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뚜안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맨 앞에서 뭔가를 해줘야 했는데 득안님이 참여하지 못해 그 사촌 언니가 자리했다. 염불 외는 스님들 뒤로 두툼한 작업복을 입은 반숭 동지가 보였다. 예복같은 단정한 옷을 입은 다른 가족들과 차이나는 복장을 고집하신 이유는 뚜안님이 사준 옷을 입어서 그렇다고, 희정 동지에게 들어 마음이 아팠다. 제를 지내는 동안 우는 사람들이 늘어가더니 태은 동지도 온통 눈물에 젖은 얼굴로 향을 꽂았다. 참여한 사람들 모두 향을 하나씩 받아 향로에 꽂은 뒤 차려진 상 앞에 서서 음식을 한입 먹고 의식이 끝났다. 나도 마지막에 뚜안님의 사촌 언니와 나란히 서서 용과 한 조각을 뚜안님의 영정을 보며 먹었다. 망자와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라고 했다. 유족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뚜안님도 속상해서 같이 부둥켜 안고 우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더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에 대한 마음은 슬프지만 생자도 망자도 각자가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생각해서 그런지 나도 함께 울지는 않았다. 뚜안님 또한 가족들이 계속 슬픔에 잠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 마음이 후옌님에게 잘 전달되었을지는 몰라도, 그 이후에는 눈물을 좀 덜 보이셨던 듯도 하다. 두고가야 하는 기억, 감정. 죽은 사람도 남은 사람도 자신 몫의 삶은 계속되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좀 고민되기도 했다. 봉안탑에서 내려와 상에 올렸던 것들을 마당의 소각장에서 태우는 모습을 보다가, 후에님이 안쪽에 상이 차려져 있으니 먹으라 하셔서 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았다. 절에서 마련한 음식이라 모두 채식이라고 했는데 한 상 가득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올라와 있어서 신기했다. 한국의 절 밥이라면 메뉴나 조리 방식이 거의 정해진 편이었지만 베트남의 절에서는 채소 전골에 콩고기조림, 볶음밥, 채소 모듬 무침 등의 여러 요리를 볼 수 있었다. 양도 많았는데 부처님이 주신 음식이라 남은 건 포장해서 가야 한댔다. 식사에 후식으로 수박까지 주셔서 나는 팔레스타인 티셔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청 많이 울던 사람들 모두 다행히 식사는 잘 했다. 반숭 동지는 한국에서의 굳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고 후옌님도 슬픈 표정이었다. 희정 동지가 한국에서 그들과의 첫 식사를 했을 때는 사고가 벌어지고 며칠 지나지 않은 때여서 한 숟갈도 뜨지 않고 계속 울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럴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트남에 온 두 분이 잘 먹고, 울더라도 많이 웃고, 가족들도 만나니 좀 나아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뚜안님을 잃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던 반숭 동지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그들의 마음에 난 구멍을 채워줄 수는 없어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인간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상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에 적응할 거 같아서, 그리고 그 과정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거 같아 안심됐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뚜안님의 가족들은 우리를 엄청 먹이려고 했다. 마치 뚜안님에게 먹이고 싶었던 걸 우리한테 먹이려는 듯이, 계속해서 뭔가를 대접해 주셨다. 한국에 가면 이런 거 못 먹는다며 먹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다 내오신 거 같다. 후에님이 우리 식사를 다 감당하시느라 쉬지 못하시는 거 같아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가족 분들과 반숭 동지 친구 분들 또한 우리에게 뭐를 먹이는가에 대한 토론을 하는 걸 보고 약간 포기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우리에게 대접을 하고싶은 마음이 고생스럽고 귀찮은 것보다 큰 거구나.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 때 충분히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거도 필요한 일이라 나는 그 뒤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물론 뚜안님이 나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 그럴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에 반숭 동지의 친구인 홍님이 우리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셨는데, 그 날 뚜안님이 본인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소개시켜 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홍님이 식사를 하기 전에 잔을 들고 이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말씀을 하신 때 그런 생각이 들어, 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거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 느꼈다. 절에서의 일이 다 끝나고 동지들과 앞의 한국 대형 마트를 구경 갔다가 저마다 기념품이나 선물 등을 사서 귀가는 그랩 택시로 했다. 매장 안에는 한국어도 많고 한국에서 파는 물건에 베트남어 라벨만 붙은 채로 판매 되기도 했다. 마시멜로를 쓰지 않은 듯한 두바이 쫀득 모찌도 팔고 있었다. 마치 한국이라는 작은 왕국이 그곳에 있는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게다가 섬유 제품들은 한국 가격의 반도 안되어서 자본이 값싼 노동력 어쩌고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윤을 또 불리는지만 확인해 분노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눈으로 확인하니 속이 답답했지만, 이 곳의 사람들은 만족하는 낯빛이라 한국어로 판촉 홍보를 하는 직원들에게 애매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K팝을 좋아한다는 뚜안님의 사촌 언니에게 그러했듯, 한국 그렇게 좋아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고 삼켰다. 식당이 많은 거리의 야외 테라스에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고깃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요리가 있었고, 채식을 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었다. 뚜안님의 가족들은 매 끼니마다 채식하는 나를 먼저 챙겨줬어서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도 더러 채식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라 한국만큼 비건 음식을 구하기 어렵지는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나았다. 첫날에도 후옌님이 보름 때는 채식을 한다고 해서, 베트남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알았다. 나는 락토오보 비건이라 생선도 먹지 않고, 채식을 하기 전에도 비린내 때문에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운데 나온 흰 살 생선을 보니 되게 먹음직스럽고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고싶은 마음이 든 게 아닌 거 같아 혹시 뚜안님이 생선을 좋아하냐고 후옌님에게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뚜안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도 너무 많고 시끄러워 정신이 혼미했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득안님이 내 뒷쪽에 지나가다가 맥주를 쏟으며 잔을 깼는데, 그때 조금 정신이 들어서 옷에 술도 묻었으니 숙소로 돌아가고자 벌떡 일어났지만 반숭 동지는 우릴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이윽고 비가 쏟아져 우리가 앉아 있던 야외석의 지붕에 굵은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났다. 나는 빗물에다 옷에 묻은 술을 씻길 겸 가겠다 했으나 여전히 그들은 우릴 보내고 싶지 않아 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술 묻은 부분이라도 씻어내려 옷을 지붕 밖에다 휘둘렀다. 반숭 동지는 급기야 뚜안이 우리를 가지 말라고 해서 비가 내리는 거라 했다. 이 시기는 우기가 아니라 비가 오는 일이 흔치 않다는 거다. ‘제발’이라는 감정으로 ‘얼른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며 옷에 빗물을 떨구었다. 숙소에 돌아와 태은 동지가 그 모습을 보고 내가 귀신을 쫓는 줄로 알았대서 아니라곤 못하겠다 대답하며 깔깔 웃었다. 하지만 망자가 생자와 너무 오래 어울리는 건 좋지 않고, 나는 그걸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반숭 동지에게 남은 미련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 다음 날 오전, 스님들이 흐엉님의 집에 오셔서 더 많은 가족들과 2층의 영정이 있는 방에 모두 모였다. 이번에는 득안님도 참여하신 자리라, 그가 맨 앞에 앉아 어제 뚜안님의 사촌 언니가 했듯 뭔가를 받고 그릇에 수저를 꽂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한둘씩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결 나아진 거 같았다. 전날에도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스님들이 읽는 축문에 대구의 주소를 읋는 게 들려서 다혜 동지에게 물어보니 사망한 자리에 대한 주소가 들어간 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생자의 거주지가 축문에 들어가는 게 생각나서, 이 곳의 사람들도 망자가 자기가 죽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첫 날에 후옌님이 올라온 때 함께 있었을 때는 어지럽고 눈앞도 깜깜해졌었는데(그날 상당히 피곤했던 것도 맞긴 하지만), 스님들이 와서 제를 지내는 때엔 더 많은 사람들이 왔어도 꽤 괜찮았다. 물론 망자들도 많이 온 거 같았고, 왠지 뚜안님의 조상님들이 안전히 잘 데리고 간 느낌이었다. 다혜 동지에게 베트남에서도 죽은 사람을 조상들이 데려간다고 생각하냐 물으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아시아 문화권이 대부분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언어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제례의 대부분이 낯설지 않았던 듯하다(시작하기 전에 창문을 여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축문과 경문을 읊는 일이 끝나고 스님들이 가족들을 위로하는 말을 전하고 떠나셨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사람은 모두 죽으니 적당히 슬퍼해야 망자도 자기 갈 길을 잘 간다는 얘기였다.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이제 편안해졌으니 망자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슬픔을 잘 달래어 이겨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확실히 장례도 제례도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일이라, 가족들에게 이 모든 게 충분히 위로가 되었길 바랐다. 점심 식사는 육수를 쓰는 쌀국수 집에서 먹기로 얘기되어 채식하는 나는 제사 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식사했다. 흐엉님과 후에님과 그 아들인 바오, 딸 아이를 안은 뚜안님의 사촌 언니와 반숭 동지 친구 응우웯님과 함께 집에서 밥을 먹었다. 응우웯님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번역기로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며 단어를 서로 가르쳐 줬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 내 모국이 그들에겐 좋은 대상이라는 걸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애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그에 부정적인 기색을 내비칠 수 없었다. 한국에 자주 간다는 응우웯님이 한국에서도 보자고 하셔서 좋다고 했다(이후 페이스북 메신저로도 서울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점심을 먹고 좀 쉰 뒤 저녁 식사 때가 되자 출장 식당 업체에서 상과 의자와 필요한 음식에 얼음 일체를 들고 흐엉님의 집에 왔다. 아침에 봤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러니까 일가 친척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가 마련된 거다. 분위기는 잔치 같아서 큰 일을 치르고 난 뒤의 뒤풀이 같은 느낌이었다.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골목에까지 상을 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다들 데면데면한 게 하나도 없었다. 득안님도 사촌들과 대화를 하며 웃고 즐거워 해서 신기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10살 아이가 나와 대화를 하려 했는데, 네다섯 살인 바오가 이제 낯가림을 안하는지 계속해서 말을 했다. 그 사촌들이 기억하는 뚜안님은 어떨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사건 이후로 어플로 베트남어를 조금씩 배워봤지만 무슨 대화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친척 가족들도 다 보내고, 반숭 동지의 친구 분들이 우리와 함께 놀러 나가자 하셨다. 태은 동지는 전날에 후에님한테 받은 아오자이를 입었고, 나도 응우웯님에게서 받은 아오자이의 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희정 동지가 이 사람들이 우리를 갖고 논다고 어처구니 없어 했지만 아무튼 신이 난 베트남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한참 택시를 타고 나가 굉장히 넓은 야외 카페에서 어렵사리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예쁜 카페 다니는 걸 좋아하던 뚜안님이 왠지 확실히 좋아했을 거 같은 곳이었다. 연못도 있고 조화 나무도 있고 진짜 나무도 있고 정원 바위들도 있는 광활한 카페였으니, 이제 보니까 호치민은 자본가에게만 후한 거 같았다. 국가 자본주의에 분노하는 것도 잠시, 곧 그들은 한국의 다른 대형마트를 구경 가자고 한다. 나가는 길에 발견한 셀프 포토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열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어떻게든 네 장에 한 번씩은 다 나오게 만들었다. 홍님이 우리에게 한 장씩 뽑아 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링크로만 가졌다(물론 우리도 링크를 공유 받았다). 또 택시를 타고 가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근처에 있으니 가볼만 하다 싶어 가는 길이 전날에 절에 가며 걷던 동네 길이랑 달랐다. 신호등은 여전히 드물었지만 응우옌후에 거리를 다니던 때처럼 잘 닦여진 인도 곳곳에 2주 뒤의 중추절을 축하하는 큰 장식물들이 있어서 포토존 삼아 또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자본이 사람들이 실제 살아가는 삶보다 포장된 것을 보여주기 좋아하는 게 국가 불문 똑같은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맥 빠졌다. 후에님이 태워주는 오토바이도 타고 하면서 베트남의 번화가를 누볐다.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마 그때부터 그들이 계속 내년(베트남에서는 음력 달력을 써서 아직 2025년이다.) 뚜안님의 기일에도 오라고 했던 거 같다. 홍님이 다음 날에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전하자 희정 동지는 거절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골치 아파 했다. 그러나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는 말이 가볍게 무시되는 거처럼, 우리의 거부 의사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갚을 길 없는 호의와 환대를 받아 부담스러워 하셨지만, 다혜 동지도 사실 베트남 사람들은 다들 정이 많아 이러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나도 홍님의 집에서 뚜안님이 우리가 뚜안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걸 원하는 거처럼 느꼈다고 말을 전하긴 했지만, 그의 마음에 쌓이는 부채감을 덜어주진 못했다. 결국 홍님의 동네를 구경 다니고 점심을 대접받은 뒤에야 우리는 풀려날 수 있었다. 희정 동지는 호치민에서 그래도 전쟁기념 박물관에는 한 번 가보는 게 좋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동지들과 그곳을 들렀다. 한국에서 동지들이 상경 농성을 한 장소도 전쟁기념 박물관 앞인 게 떠올랐다. 게다가 거기에는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가담해서 학살한 주제에, ‘그들을 죽이는 게 당연하고, 절멸시켜야 한다’는 당시의 문구를 베트남어로 기재해놔서 한베 평화 재단이 시정 요청을 한 바가 있다. 도무지가 자랑스러울 법한 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한국을 베트남의 전쟁 기념관에서는 전쟁을 도와줬다는 거처럼 포장해 놔서 구역질이 났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미군의 탱크나 무기 같은 것들을 전리품처럼 자랑스럽게 전시해 놨지만, 호치민은 전체적으로 사실상 미국의 꼭두각시인 한국을 선망하는 거 같은 느낌이라 비위가 상했다. 북베트남인 하노이 지역은 남베트남인 호치민과 분위기가 다른 편이라고 들어 궁금했다. 그러고 보면 반숭 동지도 흐엉님도 원래는 고향이 하노이 쪽이라고 들었다. 전쟁 이후 호치민이 산업화가 많이 되고 공장이 들어서며 일자리를 찾으러 이쪽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흔했던 거 같다. 마지막 전시관이 전쟁의 아픔, 상흔 등의 얘기로 고엽제 피해자들과 그 자손들의 장애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베트남의 정부 또한 베트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그들이 걸어놓은 낫과 망치 깃발이 별 의미 없는 것처럼, 학살당한 사람들을 애매하게 넘긴 그곳이 기묘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분명 그런 곳이 전쟁의 잔혹성을 기억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걸 텐데 아무도 그런 걸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산 산업으로 야금야금 돈을 벌고 있던 한국. 전면적으로 시작된 침공에 치솟는 방산산업 주가. 자본의 개처럼 미쳐버린 제국 꿈나무인 나라를 호치민 사람들은 좋아해줬다. 그런 현실이 너무 끔찍하다. 도로에서 식탁을 펼친 가게의 반쎄오를 마지막 식사로,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반숭 동지와 홍님이 함께 나와 태은 동지를 데려다 주시고, 공항 안으로 같이 들어가지 못해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온 날은 하루 종일 자고, 그 다음 날에도 저녁쯤에야 겨우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베트남 땅을 밟자마자 들은 세종호텔 로비 농성 동지들의 연행 사건이 마무리되고 열린 체크인 집회에 자리했다. 반숭 동지에게 진수 동지가 땅으로 내려왔고 다른 사람들과 경찰에게 단체로 잡혀갔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진수 동지가 고공에 있을 때 반숭 동지에게 전화로 인사를 하다가 목이 메여 우시던 날이 생각나서 내내 마음에 걸렸다. 페이스북으로 베트남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 친구 요청을 했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라서 ‘여성스러운’ 옷을 입지 않는 내가 그들과의 시간이 그리울 때면 응우웯님이 준 아오자이를 입어 본다. 태은 동지는 후옌님의 딸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여유가 될 때 베트남어 기초 수업을 들어보기로 결심한다. 잃고 나서 얻게 되는 것, 살아있는 사람으로의 책임, 주어지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에 대해 생각한다. 희정 동지가 농성 투쟁 때 하셨던 말처럼, 우리 노동자들은 서로 동등한 관계니까 나는 동지도 친구라고 해 본다. 친구의 말과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어플로 좀 더 열심히 학습해 본다. 뚜안님의 사건을 처음 접했던 날처럼, 그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서 베트남어를 공부하고자 했듯. 살아있는 사람이, 혹은 죽어서 떠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고자 그 투쟁에 함께했다. 또한, 애도하는 일의 감각을 알고 싶어서도 매번 자리했다. 그러한 결과로 나는 뉴스나 보도자료에 적히는 글자나 숫자가 아닌, 실재하던 인물을 느끼고 기억하는 일은 소식으로만 접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뚜안님과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여러 번 깨달을 때마다, 나는 우리 노동자 민중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각각의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공통의 감각. 계속 되는 자본의 갈라치기와 대상화의 홍수 속에서, 범람하는 탈인간화에 나는 계속해서 우리가 사람임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한사람 한사람, 각자의 우주가 더는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우리를 스쳐간 많은 목숨들에 조의를 표한다.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2026-03-09 | 조회 17,125 -
[번역] 국제선언: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위하여!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을 타도하라!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자행하는 제국주의 전쟁행위에 대한 연속혁명경향(CPR)의 국제선언을 소개한다. 노동자계급과 반제국주의 운동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군사침략을 패배시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Left Voice에 3월 3일 게재된 영문판을 번역함.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공습과 여러 도시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는) 합동 군사 공격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전략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과거에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된 제한적인 목표에 집중했으나 이제 이란 민중을 완전히 패배시켜 백악관의 지시에 복종케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공동 책임자들인 워싱턴과 텔아비브가 벌인 합동 공격으로 이미 수백 명의 이란 민간인(이란 남부의 한 학교에서 사망한 수십 명의 여학생 포함)이 사망했고, 테헤란과 이란 전역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아야톨라(최고 성직자) 겸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암살당했다. 또한 하메네이의 고문 알리 샴카니, 군 최고사령관 압돌라힘 무사비, 국방부 장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혁명수비대 사령관 모하마드 파크푸르 등 정권의 정치·군사 지도부 일부도 제거되었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사태 전개의 문을 열었다. 중동 전체를 잠재적 불안정으로 몰아넣는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역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공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발언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한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수도 베이루트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편, 헤즈볼라는 하메네이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유가가 10% 이상 상승함으로써 이 전쟁이 광범한 사회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보여준다. 이번 공격의 초기부터 트럼프가 공언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정권 교체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는 2000년대 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한 제국주의 전쟁에서 사용된 파괴적인 신보수주의 정책의 요소들을 차용한 것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종속적인 입장에 서서 트럼프를 지원하여 이란 공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번 제국주의 침략은 미국의 무조건적 지원을 받는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자행해 온 집단학살 및 민족청소 정책의 직접적인 연장선에 있다. 이란에 대한 공격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을 배치한 위협 속에서 몇 주간의 협상을 벌인 끝에 단행되었는데, 그 명분은 이란이 완전한 군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해체뿐 아니라 이란의 유일한 실질적 방어수단인 탄도미사일 포기까지 요구했다. 이는 수십 년간 워싱턴의 가혹한 경제 제재로 억압받아 온 이란에게 완전히 항복하라는 요구였으며, 테러 국가인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군사적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을 집단학살하고 서안지구에서 정착촌 확장을 통해 팔레스타인 토지를 강탈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자신들 뜻대로 지역 지도를 재편하기 위해 이란을 약화시키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친제국주의적인 우호 정부를 수립하는 방식으로든 또는 시리아처럼 국가를 분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든 말이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은 미국이 ‘서반구’에 대한 절대 지배라는 새로운 국가 안보 교리에 따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식민주의적 자원착취 전쟁과 맥을 같이 한다.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 호전성의 표현들은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와 이른바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붕괴 속에서 가속화되는 미국의 패권적 쇠퇴를 되돌리려는 반동적 시도를 그 배경에 두고 있다. 이는 워싱턴의 명령에 도전하려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가 쿠바 경제를 압박하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쿠바에 대한 석유 보이콧을 선언한 미국은 이미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쿠바 수출을 금지하였고, 쿠바에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들에 제재를 가했다. 이제는 이란산 원유의 쿠바 수출까지 줄이려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과 가운데 남아있는 부분마저 소멸시키려는 의도이다. 트럼프는 또한 중국의 석유 공급망을 차단하여 아야톨라 정권과의 특별한 관계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이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적·군사적 패배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면, 사회주의자라면, 혁명적인 좌파라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유럽 열강들의 패배를) 조건 없이 지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피억압 국가의 편에 서서 억압 국가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연속혁명경향(CPR)은 아야톨라 정권의 반노동자적이고 억압적이며 반동적인 체제로부터 절대적인 계급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반제국주의 입장을 옹호한다. 노동자계급, 여성, 그리고 이란 민중의 해방과 자유는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여전히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의 폭격과 개입으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지금까지 알리 하메네이가 이끌어온 신정적이고 초보수적인 정치체제는 이란의 노동자와 빈민 대중에게 가차 없는 적이다. 이 체제는 (2022년 젊은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살해 사건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났던) 여성 박해, 쿠르드족 탄압, 그리고 노동자 파업 탄압에 책임이 있다. 지난 1월, 하메네이는 빈곤, 기아, 그리고 국가 경제위기의 결과에 맞서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시위하던 수천 명의 시위대를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실, 아야톨라의 신정 독재는 1979년 이란 혁명을 정치적으로 찬탈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혁명은 레자 팔라비와 미국을 몰아내고 노동자 평의회(쇼라)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이 평의회들이 더욱 발전했더라면 이 지역에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계급 권력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창출할 수 있었겠지만, 성직자 정권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대중을 억압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행태는 이란 내에서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과 투쟁을 위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방해해 왔다. 이란의 노동자, 여성, 청년들이 아야톨라 정권의 반동적인 탄압에 직면하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반혁명적인 세력들인) 미국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시온주의에 맞서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는 이란 정부와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을 가질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했듯이, 이란은 베네수엘라와 다르다. 이란이 위치한 중동 지역은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유럽 제국주의(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가 자행한 수십 년간의 파괴로 황폐해진 불안정한 지역이고, 난민 위기로 에워싸인 지역이며, 오랫동안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서 싸워온 역사를 가진 지역이다. 더욱이, 1979년 혁명 이후 미국의 가혹한 경제 제재로 압박받아 온 이란은 비록 2023년 이후 (특히 친이란 민병대의 경우) 약화되기는 했지만, 베네수엘라보다 더 큰 군사적, 지정학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은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아랍에미리트의 알 다프라, 쿠웨이트의 알리 알 살렘, 이라크의 에르빌, 바레인의 제5함대 사령부 등) 여러 미군기지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며, 걸프만 원유 수송의 전략적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을 공격했다. 이란의 미사일은 텔아비브의 건물들을 파괴하고 베이트 셰메시의 이스라엘인들과 미군 병사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란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제국주의적 공격에 항의했고, 파키스탄, 이라크, 인도에서는 민간인들이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공격했다. 다시 말해, 전쟁의 양상과 결과는 이란의 저항 수준과 지속적인 보복 여부에 달려 있다. 트럼프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특히 중동에서는, 미국이 공습에만 의존해서 정권 교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가 없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처럼 지상군을 투입한 곳에서도 역사적인 패배를 겪었고, 미국 주둔에 적대적인 세력을 만들어냈다. 이란에 대한 군사적 침공은 트럼프에게 간단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이란의 광활한 영토,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내부 자원 접근에 대한 제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지역적 적대감은 군사적 침공을 더욱 어렵게 한다. 미국 안에서도 공화당 지지층을 포함한 미국인 대다수가 군사적 침공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게다가 트럼프의 국내 입지는 약화되었다. 경제는 예상보다 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행정부는 이민세관집행국(ICE)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에 직면해 있다. 특히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경제적 셧다운은 트럼프 정부가 계급투쟁 영역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겪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모든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중동에서의 대규모 전쟁에 개입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좌파 세력(예를 들어 프랑스의 NPA-L'Anticapitaliste)은 제국주의 개입과 이란의 반동 정권을 동렬에 놓는다. 이러한 입장은 억압국과 피억압국의 차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혁명가들은 그 지도부의 반동적 성격과 관계없이 피억압국의 편에 서야 한다는 의무 또한 간과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DSA)와 같은 단체는 자국의 제국주의 정부와 이스라엘의 패배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고 단순히 전쟁 종식만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마치 트럼프의 제도적 갈취와 협박이 (워싱턴이 펼쳐 온 동일한 경제·정치 외교로 이미 수십 년간 억압받아 온) 이란 민중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인 것처럼 미국이 ‘외교’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위해, 피억압 이란의 승리를 위해, 이란 정권으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기초 위에서, 중동과 전 세계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국제적 운동을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전 세계의 사회주의 좌파,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그리고 반제국주의 운동은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행동으로 단결해야 한다. 이는 특히 (민중들이 트럼프에게 반이민 정책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한) 미국과 모든 핵심 국가들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을 베네수엘라와 쿠바에서 축출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을 타도하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미군은 중동에서 철수하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을 타도하라!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청년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대규모 운동을 건설하라! 2026년 3월 2일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PR-FI)2026-03-04 | 조회 15,605 -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강대국 간의 충돌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전쟁과 학살은 점점 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의 한 국제정치학자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목차>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어진 사건들 2. 미·중 패권대결의 기본 성격과 현재 지점 3. 트럼프 정권의 미·중 패권대결 대응 전략과 베네수엘라 침공 4. 미·중 패권대결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5. 실천 방향과 과제 2022년 2월 러시아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서 출구 없는 대리전을 시작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다시 한 번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의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집단학살하면서 동시에 중동 곳곳으로 전쟁을 확산시켰다. 2025년 1월 이후 트럼프는 관세를 앞세워 세계 곳곳을 약탈하고 미국의 대도시들을 사실상의 계엄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마치 조폭깡패가 힘자랑하듯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의 힘을 휘둘렀다. 지난 4년 동안, 가깝게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멀게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지돼 오던 국제질서의 ‘규범’들이 하나둘 흔들리면서 세계는 점점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대국 간의 충돌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전쟁과 학살은 점점 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의 한 국제정치학자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2026년 1월 한 달 동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기존 국제질서를 뒤흔들며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규칙기반 국제질서’에서 희망을 찾아온 이들, 또는 중국·러시아가 열어냈다는 이른바 ‘다극체제’에서 희망을 찾아온 이들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 앞에서 혼란과 당혹, 무기력과 절규를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질서는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어진 사건들 2017년 첫 번째 임기 초반부터 트럼프는 “그들은 엄청난 석유를 가지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탐욕과 침공 의사를 여러 차례 공공연히 드러냈다. 2020년에는 미국 법무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정부 관료들을 ‘마약 테러’ 혐의로 기소했다. 2025년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후 트럼프는 ‘마약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 카르텔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7월에는 국방부에 마약 카르텔에 대한 공격 개시를 명령했고, 8월부터 대규모 미군 병력이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 해에 배치됐다. 9월 2일 11명이 탑승한 쾌속정을 마약운반선이라며 폭격해 전원을 사망케 했다. 이때부터 12월까지 최소 105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카리브 해상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11월 11일 미군의 항공모함 전단이 카리브 해에 배치됐다. 12월 10일과 20일,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두 척이 미군에게 나포됐다. 12월 16일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해외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2026년 1월 2일 저녁 10시 46분(미국 동부시간, 베네수엘라 시간으로는 11시 46분),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침공 작전의 개시를 지시했다.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헬리콥터 등 150대 이상의 각종 항공기가 동원됐다. 미군의 고출력 전파방해로 베네수엘라의 러시아제·중국제 방공망이 무력화됐고, 전력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미군이 첨단 극초단파 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3일 오전 2시, 작전개시 두 시간여 만에 미군이 쿠바인 경호부대를 무력화하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부인 플로레스를 납치하여 미국 본토로 이송했다.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최소 80여 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사망했다. 작전이 끝난 뒤에도 미군은 카리브 해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미군은 카리브 해상에 1만 5천여 명의 병력을 유지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봉쇄를 지속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서 대통령 마두로를 납치한 것은 1989년에 파나마를 침공해서 실권자 노리에가를 납치했던 사건과 닮은꼴이다. 또한 2020년에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원격조정 드론으로 살해했던 사건과도 닮아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앞선 두 사건 모두 1990년 1월 3일과 2020년 1월 3일에 일어났다. 1월 3일! 이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납치는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제국주의 만행이다. 하다못해 유엔헌장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타국의 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하고 국가 간 호혜평등 원칙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위반이다. 타국과의 전쟁은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미국법도 위반했다. 물론 미국이 제국주의 깡패 노릇을 해온 것은 수없이 되풀이돼 온 일이다.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바로 지난해에는 이란을 폭격했다. 미국은 매번 그럴싸한 핑계를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마약테러와의 전쟁’ 논리를 내세웠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거짓 핑계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허술한 핑계를 포장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은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는 반동적인 정권이었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이 반민주적이고 반동적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을 조금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미국은 마두로를 심판할 어떤 자격, 권리, 권한이 없다. 반동적인 독재자를 심판할 권한은 오로지 베네수엘라 민중에게 있을 뿐이다. 2)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진 사건들 마두로 납치에 성공한 뒤, 트럼프는 이를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면서 다른 나라들 또한 전격적인 침공작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위협했다. 쿠바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 석유에 의존해 온 쿠바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카르텔들이 멕시코를 운영하고 있어서 멕시코에 무언가 행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대통령 페트로를 지칭하면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때마침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전개된 이란에 대해서는 군사 공격, 사이버 공격, 추가 제재 등의 개입 가능성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7일 트럼프는 2027 회계연도(2026년 10월 시작) 국방예산을 1조 5천억 달러로 증액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현재 시행 중인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은 약 1조 달러로 세계 2위부터 10위까지 국방예산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여기에 5,000억 달러가량(50%) 증액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증액 요청이다. 같은 날, 트럼프는 기후환경, 인권, 여성, 난민지원, 문화교육, 보건 등에 관련된 국제기구 66개(유엔 산하 31개, 비유엔 35개)에서 미국이 탈퇴하거나 지원을 중단한다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과거에 트럼프 1기 정권이 파리기후협약, 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 선언을 한 바 있었다. 바이든 정권이 이것을 되돌려 놓았는데, 트럼프 2기 정권 들어 다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세계를 뒤흔든 것은 트럼프가 유럽의 동맹 열강들을 공공연히 협박하면서 그린란드 병합 의사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1월 3일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부터 트럼프는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며 협박을 거듭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지지하거나 묵인했던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미국이 나토 동맹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협박하자 갑자기 주권에 대한 맹렬한 수호자로 변신했다. 7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덴마크 7개국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주민들의 것으로,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주체는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뿐”이라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5일 나토가 그린란드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기로 긴급 결정하고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가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유럽의 저항에 심기가 뒤틀린 트럼프는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8개국에 대해 2월부터 10%, 6월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17일 선언했다. 그러자 18일 유럽 8개국이 “관세 위협은 대서양 관계를 훼손”한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유럽의회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 승인절차를 중단하자’, ‘유럽도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통상위협대응조치를 발동하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보이콧하자’ 등 많은 주장이 유럽 각국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제 유럽은 트럼프 달래기를 넘어 대서양 동맹 붕괴를 감수하는 태세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도 급부상했다. 미국 공화당의 온건파 상원의원들도 “나토 분열은 중국과 러시아에 좋은 일”이라며 관세 부과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오랜 시간 미국의 맹방이었던 캐나다도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미국의 51번째 주로 합병하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일 새벽 트럼프는 그린란드, 캐나다, 베네수엘라 영토에 모두 성조기가 뒤덮인 지도를 배경으로 자신이 유럽의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를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20일 낮, 캐나다 총리가 스위스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미국을 강한 톤으로 규탄했다. “과거 미국 중심의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이제 끝났으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했다. …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메뉴판에 오른다. … 중견국들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희생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21일, 트럼프는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진 뒤 유럽 8개국에 부과한 관세를 취소했다. “유럽과 그린란드 문제를 ‘합의할 틀’을 마련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나토 동맹국들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영토 병합 공세는 일단 멈췄다. 하지만 그의 공세는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그린란드 병합을 놓고 유럽을 밀어붙이던 15일, 트럼프는 가자지구 과도 통치와 재건을 주도하기 위해 이른바 ‘평화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유럽 8개국 대상 관세부과를 취소한 21일, 트럼프는 “평화위원회에 러시아의 푸틴도 참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맹방 벨라루스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와 평화를 논할 수 없다”며 평화위원회 불참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평화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대신 23일 시진핑(중국)-룰라(브라질) 간 정상통화를 통해 ‘유엔의 권위 유지’, ‘브릭스 국가 간 협력’, ‘글로벌사우스의 공동이익 수호’, ‘중국과 중남미 관계의 더 큰 발전 추진’ 등의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발표했다. 한편 국제질서가 이렇게 요동친 1월 한 달 동안, 미국 안에서는 이민자 단속을 둘러싸고 사실상 계엄 상태에 있던 대도시들의 상황이 끔찍한 인명살상으로 발전했다. 1월 8일과 24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관세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미국 시민권자 두 명이 ICE 요원들의 총격으로 연거푸 살해당했다. 3)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의 연관성 미국이 베네수엘라 침공을 개시하기 여섯 시간 전인 2일 오후 5시 30분,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중국 특사가 마두로를 만나 세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중국 특사의 베네수엘라 방문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침공위협 앞에서 중국에 계속해서 긴급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은 ‘중국과 베네수엘라는 전략적 파트너다’, ‘중국은 모든 일방적 강압 행위를 반대하며 각국의 주권 수호를 지지한다’, ‘베네수엘라와 각국의 정상적 협력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중국 특사와 마두로가 헤어지고 세 시간 만에 미국의 침공 작전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메시지와 약속,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공급한 무기들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미국의 세계전략 전반과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늘날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국과의 패권대결이다. 따라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중 패권대결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이를테면 <한겨레신문>의 1월 7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이 ‘마약 단속’을 베네수엘라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중국의 ‘외부 영향력’을 제거하고 서반구를 완전한 미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을 강조하는 것도 중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값싸게 확보해온 것을 겨냥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약 80%가 중국으로 향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중국의 중남미 핵심 거점이다. 중국 국유 에너지 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과 첨단기술기업 화웨이 등이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로 사업을 하고 있다. 2010~2020년 중국이 중남미에 판매한 무기의 86%를 베네수엘라가 사들였다. 중국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와 자원을 값싸게 수입하고, 통신 장비와 무기 등을 수출하는 구조다. 특히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위안화 석유 거래가 달러 시스템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미국을 자극했을 것이다.[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중 패권대결이라는 거대한 전개과정이 드러낸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진 사건들, 특히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나 가자 평화위원회 구성도 미·중 패권대결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미·중 패권대결의 성격과 동학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사태의 전개방향을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그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실천과제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게 해준다. 2. 미·중 패권대결의 기본 성격과 현재 지점 1) 자본주의 축적위기의 산물이자 축적위기를 가속화하는 요인 오늘날 미·중 패권대결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를 통해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함으로써 시작됐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세계화에 나섰는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겪고 있던 자본의 축적위기, 즉 자본이 손쉬운 이윤 획득과 원활한 확대재생산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략 30년 동안 이어졌던 전후호황의 황금기를 뒤로 하고 1970년대에 세계경제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1980년대에 시작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노동자의 고용·임금·복지를 공격하고 자본에게 감세·민영화의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인위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1990년대에 세계화와 금융화가 가세하고서야 자본의 축적위기가 외견상 사라졌다. 세계화는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대대적인 공장이동을 통해 선진국 자본의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축시켰고, 자유무역의 깃발을 든 선진국 자본이 세계의 모든 시장을 마음껏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금융화는 주식·부동산 등의 거대한 금융거품 조성이나 지대 인상으로 막대한 금융수탈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자본이 착취를 통한 이윤획득의 부족분을 수탈을 통한 이윤획득으로 보충할 수 있게 했다. 자본주의 경제에는 다시 황금기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세계대공황의 출발점이었던 1929년 미국 주식대폭락이 보여줬던 것처럼, 거대한 금융거품 조성은 애초부터 거품파열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고 다시 현실이 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에 기초한 축적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국가의 전면적인 경제개입을 통해서만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빈사 상태, 다시 말해 국가의 전면적인 경제개입을 통해서만 자본의 이윤획득과 대중의 소비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만성적인 축적위기에 빠져들었다. 당연하게도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위태위태한 축적위기를 잠재울 해법을 자본주의는 갖고 있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기존의 방책들은 과거와 달리 축적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적인 축적위기를 사회 전반의 복합위기로 발전시켰다. 신자유주의 공세는 국가부채 부담을 대중에게 전가하기 위한 대대적인 긴축 공세로 발전했고 상호 결합했다.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는 특히 선진국에서 제조업 이탈과 결합하여 주민의 상당한 부분을 고통스러운 빈곤의 늪으로 빠뜨렸고, 이들을 배경으로 이주민혐오에 기반하고 보호주의·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극우적인 정치세력이 급성장할 수 있게 했다.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는 또한 부동산 가격급등 및 임대료 상승과 결합하여 세계적으로 청년의 빈곤과 미래 상실을 초래했고, 이는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재생산 위기로 이어졌다. 세계 곳곳의 자원개발·생산확장·소비팽창이 가속시킨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는 거대한 기후변화를 통해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축적위기가 지속되고 심화할수록 금융수탈로 자본의 이윤을 벌충해야 할 필요는 더욱 커져갔고, 따라서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을 무시한 채 금융거품은 더욱 더 크게 부풀어 올라 세계경제를 일거에 붕괴시킬 상시적인 시한폭탄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은 세계의 수많은 공장들을 빨아들인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으로서 지속적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미국과의 격차를 줄여 나갔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미국 대비 12.7%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2007년 24.5%로 성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국에게 도약의 기회였다. 2011년 중국의 GDP가 미국 대비 48.4%로 급증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미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오바마 정권이 국제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아시아로 집중’을 내걸었고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미국과 정반대로 중국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2012년 시진핑의 집권과 함께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활하는 중국을 꿈꾸는 ‘중국몽’을 말하기 시작했다. 2013년 중국 자본의 적극적인 대외 진출을 선언한 일대일로 정책이 가시화했고, 2015년 첨단기술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이 시작됐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 성장하던 보호주의·민족주의 극우세력은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성공을 계기로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2018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67.7%를 기록하던 해에, 트럼프 정권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며 대대적인 무역분쟁을 일으켰다. 마침내 미·중 패권대결이 공공연하게 표면 위로 떠오르는 변곡점이었다. 미·중 패권대결은 바이든 민주당 정권에 의해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를 기록하던 해에, 바이든 정권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분리 정책이 더욱 가속화됐다. 이에 중국은 한편으로 자기완결적인 첨단기술 공급망을 구축하고 내수기반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출경제를 재편하는 ‘쌍순환’ 전략으로 맞섰다. 그런데 미·중 패권대결은 그 성격상 단순히 경제적 대결에 머무를 수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정치군사적 대결로 확대돼 왔다. 그리고 이 측면에서 미·중 패권대결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넘어 세계질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 또한 세계 자본주의 전반의 극심한 축적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하락세에 있는 미국・서유럽・일본의 서구 자본주의와 달리, 중국의 자본주의는 상승세에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을 추월해 제2의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며, 패권적 지위를 상당 부분 상실한 미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세계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튀르키예 같은 지역적 군사강국들에게 자신의 팽창 야망을 실행할 공간을 열어주고 있으며, 서유럽과 일본은 세계질서 속에서 더 이상의 지위 하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유일 패권을 복원하고자 하는 미국의 몸부림과 최강대국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망은 이 모든 상황을 더욱 가파르게 가속시킨다. 따라서 현 시기의 세계질서는 세계 자본주의 전반의 극심한 축적위기가 지속되고 미국의 패권이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미・중 간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열강 간의 다각적인 대립・충돌이 점점 더 격화되는 것을 기본 동학으로 한다.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후 중동에서의 상황, 2025년 인도-파키스탄 갈등, 2026년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병합 갈등이 보여주듯이, 당분간 세계질서는 크고 작은 충돌과 격변에 끊임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공급망의 분리·교란에서부터 군사적 긴장·충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의 축적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2) 제국주의 패권대결로서 미·중 패권대결 그런데 미·중 패권대결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인가? 중국은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국가인가? 또는 자본주의일지라도 최소한 미국보다는 진보적인가? 그러므로 미국의 유일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그리고 러시아는) 세계의 노동자·민중에게 모종의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가? 중국의 사회성격을 자세히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두드러진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의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이자 제국주의 강대국이라는 점,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어떤 진보성도 없으며 어떤 희망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하겠다. 중국은 생산수단의 상당 부분이 국유화돼 있지만, 이는 사회적 소유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중국 국가의 실제 주인은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공산당 관료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는 민간 자본가들과 깊이 융합돼 있는 공산당 관료들이 노동자·민중을 착취·수탈·억압하기 위한 계급적 지배의 수단일 뿐이다. 중국은 형식적으로 계획경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계획의 실제 목적은 노동자·민중의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자본의 원활한 확대재생산에 있다. 중국 경제는 자본주의의 전형적 특징인 무정부적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과잉생산에 따른 디플레이션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 기업들은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130여 개를 차지하며 미국과 1위를 다툰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업의 화려한 성장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주 6일 장시간 노동해야 하는 초과착취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심지어 일요일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극단적인 초과착취 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기 때문인데, 이는 중국 국가의 반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점이다. 중국 자본주의는 높은 수준의 내부 수탈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2천년 이상 이어져 온 중국의 역사는 제국의 강력한 중심부가 광범한 주변부를 (주로 식량징발을 통해) 수탈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중심부가 매우 강력해서 광범한 주변부 대부분을 제국 안으로 통합하여 유지해 온 것이 ‘거대한 중국’의 역사적 실체였다고 할 수 있다. 중심부(대도시)가 주변부(농촌)를 수탈하는 구조는 1949년 중국혁명 이후에도 지속됐는데, 1958년 도입돼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농촌 주민의 도시 진입을 엄격하게 차단하는 후커우 제도가 그 대표적인 산물이다. 개혁개방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중심부가 대도시를 넘어 산업발전이 집중된 동부연안으로 확장되었고 개발에서 소외된 광활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중서부내륙이 주변부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전개된 수탈의 대표적인 표현은 동부연안의 산업거점과 대도시에서 일하지만 저임금과 불안정한 생활조건을 강요당하는 중서부내륙 농촌 출신 수억명의 농민공이다. 내부 수탈의 또 다른 표현은 지역 간의 심각한 경제적 격차로 나타난다. 2024년 중국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억 5천의 인구를 포괄하는 (베이징・상하이・톈진의 3대 대도시와 쟝수성・푸젠성・저장성・광둥성의 4개 성으로 구성된) 동부연안은 평균 약 20,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6천 3백만이 거주하는 베이징・상하이・선전의 3개 도시는 평균 약 30,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 전체 인구의 4분의 3을 포괄하는 중서부내륙은 평균 약 11,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2]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이 같은 뚜렷한 격차를 중국의 약점으로 보는 시각들이 종종 있다. 물론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중대한 약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로서 중국에게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다. 중국 제국주의의 실체는 인구 25%를 포괄하는 중심부(동부연안)이고, 인구 75%를 포괄하는 주변부(중서부내륙)는 사실상 ‘내부 식민지’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중심부(동부연안)가 광활한 주변부(중서부내륙)를 마음껏 수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의 자본가계급은 주변부(중서부내륙)에 대한 체계적인 수탈을 기반으로 거대한 사회적 자원을 산업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고, 중심부(동부연안) 내에서도 광범한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강제할 수 있었다. 한편 2010년대 이후 중국 정부는 ‘공동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상당수 공장을 중서부내륙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는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2010년부터 시작된 동부연안에서의 임금투쟁은 중국 정부로 하여금 자주적 노조운동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동부연안을 중심으로 최저임금을 매년 빠른 속도로 올려줄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는데, 이와 같은 임금인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많은 저부가가치 제조업들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중서부내륙으로 이동했다. 둘째, 2010년대 중반 시작된 일대일로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과잉자본에게 출구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건설・토목을 중심으로 중국 외부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일대일로였다면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국 내부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중서부내륙으로 상당수 공장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셋째, 2020년대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와의 관계에서 공급망 디커플링과 무역분쟁이 격화되자 중국 정부는 중국 자체적으로 완결적인 공급망 구성과 왕성한 내수 수요 창출을 미국에 맞선 패권대결에서 핵심적인 과제로 추진하게 됐는데, 이를 위해 대대적인 중서부내륙 개발에 나선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중국 자본이 진출해 있다. 그런데 이들은 특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중국식 초과착취 모델을 현지에 이식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생산현장과 작업장에서는 산업재해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있다. 아동노동 착취, 저임금, 임금체불, 폭력적 현장통제도 만연한 상태다. 자원약탈 때문에 원주민과 충돌하는 사례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약소국에 대한 중국의 대출과 투자는 약소국의 주권에 대한 침탈 또는 압박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대출상환 지연을 이유로 2017년에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만에 대한 99년 사용권을 확보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에게 대출·투자를 통해 의회건물이나 이런저런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중국의 선물은 늘 해당 약소국이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 공공사업 입찰에서 중국 기업에 우선권 부여, 중국이 관여하는 사업에 대한 노동법 적용과 환경 규제 완화 등의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 중국은 이집트,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 40여 개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양한 수준의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안보협력은 항구·철도 같은 일대일로 자산의 보호와 더불어 해당 국가의 병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포함한다. 모잠비크, 나미비아, 세이셸,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는 무기의 90% 이상을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중국의 방위산업 기업들은 앙골라, 나이지리아, 남아공 등에 사무소를 개설하고서 아프리카 각국에 무기·탄약 공급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3]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신의 영해로 주장하는 이른바 9단선을 고집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게 굴욕적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오늘날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이자 또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미·중 패권대결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패권대결이다.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진보성을 갖지 않으며, 어떤 희망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에 입각해 두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맞서는 것이며, 이것을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혁명적 전망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3) 미·중 패권대결의 현재 지점 요약 2018년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은 우세한 힘을 갖고 중국을 압박하여 추가적인 성장을 차단하려 했지만, 중국은 점점 더 미국의 압박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중국이 점점 더 대등한 경쟁자의 지위로 다가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세였으며,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15년 정도 전만 해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저부가가치 단순조립 제조업에서의 현상이지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제조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전개됐다. 5년 전 바이든 정권이 임기 초에 친환경 산업을 강조하고 나섰을 때에는 중국이 추격할 수 없으리라고 예상된 이 분야에서 격차를 벌이기 위해서였지만, 불과 2~3년 만에 중국산 배터리와 전기차가 세계 시장을 사실상 석권해 버렸다. 바이든 정권이 임기 후반부에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첨단 칩의 중국수출을 제한했지만, 중국은 딥시크 충격을 안겼고 이제는 중국의 독자적인 인공지능 칩 개발 가능성에 안달이 난 엔비디아가 중국수출 제한을 풀어달라고 전방위 로비에 나서는 상황이 됐다. 2025년 트럼프의 관세 공격 또한 중국의 희토류 반격으로 무력화됐다. 미・중 패권대결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가 사실상 승리를 굳혀가고 있다. 2024년 중국의 GDP는 18.74조 달러로 미국의 28.75조 달러 대비 65.2%를 기록했다. 명목 GDP만 보면, 2021년 77.1%까지 근접했던 중국의 GDP가 미국의 반격으로 상당히 뒷걸음질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구매력 평가 GDP(PPP) 비교는 상당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PPP 기준으로 중국은 이미 2014년에 미국을 추월했고 이후 격차를 꾸준히 벌이면서 2024년에는 미국 대비 130.9%를 기록했다. 2021년 이후를 보더라도 124.3%, 125.1%, 128.1%로 계속해서 중국과 미국 간의 격차가 확대돼 왔다. 오늘날 중국이 첫 번째 교역파트너인 국가는 세계 190개 국가 가운데 120~130개 국가에 이른다. 반면 미국은 30개 국가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의 눈부신 성장과 달리, 미국은 쇠퇴를 거듭해 왔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제조업 역량의 심각한 후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재래식 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열악한 산업역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를테면 미국이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포탄의 양은 우크라이나의 두 달 소모량을 다 충당할 수 없는 정도였다. 국가부채가 GDP의 125%에 이르러 매년 그 이자비용만 국방비에 맞먹을 정도가 됐다는 점도 미국의 쇠퇴를 상징하는 하나의 창이다. 매년 미국 재정적자의 절반가량은 (대중의 최소생활과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지원과 생활지원 비용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로 삭감당한 임금만큼 자본이 획득하는 초과이윤을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여 뒷받침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매우 퇴행적인 이 구조는 계급역관계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즉 급격한 임금상승이나 혹독한 복지중단 없이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국의 국가부채는 당분간 끝없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21세기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두 개의 큰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다는 사실, 특히 친미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장기간의 시도가 모두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도 미국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미국이 미·중 패권대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틈을 타서 여러 지역적 군사강국들이 자신의 팽창 야망을 하나둘 행동에 옮기는 상황도 미국의 정치군사적 패권을 상당 수준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 미국의 그러한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힘과 압도적인 군사력이다. 중국은 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추월했거나 대등한 지위에 올라섰지만,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이 두 핵심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상당히 열등한 위치에 있다. 미국 연준(Fed)은 매년 ‘국제통화사용지수’를 계산해 발표하는데,[4] 아래 도표는 2001~2024년의 추이를 보여준다. 그 시간 동안 중국이 산업적 역량, GDP, 세계 교역 비중 등에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온 것과 매우 다르게,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여전히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대표하는 것은 군사비 지출과 핵무기 보유량이다. 중국은 최근 매년 7%대의 높은 증가율로 군사비를 증액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숨겨진 군사비를 더하면 중국의 군사비가 5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여전히 미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중 패권대결의 현재 지점은, 여러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고 심지어 추월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달러 패권과 군사 패권이라는 결정적인 양 측면에서 미국이 분명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 세계패권의 도전자로 부상하면서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상당 부분 상실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현재 지점에서 미국이 가진 우위는 매우 불안한 것이다. 첫째,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던 소련이나 일본이 경제력이나 군사력 가운데 하나에서 결정적 결함을 가졌던 것과 달리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탄탄한 토대를 갖고 있어서다. 둘째, 중국의 상승세와 미국의 하락세가 당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 트럼프 정권의 미·중 패권대결 대응 전략과 베네수엘라 침공 1) 2025년 12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의 요지 2025년 12월 5일 트럼프 정권은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공개했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 정권의 기본 방향을 보여주지만, 몇 군데에서 혼선을 유발하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인 마가(MAGA) 세력을 고려한 문학적 수사들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정권의 중요한 전략적 의도 때문이다.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혼선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질서 전체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 “패권은 원해선 안 되는 일이었고 달성할 수도 없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은 전 세계에 대한 영구적인 미국 지배가 우리 국가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스스로 확신했다.” “엘리트들은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거대한 복지-규제-행정 국가와 거대한 군사·외교·정보·대외원조 복합체를 동시에 유지할 자금을 댈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우리 엘리트들은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했다.” 또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중국에 대한 표현들이 이전보다 완화됐다. 2022년에 바이든 정권이 내놓았던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가장 중대한 장기적·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중 패권대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그런데 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비서반구 경쟁국’이나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국가’ 같은 모호한 표현들을 갖고 중국을 지칭했다. 한편 새 국가안보전략은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회복’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다. 이 또한 바이든 정권의 2022년 국가안보전략이 미·중 패권대결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첨단기술·공급망 분리’,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통한 압박’ 등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던 것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트럼프 정권이 내놓은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 일부에서는 이를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중대한 변화로 해석한다.[5] 이들은 미국이 새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더 이상 패권국이 아님을 스스로 공식 확인’했다고 본다. 이들에게 새 국가안보전략은 ‘미 제국주의 대외정책의 극적 반전을 대표’하고 ‘세계 패권국 지위를 방어하려는 시도의 종언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들은 트럼프 정권의 정책이 ‘주요 적대국(중국·러시아)과의 대결에서는 후퇴하고, 대신 서반구의 약한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약탈, 지배하려는 시도’로 특징지어진다고 본다. 트럼프가 미국의 쇠퇴를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스스로에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포기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패권대결로부터 전혀 물러서지 않았고 물러설 수도 없다. 그 이유와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 자본주의는 달러 패권에 기초해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은 미국이 달러의 무제한 발행을 통해 자신의 경제위기를 전 세계로 전가할 수 있는 기반이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를 끝없이 늘려갈 수 있는 것도 달러 패권 덕분이다. 만일, 달러 패권이 붕괴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인데, 이는 (대중의 최소생활과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지원과 생활지원, (압도적인 군사력 유지를 위한) 국방비 지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경제위기와 계급투쟁의 폭발을 뜻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우위의 조속한 붕괴를 뜻할 것이다. 달러 패권의 붕괴는 사실상 미국의 전면적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달러 패권을 사수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달러 패권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더 이상 미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압도적인 군사력이며, (달러 패권과 군사 패권에 기초한) 세계 패권국 지위다. 오늘날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서 달러 패권을 사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째, 미국과 중국이 서로 세력권을 인정하며 세계를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서방과 동방이라는 각자의 세력권을 이끌며 40년 이상 세계를 분할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미국과 소련이 세력권 분할을 합의하고 그에 따라 상대의 세력권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세력권을 구축해 갔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이끈 서방과 동방은 경제적으로도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중 패권대결은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하나로 통합시킨 세계화의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서 보자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를 포기할 수 없고 미국은 동아시아를 포기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첨단기술과 공급망의 분리가 진전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세력권 분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다. 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을 경과하지 않는 한, 세력권 분할은 가능하지 않다. 세력권 분할이 가능하지 않다면,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향한 사활적 대결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세계 패권의 사수가 필수적인 것만큼, 중국 자본주의의 활로를 위해서는 세계 패권의 쟁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트럼프 정권의 행동은 중국과의 패권대결로 명확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대결에 대한 트럼프의 속마음은 ‘중국과의 패권대결이 미국의 최우선 안보사안’이라는 지론으로 유명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를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이라는 핵심 요직에 중용한 데서 잘 드러난다. 트럼프 1기 정권 때도 국방부 차관보로 일하면서 2017~18년 미국 국가안보전략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콜비는 2021년 자신의 저서에서 ‘경쟁자인 중국에게 패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미국의 모든 국력을 동원해 저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전략의 하위문서로 2026년 1월 23일 발표된 미국 국방부의 ‘2026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은 이러한 방향을 보다 분명히 보여준다. 새 국가방위전략은 중국을 “19세기 이후 미국이 직면한 가장 강력한 경쟁국가”로 규정했다. 또한 ‘한국이 북한 억지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에 그쳐야 한다’고 전략적 방향전환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전환이 ‘미국의 국방 우선순위와도 더 잘 부합’한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주된 임무를 중국 견제에 두고 대만 유사시 곧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넷째, 미국이 서반구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중국과 사이좋게 세력권을 분할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장 유리한 지역에서부터 중국을 위축시키면서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을 준비하겠다는 전략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와 직결되는 만큼 자세히 살펴보자. 2)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둔다는 의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서반구의 남쪽에는 라틴아메리카(중남미)가 있고, 북쪽에는 캐나다와 그린란드가 있다. 미국의 서반구 집중 전략에서 중국과 관련된 부분은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한다. 나토에 속한 캐나다와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관련지어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라틴아메리카를 살펴보자. 흔히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라틴아메리카는 오랜 시간 미국에 종속되어 제국주의적 수탈을 당해왔다. 특히 1980~90년대 미국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전면화할 때, 라틴아메리카는 외채위기, IMF 구조조정, 시장개방, 민영화, 노동유연화, 긴축의 과정을 밟아가며 미국 자본들에게 철저히 수탈당했다. 대륙 전반에 만연한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 심화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중남미 각국에서 연성 좌파 정권들이 줄줄이 정권을 잡는 ‘핑크타이드’를 만들어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등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진보’ 정권들은 때마침 진행된 중국의 경제적 급부상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원유·원자재·식량 등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을 중국이 엄청난 규모로 수입해 간 덕분에 경제적 숨통을 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중남미 각국의 경제도 악화됐다. 2010년대 중후반 중남미 ‘진보’ 정권들은 위기를 맞았고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같은 극우세력이 부상했다. 트럼프와 긴밀히 연결된 중남미 극우세력들의 핵심 정책은 노동유연화·민영화 등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는 ‘강화된 신자유주의·긴축’과 ‘저항의 범죄화’였다. 물론 극우세력들은 다시 대중의 반발에 부딪쳤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중남미 각국에서는 미국과 비슷하게 ‘진보’ 정권과 극우세력 간의 정권 주고받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제적 기반과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왔다. 중국은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에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교역파트너로 부상했다. 중국은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8%를 보유한 ‘리튬 삼각지대’(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에 2018년 이후 160억 달러를 투자해 수십 개의 광산·채굴 프로젝트를 확보했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2018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전력 부문에 공격적으로 진출하여 칠레와 페루에서 절반 이상의 전력을 통제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도 325억 달러를 투자해 6천만 명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의 화웨이는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통신 인프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페루의 찬카이 항구를 건설한 뒤 이를 브라질과 철도로 연결해 태평양-대서양 회랑을 구축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앞마당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경제적 기반과 영향력이 점증하는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을 최대한 위축시킨 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갖겠다는 것이다. 셋째, 다분히 경제적 성격을 가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경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방식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서반구 집중 전략의 중요한 특징으로, 미국과 중국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철저히 타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 역량이 심각하게 쇠퇴한 미국은 경제적인 방식의 경쟁을 통해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반면 군사적인 견지에서 보았을 때 라틴아메리카는 중국에게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아직까지 중국의 군사력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군을 격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지구 정반대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의 힘을 쓸 수가 없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또한 미국이 오랜 시간 라틴아메리카에서 행사하고 구축해 온 정치적 영향력에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트럼프는 최근 중남미 각국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에콰도르의 노바아, 칠레의 카스트, 온두라스의 아스푸라 등으로 이어지는 친미 극우정권 연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미국은 친중 ‘진보’ 정권을 하나씩 군사력으로 (또는 관세공격으로) 타격하는 한편 친미 극우정권을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지원·육성함으로써 중남미 각국을 친미·반중 정권으로 채워내려 한다. 트럼프 입장에서 친미·반중 정권들의 핵심 과제는 중국과의 추가 경제협력을 중단하거나 계약을 파기한 뒤 중국 기업 대신 미국 기업들에게 자원과 인프라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주는 게 될 것이다. 가장 유리한 곳에서부터 승리를 거둔 뒤 이를 요새화하여 결정적인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군사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법이다. 트럼프 정권이 미·중 패권대결이라는 큰 전쟁 속에서 일단 서반구(라틴아메리카)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전법을 쓰려는 것이다. 3)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 1999~2013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은 라틴아메리카 핑크타이드의 중심에 있었다. 차베스는 1989년 수도 카라카스의 반신자유주의 빈민 봉기로부터 성장해 나간 대중운동의 물결을 타고 1998년 선거로 집권했다. 2002년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대규모 군중시위에 힘입어 권좌에 복귀했다. 2004년 불신임 국민투표에서도 승리했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야심찬 기치를 내건 차베스 정권은 석유·철강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빈민에게 주택·교육·의료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주민 과반수의 탄탄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강력한 반제국주의 수사를 사용하면서, 미국 제국주의와 공공연한 마찰을 이어갔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은 실제로는 베네수엘라의 종속적인 자본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국유화는 일부에 그쳤고, 대다수 기업들의 소유권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국유화 방식도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유상 국유화였다. 외채 상환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윤의 해외반출을 허용했다. 거대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세금이 면제됐고 막대한 광물자원이 제공됐다. 차베스 정권은 전통적인 자본가계급과 차베스주의를 내건 신흥 자본가계급 모두의 이익을 수호했다. 차베스 정권 아래서 권력은 차베스 개인에게 집중되었고, 통합사회당이라는 단일 정당과 차베스를 추종하는 군부가 국가를 통제했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대중은 실질적인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다. 차베스주의로 포섭되지 않은 혁명적 좌파는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부유층만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한 반민주적인 선거법 때문에 혁명적 좌파는 발언권을 봉쇄당했고 부유한 우파가 차베스 반대진영을 독점했다. 차베스 정권은 핑크타이드에 함께 한 ‘진보’ 정권들 가운데 가장 왼쪽에 있었지만, 이 같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차베스 정권의 본질적 한계는 2013년 차베스 사망 이후 권력을 이어받은 마두로 정권에서 폭발했다. 마두로 정권이 들어설 무렵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특히 중국 성장세의 둔화 때문에 원유·원자재 가격이 급락했다. 국가 경제의 압도적인 부분을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고 있던 베네수엘라는 큰 타격을 받았다. 화폐가치와 가격통제 붕괴로 물가가 하늘 높이 뛰는 상황에서 임금삭감과 연금삭감이 강요됐다. 대중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충족되지 않자 주민의 25%에 해당하는 700만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만성적인 물자부족, 의료진 유출, 인프라 파괴, 정전 등으로 의료 시스템도 붕괴했다. 그런 와중에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를 타개하겠다며 특별경제구역을 설치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동법을 무력화했다. 차베스 정권이 과반수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가졌던 것과 달리 마두로 정권은 점점 더 선거부정에 의지했다. 2018년 대선에서는 주요 야권 후보들의 출마가 금지됐다. 2024년 대선에서는 광범한 개표 조작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나 전국적으로 대규모 항의시위가 발생했는데, 특히 과거 차베스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던 카라카스의 노동자·빈민 거주지에서 큰 시위가 발생했다. 마두로 정권은 준군사단체 콜렉티보스와 협력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2천여 명을 체포했다. 한편 2019년 트럼프 1기 정권은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과이도의 쿠데타 시도를 지원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광범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막히자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바이든 정권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다. 2024년 바이든 정권은 베네수엘라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야당 후보를 당선자로 인정했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권은 초반부터 마두로 정권을 부정하며 베네수엘라 침공을 준비했다. 그리고 2026년 1월 2~3일 베네수엘라 침공 작전이 전격 전개됐다. 트럼프 정권이 베네수엘라를 전격 침공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두겠다는 국가안보전략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관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수출되는 원유의 80%를 국제시세보다 50%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받아 왔는데, 이는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 600억 달러를 원유로 대환받는 과정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 공급받아 온 원유는 중국이 사용하는 전체 원유의 6~7%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이후 미국은 카리브 해상에서 베네수엘라를 드나드는 유조선을 계속 나포하면서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1월 20일까지 총 7척의 유조선이 미군에게 나포됐다. 한편 마두로 납치 이후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로부터 최대 5천만 배럴(28억 달러 어치)의 원유를 인도받아 대신 판매한 뒤 그 수익금의 일부를 베네수엘라에게 줄 것인데, 베네수엘라는 이 수익금으로 미국산 상품만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을 승계한 로드리게스 정권은 1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원유판매대금 5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를 첫 번째 분할금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정권이 트럼프의 요구대로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통제권을 미국에게 넘긴 것이다. 둘째,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3,030억 배럴)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가 미국 수중으로 들어가면 미국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30%를 통제하게 된다. 이것은 국제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데, 그리고 ‘페트로-달러’ 체제를 방어하여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정권의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인 1월 4일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미국의 적대국들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운영되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이었다. 지금도 중국의 기술자들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인프라를 유지·보수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자들을 몰아내고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장악하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에서 원유생산을 크게 늘리려면 ‘1천억 달러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통제한다는 것과 그것을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안정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속국으로 만들려 한다. 미국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여 속국으로 만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됐던 방식, 다시 말해 이른바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해서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국가건설’ 프로젝트와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 마두로를 납치한 직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서 친미 야권을 대표해 온 마차도 대신 마두로의 부통령 로드리게스를 베네수엘라의 통치자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의지를 거역한다면 마두로보다 더 험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위협과 함께, 자신의 요구를 순순히 따른다면 정권의 안위를 보장할 것이라는 신호도 보냈다. 초기에 혼란스런 메시지를 내던 로드리게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에게 확실히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5일 마차도가 워싱턴에서 트럼프를 만나 노벨평화상을 헌납하던 날, 로드리게스는 카라카스에서 미국 CIA 국장을 만났다. 같은 날 로드리게스는 의회에서 첫 국정연설을 하면서 석유산업 국유화를 되돌리기 위한 탄화수소법(석유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석유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투자유치, 기업에 유전운영 자율권 부여, 판매수익 배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29일 통과되었다. 트럼프 자신이 비난해 왔던 ‘국가건설’ 프로젝트 대신 기존 지배세력을 굴복시켜 베네수엘라를 속국으로 만든다는 트럼프의 구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지배세력의 실체를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 위에 군림하는 억압적 세력이라는 점, 제국주의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순순히 굴복할 세력이라는 점, 그렇게 주종관계가 설정되고 나면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하수인으로서 노동자·민중을 효과적으로 억압할 세력이라는 점 말이다. 넷째,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중국의 군사적 열세를 실제 이상으로 극대화하여 드러냄으로써 미국의 패권적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침공 과정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했다. 특히 중국제·러시아제 방공망을 철저히 무력화함으로써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중국·러시아에 대해서도 군사적 우위에 있음을 과시했다. 물론 이것은 라틴아메리카라는 미국에게 매우 유리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로서 실제 격차보다 다분히 과장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극우정권들이 공개적으로 환호를 보낸 것과 달리, 브라질의 룰라나 멕시코의 셰인바움 같은 ‘진보’ 정권들은 잔뜩 움츠러든 채 모호하고 추상적인 원론적 입장만을 내놓았다. 미국은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을 통해 향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정치군사적 행동과 위협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4. 미·중 패권대결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1) 미 국가안보전략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 동맹 질서의 재편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에는 트럼프 정권의 중요한 의도가 하나 담겨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중국 편에서 떼어내고 나아가 미국 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푸틴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새 국가안보전략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다극 세계질서를 인정하면서 서반구에 집중할 것’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쓰인 것은, 한편으로 마가(MAGA) 세력을 고려한 산물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극 세계질서’라는 푸틴의 슬로건에 공명하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러시아를 미국의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은 대신, 유럽연합이 미국의 분쟁 종식 노력을 방해했다고 규탄했으며, 유럽이 ‘문명의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나토가 영구적으로 확장되는 동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겠다’면서 러시아의 핵심 요구를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사실 트럼프는 러시아를 끌어당김으로써 미·중 패권대결의 판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를 두 번째 취임 직후부터 드러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태도 또한 바로 이러한 의도에 의해 규정돼 왔다. 이에 대해 푸틴은 외견상으로는 트럼프의 유혹을 뿌리치며 중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이 러시아에게 어떤 대가를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할 용의가 있다는 점 또한 굳이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국의 하위 동맹자가 된다는 것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경제적 측면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역사적 맥락과 군사적 역량이란 측면에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가 푸틴에게 한걸음 더 적극적으로 추파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푸틴 정권은 국가안보전략이 공개된 직후 ‘러시아의 미래 비전과 부합’한다고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공동주범인 트럼프가 제안한 가자 지구 ‘평화위원회’ 참여도 수락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것은 러시아의 선택이 미·중 패권대결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가 미국 편으로 붙는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인도 또한 러시아를 따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거 고립된 소련을 몰락시켰던 것처럼 고립된 중국을 밀어붙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의도가 실제 성공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과정에서 푸틴에게 큰 선물을 안겨줘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반발을 잠재우는 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이 말하듯, 러시아의 손을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적극적 반대로 계속 좌절돼 왔다. 유럽은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다면 그 파장이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고 구 소련권 또는 심지어 구 동구권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착된 형세를 돌파하기 위해, 트럼프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극우정권 연대와 비슷하게 유럽에서도 극우세력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국가안보전략에서 밝혔다. 이를테면 “친미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자주성과 전통적 유럽 생활방식의 보존·복원을 추구하는 정당과 운동, 지식인 및 문화계 인사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극우정권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강한 주종관계로 묶여 있는 것과 달리 유럽의 극우세력들은 트럼프에게 별로 의존적이지 않은데다가 스펙트럼도 훨씬 넓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향한 트럼프의 영토 팽창 야욕은 자신의 동맹 질서 재편 구상을 훨씬 더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 기세를 몰아 그린란드에 군사력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유럽 8개국에 관세 부과를 위협하며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관철하려고 해 보았지만, 유럽의 반발과 금융시장이 보내는 위험신호 앞에서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도를 넘은’ 탐욕에, 유럽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극우세력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4년 11월 트럼프의 선거 승리를 크게 반겼던 유럽 극우세력들은 트럼프가 2025년 일방적 관세 부과와 방위비 지출 압박에 이어 2026년 베네수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병합 시도까지 나서자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라틴아메리카의 극우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적극 지지하고 환호한 것과 달리 유럽의 극우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의사에 적극 반발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미국의 종속국이 아니라 (비록 열세에 있을지라도)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극우세력은 유럽연합·유엔 등이 자국의 이민·경제정책 등에 개입하는 것을 ‘주권침해’라고 반대하는 ‘고립주의’에 입각해 세력을 확장해 왔기 때문에, 트럼프의 노골적인 주권침해에 반발하는 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만일 트럼프가 그린란드 병합을 계속 추진한다면 트럼프와 유럽 극우 사이의 균열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서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극우들은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러시아 끌어당기기 카드는 그 자체로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트럼프 자신의 영토팽창 야욕까지 뒤섞이면서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만일 트럼프가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일을 밀어붙인다면, 미국이 러시아를 얻는 과정은 동시에 유럽을 잃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 대신 유럽을 동맹으로 얻을 수 있다면 꼭 손해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사태전개의 가능성은 역으로 트럼프가 러시아 끌어당기기 카드를 계속 추진할 동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2) 미·중 패권대결의 최후 해결책: 군사적 정면대결 미국과 중국을 각각 중심에 둔 동맹 질서가 어느 한편으로 크게 기울면서 한쪽이 심각하게 고립당하는 길로 가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은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정면대결을 통해서 패권의 향방을 결판 짓는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며,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물론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투쟁이 그러한 군사적 정면대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군사적 정면대결이 펼쳐진다면 그 핵심 전장은 어디가 될까? 그것은 단연 동아시아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지역이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이 지역은 미국의 해양세력과 중국의 대륙세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팽팽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동맹으로 이끌고 있고,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동맹으로 이끌고 있다. 둘째, 중국은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분쇄하고 미군을 서태평양 동쪽으로 몰아낸 뒤 중국 근해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의 수립을 전략적 목표로 갖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목표는 이미 2013년 시진핑이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국무장관에게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하기에 충분히 넓다”며 태평양 양분론을 제기했을 때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이것은 일본·한국·대만 등의 동아시아와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전반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6만 4천여 명의 미군을 배치하고 있고, 대만에 점점 더 많은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서태평양부터 대만해협까지 대규모의 해군 전력을 상시 가동하고 있다. 셋째, 오늘날 중국・일본・한국・대만을 포괄하는 동아시아는 세계 자동차 생산의 43%, 반도체 생산의 75%, 선박 건조의 95%를 차지하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 자본주의의 향방을 결정할 만한 위치에 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패권을 수립한다면,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능가하는 최고의 패권국으로 올라설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중국의 야망을 좌절시킨다면,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유일 패권을 다시 한 번 확립하게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정면대결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그 전쟁은 어떤 양상을 띨까? 첫째, 그 전쟁은 (인류의 공멸로 가지 않을 것이라면) 핵 전쟁이 아닌 재래식 전쟁으로 전개되겠지만, 대신 사상 최대 규모의 파괴력을 동원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2025년 기준 미국·일본·한국 동맹이 가진 병력 수는 총 205만(135만+25만+45만)이고, 중국·러시아·북한이 가진 병력 수는 총 470만(200만+150만+120만)이다. 여기에는 세계 5대 군사강국 가운데 4개국이 포함돼 있으며, 전통적인 군사장비부터 첨단기술 군사장비까지 중무장한 군대들과 산업적 역량들이 포괄돼 있다. 둘째, 그 전쟁은 아마도 대만이나 한반도를 둘러싸고 시작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어디서 시작되든 빠른 속도로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전체를 포괄하는 전쟁으로 확산될 것이다. 육지에서는 중국의 동부연안, 북한, 러시아 극동지역, 대만, 한국, 일본이 모두 전장이 될 것이고, 해양에서는 중국 근해부터 서태평양에 걸친 영역이 모두 전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정면대결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본다면, 다행히 10년 이상의 시간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필수적인 군사적 준비를 위해 최소한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준비가 끝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대량 파괴와 살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결전을 최종 선택하기까지는 아마도 또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정면대결이 시작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5~20년 뒤, 다시 말해 2040년대의 어느 시점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은 각각 어떤 군사적 준비가 필수적인 상황인 것일까? 먼저 중국은 무엇보다 핵무장을 강화해서 핵전쟁을 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핵균형(상호확증파괴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최근 중국은 매년 핵무기를 100기씩 추가하면서 2025년 기준 6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현 속도라면 10년 뒤에는 대략 1,500기의 핵무기를 갖추게 된다. 이는 미국의 전체 핵무기 수에 비하자면 여전히 절반에 훨씬 못 미치지만 미국이 오랜 시간 유지하고 있는 실전배치 핵무기 수와는 거의 비슷하게 된다. 항공모함 전력을 따라잡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은 2035년까지 항공모함 6척을 추가 건조해 9척을 운용할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11척을 운용하는 미국에 버금가게 된다. 미국은 무엇보다 재래식 전쟁을 뒷받침할 제조업과 해군력을 뒷받침할 조선업을 재건해야 한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벌어질 전쟁에서 해군력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감안할 때 미국과 중국 사이의 조선업 격차는 미국의 큰 약점이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 조선업의 5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0.1%만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총톤수보다 많은 톤수를 중국의 한 조선소가 1년 만에 건조해 낸다. 2025년 현재 중국과 미국의 해군함정 수는 370척 대 297척인데, 당분간 격차가 더 벌어질 상황이다. 중국의 첨단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15~20년 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정면대결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은 과도한 예단이 아니냐는 반론이 예상된다. 현실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법인데 시기까지 특정해 가면서 그렇게 전망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실제로 현실은 앞에 얘기한 전망과는 꽤 다른 그림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전망을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이 갖는 결정적인 유익함이 있다. 꼭 그런 전망대로는 아닐지라도 대략 유사한 형태의 세계사적 격변과 도전이 우리 앞에 가까이 있음을, 따라서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운동을 각국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 시급히 건설해 나가야 할 중차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학살, 베네수엘라 침공, 그린란드 병합 시도 같은 사건들이 그저 머나먼 나라의 역사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상대적으로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핵폭풍의 전조로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러한 해석에 기초해 노동자계급의 실천적 대응능력을 비상하게 발전시켜 가는가 여부는 머지않은 미래에 엄청난 차이로 돌아올 것이다. 20세기의 첫 15년 동안 독일과 러시아에서 펼쳐졌던 운동의 차이가 마침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엄청난 차이로 돌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5. 실천 방향과 과제 자본주의가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다운 모습을 점점 더 분명히 드러내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운동을 각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건설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과제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을 살펴본 오늘, 우리의 실천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겠다. 첫째, 전 세계 노동자·민중과 함께 한국의 노동자·민중 또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갖는 부당함을 규탄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이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 노동자·민중만의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끝내는 전 세계를, 그리고 특히 이곳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끔찍한 참화와 학살로 끌고 들어갈 제국주의 전쟁기계가 작동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맞서 싸우는 것은 미래에 바로 우리에게 닥쳐올 훨씬 더 끔찍한 전쟁과 학살을 저지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둘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국제연대는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면서 허구적인 반제국주의 깃발을 휘날리는 반동적 정권들과 철저히 독립된,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운동으로서 전개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반동적인 성격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의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는 데서 결정적인 방해물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와 같은 반동적 정권들의 역할에 대한 일체의 환상과 결별할 때에만, 노동자·민중의 반제국주의 운동은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셋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하는 투쟁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큰 흐름의 일부가 돼야 하며, 특히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국제연대 운동과 결합돼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가자 집단학살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에서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온건한 BDS 운동에서부터 격렬한 가두시위, 점거, 수무드 선단까지, 나아가 학살지원을 직접 중단시키기 위한 총파업까지 다양한 투쟁수단을 발전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축해 왔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규탄 투쟁을 팔레스타인 연대운동과 결합시키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넷째,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은, 특히 이곳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패권대결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군사적 정면대결로 나아가는 고리를 끊기 위한 노동자·민중의 국제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길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획기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와 북한의 핵무장 해제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의 간섭과 침략을 거부하는 대만의 평화적인 자주독립, 따라서 친미 또는 친중 자본가계급이 아닌 노동자·민중 권력에 의한 대만의 자주독립을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중 패권대결이 종국에는 군사적 정면대결이라는 끔찍한 참화와 집단학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폭로하고 경고하면서 그러한 제국주의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저지해 낼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반제반전 운동을 한국·일본·미국·중국·대만·북한·러시아에서부터 나아가 전 세계에서 건설해 나가야 한다. (끝) [1] 박민희, <한겨레신문>, 2026/01/07, ‘중국특사 만난 뒤 붙잡혀간 마두로...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2] 2024년 중국 전체 14억 인구의 1인당 GDP는 13,317달러였다. [3] 안드레 바비에리 & 에스테반 메르카탄테, 2025,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중국」 [4] 연준의 국제통화사용지수(Index of international currency usage)는 세계적으로 공개된 외환 보유고(25%), 외환 거래량(25%), 외화 채권 발행(25%), 외화 및 국제 은행권 채권(12.5%), 외화 및 국제 은행권 부채(12.5%)에서 각 통화가 사용되는 비중을 가중 평균한 값이다. [5] 미하일 프뢰브스팅, 2025/12/11, 「트럼프의 새 국가안보전략: 미 제국주의의 다극세계 전략 제시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2026-01-31 | 조회 11,188 -
[번역] 미니애폴리스의 분노와 조직화: 역사적 봉기의 연대기Left Voice는 ICE(이민세관단속국)가 지역사회를 휩쓴 잔혹한 공격에 맞선 시위가 벌어진 이틀간 미니애폴리스 현장에 있었다.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장을 예고할 수 있다. 글쓴이: Lila Walters 2026년 1월 26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미네소타 주민들은 한 달 넘게 트윈 시티에서 ICE(이민세관단속국)를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메트로 서지 작전(Operation Metro Surge)"을 승인하고 수천 명의 연방 요원을 거리에 풀어 이민자와 그 지역사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사람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의 경험을 참고해 동네 안에서 조직을 꾸려 순찰대를 만들고 ICE 요원을 식별해 미행했다. 또한 자신들의 권리와 이민자 이웃의 권리를 외우고, 등굣길이나 교회 가는 길에 ICE의 납치를 두려워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했다. 이는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당시 국가 탄압의 잔혹함을 직접 겪었던 활동가들부터,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및 소위 "피난처 도시”를 향한 공격으로 처음 정치화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역 수백 명의 일상이 되었다. 한편, ICE의 전술은 더 고조되었다.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유색인종을 표적으로 삼고, 사복을 입고, 아이들을 미끼로 부모를 납치하며, 항의하거나 만행을 기록하려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했다. ICE와 연방 요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명시적인 승인 아래 점점 더 잔인하게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와중에도, 각계각층의 미네소타 사람들은 이웃, 동료, 학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미 ICE에 끌려간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거듭 적응해 왔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ICE 요원들의 미행을 막기 위해 등하교를 함께 하고, 사람들은 매일 요원들이 배치된 건물 앞에 모여 시위하였다. 사람들은 ICE요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 소음 발생기와 심지어 밴드까지 동원해 요원들이 잠들지 못하도록 몇 시간씩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역 상점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보급품 분배 센터로 바꾸었고, ICE 목격 정보를 알리는 네트워크는 더 조직화되고 확장되어, ICE 요원이 등장한 현장에 몇 분 안에 사람들을 조직해 보낼 준비를 갖췄다.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 모든 활동이 목숨을 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ICE는 거리를 떠나지 않았고, 요원들은 더욱 대담해지기만 했다. 르네 니콜 굿(Renee Nicole Good)이 대낮에 살해당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수백 명의 연방 요원을 추가로 모집해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대를 "내부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행정부는 굿을 살해한 요원을 포함해 ICE 요원들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했다. 트럼프 관리들은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가 살해된 후에도 거짓말을 퍼뜨리며 연방 요원들을 "피해자"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은 투쟁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역 종교 지도자, NGO, 영향력 있는 노조들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는 도시 전역 경제의 정지를 호소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수십 개의 노조와 사회·정치 단체들이 이 호소에 지지를 보냈으며 미네소타 사람들은 응답했다. 일도, 학교도, 쇼핑도 멈추다 1월 23일, 이 지역 전역에서 700개가 넘는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도시 곳곳의 상점 창문에는 표지판이 걸렸다. - 우리는 이웃과 연대하여 문을 닫습니다. - 우리는 ICE를 제외한 모두를 환영합니다. - ICE는 미니애폴리스를 떠나라. - 1월 23일 — 일도, 학교도, 쇼핑도 없음. 한편, 홀푸드(Whole Foods market)와 타겟(Target) 같은 대형 체인의 네온사인만이 텅 빈 거리와 닫힌 상점을 비추며 그들이 누구 편인지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를 행진하며, 단순히 도시 내 ICE의 공격을 끝내는 것을 넘어 ICE 자체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민자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행진했다. 원주민 공동체도 함께 행진했다. 날씨 탓에 휴교령이 내려져 파업 계획이 연기된 학생과 교사들은 제자와 학우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대규모 노 킹스(No Kings) 행진의 정서를 반영하듯, 시위대는 트럼프, 공화당, 기성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그들은 엡스타인 스캔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격, 행정부의 민주적 권리 유린을 규탄했다. 미국 노동계급에는 낯선 경험이지만, 다양한 부문의 수만 명이 금요일 출근을 거부했다. 일부는 병가를 냈고, 일부는 동료들과 직접 조직해 작업을 중단하고 결집했다. 한 미국통신노조(CWA,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지부에서는 노동자의 86%가 금요일 근무를 거부했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6개 매장(노조가 있는 4개 지점과 없는 2개 지점)에서 일손을 놓고 매장을 폐쇄시켰다. 운수 노동자, 교사, 공항 노동자, 간호사, 서비스 노동자 등 다른 노조원들도 겨울 점퍼에 노조 배지를 달고 추위를 막는 스카프에 노조 로고를 새긴 채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노조와 함께 왔든 아니든, 노동자들은 동료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타났다. 이 역사적인 행동은 노동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며 "한 명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인터뷰한 많은 사람은 금요일 셧다운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면서, "돈이 모든 걸 좌우한다 (money talks)"라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와 같은 업무를 멈춰 세운 노동계급의 단결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1월 23일 셧다운을 조직하고 참여한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계급 사이에서 커지는 정서를 상징한다. 노동자라는 우리의 위치가 조직하고, 단결하고, 계획하고,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반격할 수 있는 강력한 위치라는 정서 말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공허한 약속으로 끝나는 시위들에 실망해 사기 저하의 악순환에 빠지는 대신, 미네소타 사람들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바로 그 때문에 미니애폴리스의 호소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전국 여러 도시에서 받아들여졌다. 분노에서 조직화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제 셧다운에 참여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방 이민 경찰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거부당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또 다른 지역 주민을 총으로 쏘았다. ICE가 차 안에 있던 르네 굿을 쏜 지 불과 17일 만이었다. (2026년 1월 24일, 미니애폴리스에서 37세 미국인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Alex Jeffrey Pretti)가 거주지 인근에서 ICE 요원들에게 여러 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는 한 여성에 대한 단속 집행을 막기 위해 휴대폰으로 ICE 요원들을 촬영하고 있었고, ICE요원이 여성을 밀어 넘어뜨리자 이를 막아섰다. 6명의 ICE 요원들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를 넘어뜨렸고, 곧 이어 10발의 총을 쏘아 살해했다. - 편집자 주) 프레티가 살해당하는 잔혹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 피드와 단체 대화방에 돌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지역 주민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영하의 날씨에 ICE에 맞서 몇 주간 조직하며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추위를 막을 손난로와 비상 담요, 최루탄과 섬광탄을 막을 마스크와 고글, ICE 활동을 동료 시위대에게 알릴 호루라기를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나타났다. 이웃들은 연방 지원 병력을 태운 장갑차가 거리를 질주할 때 집 밖으로 나와 시위대를 안으로 불러들여 몸을 녹이게 하거나 최루가스를 씻어낼 물을 주었다. We’re on the ground in Minneapolis where CBP just killed a man, following a massive day of action against ICE. Protesters and militarized police are both flocking to the scene. Follow here for live updates: pic.twitter.com/GXJ7VvDeqK — Left Voice (@left_voice) January 24, 2026 국토안보부(DHS)가 프레티에 대해 퍼뜨린 거짓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수백 명의 사람이 총격 현장 주변 블록을 봉쇄하려는 연방 요원들과 대치했다. 요원들은 사람들이 모여 이웃을 애도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현장에서 연방 요원들을 몰아내기 위해 니콜렛 애비뉴(Nicollet Avenue)와 26번가로 모여들었다. 한편, 미니애폴리스 경찰(MPD)은 연방 요원들이 시위대를 구타하는 동안 교통정리만 하고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 평화와 질서를 호소하며 브라이언 오하라(Brian O’Hara) 경찰서장은 MPD가 연방 요원을 위한 지원 병력으로 파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트윈 시티 내 ICE의 존재를 비난하기는커녕, 미니애폴리스와 전 세계를 뒤흔든 경찰 폭력 반대 봉기(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맞서 일어났던 시위 – 편집자 주)가 있은 지 거의 5년이 지난 지금 MPD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 운동의 부활임을 분명히 했다. 2020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지역사회와 경찰 사이에는 불안한 평화가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 사람들의 얼굴에 최루탄을 쏘아댄 것이 경찰과 주 방위군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위대는 무장 요원들과 몇 시간 동안 대치하며 수백 개의 최루탄과 섬광탄을 피했고, 쓰레기 수거함과 쓰레기로 바리케이드를 쌓았지만 고무탄을 군중에게 직접 쏘는 요원들에 의해 즉시 무너졌다. 지역의 한 식당은 문을 열어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자발적인 의료소 역할을 했다. ICE가 블록을 따라 전진했지만, 가스가 걷히자 시위대는 결국 요원들을 물러서게 했다. 곧 장갑차 한 대가 최전선을 뚫으려 시도했고, 군중을 향해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FBI다. 즉시 해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위대는 대열을 지켰고 결국 차량은 방향을 돌려 떠났다. 다른 요원들도 곧 뒤따랐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블록을 되찾기 위해 달려갔다. 그들은 몇 주 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르네 굿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총에 맞은 자리에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들 중 다수가 매일 건너다니는 거리를 되찾기 위해 살인적인 ICE 요원들과 맞섰다. 토요일, 그들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스마트폰으로 목격한 것을 은폐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에 맞서 저항의 행위로서 이웃을 애도할 권리를 위해 싸웠다.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은 ICE에 진저리가 났다. 2020년 봉기 이후, 그들은 무장 병력이 도시를 통제하고 지역사회를 마음대로 테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에는 어느 이웃이 납치되거나 거리에서 살해될지 걱정하는 것에 지쳤다. 지난 이틀 동안 거리에 있었던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미네소타 사람들은 다른 누가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싸움이며, 그들은 ICE를 영원히 몰아내고 폐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의지가 있다. 그러한 깨달음과 함께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등장했고, 또 등장해야만 한다. ICE가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도시를 정지시키자 금요일의 경제 셧다운은 미네소타 사람들이 ICE와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전면 거부하고 국가에 의해 살해된 모든 이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고 도시 전역, 각자의 자리에서 단결한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준 맛보기였다. 그리고 금요일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토요일의 총격은 더 많은 사람을 투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고 ICE 폐지 요구가 미니애폴리스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그 요구를 지지한다고 답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운신 폭은 좁다. 한편 크리스티 놈(Kristi Noem)부터 그렉 보비노(Greg Bovino)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와 국토안보부는 지지 기반 사이에서 ICE(와 트럼프)의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붙들기 위해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애폴리스는 트럼프에 맞선 싸움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후퇴를 강제한다는 것은 미국과 해외에서 트럼프의 권위주의 정책에 맞선 전체 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파업"이라는 말이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네소타 대학교 학생회는 이미 1월 30일 2차 셧다운을 호소했다. 총파업은 도시 전체의 기능을 멈추는 것이다. 학교도, 대중교통도, 생산도 멈추고 지배계급을 위한 이윤도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몇 주간의 모든 노력을 이 단일한 목표로 통합하는 도시 전체의 주도성과 참여가 필요하다. 집 밖으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가족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하고 ICE 활동을 알리기 위해 순찰을 해온 동네 네트워크들(Neighborhood networks)은 놀라운 수준의 조직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금요일에 대거 결집했던 노동자 조직, 사회단체, 정치 조직들과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동될 수 있다. 지역사회 총회를 열어 다음 단계를 조직하고, 주민,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토론하며 도시를 마비시키는 진정한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노조와 노조 지도자들이 단순히 호소문에 지지 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파업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했다면 무엇이 가능했을지 상상해 보라. 파업을 파업이라 부르고,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일손을 놓고 조업을 중단하며, 대규모 대열을 지어 행진해 ICE에 맞서고 단 한 명의 지역 주민도 끌려가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 말이다. 이는 수천 명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파업에 동참해 거리에서 계급의 자매형제들과 단결할 힘을 줄 것이며, 지금까지 문을 열어둘 수 있었던 거대 기업들조차 문을 닫게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싸울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을 해방하려면, 조직된 노동자든 아니든 "파업 금지" 조항과 노동악법(anti-labor laws)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ICE를 몰아낸다는 것은 성명서와 비판만으로 미네소타 사람들의 분노를 이러한 억압 세력과 행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시위로 돌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노조 지도자들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수동성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 학교, 동네에서, 민주당도 주 방위군도 아닌 미네소타 사람들이 줄곧 그래왔듯이 투쟁의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이 투쟁은 미네소타주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요일은 트윈 시티만의 시위 날이 아니었다. 전국의 사람들이 미니애폴리스와 연대하여 결집했다. ICE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ICE를 막지 않으면 그들이 전국의 다른 도시들로 와서 똑같은 짓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니애폴리스의 노력은 전국의 적극적인 연대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맹 노조들은 중서부 노동자들의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자체적인 작업 거부, 파업, 피켓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 전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미니애폴리스 사태를 규탄하고 1월 23일 행동을 지지했다. 이제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모든 지부의 조합원들을 조직해 미니애폴리스를 지지하고, 향후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데 쓰일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에 맞설 권리를 옹호해야 할 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다음에 일어날 일은 전국과 전 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 도시에서 ICE를 영원히 몰아내는 것이 곧 이민자 및 전체 노동계급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 행정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2026-01-30 | 조회 9,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