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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4부(왼쪽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널드 레이건, 마가렛 대처 (사진출처: american prospect)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197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매우 심각하게 하락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반란을 잠재운 자본가계급은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한 묶음의 대책이 지난 40여 년의 세계를 지배했다. 1)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나아가 바닥까지 내려간 이윤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화, 복지축소, 노조무력화, 자본가감세, 규제완화, 기간산업사유화 등의 세부 정책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최대한 강화하고 자본가에게 온갖 특혜를 줌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 목표가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칠레 군사정권의 실험을 거쳐,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정권에 의해 본격화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은 특히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을 수반했는데, 이들은 흔히 노·사·정 협상에 입각해 신자유주의를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강제로 하락시키면서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8~2007년 미국 제조업의 시간당 산출량은 연 평균 3.26%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연 평균 0.37% 하락했다. 2007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74년 실질임금의 85%에 불과했다. 1972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160.7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시간당 실질임금은 24.28%만 상승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이윤율 회복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했다. 신자유주의 자체에 내장된 모순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힘입어 개별 기업이 이윤율을 회복할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고 따라서 사회 전체에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생산과잉은 구조적인 판매부진을 낳았고, 이는 이윤율 회복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했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결정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화와 금융화가 덧붙여졌다. ‘생산의 세계화’와 ‘시장의 세계화’가 결합된 세계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되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전면화했다. 세계 총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는 1985년 0.4%에서 2007년 5.3%로 늘어났다. 세계 총GDP 대비 수출은 1986년 16.9%에서 2008년 31.2%로 늘어났다. 특히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는 스탈린주의 진영을 소멸시키면서 세계를 단일 공급망과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생산의 거점 전체 또는 일부를,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찾아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이동시킨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저개발 국가를 향한 공장이동은 추가되는 물류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하락시켰다. 공장이동에 대한 협박은 선진국에서 노조를 무력화하고 후퇴를 강요하는 자본의 필살기가 되었다. 국가 간 무역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킨 ‘시장의 세계화’는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 확대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했다.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수입품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하락한 임금으로도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임금하락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세계적인 공장이동은 자본주의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서유럽·일본에 집중돼 있던 공장은 남미·동유럽·동아시아를 향해 빠져 나갔고 최종 귀착지로 중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금융자본은 본래 산업자본에 대한 대부나 주식투자를 통해 산업자본이 획득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나 배당의 형태로 나눠받음으로써 수익을 얻는 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지만, 사회의 유휴자본을 수집하여 산업자본에게 공급함으로써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이자나 배당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등한다면, 금융자본은 이자나 배당으로 얻는 수익보다 주식 매매차익을 통해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기적인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 상층까지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주가는 자연히 한동안 오르게 마련이다. 금융자본은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고금리 대출을 통해서도 별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실질가치를 크게 벗어난 주가는 언젠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로 큰손들은 폭락 이전에 이미 차익을 실현하고, 폭락에 따른 손실은 대부분 개미들에게 전가된다. 이와 같은 금융수탈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매우 큰 부작용이 있다. 주식가격이 폭락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그 충격으로 은행들까지 파산하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29년 10월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될 때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수습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금지였는데,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이 주식투자 같은 고위험 영역에 관여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대공황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런 규제는 1990년대 후반까지 60년 이상 계속됐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1999년에 대대적으로 풀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상업은행·보험사·투자은행 사이의 겸업금지 조항을 없애 버렸다. 대중들이 가진 소액의 자금조차도 최대한 투기적인 고위험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금융수탈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과정이 바로 금융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금융화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기게 됨으로써 잉여가치 생산을 통한 착취만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게 된 자본에게 금융수탈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을 보충해 주는 장치였다. 금융수탈은 주식 매매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여 다시 판매하는 기업 자체의 매매도 금융수탈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벌어졌는데, 여기서는 주택담보대출의 규모가 압도적인 만큼 그를 통한 금융기관의 수익도 훨씬 컸으며, 주택가격 폭등에 따라 임대료 상승으로 얻는 수익도 상당했다. 금융화가 확산되면서, 금융수탈의 영역은 외환시장, 원자재시장, 선물시장, 나중에는 암호화폐시장까지 끝없이 뻗어나갔다. 금융화는 금융부문을 비대하게 팽창시켰다. 2006년 세계 총GDP가 51.8조 달러일 때,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더한 규모가 119조 달러에 이르렀다. 2007년 금융화의 전위부대라 할 헤지펀드들이 운용하는 금액만 10.1조 달러였다. 영국에서는 2007년 제조업에 300만 명이 고용된 반면 금융부문에는 650만 명이 고용됐다. 미국에서는 GDP 대비 전체 금융기관 자산이 1985년 110.3%에서 2007년 224.2%로 치솟았다. 세계화와 금융화가 맞물린 결과, 미국에서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25.6%에서 2009년 11.2%로 축소된 반면, 은행·보험·증권·부동산·임대업을 합친 금융업의 비중은 1947년 10.5%에서 2009년 21.5%로 성장했다.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에서 헤매는 까닭에 쓸 만한 투자처를 쉽사리 찾지 못하던 자본은 가공할 수익률을 제공하는 금융부문에서 새로운 활기를 찾았다.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을 바탕으로 금융부문에서 투기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제조업마저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금융수탈을 향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지엠은 1990년대에 자회사 지맥을 통해 금융수탈에 동참했다가,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전체 이윤의 절반을 상회하자, 지맥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소형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멀쩡한 공장들을 폐쇄시켜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지맥의 파산은 2009년 지엠 전체의 파산으로 귀결됐다.) 금융수탈을 위해 주식·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막대한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시장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점점 더 많은 상품이 세계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세계시장의 중추인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공장이동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임금하락·고용감소로 소비능력이 오히려 점점 더 위축됐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유럽연합·일본을 포괄하는 선진국은 세계 인구의 17.9%이지만 세계 GDP의 57.9%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인구의 4.5%에 불과하지만 세계 GDP의 23.3%를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가 마비되지 않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으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위적인 소비 확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후반 주식거품과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거품을 국가가 은행을 매개해 막대한 신용대출로 뒷받침한 것은 그에 동승한 대중이 지갑을 열고 왕성한 소비에 나서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과정은 소득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자본가들이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면서 이윤을 늘린 만큼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10%에서 2007년 23%로 치솟아, 1929년 대공황 발발 직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자본가들에게 꿈과 같은 세상을 열어줬다. 뉴욕을 비롯한 금융 중심지들에 포진한 국제 금융자본은 마치 지구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을 지구 구석구석까지 강제하면서 자본주의 세계 전반을 이끌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 속에서 소련·동유럽이 붕괴하고 중국·베트남이 개혁개방에 나서자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노래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앞세워 자본주의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2) 2008년 금융위기와 대불황 금융수탈을 위해 한껏 부풀려진 주식·부동산 가격은 필연코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가격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에서 부풀어 올랐던 이른바 ‘닷컴버블’이 2000년에 터졌다. 그러자 수많은 주식시장 파산자들을 뒤로 하고, 금융수탈의 주요 무대가 부동산시장으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시장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은행들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광범하게 대출을 제공하며 주택 구입을 부추겼다. 주택소유자가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주택을 압류해서 팔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준이 3~4%대의 물가를 잡기 위해 2004~06년 금리를 1.00%에서 5.25%로 인상하자, 갑자기 불어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도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고, 하나 둘 위기로 내몰렸다. 게다가 파생상품을 매개로 미국과 세계의 금융기관들 다수가 부동산 부실채권과 연결돼 있었다. 마침내 2008년 9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과 최대 보험사를 비롯한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 또는 사실상의 파산 국면에 들어섰고, 그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이른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면에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사건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의 거대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파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약탈적 대출을 통한 금융수탈은 200만 가구를 홈리스로 만들며 자본가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결국 금융위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본가들의 지배체제 자체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았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이 붕괴할 위험에 직면하자,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다 맡기라’던 자본가계급은 뻔뻔스럽게도 국가를 통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금융기관들에게 제공했다. 2009년 11월 영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유로존이 쏟아 부은 구제금융만 14조 달러로 2009년 세계 총 GDP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은행들의 파산은 간신히 막았지만, 선진국 소비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불과 세 달 만에 전 세계 생산과 무역이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세 달 만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2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들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중심으로 소비를 진작시켰다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건설 공사가 활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2년 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5조 달러를 웃돌았다. 한편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실시했다. 이를테면 미국 연준은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3.6조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를 실시했다. 또한 연준은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기준금리를 제로(0.00~0.25%)로 유지했다. 이와 같이 전례 없는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 정책을 동원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처럼 대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넘쳐나는) 또 한 번의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불황은 피할 수 없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이 2.5%를 기록했는데, 이는 1961~2007년 평균성장률 3.7%는 물론, 1995~2007 평균성장률 3.4%보다도 한참 낮은 것이었다. 더욱이 이 수치는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확장과 전례 없는 초저금리·양적완화 정책을 장기간 동원함으로써 겨우 달성한 결과였다. 대불황의 시기는, 부분적으로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 테슬라 같은 이른바 ‘친환경’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과 그에 따른 과감한 투자를 보여주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른 극심한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었다. 체제 전반의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실례는 미국의 ‘자사주 매입’ 확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투자를 미국으로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기로 함에 따라, 2018년 1분기 미국 기업들이 2,170억 달러를 미국으로 회수했는데, 이는 전체 해외투자금 2.1조 달러의 약 10%였다. 그런데 상위 15개 기업이 회수한 810억 달러 가운데 겨우 20억 달러만 생산적 투자에 지출됐다. 반면 2018년 2분기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500억 달러로 1분기 대비 세 배로 급증했다. 즉 미국으로 회수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생산적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나 주가 견인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다. 투자기피 현상은 은행의 대출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1970~81년 제공한 총신용 가운데 상공업대출의 비중은 25.0%였으나 2008~19년에는 16.1%에 불과했다. 반면 부동산대출의 비중은 같은 기간 19.1%에서 37.0%로 상승했다. 한국에서는 투자기피 현상이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나타났다. 2008년 221.6조였던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9년 821.6조로 성장했다. 결국 대불황의 시기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에 발생한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호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모순을 더욱 축적하고 악화시킴으로써 대규모의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모순의 축적과 악화는 세계화와 금융화 양 측면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3) 세계화가 불러낸 리쇼어링·보호주의·패권대결 세계화는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자본가들이 저임금을 강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나아가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수단이었다. 또한 낮은 물가가 유지되게 함으로써 저임금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는 기능도 했다. 그러나 대불황 시기를 거치며 세계화는 (특히 ‘생산의 세계화’는) 크게 후퇴했다. 세계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의 비율은 1985년 0.4%에서 출발해 추세적으로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07년 5.3%까지 이르렀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을 거듭하며 2020년 1.3%를 기록했다. 세계 GDP 대비 수출(상품+서비스)의 비율은 1986년 16.9%에서 출발해 2008년 31.2%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 끝에 2020년 26.3%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국·지역에서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 유입분의 비율은, 대부분의 경우 2006~10년보다 2016~20년에 그 수치가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1.9%에서 1.5%, 유로존 5.8%에서 1.9%, 중국 3.7%에서 1.5%, 인도 2.4%에서 1.8%, 러시아 3.7%에서 1.4%로 하락했다. 브라질이나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양상이 약간 달랐지만, 여기서도 그 비율이 뚜렷이 상승하지는 못했다. 세계화의 후퇴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범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세계화가 이렇게 후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 자체에 내장된 모순이 작동한 결과 리쇼어링, 보호주의, 패권대결을 불러냄으로써 강력한 역세계화의 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초기에 선진국 자본가들이 신흥국으로 생산거점을 대거 이동한 것은 무엇보다 신흥국의 현저한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 임금과 신흥국 임금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신흥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노동자들의 단결과 임금투쟁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2010년에 터져 나온 대대적인 임금투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덧붙여 선진국에서 전반적인 임금정체에 덧붙여 이중임금제까지 확산되면서 제조업 신규 노동력의 임금이 상당히 하락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임금격차 축소는 물류비용 등까지 고려할 때 신흥국으로 생산거점 이동이 과연 장기적으로 이득인지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략 2010년을 분기점으로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신흥국을 향한 추가 생산투자를 보류하고, 심지어 신흥국에 있던 생산거점을 다시 선진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인 2010~16년에 이미 리쇼어링으로 43만 8천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비교적 조용한 경제적 현상이었던 것과 달리,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의 부상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강력한 정치적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소련·동유럽의 몰락과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포괄하며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재통합해 냈는데, 그와 같은 단일한 세계질서는 반대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가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기반이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각국 정부들이 단일한 세계질서에 입각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 것은 금융위기가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나아가지 않고 대불황 정도로 수습되게 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화는 이 단일한 세계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을 다시 불러냈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G20 제2차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각국 정상들은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보호주의 저지’를 공식 결의했다. 1930년대에 세계 각국이 보호주의에 빠짐으로써 대공황을 크게 악화시켰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로 피폐해진 데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급격하게 삶의 후퇴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민중이 (이들을 이끌 역량 있는 혁명적 세력의 부재라는 조건 위에서) 보호주의 세력에게 거대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마침내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주의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전면에 부상했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기왕에 진행되던 리쇼어링을 더욱 가속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해외투자를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대규모 감세 혜택을 제공한 결과 2017~20년 리쇼어링으로 63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추가됐다. (앞서 본 것처럼 회수 자금의 대부분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는데도 그 정도 결과가 나왔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힘으로도 기능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에도 큰 균열을 만들어냈다. 외국과 이주민을 혐오하는 보호주의의 득세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온갖 극우 세력들을 강력하게 고무했다. 세계화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빠른 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도약했다.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추격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대결을 조기에 가시화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2년, 미국 GDP 대비 중국 GDP의 비율은 6.1%였다. 한동안 이 수치는 완만하게 증가해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던 2001년에도 12.7%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후 6년 만에 이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나 2007년 24.5%를 기록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 2011년 48.4%를 기록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는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오랜 밀월을 대신해서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포위를 뜻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미국의 최상위 대외정책으로 설정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추격의 고삐를 더욱 당겼다. 중국의 GDP가 처음으로 미국의 절반을 넘어서서 52.5%를 기록하던 2012년, 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꿈, 즉 ‘중국몽’을 전면에 내걸었다. 나아가 중국의 GDP가 미국의 60.8%를 기록하던 2015년, 중국은 2025년까지 10대 핵심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GDP가 미국의 3분의 2를 넘어서며 67.7%를 기록하던 2018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전면적인 무역분쟁으로 불붙었다.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의 선공으로 34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25%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2019년 미국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입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들을 제재하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축소하는 양상으로 확대된 가운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역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관세부과 대상이 1.0%에서 66.4%로 크게 확대됐으며, 평균 관세율은 3.1%에서 19.3%로 상승했다. 미국은 무역분쟁을 활용해 2019년 중국과의 GDP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었지만, 중국이 빠르게 대응력을 회복하면서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중국의 왕성한 추격은 미·중 패권대결이 점점 더 격화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2008년 이전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결함을 보완하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만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세계화의 자체 모순이 전개된 결과 원래의 기능도 현저히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이라는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자본주의 위기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킬)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4)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아 온 금융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침체와 저성장에 갇힌 것과 달리, 세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7년 4분기 115.5%로 정점을 기록한 뒤,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8년 4분기 54.6%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128.1%로 새로운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12.6%포인트나 높다. 세계 주식시장에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0년 1분기 164.7%와 2007년 2분기 142.6%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각각 닷컴붕괴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3년 1분기 94.9%와 2009년 1분기 74.5%로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211.4%를 기록했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닷컴붕괴 직전보다는 46.7%포인트, 금융위기 직전보다는 68.8%포인트나 더 높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닷컴붕괴나 금융위기 직전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부동산시장도 심각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5월 155.1%로 정점을 기록한 뒤, 부동산 가격폭락과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2년 2월 99.4%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178.1%로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23.0%포인트 더 높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도 금융위기 직전보다 상당히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부동산 거품이 조성돼 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임대료 대비 가격과 소득 대비 가격을 합산해 본 결과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9개 국가의 부동산시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전,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초과착취에 덧붙여) 금융수탈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수탈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붕괴로 내몰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단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어도 한동안은 금융수탈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자본가들에게 최소한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60년 이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2008년 이후 금융수탈은 더 거대한 규모로 전개됐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자본주의에는 2000년 닷컴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를 낳았던 두 거품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금융수탈이 아니고서는 자본주의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자유주의 공세가 퍼부어졌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게다가 착취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세계화는 2008년 이후 빠르게 후퇴해 왔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욕인데, 대규모의 금융수탈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이윤욕을 제대로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금융수탈 없이는, 금융수탈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시장 등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조성되고 그럼으로써 더 거대한 규모로 금융수탈이 전개된 데에는 금융수탈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작용했지만,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가 핵심이었다. 2008년 직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급격히 얼어붙은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자본가들이 더 쉽게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시중에 충분한 화폐를 공급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이윤율 때문에 자본가들은 생산적 투자에 잘 나서지 않았고, 결국 넘쳐나는 화폐는 주식가격과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 전체로 보자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산적 투자로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다면, 금융수탈로 보충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가 고착되자,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주식·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고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상 변질됐다. 그런데 특히 주식거품이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다시 금융위기가 터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조심스럽게 금리를 다시 인상하고 양적긴축에 들어갔는데, 특히 미국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2.25% 금리를 인상하고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0.7조 달러를 회수하는 미미한 양적긴축을 실시했다. 그 표면상 이유는 ‘점진적인 경제회복에 따른 정상화’였지만, 과도하게 부푼 거품이 격렬하게 터지기 전에 미리 바람을 빼는 것 또한 실제 목표에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바람을 충분히 뺄 수 없었다. 약간의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빠르게 하강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9년 9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서, 일시적으로 초유의 위기 국면이 펼쳐졌다. 이를테면 2020년 4월 미국에서는 한 달 만에 일자리 2천만 개가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 동안 사라진 일자리 670만 개의 세 배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IMF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9.9조 달러의 재정을 지출했으며, 각국 중앙은행이 6.1조 달러의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투입된 16.0조 달러는 2020년 세계 GDP의 18.8%에 이르렀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4.8조 달러의 양적완화에 나섰다. 이번에도 정책의 효과는 비슷했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다시 한 번의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는 생산적 투자의 활성화보다 주식·부동산 거품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더 많이 기여했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거품이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서 조성됐다.2023-01-18 | 조회 2,028 -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 이주노동자를 한층 더 착취하겠다는 자본가 정부사진: 한겨레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불허된 고용허가제 2004년 도입돼 시행 20년이 된 고용허가제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합법적 노동력 착취 제도로 악명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법령에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고용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사업장 변경 횟수도 최초 3년 간은 3회로, 재취업한 경우 연장 기간 1년 10개월 내 2회까지로 제한된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므로 “고용허가제가 외국인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주장하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 예컨대 가장 빈번한 임금체불만 하더라도 임금의 30% 이상을 2개월이 지나도록 체불한 경우 등에야 사업장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중대재해(“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이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근로계약 위반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노사 간 다툼이 있기 마련인데,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주노동자가 외부 지원 없이 자기 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2021년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영하 18도의 혹한에 사망한 비참한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숙소로 비닐하우스가 제공된 경우는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고 얘기하지만, 언론 취재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만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가 7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불평등관계인 노동계약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의 강제노동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UN 사회권위원회도 지난 2017년 한국 정부에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도 폐지를 권고했을 정도다. 그러나 자본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명색이 헌법상 기본권 수호 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 역시 2021년 12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이 합헌이라는 반인권적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사진: 경향신문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은 늘려도 여전히 노동기본권은 보장하지 않겠다? 작년 말 윤석열 정부는 제36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12월 28일)의 심의‧의결을 거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을 현행 4년 10개월에서 출국‧재입국의 과정 없이 최대 10년까지 늘리는 것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노동공급 감소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도 개선을 통해 2023년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11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신규 도입하겠다고 한다. 자본가 정부의 인구정책은 언제나 자본의 요구에 맞게 노동력 공급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데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 즉 노동력 공급 감소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알맞은 규모의 산업예비군을 상시 대기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본의 독재권 행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최저임금이 곧 표준임금인 이주노동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그래서 제기된다. 문제는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만 명확할 뿐,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는 모조리 묵살되었단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서 숙련을 형성하고,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E-9 외국인력 장기근속 특례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것이 장기근속 특례의 요건이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노동부 박종필 기획조정실장은 제조업의 경우 첫 직장에서 2년을 근무해야 하고, 사업장을 변경하면 변경된 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장기근속 특례라는 미끼로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가능케 할 제도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뻔뻔스럽게도 “사업장 변경은 가장 첨예한 쟁점”이므로 “노사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별도의 지침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주 노동의 비정규 불안정 노동화를 추진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는 이주노동자를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로 운용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인력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외국인력 활용체계 고도화”라는 허울 아래, ‘업종’ 외 ‘직종’ 기준을 활용해 비정규 불안정 이주노동자를 대량 공급하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연중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가공 작업 등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의 인력 활용,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등”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원칙적으로 노동력 중간착취 제도인 파견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법만 그럴 뿐이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 실태조사 보고서(2013)」에 따르면, 안산‧시흥지역 불법파견업체 이용자의 무려 90%가 이주노동자라고 보고됐을 정도다. 2020년 12월 경기도외국인지원센터에서 펴낸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2020. 12.)」 보고서는 파견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차별 실태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예컨대 ‘일하는 조건이나 대우에서 한국인과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57.2%,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46.1%, ‘임금, 업무내용 등 근로조건이 소개업체에서 안내받은 것과 달랐다’는 항목에 44.1%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파견 노동에서 차별을 받는 이유로 취업자유 제한 등 법적으로 취약한 지위, 인종주의 등을 꼽고 있다. 입만 열면 노사 법치주의를 떠드는 정부는 이토록 만연한 불법 실태를 바로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을 허용해 아예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가 정부가 파견 업종으로 꼽고 있는 “농‧수산물 가공 작업” 등은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 일체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다.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1시간, 1주 7~8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야만적 현실을 대체 언제까지 목도해야 하는가. 싱가포르식 육아도우미가 저출생 대책이라고?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정책도 심각하다. 자본가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해결하려 든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성차별 문화와 의식을 깨뜨리는 대신, 주 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여성 혐오와 성별 대립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들고 있다. 필수 사회서비스를 공영화하고 공동체 전체가 가사‧육아‧돌봄을 공평하게 분담하게 하는 대신, 이주 여성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민간기관이 차등화된 돌봄서비스를 판매해 이윤을 창출하도록 한다는 구상을 드러낸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태도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9월의 국무회의에서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싱가포르식 육아‧가사 도우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가사‧돌봄 직종에 대한 이주 노동력 도입 정책을 발표하자 오세훈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오세훈은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동원해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떠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으로 공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2023년 예산 168억 원 중 100억 원(62.1%)을 삭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역시 1월 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 잘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돌봄을 어디가 잘해주고 어디 서비스가 떨어진다는 점이 알려지면 손님이 (특정 업체에) 많이 몰리며 (그곳이) 매출·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게 준시장적인 경쟁 시스템”이라고 떠들었다. 돌봄의 시장화를 노골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돌봄서비스 업체의 이윤 제고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저한도로 제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리고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최저 수준으로 정해질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노동자계급 내부의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등 각종 성차별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단결을 가로막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사진: 경향신문 노동자 국제주의 없이 자본에 맞서 싸울 수 없다 한국이 맞닥뜨린 저출생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를 더욱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 2014년 한 연구에서는 국내생산인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 427만 명, 2050년 1,182만 명, 2060년 1,530만 명의 이민자 유입이 필요하다는 추계를 낸 바 있다(조경엽‧강동관, 「이민 확대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과」). 이미 2021년 기준 1,956,781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중 이주노동자 숫자는 약 41만 명 수준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누군가의 정치적 좌표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이주민에 대한 태도였다면, 세계 10위권 경제 선진국 한국도 같은 상황이 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한편으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 이데올로기를 한껏 활용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정주(한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노동자가 우선이라는 조합주의적 의식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를 외면한다면, 능력주의 차별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행해질 여성 노동자‧하청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공격 역시 방어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모든 차별과 분할을 뛰어넘어 전 계급적 단결을 이루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제 다음의 금언이 한국에서도 진정한 실천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노동자에겐 조국이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2023-01-17 | 조회 2,177 -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3부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지금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는 전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와 함의를 갖고 있는가? 이를 해명하는 작업은 그보다 앞선 시대들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시대들을 해명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앞선 네 번의 시대가 가진 특징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 자유경쟁과 부르주아혁명의 시대 (1776~1871) 식민지 약탈과 노예노동에 기초한 상업 자본주의 그리고 공장제 수공업의 시대를 거쳐, 1700년대 후반 기계제 대공업에 기초한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 1776년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출발한 시점으로서 여러 면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그 해에 영국의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증기기관이 일반화됐다. 미국의 독립혁명이 시작된 해이자,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10여 년 앞둔 해였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간된 해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거의 100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일부와 동부해안 중심의 북미대륙 일부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기계제 대공업에 기초한 산업 자본주의가 발전돼 나갔다. 축적된 자본들은 아직 중소규모를 벗어나지 못했고, 산업마다 자본 간의 경쟁이 자유로이 펼쳐졌다. 국가는 경제에 개입하지 않은 채 체제를 수호하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1825년 최초의 공황이 나타난 뒤, 대략 10년 주기의 전면적 공황이 펼쳐졌다. 공황은 매우 파괴적이었지만, 한계기업을 파산시키고 임금을 하락시키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을 급격히 회복시켰다. 공황의 주기적 격렬성은 역설적으로 성장기 자본주의가 가진 활력의 표현이었다. 1500년대 초반 대항해시대가 열릴 때부터 1800년대 중반 1차 산업혁명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유럽은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구축하고 약탈과 노예노동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수탈했다. 그 사이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갔다. 사진: 코르테스의 테노치틀란 점령, 1521. 가장 먼저 패권을 쥐었던 스페인은 오늘날의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을 식민지로 구축하고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약탈했다. 한때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은의 80% 가량을 소유할 정도였다.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를 약탈하는 동안 선주민 90%가 전쟁, 광산노동, 전염병 등으로 학살당했다. 스페인은 넘쳐나는 금·은을 믿고 대규모 전쟁을 거듭했다. 필요한 재화는 수입으로 해결하면서 자체 산업화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금·은 약탈에 의존하던 스페인 경제는 시간이 흘러 금·은 유입량이 줄어들자 급격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스페인은 유럽의 후진국으로 밀려났다. 영국이 패권국가로 올라선 배경에는 면직물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이 있었다. 영국은 식민지 경영도 원료공급과 상품판매 기지로 식민지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영국 또한 식민지에서 심각한 약탈을 자행했지만, 중심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식민지 활용에 있었다. 영국은 착취를 중심으로 수탈을 결합시킴으로써,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하며 초창기 자본주의를 지배했다. 1800년대 초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반이 독립한 대신,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확립되면서, 세계적인 식민지배의 주도권은 확연히 영국으로 넘어갔다. 산업혁명은,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식민지와 노예노동에 대한 약탈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범한 상품시장을, 기계제 대공업에 입각한 사회적 생산을 중심으로 재편해 냈다. 마침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본격적으로 형성돼 나갔다. 경제를 주도하게 된 자본가계급은 국가를 자본가계급의 도구로 재편해 내기 위해 부르주아혁명에 나섰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의 정점이었다. 노동자계급은 자유·평등·형제애라는 이상에 이끌려 부르주아혁명에 적극 동참했다. 그런데 혁명을 주도한 자본가계급의 실제 목표는 봉건 지배계급으로부터 정치권력을 탈취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확립하는 데 있었다. 진정으로 자유·평등·형제애를 갈망한 노동자계급은 점점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했고, 그에 두려움을 느낀 자본가계급은 점점 후퇴했다. 마침내 1848년 혁명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맞서기 위해 봉건 지배계급과 함께 반혁명의 편에 섰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부르주아혁명을 대신해서 자본주의 산업화와 자본가국가 수립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나타났다. 봉건 지배계급에 기초한 국가 관료집단이 급격한 자본주의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스스로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해 나가는 모델이다. 프로이센에서 대지주를 기반으로 한 국가 관료집단은 1850년대 이후 자본주의 산업화와 1871년 독일 통일을 주도하면서 이러한 경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봉건 무사계급 출신의 국가 관료집단 또한 이러한 독일식 자본주의 산업화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 부르주아혁명의 성과로부터 소외당한 노동자계급은, 처음에는 부르주아혁명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 실천적 결론은 보통선거권이었다. 1830년대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은 세계 최초의 노동자계급 정치투쟁이었다. 그런데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에서 마침내 보통선거권이 실현됐을 때, 그 실체를 놓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회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민중의 지배를 당연히 보장하리라 믿었던 보통선거권은, 실제로는 가장 보수적인 왕당파의 승리를 낳았고, 그렇게 등장한 정부는 노동자봉기를 유발하고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러한 패배 위에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사상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정립되었고, 노동자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대안적 전망이 수립됐다. 다양한 조류가 경쟁했던 1864~76년 제1인터내셔널은 마르크스주의의 타당성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제1인터내셔널은 모든 자본가세력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했으며,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모든 노동자들의 해방을 향해 전진하게 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1871년 파리코뮌은 노동자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근본적인 사회경제 변혁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파리코뮌은 노동자국가가 실현해야 할 노동자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전면적인 자기조직화를 실현해 낸 노동자대중은 통제받지 않는 관료기구들을 철폐하고 대신 집행기관들을 총괄함으로써 직접 모든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대표자들에게 평균임금을 지급하는 등 어떤 특권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관료화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모든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할 뿐 아니라 언제든 소환될 수 있게 함으로써 대표자들이 언제나 대중의 의지를 표현하게 해야 한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의 여명기였지만, 이미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자혁명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참혹한 현실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착취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낼 길을 갈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해방됨으로써 전체 인류를 해방하고자 했던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monthly review 2) 독점과 제국주의 전면화의 시대 (1871~1914) 1870년대를 넘어서면서, 집적과 집중의 결과로 등장한 독점자본이 특정 산업을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 이러한 독점자본이 은행자본과 융합돼 금융독점체를 형성하면서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게 되는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 독점자본의 등장은 석유·철강·전기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과 밀접히 연결돼 있었으며, 후발주자인 독일과 미국이 영국을 급격히 따라잡는 통로가 되었다. 독점자본주의 성립은 국가의 역할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 왔다. 거대한 독점체들은 큰 영향력을 갖고 국가기구를 직접 좌지우지했다. 국가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정책은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이었다.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데 획기적인 해법이었다. 국내에 투자해서는 만족할 만한 이윤을 거둘 수 없는 ‘잉여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하게 되면, 훨씬 더 높은 이윤을 거둘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발전단계가 낮은 식민지에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훨씬 낮았고, 노동력의 가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억압을 통해 다양한 수탈을 결합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따라서 기존에 주로 원료공급지와 상품판매시장으로 활용됐던 식민지는 이제 주로 자본수출 대상지로 활용돼 나갔다. 1890년에서 1913년 사이 새로 부설된 철도 가운데 유럽이 27.7%, 미국이 28.3%를 차지한 반면,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이 절반 가까운 44.0%를 차지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이전보다 훨씬 맹렬한 속도로 식민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미국·러시아 6대 강국이 확보한 식민지의 인구는 1876년 2억7,380만 명에서 1914년 5억2,340만 명으로 늘었다. 1914년 무렵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사실상 나머지 세계 전체를 자신의 지배 아래로 복속시켰다. (나머지 세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지역은 사실상 라틴 아메리카 대륙과 중국 정도였는데,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이나 다름없었고, 중국은 여러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주권을 절반쯤 빼앗긴 상태였다.) 이처럼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식민지를 침략하고 병합한 뒤 식민지에 대한 초과착취와 약탈을 자행하는 동안, 제국주의 열강들끼리는 상대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숱한 전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유럽 대륙에서 40여 년 동안 사실상 전쟁이 사라졌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에 대한 필사적 동기는 필연적으로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대결을 불러일으켰다. “금융자본은 식민지 정책의 수많은 기존의 동기에 덧붙여 원료자원, 자본수출, 세력권, 유리한 거래, 이권, 독점이윤 등을 위한, 나아가 경제영역 전반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냈다. (1876년의 경우처럼)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만을 식민지로 점유하고 있던 때의 식민지 정책은 ‘먼저 움켜쥔 자가 차지한다’는 식의 비독점적인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1900년까지) 아프리카의 10분의 9가 장악되고, 전 세계가 분할되었을 때에는 불가피하게 식민지에 대한 독점적 소유의 시대, 따라서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특히 첨예화된 투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레닌, 1916, <제국주의론>, 제10장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 이 시기 2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적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했지만, 제국주의 열강들 안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다수는 여전히 굶주림을 면하지 못했다. 한 줌 독점자본에게 사회적 부가 집중되면서 빈부격차는 과거보다 더 극심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초과이윤을 비롯한 독점적 초과이윤이 일부 노동자들에게도 스며들었다.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던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가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제국주의 국가들로 확산됐고, 계급투쟁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문제로 대두됐다. 숙련·남성·백인만을 위한 관료적 노동조합주의 대 미숙련·여성·흑인을 포괄하는 계급투쟁 노동조합주의 간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에서 마르크스주의 노동자정당이 건설됐고, 그 결집체로서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건설됐다. 그 무렵 유럽의 정치상황은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주기적으로 펼쳐지던 봉기와 바리케이드 전투가 사라지고 선거와 의회의 시대가 찾아왔다. 부르주아혁명이 일단락되고, 주기적으로 사회를 뒤흔들던 전면적 공황이 만성적인 장기불황으로 대체됐으며, 지배계급이 보통선거권을 허용하면서, 선거와 의회를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본격화한 것이다. 제2인터내셔널 정당들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강령을 내걸고 부르주아 선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며 노동자대중 속에서 꾸준히 조직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런데 독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제2인터내셔널 앞에는 두 개의 함정이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 개혁’ 자체를 목표로 삼는 노골적인 개량주의였다. 베른슈타인은 ‘이제 자본주의가 공황을 극복했고 중간계급이 성장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의회주의를 통한 점진적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대다수는 ‘사회주의 건설은 혁명적 단절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믿음을 견지하면서 노골적인 개량주의를 거부했다. 둘째, 당이 선거와 의회를 중심으로 계속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적 단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은폐된 개량주의였다. 그러나 훗날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권력을 둘러싼 계급 간의 격돌이 다시금 봉기와 혁명의 시대를 불러올 때 그 직접적인 물리적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정치투쟁 역량이 노동자 대중운동의 성장과정 속에서 구축돼 나가야 했다. 1905년 러시아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정치파업과 경제파업을 결합시킨 대중파업을 이끌면서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정치투쟁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다수파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대다수 당들이 은폐된 개량주의에 철저히 함몰된 반면, 변방으로 취급되던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혁명과 반동의 시기를 가로지르고 합법과 비합법의 투쟁형태들을 결합시키며 거듭된 도전을 펼친 끝에 1912~14년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정치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다. 볼셰비키는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수많은 정치파업을 앞장서 조직하면서 광범한 혁명적 노동자들을 창출해 냈다. 제2인터내셔널 안에서 발생한 이 차이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제2인터내셔널 대다수가 무기력하게 제국주의 전쟁에 끌려들어가며 비참하게 파산한 것과 달리, 볼셰비키만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결의를 행동으로 연결시키면서 1917년의 혁명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게 했다. 3) 세계전쟁과 대공황과 노동자혁명의 시대 (1914~1945)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재분할 쟁탈전은 몇 차례 국지전과 첨예한 전쟁위기를 거친 끝에 마침내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불러일으켰다.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을 희생시켰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11년 만에, 누적된 경제적 모순들 위에 금융투기의 파괴적 결과가 덧붙여지면서 1929년 세계대공황이 시작됐다. 대공황은 세계 최고의 공업국이던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산업생산이 미국 46%, 독일 41%, 세계 38% 후퇴했다. 무역은 보호주의 때문에 더 극심한 결과를 맞아서 미국 70%, 독일 61%, 세계 66%가 후퇴했다. 실업률도 엄청나게 치솟아서 최대 실업률이 미국 25%, 독일 35%, 영국 22%를 기록했다. 1933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유효수요 확장 정책이 펼쳐지면서 대공황이 어느 정도 수습돼 나갔다. 대공황은 과잉생산과 과잉축적 때문에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심각하게 벌어진 상황을 뜻했는데, 정부가 재정확장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간극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7년 다시 급격한 침체가 더욱 가파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소비가 활성화되자 유효수요 확장분 이상으로 생산이 확장되면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더 벌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막대한 생산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인위적 소비와 거대한 생산능력 파괴만이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답은 군비경제고, 대규모 전쟁이었다. 특히 대공황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잇달아 벌이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전쟁이 어떻게 대공황을 타개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대공황에 대응하고자 제국주의 열강들이 매달린 보호주의는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열강들 간의 긴장과 대결을 격화시키고 있었다. 대공황이 불러온 계급투쟁 고양에 대한 반동적 대응으로 등장한 파시즘이,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쟁의 불을 당겼다. 대규모 전쟁을 통해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열망은 마침내 두 번째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전면화했다. 결국 193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을 희생시키는 참혹한 대량학살과 대량파괴를 거치고서야 자본주의는 비로소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14~45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점철됐던 이 30여 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기이자,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그야말로 사활적 위기에 빠졌던 시기였다. 자본주의는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조차 파괴하면서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되풀이하여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일찍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역설한 대로 노동자계급 앞에는 오직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두 갈래 길만이 놓여 있었다. 이 시대에 세계전쟁과 대공황의 야만을 끝장내기 위해 세계의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혁명적 투쟁에 나섰다. 빛나는 승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의 대다수 지도자들이 각기 자기 나라 자본가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것과 달리,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전쟁을 강요하는 지배계급에 불굴의 투지로 맞선 결과 끝내 노동자혁명을 성공시켰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각성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결연한 행동들이 볼셰비키라는 뛰어난 혁명적 지도력과 결합한 결과였다. 혁명을 성공시킨 소비에트 노동자권력은 은행과 기업을 국유화하고 계획경제를 수립했다. 장군들이 이끌던 차르와 자본가의 군대는 병사소비에트가 이끄는 인민의 군대로 재편됐다. 농민들은 농민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재분배했다. 러시아 제국 내 소수민족들은 민족자결권에 입각해 각자의 소비에트 권력을 건설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소비에트연방 참여를 결정했다.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여성에게 투표권과 노동권 부여 △남녀 동일임금 보장 △유급출산휴가제 도입 △임신중지 합법화 △가사노동 사회화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제도 도입 △동성애 합법화 등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의 삶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낸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세계 자본주의 사슬 전체를 뒤흔들었다.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전 세계 노동자들과 식민지 대중들에게 스스로 당당하게 일어선다면 반동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역동적 투쟁들이 이 시대 내내 수많은 나라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18~23년 독일, 1919~20년 이탈리아, 1926년 영국, 1926~27년 중국, 1931~37년 스페인, 1934~36년 프랑스, 1934~37년 미국 등에서 펼쳐진 노동자투쟁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도전이 거듭해서 펼쳐졌지만 또 다른 노동자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문제였다. 파산한 제2인터내셔널에 뿌리를 둔 거대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계속해서 노골적으로 자본가계급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전진을 가로막았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러시아혁명의 성공을 토대로 조직된 코민테른마저 스탈린주의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좌충우돌 끝에 반혁명적 개량주의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세계혁명이 정체되면서 러시아 혁명이 일국에 고립되자 그 약점과 한계가 극대화한 러시아 노동자국가는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퇴보한 노동자국가’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나가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1930년대 중후반 남아 있던 볼셰비키 중핵대오를 전멸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에게서 권력을 찬탈하는 반혁명을 완성했다. 소련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국가를 앞세워 자본주의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착취와 억압의 주체로 기능하는 것과 함께 장차 통상적인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할 기회를 도모하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되었다. 혁명적 노동자당들 내부에서 정치적 미숙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약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대 혁명적 노동자당들의 경험은 성공 못지않게 실패를 통해서도 미래의 혁명적 지도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돼야 할 중요한 교훈들을 남겼다. (파시즘에 맞서면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광범한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발전시켜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 그를 통해 노동자대중이 개량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동자 공동전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 헤게모니를 구축하여 광범한 피억압 민중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이되, 자본가 세력 일부와 연합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발을 묶는 인민전선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역동성을 극대화하여 아래로부터 피억압 대중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한다! 혁명적 노동자당은 노동자대중이 당면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절실한 투쟁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대중의 현 의식과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이행요구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요인이 결합하여 온갖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 … 자본가계급의 경제, 국가, 정치, 국제관계는 사회 위기에 의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다. …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은 깊은 불만에 차 있다. 수많은 대중이 다시 또 다시 혁명의 길로 나서고 있지만, 매번 자기 조직의 보수적 관료기구에 의해서 가로막히고 있다. … 전 세계 특히 스페인, 프랑스, 미국, 그리고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코민테른은 냉소를 머금으며 반혁명을 수행하였다. … 인민전선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깃발을 흔드는 척하면서 자본가계급과 화해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거세되고 파시즘이 등장하였다. 제국주의 세력은 한편으로는 인민전선을 또 한편으로는 파시즘을 이용하여 노동자혁명을 침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었으나 혁명의 주체적 조건인 노동자계급과 그 전위당은 조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의 구세대는 혼란과 좌절에 빠져 있으며 신세대는 경험이 부족하다.” (트로츠키, 1938, <죽음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와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결국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패배를 딛고 자본가계급이 제2차 세계대전의 대량살상과 대량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에 새로운 원기를 불어넣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사활적 위기가 해소되었다. 4) 전후호황과 개량주의의 시대 (1945~1980) 제2차 세계대전은 실물적 대량파괴를 통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낮추고 군수물자의 대량소비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해소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한동안 왕성하게 확대재생산 운동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면서, 자본주의는 1940년대 후반부터 25년가량 안정된 성장을 거듭하는 이른바 전후호황의 황금기를 누렸다. 이 시대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국가의 핵심 정책은 ‘유효수요 확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대거 정치적 독립을 실현함으로써, 식민지에 대한 수탈은 (종속에 따른 수탈로 축소되면서)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대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재정확장 정책을 중심으로 유효수요를 확장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좁히려 했다. 유효수요 확장은 크게 (임금인상 허용과 복지제도 도입을 활용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과 (냉전의 대립구도를 활용한) 대규모 군비경제 지속을 통해 이루어졌다. 케인스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대공황을 극복했다는 허명과 함께 전후호황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쳤다. 무엇보다 전후호황 동안 이루어진 자본의 왕성한 확대재생산 자체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이 다시 본격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효수요 확장’ 정책 자체의 모순이 빚어낸 결과가 (심각한 불황과 물가상승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형태로 덧붙여졌다.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줄이는 데 목표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과잉이 오히려 매우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효수요 확장을 통해 소비를 늘릴 때마다 자본가들은 생산을 더욱 높이 끌어올렸다. 결국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정부 재정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벌어졌다. 자본가계급의 소유권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무제한적인 확장 욕구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생산과잉의 심화는 극심한 불황으로 연결됐다. 여기에 재정확장 재원을 충당하는 방법의 문제가 있었다. 유효수요 확장 정책의 초기에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재정확장 재원을 조달했다. 이때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화폐발행량 확대가 주요 재원 조달방안으로 대체됐다. 특히 미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양의 달러를 발행했다. 이것은 세계 기축통화이던 달러의 가치를 급격히 하락시켰고, 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한 금태환 폐지는 달러의 가치하락을 전 세계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확산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높은 인플레이션이 세계를 뒤덮었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에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를 휩쓸었지만,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핵심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급격히 상실했다. 이른바 전후호황의 ‘황금기’ 동안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얼마간 개량의 떡고물이 주어졌고, 이는 ‘복지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널리 확산시켰다.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자본가들에게 적극 협력하며 지속적인 이윤 확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개량과 환상의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전후호황 시기 자본의 지속적인 확대재생산은 노동자계급의 규모를 빠르게 확대시켰다. 특히 청년 노동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 곳곳에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통제를 뚫고 아래로부터 거침없이 활력을 뿜어내며 자본의 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억압과 차별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도 함께 어우러졌다. 게다가 1970년대에 경제위기가 전개되면서 그 부담을 전가하려는 자본가들의 공세까지 펼쳐지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란, 중국, 체코, 폴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다. 특히 1968년 프랑스에서는 2천만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으로 2주 동안 나라를 멈춰 세웠으며, 1972~73년 칠레에서는 코르돈, 1979년 이란에서는 쇼라, 1980~81년 폴란드에서는 연대파업위원회 등으로 노동자평의회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거세게 타오른 노동자투쟁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지만 혁명을 향해 도약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노동자투쟁의 거대한 규모와 폭발력에 비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이 너무 취약한 탓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혁명적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호황기를 거치며 매우 약화되었다가 이 시기에 펼쳐진 거대한 노동자투쟁에 힘입어 비로소 부활의 기지개를 펴는 상태였다. 혁명적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투쟁들은 두텁게 포진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철저히 가로막혔다. 특히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인민전선을 통해 자본가세력과 협력한 뒤, (기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민정당 노선을 추구하며 떠나간 빈자리를 대신해) 노동자들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개량주의 정당으로 따라서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로 기능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1968년 5월의 거대한 총파업을 부르주아 선거를 앞세워 잠재움으로써 허망한 패배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70년대 후반 자본가세력과 ‘역사적 타협’에 나서며 10년을 이어가던 노동자투쟁의 ‘뜨거운 가을’을 종결시켰다. 한편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집권의 기회를 맞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영국 노동당은 노동당 정부야말로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그에 맞선 노동자투쟁을 가로막는 데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임을 거듭 입증해 보였다. 노동자투쟁이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에 가로막혀 허우적거리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투쟁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결정타를 날렸다. 1973년 칠레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미국 CIA 후원 아래 쿠데타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군사정권들은 노동자투쟁을 철저히 진압했고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세계 곳곳에서 10여 년의 대격돌을 펼친 끝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대에 스탈린주의 체제는 냉전 구도 아래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동유럽 8개국과 북한에서는 소련군의 진주를 토대로, 이후 중국·베트남·쿠바에서는 농민이 주도한 자체 혁명을 통해 스탈린주의 체제가 수립됐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확산과 독자적인 세계질서 구축은 ‘사회주의’ 체제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어떤 노동자혁명도 없이 이들 나라에 수립된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반혁명이 완성된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이었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완전히 결여된, 그리고 노동자 자주관리와 결합하지 못한 ‘국유화와 계획경제’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관료집단이 착취와 억압의 주역으로서 자본가계급의 역할을 수행하는 ‘관료적 명령경제’로 현실화했다. 실제로 스탈린주의 체제들은 이 시대에 이미 심각한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련은 1920~30년대의 급격한 성장과 달리 관료적 명령경제의 비효율성이 점차 고조되면서 1960년대 이후 구조적인 침체로 완연히 빠져들었다. 원자화됨으로써 무기력해진 노동자들은 깊은 냉소와 수동성에 빠졌고, 관료집단 스스로도 관료적 명령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중국에서는 관료적 명령경제에 내재된 관료적 실적주의가 1950년대 말 대규모 아사자를 발생시킨 가운데 관료적 명령경제를 고수하려는 관료집단과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통상적인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하려는 관료집단 간의 충돌이 펼쳐지다가, 1966~73년의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통해 관료적 명령경제의 극단적 폐해가 확인된 후 관료집단 전반의 방향이 시장경제 전환으로 정리됐다. 한편 소련이 1956년 미국과의 평화공존을 선언하고 나서자 중국은 이를 수정주의로 비판했고 그렇게 악화된 양국관계는 결국 1969년 군사적 충돌로까지 치달았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1972년 미국과 전격 정상회담을 갖고 소련을 고립시키는 데 협력하는 대가로 미국에게서 시장경제 전환을 지원받기로 하는 역사적 거래에 나섰다. 결국 다음 시대에 우리가 보았던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은 이 시대에 스탈린주의 체제들에서 펼쳐진 사태들의 필연적 결과였다.2023-01-10 | 조회 2,578 -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2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자본주의는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끝없는 착취에 기반해 왔다. 또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착취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여성과 성 소수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 이주민과 장애인 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지속해 왔다. 나아가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만을 절대시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나 도시와 농촌의 조화 같은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환경들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늘 같은 모습을 띄었던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한평생을 거치며 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모습을 거쳐 가는 것처럼, 자본주의 또한 그동안 자본 간의 관계, 자본과 국가 간의 관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그리고 계급투쟁의 양상에서 상당히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시대들을 거쳐 왔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크게 다섯 개의 시대들을 거쳐 온 것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776년부터 1871년까지 ‘자유경쟁과 부르주아혁명의 시대’다. 두 번째는 1871년부터 1914년까지 ‘독점과 제국주의 전면화의 시대’다. 세 번째는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전쟁과 대공황과 노동자혁명의 시대’다. 네 번째는 1945년부터 1980년까지 ‘전후호황과 개량주의의 시대’다. 다섯 번째는 1980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이나 행복 또는 사회적 필요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 다시 말해 이윤을 덧붙여 자본을 끊임없이 불려 나가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려는 자본가들의 탐욕과 열망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승리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술혁신을 통해 특별이윤을 선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에서 뒤처진 자본가들에게 필사적으로 요구되는 것 또한 선발자의 기술혁신을 따라잡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자본가의 기술혁신은 오래지 않아 전체 자본가계급의 기술혁신으로 일반화하고, 특정 자본가의 특별이윤이 전체 자본가계급의 상대적 이윤으로 일반화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술혁신의 지속적인 전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다시 말해 자본가의 임금(가변자본) 투자액 대비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점점 높인다. 나아가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점점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본의 이윤이란 결국 노동자가 수행하는 살아있는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인데, 기술혁신이 지속될수록 살아있는 노동 대비 생산수단에 투자된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불변자본에 비해 가변자본을 점점 더 감소시킴과 함께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점점 더 고도화시키는데, 이것의 직접적인 결과로 [잉여가치율(노동착취도)이 불변이거나 심하게는 증대하는 경우에도] 일반적 이윤율은 계속 하락한다. (이 하락이 왜 이와 같은 절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점진적인 하락의 경향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 경향은 사회적 노동생산성의 점진적인 발달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특유하게 표현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물론 이윤율이 기타의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 일반적인 평균잉여가치율이 일반적 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제13장 법칙 그 자체)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은 말 그대로 ‘경향적으로’ 관철된다. 상쇄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 상쇄요인으로 ‘노동착취도(잉여가치율)의 증대,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 저하,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 상대적 과잉인구, 대외무역, 주식자본의 증가’(제14장)를 든다. 상쇄요인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윤율 공식{잉여가치/(생산수단+임금)}에서 분모는 줄이고 분자는 늘리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상쇄요인의 대부분은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렇다면 실제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2014년 아르헨티나의 에스떼반 에쎄끼엘 마이또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869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네덜란드 여섯 개 핵심 국가의 이윤율 평균치를 실제로 계산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1870년 무렵 40%대에서 출발했던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하락을 거듭한 결과 2010년 무렵 10% 근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짧은 기간을 놓고 보자면 등락을 거듭했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보자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그대로 이윤율 저하는 ‘경향적으로’ 관철됐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탄생-성장-만개-노화-소멸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들이 나타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필사적인 분투 자본주의적 생산은 ‘더 많은 이윤 확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데, 개별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기술혁신을 전개할수록 사회 전체적으로는 평균이윤율의 저하 압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끝없는 분투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는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첫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여러 측면에서 생산의 과잉을 심화시킴으로써, 이윤율 저하 그 자체와 함께 공황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이를테면 잉여가치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기술혁신에 더욱 매달리게 함으로써 과잉축적을 불러온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저하시키려는 시도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과잉생산을 불러온다.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또는 생산의 과잉은 가장 취약한 자본들부터 연쇄적인 파산으로 내몰면서 공황을 불러온다. 둘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공황을 거칠 때마다 독점이 빠르게 심화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공황 때 파산한 기업들의 생산수단을 저렴하게 인수하는 것은 전체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독점체들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면, 자기 자본을 확장하는 ‘집적’보다 다른 자본을 흡수하는 ‘집중’이 훨씬 더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셋째, 자본주의 국가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특정 시기마다 특정 방향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 점은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 이후 거대하게 성장한 독점체들이 국가기구를 직접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뚜렷한 추세가 되었다. (반면 자유경쟁 시대에는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은 채 체제수호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일정한 시기마다 달라져 왔다. 이를테면 1871~1914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정책은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이었고, 1914~1945년 핵심 정책은 ‘전쟁’이었다. 1945~1980년 핵심 정책은 ‘유효수요 확장’이었으며, 1980년부터 최근까지 핵심 정책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였다. 일정한 시기마다 핵심 정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적된 모순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필사적인 분투에 나선다는 점, 특히 국가를 동원해 특정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 핵심 정책이 일정한 시기마다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가 나타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쓸 때까지 목격할 수 있었던 공황은 ‘거의 10년 주기의 전면적 공황’이었다.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공황의 전개 양상을 바꾸었다.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주기적인 전면적 공황 대신 만성적인 장기불황이 들어섰다. 독점자본은 규모와 시장지배력 때문에 쉽사리 파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데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국가를 대대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엥겔스는 이렇게 포착했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정체-번영-과잉생산-공황이라는 10년 주기의 순환은 확실히 그 진행을 마쳐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우리들을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엥겔스가 1886년 <자본론> 제1권 영어판을 발간하며 붙인 서문) “종전의 10년 주기의 급격한 형태의 순환은, 상대적으로 짧고 약한 경기회복과 상대적으로 길고 격렬하지 않은 불황이 교체되는 형태로 전환한 것 같다. 이는 더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가지며, 각각의 공업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펼쳐진다. … 지금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정도로 격렬한 새로운 세계공황의 준비기에 있는가? 많은 점에서 그런 것 같다. … 유럽의 과잉자본을 위한 무제한의 각종 투자영역이 세계 각지에 열려 있으며, 이리하여 그 과잉자본은 더 광범히 분산되며, 국지적인 과잉투기는 더 쉽게 극복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해 공황 발생의 종전의 온상이나 계기가 대부분 제거되었거나 매우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국내시장의 경쟁은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출현에 의해 후퇴하고 있으며, 해외시장의 경쟁은 보호관세[영국 이외의 모든 주요 공업국들은 보호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호관세 자체는 세계시장의 지배권을 결정할 최후의 전면적 산업전쟁을 위한 무기일 따름이다. 이와 같이 종래의 공황의 재현을 상쇄하는 요인들 각각은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엥겔스가 1894년 <자본론> 제3권을 발간하며 제5편 제30장에 붙인 주석) 엥겔스가 예견한 것처럼, 만성불황은 공황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다. 만성불황은 (과거의 전면적 공황이 주기적으로 모순을 해소해 냈던 것과 달리)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모순을 고스란히 축적하는 과정이었고, 그럼으로써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1870년대 초부터 1890년대 말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됐던 만성불황은 1900~1903년 세계적인 공황을 향해 모순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만성불황이 지배하는 시기는, 다시 말해 전면적 공황이 외견상 사라진 시기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이 일정 기간 효과를 발휘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또는 역효과가 극심해지는) 지점에 봉착했고 결국에는 누적된 모순이 더욱 격렬한 형태의 공황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순의 누적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도 모순은 누적되었으며, 그러한 영역에서 모순의 폭발 또한 기존의 축적체제 또는 자본주의 자체에 존폐가 걸린 위기를 불러왔다. 이를테면 1871~1914 시기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이었던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을 고조시킨 끝에 마침내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누적된 경제적 모순은 끝내 1929~1939 세계대공황으로 폭발했으며, 대공황이 불러일으킨 사회적·정치적·국제적 모순은 다시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처음에는 활력을 갖고 성장하는 시기가 펼쳐지다가, 이어서 외견상 평화와 안정을 누리지만 모순이 누적되는 시기가 펼쳐진 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누적된 모순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이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충돌하여 체제 자체가 사활적 위기에 빠지는 시기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는 자본주의 안에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착취(exploitation)는 자본주의 생산과정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가로채는 것을 뜻한다. 반면 수탈(expropriation)은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중심은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데 있다. 거대하게 발전한 사회적 생산은 그 규모만큼 거대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거두는 이윤의 중심은 착취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를 상쇄하기 위해 수탈에 기초한 추가수익 또한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든다. 실제로 자본주의 역사에서 착취와 수탈은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늘 결합돼 왔다. 18~19세기 유럽과 북미에서 산업혁명에 투입된 자본은 기본적으로 16~18세기 식민지와 노예노동에 대한 어마어마한 강탈을 통해 조성됐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지급해도 되는 저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 식민지·종속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을 지속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착취와 수탈이 결합되는 비중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자본가들이 원활하게 이윤을 획득할 수 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잉여가치 착취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로 고통당할 때에는, 줄어든 이윤을 보충하기 위해 (또는 추가적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수탈을 병행했다. 수탈의 집중점도 변화해 왔다. 이를테면, 20세기 전반까지는 식민지에 대한 총체적 약탈이 중심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금융수탈이 중심에 있다. 그런데 수탈에는 ‘파멸로 나아가는’ 속성이 있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착취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착취에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한계선이 있다. 그러나 수탈에는 그런 한계선이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탈은 자주 피수탈자를 파멸로 내몬다. 피수탈자가 파멸하면, 더 이상 수탈을 할 수 없게 된 수탈자도 몰락한다. 실제로 그동안 수탈이 가진 파멸적 속성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서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 매우 큰 후과를 낳았다.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 약탈은 끝내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지구를 뒤덮은 민족해방운동이라는 후과를 낳으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중대한 위기에 빠뜨렸다.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활용한 금융수탈은 미국에서 수많은 주택담보대출자들을 파산시킨 뒤 그 후과로 금융기관들을 연쇄 파산시키며 세계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자본가들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또 주로 어떤 방법으로 수탈을 병행하는지, 그래서 그 후과를 어떻게 치르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래서 이 점이 자본주의 아래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의 성숙 정도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산물이다. 특정 시기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누적된 모순의 성격 등 자본주의의 전개 양상은 노동자운동의 전개 양상을 큰 틀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의 단순한 반영물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그리고 특히 혁명적 역량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는,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 중요하게는 마침내 모순이 폭발하게 된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을 혹독하게 희생시켜 자신의 모순을 상당 정도 털어냄으로써 청춘의 몸으로 소생하여 또 다른 시대를 열어낼 수 있느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 체제에는 모순이 누적된다. 이에 맞서 국가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한다. 그 정책들은 일정 기간 효과를 내지만, 내재하는 모순들 때문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져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누적된 모순은 마침내 전쟁과 대공황으로 폭발한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를 낳는다. 전쟁과 대공황의 참혹한 파국은 노동자혁명을 향한 절박한 필요와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혁명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건설해 낼 때만, 이미 역사적 소명을 다한 자본주의가 끔찍한 야만을 통해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희생시키면서 그 피를 머금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걸 막을 수 있다.2023-01-05 | 조회 1,947 -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1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 2022년의 세계를 상징하는 이 두 사건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새로 진입하는 시대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성격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가 ‘상대적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한 것은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이른바 ‘세계화’와 ‘금융화’였다. 그런데 세계화와 금융화가 스스로 내재한 모순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또는 내재한 모순을 너무나 거대하게 축적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균열과 파열로 점철되는 새로운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던 이러한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을 통해 마침내 누구나 알 수 있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두 알다시피 미국·유럽 제국주의 진영과 러시아 제국주의 간의 긴장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터졌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세계화가 필연적으로 야기한 미·중 패권대결의 본격화가 깔려 있다. 전쟁이 터지기까지 미국·유럽 진영이 러시아를 향해 끝없이 지정학적 포위수준을 높이며 도발해 간 배경에는 경제적 유일 패권의 약화를 군사적 패권의 강화로 보완하려는 오늘날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이 놓여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게 된 것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미국의 유일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 러시아도 수세를 벗어나 공세적으로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나서야겠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였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대결이 이제 대리전과 국지전을 통한 군사적 충돌로도 나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에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벌일 가능성을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사로 올려놓았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운명적인 패권대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위험성은 점점 높아져 갈 것이다. 한반도가 또 다른 제국주의 대리전의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성 또한 마찬가지다. 기록적 인플레이션 미국과 유럽에서 10%를 전후한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것, 그리고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수십%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것은 1970년대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40여 년 만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이번 인플레이션은 △공급가격 인상에 따른 상품의 실질가치 인상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상품의 명목가격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가 야기한 에너지·식품가격 인상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초기 ‘공급가격 인상’은 주로 코로나19 팬데믹 봉쇄에서 비롯된 공급망 교란 때문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구조적인 다른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화를 역행하는 ‘역세계화’의 흐름이 누적되면서 세계화가 가져다주던 ‘최저단가 공급’의 이점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 하락을 금융화에 의존해 대응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필수소재들에 대한 산업투자마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피해 온 결과라는 점이 지적된다. 양쪽 모두 세계화와 금융화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결과 또는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 낸 결과 이번 인플레이션이 촉발됐음을 말해준다. 화폐량 확대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 또한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인가를 놓고서는 논란이 많다. 특히 2008년 이후 미국·유럽·일본 등이 10년 이상 장기간의 양적완화를 실행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반대 논거로 제시된다. 공급된 화폐량이 많더라도 상품유통에 필요하지 않은 화폐는 사용되지 않은 채 축장됨으로써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는 가설도 제시된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화폐량 확대가 인플레이션에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 여러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은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세계를 휩쓴 인플레이션에서도 단순히 오일쇼크만이 아니라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치르기 위해 달러를 살포하면서 초래된 기축통화 달러의 가치 하락 효과 또한 (금태환제 폐지로 더욱 증폭되면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화폐량 확대가 언제나 (또 확대된 양에 비례해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실제 상품유통에 사용되는 화폐량을 늘림으로써 화폐가치를 하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인 가설일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며 과거 10년간의 양적완화를 더한 것 이상의 막대한 화폐가 일시에 투입된 점, 과거에는 채권시장에 화폐를 공급함으로써 양적완화 효과가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집중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상당량의 화폐가 일반 주민들에게 지급됨으로써 곧바로 상품유통에 투입된 점, 공급 측의 원인이 함께 작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시동을 막는 저항력이 약화된 점 등이 ‘임계점’을 넘어서게 한 요인으로 상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가 야기한 ‘에너지·식품가격 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기후 재난으로 타격받은 특정 지역의 곡물생산이 회복되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전략적 요충지에서 또 전쟁이 (이를테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서)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점점 심화되는 기후위기 때문에 매년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곡물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에너지·식품가격 인상’은 단순한 일시적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구조적인 인플레이션과 세계 자본주의의 향방 지금 전개되는 인플레이션이 많은 부분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인플레이션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정책이 느슨해지면 꺼진 불 다시 살아나듯 인플레이션이 다시 솟구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은 구매력을 삭감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민중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등을 떠민다. 지배계급에게도 인플레이션이 큰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전반의 향방에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뒤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2008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에게 구세주와도 같았던 초저금리·양적완화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한동안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앞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전개되는 양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말해준다. 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은 체제 전반의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은행들은 산업투자보다 부동산·주식투자 관련 대출로 더 많은 수익을 챙겼다. 실물경제와 한껏 괴리된 자산시장 가격은 당연하게도 급격한 하락 조짐을 주기적으로 보여 왔는데, 그 때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가 자산거품을 다시 부양하며 해결사 역할을 해 냈다. 그런데 지금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전례없는 규모로 누적된 가계부채·기업부채·국가부채의 상환부담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부동산·주식 가격 하락과 채권시장 경색으로 이어진다. 만일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인상만을 고수함으로써 한동안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편으로 부동산·주식 가격의 대폭락과 함께 가계파산이 속출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만연하는 채권만기연장 실패와 함께 기업파산이 속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실대출을 폭증시켜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나아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마냥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라도 꺾이는 조짐을 보이면, 서둘러 금리인상을 중단할 뿐만 아니라 다시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나섬으로써 자산가격 상승과 부채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그래야 금융화에 의존하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침몰하지 않고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얌전히 수그러들 것이냐는 점이다. 만일 지금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다양한 구조적 원인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라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데,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는 인플레이션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하며 미쳐 날뛰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으로 선회해야 할 텐데, 이는 자산시장 거품파열과 금융위기 발생 위험을 한껏 높일 것이다. 결국 또 얼마 못 가 거품파열과 금융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다시 선회하겠지만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한 번 두 번은 요행히 파국적 상황을 면할 수 있을지라도, 이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금융위기의 폭발성과 인플레이션의 파고는 점점 더 높아져 갈 것이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는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부르주아 경제분석가들의 전망 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 세계 경제가 매우 파국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일부 부르주아 경제분석가들의 전망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표현되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신문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10월 6일자 ‘지금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거시경제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 경제에 새로운 체제가 고통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주의 부상이나 1990년대 자유시장과 세계화로의 전환에 견줄 만한 중대한 전환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부유한 나라들이 2010년대의 저성장 덫에서 빠져나오거나 고령화나 기후변화 같은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대일 수도 있지만, 금융적 혼란에서부터 중앙은행 파산이나 통제불능 공공지출 같은 심각한 위험들을 현실화하는 시대일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CNBC>의 11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규모 헤지펀드 ‘엘리엇 메니지먼트’는 그 무렵 자사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세계 경제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는데도 연준이 통화긴축을 펴고 있는데 이는 경기침체를 초래하고 향후 더 큰 규모의 재정부양책을 촉발시킬 것”이며, “이런 악순환” 때문에 “현재 세계경제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길로 가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사회붕괴와 내전, 국제분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길을 밟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국제통화기금은 2022년 7월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우울하고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 있다면서 “최악의 경제위기를 앞에 두고 있다”고 전망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이후 ‘닥터 둠’으로 불려온 누리엘 루비니는 2022년 8월 9일 지난 40년 동안 유지돼 온 ‘거대한 평온(Great Moderation)’의 시대가 가고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발표했다. 위기와 전쟁과 혁명의 시대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패권을 경쟁하던 선·후발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1900년대 초반 강력한 세계공황으로 타격을 받은 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더욱 맹렬히 몰두하던 끝에 발생했다. 1939년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패권을 겨루던 열강들이 10년을 끌어도 해결되지 않는 세계대공황에 대한 해법을 마침내 대대적인 군비확장과 전쟁경제, 심지어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에서 찾은 결과였다. 만일 앞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금융대공황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향해 점점 다가간다면, 이는 이미 대리전과 국지전의 단계에 이른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 강도를 더욱 빠르게 높일 것이다. 그 구체적인 추이까지 지금 예견할 수는 없지만, 그러므로 다가오는 시대가 위기와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파산과 실업과 빈곤과 전쟁으로 가득한 시대, 거기에 기후재난까지 겹쳐질 이 시대에 세계 노동자계급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파업과 시위와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는 새 시대의 성격과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지금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2023-01-03 | 조회 2,314 -
세계를 흔드는 에너지 위기, ‘사유화’가 낳은 비극(출처: marketwatch)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이 온다 유럽에서 에너지 위기가 현실이 됐다. 9월 2일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 노르트스트림 1호 작동을 무기한 중단한 데 이어 이달 말에만 3차례의 가스관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천연가스 공급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이 공포에 휘감기고 있다.* 통상 겨울철에 가스 수요가 폭증하는데, 올해는 라니냐로 인해 유럽 대륙에 엄혹한 겨울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난방 없이 올 겨울을 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설사 온난한 겨울을 맞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천연가스는 산업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 EU 국가들의 올 3분기 산업용 가스 소비량은 전년 대비 25%나 감소했으며, 10월 소비량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가 2만4,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최근 과중한 에너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생산을 축소하고 있다.** 화학부문 기업의 25% 이상, 자동차부문 기업의 16%가 감산을 검토・실시했으며, 자동차부문 기업의 17%가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다. 특히 다량의 가스 소비가 불가피한 업종의 경우 천연가스가 비교적 저렴한 북미 대륙(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의 1/6 수준이다) 등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추진 중이다. 즉 유럽 민중들은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 초유의 위기 앞에, 극우파와 자국 우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에너지 위기를 직격으로 맞는 독일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개전 초기만 해도 독일 민중들은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보고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스 공급 중단을 전후로 과격한 언사가 힘을 얻고 있다. 기민당(CDU) 당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가 TV에 나와 “우크라이나 난민이 독일에서 사회보장관광을 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비난하는가 하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조국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러시아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 참석자는 약 1만 정도로, 반대 시위 참석자 1,500명의 6배를 넘는 규모다.**** 위기 속 분열하는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15개 국가는 EU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 네덜란드, 헝가리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의 명분은 에너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유럽으로 오는 가스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르반 빅토르(Orban Viktor) 헝가리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러시아가 가스 가격 상한선이 도입되면 헝가리에 가스를 보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어, EU가 가격 상한선을 적용한다면 헝가리를 위한 특별 모델이나 면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 직접 연결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가진 국가다. 즉, 각국의 에너지 안보와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이 충돌하는 셈이다. 지난 10월 EU 회원국 정상회담에서도 가스 가격 상한제를 둘러싸고 독일과 프랑스가 격돌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독일은 자국 에너지 산업 보조금으로 2천억 유로(한화 약 280조)를 편성했다. 독일 최대 가스 기업(Uniper) 국유화에 나설 뿐 아니라 내년 초부터 독일 내에서 가격 상한제도 도입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U 회원국들은 일제히 독일을 비난하고 나섰다. 자국의 에너지기업을 지원할 재원을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에 써야 한다는 논리인데, 실상은 독일의 에너지기업 지원으로 자국의 에너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EU 회원국간 갈등요소는 이 밖에도 많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러시아의 협박에서 벗어나고 EU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스페인을 연결하는 ‘미드캣’ 가스관이 필요하다”고 하자 마크롱은 “왜 미드캣이 가스 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저에는 미드캣 가스관이 자국의 에너지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마크롱의 판단이 깔려 있다. EU 회원국의 공통된 기치가 있다면 그것은 ‘조국이 먼저다’ 일 것이다. 각자도생 속 흔들리는 기후정의 이렇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교훈을 세계는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를 러시아 같은 ‘잠재적 적대 국가가 될 수 있는 인접국(potentially hostile neighbours)’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둘째, 재생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당면한 에너지 위기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국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며, 화석 연료와 핵발전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스 공급의 15%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네덜란드는 석탄발전 생산 상한선을 해제했고 이탈리아도 석탄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각국에서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재가동, 폐쇄 지연을 추진하자 주요 석탄 생산국인 폴란드는 아예 석탄 생산량을 늘렸다. 폴란드는 1분기 석탄 생산량이 1,900만톤이라 밝혔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5만톤 늘어난 수준이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던 국가들의 기후정의는 에너지 위기 앞에 이렇듯 무력했다. 실제 올해 전세계 이산화물(dioxide) 배출량은 전년 대비 0.8% 증가한 40.5기가톤으로, 2019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다 배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온실가스 배출은 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자고 합의했으나, 이 추세라면 이번 세기말에 기온이 2.8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출처 : Pixabay) 에너지 위기, 원인은 ‘사유화’ 이쯤에서 에너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가장 흔한 진단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에너지 가격은 상승 추세였다.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낮아졌던 화석연료 가격이 등귀하면서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가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하지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찰할 가치가 없는 진단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사실 예고된 위기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리라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 고조는 누구나 직감하고 있었으며, 에너지 자원이 무기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수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했어야 하나, 유럽 어느 국가도 실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사유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기업은 그때그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했을 뿐이었고,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정부와 민중이 떠안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LNG를 직수입하는 SK 등 에너지 재벌이 단기적인 이윤을 위해 LNG 공급량을 자의적으로 조절하면서 가스공사가 수급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와 각국 정부는 에너지기업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통제는 가하지 않았다. 도리어 에너지기업에 초과이윤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유럽의 전력시장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유화가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전력 도매시장을 보면,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도매가격이 책정된다. 계통한계가격이란 가장 저렴한 방식부터 사용해 최종 수요를 충족시킬 때의 한계 비용을 전체 가격으로 책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발전 원가가 판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할 수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가스 가격 급등에 따라 계통한계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다수 에너지기업에 ‘횡재이윤’ 내지 초과이윤이 발생하고 있다. ‘횡재’라는 단어로 인해 마치 외부적인 행운에 따라 이윤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윤의 원천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력시장 그 자체에 있다. 그나마 한국은 전력 소매를 한국전력공사가 담당하고 있어 가정용, 산업용 전기요금이 크게 인상되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전력이 적자를 떠안고 에너지 재벌이 흑자를 남기는 상황이다. 반면 유럽에는 한국전력과 같이 ‘쿠션’ 역할을 해줄 주체도 없어서 에너지 위기가 그대로 가정으로 전가된다. 결국 전력시장은 이윤을 에너지기업으로 사유화하고, 손실을 철저히 민중에게 사회화하는 전장이다. 유럽에서도 ‘횡재세’와 초과이윤 환수가 일부 도입되고 있으나, 그 자체로 에너지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횡재이윤이 실은 에너지 사유화에 따른 ‘특혜이윤’임을 주장하며 사유화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공공이 에너지 생산과 수급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가정과 필수유지시설 등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분배를 책임져야 한다. 전력시장 폐지와 발전 국유화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 사회화운동, 지금 여기서 시작하자 한국 노동자민중에게 에너지 위기는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앞서 적었듯이 한전이 위기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역대 최대 적자를 근거로 올겨울 전기와 가스 가격을 인상했고, 발전 민영화와 핵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한국전력의 적자와 맞먹는다는 사실(올 상반기 한전의 영업손실은 14조인데,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12조 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LNG를 직수입하는 에너지 재벌로 인해 한국가스공사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감축 목표 산업계 부담”이라며 2030년 탄소배출 40% 감축에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기후정의에도, 에너지 공공성에도 역행할 의사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윤석열의 기후부정의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발전의 국유화와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국유화’는 더 이상 진부한 구호가 아니다. 4년 전 김용균이 죽은 원인이 발전의 민영화다. 에너지 재벌이 발전을 지속하는 한 한전의 적자를 만회하긴 커녕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도 담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후정의를 위한 에너지 공적 소유와 통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기업을 국유화하고, 6개로 쪼개진 발전공기업을 재생에너지 공기업으로 통합해야 한다. 지난 9월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의 선언을 모든 노동자의 요구로 확산시켜야 할 때다. * https://www.visualcapitalist.com/visualizing-the-eus-energy-dependency/ ** Reuters, Energy crisis putting most German firms under duress –survey, 2022.11.02. *** https://www.dw.com/en/german-opposition-leader-sorry-for-ukraine-welfare-tourism-jibe/a-63253255 **** https://www.dw.com/en/germany-far-right-demo-protests-russia-sanctions-energy-policy/a-63380291 ***** Reuters, Hungary will not agree to EU gas price cap, will need exemption, 2022.10.21. ****** Euractive, Macron adamant no need for MidCat gas pipeline, 2022.09.06. ******* Financial Times, Food and energy crises threaten to distract from climate talks, 2022.10.10. ******** 에너지데일리, “EU, 천연가스 공급 위기… 석탄발전 가동 늘리고 있다”, 2022.07.19.2022-11-24 | 조회 1,804 -
[번역]파시즘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편집자 주> 11월 초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주도하는 공화당의 ‘붉은 바람’은 예상보다는 덜했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민주당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거뒀고 하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트럼프는 2024년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여기에 그동안 트럼프의 후광 아래서 소수자 억압 정책을 주도했고 이번에 플로리다 주지사로 재선된 디샌티스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트럼프주의가 트럼프 개인을 넘어서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인가? 트럼프주의를 격퇴하는 길은 자유주의 민주당의 선거 승리에 있는가? 2021년에 작성된 <레프트보이스>의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한다. 파시즘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매덜린 프리먼, 2021년 3월 7일 “제이슨 스탠리의 책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파시즘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과 국제 지형 모두에서 분수령이 됐다. 그것은 2008년 이후 미 제국의 가파른 쇠퇴와 위기에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신자유주의 지도자들은 미국을 다각적인 위기로 몰아갔고,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인기를 끌고 자본가계급 일부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이 우익 쪽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국제적으로 볼 때 미국은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쇠퇴와 중국 같은 강대국의 성장에 직면했다. 국내에서는 커져가는 불평등,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은행과 기업들을 구제하는 동안 생활 형편이 극도로 나빠진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불만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뻔뻔한 태도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약속을 내뱉으며 불만에 찬 일부 소부르주아들에게 우익 포퓰리즘의 목소리를 내게 해줬다. 그들 대부분은 백인이고, 대체로 대도시 바깥에 살고 있으며, 우익이 줄곧 그래왔듯이 이주민이나 주변화된 사람들, 좌파 등을 희생양으로 삼고자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정치와 경제에서 혼란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적 기구에서도 표현이 된다. 자유주의 이론가와 학자들은 자유 민주주의로서 미국이 계급 간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들의 관점에 매달린 채, 트럼프의 부상과 미국의 전통적 지도자들에 대한 반발을 해명하려고 허둥댄다. 그들은 아무 데서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쏟아내고 말과 행동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우익 포퓰리스트(트럼프)에게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고심한다. 그들은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민주주의를 파괴해서 권력을 쥐려는 예비 독재자라고 불렀다. ‘폭정을 막아내기’를 바라는 ‘깨어있는 시민’을 겨냥한 안내서가 큰 인기를 끌었다. 티모시 스나이더가 쓴 책 <압제에 대하여: 20세기의 20가지 교훈>이 대표적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선전은 무엇보다 트럼프의 등장을 낳은 비민주적인 제도와 사회경제적 관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려고 애쓴다. 2018년에 나온 제이슨 스탠리의 책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의 정치와 그들의 정치>는 대학가와 자유주의 매체들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스탠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트럼프 같은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적인 우익 정치인들이 어떻게 권력을 손에 넣고 있는지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답변을 내놓는다. 불행한 사태가 어떻게 초래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미국에서 완전한 면모를 갖춘 파시즘의 진군에 맞서자고 경고하며, 트럼프의 우익 정치가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고 민주적 규범을 지켜내자고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2020년, 그러니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이면서 대통령선거 직전이던 시기에 자신의 책을 문고판으로 재출간하면서 스탠리는 2018년에 정식화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특히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에서 더욱 심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차악론’을 정당화하는 자유주의 철학을 제시한다. 그것은 트럼프와 공화당을 파시즘적 권위주의 진영으로 놓고, 정확히 반대편에 조 바이든과 민주당(이름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을 민주주의와 자유의 진영으로 놓는다. ‘선전’에 대한 스탠리 자신의 규정 즉, “다른 반대되는 목표 아래로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해 고상한 이상을 담은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관점을 따르자면,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자유주의적 선전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이 책은 트럼프에 반대해 투표하는 것,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착취에 기반한 미국 정치제도를 거듭 정당화하는 것이 전 세계 우익 운동의 고양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내려야 할 유일한 이성적 결론인 것처럼 색칠한다.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바이든은 ‘평등’과 ‘공감’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먹였다. 스탠리는 이와 똑같은 호소를 하면서,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했으며 수백 년간 압도 다수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보장해온 바로 그 전통적인 민주주의 제도와 사회경제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미국, 미얀마, 헝가리, 러시아의 현시기 우익 운동을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등 교과서적인 사례와 비교하면서, 그리고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격하며 정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인종차별과 변화하는 사회 조건에 대한 불안을 이용하는지 설명하면서, 스탠리는 특정한 일국적 환경에 적용되는 파시즘의 일련의 ‘전술’을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 올리려 한다. 1월 6일 국회의사당 습격과 두 번째로 실패한 트럼프 탄핵 시도에 뒤이어, 스탠리는 계속 존재하는 파시즘 정치의 위협에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하며 극우의 등장에 맞서 미국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고 개혁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경고하면서 언론 매체에서 대결을 이어가려 한다. 트럼프가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스탠리의 이론은 바이든 정권이 대표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거듭 정당화하는, 그리고 바이든 정권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투쟁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스탠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익 운동이 주변화된 사람들의 안전과 자주권을 어떻게 실제로 위협하는지 적절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우익 정치의 모든 사례를 이런저런 형태의 ‘파시즘’으로 격상시키면서, 스탠리는 약간 더 친절한 가면을 쓴 부르주아 정치인들을 언제나 ‘차악’으로 정당화할 ‘파시즘’의 항구적인 위협을 창조해낸다. 달리 말하면, 스탠리는 본래의 위상에 맞게 정확히 작동하는 부르주아 국가의 구조에 ‘파시즘’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뿐만 아니라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잘못된 성격 규정을 내린다. 그는 추상적으로 파시즘을 ‘민주주의’의 대립물로 간주하고는, 이 이분법을 관념의 세계로 끌고 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탠리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쳐버린다. 파시즘과 자본가 민주주의는 계급적인 속성이 전혀 없는 ‘중립적’인 체제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둘 다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지속시키고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강제하기 위해 활용하는 체제일 뿐이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권력’ ‘파시즘’을 둘러싼 자유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스탠리가 제시한 의견의 핵심은 파시즘 체제와 ‘파시즘 정치’를 구분하는 것이다. 파시즘 체제란 완전하게 모습을 갖춘 정치적 현상으로서, ”권위주의 지도자가 대변하는 민족과 더불어 (종족, 종교, 문화 등) 다양한 특성을 나타내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구성된다. 파시즘 정치란 반지성주의, 성적인 갈망, 신화적인 과거에 대한 호소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권위주의 전술로서, 특정한 국가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채택된다. 트럼프 정권과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 같은 지도자들을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하면서, 스탠리는 전 세계 우익 정치인들의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 그 밖의 편견에 찬 수사와 정책들을 ‘파시즘’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의 큐어넌이나 헝가리의 ‘소로스 반대’ 캠페인* 같은 사례처럼, 국내 정치 수준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을 예비 파시즘 독재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반동적인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정치인들은 진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면서 과학과 부르주아 세계질서에 맞서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전통적인’(흔히 ‘반동적인’ 또는 ‘편견에 찬’이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 사회구조의 수호자로 포장한다. [*소로스 반대 캠페인: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가 글로벌리즘을 앞세워 헝가리를 해체하려 한다며 헝가리 내에서 그와 연관된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킨 극우 민족주의 운동. 이 캠페인을 주도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애초에 소로스 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스탠리의 설명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파시즘이란 분열의 정치다. 그것은 공감과 다원주의라는 자유주의적 이상과는 대조적으로, 다수 집단이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타자들’에 의해 침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한 인물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봉사한다. 스탠리는, 파시즘 정치가 항상 파시즘 체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파시즘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자본가 민주주의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실제로 그는 과거의 흑인 차별정책에서 대규모의 격리와 강제 추방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제도 안에서 파시즘 정치가 오랜 기간 지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두 개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간주하는 고전적인 구분법을 사용하면서, 스탠리는 파시즘의 구체적인 현상을 이른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표방하는 자본가 민주주의의 반정립인 것처럼 초역사적으로 규정한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인도의 모디 같은 정권으로 구현된 전 세계 우익 포퓰리즘의 아주 구체적인 현상들을 건드리면서도, 그는 이 우익 운동의 원천과 그들에 맞선 투쟁을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 밀어내버린다. 거기에서는 반동과 혐오 진영이 한쪽에 서 있고 자유주의 진영이 반대쪽에 서서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적인 이분법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이용할 권리를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스트들과 그 지도자들 역시 권력을 손에 쥐고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유’라는 그리고 ‘압제’에 반대한다는 추상적인 미사여구를 사용했다. 현시기 네오나치 단체나 다른 맹아적인 파시스트 조직의 강령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분명히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모든 민주주의적 구조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자유’를 외쳤다. 모두를 위한 ‘자유’란 없다는 것, 바로 이 지점이 스탠리의 관점이 넘지 못하는 한계다. 잘 알려져 있듯이 레닌은 우리가 자유를 말할 때 항상 그 자유가 ‘누구의 자유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인지’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시스트들은 소수의 선택된 인종, 종족, 또는 종교 집단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압도 다수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자유를 부정하고, 자본가들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자들은 일련의 다양한 정체성을 위한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른 일련의 역사적 조건 아래서 자본가들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스탠리는 노동자계급 운동과 혁명적 사태 전개를 저지하는 방법으로서 파시즘이 등장하는 데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위기가 수행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파시즘은 추상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안정을 되찾고 자본가계급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자본가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완전히 면모를 갖춘 파시즘 체제가 아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현시기 자유 민주주의 속에서 그가 포착하는 파시즘의 전조이며,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유주의와 파시즘 사이에 뚜렷하게 선을 긋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작동하는 ‘파시즘 정치’의 요소들을 뽑아냄으로써, 스탠리는 이 현상을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이라고 추상적으로 채색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시각의 한계는 미국의 맥락에서 파시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서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와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에 내포돼 있는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권력을 다투는 반동적인 개인들의 ‘파시즘 정치’라는 일탈 때문으로 잘못 인식한다. 인종차별과 파시즘 인종차별과 극단적인 편견은 파시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스탠리의 견해에서 가장 중요하다. 아마도 이것이 ‘파시즘 정치’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잘못 파악된 요소일 것이다. 스탠리는 인종차별을 우익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추진력이라고 적절하게 규정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체계화된 인종차별을 묘사하기 위해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럴싸하다. 우익 운동이 역사적으로 억압받고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가하는 위험성이 얼마나 긴급한지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그는 이 파시즘 정치를 중립적이고 모든 사람의 이해를 위해 작동하도록 개선해나갈 수 있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와 대립시킨다. 계급적 이해에 복무하는 무기로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으로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대신, 스탠리는 인종차별의 근본 원인을 ‘위계’와 ‘권위주의’라는 공허한 관념으로 환원한다. 미국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런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는 미국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데에서 그리고 미국이 세계적인 제국주의 열강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수행한 역할을 상당히 과소평가하며, 현시기 미국 국가와 양대 정당이 인종차별과 유색인에 대한 초과 착취로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도 간과한다. 구조적 인종차별은 인종차별적인 정치인들이 만든 몇몇 나쁜 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에 내포돼 있다. 미국에 대해 다루면서 스탠리는 W. E. B. 두보이스와 안젤라 데이비스 같은 급진적인 흑인 운동가의 작업에 종종 의지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의 구조적 성격에 대한 이들의 관점을 미국 파시즘이라는 그림에 결부시킨다(심지어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정치에 내포된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측면들을 지워 없애기까지 한다). 그는 남북전쟁 후 재건 시대가 노예제에서 해방된 흑인 노동자계급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그래서 남부와 북부 자본가들의 이해에 계속 복무시켰는지 살펴본다. 그는 미국의 감옥 시스템에 흑인이 대량 감금되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것을 명백한 ‘파시즘’ 또는 맹아적인 파시즘 현상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인종차별을 오직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확립하고 기성의 위계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수단이라고만 설명한다. 그와는 달리, 인종차별의 실체는 자본주의가 광범한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미국 민주주의와 인종차별의 깊은 연관을 간과하며, 그 결과 그의 관점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에서 아무런 전망도 보여주지 못한다. 미국 민주주의는 인종차별과 온갖 종류의 극단적 편견 위에서 번영하는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종하고 있으며, 이것이 인종차별을 가능케 했다. 스탠리에 따르면 지금의 공화당은 트럼프의 등장을 초래한 사회 현상에 적응하면서 ”이러한 전략을 더욱더 빈번하게 채택한다.“ 스탠리는 정치인들이 가부장적 고정관념을 이용하거나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적 선거구 개편이 이뤄져 왔다는 것을 사례로 든다. 하지만 이것은 파시즘이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본래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자본가 민주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 이로부터 이득을 얻으면서 이런 관행과 정책을 영속화한다. 궁극적으로 스탠리는 인종차별 정책으로 썩어빠진 민주주의 국가를 중립적인 기구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가 체계화된 인종차별의 해결책으로 내놓는 유일한 방안은 인종차별적이며 뿌리까지 썩어있는 제도를 개혁하는 것뿐이다. 이로써 그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써 자본가 민주주의 국가가 유색인과 그 밖의 주변화된 사람들을 어떻게 표적으로 삼는지를 지워버린다. 인종차별은 오직 파시즘만이 지배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다. 파시즘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스탠리의 시각과는 달리, 파시즘은 자유 민주주의가 낳은 정치에서의 형식적인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도전을 받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파시즘은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스탠리의 설명과는 반대로, 파시즘은 단지 광란하는 독재자가 선택된 소수의 민족, 인종, 종족의 권력과 지배를 추구하며 애쓴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무솔리니는 어떻게 승리했는가>에서 트로츠키가 설명했듯이, 파시즘은 ”의회라는 가림막과 더불어 경찰과 군대라는 자본가 독재의 ‘통상적인’ 자원이 더 이상 사회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그 순간에 등장한다. 파시즘 정권의 순서가 도래한다. 파시즘이라는 대행인을 통해 자본주의는 광란하는 소부르주아 대중과 몰락하고 절망에 빠진 룸펜프롤레타리아 무리를 움직이게 한다. 바로 금융자본이 이 무수한 인간들을 절망과 광기로 몰아넣었다.“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이 만든 제도와 조직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다. 20세기에 파시즘은 인종적·민족적·정치적 집단학살 형태를 취하면서,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운동에 맞서 자신의 안정성을 지킬 수 있는 여지를 더 넓히기 위해 노동자계급 내에 심어놓은 분열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국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단일정당 체제를 바탕으로 단호하게 통치하려는 우두머리가 정치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이 과정이 촉진됐다.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뒤 처음으로 한 일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독일 노동자들의 조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동조합 회관을 봉쇄했고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했으며,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나치당과 자본가들이 직접 통제하는 ‘독일노동전선’*으로 갈아치웠다. [*공식적으로 노동조합은 아니었지만 어용노조 역할을 했고, 회원 수는 1938년에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설사 스탠리가 파시즘을 전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무언가로 간주하더라도, 그는 파시즘이 표적으로 삼는 것은 노동자계급 조직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역시 분명히 논의 과정에서 파시스트 정치인들의 노동조합 공격을 다뤘다. 그러나 스탠리는 이런 인식의 위아래를 뒤집는다. 노동자계급 조직들에 대한 공격은 독재자의 끓어오르는 권력욕 앞에서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분열 정책에 저항하는 데에서 이런 연대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조합을 해체하려고 한다. 파시즘 정치는 ‘특권층’을 비난하면서도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 한다.“ 스탠리는 파시즘이 노동조합을 해체하려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을 묶기 위해 사회가 찾아낸 주된 구조이기 때문“이며, ”파시즘 정치에 따르면, 세계 자본주의라는 바다에서 노동자들 각자가 자신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로 방치되고 그 결과 지도자 집단에 대한 종속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은 반드시 분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탠리는 노동조합을 자본주의가 강요한 분열에 맞서는 단결의 장으로서 올바르게 규정한다. 비록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추상적인 인류 전체의 통합을 위한 것으로 미끄러뜨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단지 경제 영역에서 큰 피해를 유발해 사람들을 전능한 지도자에게 더 강하게 결속시키려는 목표로만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을 억누르고,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극심한 폭력과 탄압을 동반하며 노동조합을 표적으로 삼는다. 파시즘은 인간의 공감 능력을 해치는 이데올로기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적인 사회관계에서 방향성을 갖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파시즘이 승리를 거둔 뒤에, 금융자본은 곧바로 통치를 위한 모든 기관과 제도, 행정부, 국가 교육기관을 마치 바이스로 꽉 물듯이 자신의 수중에 직접 끌어모은다. 군대, 지자체, 대학, 학교, 언론,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과 함께 국가기구 전체가 여기에 포괄된다. 국가가 파시즘 체제로 바뀐다는 것은 무솔리니가 만들어놓은 패턴에 따라 통치의 형태와 방식이 바뀐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차원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소소한 역할을 할 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점은 노동자 조직들이 궤멸된다는 데 있다. 노동자계급은 모래 같은 상태가 된다. 대중 속으로 깊게 파고들며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조직화를 가로막는 행정체계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서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에 거대한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와 운동에 맞서는 자본가계급의 반동이다.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대립물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가 계급 적대를 억제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파시즘은 국가를 움직이는 데에서 기업과 경제활동을 최우선으로 두는 또 다른 지도자가 이끄는 자본주의다. 그러나 파시즘은 애초에 불안정한 형태의 통치체제이고, 자본가들이 선호하는 방식도 아니다. 트로츠키의 유명한 문구처럼 ”어떤 사람이 어금니에 치통이 있다고 해서 그 이를 뽑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듯이, 대자본가들도 파시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스탠리는 자본가계급을 위해 경고해준다 다른 자유주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탠리는 대중이 우익에 맞서 싸우려면 부르주아 제도를 지지하며 자본가 민주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이 점이 자유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오류다. 투표함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위대한 중재자’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면서, 자신을 억압하는 조건에 동의하게 만드는 자본가계급의 수단이다. 사실 부르주아 제도를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으로 나아가려는 미래의 파시스트들을 위해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스탠리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호소하고,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기획을 지속해온“ 사회운동과 공감력을 키우는 자유주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파시즘이라는 문제에 대한 그의 진짜 ‘해결책’은 훨씬 간단하다. ”적나라한 경제적 불평등이 파시즘의 악선동에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파시즘의 사회적 토대를 놓는 계급 적대를 완화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가당착에 이용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항상적인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공통의 인류라는 감각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과 손을 잡는 수준으로 추락한다. 그의 책 마지막 장에서 스탠리는 단지 암시하는 수준에서일지라도 자신의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적 구상을 넘어선다. 그리고 실제로 파시즘을 낳는 것은 계급투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위계질서로 작동하는 사적 기업들의 경제로 구성된 사회에는 진정한 긴장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독하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스탠리의 말에는 진실의 핵심이 담겨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스스로 위기와 모순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위기를 해결하려는 자본주의의 몸부림이 모든 종류의 반동적이거나 진보적인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스탠리는 정치체제의 형태를 그것이 작동하는 경제체제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서 이해한다. 그래서 그의 해결책도 입법 활동이나 국가의 규제를 이용해 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로 국한된다. 스탠리는 책을 끝맺으면서 우리가 경제, 정치, 생태적 균열이 중첩된 복합적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선 계급투쟁과 반란을 낳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글에 따르면 ”우리는 곧 빼앗긴 사람들의 국제적인 운동을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은 앞선 시대의 운동이 왜소해 보이게 만들 것이다.“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재생산하고 보호하는 국가의 안정성을 흔드는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자본주의 위기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반란을 야기할 것이며, 그 반란은 결국 파시스트 반동 세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배계급에게 경고해주는 것이다. 사실 불만에 찬 소부르주아들이 노동자계급에 대항해서 날뛰게 만드는 것은 자본가계급일 것이다. 계급 화해라는 환상에 매달리는 스탠리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이런 일은 피해야 할 일이다. 비록 그가 파시즘의 부상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 전체를 펼쳐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 공통의 인류애를 교육하는 것과 더불어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과감하게 줄여나가야 한다고 넌지시 제안한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다른 길 파시즘에 관한 스탠리의 시각과, 파시즘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유물론적 분석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단어의 뜻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와 전 세계 우익 운동이 어떤 지점에서 자본주의 위기라는 큰 그림과 맞아떨어지는지, 그리고 그들에 맞선 투쟁에서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이것이 중요하다. 명백히 ‘중립적’인 스탠리의 자유주의적 구상, 즉 파시즘이 발생하는 그 지점에서 실제로 맞서 싸우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그의 구상에서 도출되는 강령은 계급 화해를 추구한다. 스탠리는 우익 정책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파시즘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을 끊임없는 위협으로 묘사하고, 이에 대항해 싸우려면 자본가 민주주의 제도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런 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본가 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맞선 투쟁에서 누가 우리의 동맹자인지 잘못 판단하도록 내몰릴 것이다. 스탠리의 책은 전형적인 자유주의 사고방식을 보여주지만, 그의 논리가 반자본주의 좌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탈린 공포정치를 거치며 소련이 퇴보한 결과, 많은 좌파 조직이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떠받치는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받아들이면서, 파시즘을 제대로 규정하고 그것에 맞서 싸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급 관계에 대한 분석을 포기했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우익 운동의 위협에 맞서려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단결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에 타격을 가하고 반동 세력을 무릎 꿇릴 수 있는 노동자계급이 온 힘을 기울여 인종차별에 맞서, 또 종교적이거나 민족적인 소수자에 대한 박해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 투쟁을 위해서는 노조 관료제에 맞서 현장 조합원들이 주도하는 강력한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토대와,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가 필요하다. 이 투쟁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을 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시즘이나 파시즘적 억압의 일부 요소에 의지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순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누가 우리의 동맹자이고 누가 아닌지 헷갈리면 안 된다. 자유 민주주의를 관장하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탓에 히틀러, 프랑코, 무솔리니 등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세계 곳곳에서 참주선동을 일삼는 자들이 노동자와 빈민의 압도 다수를 억누르고 탄압할 수 있게 된 것과 꼭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시즘이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스탠리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시즘에 맞서 싸우려면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자본가계급을 수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계급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우익의 폭력과 증오에 기댈 것이다. 파시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에 있다. 자본주의의 지배로부터 자신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단결된 행동이 그 길이다. 번역: 오연홍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ats-not-how-fascism-works/2022-11-23 | 조회 1,910 -
[번역]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편집자 주> 지난 10월말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룰라가 보우소나루에게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이번 브라질 대선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보우소나루주의는 ‘파시즘’인가? 보우소나루주의를 격퇴하는 길은 노동자당과 룰라의 선거 승리에 있는가? 이에 대해 10월 9일 브라질의 ‘혁명적 노동자운동’(MRT)이 발표한 글을 미국 <레프트보이스>의 영역을 거쳐 옮겨 싣는다. 파시즘인가 보나파르티즘인가? 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 위한 트로츠키의 교훈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이 브라질에서 부상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는 보우소나루 정부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극우에 맞설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 마르크스주의는 운동의 이정표이며, 동시에 우리를 집단화하는 사고의 지침이자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현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든다. 브라질에서는 극우에 맞서는 결단력 있는 투쟁의 조직이 절실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그의 협력자들이 전체 체제 안에서 입지를 강화한 대선 1차 선거 결과는 이를 재확인했다. 반면 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과 룰라(1)의 선거 캠페인은 우리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한다. - 이 선언은 극우와 맞서는 거리의 모든 풀뿌리 운동을 방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파시즘 규정은 보우소나루와의 그 어떤 진지한 대립도 방해하는 노동자당의 정책을 가리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보우소나루의 실제 파시스트적 면모를 바탕으로, 이 공작은 극우파에 대한 거부를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파시즘 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대중들 사이에 공포를 주입하려고 한다.(2) 이는 트럼프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보우소나루와 대치한다면서, 우파, 대규모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 민주당 분파와의 계급적 화해로 나아가는 행위다. - 이들 모두가 오늘날의 반동적 상황에 우리를 몰아넣은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에 책임이 있는데도 말이다.(3) 헤지스땡시아(Resistência, 사회주의자유당(4) 내 분파) 같은 특정 좌파 그룹들은 이러한 노동자당의 노선을 복창해 왔다. 헤지스땡시아의 리더인 발레리오 알카리(Valério Arcary)는 에미르 사데르(Emir Sader,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의 정치학자)의 주장이나 “파시즘 대 민주주의” 이분법 같은 노동자당(PT)의 선전을 되풀이한다. 정치적 개념들을 혼란스럽게 뒤섞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알카리는 브라질의 “네오파시스트들” 때로는 “파시스트들”을 물리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선거일에 전국을 붉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룰라-알크민의 계급화해 정치에 대한 열렬한 헌신으로, 이 조직은 보우소나루가 첫 번째 임기 때는 파시스트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던 것과 관계없이 이번에는 꼭 파시스트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한한 “두 번째 임기 파시즘” 주장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이 파시즘이고 무엇이 파시즘이 아닌지, 그리고 오늘날 브라질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헤지스땡시아와 마르크스주의 간의 결정적인 단절–오늘날 브라질이 파시스트 지배 아래에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는-에 대해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어떻게 파시즘과 맞서 싸웠는가? 친보우소나루 극우파들은 노동계급, 여성, 흑인, 원주민, LGBTQ+ 대중들의 적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보우소나루와 그의 협력자들은 눈에 띄는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개별적인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이 대중적 현상이 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브라질에서 파시즘의 발흥을 목격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현상은 혁명이냐 반혁명이냐를 가르는 격돌이 예고된 가운데 노동자계급이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만 현실화 될 수 있다. 만일 실제 파시스트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알카리의 조직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헤지스땡시아는 알크민,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미국 민주당 등 2016년 쿠데타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세력들과 함께하는 캠페인에 기꺼이 뛰어들고자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투표함 안에서, 노동자당과 우파의 동맹에 던지는 투표를 통해서 파시즘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선거일에 파시즘을 물리치자”는 헤지스땡시아의 기치다. 알카리와 다른 대변인들을 통해,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스트와 맞설 유용한 무기로 선거를 활용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적인 결론은 계급 간의 물리적 투쟁 공간에서 파시즘에 맞서는 대신, “평화로운” 시기 “통상적인” 부르주아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의 임무는 “반-파시스트” 세력(또는 사회주의자유당내 좌파사회주의운동(MES) 소속, 루씨아나 젱호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세력”(5))의 가장 광범위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바로 체제 내 많은 인사들이 페르시오 아리다, 알미노 프라가, 페드로 말란 등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신봉자들의 복귀를 환영하면서(6) 룰라-알크민의 광범한 전선을 가리키며 사용한 성격규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파시스트 현상에 맞서는 방법일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의 정치적 논리는 정반대다.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부르주아계급의 모든 부문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노동계급 헤게모니에 기반을 둔 강령과 함께,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에 맞선 노동계급의 단결을 바탕으로 여성, 흑인, 청년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민중과 연대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기한다. 이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코민테른에서 정교하게 다듬었던 노동자공동전선의 목표다.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표된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카프 폭동이라고 불리는 1920년 3월 볼프강 카프와 발터 폰 뤼트비츠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 독일 노동자계급이 성공적 투쟁을 전개한 데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은 전략을 강조하던 당대 마르크스주의의 무기고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가운데 일부다.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전술적 측면으로는 민주적 권리를 향한 극우파의 공격에 대항하는 것을 포함해 최소한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들과의 일시적 합의를 포함한다. 동시에, 전략적 측면으로는 -이것이 주된 목적인데- 대중들의 공통된 경험의 산물을 통해 (그리고 단결된 행동에 대한 개량주의 지도부의 거부를 통해) 혁명 정당들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권력 쟁취의 전망으로 다수의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전술은 항상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승리는 많은 부분 노동자공동전선에 입각한 접근에 대한 스탈린의 경멸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의 전술은 파시스트 집단을 물리치기 위한 공산당 계열과 사회민주노동당 계열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방해하고 계급투쟁을 저해했다. 이후 대응방식을 정반대로 뒤바꾼 스탈린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을 활용했는데 이는 계급투쟁을 연기시켰고 그 결과 혁명을 방해하고 파시스트들에게 승리를 내줬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들은 파시스트들의 부상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공장과 노동자 거주지를 방어하는 등)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노동계급의 자주적 단결이라는 방침은, 스탈린의 지시 아래 “제3기” 지침에 따라 코민테른 독일지부와 오스트리아지부에 의해 고의적으로 방해받았다. “제3기” 지침이 적용되는 동안 공산당 조직과 개량주의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노동자 운동의 지도력을 갖기 위해 서로 싸웠는데, 이는 양측 모두에게 유해한 갈등이었다. 이러한 행보는 영국과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기회주의가 재앙을 불러온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탈린주의의 파국적이고 종파적인 정책의 결과로 나치가 승리를 거두자 코민테른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동맹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합의 기간에는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것을 포함)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들 가운데 “민주적” 분파와도 손을 잡았다. 스탈린과 프랑스 외무장관 라발의 공동선언은 프랑스 공산당의 “사회적 평화”에 대한 약속과 함께 소련과 프랑스 간 군사협정을 얻어냈다. 이는 전 세계 ‘반파시스트’ 인민전선들의 모델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공동전선을 제기했다. 노동자공동전선은 계급화해주의 인민전선을 세우려는 기회주의 정책과 맞서 싸우고 계급투쟁의 실질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된 운동을 (모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핵심에 두었다. 1930년대 내내 트로츠키는 "반파시즘 전선"이라는 미명 아래 부르주아의 이른바 민주적-공화적 분파-항상 이러한 선거 구호를 내세웠던-와 타협하는 정책에 격렬하게 맞서 싸웠다. 이는 스탈린주의가 스페인과 프랑스에 인민전선을 건설하여 수많은 혁명적 과정들을 파괴하고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도록 하는 길을 닦은 기치였다. 20세기 후반 브라질에서는 이 정책을 되풀이한 결과 일련의 패배로 이어졌다. 브라질 공산당이 주도한 계급화해 정책은 노동자농민 운동의 패배로 이어졌으며 1964년 군사독재 정권의 대대적인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군사독재 이후 시기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화해는 1988년 헌법에서 군부의 후견인역 확립으로 이어졌고, 1990년대 신자유주의로 향하는 길을 수월하게 했다. 동일한 결말을 맞은 역사적 사례들은 넘쳐난다. 진정한 파시즘의 부상을 마주한 트로츠키는 1936년 7월 오스트리아 노동자들과의 대담에서 해당 문제를 조명했다. 트로츠키는 히틀러에 맞서 "반파시스트" 세력과의 동맹을 요구한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들의 모든 정책은 다음과 같은 사고에서 나온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노동자들의 주적은 히틀러다. 따라서 그들의 당면 임무는 히틀러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 안팎의 “민주적” 부르주아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이 포함된 모든 “반파시스트 세력”과 프롤레타리아가 동맹을 맺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 동맹은 계급투쟁을 완전히 유예해야만 가능하다. 다른 어떤 근거를 대더라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계급의 동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방금 우리가 보여주려 했듯, 이 정책은 나치의 승리를 부추긴다. 간결한 반증을 통해, 트로츠키는 부르주아(반파시스트 세력의 일부로 간주되는)와의 동맹은 계급투쟁을 미루고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을 무력화하면서 극우와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파시스트의 위협에 직면해,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무기를 내다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분석을 브라질의 상황에 적용하면 계급투쟁을 유예하는 것이 노동자당의 전형적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국립대학들을 향한 보우소나루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노동자당과 연계된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기를 쓰고 도망쳤다. 룰라는 알크민으로 대표되는 재계 리더들에게 어떤 불안정의 신호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10월 2일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통해 -보우소나루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표를 얻어 결선 투표가 열리게 됨- 이러한 정책이 극우파를 더 강력하게 만들 뿐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이들의 해결책은 “파시즘과 맞서기 위해” 선거에서 부르주아계급과 화해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스페인 좌익반대파 안드레우 닌과 그밖에 전 세계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와의 이러한 동맹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동맹들을 “반파시즘 전선”이라 부르든지, “확장된 전선”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소설가이자 프랑스 공산당원인 앙리 바르뷔스, 소설가 로맹 롤랑, 스탈린주의 코민테른 지도자들 같은 이들이 1930년대에 그런 것처럼 “대중들의 통일전선”이라 부르든지 간에 말이다. 트로츠키는 1935년 4월에 쓴 글에서, 노동자 공동전선의 기본 개념이 “부르주아 개인, 평화주의자, 민주적 작가들 등”과 연결되면서 의미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이랬다. “이 모든 블록, 회의, 위원회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수동성, 비겁함, 무능력을 감추는 게 자신의 과업이다.” 트로츠키의 예상은 정확했다. 선거를 통해 파시스트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던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1930년대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로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민족 자본가 사이의 동맹은 “반파시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계급투쟁을 가라앉혔다. 노동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틈을 이용해 돌푸스 정부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한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고, 결국 1934년 성공을 거둬 오스트리아군(軍)이 노동자들을 학살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사회당이 공화주의 자본가(급진당)와 결성한 동맹이 1936년 인민전선의 창설로 이어졌다. 1934년부터 힘을 키워온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공장 점거 물결이 일어나고 있던 계급투쟁에 제동을 걸었으며, 혁명적 봉기가 패배하는 길을 예비했다. 이것은 차례로 패탱 원수(元帥)의 비시 정부와 나치의 점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스탈린주의자가 마누엘 아사냐와 디에고 마르티네스 바리오가 이끄는 공화주의 부르주아와 함께한 인민전선(안드레아 닌과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7)의 지지를 받았다)이,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의 수호와 자본의 지배를 인정했다. 영웅적인 스페인혁명을 파괴하면서 말이다. 점차적으로,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조직들은 파괴되었으며, 노동자 민병대는 무장 해제되었고, 공장은 이전의 소유주들에게 도로 넘어갔다. 프랑코 파시스트 정부를 향한 길을 닦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각각의 역사적 실례에서 명백한 것은, 파시즘을 패퇴시키는 게 헤지스땡시아가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주장한 것처럼 투표를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진짜 파시즘 현상과 진지하게 맞서는 방법은 무엇인가?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선거가 아니라 물리적 투쟁을 포함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해결된다. 그 시작점은 모든 자본가 정당들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이다. 스페인의 예를 보자.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에 반대해, 대토지 소유를 폐지하고 농촌 대지주들을 수탈해 소농에게 토지를 즉각적으로 재분배하며, 자본가들을 수탈해 공장을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넘겨주는 투쟁을 주장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민전선의 입장과는 반대로 트로츠키가 마드리드 정부의 통치로부터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을 수호하면서 모로코에서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것을 강조한 점이다. 그것은 프랑코세력 군부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 이 정책은 “반파시즘 세력들”의 동맹 논리와 정확히 정반대였다. 그것은 기초적인 민주적 요구의 방어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반자본주의 사회적 경제적 요구를 건설한다. 이는 공동전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시 말해 (소위 민주적 자본가들을 포함해) 자본가들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내건 노동자들의 단결된 행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이 극우파와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는 정확한 정책이다. 나치가 승리하기 이전 독일에서의 상황을 두고 스탈린주의자들과 논쟁하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사회민주당 또는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의 공동의 연단(演壇)도 없으며, 공동의 출판물, 깃발, 현수막도 없다! 따로 행진하되, 단결해서 파업하라! 오로지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만 합의하라!”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트로츠키가 사회민주당과 같은 개량주의 노동자 조직과의 선거 협정이라는 의회주의적 수단을 계급투쟁에 유해(有害)한 것으로 문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심지어 인민전선의 시대 이전부터 그러했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우파, 대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민주당 분파와 함께하면서 룰라의 대통령 선거운동 속으로 자신을 용해시킨 헤지스땡시아의 기회주의적 적응이다.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기초한)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트로츠키의 방법은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는가? 그랬다. 다양한 역사적 순간에서 말이다. 1917년 코르닐로프 장군(러시아혁명에 반대한 파시스트 세력)의 반란 시도에 맞선 투쟁에서,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케렌스키 임시정부 기간 소비에트를 이끌었던 개량주의 정당들)에 공동전선 전술을 제안했다. 이 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을 단결시켰고 케렌스키와 동맹을 맺은 장군들이 이끄는 공격을 분쇄했다. 이 정책은 볼셰비키의 지위를 강화한 반면 계급화해주의자들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코르닐로프에 맞선 투쟁은 케렌스키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없이, 그리고 선거 수단들이 아니라 손에 쥔 무기를 가지고 수행됐다. 1920년 독일 노동조합들의 공동전선은 카프 폭동을 물리치는 데서 결정적 요인이었다. 뒤이어 독일에서 히틀러에 맞선 투쟁에서, 브르후잘과 클링엔탈 지역에 노동자 공동전선이 건설됐다. 공동전선에는 공산주의자 노동자들, 브란들러-발처가 이끄는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의 중도주의자들(이전에는 우익 반대파의 일부였다), 그리고 지도부에 저항하는 조합원들이 지역의 나치 세력을 패퇴시키기 위해 함께했다. 1936년 7월 스페인혁명에서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의 반동을 분쇄하기 위해 단결했다. (그러나 인민전선 군대가 이들을 억누르고 무장 해제했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심지어 브라질에서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34년 갈리나스 베르데스 반란에서 다양한 정치적 그룹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의 공동전선을 이끌었고, 쎄 광장(Praça da Sé) 전투에서 통합주의자들(8)을 물리쳤다.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전된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은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풍부한 무기들의 일부이며, 오늘날 필수적이다. 공동전선은 전술적 측면과 전략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전술로서 공동전선은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켜 공동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위급한 동맹으로서 개량주의자들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략적으로 공동전선의 주요 목표는 대중들과 공동의 경험을 거침으로써 혁명정당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대중들이 개량주의자들의 지도를 거부하도록 도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다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모든 단계에서, 공동전선은 지배계급 내 어떤 분파와도 독립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반복하지만 독일에서 1933년 히틀러의 승리는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에 대한 스탈린주의자들의 경멸, 즉 계급투쟁을 외면하고,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 집단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어떤 형태의 연합도 못 하게 막은 데서 비롯됐다. 뒤이은 유턴에서, 스탈린은 인민전선을 이용해 혁명적 운동을 패퇴시켰다. 그것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왔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책이 아니라, 반마르크스주의 인민전선 정책의 변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반파시스트” 우파부터 상파울루주산업연맹(FIESP), 알크민, 바이든과 함께 하는 선거연합을 지지한다. “함께 행진하되 절대 파업하지 말라!”가 그 공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보우소나루주의를 패배시키는 데는 무능력하지만 강화시키는 데는 충분히 유용한 룰라-알크민 후보의 계급화해주의 정책‧강령을 고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압제자들과 단결한다며 계급투쟁을 미루는 수치스러운 정책이다. 브라질에서 파시스트 봉기가 일어난다면, 헤지스땡시아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치명적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절대적으로 동떨어진 것이다. 파시즘이 아닌 것을 왜 파시즘으로 규정하는가? 브라질의 실제 상황은 무엇일까?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에 관한 노동자당(PT)의 선전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그것은 브라질의 정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우소나루주의 극우파의 반동적 행태를 정치이론적 범주로서의 파시즘과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 배우기 위해, 이론적으로 일반화된 경험을 적용한다. 그러한 전통에 입각해, 우리는 파시즘의 핵심이 모든 노동자 조직을 완전히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통해서 그 재건을 막는 것이라 이해한다. 트로츠키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목표는 오로지 경찰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그를 위한 단 한 가지 수단이 있는데,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 대중의 압력을 이용해, (프롤레타리아가 약해진 순간에) 프롤레타리아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적 반동의 바로 이 특정한 체계다.” 파시즘은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과 거대 금융자본의 테러주의 정치가 결합한 산물이다. 파시즘은 소부르주아의 몰락한 부문들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야말로 자신이 겪는 역경의 이유라고 믿게 만든다. 파시즘은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의 공공연한 충돌이 발생할 때 반혁명 진영의 선제적이거나 후속적인 직접적 대응으로 나타난다.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주의 극우파의 야만성을 대표한다.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보우소나루 정치의 매우 반동적인 특성을 이해해야만 하며, 노동자계급이 가진 가장 훌륭한 역사적 수단을 활용하여 그에 맞선 엄중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브라질리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자 불꽃(Faísca) 회원인 루이자 이네끼가 말한 대로다. “우리는 노동자당(PT)이 하는 것처럼 자본이나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교육에서의 긴축, 보우소나루주의, 혐오스러운 극우파와 싸우기 위해 단결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이론적 엄밀성을 갖더라도 브라질에는 파시즘도 없고 파시스트의 발흥도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특정한 선거적인 환상들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몇 가지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중대한 격변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정부의 기본 기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인 보나파르티즘의 다양한 단계들도 포함된다.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티즘을 이렇게 정의했다. 의회를 약화시키면서 좀 더 직접적으로 군사력에 의존하며, 언제나 자본주의적 소유를 보호하고 질서를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투쟁하는 계급들 위에 있으려 하는 정부형태. 좀 더 결정적인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는 아직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보나파르티즘은 “질서”의 도구다. 그것은 현존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소환된다. 정치적으로 계급들 위에 올라선 보나파르티즘은, 이전의 카이사르주의처럼, 사회적 의미에서 언제나 그리고 모든 시대마다 착취자들의 가장 강력하고 확고한 부분의 정부를 대표한다.“ (트로츠키, 1934년, <보나파르티즘과 파시즘>) 유럽 국가들을 위해 작성된 이 정의는, “[국가] 관료체계의 정점들을 지시하고, 고무하고, 부패시키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결정적 권력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반식민지 종속 지역에 적용했을 때는, 무엇보다 외국 금융자본에 대한 지역 대표자들의 굴종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보우소나루는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절대적인 굴종의 상징이다. 게다가 그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유리한 공격을 벌이기 위해 정부의 장군들과 사법적 권위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몇 가지는 의회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다양한 위기를 피해 나가기 위해 의회 내 자기 기반에 체계적으로 의존해왔다. 보우소나루표 보나파르티즘은 사회의 가장 진보된 부문에 오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국 금융자본의 목적을 추구하는 “민주적” 수단을 방어하는, 또 다른 보나파르티스트 세력인 사법부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공공질서가 어지럽혀질 경우” 군부에게 정치개입 권한을 주는 제142조와 같이, 독재정부가 만든 헌법 조항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금융자본과 대중들의 이해를 조화시키겠다는 이 헛된 시도는, 또한 자본과 노동의 동맹이라는 노동자당(PT)의 고전적인 개념을 부활시킨다.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정치적 단계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만들며, 이것은 극우파에 맞서 더 나은 싸움을 벌이는 데서 필수적이다. 브라질에서는 혁명과 반혁명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자본가들이 노동자와 민중에 대항해 내전의 방법을 사용할 준비를 요구받는 수준의 계급투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우소나루는 의회 기반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것 없이는 취약해질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극우파를 흡수해 그를 “정상화”하려는 정권의 입법 및 사법 기관(예를 들어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수개월 간 영향을 받아왔다. 파시스트 운동이 출현하기 위한 조건은 리더 개인의 열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계급의 객관적 요구에 달려 있다. 이 분석은 브라질에서 우익 요소의 중요성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며, 쿠데타 위협, 선거 절차에 대한 공격, 그밖에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에게 전형적인 행위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사회적 갈등의 현 단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올바른 방침을 발전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우리가 파시즘에 실제 직면한 것이 아니라면, 이 지도자들은 “파시스트 위협”에 대한 경고를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그들의 목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체제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막고 “파시스트의 광란”을 멈출 유일한 길은 “룰라의 지도력”(룰라의 선거 승리)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발레리오 알카리와 헤지스땡시아는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의 저렴한 옹호자가 되었다. 이 선거운동이 교회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보여주려 애쓰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옹호하지 않겠다고 홍보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노동자당(PT)이 선거에서 내놓은 입장들을 충실히 지지하고 있는데, 심지어 노동개악에 대한 공식 입장마저 복창하고 있다. 알카리에 따르면, 노동개악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초자유주의 노동개악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한다. 화해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 경우에는 여성과 노동자계급에게 관건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강령이 후퇴하는 결과가 뒤따랐다. 최근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중운동이 실제 파시즘 위협에 대비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당(PT)의 정책과 사회-자유주의 연합(명목상 사회[민주]주의를 내건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연합 –옮긴이)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극우파가 강요하는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맞선 대중 결집을 억제하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반파시즘 세력”과의 동맹은 오로지 계급투쟁을 미루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부르주아와의 화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평화”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 이후 노동자당(PT)이 해온 일이다. 테메르의 노동개악에 맞선 2017년 4월 28일 총파업이, 노동자당(PT)과 연계된 노총들에 의해 결국 봉쇄되었음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됐던 2019년의 범죄적 연금개악을 잊을 수 있나? 둘 다 2018년에 있었던 마리엘 프랑코와 카포에이라(브라질 전통무술) 사범 모아 살해 사건, 2022년 환경운동가 브루노 페레이라와 돔 필립스 살해 사건은 어떤가? 노총들이 무시했던 이들의 죽음은 극우파에 맞선 대결이 되어 나라를 마비시켰어야 하지 않았나?(9) 그리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경제장관 파울로 게데의 ‘그린 앤 엘로우 카드 프로그램’(브라질 국기 색인 녹색, 황색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고용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동권 공격 정책 -옮긴이)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어떤 투쟁도 없이 통과됐던 것은 어떤가? 공교육에 대한 수많은 공격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극우파가 가장 사악한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당(PT)이 통합노총(CUT), 브라질노총(CTB), 전국학생연합(UNE) 지도부를 통해 보여준 대응은 대중운동의 무장 해제였다. 우익의 전진이 공공연한 계급투쟁의 시나리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이 생각은 2020년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 거짓으로 증명된 바 있다. 지도력이 수행하는 역할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당(PT) 지도부가 알크민, 바이든, 대법원, 대자본과의 동맹으로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헤지스땡시아는 스스로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과 맞서 싸우는 과제를 브라질 자본가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룰라-알크민 정부 수준으로 강등시킨다. 그것이 노동자 투쟁의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자본가국가가 파시스트에 맞선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알카리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이라는 긴 사슬에서 마지막 고리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구출”할 수 있다고 보는 알카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국가를 대자본이 하위 계급을 억누르는 도구로 본다. 자본가국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그것은 “민주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계급투쟁이 요구할 때는 파시즘일 수도 있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우익 보나파르티즘(또는 선(先)보나파르티즘)의 변종을 포함하기도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조합을 국가 통제 아래 두거나, 국가와 연결된 노조 관료가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조직과 투쟁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을 갖게 하는 정책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 중 하나를 깨뜨린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제는 자본가 민주주의의 주요 기둥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 없이 지배계급은 대중의 빈곤 속에서 최소한의 안정도 얻을 수 없다. 헤지스땡시아는 역병을 피하듯 계급투쟁을 피하면서, “진보 정부”가 어떻게든 흉악한 극우에 맞서는 “국가 차원의 안전장치”가 되리라는 노동자당(PT)의 환상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극우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주먹으로,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모든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대해 “수정”이 아니라 폐지를 내걸고 투쟁하는 노동자 강령으로 분쇄돼야 한다. 6년 전, ‘혁명적 노동자운동’(MRT. FT그룹의 브라질지부)이 지우마 호세프 정부에 대한 우파의 제도적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동안, 발레리오 알카리는 제도적 우익 쿠데타를 지지할 것인지와 같은 기초적 문제를 두고 통합사회주의노동자당(PSTU)의 내부 논쟁에 참여했다. 유감스럽게도, PSTU는 ‘세차 작전’의 결과로 노동자당(PT)이 권력에서 제거된 것을 전진으로 보아, 쿠데타에 적응하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 심각한 오류에 대응하여, 당시 알카리 분파는 앞으로 나아가 제도적 쿠데타에 반대했다. 그것은 기초적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의 ABC에 기초한 입장이었고, PTSU의 굴복 때문에 그렇게 비쳐졌지만 어떤 거대한 진보는 아니었다. 상황은 비극이었다. 그 후 알카리 분파는 쿠데타에 맞선 시위에는 기권하면서 “즐거운 미래를 건설하자”라고 이름 붙인 축제를 조직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을 심화시켰는데, 오늘날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역할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알카리 분파가 가장 열광적인 선거주의에 기반해 있는 노동자당(PT)으로 용해된 것은, 이미 그 분파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분파는 알크민과 바이든은 말할 것도 없고, 쿠데타실행자들, 신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대법원,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그밖에 비슷한 종류의 반동들과 손잡고 “즐거움”을 선언한다. 헤지스땡시아는 과연 저항할 것인가? 오직 시간만이 답할 것인데, 시간은 무자비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일반화했을 때 브라질 역사와 세계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큰 교훈을 준다.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통해서는 극우와 싸우는 것도,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청년의 불꽃’은 브라질리아의 UnB, 캄피나스의 Unicamp, 상파울로의 USP와 같은 전국의 대학들에서 펼치진 상황에 개입할 때 바로 이 점을 보여주었다. 회원들은 현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룰라-알크민 후보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없이 보우소나루주의에 맞선 직접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자고 주장했다. USP의 마리아나 두아르테가 말한 대로, “지금 당장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극우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현장 조직화, 집회, 파업 같은 우리 고유의 투쟁방식을 통해서 가능하다.” Unicamp에서 줄리아나 베지아또는 이러한 토론들에 힘을 불어넣는 투쟁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다마리스, 무로오, 히까르도 살레스 같은 혐오스러운 인물들이 당선되면서, 보우소나루주의는 브라질에서 계속 사회적 세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투쟁하고 결집해서 반동적인 보우소나루주의에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사장이나 사업가들과의 계급 화해라는 노동자당(PT)의 정책으로는 보우소나루주의를 물리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파를 물리쳐야 한다. 노총들과 전국학생연합이 각 현장마다 집회를 조직할 것을 요구하자. 그 집회에서는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자기조직화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행해지는 모든 공격에 맞서 투쟁할 계획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영역자 주> 1. 룰라로 잘 알려진 룰라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노동자당(PT)의 대통령 후보이다. 룰라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이었으며, 노동자당(PT)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노동자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좌파 정당으로, 오늘날 이념적으로는 대략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한다. 룰라의 후임은 역시 노동자당(PT) 소속인 지우마 호세프였다. 2. 룰라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브라질사회당(PSB)의 제랄도 알크민이다. 그는 상파울루 주의 전 주지사였다. 3. 2015년 12월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부패”를 이유로 탄핵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탄핵소추는 ‘세차 작전’(브라질리아의 한 세차장에서 처음 “적발”됐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됐다)에 기반해 있었는데, 그것은 2013년 호세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에 시작된 브라질 연방경찰의 부패 범죄 수사로 처음에는 브라질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에 집중돼 있었다. 이후 이 범죄 수사는 룰라를 감옥에 가두는 데 활용됐는데, 이는 노동자당(PT)이 2018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으며, 미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2016년 8월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대통령의 예산법 위반을 찾아내 지우마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국가기관을 활용한 무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4. 사회주의자유당(PSOL)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는 브라질의 좌파 정당으로 규모가 꽤 있다. PSOL은 노동자당(PT)에서 축출당한 당원들이 만들었다. 5. 좌파사회주의운동(MES)은 PSOL의 가장 큰 분파다. 6. 페르시우 아리다는 브라질 개발은행의 전 총재다. 아르미니우 프라가는 브라질 중앙은행의 전 총재다. 페드루 말란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브라질 재무장관이었다. 7.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POUM)은 스페인에서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 좌파’와, 코민테른 내 우익반대파와 연계된 ‘노동자와 농민’ 블록이 연합하며 결성됐다. 트로츠키는 결성을 반대했다. 8. 브라질의 통합주의는 1930년대 초반의 운동으로, 당시 유럽의 대중적 파시즘 운동과 유사하다. 9.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이자 LGBTQ+ 활동가인 마리엘 프랑코는 2018년 3월 자신의 차에서 암살당했다. 모아 두 카텐데는 63세의 아프리카-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의 사범으로, 사랑받는 문화인이자 흑인 권리 옹호자였는데, 스스로를 보우소나루 지지자라고 밝힌 자에게 2018년 10월 7일 살해당했다. 그날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승리한 날이다. 브루노 페레이라는 브라질 원주민 전문가로, 아마존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불법 침략에 맞서 서류 작성, 고소 등 아마존 원주민을 지원해왔던 활동가다. 돔 필립스는 2022년 6월 기습 살해됐을 때, <아마존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 페레이라와 함께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의 서부 지역으로 연구 여행 중이었던 영국 저널리스트다. 살해범들은 아마도 불법 어업 네트워크 두목들 중 한 명에게 지시를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번역: 윤종훈, 김요한 원문 https://www.leftvoice.org/fascism-or-bonapartism-lessons-from-trotsky-for-understanding-brazil-under-bolsonaro/2022-11-22 | 조회 2,400 -
[번역] 우익이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방법사진: 로이터 통신 세계의 정치 무대에 조르자 멜로니와 같은 우익 여성 지도자의 존재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우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페미니즘’을 부당하게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조르자 멜로니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유럽 전역이 크게 우려했다. 멜로니의 집권은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토대로 한 극우세력 확대, 그 새 국면을 뜻한다. 그러나 멜로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의 앞에는 리즈 트러스 영국 전 총리와 같은 ‘고전적인’ 우익 지도자들이나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나 독일대안당의 알리체 바이델과 같은 ‘복원자들’이 있다. 이러한 광범한 우려를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유리천장 페미니즘의 아이콘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는 멜로니의 승리에 “한 나라에서 첫 번째 여성 총리의 선출은 항상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라고 반응했다. 그는 멜로니가 극우정당 소속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선출은 클린턴에게 좋은 소식처럼 보인다. 클린턴의 진술은 가장 최근의 역설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여성이 고위직을 맡을 때마다, 국가를 관리하는 이들의 젠더가 정책과 질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젠더 워싱(Gender washing), 즉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의 존재를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이는 여성들이 타고난 양육자, 조정자, 공감자로 간주되어, (이러한 특성이) ‘여성적인’ 자질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공식적인 연설이나 선거 운동, 광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다. 동시에 팬데믹이나 다른 위기의 시기에,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는, 실비나 바타키스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의 짧은 재임과 같이, ‘유리절벽’이라는 또 다른 오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여성들은 격동의 시기에, 단지 빨리 버려지기 위해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인가? 이상하지만 효과적인 혼합 멜로니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신과 조국, 가정’이었고 2019년에는 한 연설에서 “나는 여성이고, 엄마이며, 이탈리아인이자 기독교 신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연적인 가족을 지지하며, 게이의 로비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을 반대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 이슈 중 하나는 반동적인 ‘민족 대체’ 이론에 따라 이탈리아 출생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다른 우파 여성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 어머니, 가족’이라는 프로필을 쉽게 사용한다. 멜로니와 이러한 정치인들은 연구자 사라 패리스(Sara Farris)가 칭한 ‘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으로 수렴된다. 이는 반동적인 정책들을 지지하기 위해 페미니스트의 필요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패리스와 다른 연구자들은 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점점 더 이슬람 혐오적으로 변해 가는지 뿐만 아니라 유럽 우파정당이 페미니즘 이슈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고자 했다. 많은 우파와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머리 스카프 금지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현상의 한 예이며, 마흐사 아미니의 살해에 대한 이란의 시위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었다. 억압에 맞선 투쟁을 국가의 반동적인 금지정책에 대한 지지와 혼동하는 것은 우익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성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 우익 부문은 성별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 남성 이민자, 특히 아랍이나 무슬림 출신 이민자들은 성적 위협이자 안보와 경제상의 위협으로 묘사된다. 여성들은 억압적인 문화로부터 구해져야 할 희생자로서 묘사된다. 동시에, 이 그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주민들이 노동시장과 일반적으로 유럽 복지 부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적절한 복지와 사회 서비스 제공에서 물러나면서 이민자들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문제에서 그 격차를 점점 더 메우고 있다. ‘문화적 위협’이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이민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스페인 극우 복스당 마드리드지부 지도자인 리치오 모나스테리오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스페인에서 여성의 평등을 끝내고자 하는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르펜은 2017년 “이주민 위기가 여성 인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까 두렵다”고 기록했다. 멜로니가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에 대한 성폭행 동영상을 유포하면서 가해자가 아프리카 이민자라고 강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을 안아 달라. 나는 우리 도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멜로니는 마땅하게도 그 여성을 다시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외국인 혐오적인 태도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아 세루게티(Giorgia Serughetti)에 따르면, 극우는 가해자가 이탈리아인이 아닌 여성혐오 폭력만을 겨냥한다.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이탈리아인인데도 말이다. 그는 또한 여성이 전통적인 우익의 수사학을 동원하여 여성의 권리 침해에 항의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이민에 적대적인 여론에 호소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KKK단의 여성들 우파가 젠더 워싱을 이용하거나 반동적 논리를 페미니즘의 외관과 결합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난동은 종종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해로운 남성성’의 표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많은 여성 지지자들을 보유했으며, 큐어넌 운동의 대열은 여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과소평가된다. 아마도 그러한 반동적 현상이 불평등과 억압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남성적 본질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UC 버클리 역사가인 스테파니 존스-로저스(Stephanie Jones-Rogers)가 지적하듯이, 백인 우월주의에 연루된 여성들의 역사는 노예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인 여성들을 늘 희생당하는 동질적인 집단으로 위치시키는 경향이 식민시대부터 있었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KKK단의 회원 수가 150만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벌인 일의 대부분은 백인, 개신교 교외 주택가에서의 집단적 활동에 집중되었다. 언론인 에밀리 카타네오(Emily Cataneo)는 참정권 운동의 다양한 진영에 반인종차별주의적 비판이 부재했고, 투표할 권리가 획득된 뒤 이른바 페미니즘과 인종차별주의의 혼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나리오가 열렸다는 것을 지적한다. 엘리자베스 타일러(Elizabeth Tyler)와 같은 선동가들은 KKK단의 부흥을 도왔고, 여성 KKK단(WKKK)을 설립하여 조직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카타네오가 설명하듯이, 여성 KKK단은 참정권 운동 기간 획득한 권리들의 “수호자로 자신을 위치지었다.” 존스-로거스는 백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자, 백인 우월주의를 정치화하는 데 필요한 동맹이자 그들 나름대로의 선거 블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성폭력을 이용하는 것 또한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를 합법화하기 위해 강간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후 여성들은 아동 복지에 대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서 학교의 인종 차별 금지법에 대한 반발의 핵심이기도 했다. 큐어넌 운동도 마찬가지로 여성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당하게 이용했다. 대부분 여성인 이 그룹의 회원과 지지자들은 아동 인신매매 반대 캠페인 #SaveTheChildren(#어린이들을 구하라)을 주도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을 소아성애자라고 비난하는 ‘피자게이트’ 음모를 증폭시켰다. 더욱이 이러한 캠페인에는 복지와 돌봄에 대한 담론이 기묘하게 교차한다. <증오의 자매들: 백인 민족주의의 최전선(Sisters in Hate: Front Lines of White Nationalism)>의 저자인 시워드 다비(Seyward Darby)가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과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의 문제들을 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을 겨냥하여 큐어넌 같은 그룹이 만든 호소들에 매우 공통적이다. 여성이 더 잘 통치하는가? 다시 힐러리 클린턴으로 돌아가 보자. 여성이 권력을 잡는 것이 본질적으로 좋은 일일까? 이탈리아 사회학자 엘리아 아르피니(Elia Arfini)는 우파와 페미니즘 사이의 교차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더 이른 출발점으로 비욘세, 이방카 트럼프, 도브와 같은 브랜드가 그들의 마케팅 담론에 페미니즘을 포함시켰을 때를 주시했다(‘진보적 신자유주의’라고 들어봤는가?). 아르피니는 “배제, 억압, 불평등을 조장하는 영역에서 체계적인 사회 정의의 페미니스트 목표를 추구하면, 페미니스트 메시지의 세계적 확장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다”고 지적한다. 극소수의 영향력 있는 여성만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성차별을 비판하는 것은 더 많은 여성 총리와 대통령을 갖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둥을 개선하거나 방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글은 원래 Ideas de Izquierda에서 10월 23일 스페인어로 출판되었다(Otto Fors 번역). * 원문 : https://www.leftvoice.org/how-the-right-wing-uses-feminism-for-its-own-purposes/ (번역) 정은희2022-11-07 | 조회 2,352 -
[번역] 대만해협 위기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옮긴이 주: 지난 10월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는 자신의 총서기 3연임을 결정하는 제20차 당 대회 개막식에서 대만 정책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평화통일을 쟁취할 것”이지만 “무력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앞선 지난 8월초에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후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려한다면, 향후 몇 년 안에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더 이상 정세 전망에서 배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패권대결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건설해 나가는 데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 됐다고 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대만·홍콩·중국에 지부를 갖고 있는 국제사회주의대안(ISA) 그룹이 9월 초에 발행한 이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ttps://internationalsocialist.net/en/2022/09/new-cold-war 8월 2~3일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은 두 번째 냉전(미국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 권력투쟁)이 더욱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상대로 펠로시의 방북은 시진핑 정권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사격 훈련이 벌어졌다. 중국군은 일주일 동안 대만 해역에 200여 대의 항공기와 50여 척의 군함을 배치해서 최신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대만봉쇄 가상훈련을 진행했다. 이후 훈련 규모는 상당히 축소됐지만, 중국공산당은 군사태세 “신기준”에 따라 매일 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수많은 논평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이 무력행사는 180km에 달하는 대만해협에서 “현상을 바꾸었다.” 이제 대만과 그 주요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일본이 미래에 있을 중국의 대만공격을 저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중국과 미국 사이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새로운 그리고 훨씬 더 파괴적일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전 세계에 퍼졌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나리오는 단기적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위기로 내몰린 자본주의 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취약하고 늘 위험한 ‘현상 유지’뿐이다. 오늘날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두 자본주의 초강대국들 사이의 제국주의 권력 투쟁은 세계적인 사건들의 주요 동인이다. 또한 최근 대만해협의 위기는 미국도 중국도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양 정권의 군사적·외교적 행보는 각기 자국 내 위기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불안정한 정권들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국방부는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대만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현 시점에서 긴장의 고조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냉전을 고조시키는 사이클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게 양측 모두에게 적합했을 것이다. 바이든에게는, 미국 경제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민주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험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장기간의 대리전을 치르기 위해 유럽 동맹국들을 묶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있었다. 시진핑의 어려움은 더욱 컸다. 여기에는 일본식 자산붕괴, 인구감소, 제로-코로나 정책이 자초한 혼란, 푸틴과의 ‘연합’이 주는 시기적 부담 등이 포함됐다. 따라서 중국 정권은 대만에 대한 통제를 자신의 역사적 사명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펠로시의 방문이 공개되자, 미국 정부는 그녀의 방문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중국의 위협에 굴복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진핑도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려 강경대응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종신 집권자로의 상승을 불과 두어 달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허약한’ 인물로 비쳐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훈련은 2,300만 대만 인민 사이에서 중국과의 통일에 대한 대중적 반대를 강화함으로써 역효과를 낼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 인구의 73%가 중국의 침공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대만의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을 약 14%나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대만 무기의 4분의 3을 공급하는 미국의 무기산업은 기대감에 입술을 핥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열망을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결정적인 오판을 하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참담한 군사적 실패를 보여준 것처럼, 시진핑의 공격적인 ‘늑대전사’ 태세는 대만 인민들로부터 훨씬 더 큰 반대를 불러올 것임이 틀림없다. 미국 정책의 변화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는 대통령 바이든과 부통령 해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고위 관리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미국 제국주의가 대만에 대해 오랫동안 취해 온 공식 입장(대만의 독립을 반대하지만 중국의 무력사용도 반대)으로부터 점점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중대한 추가 조치로 간주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자신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견지해 온 외교 공식인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같지 않다. ‘하나의 중국’ 정책 아래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그 정부만을 인정하되, 대만(공식 명칭은 중화민국)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튼튼한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마카오가 절대 나누어질 수 없고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로지 하나”임을 뜻한다. -옮긴이) 대만과의 관계를 둘러싼 혼란스런 외교 수칙은 1970년대에 당시 중국의 스탈린주의 정권과 미국 제국주의 사이에 맺어진 거래로부터 비롯됐다. 이 거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회복을 가능케 했고, 중국이 냉전 와중에 서방 진영으로 돌아서게 했다. 대만을 통치하던 독재정권은 소련에 맞서 스탈린주의 중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훨씬 더 큰 전략적 성과를 추구한 서방 동맹국들에 의해 외교적으로 강등되고 유엔에서 추방당했다. 이러한 미국-중국 동맹은 1980년대 후반 스탈린주의 일당독재 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대만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야 한다. 이 정책은 미군이 직접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답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에 입각한 정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나 “약소국의 권리”에 대한 어떤 관심도 작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중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만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싸고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제 미국 지배계급 내 일부 집단은 미래에 중국을 고립시키고 중국 체제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해 중국에 맞서 벌일 대리전의 본보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약화된” 러시아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대만 대중들의 민주적 권리는 중요한 문제지만, 노동자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성과가 여전히 취약하다. 언론의 자유는 어느 지점까지만 인정된다. 투표할 권리가 있지만 오로지 자본가 정치인들만을 지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파업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미국 제국주의의 계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40년 동안 대만의 잔인한 독재를 지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큰 이해관계가 걸린 갈등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에게 있어서 이 갈등에 걸린 이해관계는 거대하다. 무엇보다 이 갈등은 양 진영 간의 기술 전쟁에서 대만의 결정적 역할과 관련된다. 대만이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칩의 65%를 생산하는데, 특히 최첨단 칩의 경우 92%를 생산한다. 8월 25일, 바이든은 2,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반도체 과학법’에 서명했는데, 미국의 반도체 생산을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 법은 미국 대 중국의 기술 전쟁에서 하나의 “획기적 사건”으로 묘사돼 왔다. 하지만 대만의 중요성은 기술 그 이상이다. 중국의 어떤 자본가 정부도 대만의 독립을 묵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의 독립은 홍콩, 신장, 티벳 등에서 베이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압력을 증대시키면서 변방의 원심력을 가진 국가를 통치하는 중국 정부의 능력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몇 달 동안 중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인 상하이가 봉쇄되는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는 “상하이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표면화되었다. 상대적으로 더 널리 퍼진 현상은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뒤늦게 쏟아진 것이다. 중국의 경제 불안이 깊어질수록 변방들과 중심 사이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전개는 불가피할 것인데, 이른바 경제기적이 끝나고 ‘일본식’ 저성장 또는 제로성장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 문제는 중국 국가와 자본주의 지배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내부 모순에 대한 억압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다. 미국에게도 이 갈등은 실존적 성격을 갖는다. 현 시기 미국의 냉전 전략은 (21세기 세계 자본주의에서 결정적 지역인)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1945년 이후 유지해 온 지배를 더욱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둔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있어서 대만의 상실은 (다시 말해 베이징 정권의 대만 지배는) 베트남 전쟁에서 겪었던 굴욕보다 훨씬 더 큰 후과와 함께 역사적 패배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서 국가들의 세력관계가 중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지위는 (세계 패권국에서 -옮긴이) 대륙 강대국 수준으로 격하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는, 한편으로 1970년대부터의 모호한 ‘하나의 중국’ 정책과 기타 외교 의례들을 말로는 여전히 준수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만의 분리된 지위를 ‘정상화’하는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펠로시의 방문이 의도한 바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왜 바이든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임을 강조해서 말하고 미국 관리들이 다시 이를 부정하는 일련의 ‘실수들’을 거듭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존의 ‘전략적 모호’ 정책을 ‘전략적 혼동’ 정책으로 대체한 것이다. 미국의 우파 세력들은 더 나아가 대만을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의회와 공화당의 여러 목소리들이 함께한다. 트럼프는 펠로시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비난했지만, 펠로시의 여행을 지지한 공화당원들도 여럿 있었으며, 여기에는 악명 높은 매파인 존 볼튼도 포함된다. 볼튼은 미국이 “대만을 외교적으로 완전히 승인하면서 대사관을 비롯해 모든 것을 교환해야 하며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입장 시진핑 정권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취소되게 하려고 몇 달 동안 노력했다. 원래 펠로시는 4월에 대만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취소됐다. 펠로시의 8월 방문 일정이 알려진 7월에 중국 정부는 미국에게 “심각한 후과”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대만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그런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 메시지가 더 강했다. 중국은 “전례 없는” 대응을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격렬함은 펠로시의 직급 등 여러 요인 때문이었지만, 주된 요인은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펼쳐지고 시진핑을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방문이 진행된다는 점에 있었다. 펠로시의 방문 전후로 미국과 다른 나라 고위 관리들도 대만을 줄줄이 방문했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과 리투아니아에서 대표단이 방문해서 타이베이를 냉전 셀카를 찍는 무대로 활용했다. 중국 정부는 종종 이들의 방문을 무시했다. 어쩌면 펠로시의 방문도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전개되고 그에 따라 시진핑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그런 선택은 불가능해졌다.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다음날인 8월 4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중국의 전쟁놀이는 그 규모라는 점만이 아니라 대만해역에 대한 근접성이라는 점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여섯 개의 훈련구역은 대만을 사실상 모든 방향에서 포위했다. 이것은 대만과 대만해협 봉쇄를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대만 봉쇄는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로서,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대만을 강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번 훈련에서 기술과 조정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군사적 힘을 크게 과시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서 실제로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중국 정부가 보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제 인민해방군이 우위를 갖고 있으며 언제라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거의 절반이 지나가는) 대만해협을 봉쇄함으로써 대만과 나머지 세계의 연결을 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을 보완하기 위해, 7월 13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중국 정부가 볼 때 “국제해역” 규정은 대만해협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은 이 성명을 일축했다. 이 성명은 중국공산당이 베트남·필리핀 등과 분쟁 상태에 있는 남중국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기 위해 전개했던 “회색지대 전술”을 복제한 것이다. 회색지대 전술 회색지대 전술이란 주어진 갈등 상황에서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 현상변화를 도모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나 정책을 말한다. 남중국해에서 인민해방군은 인공섬들을 건설한 뒤 그 중 일부에 전투기와 대공·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다. 분쟁상대를 저지하고 주변 해역에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정부는 (인도보다 넓은) 350만 평방킬로미터 수역에 대한 배타적 영유권을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분쟁상대 국가들과 일대일 방식의 교섭만을 고집한다. 힘의 불균등에서 오는 이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중국 외교부 장관이던 양제츠는 아세안(ASEAN) 외교장관 회담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여러분들은 작은 나라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펠로시 방문 이후 대만을 에워싸고 인민해방군이 벌인 훈련은 비슷한 전술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 ‘중간선’을 반복해서 넘어섰는데, 이는 전체 해로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간선은 개념적이고 비공식적인 경계선이지만, 수십 년 동안 중국과 대만 양측이 대체로 존중해 왔다. 이런 식으로 점진적인 또는 ‘살라미 자르기식’ 접근을 채택하면서 중국의 군사행동은 세력관계를 바꿀 새로운 ‘기정사실’을 수립하려 한다. 물론 미국 제국주의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비슷한 전술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상황인지는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것보다는 덜 분명해 보인다.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중국공산당은 미국과 외국 군대를 상대로 대만해협 내 ‘통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쟁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 점은 8월 28일 미국의 유도미사일 순양함 두 척이 대만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며 (미국 해군의 표현에 따르자면) “통상적인 대만해협 통과”를 실행했을 때 드러났다. 미국의 작전은 의도적으로 펠로시의 대만 방문 시점보다 거의 3주 뒤로 연기됐으며, 1996년 위기 때 항공모함 전단 두 개를 대만해협에 배치했던 대응보다 훨씬 작았다. 갈등을 더 상승시키지는 않을 정도로 대응을 조정한 것이다. 중국 측도 미국의 작전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족주의 신문 <환구신보>는 미국 순양함 두 척으로는 “중국 안보에 아무런 실제 위협을 안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선전의 주된 초점이 이 이슈를 진정시키고 민족주의 분위기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막는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만일 중국 정부가 예행연습을 넘어 실제로 타이완을 강제 봉쇄하려 했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 특히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반격에 직면했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이 군사훈련 도중 발사한 11개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5개가 오키나와 남서쪽 일본 해역에 떨어진 것에 대해 항의했다.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5개의 미사일에 대해 환호했지만, 이 미사일들은 실제로는 목표를 빗나가면서 실수로 일본 해역에 떨어졌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은 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 중이던 중국 외교부 장관 왕이가 그 미사일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눈에 띄게 놀랐다고 보도했다. 그 진실이 무엇이든, 미사일 사고는 일본 기시다 정부가 자신의 군사화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선물이 됐다.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제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천 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자신의 미사일 역량을 현행 1백 킬로미터에서 1천 킬로미터로 상향시킨다면, 중국의 연안 지역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군사적 근육을 풀고 30년간 경제침체에 따른 상대적 허약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근의 세계적 긴장 고조를 탐욕스럽게 활용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현행 세계 9위인 군사비 지출 순위가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 증강 가속화는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는 비슷한 추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 호주, 영국을 포괄하는 오커스(AUKUS) 협약은 특히 중국의 대만 해상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과 오랜 국경갈등을 겪고 있는 인도는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군사화”를 이유로 중국을 비난했다. 이것은 모디 정권이 쿼드(QUAD) 등을 통해 미국 제국주의와 점점 더 행보를 같이하는 과정의 일부다. 다만 모디 정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10월에는 인도군과 미군이 중국과 분쟁중인 국경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만에 대한 장기 봉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안 주요 항구로의 운송을 방해함으로써 중국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것이다. 세계적으로 파급효과를 미치기 이전에 중국이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만해협에 대한 인민해방군의 봉쇄는 “전쟁행위”로 간주될 것이고 서방 자본주의로부터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금 러시아에게 가해진 규모를 넘어서는 경제제재나 외교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다. 다르게 말해서, 대만을 봉쇄할 경우 중국정부가 지게 될 위험부담은 전면적인 대만침공을 시도하는 경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높을 것이다. 실제 의도와 인지된 의도 그러므로 펠로시 방문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시끌벅적한 반응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머지않아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지만, 실제 중국의 반응이 그걸 뜻하는 건 아니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거나 차단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이 모든 카드를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이 미국과 직접적 갈등을 뜻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의 군사력이 발전했다 해도 세계 최대 군사력을 가진 미국과 지금 당장 대결하기는 버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엉망진창이 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정부가 그와 같은 전쟁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조심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게다가 바다를 통한 대만 침공은 러시아의 육지를 통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해 군사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한 작전이 될 것이다. 세력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양측의 엄포와 선전을 실제 의도와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미래에는 세력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무엇보다도 군사적으로 실패할 경우 뒤따를 정치적 파장과 러시아 유형의 제제가 부과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진핑 정권은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 게다가 현재 중국의 경제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시진핑은 8월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훈련은 미국 측에도 새로운 전략적 문제들을 안기지만, 중국공산당에게도 심각한 난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인민해방군의 군사적 시위는 반중국 연합을 결집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주도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G7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한 전례없는 규탄성명을 채택한 데서 보여주듯이 미국은 유럽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묶어세웠다. 반중국 연합으로의 결집은 미중경쟁의 핵심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은 이번 사건을 재빠르게 활용하면서도 최근의 대만해협 위기를 둘러싸고 중국의 “함포 외교”에 반대한다는 다소 제한된 메시지로 대응했다. 지금의 대치가 가져올 또 다른 큰 대가는 경제적 탈동조화의 가속일 것이다. ‘중국+1’ 전략에 입각해 중국 투자분 가운데 일부라도 다른 나라로 이전함으로써 장차 대만해협의 군사적 갈등에 대비하라는 압력이 서방 기업들에게 증대하고 있다. 이건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겪은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지만, 중국과 세계경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호전적인 소음들이 현재로서는 진지한 전쟁준비의 신호는 아님을 말해준다. 7월 28일 시진핑과 바이든의 통화에서, 시진핑은 펠로시의 방문에 대해 다시 한 번 바이든에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8월 1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에서 더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시진핑은 바이든에게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불특정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또한 미국과 전쟁으로 치달을 의사가 없음을 알렸고, 양측이 ‘평화와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신뢰성은 실제 사건들에 의해 뒷받침됐다. 핵심을 말하자면,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의 반응을 잘못 해석하거나 너무 놀라지 않도록 미국에 미리 귀띔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 지도자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지금 매우 위협적으로 보일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나의 과잉반응에 과잉반응하지 말고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지 않게 해 달라. 중국 민족주의 중국의 자본주의적 부상을 과도평가하는, 좌파 일부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들은 현 위기의 핵심 특징을 놓치고 있다. 시진핑의 반응을 결정한 것은 국내 전선에서의 위기 심화라는 점이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경고를 보내야 할 필요 또한 하나의 요소이긴 했지만 지배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이전 몇 주 동안 외교적 대치가 고조됐을 때, 중국공산당의 여러 선전매체들은 펠로시가 맞이할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며 서로 경쟁했다. 시진핑은 그동안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동적인 중국 민족주의가 성장하도록 조장해 왔다. 이는 시진핑의 지배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되고 점점 더 경제성장을 산출해 낼 수 없게 된 것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중국의 민족주의 우파는 이제 창조주의 통제를 벗어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더 정부 정책에 지장을 주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이 필요에 따라 정책을 조정할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지배계급이 트럼프주의 성장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과 일정하게 비슷하다. 펠로시의 방문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고조된 민족주의 감정은 중국 정부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광범한 기대를 만들어 냈다. 시진핑으로서는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진 셈이었다. 그러므로 중국 정부가 벌인 일련의 군사훈련은 경제적 불황, 급증하는 실업, 끝없는 ‘제로 코로나’ 봉쇄에 지친 이들에게 오락거리로 제공한, 또한 펠로시의 비행기가 대만공항에 착륙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실망하면서 믿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민족주의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구경거리”였다. 8월 2일 저녁, 중국 본토에서 2억 명 이상이 펠로시의 대만 도착을 인터넷 생중계로 시청했다. 이것은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의해서든 후시진의 주장 이후 널리 리포스트된 것처럼 격추를 당해서든,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군사적 개입에 의해 대만에 도착하지 못하리라고 정말로 기대했던 뉴스플랫폼들 덕택이었다. 후시진은 중국공산당이 운영하는 <환구시보>의 전 편집인으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실망스런 결말 앞에서 중국 민족주의 집단들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평소 민족주의 우파에게는 공간을 제공하지만 반대 내용은 차단해온 소셜미디어들은 “민족적 수치”라고 비난하고 중국을 “종이호랑이”로 묘사하는 게시물들로 가득 찼다. 8월 11일, <니혼게이자이> 아시아판의 보도에 따르면, “실망과 분노가 블로그 세상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책상을 치고 의자를 던지는 영상들이 널리 퍼졌다. 다음날 아침, 많은 중국인들이 좌절감이 끓어 넘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는 곧 중국공산당에 대한 힐난으로 이어졌고, 민족주의가 어떻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시진핑 정권을 “거짓말을 했다”거나 “빈말만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중국 민족주의 우파들 사이에서는 중국공산당 공식 선전매체들에 힘입어 푸틴에 대한 추종이 확산돼 왔는데, 일부는 펠로시를 차단하지 못한 시진핑 정권의 무능함을 러시아 독재자 푸틴의 “단호함”과 비교했다. 중국공산당 내 권력투쟁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내 반시진핑 파벌에 맞서 치열한 권력투쟁에 휩싸여 있다. 권력투쟁은 중국공산당만이 아니라 과거 제국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중국 체제에서 고질적이었다. 펠로시의 대만방문 시점은 시진핑의 핵심 일정과 겹쳤는데, 마침 중국공산당 내 각 파벌의 원로들이 베이다이허에서 여는 연례 비밀회의가 시작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8월 14일 끝났다고 추정되는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10월에 열릴 제20차 당 대회에서 명목상 선출될 최상위 직책에 대한 파벌간 할당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진핑으로서는 펠로시 방문에 허약하게 대응한 상태로 베이다이허로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의 지위는 지난 몇 년 동안 실제로는 취약해져 왔는데, 이 때문에 그는 민족주의, 반미 수사, ‘대만카드’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도 점점 더 활용해 왔다. 시진핑의 지배 자체가 10월 당 대회에서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고 총서기 3연임에는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중국공산당 내 최상위 기구 안에서 경쟁 파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강제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 제20차 당 대회의 결과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시진핑과 그 충성파들로만 채워졌다. -옮긴이) 그럴 경우 총리 리커창을 중심으로 한 반시진핑 파벌들은 특히 경제정책에서 시진핑의 권력을 제한해 보려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시진핑 파벌들 역시 시진핑 못지않게 중국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연히 그들 누구도 대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시진핑에 대한 반대는 주로 그의 가중된 권력집중과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하고 경제위기를 악화시킨) 과도한 민족주의에 기반한다. 중국공산당 내 모든 파벌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격변을 진동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들의 독재국가가 어떻게 생존할지를 둘러싸고는 분열돼 있다. 대만의 독립 대만에서도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1995~96년 대만해협 위기 때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의 군사훈련은 대만의 대중의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역효과를 낳았다, 이것은 군사무장과 (반민주적 법률의 확장을 포함해서) “강력한” 정부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는 반사적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진핑은 홍콩에서 대중시위를 진압하고 자치를 제한해 낸 성과를 되풀이해서 떠들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자신의 민족주의 권력기반을 달래기 위한 힘의 과시다. 하지만 대만에서 그 영향은 독립 감정에 더 기름을 붓는 것이며, 홍콩식 “일국양제”에 기초해서 통일과정을 협상해 나가려던 중국공산당의 기존 전략을 허물어뜨린다. 대만에서 독립을 향한 태도는 복잡하다. 다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82% 이상이) ‘현재 상태’ 다시 말해 사실상 그러나 비공식적인 독립을 유지하길 선호한다. 공식적인 독립 선언은 중국과의 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인들 가운데 1.3%만이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한다. 대만인들의 민족정체성 강화는 차이잉원이 이끄는 친미 민주진보당 정부나 대만 자본가들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첫 번째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25%의 대만 주민들만이 스스로를 대만인이라고 인식했다. 오늘날에는 그 수치가 약 68%로 상승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자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수는 1995년 47%에서 27.8%로 하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했다. 하지만 다수는 여전히 그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막아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대만의 국민당은 과거 집권당으로서 미국 지원 아래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주요 야당이 돼 있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17%라는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20년 동안 중국공산당과 긴밀하게 결탁했다고 비난받고 있다. 국민당의 새 지도부가 이전의 친중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더 친미적인 노선을 채택하고 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차이잉원을 잇는 대선후보가 누가 되든 민주진보당이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11월 지방선거는 다른 문제다. 대만해협 갈등이 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국민당의 시장 후보들이 전국적인 당 지지율보다는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300명 이상의 대만 노동자들이 캄보디아에서 운영되는 중국계 카지노 산업의 가짜 일자리 제안에 속아 인신매매를 당한 사건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과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따라,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대만 인민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 우리는 대만이 중국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라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한다. 레닌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기존 러시아 제국에서 억압받던 민족들을 해방시켰으며, 그들에게 독립국가를 건설하든지 아니면 사회주의 연방에 자유롭게 결합하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권리를 부여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도할 필요성이고, 이는 민족이나 다른 이유에 따른 분할을 극복하여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을 실현함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 만일 한 국가나 지역의 노동자들이 그들 지배계급의 민족주의 사상이나 목표를 채택하면서 다른 노동자들에 맞선다면, 이러한 단결은 건설될 수 없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와 국가의 창설은 (1949년 중국에서 건설된 것처럼 왜곡된 스탈린주의 모델이 아니라면) 경제를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통제와 관리 아래 둠으로써 사회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는 국경이나 소수민족·소수종파의 권리 같은 모든 민족문제들을 세심함과 진정한 국제주의 정신에 입각해 다뤄나갈 것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가능한 최대의 응집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강제나 민족적 특권, 국수주의를 배격한 가운데, 사회주의 연방 건설에 합류해 달라는 호소를 통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기초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만과 중국본토 그리고 더 넓은 지역 전반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전제통치에 맞선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주장한다. 또한 이 투쟁을 조직하고 진정한 지도력을 제공할 사회주의 당들의 건설을 주장한다. 만일 대만 인민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그리고 이는 오늘날 명확한 사실인데, 노동자운동은 이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 구경꾼처럼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투쟁에 뛰어드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민족독립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아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대만의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데), 사회주의 세력은 대만 민족주의를 이끄는 자본가들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독립”이란 사실상 한 쪽의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쪽의 제국주의 주인을 지지하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의 미래 노동자운동은, (지금은 독재 치하에서 진정한 노동자조직들이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대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에 맞선, 그리고 독립할 권리를 포함한 민주적 권리들을 향한 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중국과 미국 양자의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에 맞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면서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반 위에서, 냉전의 고조와 군사주의, 경제 침체와 후퇴, 기후 재앙과 파괴적인 전쟁들의 위험 같은 새로운 참상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국제사회주의대안(ISA) 대만·홍콩·중국 지부는 확신한다. 독립적인 사회주의 대만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수 있으며,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끝없이 악화되는 갈등과 충돌을 종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투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제국주의를 쓸어버리고 국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지역 전반의 나아가 세계적인 혁명투쟁의 일부이다. (옮긴이) 양준석2022-11-06 | 조회 2,269
